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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30'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5.30 2015-055 수덕사
  2. 2015.05.30 2015-054 萬人譜 20 사람과 사람들
2015. 5. 30. 13:42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55 수덕사

 

글 / 고영섭, 윤희상, 유마리●사진 / 박보하

2000, 대원사

 

 

시흥시립도서관

SA0026643

 

082

빛12ㄷ  240

 

빛깔있는 책들  240

 

고영섭(연혁)-------------------------------------------------------------------

시인, 경북 상주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 ·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불교학 전공). 현재 한국불학연구소 연구실장으로 동국대 · 한림대 · 강원대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석굴암 관세음을 기리는 노래』, 『원효, 한국 사상의 새벽』, 『몸이라는 화두』, 『새천년에 부르는 석굴암 관세음』 등이 있다.

 

윤희상(건축)-------------------------------------------------------------------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 ·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한국건축사 전공).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하였고, 목원대 · 남서울대 · 경원대 · 홍익대에서 한국건축사를 강의하였다. 현재 신흥대학 건축설계학과 조교수이며 경기도 문화재전문위원, 한국건축역사학회 학술위원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9세기 목조 건축의 기법 연구」, 「한국 중세 목조 건축기법에 관한 연구」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한국 미술 문화의 이해』(공저)가 있다.

 

유마래(유물)-------------------------------------------------------------------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동국대학교 대학원과 파리 4(소르본느)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동양미술사 전공, 문학박사). 파리 기메국립동양박물관에 파견되어 근무하였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을 거쳐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실학예연구관으로 재직중이다. 동국대 · 한성대 · 한남대 · 덕성여대 강사를 지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일본에 있는 한국 불화 조사-쿄토 · 나라 지방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서울 · 경기 지역 괘불 탱화의 고찰」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조선조의 탱화』, 『조선조 아미타불화의 연구』, 『고려시대 오백나한도의 연구』 등 다수가 있다.

 

박보하(사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으며 네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다. 1993년 월간 『사진예술』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사진가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에는 『Korean Culture』로 한국일보 출판문화상 사진예술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한국의 전통 문화를 주제로 한 사진들을 주로 촬영하고 있으며, 사진집으로 『산사의 미를 찾아서』가 있다.

 

|차례|

 

선의 으뜸 사찰, 수덕사

연혁

건축

유물

수덕사 가는 길

참고 문헌

 

선(禪)이란 마음을 한 곳에 모아 고요한 경지에 들어 자기의 본래 모습을 찾는 방법이다. 조용히 앉아 좋고 나쁨을 생각하지 않고, 옳고 그름에 관계하지 않고, 있고 없음에 간섭하지 않아서 마음을 안락 자재한 경계에 거닐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건강한 이치를 사유하고 생각을 고요히 하여, 흩어지거나 어지럽게 하지 않는 것이 곧 선이다.

선은 붓다의 마음이요, 교는 붓다의 말씀이다. 붓다의 마음인 선은

 

자신의 마음을 가리켜 直指人心

자신의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며 見性成佛

문자를 세우지 않고 不立文字

문자 밖의 소식을 따로 전하는 敎外別傳

 

것을 지침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자기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 임을 일깨우는 수행법이다.

덕숭산 전경  명산과 고찰이 조화를 이루고 구릉과 들판이 어우러진 덕산. 그래서 사람들은 예부터 이곳을 호서의 소금강이라 일컬어 왔다.

서산 마애불  이 시대 불상들에는 온화한 미소와 넉넉한 기품이 담겨 있는데 수덕사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창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음바위와 관세음보살상  수덕도령과 덕숭낭자의 전설이 깃든 곳으로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기원하는 기도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경허선사 영정  한국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로 선의 혁명가이자 대승의 실천자였다. 사진 : 유남해.

무이당 편액  경허선사의 친필로 '오직 하나뿐인 깨달음을 향해 매진하는 수행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만공선사의 시가 새겨진 거문고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이강 공이 만공선사에게 선사한 것이다.

일주문 편액  동방제일선원 수덕사의 격을 나타내고 있다. 글씨는 소전 손재영이 썼다.

일주문  이와 같은 관문들은 주불전에 이르는 길에서 인간의 모든 번뇌와 욕심, 그리고 악한 생각들을 정화시키는 상징이 된다.

사천왕상  수미산 중턱에 머물며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네 명의 대천왕상이다.

황하정루  경내에서 행하는 제반 의식의 집전 장소로, 지하에는 박물관인 근역성보관이 있고 1층은 박물관 사무실로, 2층은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명부전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지옥 중생의 천도와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범종각  범종을 보관한 곳으로 1973년에 건축되었다.

법고각  사물 가운데 목어 · 운판 · 법고가 봉안되어 있다.

청련당과 백련당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로 대웅전을 중심으로 보면 청련당(위)은 좌청룡에, 백련당(아래)은 우백호에 해당한다.

수덕사 대웅전  고려 후기 사찰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약 200여 년을 단위로 보수가 이루어졌다.

대웅전 평면도.

대웅전 초석(위)과 기단석(아래)  초석은 대부분 자연석 주초를 사용하였으나 대웅전 정면 열의 초석들은 주좌를 돋음하여 사용하였고, 기단석은 장대석을 곱게 다듬어 깐 다듬돌 바른층쌓기를 하였다.

대웅전 기둥과 창호  전통 목조 건축의 대표적 의장 기법인 배흘림 · 귀솟음 · 안쏠림 기법이 기둥에 사용되었으며, 창틀은 전체로 연귀맞춤하여 한 틀로 짜 맞추는 고식 구성을 보인다.

대웅전 측면 가구 및 공포  공포는 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적절하게 전달해 주는 지지대 역할을 하며, 역학적 원리에 의해 중점되는 부재들의 의장적 효과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부분이다.

대웅전 처마  처마는 벽체나 창호가 빗물이나 직사광선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것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대웅전 종단면도.

대웅전 측면  기하학적이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은 한국 전통 목조 건축의 가구미를 가장 잘 나타낸다.


고려시대 건축의 구조 형식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대웅전 내부  실내에는 반자를 꾸미지 않고 서까래가 드러나는 연등천장을 꾸며 개방감을 돋우고 있다.

봉정사 극락전 종단면도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연대가 가장 앞선 이 건물은 통일신라시대 건축 형태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종단면도  봉정사 극락전과 수덕사 대웅전의 과도기적 특징을 잘 간직하면서 건물의 외관적 아름다움에 충실한 고려시대 대표적 건축물이다.

수덕사 대웅전  통일신라와 조선시대의 건축 형식의 맥을 이어 주며 고려시대의 건축을 정립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능인선원 편액

정혜사 관음전

정혜사 남매탑

정혜사 산신각

소림초당  1920년대 만공선사가 지은 암자로 볏집 이엉을 얹은 굽은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진여문  만공선사의 조실체였던 금선대 입구 암자로 통하는 문이다.

전월사 편액  만공선사가 말년을 보낸 전월사는 '허공의 둥근 달을 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월사 내 만공선사 좌선대

견성암 전경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선방으로 1965년 벽초스님이 인도식 2층 석조 건물로 이전 · 건립하였다.

견성암 편액  만공선사 친필.

환희대 내 원통보전  환희대의 주법당으로 개화기 여류시인이었던 하엽스님의 열반처이다.

환희대 내 극락암  현재 비구니들이 기거하며 수도정진하고 있다.

석조관음보살입상

수덕사 노사나불 괘불탱  1673년(현종 14) 작. 세로 10.59미터, 가로 7.27미터, 삼베 바탕에 채색, 보물 제1263호.

대웅전 삼세불과 후불탱화 1908년 금호당, 약효, 목우 등의 금어 비구가 그렸다.

주악비천도(벽화 모사도)  장구를 치거나 피리를 불며 날고 있는 모습으로 우아하며 경쾌하여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근역성보관(수덕사박물관) 내부

대웅전 본존불  대웅전 중앙벽 앞에 봉안되어 있으며 1938년 만공선사가 남원 귀정사에서 옮겨 왔다고 전한다.

석조관음보살입상  1924년 만공선사가 발원하여 조성하였다. 높이 8미터.

수덕사 범종  높이 2.7미터, 둘레 4.5미터의 청동제 대종으로 전통 범종 주조 기법을 따라 조성하였다.

법고  축생들을 고통에서 벗어나 기쁨을 느끼게 하며 수행정진을 독려하는 법구이다.

사물 가운데 목어(위)와 운판(아래)

3층석탑  고려시대 석탑으로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계승하였다. 높이 4미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7층석탑  충청남도 지정문화재자료 181호로, 1930년 만공선사가 건립하였다.

만공탑  1947년 만공선사의 제자인 박중은선사에 의해 만들어진 현대식 부도이다. 상부의 둥근 돌은 만공선사의 사리를, 세 개의 팔각기둥은 불교의 삼보를, 팔각기단은 팔정도를 나타낸다.

흥주사 아미타후불탱화  18661년 작, 근역성보관 소장.

근역성보관 소장 불상  수덕사의 말사인 일락사 철불좌상(위)과 영탑사 금동비로자나삼존불상(아래)

문수사 금동아미타불 복장 유물 일괄  지금까지 조사된 복장 가운데 이른 시기에 속하는 귀한 일괄품으로, 발원문(가운데), 청색화문포(아래), 단수포의, 단온진언, 연화판다라니부적, 목합, 불경 등을 포함하고 있다.

 

 

 

posted by 황영찬
2015. 5. 30. 11:34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54 萬人譜 20 사람과 사람들

 

高銀

2004, 창비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8

 

811.6

고67만  20

 

창비전작시

 

시인 고은은 20여년 전부터 한국사에 드러나고 숨겨진, 스러지고 태어나는, 추앙받고 경멸당하는, 아름답고 추악한, 떳떳하고 비굴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붓 대신 언어로, 그림 대신 시로, 거대한 민족사적 벽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는 한국인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지을 수 있고 짓지 않을 수 없는 숱한 표정들이 늘어서 있고 그들의 천태만상의 갖가지 삶의 모습들이 벅적거리고 있으며 절망과 한(恨), 운명과 열정, 기구함과 서러움의 삼라만상적 인간상들이 복작거리고 있다. 그것은 삐까쏘의 「게르니까」보다 더 착잡하고 내가 멕시코씨티의 정부청사 안에서 보았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보다 더욱 거창한 서사를 담은 우리 한민족의 벽화를 이루고 있다. 고은은 『만인보』라는 벽화-민족사를 통해 우리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되새김질하며 그 역사를 만들어오고 혹은 그것에 짓밟힌 만상의 인간들을 사랑하며 껴안고 뺨 비비며 삶의 진의와 세계의 진수를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은이 그린 사람들에게서 한을 듣고 그가 그린 세계에서 향기를 맡으며 그의 만인화(萬人畵)에서 세계와 시대를 읽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여기 그가 그려준 거대한 벽화를 보며 분노와 치욕 그리고 운명과 사랑이 점철된 그의 '역사'를 듣고 오늘의 삶을 생각한다.

■ ■ ■ 김병익  문학평론가, 인하대 초빙교수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후백제 을구 / 임화 / K-8 미 공군기지 밖 / 미제 진달호 영감 / 안동환 / 광주 부자 현준호 / 탱자 / 나그네 / 현재 / 김상돈 / 장인 강문석 / 일곱살 남옥이 / 노천명 / 남한산 / 부산 갑부 몇사람 / 배성섭 상사 / 김낙중 / 해후 / 토월회 / 연숙자 / 강노식 대원 / 송길자 / 지덕 / 남두만 / 황성 옛터 / 현인 / 이난영 / 시골다방 미스 김 / 시베리아 언년이 / 만경강 / 남인수 / 김정구 / 의병 제대 허인호 / 초롱꽃 / 아버지와 딸 / 진주풍경 / 북간도 한곳 / 월천꾼 / 횡계 아이들 / 안설녀 / 원치수 / 별주부전 / 평양사람 이종기 / 성진이 / 9월의 섬 / 염동진 / 블루스 / 할렐루야 / 법랑 선사 / 적상산 관음암 / 유점순 / 밤 서울역 / 그 아이 / 지하련 / 박백 중위 / 남대문 도깨비시장 고사리 / 장작장수 / 옹점 / 그 노래들 / 의사 윤성주 / 세번째 출옥 / 도라무깡 술집 / 태껸 이보성 / 노천 사진사 / 삼강 주막 / 정운삼 / 대구 르네상스 / 이중섭 / 빈집 / 비담 / 박용구 / 요지경 / 그림 속의 아이들 / 구상 / 탄피종 / 따불 명순이 / 두 사람 / 진태 할아버지 / 명동 나정구 / 그 주검 / 이학구 / 홍사준 / 국민학교 운동장 / 두 젊은이 / 강물 / 좀도둑 유강철이 / 손두섭 영감 / 한강 빙판 강태공 / 박헌영 / 울릉도 벼랑 밑 / 하느님 / 지창수 / 방호산 / 왕십리 할멈 / 기억들 / 귀향죄인 / 뻥튀 할아버지 / 권진규 / 연인 / 한산선사 / 5학년 구만서 군 / 이쾌대 / 실존주의자 정찬형 / 이정이 가족 / 김달봉 / 공창렬 / 방순경 아내 / 윤영준 / 전봉건 / 최승희 / 변상희 옹 / 임창호 씨 제삿날 / 한라산 / 박두진 / 엄비 / 엄항섭의 눈물 / 누가 씨부렁댄다 / 변수자 / 김중업 / 홍문봉의 집 / 계일지와 오병탁 / 9연대장 김익렬 / 유해진 지사 / 이재명의 무덤 / 이해명 부인 / 휴전 직후 / 사의 찬미 / 억척 설옥순 / 헛소리 세상에서 / 이청일 / 늙은 기생 / 어머니의 날 / 좌달육 / 강경 갈숲 / 밀양 이른봄 / 김악 / DDT / 이재긍 중좌 / 감봉룡 대장 / 행주산성 / 금은 / 김명국 / 명동 / 실성한 사람

 

해설 만인의 얼굴, 그 민족사적 벽화/김병익

 

황성 옛터

 

1932년 서울 단성사 무대에 이애리수가 섰다

처연한

투명한

가을 처녀의 목소리

「황성 옛터」가 퍼졌다

 

눈물 가슴에 차고

등뒤에서 비가 퍼부었다

 

한 노래를 세번 불러야 했다

청중은 울고불고

울부짖었다

 

고향 개성

망한 고려 만월대를 노래한 것

 

일본인 코가 마사오의

「술은 눈물이냐 한숨이냐」가

이 노래의 표절이라는 소문이 났다

 

「황성 옛터」를 학생에게 가르친

대구의 한 교사는 파면당했다

 

작곡자 전수린과 코가는

서울 소공동에서 어린 시절 소꿉동무였다

 

늘 이애리수의 뒤 형사가 따라다녔다

늘 전수린의 집 형사가 찾아왔다

노래 하나에도 자유는 불가능했다

 

현인

 

동경 우에노 음악학교 성악도

징용 피해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상해에서

천진에서

바다 건너

고국을 그리워했다

 

샹송과 깐쪼네를 불렀다

 

위엄 있다

매혹 있다

 

해방 뒤 멋쟁이로 돌아왔다

「신라의 달밤」을 불렀다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렀다

건달같이 「베사메무초」를 불렀다

 

전쟁이 일어났다

군가 1번

「전우야 잘 가거라」를 불렀다

피난가요 1번

「굳세어라 금순아」를 불렀다

 

휴전 뒤

자작 작사 작곡 「서울야곡」을 불렀다

자작 작곡 「추억의 꽃다발」을 불렀다

 

음절 파괴 대담했다

육중하고

기름진

바이브레이션

3음절이 7음절이 되어

사람들의 심금을 휘감았다

'고요한'은

'고호호요호하한'이 되었다 건달 황홀!

 

이난영

 

긴 목 가는 허리

 

남편 김해송이 북에 납치되었다

납치된 자의 가족조차

반공세상에 어긋났다

남편이 경영하던

KPK쇼단도 해체당했다

 

어린 다섯 남매의 엄마 이난영

 

딸들

숙자 애자 그리고 조카 민자로

'김시스터즈'를 만들어

미8군 무대 환호성을 차지했다

'김보이즈' 영조 상호 태성으로

미8군 무대 박수갈채를 받았다

 

시스터즈

보이즈 미국으로 갔다

 

엄마 이난영 가지 않았다

「목포의 눈물」은 겨레붙이 모두의 노래였다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임진왜란은 아직도 한으로 애끓이며 살아 있었다

 

남인수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을 부르며 자라났습니다

「울며 헤진 부산항」을 부르며 자라났습니다

'이 강산 낙화유수……'를 부르고

「서귀포 칠십리」를 부르며 자라났습니다

해방 뒤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사람도 하나'를 불렀습니다

아 「가거라 삼팔선」을 부르며 분단을 알았습니다

 

임시수도 부산을 떠나며

「이별의 부산 정거장」을 부르며

휴전 뒤의 삶을 살았습니다

 

리라꽃도 피었습니다

쌍고동도 울었습니다

이 산유화도 피고 졌습니다

 

남인수

식민지 말기 일제 찬양의 노래도 불렀습니다

 

기생들 몰려들었습니다

폐결핵을 앓았습니다

본명 최문수

강씨 문중에 입적 강문수가 되었습니다

18세 이후

그는 반도의 목소리였습니다

해맑은 색깔

넓은 음역

그리고 간드러진 굽이굽이

그의 나비넥타이는 퍼덕여 곧장 나비로 날아올랐습니다

 

김정구

 

신문도 팔았다

달걀장수였다

달걀꾸러미 한 줄 떨어뜨려

길바닥 깨어진 달걀 보고 울기도 했다

 

원산 덕원목장

양치기 노릇도 했다

 

책방 점원으로 책을 꽂고 책을 팔았다

활동사진 음악사로

바이올린도 제법 연주했다

 

그런 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불렀다

세상이 그의 노래 따라불렀다

 

김정구의 무대

갈 수 없는 두만강

잊지 못할 두만강

그의 노래에서 언제까지나 흐르고 흘러갔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