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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3 조선의 선비들, 인문학을 말하다

 

 

 

김봉규 글 · 사진 | 홍종남 기획

2013, 행복한미래

 

대야도서관

SB089977

 

911.05

김45ㅈ

 

한국 역사 인물을 통해 본 인문학 공부법

 

한국사를 바꾼 인물 No. 07

 

불천위 인물 51人 조

 

김봉· 사진

 

김봉규 님은 1959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났습니다. 경북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삼성생명, 한국조폐공사 등을 거쳐 1990년 영남일보에 입사했습니다. 영남일보에 입사한 후 24년 동안 언론인의 길을 걷고 있으며, 영남일보에서는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등 편집국 기자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어 문화부장과 체육부장을 거쳐 현재 논설위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인문학에 관심이 많으며, 한국의 '혼'과 한국의 '문화'에 대한 글을 주로 써 왔습니다. 『조선의 선비들, 인문학을 말하다』는 한국사의 인물을 통한 인문학 공부법을 제시한 책입니다.

그동안 집필한 저서에는 『불맥佛脈, 한국의 선사들』, 『마음이 한가해지는 미술산책』, 『길따라 숲찾아』,『머리카락 짚신』, 『한국의 혼, 누정』등이 있습니다.

 

홍종남 기획

 

【한국사를 바꾼 인물】 시리즈는 한국의 역사 인물을 재조명하는 책입니다. 한국의 역사 인물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이순신'을 만났고, 그 과정에서 『이순신 파워인맥』,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 『이순신 백의종군』, 『이순신의조일전쟁』, 『조선의 프로젝트 매니저 이순신을 만나다』 등의 책을 기획하였습니다. 앞으로 【한국사를 바꾼 인물】 시리즈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 도서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선비士 ;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에 대한 호칭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문학人文學 ;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는 학문 분야

(출처 : 『두산백과』)

 

불천위不遷位란?

 

국가와 유림이 영원히 기릴 만하다고 인정한 훌륭한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 보통 제사를 지낼 때 4대까지 모시는데, 4대 봉사奉祀가 끝난 뒤에도 없애지 않고 계속 제사를 지내며 기리는 신위神位의 주인공을 뜻한다.

 

차례

 

│프롤로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불천위'

 

1부. 학문學은 왜 하는가?

 
01. 조선 시대 사대부 지식인의 주류 사상을 만들다  |김종직|
02.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며 《소학》의 가르침을 강조한 선비  |김굉필|
03. 벼슬과 출세보다 선비의 복된 삶을 실천하다  |이현보|
04. 벼슬하는 아들이 보낸 감 한 접 돌려보낸, 청렴한 삶  |이   황|
05. 정파에 휘둘리지 않은 재상, 임금도 그에게 의지했다  |노수신|
06. 정치와 학문을 접목시킨 조선 후기 대표적 학자 관료  |이원조|
07. 인재를 알아보는 특출한 혜안, 이순신을 지켜내다  |류성룡|
08. 벼슬보다 학문, 퇴계 학맥 이은 영남 유림의 거목  |류치명|
09. 평생 후학 양성하며 성리학을 꽃피운 '작은 퇴계'  |이상정|
10.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양대 석학의 가르침을 받아 학자의 길을 가다  |오   운|
스페셜 페이지  불천위란?



2부. 정의義를 위해서는 목숨도 돌보지 않는 선비정신

 
11. 선비의 '절의'가 무엇인지 제시하다  |권   벌|
12. 뛰어난 학문과 인품, 청나라 대신도 탄복하다  |이원정|
13. 임금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은 '대궐 안 호랑이' |김성일|
14.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강직한 삶, 선비의 사표가 되다  |김일손|
15. 천하의 임금에게도 정론을 이야기한 '신하의 정석' |정경세|
16. 대의명분을 위해 목숨도 돌보지 않는 선비의 삶을 살다  |조덕린|
17. 이순신의 인품과 능력을 알아본 선비, 그의 목숨을 구하다  |정   탁|
18. 죽음과 바꾼 불사이군의 절개, '신하의 길'을 보여 주다  |하위지|
19. 죽음을 무릅쓴 선비의 도,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가다  |이   해|
20. 탁월한 언변과 문장력, 대명 외교의 달인되다  |황여일|
스페셜페이지  불천위 문화의 핵심 '불천위 제사'


3부. 백성民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다

 
21. 녹봉까지 털어 가난한 백성을 구휼한 공직자의 자세  |김양진|
22. 권세가를 찾아가지 않고, 사사롭게 공무를 처리하지 않은 관리의 길  |류중영|
23. 조선 시대판 행동하는 지식인, 실사구시의 전형을 보여 주다  |최흥원|
24. 청렴과 결백의 삶, '선비의 정석' 보여 주다  |김계행|
25. 조선의 청백리, 21세기의 복지를 제시하다  |조   정|
26. "공무를 수행하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자신보다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다  |배삼익|
27. 백성의 삶을 알고 선비의 도리를 지킨 지식인의 전형을 보이다  |김응조|
28. 암행어사 이몽룡의 실제 인물, 애민의 삶을 살다  |성이성|
29. 360년간 후세의 물 걱정을 덜게 한 정책을 실천하다  |신지제|
30. 문무를 겸비한 선량한 관리로 역사에 기록되다  |이   정|
스페셜페이지  불천위 제사 참관기



4부. 나라國와 가족을 먼저 생각하다

31. 일흔 살에 전쟁터에 나가 전사한, 조선 무신의 정석  |최진립|
32. 문무를 겸비한 선비, 반란 평정으로 공신에 오르다  |손   소|
33. 부친과 함께 의병 활동에 참가한 선비, 효孝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다  |남경훈|
34. 부하를 혈육처럼 사랑한 무장, 선정의 모범을 보여 주다  |박의장|
35. 효제충신의 삶, 지식인의 실천 덕목을 제시하다  |송희규|
36. 문무를 함께 갖춘 충신, 격문과 대화로 적을 물리치다  |장말손|
37. 깨끗한 벼슬 생활로 조선 시대 청백리의 교과서  |곽안방|
38. 책과 함께 한 선비, 임진왜란 일어나자 의병 일으켜  |정세아|
39. 인사권자도 어찌할 수 없었던 인재 등용의 원칙을 보여 주다  |이동표|
40. 각별한 충효의 실천, 당대 '선비의 귀감'이 되다  |변중일|
스페셜페이지  시호, 그것이 알고 싶다 : 사대부가 최고의 '사후 명함'



5부. 무엇을 하든 마음心 공부가 중요하다


41.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한 '벼슬하지 않은 선비'  |권   구|
42.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 저술  |권문해|
43. '조선 시대의 갈릴레이', 천문학을 꽃피우다  |김   담|
44. 38년 서울 벼슬 생활 동안 셋방을 전전한 청빈의 삶  |박승임|
45. 조선 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살다  |최항경|
46. 학문 불모지 관서 지방에 학문을 일으켜 후진을 양성한 '초야의 현인'  |조호익|
47. 군자의 학문 외길 걸은 '선비의 정석'  |장흥효|
48. 자녀 교육을 위해 벼슬길을 접은 선비, 죽어서 판서가 되다  |김   진|
49. 의義가 아니면 벼슬도 초개처럼 버린다  |김   령|
50. 큰 뜻을 펼치려 한 그 선비, 은거한 까닭은  |이시명|
51. 조선 성리학의 선구자, 독자적인 조선의 학문을 정립하다  |이언적|
스페셜페이지  불천위의 신주와 감실 이야기

│에필로그│ 다시 주목해야 할 불천위종가 문화

 

|1부|

학문學은

하는가?

 

01 조선 시대 사대부 지식인의

   주류 사상을 만들다

 

김 종 직

 

조선시대 사대부 지식인의 주류 사상을 만들다 : 김종직(점필재종택)

 

'아내가 금산에서 돌아오다[室人自金山還]'

- 김종직(1475년 1월)

 

그대는 완산의 새[각주:1]2를 배워서 [我學東門氏]
지난해의 근심을 조금 잊었다네 [稍忘前歲憂]
밤이 깊도록 촛불 밝히고 얘기한 것이 [夜闌秉燭語]
절반은 먹고 사는 걱정이었거늘 [半是營生謨]
인간사 장차 어떠할까 [人事且如何]
백년이 참으로 길기만 하구나 [百世眞悠悠]

 

각주 1 완산조完山鳥 : 새끼를 잃고 슬피 우는 어미 새 이야기로 공자가어에 나온다

각주 2 동문오東門吳 : 춘추 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자식이 죽었는 데도 슬퍼하지 않았던 인물

 

점필재가 사용하던 옥벼루 '필옹옥우畢翁玉友'. 성종의 하사품이라고 한다.

점필재종택(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 전경. 사당은 오른쪽 건물로 대부분의 종택처럼 종택 본채 오른쪽 뒤에 자리 잡고 있다. 사당에는 중앙에 불천위 신주가, 좌우에는 종손 4대조 신주가 봉안돼 있다.

점필재 흉상(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점필재가 태어나고 별세한 곳인 추원재追遠齎 앞 정원에 자리하고 있다. 이 뒷산에 점필재 묘소가 있다.

 

02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며

《소학》의 가르침을 강조한 선비

 

김 굉 필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며 《소학》의 가르침을 강조한 선비 : 김굉필(도동서원 전경)

 

움직이거나 머물고 있을 때 항상 평상심을 갖도록 하라 [動靜有常], 항상 마음을 바로 해서 착한 본성을 따르라 [正心率性], 갓을 바로 쓰고 꿇어앉아라 [正冠危坐], 신선이 되고자 하는 도교와 부처가 되려는 불교를 깊이 배척하라 [深斥仙佛], 옛 버릇을 철저히 없애라 [痛絶舊習], 욕심을 막고 분함을 참아라 [窒欲懲忿], 하늘의 뜻을 알고 어짐에 힘쓰도록 하라 [知命敦仁], 가난에 만족하며 분수를 지켜라 [安貧守分], 사치를 버리고 검소함을 따르라 [去奢從儉], 날마다 새로워지는 공부를 하라 [日新工夫], 책을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도록 하라 [讀書窮理], 말을 함부로 하지마라 [不妄語],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두 갈래로 하지 마라 [主一不二], 잘 생각하고 게으르지 말고 항상 부지런하라 [克念克勤], 말을 아끼고 말의 의미를 깊이 새기도록 하라 [知言], 일의 기미를 알도록 하라 [知幾], 마지막을 시작할 때처럼 조심하라 [愼終如始], 공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성실함이 있으라 [持敬存誠]

- 한빙계(寒氷戒) : 가난하고 얼음처럼 찬 이성으로 지켜야 할 계율

 

김굉필의 불천위 신주를 모시고 있는 한훤당종택의 사당(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지리). 다른 대부분의 종택 사당과는 달리 단청이 칠해져 있다.

한훤당종택(대구시 현풍면 지리). 6 · 25 전쟁 때 사당을 제외한 다른 건물은 대부분 불타버려 새로 지었다.

사당 안에 있는 신주를 넣어 두는 감실. 나라에서 만들어 내려준 감실은 2005년경 도난을 당하고, 지금의 것은 그 모양을 본떠 새로 만든 것이다.

 

03 벼슬과 출세보다 선비의 복된

삶을 실천하다

 

이 현 보

 

벼슬과 출세보다 선비의 복된 삶을 실천하다 : 이현보(농암종택 긍구당)

 

사신史臣은 논한다. 이현보는 일찍이 늙은 어버이를 위해 외직을 요청해 여덟 고을을 다스렸는데 모든 곳에서 명성과 치적이 있었다. (중종실록)

 

경상도관찰사 김당이 아뢰기를 "…(중략)… 신이 이 고을(성주)을 살피러 가니, 고을 사람들이 길을 막고 이현보를 유임시켜주도록 지성스럽게 청했습니다." (중종실록)

 

충주목사에 임명됐다. …(중략)… 번거롭고 가혹한 세금을 개선했다. 잘 다스려 백성들이 기뻐했고, 이곳(충주)을 떠나던 날, 쫓아와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길을 메웠다. (퇴계의 <농암 행장>)

 

이현보는 영달을 좋아하지 않고, 자주 부모를 위해 외직을 구했다. 드디어 부모가 별세하자 직위가 2품이고 건강도 좋았지만, 조정을 떠나기를 여러 차례 간청해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식자들은 그에게 만족을 아는 지족지지知足之志의 식견이 있다고 했다. (중종실록)

 

아아! 선생의 선생다운 바는 학문과 현달이 아니고, 벼슬과 나이가 많다는 것도 아니다. 오직 정계를 자진해서 은퇴한 것이라 하겠다. 대개 유사 이래 벼슬한 사람이 용퇴한 경우로는 한나라 소광疏廣 · 소수疏受와 당나라 양거원楊巨源 외에는 다시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이 수천 년을 내려왔는데, 유독 농암 선생께서 쇠퇴한 풍속 가운데서 분연히 일어나 소광 · 소수 · 양거원의 자취를 이어 용퇴한 것이다. 회재 · 충재께서 전송 대열에 서고, 모재 · 퇴계께서 시를 지어 작별했으니, 소광 · 소수가 떠날 때의 100량 수레가 줄을 이은 영광에 비유하겠는가.

은퇴의 기쁨을 도연명의 '귀거래'ㅇ[ 비유하고, 그의 '귀거래사'를 본떠 지음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말뿐이오 간 사람 없어

전원이 황폐하니 아니 가고 어쩔 꼬

초당에 청풍명월이 나며 들며 기다리나니

- '효빈가', 이현보가 은퇴의 기쁨을 도연명의 '귀거래'ㅇ[ 비유하고, 그의 '귀거래사'를 본떠 지음

 

경상도관찰사 시절(1537년)의 농암 초상화. 보물 제872호. 대구 동화사 화승畵僧 옥준이 그린 것으로 전한다.

이현보가 46세 때인 1512년 고향집 옆 농암 바위 위에 지어 어버이를 즐겁게 해드린 정자 애일당愛日堂. 애일당의 '애일'은 '부모가 살아계신 나날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의미다.

이현보의 효행과 경로 정신을 기려 선조 임금이 이현보의 아들(매암 이숙량)에게 내린 휘호인 '적선積善'.

 

04 벼슬하는 아들이 보낸 감 한 접

   돌려보낸, 청렴한 삶

 

이 황

 

벼슬하는 아들이 보낸 감 한 접 돌려보낸, 청렴한 삶 : 이황(퇴계 묘소)

 

선생의 학문은 명백하고 쉽다. 선생의 도는 광명정대하다. 선생의 덕은 온화한 바람이요, 경사스러울 때 이는 서운瑞雲이다. 선생의 글은 의복이며 음식이다. 선생의 마음과 도량은 가을 하늘 밝은 달이며, 탁 틔어 보이는 얼음 유리 항아리다. 선생의 기상은 순결해 아름답게 갈고 닦은 금과 옥이다. 산악처럼 무겁고 소와 샘처럼 깊고 고요하다. 바라보면 안다. 선생이 성덕군자가 되었음을…….

 

경의 나이 비록 일흔이나 다른 사람과 같지 않기 때문에 허락하지 아니하노라. 그 관직을 교체하지 않는 것은 경의 어진 덕을 생각해 우선 갈망하는 것을 들어준 것이지 사면하고 물러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정으로 돌아오는 날을 내가 날마다 바라니, 역마를 타고 올라와서 나의 바람에 부응하기 바란다.

- 선조 유지(1570년)

 

네가 어버이를 봉양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여러 가지 물건을 보내왔구나. 그러나 이러한 물건들은 한 고을을 다스리는 네가 사적으로 어버이에게 보내서는 안되는 매우 부적절한 것들이다. 나는 처음부터 너의 고을에 번거로움을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데, 네가 이처럼 물건을 보내오면 내 마음이 어떠하겠느냐. …(중략)… 나의 뜻을 자세히 살펴주기 바란다.

- 벼슬하는 아들이 집으로 물건을 보내오자 이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략)… 벼슬을 하고 있으면 많이 접근해 오므로 다른 때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 평범한 재주의 네가 쇠잔한 고을을 맡아 공사의 일을 양쪽 다 능히 해낼 수 있을까. 이것이 내가 깊이 근심하는 일이다. 그런데 관물官物을 인정 쓰는 데 다 써버린다는 것은 국가에 죄를 짓는 일이다. 봉화에서 보낸 물건은 누가 갖다준 것이더냐? 이번에 보낸 감 한 접은 되돌려보내니 관에서 쓸 곳에 충당해라.

- 1570년 아들이 봉화에서 감 한 접을 보내오자 퇴계는 편지와 함께 감을 돌려보냈다.

 

모든 일에 삼가고 조심해라.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일은 저지르지 마라. 관리의 마음은 지극히 맑아야 하고,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부정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 항상 조심하고 경계하라.

- 이 황

 

부부는 남녀가 처음 만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이룬다. 또 한편 가장 바르게 해야 하고, 가장 조심해야 하는 처지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의 도가 부부에서 발단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은 모두 예와 존경함을 잊어버리고 서로 버릇없이 친하여, 마침내 모욕하고 거만하며 인격을 멸시해버린다. 이러한 일은 서로 손님처럼 공경하지 않은 때문이다.

- 손자가 장가를 갔을 때 보낸 편지

 

퇴계의 묘소 앞에 있는 비석. 퇴계의 유언대로 앞면에는 '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 : 늘그막에 도산으로 물러나 은거한 진성이공의 묘)라고 새겨져 있다.

 

퇴계가 남긴 유훈

 

첫째, 나라에서 베풀어 주는 장례는 사양하라.

둘째, 기름과 꿀로 만드는 과자를 쓰지 마라.

셋째, 비석을 세우지 마라.

넷째, 비문을 기고봉(기대승)한테 쓰게 하지 마라.

다섯째, 모든 예법은 현재에 마땅하게 하면서 옛날에서 멀게 하지 마라.

 

퇴계 불천위 신주가 들어 있는 감실의 모습.

 

05 정파에 휘둘리지 않은 재상,

임금도 그에게 의지했다

 

노 수 신

 

정파에 휘둘리지 않은 재상, 임금도 그에게 의지했다 : 노수신(봉산서원)

 

종묘사직宗廟社稷을 지키는 데는 태산 같은 공적이 있고, 임금을 섬기는 데는 숨김 없이 극진하였으며, 백성을 위해서는 올바른 제도를 실시했다. 효심은 지극했으며 학문이 깊고 문장은 뛰어났다.

- 1694년, 숙종이 소재穌齎 노수신(1515~1590년)에게 시호 '문간文簡'을 내리면서 보낸 사제문賜祭文에 담긴 내용

 

누가 기생을 보내 날 부르는가

나는 이런 것 즐기러 여기 온 게 아닌데

조각배 저어 돌아가야 할 시간 늦었구나

아름다운 산수가 세상 밖 그림이네

- 친구들과 함께 동호東湖로 나가 산보하던 중 호당학사湖堂學士가 기녀를 보내 노수신을 불렀을 때 거절으 뜻을 담은 시

 

그대가 이 붓을 주었으니

그대로 인해 내 글이 능해지리라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훗날 청운의 꿈을 펼치리

- 6세 때(1520년) 어떤 이가 붓을 선물로 주자 지었다는 시

 

내가 이 섬에 들어온 후부터                                …(중략)…

이 글을 몇 번이나 썼던가                                   작은 전복 열 개나 익었고

한 번 쓰면 백혼이 끊어지니                                큰 숭어 세 마리는 포 떠 두었지

혼이 있은들 얼마나 남았으랴                              제주 감귤도 열여섯 개

지금 이미 15년이나 되는데                                 김이며 아홉 단 나물들

…(중략)…                                                         어찌 하루아침에 갑자기 구했을까

오늘 새벽 인편을 만나                                        여러 날에 걸쳐 서서히 모아두었네

모아두었던 것 모두 꺼냈네

- 노수신이 진도 유배시절, 어버이에게 음식물을 챙겨 보낸 후 지은 시

 

 

 

 

 

노수신이 세운 그의 조부 노후盧珝와 부친 노홍盧鴻의 신도비神道碑. 비문 글씨는 상주시 화북면 소곡리에 있었으나 1992년에 옮겨 지금은 소재종택(상주시 화서면 사산리) 뒤에 있다.

소재종택 사당인 도정사道正祠.

 

06 정치와 학문을 접목시킨 조선 후기

   대표적 학자 관료

 

이 원 조

 

정치와 학문을 접목시킨 조선 후기 대표적 학자 관료 : 이뤈조(만산일폭루)

 

기호학자는 주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을 일삼아 오류가 없을 수 없고, 영남학자는 오로지 답습하는데 치중하기에 전혀 참신함이 없다. 답습하기만 하여 실제로 깨닫는 바가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오류가 있더라도 스스로 터득해 깨달음이 있는 것이 좋다. 언뜻 보면 길을 따라가며 한결같이 정자·주자의 전통을 따르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공허한 말일 따름이니, 남에게 베풀어도 증세에 따라 처방하는 이익이 없고 스스로 간직해도 심신으로 체험하는 효과가 없다.

- 이원조

 

학문의 길은 선과 악을 분별하여 착실하게 선을 실천하는 것일 뿐이다. 선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더 큰 지혜가 없고, 선을 지켜 나가는 것보다 더 큰 어짊이 없으며, 선을 실천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없다. 그러므로 천하만사는 선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 이원조

 

응와종택 사랑채인 사미당. 이 사미당 마루에 불천위 제사상이 차려진다.

 

오늘날 나라 일을 맡은 자들은 오직 눈앞의 일만 처리하며 구차하게 세월 보내기를 계책으로 삼고 있다. 사사로움을 좇아 일을 처리하면서 '부득이하다不得已'라고 하고, 고치기 어려운 폐단이 잇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無奈何'하니, '부득이' '무내하' 이 여섯 자야말로 나라를 망치는 말이다. 요즘 같이 기강이 해이해진 시기에 정령을 시행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바가 없지 않지만, 위에 있는 자들이 만약 과감한 뜻으로 쇄신해 백관들을 독려한다면 천하에 어찌 끝내 고치지 못할 폐단이 있을 것이며, 어찌 참으로 부득이한 일이 있겠는가. 예를 들어 과거장에서 불법이 자행되는 폐단이 '부득이', '무내하'가 특히 심한 경우이지만, 이를 막으라는 어명이 내려질 때는 분명 실효가 있어 급제자 명단이 발표되기만 하면 사람들이 모두 공정하다고 생각하니, 이로 미루어보면 폐단을 고치고 바꾸기가 어렵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까닭은 매번 규범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견고하지 못하고 법의 시행이 엄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한 것은 오로지 수령의 탐학으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탐학이 수령의 죄만은 아니다. 재상이 사치하는 까닭에 수령에게 뇌물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고, 수령은 재상의 요구 때문에 백성을 찾취하지 않을 수 없다. 일 년에 한 번 하던 문안 인사가 계절마다 하는 문안으로 바뀌고, 계절 문안은 매월 문안으로 바뀌었다. 옛날에는 음식이나 의복으로 하던 문안이 지금은 순전히 돈으로 변해 약값이라는 명목을 삼는데, 많으면 1천 냥이요 적어도 1백 냥을 내려가지 않는다. …(중략)… 뇌물을 받는 재상부터 먼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사치한 세태를 혁파해 질박하고 검소한 풍속으로 되돌리는 발본색원의 방법이 될 것이다.

- 이원조

 

사료명을 짓고 난 이듬해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읽었다. 깊고도 그윽한 맛이 있었다. …(중략)… 평생 동안 이 경지를 추구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병이 심해져 전념해 읽을 수 없게 되자 손가는 대로 《당송팔가문》을 한 권 잡고 한가하게 읽어 내려갔다. 처음에는 송구스런 마음으로 놀라울 따름이었는데, 읽어 내려가는 도중에 달콤히 취했다가 끝내는 황황히 추구하여 얻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전에 무슨 책을 읽었는지조차 잊어버렸으니, 어물전에 오래 있다가 비린내를 느끼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중략)… 오호라 반성하리로다.

- 이원조

 

응와 불천위 제사는 신주와 함께 응와 이원조의 초상을 모셔놓고 지낸다.

 

07 인재를 알아보는 특출한 혜안,

이순신을 지켜내다

 

류 성 룡

 

인재를 알아보는 특출한 혜안, 이순신을 지켜내다 : 류성룡(충효당)

 

조선 전역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군량 운반에 지친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힘이 있는 자들은 모두 도적이 되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하여 살아남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잡아먹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죽이는 지경에 이르러 길가에는 죽은 사람들의 뼈가 잡초처럼 흩어져 있었다.

- 《징비록》

 

나도 명나라 군사들과 함께 들어갔는데, 성 안의 백성들은 백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살아있는 사람조차 모두 굶주리고 병들어 있어 얼굴빛이 귀신 같았다. 날씨마저 더워서 성 안이 죽은 사람과 말이 썩는 냄새로 가득했는데, 코를 막지 않고는 한 걸음도 떼기가 힘들었다. 건물은 관청과 개인 집을 막론하고 모두 없어져버렸고, 왜적들이 거처하던 숭례문에서 남산 밑에 이르는 지역만 조금 남아 있었다. 종묘와 대궐, 종루 등 대로 서쪽에 자리 잡은 모든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재로 변해 잇었다. 나는 먼저 종묘를 찾아 엎드려 통곡했다.

- 《징비록》

 

100년에 걸친 태평성대로 인해 우리 백성들은 전쟁을 잊고 지내다가 갑자기 왜적의 침입을 맞게 되자 우왕좌왕하다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 《징비록》

 

당시 적은 파죽지세로 몰아닥쳐 불과 10일만에 서울까지 들이닥쳤으니,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손을 써볼 겨를이 없었으며, 용감한 장수라도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민심 또한 흩어져 수습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방법이 서울을 함락시키는 데 뛰어난 계략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적은 항상 이긴다고만 생각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갈래로 흩어져 마음대로 날뛰었다. 그러나 군사는 나누면 약해지기 마련이다. 천 리에 걸쳐 전선을 형성하고 시간이 지나니, 아무리 강한 화살이라 해도 멀리 가다 보면 헝겊 한 장 뚫지 못하는 이치와 같았던 것이다. …(중략)… 왜적의 계략이 잘못된 것은 우리에게는 천우신조였다.

- 《징비록》

 

나의 한 평생에 세 가지의 회한이 있으니, 군주와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 것이 그 첫째 한이요, 관작과 위계가 너무나 지나쳤는데도 일찍이 물러나지 못한 것이 그 둘째의 한이요, 도道를 배울 뜻을 가졌음에도 이를 성취하지 못한 것이 셋째 한이다.

- '세 가지 회한三恨'

 

서애 류성룡의 위패가 모셔진 병산서원(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입교당에서 바라본 만대루와 병산 풍경.

서애 불천위 제사상에 오르는 중개떡. 밀가루와 술, 꿀 등으로 만들며, 류성룡이 생시에 좋아했던 음식이다.

제수가 진설된 서애 불천위 제사상.

 

08 벼슬보다 학문, 퇴계 학맥 이은

   영남 유림의 거목

 

류 치 명

 

 

벼슬보다 학문, 퇴계 학맥 이은 영남 유림의 거목 : 류치명(만우정)

 

초산서 회가回駕하실 때 진지 지을 쌀이 없어서 아랫마을 망지네 댁에 가서 쌀을 꾸어 밥을 지었나니라. 부인께서는 평생에 모시치마를 입어보지 못하였다가 선생이 초선부사를 가시게 되자 말씀하시기를 사랑에서 지금 만금태수를 가시니 모시치마를 얻어 입어보겠다 하셨으나 불행히 돌아가시니 관 안에서 모시치마를 썼나니라.

- 《가세영언 家世零言》

 

정재 불천위 신주 감실과 신주(정재와 두 부인 신주). 신주 덮개 색깔은 원칙이 있으나 종가별로 그 색깔이 다양하다.

정재종택(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전경. 불천위 제사를 지내던 곳이나 지금은 종손이 사는 안동시내 아파트에서 지낸다.

정재종택 사당. 불천위 신주(맨 서쪽)와 4대조 신주가 모셔져  있다.

 

09 평생 후학 양성하며 성리학을 꽃피운

   '작은 퇴계'

 

이 상 정

 

평생 후학 양성하며 성리학을 꽃피운 '작은 퇴계' : 이상정(고산서원)

이상정 신주를 봉안하고 있는 대산종택 사당. 종손 4대조 신주가 함께 봉안돼 있다.

이상정의 대표적 저술 중 하나인 《이기휘편理氣彙編》과 이상정의 글씨인 '만수재晩修齎' 현판.

 

10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양대 석학의

가르침을 받아 학자의 길을 가다

 

오 운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양대 석학의 가르침을 받아 학자의 길을 가다 : 오운(죽유신주 감실)

 

죽유는 평생 아래의 아전들과 귀를 대고 말한 적이 없다. 이 점이 다른 사람들이 미치기 어려운 점이다. 또한 자기를 굽혀서 귀한 사람을 받들지 않았다. 아첨하지도 않았고, 자신을 더럽히지도 않았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

- 오운을 가까이서 보아왔던 선비의 평

 

임금이 오운에게 하사한 《대학》. 가려진 부분에 오운 이름이 쓰여 있다.

죽유종택에 전해 내려온 돌화로. 오운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대홍수 후 이건한 현재의 죽유종택(고령군 쌍림면 송림리). 오른쪽 건물은 사당이고, 왼쪽 건물은 사랑채다. 이건 전의 죽유종택(쌍림면 매촌리)은 죽유 오운 아들이 처음 건립했다.

불천위 문화의 근간인 불천위 제사는 종가의 사당에 봉안된 불천위 신주를 제청으로 모셔오는 축주(出主) 의식으로 시작된다. 사진은 서애동택인 충효당(안동 하회마을)의 불천위 제사 때 신주를 모셔오는 모습(2010년 6월).

 

 

|2부|

정의義를 위해서는

목숨도 돌보지

않는 선비정신

 

 

11 선비의 '절의'가 무엇인지

   제시하다

 

권 벌

 

 

선비의 '절의'가 무엇인지 제시하다 : 권벌(청암정)

 

요순은 천하를 만백성의 소유로 보고 자기 자신을 그것과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임금이 그 자리를 천하의 공기公器로 여긴다면 그의 용심은 넓게 두루 미쳐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힐 수 있지만, 만약 천하를 자기의 소유물로 여긴다면 사사로운 일만을 생각하고 또 욕심이 일어나게 되어 자신을 위하고 욕심을 채우는 일만 하게 됩니다. …(중략)… 말세의 임금들은 그가 있는 지위를 자신의 사물로 여긴 나머지 조금만 급박한 일이 있을 것 같으면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없앴는데, 이는 모두 그 사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 권벌, 1518년(중종 13년) 6월

 

당시 사람들은 그들의 억울함을 알면서도 감히 구제하지 못했는데, 권벌만은 이에 맞서 그들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음이 명백하다는 것을 힘껏 논계하였다. 충성스러운 걱정이 말에 나타나고 의기가 얼굴색에 드러나 비록 간신들이 죽 늘어서서 으르렁거리며 눈을 흘기는데도 전혀 되돌아보지 않고 늠름한 기상이 추상같았으니, 절의를 굳게 지키는 대장부라 일컬을 만했다.

- 사신史臣의 논평

 

정순붕鄭順朋의 소疎가 이미 올라갔으니 류관 등이 뼈도 못추리게 되어 구제할 수 없는 형세였는데 …(중략)… 권벌은 그들의 무죄를 주장하였으니 대개 머리를 베고 가슴에 구멍을 낸다 해도 말을 바꾸지 않을 실로 무쇠 같은 사람眞鐵漢이었다.

- 사신의 논평

 

평소 글 읽기를 좋아해 비록 관청에 숙직하는 자리에서도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고, 성현의 언행이 절실하고 요긴한 대목을 만나면 반드시 아들과 조카를 불러 펴 보이며 반복해 가르쳤다. 늘 말하기를 '학문은 반드시 자기를 위한 것이요, 과거시험은 지엽적인 일일 뿐'이라고 했다. 말년에는 더욱 《근사록》을 좋아해 소매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중종이 재상 등을 불러 후원에서 꽃을 구경하고 각기 즐기면서 취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공이 부축받고 나간 후 궁중의 어떤 이가 작은 《근사록》을 주웠는데, 누구의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권벌이 떨어뜨린 것이다'하시고는 명하여 이를 돌려보냈다.

- 이황, 권벌 행장行狀에서

 

 

권벌이 도포 소매에 넣어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근사록》. 보물로 지정돼 있다.

충재종택 사당 전경. 다른 종가와 달리 불천위 제사를 지내는 제청을 사당 옆에 별도로 건립해 사용하고 있다. 오른쪽이 제청이 있는 갱장각이다.

충재 불천위 제사 때 사용하는 동곳떡을 쌓고 있는 모습(충재종가 제공).

 

12 뛰어난 학문과 인품,

   청나라 대신도 탄복하다

 

이 원 정

 

 

뛰어난 학문과 인품, 청나라 대신도 탄복하다 : 이원정(동산재)

 

봄은 오고 또 오고 풀은 푸르고 또 푸르네

나도 이 봄 오고 이 풀 푸른 것처럼

어느 날 고향에 돌아가 노모를 볼 수 있으리요

- 《사친곡思親曲》

 

 

이원종의 유품 중 갓 끈을 꿰는 관자貫子와 갓 장신구인 옥로.

귀암종택 사당 내 귀암 이원정 부부 신주와 감실. 부부의 신주가 별도의 함에 봉안돼 있다.

최근 중건한 귀암종택 사당과 사당 내부 모습.

 

13 임금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은

'대궐 안 호랑이'

 

김 성 일

 

 

임금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은 '대월 안 호랑이' : 김성일(학봉종택)

 

류성룡과 조목, 김성일은 이황의 문하에서 배웠다. 김성일은 마음가짐이 굳세고 꿋꿋하며 학문이 독실했다. 모습은 고상하고 위엄이 있으며, 행동거지는 가지런했다. 바른 말이 조정에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나, 그 충성과 절개가 빼어나게 남달라서 다른 사람들이 감히 다른 의견을 내지 못했다.

- 학봉鶴峯 김성일(1538~1593년)을 평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요사이 추위에 모두들 어찌 계신지 가장 염려하네. 나는 산음고을에 와서 몸은 무사히 있으나 봄이 오면 도적이 대항할 것이니 어찌할 줄 모르겠네. 또 직산 있던 옷은 다 왔으니 추워하고 있는가 염려 마오. 장모 뫼시고 설 잘 쇠시오. 자식들에게 편지 쓰지 못하였네. 감사라 하여도 음식을 가까스로 먹고 다니니 아무 것도 보내지 못하오. 살아서 서로 다시 보면 그 때나 나을까 모르지만, 가필 못하네. 그리워하지 말고 편안히 계시오. 섣달 스무나흗날.

- 안동의 부인에게 한글로 보낸 편지

 

 

- 학봉이 사용하던 안경과 안경집.

학봉이 자신의 부인에게 보낸 한글 편지.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는 백운정에서 바라본 반변천 풍경. 백운정은 김성일의 형인 귀봉 김수일이 지었으며, 김성일이 형제들과 학문을 닦던 정자다.

학봉종택(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안채 대청에 차려진 학봉 불천위 제사상. 제청에 내걸린 대형 탁본('中流砥柱', '百世淸風') 족자가 인상적이다.

 

14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강직한 삶,

   선비의 사표가 되다

 

김 일 손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강직한 삶, 선비의 사표가 되다 : 김일손(자계서원)

 

옛말에 '40세는 되어야 벼슬살이에 힘쓸 수 있다'고 했는데 …(중략)… 지금 신은 나이 30 미만이온데 화려한 요직인 한원翰苑(예문관), 옥서玉署(홍문관), 사관과 이조전랑 등을 거치면서 승진해왔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청선淸選'이라고 합니다. 신이 무슨 재능이 있어 이 분에 넘치는 직책들을 감당하겠습니까. …(중략)… 속히 신의 직임을 교체해 물러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10년의 여가를 주시어 독서함으로써 수도하고 학업의 발전을 얻은 다음에 종사하게 하여 주소서.

- 1492년 이조좌랑의 부름을 받고 올린 상소

 

김일손은 문장과 학문이 모두 뛰어나며 재능과 기량을 겸비했고…(중략)… 또한 지략이 넓고 깊어 가히 낭묘廊廟(의정부)의 직책을 맡길 만하다. 나는 그의 언론을 듣고자 누차 백부栢府(사헌부)의 요직을 맡긴 바 있고…(중략)… 비록 다른 관직에 제수하더라도 반드시 경사經史(홍문관과 춘추관)의 직임을 겸하도록 했는데 장차 보상지관輔相之官(수상)으로 크게 쓰고자 함이다. 그런데 다만 그의 나이가 젊어 그의 뜻은 크고 성품은 너무 준엄하며, 기상은 너무 날카롭고 언론은 심하게 곧으며 행적은 너무 고상하니 마땅히 그의 노성老成을 기다려 쓸 수밖에 없구나.

- 성종이 탁영에 대해, 경연에서 참찬관參贊官 조위曺偉에게 한 말

 

 

김일손이 애용하던 거문고 '탁영금'(보물 제957호).

김일손 시호(文愍) 교지(1835년). 보기 드물게 금박을 섞어 만든 붉은 장지를 사용했다.

성종이 김일손에게 하사한 벼루 '매화연'

 

15 천하의 임금에게도 정론을 이야기한

'신하의 정석'

 

정 경 세

 

 

천하의 임금에게도 정론을 이야기한 '신하의 정석' : 정경세(계정)

 

전하께서 덕을 닦고 뜻을 세움에 있어서 능히 게을리함이 없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당파를 짓는 습속이 그대로 남아있어 서로 협력하는 공효는 드러나지 않았으며, 무비武備를 강화하는 계책이 정해지지 않아서 적들을 토벌할 기약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어진 이를 구하고 계책을 정하는 일에 능히 해이해지지 않았음을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중략)… 삼가 바라건대, 굳은 신념으로 변하지 말고 힘써 덕을 지켜 일신의 사욕으로 공도公道를 해치지 말고, 안일로 태홀怠忽을 싹틔우지 말고, 목전의 성과를 생각하며 서둘지 말고 끊임없이 뜻을 견지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자연히 날로 성상의 덕이 새로워지고 정치의 교화가 높아질 것입니다. 혹시라도 구습을 그대로 따르면서 방심해 지나치거나 점차 안일을 탐해 세월을 허송하는 버릇이 생긴다면, 뜻은 날로 나태해지고 기운이 날로 위축되어 세월은 유수처럼 흐르는데 만사는 아득하여 일찍이 품었던 뜻을 하나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된다면 다만 신들만이 전하를 위해 애석해 할 뿐만 아니라, 천년 뒤에도 반드시 전하를 위해 길게 탄식을 토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 1623년(인조 1년) 인조가 반정으로 친정하게 되고, 정경세가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된 후에 올린 차자 내용 중 일부

 

백성을 도탄에서 구해내는 일은 힘을 관대하게 쓰고 후생에 노력함으로써 이뤄져야 하고, 그 두 가지의 근본은 절검節儉에 있습니다. 듣건대 근년에 국가의 세입이 세출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니 나라꼴이 말이 아닙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관혼상제는 날로 허례허식에 빠지고, 시정 상인들의 돈을 빌려 다음 해의 세입으로 끌어들여 쓰면서도 오히려 절검할 줄 모르는데, 어찌 군주로서 마치 추운 날씨에 구걸하는 어린아이가 살아갈 방책을 궁리하는 식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단 말입니까.

- 만언소萬言疏

 

 

우복종택 사당(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이 사당은 종택 울타리 안에 있고, 역시 불천위인 우복 정경세의 6대손 입재 정종로 신주는 종택 울타리 밖의 별도 사당에 모시고 있다.

우복종택 사당에 걸린, 우복 정경세를 위한 사제문 현판. 정조가 내린 사제문이다.

 

16 대의명분을 위해 목숨도 돌보지 않는

   선비의 삶을 살다

 

조 덕 린

 

 

대의명분을 위해 목숨도 돌보지 않는 선비의 삶을 살다 : 조덕린(옥천종택 전경)

 

우리나라는 땅이 좁은데 그 속에서 또 당론이 갈라져 화합하지 못하고 공평하지도 못한 상황이며, 그것이 이미 고질이 되었습니다. 근자에는 둘이 셋이 되고, 셋이 넷으로 되어 한 쪽만 뽑아 쓰고 셋을 버리며, 발령을 내기도 전에 미리 당색黨色을 먼저 정하게 되니, 어찌 어진 이를 얻을 수 있으며 정치가 바르게 될 수가 있겠습니까.

- 십조목의 상소문十條疏

 

우리나라는 중국 · 일본과 국교를 맺어 해마다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고, 근래에는 흉년이 거듭되어 조세수입이 감소해 국고는 거의 고갈상태이고, 군수 비축도 바닥이 났으나 낭비되는 비용이 바닷물처럼 과다해 돈 쓰기를 분토糞土처럼 하면서도 책임있는 관리는 그 자리를 물러나지도 않습니다. 이래서야 천승天乘의 나라라도 어찌 가난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 조덕린이 올린 십조소 중 일부

 

그때를 당하여 조정은 뒤숭숭하고 어지러워 당론만 제멋대로 주장하니 나라를 걱정하고 근심함을  참으면서 보고 넘길 수가 없어서, 간장의 피를 토해 티끌만큼이라도 효과가 있기를 도모하고자 했다.

- 십조소에 대해 번암樊巖 채제공(1720~1799년)의 평

 

이로부터 영남의 사기가 더 한층 돋구어졌으니[從此矯南增士氣]

세상에는 바야흐로 글 읽는 인물 있음을 알았도다[世間方有讀書人]

하지만 그대는 험한 귀양길을 예사로이 잘도 가시니[猶然視若康莊去]

평생에 쌓은 수양의 힘을 알겠노라[定力平生見左符]

- 이만유李萬維

 

 

조덕린이 이인좌의 난(1728년) 평정에 참여하고 고향에 돌아온 후에 세워 제자를 가르치던 창주정사滄洲精舍. 영양 청기에 있었으나 현재는 옥천종택 옆에 있다. 창주는 조덕린의 호다.

 

인생이 만났다가 헤어질 때가 있는 것이니 어찌 한탄하리오마는 몸에 악명을 입었으니 세상에 욕이 되었다. 비록 내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나 오히려 너희가 더욱 힘써 수양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 조덕린이 집에 있는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옥천종택 사당(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이 사당에는 옥천 조덕린 불천위 부부 신주만 봉안돼 있다.

 

 

17 이순신의 인품과 능력을 알아본 선비,

   그의 목숨을 구하다

 

정 탁

 

 

이순신의 인뭎과 능력을 알아본 선비, 그의 목숨을 구하다 : 정탁(읍호정)

 

 

벼슬 자리 두루 두루 거쳤으나

여러 사람의 바람에 다 부합되었네

재상의 자리에 오르고

정권 핵심부서에 발탁되었지만

치우침도 기울어짐도 없어서

공정한 도리와 균형을 유지했고

과격하지도 부화뇌동하지도 않아서

훌륭한 명성 오래도록 누리었네

많은 관료들이 모범으로 삼았고

과인의 덕을 의지하여 이루었으니

물을 건널 때의 배와 같았고

가물 때 소낙비와 같았네

예전에 있었다고 들었던 것

오늘날 그것을 보았네

- 약포가 별세하자 선조 임금이 칙사 예조좌랑 조정을 보내 제사 지낸 글賜祭文의 일부

 

인재란 것은 나라의 보배로운 그릇이라 비록 통역관이나 회계 맡은 사람도 진실로 재주와 기술이 있기만 하면 모두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마땅하거늘, 하물며 장수의 자질을 가진 자로서 적을 막아내는데 가장 관계 깊은 이에 대해서 오직 법률만 가지고 논하고 조금도 용서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순신은 참으로 장수의 자질을 가졌고, 또한 해전과 육전에 재주를 겸비해 못하는 일이 없는 바, 이런 인물은 쉽게 얻지 못할 뿐더러 변방 백성들이 의지하고 적들이 무서워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죄명이 엄중하여 조금도 용서할 도리가 없다며 공로와 허물을 비교해보지도 않고, 또 공로를 더 세울만한 능력이 있고 없음도 생각하지 않으며, 그리고 그간 사정을 찬찬히 살펴봄도 없이 끝내 큰 벌을 내리는 데까지 이르게 하면, 앞으로는 다른 모든 공로 있는 자들도 스스로 더 나아가지 않을 것이며, 능력 있는 자들도 또한 스스로 더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일개 순신의 죽음은 아깝지 않으나 국가에 관계됨이 가볍지 않으니 어찌 우려되는 중대 사안이 아니겠습니까. …(중략)… 비옵건대 은혜로운 하명으로 문초를 특감해 주어 그로 하여금 공로를 세워 스스로 보람 있게 하시면 성상의 은혜를 천지부모와 같이 받들어 목숨을 걸고 은혜를 갚으려는 뜻이 반드시 누구 못지 않을 것입니다.

- 신구차伸救箚

 

평생의 독서는 늘 시국의 어려움을 구제하기 위한 일이었는데[讀書常擬濟時艱]

분주한 벼슬살이로 얼마나 오랜 세월 보냈던가[奔走紅塵幾暑寒]

왜구의 난리 칠년 동안 한 가지 계책도 내지 못하고[寇亂七年無一策]

도리어 백발이 되어서야 비로소 고향에 돌아온 것이 부끄럽도다[還白髮始歸山]

- '우회寓懷'

 

경연 중에 우연히 듣고 영정을 모셔와 보니 그 모습이 거룩하고 의연하구나. 선조조의 유명한 재상이 별세한 지 100년이 지난 후에 화상으로나마 다시 왕궁에 들어왔으니 특별히 그 명을 써 넣어 영남 사람의 귀감이 되게 하노라.

- 영조는 1756년 경연 도중에 정탁의 덕행이 훌륭함을 듣고 정탁 5대손 정옥에게 초상화를 모셔 오게 한 후 화상찬을 지어 정옥에게 화상축 머리에 쓰게 했다. 

 

 

정탁이 사용하던 벼루.

약포 정탁을 기리는 도정서원道正書院(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전경. 1640년 약포 사당이 세워졌고, 1697년 도정서원으로 승격했다. 약포의 셋째 아들 청풍자淸風子 정윤목도 함께 배향하고 있다.

정탁의 초상화(보물 제487호). 1604년 어명에 의해 화사畵師가 그렸다.

 

18 죽음과 바꾼 불사이군의 절개

'신하의 길'을 보여 주다

 

하 위 지

 

 

죽음과 바꾼 불사이군의 절개, '신하의 길'을 보여 주다 : 하위지(창렬서원) 

 

 

남아의 득실 예나 지금이나 같고[男兒得失古猶今]

머리 위에는 분명히 해가 비치고 있네[頭上分明白日臨]

도롱이를 빌려주는 것은 뜻이 있으니[持贈蓑衣應有意]

오호五湖의 부슬비 속에서 다시 만나리[五湖煙雨好相尋]

- 박팽년이 도롱이를 빌려달라고 한 데 대해 화답하는 시答朴彭年借蓑衣

 

 

예조에서 작성한 하위지 불천위 문서(1804년 5월)

 

 

 

19 죽음을 무릅쓴 선비의 도,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가다

 

 

이 해

 

 

죽음을 무릅쓴 선비의 도,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가다 : 이해(온계종택)

 

 

공은 덕성이 너그럽고 도량이 넓었다. …(중략)… 남과 더불어 말을 할 때는 온화하고 정성스러워 사납거나 거만한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조정에서 옳고是 그름非, 나아감進과 물러남退 등을 논의할 때는 남달리 두드러지고 꼿꼿한 면이 있었다. 일찍이 화복禍福과 이해利害를 비교해서 남보다 앞서 나가거나 뒤로 물러나 숨는 일이 없었다. 군자들은 이러한 점 때문에 그를 흠모하고 사랑했으나, 소인들은 이러한 점 때문에 그를 원수처럼 미워했다.

- 영남 유생 300여 명이 온계溫溪 이해(1496~1550년)에게 시호諡號를 내려 줄 것을 나라에 청했고, 그에 따라 시장諡狀이 작성됐다. 시장에 담겨 있는 내용 중 일부

 

 

이해 부인 신주의 안쪽. 보기 드물게 부인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해와 동생 이황이 태어난 노송정종택 태실(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온계 이해의 신도비. 온계종택 부근에 있다.

 

20 탁월한 언변과 문장력,

   대명 외교의 달인되다

 

황 여 일

 

 

탁월한 언변과 문장력, 대명 외교의 달인되다 : 황여일(해월종택 전경)

 

 

어젯밤 은하수 신선 쪽배에 내려와 [銀河昨夜下靈槎]

취한 객 진주(삼척)로 드니 흥이 점점 더하는구나 [醉入眞珠興漸多]

홀로 죽서루에 오르니 아무도 없는데 [獨上竹樓人不見]

옥피리 부니 그 소리 물결 위로 퍼지노라 [還吹玉篴向凌波]

- 14세 때 처음 간성杆城 향시에 응시해 진사 1등을 차지하고 돌아오는 길에 삼척 죽서루竹西樓에서 지은 시

 

만리 푸른 바다 백구의 몸으로 우연히 인간의 추잡한 세계에 들어가네

[滄波萬里白鷗身 偶落人間滿目塵] …(후략)…

- 1585년 30세 별시에서 을과 1등으로 합격하고, 예문관검열 겸 춘추관기사관에 발탁되어 출사하면서 집안의 아우들에게 지어준 시

 

동해에 노련자 있어 그 사람 또한 바른 말을 하였네. 많은 사람이 진을 높이는데 너 홀로 주나라 섬겼네. 변설로 삼군을 물리치니 무기 아닌 석 자 혀였지. 나의 일편심도 천추에 그대와 같다네 [東海有魯連 其人亦抗節 擧世欲宗秦 爾獨戴周日 談笑却三軍 其機在寸舌 我有一片心 千秋與君說]

- 1589년 11월 일본 사신 현소玄蘇가 와서 통신사를 보낼 것을 청하니, 조정 대신들이 대부분 허락하자는 쪽으로 기울었으나 황여일은 홀로 불가함을 역설하며 "통신사를 두어도 전쟁은 나고, 두지 않아도 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통하지 않고 난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라고 했다. 김성일이 이 소문을 듣고 지은 시

 

만고의 비장한 뜻으로, 새 한 마리 창공을 지나네. 찬 연기 동작銅雀대를 가리고, 장화章華(초나라 궁전 이름)는 가을풀에 묻혀 있네. 요순보다 앞선다고 경탄하고, 탕무湯武와 같다고 야단들이네. 상강湘江에 둥근 달 밝은데, 눈물로 죽지가竹枝歌 듣고 있네.

- 임제가 지은 책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을 보고 지은 시

 

도성을 나오니 학을 탄 것처럼 가볍고 [出郭身如駕鶴]

동문 밖 십리는 그림 속에 흘러가네 [東臺十里畵中行]

새로 보는 금수강산 화려하기만 하고 [新開錦繡山容淡]

넓게 펼쳐진 물은 유리처럼 맑구나 [厚展琉璃水面淸]

한 발만 나와도 그 아름다움 알겠는데 [一步卽知丘壑美]

2년 동안 왜 그렇게 얽매였는지 [兩年胡被簿書縈]

송어국 국화술에 노어회 생각하니 [松羹菊露鱸魚膾]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네 [怱憶吾鄕興益生]

- 1612년 창원부사에 제수되고, 이듬해 봄에는 벼슬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아와서 지은 시

 

 

 

 

해월종택(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내 해월헌海月軒. 해월이 33세 때(1588년) 처음 지어 공부하고 수양하던 건물로, 63세 때 벼슬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만귀헌晩歸軒'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해월종택 사당(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불천위인 황여일 부부 신주와 해월 종손 4대조 신주가 봉안돼 있다.

해월 불천위 신주를 봉안하고 있는 감실. 다른 종가의 감실과는 형태가 많이 다른 점이 눈길을 끈다.

 

 

불천위 제례 문화의 중심 공간은 불천위 위패를 모시는 종택의 사당이다. 사진은 회재종택 무첨당의 사당(경주 양동마을).

불천위 제사는 불천위 신주를 사당에서 제청으로 모셔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진은 학봉 불천위제사 때 불천위 신주를 모셔오기 위해 안동 학봉종택의 사당으로 향하는 제관들(2010년 6월).

종택 사당이나 별묘에 불천위 신주를 모신다. 사진은 학봉 김성일 부부 불천위 신주.

 

|3부|

백성民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다

 

21 녹봉까지 털어 가난한 백성을 구휼한

   공직자의 자세

 

김 양 진

 

 

녹봉까지 털어 가난한 백성을 구휼한 공직자의 자세 : 김양진(허백당 종택)

김양진 부부 신주. 신주에 종손 이름을 쓰지 않은 점이 다른 종가의 불천위 신주와의 차이점이다.

허백당 불천위 신주가 단독으로 봉안돼 있는 대지大枝 별묘別廟(예천군 호명면 직산리).

허백당 불천위 사당인 대지별묘 내부 모습.

 

 

22 권세가를 찾아가지 않고, 사사롭게

   공무를 처리하지 않은 관리의 길

 

류 중 영

 

 

권세가를 찾아가지 않고, 사사롭게 공무를 처리하지 않은 관리의 길 : 류중영(입암고택)

 

 

나가고 들어감에 일정함이 없으니

간혹 밝았다가 어두워지기도 하네

나쁜 것은 숨김으로 몰래 점점 더 자라나고

착한 것은 사물을 접하며 도리어 감소되네

…(중략)

뜻은 항상 겉과 속이 일치되도록 하고

생각간사함을 경계해 잡됨이 없게 하고

감정은 방자함이 없이 경을 지키라

한낮에는 여러 사람의 눈을 경계하며

어둠 속에서는 자신을 돌이켜 보라

- '자기 양심을 속이지 말라[毋自欺賦]' 중 일부

 

 

류중영의 아들인 겸암 류운룡이 스스로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겸암정사. 하회마을 건너편 강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입암고택 사당 건물은 두 채이다. 한 곳에는 입암 불천위 및 4대조 신주가, 다른 한 곳에는 겸암 불천위 신주가 봉안돼 있다.

 

 

23 조선 시대판 행동하는 지식인,

   실사구시의 전형을 보여주다

 

최 흥 원

 

 

조선 시대판 행동하는 지식인, 실사구시의 전형을 보여 주다 : 최흥원(백불고택)

백불암이 자신의 방 벽에 걸어두고 보면서 마음 수행의 도구로 삼았던 '경敬'자 패牌.

최흥원이 영조의 명으로 류형원의 《반계수록》을 교정한 보본당. 백불암종택(대구시 동구 둔산동) 경내에 있는 이 건물은 최흥원의 5대조 대암 최동집의 불천위 제사를 모시기 위해 1753년 건립했다. 대암 별묘別廟는 이 건물 뒤에 있다.

백불암 최흥원의 신주가 봉안돼 있는 백불암종택 사당 전경. 1711년에 창건된 이 사당에는 백불암 신주와 4대조 신주가 함께 모셔져 있다.

 

 

24 청렴과 결백의 삶,

   '선비의 정석'을 보여 주다

 

김 계 행

 

 

청렴과 결백의 삶, '선비의 정석' 보여 주다 : 김계행(만휴정)

 

 

우리 집에는 보물이 없네 [吾家無寶物]

보물이 있다면 오직 청백뿐이네 [寶物惟淸白]

- 김계행 자신의 호이자 당호堂號인 '보백당寶白堂'의 의미를 해설한 시

 

나는 오랫동안 임금을 지척에서 모셨다. 그러나 조금도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했다. 살았을 때 조금도 보탬이 되지 못했으니, 장례 역시 간략하게 치르는 것이 좋겠다. 또한 절대 비석을 세워 내 생애를 미화하는 비문을 남기지 마라. 이는 거짓된 명성을 얻는 것이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 자신의 삶을 평가하면서 남긴 유언

 

 

1706년 지역 유림이 김계행을 기려 건립한 묵계서원. 종택 부근에 있다.

김계행 사후 약 400년이 지난 1909년 왕이 내린 불천위 칙명 교지.

 

 

25 조선의 청백리,

21세기의 복지를 제시하다

 

조 정

 

 

조선의 청백리, 21세기의 복지를 제시하다 : 조정(양진당)

 

 

공은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욕심, 옳고 그름의 사이에 털끝만큼이라도 틈이 있으면 일도양단一刀兩斷한다. 그렇기에 그 출처와 거취가 의에 비추어 늘 너그럽고 여유가 있었다.

- 평원(平原) 이광정이 쓴 검간黔澗 조정(1555~1636년)의 행장 중 그를 평한 부분

 

 

검간종택인 양진당(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전경.

검간 조정이 만년에 독서를 하며 주변을 소요하던 옥류정玉流亭(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앞에 내가 흐르고 고목이 우거져 주변 풍광이 수려하다. 근처 암벽에 '검간선생 장구지소[黔澗先生 杖屨之所]'라는 음각 글씨가 새겨져 있다.

 

 

26 "공무를 수행하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자신보다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다

 

배 삼 익

 

 

 

"공무를 수행하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자신보다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다 : 배삼익(임연재종택 사당)

 

 

내 나이 열여섯 살 때 한성漢城 감시監試를 보았는데, 그해 가을에 임연재가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두각을 나타내 동료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는 고금의 일을 논하는데 막힘이 없고, 나는 그의 처소로 가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시험을 치던 전날 밤 나는 그의 처소에 가서 잠을 잤다. …(중략)… 닭이 홰를 치자 그가 박차듯이 나를 일으켜 나란히 말을 타고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뜰 가운데 큰 회나무 아래서 나무를 우러러보니 불빛 속에 겹겹의 녹색 나뭇잎이 아름답게 빛났다. 시제詩題가 나오자 그는 그다지 생각하지도 않고 날이 저물기 전에 두 편 모두를 완성하고도 왕성하게 힘이 남아 있었다. 나는 시는 완성했으나 쓰지는 못하고 있는데 그가 대신 썼다. 채점을 하자 나는 다행히 합격했지만, 그는 뜻을 펴지 못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감에 내가 다시 술을 지니고 가서 전송하면서 요행과 불행이라는 말로 작별했다.

- 서애 류성룡(1542~1607년)이 지은 <배삼익 신도비명>

 

 

임연재 배삼익의 친필. 함께 공부한 설원당雪月堂 김부륜(1531~98년)을 전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7 백성의 삶을 알고 선비의 도리를 지킨

지식인의 전형을 보이다

 

김 응 조

 

 

학문을 일삼았으나 천기天機를 알지 못하고, 관직에 있었으나 시정時政에 통달하지 못했다. 선비는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의 근본을 견고하게 하는 것을 사모하고, 해바라기가 햇빛 쪽으로 기우는 것은 사물의 본성이다. 인간의 삶은 남가일몽에서 깨어남과 같고, 만 가지 계책은 그림자를 잡으려는 것과 같아라. 저 학가산鶴駕山과 사천沙川을 바라보니 물은 맑고 산은 푸르러, 천년만년 혼백을 비추리라.

- <자명自銘>에서

 

 

학사 김응조의 유려한 초서 작품 '남애정사잡영南厓精舍雜詠'. 학사가 1634년 영주 갈산 남쪽에 남애정사를 짓고, 주변 8곳의 풍광을 읊은 내용이다. 그중 1수는 없어지고 나머지는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돼 있다.

 

 

28 암행어사 이몽룡의 실제 인물,

애민의 삶을 살다

 

성 이 성

 

 

암행어사 이몽룡의 실제 인물, 애민의 삶을 살다 : 성이성(계서종택)

 

 

11월8일=아침에 외정원外政院에 나아가 패牌를 받았다. 봉서封書를 받아 나와 남관왕묘南關王廟(중국의 관우를 모시기 위해 한양 남대문 밖에 세운 사당)에서 개봉해 보니 나는 호남으로, 이해창은 영남으로 암행하게 돼 있었다. 오시午時에 한강을 건너 신원新院에서 말을 먹이고, 밤 2경에 용인 땅에 도착했다.

11월10일=말을 바꾸어 타고 마두馬頭, 대마부大馬夫, 복마부卜馬夫, 중마부中馬夫를 거느리고 천안 아래 5리쯤 되는 주막에서 아침을 먹었다. …(중략)… 이날은 100리를 왔다.

11월13일=집집마다 양반이라 하여 집안에 행인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아주 작은 집에 들어가니 11세 정도 되는 작은 아이가…(후략)…

11월14일=고창의 윗마을 이득립의 집에서 묵었다. 고창의 여러 가지 일을 자세히 물어보았다. …(중략)… 감사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말해 주었다. 감사의 치적을 부정적으로 말함이 역력했다. …(중략)… 백성을 침탈하는 일은 별로 없으나 취하지 않은 날이 없으며 취했을 때는 정사를 살피지 않는다. 행동거지의 허물은 불문가지不問可知라.

12월1일=광한루에 도착하니 노기老妓 여진女眞과 노리老吏 강경남이 와서 절했다. 날이 저물어 모두 물리치고 소동小童 · 서리書吏와 누각 난간에 나가 앉으니, 흰 눈빛이 들에 가득차고 대숲이 모두 흰색이었다. 소년시절 일을 생각하며 밤 깊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 《호남암행록湖南暗行錄》 중 일부

 

오늘의 일은 마땅히 조용히 강구하여 지극히 바른 곳으로 돌아가기를 구하기에 힘쓴 뒤에야 존친尊親의 도道와 종묘의 예禮를 온전히 할 텐데, 전하께서는 한갓 지정至情에 가리어 도리를 살피지 못하고 매양 엄중한 분부로 꺾어 말씀하시기를 ‘세력에 아부한다’, ‘노리는 것이 있다’, ‘사욕을 이루려 한다’라고 하십니다. …(중략)… 이미 그 지위에 두고 일을 맡겼으면서 하루아침에 뜻에 거슬린다고 하여 뜻밖의 말씀으로 억지로 그 죄를 정해 입을 열지 못하게 하니, 이것이 과연 성주聖主로서의 말씀일 수가 있으며, 예로서 신하를 부리는 도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중략)… 이번에 종묘에 드는 일이 전하의 뜻이므로 저들(영합하는 신하들)도 또한 행할 만하다고 말하지만, 만일 전하께서 행할 수 없다고 여기신다면 저들은 또 불가하다고 할 것입니다. …(중략)… 직언하는 선비가 물러나자 뜻이나 맞추며 아첨하는 사람이 나오고 충간忠諫의 길이 막혀서 영합하는 풍조가 만연하면, 전하의 욕망은 이룰 수 있겠지만 나라 일은 끝내 어떻게 되겠습니까.

- 1634년 사간원정언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선조 다섯째 아들0을 왕(원종)으로 추존하여 종묘에 들이려 할 때, 조정에서는 찬반이 엇갈려 논란이 있다가 결국 원종으로 추숭追崇되었다. 당시 간관이 된 성이성은 이에 강경한 논조의 상소를 함

 

도덕 높은 우리 님은 성품도 굳세고 밝았다 [斯文我侯 天性剛明]

뜻은 청렴에 있으니 씀씀이도 검약하였네 [志存淸儉 自奉簡約]

정사는 공평하고 송사는 이치에 맞으니 온 고을 어려운 사람 모두 살렸고 [政平訟理 闔境蘇殘]

형벌은 줄고 세금은 가벼우니 관리와 백성 모두가 편안했네 [省刑薄斂 吏民俱安]

한 해의 다스림에도 이 세상 다하도록 잊을 수 없도다 [居官一載 沒世不忘]

- 강계에 세워진 계서 <청백인정비淸白仁政碑>에 새겨진 글

 

맑고 희도다 백옥의 깨끗함이여 [淸耶白耶 白玉之白]

사랑하고 어루만지니 백성의 어버이로다 [慈之撫之 民之父母]

한 고을 묵은 일 하루아침에 새롭게 했도다 [一朝維新 百里太古]

새 해를 다스렸으나 영원토록 사모하네 [三載居官 萬世永慕]

- 담양의 <청백인정비>

 

 

계서종택 사랑채에 딸린 간이 소변소. 노인들의 편리를 위해 특별히 만들었다.

계서종택 사당 내부. 성이성 부부 신주를 비롯해 종손 4대조까지의 신주가 벽감 형태의 감실에 모셔져 있다.

 

독 안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金樽美酒千人血]

소반 위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다 [玉槃佳肴萬姓膏]

…(후략)…

- 호남 암행어사로 활동할 때 호남 열두 읍 수령들이 베푼 잔치 자리에서 성이성이 지은 한시

 

29 360년간 후세의 물 걱정을 덜게 한

정책을 실천하다

 

신 지 제

 

 

360년간 후세의 물 걱정을 덜게 한 정책을 실천하다 : 신지제(금산서원)

 

 

선조宣祖께서 말씀하셨다. "아! 슬프도다. 내가 덕이 없고 어두워서 스스로 피하지 못하고 큰 난리를 당하게 되어 오직 너희들 문무제신文武諸臣이 서로 도와 나라를 구했으니 수고로움이 있었던 사람에게는 반드시 보답하고,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갚음이 있음을 사사로운 정에 끌려서 하는 것이 아니요, 참으로 공적인 의리에 말미암은 것이다. …(중략)… 조정의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논공행상을 할 때 어찌하여 그대가 빠졌는지, 만일 지난번 조정으로부터 상소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옛날 진晋의 개자추介子推와 같이 면산綿山에 숨어 찾아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마땅히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정성을 두텁게 하여 그 노고에 보답하는 온정을 베풀고 공훈을 호성공신 3등으로 기록하고, 특히 화상을 그려 후세에 전하도록 하며, 부조묘의 사당을 특별히 세우는 특전을 내리고, 또한 벼슬을 한 계급 더해 아들이 없을 때는 생질과 사위에게 계급을 더하여 적장손嫡長孫이 대대로 이어받아 그 녹을 잃지 않고 영구히 미치도록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시중드는 사람 4명과 노비 7명과 말구종 2명, 밭 60결, 은자 5량, 옷감 1단, 내구마 1필을 하사하니 마땅히 수령할지어다.

- <선조대왕교서>

 

 

오봉종택 사당(의성군 봉양면 귀미리). 6 · 25 전쟁 때 이 사당 마당에 큰 독을 묻고 종택 유물을 보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30 문무를 겸비한 선량한 관리로

   역사에 기록되다

 

이 정

 

 

문무를 겸비한 선량한 관리로 역사에 기록되다 : 이정(경류정 전경)

이정이 1435년경 평안도 영변에서 가져와 주촌종택 마당에 심은 뚝향나무(천연기념물 제314호).

 

 

우리 종가 경류정 옆에 노송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가지와 줄기가 뱀처럼 꿈틀꿈틀하고 서리서리 넓적하게 얽혀서 임금이 타는 수레의 덮개처럼 되었는데, 그 높이는 두어길이 될까 말까 하나 실로 신기한 소나무다. …(중략)… 공은 젊어서 큰 뜻이 있었으나 음사벼슬로 맴돌아 그 뜻을 펴지 못했다. 그러나 3대가 내려가 대현大賢(퇴계 이황)이 나서 우리 동방에 영원한 행운을 가져왔으니, 공은 우리 이 씨의 근본이시다. …(중략)… 원래 솔이란 추운 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지조인데, 때는 바야흐로 추운 철인지라 군君과 나는 아무리 곤궁할지라도 의리를 잃지 말고 만년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더욱 힘써 선조의 지조를 더럽히지 않는다면 이 소나무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니 서로가 힘써야 할 것이다.

- 이정의 후손인 이만인李晩寅은 '나무 심은 지 400년 후 정해년丁亥年 12월'에 '경류정 노송기慶流亭 老松記'를 남겼는데 그 일부

 

적선으로 복과 경사가 불어나고 [積善由來福慶滋]

몇 대 전한 인후함이 온 집안에 넘쳐나네 [幾傳仁厚衍宗支]

군에게 권하노니 거듭 문호를 힘써 지켜 [勸君更勉持門戶]

화수회가 위씨 집처럼 해마다 이어지도록 하오 [花樹韋家歲歲追]

산 아래 높은 정자엔 형세가 아득한데 [山下高亭勢入冥]

온 집안사람 함께 기쁨 나누는구나 [合宗筵席盡歡情]

더욱 어여쁜 명월 가을밤 [更憐明月中秋夜]

텅 빈 난간 연못이 참으로 맑구나 [虛檻方池分外淸]

맛난 술 높은 정자에 달빛이 깃드니 [美酒高亭月正臨]

한 말 술에 백편 시를 읊을 뿐이오 [何須一斗百篇吟]

작은 연못에 비춘 달은 차가운 거울 같으니 [小塘灑落如寒鏡]

진실로 은자임을 깨달아 마음이 편하도다 [眞覺幽人善喩心]

- 가정 병진嘉靖 丙辰(1556년) 중추中秋 전 대사성前 大司成 황滉 삼가 지음奉稿

 

 

주촌종택 사랑채인 '고송류수각古松流水閣'

 

 

 

안채 대청과 마당을 가득 메운 제관들이 제사를 지내고 잇다(서애종가).

제사가 끝난 후 안채 마당에서도 제관들이 음복을 하고 잇다(학봉종가).

서애종가 불천위 제사에서 사용할 도적을 쌓고 있는 모습.

 

 

|4부|

나라國와 가족을

먼저

생각하다

 

 

31 일흔 살에 전쟁터에 나가 전사한,

   조선 무신의 정석

 

최 진 립

 

 

일흔 살에 전쟁터에 나가 전사한, 조선 무신의 정석 : 최진립(잠와종택)

최진립이 배향된 용산서원(경주 내남). 용산서원 현판은 당대의 명필이자 서예 이론가인 옥동 이서의 글씨다. 서원 내 최진립 위패를 모신 사당 이름인 '숭렬사우승崇烈祀宇'는 나라에서 내렸다.

잠와종택 사당 안의 잠와 신주 감실.

 

 

32 문무를 겸비한 선비,

   반란 평정으로 공신에 오르다

 

손 소

 

 

문무를 겸비한 선비, 반란 평정으로 공신에 오르다 : 손소(서백당)

 

 

금오산 푸릇푸릇 태허太虛에 솟았도다. 옛사람 그 누구가 여기에 살았던고. 나 일찍 일선군에 유적 찾아 이 산비탈에 쉬었도다. 깊은 골짝 맑은 샘물…(전략)… 옛날 길공吉公(야은 길재)은 현사賢士로서 고려 쇠운 당했건만 충군애국 일편단심 다른 뜻 전혀 없다. 아홉 번 죽더라도 굳센 절개 변할 소냐. 아태조我太祖 용흥(龍興(왕위에 오름)하니 홀연히 산에 숨어, 혁명은 운수지만 나의 뜻을 고칠 소냐. 덕이 있어 왕이련만 두 임금은 못 섬긴다.

…(중략)… 우리 임금 여러 번 불렀으나 굳은 절개 그 조정에 불참이라. 마침내 이 산에 늙음이여, 본 뜻은 요동 없다. 충성은 백일白日을 관통하고 풍성風聲은 만세에 뻗으리라. …(중략)… 나 여기 기구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슬퍼하고, 드높은 봉우리에 반환盤桓(머뭇거리며 서성임)한다. 단지 보이는 것은 잔나비 우는 깊은 골짜기요, 학이 우는 높은 산마루로다. 날은 장차 저무는데 시야는 도리어 밝아진 듯, 사고무인四顧無人 적적한데 벌목 소리만 정정하다.

- <금오산부>

 

…(전략)… 너의 공로를 생각하면 감히 포장褒奬할 것을 잊겠는가. 그러므로 너를 적개 2등공신에 책봉하여 각閣을 세워 초상을 그리고 비를 세워 공을 기록, 그 부모와 처자에까지 벼슬을 주되 두 계급씩 올리고, 자식이 없는 자는 그 생질이나 사위에게 한계급씩 올려주고, 적장자는 대대로 세습하여 그 녹을 빠짐없이 주고, 그 자손들은 정안政案에 기록하기를 2등 적개 공신 손소의 후손이라 하고, 비록 죄를 범해도 용서하며 그 효과는 영세보존된다. 그리고 사환 8명, 노비 10명, 구사丘史(공신에게 주는 지방 관노) 5명, 밭 100결, 은 20량, 옷 1습, 말 한 필을 하사하니…(후략)…

 

 

성주 고을 백성들이 진정서를 올렸다. 목사 손소의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는 근고近古에 없는 바라, 지난 경인년에는 백성을 자식같이 사랑해 온 지역이 굶주림을 면하고 백성들은 부모같이 사랑하더니, 금년에 또 흉년이 되자 마음을 다해 구휼함으로써 백성들이 잘 살았다. 이제 만기가 되어 떠나야 하지만 잉임仍任(임기가 다 된 벼슬아치를 그대로 머물게 함)하도록 계를 올리니 상감께서 허락했다.

- 정원일기政院日記

 

 

손소의 초상화. 1476년(성종 7년) 나라에서 만들어 손소에게 하사한 초상화로, 보물로 지정돼 있다.

손소에게 성종이 하사한 옥연적. 함께 하사한 산호영 · 상아도와 더불어 '송침 3보'라 불린다.

서백당 사당의 불천위 신주 감실. 소박한 형태의 감실 문 중앙에 세로 버팀목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33 부친과 함께 의병 활동에 참가한 선비,

    효孝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다

 

남 경 훈

 

 

부친과 함께 의병 활동에 참가한 선비, 효孝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다 : 남경훈(난고종택)

 

 

난고종택(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의 사당 전경. 이곳 사당은 불천위신주(맨 서쪽에 봉안) 및 4대조 신주를 모신 불천위사당과 체천위 신주를 모신 사당인 체천위별묘遞遷位別廟가 함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른쪽 건물이 별묘다.

 

남경훈이 남긴 가르침으로 가문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가훈

▲ 어버이에게 효도하며 자식된 도리를 다하라.

▲ 자손들은 선조에게 보답하고 종통을 중히 여겨라.

▲ 일상생활에서도 근본을 두텁게 하며 직분을 다하는 것을 급선무로 하라.

▲ 행실을 조심하고 사람을 편하게 대하며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마라.

▲ 용모를 바르게 하고 절도를 지키도록 조심하라.

▲ 평소 근검하고 가례는 간소하게 하라.

▲ 공을 앞세우지 말며 칭찬을 부끄럽게 생각하라.

 

 

난고종택 사당의 3개 문 중 좌측 문 위에 '난고선생불천위지묘' 현판을 걸어 두고 있다.

난고종택 사당 내 불천위 신주 감실과 주독 모습. 신주 감실이 벽체로 돼 있고, 감실 문의 형태도 어느 종가 사당과 다른 모습이다.

 

 

34 부하를 혈육처럼 사랑한 무장,

   선정의 모범을 보여 주다

 

박 의 장

 

 

부하를 혈육처럼 사랑한 무장, 선정의 모범을 보여 주다 : 박의장(무의공종택)

 

슬프다. 너희들 사졸들아! 몸은 죽었으나 영혼만은 있을지라. 너희들은 영특하니 영혼도 밝으리라. 나의 말을 들어보라. 나의 말은 슬프구나. 군사를 훈련한 지 이제까지 7년이라. 내가 너희 장수되어 굳은 언약 서로 맺어,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고, 나의 옷을 네가 입고 너의 밥을 내가 먹고, 한 집에서 잠을 자고 활을 쏘며, 술도 나누었네. 부윤은 누구이며, 백성은 누구였더냐. 먹은 마음 같으니 혈육과 다를소냐.

- <제전망장사문祭戰亡將士文>

 

전란 중이라 아버지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하고 상주 노릇도 못했으니, 신하된 직분으로는 당연한 일이나 자식된 도리로서는 죽는 날까지 한스러움이 끝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머니 곁을 멀리 떠나지 않고 끝까지 봉양하려 했습니다. 성은이 지중해 다시 경상도 병마절도사의 임명을 받아 모자간의 안부라도 서로 듣게 되어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먼 서방의 공홍도수군절도사의 직을 받게 되어 팔십 노모는 밤낮 울어서 병이 날 지경이고, 모자가 천리 밖에 서로 떨어져 만나볼 수도 없으니 마음이 산란하여 사무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모자가 죽기 전에 만나게 해주시면 살아서는 충성을 다하고 죽어서는 결초보은하겠나이다.

- 모친을 모시기 위해 공홍도수군절도사公洪道水軍節度使의 체임을 요청하는 상소문을 요약한 내용

 

 

무의공종택(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의 사당 전경.

무의공이 사용하던 복숭아 모양의 음료수 잔인 도형배(무의공종가 제공).

박의장 내외분 불천위 제사 때 사용하던 제게인 적기炙器와 향로(무의공종가 제공).

 

 

35 효제충신의 삶,

지식인의 실천 덕목을 제시 하다

 

송 희 규

 

 

효제충신의 삶, 지식인의 실천 덕목을 제시하다 : 송희규(백세각)

 

 

훌륭한 송공宋公

타고난 성품이 강열剛烈하여

정색正色하고 조정에 서니

아무도 그 뜻을 꺾지 못했도다

좌우에서 두드리고 흔들수록

절의와 지조는 더욱 굳었도다

비록 사람과는 어긋났어도

하늘에는 한 점 부끄러움 없었도다

- 갈암葛巖 이현일(1627~1704년)이 야계倻溪 송희규(1494~1558년)의 묘비명墓碑銘을 지으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그의 인품을 표현한 시의 일부

 

몸가짐은 다만 효도하고 공경함이며 [持身祇是孝而悌]

뜻을 세움은 마땅히 신의와 충성이다 [立志要當信與忠]

만약 사람마다 이 도리를 안다면 [若使人人知此道]

어찌 망국하고 패가할 일 있으랴 [則何亡國敗家有]

- 송희규가 7세 때 지은 시 <독소학讀小學>

 

중학中學에서 회의를 하던 날 공(야계)은 스스로 그 사태를 짐작하고 동료에게 말하기를 '대신에게 죄가 있으면 드러내 죽일 일이지, 태평성대에 밀지를 내리는 것이 어찌 밝은 세상의 일인가' 했다. 대사헌 민제인이 밀지를 극렬히 추진하려고 하자 공은 '윤원형이 임금의 외숙으로서 임금을 옳은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도리어 비밀히 국모에게 의뢰해 사람들을 해치려 하니 이것이 될 말인가. 오늘 반드시 먼저 이 사람을 제거해야만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설 것이다' 하고 김저, 박광우 등과 더불어 팔을 걷어 부치고 큰 소리를 지르는데 의기가 늠름하여 건드릴 수가 없었다.

- 《연려실기술》

 

사람의 욕심이 들어올 틈이 없으니

천리天理는 오직 밝고 빛나네

학문은 세상에 영합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덕업은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닦였네

움직이면 천하에 도가 되고

말을 하면 천하에 법이 되네

우주의 동량을 부지扶持하면서

생민生民의 주석柱石되어 안정하게 하네

이것이 이른바 세상에 이름난 참 선비眞儒이니

성인의 덕으로 정중正中한 자이다

- <진유부眞儒賦>의 일부

 

 

야계 송희규가 1552년에 처음 건립해 만년을 보낸 백세각(성주군 초전면 고산리). 이 야계종택 안채 다락방은 파리장서 사건을 모의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백세각 건물 좌측에 있는 야계 불천위 사당. 야계 내외 신주와 종손 4대조 신주가 봉안돼 있다. 사당 단청 그림 중에 사군자가 있는 점이 특이하다.

야계 신도비神道碑(죽은 이의 삶을 기록하여 기리는 비석으로 무덤 앞이나 길목에 세움). 고산리 마을 뒤쪽에 있으며, 비문은 갈암葛巖 이현일이 지었다.

 

 

36 문무를 함께 갖춘 충신,

   격문과 대화로 적을 물리치다

 

장 말 손

 

 

문무를 함께 갖춘 충신, 격문과 대화로 적을 물리치다 : 장말손(송설헌 사당)

 

 

'타고난 성품은 순수하고 성실하며 [性質純穀]

학식은 통달하였네 [學識疏通]

충성스럽고 의로운 도리는 [忠義之道]

실로 마음 깊이 새겨 잊지 않는 바였네 [實所佩服]

- 송설헌이 별세한 후 성종이 내린 사제문賜祭文

 

황금 갑옷 담비 갖옷 입은 나그네의 정이 [金甲貂 遊子情]

쓸쓸히 낙엽 떨어지는 변방성에 울리네 [蕭蕭落木響邊城]

시서를 벗삼아 온 글 잘하는 장군이니 [詩書從事詩書將]

요망한 기운을 변방에서 싹 쓸어버릴 것을 기쁘게 보리라 [喜見妖氣塞外淸]

- 김종직

 

 

듣거니 그대 담소로 적을 물리쳐 [聞君談笑能却賊]

자잘한 무리 얼씬도 못했다지 [魚樵不敢近城池]

…(후략)…

- 허백당虛白堂 홍귀달

 

 

 

송설헌 불천위 제사가 봉행되는 연복군종택(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종택 사랑채인 화계정사花溪精舍(왼쪽)에서 제사가 진행된다.

사당의 신주 감실 등을 깨끗이 청소하는 데 사용했던 도구.

변방의 적들을 소탕한 장말손에게 세조가 하사한 패도(보물 제881호).

 

 

 

 

37 깨끗한 벼슬 생활로 조선 시대

청백리의 교과서

 

곽 안 방

 

 

 

깨끗한 벼슬 생활로 조선 시대 청백리의 교과서 : 곽안방(포산고가 사당)

 

 

 

곽안방은 마음 쓰는 것과 행신하는 것이 뛰어났고, 한가지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교유하는 벗이 그 당시의 명류들이어서 어진 사대부가 그 문에 많이 모여들었다. 벼슬을 하며 청백하기가 빙옥氷玉 같이 깨끗하여 벼슬을 그만 두고 필마행장匹馬行裝으로 돌아올 때는 나는 듯이 가벼웠다.

- 《여지승람輿地勝覽》의 <명환록名宦錄>에 기록된 내용

 

 

 

청백리 곽안방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이양서원尼陽書院(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대리). 1707년 사당인 청백사淸白祠가 건립된 후 서원으로 발전했고, 대원군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됐다가 1945년 이후에 복원되었다.

곽안방종택苞山古家의 불천위 제청으로 사용되던 추보당追報堂 건물.

현풍 솔례마을에 있는 현풍 곽 씨의 십이정려각十二旌閭閣. 1598년(선조 31년)부터 영조 대에 이르기까지 솔례마을의 현풍 곽 씨 가문에 포상된 12정려를 한곳에 모은 각閣이다.

 

 

38 책과 함께 한 선비,

   임진왜란 일어나자 의병 일으켜

 

정 세 아

 

 

책과 함께 한 선비, 임진왜란 일어나자 의병 일으켜 : 정세아(강호정)

 

 

조수鳥獸와 산림山林은 공公이 멀리 숨었다 하고

병마兵馬와 병기兵器는 공이 잘 싸웠다 말하네

자벌레처럼 굽히기도 하고 매와 같이 날기도 하였으니 시대가 그러했다

공이 무엇을 구했겠는가 그 의義를 행하였다

구름처럼 산 위에서 나와 삼논三農을 윤택하게 하고

폈다가 거두어서 태공太空으로 돌아갔도다

- 영의정 조현명이 지은 호수湖叟 정세아(1535∼1612년) 신도비神道碑(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에 나오는 글귀

 

다만 시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문詩文은 체백體魄에 대신할 수 있으니 시로써 무덤을 하는 것이 또한 예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는 반드시 뼈로 장사 지낸 것을 옳다 하고 시로 장사 지내는 것은 부당하다 생각하나 쓸쓸한 황혼에 장사 지내는 것이 많겠지만 이는 마침내 썩어 없어지는데 돌아갈 뿐이고 그 사람의 시는 오래되어도 썩어지지 않을 것이니 이 무덤이 얼마나 위대하겠는가.

- <시총비명詩塚碑銘>에 있는 글의 일부

 

장년의 뜻 적장의 머리 벨 것을 기약했건만

쇠잔해진 이 몸 귀밑 털이 셀 줄이야

…(중략)…

노쇠하고 병드니 어찌 출세 길 달릴 것인가

한가로이 물러나서 청류를 구경함이 내 분수에 맞다

백구도 강호수를 싫어하지 않고 찾아주니

이제부터 청안으로 죽을 때까지 쉬리라

- 시 '자호정사에 올라[登紫湖精舍]'의 일부

 

 

정세아의 묘가 있는 하천묘역(10만 여 평 :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기룡산 자락). 호수 가문의 문중묘역으로, 480여 년 전 정세아 조부의 묘가 들어선 이후 총 80여기가 모여 있으며, 200여 년 전에 현재의 묘역이 형성됐다.

호수종택 사당(영천시 대전동).

호수종택 사당 내 불천위 신주 감실. 2005년경에 도둑을 맞아 새로 복원한 감실이다.

 

 

39 인사권자도 어찌할 수 없었던

   인재 등용의 원칙을 보여 주다

 

이 동 표

 

 

 

인사권자도 어찌할 수 없었던 인재 등용의 원칙을 보여 주다 : 이동표(난은 묘소)

 

 

도화유수의 신비경이 속세에도 있고 [桃花流水在人間]

태백산의 수많은 봉우리 속 세월이 한가롭네 [太白千峰日月閒]

선비의 살림 옹졸하다 말 말아라 [莫道書生生計拙]

그래도 요즘 와서 청산을 사게 되었으니 [向來猶得買靑山]

- 귀향 후 춘양의 산수를 좋아해 그곳에 머물며 지은 시

 

 

 

이동표가 숙부로부터 선물받아 매우 아끼면서 사용했던 대형 벼루(무게 20kg, 가로 48cm, 세로 31.5cm).

 

 

40 각별한 충효의 실천,

당대 '선비의 귀감'이 되다

 

변 중 일

 

 

 

각별한 충효의 실천, 당대 '선비의 귀감'이 되다 : 변중일(간재정)

 

 

옛 사람 사모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慕古是何人]

오직 내 참성품 지키기 바랄 뿐 [庶幾守我眞]

세상 밖의 일 말하지 않고 [莫論世外事]

달갑게 농사꾼이 되었네 [甘作畎中身]

어버이 돌아가실 때 효도하기 어려웠고 [親歿難爲孝]

재주 없어 끝내 뜻 펼치지 못했으니 [才疏竟不伸]

세상을 경륜해 보려던 건 그 옛날의 뜻일 뿐이고 [經營伊昔志]

청춘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네 [無復更靑春]

- 간재簡齋 변중일(1575~1660년)이 만년에 지은 시 <술지述志>

 

…(전략)… 작은 서재를 지어 이름을 '간재'라고 써붙였다. 일찍이 듣기를 '군자의 도는 중中에 적응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君子之道 適於中而不倚於偏]'라고 했다. …(중략)… 나는 감히 덕을 이루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덕을 숭상할 뜻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렇더라도 내가 간자를 취한 이유가 어찌 중을 버리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취하는 것이겠는가. 나는 재주가 모자라고 뜻도 게을러 큰 일을 경영해 백성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고, 왜적이 침입해 나라가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몸을 바쳐 수치와 분통을 씻지도 못했으니 내가 장차 세상에 무슨 뜻이 있겠는가.

그래서 자취를 거두어 몸을 숨기고 그 뜻을 담아 이 서재의 이름을 지었다. 기와가 아닌 초가로 한 것은 거처함의 간이고, 담장을 흙으로 바르고 붉은 칠을 하지 않은 것은 꾸밈의 간이다. …(중략)… 말이 많고 교묘한 것이 간단하고 서툰 것만 못한 것이니, 간이란 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원래 도를 해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간으로써 내 삶을 즐기련다. 그러나 내가 또 어찌 지나치게 간하는 사람이겠는가. 내가 바라는 것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에 적응하기를 기할 뿐이다.

- 《간재기簡齋記》 내용 중 일부

 

 

 

간재 불천위 신주를 모시는 사당.

간재종택(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옆에 있는 정충효각旌忠孝閣. 1686년 간재의 충효를 기려 나라에서 건립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모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변중일의 효심에 감동해 왜군이 증표로 주고 간 칼.

 

 

1779년(정조 3년) 10월15일에 조례祧禮(신주를 땅에 묻는 의식) 일자를 잡아 원근의 사림에 통고하니 모인 사람이 280여 명이었다. 오후에 대청 앞에 회의자리를 여니 공의公議가 일어나 '간재공의 탁월한 충효행은 이미 조정에서도 은전의 포상이 있었는데 사림에서 존모하는 정성이 어찌 없겠는가. 오늘의 자리는 조매제사埋祭祀로 거행할 것이 아니라 불천위로 모시는 제례로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버렸다. 이에 종손과 지손들이 그 자리에 찾아가서 '사림의 논의가 이같이 정중하니 실로 후손된 사람으로서는 감축하는 바이나 뜻이 뜻대로 될 수 없는 지극히 어려운 처지가 있습니다'라고 했으나, 참석한 사람들이 자손의 겸양을 들어주지 않고 공의로 이미 결정한 대로 마무리짓고 모인 사람 중 김응탁金應鐸을 선정, 본손本孫을 대신해 고유문을 짓게 했다.

- 간재가 불천위에 오른 내력

…(전략)… 세상을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라에서 특별히 정전旌典을 내려 엄연한 유각이 저기 휘황輝煌하게 서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 조례의 날이 다가오니 뜻 있는 선비들이 모두 모여 옛 현인을 앙모함이 더욱 새로워, 이에 불천위의 예로 모실 것을 결정하니 자손들은 송구하고 두려워하면서 삼가 맑은 술과 여러가지 안주로 제주를 바쳐 올립니다.

- 김성탁이 본손을 대신해 지은 가묘부조고유문家廟不告由文 중 후반부 내용

 

 

청신재 박의장 시호 교지(1784년 · 시호 '武毅')와 농암 이현보의 시호 교지(1557년 · 시호 '孝節'). 당사자의 벼슬과 시호, 시호의 의미 등이 적혀 잇으나 시대가 달라서인지 교지의 규격이나 내용 구성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시호는 시장諡狀 작성으로 시작돼 관련 관청의 협의와 심사를 거쳐 왕이 확정하며, 시호가 확정되면 교지로 작성돼 해당 인물의 자손 집에 전달된다. 그리고 해당 가문에서는 시호를 맞는 연시延諡 행사가 치러진다. 사진은 귀암 이원정의 <시호망가諡號望記>(시호 예비명칭 3개를 정해 왕에게 올린 문서로, 국왕이 '文翼'을 지명했음이 표시돼 있음).

 

 

|5부|

무엇을 하든

마음心 공부가

중요하다

 

 

41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한

   '벼슬 하지 않은 선비'

 

권 구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한 '벼슬하지 않은 선비' : 권구(병곡종택 가묘)

 

 

비 그친 뒤 지팡이 짚고 마루 아래로 내려가

국화를 줄지어 심네

나뭇잎 지고 서리 내릴 때를 기다리면

황화가 토해내는 향기 서원에 가득하리

- 병곡屛谷 권구(1672~1749년)의 작품 <서원 뜰에 국화를 심다種菊院庭>

 

홀로 앉음이 꼭 나쁘지 않고 도리어 유익하다

속객이 문에 이르지 않아 일실이 늘 한적하고

연기는 나서 산촌을 날며 햇빛은 빈 창을 밝히네

책을 펴고 책상 앞에 정좌해 잠자코 깊은 뜻을 찾으니

흡사 옛 성현이 좌우에 나열한 듯하네

때로 문을 열고 바라보니 산천은 어지럽게 눈에 차고

반가워하며 맵씨 내는 모습들 내 쓸쓸하고 적막함을 위로하듯 하니

깊이 생각하여 뜻을 자득하고 흥구興句 자주 얻어 수심愁心을 잊네

심기는 자연히 고요하고 세상 근심 모두 사라진다

- <'홀로 앉아서獨坐>

 

내가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너의 아버지는 음식물의 감고甘苦와 의복의 편부便不 여부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평소 음식을 먹는데도 정수定數가 있어서 비록 악초라도 덜함이 없고 좋은 반찬을 만나도 더함이 없었으며, 입을 옷도 새 것 · 기운 것을 가리지 않았으며 다만 제삿날에는 웃옷을 빨라고 이야기할 뿐이었다.

- 권구의 부인이 아들에게 한 말

 

가난에는 삼락이 있으니, 입은 거친 밥과 소채蔬菜를 익혔으니 음식이 만족하기 쉬워 고량膏粱원치 않으며, 몸은 베옷을 익혔으니 의복이 편하기 쉬워 비단을 원치 않으며, 거처는 비좁은 곳을 익혔으니 쉽게 편하므로 화옥華屋을 원치 않는다.

- 병곡의 글 '가난의 三樂'

 

 

 

병곡종택 사당 내 불천위 신주 감실.

병곡종택(안동시 풍천면 가곡1리)의 당호로도 사용되던 '시습재時習齎' 현판이 걸려 있는 종택 사랑채. 이 건물 동쪽에 불천위 사당이 있다.

권구의 학덕을 기려 1768년에 지역민들이 지은 서당인 노동서사魯東書社(안동시 풍천면 가곡1리). 일제 강점기에는 권구의 후손인 권오설이 원흥학슬강습소를 열어 민족교육운동을 한 곳이기도 하다.

 

 

42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 저술

 

권 문 해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 저술 : 권문해(초간정)

 

 

선생께서 겨우 약관에 그 몸가짐이 어른과 같아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 만일 올바르지 못한 것을 보면 같이 어울리지 않으셨다. 그런 까닭에 다른 사람들이 어려워했다

- 권문해의 연보年譜에 나오는 기록

 

 

초간종택 사당 전경. 종택 사랑채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늙으신 어머님께 맛난 음식으로 봉양하고 잠자리를 돌보아 드리는 범절 등은 모두 내가 살아 있을 때와 같이 해서, 행여 아버님으로 하여금 저승에서 슬퍼하게 하지 마라.

- 본인이 병이 깊어 회복할 기미가 없자 연로한 모친을 염려하며 남긴 유언

 

나무와 돌은 풍우에도 오래 남고 가죽나무, 상수리나무는 예전처럼 아직 살아 저토록 무성한데 그대는 홀로 어느 곳으로 간단 말인가. 서러운 상복을 입고 그대 지키고 서 있으니 둘레가 이다지도 적막하여 마음 둘 곳이 없소. 얻지 못한 아들이라도 하나 있었더라면 날 가면서 성장하여 며느리도 보고 손자도 보아 그대 앞에 향화 끊이지 않을 것을……. 오호 슬프다. 저 용문산을 바라보니 아버님의 산소가 거기인데 그 곁에 터를 잡아 그대를 장사지내려 하는 골짜기는 으슥하고 소나무는 청청히 우거져 바람소리 맑으리라. 그대는 본시 꽃과 새를 좋아했으니, 적막산중 무인고처에 홀로 된 진달래가 벗되어 드릴게요. 이제 그대가 저승에서 추울까봐 어머니가 손수 수의를 지으셨으니, 이 옷에는 피눈물이 젖어있어 천추만세를 입어도 해지지 아니 하리다. 오오! 서럽고 슬프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우주에 밤과 낮이 있음과 같고, 사물의 비롯함과 마침이 있음과 다를 바가 없는데, 이제 그대는 상여에 실려 그림자도 없는 저승으로 떠나니 나는 남아 어찌 살리오. 상여소리 한 가락에 구곡간장 미어져서 길이 슬퍼할 말마저 잊었다오.

- 자기 부인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버리자 상을 치르면서 초간이 지은, 부인을 위한 제문

 

 

 

초간종택 백승각에 보관돼 있는 《대동운부군옥》 목판본.

초간종택(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유물각인 백승각百承閣 안 철제 금고에 보관돼 있는 초간 불천위신주 감실. 보물급인 이 감실은 도난 방지를 위해 제사 때만 잠시 꺼내 사용하고, 평소에는 금고 속에 보관하고 있다.

 

 

43 '조선 시대의 갈릴레이'

   천문학을 꽃피우다

 

김 담

 

 

 

'조선 시대의 갈릴레이', 천문학을 꽃피우다 : 김담(무송헌 사당)

 

 

신은 시골의 천한 선비로서 …(중략)임금님의 은혜를 입고 관직이 4품에 이르렀습니다. 헤아려 보건대 지금의 신하들 중에 비록 귀척貴戚이나 훈구勳舊의 후예라도 신과 같이 성은을 온전히 입은 자는 없을 것입니다. 마땅히 몸이 상하고 머리가 부서질지라도 만분의 일이라도 성은을 갚아야 할 터인데, 어찌 감히 정을 숨기고 말을 꾸며 성총聖聰을 어지럽게 하겠습니까. …(중략)신이 생시에 어버이를 봉양하지 못하고, 병중에 의약도 지어 드리지 못했으며, 돌아가신 후 장례 치를 때도 당도하지 못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고 땅을 치며 통곡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생각하건대 마땅히 묘소 곁에 엎드려 3년상을 마치고자함은 전일의 잘못을 보상하고자 함이 아니고 금일에 힘쓸 바 오직 이것뿐이라고 여겨집니다. …(중략)역법을 헤아리는 일은 박수미와 김석제가 참으로 저보다 우월합니다. …(중략)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 1449년(세종 31년) 정월 부친상을 당해 시묘侍墓살이를 하던 중, 그 해 5월에 왕이 출사出仕하라는 특명과 함께 쌀 10석, 옷, 신발, 버선 등을 하사하며, 대궐에서 김담을 만나본 후 역법曆法을 맡아보도록 명했다. 이에 김담은 같은 달 23일에 상소를 올려 사직할 것을 청했다.

 

신의 가정이 액운을 만나 신의 백부가 지난해 9월에 돌아가시고 11월에 신의 누이도 죽고, 올해 정월에는 신의 어미가 병환이 위독해 미처 쾌차하기도 전에 신의 아비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신의 여식이 조부모 슬하에 크다가 2월에 이르러 또 죽었습니다. …(중략)… 향리로 돌아가 상제喪制를 마치고 노모를 봉양하도록 윤허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다음 날 올린 상소

 

 

 

영주 무섬마을에 있는 무송헌종택. 현 종손(김광호)의 족친(일본 거주 실업가)이 구입해 두었던 한옥을 종택으로 쓰라고 종손에게 희사한 건물이다. 대구에 살던 종손이 2007년부터 들어와 살고 있다.

 

 

파란 숲 사이로 백옥같이 맑은 물 흐르는데 [碧玉叢間白玉流]

꽃빛은 물 위에 길게 비치어 떠 있네 [花光長帶水光浮]

맑고 그윽한 자연은 인간의 세계가 아니니 [淸冥風露非人間]

뼛속 시원하고 정신 향기로운 꿈 속에서 노닐었네 [骨冷魂香夢裏遊]

조각 도원을 한 폭에 그려놓으니 [一片桃源一幅圖]

산중의 선경이 비단 위에 사뿐히 실렸네 [山中綃上較錙銖]

무릉에서 길 잃은 자에게 묻노니 [試問武陵迷路者]

눈 앞에 보았던 게 꿈만 같지 않았던가 [眼中還似夢中無]

- <몽유도원도>에 남긴 시의 일부

 

 

 

김담이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남긴 찬시讚詩.

김담이 제작한 천문도. 영주 소수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44 38년 서울 벼슬 생활 동안

셋방을 전전한 청빈의 삶

 

박 승 임

 

 

 

38년 서울 벼슬 생활 동안 셋방을 전전한 청빈의 삶 : 박승임(소고 사당)

 

 

천지가 어두워지더니 시월인데 서리 내리고

찬바람은 비 머금고 높은 고갯길에 불어오네

낙엽은 방자하게 뒹굴기를 반복하며

바람소리는 섬돌을 치고 깎는 듯

궁한 선비 가난하여 단벌 옷뿐이라

한 해가 저물어 가니 심정은 더욱 어려운 지경일세

반 칸 방에 불 못 때니 얼음장 같고

깨진 잔에 거미줄 친 것 민망스레 보노라

어리석은 아내 나의 생계 소홀함 꾸짖고

헛되이 밝은 창 향해 좀 먹은 책 펼치노라

아녀자들이 어떻게 궁달의 이치를 알까

만사가 하늘에 달렸으니 한 번 빙그레 웃노라

봄은 응당 심한 추위 뒤에 오나니

잠깐 동안 눈을 감고 인내하는 것 뿐이네

-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소고嘯皐 박승임(1517∼86년)의 시 <시월에 오는 비[十月雨]>

 

신이 실성하여 헛소리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무고하게 대신의 행위를 감히 공격하겠습니까. 전하께서 만약 평상심을 갖고 굽어살피신다면 신 등이 부득이 항론抗論을 편다는 사실을 반드시 훤하게 아시게 될 것입니다. 만약 언관言官이 전하의 위엄에 겁을 먹고 당장 항론을 중단한다면 신 등에게 일신상의 이익은 되겠지만, 사직을 위해서는 무슨 복이 되겠습니까. 근래에 전하의 노여움이 바야흐로 높아서 대신이 배척되고 경연에서 간쟁을 맡은 신하가 잇따라 바깥으로 내쫓겼고, 오늘에 와서는 승정원이 일시에 혁퇴革退되었습니다. 이러한 실정을 목도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저의 몸에 이로운 줄 결코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감히 다시 말씀드리는 것은 전하께서 신에게 위임하신 뜻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국사의 위험을 거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신의 견마지성犬馬之誠을 살피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사심이 있다고 의심하시니, 신이 어찌 감히 벼슬을 욕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빨리 신의 직을 파하소서.

- 소고가 임금께 올린 항소抗疎 중 일부

 

 

 

소고 사당 내부 모습. 소고 불천위 제사는 다른 종가와 달리 사당에서 지낸다. 그래서 신주 감실 앞에 제수 진설을 위한 큰 제사상이 마련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소고의 대표적 저서인 《강목심법》과 《성리유선》

 

 

45 조선 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살다

 

최 항 경

 

 

 

조선 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살다 : 최항경(재실 추원재)

 

 

선생은 날마다 반드시 새벽에 일어나 의관衣冠을 갖추고 가묘家廟에 배알한 후, 단정히 앉아서 책상을 대하고 두 아들과 더불어 종일토록 강론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비록 집안사람들이라도 그 게으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선생은 예禮를 좋아하여 이르기를 '예란 것은 잠시라도 몸에서 떠나서는 안되는 것이고 경敬은 학문을 하는 시종始終이다. 예가 아니면 경을 지닐 수 없고 경이 아니면 예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 죽헌竹軒 최항경(1560~1638년)에 대해 제자인 고산孤山 김응려가 평한 글

 

아름답고 성한 창밖의 밭둔덕 대나무는 [猗猗窓畔竹]

한겨울 추위에도 푸른 빛 변함 없네 [歲寒不改色]

나는 위무공을 사모하노니 [我思衛武公]

구십에 억시抑詩를 지어 자신을 경계했네 [九十詩猶抑]

- 최항경이 스스로 '죽헌竹軒'이라는 호를 지은 뒤 같은 제목으로 읊은 시

 

선생은 언제나 의관을 바르게 하고 꿇어앉아 있으며, 게으르거나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면 주위의 제자들이나 가족에게 물러가게 한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문 밖에 이르면 들어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들어가는데 선생은 이미 관대를 갖추었더라. 내가 좇아 배운 지가 30여년인데 관대를 하지 않을 때를 보지 못했다. 한강 선생이 보낸 편지가 도착하면 반드시 일어나서 받아 공경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읽기를 마친 뒤에는 반드시 다시 일어났다가 앉으셨다.

- 밤낮으로 죽헌을 곁에서 지켜본 제자의 기록

 

 

 

죽헌 최항경과 그의 두 아들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인 효덕사. 오암서원(성주군 수륜면 남은리) 내에 있다.

 

 

가을 깊어 서리 낀 볼에 책과 칼도 슬퍼하는데

나쁜 기운의 오랑캐 날뜀에 분개하노라

내가 만약 나이 젊은 장년이었다면

군진에 따라가서 작전을 지휘하리

- <통분시痛憤詩>

 

 

 

미수 허목의 글씨 '오암鰲巖'이 새겨진 바위. 오암서원 앞 냇가에 있다.

죽헌종택 사당에 봉안된 죽헌 불천위 신주 감실 모습.

 

 

46 학문 불모지 관서 지방에 학문을 일으켜

   후진을 양성한 '초야의 현인'

 

조 호 익

 

 

 

학문 불모지 관서 지방에 학문을 일으켜 후진을 양성한 '초야의 현인' : 조호익(망화정)

 

 

지산 조공曺公과 같은 분은 바로 초야의 현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 홍문관 대제학 김병학이 지산芝山 조호익(1545~1609년)에 대해 시호를 내려줄 것을 청하는 글로 지은 <시장諡狀>에서 지산을 묘사한 글귀

 

주자가 죽은 후 문인들이 각기 자신이 들은 바를 갖고 사방에 전수하였는데, 본래의 요지를 잃어버리고 이단으로 빠지게 되어 도道 정맥이 중국에서는 단절되고 말았다. 퇴계 선생께서는 외국 땅에서 수백 년 후에 태어나 이단에 유혹되지 않고 주자의 적전을 이었는 바, 우리 동방에서만 비견될 인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비슷한 사람조차 찾아볼 수 없으니, 실로 주자가 돌아가신 후에는 오직 퇴계 선생 한 분 뿐이다.

- 이황이 별세한 해에 <퇴계선생행록>이라는 글의 일부

 

군자는 도를 지키는 게 중한 것이고 [君子所重者在道]

오랑캐 땅에서도 행할 수 있다 했네 [謂可行於蠻貊]

환난에 처해서는 환난대로 행하니  [素患難行患難]

위로는 원망 않고 아래로는 허물 않네 [上不怨兮下不尤]

천명에 따라 맘 편하게 지낼 것이니 [隨所命而安之兮]

그 이외에 또 무엇을 구하리오 [夫何外此而焉求]

- 강동으로 가는 도중에 지은 '서정부西征賦'

 

위태롭던 종사가 막 안정이 되자 [宗社危初定]

수치 씻은 강산은 빛이 새롭네 [江山洗欲新]

갑자기 무너진 집 한 칸 얻으매 [居然得破屋]

이내 몸 살았는 줄 다시 알겠네 [方覺有玆身]

- '난리가 끝난 후 비로소 도촌에 살다[亂後始寓陶村]'

 

뒤늦게 꽃 심는다고 모두 웃지만 [裁花人笑晩]

육십 된 몸 먼 훗날은 기약 못해도 [六十遠期難]

내 나이 칠십 되고 나면 [得到稀年後]

열 번은 꽃이 핀 걸 보고말고 [猶將十度看]

- '꽃을 심다裁花'

 

 

 

지산 조호익이 말년에 거처로 마련해 정착했던 지산고택(영천시 대창면 신광리). 지금은 종손이 거주하지 않고 있고, 불천위 제사도 이곳에서 지내지 못하고 있다.

도잠서원 부근에 있는 조호익 신도비神道碑. 1642년에 세웠고, 동계 정온이 비명碑銘을 지었다.

조호익을 기리고 있는 도잠서원(영천시 대창면 용호리). 1613년 '지봉서원芝峯書院'이라 했다가 1678년 '도잠서원道岑院'이라는 편액이 내렸다.

 

 

47 군자의 학문 외길 걸은

   '선비의 정석'

 

장 흥 효

 

 

 

군자의 학문 외길 걸은 '선비의 정석' : 장흥효(광풍정 제월대)

 

 

나는 일찍이 정자程子의 뜻을 취하여 '경'자로 나의 당堂 이름을 짓고, 이것을 호로 삼았습니다. 또 주자周子의 뜻을 취해 나의 정자 이름 짓기를 '광풍정'이라 하고, 나의 대 이름을 '제월대'라 했습니다. 내 스스로 그 실상에 맞다는 것은 아니지만 고인들이 말한 것을 표적標的으로 삼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자 할 뿐입니다. 무릇 경이 아니면 마음을 주재할 수 없고 광풍제월이 아니면 도의 체體와 용用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광풍·제월은 중국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이 대표적 성리학자 주자의 인품을 형용하여 '가슴 속의 맑고 깨끗함이 광풍제월光風霽月(화창한 날씨의 바람과 비 갠 뒤의 달)과 같다'라고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장흥효는 글을 가르친 후 여가를 틈타 집 근처의제월대에 올라 선비들과 함께 노닐면서 예를 학습하기도 하고, 시를 읊기도 하면서 가슴이 상쾌해지도록 한가로이 마음 가는 대로 유유히 지냈다. 50여년 동안 이렇게 지내면서 안동부安東府 안으로 발길을 들인 적이 없었으므로, 이웃마을 사람들조차 그의 얼굴을 본 이가 드물었다.

자기의 것은 많기를 바라고, 남의 것은 적기를 바라는 것은 '나'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없어진다면 누구는 많기를 바라며 또한 누구는 적기를 바랄 것인가. 자신이 이기기를 바라고, 남이 지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없다면 누구는 이기기를 바라고, 누구는 지기를 바랄 것이 있겠는가. 내가 남이고 남이 나인데 뽐낼 것이 무엇이며, 내가 하늘이고 하늘이 또한 나이니 무엇을 탓할 것이 있겠는가.

- '경당敬堂' 기문記文을 친구에게 부탁하는 글에서, 자신의 호이면서 당호인 '경당'과 정자인 광풍정光風亭 및 제월대霽月臺 이름을 지은 이유에 대해

 

경오년(1630년)을 보내고 신미년(1631년)을 맞았으니, 악惡은 경오년과 함께 떠나보내고 선善은 신미년과 함께 맞이하련다. 저 그윽한 산골짜기로부터 벗어나 이곳 춘대春臺에 오르니 요사한 안개는 걷히고 순풍이 감도는구나. 분함은 누르기를 산을 꺾듯이 하고, 욕심은 막기를 골짜기를 메우듯이 하면, 분함과 욕심이 사라지게 됨을 구름이 걷히는 가운데 해를 보듯 할 것이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바르지 못한 것들이 드러나지 못하게 되니 천하가 모두 나의 문에 들 것이다. 이전 날에 기욕己欲(사욕)을 극복하지 못해 인욕人欲에 빠져들었더라도 이제부터 기욕을 극복한다면 천리天理가 회복될 것이다. 극복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소인이 되고 군자가 될 수 있으니, 군자 되려면 반드시 기욕을 극복해야 한다.

금수가 되느냐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도 아주 미미한 것에서 비롯되니, 금수되기를 면하려 한다면 어찌 조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 새들도 머무를 곳을 아는데, 사람이 되어서 머물 곳을 몰라서야 될 것인가. 도는 큰 길과 같아서 눈으로 볼 수도 있고 발로 걸을 수도 있다. 만리萬理(모든 이치)를 보는 것도 한 번 보는 것에서 비롯되고, 천리千里를 가는 것도 한 번 걷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 장흥효가 신미년 새해를 맞아 작성한 글

 

경으로 마음 안을 곧게 하여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공부를 그치지 않으며

의로써 마음 바깥을 방정히 하여

그 혼자 있을 때를 더욱 조심하노라

올해 첫 달 첫날에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 살펴보니 부끄러운 일이 많구나

옛날의 잘못된 일들을 모두 씻어내고

여러 어진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기약하노라

- 경당이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 설날 지은 시歲時自警

 

 

 

경당종택(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사랑채.

자신이 장만한 불천위 제사 제수祭需와 함께 한 경당 11대 종손 장성진 씨.

장흥효 불천위 신주(오른쪽)가 모셔져 있는 사당 내부. 신주함을 덮개로 덮어 두는 점이 독특하다.

 

 

 

48 자녀 교육을 위해 벼슬길을 접은 선비,

죽어서 판서가 되다

 

김 진

 

 

 

자녀 교육을 위해 벼슬길을 접은 선비, 죽어서 판서가 되다 : 김진(청계종택)

 

 

너희들이 먼 길을 왔다 갔는데 아무 탈 없이 있느냐. 나는 별 일 없으니 걱정 말아라. 너희들은 시월 전에 평해의 절로 들어가 겨울 석달 동안에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오너라. 너의 형은 게으름을 스스로 채찍질할 뜻이 없으니, 내 머리가 다 희게 되었다. 너희들 또한 편지를 보내어, 내가 너의 형에게 마음 쓰는 뜻을 알도록 하여라.

- 청계靑溪 김진(1500~80년)이 아들 수일 · 명일 · 성일 · 복일에게 보낸 편지 내용

 

큰 형(김극일)이 과거에 급제한 뒤 바로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슬하에 아이들이 여덟인데 대부분 나이가 어리거나 강보에 싸인 아이였다. 부군께서 어루만져 기르심에 있어 지극하지 않은 바가 없었다. 밤에는 좌우로 안아 주시는데 아이들의 어머니 젖 달라는 소리가 매우 애처로워 부군께서 몸소 젖을 먹이시니, 비록 단 젖은 나오지 않았으나 젖을 빨면서 울음을 그치곤 했다. 부군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면 주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아들 김성일이 지은 김진 행장行狀

 

여러 아이들이 비록 어린 나이에 어머님을 잃었지만, 이 덕분에 물과 불의 위험이나 춥고 배고픔을 면할 수 있어 무사히 오늘에 이르렀으니, 하늘 같이 높은 덕이 낳아주신 데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다. 자애로운 기르심이 지극하고 가르침이 또한 엄격하시니, 비록 어린아이라도 항상 학당學堂에서 학업을 닦도록 하셨고, 마을 거리에서 무덤 만드는 흉내나 장사치의 놀이는 못하게 하셨다.

- 김성일

 

 

 

청계종택(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김진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나 지금 건물은 아들 김성일이 당시 중국 북경 상류층 주택 설계도를 가져와 지은 것이다.

청계와 그의 다섯 아들의 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빈서원泗濱書院(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1710년에 임하면 사의리에 처음 건립됐고, 임하댐 건설로 1987년 임하면 임하리로 옮겼다가, 다시 현재 위치로 이전 · 복운해 2011년에 준공식을 가졌다.

1572년에 제작된 청계 김진 영정(보물 제1221호 · 가로 109 × 세로 142cm). 모시 바탕에 먹과 채색을 사용했다.

 

 

49 의義가 아니면 벼슬도

   초개처럼 버린다

 

김 령

 

 

 

의義가 아니면 벼슬도 초개처럼 버린다 : 김령(계암정)

김령의 부친인 설월당雪月堂 김부륜(1531~98년)이 학문과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한 '설월당'(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김령이 공부했을 이 정자는 원래 낙동강에 인접한 오천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1974년 현재 위치로 이건했다.

계암 김령의 조부인 탁청정 김유金綏가 지은 종택에 부속된 정자로 건립된 탁청정(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1541년에 건립되었는데, 영남 지방의 개인 정자로서는 그 구도가 가장 웅장하고 우아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세모에 눈 · 서리 잦더니

산천은 쌀쌀한 그 모습 감추었도다

시간은 절로 머물지 않으니

하늘 뜻 누가 능히 알겠는가

어지러이 나도는 무리는 많으나

움직이고 멈춤에는 다 때가 있다네

고요히 세상 이치를 보니

어찌 반드시 깊이 슬퍼하리오

한 밤에 거문고 타니

믿을 바 종자기鐘子期 뿐이로다

- 죽음을 3개월여 앞둔 1640년 세모에 읊은 시

 

 

 

김령이 별세할 때까지 약 40년간 쓴 일기 《계암일록》.

 

 

 

50 큰 뜻을 펼치려 한 그 선비,

은거한 까닭은

 

이 시 명

 

 

 

큰 뜻을 펼치려 한 그 선비, 은거한 까닭은 : 이시명(석천서당)

 

 

고요함을 사랑하여 홀로 산에 살고

번거로움이 싫어 손님도 끊었네

살림살이를 못하니 집이 절로 한가롭고

가르침만 있으니 아이들 때로 글을 읽는구나

- 석계의 <산에 살며山居>

 

넓고 넓은 천지는 그 큼이 끝이 없고

곧고 밝은 해와 달은 옛 그대로인데

누가 오랑캐 먼지를 보내 이 더러움 일으켜

남성일계★로 조선을 그르쳤는가

- '유감有感

★ 남성일계南城一計 : 병자호란으로 인한 남한산성 항복 굴욕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말하길 '세상에 쓰이었다면 마땅히 크게 일을 했을 것'이라 했건만, 어찌 생각했으랴! 시운이 어긋나 때를 못 만나게 될 줄을……. 포부를 펴지 못하고 물러나 가정에서 학문을 강講하며, 역사와 경서를 연구한 바가 더욱 넓고 넓었도다. 한가롭고 가난한 삶이었으나 오직 의를 따랐으며, 뜰에 가득한 난옥蘭玉(재주가 뛰어난 석계의 자제)들 그 재능 이어받았네. 서로 논변을 하는 즐거움 속에 고사리를 캐며 수산首山(영양 수비산)에 살았으니 세상사람들 그 누가 알았겠는가.

- 이시명이 세상을 뜬 후 유림의 선비들이 지은 제문

 

바다집(영해 본가)을 떠난 후 석계(석보)에서 산 지 10년이나 되었네. 내가 어떤 사람인가 스스로 살피건대, 자주 재앙을 당해 마음이 어지러웠고, 마음이 분란하여 밖이 삐걱거리고 안이 무너져 내 몸 하나도 붙일 데가 없었네. 바탕은 천진하고 우직하나 운이 풀리지 않았으니 무슨 덕이 있어 내 스스로를 새로이 할 수 있었겠는가. 시대는 어둑어둑 바야흐로 쇠하려 하고 밤은 길고 길어 새벽이 오질 아니했네. 때는 계사년(1653년), 집을 옮길 좋은 날, 좋은 때를 잡아 이사함에 꾸불꾸불 험한 길을 지나느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수비首比를 향해 수레를 재촉했네. …(중략)… 수해 · 한해로 창고는 텅 비었네. 온 식구가 하늘의 도움을 입지 못해 아우성이었지만 그 누굴 의지할 수 있었으랴. 도토리를 주워 곡식을 대신했고, 소나무 껍질 벗겨 삶아 먹었네. 이로도 오히려 죽지 않은 것을 만족하며 애오라지 분수로 생각하고 가난을 즐겨했네. …(중략)… 요컨대 마음은 어느 곳에 두었는가. 배움에 두었을 뿐이었네. 배움은 반드시 익숙해진 이후라야 빛나는 법이네. 성인들의 가르침은 서적에 드러나 있으니 근실히 배우고 날마다 가르침 따라 공부하며 선생과 제자가 서로 토론했네. 외모 다스리길 힘써 의복을 정결히 하고 내면을 밝게 하기를 제사 지내듯이 했네. …(중략)… 나의 구하는 바가 밖(외물)에 있지 않고 안(마음)에 있으니 오히려 돈 많은 것이 무엇이 부러울 것이랴. …(중략)… 이 즐거움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것임을 아노라.

- 석보에 살다가 수비로 옮기면서 지은 글卜居賦

 

 

 

석계가 1640년에 석보로 이사 와서 지은 석계고택.

 

이제 늙은 이 몸 죽을 때가 되었으니 여러 아들과 손자들이 훗날 새와 짐승들과 무리지어 살아 인륜을 어지럽힐 폐가 생길까 염려되는구나. 내 병 없을 때 속히 저 높은 나무로 옮겨 앉을 생각을 결행하여 내 자손들로 하여금 인현仁賢의 가르침에 젖게 하는 것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학발(하얗게 센 머리털)로 병들어 누워 [鶴髮臥病]

자식을 만리 길에 보내네 [行者萬里]

자식을 만리 길에 보내면 [行者萬里]

어느 때나 돌아오나 [曷月歸矣]

학발로 병을 안았는데 [鶴髮抱病]

해는 서산에 지려하네 [西山日迫]

두 손 모아 하늘에 빌건만 [祝手于天]

하늘은 아득하니 어찌하나 [天何漠漠]

학발로 병 무릅쓰고 [鶴髮扶病]]

일어나려다가 넘어가곤 하네 [或起或踣]

지금도 오히려 이와 같으니 [今尙如斯]

옷자락 떨치고 떠나갔으니 어찌하나 [絶裾何苦]

- 학발시鶴髮詩

 

 

51 조선 성리학의 선구자,

독자적인 조선의 학문을 정립하다

 

이 언 적

 

 

 

 조선 성리학의 선구자, 독자적인 조선의 학문을 정립하다 : 이언적(독락당 계정)

 

 

선생이 살아 계실 때 스스로 깊이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생이 도를 지니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내가 어리석어, 일찍이 벼슬에 나아가 선생을 우러러 보고서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이런 문제를 가지고 깊이 물어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10여 년 전부터 병이 들어 재야에 묻혀 있으면서 하잘 것 없는 것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의지할 데를 찾아서 물을 곳이 없음을 돌아본 후에야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으로 선생의 사람됨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퇴계 이황이 회재에 대해 평한 글

 

오호라,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인현仁賢의 교화를 입었으나 그 학문은 전해지지 않았다. 고려 말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호걸스러운 선비로서 이 도에 뜻이 있고, 세상에서 또한 도학자라 칭송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후세에 칭송을 받더라도 학문의 연원을 징험할 바가 없으며, 후세의 학자들로 하여금 찾고 따르게 할 바가 없어서 지금의 암울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선생은 학문을 주고받은 곳이 없으면서도 스스로 유가의 학문에 힘을 쏟아 어렴풋한 속에서도 날로 드러나고 덕이 행동과 딱 들어맞았으며, 밝게 글로 표현해 후세 사람에게 전해지게 했으니, 우리나라에서 찾아보아도 선생과 짝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 퇴계 이황이 회재에 대한 찬사

 

마음이란 영묘한 것으로, 안으로는 뭇 이치를 갖추고 밖의 온갖 변화에 응한다. 이 마음을 잘 함양하면 천지와 합일하게 된다. 마음을 함양하는 방법은 경敬이다. 경이란, 마음을 오롯하게 하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할 때는 곧 태극이니, 경으로써 마음을 오롯하게 해야 본체가 드러난다. 마음을 어디에 집착하거나 흐트리지 말고 고요히 간직해야 명정한 가운데 대공무사大公無私하게 된다. 천지만물이 제각기 형식을 지키면서 본성을 실현해 나가도록 도우려는 인간의 노력은 실로 경공부의 근본이 된다.

- <양심잠>

 

 

회재 불천위 제사 장소인 무첨당. 조선 중기 건물이며, 보물로 지정돼 있다.

회재 이언적을 제향하고 후진을 교육하기 위해 1572년에 건립한 옥산서원(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의 구인당求仁堂. 1574년 사액賜額을 요청하여 '옥산'이라는 이름과 서책을 하사받았다. '옥산서원玉山書院'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 작품이다.

회재종택 무첨당 대청에서 진행되는 불천위 제사 모습. 일반 제관들은 무첨당 마당에서 침례한다.

 

 

흔들리지 않는 힘이 있어 창졸간이라도 빠른 말과 급한 낯빛을 한 적이 없이, 차분하고 바름靜正으로 스스로를 지켰다. 전주 부윤 시절, 명절을 맞아 민간의 놀이를 하였다. 감사인 모재慕齋 김안국은 정인군자인데도 종종 돌아보고 웃는 일을 면하지 못했는데, 선생은 초연하게 보지 못하는 것같이 했다. 옥당에서 번을 서면서 혹 동료들과 종일토록 서로 대하여도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경을 유지하는 공부가 깊어서이지 애써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 퇴계가 지은 회재 행장 글

 

 

불천위 신주는 일정한 규격과 구조로 만들어진다. 재료는 밤나무. 신주의 앞면에는 불천위 인물의 벼슬과 시호 등을 세로 한 줄로 쓰는 것이 원칙이다. 좌로부터 도자韜藉(덮개)를 씌운 신주, 도자를 벗긴 신주, 신주의 옆모습

불천위 신주를 주독 안에 봉안해 그대로 사당에 모시는 경우도 잇으나 대부분은 감실에 모시고 있다. 감실의 모양이나 크기는 종택별로 다양하다.

보기 드물게 세로 두 줄로 관직을 쓴 정경세 신주(왼쪽) 및 두 부인의 신주.

 

 

 

 

  1. [/footnote]1가 되어서 [君爲完山鳥]
    자식 잃은 슬픔이 아직 안 그쳤는데 [哭子猶未休]
    나는 동문오[footnote]2 [본문으로]
posted by 황영찬
2017. 3. 30. 13:38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12 이연주 시전집(1953-1992)

 

 

 

이연주

2016, 최측의농간

 

이연주

 

1953년  전라북도 군산 출생.

1985년  시 동인 '풀밭' 활동 시작.

1989년  「죽음을 소재로 한 두 가지의 개성 1」외 1편으로

           《월간문학》 신인상 수상.

1991년  《작가세계》 가을호에 「가족사진」외 9편 발표. 정식 등단.

           첫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세계사) 출간.

 

1993년  유고 시집 『속죄양, 유다』(세계사) 출간.

 

차례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

15 겨울 석양
16 길
18 집행자는 편지를 읽을 시간이 없다
19 사람의 고향
20 장마의 시
21 시외전화
22 지리한 대화
24 집단무의식에 관한 한 보고서
25 가나마이신에게
26 가족사진
27 추억 없는 4 19
29 유토피아는 없다
31 위험한 진단
33 눈뜬 장님
35 어떤 길에 대한 추측
37 유한 부인의 걱정
38 비극적 삼각관계
39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40 어떤 행려병자
41 매음녀 1
42 매음녀 3
43 매음녀 4
45 매음녀 5
46 매음녀 6
47 매음녀 7
48 고물상에서의 한때
49 쓸데없는 추억거리 중
50 방화범
51 바다로 가는 유언
52 좌판에 누워
53 네거리에서
54 그렇게, 그저 그렇게
55 누구의 탓도 아닌, 房
56 낙엽이 되기까지
58 헛구역질
59 유배지의 겨울
60 풀어진 길
62 발 작
63 열차는 어디로 가고
64 악몽의 낮과 밤
65 문 밖에서 문 밖으로
66 커피를 마시는 쓰디쓴 시간
67 얕은 무의식의 꿈
68 무꾸리 노래
69 여섯 알의 아티반과 가위눌림의 날들
70 윤 씨
71 모가 난 밤의 공기 속에서
72 잡 초
73 모음의 부드러운 지령 앞에서
74 허공에 매달린 시대
75 난쟁이를 웃다
76 아버지, 11월
77 죽음을 소재로 한 두 가지의 개성 1
78 무엇이 잘못
80 죽음을 소재로 한 두 가지의 개성 2
81 차용된 인생
82 송신탑이 흠씬 젖어버렸을까
83 신생아실 노트
84 외로운 한 증상
86 끌과 망치가 필요한 때
87 마지막 페이지
88 삼촌 편지
89 담배 한 개비처럼
90 라라라, 알 수 없어요
91 고압지대에서 흐리고 한때 비
92 연애에 있어서
93 혼자 가는 뿔
94 불행한 노트
95 다림질하는 여자
96 아름다운 음모
97 폐물놀이
98 이십세기 최고의 행위
100 인큐베이터에서의 휴일
101 현대사적 추억거리
102 욕망의 우환
103 파동의 꼭지점에 와서
105 잠꼬대
107 구덩이 속 아이들의 희미한 느낌
109 네거티브
111 밥통 같은 꿈
113 빵과 나
115 긴다리거미의 주검
117 초록등거미와 거미줄의 마이너스적 관계
119 백치여인의 노래
120 세모여자
121 우리는 끊임없이 주절거림을 완성한다
122 비인칭의 엔트로피
123 출산 에피소드
124 길, 그 십년 후 비 오는 날
125 삼류들의 건배
126 길, 그 십년 후 비 오는 날 다음날

속죄양, 유다

129 익명의 사랑
130 겨울나무가 내 속에서
132 적과의 이별
133 사랑은 햇빛을 엑기스로 뽑아
135 우리라는 합성어로의 환생
137 탄생의 머릿돌에 관한 회상
139 따뜻한 공간이동
140 속죄양, 유다, 그리고 외계인
142 봉숭아 꽃물 들일 때 주검 저 너머에서는
143 성자의 권리 序
144 성자의 권리 1
146 성자의 권리 2
147 성자의 권리 3
149 성자의 권리 4
151 성자의 권리 5
152 성자의 권리 6
154 성자의 권리 7
155 성자의 권리 8
156 성자의 권리 9
158 성자의 권리 10
160 서역
161 제3의 살에게
162 재의 굿놀이
163 함박눈을 훔치다
165 두 개의 나사못을 위하여
167 흡혈귀
168 매맞는 자들의 고도
169 독재자
171 흰 백합꽃
173 우렁달팽이의 꿈
174 몰락에의 사랑
175 만일 누군가가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면
176 최후 사랑법
177 얼음석
178 할머니의 바다
179 무정부주의적 미립자의 고뇌
181 봄날은 간다
182 간증하는 여자
183 점 선 면
185 밤꾀꼬리에게의 고마움
187 사랑의 용병
188 수박을 밑그림으로
189 안개 통과
190 벌레를 불쌍히 여김
191 무덤에서의 기침
194 충격요법을 실험중인 진료실
200 성 마리아의 분만기
204 돌아가는 길
205 즐거운 일기
206 행로와의 이별
207 終 身

동인지 발표작

211 불의 서시
212 물의 사도
213 밀알
214 이 ~ 아 ~ 오
225 남은, 그리고
217 쓰레기 처리장
218 정신
219 동행 일기
220 겨울 강
221 등대
222 詩說 36
223 다시 봄
224 해바라기
225 산을 내려온 배암 1
226 산을 내려온 배암 3
227 산을 내려온 배암 4
228 산을 내려온 배암 5
229 산을 내려온 배암 7
230 산을 내려온 배암 8
231 산을 내려온 배암 9
232 산을 내려온 배암 10
234 산을 내려온 배암 11
235 산을 내려온 배암 12
237 산을 내려온 배암 13

시극

239 끝없는 날의 사벽

 

 

매음녀 1

 

 

팔을 저어 허공을 후벼판다.

온몸으로 벽을 쳐댄다.

퉁, 퉁 ---

반응하는 모질은 소리

사방 벽 철근 뒤에 숨어

날짐승이 낄낄거리며 웃는다.

그녀의 허벅지 밑으로 벌건 눈물이 고인다.

한번의 잠자리 끝에

이렇게 살 바엔, 너는 왜 사느냐고 물었던

사내도 있었다.

이렇게 살 바엔 ---

왜 살아야 하는지 그녀도 모른다.

쥐새끼들이 천장을 갉아댄다.

바퀴벌레와 옴벌레들이 옷가지들 속에서

자유롭게 죽어가거나 알을 깐다.

흐트러진 이부자리를 들추고 그녀는 매일 아침

자신의 시신을 내다버린다. 무서울 것이 없어져버린 세상.

철근 뒤에 숨어사는 날짐승이

그 시신을 먹는다.

정신병자가 되어 감금되는 일이 구원이라면

시궁창을 저벅거리는 다 떨어진 누더기의 삶은 ……

아으, 모질은 바람.

 

 

매음녀 4

 

 

함박눈 내린다.

소요산 기슭 하얀 벽돌 집으로

그녀는 관공서 지프에 실려서 간다.

 

달아오른 한 대의 석유 난로를 지나

진찰대 옆에서 익숙하게 아랫도리를 벗는다.

양다리가 벌려지고

고름 섞인 누런 체액이 면봉에 둘둘 감겨

유리관 속에 담아진다.

꽝꽝 얼어붙은 창 바깥에서

흠뻑 눈을 뒤집어쓴 나무 잔가지들이 키들키들

그녀를 웃는다.

 

반쯤 부서진 문짝을 박살내고 아버지가 집을 나가던 날

그날도 함박눈 내렸다.

 

검진실, 이층 계단을 오르며

그녀의 마르고 주린 손가락들은 호주머니 속에서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찾아 꼬물거린다.

한때는 검은 머리칼 찰지던 그녀.

 

 

바다로 가는 유언

 

 

모든 폐기물들이 나와 함께

하수구를 흘러 내려간다

수런거리는 날들을, 내가 나를 덮고

온갖 찌꺼기들에 뒤섞여 유언 하나를 남긴다

땅 위에서는 아득히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사람들의 아우성

벽을 쳐대는 희미한 혼령의 소리도 들려왔다

잃는다는 것을 모른다, 나는 이미

바다의 틈 사이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죽은 쥐들과 살육당한 동물들의 뼈다귀와

독한 냄새를 피우는 배설물들과

나는 강을 건널 것이며

물고기들은 바다로 흘러 들어온

지상의 폐기물들의 살을 먹는 것이다

바다는 요니의 자궁

 

문둥이가 와서 그 물에 손과 발을 씻었더니

그 병이 나았다 하더라.

 

 

낙엽이 되기까지

 

 

어젯밤에는 머리털이 한뭉치 빠졌다.

아침엔 잠에서 깨어보니 이가 하난 빠져 있다.

 

도둑고양이가 털갈이를 위해서

벌써 냉골의 나의 방

문짝을 발톱으로 긁고 있다.

 

나무 십자가를 내린다.

바삭거리는 종려가지에서 이파리들을 훑어내고

나는 잠자리로 다시 돌아간다. 커튼은 잘 닫혀 있는지

 

어머니, 내 머리맡에서 유령처럼

여름날에 따두었던 탱자알로 즙을 만든다.

알레르기 돋은 살을 문지르고 있다.

「내 탓이었어요」

 

모두가 습관처럼 어깨를 들먹이고

등불에서 빛을 훔쳐낸 자들은 고해소로 간다.

몇십 알의 알약과 두어 병의 쥐약과

목걸대로 이용할 넥타이와, 유산으로 남기는

각자의 몫을 들고

 

바람은 액자의 틀을 벗긴다.

무수한 나뭇잎들이 떨어질 것이다.

엄숙한 햇살 한 점 밑에

나를 빠져나온 내가 뒹굴고 있다.

 

 

신생아실 노트

 

 

   방치된 탄생이 관 같은 요람 위에 누워 있다. 푸줏간의 비릿한 냄새, 온갖 경험을 거쳐 늙은이의 침묵에 이르기까지 누가 저것들을 그 먼 곳까지 인도할 수 있으리. 나는 세면대 가득 물을 받아 손을 씻는다.

   이곳은 불을 끄면 그대로 암흑이다. 어제 태어난 아이도 자궁 감자로 끄집어냈지 않나, 모두가 그렇다. 아니면 마취제를 전신에 걸고 절개수술로써 태어남의 시분초를 알리는 것이다. 전쟁터에 일개 보병으로 올려지는 시간이지. 나는 어린것 하나를 들어올려 벌써 노랗게 곪아가는 그 얼굴의 반점들을 지켜본다.

   이것 봐, 총과 칼로써 네 몸을 무장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 문제는 맨몸으로 기도문 한 구절 없이 버티는 용기와 저항의 힘이란다. 기도문이란 다만 죽은 자들을 위한 문장일 뿐이니까 …… 나는 알코올 솜으로 정성들여 손바닥을 문지른다. 제발 잊지 말아, 저 전깃불이 얼마나 큰 어둠을 감추고 있는지 ……

 

 

외로운 한 증상

 

 

   지하도 계단을 오르던 해직 근로자 오인환 씨는 갑자기 코끝을 찌르는 듯한 이상한 냄새 때문에 킁킁거리다가 무슨 냄새일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두리번거리면서 지하도 계단을 빶나왔다.

   버스를 타고 덜그럭거리면서 종로통을 지날 때 그 역겨운 냄새가 다시 나는 듯하여 도대체 이놈의 냄새, 하며 눈살을 오므려 잡고 손바닥으로 쓱쓱 코를 문지르면서 돌아왔다.

   잠결에 또 그 냄새를 느낀 오인환 씨는 반쯤 꿈속에서 왜 그럴까, 이상도 하지, 어디서 나는 무슨 냄새일까, 마른 새우처럼 우등거린 채 다시 잠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옷장 뒤 어디 옴팡한 구석에서 나는 것 같은, 거리의 골목골목에서 무엇이 물컥물컥 썩고 있는 것 같은 냄새 때문에,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기분이 나빠 견딜 수가 없구나.

   술을 마시면 술잔에서 그 냄새가 나는 듯, 밥을 먹을 땐 구더기가 꼬물거리는 것 같아 숟가락을 던지듯 팽개치고 벌렁 드러누우면 요 때기와 이불에서, 그는 머리를 감싸쥐고 마루 위를 덜컹덜컹 서성거렸다.

   마침내 냉장고에서 야채들이 썩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생선토막들이 줄줄 물을 흘리며 흐물텅 녹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후더분한 살 냄새가, 퀘퀘한 땀 냄새가 집안 곳곳에 배어가기 시작했다.

   옷장에서 옷가지들이 신발장에서 신발들이 살 아래 지방층 밑에 미세한 신경조직들이 늙은 창녀이 젖퉁이마냥 물컹거려 …… 냉장고를 열어보고 아, 호박이 썩고 잇구나, 냄비뚜껑을 열며 응, 생선이 썩고 있어, 오물더미 위에 앉아 오인환 씨는 젠장, 썩어가는 냄새는 정말 지독하군.

 

 

길, 그 십년 후 비 오는 날

 

 

빗물받이 홈통 속을 흘러 내려간다

날은 몹시 어둡고

「넌 끝장난 거야」

번개를 동반한 우뢰가 불안한 내일을 알린다

까딱하면 머리통이 깨질 수도

어깻죽 하나가 달아날 수도 있다

거꾸로 내리꽂히듯 나는 쿠당 쾅쾅 주르륵 죽,

몸을 가눌 수가 없구나

어쩐담,

혈액은 이미 늙었고 쓰다 만 기록물들

차갑게 식은 내 살을 떠나고 있다

빈대며 벼룩, 허연 서캐침들

이제 공짜의 내가 태어나는 시간이다

전도되어간다

주정뱅이에게로 장돌뱅이, 거렁뱅이에게로

한번은 방범창틀에 모가지 걸어 죽었었던 또 한번은

그 --- 다락방

오냐, 줄잣대를 버리마

요란한 눈물 피튀기듯 우릉, 우릉, 쾅! 쾅, 쾅,

빗줄기

허공에 매인 측량줄을 끊어 땅에 던진다.

 

 

posted by 황영찬
2017. 3. 23. 12:31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11 음악의 재발견

 

 

 

 

김형찬 지음

2016, score

 

대야도서관

SB112087

 

670.4

김94ㅇ

 

과학 + 인문학의 융합적 시각으로 본 음악이야기

 

지금껏 나를 가장 흥분하게 만드는 일 중의 하나는 바로 노래가 떠오를 때까지 아무데도 가지 않고 앉아서 기타나 피아노를 치는 것이다.

 

내가 만약 물리학자가 아니었다면, 아마 음악가가되었을 거야.

나는 종종 음악 속에서 생각하고 음악 속 백일몽에서 살곤 하지.

 

                                                                     김형찬

글쓴이  김형찬 한겨레 기자는 한겨레 스페셜콘텐츠 + '앱으로 여는 음악 세상' 필자, 네이버 전문기자칼럼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필자로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 음악치료특강 15주 과정 이수 뒤 음악치료 상담지도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정규 음반 1집 '기억해', 2집 '연애의 고고학'을 발표한 작사가, 작곡가, 가수로서 음악을 통해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CONTENTS

 

  1 >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 작곡가, 비틀즈 넘어설까?
  2 >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두 얼굴
  3 > 음악의 주파수와 사람의 주파수
  4 > 음악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5 > 우리 몸 속에도 음악들이 있다
  6 > 물과 모래도 음악에 맞춰 표정 짓고 춤을 춘다
  7 > 최고의 물리학자를 움직인 최고의 음악가
  8 > 스티브 잡스를 자극한 음악들
  9 > 70세 한참 넘은 폴 매카트니가 '뇌섹남'인 이유
10 > '악보문맹' 폴 매카트니의 작곡법은?
11 > 우주 블랙홀들이 부르는 '3중창 음악'
12 > 별 사이 공간에도 '음악'이 흐른다
13 > 대통령들의 악기와 '음악과학 신화'
14 > 대통령의 노래 취향, 정치색과 얼마나 닮았을까?
15 > 음치라도 가수, 아니 래퍼가 충분히 될 수 있는 이유
16 > 랩은 음악적 말하기일까, 말로 하는 음악일까
17 > '창조적 소음'을 들으면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18 > 뇌과학으로 본 시와 음악의 '혈연관계'
19 > 미술+음악 '투잡' 지드래곤의 창조성 높일까?
20 > 박태환 등 운동선수들이 경기 전 음악을 듣는 이유는?
21 > 합창과 혼자 부르는 노래는 효과가 다르다
22 > 음계는 개성이다
23 > 불한당들의 세계사와 불온한 대리코드들
24 > 노래와 시와 아름다움의 인식론
25 > 시인의 자작곡 들으면서 식물처럼 자라볼까
26 > 시인이 사랑한 식물들은 그의 시와 노래를 들을 청력이 있었다?
27 > 우범지역에서 클래식을 틀면 범죄가 줄어든다고?
28 > 들리는 음악에 따라 사람 인상도 달라진다?
29 > 음의 반복이 없으면 음악도 없는 것일까?
30 > '아리랑 정신'과 리메이크
31 > 요즘 히트곡들의 가사가 형편없는(?) 까닭은
32 > 신해철의 '음악 유산'
33 > 사이먼 앤 가펑클이 정치적 노래를 불렀다?
34 > 유재하의 '애드 나인(add9) 코드'와 문화 융합
35 > 오바마 대통령과 '어메이징 뮤직'
36 > 사람을 감동하게 만드는 '음악의 법칙'
37 > 크리스마스 캐롤과 그 무엇들의 역사
38 > 새해맞이 노래들과 그 어떤 것들의 역사
39 > '퍼퓸'의 3D 음악공연과 예술철학
40 > 가사냐 멜로디냐
41 > 기타는 도대체 왜 치려고 하는 걸까요?
42 > 음악과 시와 무정부주의적 인식론
43 > 노래하는 우뇌와 말하는 좌뇌
44 > '제2의 강남스타일' 만들 방법은?
45 > 한 음으로만 노래하기, 한 음으로만 말하기,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
46 > 음악과학으로 본 '토토가'의 인기
47 > 사라 브라이트만과 '실험미학'
48 > 존 레논처럼 자신의 목소리가 듣기 싫다구요?
49 > 음악과 다윈의 진화론
50 > 가상악기(VSTi)에 담는 '국악 한류'와 문화상대주의
51 > 아베 조롱한 일본 밴드의 '러브 코리아'
52 > 우연과 필연의 음악
53 > 사람과 동물의 '음악적 말하기'
54 > 서태지의 신비주의와 종교적 신비주의
55 > 한대수의 '물 좀 주소'와 음악과학 실험
56 > 코끼리도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를 좋아한다
57 > 푸틴의 아스퍼거 증후군(?)과 음악
58 > '국악 교가' 학생들 뇌에 어떤 영향 줄까?
59 > '운동권 출신' 밥 딜런이 36번째 앨범서 '보수'의 노래를 부른 까닭
60 > '소리의 프레임' 가지고 휴가 떠나볼까
61 > '썸' 타는 목소리의 과학
62 > '개인적 민간 음악과학'으로 감동 만들어볼까
63 > 록, 헤비메탈 광팬들이 위험한 존재라고?
64 > 광복 70돌의 숫자와 음악상징
65 > 완전히 완벽하지 않아서 음악은 아름답다
66 > '싸이'의 노래 리듬에 맞춰 춤추는 앵무새
67 > 내림 마장조의 뇌과학으로 본 '우리의 소원'
68 > 안치환의 부부애와 '과학 민주주의'
69 > 박치를 위한 '음악의 신'은 죽지 않았다

 

"날 붙들어 매어놓을 줄이 없다네

나를 안달복달하게 할 수도, 얼굴 찡그리게 할 수도 없지

한때는 그런 줄이 있었지만, 지금 난 자유의 몸이라네

나는 줄에 묶여 있지 않다네"

-영화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인공지능 울트론이 부른 피노키오의 노래

 

2015년 '우주 중력파 패턴'인 것으로 발표되었다가 '우주 먼지'로 인한 오류라는 것이 안정된 이미지.(출처 :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

 

 

(1)바흐, 모짜르트, 그리고 옛날 이탈리아와 영국의 작곡가들을 좋아한다.슈베르트도 좋지만 베토벤은 그들에 비해 조금 덜하다.

(1) Bach, Mozart, and some old Italian and English composers are my favorites in music. Beethoven considerably less -- but certainly Schubert.

 

(2)바흐와 모짜르트 중 누가 더 내게 의미 있는지 말하기는 불가능하다.난 음악에서 논리를 추구하진 않는다. 난 음악 전체에 대해 상당히 직관적이다. 음악 이론은 모른다.난 직관적으로 그 내부의 통일성을 파악할 수 없는 작품은 좋아하지 않는다.

(2) It is impossible for me to say whether Bach or Mozart means more to me. In music I do not look for logic. I am quite intuitive on the whole and know no theories. I never like a work if I cannot intuitively grasp its inner unity (architecture).

 

(3)난 항상 헨델이 훌륭하고 심지어 완벽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에게 어떤 종류의 피상적인 점도 느낀다.베토벤은 너무 개인적이고 내게 너무 드라마틱 하다.

 

(3) I always feel that Handel is good -- even perfect -- but that he has a certain shallowness. Beethoven is for me too dramatic and too personal.

 

(4)슈베르트는 감정을 표현하는 최상의 능력 때문에 좋아한다.멜로디를 만드는 놀라운 힘을 가졌다. 하지만 그의 다른 대작들에서는 구성적 매력이 부족해 몰입에 방해를 받는다.

 

(4) Schubert is one of my favorites because of his superlative ability to express emotion and his enormous powers of melodic invention. But in his larger works I am disturbed by a certain lack of architectonics [German: "Architektonik"].

 

(5)슈만의 소품들은 독창성과 감정이 풍부해서 매우 매혹적이다.하지만 커다란 형식미가 부족한 점은 좀 아쉽다. 멘델스존은 상당한 재능이 있지만 종종 식상함을 주는 규정하기 힘든 피상성이 있다.

(5) Schumann is attractive to me in his smaller works because of their originality and richness of feeling, but his lack of formal greatness prevents my full enjoyment. In Mendelssohn I perceive considerable talent but an indefinable lack of depth that often leads to banality.

 

(6)브람스의 독일가곡과 실내악들에는 아주 중요한 구조미가 있다.하지만 그의 대부분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속깊은 호소력을 느끼지 못한다. 왜 그렇게 작곡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6) I find a few lieder and chamber works by Brahms truly signficant, also in their structure. But most of his works have for me no inner persuasiveness. I do not understand why it was necessary to write them.

 

(7)바그너의 독창성을 존경한다.하지만 데카당스로서의 구조미가 결핍돼 있다.거기에 더해 그의 음악적인 개성은 내겐 형언할 수 없이 너무 공격적이어서, 그의 작품 대부분을 들을때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7) I admire Wagner's inventiveness, but I see his lack of architectural structure as decadence. Moreover, to me his musical personality is indescribably offensive so that for the most part I can listen to him only with disgust.

 

(8)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축복받았다.하지만 내부의 진실성이 없이 외부 효과에만 관심이 있다. 내가 일반적인 근대음악에 애정이 없다고 얘기할 순 없다. 드뷔시는 섬세한 색채를 가지고 있지만 구조미가 부족하다. 난 그런 종류에 대해선 열광하지 못한다.

 

(8) I feel that [Richard] Strauss is gifted, but without inner truth and concerned only with outside effects. I cannot say that I care nothing for modern music in general. I feel that Debussy is delicately colorful but shows a poverty of structure. I cannot work up great enthusiasm for something of that sort.

 

"내 사업의 롤모델은 바로 비틀즈다. 네 명으로 이뤄진 비틀즈는 각자 다른 성향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서로간의 균형을 아주 잘 맞췄기 때문에 비틀즈라는 그룹 전체는 단순히 그들 개개인들을 합쳐놓은 것보다 훨씬 더 위대햇다. 이게 바로 내가 사업을 보는 관점이다. 사업에서 위대한 일은 결코 한 사람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 위대한 일을 이루는 것은 바로 팀이다."

- 스티브 잡스

 

"나의 롤모델 중 하나는 밥 딜런이다. 나는 커가면서 그의 노래와 가사들을 배웠고 그가 단 한 번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모습을 보아왔다. 실패를 계속 감수할 수 있어야 진정한 예술가이다. 딜런은 항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이러한 아티스트들의 길이 바로 애플이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 스티브 잡스

 

"종교란 어떤 특별한 가르침이 아니다. 종교는 어디에나 있다. 특별한 가르침에 관한 모든 것들을 잊어버려라.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지 묻지 말라. 가르침은 매순간 속에 있다. 모든 존재 안에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가르침이다."

- 슌류 스즈키

 

지금껏 나를 가장 흥분하게 만드는 일 중의 하나는 바로 노래가 떠오를 때까지 아무데도 가지 않고 앉아서 기타나 피아노를 치는 것이다."

- 폴 매카트니

 

"테크놀로지는 계속해서 발전해갑니다. 테크놀로지 덕분에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그림을 더 편하게 그리고,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더 쉽게 말할 수 잇게 되는 것입니다."

- 조지 루카스

 

"우리 집에는

매일 나 홀로 있었지                                               엄마 아빠 두 누나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                                           나는 막둥이, 귀염둥이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그날의 나를 기억하네

"양화대교"                                                             기억하네

아침이면 머리맡에 놓인                                         행복하자

별사탕에 라면땅에                                                 우리 행복하자

새벽마다 퇴근하신 아버지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주머니를 기다리던                                                 행복하자 행복하자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하네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 자이언티 '양화대교' 중에서

 

"오동나무 꽆으로 불 밝힌 이곳 첫여름이 그립지 아니한가?

어린 나그네 꿈이 시시로 파랑새가 되어오리니

나무 밑으로 가나 책상 턱에 이마를 고일 때나

네가 남기고 간 기억만이 소근소근거리는구나

모처럼만에 날아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어

가여운 글자마다 먼 황해가 남실거리나니

나는 갈매기 같은 종선을 한창 치달리고 있다

(하략)"

- 정지용의 시 '오월 소식' 중에서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내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 알 것입니다

홀로 외로니

그리고 모든 즐거움을 떠나서

나는 높은 하늘 저쪽을 바라다봅니다

아!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는 이는 먼 곳에 있네

눈앞이 어지럽습니다, 애간장이 타들어갑니다,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내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 알 것입니다"

- 독일 작곡가 슈베르트, 슈만, 볼프가 가곡으로 만든 괴테의 시 '미뇽의 노래' 중에서

 

"내 불쌍한 심장은 한 마리 올빼미

사람들이 못을 박고 빼고 또 못을 박네

피, 열정, 올빼미는 한계점에 이르네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나는 그들을 고용하네"

- 프랑스 작곡가 루이 뒤레가 곡을 붙인 아폴리네르의 초현실주의 시 '올빼미'

 

"아름다운 5월에,

나의 눈물에서 피어나는 것은,

장미, 백합, 비둘기, 태양,

나 그대의 눈을 바라보면,

내 영혼을 담고 싶네

(하략)"

- 독일 작곡가 슈만이 하이네의 시 '노래의 책'에서 16편의 시를 가사로 뽑아 작곡한 연가곡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중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비주얼은 쇼크

내 감각은 소문난 꾼 앞서가는 촉

남들보다는 빠른 걸음

차원이 다른 젊음 얼음얼음얼음

홀드 업(HOLD UP) 나나나나나

네 심장 소리에 맞게 뛰기 시작해

막이 끝날 때까지 예(YEAH)

아이 캔트 베이비 돈트 스탑 디스(I CAN'T BABY DON'T STOP THIS)"

- 지드래곤 작사 · 빅뱅 노래 '판타스틱 베이비(Fantastic baby)' 중에서

 

2015년 서울시립미술관 대중음악스타 기획전 지드래곤의 '피스마이너스 원'에 전시된 작품 중에서 거울을 배경으로 창을 든 천사와 밑에 깔린 악마의 상으로 지드래곤의 이중적 면모를 형상화한 권오상 작가의 사진 조각상(한겨레 자료사진)

 

"오 친구여, 이런 음색이 아니라

좀 더 유쾌하고 기쁜 음색들로                    모든 사람들은 형제가 되네

노래하지 않으려나                                    그대의 부드러운 날갯짓이

환희! 환희!                                               반짝이는 곳

환희, 신들의 아름다운 불꽃,                      친구의 친구가 된 자들이여

낙원 '엘리시움'의 딸이여                          사랑스런 여인을 얻은 자들이여

우리는 불꽃에 취해                                   다 함께 기뻐하세"

천국 같은 신성한 곳으로 가네

그대의 신비로운 힘은

관습이 엄격히 나눠놓은 것들을

다시 하나로 합쳐놓네

-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합창' 중에서

 

"노래 속으로 날 제대로 인도한 것은 엄마였습니다. 엄마는 내 목소리에 뭔가 있다는 것을 아셨죠. 내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느끼셨으니까요. 그 몇 년 전 내가 12살이었을 때 합창단에 들어가라고 등 떠민 사람도 엄마였죠. 합창단과 함께 시작해라. 그리고 너를 사로잡는 지점을 바라보아라 말씀하신 엄마의 말씀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 수전 보일(Susan Boyle) - 자폐 증상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딛고 세계적인 가수가 된 사람

 

"아주 추운 밤이면 나는 이불 속에서 해바라기 씨앗처럼 동그랗게 잠을 잤다. 어머니 아주 큰 꽃을 보여드릴까요?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서뜨리는 법을 배웠어요. 아버지의 꽃 모종을요. 보세요 어머니. 제일 긴 밤 뒤에 비로소 찾아오는 우리들의 환한 가계(家系)를. 봐요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저 동지9冬至)의 불빛 불빛 불빛."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의 시 '빈집'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 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 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겅러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 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銃身)을 겨눈다.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 기형도의 시 '안개'

 

"이제는 돌아와 조용히 살으리

지난날 괴로움 모두 잊고 살으리

아아아 아아 고목나무 가지에

흐르는 얼굴 위에 바람이 분다

아아아아

아무도 없이 살으리..."

- 기형도 시인이 작사 · 작곡한 노래 '고목' 중에서

 

"허리케인의 눈, 네 자신의 휘감아도는 소리를 들어라.

세상은 제 자신의 필요에 봉사한다. 네 자신의 욕구를 잘못 대하지 말라."

- 미국의 록밴드 R.E.M의 노래 '잇츠 디 엔드 오브 더 월드 에즈 위 노우 잇' 중에서

 

"레레 레레레옹

레레레 레레레옹 레레레옹

레레 레레레 레레

눈에 띄게 흰 피부에 입술은 피빨강

꼿꼿하게 핀 허리에 새침한 똑단발  (중략)

쉐이프 오브 마이 하트(Shape Of My Heart)

난 나잇값을 떼먹은 남자

콜미(Call Me) 레옹 Call Me 레옹 Call Me 레옹

Call Me Call Call Call Call Call Call Me   (중략)

왜 그렇게 무뚝뚝하나요

상냥하게 좀 해줄래요, 마이(my) 레옹?

나도 어디서 꿀리진 않아

내 초이스(Choice)는 틀리지 않아

아임(I'm) 마, 마틸다 I'm 마, 마 마틸다

I'm 마, 마틸다 I'm 마 I'm I'm 마 I'm 마     (하략)"

- 2015년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서 박명수, 아이유가 부른 노래 '레옹' 중에서

 

"조선인들에게 아리랑은 쌀과 같은 것입니다. 다른 노래들은 이 노래에 비하면 드물게 불리는 편이죠.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이 아리랑을 들을 수 있습니다."

 

"조선인들은 즉흥곡의 명수입니다. 완성된 곡이나 음계 없이도 노래를 아주 잘합니다."

- 1896년 '한국의 목소리 음악'이란 논문에 아리랑의 한 종류인 '문경새재아리랑'을 서양식 악보로 처음 채보해 실은 미국인 선교사 H. B. 허버트 박사의 말 중에서

 

윤도현밴드가 2002년 9월 평양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아리랑'을 부르던 윤씨가 눈물을 보이자, 평양 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정을 나눴다. (한겨레 자료사진)

 

"기브 미 댓, 드롭 댓(Give MMe That, Drop That)

기브 미 댓(Give Me That) 맙소사

아이 러브 잇(I Love It) Love It Love It 맙소사

유 러브 잇(You Love It) Love It Love It

예 아임 레디(eah I'm Ready) 맙소사

씬스(Since) 88 태어날 때부터

에브리데이(Everyday)가 우린 버쓰데이(Birthday)

아이 고 하드(I Go Hard) 신이 날 땐 아무도 날 심판하지 못해 절대

양, 옆, 앞, 뒤 다 줄 맞춰 내가 지휘할 테니까

교양 없이 듣는 예능 심포니(Symphony) 오늘은 토요일

무한대를 그려봐 렛츠고(Let's Go)

붐(Boom) Boom Boom 무슨 말이 필요해

셧 업 앤드(Shut Up Annd)

드롭(Drop) Drop Drop 더 베이스(The Bass)

-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가요제에서 황광희, 태양, 지드래곤이 노래한 '맙소사' 중에서

 

"당신은 춤출 수 있죠 자이브를 출 수 있어요

당신의 인생에서 멋진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저 소녀를 봐요 저 모습을

춤추는 여왕에 빠져 보세요

금요일 밤 불빛은 낮게 비추는데

갈 곳을 찾아봐요

누군가 신나는 음악을 틀고 있는 곳,

스윙춤을 추는 곳

당신은 왕을 찾으려 들어옵니다

누구라도 왕이 될 수 있어요

(하략)"

- 아바 '댄싱 퀸' 중에서

 

"놀라운 은총은 이 얼마나 감미롭게 들리는지

그 소리는 나와 같은 몹쓸 사람도 구원하였습니다.

나는 볼 수 없었지만 이제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은총은 나의 마음에 두려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의 모든 두려움을 걷어내 주었죠"

- 영국 성공회 사제 존 뉴턴이 과거 흑인 노예 학대를 참회하며 가사를 쓴 것으로 알려진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 중에서

 

"행복한 새해가 되길

행복한 새해가 되길

우리 모두가 꿈을 갖게 해주길

모든 이웃이 친구인 세상이 올 거라는

행복한 새해가 되길

행복한 새해가 되길

우리 모두 희망을 갖고

우리의 뜻이 시도될 수 있기를

그렇지 않으면 우린 누워 죽은 것과 같아요"

- 아바의 노래 '해피 뉴 이어' 중에서

 

"바로 어제 파티에 갔었지

새해를 제대로 맞이하려 간 거였지

오늘 아침 깨어보니

어제 저녁 내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네

하지만 아직도 그 기분 그대로 느끼네

이제 곧 신나는 새해가 오네

멋진 새해

오, 멋진 새해가 틀림없어

신나는 새해"

- 이글스의 노래 '펑키 뉴 이어' 중에서

 

"새해에는 모든 것이 조용하네

하얀 세상엔 뭔가 이뤄지고 있네

난 그대와 함께이고 싶어

밤이나 낮이나 그대와 있고 싶어

새해엔 그 무엇도 변치 않네

새해에는

난 그대와 다시 있게 될 거야

난 그대와 다시 있게 될 거야

(중략)

신문은 말하고, 말하지

이것이 진실, 진실이라고...

우린 헤쳐나갈 수 있어

비록 둘로 나뉘었어도

우린 하나가 될 수 있어"

- U2의 노래 '뉴 이어스 데이' 중에서

 

"주중에 만약 너를 못 본다면

창문으로 네 모습을 볼 수 없다면

다음에 전화로 얘기 나눌 수 없다면

늦가을에도 널 보지 못한다면

길에서라도 널 보고 싶구나

왜 돌아오지 않니? 물어본다

널 꼭 보고 싶구나 내 사랑

왜 켈트의 새해에 돌아오지 않니?

켈트의 새해에"

- 밴 모리슨의 노래 '켈틱 뉴 아이' 중에서

 

"저 멀리 있는 너에게 보내고 싶어

그래, 이건 틀림없는 하나의 이야기

내 기도와도 같은

이리 와, 별빛 켜진 하늘을 보며 가슴을 열어

기도하듯 노래하자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

- 퍼퓸 '스토리' 중에서

 

"거의 천국 같은 웨스트 버지니아 / 푸르른 리즈 산맥 / 쉐난도어 강 / 그 곳의 삶은 오래됐어요 / 하지만 산보다는 어리죠 / 산들바람처럼 자라고 있어요 / 나를 시골길 집으로 데려다 줘요 / 내가 있어야 할 그곳으로 / 웨스트 버지니아 엄마 같은 산 / 집으로 데려다 줘요 시골길로 / 나의 모든 추억들은 그녀 곁을 맴돌고 있어요"

- 존 덴버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Take me home country road)' 중에서

 

"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을 알긴 할까

힘든 일은 왜 한번에 일어날까

나에게 실망한 하루

눈물이 보이기 싫어 의미 없이 밤 하늘만 바라봐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슬픔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아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빛이 잇다고 분명 있다고

믿었던 길마저 흐릿해져 점점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수고했어 수고했어 오늘도"

- 옥상달빛 '수고했어, 오늘도' 중에서

 

나는 별아저씨                                             어머니이신 침묵

별아 나를 삼촌이라 불러다오                       언어의 하느님이신 침묵의

별아 나는 너의 삼촌                                    돔(Dome) 아래서

나는 별아저씨                                             나는 예배한다

나는 바람남편                                             우리의 生은 침묵

바람아 나를 서방이라고 불러다오                 우리의 죽음은 말의 시작

너와 나는 마음이 아주 잘 맞아                      이 천하 못된 사랑을 보아라

나는 바람남편이지                                       나는 별아저씨

나는 그리고 침묵의 아들                              바람남편이지

- 정현종의 시 '나는 별아저씨'

 

A는 흑색, E는 백색, I는 홍색, U는 녹색, O는 남색

모음이며 네 잠재의 탄생을 언젠가는 말하리라

A, 악취 냄새 나는 둘레를 소리내어 나르는

눈부신 파리의 털 섞인 검은 코르셋

그늘진 항구, E, 안개와 천막의 백색

거만한 얼음의 창날, 하이얀 왕자, 꽃 모습의 떨림

I, 주홍색, 토해낸 피, 회개의 도취련가

아니면 분노 속의 아름다운 입술의 웃음이런가

U, 천체의 주기, 한바다의 푸른 요람

가축들이 흩어져 있는 목장의 평화

연금술을 연구하는 넓은 이마에 그어지는 잔주름살

O, 기괴한 날카로운 비명이 찬 나팔소리려니

온 누리와 천사들을 꿰뚫는 침묵

오오, 오메가! 신의 시선의 보랏빛 광선

- 아르튀르 랭보의 시 '모음(母音)'

 

"지치면 지는 겁니다

미치면 이기는 겁니다."

 

"삼독해야 이루어집니다.

삼독이란 지독, 중독, 고독입니다.

지독하게 중독되어 고독한 길을 가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기회가 오게 됩니다."

 

"시대와 타이밍이 절묘하게 합쳐진 느낌이죠.

저의 성공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타이밍을 잡았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기회를 후배 가수들에게 나눠줄 겁니다.

문화강국 대한민국을 위해서요."

- '국제가수' 싸이의 말들 중에서

 

"여기 있는 이 작은 삼바는 한 개의 음만으로 만들어졌죠

다른 음들도 나올 거지만 베이스는 하나뿐이죠

(중략)

이제 나는 내 음으로 돌아왔어요

마치 내가 그대에게 돌아가듯이

이 한 음만 가지고 이야기 할 거예요

마치 내가 한결같이 그대를 좋아하듯이"

-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원 노트 삼바(one-note samba。 한 개의 음으로 만든 삼바)'

 

"누구나 민간 부문에서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합니다.

저는 분명히 음악인이고 또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실험'들 중의 하나가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고 또 할 수 있다는 그 생각에 스스로

도움을 받는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내가 무중력 상태에서

어떻게 노래하는 지 보게 될 것입니다."

- 사라 브라이트만

 

서울시 정신보건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마음터치(http://mindspa.kr/)' 프로그램

 

문화는 시공간에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이 다양성은 인류를 구성하는 집단과

사회의 정체성과 독창성을 구현한다. 생태다양성이 자연에 필요한 것처럼

교류, 혁신, 창조성의 근원으로서 문화다양성은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다양성은 인류의 공동 유산이며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한 혜택으로서 인식하고 확인해야 한다

- 2001년 11월 2일 프랑스 파리 제31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한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선언 제1조

 

"(이 괄호 안의 진술은 증명할 수 없다)

만약에 위 문장이 옳다면, 그것은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되므로, 그 체계는 완전한 것일 수 없다.

이 문장이 거짓이라면, 그것은 거짓이지만 증명할 수 있는 명제가 되므로, 그 체계는 모순이 된다."

- '수학의 세계' / 박세희 / 서울대학교출판부 인용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국악(Gugak)' 앱들

'국악' 앱 중 해금

'국악' 앱 중 편경

 

"우리 집에서 '치게(찌개를 일본식으로 발음) 안주에 완인 한 잔

김치의 맛은 '오모니'(어머니를 일본식으로 발음)의 상징

근사하잖아, 그렇지 않아?

정겹잖아, 그렇지

왜 그럴까, 고향 같은 느낌

'쵸고리'(저고리를 일본식으로 발음) 소매의 멋진 선

(중략)

자, '오모니'가 말씀하신 아름다운 러브 코리아

(중략)

브루코기(불고기를 일본식으로 발음) 향기 나느 네온사인

(중략)

자, '아보지'(아버지를 일본식으로 발음)도 우셨던 언젠가의 러브 코리아

(중략)

'한그루'(한글을 일본식으로 발음)도 읽는 성모 마리아

(중략)

사랑을 위하여 마이 베이비

안뇬하세요(안녕하세요를 일본식으로 발음)"

- 사잔 오루 스타즈의 노래 '러브 코리아' 중에서

 

"이 나라가 평화롭다고 누가 단정했나

사람들의 눈물이 미르지도 않았는데

미국의 우산 아래

꿈에서도 보았네

국민들을 내팽개친 전쟁 뒤에

푸른 달이 울고 있네

잊어서는 안 될 것들도 있네

사랑을 심어보자 이 섬에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이 나라가 평화롭다고 누가 단정했나

더렵혀진 내가 몸의 죄를 없애기 위해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어째서 거부하나?

이웃해 있는 군인이여

(하략)"

- 서잔 오루 스타즈의 노래 '평화의 류큐' 중에서

 

"아무 생각 없이 본 뉴스에서             그걸 제일 알고 싶은데

이웃나라 사람이 화를 냈다               왜 그렇게 돼버리나

지금까지 아무리 대화를 해도            (중략)

서로서로의 주장은 바뀌지 않는다     이 훌륭한 지구에 태어나

(중략)                                             슬픈 과거도 어리석은 행위도

교과서는 현대사로                           인간은 왜 잊어버리나

넘어가기 전에 수업 끝                      사랑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요"

- 사잔 오루 스타즈의 '평화와 하이라이트' 중에서

 

"지금 나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가슴을 데우는 어머니의 말씀

젊음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자장가를 부르면서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

굳게 맹세한 그 여름날

아직 아물지 않는 상처를 품고

먼 길을 같이 걸어가보자

슬프게 푸른 하늘

잊기 힘든 얼굴과 얼굴

평화의 종이 울린다

그 소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건 바로 그대"

- 사잔 오루 스타즈의 '평화의 종이 울린다' 중에서

 

저 드높이 빼어난 이여

개울 소리는 법문이 되고 산은 법신이 되어

비로자나불의 게송을 누설하니

돌사람이 이 소식을 세상에 전해주네

- 서산 청허 스님의 선시 '선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람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아! 가겠소 난 가겠소 저 언덕 위로 넘어가겠소

여행 도중에 처녀 만나본다면 난 살겟소 같이 살겠소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그 비만 온다면 나는 일어나리

아! 그러나 비는 안오네"

- 한대수 '물 좀 주소'

 

"프레임은 생각의 구조입니다. 우리 두뇌 속에 있는 물질적인 것으로, 뇌 속 신경회로가 프레임의 구조이며, 거기에는 프레임을 규정하는 다양한 언어 의미적 규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가면 음식, 서비스, 웨이터, 계산서 등 한 묶음으로 짜여진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 구조가 프레임을 이룹니다. 야자수나 버스 등은 그 식당 프레임에 들어올 수 없죠. 프레임 속에는 특정한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언어 속에 있는 단어는 어떤 프레임의 범위 속에서 의미가 규정됩니다. 두뇌 속에는 물리적으로 경험이 만들어낸 수만 가지 프레임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해한다는 것은 뇌 속에 있는 어떤 프레임 속으로 맞춰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프레임은 각각의 단어가 아니라, 단어가 활성화시키는 사고입니다."

-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도덕, 정치를 말하다' '프레임 전쟁'을 쓴 세계적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프레임(frame)' 이론의 권위자 조지 레이코프 UC버클리대 교수의 말 중에서

 

"나는 어머니 대자연의 아들

시골에서 가난하게 태어나

하루 종일 이곳에 앉아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네

계곡 옆에서 물이 솟구쳐오르는 걸 바라보고

그녀들이 날아가며 만드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듣는다네

나는 어머니 대자연의 아들

나의 푸른 초원에 앉아 나 자신을 발견하지

한들거리는 데이지 꽃들은 태양 아래에서 나른한 노래를 불러준다네"

- 비틀즈의 '마더 네이처스 선'(Mother Nature's son)

 

"확실한 표현을 원하지만

너의 미소 띈 표정에 잊어버리지 난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순진한 척 웃지만 말고 그만 좀 해

너 솔직하게 좀 굴어봐

니 맘 속에 날 놔두고 한눈 팔지 마

너야말로 다 알면서 딴청 피우지 마

피곤하게 힘 빼지 말고 어서 말해줘

사랑한단 말야"

- 소유, 정기고가 부른 노래 '썸' 중에서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 정인보 작사 · 윤용하 작곡 '광복절 노래'

 

"허구의 가면을 쓰고서라면 당신은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 200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중국 출신 소설가 가오싱젠의 말 중에서

 

"우리의 소원은 독립 꿈에도 소원은

이 정성 다해서 독립 독립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독립 이 나라 살리는 독립

독립이여 어서 오라 독립이여 오라"

- 안석주 작사 · 안병원 작곡 동요 '우리의 소원'

 

 

"당신과 내가 만나

운명처럼 사랑을 하고

눈부신 젊은 날은

꿈결처럼 지나가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나는 병상에

당신은 조그만 소파에 누워

낯설고 두려운 길을

서로 기대며 담담하게

새벽을 맞이하는구나

어디까지 온 걸까

당신과 나의 짧은 여행길은

어디까지 온 걸까

우리의 이 먼 여행길은"

- 안치환 11집 앨범 '50' 수록곡 '병상에 누워' 중에서

 

 

 

 

posted by 황영찬
2017. 3. 20. 12:18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10 52주 여행 남몰래 아껴둔 서울경기 214

 

 

 

 

로리로리와 그 남자(김미정, 손준우) 지음

2016, 책밥

 

대야도서관

SB112111

 

981.102

로298ㅇ

 

서 울  경 기 를  즐 기 는  214 가지  방 법

 

우유부단 귀차니즘 여행자를 위한

시기적절 취향저격 여행지 안내서

 

‘52주 여행

 

여행도 다 때가 있다

실패 없는 매주 1코스 여행!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거나 초록초록한 산과 들을 보고 싶을 때, 도심 속에서 몸과 마음을 쉬어갈 때도 그날그날의 감성에 맞춰 떠날 수 있다. 헉 소리 날 만한 첨단 신도시와 여기저기 숨은 맛집 총정리! 카페도 조용히 숨어 있기 좋은 곳과 전망 좋은 곳으로 분류해 원하는 분위기를 맘껏 누린다.

아날로그 감성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서울 구석구석, 느리게 걸어야 좋은 작은 골목길, 익숙한 곳에서 발견한 이색적인 풍경과 로맨틱한 천문대 여행까지! 가깝지만 잘 몰랐던 서울경기의 핫플레이스를 소개한다.

그 외에도 162개의 스팟과 52개의 여행 코스를 계절별, 지역&동네별, 감성별로 분류해 그날의 날씨와 계절, 감성에 따라, 혹은 동선을 고려해 마음껏 여행할 수 있다.

 

· 사진 로리로리와 그 남자(김미경, 손준우)


여행과 글쓰기를 즐기는 아내,
여행과 사진 찍기를 즐기는 남편.
국문학을 전공한 아내, 수학을 전공한 남편.
이성 제로의 감성주의자인 아내,
이성 충만한 사고 소유자인 남편.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욱하는 다혈질 B형 아내,
몇 날 며칠 옆집 개가 짖어도초지일관 선비 자세 유지하는 초식남 A형 남편.

감성도, 성격도, 정반대인 부부는 ‘여행’이라는 공통 취미를 평화조약 삼아 살고 있다.

‘처녀총각 시절 남들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둘이 함께 가는 것이 처음인 그곳을 여행하자!’라는 목표로, 달랑 카메라만 들고 매주 밖으로 쏘다니며 결혼을 연애하듯, 오늘을 여행하듯 산다.

 

알차고 소소한 감성 여행과 착한 살림, 건강 식탁으로 대표되는 로리로리와 그 남자의 이야기는 'blog.naver.com/samanka80'에서 마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 마르셀 프루스트

 

|CONTENTS|

 

1월의 서울ㆍ경기도
뻔한 여행 코스가 지겨울 땐

이색 콘셉트로 색다르게 떠나기


1 week

골목골목 동네 책방 순례


Spot 1 그림 읽는 책방 베로니카이펙트
Spot 2 노홍철이 차린 해방촌의 작은 여행 서점 철든책방
Spot 3 책과 술을 파는 책방 퇴근길 책 한잔

|추천코스| 홍대로 떠나는 책방 순례

2 week

한겨울 밤의 빛축제


Spot 1 오색별빛정원 아침고요수목원
Spot 2 전 세계의 야경을 한곳에 부천 아인스월드 빛축제
Spot 3 거대한 식물원 같은 카페, 갤러리, 레스토랑, 라이프숍 대림창고

|추천코스| 로맨틱 가평



3 week

별 헤기 좋은 겨울밤

Spot 1 서울 근교에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곳 중미산천문대
Spot 2 최첨단, 일대일 체험 천문대 포천아트밸리 천문과학관
Spot 3 까칠한 마나님의 인공조미료 출입 금지 레시피 계동마나님

|추천코스| 양평에서의 한나절



4 week

겨울 바다의 진수 서해 바닷길 여행

Spot 1 서해의 해넘이 명소 궁평항
Spot 2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겨울 바다 전곡항
Spot 3 탄도항의 푸짐한 회 썰기 달인의 집 와인 주는 회집

|추천코스| 원껏 즐기는 서해 바다



5 week

서울에서 쌩쌩 즐기는 스케이트장&눈썰매장

Spot 1 서울의 스케이트장 중 가성비 최고! 여의도공원 스케이트장
Spot 2 어린이들의 겨울왕국 어린이회관 눈썰매장
Spot 3 포항에서 망원동으로 입성한 전설의 일본식 라면 라멘 베라보
|추천코스| 온 가족이 동심 속으로!



2월의 서울ㆍ경기도
서울을 잊게 하는

골목 탐방


6 week

골목과 골목 사이 백 년의 시간 여행 북촌 계동길&북촌 8경

Spot 1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학교, <겨울연가> 촬영지 서울중앙고등학교
Spot 2 단 한 장의 사진을 찍는 아날로그 정통 흑백사진관 물나무사진관
Spot 3 현대와 과거의 조우 북촌 8경 여행

|추천코스| 구석구석 북촌
|SPECIAL| 계동 골목길 산책



7 week

골목 공동체 마을 인사동, 감고당길, 소격동 골목길

Spot 1 인사동 유랑 일번지 인사동 쌈지길
Spot 2 산책로, 볼거리, 먹거리 3박자를 모두 갖춘 감고당길
Spot 3 6개의 마당을 간직한 도심 속 문화공간 국립현대미술관 경복궁 마당
Spot 4 집고추장으로 만든 집떡볶이와 떡꼬치 풍년쌀농산

|추천코스| 삼청동&인사동 데이트 단골 코스



8 week

꼬불꼬불 미로 같은 골목 염리동 소금길

Spot 1 식물의 공간 식물성
Spot 2 언뜻 보면 식당인 듯, 카페인 듯, 술집인 듯 언뜻가게
Spot 3 가장 높은 소금언덕에서 만나는 착한 커피 카페 솔티

|추천코스| 염리동 맛집
|SPECIAL|특별한 스토리를 품은 염리동 소금길 이야기



9 week

서울의 브루클린을 걷다 성수동 아틀리에길

Spot 1 앤디 워홀의 ‘팩토리’ 같은 베란다 인더스트리얼
Spot 2 수제 구두 장인들의 메카 프롬에스에스&수제화거리
Spot 3 순하고 착한 빵집 보난자 베이커리

|추천코스| 성수동 카페 탐색
|SPECIAL| 성수동 아틀리에길 주변 볼거리, 먹거리

 

3월의 서울ㆍ경기도
느릿느릿 산책하기 좋은

예쁜 서울 동네



10 week

시간이 멈춘 곳, 서촌


Spot 1 화가의 집 박노수미술관
Spot 2 예술가들이 사랑한 산 인왕산 수성동 계곡
Spot 3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대오서점

|추천코스| 서촌의 잡화점 산책
|SPECIAL| 서촌의 명물, 통인시장 100퍼센트 즐기기



11 week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 익선동

Spot 1 카페, 바, 복합문화공간 카페&바 식물
Spot 2 조미료를 쓰지 않는 익선동 수제 맛집 익선동121
Spot 3 연탄불 먹태가 예술인 가맥집 거북이슈퍼

|추천코스| 경복궁부터 익선동까지 산책



12 week

소소히 걷기 좋은 동화 같은 서울 속 전원마을, 부암동

Spot 1 시인의 영혼의 가압장 윤동주문학관
Spot 2 천천히 가도 괜찮아 백사실계곡
Spot 3 도심 속 산꼭대기의 풍유도원 산모퉁이 카페

|추천코스| 사부작사부작 부암동 즐기기
|SRECIAL| 산책하기 좋은 동네 부암동



13 week

젊은 예술가들의 취향, 문래예술창작촌

Spot 1 골목골목 예술꽃이 피어나다 문래예술창작촌 골목길 아트
Spot 2 철공단지 옥상에 일군 도시공동체 텃밭 문래도시텃밭
Spot 3 정갈한 가정식을 선보이는 문래동의 원조 맛집 쉼표말랑

|추천코스| 문래예술창작촌에서 놓치기 쉬운 곳들



4월의 서울ㆍ경기도
꽃 따라 떠나는

봄으로의 여행

 

 


14 week

사찰을 감싸는 진한 홍매화

Spot 1 천년 고찰 마당에 가득 내려앉은 봄의 정령들 봉은사
Spot 2 세계의 우연을 수집하는 잡화점 우연수집
Spot 3 낮에는 우동집, 밤에는 심야주점! 4.5평 우동집

|추천코스| 보고, 걷고, 먹는 경복궁 나들이



15 week

물길 따라 걷기 좋은 벚꽃길


Spot 1 로맨틱한 천변 벚꽃터널 안양천 벚꽃길
Spot 2 자전거 벚꽃 데이트로 딱! 불광천 벚꽃길
Spot 3 콘서트 선율이 울려 퍼지는 심야 책방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추천코스| 지하철 3호선 여행



16 week

붐비지 않는 서울의 비밀 벚꽃 화원


Spot 1 숲길 따라 이어진 벚나무 언덕 서대문구 안산자락 벚꽃길
Spot 2 국내 유일의 수양벚꽃 향연 국립서울현충원
Spot 3 뉴욕 느낌 충만한 송도의 수제 버거 맛집 버거룸181

|추천코스| 미처 몰랐던 호젓한 서대문 여행



17 week

핑크핑크한 진달래와 복숭아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Spot 1 15만 그루의 진달래로 붉게 물들다 원미산 진달래동산
Spot 2 핑크빛 복숭아꽃의 유혹 춘덕산 복숭아꽃 축제
Spot 3 짜지 않고 담백한 게장정식 봉순게장

|추천코스| 부천 당일 여행



18 week

벚꽃 엔딩


Spot 1 꽃비 맞으며 걷다 당인리발전소 벚꽃길
Spot 2 구름 위의 산책 아차산 생태공원~워커힐 벚꽃길
Spot 3 서울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 자하미술관

|추천코스| 합정역 7번 출구 따라 벚꽃비 여행



5월의 서울ㆍ경기도
연초록의 싱그러운

풍경 속으로 떠나는 여행



19 week

지하철 3호선 타고 떠나는 여행


Spot 1 서울에서 30분이면 뚜벅뚜벅 거닐 수 있는 초원길 원당종마공원
Spot 2 꽃 선물할 때는 무조건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
Spot 3 삼청동의 소문난 맛집 조선김밥

|추천코스| 걷고, 먹고, 마시는 하루



20 week

사진 찍기 좋은 그림 같은 자연경관


Spot 1 제주도 유채꽃만큼이나 황홀한 황금빛 물결 구리 유채꽃 축제
Spot 2 서울의 센트럴파크 서울숲
Spot 3 홍대의 인도 정통 커리 시타라

|추천코스| 천년 사찰 봉은사로 가는 길



21 week

서울에서 30분, 파주 여행


Spot 1 바람과 평화 속에 가만히 머물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Spot 2 365일 24시간 개방, 50만 권의 책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
Spot 3 무항생제 토종 장어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곳 갈릴리농원

|추천코스| 파주에서의 한나절



22 week

걷고 싶은 서울의 공원


Spot 1 도심의 황금빛 보리밭 반포한강공원 서래섬 청보리밭
Spot 2 온 가족이 나들이하기 좋은 양재 시민의숲
Spot 3 소소한 동네 골목에서 만난 알찬 퓨전 가정식 소소한 풍경

|추천코스| 서울의 섬 여행



6월의 서울ㆍ경기도
느리게 걸어야

볼 수 있는 것들



23 week

서울에서 가장 매력적인 길


Spot 1 서울 안에 이보다 더 낭만적인 출사지는 없다 항동철길
Spot 2 은밀하게 호젓한 숲 하늘공원 메타세쿼이아 숲길
Spot 3 신발공장을 재활용한 커피공장 앤트러사이트

|추천코스| 항동철길 일주



24 week

도시 여행자가 도시 위의 길을 여행하는 방법


Spot 1 농부와 요리사가 함께하는 도시형 농부장터 마르쉐@혜화
Spot 2 거리의 미술관 상암동 MBC광장
Spot 3 3대째 MSG 제로! 차이니즈 레스토랑 러시안

|추천코스| 월드컵공원 산책



25 week

파주부터 일산까지 먹고, 보고, 걷고, 쉬다


Spot 1 예술가의 마을에서 보낸 한나절 헤이리 예술마을
Spot 2 천년 한옥에서 만나는 빛의 향연 일산한옥마을 정와빛축제
Spot 3 킨포크 감성 원테이블 양지미식당

|추천코스| 책들의 도시 파주출판도시에서 일산까지



26 week

과거로의 타임머신 인천 여행


Spot 1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수 배다리 헌책방 골목

|SPECIAL| 배다리역사문화마을


Spot 2 이곳에 가면 행복해진다 송월동 동화마을
Spot 3 하루 종일 먹방 여행 인천 차이나타운

|추천코스| 느릿느릿 배다리 여행



7월의 서울ㆍ경기도
물, 바람, 나무가 있는

숲으로 숲으로



27 week

피톤치드 가득한 포천의 숲에서 보낸 시간


Spot 1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 최대 수목원 광릉국립수목원
Spot 2 폐석장에서 복합문화예술공원으로 포천아트밸리
Spot 3 만화 <식객>의 첫 페이지를 연 그곳의 집밥 무명식당

|추천코스| 물과 나무의 도시 포천



28 week

자연 속으로 떠나는 힐링 여행


Spot 1 붓꽃이 수놓인 친환경생태공원 서울창포원
Spot 2 산속의 우물 산정호수
Spot 3 초여름의 보양식 주점 이파리

|추천코스| 연트럴파크에서 즐기다



29 week

꽃 따라 즐기는 여름


Spot 1 한여름의 노란 수채화 무왕리 해바라기 마을
Spot 2 갖가지 연꽃이 만개하는 테마파크 관곡지
Spot 3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유럽 풍경을 품은 카페 더그림

|추천코스| 로맨틱 양평



30 week

초여름의 무더위를 피하는 실내 쇼핑 여행


Spot 1 착한 가격으로 즐기는 스웨덴 감성 IKEA
Spot 2 SNS에서 더 핫한 팝업 컨테이너 쇼핑몰 커먼그라운드
Spot 3 좋은 재료, 좋은 음식, 좋은 마음 소녀방앗간

|추천코스| 성수동 찍고 커먼그라운드



8월의 서울ㆍ경기도
뜨거운 햇빛 피해

안에서 놀자!



31 week

그릇이 좋아!


Spot 1 코리안 레트로 감성 리리키친
Spot 2 북유럽 키친웨어 편집숍 커먼키친
Spot 3 이태원의 작은 폴란드 그릇 가게 노바 NOBA
Spot 4 이촌 사기막골도예촌의 30년 터줏대감 현대공예
Spot 5 이태원 뒷골목의 이색적인 발효 음료&디저트 카페 장고네 프루티즘

|추천코스| 이태원에서 만난 신세계



32 week

가구 갤러리 카페 투어


Spot 1 빈티지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 카페 파주 호메오
Spot 2 착한 목수의 가구공방 카페, ghgm 카페
Spot 3 영화 <뷰티인사이드>의 그곳! 카페발로

|추천코스| 먹고, 보고, 즐기는 파주 여행



33 week

생활에 플러스를 더하는 라이프스타일 숍 투어


Spot 1 내추럴한 원목가구와 다양한 소품 숍 마켓엠
Spot 2 현명한 소비의 시작 오브젝트
Spot 3 박노해 시인의 생명, 평화, 나눔의 카페 라 갤러리

|추천코스| 경복궁과 서촌 사이



34 week

아날로그 감성 돋는 빈티지 여행


Spot 1 과거로 가는 어른들의 타임머신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
Spot 2 동심과 추억이 방울방울 솟는 상상마당 한국만화박물관
Spot 3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이 장기 두던 그곳! 대학로 학림다방

|추천코스| 낮부터 밤까지 즐기는 부천



9월의 서울ㆍ경기도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문턱



35 week

낭만적인 대부도 해안길 올레


Spot 1 제주도 올레길 못지않은 대부도 해솔길 1코스 트레킹
Spot 2 화려한 낙조, 탄도항
Spot 3 터키로 가는 가장 빠른 길 앤조이터키

|추천코스| 대부도의 낭만 해솔길



36 week

정상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얼굴


Spot 1 궁궐 달빛 산책 경복궁 야간 개장
Spot 2 노을과 바람이 맞닿는 곳 월드컵공원 노을광장&바람의 광장
Spot 3 통유리 너머 푸른 산자락 그리고 정갈한 한 끼 소격동 장진우식당

|추천코스| 이화동에서 동대문까지



37 week

밤에 더욱 환상적인 신세계로의 여행


Spot 1 밤이 깊을수록 더욱 화려해지는 도시 송도 센트럴파크&트라이볼 야경
Spot 2 DDP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동대문DDP&장미언덕
Spot 3 새우 양식장에서 직접 키운 싱싱한 가을 대하의 맛 해운정

|추천코스| 송도 센트럴파크



38 week

플리마켓 투어


Spot 1 띵굴마님이 차린 생활잡화 마켓 띵굴시장
Spot 2 북한강변 따라 펼쳐지는 문호리 리버마켓
Spot 3 너른 마당에서 즐기는 우리통밀쌈 너른마당

|추천코스| 물길 따라 서종



10월의 서울ㆍ경기도
깊은

가을의 정취



39 week

서울의 첫가을을 만나다 길상사로 가는 길


Spot 1 도심 속 일상의 고요 길상사
Spot 2 만해 한용운의 유택 심우장
Spot 3 문인들의 산속 작은 찻집 수연산방

|추천코스| 길상사 데이트



40 week

춤추는 은빛 억새


Spot 1 거대한 억새 바람 하늘공원 억새축제
Spot 2 은빛 억새의 명소 명성산 억새꽃축제
Spot 3 감성 충만한 취향과 안목 아베크엘

|추천코스| 해방촌 가는 길



41 week

가을 속을 걷다


Spot 1 풍차와 갈대밭의 낭만 풍경 소래습지생태공원
Spot 2 추억의 보물 창고 서울풍물시장 청춘1번가
Spot 3 LP판과 책이 가득한 나무 다락방 카페 싸리재

|추천코스| 막 퍼주는 시장 여행



42 week

수원 화성에서의 가을 달빛 산책


Spot 1 아름다운 낮과 밤의 절경 방화수류정
Spot 2 이국적인 가을 정취 월화원
Spot 3 낮보다 황홀한 밤의 산책 광교호수공원
Spot 4 그린 라이프스타일 농장과 정원이 있는 카페 마이알레

|추천코스| 수원 역사 여행



43 week

지하철 타고 떠나는 단풍 여행


Spot 1 한국 최고의 단풍 명원 창덕궁 후원
Spot 2 천년의 황금빛 가을을 간직한 한국의 마테호른 용문사&천년의 은행나무
Spot 3 일명 마약갈비 터갈비

|추천코스|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



11월의 서울ㆍ경기도
가을을

보내며



44 week

안성 여행, 가을 당일 코스로 안성맞춤!


Spot 1 목가적인 풍경이 일품인 전원목장 안성팜랜드
Spot 2 몽환적인 물안개 피어오르는 고삼호수
Spot 3 2천 개의 항아리가 빚어내는 식객들의 만찬 서일농원

|추천코스| TV 혹은 영화 속 그곳!



45 week

단풍 엔딩


Spot 1 남미의 풍경 속에서 즐기는 늦가을의 정취 중남미문화원
Spot 2 호젓한 가을 산책 명소 벽초지문화수목원
Spot 3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장단콩 전문점 통일동산두부마을

|추천코스| 푸른 녹지와 이국적 경치가 가득한 삼송역 여행



46 week

이색적인 가을 풍경을 찾아서, 화성 여행


Spot 1 푸른 하늘과 맞닿은 고독 우음도
Spot 2 가을 충만한 갈대섬 어섬
Spot 3 경복궁 곁의 남도음식 전문점 포도나무

|추천코스| 우음도에서 오이도까지



47 week

서울의 동쪽 구석구석 여행


Spot 1 사계절 내내 멋지다 올림픽 공원 9경
Spot 2 만화를 찢고 나온 동네 강풀만화거리
Spot 3 33가지 정갈한 상차림 진진반상

|추천코스| 올림픽공원 9경 여행 후 필수



12월의 서울ㆍ경기도
혹한을 피하는

실내 투어



48 week

여행도 예술처럼


Spot 1 영화 읽는 도서관 CGV 씨네 라이브러리
Spot 2 산과 강과 예술이 흐르는 그림 한 점 갤러리 서종
Spot 3 커피 향기 가득한 북유럽 문화원 양평 테라로사

|추천코스| 명동 제대로 즐기기



49 week

신분당선 타고 떠나는 겨울 실내 여행


Spot 1 도자기 굽는 가게 화소반
Spot 2 아름다운 녹색 도서관 네이버 라이브러리
Spot 3 운치 있고 고즈넉한 겨울 산중 찻집 새소리물소리

|추천코스| 분당의 구석구석 숨은 스팟



50 week

문화공간이 된 서울의 다방들


Spot 1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는 약다방 봄동
Spot 2 건축가의 다방 제비다방
Spot 3 버려진 찻집의 문화공간 정다방 프로젝트

|추천코스| 반짝반짝 빛나는 문래예술창작촌 탐색



51 week

알찬 하루의 힐링, 이천 여행


Spot 1 한국 최초의 독일식 천연온천 테르메덴
Spot 2 그녀의 시골 낭만 생활 가마가 텅빈 날
Spot 3 이천 쌀밥 한정식 청목

|추천코스| 쉼표, 이천 여행



52 week

혹한을 피하는 실내 투어의 메카


Spot 1 모든 것이 다 있다 파르나스몰부터 코엑스몰까지
Spot 2 원더풀 겨울 실내 여행 여의도 IFC몰
Spot 3 20년 동안 오로지 우유식빵 하나만 파는 전설의 식빵 장인 김진환제과점

|추천코스| 여의도에서 보낸 슬로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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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7. 3. 14. 13:22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09 건축이 건네는 말

 

 

최준석 지음

2016, 아트북스

 

대야도서관

SB112125

 

540.04

최76ㄱ

 

건축이라는 근엄한 성곽 주변에 흩어진

소소하고 인간적인 이야기

 

어느 건축가의 시선 끝에 맞닿은 길 위의 공간들

각자의 사연과 이야깃거리를 담은 그곳에서

때로는 영화처럼 때로는 그림처럼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감동을 마주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만나는 건축을 미술이나 조각, 소설이나 영화처럼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할 목적으로 썼다. 요리로 치면 에피타이저다. 책을 통해 독자들이 건축에 대한 조금 다른 관점을 갖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건축은 삶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고 일상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준다. 우리 주변에 빼곡히 들어찬 건물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생각과 다양한 상상과 사연이 있는지, 건축을 친구처럼 느끼고 싶은 분들께 부족하나마 작고 만만한 책 한 권을 드린다.

- 「시작하며」에서

 

최준석

 

건축가. 건축사사무소 NAAU를 운영하면서 주택, 어린이집, 기숙사, 기업사옥 등 다양한 건축설계를 진행 중이다. 서른여덟 살 때 집이나 글이나 ‘짓는’ 건 매한가지라는 소소한 깨달음을 얻은 후, 본업인 건축설계 틈틈이 글짓기에도 즐겁게 공을 들이고 있다.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정의를 여전히 신뢰하기에 겉모양이 현란한 외향적 건축보다는 삶을 위해 소소한 배경으로 존재하는 내성적 건축을 좋은 건축이라 믿는다. 『파운드』 『노블레스』 『싱글스』 『루엘』 『에스콰이어』 『모터스라인』 『월간 에세이』 『좋은생각』 『포스코신문』 『LG하우시스』 『현대엠코』 『쌍용자동차』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축구 관람, 아침 조깅, 심야영화를 사랑한다. 엄마 같은 아내, 애인 같은 두 딸과 화목하게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서울의 건축, 좋아하세요?』 『서울 건축 만담』이 있다.

홈페이지 www.naau.co.kr

이메일 room713@naver.com

 

차례

 

책을 내며

 
1부 건축의 기억

       지난 시간을 살려내는 것, 선유도 공원
       골목의 기억, 쌈지길
       바다를 그리워하는 집, 빌라 사부아
       어떤 상상력, 료안지
       세한도의 마음, 추사고택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마음, 소쇄원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김옥길 기념관
       집의 이름은 사람을 닮고, 선교장
       어린 날의 판타지, 상상사진관
       그 장소는 어디로 갔을까? 종로타워
       한국인의 서정, 국회의사당

        건축 이야기 1

        낡은 장소의 새로움을 입히다, 리노베이션

2부 예술의 가장 좋은 친구

       어느 구도자의 삶, 구엘 공원
       맞잡은 두 손이 되어, 롱샹 성당
       백자와 여자,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게르니카와 유대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느림의 공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얇은 막 안의 시민들, 플라토 갤러리
       세 개의 시간,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황홀한 빛의 캔버스, 산크리스토발 주거단지
       여행하는 공간, SJ 쿤스트할레

       건축 이야기 2

       생활의 여백, 계단



3부 도시의 삶, 도시의 건축

       괴물, 예술이 되다, 에펠탑
       나무로부터 나무에게로, 토즈 빌딩
       건축으로 광고하기, SKT 타워
       거리의 추상화, 아이파크 사옥
       그 시대의 민낯, 세종로
       사각형에 대하여, 서초삼성타운
       어디서 무엇이 되어, 아파트
       걷는 즐거움, 서울역 고가공원
       구보 씨의 일일, 문화역서울 284
       육지가 된 섬, 잠실

        건축 이야기 3

        높이를 욕망하다, 마천루

 

지난 시간을 살려내는 것

선유도 공원

 

무슨 물품이나 쓰지 못하게 된 것을 흔히 골동품이라 한다. 이런 말은 물품에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쓴다. 현대와 원거리의 사람, 그의 고졸古拙한 티를 사람들은 골동품이라 농한다. 골동이란 말은 마치 무용, 무가치의 대용어같이 쓰인다.

_이태준, 『무서록』(범우사, 1999)

 

기좌이몽이도

과거 정수장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선유도 공원.

정선, 「선유봉」, 비단에 담채, 33.3 × 24.7cm, 1742년, 개인 소장.

오래된 건물에 새로운 기억을 덧입혀주는 듯한 식물등.

 

골목의 기억

쌈지길

 

인사동은 늘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_로버트 프로스트

 

쌈지길은 오래된 골목이 살아남는 방식을 제시한 좋은 실험이다.

쌈지길의 골목과 너른 마당.

 

 

바다를 그리워하는 집

빌라 사부아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거리에 흐르는 사람들 물결에 흘러가고 있네.

_동물원, 「유리로 만든 배」

 

귀스타브 카유보트, 「비 오는 파리」, 캔버스에 유채, 212.2 × 276.2cm, 1877년,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보라, 저 운하에서

잠자는 배들을,

그들의 기질이야 떠도는 나그네.

세상의 끝에서

그들이 오는 것은

네 자잘한 욕망까지 채워주기 위해서지.

- 저무는 태양이

보랏빛, 금빛으로

들판을 덮고, 운하를 덮고,

온 도시를 덮고,

세상은 잠든다.

따사로운 노을빛 속에서.

 

거기서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사치와 고요, 그리고 쾌락일 뿐.

_샤를 보들레르, 「여행에이 초대」,

황현산 옮김(『파리의 우울』ㅅ록, 문학동네, 2015)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한 빌라 십야이 전경.

 

모래 언덕 위에 선박처럼 고안된 저택은 거대한 노르망디 식 지붕보다 더욱 잘 어눌릴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사람들은 이것이 바다와 관련된 양식이 아니라고 우길 수도 있을 것이다.

_르 코르뷔지에 

 

빌라 시부아의 내부와 외부를 들여다보면 독특한 상상력과 자유로운 감성이 느껴진다.

 

 

어떤 상상력

료안지

 

료안지 내의 모래 정원.

료안지 정원 모습.

 

 

세한도의 마음

추사고택
       

 

김정희, 「세한도」, 종이에 수묵, 27.2 × 69.2cm, 1844년, 개인 소장, 국보 제180호.

추사고택 내부.

추사 묘 앞의 백송.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마음

소쇄원


       

1990년대 통신사 광고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소쇄원의 대나무 숲.

소쇄원 전경과 광풍각.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김옥길 기념관

 

1962년 베니스 비에날레에서의 자코메티.

김옥길 기념관의 외관.

밖에서 보면 어떤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김옥길 기념관의 내부.

 

 

집의 이름은 사람을 닮고

선교장

 

강릉 선교장의 연속된 문.

 

       

어린 날의 판타지

상상사진관

 

어린 시절의 로봇 판타지를 되새기게 만드는 상상사진관의 전면과 후면.

상상사진관의 꼭대기. 항공모함이 대기 중인 것만 같은 모양새다.

 

       

그 장소는 어디로 갔을까?

종로타워

 

지금의 종로타워 자리에 있던 화신백화점은 일제시대 순수 우리 자본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그 옛날 화신백화점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종로타워.

 

 

한국인의 서정

국회의사당

 

현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어느 구도자의 삶

구엘 공원

 

현재까지 공사가 끝나지 않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모습.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건축 철학을 반영해, 험한 입지를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살린 채 조성되었다.

 

인간은 크게 두 부류가 있습니다.

언어의 인간과 행동의 인간이지요.

언어의 인간은 말하며 행동의 인간은 실천합니다.

저는 두 번째 부류의 인간입니다.

_안토니 가우디

 

       

 

맞잡은 두 손이 되어

롱샹 성당

 

 

장프랑수아 밀레, 「만종, 캔버스에 유채, 55.5 × 66cm, 1857~59년, 파리 오르세미술관.

 

 

나는 이 성당을 건축하면서 침묵, 기도, 평화, 영적 기쁨의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_르 코르뷔지에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한 롱샹 성당의 모습.

견고하고 독특한 구조를 지닌 롱샹 성당의 외부와 내부.

      

 

백자와 여자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동서를 막론하고 시대가 갈수록 기교가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예외를 조선의 백자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아름다움은 단순으로의 복귀다. 자연에 대한 신뢰야말로 조선 말기 예술의 놀라운 예외가 아니겠는가?

_야나기 무네요시, 조선과 예술(범우사, 1989)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우아한 나선 형태로 건축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외부와 내부.

 

당신의 집이 그것의 장소로부터 쉽게 확장될 수 있고, 그곳의 자연이 근사하다면 그곳의 환경과 호흡을 같이 하도록 하게 하라.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집이 마치 처음부터 그러한 기회를 가졌던 것처럼 그 장소에서 조용하게 자리 잡게 하라.

_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유기적 건축」

 

 

게르니카와 유대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 캔버스에 유체, 349 × 777cm, 1937년, 마드리드 국립소피아왕비예술센터.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전경.

 

나는 건물이 건물처럼 보이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그것이 특별한 오브제이길 원한다.

_프랭크 게리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세부와 측면.

 

 

느림의 공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인간이 제 신체의 에너지만으로 움직이는 속도를 멸시하고 기계에 전적으로 그것을 위임해버렸을 때, 효율성의 일방적인 척도에 의해 한가로움을 반윤리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삶에서 추방해버렸을 때, 느림은 우리 삶에서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어졌다. 사람들은 느림을 악덕으로 간주하고, 느림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규정해버린다. (……) 우리는 '빠르게'라는 주문에 걸려 '현재들'을 놓치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귀중한 '현재'의 시간들을, 그 시간의 켜켜이 가득 차 있는 의미와 기쁨, 영혼의 빛과 위안들을 지나쳐 버려야만 했다.

_장석주, 『추억의 속도』(들녘, 2001)

 

 

과천 현대미술관 전경.

빌 비올라, 「의식Observance」, 플라즈마 디스플레이에 고화질 컬러 비디오, 120.7 × 72.4 × 10.2cm, 10분 14초, 2002년, Photo : Kira Perov.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설치된 미술관 내부.

 

 

얇은 막 안의 시민들

플라토 갤러리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잇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트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 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_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무진기행』 수록, 문학동네, 2004)

 

 

알뜰꾼 신씨가 눌러 앉히고 한 병 두 병 더할수록

거나하게 취기가 올라

좆같은 노무과장, 상무새끼, 쪽발이 사장놈.,

노사협의회 놈들 때려 엎자고

꼭 닫아둔 울화통들이 터져 나온다.

_박노해, 「포장마차」(『노동의 새벽』 수록, 느린걸음, 20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_「마태복음」7장 13절

 

 

「지옥의 문」과 작품 세부.

 

플라토 갤러리의 외부와 내부.

 

 

세 개의 시간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나는 나의 과거를 싫어하고 다른 누구의 과거도 싫어한다.

나는 의무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을 혐오한다.

_르네 마그리트

 

르네 마그리트, 「데칼코마니」, 캔버스에 유채, 81 × 100cm, 1966년, 개인 소장.

'공간'의 신사옥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좁은 계단과 낮은 천장은 예술품을 전시하기에 적당하지 않지만 이곳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황홀한 빛의 캔버스

산크리스토발 주거단지

 

조르주 쇠라,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캔버스에 유채, 207.6 × 308cm, 1884~86년,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나는 감성적인 건축을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며, 건축은 그것의 미에 의해서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사용자에게 미의 메시지와 감성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며, 바로 그것이 건축일 것입니다.

_루이스 바라간

 

 

강렬한 색을 담은 루이스 바라간의 건축물.

바라간에게 영향을 준 인디언 토속주택의 모습.

사진은 미국 뉴멕시코의 푸에블로다.

 

 

여행하는 공간

SJ 쿤스트할레

 

항구에 가득 쌓인 컨테이너.

SJ 쿤스트할레.

SJ 쿤스트할레 컨테이너의 내부.

 

 

괴물, 예술이 되다

에펠탑

 

로베르 들로네, 「에펠탑」, 캔버스에 유채, 202 × 138.4cm, 1911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에펠탑은 건설 당시 거대하고 기괴한 구조물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우아하면서도 강력한 상징물로 새롭게 태어난 에펠탑.

 

 

나무로부터 나무에게로

토즈 빌딩

 

 

내 일은 내가 하고, 당신 일은 당신이 하는 것.

내가 당신의 기대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당신 또한 나의 기대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것.

당신은 당신, 나는 나.

우연히 서로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

그렇지 못할 땐 어쩔 수 없는 일.

_프리츠 펄스

 

 

나무는 사람보다 사람을 더 닮았다.

 

 

그 긴 세월을 온전히 바위 위에서 버티어온 것에 이르러서는 차라리 경이였습니다. 바쁘게 뛰어다니는 우리들과는 달리 오직 '신발 한 켤레의 토지'에 서서 이처럼 우람할 수 있다는 것이 충격이고 경이였습니다.

_신영복, 「소광리 소나무숲」(『나무야 나무야』 수록, 돌베개, 1996)

 

 

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 캔버스에 유채, 130 × 89cm, 1962년.

나무의 형상을 추상화하여 건축한 도쿄 오모테산도의 토즈 빌딩.

토즈 빌딩의 입구.

 

 

건축으로 광고하기

SKT 타워

 

1915년 최초로 만들어진 컨투어 병.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_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정영목 옮김(청미래, 2011)

영화 속 디지털 코드처럼 잘게 쪼개진 SKT 타워의 외벽.

SK 텔레콤 본사 사옥의 외관.

 

 

거리의 추상화

아이파크 사옥

 

 

바실리 칸딘스키, 「구성 8」, 캔버스에 유채, 140 × 201cm, 1923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바실리 칸딘스키, 「원속의 원」, 캔버스에 유채, 98.7 × 95.6cm, 1923년, 필라델피아미술관.

칸딘스키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삼성동 아이파크타워의 외관.

 

 

그 시대의 민낯

세종로

 

세종로 광화문 광장의 현재 모습. 과연 이곳이 시민 중심의 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사각형에 대하여

서초삼성타운

 

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 리넨 캔버스에 유채, 79.5 × 79.5cm, 1915년,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미술관.

사각형의 절대적 존재감을 뽐내는 서초 삼성타운의 위용.

 

어디서 무엇이 되어

아파트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_김광섭, 「저녁에」(『성북동 비둘기』 수록, 미래사, 2003)

 

 

김환기, 「10-Ⅷ-70-#185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 코튼에 유채, 296 × 216cm, 1970년.

아파트 숲은, 서울을 이루는 이미지의 큰 조각이 되었다.

 

 

처음 이 아파트촌을 먼발치에서 보고는 무슨 공장들이 저렇게 한군데에 빽빽이 몰려있을까 싶었다. (……) 사람이 사는 '아파트'라는 이름의 집인 것을 알고 그만 깜짝 놀랐던 것이다. 1 · 2층도 아닌 5층이나 6층의 높은 건물에 층층이 사람이 산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살림을 하고 산다는 것이었다. 머리 위에서 불을 때고 그 머리 위에서 또 불을 때고, 오줌똥을 싸고, 그 아래에서 밥을 먹고, 그러면서 자식을 낳고, 또 자식을 키우고, 사람이 사람 위에 포개지고 그 위에 또 얹혀서 살림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_조정래, 『비탈진 음지』(해냄, 2011)

 

 

걷는 즐거움

서울역 고가공원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

이 공간도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해 시민들의 사랑을 받게 될까.

 

구보 씨의 일일

문화역서울 284

 

화륜거의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차의 굴뚝 연기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라. 차창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움직이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다.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서울역 구 역사의 모습.

 

육지가 된 섬

잠실

 

 

1960년대 잠실의 항공사진.

초고층 빌딩이 들어선 후의 잠실 모습.

 

 

 

 

posted by 황영찬

2017-008 조선의 아버지들

 

 

백승종 지음

2016, 사우

 

대야도서관

SB112273

 

911.05

백57ㅈ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진정한 아버지다움

 

아버지 노릇이 힘겨운 이들에게 들려주는

의연하고 뭉클하고 속 깊은 이야기!

 


조선의 아버지들이 애써 추구한 인생의 가치는 상당 부분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들은 힘써 현실 사회의 문제를 극복하려 했고, 매사에 성실한 태도를 견지하였다. 성별과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을 존중하였으며, 비상한 인내심과 자상함으로 끝까지 가족을 보살피고 사랑하였다.

이 책에서 우리가 만날 12명의 아버지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와 계층 곧 시대의 고뇌를 반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피와 땀으로 역사에 아로새긴 발자취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부단히 노력한 개인의 삶 자체인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버지란 과연 무엇인가'를 묻는 내 단순한 질문에 대한 그들의 뜻 깊은 답변이다.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인생의 좌표 하나를 만날 수 잇기를 바란다.

- '책을 펴내며' 중에서


 


아버지한테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시대.

월급 때문에 아버지라는 이름이 유지되는 시대에

역사학자 백승종이 조선시대 12명 아버지에게 묻는다.

 

"어떻게 해야 자식을 크게 키울 수 있는가?"

"어떻게 자식에게 그토록 깊은 존경을 받았는가?"

"아버지로서 세상에 기여하는 길은 무엇인가?"


 

백승종

 

독일 튀빙겐대학교에서 중국 및 한국학과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베를린자유대학교 한국학과 임시학과장, 보훔대학교 한국학과장 대리, 프랑스 국립사회과학원 및 독일 막스플랑크역사연구소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과학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미시사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신문, 방송, 공개 강연을 통해 일반 시민들과 함께 역사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으며, 수년째 서당에서 제자들과 더불어 고전을 읽고 있다.

저서로 《한국 사회사 연구》,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 《그 나라의 역사와 말》,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 《한국의 예언문화사》,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제52회 한국출판문화상), 《정감록 미스터리》,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 《금서, 시대를 읽다》(한국출판학술상), 《역설》 외 여러 권이 있다.

 

차례

 

책을 펴내며 아버지의 길을 묻는 우리에게 그들이 들려주는 뜻 깊은 답변

01유배지의 아버지 정약용

“벼슬길에 오른 사람처럼 당당하라”

아내의 낡은 치마폭에 써 보낸 편지/인생의 봄날이 열리는 듯하였으나/하루아침에 폐족의 위기에 직면하여/“저쪽에서 돌을 던지면 옥돌로 보답하라”/“절대 서울을 떠나지 마라”/아들에게 권한 공부법/오랜 세월 떨어져 지내는 아버지 마음/유배라는 형벌은 하늘이 주신 기회/흙수저 아들의 재기

02 | 한 시대의 아버지 이황

잔소리 대신 편지로 아들을 일깨우다

부부관계의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살림살이와 공부 어느 것도 소홀히 하지 말 것/종이든 양반이든 귀하지 않은 목숨이 없으니/애써 가르쳐도 자식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부귀영화란 뜬구름 같은 것

03 | 세상에 저항한 가난한 아버지 박세당

“독서와 글씨 연습으로 근심을 잊어라”

예법보다 자식의 건강이 먼저/아무리 가난해도 탐심에 휘둘릴 수는 없는 일/아들이 마음을 낼 때까지 강요하지 않고 기다렸다가/대학자가 아들에게 가르친 글쓰기 요령/금쪽같은 둘째 아들을 잃고/뜻을 굽히지 않는 학자의 용기



04 | 불법 이혼남 김숙자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다

이혼, 인생의 굴레가 되다/운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경전의 가르침이 곧 일상생활/하찮은 직책이라도 정성을 다하라/바보 같고, 존경스러운 어른/마침내 사림파의 기틀을 세우다



05 | 알뜰한 살림꾼 이익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너그러웠던

단정하고 꼿꼿한 풍모에 공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아버지와 형을 잃고/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애쓴 남다른 선비/절약하지 않으면 방도가 없다/콩죽 한 그릇으로도 풍족해/세상을 구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꼭 핏줄이 통해야만 아버지일까



06 | 사화도 꺾지 못한 기개 유계린

위기를 기회로 바꿔준 열 가지 교훈

해남 성내에 숨어 산 사연/개인적 욕심을 차단하려면/거가십훈의 네 가지 요체/늘 마음을 공정하게 하라/아들의 무한한 존경을 받은 아버지/사림파의 찬란한 부활

07 | 스승이자 친구이자 아버지 김장생

부자간에 서로 공경하고 예를 다하다

《소학》에 나오는 내용 그대로 산 아버지와 아들/인생의 파도, 시대의 격랑에 맞서/뜻이 높아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처지/이름조차 직접 부르기 어려운 성덕군자/예학은 조선을 살릴 실천 학문/예학의 본질에서 벗어난 예송논쟁/이 무례한 세상에서 예를 생각하니

08 | 천재 예술가 김정희

위로와 사랑이 가득 담긴 편지를 쓰고 또 쓰다

서자 아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서예의 네 가지 비법/글 읽기를 중지하지 마라/아내에게 투정도 부리고 세심하게 챙기기도 하고/“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나물이오”

09 | 거룩한 영웅 이순신

유달리 깊고 큰 사랑

최고의 경영자였던 변방의 장수/탁월한 문장가이자 예리한 지식인/영웅의 사생활/가족들이 그립고 외롭구나/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10 | 딸바보 김인후

한없이 따뜻하고 자상했던 큰 선비

의리를 위해 벼슬도 마다하고/자식 잃은 슬픔 어이 견디리/시가에 홀로 남을 딸 걱정에/사위 웃음소리에 번뇌와 병이 한꺼번에 물러가네/선비가 조심해야 할 세 가지

11 | 청백리 이항복

의를 위해 죽음으로 맞서다

재치와 기개가 넘치는 소년/고지식한 장인, 기민한 사위/‘오성과 한음’ 이야기에 담긴 민중의 꿈/노련한 선배 같은 아버지/손자 교육에 열성인 ‘꼰대’ 할아버지/어찌 가족의 안위를 위해 뜻을 굽히랴

12 | 비극의 주인공 영조

그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휘령전 앞에서 아들을 죽인 이유/누구의 책임인가/아버지의 기대와 실망/아버지 영조의 불안한 심리/맹자가 말하는 좋은 부자관계의 비결/사도제사의 정신병/엽기적인 사건의 원인

참고문헌

 

01 | 유배지의 아버지 | 정약용

 

병든 아내 낡은 치마를 보내, 천리 먼 길에 애틋한 마음 전해 왔네.

오랜 세월에 붉은빛은 이미 바래, 늘그막에 드는 마음 서글픔뿐이네.

마름질하여 작은 서첩으로 꾸며, 자식들 일깨우는 글귀를 적었다오.

부디 어버이 마음 헤아려 오래도록 가슴 깊이 새겼으면 좋겠소.

- 《하피첩》(보물 제1683-2호)

 

나는 이것(아내의 활옷)을 잘라내어 조그만 첩자(帖子)를 만들고, 붓끝이 가는 대로 훈계하는 말을 써서 두 아들에게 전해주었다. 훗날 그들은 내 글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양친 부모의 손때 묻은 자취를 바라보면 그리운 마음이 뭉클 솟아날 것이 아닌가.

- '하피첩(霞帔帖)에 제함'(《다산시문집》 제14권)

 

용(정약용)이 이에 기중가도설(起重架圖說)을 지어 올렸다. 활차(滑車)와 고륜(鼓輪)은 작은 힘을 이용해서 큰 무게를 옮길 수 있었다. 성을 짓는 일을 마치자 주상(정조)께서 말씀하셨다. "다행히 기중가(起重架)를 써서 돈 4만 냥의 비용을 줄였다."

-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금정역은 홍주 땅에 있다. 그 역(驛)에서 일하는 아전과 하인들 중에는 서교(西敎)를 믿는 사람이 많았다. 주상(정조)께서는 용으로 하여금 그들을 깨우치게 하여 서교를 금지하게 하려 하신 것이었다. (<자찬묘지명>)

 

(정약)용의 형 약전, 약종 및 이기양, 권철신, 오석충, 홍낙민, 김건순, 김백순 등이 차례로 옥에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의) 문서들 가운데는 도리어 (정약)용의 누명을 밝게 벗게 해줄 만한 증거가 많이 있었다. 그리하여 (정약용에게는) 형틀을 벗기고 의금부 안에서 자유를 허락했다. (<자찬묘지명>)

 

무진년 봄에 다산(茶山)으로 옮겼다. 대(臺)를 쌓고 못을 파서 꽃과 나무를 심어놓고, 물을 끌어들여 비류폭포(飛流瀑布)를 만들었다. 그리고 동암(東庵)과 서암(西庵)의 두 암자를 수리해서 1천여 권을 비치해두고 글을 지으면서 스스로 즐겼다." (<자찬묘지명>)

 

지금은 내 이름이 죄인 명부에 적혀 있으므로, 너희에게 시골집에 숨어 지내라고 하였다. 그러나 미래에는 서울에서 가까운 10리 이내에 살라. 가세가 쇠락하여 도성 안에 들어갈 형편이 못 되면, 근교에 터를 잡고 과일나무를 심고 채소를 가꾸며 생계를 유지하라. 그리하여 재산이 조금 모이면 서울 한복판으로 옮겨라.

 

우리 집안은 선대로부터 붕당(朋黨) 문제에 관계하지 않았다. 더구나 (우리가) 곤경에 처하자 그때부터는 괴롭게도 옛 친구들이 (우리 집안을) 연못에 밀어넣고 돌을 던지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너희들은 이런 내 말을 명심하라. 당파의 사사로운 마음을 부디 깨끗이 청산해버려야 한다.

 

내가 지난번에도 거듭 말하였듯이, 청족(淸族, 죄를 입지 않은 양반 집안)은 독서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존경을 받는 법이다. 하지만 (너희처럼 가문이) 폐족이 된 처지라면 학문에 힘쓰지 않으면 (그 형편이) 더욱 가증스럽게 되고 만다. 지금 너희들은 스스로를 천시하고 비루하게 여기지만, 그런 태도야말로 너희 스스로를 비통하게 만드는 꼴이다. 너희들이 끝끝내 공부를 하지 않고 자포자기하고 만다면, 나의 저술이며 내가 간추려 뽑은 글들은 장차 누가 책으로 엮고 교정해서 보존하겠느냐?

- <두 아들에게 부침>

 

근래에 나이 젊은 소년들이 원나라와 명나라의 경박한 사람들이 지은 보잘것없는 문장을 모방해서 절구(絶句)나 단율(短律)을 짓고, 건방지게도 당세에 뛰어난 문장이라고 자부한다.

 

문장은 우선 경학(經學)으로 근기(根基)를 확고히 세운 뒤에 사서(史書)를 섭렵해서 정치의 득실과 치란(治亂)의 근원을 밝혀야 한다. 또 실용 학문에 마음을 두어 옛사람들이 지은 경제(經濟)에 관한 서적을 즐겨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 마음속으로 항상 만백성을 윤택하게 하고 만물을 기르려는 마음을 세웠으면 좋겠다. 비로소 독서하는 군자가 되는 방법이 그것이다.

 

수십 년 전부터 괴이한 주장이 횡행한 나머지 우리나라의 지적 성과를 우습게 알아, 선현의 문집을 읽지 않는 풍습이 있다. 이것은 큰 병통이다. 사대부의 자제가 국조(國朝, 조선 왕조)의 고사(故事)를 알지 못하고 선배의 문집을 읽지 않는다면, 그의 학문이 설사 고금을 꿰뚫었다 할지라도 조잡할 뿐이다. 시집(詩集) 따위를 읽는 것은 급하지 않다. (선배들의) 상소문, 차자(箚子), 묘문(墓文), 편지(書牘) 등을 읽어 모름지기 안목을 넓히라.

 

(유교 경전 공부의) 여가에 《고려사(高麗史)》·《반계수록(磻溪隨錄)》(유형원의 저서), 《서애집(西厓集)》(유성룡의 문집), 《징비록(懲毖錄)》(유성룡이 임진왜란 때의 실상을 회고한 글), 《성호사설(星湖僿說)》(이익의 저서), 《문헌통고(文獻通考)》(송나라의 문물과 제도를 기록한 일종의 백과사전) 등의 서적을 읽으면서 그 요점을 초록하는 일 또한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설사 부득이하게 시를 쓰더라도) 모름지기 《삼국사(三國史)》, 《고려사》, 《국조보감(國朝寶鑑)》, 《여지승람(輿地勝覽)》, 《징비록》,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여러 문헌을 구해서 역사적 사실을 채집하고, (관련이 있는) 지역을 고찰해서 시어로 활용해라. 그렇게 해야 세상에 이름을 얻을 수 있고, 후세에 남을 작품이 될 것이다.

- <연아(淵兒)에게 부침>

 

지금 생각으로는 경오년(1810) 봄에 네 아우를 돌려보내려 한다. 그전까지 너는 세월을 허송하려 하느냐? 여러모로 잘 생각해서, 집에 있으면서도 공부할 가망이 있거든 네 아우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동생과 교대하게 이곳으로 오라. 만일 사정상 (집에서 공부가 될) 가망이 전혀 없거든, 내년(1809) 봄에 날씨가 좀 따뜻해지면 만사를 제쳐두고 이리 내려와서 함께 공부하도록 해라.

 

첫째로, 나날이 네 마음씨가 나빠지고 행동이 비루해져가기 때문에 여기 와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겠다. 둘째로, 네 안목이 좁아지고 지기(志氣)를 잃어가기 때문이다. 이곳에 와서 배워야 하겠다. 셋째로 너의 경학(經學)이 조잡해지고 식견이 텅 비어가는 것도 걱정이다. 그러니까 여기 와서 공부를 해야겠다. 소소한 사정들은 돌아볼 필요도 없다.

 

소싯적에는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지난 20년 동안 세상맛에 빠져 선왕(先王)의 가르침을 잊고 지냈다. 이제 마침 여가를 얻었도다!(<자찬묘지명>)

 

이공가환(李公家煥)이 문학으로 한세상에 명성을 떨쳤고, 자부(姊夫) 이승훈(李承薰)도 몸을 단속하고 뜻을 가다듬었다. 그들은 모두 성호 이 선생(李先生) 익(瀷)의 학문을 조술(祖述)하였다. 용(鏞, 정약용)도 성호의 유저(遺著)를 읽고 나서 기뻐하며 배우기로 결심하였다. )<자찬묘지명>)

 

내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천명이요,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천명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닦지 않고, 천명만을 기다린다면 이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리라. 나는 사람으로서 닦아야 할 도리를 다했다. 사람이 닦아야 할 도리를 이미 다했는데도 만약 끝끝내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 또한 천명인 것이다.

- <연아(淵兒)에게 답함>

 

유림(儒林)의 대업(大業)은 (주자가 죽은 뒤로) 크게 떨치지 못하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적막한 천 년이 지난 오늘날, 학문의 전통이 취약한 구이(九夷, 동쪽의 오랑캐로 불리던 동이족, 여기서는 조선인을 뜻함) 가운데서 이처럼 뛰어난 기이한 일(즉 정약용이 이룬 학문적 위업)이 일어났도다.

- 김매순(金邁淳)

 

아버지 정약용의 가르침

 

● 배려하고 양보하여 가족 해체를 막아라.

● 서울 부근에 살며 높은 문화 수준을 유지하라.

● 늘 심기(心氣)를 화평하게 하고 진취적인 태도를 가져라.

 

 

02 | 한 시대의 아버지 | 이황

 

서당이 반이나 지어져 절로 기쁘구나(自喜山堂半已成).

산속에서 살면서도 몸소 밭갈이는 하지 않았지(山居猶得免躬耕).

책을 하나씩 옮기고 보니 상자가 다 비어간다(移書稍稍舊龕盡).

대나무 심자 죽순 새로 돋는구나(植竹看看新箏生).

샘물 소리, 밤의 정적 깨는 줄도 모르겠네(未覺泉聲妨夜靜).

산 빛 아름다운 맑은 아침, 더더욱 좋아라(更憐山色好朝晴).

예부터 숲 속 선비는 만사를 잊고(方知自古中林士).

이름 숨긴 뜻을 이제야 알겠네(萬事渾忘欲晦名).

- <도산에서 뜻을 말하다>

 

이황의 시는 맑고 엄하며 간결하고 담박하였다. 그는 젊어서 두보의 시를 배웠고, 노년에는 주자의 시를 사랑하였다. 선생의 시는 마치 그분들의 붓끝에서 나온 것처럼 품격이 높았다.

- 제자 정유일(鄭惟一)의 시평

 

나는 두 번 장가들었지만 늘 불행했습니다. 그래도 아내를 탓하는 야박한 마음을 갖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지낸 날이 수십 년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몹시 괴롭고 심란해, 참지 못할 지경이 된 적도 있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대륜(大倫)을 가볍게 여겨(즉 이혼해서), 홀로 계신 어머님께 근심을 끼칠 수야 있었겠습니까.

- 제자에게 보낸 편지(<이평숙에게 주다>)

 

안으로는 글공부에 전념하고, 밖으로는 살림살이를 살펴야 한다. 그러면 사풍(士風)이 퇴락되지 않아 (명성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공부는 완전히 뒷전으로 밀어놓고 살림살이에 정신을 판다면, 농부와 다를 것이 없다. 시골의 속된 사람들이나 그렇게 하는 법이다.

 

가난과 궁핍은 선비의 다반사다. 어찌 마음에 거리낄 것이 있겠느냐. 너의 아비도 평생 이로 인해, 남의 비웃음거리가 된 일이 많았다. 그러나 꿋꿋이 참고 순리로 처세(處世)하며 자신을 수양해야 한다. 그러면서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옳다.

 

너는 의탁할 곳이 없이 (처가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으니 궁색하기 짝이 없다. 네 편지를 받아 읽으면, 여러 날 동안 내 마음이 불편하다.

 

부디 괴로움을 참고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저 분수대로 주어진 천명을 기다릴 뿐이다. 가난을 너무 슬퍼하거나 원망하다가 실수를 저질러 남의 웃음거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

 

듣건대, 네가 젖어미로 선택한 여종은 아직 3~4개월밖에 안 되는 자기 아이를 두고 (네가 있는) 서울로 올라간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그 아이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근사록(近思錄)》에 이런 구절이 있느니라. "남의 자식을 죽여서 자기 자식을 살리는 짓은 매우 옳지 않은 일이다." 배운 대로 행하지 않으면 어찌 선비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래도 젖어미를 원하거든 그 아이까지 데려가서 두 아이를 함께 기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 없이 곧바로 자기 아이를 버리게 하는 것은 어진 사람이 차마 하지 못할 일이며, 또 지극히 편치 않은 일이기도 하니 이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거라.

 

너는 본래부터 공부에 뜻이 독실하지 못하다. 집에 머물면서 일없이 세월만 보낸다면, 더더욱 공부를 망치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서둘러서 조카 완(完)이나 아니면 독실한 뜻을 품은 친구와 더불어 책을 짊어지고 절에 올라가거라. 한겨울 동안 부지런히 공부하여라. 지금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세월은 유수 같아 한번 흘러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우니라. 내 말을 천만번 마음에 새겨 소홀히 하지 마라. 소홀히 하지 마라.

 

들으니, 몽아(蒙兒, 이안도의 아명)는 아직 집 안에 있다고 한다. 《예기(禮記)》에 따르면, "남자는 열 살이 되면 집을 떠나 스승에게 배우고 바깥에서 거처한다"고 했다. 이제 아이가 벌써 열서너 살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바깥에 나가지 않으니 될 일이냐.

 

또 내가 들으니, 무당이 자주 집을 드나든다는구나. 가법(家法)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나의 어머니 때부터는 전혀 무당을 섬기지 않았다. 나 역시 언제나 그것을 금지해서 무당이 드나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단순히 옛 어른의 가르침대로 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가법이 무너지면 안 되는 법이다. 어찌하여 너는 이런 뜻도 모르고, 경솔히 고치려 드느냐.

 

03 | 세상에 저항한 가난한 아버지 | 박세당

 

태보(泰輔)는 두통으로 자주 고생하고, 너(큰 아들 박태유)는 또 목이 쉬는 실음증(失音症)과숨이 가쁘고 헐떡거리는 데다 기침을 계속하는 천촉증(喘促症)에 시달린다 하니, 내 걱정이 끝도 없다. 실음증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천촉증은 상중인 네 건강을 몹시 걱정하게 하는 증세가 틀림없다. 무리하게 책을 읽지 마라. 그리고 네 원기가 부족하니, 아침저녁으로 소리 내어 울고 곡하는 것도 그만두어라.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곡하고 우는 데 달려 있지 않다. 너는 이 점을 꼭 명심하기 바란다.

- 1666년(현종 7)에 박세당이 상중(喪中)의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

 

생계가 곤란해서 매우 염려스럽다. 하지만 걱정해도 소용없는 일인 줄 알고 있다. 더는 아무 생각도 않으려 한다.

 

종이 돌아오는 편에 가져온 편지를 잘 받았다. 네가 (새어머니를) 시봉(侍奉)하며 잘 지내고 있는 줄 알게 되어, 내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생계의 곤란함은 너나 나나 마찬가지라서 몹시 걱정스럽고 또 걱정스럽구나. 이 세상의 이러한 근심거리가 과연 언제쯤이면 사라질꼬, 머나먼 상고시대, 평화롭게 살며 초가집 처마 밑에서 배를 두드리며 사시던 분들이야 우리처럼 쓸데없는 생각때문에 마음을 어지럽히실 일이 없었으리라.

- 1677년(숙종 3) 10월 12일, 49세의 박세당이 큰아들 박태유에게 보낸 편지

 

네가 역사책을 읽겠다고 말했느냐. 이 부분이야말로 전부터 네게는 몹시 부족했던 것이다. 이제 네가 그쪽에 뜻을 둔다면 필경 크게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정말 위안이 되고, 위안이 되는 일이구나.

그런데 말이다. 네가 역사책 읽는 법을 아느냐? 한꺼번에 죽 읽기만 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마음속에 간직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단다. 낮 동안에 읽은 내용을 그날 밤중이나 이튿날 아침에 조용히 앉아 곰곰이 되새겨보기를 바란다.

또 네가 읽으면서 마음에 흐뭇해했던 대목도 그렇거니와 역사 속 인물의 언행 가운데서 본받을  만한 점 또는 경계할 일을 찾아 내어 가슴 깊이 간직하기를 바란다. 이런 방법으로 역사책을 읽는다면, 금방 잊어버리지도 않게 되고 네 자신의 언행에 보탬이 적지 않을 줄로 믿는다.

역사책을 읽을 때는 이런 점을 유념해야 하느니라.

- 1666년(현종 7) 12월 9일, 박세당이 큰아들에게 보낸 편지

 

밤새 평안했느냐? 특별히 다른 일이 없으면, (선비는) 책을 읽고 글씨 쓰기를 연습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되느니라. 이 두 가지가 네게는 마치 농부가 호미와 쟁기를 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스스로를 엄히 타일러서 날마다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 만약 이를 중지하고 말면, 장차는 남의 도움을 비는 처지가 되고 말 것이다.

 

- 1675년(숙종 1) 둘째 아들 박태보에게 보낸 편지

 

과거시험 볼 날이 멀지 않았구나. 공부에 힘을 쏟아야 할 텐데, 네 몸이 아프다니 어찌 마음대로 될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글짓기를 할 때는 결코 생소하고 괴상한 문체를 쓰는 병통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문맥이 평이하고도 순조롭게 흘러가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면 문체가 절로 아름다워질 것이다.

특히 글의 앞뒤(首尾)를 상세히 잘 따져서 귀결점이 있게 해야, 맥락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글짓기의 요체다.

 

네가 작성한 시권(試卷, 과거 시험답안)의 글씨도 문제더구나. 비록 아주 거칠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직도 서툰 점이 없지 않다. 글짓기를 하지 않을 때는 반드시 <화담비(花潭碑)>나 <조아비(曺娥碑)>를 보고 베껴라. 그 일에도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글씨를 쓸 때는 크게만 쓰려고 하지 말고, 시권의 크기에 맞게 쓰는 연습을 하기 바란다. 과거에 익힌 글씨체는 일단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

 

글짓기를 할 때는 간략하게만 쓰려 하지 말고 (표현과 내용을) 풍부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04 | 불법 이혼남 | 김숙자

 

 

김숙자는 자기 자식을 망령되게도 서얼(庶孼)이라 일컫고, 조강지처(糟糠之妻)를 이유도 없이 내버렸습니다. 형법에 따라 그에게 곤장 80대를 치고, 이미 버린 아내를 데려다가 다시 살게 해야 합니다. (《세종실록》, 세종 5년 7월 4일)

 

아, 선공(김숙자)의 평생은 그 관직이 그 덕(德)에 못 미쳤다. 31세로 문과에 급제한 뒤 13년 동안 시골에 묻혀 지내셨다. 벼슬은 참외(參外, 7~9품의 하급관리)로 시작하여 대부(大夫, 4품 이상의 고위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28년 동안이었다. 그 사이 여섯 번 주부(主簿)의 벼슬을 지냈고, 부령(部令)은 두 번, 현감은 세 번, 교수관, 교리(校理), 부정(副正), 사예가 각 한 번씩이었다. 역임하신 관직은 모두 당대의 흔한 벼슬자리일 뿐이었다. (이혼 문제 때문에) 불우하고 영락하여 끝내 큰 업적을 이루지 못하셨다. (……) 아, 이것이 타고난 운명이셨던가. 아니면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고야 만 것인가.

 

아들을 장가들이고 딸을 시집보낼 때면, 반드시 상대방이 세족(世族)인지, 그리고 가훈(家訓)이 있는 집안인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혼인하기로 약속한 다음에는 누구도 이간질하지 못하게 막았다.

 

정축년(丁丑年, 세조 3) 10월 밀양에서 경산으로 가다가 나(김종직)는 답계역(踏溪驛)에서 잠을 잤다. 꿈속에 신선이 나타나서, "나는 초나라 회왕(懷王, 의제) 손심이다. 서초(西楚) 패왕(覇王, 항우)에게 살해되어 빈강(彬江)에 버려진 사람이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나 생각해보니, 회왕은 중국 초나라 사람이요, 나는 동국의 사람이라. 서로 거리가 만 리나 떨어져 있는데, 내 꿈에 나타난 까닭이 무엇일까? 역사를 살펴보면 그 시신을 강물에 버렸다는 기록은 없다. 아마도 항우가 회왕을 죽이게 한 다음, 시신을 강물에 내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제야 이 글을 지어 의제를 조문한다." (《연산군일기》, 연산군 4년 7월 17일)

 

05 | 알뜰한 살림꾼 | 이익

 

경기지방의 관찰사가 되어 여러 군현(郡縣)을 순행하게 되자 나는, 길을 돌아서 첨성리(瞻星里, 지금의 경기도 안산)에 있는 선생의 댁을 방문했다. 당시 선생은 81세였다는데, 처마가 낮은 허름한 지붕 아래 단정히 앉아 계셨다. 선생의 눈빛은 형형하여 쏘는 듯했고, 성긴 수염은 길게 늘어져 허리띠까지 닿을 듯했다.

절을 올리기도 전에 내 마음속에는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가까이 다가가서 모습을 뵈었더니, 화평하고 너그러우셨다. 경전에 관해 설명하실 때는 고금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내가 전에 알지 못한 말씀을 해주셨다.

- 채제공의 방문기

 

내가 선생의 문하에 수십 년을 출입하였지만, 노복을 꾸짖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선생은 노복을 형제나 친척과 똑같이 어루만지고 보살펴주었다. 부지런히 일하고 충성을 다한 노복이 죽자, 찾아가서 곡을 하셨다. 또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죽으면, 묻어주게 하셨다. 매사에 내 마음의 인(仁)을 확대하여 남에게까지 닿게 하시는 법이 이와 같으셨다.

- 이병휴 <가장>

 

벼슬 없는 선비는 어려서부터 익힌 일이 책에 적힌 문자에 불과하다. 농사짓거나 장사를 하려 해도 힘이 감당하지 못한다. (이익, <삼두회서>)

 

일생 동안 밭을 갈지도 풀을 매지도 않았네(生平不耕亦不耘).

배를 두드리며 지내지만 그 방법이 남다르다오(鼓腹含哺計甚差).

하느님이 오곡을 내려주셨거니와 그 가운데 하나가 콩이라오(天生五穀菽居一).

그 가운데서도 빨간 것이 으뜸이라네(就中赤色尤稱嘉).

붉은 빛깔 불이 성하면 죽은 것도 살아나고, 검은색 물이 성하면 죽는 법이라오(火旺方生水旺死).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사치가 심한 것이라(甜滑輕輭味更奢).

가난한 집안 재물이 부족하면 좋은 방편이 있거니(貧家乏財善方便)

헐값에 이것(콩)을 많이 바꾸어보시오(賤價易辦此亦多).

- <반숙가(半菽歌)>(콩을 반으로 쪼개며 부르는 노래)

 

<자식을 훈계하는 여덟 가지 조목(訓子八條)>

① 항상 마음이 몸을 떠나 있는지를 잘 살펴라.

② 온유함으로 백성을 사랑하라. 작은 잘못을 용서하고, 정말 잘못이 있는지를 잘 살피라.

③ 함부로 성내지 마라. 하리(下吏, 아전이나 관청의 노비)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너그럽게 대하라.

④ 부로(父老, 고을의 어른)들을 불러 고충을 들어보라.

⑤ 상관을 부형(父兄)처럼 섬기라.

⑥ 소송이 있을 때는 반드시 거짓말하는 사람의 이름을 기록해 두라.

⑦ 고을의 실무를 맡은 아전의 잘못이 명백하지 않을 때는 함부로 꾸짓지 마라. 조용히 관찰해보라.

⑧ 백성을 잘 다스리는 데 마음을 써라. 집안일은 걱정하지 마라. 나라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 효자다.

 

백성에게 물건을 거두는 것은 열에 여덟아홉이 그릇된 것이다. 이것으로 어버이를 봉양하다니 안 될 말이다. 나는 고향 집에 남아서 제철에 내 밭을 경작해서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수 있다.

 

06 | 사화도 꺾지 못한 기개 | 유계린

 

선친(유계린)의 나이 23세 되던 경신년(1500), 할아버지께서 작고하셨다. 선친은 순천에서 여막(廬幕)을 지키며 애통해하고 사모함이 지극하였다. 소상(小祥)을 마치고 일이 있어, 부득이 해남을 왕래하셨다. 그때 어머니(탐진 최씨)와 한 방에서 13일을 같이 지내셨으나, 예(禮)로써 멀리하셨다.

작별할 때가 되자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셨다. "열흘 넘게 머무셨으나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으니, 더욱 슬픕니다." 선친은 민망히 여기며 (조부의 묘소를 향해) 길을 재촉하셨다.

우리 빔 여종 눌비가 그때 그 방 안에 함께 있었던 관계로 전후 사정을 잘 알았다. 눌비는 늙을 때까지도 그때 일을 자주 말하곤 하였다. "앞뒤로 듣고 보아도, 우리 주인님(유셰린)만큼 공경할 만한 분이 안 계십니다."

 

선친은 부부 사이에도 서로 공경하기를 손님같이 예를 갖추었다. 그러나 애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다. 35년간 함께 사셨는데, 한 번도 첩을 사랑하신 적이 없으셨다.

 

하나뿐인 아우 계근(桂近, 유희춘의 숙부)과는 서로 우애가 깊으셨다. (……) 올벼가 나오는 논(早稻田)을 그에게 다 주었다. (선친에게는) 누이가 두 명 있었는데, 조모께서 생전에 몹시 사랑했다. 그 점을 고려하여 선친은 동기간에 재물을 나눌 적에 좋은 전답과 노비는 다 그들에게 양보하셨다.

자식 사랑도 고르게 하여 편애함이 없으셨다. 새끼에게 먹이를 고루 나눠주는 뻐꾸기의 사랑이 계셨다.

 

노비들도 아끼셨다. 그들의 나쁜 점은 미워하셨지만 장점을 알려고 노력하셨다. 자상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몸에 배셨다. 그런 선친이 작고하시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노비들이 넋을 놓고 곡성을 터뜨려 마치 자기네 친부모가 돌아가신 것처럼 하였다. 마을에 사는 백성들 중에도 우리 집을 드나들던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한숨을 내쉬고 탄식하며, '덕인(德人)이 돌아가셨다'고들 하였다.

 

고을의 여러 자제들이 와서 (선친께) 수업을 받았다. 십수 년 동안 그들을 지도하는 데 조금도 게으름이 없으셨다. 아동에게 글을 가르침에 반드시 먼저 강령(綱領), 즉 대의를 알려주고 그 문맥과 이치를 펼쳤다. 그런 가르침 덕분에 작고한 형님(유성춘)도 어릴 적부터 문의(文義)에 밝았고, 글 또한 잘 지었다.

 

거가십훈

 

① 사람의 기상은 단정하고 정중해야 한다. 경솔하지 마라. 깊이 가라앉은 듯 침착하여 꼭 필요한 말만 하도록 하라.

② 재물과 여색 따위를 탐하면 잘못된 사람이 되고 만다. 너희는 이를 깊이 경계해야 한다.

③ 어버이를 정성껏 섬겨라. 부모님의 편지는 잘 간수해서 한 장이라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④ 가정생활에서는 마음을 공정하게 가져야 한다. 편애하면 사이가 어긋나고 윤리가 무너진다.

⑤ 결코 남에게 아부하여 자신의 절개를 굽히지 마라.

⑥ 일을 처리할 때는 순리에 맞는가를 따지고,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마라.

⑦ 편파적이고 아첨하는 사람은 삿되다. 질박하고 진실하여 변함이 없고 신의가 있는 사람이 옳다. 너희는 마땅히 이를 기억하라.

⑧ 아첨으로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며,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사물을 극진하게 대하라.

⑨ 벼슬의 어려움이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험하다. 먹고살 만하다면 전원으로 돌아갈 줄 알아야 한다. 명예와 이익만 추구하다 풍파를 맞으면 무슨 소용이 잇으랴.

⑩ 《강목(綱目)》에 관한 윤씨(尹氏)의 주석을 읽다가 저절로 춤을 추었다. 뜻이 좋은 글은 반드시 적어두고 마음의 지향을 삼으라.

 

07 | 스승이자 친구이자 아버지 | 김장생

 

침실이나 서재에 훼손된 곳이 잇으면, 신독재 선생이 손수 살펴 보고 수리하였는데 흙손질도 직접 하였다. (……) 선생(김장생)께서는 준치(준眞魚), 식혜, 메밀국수를 즐기셨다. (김집은) 식혜를 끼니마다 챙겨 그릇에 가득 담아 올리고, 국수는 사흘마다 한 번 올리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당시 선생의 집이 매우 가난했다. 그러나 신독재가 음식 일체를 미리미리 준비하여 부족하지 않게 하였다. 만일 상에 올릴 고기가 없으면 몸소 그물을 들고 서당 앞 시냇가로 가서 물고기를 잡아왔다. 밭 갈고 김매고 수확하는 일이며 요역(徭役)을 바치는 일 등 집안의 모든 일을 손수 다 맡아서 어버이께 걱정을 끼치지 않았다. 그는 선생이 타시는 말도 살찌게 잘 보살폈고, 안장과 굴레 등도 항상 빈틈없이 손질하였다. 다니시는 길까지도 항상 깨끗이 쓸었다. 울타리 밑까지도 항상 손을 보았다. 이처럼 보통 사람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온갖 일을 묵묵히 차분하게 다 하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다.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사계 선생은 덕성이 얼굴에 넘치고, 기상이 온화하고 단아하셨다. 가까이 모시도 있노라면, 마치 봄바람 속에 있는 것과 같았다.

 

선생(김집)이 서제(庶弟)와 함께 노선생(김장생)을 모시고 계셨다. 마침 서제는 참봉 윤재(尹材)에게 답장을 쓰고 있었는데, 상대를 '존형(尊兄)'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선생은, '세상 풍속이 그렇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다. 서제가 고쳐 쓸 때까지 (선생은) 온화한 말로 거듭 타이르셨다. 노선생께서는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보시더니 빙그레 웃으셨다.

 

조정에는 특별히 긴요한 일이 없다. (……) 요즈음 사대부들을 보면, 견고한 뜻은 없고 물러날 생각들만 한다. 반정을 일으킨 사람들끼리만 마음을 함께하니, 한 나라의 일을 과연 두서너 사람끼리 다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제가) 서울 가는 일에 관해 말씀드립니다. (올라오라는) 혹자의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간다 해도) 지금 가는 것은, 임금을 위로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 더구나 진언(進言)하는 도리는 자기 생각을 그대로 아뢰는 것뿐일 터입니다. (……) 형편을 보아서 진퇴를 결정하여고 합니다. 7일이나 8일 사이에 그리 가서 (아버님을) 모시고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방백(方伯, 관찰사)의 회신이 아직 오지 않았고, 관청사무 또한 너무 많습니다. 9일 전에는 이곳을 떠날 수 없을 듯합니다. (아버님) 말씀대로 여기서 하회를 기다리겠습니다. 혹시 중간에 상황이 달라지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08 | 천재 예술가 | 김정희

 

모름지기 난을 치는 묘리를 터득해야만 한다. 반드시 붓을 세 번 굴리는(三轉) 방식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네가 그려서 보낸 난초를 살펴보니, 붓을 한 번에 죽 긋고는 말았구나. 붓을 세 번 굴리는 방법을 깊이 연구하여라. 요즘 난을 좀 친다고 하는 이들 가운데는 세 번 굴리는 묘법을 아는 이가 없다. 그들은 제멋대로 먹칠을 하고 있다.!

 

(난을 치는 것은) 한낱 작은 기예에 지나지 않소. 그러나 전력을 기울여 공부한다는 점에서 성인(聖人)의 격물지치 공부와 다를 것이 없소. (……) 이렇게 접근하지 않으면 상스러운 서화가나 마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오. '가슴속의 책 5천 권'이니 '팔 아래 금강(金剛)'과 같은 문자는 모두 여기서 비롯된 말이라오." (<석파(石坡)에게>, 《완당전집》권2)

 

네가 편지에서 고백한 말, "겨우 두어 글자를 쓰면 글자 글자가 따로 놀아, 결국은 귀일(歸一)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깨침이 귀하다. 네가 (서법의)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진경(進境)이 거기서 시작되느니라. 잠심(潛心)하고 힘써야 한다. 괴로움을 참고 이 한 관문을 넘어서야 통쾌한 깨달음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깨침을 이루기가 지극히 어렵더라도 절대로 물러나지 마라. (……) 나는 지금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도 귀일됨을 찾니 못하였다. 너놔 같은 초학자야 말해 무엇하랴. 너의 그 한탄소리를 들으니 나는 도리어 기쁘구나, 장래에 있을 너의 성공이 그 한마디에서 시작되리라.

 

등잔불 아래 일과로 글 읽는 것은 중지하지 않았느냐? 늙은 나는 잠이 없다. 너희들의 글 읽는 소리가 어슴푸레 귓가에 늘 들리는 듯하니, 이 마음이 참으로 괴롭다.

 

지난번 가는 도중에 보낸 편지는 받아보셨지요 (……) 그사이 인편이 있었는데도 답장을 못 받았습니다. 부끄러워 아니 하셨던 가요. 나는 마음이 몹시 섭섭했다오.

 

부인이 먼저 세상을 뜨고 말았소. 먼저 줒는 것이 무에 유쾌하고 만족스러운 일이라고, 나로 하여금 두 눈 빤히 뜨고 홀로 살게 한단 말이오. 푸른 바다도 같고 먼 하늘도 같은 원한이 끝도 없습니다. (<부인예안이씨애서문(夫人禮安李氏哀逝文>)

 

젊어서부터 영특한 이름을 드날렸다. 그러나 중간에 가화(家禍)를 만나 남쪽으로 귀양 가고 북쪽으로 유배 가서 갖은 풍상에 시달렸다. 세상에 쓰이기도 하였지만 버림을 받기도 하였다. (……) 세상 사람들은 그를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와 같다고 말한다. (《철종실록》, 철종 7년 10월 10일)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나물이오(大烹豆腐瓜薑菜).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면 족하다(高會夫妻兒女孫).

 

09 | 거룩한 영웅 | 이순신

 

상으로 받은 물건들도 그는 휘하 장수들에게 모두 주었다. 사사로이 차지한 것이라곤 없었다. 또 백성들을 어루만져 편안하게 했다. 부하들에게 농사를 가르쳐 식량을 저축하고, 어업과 소금 제조에 힘써 진중의 생계를 꾸렸다. 덕분에 군량이 넉넉하여 끊어진 적이 없었다. 남도의 백성들도 이것으로 먹고산 이가 수만 집이었다. (윤휴, 《통제사이충무공유사》)

 

혼자 다락 위에 기대 앉아 나라의 형편을 생각하니 아침 이슬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그러나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인재가 없고, 밖으로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다. 사직이 장차 어찌 될는지 모르겠다. (《난중일기》, 1595년 7월 1일)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나라 일을 생각하니, 나도 몰래 눈물이 흘렀다. (《난중일기》, 1595년 1월 1일)

 

몸이 몹시 불편하여 홀로 봉창 아래 앉아 있었다. 온갖 회포가 다 일어난다. 이경복에게 장계를 지니고 가라고 보냈다. 경(庚)의 어미에게 줄 노자를 문서에 넣어 보냈다. (《난중일기》, 1593년 8월 13일)

 

탐후선이 들어왔는데, 아내의 병이 몹시 위독하다고 한다. 벌써 죽고 사는 것이 결딴 나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라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른 일은 생각이 미칠 수 없다. 허나 (아내가 죽는다면) 세 아들과 딸 하나는 장차 어떻게 살까.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 마음이 심란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홀로 배 위에 앉아 잇었다. 그리운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세상에 어찌 나 같은 사람이 있겠는가! 아들 회는 내 심정을 알고 심히 언짢아하였다. (《난중일기》, 1597년 9월 11일)

 

밤 두 시쯤 꿈속에서 나는 말을 타고 언덕 위로 올라가는데,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 속으로 떨어졌다. 쓰러지지는 않았으나, 막 내아들 면이 끌어안은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 저녁 때 천안에서 온 사람이 집안 편지를 가져왔다. 봉투를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떨리고 정신이 아찔하며 어지러웠다. 대강 겉봉을 뜯고 열(예와 동일인)의 편지를 꺼냈다. 겉면에 '통곡' 두 글자가 있었다. 면이 전사했음을 직감했다. (《난중일기》, 1597년 10월 14일))

 

새벽꿈에 고향의 남자 종 진이가 왔다. 나는 죽은 아들을 생각하여 통곡하였다. (……) 저녁 때 코피를 한 되가량 쏟았다. 밤에 앉아서 생각하다 눈물이 절로 났다. 이 아픔을 어찌 말로 다하랴! (……) 비통한 가슴 찢어질 듯하여 참지 못하겠다. (《난중일기》, 1597년 10월 19일)

 

어느새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하신가. (……)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이런 어그러진 일이 어디 있느냐. 천지가 깜깜하고 태양조차 빛이 변햇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 너를 따라가 지하에서라도 같이 지내며 같이 울고 싶구나. 그리하면 네 형들과 네 누이, 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을 테지. 아직 참고 살기야 한다마는 마음으로는 이미 죽고 껍데기만 이렇게 남아 울부짖는다. 이렇게 울부짖는다. 오늘 하룻밤을 보내기가 1년 같구나. (《난중일기》, 1597년 10월 14일)

 

 

 

만사 하릴 없다, 관 뚜껑 덮고 누워 괴로워했네.

병의 뿌리 깊었든가, 여러 해 동안 약을 구하기 어려웠네.

거센 바람 궂은 비, 처음 염하던 그날,

처진 나물 찬 과일로 넋 보내는 상 차렸다네.

훨훨 타는 매운 불꽃, 집에 뻗쳐 놀랐다오.

이후로 이 내 몸엔 온갖 병 더하기만.

 

내 딸이여 내 딸이여, 마음과 몸 맑았도다.

심기조차 아름다웠어, 단아하고 성실했지.

갓 자란 난초, 티 없는 구슬

빈산에 널 묻다니,

봄이 와도 모르겠네.

죄 없는 너 보내놓고 이 지경이 되었구나.

백 년이 가도 원통치

내 억장이 무너지네.

어허라! 세 번 노래하니

노래도 구슬프네.

하늘 보고 목 놓아 울건마는

하늘은 묵묵부답이시네.

 

내 딸 세상 뜬 지 어느덧 3년,

해 넘겨 다시 오니 비참하기 그지없어라.

무덤가의 가벼운 바람, 얼굴을 스치네.

내 딸의 넋, 정녕코 바람 속에 엉겨 잇으리.

 

석 자 키에 두어 치 관 두께라니.

북망산 바라보니 눈이 늘 젖도다.

가련할손 사람의 일, 슬퍼한들 무엇 하랴.

야속한 하늘의 뜻, 믿기조차 어렵네.

동야의 울음소리 목메어 차마 못 듣겠네.

퇴지의 재상 차림 헛되고 처량해라.

책상머리 저 서책은 평일의 흔적일래.

그림자라도 부질없는 꿈길에 나타나주렴.

 

내 친구 북방에 갇혀 있구나.

네 지아비는 만리 길 멀다 않고 따라갔다 하니.

가을바람 으슬으슬 끝없는 (내) 걱정.

들국화 술잔에 어리어 비치누나.

 

이것은 스승이신 하서 김 부자(부자는 큰 스승, 곧 김인후)께서 소자에게 주신 것이다. 평생 그 은혜에 보답하지는 못할망정 사모하는 마음 가눌 길 없어 (이 벼루를) 보배처럼 간직해왔노라. 어느 날 일재 (이항) 선생이 벼루를 보시고, 부러워하며 말씀하셨다. "이 벼루는 벼루가 아니라, 바로 발우(불가에서 후계자에게 물려주는 공양그릇)이거니, 그대는 명심하시게."

 

산 늙은이 잠깨어 일어나네.

창포 앞에 세수한다네.

동상(사위 조희문)의 웃음소리, 기쁘게 들려오네.

잠깐 사이에 내 번뇌와 병, 한꺼번에 물러간다오.

 

하늘 위 그대(김인후의 벗) 살고, 나는 만산 가운데 누워 있다네.

(……) 시골 살림은 마을마다 해마다 곤궁하기 그지없다오.

(……)평생 두고 먹을 약을 (그대에게) 부탁하노니, 조자(사위 조희문)로 말미암아 그게 될는지요.

 

뿌리와 가지는 기운이 서로 통한다네. 얼마나 근고하여 이 가풍을 세웠던고. 너희들은 공부하고 몸을 닦아 이어가야 하느니라! 백공(온갖 기술자)도 대대로 기궁한다(부자가 이어나감)더라.

 

정지운은 <천명도>에서, "사단(四端)은 이(理)에서 일어나고, 칠정(七情)은 기(氣)에서 일어난다(四端 發於理 七情 發於氣)"라고 하였다. 사단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실마리가 되는 네 가지 마음을 가리킨다. 정지운은 이것이 '이(理)', 곧 하늘의 이치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에 비해 칠정, 즉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 기쁨 · 성냄 · 슬픔 · 두려움 · 사랑 · 미움 · 욕심)의 기분은 그때 그때의 사정에 따라 변하는 기운에서 일어난다고 이해했다.

퇴계의 견해는 약간 달랐다. "사단은 이가 일어난 것이고, 칠정은 기가 일어난 것이다(四端 理之發 七情 氣之發)"라고 했다. 사단과 칠정은 각기 '이'와 '기'로 인하여 이미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당시 선비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후일에 퇴계는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에게 보낸 편지에서 과거 자신의 주장을 보완했다. "사단이 일어남은 순수한 이치를 따른 것이라 불선(不善)이 없다. 하지만 칠정의 일어남에는 모두 기가 작용했으므로 선약이 있다(四端之發純理 故無不善 七情之發兼氣 故有善惡)." 간단히 풀이하면, 사단은 절대 객관이요 최고선(最高善)이지만, 칠정은 그렇지 않아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기대승은 이렇게 응답했다. "성(性)은 무불선(無不善, 악이 없음)이요, 정(情)은 유선악(有善惡, 선도 있고 악도 있음)임을 인정합니다. 다만 칠정 외에 사단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단도 칠정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기대승은 사단으로 표현되는 인간 본성과 칠정으로 요약되는 인간의 감정에 관한 퇴계의 정의에는 동의하면서도, 사단과 칠정을 '기'의 소관으로 인식했다. 이로써 두 학자 사이에는 사단과 칠정을 둘러싼 오랜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이 거듭될수록 두 사람의 입장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마침내 퇴계는 기대승과 자신의 견해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선언했다. '동본이말(同本異末)', 곧 근원은 같으나 지엽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평가였다. 두 사람의 주장이 인간 본성의 표현을 사단으로 인식하고, 이를 절대선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근원이 같다는 것이다. 다만 칠정의 성격에 관해서는 두 사람이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엽적인 문제가 남은 것으로 판단했다.

본래 기대승은 사단칠정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고향 선배 김인후에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김인후가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 결국 고봉은 하서 김인후와 쌍벽을 이루었던 대학자 퇴계를 상대하여 역사적인 논쟁을 펼치게 되었다.

 

 

11 | 청백리 | 이항복

 

이항복은 호걸이었다. 그 성품도 시원시원하였다. (……) 그는 젊은 시절부터 이덕형과 나란히 이름을 떨쳤는데, 둘 다 문장가로 성공하여 높은 벼슬에 이르렀다. 일찍이 정철은 이 두 사람을 상서로운 기린과 봉에 견주어 칭송했다. (《광해군일기》의 <이항복 졸기>)

 

네 죄가 수사를 받고 있는 지금, 벼슬을 그만둔다면 네가 허약하고 겁쟁이로 보여 다들 가소롭게 여길 것이다. 일의 형세로 보아도 마땅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성실히 조사에 임해야 한다.

만일 관찰사가 너를 처벌하려고 조정에 건의할 경우에는 말이다, 체포를 하건 파직을 하건 서울의 대간(臺諫)들이 죄를 고발하여 파직에 이를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처리하든지 아무 걱정 말고 맡겨두어라.

결국 이 사건이 무사히 종결되면, 그때는 관찰사에게 이렇게 아뢰면 좋겠다.

"역졸도 백성인데, 비록 가벼운 매질을 하기는 했지만 저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제 마음이 몹시 불편합니다. 다시는 백성들을 볼 면복이 없습니다. 이 일로 수개월 동안 하명을 기다리다가 결국은 무죄 처분을 받아 더더욱 송구합니다."

이런 글을 올리고, 조정의 법에 따라 벼슬을 버리고 돌아오라. 그러면 이 일이 조용히 마무리될 것이다.

 

내가 듣건대, 양구현 아전들이 네게 원망을 품고 처벌을 바란다고 하는구나. 극히 무례한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사정상 더는 그곳에 머물지 못할 형편이거든 말이다, 설사 도주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서둘러서 꼭 빠져나와야 한다. 알겠느냐? 이 결정은 현장에서 직접 형편을 판단할 수 있는, 네 스스로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다.

 

시아(時兒)가 곧 《사략(史略)》을 뗀다고 하던데 내 마음이 흡족하고 다행스럽구나. 그런데 책은 한 번 쓱 보아 넘기기만 하면 안 되느니라. 숙독하지 않으면 읽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손자가 그 책을 다 뗐다 해도, 다른 책을 펼치게 하지 말고 두고두고 되풀이 읽게 하여라. 50~60번을 반복하여 읽은 뒤라야 다른 책을 봐도 괜찮다.

 

만일 《사략》을 숙독했다면, 《통감(通鑑)》은 굳이 읽힐 필요가 없다. 그러면 《논어(論語)》를 읽어야 할 텐데, 그 공부는 또 그 나름으로 주의점이 있을 것이다.

 

시아가 일곱 권이나 되는 책(《사략》)을 읽었으면, 문리는 조금 트였겠ㄱ나. 당장 시사(時詞)ㄹㄹ 읽힉, 글쓰기(述作)를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리는 있어도 글쓰기에 서툴러, 결국 서궤(書櫃, 책장)처럼 쓸데없는 공부로 끝나고 말 것이다. 절실히 경계하고 경계하라.

 

《사략》을 숙독하고 나면, 시아를 데려와야 하겠다. 여기서 내가 시도 가르치고 글쓰기도 가르칠 것이다. 다른 대가(大家)들의 책도 다 가르치고 싶다. 한 가지 책을 끝내면, 네게 보내 시아가 ㅂ모를 만나고 여기서 배운 것을 숙족하게 하자. 숙독이 끝나면, 또 이리로 와서 다른 책을 배우게 하리라. 절반은 서울에 머물고, 절반은 시골에 있게 하는 것이 시아에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소인배가 기세를 떨쳐 다가올 재앙을 예측할 수 없었다. 두 명의 대신이 밤에 공(이항복)을 찾아와 회유하고 협박하였다. 그래도 공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들가 조카들이 눈물을 흘리며, "가족의 안위부터 살펴줏서!"라며 애원하자, 공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훈계하였다. "나는 선조 임금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재상이 되었다. 이제 늙어 죽을 목숨에 불과하다. 어찌 뜻을 굽히고 임금을 저버려, 스스로 명의(名義)를 무너뜨릴까 보냐. 내 뜻이 이미 정해졌으니, 너희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12 | 비극의 주인공 | 영조

 

 

 

 

 

posted by 황영찬
2017. 2. 22. 12:41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06 목수의 인문학

 

 

임병희 글, 이우일 그림

2015, 비아북

 

대야도서관

SB103805

 

584.04

임44ㅁ

 

木手 人文學

 

목수가 된 인문학자의 인생 · 철학 · 고전 3막 18장

 

“인생은 계획 중에

벌어지는 일이다!

 

人生未定,

스슬 삶의 철학을 정립하는 DIY 인문학


자신 앞에 놓인 재료, 공구, 마감재를 가직 나만의 철학을 조립한다. 치열한 고민 끝에 만들어가는 철학이 삶을 버티는 힘이 된다. 자존감을 키우는 성장의 철학!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인문학이다.

 

1막

삶의 재료들


겨울을 견뎌낸 추재(秋材)의 나이테가 더 짙은 색과 깊은 밀도를 가지듯 고난의 순간을 충실히 보내야 나를 영글게 할 수 있다.

 

2막

삶을 바꾸는 공구들


재료를 갖추고 세상에 나가는 순간 방황은 시작된다. 톱질과 대패질로 목재가 가구로 바뀌듯이 인고의 시간을 거치지 않으면 삶도 바뀌지 않는다.

 

3막

삶의 찬란한 마감재들


샌딩과 오일로 마감을 하면 가구는 완성이 되지만 삶에 완성이란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겪어야 할 일은 겪어야 지나간다.

 

임병희

방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길을 찾으려 했다. 시를 쓰고 싶은 마음에 문학을 전공했으나 시적 상상력의 빈곤에 좌절하고 신화를 공부하겠다는 마음으로 문화인류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 무당과 굿판을 찾아다니며 신화가 문자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무엇’을 보느냐에서 ‘어떻게’ 보느냐로 사고체계의 전환이 시작된 시점이다.

2004년 어느 날, 문득 베이징으로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생각지도 않게 7년을 머물렀다. 버리고 떠난 길이었으나 돌아올 때는 또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와버렸다. 중국사회과학원에 입학하여 동북아신화를 연구한 것이 그랬고 좋은 인연을 만나 동양고전의 맛을 알게 된 것 또한 그랬다. 신화적 구조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삶이 씁쓸해지는 순간 고전을 펼쳐보는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신화와 고전의 철학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무엇이 되기 위해 한 공부가 아니었기에 하고 싶은 그 무엇도 할 수 있었다. ‘나무와 늘보’라는 공방에서 목공 수업을 받으며 매일 혼자만의 출근을 시작했다. 정신없이 가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서(四書)와 노장(老莊)이 튀어나왔다. 나무를 만지고 다듬어 연결하면 가구가 만들어지듯 생각과 생각을 연결하면 상상력의 세계가 지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 또 어떤 방황을 할지 모르지만 그것 역시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인생임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 문화인류학과에서 종교민속을 전공했고 <판타지 소설과 온라인게임의 신화 구조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동북아신화와 문명 및 역사의 비교를 통한 한국신화의 확장을 시도했다. <한국신화역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중국남방일보 출판사에서 《韓國神話歷史》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외에도 《인문라이더를 위한 상상력사전》을 썼다.

 

이우일

독특한 캐릭터와 허를 찌르는 기발함, 일상을 전복하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만화, 일러스트레이션, 수필 등을 오가며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전방위 예술가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고, 주요 작품으로는 《도날드 닭》,  《신나는 노빈손》 시리즈, 《삼인삼색 미학 오디세이 2》,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 이야기》,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시리즈 등이 있다.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흐르는 물은

구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물이 흘러 구덩이에 닿는다. 움푹 팬 구덩이에 물이 스민다. 결국 구덩이가 다 찰 때까지 물은 흐르지 않는다. 구덩이를 다 채우고 나서야 물은 앞으로 나아간다. 건너뛰고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가구의 뼈대가 없으면 샌딩도 할 수 없다. 뼈대를 만들었다 해도 샌딩을 하지 않으면 가구를 즐길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은 한 번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나 역시 그렇다. 지난한 과정 없이 자고 일어나면, 눈 한 번 감고 나면 무언가가 이루어져 있기를 바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부질없는 생각인 줄 알면서도 그런 바람을 품고 산다. 소중하지 않은 것들은 없다. 그것을 겪어야, 그 과정을 지나야 그곳에 닿을 수 있다.

힘들고 외로울 때 우리는 그것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지만 그만큼 힘들어야, 그만큼 외로워야 슬픔과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다. 물이 구덩이를 건너뛸 수 없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도 겪어야 하는 일은 모두 겪어야 지나간다. - 본문 중에서해도

 

차례

 

서문 _ 인생미정人生未定, 나도 내가 목수가 될 줄 몰랐다!



1막 삶의 재료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1장 춘재와 추재 그 순간이 고난이라 할지라도 충실하라
2장 경첩 경첩을 달았으면 문을 열어라
3장 자투리 어떻게 보느냐가 무엇을 만들지를 결정한다
4장 무늬목 포장으로 속을 감추려 하지 마라. 대신 속을 키워라
5장 가죽나무 새로운 길을 가고 싶다면 새로운 생각을 해라
6장 집성목 우리는 모두 조금 모자라다

2막 삶을 바꾸는 공구들
      방황,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1장 분도기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2장 그 길을 알고 집중하고 마음을 다하라
3장 비트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이다
4장 루터테이블 실수를 통해 배워라. 실수는 스승이다
5장 직각자 직각은 모두에게 직각이어야 한다
6장 대패 껍질을 까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라

3막 삶의 찬란한 마감재들
      가구에는 완성이 있어도 인생에 완성은 없다


1장 디자인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라. 다를 뿐 틀리지 않다
2장 의자 네 안에 그것이 있다
3장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법
4장 샌딩 겪을 것은 겪어야 한다
5장 오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6장 목공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삶

 

계절은 소리 없이 찾아온다.

늦게야 계절이 바뀜을 알고 또 지난 계절을 그리워한다.

나는 이렇듯 무심히 계절을 보내는데,

나무는 쉼 없이 준비하여 꽃을 피운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

겨우내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는데,

나만이 침잠없이 꽃을 피우려 했구나.

 

하늘의 도는 활을 매는 것과 같다. 높은 곳은 밀어 내리고 낮은 곳은 들어 올리며, 남는 곳은 덜어내고 부족한 곳은 보충한다.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데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으니 부족한 것을 덜어 남는 사람에게 바치는구나. - 《도덕경道德經》 77장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함께'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자연은 그렇게 산다. 나무가 봄과 여름에는 빨리 자라고 가을과 겨울에는 더디 자라는 것처럼 자연은 변화에 맞추어 합당한 자신의 길을 찾는다. 그것이 하늘의 도이자 자연의 순리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만이 가진 자는 더 많이, 적게 가진 자는 더 적게 가진다. 그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으려 한다. 모두가 욕심이다. 욕심은 타인을 해치고 사회를 망친다. 때로는 그 욕심이 자신을 향하게 된다.

 

발끝으로 서는 자는 오래 설 수 없고, 황새처럼 가랑이를 벌리고 걷는 자는 오래 걸을 수 없다. 스스로 나타내는 자는 나타나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하는 자는 드러나지 않는다.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공이 없고 스스로 칭찬하는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 《도덕경》 24장

企者不立, 跨者不行,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준비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고 생각하지 않으면 깊어질 수 없으며 체력을 키우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다. 조금 더 높아 보이기 위해 발끝으로 선 까치발은 금방 가라앉는다. 자신의 페이스를 넘어 욕심을 부리면 잠시 동안은 빨라보일지 몰라도 점차 속도와 밀도가 떨어지고 말 것이다. 빨리 단단히 자라기 바라지만 결과는 반대다. 늦고 무르게 성장하여 급기야는 스스로 무너지는 결과를 낳는다.

 

순임금은 밭 가운데서 등용되었고 부열은 성벽을 쌓다 등용되었으며, 교력은 생선과 소금을 팔다 등용되었고 관중은 감옥에서 등용되었으며, 손숙오는 바닷가에서 등용되었고 백리해는 시장바닥에서 등용되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그러한 사람들에게 큰일을 맡기는 명을 내리려면 반드시 먼저 그들의 심지를 괴롭히고 그들의 근육을 수고롭게 하고 그들의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들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게 해서 그들이 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과는 어긋나게 만드는데, 그것은 마음을 움직이고 자신의 성질을 참아서 그들이 해내지 못하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다. - 《맹자孟子》<고자장구告子章句> 下

舜發於畎畝之中, 傅說舉於版築之閒, 膠鬲舉於魚鹽之中, 管夷吾舉於士, 孫叔敖舉於海, 百里奚 舉於市. 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為, 所以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성군이라 일컬어지는 순임금은 밭을 갈았고, 상나라의 현명한 재상 부열은 담장을 쌓는 노예였으며,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소금과 생선을 팔던 교력은 주나라 문왕에게 등용되었다. 관중과 손숙오, 그리고 백리해도 감옥과 바닷가와 시장에서 등용되어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어질게 하는 현명한 신하가 되었다. 그들은 고난 속에서 자신을 단단히 키웠다. 고난에 잡아먹힐 것이 아니라 겨울나무가 그러했던 것처럼 속에서 새순을 키우며 피울 시기를 기다렸다. 심지가 괴롭고 근육이 수고롭고 배를 주리는 일이 그들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고통을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봄이 왔을 때,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처럼 자신의 뜻을 펼쳐냈다.

 

문 앞까지 와서도 두드리지 못했다.

두드리고도 열지 못했다.

열고 들어갔으면 닫아야 했는데,

도망갈 곳을 만든다며 닫지 않고 열어 두었다.

열어야 할 때 열지 못하고,

당아야 할 때 닫지 못하니 늘 어중간하기만 했다.

쓰지 않는 문의 경첩은 소용이 없다.

빗장이 풀리지 않으면 아무곳에도 갈 수 없다.

 

공자가 말했다. "누가 문을 경유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이 도道로 말미암지 않는 것인가?" - 《논어論語》<옹야雍也>

子曰:"雖能出不由戶?何莫由斯道也?"

문은 시작이고 끝이다. 문을 통하지 않으면 시작도 끝도 없다. 문은 통로라는 변하지 않는 하나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들어가든 나오든 문을 통해야 한다. 공자는 누구나 문을 통하는 것처럼 사람 역시 도로 말미암아야 한다고 말한다. 도로 말미암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문을 통하듯 사람이 예를 지키고 도리를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공자는 말한다. 문은 우리에게 많은 이치를 알려준다.

 

현자를 만나고자 하면서도 도로써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마치 그 사람이 들어오기를 바라면서도 문을 닫아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대저 의義는 길이요, 예禮는 문이다. 오직 군자만이 이 길을 따라갈 수 있고, 이 문을 통하여 드나들 수 있다. - 《맹자》<만장장구萬章章句> 下

欲見賢人而不以其道, 猶欲其入而閉之門也. 夫義路也. 門也, 惟君子, 能由是路, 出入是門也.

현명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문을 열어야 한다.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더 많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문을 열어야 한다. 문을 닫으면 아무것도 만날 수 없다.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우리가 문을 걸어 닫고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자물쇠를 채우고 경첩에 좀이 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문의 경첩은 좀먹지 않는다. - 《여씨춘추呂氏春秋

流水不腐,戶樞不蠹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하지만 흐르는 물은 그 움직임으로 인해 맑음을 유지한다. 경첩이 좀먹지 않는 것은 항상 움직이기 때문이다. 움직인다는 것은 정체되어 있지 않음이다. 경첩이 움직이는 반경은 짧다. 아무리 커다란 문일지라도 경첩의 크기는 한정되고 경첩은 그 크기가 허락한 공간만을 움직인다. 그러나 반경이 짧다고 그 의미까지 좁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곧 저것이요, 저것이 곧 이것이다. 저것에도 하나의 시是와 비非가 있고 이것에도 하나의 시와 비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저것과 이것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저것과 이것을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을 도추라 한다. 문짝의 지도리는 고리 속에 끼워져야 무궁에 응할 수 있다. 시 또한 하나의 무궁이요, 비 또한 하나의 무궁이다. 그러므로 밝음에 비추어 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것이다. - 《장자壯子》<제물론齊物論>

是亦彼也, 彼亦是也. 彼亦一是非, 此亦一是非. 果且有彼是乎哉? 果且无彼是乎哉? 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樞始得其環中, 以應无窮. 是亦一无窮, 非亦一无窮也. 故曰莫若以明.

경첩에는 이것과 저것이 함께한다. 경첩의 양 날개는 이것을 만들고 저것을 만든다. 그것은 경첩이 지도리라는 축을 중심으로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야 하는 사람에게 문은 열리는 것이 옳다. 하지만 닫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닫히는 것이 옳다. 열리는 것과 닫히는 것, 그 무엇 하나도 옳고 그름으로 시비를 가릴 수 없다. 그리고 그 둘은 갈라질 수 없다. 언제나 함께한다. 열고 닫음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그 반복은 또 무한한 가능성을 만든다. 정자는 지도리를 통해 도의 지도리는 옳고 그름, 참과 거짓의 대립을 초월한 경지임을 이야기한다.

 

무엇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남겨진 물건,

남겨진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버려두면 버려질 것이고,

생명을 부여하면 생명을 가질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송나라 사람 중에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대대로 세탁업에 종사했다. 한 손님이 약 만드는 방법을 백금百金에 사고자 하니 약을 가진 사람은 가족과 함께 의논하기를 "우리가 대대로 세탁업을 했지만 번 돈이 몇 푼에 불과한데, 이제 백금을 준다 하니 그것을 팝시다"라고 했다. 손님은 약 만드는 방법을 가지고 오나라로 가 오왕을 설득했다. 때마침 월나라와 전쟁이 있었는데 오왕이 그를 장수로 삼아 싸우게 했다. 오나라는 겨울은 월나라와 수전水戰을 벌였는데, 여기서 월나라를 대패시켰다. 그래서 오왕은 그를 제후로 삼았다. 손이 트지 않게 하는 방법은 한 가지이지만 어떤 사람은 이것으로 제후가 되고 어떤 사람은 세탁업을 면하지 못한 것은 쓰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 《장자》<소요유逍遙遊>

宋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 世世以洴澼絖爲事. 客聞之, 請買其方以百金. 聚族而謀曰. "我世世爲洴澼絖, 不過數金. 今一朝而粥技百金, 請與之." 客得之, 以說吳王. 越有難, 吳王使之將, 冬與越人水戰, 大敗越人, 裂地而封之. 能不龜手, 一也. 或以封, 或不免於洴澼絖, 則所用之異也.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은 한 가지다. 송나라 사람은 세탁업을 하며 손이 트는 것을 막는 데 그약을 썼다. 하지만 손님은 그 약의 다른 쓰임을 보았다. 그랬기에 백금을 주고 약의 비법을 사고자 했다. 손님은 그 약을 전쟁에서 군사력을 높이는 데 사용했고, 이후 제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자투리 나무도 버려지면 그저 땔감이나 쓰레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투리 나무의 쓰임을 찾으면 내 책상을 빛내는 소품이 된다.

 

겨울은 한 해가 남겨놓은 여분의 시간이다.

밤은 낮이 남겨놓은 여분의 시간이다.

비 오는 날은 맑은 날이 남겨놓은 여분의 시간이다. - 《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

冬者歲之餘, 夜者日之餘, 陰雨者時之餘也.

동우에 의하면 삼여지설의 첫 번째는 겨울, 두 번째는 밤, 마지막은 비 오는 날이다. 동우는 이 시간이 마음으로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한 해의 농사가 마무리되었기에 겨울은 한가로웠을 것이다. 지금처럼 전기가 온밤을 비춰주는 세상이 아니었기에 당시는 밤이 한가로웠을 것이다. 비가 오면 쉬는 일이 많았기에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한가로움을 채우는 것은 독서다.

 

가린다고 가려질까?

가리고 싶다고 가려질까?

잠시는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듯 포장지를 뜯고 나오는

나의 내용물들은 얇고 강퍅했고 부끄러웠다.

당당해지고 싶었는데,

삶은 늘 당당함을 비켜갔다.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빛을 띠는 자 중에 어진 자가 드물다. - 《논어》<학이學而>

巧言令色, 鮮矣仁.

공자가 《논어》에서 이 말을 한 것은 한 번이 아니다. <양화陽貨> 편에서도 '교언영색巧言令色'을 이야기하며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빛을 경계한다. 가구에서 사람을 현혹하는 것은 무늬목이 아니라 무늬목을 속이는 교묘한 말과 원목처럼 보이게 찍은 사진들, 잘 드러나지 않게 표기된 재질이다.

 

눈이 밝지 못하는 것은 흑백을 판별하지 못하는 것이고, 귀가 밝지 못하는 것은 소리의 청탁을 식별하지 못하는 것이며, 지력이 밝지 못하는 것은 이해득실의 한계를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눈이 흑백을 판별하지 못하는 상태를 맹盲이라 하고, 귀가 소리의 청탁을 식별하지 못하는 상태를 농聾이라 하며 지력이 사리분별을 바르게 할 수 없는 상태를 광狂이라 한다. 맹이 되면 환한 대낮이라해도 앞을 보지 못해 위태로운 곳을 피할 수 없고, 농이 되면 천둥소리도 듣지 못하며, 광이 되면 인세의 법령을 피할 만한 사고력이 없으므로 형벌의 화를 받게 된다. - 《한비자韓非子》<해로解老>

目不明則不能決黑白之分, 耳不聰則不能別清濁之聲, 智識亂則不能審得失之地, 目不能決黑白之色則謂之盲, 耳不能別清濁之聲則謂之聾, 心不能審得失之地則謂之狂, 盲則不能避晝日之險, 聾則不能知雷霆之害, 狂則不能免人間法令之禍.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고 들리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보이고 들리는 것은 현상일 뿐이다. 그 현상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힘이 통찰력이다.

 

장차 배신할 사람은 그 말에 부끄러움이 있고, 마음속에 의심이 있는 자는 그 말이 갈라진다. 길한 사람은 말이 적고, 조급한 사람은 말이 많다. 선을 속이는 사람은 그 말이 놀고, 지조를 잃은 사람은 그 말이 비굴하다. - 《주역周易》<계사전繫辭傳> 下

將叛者, 其辭慙, 中心疑者, 其辭枝, 吉人之辭, 寡, 躁人之辭, 多, 誣善之人, 其辭游, 失其守者, 其辭屈.

 

 

드러난 것에 단서가 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감출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기미나 전조는 어디에나 있다. 단지 그것을 파악하지 못할 뿐이다. 겉을 통해 속을 알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나 달디단 말에 속아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바탕이 꾸밈을 이기면 거칠어지고, 꾸밈이 바탕을 이기면 화려해진다. 꾸밈과 바탕이 조화를 이룬 뒤에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 - 《논어》<옹야>

子曰 :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공자는 꾸밈과 바탕이 조화를 이루는 문질빈빈文質彬彬 연후에야 군자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바탕은 내용이고 꾸밈은 형식이다. 바탕은 속이고 꾸밈은 겉이다. 바탕이 착한 사람도 예를 모르면 거칠어 대하기 힘들고 잘 꾸민 사람이라도 그 속이 검으면 함께할 수 없다. 본성의 바탕에 예를 갖추어야 비로소 군자가 된다.

 

나는 쉽게 한정지었다.

하나의 면을 보면 그 하나의 면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보는 세상은 늘 흑백의 평면이었다.

나는 평면 속에서 입체를 찾았고

흑과 백의 세상에 나만의 색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게 잘못이었다. 나는 나무를 통해 달리 보는 법을 알았다.

그것을 가죽나무가 알려주었다.

 

맹자가 고자에게 일러 말했다. "산속의 작은 길도 많이 다니면 큰길이 되지만 잠시 다니지 않으면 곧 띠(풀)가 우거져 막혀버리는 법이거늘, 이제 그 띠가 자네 마음을 막아버렸구나." - 《맹자》<진심장구盡心章句> 下

孟子謂高子曰 : "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則茅塞之矣, 茅塞子之心矣

걷지 않으면, 길은 없어진다. 금방 띠가 우거져 길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문제는 마음의 길도 그렇다는 데 있다. 마음에도 길이 있고 생각에도 길이 있다. 그 길도 가지 않으면 띠가 우거지듯 막히고 굳어버린다. 굳은 마음, 막힌 생각은 더 이상 새로움을 품지 못한다. 굳어버린 마음으로 사물과 세상을 대하면 참혹한 일상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혜자가 장자에게 일러 말했다. "나에게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죽나무라고 합니다. 큰 줄기에는 옹종이 있어 먹줄을 댈 수 없고, 작은 가지는 꼬불꼬불 구부러져 규규로 잴 수 없으니 땅 위에 서 있기는 하나 장인이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선생의 말도 크기는 하지만 아무 쓸데가 없으니 사람들이 모두 피합니다."

장자가 말했다. "당신만 혼자 살쾡이를 보지 못했군요. 몸을 낮추어 먹이를 기다리다 동서로 뛰어오르며 높고 낮은 곳을 가리지 않다 덫이나 그물에 걸려 죽습니다. 그런데 이우라는 소는 그 크기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만 한데, 이 소가 그렇게 커도 쥐를 잡지 못합니다. 당신은 큰 나무가 있지만 그것을 쓸데가 없어 고민한다 합니다. 어째서 그 나무를 이무것도 없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광막한 들에 심으려 하지 않습니까? 그 나무 주위를 아무 할 일 없이 방황하고 소요하면서 그 아래 누워 잘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까? 그렇게 하면 도끼에 의해 잘리지도 않을 것이며 어떤 것에도 해로움이 없을 것인데, 어찌 쓸데가 없음을 괴로워한단 말입니까?" - 《장자》<소요유>

惠子謂莊子曰 : "吾有大樹, 人謂之樗, 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 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 立之塗, 匠者不顧. 今子之言, 大而無用, 衆所同去也. "

莊子曰 : "子獨不見狸狌乎? 卑身而伏, 以候敖者, 東西跳梁, 不避高下, 中於機辟, 死於罔罟, 今夫斄牛, 其大若垂天地雲, 此能爲大矣, 而不能執鼠. 今子有大樹, 患其无用, 何不樹之於無何有之鄕, 廣莫之野, 彷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 不夭斤斧, 物无害者, 無所可用, 安所困苦哉."

살쾡이는 먹이를 잡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이리저리 뛰다가 죽는다. 이우라는 소는 아무리 커도 쥐를 잡지 못한다. 그 자신의 효용이 때로는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되고, 사람들이 큰 효용이 있다 여기는 것도 쓸모없을 때가 있다. 하나의 사물에는 언제나 다른 면이 있다.

혜자에게 구부러지고 옹종 많은 가죽나무는 자리만 차지하는, 쓸모없는 사물에 불과했다. 그래서 혜자는 가죽나무를 무용無用이라 했다. 치수를 재고 재단을 해서 길고 널찍한 판자로 만들어야 무엇이든 만들 수 있을 텐데, 가죽나무로는 그럴 수 없었다. 가지가 하도 꼬부라져 치수를 잴 수 없었다. 옹종이 많아 먹줄을 댈 수 없고 톱으로 자르기도 힘이 드니 장인들은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은 혜자의 생각일 뿐이었다.

 

송나라에 형씨荊氏들이 사는 곳이 있었다. 가래나무, 잣나무, 뽕나무가 많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것이 한두 줌 이상 크면 원숭이 말뚝으로 베어 가고, 서너 아름이 되면 고관 집 용마룻감으로 베어 가고, 일고여덟 아름이 되면 귀인댁 · 부잣집의 널판자감으로 베어 간다. 그래서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중도에 도끼에 찍혀 죽고 만다. 이것이 쓸모 있는 재목들의 환난이라는 것이다. - 《장자》<인간세人間世>

宋有荊氏者, 宜楸柏桑, 其拱把而上者, 求狙猴之, 杙者斬之. 三圍四圍, 求高名之麗者斬之,  七圍八圍, 貴人富商之家, 求樿傍者斬之. 故未終其天年, 而中道之夭於斧斤, 此材之患也.

가죽나무는 그 모습으로 인해 살아남는다. 굵고 곧은 나무들은 목재를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찍히고 베어진다. 하지만 가죽나무는 장인에게 쓸모없음으로 인해 살아남았다. 장인에게 쓸모없음이 가죽나무에게 쓸모없음이 가죽나무에게는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장님에게는 아름다운 무늬를 보일 필요가 없고 귀머거리에게는 음악소리가 필요 없다. 어찌 육체적으로만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겠나. 정신면에서도 그런 것이 있다. - 《장자》<소요유>

瞽者无以與文章之觀, 聾者无以與乎鍾鼓之聲. 豈唯形骸有聾盲哉? 夫知亦有之.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무늬는 무의미하다.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음악이 필요치 않다. 그것은 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보고 통찰하고 듣고 이해하는 생각과 마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생각의 장님이며 마음의 귀머거리일 것이다. 생각의 눈을 뜨고 마음의 귀를 열지 않으면 그려진 선을 따라 색을 채우는 일밖에 할 수 없다.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방안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저기 바깥에 있는데,

혼자서는 어디도 갈 수 없었다.

이 나무는 이렇게 많은 조각이 모여 넓디넓은 면을 이루는데,

나는 어디 한 조각도 되지 못한 채

따로 떨어져 있었다.

 

제나라 선왕이 물었다. "문왕의 동산이 사방 70리라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옛 기록에 그러한 것이 있습니다."

제 선왕이 말했다. "그처럼 컸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백성들은 오히려 작다고 여겼습니다."

제 선왕이 말하기를, "과인의 동산은 사방 40리인데도 백성들이 오히려 크다고 여기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했다. "문왕의 동산은 사방 70리이지만 꼴 베고 나무하는 사람과 꿩 잡고 토끼 잡는 사람과 함께 썼으니 작다고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 《맹자孟자》<양혜왕梁惠王> 下

齊宣王問曰 : "文王之囿, 方七十里, 有諸."

孟子對曰 : "於傳 有之. 曰, 若是其大乎. 曰, 民猶以爲小也."

曰 : "寡人之囿, 方四十里, 民猶以爲大, 何也."

曰 : "文王之囿, 方七十里, 芻蕘者往焉, 雉兔者往焉, 與民同之, 民以爲小, 不亦宜乎."

제나라 선왕은 주나라의 성군이라 일컬어지는 문왕보다 자신이 더 낫다며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문왕의 동산은 70리이지만 자신은 40리에 불과하다고 했다. 하지만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동산의 크기가 아니었다. 문왕의 동산은 70리였지만 그 동산을 백성과 함께 썼기에 백성들은 그것을 작다 여겼다. 제 선왕의 동산은 40리이지만 왕 혼자 그것을 썼기에 백성들은 그것이 크다고 여겼던 것이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집중되어 있다. 그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수레바퀴의 유용성이 있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든다. 그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그릇의 유용성이 있다. 지게문과 창문을 뚫어 방을 만든다. 그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집의 유용성이 잇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있는 것에서 이로움을 얻는 것은 그것의 아무것도 없는 유용성이 근본에 있기 때문이다. - 《도덕경》 11장

三十輻共一穀, 當其無有車之用, 埏稙以爲器, 當其無有器之用, 鑿戶牖以爲室, 當其無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통으로 된 바퀴는 얼마 가지 않아 부서지고 말 것이다. 그릇을 만드는 이유는 그릇에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함이다. 집을 짓고 방을 만드는 것 역시 그 안에 들어가 살기 위함이다. 유형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그 안의 비어 있는 공간을 얻기 위함이다.

 

공자가 말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 《논어》<이인里仁>

子曰 : "德不孤 必有鄰."

잠시 외로울 수 있다. 그러나 덕을 갖춘 사람에게는 그를 따르는 사람이 있고 그와 함께해 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과 더불어 덕은 더욱 퍼져나가고 빛이 난다.

 

후회하고 참담해하고 의심하고 돌아보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삶이란 오차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편차를 줄여나가는 과정이다.

가끔 내가 어디로 가고있는지 반문할 때까 있다.

내 삶의 각도를 물을 때도 있다.

구부러지고 경사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울 때도 잇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본다.

내가 어디쯤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어 뭇 별들이 그를 둘러싸고 도는 것과 같다. - 《논어論語》<위정爲政>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共之.

공자는 정치를 별자리에 비유했다. 덕이라는 것은 북극성처럼 정치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지고의 가치다. 북극성은 또한 지극함을 의미한다. 지극한 덕으로 다스릴 때 백성은 평안해지고 나라는 부강해진다.

 

공손추가 물었다. "백이와 이윤은 어떠하였습니까?"

맹자가 말햇다. "갖지 않았다. 자기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아니하며 나라가 태평하면 나아가 벼슬하고 혼란하면 물러나 들어앉는 것이 백이였다.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고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니겠나, 하며 나라가 태평해도 나아가 벼슬하고 혼란해도 나아가 벼슬하는 것이 이윤이었다. 나아가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그만두어야 할 만하면 그만두며, 오래 있을 만하면 오래 머물고 빨리 떠날 만하면 빨리 떠나가는 것이 공자였다. 이들은 다 성인이었다. 나는 아직 그렇게 할 수 없지만 공자를 본받는 것이 소원이다." - 《맹자孟子》<공손추公孫추丑> 上

曰 : "伯夷伊尹何如."

曰 : "不同道, 非其君不事, 非其民不使, 治則進, 亂則退, 伯夷也. 何事非君, 何使非民, 治亦進 亂亦進, 伊尹也. 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孔子也. 皆古聖人也, 吾未能有行焉, 乃所願則學孔子也."

은나라 고죽국 왕자였던 백이는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하자 그것은 인의仁義가 아니라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했다. 그러나 한 포기 고사리 역시 주나라 땅의 것이라며 굶어 죽었다. 이윤은 상나라를 건국한 탕왕을 도와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탕의 아들인 외병과 중임을 연달아 모셨다. 그러나 탕의 손자인 태갑이 왕위에 올라 정사를 돌보지 않자 태갑을 축출하고 3년간 정사를 돌보았다. 하지만 태갑이 뉘우치자 다시 자리를 돌려주었다. 백이와 이윤은 명분이 다르다. 북극성도 다르다. 백이는 어떻게 오른 왕인가를 실천의 지침으로 삼았고 이윤은 왕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에 집중했다. 비슷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했지만 맹자는 백이와 이윤을 성인이라 칭했다.

 

톱을 들 때면 두려움이 앞선다.

톱질은 인생의 행로와 같고 그래서 또 방황이다.

톱은 자신의 길을 가려 하고 나는 곧게 뻗은

연필 선을 따라 톱을 움직이고 싶다.

어르고 달래보아도 톱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으름장을 놓으면 톱은 도리어 어깃장을 놓는다.

 

자신을 바르게 하고 남에게 구하지 않으면 곧 원망이 없으니, 위로는 하늘을 원망치 아니하고 아래로는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까닭에 군자는 쉬움에 거하며 명命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을 행하며 요행을 기대한다. 공자는 활쏘기는 군자와 비슷함이 있으니 정곡을 잃으면 돌이켜 그 자신에게서 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 《중용中庸》

正己而不求於人, 則無怨, 上不怨天, 下不尤人. 故君子居易以俟命, 小人行險以徼幸. 子曰射有似乎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

공자는 활쏘기와 군자에 비슷함이 있다고 했다. 활을 쏜다. 명중시킬 줄 알았던 화살이 과녁을 비켜간다. 그것이 어디 활과 과녁의 탓이랴. 활의 강도에 따른 비거리와 바람의 방향, 그리고 과녁의 위치를 계산하지 못한 탓이리라. 정확히 조준하지 않았기에 화살은 과녁을 벗어난다. 아니면 다른 변수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활에 싣지 못한 탓이다. 조준을 한 사람, 활을 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자신이다.

 

사물의 이치가 궁구된 뒤에야 앎에 이르고, 앎에 이른 뒤에야 뜻이 정성스럽게 되고, 뜻이 정성스러워진 뒤에야 마음이 바르고, 마음이 바른 뒤에야 자신의 덕이 닦이고, 자신의 덕이 닦인 뒤에야 집안이 정돈되고, 집안이 정돈된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화평케 될 것이다. - 《대학大學》

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修, 身修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天下平.

격물은 사물의 참된 모습을 밝힌다는 것이고, 치지란 그로써 사물의 이치를 알게 됨을 의미한다. 사물에 부딪혀 이치를 파악한 후에야 뜻은 정성스러워진다. 정성스럽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에 마음을 쏟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뜻을 두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고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다. 정성스러워지면 마음이 바르게 된다. 이렇게 자신을 닦아가야 천하를 화평케 하는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

 

"제가 좋아하는 바는 도道로, 그것은 기술에 앞섭니다. 처음 제가 소를 해체할 때는 눈에 소 이외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3년 후에는 소가 보이지 않았고 지금에 이르러 저는 영감으로써 대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관은 멈춰버리고 영감만 작용하고 있습니다. 뼈와 살이 붙어 있는 틈을 젖히는 것이나 뼈마디에 있는 큰 구멍에 칼을 집어넣는 것이나 모두 자연의 이치를 따릅니다. 뼈와 살이 합틴 곳에서는 칼이 걸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하물며 큰 뼈에 부딪치는 일이야 있겠습니까? 훌륭한 포정은 1년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살을 베기 때문이며, 일반 포정은 한 달에 한 번 칼을 바꾸니 그것은 뼈에 칼이 부딪쳐 칼이 부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칼을 19년 동안이나 썼고 또 잡은 소도 수천 마리나 되지만 그 칼날은 지금 막 새로 숫돌에다 간 것 같습니다. 저 뼈에는 틈이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틈이 있는 데 넣으므로 넓고 넓어 그 칼날을 휘둘러도 반드시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19년이나 되었어도 그것은 막 숫돌에다 갈아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뼈와 심줄이 한데 얽힌 곳을 만났을 때는 저도 그 다루기 어려움을 보고 조심하여 곧 눈길을 멈추고 행동을 천천히 하며 칼을 놀리는 것도 매우 미묘해집니다. 그러다가 쩍 갈라지면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듯 고기가 와르르 떨어집니다. 그때야 칼을 들고 일어서서 사방을 바라보며 머뭇머뭇 만족해하며 칼을 잘 닦아 집어넣습니다." - 《장자壯子》<양생주養生主>

臣之所好者, 道也, 進乎技矣, 始臣之解牛之時, 所見无非全牛者.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 方今之時,  臣以神遇, 而不以目視, 官知之而神欲行, 依乎天理, 批大卻, 導大窾, 因其固然, 枝經肯綮之未嘗, 而況大軱乎. 良包歲更刀, 割也, 族包月更刀, 折也, 今臣之刀十九年矣, 所解數千牛矣, 而刀刃若新發於硎, 彼節者有閒, 而刀刃者無厚, 以無厚入有閒, 恢恢乎其於遊刃, 必有餘地矣. 是以十九年, 而刀刃若新發於硎, 雖然, 每至於族, 吾見其難爲, 怵然爲戒, 視爲止, 行爲遲, 動刀甚微, 謋然已解, 
如士委地, 提刀而立, 爲之四顧, 爲之躊躇滿志, 善刀而藏之.

문혜군은 포정의 말을 듣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이니 포정에게서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병에 걸리지 않는 양생법을 배웠다고 했다. 포정이 베고 자른 것이 단지 고기뿐이었을까? 고기를 자르는 포정에게서 나는 베고 자르며 살아가야 하는 삶의 도리를 본다. 결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순리를 따름이다. 틈이 없어 보이는 그 작은 공간에서도 포정은 칼이 여유 있게 놀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한다. 그러나 뼈와 심줄이 얽힌 곳에서는 결만 따라 움직일 수 없다. 잘라내야 한다. 잘라내는 것은 또한 칼의 이치다. 하지만 칼을 상하지 않게 잘라내기 위해서는 손을 미묘하게 움직여야 하고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새가 바람을 역행하고 물고기가 물살을 거슬러도 몸을 해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나사의 크기가 다르다.

그러면 다른 크기의 비트를 끼운다.

나사의 모양이 다르다.

그러면 다른 모양의 비트를 끼운다.

삶에서 부딪히는 상황과 맥락은 모두 다르다.

우리는 어떤 비트를 준비해야 할까?

정밀하고 한결같아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을 수 있다.

 

군자는 때에 맞게 처신한다. 이는 즉, 중中을 잡는 것을 이른다. 천년이 흘러도 부절이 꼭 들어맞는 것처럼 그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 《중용장구中庸章句》

君子時中, 則執中之謂也, 世之相後, 千有餘年, 而其言之不異, 如合符節.

관리의 신표, 그것이 부절符節이다. 옛날, 특히 중국의 사신은 부절을 가지고 있었다. 부절은 온전한 하나의 형체가 아니었다. 옥이나 대나무로 만든 신표에 증인을 찍고 이를 둘로 갈랐다. 하나는 자신이 가지고 다른 하나는 조정에 보관했다. 하나에서 나와 둘이 되었으니 그 둘은 꼭 맞았다. 부절이 꼭 들어맞는 것처럼 세상에는 들어맞아야 할 것이 있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들어맞아야 한다.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야 한다. 일은 때에 들어맞아야 하고 나와 나의 사명이 들어맞아야 한다. 문제는 들어맞지 않을 때 생긴다. 그 들어맞음이 중용中庸이다.

 

군자의 도는 광대하면서도 은미하다. 필부의 어리석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지극함에 이르면 비록 성인일지라도 또한 알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필부의 불초함으로도 가히 행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일지라도 또한 할 수 없는 바가 있는 것이다. - 《중용》

君子之道, 費而隱, 夫婦之愚, 可以與知焉, 及其至也, 雖聖人, 亦有所不知焉, 夫婦之不肖, 可以能行焉, 及其至也, 雖聖人, 亦有所不能焉.

은미하다는 것은 아주 미세하다는 것이다. 군자의 도는 아주 크고 또한 아주 작다. 우리 삶에는 쉽게 행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원칙과 신념도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아주 커지면 행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 반대로 그것이 아주 작은 부분에까지 미치면 성인도 행할 수 없는 부분이 된다. 거짓을 말하지 않고자 하는 일이 부와 명예를 넘어 목숨에까지 이르면 할 수 없는 큰일이 되고 그것이 모든 생활의 세세한 부분으로 옮겨가면 또한 하기 힘든 일이 된다. 사람은 눈앞의 것을 보지만 그 분자구조까지는 볼 수 없고 또 멀리는 우주를 바라볼 수 없다.

 

희노애락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중이라 하고 나타나서 모두 절節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은 천하의 대본大本이요, 화는 천하의 달도達道다. 중과 화에 이르면 천지가 자리 잡히며 만물이 자란다. - 《중용》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어떠한 치우침이 없는 상태가 중이다. 사사로운 감정이나 개인의 이익에 치우치지 않으면 공정할 수 있다. 그것이 그 상황과 맥락에 꼭 들어맞게 발산되면 어울림의 화和가 된다. 그럼 천지를 평안케 하는 지극함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자로가 물었다. "들으면 바로 행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아버지와 형이 계시는데 어떻게 듣는다고 바로 행할 것이냐?"

염유가 물었다. "들으면 바로 행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들으면 바로 행해야 할 것이다."

공서화가 말했다. "유(자로의 이름)가 '들으면 바로 행해야 합니까' 하니 선생님께서는 '아버지와 형이 계시지 않느냐'고 하셨지만 구(염유의 이름)가 '들으면 바로 행해야 합니까' 하고 물으니 선생님께서는 '들으면 바로 행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 감히 묻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구는 물러서는 까닭에 나아가게 한 것이고 유는 남들과 함께하는 까닭에 물러서게 한 것이다. - 《논어》<선진先進>

子路問 : "聞斯行諸?"

子曰 : "有父兄在, 如之何其聞斯行之?"

冉有問 : "聞斯行諸?"

子曰 : "聞斯行之."

公西華曰 : "由也問, '聞斯行諸', 子曰 : '有父兄在.' 求也問, '聞斯行諸?'.

子曰 : '聞斯行之.' 赤也惑, 敢問."

子曰 : "求也退, 故進之. 由也兼人, 故退之."

같은 모양이라도 홈이 크면 큰 비트를 쓰고 홈이 작으면 작은 비트를 쓴다. 공자의 말은 컵에 물을 붓고 따르는 일과 같다. 유는 너무 적극적이라 무모할 염려가 있었고 구는 소극적이어서 실천에 약했다. 그리하여 공자는 적극적인 자로는 가라앉히고 소극적인 염유는 북돋아주려 했던 것이다. 하나의 물음에 대한 공자의 답은 다르다. 공자는 중을 지키고 있다.

 

그들이 떠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떠나 보낸 것일까?

나는 나의 실수로 상처받고

또 나의 실수로 상처를 주었다.

실수이전에 기미가 있었건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실수를 했으면 고쳐야 했는데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

이젠 더 이상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잘못된 역사를

거울로 삼을 수 있기 때문아니겠나.

 

행하면서도 뚜렷이 알지 못하며 익히고서도 자세히 살피지 않는지라 죽을 때까지 따라가면서도 그 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 《맹자》<진심盡心> 上

行之而不著焉, 習矣而不察焉. 終身由之, 而不知其道者, 眔也.

앵무새는 자신의 말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 한 말을 따라 한다. 무엇을 행함에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앵무새의 말과 무엇이 다르겠나. 따라 하는 것은 익히는 것이 아니다. 흉내를 내는 것이다. 무언가를 익혔다 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다. 끊임없이 살피며 생각하여 익힘을 단단히 해야 한다.

 

사람이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워할 것 없음을 부끄러이 여긴다면 부끄러움이 없게 될 것이다. - 《맹자》<진심> 上

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감추려 하고 부끄러움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 진정 부끄러운 일이다. 부끄러움을 알면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최소한 고치려는 노력은 할 수 있다.

 

소인은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꾸민다. - 《논어》<자장子張>

小人之過也必文.

잘못을 덮으면 잠시는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잘못은 눈덩이처럼 불어 더 큰 재앙을 일으킨다. 마치 하인리히법칙처럼 말이다. 잘못을 저지르면 그 잘못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공자가 말했다. "유야, 너는 여섯 가지 말과 그에 따른 여섯 가지 폐단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느냐?"

자로가 대답했다.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앉아라. 내가 너에게 말해 주겠다. 어진 것을 좋아하지만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리석음이다. 지혜를 좋아하지만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방탕이다. 신의를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도적의 무리를 이루는 것이다. 곧음을 좋아하지만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가혹함이다. 용기를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굳세기를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과격함이다." - 《논어》<양화陽貨>

子曰 : "由也, 女聞六言六蔽矣乎?"

對曰 : "未也."

"居. 吾語女好仁不好學, 其蔽也愚, 好知不好學, 其蔽也蕩, 好信不好學, 其蔽也賊, 好直不好學, 其蔽也絞, 好勇不好學, 其蔽也亂, 好剛不好學, 其蔽也狂.   

유는 공자의 제자인 자로의 이름이다. 공자는 자로에게 배우지 않아 일어나는 여섯 가지 폐단에 대해 말한다. 어짊을 좋아하고 지혜를 좋아하고 신의를 좋아해도 배우지 않으면 폐해가 많다. 곧기만 해서는 살 수 없다. 맥락을 파악하고 넓게 보기 위해서는 배우고 생각해야 한다. 정해진 법에 따라 형량을 판결하는 판사도 그 상황을 살핀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장발장은 무려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다. 곧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가혹하게 된다. 그리고 배우며 생각해야 한다.

 

변하는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나도 한결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삶의 태도, 자세, 생각 그런 모든 것들에서 나는 쉽게 나를 합리화했다.

자는 달라지지 않건만,

나는 매일 규격이 다른 자를 가졌구나.

 

위에서 싫어하는 것을 아래에 베풀지 말고 아래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위를 섬기지 말며, 앞에서 싫어하는 것을 뒤에 먼저 하지 말고 뒤에서 싫어하는 것을 앞에서 따르게 하지 말며, 오른편에서 싫어하는 것을 왼편에 건네지 말고 왼편에서 싫어하는 것을 오른편에 건네지 않으니 이를 혈구지도라 한다. - 《대학》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내가 싫어하는 것은 다른 이도 싫어한다. 그럼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반대로 내가 싫어하는 것을 누가 내게 시킨다면 어떨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잊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 그러지 않는 것이 하나의 도이다. 그 도를 일러 '혈구지도絜矩之道'라 한다.

 

대저 인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서고자 함으로 남을 세우고 자신이 달하고자 함으로 남을 달하게 한다. 가까운 곳에서 깨달음을 취하는 것을 가히 인의 방법이라 할 것이다. - 《논어》<옹야雍也>

夫人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谓仁之方也已.

인이란 과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바르게 섬으로써 다른 사람을 바르게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달하려고 노력하고 또 달함으로써 상대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 생활 모습에서, 생각 모습에서 시작할 수 있다.

 

천하를 화평케 함은 그 나라를 다스림에 달려 있다. 위에서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 사이에 효가 일어날 것이고, 위에서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 사이에서 공경이 일어날 것이며, 위에서 고아를 궁휼히 여기면 백성들은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혈구지도라 한다. - 《대학》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노인을 노인으로,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고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일은 당연하게 행해지지 않는다. 내 아버지를 대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아버지를 대하고 내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후배들을 아끼라고 말한다. 그것 역시 자신을 미루어 타인에게 미치게 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행동이다.

 

난 먼 미래에 대해 환상을 갖고 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될 꿈만 꾸었지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한 번의 대패질로는 매끈한 나무의 면을 얻을 수 없건만

하루의 삶으로 미래가 그려지기를 바랐다.

지금 이 순간이 한 번의 대패질, 오늘 하루가 또 한 번의 대패질.

그렇게 대패질을 하고 싶다.

 

짐승의 가죽에서 그 털을 없앤 것을 혁이라고 한다. 혁은 고친다는 뜻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

獸皮治法其毛曰革, 革, 更也

가죽은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원상태의 가죽은 쉽게 부패한다. 물이 닿으면 팽창하고 마르면 딱딱하게 굳어 쓸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불필요한 성분을 제거하고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 부두질을 피할 수 없다. 무두질이 있고 나서야 가죽은 비로소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존재로 바뀐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장소에 구애되기 때문이요, 매미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때에 굳어 잇기 때문이요, 편벽된 선비에게 도를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침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 《장자》<추수秋水>

井蛙不可以語于海者, 拘于虛也, 夏蟲不可以語與冰者, 篤于時也, 曲士不可以語于道者, 束于教也.

우물 안 객리를 '정저지와井底之蛙'라 한다. 우물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니 우물 밖 세상을 이야기해도 믿지 못하고 거짓이라 생각한다. 하나의 고착된 이미지에 빠진 사람은 누군가 다른 일면을 말해주어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모르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려 하지 않고 경험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자신의 생각과 다름이 잇어 자신이 무너질까 두려워한다.

 

해가 가면 달이 오고 달이 가면 해가 오니 해와 달이 서로 밀어 밝아진다.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오니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밀어 한 해를 이룬다. 가는 것은 굽히는 것이고 오는 것은 펴는 것이니 굽힘과 폄이 서로 교감하여 이로움을 만든다. 벌레가 굽히는 것은 펴기 위함이고 용과 뱀이 숨는 것은 몸을 보존하기 위함이며 은미한 사물의 이치를 신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쓰이기 위함이다. 이롭게 사용하여 몸을 편안하게 함은 덕을 높이는 것이다. - 《주역周易》<계사전繫辭傳> 下

日往則月來, 月往則日來, 日月相推而明生焉, 寒往則暑來, 暑往則寒來, 寒暑相推而歲成焉, 往者屈也, 來者信也, 屈信相感而利生焉, 屈伏伸張, 尺蠖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 以存身也, 精義入神, 以致用也, 利用安身, 以崇德也.

어느 한쪽으로만 가는 것은 없다. 겨울은 가는 것이고 봄은 오는 것이다. 가기만 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오기만 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내가 중심에 있으면 가는 것이 있고 오는 것이 있다. 세상 사는 것 역시 밀고 당기고 펴고 굽히는 것이다. 그 이치를 모르면 막막하기만 하고 보는 것만을 보게 되어 하나의 인간형으로 자신을 고착화하고 말 것이다.

 

때로는 틀리고 때로는 다르다.

틀린 것은 고치면 되지만 다른 것까지 고쳐야 할까?

나는 수많은 틀린 사람과 사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다른 사람과 살고 있다.

다름과 틀림을 혼동하지 않고 싶다.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사람이 습기 많은 곳에서 자면 허리에 병이 생겨 죽는데, 미꾸라지도 그러한가? 사람이 높은 나무 위에 오르면 두렵고 떨리는데, 원숭이도 그러한가? 사람과 미꾸라지와 원숭이가 사는 세 자리 중 어느 것이 바른 자리인지 누가 알 수 있나? 사람은 채소와 육류를 먹고, 사슴과 노루는 풀을 뜯어먹으며, 지네는 실뱀을 먹고 독수리나 까마귀는 쥐를 즐겨 먹는데, 이 네 가지 먹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진정한 맛인지 누가 알 수 있나? 원숭이는 자신과 비슷한 원숭이와 짝을 짓고, 사슴은 노루와 놀고, 미꾸라지는 다른 물고기와 함께 노닌다. 모장과 여희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하지만 물고기가 이들을 보면 물속 깊이 들어가고 새는 이들을 보면 높이 날며 사슴은 이들을 보고 자신즐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 이 네 가지 가운데 무엇이 진정 아름다운 것인지 누가 알 수 있는가? - 《장자》<제물론齊物論>

民濕寢則腰疾偏死, 鰌然乎哉? 木處則惴栗恂懼, 猿猴然乎哉? 三者孰知正處? 民食芻豢, 麋鹿食薦, 蝍蛆甘帶, 鴟鴉嗜鼠, 四者孰知正味? 猿, 猵狙以爲雌, 麋與鹿交, 鰌與魚遊, 毛嬙麗姬, 人之所美也, 魚見之深入, 鳥見之高飛, 麋鹿見之決驟, 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 自我觀之, 仁義之端, 是非之塗, 樊然淆亂, 吾惡能知其辯.

사람이 좋아하는 자리와 미꾸라지, 원숭이가 좋아하는 자리는 다르다. 사람이 먹는 것과 사슴과 독수리가 먹는 것은 다르다. 따라서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미꾸라지와 원숭이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좋지 않은 것이다. 모장과 여희는 당시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던 아름다움의 표상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사람에게 국한된다. 사람의 눈에 아름다운 것이지 물고기의 운에도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내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 다름이 있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다름이 있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화합하되 동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동하되 화합하지 않는다." - 《논어論語》<자로子路>

子曰 :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화합하되 동하지 않는 것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이고 동하나 화합하지 않는 것이 동이불화同而不和다.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 화이부동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과 생각이 같지 않아도 화합하여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다. 반대로 동이불화는 밖으로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은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멀리 잇다고 말한다.

너무 멀어 갈 수 없다고 포기한다.

먼곳에 있지 않다.

바로 옆에 있다.

단지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내 안에, 내 주위에 내가 필요로 하는 그것이 있다.

그것을 잡으면 갈 수 있

그것을 잡지 못하면 또 헤매야 한다.

 

공자가 말했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다. 사람이 도를 행하되 사람과 멀리 한다면 도가 될 수 없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도끼 자루를 찍어내나니 그 법은 멀지 않다'고 했다. 도끼 자루를 잡고서 도끼 자루를 찍어내되 흘끔 쳐다보고 오히려 멀다고 생각한다." - 《중용中庸》

子曰 : "道不遠人, 人之為道而遠人, 不可以為道, 詩云, 伐柯伐柯 其則不遠. 執柯以伐柯, 睨而視之, 猶以為遠."

도끼 자루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찍어낸다. 나무가 도끼 자루의 모습을 갖추자 들어 흘끔 쳐다본다. 그런데 도끼 자루가 어때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더 잘라내고 파내면서도 도끼 자루를 모른다. 자신의 손에 도끼 자루를 들고 잇으면서도 도끼 자루의 모습을 생각해내지 못한다. 마치 의자에 앉아서 의자의 높이를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맹자가 말했다. "구하면 그것을 얻고 버리면 그것을 잃나니, 이 구한다는 것이 얻는 바에 더해지는 것은 자신에게 있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구하는 데 도가 있고 얻는 것에 명이 있으니 이 구하는 것에 얻는 바가 없는 것은 밖에서 그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맹자가 말했다. "만물이 모두 내게 갖추어져 있으니 반성하여 성실해지려고 하면 이만큼 큰 기쁨이 없고, 용서를 힘써 행하면 어짊을 구함에 이만큼 가까운 것이 없다." - 《맹자孟子》<진심盡心> 上

孟子曰 : "求則得之, 舍則失之, 是求有益於得也. 求之有道, 得之有命, 是求無益於得也 求在外者也."

孟子曰 : "萬物皆備於我矣, 反身而誠, 樂莫大焉, 強恕而行, 求仁莫近焉."

우리는 무언가를 구하려 하고 얻으려 한다. 하지만 먼저 그것을 구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무언가를 얻을 수 잇다. 하지만 그 구함의 도와 대상은 다른 곳에 잇지 않다. 바로 자신에게 있다. 그 자신이 가진 착함과 어짊을 구하면 바깥에서 구하지 않아도 자신은 스스로 기쁨과 어짊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모든 것은 이미 내게 갖추어져 있다.

 

공자가 말했다.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꿰여 있다."

증자가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공자가 나가자 문인이 이를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증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따름입니다." - 《논어》<이인里仁>

子曰 :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 "唯."

子出門, 門人問曰 : "何謂也."

曾子曰 : "夫子之道忠恕而已矣."

삼은 공자의 제자 증자의 이름이다. 공자의 도가 하나로 꿰여 있다는 말에 삼은 아무런 의아함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증자와 공자가 나눈 이야기를 듣고 문인이 공자의 도가 무엇으로 꿰여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증자는 공자의 도는 충과 서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충과 서는 도에서 멀리 어긋나지 아니하니, 자기에게 베풀어짐을 바라지 않는 것은 또한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 군자의 도가 넷인데 나는 하나도 능히 행하지 못하였다. 자식에게 요구하는 바로써 아버지 섬심을 다하지 못하였다. 신하에게 요구하는 바로써 임금을 섬기지 못하였다. 아우에게 요구하는 바로써 형 섬김을 다하지 못하였다. 벗에게 요구하는 바를 먼저 베풀지 못하였다. 덕을 실천하고 말을 섬심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힘쓰지 않을 수 없다. 그것들이 남음이 있어도 여자를 남겨둔다. 말은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니 군자가 어찌 부지런히 힘쓰지 않으리오. - 《중용》

忠絮違道不遠, 施諸己而不遠, 亦勿施於人, 君子之道四, 丘未能一焉, 所求乎子, 以事父, 未能也. 所求乎臣, 以事君, 未能也. 所求乎弟, 以事兄, 未能也. 所求乎朋友, 先施之, 未能也. 庸德之行, 庸言之謹, 有所不足, 不敢不勉, 有餘, 不感盡, 言顧行, 行顧言, 君子胡不慥慥爾.

효가 어디에 있는가? 충심이 어디에 있는가? 공경이 어디에 있는가? 우정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들은 멀리 있지 않다. 내가 자식에게 바라는 마음, 그것을 행하면 효가 된다. 아랫사람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가? 그 바람이 내가 윗사람을 섬기는 도리가 된다. 형제의 우애는 내가 아우에게 바라는 것에 있다. 친구가 내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내가 베풀면 우정은 공고해진다. 말로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으로 말을 돌아본다. 그러면 우리도 군자에 가까울 것이다.

 

물은 흐르고 비트는 회전한다.

세상은 돌고 나는 살아간다.

밀도 깊은 나무를 깎아내는 둥근 비트처럼

둥근 마음을 가지면 세상을 극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이 세상은 지옥이고 또 천상이다.

나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까?

 

훌륭한 전사는 무용을 떨치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자는 성내지 않으며, 가장 잘 이기는 자는 적을 상대하지 않고, 사람을 가장 잘 쓰는 자는 그들 앞에서 몸을 낮춘다. 이것을 다루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것을 남의 힘을 쓰는 길이라 하며, 이것을 하늘의 지고함과 필적하는 일이라고 한다. - 《도덕경道德經》 68장

善爲士者不武, 善戰者不怒, 善勝敵者不與, 善用人者爲之下, 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之力, 是謂配天古之極.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것을 내세우려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더 나은 인간처럼 보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진정 훌륭한 전사는 무용을 뽐내지 않는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성을 내지 않는다. 이미 자신에게 그것이 갖추어져 잇기 때문이다. 몸을 낮추어도 스스로가 비천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다투지 않으면서도 돋보이고 돋보이지 않으면서도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의 선함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잇으면서도 이에 만족한다. 까닭에 물은 도에 가깝다. 사람들이 주거지를 만드는 데는 지반이 튼튼한 땅을 좋아하고, 여러 가지 생각 중에는 뜻깊은 것을 좋아하며, 친구를 사귐에는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말에는 신의가 있음을 좋아하며, 정치에 있어서는 질서 있음을 좋아하고, 일을 처리하는 데는 실효 있음을 좋아하며, 행동하는 데 있어서 때를 어기지 않는 것을 좋아하면 결코 어긋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 《도덕경》 8장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노자가 최상의 선이 물과 같다고 이야기한 것은 물이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있으면서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물은 또한 차별하지 않는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보면 알 수 있다. 비가 어디 더러운 곳과 깨끗한 곳을 차별하여 내리던가, 흐르는 물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물은 그곳이 어디인지 가리지 않고 변함없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다.

힘든 일이 있고 쉬운 일도 있다.

기쁜게 받아들일 일도 있지만 못내 해야 할 일도 있다.

나쁜 일을 건너뛰고 힘든 일을 회피하며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

모든 과정이 합쳐질 때 가구는 완성된다.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가난하지만 아첨하는 일이 없고, 부유해도 교만하는 일이 없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옳은 일이다. 그러나 가난해도 도를 즐기고 부우돼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자공이 다시 말했다. "시詩에 이르기를 '여절여차如切如磋 여탁여마如琢如磨'라고 했는데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이군요."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너와 함께 가히 시를 말할 수 있겠구나. 이미 들은 것으로 장차 있을 것까지를 아는구나." - 《논어》<학이學而>

曰 : "諂, 驕, 如."

子曰 :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 "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여절여차 여탁여마'는 끊는 듯하고 쓰는 듯하며, 쪼는 듯하고 가는 듯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말이 나온다. 학문이나 인격을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야 한다. 그렇게 다듬고 다듬기를 끊이지 않고 반복해야 비로소 군자가 된다. 공부는 평생 동안 계속된다. 무언가를 깨닫고 얻고, 그래서 내 삶에 변화가 온다면 그것이 모두 공부다. 수양도 마찬가지다. 오늘 먹은 바른 마음이 내일에 이르고 내일에 이른 그 마음이 끊임이 없도록 갈고 닦아야 한다.

 

흐르는 물은 구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 《맹자》<진심> 上

流水之為物也, 不盈科不行.

물이 흘러 구덩이에 닿는다. 움푹 팬 구덩이에 물이 스민다. 결국 구덩이가 다 찰 때까지 물은 흐르지 않는다. 구덩이를 다 채우고 나서야 물은 앞으로 나아간다. 건너뛰고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야 한다.

스스로 거기까지라고 한계를 긋지 말자.

그 한계는 내 의지의 한계일 뿐.

내 가능성의 한계가 아니다. 나는 가능성의 한계를 오해했다.

나는 하지 못할 것이라고 오해했다. 나에게 미안하다.

이제는 끝까지 가보고 싶다.

스스로에게 미안해하고 싶지 않다.

 

공자가 말했다. "학문은 비유하자면 산을 만드는 것과 같다.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을 더 부으면 완성할 수 있는데도 거기서 멈춘다면 그것은 내가 스스로 그만둔 것이다.학문은 또한 평지를 메우는 것과 같아서 비록 한 삼태기의 흙을 퍼넣었을 뿐이더라도 진전했다면 그만큼 내가 진보한 것이다." - 《논어》<자한子罕>

子曰 : "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

산을 만드는 것과 평지를 메우는 것은 모두 같다.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을 부어야 산이 될 수 있는데 붓지 않았다면 그것은 산이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한 삼태기의 흙이라도 부었다면 이미 시작한 것이다. 시작하는 것도 어렵고 마치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시작에는 끝이 있고 끝이 있은 후에야 또 시작할 수 있다.

 

염구가 말했다. "선생님 제가 도道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힘이 부족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힘이 부족한 자는 중도에서 포기하지만 너는 지금 스스로 한계의 획을 긋고 있다." - 《논어》<옹야雍也>

冉求曰 : "非不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

공자의 문제적 제자 염구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공자는 염구의 재능을 아꼈지만 그는 끝내 공자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 권력자인 계강자의 신하가 되었을 때 가혹한 세금을 매겨 이미 부유한 계강자의 배를 불렸던 것이다. 그때 공자는 제자들에게 염구가 더 이상 자신의 제자가 아님을 선포하고 북을 울려 그를 공격하라고 했다.

 

거리를 걸으면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의식했다.

어딘가에 들어가면 또 누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걱정했다.

그러나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니다.

나를 위한 나의 일이다.

 

공자가 말했다.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위해서 학문을 했는데, 지금의 학자들은 남을 위해 학문을 한다." - 《논어》<헌문憲問>

子曰 : 古之學者為己, 今之學者為人.

자신을 위해 학문하는 것을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하고 남을 위해 학문하는 것을 위인지학爲人之學이라 한다. 언뜻 들으면 다른 사람을 위한 위인지학이 이상에 가까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엔 또 다른 뜻이 숨어 있다. 마치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공구를 꺼낸 모습과 같다. 위인지학은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학문을 말한다.

 

이른바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니, 나쁜 냄새를 싫어함과 같고 좋은 색을 좋아함과 같다. 이것이 스스로 기꺼워함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

소인이 한가하면 선하지 못한 짓을 한다. 군자를 본 뒤에는 슬며시 그 선하지 못함을 가리고 그 선함을 드러내려 한다. 사람들이 자기를 봄이 마치 그 폐와 간을 봄과 같으니, 곧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래서 마음속에 참된 생각이 있으면 밖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

증자가 말하였다. "열 눈이 보는 바이며 열 손이 가리키는 바이니 그 엄중함이여."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한다.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편안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 - 《대학大學》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慎其獨也. 小人閒居為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 厭然掩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慎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자신의 뜻이 정성이면 스스로를 속일 필요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어긋남이 없으니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에 편벽됨이 없으니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면 된다. 행동은 자연스럽고 마음은 흐르듯 막히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들킬까 염려하여 슬며시 감추는 것은 그 좋아함에 삿됨이 있기 때문이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가려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거기에 독선과 아집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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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7. 2. 14. 14:02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05 빅데이터 세상

 

매일경제 기획팀 · 서울대 빅데이터 센터 지음

2014, 매일경제신문사

 

대야도서관

SB102206

 

331.5412

매68ㅂ

 

당신의 숨겨진 욕망까지 읽어드립니다

 

빅데이터, Big Data

당신의 마음을 읽다

 

최근 ICT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수많은 데이터들이 재조명되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던 수많은 데이터들이 '빅데이터' 기술을 만나 유의미한 것으로 바뀌었다.


#1 소비자들의 주요 소비품목을 날씨 정보와 함께 분석하니 비오는 날에는 피자빵이 많이 소비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쇼윈도의 마네킹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수집한 고객정보를 분석해 보니 손님이 많이 출입하는 시간대와 많은 손님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이 어느 곳인지 알게 되었다.

#2 한 통신사는 전국 수만 대의 차량에 센서를 부착, 운행정보를 수집한다. 서비스 가입자들에게 실시간 교통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장 안전하고 신속한 길을 안내한다.

#3 어떤 금융사는 SNS 이용자들의 게시글에 반복되는 어휘를 수집한다. 그리고 그 어휘가 자주 사용되는 사회적 배경을 분석한다. 그것이 주가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는 데 사용되기 위해서다. 사회심리가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바, 수익률 높은 투자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다.


빅데이터는 이미 실생활 가까운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의 수준은 걸음마 단계다. 아직 빅데이터가 널리 사용되기에는 제도적인 한계가 너무나도 많고, 일반인들 다수는 빅데이터의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에선 선진국의 활용사례를 발 빠르게 받아들여 현장에 도입하고 있으며, 학계 역시 빅데이터 학과를 개설,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세계적 수준인 우리나라의 ICT인프라를 빅데이터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도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빅데이터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스마트한 사회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와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지은이

매일경제 기획팀 · 서울대 빅데이터 센터

매일경제는 ‘미래를 바꾸는 창’으로 불리는 빅데이터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2013년 6월부터 서울대 빅데이터센터와 공동으로 <디지털 금맥, 빅데이터> 연중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기업과 학계, 정부는 실시간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미래까지 예측하는 빅데이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국

매일경제 기획팀

유진평 모바일부 부장, 최용성 모바일부 차장, 황지혜 모바일부 기자, 홍장원 모바일부 기자, 이동인 사회부 기자, 김대기 과학기술부 기자, 원요환 사회부기자, 손유리 모바일부 기자

서울대 빅데이터 센터

고학수 교수(법학), 김선 교수(컴퓨터공학), 김수옥 교수(경영학), 박종헌 교수(산업공학), 서진욱 교수(컴퓨터공학), 이상구 교수(컴퓨터공학), 이재욱 교수(산업공학), 조성준 교수(산업공학)

 

contents

 

발간사

머리말 1

머리말 2

 

PART 01 빅데이터

 

chapter 1 실리콘밸리 빅데이터

                     실리콘밸리에 부는 빅데이터 바람

                     스타트업도 빅데이터가 대세

                     ● Interview - 파드마스리 워리어 시스코 부회장

                     구글과 페이스북의 데이터 파워전략

                     ● Interview - 벤 곰스 부사장

                     ● Interview - 댄 니어리 대표

 

chapter 2 빅데이터, 그것이 알고 싶다

                     빅데이터가 뭐기에…

                     ● Interview - 빅토르 마이어 쇤베르거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스포츠…

                     범죄 수사에서도 새 물결

                     ● Interview - 이상구 서울대 정보화본부장

                     ● Interview - 사이번 토머스 IBM 부사장

                     ● 빅데이터가 만드는 세상 - 조성준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 운영 빅데이터에 기반한 실시간 기업의 완성

                         - 박종헌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PART 2 빅데이터 빅뱅

 

chapter 1 유통빅뱅

                     고객정보 수집하는 마네킹

                     맑은 날 샌드위치, 비 오면 피자빵

                     ● Interview - 강용성 와이즈넛 대표

                     ● 고객을 불러들이는 분석경영 - 김수옥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chapter 2 스포츠 빅뱅

                     오틀랜드 20연승 신기록의 비결

                     삼성라이온즈 3년 연속 우승의 힘

                     ● Inetrview - 장원철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

 

chapter 3 생명과학 빅뱅

                     가족력 · 유전자 맞춤진료

                     DNA로 몇 년 후 발병 알아내

                     의료정보 활용, 프라이버시가 관건

                     ● Interview - 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

                     ● 생물정보학 기술을 이용한 유방암,

                         가뭄저항성 벼 연구 - 김선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chapter 4 ICT 빅뱅

                     국내 이동통신사들의 빅데이터 활용

                     한국 SI, 콜롬비아 빅데이터 문을 열다

                     국내 업계 빅데이터 솔루션 시장공략

                     ● Interview - 이영조 서울대 교수

                     ● Interview - 함유근 건국대 교수

 

chapter 5 금융빅뱅

                     금융업계 빅데이터 금맥 찾기

                     항구도시 부산, 양식소비가 일식 3배

                     카드사는 알고있다

                     ● 빅데이터와 금융 - 이재욱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외 1인

 

chapter 6 부동산 빅뱅

                     부동산에 부는 빅데이터 바람

                     ● Interview - 경정익 명지대 교수

 

chapter 7 재난대응 빅뱅

                     세월호 비극은 열악한 한국 빅데이터 민낯

                     '데이터 빈곤 악순환'에 빠진 한국 사회

 

PART 3 빅데이터 미래

 

chapter 1 빅브라더와 빅데이터

                     디지털 감옥에 갇힐 수도

                     ● Interview - 제프 모스 데프콘 설립자

 

chapter 2 빅데이터 걸림돌

                     너무 까다로운 규제환경

                     융합산업 가로막는 개인정보보호 체계

                      ● Interview - 김형주 서울대 교수

                      ● 개인정보유출로 인한 피해와 빅데이터 활용

                          -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chapter 3 빅데이터 코리아를 위해

                     정보 빅뱅시대 '빅데이터 분석가' 키워야

                     ● Interview - 이준기 연세대 교수

                     ● 정보시각화 - 서진욱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 텍스트 데이터 처리, 인류의 지적 자산 다루기

                         - 이상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posted by 황영찬

2017-004 그림의 힘

 

 

 

김선현 지음

2015,에이트 포인트

 

대야도서관

SB104162

 

600.18

김54ㄱ

 

the power of masterpiece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김선현

 

예술을 사랑해서 미술을 전공했고, 작가로 활동했다. 강의와 실습을 지도하던 중, 눈에 띄게 밝아진 아이들과 스트레스로부터 차츰 벗어나는 사람들을 보고 그림이 갖는 치료적 힘에 눈을 떴다.

‘그림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건 나 혼자만의 만족이지만, 미술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과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가능성에 인생을 걸어보자고 생각했다.

주위의 만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불모지나 다름없던 미술치료 분야에 뛰어들었다.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동양인 최초로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 부속병원에서 예술치료 인턴 과정을 수료했다. 일본에서는 외국인 최초로 임상미술사 자격을 취득했고, 일본 기무라 클리닉 및 미국 MD앤더슨암센터 예술치료 과정을 거쳐 프랑스 미술치료 Professional 과정까지 마쳤다. 미국미술치료학회(AATA) 정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현재 차(CHA)의과학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 원장과 차병원 임상미술치료클리닉 교수로 재직 중이며, 그간의 활동과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작년에는 세계미술치료학회(WCAT)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최근 세월호 사고 학생들은 물론, 천안함 사건 유족, 연평도 포격 피해 주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동일본 대지진 피해 일본인까지, ‘국가적 트라우마’ 현장에 곧바로 초빙되어 많은 이들의 아픈 마음을 전문적으로 치유해온 미술치료계의 최고 권위자다. TV나 신문, 잡지 등의 언론에서는 사람들의 심리를 다루게 되는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가장 먼저 그녀를 인터뷰한다.

그동안 집필한 책으로는 『그림심리평가』 『그려요 내 마음, 그래요 내 마음』 『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 『컬러가 내 몸을 바꾼다』 등 다수가 있다.
이번 『그림의 힘』은 지난 20여 년간의 미술치료 현장에서 가장 효과가 있었던 세기의 명화들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집약한 김선현 원장의 대표작이다.

 

그림은 과연 어떤 힘을 갖고 있을까?

 

이 책이 기존 명화책과 다른 점은, 효과가 입증된 그림들을 엄선했다는 것이다. 이 그림들을 보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스트레스가 완화될수록 집중력이 높아지고 창조성도 생긴다. 나의 내면에 선순환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정신과 영혼을 건강하게 만드는 그림의 힘을 확인시키는 김선현 교수의 역작이다.

- 정신과 전문의 · 『세로토닌하라!』 저자 | 이시형 박사




그림은 저에게 습관입니다. 그림은 관점을 새롭게 하고 역발상을 자극합니다. 여러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합니다. 이 책이 참 반갑습니다.

- 법무법인 세줄 대표 변호사 | 최정수



만듦새에 정성을 들인 책이다.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호화로운 명화들을 질 좋게 감상하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다.

- (사)한국판화사진진흥협회 회장 · 금산갤러리 대표 | 황달성



『그림의 힘』은 실제 미술치료라는 관점에서 누구나 편안하고 쉽게 그림이 전하는 마음과 뜻,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따뜻한 시선이 담긴 책이다. 저자 김선현은 독자들에게 동서양의 다양한 그림들을 통해 화가가 전달하려 했던 이야기와 상념, 그림 속에 스며들어 있는 삶의 기억과 편린들을 보여주면서 독자들, 아니 이 책을 통해 정신적 유대를 맺게 된 동시대인들에게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해 준다.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덕목은 다양한 그림의 색과 구도, 이미지들이 가지는 의미와 치유력을 누구나 알기 쉽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분석하여 미술치료라는 맥락으로 엮어내고 있다는 데 있다. 새삼 그림의 힘, 그림을 통한 내면적 대화와 소통, 치유의 가능성을 깨닫게 해 주는 좋은 책이다. 이 아름다운 책을 읽으면 별이 가득한 겨울밤 벽난로 옆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찬찬히 이야기를 건네는 저자를 만나는 잔잔한 기쁨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서울대학교 교수 ·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 홍준형


일과 삶에서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위로받기도 하고, 때로는 웃음 지으며 제 자신을 다독일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이 '그림의 따뜻한 힘'을 통해 좀 더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그림은 늘 놀랍습니다.

- 구글 팀장 · 『생각을 선물하는 남자』 저자 | 김태원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 모른 채 바쁜 걸음을 걷는 이들에게 그림이라는 거울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주는 책.

- ‘브로콜리 너마저’ | 윤덕원



지독한 탐미주의자인 나는 표지부터 마음을 사로잡혔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책 안에 실린 그림들이 더 보고 싶어 책장이 끝나가는 아쉬움을 느낄 정도였다. 늘 웃으며 살지만 복잡한 생각과 불안한 마음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런 나날 속에 내 머리를 맑게 해준, 나를 위한 최고의 투자였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미팅이 있기 전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하는 순간에 리프레시가 되어줄 자극들을 선사받은 기분이다.

- ‘장진우식당’ 대표 | 장진우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지칠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집중력과 의욕을 높여주는 그림들이 유용할 듯하다.

- 대원외고 교사 | 권중모



일과 육아에 지쳐 책 읽을 시간도 없고 글자도 잘 들어오지 않았던 나에게 매일 밤 선물 같았던 책. 그림만 봐도 심신이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 4년차 워킹맘 | 윤가영



무거워도 비행갈 때 이 책은 꼭 챙기고 싶다. 호텔에서 쉴 때마다, 세계의 명화도 보고 사람과 일에 대한 생각도 내려놓을 수 있어서 나에게 더없는 힐링 타임이 된다.

- 스튜어디스 | 안소영

 

 

차례

 

저는 그림의 힘을 믿습니다.

 

Work
일의 행복을 위하여


'사람들이 일에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일이 적성에 맞아야 하고, 일을 너무 많이 해서는 안 되며, 일에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 존 러스킨John Ruskin

세 가지 조건 모두를 충족시키기 쉽지 않기에, 우리는 일로부터 잦은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이 파트의 그림은 지친 머리를 맑게 하고 일의 집중력과 에너지, 의욕을 자극해 일의 행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01 오늘 하루도 수고한 당신을 위한 밤의 테라스
02 둥근 원, 빨강, 그리고 체력 에너지
03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자유
04 손과 마음이 가는대로
05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
06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07 짜증을 풀려면 붉은 방에 가라
08 나도 의욕적으로 일하고 싶다
09 배움에 대한 열정
10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림이 필요한 이유
11 하기 싫은 일로부터의 스트레스
12 집중력을 위한 최상의 분위기
13 긴장을 풀어주는 노랑의 힘
14 에너지가 쏟아지는 순간을 맞이하라
15 나의 감정을 이해해주세요
16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는 방법



Relationship 부드러운 사람 관계를 원한다면

사랑하고 또 동시에 미워하게도 되는 존재, 어렵다고 등한시할 수 없는 영원한 삶의 과제. ‘사람’. 외로움과 상처와 같이 사람으로부터 오는 결핍들을 치유하고, 나의 사람 관계를 돈독히 꾸려나갈 수 있는 그림들을 담았습니다.


01 아름다운 그림은 구체적으로 어떤 힘을 지닐까
02 우리들 마음에 잔잔한 위로를 던져주는 그림
03 사교적 활동과 대인관계에 좋은 색깔
04 한 번쯤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해주는 그림
05 나 혼자만이 갖는 시간의 비밀
06 주변 사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다
07 어른이 되면서 주변에 사람이 줄어든 이들
08 자신도 모르게 느끼는 일상의 관계들
09 사람에게 실망할 때
10 질투로 인한 영혼의 괴로움
11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때
12 업무 현장에서 다 함께 보면 좋은 그림
13 사랑의 설렘을 느끼고 싶다면
14 휴식이 되어줄 수 있는 관계
15 순간순간 스트레스를 주는 상대가 있는 사람들

* 나를 알아보는 Art Therapy Test Ⅰ


Money 돈, 인생의 가장 긴밀한 친구가 되다

돈의 힘은 일의 결과를 좌우하고 사람의 처지를 변화시킵니다. 이런 돈을 적이나 주인으로 삼기보다, 적절한 동반자로 삼는 마인드가 중요할 것입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돈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재설정할 수 있는 그림들을 실었습니다.


01 행복하면 ‘핑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02 돈을 버는 것이 행복하려면
03 나도 부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04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최상의 황홀
05 꿈이 시작되는 기쁨에 전염되다
06 내 스스로에게 주는 휴식
07 유명 스타를 꿈꾸다
08 그저 마음 편안해지는 그림
09 돈보다 중요한 그 무엇
10 힘든 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비밀
11 그림으로 파악해보는 나의 현실
12 돈에 대한 부담을 가볍게 하다
13 돈 버는 일 중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을까
14 미래에 우리가 살고 싶은 풍경
15 가장의 짐을 내려놓다

* 나를 알아보는 Art Therapy Test Ⅱ


Time 시간에 대한 긍정으로

과거의 기억에 따른 아픔, 현재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누구나 한 번쯤 겪듯이, 우리는 시간과 싸우고 화해하며 그렇게 매일을 살아갑니다. 이 파트는 나를 둘러싼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고 편안히 마주할 수 있게 만들어줄 그림들입니다.


01 나는 어떤 기대를 가지고 살아갈까
02 바빠서 너무 정신이 없을 때
03 미래의 희망으로 나를 채우다
04 마음 편한 퇴근 시간처럼
05 과거에 사로잡힌 당신에게
06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나의 문제들
07 지금의 나를 벗어나고 싶다면
08 세 여인이 가르쳐준 인생의 단계
09 미래에 대한 불안을 걷어내려면
10 한 번쯤 죽음을 생각해보는 시간
11 성실함이 주는 삶의 교훈
12 시간이 멈춰버린 세상
13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하라
14 휴식이 필요한 순간은?
15 늙는다는 것에 대하여

 

Myself 내 고유의 리듬을 되찾고 싶다면

진짜 내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있나요? 때론 나조차도 제대로 살피지 않은 나를 보살펴주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나만의 리듬과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발견하게 해주는 이 그림들의 힘으로, 스트레스 받았던 일상이 문득 빛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01 울음은 영혼이 회복하는 첫걸음
02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03 나는 어떤 사람인가
04 모든 책임은 우주에 있다
05 침체된 몸에 생기를 선물하라
06 불안해하는 청춘들에게
07 나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은?
08 내 안에서 두 가지 마음이 싸운다면
09 자신감이 부족할 때 보면 좋은 그림
10 자유로움을 갈망하다
11 있는 그대로의 나
12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편안해지다
13 풀어진 나를 팽팽하게 당겨주는 그림
14 화를 푸는 방법
15 생각을 바꾸면 보이는 나만의 개성
16 나를 최고로 만드는 그림의 힘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현실이 된다.

Everything you can imagine is 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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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피카소 Pablo Ruiz Picasso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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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오늘 하루도 수고한

당신을 위한 밤의 테라스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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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카페 테라스

Cafe Terrace at Night

 

 빈센트 반 고흐 | 1888 | 캔버스에 유채 | 81 × 65.5cm | 크뢸러뮐러 미술관

 

Work

---------------◇---------------

02

 

둥근 원, 빨강,

그리고 체력 에너지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Wassilyvich Kandin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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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원들과 정사각형들

Squares with Concentric Rings

 

바실리 칸딘스키 | 1913 | 수채 · 과슈 · 쵸크 | 23.9 × 31.5cm | 렌바흐 미술관

 

Work

---------------◇---------------

03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자유

 

구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llebotte

---------------◇---------------

창가의 남자

Young Man at His Window

 

구스타브 카유보트 | 1875 \ 캔버스에 유채 | 117 × 82cm | 개인소장

 

Work

---------------◇---------------

04

 

손과 마음이

가는대로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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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 부는 소년

Boy Blowing Bubbles

 

에두아르 마네 | 1867 | 캔버스에 유채 | 100.5 × 81.4cm | 칼루스트 굴베키안 미술관

 

Work

---------------◇---------------

05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

 

존 밀레이

John Everett Mill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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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소녀

The Blind Girl

 

존 밀레이 | 1854 ~ 56 | 캔버스에 유채 | 82 × 60.8cm | 버밍엄 박물관 및 미술관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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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앙리 마티스

Henri-Emile-Benoit Mati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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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시아, 하늘

Polynesia, the sky

폴리네시아, 바다

Polynesia, the sea

 

폴리네시아, 하늘 Polynesia, the sky

앙리 마티스 | 1946 | 과슈 · 종이 붙이기 | 200 × 314cm | 조르주 퐁피두 센터

폴리네시아, 바다 Polynesia, the sea

앙리 마티스 | 1946 | 과슈 · 종이 붙이기 | 196 × 314cm | 조르주 퐁피두 센터

 

Work

---------------◇---------------

07

 

짜증을 풀려면

붉은 방에 가라

 

앙리 마티스

Henri-Emile-Benoit Matisse

---------------◇---------------

붉은 조화

Harmony in Red

 

앙리 마티스 | 1908 | 캔버스에 유채 | 180.5 × 221cm | 에르미타주 미술관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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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나도 의욕적으로

일하고 싶다

 

장 조프루아

Henry-Jules-Jean Geoffroy

---------------◇---------------

교실, 공부하는 아이들

The Children's Class

 

장 조프루아 | 1889 | 캔버스에 유화 | 프랑스 교육부

 

Work

---------------◇---------------

09

 

배움에 대한

열정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Jean-Baptiste-Simeon Chardin

---------------◇---------------

젊은 여선생

The Young Schoolmistress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 1735 ~ 36 | 캔버스에 유채 | 62 × 67cm | 내셔널 갤러리

 

Work

---------------◇---------------

10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림이 필요한 이유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

시골 경마장

At the Races in the Countryside

 

에드가 드가 | 1869 | 캔버스에 유채 | 36.5 × 55.9cm | 보스턴 미술관

 

Work

---------------◇---------------

11

 

하기 싫은 일로부터의

스트레스

 

자코모 발라

Giacomo Balla

---------------◇---------------

줄에 매인 개의 움직임

Dynamism of a Dog on a Leash

 

자코모 발라 | 1912 | 캔버스에 유채 | 95.57 × 115.57 cm | 올브라이트 녹스 미술관

 

Work

---------------◇---------------

12

 

집중력을 위한

최상의 분위기

 

조르주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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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등불 앞의 막달라 마리아

Magdalen with the Smoking Flame

 

조르주 드 라 투르 | 1640 ~ 45) | 캔버스에 유채 | 128 × 94cm | 루브르 박물관

 

Work

---------------◇---------------

13

 

긴장을 풀어주는

노랑의 힘

 

폴 고갱

Paul Gauguin

---------------◇---------------

기도하는 브르타뉴의 여인

Breton Woman in Prayer

 

폴 고갱 | 1894 | 캔버스에 유채 | 65.3 × 46.7cm | 스털링 앤 프란시네 클락 아트 인스티튜트

 

 

Work

---------------◇---------------

14

 

에너지가 쏟아지는 순간을

맞이하라

 

가쓰시카 호쿠사이

葛飾北斎

---------------◇---------------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The Great Wave off Kanagawa

 

가쓰시카 호쿠사이 | 1829 ~ 32 | 판화 | 25.7 × 37.8cm | 기메 국립 아시아 미술관

 

Work

---------------◇---------------

15

 

나의 감정을

이해해주세요

 

후고 짐베르크

Hugo Gerhard Simberg

---------------◇---------------

부상당한 천사

The Wounded Angel

 

후고 짐베르크 | 1903 | 캔버스에 유채 | 127 × 154cm | 아테네움 미술관

 

 

Work

---------------◇---------------

16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는 방법

 

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

 

산드로 보티첼리 | 1483 ~ 85 | 패널에 템페라 | 172.5 × 278.5cm | 우피치 미술관

 

Relatio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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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아름다운 그림은 구체적으로

어떤 힘을 지닐까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

피아노 치는 소녀

Young Girls at the Piano

 

오귀스트 르누아르 | 1892 | 캔버스에 유채 | 116 × 90cm | 오르세 미술관

 

Relationship

---------------◇---------------

02

 

우리들 마음에 잔잔한 위로를

던져주는 그림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

우체부 조제프 롤랭의 초상

Portrait of the Postman Joseph Roulin

 

빈센트 반 고흐 | 1889 | 캔버스에 유채 | 64.4 × 55.2cm | 뉴욕 현대미술관

 

Relationship

---------------◇---------------

03

 

사교적 활동과 대인관계에

좋은 색깔

 

이중섭

---------------◇---------------

해와 아이들

 

이중섭 | 1952 ~ 53 | 종이에 연필과 유채 | 32.5 × 49cm

 

 

Relationship

---------------◇---------------

04

 

한 번쯤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해주는 그림

 

조르주 로슈그로스

Georges Antoine Rochegrosse

---------------◇---------------

꽃밭의 기사

The Knight of Flowers

 

조르주 로슈그로스 | 1894 | 캔버스에 유채 | 235 × 374cm | 오르세 미술관

 

Relationship

---------------◇---------------

05

 

나 혼자만이

갖는 시간의 비밀

 

정선

---------------◇---------------

인왕제색도

 

정선 | 1751 | 종이에 수묵 | 79.2 × 138.2cm | 삼성미술관 리움

 

Relationship

---------------◇---------------

06

 

주변 사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

황제 권좌에 앉은 나폴레옹

Napoleon I on his Imperial Throne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 1806 | 캔버스에 유채 | 259 × 162cm | 앵발리드 군사박물관

 

Relationship

---------------◇---------------

07

 

어른이 되면서 주변에

사람이 줄어든 이들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Dance at le Moulin de la Galette

 

오귀스트 르누아르 | 1876 | 캔버스에 유채 | 131 × 175cm | 오르세 미술관

 

Relationship

---------------◇---------------

08

 

자신도 모르게 느끼는

일상의 관계들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Rodriguez de Silva y Velazquez

---------------◇---------------

시녀들

The Maids of Honor

 

디에고 벨라스케스 | 1656 | 캔버스에 유채 | 316 × 276cm | 프라도 미술관

 

Relationship

---------------◇---------------

09

 

사람에게

실망할 때

 

클로드 모네

Oscar-Claude Monet

---------------◇---------------

임종을 맞은 카미유

Camille on Her Death Bed

 

클로드 모네 | 1879 | 캔버스에 유채 | 90 × 68cm | 오르세 미술관

 

Relationship

---------------◇---------------

10

 

질투로 인한

영혼의 괴로움

 

전기

---------------◇---------------

매화초옥도

 

전기 | 19세기 중엽 | 종이에 엷은 채색 | 32.4 × 36.1cm | 국립중앙박물관

 

Relationship

---------------◇---------------

11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때

 

에드바르트 뭉크

Edvard Munch

---------------◇---------------

태양

The Sun

 

에드바르트 뭉크 | 1911 ~ 16 | 캔버스에 유채 | 455 × 780cm | 오슬로 대학

 

Relationship

---------------◇---------------

12

 

업무 현장에서

다 함께 보면 좋은 그림

 

크리스티안 롤프스

Christian Rohlfs

---------------◇---------------

블루 마운틴

The Blue Mountain

 

크리스티안 롤프스 | 1912 | 캔버스에 유채 | 80 × 60cm | 쿤스트 팔라스트 미술관

 

Relationship

---------------◇---------------

13

 

사랑의 설렘을

느끼고 싶다면

 

로렌스 알마 타데마

Lawrence Alma-Tadema

---------------◇---------------

더 묻지 마세요

Ask Me No More

 

로렌스 알마 타데마 | 1906 | 캔버스에 유채 | 80.1 × 115.7cm | 개인소장

 

 

Relationship

---------------◇---------------

14

 

휴식이 되어줄 수 있는

관계

 

마커스 스톤

Marcus Stone

---------------◇---------------

훔친 키스

A Atolen Kiss

 

마커스 스톤 | 1894 | 캔버스에 유채 | 152 × 66cm | 개인소장

 

Relationship

---------------◇---------------

15

 

순간순간 스트레스를 주는

상대가 있는 사람들

 

폴 세뤼지에

Louis-Paul-Henri Serusier

---------------◇---------------

브르타뉴의 싸움

Breton Wrestling

 

폴 세뤼지에 | 1890 ~ 91 | 캔버스에 유채 | 91 × 72cm | 오르세 미술관

 

 

카스파르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 창가의 여인Woman at Window

 

Money

---------------◇---------------

 

01

 

행복하면 '핑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Jean-Honore Fragonard

---------------◇---------------

그네

The Swing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 1767 | 캔버스에 유채 | 81 × 64.2cm | 윌리스 컬렉션

 

Money

---------------◇---------------

 

02

 

돈을 버는 것이

행복하려면

 

히에로니무스 보슈

Hieronymus Bosch

---------------◇---------------

죽음과 구두쇠

Death and the Miser

 

히에로니무스 보슈 | 1485 ~ 90| 패널에 유채 | 93 × 31cm | 워싱턴 국립미술관

 

Money

---------------◇---------------

 

03

 

나도 부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그랜마 모지스

Grandma Mosese

---------------◇---------------

퀼팅 비

The Quilting Bee

 

그랜마 모지스 | 1940 ~ 50| 목판에 유채 | 50.8 × 61cm | 개인소장

 

Money

---------------◇---------------

 

04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최상의 황홀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

꽃이 있는 농장 정원

Farm Garden with Flowers

 

구스타프 클림트 | 1905 ~ 06| 캔버스에 유채 | 110 × 110cm |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갤러리

 

Money

---------------◇---------------

 

05

 

꿈이 시작되는 기쁨에

전염되다

 

애벗 그레이브스

Abbott Fuller Graves

---------------◇---------------

종잣돈

The Nest Egg

 

애벗 그레이브스 | 1910 | 캔버스에 유채 | 81.2 × 116.8cm | 뱅크 오브 아메리카 컬렉션

 

Money

---------------◇---------------

 

06

 

내 스스로에게 주는

휴식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

전함 테메레르

The Fighting Te-meraire

r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

 

윌리엄 터너 | 1839 | 캔버스에 유채 | 91 × 122cm | 내셔널 갤러리

 

 

Money

---------------◇---------------

 

07

 

유명 스타를

꿈꾸다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

스타

The Star

 

에드가 드가 | 1876 | 종이에 파스텔 | 58 × 42cm | 오르세 미술관

 

Money

---------------◇---------------

 

08

 

그저 마음 편안해지는

그림

 

장 프랑수아 밀레

Jean-Francois Millet

---------------◇---------------

Spring

 

장 프랑수아 밀레 | 1868 ~ 73 | 캔버스에 유채 | 86 × 111cm | 오르세 미술관

 

Money

---------------◇---------------

 

09

 

돈보다 중요한

그 무엇

 

프랑수아 제라르

Francois Pascal Simon, Baron Gerard

---------------◇---------------

큐피드와 프시케

Cupid and Psyche

 

프랑수아 제라르 | 1798 | 캔버스에 유채 | 186 × 132cm | 루브르 박물관

 

 

Money

---------------◇---------------

 

10

 

힘든 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비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

수확하는 농부

Wheatfield with a Reaper

 

 

빈센트 반 고흐 | 1889 | 캔버스에 유채 | 73.2 × 92.7cm | 반 고흐 미술관

 

Money

---------------◇---------------

 

11

 

그림으로 파악해보는

나의 현실

 

에드바르트 뭉크

Edvard Munch

---------------◇---------------

생의 춤

The Dance of Life

 

에드바르트 뭉크 | 1899 ~ 1900 | 캔버스에 유채 | 125 × 191cm | 뭉크 미술관

 

Money

---------------◇---------------

 

12

 

돈에 대한 부담을

가볍게 하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

속임수를 쓰는 사람

The Cardsharps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 1595년경 | 캔버스에 유채 | 94.2 × 130.9cm | 킴벨 미술관

 

 

Money

---------------◇---------------

 

13

 

돈 버는 일 중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을까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

꽃 노점상

The Flower Seller

 

 디에고 리베라 | 1942 | 메이소나이트에 유채 | 122 × 122cm | 개인소장

 

 

Money

---------------◇---------------

 

14

 

미래에 우리가

살고 싶은 풍경

 

클로드 모네

Oscar-Claude Monet

---------------◇---------------

아르장퇴유의 뱃놀이

Regatta at Argenteuil

 

 

클로드 모네 | 1872년경 | 캔버스에 유채 | 48 × 75.3cm | 오르세 미술관

 

Money

---------------◇---------------

 

15

 

가장의 짐을

내려놓다

 

암리타 쉐어 길

Amrita Sher-Gil

---------------◇---------------

옛이야기꾼

Ancient Storyteller

 

암리타 쉐어 길 | 1940 | 캔버스에 유채 | 89.2 × 72.8cm | 인도 국립현대미술관

 

 

페르디낭 호들러 Ferdinand Hodler | 선택받은 자 The Consecrated One

 

Time

---------------◇---------------

 

01

 

나는 어떤 기대를

가지고 살아갈까

 

로렌스 알마 타데마

Lawrence Alma-Tadema

---------------◇---------------

기대

Expectations

 

로렌스 알마 타데마 | 1885 | 패널에 유화 | 45 × 66cm | 개인소장

 

Time

---------------◇---------------

 

02

 

바빠서

너무 정신이 없을 때

 

프레데릭 레이턴

Frederick Leigton

---------------◇---------------

타오르는 6월

Flaming June

 

프레데릭 레이턴 | 1895 | 캔버스에 유채 | 119 × 119cm | 폰세 미술관

 

Time

---------------◇---------------

 

03

 

미래의 희망으로

나를 채우다

 

파울 클레

Paul Klee

---------------◇---------------

세네치오

Senecio

 

파울 클레 | 1922 | 캔버스에 유채 | 40.3 × 37.4cm | 바젤미술관

 

Time

---------------◇---------------

 

04

 

미음 편한

퇴근 시간처럼

 

허버트 바담

Herbert Badham

---------------◇---------------

나이트 버스

The Night Bus

 

허버트 바담 | 1943 | 보드에 유채 | 35.7 × 25.6cm | 빅토리아 주립미술관

 

Time

---------------◇---------------

 

05

 

과거에 사로잡힌

당신에게

 

클로드 모네

Oscar-Claude Monet

---------------◇---------------

루앙 대성당

Rouen Carhedral

 

클로드 모네 | 1892 ~ 93 | 캔버스에 유채 | 107 × 73cm | 오르세 미술관

 

Time

---------------◇---------------

 

06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나의 문제들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 1817년경 | 캔버스에 유채 | 94.5 × 74.8cm | 함부르크 미술관

 

Time

---------------◇---------------

 

07

 

지금의 나를

벗어나고 싶다면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

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

Self-Portrait Cropped Hair

 

프리다 칼로 | 1940 | 캔버스에 유채 | 40 × 27.9cm | 뉴욕 현대미술관

 

Time

---------------◇---------------

 

08

 

세 여인이 가르쳐준

인생의 단계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

여인의 세 단계

The Three Ages of Woman

 

구스타프 클림트 | 1905 | 캔버스에 유채 | 178 × 198cm | 로마 현대미술 갤러리

 

Time

---------------◇---------------

 

09

 

미래에 대한 불안을

걷어내려면

 

피터르 브뤼헐

Pieter Bruegel the Elder

---------------◇---------------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피터르 브뤼헐 | 1558 | 캔버스에 유채 | 73.5 × 112cm | 벨기에 왕립미술관

 

Time

---------------◇---------------

 

10

 

한 번쯤 죽음을

생각해보는 시간

 

폴 고갱

Paul Gauguin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폴 고갱 | 1897 ~ 98 | 캔버스에 유채 | 139.1 × 374.6cm | 보스턴 미술관

 

Time

---------------◇---------------

 

11

 

성실함이 주는

삶의 교훈

 

랭부르 형제

The Limbourg brothers

---------------◇---------------

베리공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6월, 2월)

The Very Rich Hours of the Duke of Berry

 

랭부르 형제 | 1412 ~ 16 | 양피지에 필사본 삽화 | 22.5 × 13.6cm | 콩데 미술관

 

Time

---------------◇---------------

 

12

 

시간이

멈춰버린 세상

 

알베르트 비어슈타트

Albert Bierstadt

---------------◇---------------

하구에서

On the Saco

 

알베르트 비어슈타트 | 19세기경 | 캔버스에 유채 | 76.2 × 111.76cm | 개인소장

 

Time

---------------◇---------------

 

13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하라

 

조르주 쇠라

Georges-Pierre Seurat

---------------◇---------------

임종을 맞이하는 아나이스 페브르 오몽테

Anaïs Faivre Haumonte on Deathbed

 

조르주 피에르 쇠라 | 1887 | 과슈 · 소묘 연필 | 23 × 33cm | 루브르 박물관

 

Time

---------------◇---------------

 

14

 

휴식이 필요한

순간은?

 

모리츠 폰 슈빈트

Moritz von Schwind

---------------◇---------------

아침시간

The Morning Hour

 

쉴 시간이 없을 때가

바로 휴식이 필요한 

순간이다.              

The time to relax             

is when you don't          

have time for it.             

                          - 시드니 J. 해리스 Sydney J. Harris

 

모리츠 폰 슈빈트 | 1860 | 캔버스에 유채 | 34.8 × 41.9cm | 샤크 미술관

 

Time

---------------◇---------------

 

15

 

늙는다는 것에

대하여

 

주세페 아르침볼도

Giuseppe Arcimboldo

---------------◇---------------

봄 · 여름 · 가을 · 겨울

Spring · Summer · Autumn · Winter

 

주세페 아르침볼도 | 1573 | 캔버스에 유채 | 77 × 63cm | 루브르 박물관

 

Myself

---------------◇---------------

 

01

 

울음은  영혼이

회복하는 첫걸음

 

조지 클로젠

George Clausen

---------------◇---------------

울고 있는 젊은이

Youth Mourning

 

조지 클로젠 | 1916 | 캔버스에 유채 | 91.4 × 91.4cm | 임페리얼 전쟁박물관

 

Myself

---------------◇---------------

 

02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

류트를 든 자화상

Self-Portrait as a Lute Player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 | 1615 ~ 17 | 캔버스에 유채 | 77.5 × 71.8cm | 커티스 갤러리

 

Myself

---------------◇---------------

 

03

 

나는

어떤 사람인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

나르키소스

Narcissus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 1594 ~ 96 | 캔버스에 유채 | 110 × 92cm | 로마 바르베리니궁 국립고전회화관

 

Myself

---------------◇---------------

 

04

 

모든 책임은

우주에 있다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

해변의 암초

Rocky Reef on the Sea Beach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 1825 | 캔버스에 유채 | 22 × 31cm | 카를스루에 주립 미술관

 

Myself

---------------◇---------------

 

05

 

침체된 몸에

생기를 선물하라

 

파울 클레

Paul Klee

---------------◇---------------

노란 새가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Yellow Birds

 

파울 클레 | 1923 | 검은 바탕에 수채 | 35.56 × 43.18cm | 개인소장

 

Myself

---------------◇---------------

 

06

 

불안해하는

청춘들에게

 

로버트 리드

Robert Reid

---------------◇---------------

섬머 걸

A Summer Girl

 

로버트 리드 | 1896 | 캔버스에 유채 | 92.71 × 83.19cm | 개인소장

 

Myself

---------------◇---------------

 

07

 

나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은?

 

윤두서

---------------◇---------------

자화상

 

윤두서 | 17세기 후반 | 종이에 수묵담채 | 20.5 × 38.5cm | 개인소장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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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내 안에서 두 가지 마음이

싸운다면

 

앙리 마티스

Henri-Emile-Benoit Mati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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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The Heart

 

앙리 마티스 | 1946 | 스텐실 | 42.5 × 65.5cm | 조르주 퐁피두 센터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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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자신감이 부족할 때

보면 좋은 그림

 

앙리 마티스

Henri-Emile-Benoit Mati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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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루스

Icarus

 

 

앙리 마티스 | 1946 | 과슈 · 종이 붙이기 | 43.4 × 34.1cm | 조르주 퐁피두 센터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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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자유로움을

갈망하다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Wassilyevich Kandin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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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Sky Blue

 

 

바실리 칸딘스키 | 1940 | 캔버스에 유채 | 100 × 73cm | 조르주 퐁피두 센터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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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있는 그대로의

 

클로드 모네

Oscar-Claude M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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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뜰의 카미유와 아이

Camille Monet and a Child in a Garden

 

 

 

클로드 모네 | 1875 | 캔버스에 유채 | 55.3 × 64.7cm | 보스턴 미술관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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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편안해지다

 

구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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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The Nap

 

 

 

구스타브 카유보트 | 1877 | 파스텔 | 36 × 53cm | 워즈워스 학당 미술관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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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풀어진 나를 팽팽하게

당겨주는 그림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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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산업 벽화

Detroit Industry Murals

 

 

디에고 리베라 | 1932 ~ 33 | 프레스코 | 디트로이트 미술학교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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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화를 푸는

방법

 

잭슨 폴락

Jackson Pol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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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리듬 : 넘버 30

Autumn Rhythm : Number 30

 

 

 

잭슨 폴락 | 1950 | 캔버스에 유채 | 266.7 × 525.8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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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생각을 바꾸면 보이는

나만의 개성

 

베르트 모리조

Berthe Moris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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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앙 항구

The Harbor at Lorient

 

베르트 모리조 | 1869 | 캔버스에 유채 | 43.5 × 73cm | 내셔널 아트 갤러리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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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를 최고로 만드는

그림의 힘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Rodriguez de Silva y Velazqu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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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의 단장

Venus at her Mirror

 

디에고 벨라스케스 | 1647 ~ 51 | 캔버스에 유채 | 122.5 × 177cm | 내셔널 갤러리

posted by 황영찬
2017. 1. 23. 12:17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03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

 

 

알랭 드 보통 지음 | 정진욱 옮김

2002, 생각의 나무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8922

 

101

보885삶

 

복잡하고 힘겨운 삶을 유쾌하게 만드는 삶의 거장들이 알려주는 행복의 철학

 

지은이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영어 · 프랑스어 · 독일어에 능통하다. 지은 책으로는 유머와 통찰력으로 가득한 철학적 연애 소설『로맨스』『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키스와 말』이 있으며, 독특한 문학평론서『프루스트는 어떻게 당신의 삶을 바꿨나』, 여행에 관한 에세이『여행의 기술』(근간) 등이 있다. 그의 책은 현재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현재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으며, 철학과(科) 졸업 프로그램을 지도하기 위해 런던 대학을 오가고 있다. 원제가 '철학의 위안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인 이 책은 영국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으며, 동시에 영국에서 <철학: 행복으로의 안내>라는 제목의 6부작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영됐다. 알랭 드 보통의 웹사이트 www.alaindebotton.com에서 그의 근황과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정진욱

전문번역가. 옮긴 책으로는 <섹스의 영혼>, <독서의 역사>, <제1의 성>,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 등이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다.

- 몽테뉴

 

아직 철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거나

철학을 할 시기가 지나가 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을 맞이하기에 너무 젊거나 늙었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 에피쿠로스

 

만약 우리의 나이가 2천 살이 아니고,

플라톤의 대화에 관심이 없고, 또 조용히 파묻혀 산다는 이유로

자신은 깨달음을 얻는 데 부적절한 존재라고 생각하기를 그만둔다면,

우리 모두도 현명한 아이디어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차례

 

1장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 소크라테스 Socrates

          지적 회의로의 초대장

          상식에 대한 집착

          소크라테스식 삶의 방식

          소크라테스의 재판

          소크라테스의 죽음

 

2장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위안 에피쿠로스 Epicurus

          행복, 구매 리스트 하나

          쾌락을 가르치는 철학자

          철학의 임무 - 에피쿠로스의 경우

          행복, 에피쿠로스파의 구매 리스트

          행복의 물질적 환상 - 소박함에 대한 옹호

          행복, 또 다른 구매 리스트 하나

 

3장 좌절에 대한 위안 세네카 Seneca

          세네카의 죽음

          좌절을 설명하는 세네카의 사전

          체념의 기술

 

4장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 몽테뉴 Montaigne

인간에 대한 인정

성적 부적절함에 대하여

문화적 부적절함에 대하여

지적 부적절함에 대하여

 

5장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 쇼펜하우어 Schopenhauer

염세적인 철학자의 연대기 - 쇼펜하우어의 일생

현대인의 러브 스토리 한 토막 - 쇼펜하우어의 해설을 곁들여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6장 곤경에 대한 위안 니체 Nietzsche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용 및 참고문헌

찾아보기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

그대가 아는 것들은 그게 전부인가

 

Socrstes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이런 혹평을 할까? ……만약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현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일을 삼간다면, 그 주된 이유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인기 있는 것들을 옳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맨발의 철학자는 사람들 사이에 인기 있는 그 무엇인가가 과연 이치에 닿는 것인지를 가리기 위해서 거듭 의문을 제기했다.

소크라테스 거리의 사람들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일과로 삼다가 결국 고발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는 아테네의 거리에서 청소년들과 마을의 유력한 사람들을 상대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선이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묻고 있는 모습으로 낯익다. 그 문답은 항상 '그것은 모른다'라고 하는 무지의 고백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다.

 

모든 이의 의견을 다 존중할 필요는 없고 단지 몇 명만 존중하면 되고 다른 사람들은 무시해도 좋다는 사실……, 훌륭한 의건은 존중하되 나쁜 의견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다는 사실, 그것 참 멋진 원칙이라고 자네는 생각하지 않는가? 그리고 훌륭한 의견은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의 것인 반면, 나쁜 의견은 이해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의 것이지……. 그러니 훌륭한 나의 친구여,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어떤 말을 하든 마음 쓸 필요가 없소. 하지만 전문가들이 정의와 불공평의 문제에 대해 하는 말에는 신경을 써야 하오.

-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이 그림에서 소크라테스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철학의 본질을 보여주려는 듯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평범한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

<소크라테스의 죽음> 샤를-알퐁스 뒤프레누아가 그린 이 그림 역시 독배를 들이켜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그를 둘러싼 친구들을 극적인 포즈로 그려 놓았다. 비통에 겨워 바닥에 무너진 인물들을 보라. 소크라테스만이 동요하지 않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18세기에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갖는 회화적 잠재력에 주목한 많은 화가들이 소크라테스의 최후의 순간을 비애감을 가득 넣어 연출해 냈다. 자크 필립 조셉 드 생-켕틴(1762, 위), 피에르 페이론(1790, 아래)이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

아테네의 군인과 여성 그리스 남성들에게 전투에서의 승리는 영광된 행위였으며, 당당하게 적을 죽이는 용기는 최고의 덕목이었다. 반면 여성들은 그런 남성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로 칭송받았다.

소크라테스 그는 일년 내내 똑같은 외투를 걸쳤으며 언제나 맨발로 걸어다녔다. 소크라테스와 마주친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그의 외모에 불편해했을 것이다.

철학자들의 도시 아테네 아테네가 철학자들의 도시가 된 까닭은 온화한 날씨와 도시계획 덕택이었을 것이다. 적당한 인구와 작은 크기, 좋은 날씨를 가진 도시에서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고 사색을 즐겼으리라.

파르테논 신전의 기병 조각 그리스인으로서 용맹스런 자가 되려면 군인이 되어야 햇으며, 전투에 나가 적을 죽여야 했다. 그리고 전투에서 무공을 세우거나 장렬하게 전사한 자들의 건강성과 용맹성은 도시 곳곳에서 기림을 받았다.

그리스 도자기 이 화려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그리스인들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공정을 차근차근 진행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도 그와 같이 실제로 어려운 작업일 테지만,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식 사고방식

 

1. 확고하게 상식으로 인식되는 의견을 하나 찾아보자.

 

    용기 있는 행동에는 전장에서 후퇴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덕을 쌓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2. 잠시 상상해 보자. 이런 의견을 내놓는 사람의 확신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거짓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 의견이 진실일 수 없는 상황이나 환경을 찾아보자.

   

    용기가 있으면서도 전쟁터에서 후퇴하는 사람은 정말로 없을까?

    전쟁터에서 꿋꿋하게 전투에 임하면서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없을까?

 

    돈을 가졌으면서도 덕을 쌓지 못한 사람은 없을까?

    돈은 없지만 덕이 높은 사람은 있지 않을까?

 

3. 예외가 발견되면, 그 정의는 틀렸거나 아니면 최소한 불명확한 것임에 틀림없다.

 

    용기가 있으면서도 후퇴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쟁터에서 꿋꿋하게 전투에 임하고 있지만 용기가 없는 경우도 가능하다.

    돈을 가진 악한도 있다.

    가난하지만 덕은 높을 수도 있다.

 

4. 최초의 의견은 이런 예외까지 고려할 수 있도록 새롭게 고쳐져야 한다.

    용기 있는 행동은 전쟁터에서 후퇴와 전진을 동시에 뜻할 수 있다.

 

    돈을 가진 사람은 그 돈을 고결한 방식으로 획득한 경우에만 덕이 있는 존재로 묘사될 수 있다. 그리고 돈을 가지지 못한 일부 사람들도 덕을 추구했으되 돈을 버는 일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살아왔다면 역시 덕이 높을 수 있다.

 

5. 그렇게 새로 정리한 주장에서 예외가 발견된다면, 앞에서 거쳤던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진실은, 만약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언제나 더 이상 논박할 수 없는 주장 속에 담겨 잇어야 한다. 어떤 주장에 대한 이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곧 그 주장에 담겨 있는 그릇된 것들을 발견해 나가는 일이다.

 

6.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빗대어 뭘 말했든 간에, 사고의 산물은 직관의 산물보다 우월하다.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 엘리펀트 맨 희귀병 때문에 끔찍하게 생긴 기형의 얼굴을 가진 주인공은 서커스단의 구경거리가 되어 온갖 학대를 받으며 살아간다. 사실 그는 세익스피어의 고전과 성경까지 섭렵한 아주 박식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소크라테스도 그처럼 슬픈 운명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위안

행복한 삶을 위해서 나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Epicurus

종종 쾌락을 혐오하며 엄격하게 굴었던 사람들 중에 예외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 철학자는 인생을 잘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고자 했던 것 같았다. 에피쿠로스, 그는 이렇게 썼다. "만약 미각의 쾌락을 빼앗고, 성적 쾌락을 빼앗고, 듣는 쾌감을 빼앗고, 또 아름다운 형태를 봄으로써 일어나는 달콤한 감정들을 빼앗아버린다면 나는 행복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에피쿠로스 어려서부터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여행을 다닌 에피쿠로스는 그들의 가르침에 동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십대 후반에 자신의 사상을 정리해 삶의 철학을 세우기로 마음 먹었다. 에피쿠로스 이전까지 유쾌한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을 그처럼 진솔하게 컬어놓았던 철학자는 없었다.

 

욕망에 대해 말하자면, 어떤 것들은 자연스럽고 또 필요하다. 또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긴 하지만 불필요하다. 그리고 자연스럽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도 있다.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 않은 쾌락을 제공한다.

이미 인생의 황혼녘에 다다른 마당에 나는 원하노라. 죽음이 덮치기 전에 쾌락의 충만함을 축하할 훌륭한 송가를 하나 만들어 마음이 차분하게 정리된 사람들을 돕기를.

-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오르세티 빌라 거대한 저택과 커다란 정원, 저택 앞에는 드넓은 잔디밭, 정원에는 과실수와 관상수 숲이 들어차 잇다. 여름철의 분수 물소리와 겨울철의 설경을 상상해 보라. 이보다 더 넘치게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폼페이의 이시스 사원 프레스코화 고대 로마의 식민도시였던 폼페이는 로마의 황제와 군인들의 여름 휴양지와 별장지로서 극장, 목욕탕, 바실리카, 신전 등이 지어졌으며, 상점, 수도(水道), 포장도로도 갖춰졌다. 화산재에 묻히기 전까지 도시는 호화로운 조각, 벽화,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성스러운 대화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화가인 지오바니 벨리니(1430~1516)는 종교적인 이야기식 표현을 강조하던 경향에서 자연스러운 배경과 풍경을 강조하는 대담한 자연주의를 전개했다. 그의 <성스러운 대화>에 등장하는 여인 또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테네 학당>의 에피쿠로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54명의 인물 중 에피쿠로스를 그린 부분이다. 에피쿠로스는 사람들에게 과연 절실히 원하는 것이 그 때문에 생길 고통과 고생을 감수해야 할 만큼 의미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행복은 바로 당신 곁에 있다.

 

좌절에 대한 위안

이게 진짜 내가 두려워했던 그 상황이란 말인가

 

SENECA

동물은 자신의 목을 매고 있는 밧줄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지만 그것은 오히려 밧줄을 더 단단히 조이는 결과가 된다. ……순응하지 않고 마구 몸부림친다고 해서 묶여 잇는 동물의 고통이 덜해지도록 적당히 느슨하게 만든 멍에는 이 세상에는 절대로 없다. 저항할 수 없는 악에 맞서 고통을 경감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숙명에 굴복하며 참는 것이다.

 

세네카의 두상 '가벼운 슬픔은 말이 많고 큰 슬픔은 말이 없다' 등 수많은 격언으로 기억되는 철학자 세네카. 그는 스스로 세속에 물들면서도, 끝내 인간이 인간다운 까닭은 올바른 이성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모순과 불안에 찬 생애를 살았다.

 

사람이란 도대체 뭔가? 약간의 충격, 약간의 타격에도 터지고 말 혈관…… 자연 상태에서는 무방비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하고, 운명의 여신이 내리는 모든 모욕에 고스란히 노출된, 허약하고 부서지기 쉽소 발가벗은 육체.

그대는 말하겠지.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라고. 그렇다면 그대는,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고, 그것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세상에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잇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는 만물의 질서를 바꿀 수 없다. ……우리의 영혼이 순응해야 하는 것은 이 (자연의) 법칙이다. 이 법칙을 우리는 따라야 하고, 이 법을 우리는 준수해야 한다. ……당신이 개조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참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세네카의 죽음>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함께 세네카의 죽음은 철학적 죽음의 상징이다. 울부짖는 동료들에게 세네카가 보인 반응은, '철학'을 어디 내팽개쳤느냐는 꾸짖음이자 들이닥칠 불운에 맞서겠다는 결심이 어디 갔느냐는 힐난이었다.

루벤스가 그린 <세네카의 죽음>(1615) 세네카가 비통한 죽음을 견뎌낸 방식에 대한 기나긴 찬양의 역사는 로마시대 이후 많은 그림으로 남겨졌다. 이 그림에서 세네카는 위엄과 고매한 인격의 현자로 그려져 있다.

17세기에 그려진 <세네카의 죽음> 들 루카 조르다노(위, 1680), 게라르트 폰 흔토르스트가 그린 <세네카의 죽음>.

세네카와 소크라테스 가족과 친구들이 이성을 잃고 흐느끼는 가운데 너무도 평온하게 최후를 맞이했던 두 명의 고대 철학자들. 그들은 현실과 극단적인 갈등을 빚을 때도 절대로 의지박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래는 같은 조각에서 세네카의 얼굴.

 

세네카의 명상

 

 

운명의 여신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주지 않아.

공적인 것이든 사적인 것이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인간의 운명도 도시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지.

엄청난 노고의 대가로, 그리고 신들의 위대한 배려로 수많은 세월을 두고 착실하게 올려진 건물일지라도 하루아침에 무너져 사라질 수 있나니, 아니지, '하루아침'이라고 말한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들이닥치는 불운을 감안하면 유예 기간을 지나치게 길게 잡고 있어. 한 시간, 찰나의 순간도 제국을 넘어뜨릴 수 있거든.

아시아의 도시들이, 아카이아의 도시들이 얼마나 자주 단 한 차례의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던가? 얼마나 많은 시리아의 도시들이, 또 얼마나 많은 마케도니아의 도시들이 한 차례의 지진에 삼켜져버렸던가? 이런 참화가 얼마나 자주 키프로스를 쑥밭으로 만들었던가?

우리 모두는 죽을 운명을 타고난 것들에 묻혀 살고 있네.

누구나 죽을 운명으로 태어났고, 우리 역시 죽을 운명의 아이를 낳는 법이야.

모든 것에 기대를 거는 한편으로 어떤 일이든 다 닥칠 수 있다고 예측해야지.

 

루벤스가 그린 <4명의 철학자> 고전학에 관심이 많았던 루벤스는 형이 사망하자 리프시우스, 그리고 그의 제자와 자신이 철학 토론을 벌이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배경으로 이들의 학문적 관심을 상징하는 세네카의 두상이 보인다.

로마의 수도교 주어진 그대로의 상태에 대한 인간의 저항을 보여 주는 위대한 상징물. 인간이 모든 좌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인류의 위대한 성취는 별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의 독창력의 원동력은 '그게 꼭 이런 식이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심지어 더 이상 현실을 개조시킬 희망이 없을 때에도 끊임없이 변화와 진보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낸다.

네로의 두상 네로 앞에서는 인간에겐 이성이 있지만 개에겐 이성이 없다는 말이 무색해진다. 로마 황제 네로가 무차별 살해와 성적 가혹 행위에 몰입한 까닭은 무얼까. 네로는 세네카를 꼭 껴안으면서 사랑하는 가정교사를 해치느니 자신이 죽고 말겠노라고 맹세했지만 결국 세네카는 그에게 죽음을 당했다.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

지식이란 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MONTAIGNE

인간의 지혜라는 것이 안고 있는 지적 우둔함을 간파한 사람이면 누구나 놀랄 만한 이야깃거리를 갖게 될 것이다……. 인간의 지력을 위대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그런 중요한 인물들에게서조차 그처럼 엄청난 잘못들을 발견할 때, 우리는 인간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몽테뉴의 초상 몽테뉴는 인간의 온전한 모습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데 관심이 이었다. 그의 『수상록』은 그 전에 나온 심각한 책들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은 것들로, 이성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몽테뉴 덕분에 인간은 자연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어리석은 짓을 했거나, 어리석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보다 넉넉하고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 인간은 한갖 멍청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의 지혜라는 것이 안고 있는 지적 우둔함을 간파한 사람이면 누구나 놀랄 만한 이야깃거리를 갖게 될 것이다. 인간의 지력을 위대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그런 중요한 인물들에게서조차 그처럼 엄청난 잘못들을 발견할 때, 우리는 인간에 대해, 인간의 감각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사람이다. 인간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것치고 나에게 낯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

 

몽테뉴가 살았던 성 젊어서 프랑수아 1세의 이탈리아 원정에 참여하여 르네상스를 접한 몽테뉴의 아버지는 활동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라틴어 교육을 위해 집안의 모든 하인들에게도 라틴어를 말하게 한 환경에서 자란 몽테뉴는 서민들에게 애착을 갖도록 농부들에게 맡겨져 자유롭게 그들과 어울렸다.

몽테뉴의 원형 서재 독서광이자 애서가로 유명했던 몽테뉴는 이 탑 안의 원형 서재에서 평생 택을 읽고 사색했다. 독서는 몽테뉴에게 커다란 위안이었으며, 그는 삶이 버거울 때면 커다란 서재를 갖추고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으로 살기보다는 동물로 살아가는 삶의 이점을 검토했다.

몽테뉴 서재의 나무 들보 몽테뉴는 자신의 서재 천장 들보에 성경과 고전에서 따온 명구 57개를 새겼다. 여기에는 정신이란 것이 우리 인간에게 감사해야 마땅한 어떤 것을 주었는지 의심하는 금언들이 새겨져 있었다.

앙리 3세와 캐서린 데 메디치의 초상 우아한 부인들은 절대로 볼 일을 보지 않는다거나 근엄한 왕에게는 엉덩이가 없다는 터무니없는 통념은 몽테뉴로 하여금 그들도 똥을 눅 엉덩이를 가지고 잇다는 점을 이 세상에 상기시키도록 만들었다.

몽테뉴의 초상 토마스 데 뤼가 그린 몽테뉴의 정장 차림 공식 초상. 속내를 읽기 어려울 정도로 다소 장중한 이 초상 속의 몽테뉴는 그가 『수상록』에서 드러내기를 바랐던 그의 참 모습이 아니었다. 몽테뉴는 이런 이미지가 아닌 자신의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을 모사하려고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투피 인디오 몽테뉴의 지적 호기심은 세계로 열려 있었다. 그가 읽은 바로는 아메리카 인디언 종족인 투피 인디오 남자들은 부인을 한 명 이상 둘 수 있었으며 남자들은 부인 모두에게 똑같이 헌신한다. 그들의 윤리 제도는 오직 두 가지 조항으로 구성되는데, 전투에서의 단단한 결의와 부인에 대한 사랑이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그려진 아리스토텔레스. 고대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포괄적인 지식을 탐구한 인물이자 지나치게 똑똑한 저자. 그의 천재성은 후계자들로 하여금 창조적 작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앞선 지식을 회의하는 무례함을 저지를 용기를 갖지 못하게 한다.

『수상록』 1580년에 보르도에서 출판된 『수상록』 초판본 속표지. 에세이의 시조로 불리는 몽테뉴의 『수상록』은 자기 탐구의 고백서이자, 인간에 관련된 모든 것의 탐구서다. 몽테뉴는 이 책에서 '되도록 자세히 나를 살펴보고 끊임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지만 내 안에서 발견되는 허약함은 감히 입밖에 내어 말하기 힘들다. ……조금만 방향을 바꾸거나 관점을 바꾸면 내 안에서는 온갖 모순이 발견된다'고 털어놓았다.

키케로의 흉상 고대 로마의 최고의 지식인이자 변론가, 문필가로 불리는 키케로. 몽테뉴는 키케로의 책에 대해 공허한 이야기로만 가득 차 있다고 평했다. 몽테뉴는 학자들이 고전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쏟는 이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을 지적인 존재로 비치고 싶은 허영심을 가지고 잇기 때문이었다.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

사랑이 삶을 지배하는 이유

 

SCHOPENHAUER

이 모든 소란과 흥분은 왜일까? 이런 조급함과 아우성, 고민과 격렬함은 왜일까? 왜 그런 하찮은 것이 이다지도 중요하게 다가올까? 여기 의문의 대상이 된 것은 결코 시시하지 않다. 그와는 반대로 중요한 것은 성실하고 열정적인 노력으로 철저히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모든 사랑 놀음의 최종적인 목표는…… 인간 삶의 다른 어떤 목표보다도 실제로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아무리 심각해져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쇼펜하우어 염세주의 철학자요 생(生)의 철학적인 쇼펜하우어. 그는 자신이 철학의 주요 문제를 해결했다고 확신하고 자신의 사상이 수많은 책의 원천과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독한 철학자였던 그는 세상이 자신의 위대성을 인정해 주지않는 데 대해 실망하고 내면으로 화살을 돌려 자신의 영혼을 쉴 새 없이 괴롭혔다.

 

사랑이란 것은…… 성적 관심은 별도로 하더라도, 혐오스럽고, 경멸할만하고, 심지어 상극으로까지 보이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맡기게 만든다. 그러나 종(種)의 의지는 개인의 의지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그 연인은 자신의 것과 상반되는 모든 특질들에 눈을 감아버리고, 모든 것을 간파하고, 모든 것을 그릇 판단하고, 자신의 열정의 대상과 자신을 영원히 묶어버린다. 그런 환상에 빠진 사람은 완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그 환상은 종의 의지가 다 충족되고 나면 금방 사라지고 이제 평생을 혐오하면서 살아야 할 파트너만 남게 된다. 바로 여기서, 매우 이성적이고 심지어 탁월하기까지 한 남자들이 종종 잔소리가 심하고 악마 같기도 한 여자들과 사는 이유,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도 왜 자신들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쇼펜하우어의 부모 쇼펜하우어의 아버지 하인리히와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는 이들 부부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지가 고독하게 지내는 동안 어머니는 연회를 베풀었다. 또한 아버지가 극심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동안 어머니는 즐겁게 지냈다. 그것이 여인들의 사랑이다……."

윔블던의 이글 하우스 쇼펜하우어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루트르(Arthur)'라는 세례명을 받게 했는데, 그 까닭은 이 이름이 유럽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이 '아루트르'라고 발음되기에 후에 사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 그는 어린 쇼펜하우어가 '세계라는 큰 책'을 배울 수 있도록 프랑스와 영국 등지로 보내 외국어를 익히고 고급문화를 접하게 했다.

젊은 시절의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처음부터 철학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의학 공부를 먼저 하다가 칸트 연구가인 슐체의 강의에 감동 받아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다. 그는 슐체를 통해 '신과 같은 플라톤'과 '경탄할 만한 칸트'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이 두 사람의 사상을 통해 그의 사상은 '염세주의'라고 할 만한 것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노년의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점점 더 울적해져서 공포와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발사가 면도칼로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고 생각해 절대로 면도를 하지 못하게 했고, 잘 때에도 침대 밑에 권총을 넣어 두고 잤다. 죽음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의 안전과 건강에 극도로 신경 썼던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말년을 보낸 집 헤겔의 죽음은 쇼펜하우어에게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헤겔을 죽인 콜레라를 피해 프랑크푸르트로 간 쇼펜하우어는 이곳에서 비로소 성공을 맛보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차츰차츰 알려지기 시작햇고, 그는 이러한 성공에 매우 만족해햇으며, 자신의 명성을 보도한 기사를 찾아 읽고 매우 즐거워했다.

엘리자베스 네이와 그녀가 만든 쇼펜하우어의 흉상 사랑의 비통함에 관한 한, 아마도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존재일 쇼펜하우어는 말년에 가서 명성이 높아지자 여성에 관한 시각을 누그러뜨렸다. 폐렴으로 죽은 쇼펜하우어의 장례식은 아직 죽지 않은 상태로 매장되지 않을까 두려워한 그의 유언에 따라 죽은 지 며칠이 지난 후에야 치러졌다.

마사치오가 그린 <낙원에서의 추방> 아담과 이브가 낙원을 떠나면서 울부짖는 절망. 마사치오는 이 그림에서 절망의 정수를 표현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오류성과 연약함의 보편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담과 이브가 낙원을 떠나는 순간 우리 인간 모두가 그곳에서 추방된 셈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이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갖고 있다. 그것은 혼자서만 고통받고 외로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식'이다.

 

곤경에 대한 위안

피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NIETZCHE

인간이 걸리는 병중에서 가장 나쁜 병은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다스리는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치유로 보이는 것이 결국에는 그 치유의 대상이 되었던 병보다 더 독한 무엇인가를 낳았다. 즉각적으로 효과를 나타내는 수단들, 마취와 도취, 소위 말하는 위안들은 무지하게도 치유책으로 여겨졌다. 여기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 고통을 즉각적으로 진정시키는 방법들은 그 고통을 낳은 불만을 악화시키는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니체의 초상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첫 인상은 하나의 개인적인 특징일 뿐인데도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결정짓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신사답고 가장 합리적인 사람도, 만약에 턱수염을 길게 기르고 잇다면, 언제나 기다란 턱수염에 딸린 존재로만 보일 뿐이다. 이를테면 쉽게 화를 내고 그러다 간혹 난폭해지기도 하는 군인형(型)으로 받아들여지고, 그 사람은 그런 인간형으로 대접받게 될 것이다.

 

나와 약간이라도 인연을 맺고 있는 인간 존재들에게 나는 고통과 절망, 질병, 냉대, 경멸이 내려지기를 바란다. 나는 그 사람들이 지독한 자기경멸과 자기불신의 고문, 패배당한 자의 열등감과 동떨어져 지내지 않기를 희망한다.

 

가장 훌륭하고 가장 풍부한 결실을 남긴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그대 자신에게 악천후와 폭풍을 견디지 못하는 나무들이 앞으로 거목으로 훌쩍 자랄 수 있을지를 한번 물어보라. 불운과 외부의 저항, 어떤 종류의 혐오, 질투, 완고함, 불신, 잔혹, 탐욕, 그리고 폭력, 이런 것들이 사실은 호의적인 조건에 속하지 않는지 곰곰 따져보라.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않고는 어떠한 위대한 미덕의 성장도 좀처럼 이룰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히틀러와 악수하는 엘리자벳 니체 니체는 누이 엘리자벳 곁에서 숨을 거두었다. 니체의 마지막 저작 『힘에의 의지』는 그의 사후에 엘리자벳에 의해 정리 출판되었다. 사진에서 나치에게 매료된 엘리자벳이 히틀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니체는 그녀를 '복수에 불타는 반유대주의자 멍청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위버멘쉬 혹은 슈퍼맨 초기에 니체를 영어로 옮겼던 번역자들은 부주의하게도 위버멘쉬(초인)를 전설적인 만화의 주인공 슈퍼맨으로 옮겨 적었다. 그러나 니체의 위버멘쉬는 하늘을 휙휙 나는 인물이나 파시스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위버멘쉬란 지성보다도 본능, 합리보다도 의지, 이성보다도 정열, 사고보다도 육체를 존중할 줄 아는 의지의 인간을 말한다.

니체가 좋아한 인물들 니체는 살아 있는 인물 중에는 그다지 궁금한 인물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면서,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완성에 가까운 삶을 산 것으로 여겨지는 몇몇 개인에 대한 회고를 늘어놓았다. 그들을 니체의 용어로 말하자면 위버멘쉬로 묘사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위에서부터 몽테뉴, 아베 갈리아니, 스탕달(앙리 바일), 괴테.

니체가 사랑한 괴테 니체는 괴테를 '숭고한 인물',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마지막 독일인'이라고 불렀다. 니체가 보기에 괴테가 원한 것은 총체감이었으며, 괴테는 이성과 관능, 느낌, 의지를 서로 분리하는 데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괴테는 10년 동안 바이마르 궁정의 문관을 지내며 외교적 임무를 수행하면서 나폴레옹을 두 차례 알현했다.

질스-마리아에 있는 니체 박물관 서른다섯의 나이에 바젤대학의 교수 자리에서 물러나자마자 니체는 알프스 지역인 해발 1,800미터의 질스-마리아라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여름을 보내며 그의 주요 저서들을 썼다. 그는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정오까지 작업을 하고, 마을을 에워싸고 있던 산을 오르곤 했다. 그리고 밤이면 홀로 간소한 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곤 했다. 이 농가는 '니체가 살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수수하게 단장한' 네체 박물관이 되었다.

라파엘로의 <니콜리니 코퍼 마돈나>를 위한 밑그림과 완성작 그림 소유자의 이름을 붙인 이 성모자 그림은 라파엘로가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가기 직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스럽게 성모와 아기가 육체적으로는 물론 심리적으로도 결속된 느낌을 주는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로부터 배운 결과물이다.

라파엘로의 <한 젊은 여인의 초상>과 <한 여인의 초상>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메켈란젤로의 작품들을 찾아 그들의 밑그림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두 거장의 해부학적인 스케치에서 얻은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그들의 예를 따랐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세심하게 관찰했다. 라파엘이 쏟은 노력의 결과는 그 이전에 그린 <한 젊은 여인의 초상>과 몇 년 뒤 완성한 <한 여인의 초상>을 비교해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파에스툼에 있는 그리스 사원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열정과 악을 지극히 자연스런 취향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신들의 마음속에 간직된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찬양하는 일을 디오니소스 축제와 같은 공식적인 제식으로 제도화했다. 그들은 악과 의심, 그리고 적당한 해방을 절멸하려고 애쓰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열정을 상대로 한 전쟁 니체는 자신에게 닥친 고통을 피하려 들지 말고 그것을 세련되게 활용하라고 말했다. 열정과 욕망이 지닌 어두운 힘을 두려워하고 피할 목적으로 그것들을 파괴하는 것은 니체가 보기에 그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로 보였다. 이빨이 아프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뽑아버리는 치과의사에게 누가 치료를 맡기겠는가.

본대학 시절의 니체 니체가 소속한 본대학 사교클럽. 사진 중앙의 몸을 한쪽으로 돌리고 있는 이가 니체다. 아래쪽 가운데에 맥주통이 보인다. 니체는 동료 학생들이 알코올을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에 몹시 화를 냇다. 니체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면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라고 권고했다.

베수비우스산의 폭발 1879년에 베수비우스산이 폭발하는 모습. "존재를 통해서 가장 위대한 성취와 가장 위대한 즐거움을 일궈내는 비결은, 위태하게 살아가는 것이지! 도시들을 베수비우스산 기슭에다 짓도록 하게나!"

뢰켄 교회 니체는 라이프치히 근처의 뢰켄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으며, 그의 어머니 또한 목사의 딸로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니체는 뢰켄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훗날 니체는 기독교를 가장 무서운 저주이자 가장 무서운 타락이라고 부르게 된다.

니체의 아버지 카를 루트비히 니체 니체는 '시골 목사의 완벽한 구현'이었던 아버지를 매우 사랑했으며 평생 동안 아버지의 기억을 숭배했다. 니체의 기억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자비로운 성격에 따뜻한 동정심과 재치 있는 대화로 정신적 안내자로서 농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니체에게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상스러운 짓이었다.

코지마 바그너 그녀는 프란츠 리스트의 딸로서, 한스 폰 뵐로와 이혼하고 리하르트 바그너와 재혼했다. 니체는 이들 모두와 교류했는데, 그가 진정으로 사랑에 빠졌던 부인이 바로 바그너의 부인인 코지마라는 아이러니컬한 사건은 유명하다. 니체는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우정으로 교묘하게 위장했다.

니체와 루 안드레이-살로메 가운데 인물은 파울 레. 독특한 외모와 수줍은 성격으로 여성들로부터 연이어 퇴짜를 맞은 니체가 경험한 사랑 중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위대했던 사랑은 루 안드레아-살로메였다. 젊고 아름답고 똑똑하고 바람기가 많았던 그녀는 남자로서보다 철학자로서 니체에게 관심이 더 있었다. 루의 거부는 니체를 다시 한번 극심한 우울증에 몰아넣었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