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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4. 09:03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17 새

 

천상병 시집

1995, 답게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3829

 

811.6

천52ㅅ

 

目  次

 

편지

光化門에서

이스라엘 민족사

꽃의 位置에 대하여

銀河水에서 온 사나이 - 尹東柱論

그날은

小陵調

나의 가난은

晩秋 - 主日

한 가지 祈願

不惑의 秋夕

金冠植의 入棺

肝의 叛亂

微笑 - 새

西大門에서 - 새

크레이지 배가본드

한낮의 별빛 - 새

들국화

歸天 - 主日

音樂

아가야

主日(壹)

主日(貳)

回想(壹)

回想(貳)

국화꽃

鎭魂歌

편지

哭 申東曄

새 - 아폴로에서

三淸公園에서 - 어머니 가시다

간봄

酒幕에서

장마

새(貳)

어두운 밤에

德壽宮의 午後

등불

無名戰死

푸른 것만이 아니다

다음

午後

강물

無名

갈대

約束

갈매기

나무

空想

피리

바다생선(壹)

無題

潮流(參)

潮流(四)

 

□ 跋 · 내 말이 들리는가 / 金丘庸

□ 번각에 부쳐 · <새>가 날아오다 / 閔暎

 

그 날은

          - 새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쓰 같이
당한 그 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 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쪽이 강자인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七一 · 二 <月刊文學>

 

미소

      - 새

 

1

입가 흐뭇스레 진 엷은 웃음은,

삶과 죽음 가에 살짝 걸린

실오라기 외나무다리.

 

새는 그 다리 위를 날아간다.

우정과 결심, 그리고 용기

그런 양 나래 저으며…

 

풀잎 슬몃 건드리는 바람이기보다

그 뿌리에 와 닿아주는 바람,

이 가슴팍에서 빛나는 햇발.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갈

풀밭 길에서

입가 언덕에 맑은 웃음 몇 번인가는…

 

2

햇빛 반짝이는 언덕으로 오라

나의 친구여,

 

언덕에서 언덕으로 가기에는

수많은 바다를 건너야 한다지만,

햇빛 반짝이는 언덕으로 오라

나의 친구여…

                                             · 七 <現代文學>

 

歸天
         - 主日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

                                                七○ · 六 <創作과 批評>

 

西大門에서

               -새



지난날, 너 다녀간

있는 무수한 나무

가지 사이로 빛은 가

고 어둠이 보인다.

가웁다. 죽어가는 자

의 입에서 불어 오는

바람은 소슬하고, 한

번도 정각을 말한 적

없는 시계탑침이 자정

가까이에서 졸고 있다.

계절은 가장 오래 기

다린 자를 위해 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너 새여…

                          七○ · 六 <創作과 批評>

 


    -아폴로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음

악을 듣는 것이다. 내

마음의 빈터에 햇살이

퍼질 때, 슬기로운 그

늘도 따라와 있는 것

이다. 그늘은 보다 더

짙고 먹음직한 빛일지

모른다.



   새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골짜구니를

건너고 있을까? 

마음 온통 세내어 주

고 外國旅行을 하고

있을까?

  돌아오라 새여! 

고 노래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이 그늘의

외로운 찬란을 착취하

기 위하여!

                               六九 · 四 <月刊文學>

 

 

저것 앞에서는

눈이란 다만 무력할 따름.

가을 하늘가에 길게 뻗친 가지 끝에,

점찍힌 저 絶對靜止를 보겠다면…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미묘하기 그지없는 間隔을,

이어주는 다리(橋)는 무슨 象形인가.

 

저것은

무너진 視界 위에 슬며시 깃을 펴고

피빛깔의 햇살을 쪼으며

불현듯이 왔다 사라지지 않는다.

 

바람은 소리없이 이는데

이 하늘, 저 하늘의

純粹均衡을

그토록 간신히 지탱하는 새 한 마리.

                                                  六七 · 五 <現代文學>

 

 

  最新型機關銃座를 지키던 젊은

兵士는 피비린내 나는 猛獸의 이

빨 같은 銃口 옆에서 지루하기 짝

이 없었다. 어느 날 兵士는 그의

머리 위에 날아온 한 마리 새를

다정하게 쳐다보았다. 산골 출신

인 그는 새에게 온갖 아름다운

關心을 쏟았다. 그 關心은 그의

눈을 充血케 했다. 그의 손은 서

서히 움직여 最新型機關銃口를

새에게 겨냥하고 있었다. 피를

흘리며 새는 하늘에서 떨어졌다.

수풀 속에 떨어진 새의 屍體는

그냥 싸늘하게 굳어졌을까. 온

수풀은 聖바오로의 손바닥인 양

새의 屍體를 어루만졌고, 모든

나무와 풀과 꽃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부르짖었다. 罪없는 者의

피는 씻을 수 없다. 罪없는 者의

피는 씻을 수 없다.

                                              六六 · 九 <文學>

 

 

저 새는 날지 않고 울지 않고

내내 움직일 줄 모른다.

상처가 매우 깊은 모양이다.

아시지의 聖프란시스코는

새들에게

恩寵 說敎를 했다지만

저 새는 그저 아프기만 한 모양이다.

수백년 전 그날 그 벌판의 日沒과 白夜는

오늘 이 땅 위에

눈을 내리게 하는데

눈이 내리는데…

                                                      六五 · 三 <女像>

 

새(貳)

 

그러노라고

뭐라고, 하루를 지껄이다가,

잠잔다 --

 

바다의 沈默, 나는 잠잔다.

아들이 늙은 아버지 편지를 받듯이

꿈으로 꾼다.

 

바로 그날 하루에 말한 모든 말들이,

이미 죽은 사람들의 외마디 소리와

서로 안으며, 사랑했던 것이나 아니었을까?

그 꿈속에서…

 

하루의 言語를 위해, 나는 노래한다.

나의 노래여, 나의 노래여,

슬픔을 代身하여, 나의 노래는 밤에 잠잔다.

                                                              六○ · 一 <自由文學>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靈魂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무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情感에 그득찬 季節,

슬픔과 기쁨의 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五九 · 五 <思想界>







 

 

 

 

posted by 황영찬
2013. 10. 29. 14:42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13-1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삼부연폭포 / 삼부연폭포는 물줄기가 세 굽이를 휘돌아 내리는 기세가 볼 만한데 여름보다도 폭포가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 장관이다.

승일교 / 김일성이 놓기 시작하여 이승만이 완공했다고 승일교라고 부르는 이름 속에는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염원이 함께 서려 있다.

폐노동사 / 옛 철원 시가지에 있던 옛 철원군 노동당사가 뼈대만 남은 채 그 옛날을 말해준다.

도피안사의 철조 비로자나불상 / 865년, 철원지방의 향도 1500명이 뜻을 모아 조성했다는 이 철불에는 개성적이고 도전적인 호족의 자화상이 느껴진다.

도피안사의 삼층석탑 / 팔각 연화대좌 위에 삼층탑을 세워놓아 이채로운데, 이것은 하대신라 지방호족이 중앙귀족에게 도전하는 개성과 파격의 소산으로 해석된다.

 

엉겅퀴야 엉겅퀴야

철원평야 엉겅퀴야

난리통에 서방잃고

홀로사는 엉겅퀴야

         …

엉겅퀴야 엉겅퀴야

한탄강변 엉겅퀴야

나를두고 어디갔소

쑥국소리 목이메네

- 민영 「엉겅퀴꽃」

궁예궁터의 석등 / 지금은 비무장지대 한가운데 있는 궁예궁터에는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이처럼 어엿한 석등과 건축부재들이 남아 있었다.

운문사 전경.

 

메꽃같이 예쁜 이내 딸년

시집살이 삼년 만에

미나리꽃이 다 피었네

메꽃.

선암서원 / 선암서원 한쪽켠으로는 보리밭 콩밭 등이 맞닿아 있어 옛 서원의 풍취가 은은히 살아나고 있다.

선암서원 소요대 / 동창천이 맴돌아 나아가는 한쪽에 자리잡은 선암서원 주위는 보기에도 시원한 강변풍경이 전개되고 있다.

운문사 입구의 솔밭 / 아리따운 노송이 늘어선 운문사 솔밭의 소나무들은 일제 때 송진을 공출한다고 밑동이 파이고 마는 모진 상처를 입고도 이처럼 늠름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작갑전 / 작갑사의 전설을 간직한 이 작은 불당 안에는 정교한 사천왕조각과 석불이 모셔져 있다.

사천왕 돌기둥(부분) / 작갑전에 모셔져 있는 사천왕 석주는 원래 벽돌담의 돌기둥으로 사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며, 하대신라 릴리프 조각의 대표적 유물이다.

운문사의 돌기와담장 / 길가는 사람이 뒤꿈치만 들어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낮은 돌담이 절집의 분위기를 아늑하게 감싸주고 있다. 돌담 안쪽의 벚꽃이 필 때 이 길은 분홍빛으로 물든다.

금당 앞 석등 / 통일신라 전성기 양식을 충실히 반영한 엄정한 기품이 살아있는 명품이다.

운문사 쌍탑 / 전형적인 9세기, 하대신라의 삼층석탑으로 기단부에 팔부중상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 석등이 한 쌍 놓인 것은 교리에도 맞지 않고, 절 배치의 균형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학인스님들의 양치도구함 / 저마다 색다른 물컵을 준비하여 놓은 것에 비구니의 여성스러움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고무신의 비표 / 고무신 코에 자신의 비표(秘標)를 해놓은 데에도 수도의 어려움과 즐거움이 동시에 읽혀진다. 

 

운문사 비구니들이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아

메주를 빚고 있다

입동 무렵

콩더미에선 더운 김이 피어오르고

비구니들은 그저

묵묵히 메주덩이만 빚는다

살아온 날들의 덧없었던 내용처럼

모두 똑같은 메주를

툇마루에 가지런히 널어 말리는

어린 비구니

초겨울 운문사 햇살은

그녀의 두 볼을 발그레 물들이고

서산 낙조로 저물었다.

- 이동순

삼천지의 연꽃 / 수렁에서 피는 연꽃의 생리에서 나는 우리 시대 피어날 문화의 가능성을 읽어본다.

부안 서문안 당산 / 돌솟대와 돌장승으로 이루어진 이 당산은 조선후기 향촌사회의 새로운 활력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유물이다.

부안 동문안 돌솟대 / 대보름날 줄다리기를 하며 마을의 인화를 도모한 상징의 새끼줄을 돌솟대에 감으며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곤 하였다.

부안 장승 / 서문안의 어리숙한 할아버지(왼쪽), 동문안의 앙칼진 할머니(오른쪽) 장승을 보면 농민들이 그리는 인간상의 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수성당 사당 / 철거된 군부대 초소와 함께 자리하고 있는 수성당은 차라리 폐허의 상처로 남아 있음만도 못하게 되었다.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

- 박형진 「사랑」

내소사 일주문 / 내소사 일주문은 진입로를 약간 감춘 방향으로 세워 그 안쪽을 신비롭게 감싸안는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 / 600m에 달하는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은 답사객마다 절로 심호흡을 하게끔 하는 장관을 보여준다.

내소사 대웅전 / 높은 축대 위에서 팔작지붕이 한껏 나래를 편 모습인지라 능가산의 호기있는 봉우리에 결코 지지 않는 기세로 버티고 있다는 호쾌한 인상까지 자아낸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창살무늬 / 화려하면서도 소탈한 멋을 동시에 풍기는 이 꽃창살 사방연속무늬는 조선적인 멋의 한 최고봉을 보여준다.

반계 선생 유허지 / 반계 유형원 선생이 『반계수록』을 저술한 이 옛날 서당터에 오르면 우동리 안마을이 환하게 내다보인다.

 

천하의 이치도 사물이 아니면 들어붙지 아니하고, 성인의 도라도 섬기지 않으면 행해지지 않는다.

天下之理 非物不着 聖人之道 非事不行

개암사 대웅보전 / 울금바위를 배경으로 의연한 자태를 보여주는 대웅전 때문에 개암사의 분위기는 더욱 밝고 힘차게 느껴진다.

라면 '땅' 봉투 / 지금은 사라진 과자이지만 70년대 어린이들의 총아였다.

 

황토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

- 김지하 「황토길」

만석보 유허비 / 내장산에서 발원한 정읍천과 모악산에서 발원한 태인천이 만나 동진강을 이루는 자리에 있던 댐[洑]이 농민전쟁 봉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임옥상의 「들불」 / 들바람과 들불을 상징적 수법으로 그린 그의 작품은 사실상 반은 리얼리즘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여기 오면 알게 된다.

말목장터 감나무 / 1894년 1월 10일 고부봉기의 현장을 증언하는 것은 오직 이 한 그루 감나무뿐이었다. 100주년을 맞아 세운 말목정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워 보인다.

녹두장군집 / 세칸짜리 낡은 초가집이었으나 요즘은 뒤뜰에 널찍한 잔디정원이 생겼다.

 

스스로 모래밭에 마음껏 노닐 적에

흰 날개 가는 다리로 맑은 가을날 홀로 섰네.

부슬부슬 찬비는 꿈결같이 오는데

때때로 고기잡이 돌아가면 언덕에 오르네.

수많은 수석은 낯설지 아니하고

얼마나 많은 풍상을 겪었는지 머리 희었도다.

마시고 쪼는 것이 비록 번거로우나 분수를 아노니

강호의 고기떼들아 너무 근심치 말지어다.

自在沙鄕得意遊  雪翔瘦脚獨淸秋

簫簫寒雨來時夢  往往漁人去後邱

許多水石非生面  閱幾風霜已白頭

飮啄雖煩無過分  江湖漁族莫深愁

- 전봉준 「백구(白鷗)」

 

때를 만나서는 천하도 힘을 합하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쩔 수 없구나

민을 사랑하고 의를 바로 세움에 나는 아무 잘못이 없었건만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을 그 누가 알아주리

時來天地皆同力

運去英雄不自謨

愛民正義我無失

爲國丹心誰有知

- 전봉준 절명시

황토현 기념비 / 1963년에 처음 세운 농민전쟁 기념비는 큰 멋을 부리지 않아 여느 기념탑보다도 품위를 각추게 되었다.

녹두장군 초상 / 유화로 그린 녹두장군 초상은 성난 얼굴에 도포를 입은 형상으로 되어 있어 마치 표독스런 양반지주라는 인상을 준다.

황토현 전적기념관의 동상 / 내용으로나 형식으로나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20세기 최대의 '문제작'이다.

기념조각의 부조 / 농민군의 행렬이 마치 살진 농민들의 소풍놀이처럼 유치하게 표현되어 있다.

황토현 전적기념관 / 건물 배치와 담장의 공간분할은 단정하면서도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전시관 앞의 벚나무 / 전두환 대통령의 기념식수 푯말이 빠진 자리는 지금도 잔디가 나지 않는다.

에밀레종 이전 사진 / 1975년 5월 27일 동부동 옛 박물관에서 현재의 박물관으로 옮길 때 광복줄을 잡고 시민들이 따라가는 모습. 『다시 보는 경주와 박물관』(국립경주박물관, 1993)에서 전재.

선운사 계곡가의 민불 / 달덩이 같은 얼굴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두 팔을 가슴에 얹은 자태가 천연스럽고 귀엽기만 하다.

 

posted by 황영찬
2013. 10. 28. 09:39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16 크로노스는 카이로스를 이기지 못하고

 

장달식 시집

2004, 그림과 책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2258

 

811.6

2229크

 

장달식

시인 / 공학박사(Dr. -Ing.)

 

한국시사랑문인협회 회원

월간 시사문단 신인문학상 등단

시집 "카이로스" (글모음, 1988) 출간

한국기독대학인회(ESF) 주최 제1회 문학상 수상 ;

시 부문 최고상인 "사랑상" 수상

(대표시 - 사랑하기 위하여), 1998년

백두산 문학 9월호를 통해 [아버지 외 5편] 등단(2004)

시사문단 작가

 

1961년 남원 산, 전주고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설계학과 졸업

독일 아흐엔(Aachen) 대 공학박사

대우종합기계 중앙연구소 수석 연구원

한국유공압 시스템 학회(KFPS) 기술이사 및 편집위원

ISO 전문위원

한국기독대학인회(ESF) 이사

문래동 성결교회 집사

 

홈페이지 : http://www.jds.zio.to

 

차례

 

1부

사랑하기 위하여 / 그대 잠들기 전에 / 너에게 / 기다리는 것은 / 아버지 / 오래된 시계 / 주인 없는 은행나무 / 아내의 병상에서 / 소나기 / 매미 / 옷을 벗으며 / 그대가 절망을 이야기할 때 / 사랑하는 것을 / 마지막 기도 / 아직도 흔들리는 사랑의 흔적 / 연민 - 깨달음을 전하고 / 연민 - 두 칼날 / 연민 - 저당 잡힌 누이들 / 님의 곡조 / 작은 사랑을 모으며 / 고향이 그리운 산책로에서 / 마음을 조각하는 사람들 / 그대 고운 사랑으로 / 아름다운 이별 / 늘 푸른 솔잎이 그리운 시간에

 

2부

살아있음의 그림자 / 어떤 순리 / 삶의 자리 / 그대 마음속 깊은 밤중에 / 알 수 없는 이름으로 / 가을을 위하여 / 텅 빈 들녘에서 / 새벽 이미지 / 핏 빛 / 생명의 춤 / 그 날의 크리스마스 / 따스한 숨결 / 삼십 삼의 미학 / 서 있는 자에게 앉아있음을 말 할 필요는 없다 / 아직도 흔들리는 그대의 그림자 / 껍질을 벗으며 / 가을 새벽 / 크로노스는 카이로스를 이기지 못하고 / 시간은 소리 없이 흐르고 / 장미의 유혹 / 섭리의 암호를 해독하며 / 행복한 기억으로 / 너, 건강한 아이여 / 어떤 아픔 / 인생의 멀미 / 가을 친구 / 농부의 지혜를 배우며

 

3부

홍대 전철역에서 / 파스칼 / 꽃이 지는 이유 / 남원 가는 길 / 사랑은 / 행복한 비둘기 / 가을 소식 / 나무와 사람 / 사랑받기 위하여 / 사랑하기에 / 둥지 / 아침 이슬 / DNA / 봉이 김선달 / 1984년 / 기인 백남준 / 샘 / 그대의 젖은 가슴으로 / 어머님의 병상에서 / 어머님의 병상에서 2 / 생명 사랑 / 가지 잘린 플라타너스 / 표독한 표범 / 팔구 년 아침의 소묘 / 코스모스의 서정 / 바닷가에서 / 석양에 지는 노을을 그리워하는 것은 / 나그네의 노래 / 산골짜기 사람들 / 배반의 시스템

 

4부

독 초 / 어느 소녀의 고백 / 하얀 포말 / 고 백 / 우리들의 누이여 / 만남과 헤어짐의 공간에서 / 오늘은 / 이번 크리스마스엔 / 만남과 헤어짐 / Die Asthetik Der Dreiunddrei Big

 

작품해설

 

님의 곡조

 

지루한 내 삶의 가락 뒤에 숨겨진

당신의 미소를 보고파

저녁 들판에 나아가

조금 열린 구름 구멍 사이로 물었습니다

 

잠깐 스친 찬란한 하늘은

새 삶을 위한 연한 걸음을

다시 시작하게 하였습니다

 

내 맘으로 정한 장마는

그침이란 단어를 모독하듯

또 오늘도 이어지고

당신이 그려준 악보는

저녁 개울가 수면 위에

희미한 그림자로 떠있습니다

 

바람이 조금만 더 불어버리면

평온한 수면은 거울을 잃어버려

가락이 사라질 것만 같습니다

 

채워야 할 날들 위에 붙여질

당신의 곡조를 배우게 하소서

이 작은 영혼은 당신과 함께 부르는

더없이 진한 합창이 되고 싶습니다

 

크로노스는 카이로스를 이기지 못하고

 

옛 즈믄 해를 보내고 새로운 천년을 맞는

시끄러운 반짝임도

아무런 변화 없이 또 떠오르는 태양 앞에

조용히 머리를 숙이면서 어제의 바람 속으로 사라져 갔다

 

어제의 체온이 아직 그대로이고

그립던 그대의 소식이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디지털 시계의 숫자가 바뀌었다 하여

유전자의 암호가 바뀔 수 있을까

 

차라리 한없이 울어

한 천년이 다하도록 울어준다면

채우지 못하여 멍들어버린 어설픈 가슴들이

그 눈물로 심장을 씻을 때

억누르던 익지 못할 욕망들이

찾아왔던 귀와 눈을 지나 돌아가리라

 

책상 위에 놓인 크로노스 시계는

어린 풍선들을 부풀게 하나

가슴속에 묻힌 카이로스 시계는

그저 조용히 웃고 있다

 

꽃이 지는 이유

 

꽃이 지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

 

귀여움의 시간대를 벗어나

사춘기의 열병을 앓아야만

어른이 될 수 있는 어린 아이처럼

 

눈을 멀게 하던 사랑의 안개가

이슬이 되어 눈가를 스쳐야만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어린 소녀처럼

 

나그네는

아픔이 아름다움으로 변하기 위한

암호를 풀어내기 위해

화사한 꽃들의 빛깔과

지는 아픔을 태워 타오르는 불꽃을

프리즘을 통해 자세히 나누어 본다.

 

만남과 헤어짐

 

만남과 헤어짐을 위하여

또 하나의 만남과 헤어짐을 마련하는 것은

때로는 어리석은 생각 같아

조용히 기쁨과 눈물로 메우고 싶어도,

기나긴 여정 중에 이런 일들이

우리가 하나임을 확인해 주고,

진정 이것이

우리의 헤어짐이 아니란 것을

가슴속에 새겨주는 까닭입니다.

 

잠시 아픔을 맛보는 것은

님께서 더 큰 만남의 광장을 주시려고

눈으론 바라볼 수 없는 공간으로

좁은 가슴들 사이를 메워 놓으신 까닭입니다.

 

텅 빈 들녘에서

 

지금은 나부끼는 낙엽이라도 좋다

 

한 때는 너를 사랑했고

또한 멀리하려 하던 날이 있었기에

기름지지 않은 고독한 들판에

한 조각 잎사귀가 되어

아직은 타오르지 않은

텅 빈 이 들녘을 지키리라

 

사람들의 가벼운 발자국에

사르륵 하고 쉬이 부서지지만

바람을 벗 삼아 저 높이 날아가 보면

이 공간은 향내를 담을 터로 보일 것만 같다

 

오늘은 훗날을 위한 호흡을 배우려는

한 흔적이고만 싶다

 

시간은 소리 없이 흐르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흘러가는 것이

강물만은 아니었다

 

소리 없이 흘러버린 시간 사이로

아이들이 커가고

바라보는 눈도 바뀌어만 간다

 

몽당연필을 들고

무언가를 쓰고 있는 딸아이가

더욱 예뻐 보이는 것은 아계 쓰는 모습이 아니라

아직도 사용되어지는 연필에 대한 연민 때문이다

 

이렇게 몇 차례 느끼고 나면

어느새 바뀌어버린 삶의 자리에서

흔들거리는 나를 발견하겠지

 

춥다고 이 겨울을 쉽게 보낸 후

새봄을 재촉한다면

그 봄이 다 가는 그 날에 아픔을 이겨낼 수 있을까

 

겨울이 되어 하루해가 더욱 짧게 느껴지는 오후

양지 녘에 다가온 따사로운 햇살이

더욱 정겹게 다가온다.

이 추위와 겨루는 오늘도

내 인생의 소중한 한 조각임을 이제 알기에

 

장미의 유혹

 

오는 여름을 한 번 더 재촉하듯

검붉은 녹음 사이로

장미는 붉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어지럽게 흐트러진 골목길도

압도하는 그 빛으로 인해

더 이상 추하게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은

자기가 있음을 말하는 것을 넘어

남이 없음을 말하려 한다

 

장미는 그를 유혹하고

그는 장미가 되어 가는데

사람들은 그저 아름답다고만 한다

꽃이 지면 다시 추하다고 하겠지만 

 

 

 

posted by 황영찬
2013. 10. 26. 11:11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15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②

 

오주석 지음

2006, 솔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0131

 

650.4

오76옛 2

 

우리 전통 미술 속에 스며 있는 옛사람들의 참된

마음결과 미의식의 진경眞境을 밝혀낸 명저!

 

조선의 땅에서 살아온 조선의 화가들, 문인들,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 보내는 깊은 애정의 눈길을 본 적이 있다. 글씨든 그림이든 그렇게 오랫동안 관찰하며 작품세계에 빠져드는 그의 모습은 늘 경건하였다. 깊고 넓은 통찰력으로 그림 한 점 한 점을 그토록 아름다운 운율로 드러냈던 일은 일찍이 없었다. 우리가 지나쳤던 것, 모르고 있었던 것,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풀어내면서 오주석은 그림에 그려진 나무와 하나가 되고자 했으며 인물이 있으면 그와 하나가 되고자 했으며 마침내 화가와 하나 되어 그와 '놀면서' 흥에 겨워했다. 그는 항상 그림 앞에서 꼼짝 않고 하염없이 뚫어지게 그림 구석구석을 살피곤 하여 그의 그런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홀연히 간 지 벌써 한 해가 지났다. 아! 슬프다. 조선의 그림이 이제 비로소 그 독자적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일본의 학계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누가 그 뒤를 이을 것인가. 늘 중국의 그늘에서 제 모습을 보지 못하였던 조선 그림의 세계를, 뒤에 오는 그 누군가가 그 정신을 이어받아 펼쳐 나가기를 마음 깊이 바랄 뿐이다.

강우방(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

 

오주석吳柱錫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더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 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을 지냈다.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강연을 펼쳤으며, 2005년 2월 지병으로 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단원 김홍도』『단원절세보』『우리 문화의 황금기-진경시대』(공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등이 있다.

 

"우리 조상들의 마음은 늘 자연을 향해 열려 있었다. 수더분하고 맑고 깨끗했던 겨레의 전통문화, 그것을 일구어온 심지는 대자연에 대한 겸허한 마음, 거기서 우러난 생활의 경건함 그리고 지극한 정성스러움이었다. 꼭두새벽 작은 소반 위에 정화수 한 사발을 정갈하게 길어 놓고 아무도 모르게 소망을 빌었던 옛 아낙의 손길은 언제나 천지신명과 일월성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듯 곱고 깨끗한 마음결이 우리 옛 그림은 물론 음악과 무용, 옛 건축과 도자기 그리고 때묻은 목가구며 선인들이 짜낸 낡은 멍석자리 위에도 아직껏 고스란히 스며 있다."

 

차례

 

오주석의 책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출간에 부쳐

책을 펴내며

 

1 소나무 아래 산중호걸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 옛 그림의 표구

 

2 화폭에 가득 번진 봄빛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 문인화, 옛 선비 그림의 아정雅正한 세계

 

3 겨레를 기린 영원의 노래  정선의 <금강전도>

 

4 딸에게 준 유배객의 마음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5 뿌리뽑힌 조국의 비애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 조선과 이조

 

6 한 선비의 단아한 삶 <이채 초상>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김홍도, 비단에 채색, 90.4×43.8cm, 호암미술관 소장.

 

극사실 묘법을 썼으면서도 전체적으로 호랑이의 육중한 괴량감이 느껴지고 동시에 고양이과 동물 특유의 민첩 유연한 생태까지 실감나게 표현되었다는 점이 정말 경이롭다. 호랑이가 살아 있는 것이다!

 

범걸음이란 몸이 듬직하니 무게가 있으면서도

다리는 가볍고 사뿐사뿐하며, 그러면서도

천천히 놀리는 걸음걸이가 의젓한 것을 말한다.

또 발에 고르게 힘이 들어가 있어 몸이 앞으로 쏠리거나

뒤로 젖혀지지 않으며 허리에 힘이 가득한

느긋하고 여유작작한 걸음이다. <송하맹호도>를 보면

기력 충만한 범걸음이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像圖>

작가 미상, 종이에 채색, 80.3×46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건원릉(健元陵, 조선 태조대왕의 능)의 석호石虎

경복궁 근정전 월대(月臺, 대궐의 전각 앞에 놓인 섬돌)의 백호白虎.

<송하맹호도>의 호랑이 세부.

<송하맹호도>의 여백 구조.

<송하맹호도>의 낙관 세부.

<송하맹호도>의 호랑이 머리 세부.

<까치호랑이>

작가 미상, 종이에 채색, 86.7×53.4cm, 호암미술관 소장.

<까치호랑이>

작가 미상, 종이에 채색, 72×59.4cm, 일본 개인 소장.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

김홍도, 비단에 채색, 91×34cm, 개인 소장.

<죽하맹호도>의 호랑이 세부.

<송하맹호도>의 소나무 세부.

 

사람들 바른 선비 사랑하는 것

범 가죽 좋아함과 비슷하다네

살았을 땐 반드시 죽이려 하고

죽은 뒤에 아름답다 칭찬하니까

人之愛正士 好虎皮相似 生卽欲殺之 死後方稱美

- 남명 조식(1501~1572)

표구를 포함한 <송하맹호도> 전체 모습.

표구를 포함한 <채제공蔡濟恭 초상> 전체 모습.

<선면서원아집도扇面西園雅集圖>

김홍도, 1778년, 종이에 담채, 27.6×80.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김홍도, 종이에 수묵 담채, 117.5×52.2cm, 간송미술관 소장.

 

코앞까지 드리워진 실가지 이파리들을 보라. 마치 하늘에서 꽃비가 오고 있는 양, 가지도 없이 나부끼는 이파리로만 열을 지었다. 그린 이의 가슴 속에 봄볕이 이미 가득한데 구태여 가지까지 그려 넣을 필요가 어디 있으랴!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보인다 함은 아마 작은 것 안에 큰 것이 들어 있으므로

가능하리라. <마상청앵도>에서 큰 것을 머금은 작은 것이 무엇인가?

'시선視線'이다. 저 선비의 기품 있게 들린 고개를 보라.

매혹된 영혼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그 매혹의 대상은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니다. 일상에서 마주친 꾀꼬리 한 쌍일 뿐이다.

선비는 참 풍류를 안다. 그래서 그의 시선이 그림의 주제가 된다.

 

<마상청앵도>의 선비 세부.

 

형태가 닮았는지로 그림을 논한다면

그 식견은 애들 생각이나 마찬가질세

시 짓는 걸 '반드시 이렇게'라고 한다면

진정 시를 아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시와 그림 본래부터 한 가락이니

자연스런 솜씨와 맑고 신선함이 있을 뿐……

 

누가 말했나, 한 개의 붉은 점에도

가없는 봄기운을 모두 부쳐낸다고……

論畵以形似 見與兒童隣 賦詩必此詩 定非知詩人 詩畵本一律 天工與 淸新…… 誰言一點紅 解奇無邊春……

- 소식蘇軾(1036~1101)

<마상청앵도>의 제시 세부.

어여쁜 여인이 꽃 아래에서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나

운치 있는 선비가 술상 위에다 밀감 한 쌍을 올려놓았나

어지럽다 황금빛 베틀 북이여, 수양버들 물가를 오고 가더니

비안개 자욱하게 이끌어다가 봄강에 고운 김을 짜고 있구나

佳人花底簧千舌 韻士樽前柑一雙 歷亂金梭楊柳崖 惹烟和雨織春江

 

 

<마상청앵도>의 구조.

을묘년 풍속병풍 가운데 제3폭 <수운엽출도水耘饁圖>(아래)와 제4폭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위)

김홍도, 1795년, 종이에 수묵담채, 각 100.6×34.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마상청앵도>의 꾀꼬리 세부.

<군선도群仙圖>

김홍도, 1776년, 종이에 수묵 담채, 132.8×575.8cm, 호암미술관 소장.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

김홍도, 1804년, 종이에 수묵 담채, 25.8×35.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송하담소도松下談笑圖>

이인문 그림 · 김홍도 글씨, 1805년, 종이에 수묵 담채, 109.3×57.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년에 이르러 자못 도道를 좋아해서

늘그막 집 자리를 남산에 터 잡았네

흥이 오르면 매양 혼자 그대로 떠나가니

뛰어난 경개를 그저나만이 알 뿐이라

걸음이 다다르니 물이 끊긴 그곳이요

앉아서 바라보니 구름 이는 그때로다

우연히 숲에서 나무하는 늙은이 만나

웃고 이야기하느라 돌아갈 줄 모르네

中歲頗好道 晩家南山陲 興來每獨往 勝事空自知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偶然値林叟 談笑無還期

(왕유의 한시 원문)

 

中歲頗好道 晩家南山陲 行到水窮處 坐看雲時 興來每獨往 勝事空自知 偶然値林叟 談笑無還期 起

(작품에 쓴 김홍도의 글씨)

<송하담소도>의 제시 세부.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김홍도, 종이에 수묵 담채, 27.9×37cm, 개인 소장.

<단원도檀園圖>

김홍도, 1784년, 종이에 수묵 담채, 135×78.5cm, 개인 소장.

<금강전도金剛全圖>

정선, 1734년, 종이에 수묵 담채, 130.7×94.1cm, 국보 217호, 호암미술관 소장.

 

화성이라고까지 추앙받는 겸재 정선, 그는 과연 이 조물주의 걸작을 어떻게 그렸을까? 정선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를 한데 묶어 한 개의 동그란 원으로 만들었다. 이 얼마나 대담하고 기겁할 발상인가!

 

일찍이 이광수는 흐린 날 비로봉 정상에 올랐다가

비구름과 안개가 순식간에 스러지며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짐을 보고서 "나는 천지창조를 목격하였다!"고

목이 터져라외친 바 있다. 정선의 <금강전도>가 갖는

태극 모양의 간결하면서도 웅대한 구성은 바로 춘원이

도저히 필설로 표현할 수 없었다던 그러한 감개의 형상화다.

 <풍악내산총람도楓岳內山總覽圖>의 혈망봉 세부.

<금강전도>의 구조.

<금강내산도金剛內山圖>

정선, 비단에 수묵 담채, 28.2×33.6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금강전도>의 관지.

<웅연계람도熊淵繫纜圖>의 발문.

 

일만 이천 봉 겨울 금강산의 드러난 뼈를

뉘라서 뜻을 써서 그 참모습 그려내리

뭇 향기는 동해 끝의 해 솟는 나무(神木)까지 떠 날리고

쌓인 기운 웅혼하게 온 누리에 서렸구나

 

암봉은 몇 송이 연꽃인 양 흰빛을 드날리고

반쪽 숲엔 소나무 잣나무가 현묘玄妙한 도道의 문門을 가렸어라

설령 내 발로 직접 밟아보자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

그 어찌 베개맡에 기대어 (내 그림을) 실컷 봄만 같으리오!

萬二千峯皆骨山 何人用意寫眞顔 衆香浮動扶桑外 積氣雄蟠世界間

幾朶芙蓉揚素彩 半林松栢隱玄關 縱令脚踏須今遍 爭似枕邊看不慳

 

<사직송도社稷松圖>

정선, 종이에 담채, 61.8×112.2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금강전도>의 제시.

<금강전도>의 기년명과 아래 두 봉우리.

<풍악내산총람도>

정선, 비단에 채색, 100.5×73.6cm, 간송미술관.

<풍악내산총람도>의 사자암 세부.

<금강전도>의 의인화된 봉우리 세부.

<매화쌍조도梅花雙鳥圖>

정약용, 비단에 채색, 44.7×18.5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손바닥만 한 이 화조화가 주는 감동이 남다른 이유는 늙은 가시버시의 남루 위로 앳된 신혼부부의 사랑이 겹쳐진 까닭이 아닐까? 애써 정을 감추는 엄부로만 치부되어 온 조선시대 아버지 상에도 이렇듯 살가운 구석은 따로 있었다.

 

토종 매화는 원래 꽃이 작고 또 드문드문 적게 달린다.

그중에서도 홍매화가 더욱 그렇다. 그러나 향기는 가장 깊고 그윽하다.

<매화쌍조도>는 진자줏빛 꽃받침과 초록빛 햇가지가 한데 어울려

원래는 무척이나 화사하고 색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더욱이 꽃술을 호분으로 하얗게 칠하고 그 끝에는

금빛 도는 노란색으로 꽃가루 하나하나까지 점 찍었음에랴!

<석매도石梅圖>

김수철, 종이에 수묵 담채, 51.8×28cm, 개인 소장.

 

창문 열고 편히 앉아 『주역』을 읽노라니

가지 끝에 흰 것 하나 하늘 뜻을 보이누나

燕坐軒窓讀周易 枝頭一白見天心

<노량주교도섭도鷺梁舟橋渡涉圖>

김홍도, 비단에 채색, 163.7×53.2cm, 호암미술관 소장.

거중기

수원성(화성) 공사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의 삽도

 

늙은이에게 한 가지 즐거운 일은

붓에 맡겨 마음껏 써나가는 것일세

 

어려운 운자韻字 맞춘다고 신경 안 쓰고

다듬고 고치느라 지체도 않네

 

흥이 나면 그 당장에 뜻을 실리고

뜻이 되면 그 당장에 글로 적을 뿐

 

나는 본래 조선朝鮮 사람이거니와

조선시朝鮮詩를 기꺼이 즐겨 쓴다네

 

시골에서 마땅히 시골 법을 쓴다는데

이러니저러니 말 많은 자 그 누구인가……

 

老人一快事縱筆寫狂詞 競病不必拘 推敲不必遲 興到卽運意

意到卽寫之 我是朝鮮人 甘作朝鮮詩 鄕當用鄕法 迂哉議者誰……

 

가경 18년 계유년(1813년) 7월 14일에 열수옹열洌水翁 정약용이 다산茶山의 동암東菴에서 썼다.

嘉慶十八年癸酉七月十四日 洌水翁書干茶山東菴

<매화쌍조도>의 제시 세부.

 

내가 강진으로 귀양온 지 여러 해 되자, 부인 홍씨가 여섯 폭 낡은 치마를 보내왔는데, 해가 묵어 붉은색이 다 바랜 것이었다. 이것을 오려서 서첩 네 책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 그 나머지로 작은 족자를 만들어 딸아이에게 준다.

余謫居康津之越數年 洪夫人奇敝裙六幅 歲久紅渝 剪之爲四帖 以遺二子 用其餘爲小障 以遺女兒

 

훨훨 날던 저 새가

내 뜰 매화 가지에 머물렀네

맑고 고운 꽃향기를

다소곳이 찾아온 것인가

여기 머물러 여기 살면서

네 가족 모두 즐겁게 지내렴

꽃이 벌써 활짝 폈으니

그 열매도 탐스럽겠지

翩翩飛鳥 息我情梅 有烈基芳 惠然基來 爰止爰棲 樂爾家室 花之旣榮 有賁基實

 

깊숙하고 고요한 대숲 속의 집

창 앞에 서 있는 한 그루 매화

 

꿋꿋이 눈서리를 견디어 내니

말쑥하게 세 속 티끌 벗어났구나

 

해 가도록 꽃 필 뜻 없나 싶더니

봄이 오니 스스로 좋이 피었네

 

그윽한 향기에 정녕 속기俗氣 없어라

붉은 뺨만 사랑함이 또한 아니네

窈窕竹裏館 窓前一樹梅 亭亭耐霜雪 澹澹出塵埃

歲去如無意 春來好自開 暗香眞絶俗 非獨愛紅腮

- 정약용 「집 앞의 홍매紅梅를 읊은 시(賦得堂前紅梅)」

<매화쌍조도>의 새와 꽃 세부.

<정약용丁若鏞 초상>

작자 미상, 종이에 채색, 91.5×53.5cm, 개인 소장.

<자화상自畵像>

윤두서, 종이에 수묵 담채, 38.5×20.5cm, 국보 240호, 개인 소장.

<노근묵란도露根墨蘭圖>

민영익, 종이에 수묵, 128.5×58.4cm, 호암미술관 소장.

 

<노근묵란도>의 난은 버쩍버쩍 타들어 가고 있을지언정 아직도 화폭 위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회한을 획 하나하나 그리고 점점이 그대로 간직한 채……

 

<노근묵란도>의 난은 중국 대가들의 작품보다 더 매섭고

옹골찬 기세를 보인다. 그것은 작품이 기본적으로 민영익의

비극적인 삶에서 연유한 절절한 개인감정으로부터

흘러나온 까닭이겠지만, 한편으론 추사 김정희의 강경하면서도

엄정했던 예술 유산에 힘입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난이란 본래 부드러운 식물이 아니다.

여린 듯한 그 잎사귀를 가만히 만져보라.

민영익 사진.

 

이리 붓 대고 저리 획 긋다 머리칼이 하얗게 세니

깊은 밤 등불 돋우고 『초사』를 읽네

바람겨운잎, 비에 젖은 꽃되는 대로 그리자니

신강申江에 밀물 들어차고 달만 밝구나

東塗西抹成絲 深夜挑燈讀楚辭 楓葉雨花隨意寫 申江潮滿月明時

 

미인을 그리워하여 눈물 닦으며 우두커니 바라보네

길 막히고 중매 끊겼으니, 말을 맺어 전할 수도 없네

思美人兮 擥涕而 媒絶路阻兮 言不可結而

- 굴원

<무근란도無根蘭圖>

정사초, 1306년, 종이에 수묵, 25.7×42.4cm, 오사카시립미술관 소장.

<노엽풍지도露葉風枝圖>

민영익, 종이에 수묵, 31×56cm, 호암미술관 소장.

 

나라(중국) 안에 난 그리는 사람 드무니

마땅히 나라 밖에서 구해야 하리

그대(민영익)는 참된 이치 터득했구려

먹 향기 이파리에 드러나 바람을 타네

海內畵蘭人少 當於海外求之 君家能悟眞諦 墨香露葉風枝

- 포화蒲華

<묵란도>

이하응, 1881년, 종이에 수묵, 개인 소장.

 

너른 밭 물결치는 난 굴원은 많이도 심었으나

먹물로 친 두세 포기 그림 난꽃에 못 미치리

오늘날 나라의 향기 쇠잔하여 다 떨어지고

귀인자제 꽃다운 풀만 하늘 저편에 가득하네

漪蘭九畹誠多種 不及墨池三兩花 此日國香零落盡 王孫芳艸遍天涯

 

정사년(1917년) 10월 원정園丁 민영익의 그림에 제시를 붙여

고우古友 최린 형이 감상토록 드린다. 한강 기슭 늙은 백성 오세창.

丁巳小春題閔園丁畵 古友仁兄雅賞 洌上老艸衣 吳世昌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

안중식, 비단에 채색, 192.5×5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

안중식, 비단에 채색, 130×5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채李采 초상>

작가 미상, 1802년, 비단에 채색, 99.2×5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 시대도 <이채 초상>과 같이 뛰어난 초상화를 남길 수 있을까? 나는 낙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초상 작가가 드문 까닭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 저 그림의 주인공 같은 인물을 찾아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채 초상>은 한 인물을 핍진하게 묘사한 초상화이지만,

동시에 조선시대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영원함을 보여준다. 초상 작가의 묘사 능력은 너무나 탁월해서

정면상을 그린다는 작업상의 어려움에 대한 고민을 조금도

느낄 수 없게 한다. 더구나 그는 세련된 기법의 차원을 넘어서서

대상의 본질을 향해 은은한 관조의 빛을 던짐으로써

초상 인물의 고매하고 반듯한 정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다.

<당 태종 입상唐太宗立像>의 부분

작가 미상, 7세기, 비단에 채색, 271×126.8cm, 타이베이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배우 이치카와 에비조[市川가鰕藏] 초상>

도슈사이 사라쿠[東洲齊寫樂], 1794년, 니시키에[錦繪], 37.8×25.1cm,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서직수徐直修 초상>의 부분

이명기李命基 · 김홍도, 18세기, 비단에 채색, 148.8×72.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재순吳載純 초상>의 부분

이명기, 비단에 채색, 152×89.6cm, 호암미술관 소장.

전傳 <이재李縡 초상>

작가 미상, 비단에 채색, 97×56.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채 초상>의 화찬畵讚 세부.

 

저기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주자朱子께서 『문공가례文公家禮』에서 말씀하신 심의深衣를 입고 우뚝하게 꼿꼿이 앉은 이가 누구인가? 눈썹이 짙고 수염은 희며 귀가 높고 눈빛은 환하니 그대가 참으로 이채 계량季亮이라는 사람인가? 지난 자취를 돌아보면 세 고을의 현령, 현감(영유현령과 음죽 · 지례현감)을 지냈고 다섯 주州의 부사, 목사(선산부사府使와 상주, 충주, 나주, 황주목사牧使)를 제수 받았으며, 그 사업을 물으면 네 분 선생님의 글(공자孔子의 『논어論語』, 맹자孟子의 『맹자孟子』, 증자曾子의 『대학大學』, 자사子思의 『중용中庸』)과 여섯 경전(시詩, 서書, 역易, 예禮, 악樂, 춘추春秋)의 공부라고 한다. 하지만 이 혹시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헛된 이름을 도둑질하는 짓은 아닌가? 아! 네 조상의 향리로 돌아가 네 조상의 글을 읽어라! 그러면 그 즐길 바를 어렴풋이 알아 정자程子, 주자朱子의 제자 되기에 부끄럽지 않으리라.

화천 늙은이가 스스로 화제畵題를 짓고 경산 71세(1802년) 늙은이가 쓰다.

彼冠程子冠 衣文公深衣 嶷然危坐者 誰也歟 眉蒼而鬚白 耳高而眼朗 子眞是李季亮者歟 考其迹則三縣五州 問其業則四子六經 無乃欺當世而竊虛名者歟 吁嗟乎 歸爾祖之鄕 讀爾祖之書 則庶幾知其所樂 而不愧爲程朱之徒也歟

華泉翁自題, 京山望八翁書

<이채 초상>의 찬문 부분.

 

높은 관 넓은 띠로 몸가짐은 완연히 예법의 마당에 있고, 흰 머리칼 우뚝한 모습을 바라보니 산림에서 도 닦는 선비 얼굴에 방불하다. 스스로 높다고 여기지 않으나 평범함에서 높이 드러났으며 스스로 맑다고 여기지 않으나 막음이 그 속에 있나니, 이것은 대개 세상이 하나같이 좋아하는 바이다. 속일 수 없는 인품이 연원 있는 샘이나 향기로운 풀과 같은 것은 집안의 가르침을 받들어 온 때문이다. 그 학문이 세대를 이어가며 서로 전해왔는데, 이런 사람을 내가 누군지 알지 못하겠는가? 그 사람은 생각건대 나의 벗, 쉰아홉 살 화천옹이 아닌가?

저암 72세 늙은이(1803년)가 찬문을 짓고 기원 유한지가 쓰다.

峩冠博帶 宛周旋乎禮法之場 皓髮魁覿髴兮 山野之容 不自以爲高 而高出於凡 不自以爲淸 而淸在其中 是蓋世 攸好也 不可誣者 有自之泉芝 家訓所愛也 其爲學則 相傳之箕弓 若是者吾 不知誰歟 其人其惟吾友五十九歲之華泉翁乎 儀

著菴七十二歲翁讚 綺園書

<이채 초상>의 찬문 세부.

 

화락한 모습을 그대 천성에서 얻었으니, 정세하고 순수함이 그대 얼굴에 드러났네. 젊은 날 피어났던 꽃다운 재기才氣를 거두고서 중년에 쌓은 경전經典 공부 그 저력을 더했구나. 하루 종일 마주 대해도 싫증남을 모르겠고, 평생토록 더불어 사귀니 그 독실함을 더욱 보네. 겉모습 맑고 온화함은 화가가 능히 그리지만, 속마음 강직한 절조는 그 친구가 능히 알지. 일찍이 그대 할아버지 도암 이재 선생의 초상을 삼가 뵈었기로 대저 이 정신이 그분 마음과 흡사함을 알겠노라.

원교圓嶠 노인이 찬문을 짓고 송원松園 김이도金履度가 정묘년(1807년)에 쓰다.

豈弟得乎爾性 精粹著乎爾容 斂少日英發之氣 加中歲經術之工 終日相對而未覺其厭 終身與交而益見其篤 外貌之淸和 畵者能寫 哀操之剛介 其友能識 嘗拜 陶菴先生遺像 蓋知此精神之彷彿

圓嶠老人贊 松園丁卯書

<이채 초상>의 얼굴 세부.

 

 

 

 

 

 

posted by 황영찬
2013. 10. 23. 10:58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14 계룡산

 

글 / 정종수●사진 / 서헌강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09

 

082

빛12ㄷ  186

 

빛깔있는 책들 186

 

정종수-------------------------------------------------------------------------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으로 있다. 논저로는 「조선초기 상장 의례연구」, 「계룡산의 도참 풍수지리적 고찰」 등 여러 편이 있다.

 

서헌강-------------------------------------------------------------------------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했으며 『샘이 깊은 물』 사진부장으로 있다.  사진집으로는 『한국 근대 100년 풍물전』 『제와장』 등이 있다.

 

|차례|

 

신들의 꽃밭 계룡산

산 이름의 유래

풍수지리적 특징

신도 경영과 국도 시기

명가람을 찾아서

계룡산의 어제와 오늘

드라이브 코스와 등산로

참고 문헌

중악단  신원사 경내에 있는 중악단은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대표적인 제단으로 조선시대에는 왕족이 모셨지만 지금은 일반 신도들이 모신다.

계룡산의 산태극 수태극도  계룡산은 신도안을 중심축으로 산과 물이 자람개비가 돌아가는 것처럼 태극의 모양을 이루어 예로부터 풍수지리적으로 뛰어난 대길지로 여겨졌다.

계룡산 수용추(위, 가운데)와 암용추(아래)  암용과 수용이 지하굴에서 하늘의 부름도 잊고 밀화를 즐기다가 노여움을 사 별거를 하게 되었고 그 뒤 차례로 승천하였는데 이 자리를 암용추, 수용추라 한다. 지하로 굴이 뚫려 잇어 한쪽에서 불을 지피면 연기가 통한다고 한다.

숙모전  처음에는 삼은각이라 했으나 세조 때 계유정난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육신과 단종, 안평대군, 금성대군, 김종서 등 280명의 초혼제를 지낸 뒤 초혼각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그 뒤 1904년 고종이 증축하여 숙모전이라 하였다.

대웅전 내부  내부에는 마루를 깔았고 뒷면 가운데에는 높은 기둥을 세웠으며 여기에 다시 후불벽을 치고 나무로 깎은 후불탱을 걸고 삼존불상을 안치하였다.

동학사 대웅전  경내 중심에 자리잡은 대웅전은 중앙에 장축의 계단을 낸 석축 기단 위에 원형의 주초석을 놓고 배흘림기둥을 세웠다.

삼성각 내부  도교와 불교, 무속이 습합된 삼성각의 내부에는 불단을 설치하였고 중앙의 칠성신을 중심으로 왼쪽에 산신도를, 오른쪽에는 나반 존자상을 봉안하였다.

석조 약사여래 입상  표충원 남쪽 계곡 부근에 자연으로 이루어진 석감 안에 고려 때 것으로 보이는 석조 약사여래 입상이 있다.

갑사 입구의 괴목단  괴목단은 마을의 당산과 같은 유형이다. 구전에 의하면 이 괴목이 영험이 많아 끊겼던 마을 제사를 다시 지내면서 단을 모았다는 뜻에서 괴목단이라 하였다고 한다. 나무 밑줄레가 31.6미터나 된다.

대웅전  19세기 후반에 지은 대웅전은 높은 석축 기단 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둥근 기둥을 사용하여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을 서쪽으로 향하게 세웠다.

대웅전 내부  내고주를 세우고 후불벽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불단을 조성하고 삼존불을 안치하였다.

철당간과 지주  갑사의 철당간과 지주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원위치에 기단부까지 잘 남아 있으며 보물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대적전 앞 부도  고려 전기에 만들어졌으며 팔각의 탑신은 앞뒤 양면에 문과 자물쇠를 표현했고 그 좌우로 사천왕상을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 조각 기법이 탁월하고 웅건한 기상이 넘쳐 흐른다. 보물 제257호로 지정되었다.

갑사 동종  1583년 북방 호한을 평정하고 국왕의 성수를 축원하기 위해 선조 17년에 주조된 이 종은 어깨부터 가슴 부위에 이르기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배 부분부터 하단까지 거의 직선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종 세부도  석장을 잡고 서 있는 보살 입상(위), 용으로 장식한 동종의 정상부(가운데), 종신에 장식된 9개의 연화문 유두(아래).

신원사 경내.

중악단 앞 5층석탑  신라 석탑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 석탑으로 현재는 2층 기단 위에 4층의 탑신부만 남아 있다. 이 탑은 이곳이 원래의 신원사 터일 가능성을 보여 준다.

중악단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산신 제단인 중악단은 신원사 경내에 있으면서도 그 배치가 절이나 서원과는 무관한 하나의 독립적인 성소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대문을 열고 본 중악단 전경  다포 팔작집의 화려한 공포 구성을 통하여 건물의 위엄을 자랑하고 잇으며 궁궐형으로 중문, 안문을 닫고 지붕 위에도 궁궐식으로 잡상을 그대로 달았다.

수문장  수문장이 지키는 이중 삼문을 지나야 중악단에 들어갈 수 있다.

중악단 내부  단 가운데에 산신도를 모셨는데 호랑이 모습이 지극히 해학적이다. 이 전에는 위폐가 있었다고 한다.

뒤편 담장  처마, 공포, 담장의 치장 등이 매우 정제되어 궁궐 건축의 의장처럼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위용을 간직하고 있어 조선 왕실의 제단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동양 최대의 개태사 가마솥  창건 당시에 제작된 이 솥은 스님들의 식사를 마련할 때 밥이나 죽 또는 국을 끓여 주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현재 충청남도 민속자료 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존석불  개태사 법당 안에는 고려 초기에 화강암으로 조성한 석불 3구가 나란히 남쪽을 보고 서 있다. 이 가운데 본존불의 얼굴은 둥근 형상으로 입가에 약간 고졸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법당에 안치되기 이전에 남향으로 서 있는 삼존석불.

남매탑  동학사에서 갑사로 가는 계룡산 동쪽 중턱에 청량사 터가 있는데 이곳에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남매탑이 사이좋게 서 있다.

 

posted by 황영찬
2013. 10. 22. 12:01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13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유홍준 지음

199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7260

 

981.1

유95ㄴ v. 2 c. 3

 

놀라운 일이 여기 있다! 다른 사람이 가는 곳은 다만 석양머리 적막강산이다.

그런데 유홍준이 성큼성큼 그곳에 가면 거기 몇천년 동안 잠든 보물들이 깨어나

찬란한 잔치를 베풀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은 다만 눈감은 사물이다. 그런데 유홍준의 눈빛이 닿자마자

그 사물은 문화의 총체로 활짝 꽃피운다. 마침내 다른 사람과 유홍준은 하나가 되어

이 강산 방방곡곡을 축복의 미학으로 채우고 있다.

무릇 벗들이여, 이 책과 더물어 순례하라, 찬탄하라.

- 고은(시인)

 

유홍준교수의 '남도답사 일번지'를 따라가 보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흔히 만난다. 그만큼 그는 우리네 문화유산의 진면목을 일깨워주었고 그것을 사랑하게 해준 안내자이자 공로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둘째권을 펴내면서 첫째권의 명쾌한 논증 대신 유장한 해설로 문화유산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더욱 깊이있게 드러내는 원숙한 경륜의 시각을 보여주고 잇다.

- 이태호(전남대 교수 · 미술사)

 

지은이 유홍준(兪弘濬)은 1949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미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였으며,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의 예술철학 전공을 수료하였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미술평론부문으로 등단하여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를 역임히였다. 1985년부터 매년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개설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1986, 열화당), 편역서로 『미학에세이』(1988, 청년사), 번역서로 『회화의 역사』(H. W. 잰슨, 1984, 열화당) 등이 있으며, 「조선후기 문인들의 서화비평」 「단원 김홍도 연구노트」 등 한국회화사 관계 논문을 줄곧 발표해왔다. 현재는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미학 ·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차례

 

두번째 책을 펴내면서

글쓰기와 책읽기의 행복한 만남

 

    지리산 동남쪽 - 함양 · 산청(상)

1 옛길과 옛마을에 서린 끝모를 얘기들

    농월정 / 박지원사적비 / 정여창 고택 / 학사루 / 함양 상림 / 단성향교 / 단속사터

 

    지리산 동남쪽 - 함양 · 산청(하)

2 산은 지리산

    산천재 / 덕천서원 / 대원사 / 가랑잎국민학교 / 지리산

 

    영풍 부석사

3 사무치는 마음으로 가고 또 가고

    사과밭 진입로 / 무량수전 / 대석단 / 조사당 / 선묘각 / 부석

 

    아우라지강의 회상 - 평창 · 정선(상)

4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이효석 생가 / 봉산서재 / 팔석정 / 아우라지강

 

    아우라지강의 회상 - 평창 · 정선(하)

5 세겹 하늘 밑을 돌아가는 길

    선아리랑 / 사북과 고한 / 정암사 / 자장율사

 

    토함산 석불사(상)

6 그 영광과 오욕의 이력서

    창건설화 / 정시한의 석굴 기행 / 소네 통감의 도둑질 / 일제의 해체수리

 

    토함산 석불사(중)

7 석굴의 신비에 도전한 사람들

    박종홍 / 야나기 / 고유섭 / 요네다 / 이태녕 / 남천우 / 김익수 / 강우방

 

    토함산 석불사(하)

8 무생물도 생명이 있건마는

    1963년 보수공사 / 전실문제 / 광창문제 / 보존문제 / 신라역사과학관 / 유치환 시 / 서정주 시

 

    민통선 부근 - 철원

9 한탄강의 비가(悲歌)

     한탄강 / 고석정 / 승일교 / 도피안사 / 궁예궁터

 

    운문사와 그 주변(상)

10 저 푸른 소나무에 박힌 상처는

    동곡의 선암서원 / 대천리 수몰마을 / 운문사 입구 솔밭

 

     운문사와 그 주변(중)

11 운문사 사적기와 운문적의 내력

    가슬갑사 / 이목소 / 운문적 / 일연 스님 / 비구니 승가대학

 

    운문사와 그 주변(하)

12 연꽃이 피거든 남매지로 오시소

    새벽예불 / 벚나무 돌담길 / 운문사의 보물들 / 목우정 / 남매지

 

    미완의 여로(상) - 부안 변산

13 끝끝내 지켜온 작은 아름다움들

    부안 장승 / 구암리 고인돌 / 수성당 / 내소사 / 반계 선생 유허지 / 유천리 도요지 / 개암사

 

    미완의 여로(하) - 농민전쟁의 현장

14 미완의 혁명, 미완의 역사

    고부향교 / 백산 / 만석보터 / 말목장터 / 녹두장군집 / 황토재

 

부록 1 / 첫번째 답사기의 정정과 보완

부록 2 / 답사일정표와 안내지도

 

흐르는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흐르는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는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천길 벼랑에서 옷을 털고

만리로 흐르는 물에 발을 씻는다

振衣千仞崗 濯足萬里流

 

이경윤 「고사탁족도」(16세기, 고대 박물관 소장) / 탈속한 처사의 삶을 형상화한 조선중기 회화사의 명작이다.

 

작자 미상 「삼복탁족도」(부분) / 사대부의 고귀함이 아니라 세속적인 물놀이를 그린 조선후기의 속화로서 그림 오른쪽으로는 세 여인이 목욕하는 누드화가 그려져 있다.

거연정 / 전시숙이라는 문인이 소요하던 곳에 후손이 세운 정자로, 계곡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정자를 세운 드라마틱한 배치로 행인의 시선과 발목을 잡는다.

농월정 / '달빛이 비치는 바위 못'이라는 뜻의 월연암 위에 정자를 세우고 그 이름은 '달을 희롱한다'는 뜻의 '농월정'이라고 했으니 그 낭만적 분위기를 알 만도 하다.

지족당장구지소 / 지족당이 산보하던 곳이라는 뜻으로 새긴 각자(刻字)는 매우 힘차면서도 정연하게 깊이 새겨져 있어 그것이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되었다.

허삼둘 가옥의 부엌문 / 전형적인 ㄱ자 팔작집인데 정모서리에 배치한 출입구가 자못 이채롭다.

 

할아범 새를 보러 밭둑에 앉았건만

개꼬리 같은 조이삭엔 참새가 달려 있네

 

맏아들 둘째아들 들일로 다 나가고

온종일 시골집은 삽짝문 닫혀 있네

 

소리개 병아리를 채려다 못 채가니

박꽃 핀 울밑에서 뭇닭이 울어대네

 

새댁이 함지 이고 꼿꼿이 내 건널제

누렁개 발가숭이 아이 앞뒤로 쫓아가네

翁老守雀坐南陂   粟拖狗尾黃雀垂

長男中男皆出田   田家盡日晝掩扉

鳶蹴鷄兒櫻不得   群鷄亂啼匏花籬

小婦戴捲疑渡溪   赤子黃犬相追隨

- 「시골집(田家)」 연암 박지원

박지원 사적비 / 안의국민학교 교정에는 연암 박지원이 이곳 현감으로 근무했던 것을 기념하는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정여창 고택 / 높직이 올라앉은 사랑채에는 양반가옥의 품위와 권위가 한껏 살아 있다.

함양 상림 / 1000년 전에 방수림으로 심은 100여 종의 나무들이 그대로 천연기념물로 되었고 지금은 함양 사람들의 공원으로 사랑받고 있다.

학사루 / 함양읍내에 있는 이 누각은 무오사화의 숨은 전설이 전해져 더욱 역사성을 느끼게 된다.

단성향교

단속사터 / 넓고 그윽한 맛을 동시에 갖춘 계곡 속의 분지에 자리잡은 단속사터에는 준수하게 생긴 쌍탑이 의연한 모습으로 그 옛날을 지키고 있다.

산천재의 벽화 중 경작도 / 산천재 툇마루 윗벽에는 세 폭의 벽화가 그려 있는데, 그중 경작도는 토벽공사를 하는 미장이 아저씨가 이와 같이 절묘하게 그림 부분을 살려놓았다.

덕천서원 / 남명 조식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끝내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재야를 지킨 선생의 뜻을 기리고 있다.

대원사 전경 / 6 · 25동란으로 전소되어 근래에 중창한 절이지만 비구니 청정도량으로 깔끔하기 이를 데 없다.

대원사 9층석탑의 석인상 / 이 탑 1층 몸돌에는 8부중상이 돋을새김으로 새겨 있으면서, 네 모서리는 석인상이 머리로 받치고 있는 특이한 조각이 첨가되었다.

대원사 9층석탑(보물 1112호, 고려시대) / 철분이 많은 화강암으로 세워 붉은기가 감도는데, 훤칠하게 뻗어오른 맵시와 정성을 다한 석공의 조형적 성실성이 느껴진다.

대원사 장독대 / 대원사 원통보전 뒤쪽에 있는 장독대에는 통통하게 어깨가 부푼 전형적인 경상도 장독들이 늘어서 있다

가랑잎국민학교라는 별칭을 얻은 유평국교 / 이제 학생수가 3명으로 폐교 직전에 놓였다.

부석사로 오르는 은행나무 가로수 길 / 적당한 경사면의 쾌적한 순례길로 멀리 일주문이 있어 거리를 가늠케 한다.

부석사 당간지주 / 곧게 뻗어오르면서 위쪽이 약간 좁아져 선의 긴장과 멋이 함께 살아난다.

대석단과 안양루 / 9품 계단의 마지막 3단으로 자연석을 이어짠 돌축대와 봉황의 날갯짓 모습의 누각이 아름다운 그림처럼 펼쳐진다.

무량수전 /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축으로 우리나라 팔작지붕집의 시원양식이다. 늠름한 기품과 조용한 멋이 함께 살아나고 있다.

선묘각 / 무량수전 옆에 조그만 헛간처럼 세워진 선묘각의 모습이 너무 소홀한 대접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부석사 삼층석탑과 전경 /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삼층석탑으로 단정한 기품이 살아있는데, 그 위 언덕에 앉아 안양루 범종루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여간 호쾌한 것이 아니다.

조사당 측면 / 조사당 건물은 고려시대 맞배지붕의 단아한 아름다움의 표본이다.

 

아질아질 성마령아

야속하다 관음베루

지옥같은 정선읍내

십년간들 어이가리

 

아질아질 꽃베루

지루하다 성마령

지옥같은 이 정선을

누굴따라 나 여기왔나

- 정선아리랑의 일부

이효석 문학비 / 영동고속도로 태기산 소풍휴게소에는 이효석의 문학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효석 문학공원 / 이효석 생가로 들어가는 입구의 작은 공원에 기념조각으로 세워놓은 것이 얼마나 사람을 웃기는지 모른다.

아우라지 처녀상 / 정선아리랑을 기리는 마음에서 세운 이 아우라지 처녀상이 좀더 정선색시 맛을 띠었으면 오죽이나 좋았으랴마는……

 

아우라지 지장구 아저씨(뱃사공아) 나 좀 건네주오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언겨주게

정선읍내와 조양강 / 조양강이 반원을 그리면서 흘러나간 강변에 정선읍이 고즈넉이 앉아 있다.

 

싸움

 

나는 우리 옆집 아이와

가끔 싸운다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우리 엄마한테 말해서

니네 식구 모두

쫓겨나게 할거야

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그 말만은 하지 말라고

나는 사과한다

(사북국교 5학년 아무개)

 

아주머니

 

새로 이사 온 아줌마는

참 멋쟁이다

그런데 하루는 아주머니가

광산촌은 옷이 잘 껌어

하며 옷을 털었다

왠지 정이 뚝 떨어졌다

(사북국교 4학년 전형준) 

 

막장

 

나는 지옥이

어떤 곳인 줄

알아요

좁은 길에다

모두가 컴컴해요

오직

온갖 소리만

나는 곳이어요

(사북국교 6학년 노영민)

황재형 작 「앰뷸런스」 / 탄광촌 사람이 아니면 지금 이 작품에서 산천초목이 떨리는 마음을 다는 읽어내지 못한다.

정암사 전경 / 수마노탑에 올라 정암사를 내려다보면 골짜기에 들어앉은 절집이 더욱 아늑하게 다가온다.

정암사 일주문

 수마노탑 / 전형적인 전탑[벽돌탑] 양식이지만 벽돌로 쌓은 것이 아니라 마노석으로 세워진 것이 특징이다.

석굴 내부 전경 / 본존불을 중심으로 벽면과 감실에는 39분의 보살 천(天) 나한 등이 정연한 도상체계를 이루고 있다.

천장석 팔뚝돌 해부도 / 석굴 궁륭부는 팔뚝돌을 이용한 절묘한 역학관계로 구축되어 있다.(신라역사과학관의 모형도)

깨진 천장덮개돌 / 세 동강이 난 천장덮개돌에는 석굴 완공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미완의 전설이 서려 있다.

1907년경 발견 당시의 석굴 / 석굴은 전실의 목조건축이 없는 개방공간으로 궁륭 앞부분의 일부가 허물어져 있다. 바로 그 부분은 광창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고 있다.

해체되는 석굴 / 1914년 6월 15일, 석굴은 본존불과 천장석만 남겨둔 채 지붕돌을 다 들어냈다. 목책에 갇힌 본존불의 얼굴이 안쓰러워 보인다.

해체된 석굴 / 1914년 9월 12일, 석굴은 완전히 해체되어 10대제자상들이 한쪽으로 널려져 있다.

복원된 석굴 전경 / 1915년 9월 13일, 3년간에 걸친 해체공사를 마치고 복원된 모습이다. 외벽에 콘크리트를 발라 석굴보존에 치명상을 주었지만 전실을 개방한 것은 발견 당시의 원형을 따르고 있다.

전실이 개방되었을 때의 석굴 / 일제시대에 석굴 관광 기념품으로 만든 그림엽서의 사진으로 굴절된 전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10대제자상 / 제각기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10대제자상은 그 시선의 방향이 참배객의 순례길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본존불과 분리된 광배 / 석굴 전체 구조에서 가장 절묘한 부분은 본존불과 광배의 분리이다. 이로 인해 광배의 장식성은 사라지고 이미지의 유동성(流動性)이 살아났다.

요네다가 그린 본존불의 측량도면 / 정사각형의 한 변과 그 대각선 √2의 연속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요네다가 그린 석굴 측량도면 / 석굴구조의 치밀한 수리적 관계가 한눈에 증명되고 있다.

예배자의 정위치

11면관세음보살상 / 다른 부조에 비해 강하게 돌출시키고 6.5등신의 현세적 미인관을 반영하여 이상적인 미인관, 즉 '미스 통일신라' 상에 접근하고 있다.

콘크리트 이중돔 해부도 / 누수를 방지하기 위하여 콘크리트 이중돔을 씌운 것이 1963년 보수공사의 주요 골격이었다. 신라역사과학관에서 제작한 모형 해부도.

전실 목조건물로 막힌 석굴 / 석굴의 전실을 목조건물로 막음으로써 외견상 '석굴암'은 '목굴암'이 되고 말았다.

팔부중상 / 전실 양쪽으로 늘어선 팔부중상은 바깥쪽 한 분의 키가 세분과 다르다. 이는 전실이 전개가 아니라 절곡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석굴의 광창(光窓) 상상도 / 남천우교수는 석굴 전면에는 이와같은 광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잇다. 신라역사과학관이 제작한 모형.

버려진 석굴 원석재(原石材) 중 광창 부분 / 석굴에서 내려오는 돌계단 한쪽에 있는 원석재 중에는 광창에 사용됐으나 빼어버린 호(弧)형의 돌이 있다.

본존불의 얼굴 /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조화로운 만남으로 석굴의 본존불은 이상적인 인간상, 신의 인간화를 동시에 보여준다.

 

목놓아 터트리고 싶은 통곡을 견디고

내 여기 한개 돌로 눈감고 앉았노니

천년을 차거운 살결 아래 더욱

아련한 핏줄, 흐르는 숨결을 보라

           …

먼 솔바람

부풀으는 동해 연잎

소요로운 까막까치의 우짖음과

뜻없이 지새는 흰 달도 이마에 느끼노니.

 

뉘라 알랴!

하마도 터지려는 통곡을 못내 견디고

내 여기 한개 돌로

적적(寂寂)히 눈감고 가부좌하였노니.

- 유치환 「석굴암 대불」

 

그리움으로 여기 섰노라

호수와 같은 그리움으로,

오! 생겨났으면, 생겨났으면,

나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는 이

천년을 천년을 사랑하는 이

새로 햇볕에 생겨났으면,

허나, 나는 여기 섰노라,

이 싸늘한 바윗속에서

날이 날마다 들이쉬고 내쉬이는

푸른 숨결은

아, 아직도 내 것이로다.

- 서정주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

유희좌(遊戱座)의 보살상 / 10개의 감실에 모셔 있는 존상 중에서, 나는 이 아름다운 유희좌의 보살상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

 

 

 

posted by 황영찬
2013. 10. 22. 10:17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12 양미경의 가슴으로 읽는 시

 

엮은이 양미경

2004, 은행나무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2185

 

811.6

양38가

 

버려야만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내 안에서, 그대의 얼굴과 그대의 목소리와 그대가 남긴

사소한 추억까지 몽땅 버린 뒤에야 그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지려고 하면 결코 가질 수 없는,

다가서려고 하면 결코 다가오지 않는 그리움 하나.

 

양미경의 애송시로 꾸민 고운 선물 바구니!

 

맛과 향기가 각기 다른 과일 바구니를 선물 받은 느낌이랄까.

양미경이 가려 뽑아 그의 잔잔한 해설을 곁들여 들려주는 애송시들을 감상하다 보면 삶이 곧 시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 가까이 살아오는 시의 향기에 취해 나도 누군가에게 시로 꾸민 고운 선물 바구니 하나를 보내고 싶어진다.

- 이해인(수녀 · 시인)

 

책장을 넘길 때마다 농익은 시의 향기가 번져 나오는 느낌이다. 거기에다 양미경의 감상 노트를 읽으니 잘 버무린 양념처럼 아름다운 시들이 더욱 맛깔스럽게 다가온다. 양미경에게서 느껴지는 영원한 소녀의 상(像)은 그의 감성과 잘 어울려 시의 서정성을 한층 빛내준다.

- 이병훈(프로듀서)

 

바쁜 방송 일을 하면서도 시를 곁에 두고 사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시가 사람을 맑게 만드는 것일까, 맑은 사람이기 때문에 시를 가까이하는 것일까.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의 마음도 그처럼 맑아졌으면 좋겠다.

- 고두심(탤런트)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느 시인이 시를 읽지 않는 요즘 세대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시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정말 맞는 말이었다. 시는 내게 있어 따지고 분석하는 무엇이 아니라 그냥 가슴에 전해져오는 느낌이었다. 어떤 뜻인지 무엇을 가리키는 건지 정확하게 몰라도 좋았다. 시 한 편에, 그 한 줄에 담겨져 전해오는 느낌이 좋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양미경의 시 감상 노트 중에서

양미경

부산 출생. KBS 탤런트 공채 10기, 1985년 KBS 스승의 날 특집극 <푸른교실>로 데뷔했다. 그 이후 KBS의 <그대의 초상>, <형>, <징검다리>, SBS의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 <불꽃>, MBC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두 자매>, <그 햇살이 나에게>, <대장금> 등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또한 <행복이 가득한 집>(KBS), <생방송 행복찾기>(SBS), <양미경의 노래마을>(TBS)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1985년 KBS 신인연기상을 수상했고, 2003년에는 MBC 연기대상 연기자 부문 특별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에세이집 《당신이 진실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1997)이 있다.

 

차례

 

하나... 사랑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하늘냄새_박희준

새벽 편지_곽재구

다시_박노해

말을 위한 기도_이해인

빨래_이해인

미라보 다리 아래_기욤 아폴리네르

엄마_정채봉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_정채봉

소경되어지이다_이은상

꽃잎 1_김수영

풀_김수영

사랑굿97_김초혜

배꼽을 위한 연가 5_김승희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_윤후명

내 안의 당신_유해목

겨울풀_이근배

비망록_김경미

 

둘... 새벽달처럼

 

새벽달처럼_김형영

눈물은 왜 짠가_함민복

푸른 밤_나희덕

너의 그림자_박용철

저녁에_김광섭

무지개_서정윤

홀로서기_서정윤

겨울연가_강계순

달리 할 말이 없네_허행

이중섭 1_김선영

이 순간_피천득

가정_박목월

섬진강 15_김용택

봄눈_나태주

옛날_김소월

초혼_김소월

타는 목마름으로_김지하

접시꽃 당신_도종환

 

셋...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바닷가 우체국_안도현

즐거운 편지_황동규

冬天_서정주

내 사랑은_송수권

눈 온 아침_신경림

꽃으로 잎으로_유안진

그 사람에게_신동엽

봄 꽃 편지_고두현

내게 당신의 사랑이 그러하듯이_조병화

사랑하는 별 하나_이성선

湖水 1_정지용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_강은교

민들레꽃_조지훈

그뭄_장석남

님의 침묵_한용운

창살에 햇살이_김남주

처음처럼_신현수

별 헤는 밤_윤동주

 

하늘 냄새

박희준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새벽달처럼

김형영

 

밤하늘에 구멍처럼 박혀 있던 달이

박힌 자리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떠오르고 떠오르고 또 떠오르더니

새벽달이 되어 서녘으로 사라져가듯

점잖으신 걸음걸이로 사라져가듯

죽게 하소서, 그렇게

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니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자면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력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 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강은교

 

봄이 오고 있다

그대의 첫사랑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의 맨발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이 밟은 풀잎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이 나부끼는 바람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 위의 아침 햇빛이 꿈꾼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 위의 반짝이는 소리

곁으로 곁으로 맴도는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의 아침 햇빛의 꿈 엷은 살 속

으로 우리는 간다. 시간은 맨머리로

간다, 아무도 어찌할 수 없다.

그저 갈 뿐, 그러다 햇빛이

되어 햇빛 속으로 가는

그대와 오래 만나리

만나서 꿈꾸리

첫사랑

되리.

 

 

 

posted by 황영찬
2013. 10. 17. 11:24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11 판화 감상법

 

글, 사진 / 장화진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08

 

082

빛12ㄷ  185

 

빛깔있는 책들 185

 

장화진-------------------------------------------------------------------------

1949년 경기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와 동대학원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크랜브룩 대학원 판화과를 졸업하였다. 1973년 이후부터 현대 미술에 관련된 국내외의 개인전 및 유명그룹 초대전에 출품하고 있으며, 1978년부터는 한국현대판화가협회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미술사』가 있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차례|

 

머리말

판화란 무엇인가

판화의 종류와 특징

판화의 역사

우리나라의 판화

현대 판화 작품

판화의 수집과 관리 요령

알아 두어야 할 판화 용어

참고 문헌

인그레이빙의 부분  펜으로 그린 선처럼 섬세한 효과를 보여 준다.

「간호원」 짐 다인, 에칭, 50.8×60.9센티미터, 1976년, 플로리다의 피라미드 예술사.

「제트루드」 레드 그룸스, 6개의 다색 석판화 아크릴 상자, 48.9×55.8×26.7센티미터, 1975년, 뉴욕의 브룩크 알렉산더 회사.

「'공항' 연작 중 고양이 발자국」 라우센버그, 재봉틀로 바느질한 무명천과 모슬린천, 병마개, 86×90센티미터, 1974년, 플로리다의 그래픽 스튜디오.

「바보의 집」 재스퍼 존스.

「보협인다라니경」 목판, 7.8×240센티미터, 고려 1007년, 고 김완섭 소장.

「금강경」 목판, 24.8×29센티미터, 중국 868년, 대영박물관.

「여왕 엘우텔리다 앞의 폴리필루스」 목판, 이탈리아 1499년, 뉴욕시립미술관.

「아포칼립스의 4명의 기사」 뒤러, 목판, 41×28센티미터, 1497~98년, 대영박물관.

「라티스본의 성녀」 알트도르퍼, 다색 목판, 33×24센티미터, 1519년, 워싱턴D.C.국립화랑.

「수도승 루터」 그리엔, 목판, 15×11.4센티미터, 베를린, 1521년, 스타틀리히 미술관.

「죽음의 알파벳」(부분) 홀바인, 목판, 각 판 2.54×2.54센티미터, 1525년, 뉴욕시립미술관.

「목가적 풍경」 골치우스, 명암법 목판, 18×25센티미터, 16세기, 암스테르담 릭스 미술관.

「신(神)」 고갱, 목판, 20.6×35.6센티미터, 1891~93년,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미술관.

「입맞춤」 뭉크, 다색 목판, 47×46센티미터, 1902년, 뉴욕현대미술관.

「성(聖) 안토니의 유혹」 숀가우어, 인그레이빙, 31×63센티미터, 1480~90년, 워싱턴D.C.국립화랑.

「해신들의 싸움」 만테나, 인그레이빙, 30×40센티미터, 1493년, 뉴욕시립미술관.

「해신들의 싸움」 뒤러, 펜 드로잉, 29×38센티미터, 1494년, 비엔나 알버티나그래픽스.

「머큐리 행성」 피니구에라, 인그레이빙, 32×22센티미터, 1460~65년, 대영박물관.

「담가대」 골치우스, 인그레이빙, 29×19센티미터, 1587년, 대영박물관.

「기사, 죽음, 악마」 뒤러, 인그레이빙, 25×20센티미터, 1513년, 대영박물관.

「연구하는 성 제롬」 뒤러, 인그레이빙, 25×19센티미터, 1514년, 대영박물관.

「파리스의 심판」 래먼디, 인그레이빙, 30×44센티미터, 1527~34년, 뉴욕시립미술관.

「풍경」 세게르스, 다색 에칭, 12.7×17.8센티미터, 17세기, 대영박물관.

「전쟁의 참상」 중에서 고야, 에칭, 14×19센티미터, 1820년, 뉴욕시립미술관.

「로스 카프리쵸스」 중에서 고야, 에칭과 아쿠아틴트, 1796~98년, 뉴욕시립미술관.

「블랙 라이온의 선창」 휘슬러, 에칭, 15×23센티미터, 1859년, 뉴욕시립미술관.

「폭동」 콜비츠, 에칭과 혼합 매체, 51×59.7센티미터, 1902년, 미네소타 미술관.

「목신과 잠자는 여인」 피카소, 에칭과 아쿠아틴트, 32×16센티미터, 1936년, 뉴욕현대미술관.

「가난한 식사」 피카소, 에칭, 46×37센티미터, 1904년, 뉴욕시립미술관.

「두 경기장의 투우」 고야, 석판, 29×39센티미터, 1825년, 미국의 라틴아메리카협회.

「오달리스크」 앵그르, 석판, 1825년, 뉴욕공립도서관.

「대식가」 도미에, 석판, 1831년, 파리, 국립자료도서관.

「증기선 렉싱턴호의 대화재」 쿠리에, 석판, 1840년, 뉴욕시립미술관.

「절규」 뭉크, 석판, 36×25센티미터, 1893년, 보스턴 미술관.

「풍경과 실내」 빌야르, 석판, 38×28센티미터, 1899년, 뉴욕현대미술관.

「앉아 있는 광대」 로트렉, 다색 판화, 51×41센티미터, 1896년, 뉴욕시립미술관.

「자화상」 콜비츠, 전사 석판, 29×22센티미터, 1934년, 캘리포니아대학교의 구룬발트 판화재단.

「무제」 샤갈, 다색 석판, 37×28센티미터, 1948년, 뉴욕현대미술관.

「옷걸이」 재스퍼 존스, 석판, 91×63센티미터, 1960년, 뉴욕 레오 카스텔리 화랑.

「워싱턴 스퀘어광장」 베로니스, 실크스크린, 1940년 이전, 뉴욕공립도서관.

「자화상」 뒤샹, 청색 종이에 실크스크린, 20×20센티미터, 1959년, 뉴욕현대미술관.

「국기 Ⅰ」 재스퍼 존스, 실크스크린, 69.5×90센티미터, 1973년, 뉴욕 레오 카스텔리 화랑.

「오리온 MC」 바자렐리, 다색 실크스크린, 62×59.6센티미터, 1963년, 작가 소장.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목판, 6.7×620센티미터, 신라 751년, 국립중앙박물관.

「어제비장전」 목판, 52.6×22.7센티미터, 고려 983~996년, 성암고서박물관.

「삼강행실도」 중종 9년(1514), 가람문고.

「나무와 여인들」 박수근, 목판, 43×33센티미터, 1950년대.

「잔디 위에 베개」 황규백, 메조틴트, 33×28센티미터, 1976년.

「작품」 이상욱, 실크스크린, 54.5×75센티미터, 1982년.

「빛 - E79」 하동철, 에칭, 45×43.5센티미터, 1979년.

「출구 없는 방」 김상유, 목판, 각 85×72센티미터, 1970년.

「재즈 속의 말, 기사, 광대」 마티스, 포솨르 기법, 41.2×64센티미터, 1947년, 작가 소장.

「야성의 미풍」 프랑켄탈러, 79×69센티미터, 1974년, 뉴욕의 유니버설 공방.

「목욕 가운」 짐 다인, 13색의 목판과 석판, 91×61센티미터, 1975년, 플로리다 대학교의 그래픽 스튜디오.

「디코이(Decoy)」 재스퍼 존스, 다색 석판, 103×75센티미터, 1971년, 뉴욕의 유니버설 공방.

「떠 있는 전기 플러그」 올덴버그, 에칭과 아쿠아틴트, 106.6×81.9센티미터, 1976년, 뉴욕의 멀티플 공방.

「부스터(Booster)」 라우센버그, 석판과 실크스크린, 183×89센티미터, 1967년, 미네아폴리스의 워커 아트센터.

「입술 2」 조 틸슨, 아세테이트지에 실크스크린, 88×66센티미터, 1967~68년, 런던의 테이트 화랑.

「여인의 흉상」 피카소, 다색 리놀륨판, 64×54센티미터, 1958년, 런던, 피셔 미술재단.

 

 

posted by 황영찬
2013. 10. 16. 17:00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10 시금치 학교

 

서수찬 시집

2007, 삶이 보이는 창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03304

 

811.6

서56시

 

삶의 시선 022

 

등단 17년 만에 선보이는 서수찬의 시집에는 우리네 식민지적 삶의 여건과 그 세월이 쓰라리게 음각되어 있다. 분단 이후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조국의 식민지적 여건은 정작 눈곱만큼도 변하지 않은 채 60여 년 세월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서수찬의 시는 이를 앙다물고 확인한다. '군홧발에 밟힌 채 모질게 땅에 누워서 옆으로 자라는' 대추리 들판의 벼포기처럼, 서수찬의 시는 마비되는 우리의 통증을 생생하게 되새기는 것이다.

서수찬의 이 쓰라린 힘 쓰라린 그리움은 우리 사회의 불감증으로 사각화死角化하는 대추리 도두리의 꿈을 예각화銳角化함으로써, '지금이 어느 시댄데'라며 번번이 우리를 야코죽이는 음흉한 역사 앞에 당당히 맞서고자 한다.

- 정양 시인

 

서수찬의 첫시집에는 법성포 외진 바닷가에서 "일생을 말뚝에 옹골차게 묶고" 살아온 어민들의 바닥난 살림들이 사리포구처럼 밀물져 있고, "풀의 다리를 가지고 있"어 폭격기 날고 화염 자욱한 황새울 들판을 떠날 수 없는 맨손들의 "언제 올지 모르는 희망"이 우물져 있다. 들들 볶이다 일터에서 깨지고 돌아온 시인이 "좁은 문으로 오시게 해 미안"하다며 지하셋방으로 날아든 첫손님, 낙엽 한 장에게 방석을 권하는 마음, 초라하고 신산한 그의 삶을 천천히 보고 앉아 있는 낙엽의 눈길, 고된 이승의 시간 다르고도 닮은 존재들이 어느 찰나에 눈을 맞추며 말없이 위로를 주고받는 것이 삶의 기적이요, "우리가 돌아가야 할 사람의 마을"임을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둥글둥글 모난 데 없이 늘 웃으며 가만가만 나타나 발품팔고 사라지곤 하던 시인의 순박하고 담연한 목소리가, 서까래 튼튼한 지상의 집도 그럴 듯한 시의 집도 세우지 못한 가난한 마음이, 과장도 엄살도 없이 살아가는 이 시대 고된 생명들의 눈물을 오래도록 닦아주고 있었음을 믿어마지 않는다. 시인의 겸허한 노래와 나지막한 위로가 "엄청난 고생 되어도 /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 그런 사람들이 /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 고귀한 인류이고 / 영원한 광명이고 /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말한 김종삼 시인의 욕심 없는 마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 김해자 시인

 

서수찬

1963년 광주 광산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9년 『노동해방문학』에 「접착을 하며」, 「복개공사」, 「안전장치」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soochan041@hanmail.net

 

■ 글차례

 

시인의 말

 

1부

사리포구 / 법성포 / 그리운 이불 / 오징어잡이 / 냉수대 / 말뚝 / 바닷가 식구 많은 집 / 청맹과니의 노래 / 호남행 비둘기호 열차 / 복개공사 / 논둑 편지 / 난지도 / 내 마음의 보물창고 1 / 내 마음의 보물창고 2 / 내 마음의 보물창고 3 / 내 마음의 보물창고 4

 

2부

이사 / 첫손님 / 도배 / 지하 셋방 앞 목련나무 / 옥탑방 / 뻐꾹채 / 토란국 / 구찌터널 / 생각과 생각 사이 / 빈 깡통 / 어떤 상처 / 김포에서 / 국어시간 / 엄마의 주먹에는 외계인이 산다 / 중독 / 연탄

 

3부

이름표 / 따오기 시인 / 티벳의 하늘호수 / 저울 집에서 / 여자의 마음 / 운조루 / 보름달 / 종이쯤이야 / 안산이라는 책 / 안산에는 안산 사람이 안 산다 / 콩알 할머니 / 틈 / 항아리 / 시금치 학교 / 빵모자 / 앉은뱅이 밥상 하나가

 

4부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2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3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4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5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6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7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8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9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0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1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2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3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4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5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6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7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8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9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20

 

해설 만인보萬人譜 시학 맹문재

 

그리운 이불

 

법성포에 오래간만에 돌아온 나를

수천만 번 들여다보았을

물고기 눈동자마저

업신여긴다 싶어 일부러 바닷가 쪽을 피했다

발바닥의 조개껍대기를 닮아 있는

그립던 상처들

살 속 깊이서 아는 체를 한다

얼마나 수혈을 받고 싶었던 땅인가

살 속에서 하나하나 비린내를 건져 내어서

잊어버리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살 속에 닻은 깊이 내려진다는 것을

작아진 고향은 미리

알고 잇었나

한눈에 피보다 진하게 누구네 장남 아닌가

알아봤을 때

몰래 숨어드는 난처함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나도 흔하디흔한 물고기가 아니라

비로소 사람의 이름을 갖네

뒷덜미를 후려쳐서 내쫓아 버릴 것 같던

법성포의 여러 손길들

해당화처럼 살며시 흔들어 주네

밤새 비린내를 이불로 덮어 주는

아버지의 손길이 참 많이 늙어 있었다.

 

오징어잡이

 

우리나라 같은 조명을 켜들고

언제 올지 모르는 희망을 기다리다 보면

그리운 마음의 불빛을 하나 둘 잠들고

어느새 닥친 피로로도

내일이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우리는

무디어진 신경을 모두 바다 속으로 열어 놓았다

믿는 것은 두 다리와 지문이 지워진 두 손뿐이듯

우리가 확실히 들을 수 있는 건

선거공약처럼 날뛰는 상어나

고도성장 같은 고래가

보내오는 신호가 아니라

해초 그늘에 쉬고 있을

어물 행상에 단련된 아내들의 목소리

뚫린 그물에 빠져나가 대처에 몸을 섞는

청년들의 발자국 소리뿐

왜 바닷속을 생각하다 보면

뭍의 일이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일까

작년에 그물에 말려 죽은 칠성이의 어머니가 되어

갈매기는 따라와 통곡을 풀어 놓는데

우리는 진혼곡 한 자락 불러줄 여유도 없다

낚싯줄에 말려 올라오는 아들놈의 공납금과

수협 창고에 쌓여질 부채를 궤짝에 차곡차곡 쟁이며

간신히 피우는 한 대의 담배로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사람의 마을이 너무 벅차다.

 

냉수대

 

섬 그늘에 누워 아버지는

하루 종일 앓았다

아직 떼지 않은 문설주의

입춘대길처럼

언제나 속 시원히 조기떼가 몰려 오려는지

냉수대 낀 속 탄 가슴에

대신 팔팔만 밀려와 미역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구나

속없이 면장은 자가용을 타고 와

덤핑으로 쌓여 있는 팔팔을 거둬다가

오늘같이 기쁜 날

국이나 끓여 먹으라 한다

체력은 국력이여

언제부터 운동이 국시가 되고

며칠째 술로 저런 아버지 뱃속에서

동생들은 학교도 못 가고

굴뚝새처럼 울어쌓는데

저놈의 정치 휴전 같은 냉수대는

언제쯤이나 걷힐는지

우리의 메인 스타디움인 법성포 앞바다에는

멸치 새끼 한 마리

눈에 띄질 않는구나.

 

사리포구

 

핸드폰을 벌리듯 바지락을 벌리면

부재 중 전화번호처럼

시꺼먼 갯벌만 들어 있구나

밧데리 같은 갯벌이 저렇게 망가졌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바지락을 열고 또 열어보네

갯벌도 인간을 닮아 가는가

통화도 되지 않는 바지락 껍데기를

습관처럼 손에 들고 놓질 않네

한시라도 빈 껍데기라도

들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갯벌

어쩌다 철새가 찾아오면

스팸메일처럼 삭제하기 바쁜 포구

잘못 걸려온 전화인 양 어선 몇 척 버려져 있다.

 

말뚝

 

보름째 배를 못 띄웠다

날씨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조황도 예전에 없이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으나

사람도 구하기 힘들고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잡아와도 기름값 빼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농부들이 발째로 썩히면

뉴스에서 잘도 인용해 주는데

우리들은 물속에 다 들어 있어서

우리들의 속처럼 들여다볼 수 없어서

그저 우리는 노인네 몇이 술집에 들어앉아서

소주 나발이나 부는 것이다

대처로 빠져나간 젊은놈들의

거시기 닮은 말뚝에 묶여

배들은 홀쭉한 월급봉투마냥 이리저리 흔들렸다

전국을 뒤집어 놓고 빠져나간 태풍도

젊은놈들 거시기는 빼가지 못했다

진즉에 어항들이 젊은이들에게

말뚝이 되어주지 못했을까

일생을 그 말뚝에 옹골차게 묶고

마음놓고 저 먼 바다까지 나가서

풍랑을 다스리게 하지 못했을까

어항은 노인네마저 놓치겠다 싶어 노인네 가슴에만

매듭을 아주 굵게 매어 놓았다.

 

법성포

 

친구들 굴비 몇 두름으로

대처로 빠져나간 법성포의 하루는

정든 갈매기 울음소리조차 이제 먼 타향인데

그물을 깁던 만선의 손가락들은

선술집의 목포는 항구다의 옷고름만 풀고 있구나

그대들 선비의 빳빳한 갓으로나 살고 있는지

해풍으로 검게 탔던 그리움 한 접시

보내오지 않는구나

부디 추억 속에 건져지는 새우젖쯤으로 생각해두고

걸대에 매달린 가난한 유년시절은 잊어다오

희망을 끌어다 적는 나의 일기 쓰는 버릇은

오늘도 그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고

우리의 스무 살 적 애인인 그물이

세상만큼 구멍이 났는데도 출항을 서둔다

아직 내리지 않은 돛인 그대들

객지에는 몇 미터의 파고가 아는지

작업복 속에는 법성포 앞바다의 물결소리가

싱싱한 조기로 뛰놀지 않는지

그대들이 잠꼬대처럼 두고 간 풍어가는

가짜 굴비 소문에 좌초되고 마는구나

고장난 출항기를 수협 창고에 쌓으며

인간의 따뜻한 사랑을 알리는 새벽은

이런 변두리 포구에서부터 와야 한다는 말

전하고 싶어 부러지는 연필을 들었다.

 

안산에는 안산 사람이 안 산다

 

신흥 공업도시

오아시스의 물 냄새를 맡고

떼 지어 몰려든 곳

밤새 아이를 만들 듯이

빈터마다 집은 지어지고

사람마다 비빌 언덕이 되어

배불러서 부부가 같이 출근하는 곳

비단길은 마음에나 있는 곳

폐수가 된 저수지에

누군가 낚시를 하고

기형의 희망만 간판이 되는 곳

하루 종일 기다려도

낙타는 두세 번 지나칠 뿐

한 번 출애굽한 서울 땅을 못 잊어

주말이면 텅 비어 가득 차는 곳

식솔을 거느리고

협궤의 구멍만 깊어지는

이사가 끊이지 않는 곳

살아가기보다

그냥 살아지는 곳.

 

종이쯤이야

 

종이를 얕잡아 보다

손가락을 베였다

고정관념은 굳은살처럼 보였지만

피를 흘렸다

우리 머릿속에

무시해도 좋고

얕잡아 보아도 꺼릴 것이 없는

종이쯤이야 하는 생각

모기 같기도 하고

하루살이 같기도 하고

멸치 같기도 한

그런 생각

지갑에 지폐처럼 잘 들어 있다가

무의식중에 툭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노숙자를 바라보거나

걸인 앞을 지날 때

나보다 못한 사람이

불쑥 찾아와 손을 벌릴 때

다 지나간 일이었지만

거기서

피가 흘렀다.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3

-조선례 할머니

 

수많은 농작물을 심어 봤지만

수많은 한숨을

고랑마다 심어 봤지만

쓰러진 벼들을 보며

우리도 함께 쉽게

무너지기도 참 많이 했다만

나라가 하는 일이라면

눈 한번 크게 안 뜨고

황소처럼 그저 일만 했다만

쌀 미(米) 자 같은 여든여덟 살을 먹고 본께

촛불 농사도

지어 보는구나

이게 이 생애 마지막 농사라 생각한께

지금까지 지은 어느 농사보다

애착이 가고

우리들 목숨이 불타고 있다고 생각한께

모진 바람 불어 꺼질세라

내 속에 있는 한을

꺼내서 다 태우고 갈랍니다

이 촛불 농사는

나 살아생전 추수할지 모르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 마지막까지도

지어야 합니다

두고두고 나라를 살리는 일인께로

생애 마지막 두 눈 한번 부릅떠 볼랍니다.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4

-정태화 할아버지

 

농사가

노인네들에게는

효자이고 보약이지요

군인들이 논을 점거하고 있어서

그쪽만 쳐다봐도

삭신이 와그르 무너져 내리다가도

어디 텃밭에다가

고추 모종이나 아주 작은 곡물을 심으려고

몸을 움직이면

온갖 어긋난 뼈들이 노래가 되네요

온 마을이 조그만 텃밭으로 다 모이네요

경로잔치를 벌여 주네요

오늘은 담배 가게 옆

텃밭이 효자가 되네요

어깨도 주물러 주고

허리도 자근자근 밟아주고

고랑 고랑마다 씨앗이 뿌려질 때마다

온몸들이 바로 펴지네요

담배 사러 갈 때마다

너무 작아서 성에도 안 찬 텃밭이었는데

노인네들 빽빽이 앉아서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네요

우리 노인들 몸에 어느새 살맛이

새싹으로 돋아나네요.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4

-김지태 이장

 

보미싼원

홍농계

황새울…

너희들에게는

휴지 조각 같은 이름인 줄 모르겠지만

그 이름에서

폭격기가 날아간다고 생각하니

꿈에서라도 치가 떨린다

보미싼원이 날아가

아시아 어느 국가를 때리고

홍농계가 날아가

아랍 국가 어디를 때리고

황새울이 날아가

동족의 심장을 때린다고 생각하니

우리가 고작

우리 마음에서

폭격기를 띄우려고

맨손으로 들판을 만들었던가

우리는 맨손으로 들판을 만들었듯

우리의 자랑스런 이름들을

폭격기로 내줄 수 없다

너희의 자랑스런 최첨단 무기조차도

개간해서

곡식을 꼭 심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런 맨손이 있다.

 

시금치 학교

 

어머니는 시금치 밭에 늘

앉아 계시는 거로 우리 형제들을 가르쳤습니다

시금치라는 것이 먹어 보면

아무 맛도 안 납니다

그러나 김밥에라도

한번 빠져 보세요

소시지 계란 등이 들어 있다 치더라도

김밥 맛이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김밥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에다가

자식들이 그렇게 되길 바랐나 봅니다

우격다짐으로 배운 게 우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어머니는 시금치 밭에

노상 앉아만 계셨어요

어머니의 수업은 파란 시금치 밭

여기저기서 바람들과 천진난만하게 노는

시금치 잎사귀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지만

밭 가생이에 잔돌 탑을

수북하게 쌓아 놓는 것만 봐도

어머니가 매일 반복하는 수업이더라도

얼마나 정성들여 준비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어머니가 교과서에 골고루 밑줄 쳐

놓았듯이 우리 형제들은 골고루 그

밑줄을 읽고 자랐습니다

밑줄에서 남을 억누르지 않는 몸가빔이

시금치처럼 올라옵니다

다들 오셔서 먹을 만큼씩만 뜯어 가세요.

 

posted by 황영찬
2013. 10. 10. 08:53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09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유고시집, 김덕용 그림

2008, 마로니에북스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22467

 

811.6

박14ㅂ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본문 <옛날의 그 집> 중에서

 

산다는 것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옛날의 그 집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횡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홍합

 

통영 항구의 동춘 끝을 지나고

해명 나루 지나고

작은 통통배

용화산 뒤편을 휘돌아 가니

첫개라는 어촌이 있었다

인가가 몇 채나 되는지 희미해진 기억

푸른 보석 같은 물빛만은

지금도 눈에 어린다

 

친지 집에서는 내가 왔다고

큰 가마솥 그득히 홍합을 삶아 내어

둘러앉아서 까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던 홍합

그때처럼 맛있는 홍합은

이후 먹어 본 적이 없다

 

내 나이 열두 살이나 되었을까?

어린 손님은

큰집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잠은 작은집에서 잤는데

아제씨는 여장에 가고 없었다

호리낭창한 미인 형의 아지매는

병색이 짙어 보였다

 

한밤중에

갑자기 두런거리는 소리가 났다

집 안에 불이 밝혀지고

발자욱 소리도 들려왔다

덩달아 파도 소리도 들려왔다

알고 보니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것

 

날이 밝고 보다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폐결핵인 아지매의 약으로

고양이 새끼의 탯줄이 필요했고

아지매는 고양이를 달래고 달래어

탯줄을 얻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이냐고도 했다

 

첫개라는 어촌의 하룻밤

홍합과 아지매와 고양이

얼마 후 나는

아제씨가 상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느질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짜투리 시간

특히 잠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 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천성

 

남이 싫어하는 짓을 나는 안했다

결벽증,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내가 싫은 일도 나는 하지 않았다

못된 오만과 이기심이었을 것이다

 

나를 반기지 않는 친척이나 친구 집에는

발걸음을 끊었다

자식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싫은 일에 대한 병적인 거부는

의지보다 감정이 강하여 어쩔 수 없었다

이 경우 자식들은 예외였다

 

그와 같은 연고로

사람 관계가 어려웠고 살기가 힘들었다

 

만약에 내가

천성을 바꾸어

남이 싫어하는 짓도 하고

내가 싫은 일도 하고

그랫으면 살기가 좀 편안했을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삶은 훨씬 더 고달팠을 것이며

지레 지쳐서 명줄이 줄었을 것이다

 

이제 내 인생은 거의 다 가고

감정의 탄력도 느슨해져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무덤덤하며

가진 것이 많다 하기는 어려우나

빚진 것도 빚 받은 것도 없어 홀가분하고

외로움에도 이력이 나서 견딜 만하다

 

그러나 내 삶이

내 탓만은 아닌 것을 나는 안다

어쩌다가 글 쓰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고

고도와도 같고 암실과도 같은 공간

그곳이 길이 되어 주었고

스승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나를 지켜 주었다

 

한 가지 변명을 한다면

공개적으로 내지른 싫은 소리 쓴 소리,

그거야 글쎄

내 개인적인 일이 아니지 않은가

우주 만상 속의 당신

 

내 영혼이

의지할 곳 없어 항간을 떠돌고 있을 때

당신께서는

산간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뱀처럼 배를 깔고 갈밭을 헤맬 때

당신께서는

산마루 헐벗은 바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생사를 넘나드는 미친 바람 속을

질주하며 울부짖었을 때

당신께서는 여전히

풀숲 들꽃 옆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진작에 내가 갓어야 했습니다

당신 곁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찔레덩쿨을 헤치고

피 흐르는 맨발로라도

 

백발이 되어

이제 겨우 겨우 당도하니

당신은 아니 먼 곳에 계십니다

절절히 당신을 바라보면서도

아직

한 발은 사파에 묻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어머니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 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 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희한

불효막심의 형벌로서

이렇게 나를 놓아주지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가을

 

방이 아무도 없는 사거리 같다

뭣이 어떻게 삐져나간 걸까

솜털같이 노니는 문살의 햇빛

 

조약돌 타고 흐르는 물소리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그러고 있다

세월 밖으로 내가 쫓겨난 걸까

 

창밖의 저만큼 보인다

칡넝쿨이 붕대같이 감아 올라간 나무 한 그루

같이 살자는 건지 숨통을 막자는 건지

 

사방에서 숭숭 바람이 스며든다

낙엽을 말아 올리는 스산한 거리

담뱃불 끄고 일어선 사내가 떠나간다

 

막바지의 몸부림인가

이별의 포한인가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하는

 

원죄로 인한 결실이여

아아 가을은 풍요로우면서도

참혹한 계절이다 이별의 계절이다

 

까치설

 

섣달그믐 날, 어제도 그러했지만

오늘 정월 초하루 아침에도

회촌 골짜기는 너무 조용하다

까치는 모두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없다

푸짐한 설음식 냄새 따라

아랫마을로 출타중인가

 

차례를 지내거나 고사를 하고 나면

터줏대감인지 거릿귀신인지

여하튼 그들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골고루 채판에 담아서

마당이나 담장 위에 내놓던

풍습을 보며 나는 자랐다

 

까치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음식 내놓을 마당도 없는 아파트 천지

문이란 문은 굳게 닫아 놨고

어디서 뭘 얻어먹겠다고

까치설이 아직 잇기나 한가

 

산야와 논두렁 밭두렁 거리마다

빈 병 쇠붙이 하나 종이 한 조각

찾아볼 수 없었고

어쩌다가 곡식 한 알갱이 떨어져 있으면

그것은 새들의 차지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목이 메이게 척박했던 시절

그래도 나누어 먹고 살았는데

 

음식이 썩어 나고

음식 쓰레기가 연간 수천 억이라지만

비닐에 꽁꽁 싸이고 또 땅에 묻히고

배고픈 새들 짐승들

그림의 떡, 그림의 떡이라

아아 풍요로움의 비정함이여

정월 초하루

회촌 골짜기는 너무 조용하다

 

 

장마 그친 뒤

또랑의 물 흐르는 소리 가늘어지고

달은 소나무 사이에 걸려 있는데

어쩌자고 풀벌레는 저리 울어 쌓는가

저승으로 간 넋들을 불러내노라

쉬지 않고 구슬피 울어 쌓는가

 

그도 생명을 받았으니 우는 것일 게다

짝을 부르노라 울고

새끼들 안부 묻노라 울고

병들어서 괴로워하며 울고

배가 고파서 울고

죽음의 예감, 못다한 한 때문에 울고

다 넋이 있어서 우는 것일 게다

울고 있기에 넋이 있는 것일 게다

 

사람아 사람아

제일 큰 은총 받고도

가장 죄가 많은 사람아

소녀시절 박경리의 모습(왼쪽)

진주여고 졸업반이던 1944년 기숙사 연극 발표회에 참여한 박경리.(사진 왼쪽 끝)

사진을 제공한 박산매 시인은 "연극 대본도 직접 쓸 만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졸업을 앞두고 친구인 박산매 시인에게 "졸업해도 서로 잊지 말자"며 노트에 그려준 그림.

그림의 주인공은 상상의 인물로, 여고생 박경리의 소녀적 감성을 엿보게 한다.

서른두 살 때 모습

옛날의 그 집(현 원주 토지문화공원)

토지문화관과 자택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