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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5. 10:41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34 안동 하회 마을

 

글 / 임재해●사진 / 김수남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987

 

082

빛12ㄷ 129

 

빛깔있는 책들 129

 

임재해-------------------------------------------------------------------------

 

영남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안동대학교 인문대학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한국민속과 전통의 세계」「설화작품의 현장론적 분석」「민족설화의 논리와 의식」「민속문화론」「꼭두각시놀음의 이해」「전통 상례」등이 있으며 편저로는 「한국의 민속예술」「한국민속학의 과제와 방법」등이 있다.

 

김수남-------------------------------------------------------------------------

연세대학교 지질학과를 졸업햇으며 동아일보사 출판사진부 기자를 역임했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잇다. 사진집 「풍물굿」「장승제」「호미씻이」를 냈다.

 

|차례|

 

하회를 떠올리는 몇 가지 표상

하회를 구경하고 공부하는 길

하회를 지리적 형상과 풍수설의 이해

하회의 역사와 성씨들의 세거

인물과 문물 그리고 문중 조직

하회의 골목길과 예사 집들

서원과 서당 그리고 정자들

하회의 서낭 신앙과 별신굿탈놀이

하회의 대립적 전통과 그 조화성

참고 문헌

 

 

▲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 마을  수태극, 산태극의 절묘한 지리적 형상과 깨끗한 백사장, 만송정의 푸른 솔숲 등 빼어난 자연 경관을 지닌 하회 마을은 한국 민족 문화의 한 전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잇는 마을이다.

▲ 하회 마을 위치도

▲ 하회마을 배치도

▲ 하회마을 안내도

▲ 충효당 앞뜰  '연화부수형' '태극형'의 형국을 이루고 있는 하회는 화산 자락의 매듭에 자리잡고 있다. 그 산의 지맥은 지금의 충효당 뒤뜰에까지 이어져 잔디밭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 하회 마을 전경  허씨와 안씨의 뒤를 이어 가장 늦게 하회에 입촌한 풍산 류씨들은 동성 마을을 이루어 현재는 하회의 중심부를 점유하고 있다. 이처럼 류씨의 가문이 번성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그들 선조들의 정성어린 적선 공덕으로 길지를 잡을 수 있었다는 풍수지리설의 해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 양진당 사랑채 대청  기록에 의하면 류씨의 선조들은 하회에 모둠살이를 이루기 위해 오랜 세월을 적선하였으며, 그런 뒤에 집을 이룬 것이 지금의 양진당 사랑채 일부라고 한다.

▲ 서애의 교지와 문집  서애의 유물 전시관이라 할 수 있는 영모각에는 그가 저술한 많은 책과 문헌들 그리고 각종 보물급의 교지와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위는 '영의정 임명교지'이고 아래는 징비록의 한 부분이다.

▲ 투구와 갓  위는 서애가 도체찰사로서 임진왜란 때 전지(戰地)에서 착용하였던 것으로 철제 투구이고, 아래는 서애가 평상시에 착용하던 갓이다.

▲ 불천위 제사  불천위란 학문이 탁월하고 많은 인재를 길러 낸 대학자나 나라의 종묘사직을 지킨 충신,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될 탁월한 행적을 남긴 사람들에 한하여 나라에서 왕이, 또는 유림에서 추대하여 불천위로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므로 불천위가 있다는 것은 가문의 최고 명예를 보증하는 것이다. 하회 마을에는 이러한 불천위가 다섯 분이나 되며 이들 불천위 제사는 4대조까지만 올리는 일반적인 제사의 관례와는 달리 끊임없이 계속된다.(위, 아래)

▲ 시제 지내는 모습  문중 단위로 하는 문중시사인 회존시사에는 묘사 일자도 고정적으로 잡아 두어 여러 후손이 널리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 마을길  골목길은 집과 집을 이어 주는 소통 체계로서 형성된다. 하회의 골목길은 마을의 형상과 집의 분포에 따라서 방사선형을 이룰 수밖에 없지만 곧은 길이 아니라 담장 사이로 휘어지면서 꼬리를 감추어 버린다.

▲ 양진당 솟을대문

▲ 외부에서 본 양진당 전경  류씨 가문의 큰종택인 양진당은 하회의 대표적인 종가 건물이다. 하회에서는 보기 드물게 정남향이며 대종택다운 위치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 양진당 남측면도

▲ 바깥마당에서 본 양진당 사랑채 전면

▲ 바깥마당에서 본 양진당 안채 측면 일부

▲ 양진당 평면도

▲ 양진당 사랑채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인 사랑채는 그 우뚝한 높이와 대청의 규모를 통해 종택 사랑채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 사랑채 대청에서 본 북촌댁 안채 지붕 일곽  북촌댁의 안채는 사랑채 뒤쪽 측면에 자리 잡고 있어 바깥마당에서는 안채의 동정을 살필 수 없고 그 통로도 가리어져 있다.

▲ 충효당 평면도

▲ 충효당 사랑채 대청 정면  사랑채의 대청 가운데 후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으며 그 문 위에 허목이 쓴 충효당 현판이 눈에 띈다.

▲ 충효당 사랑채 측면  ㅁ자 모양의 안채와 붙어 있는 사랑채는 그 통로가 방이나 마루로 연결되지 않고 뒤쪽 문이나 대청의 후원문을 이용하여 안채에 출입하게 되어 독자성을 지닌다. 사랑채 앞에는 모두 난간이 달린 툇마루를 달았으며 기단은 간지석쌓기 방식으로 마감했다.

▲ 북촌댁 안채 뒤뜰  북촌댁은 아흔아홉 칸의 대저택을 자랑하는 하회 아랫마을의 대표적인 고가이다. 안채 뒤뜰에는 채전밭이 상당히 넓게 자리하고 있는 사이에 굴뚝이 서 있어 예전 북촌댁의 경제적 여유의 풍성함을 보여 준다.

▲ 북촌댁 사랑방 외부

▲ 주일재  충효당 뒤쪽에 자리잡고 있는 주일재는 사랑채가 一자형 평면으로 구성된 정남향 집이며 민속자료 91호이다.

▲ 박재윤 씨 초가  문간채, 안채, 헛간 등 제법 상당한 규모를 갖춘 이 초가는 조선조 초가 민가의 한 보기로 삼는다.

▲ 병산과 낙동강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만대루

▲ 병산서원  병산서원은 풍산 류씨들이 후진 양성을 위해 마련한 풍악서당이 그 모체이다. 원래의 자리에서 지금의 병산리로 이건되면서 병산서원으로 바뀌었다.

▲ 만대루  정면 7칸, 측면 2칸의 대규모 누각으로서 아름드리 두리기둥과 높이 설치한 누마루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규모에 압도당하게 할 정도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병산 전경 또한 장관을 이룬다.

▲ 화천서당  토담 안에 서당채와 살림채로 이루어진 화천서당은 병산서원과 함께 하회의 교육을 감당한 대표적 서당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앞쪽의 대청문들을 열면 화천의 흐름과 화산의 자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겸암정 정자채  예사 정자의 역할과는 조금 다른 겸암의 사설 교육장 곧 서당의 역할을 담당한 이 정자는 툇마루를 달고 난간을 설치했으며 두리기둥을 세웠다.

▲ 옥연정  화천 건너 부용대 오른쪽 기슭에 자리잡은 옥연정은 문간채와 바깥채, 안채와 별당까지 마련되어 있다.

▲ 옥연정 평면도

▲ 서낭당 하회에는 다른 마을에 비해 동신당이 많다. 화산 중턱에 있는 무진생 김씨를 모신 서낭당은 상당 구실을 하면서 별신굿탈놀이의 구심점이기도 하다.

▲ 삼신당  삼신당은 수령 6백 년이 된 고목의 느티나무로서 현재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하당이라 일컫는 당으로 마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 무동마당  각시광대가 탈을 쓰고 무동하여 두 팔을 흔들며 춤춘다.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각시광대는 내려서 꽹과리를 들고 수시로 구경꾼들에게 걸립을 한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