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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4. 09:09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3 떡과 과자

글, 사진 / 한복려
1994,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6445


082
빛 12 ㄷ 62

빛깔있는 책들 62

한복려------------------------------------------------------------------------

서울시립대학 원예과와 일본 조리사 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고려대학교 식량개발대학원 식품공학과를 졸업했으며 중요 무형문화재 38호 국가 전수 장학생을 이수했다.
현재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 원장이며 대전보건전문대학 전통조리과 강사이다.
사진은 탑스튜디오, 그린스튜디오, 포타운 등에서 촬영했다.

|차례|

사진으로 보는 떡과 과자
떡 이야기
    떡의 역사
    떡의 쓰임새
    시식과 절식
    통과 의례

    떡의 기본
    떡가루 만드는 법
    떡고물 만드는 법
    가루에 섞는 것
    시루떡 찌는 법
    떡의 종류
    시루떡, 물편, 각도 별떡
한과
    과자의 쓰임새
    한과의 종류
화채와 차
    화채
    차
    다과상


▲ 정월 초하루가 가까워오면 어느 집에서나 마당에 모여 떡을 쳤다. 명절을 쇠기 위해 떡을 치는 것은 아주 큰 일 가운데 하나였다.

▲ 떡을 다 치고 나면 양손으로 잡고 늘여서 가래떡을 만든다. 떡이 적당하게 굳었을 때 썰어 두었다가 떡국을 끓인다.
▲ 골무떡 떡을 쳐서 가래떡으로 만들기 전에 떡을 한입에 들어갈 만큼 작게 썰어서 꿀에 찍어 먹기도 한다.

▲ 약식 약식은 잔칫상에 빠질 수 없는 전통 음식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신라 시대에 경주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만드는 정월 대보름의 절식이다.

▲ 큰송편 음력 2월 초하루인 중화절이면 대갓집에서는 송편을 크게 빚어서 노비들에게 나이수대로 나누어 주었다.

▲ 화전 화전은 기름에 지지는 찰전병이다. 3월 삼짇날에 해먹는 절식으로 진달래 꽃을 많이 써서 '화전'하면 곧 진달래화전을 연상한다. 꽃이 없을 때에는 대추와 쑥갓잎을 써서 화전을 만들었는데 주로 웃기떡으로 많이 쓴다. 둥글납작하게 빚은 반죽을 기름에 부치다가 웃기를 놓는다.

▲ 쑥버무리 이른 봄에 새로 돋아난 애쑥 곧 어린 쑥을 뜯어서 날 것 그대로 맵쌀가루에 훌훌 섞어서 찌는 떡이다. 의례적인 떡은 아니고 봄철 시식의 하나이다.

▲ 개피떡 떡자락으로 뚜껑을 덮은 생김새를 한 개피떡은 바람떡이라고도 하는데 한입 베어 물면 바람이 후루룩 빠져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 통통한 것이 팥소와 함께 바람이 꽉차 있어서 생김새가 예쁘다. 쑥이 나는 봄에 곧잘 해먹는 떡이다.

▲ 수리치절편 오월 단오의 절식으로 수리치의 잎을 섞어 만든 절편으로 떡살로 떡을 찍어 만든 생김새가 수레바퀴처럼 생겼다.

▲ 깨소밀쌈 초여름에 햇밀을 거두어 가루를 내어 밀쌈을 만들어 먹는다. 밀쌈은 밀전병을 부쳐서 그 가운데에 소를 넣고 도르르 만다는 뜻이다. 사진은 꿀로 버무린 깨를 소로 넣은 것이다. 보통 후식으로 먹으며 안주로 먹는 밀쌈은 고기나 채소를 소로 넣는다.

▲ 송편 송편은 모든 지방에서 잘 만드는 떡으로 지방에 따라 생김새나 소가 다르다. 가장 먼저 나오는 햅쌀로 빚은 송편을 조상의 차례상과 묘소에 빠뜨리지 않고 올린다.

▲ 물호박떡 노랗게 익은 호박을 썰어 맵쌀가루와 섞어 흰팥고물로 켜로 하여 찌는 시루떡이다. 추석 무렵부터 많이 해먹는다.

▲ 시루, 시루밑, 짚방석 떡을 찔 때 쓰는 기구들이다. 시루 밑에 깔고 떡 재료를 넣은 다음 짚방석을 덮고 찐다.

▲ 다식판, 약과판, 떡살 다식, 약과, 떡의 생김새와 무늬를 만들어 주는 틀이다.

▲ 함지박, 쳇다리, 체 함지박은 통나무 속을 파서 큰 바가지같이 만든 그릇이다. 쳇다리는 곡식 따위를 갈 때 맷돌 밑에 받쳐서 간 물이 떨어지게 하거나 가루를 내릴 때 체 밑에 받치는 것이다. 체는 음식을 갈 때 쓰는데 가는 체 굵은 체로 종류가 다양하다.

▲ 떡을 만들려면 먼저 쌀을 나무 절구로 빻아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요즈음에는 보기 힘든 옛날 아낙네들의 정구질 모습이 재미있다.

▲ 고사떡 붉은팥시루떡은 고사떡으로 동신제라는 제사 때에 하던 떡이다. 시루떡은 한 켜의 두께를 두껍게 하고, 크고작은 시루에 여러 개를 쪄서 대청이나 우물가, 광, 부엌 같은 곳에 시루째 놓고 고사를 지낸다.

▲ 정월의 차례상이다. 떡국을 끓여 올려 놓고 정편을 만들어 편틀에 고인다. 그 밖에 과일, 약과, 다식 등도 놓는다.

▲ 돌상에는 백설기, 송편, 수수팥단지를 올려 놓는데 각각 순수함을 축원하는 뜻과, 속이차라는 뜻 그리고 잡귀를 예방하는 등 아기의 장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 회갑 잔칫상에는 갖가지 떡과 과일, 조과류를 높이 고여 회갑을 맞은 사람이 더 오래 살기를 빈다.

▲ 추석날 손님에게 내는 상차림이다. 송편과 밤초, 대추초를 놓고 화채는 배숙을 놓는다.

▲ 여러 가지 떡 가운데에서도 편은 고임에 가장 적합한 떡이다. 메편과 절면을 번갈아 고이고 맨 위에는 웃기떡으로 장식한다.

 ▲ 무지개떡 시루떡 가운데에서 쌀가루에 아무 것도 섞지 않고 찌는 떡은 무리떡이라 하며 고물을 쓰지 않고 한덩어리가 되게 찐다.

▲ 잡과병 설기떡 또는 버무리떡이라고도 한다. 병(餠)은 떡이라는 뜻이다. 잡과병은 쌀가루에 여러 가지 과일을 버무린 시루떡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 삼색인절미 인절미는 한자로 '인절병'이라고 하는데 차진 떡이라 잡아당겨 끊는다는 뜻으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찹쌀을 가루로 하지 않고 그대로 쪄서 절구에 찧거나 떡메로 친다. 쫄깃한 맛이 특징으로 콩가루, 흑임자를 갈아서 고물로 묻힌다.

▲ 각색단자 찹쌀가루로 만드는 물편 종류로 소를 넣고 빚어 고물을 묻힌다. 단자를 몇 가지 만들어 어울리게 담아 각색단자라 한다.

▲ 밤단자 봄에는 쑥구리단자, 가을에는 밤, 유자단자, 겨울에는 대추, 석이단자가 어울린다. 밤 고물을 묻힌 밤단자이다.

▲ 경단 경단은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둥글게 빚어 만든 떡이다. 파란 콩가루, 노란 콩가루, 팥고물, 깨소금 같은 여러 가지 색의 고물을 묻혀 목기에 깔끔하게 담는다.

 ▲ 각색주악 주악은 마치 조약돌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며, 궁중에서는 조악이라고 불렀다. 순찹쌀가루 반죽에 대추, 깨, 유자 다진 것을 넣고 작은 송편처럼 빚어 기름에 튀겨낸다.

 

 ▲ 수수부꾸미 부꾸미는 찹쌀, 차수수, 밀가루 또는 녹두를 갈아서 전병처럼 기름에 지지다가 소를 가운데에 넣고 반달로 접은 떡이다. 수수로 만든 부꾸미이다.

 

 ▲ 찹쌀부꾸미 찹쌀전병에 소를 넣고 반을 접어 지진 떡이다.

 

 ▲ 녹두빈자병 햇녹두를 갈아 팥소를 넣고 지진 떡으로 요즈음에는 거의 볼 수 없다.

 

 ▲ 증편 송편이 가을 떡이라면 증편은 여름 떡이다. 맵쌀가루에 막걸리로 부풀려 찐 떡으로 설핏설핏 혀 끝에 감겨오는 술 맛에 코끝이 간지럽고 살짝 달짝지근한 맛이 설탕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 두텁떡 본디 봉우리떡이라고 한다. 궁중에서 전해 내려온 떡이라서 가정집의 떡과는 만드는 법이 드르다. 꿀로 버무린 팥고물과 밤, 대추, 유자를 소로 써서 생김새와는 달리 맛이 특별하다.  

▲ 쇠머리떡 충청도 떡으로 팥, 콩, 밤, 대추 같은 것을 넣어 찐 시루떡이다. 떡이 약간 굳었을 때 쇠머리 편육처럼 썬다.

▲ 개성주악 술과 밀가루를 섞어 반죽한 다음 튀겨서 조청에 담근 개성의 주악이다.

▲ 수수도가니 햇수수가루를 넙적하게 만들어 풋콩을 얹어 찐 경기도 특유의 떡이다.

 ▲ 메밀총떡 물에 푼 메밀가루를 기름에 부쳐서 가운데에 소를 넣고 양편에서 접어 길쭉하게 만든 떡이다. 강원도에서는 이것을 총떡, 제주도에서는 빙떡이라고 부르며 소로 무나물이나 호박나물을 많이 넣는다. 나물이 들어간 것은 초장에 찍어 먹으나 팥고물이나 깨고물을 소로 넣으면 떡이나 과자 대신으로 먹을 수 있다.

 ▲ 감자송편 감자를 저절로 삭혀 녹말을 만들어 시루떡도 하고 송편도 빚어 찌면 맑게 비치는 멋이 있다.

▲ 호박찰시루떡 전라도 지방의 떡으로 늦가을, 누렇게 익은 맷돌호박이나 청둥호박의 껍질을 깎아서 둥글둥글 켜를 돌려 말려두었다가 겨울에 시루떡을 해먹는다.

 ▲ 고치떡 누에를 쳐서 마지막 잠을 재운 다음 잠박에 올려서 고치짓기를 기다리며 만드는 떡이다. 떡가루에 분홍, 노랑, 파랑의 물감을 들여 절편하듯이 한 다음 누에고치처럼 빚어 만든다.

 ▲ 오쟁이떡 인절미에 팥소를 넣고 오쟁이처럼 빚어 만든 떡이다.

▲ 유과 유과는 우리나라 과자 가운데에서 으뜸으로 치며 잔칫상이나 제삿상에 빼놓지 않고 올린다. 생김새와 고물에 따라 이름이 다르며 입에 넣으면 바삭 부서지면서 사르르 녹는다. 장가 온 신랑의 후행(後行) 또는 상객(上客)이 돌아갈 때 신부집에서는 대나무나 버들로 엮은 그릇에 각종 음식을 담아 보내는데 이 때 보내는 유과는 잣, 대추 따위로 모양을 내어 정성껏 만든다. 

 ▲ 산자 반죽을 큼직하고 편편하게 하여 튀긴 다음 밥풀을 고물로 묻힌 것이다.

 

▲ 매화산자 보통 산자보다 조금 더 크고 편편하게 튀겨서 매화산자에 쓰이는 나락과 그것을  볶아 껍질을 벗겨낸 나락 튀긴 것을 고물로 묻힌다.

▲ 약과 유과가 아닌 유밀과의 일종으로 약과의 약(藥)이란 꿀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에 붙인다. 밀가루에 기름과 꿀 또는 술을 넣고 반죽해서 만든다.

▲ 엿강정 흑임자, 들깨, 파란콩, 검정콩 따위를 볶은 것이나 잣, 호도, 땅콩같이 고소하고 향기 좋은 재료에 단맛을 더해 만든 과자이다.

▲ 다식 다식은 깨, 콩, 찹쌀, 송화, 녹말을 가루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모양틀에 찍어낸 것이다. 수복강령의 글귀나 꽃 무늬, 바퀴 무늬, 완자 무늬 따위의 여러 문양이 있으며 무늬가 몹시 정교하여 옛날 조상들의 예술성을 엿볼 수 있다.

▲ 구절판에 곶감쌈, 생률, 어포, 대추초, 도라지정과, 호두튀김, 은행볶음, 육포, 잣솔 같은 마른 안주를 담았다.

▲ 섭산삼 산삼은 더덕의 한자 이름으로 더덕의 생김새와 효능이 삼과 비슷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섭자가 붙은 음식들은 주로 두드려서 요리한다. 섭산삼에 관한 조리법이 삼백년 전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매우 오래된 음식임을 알 수 있다.

▲ 과편 앵두, 살구, 모과같이 신 과일에 설탕을 넣고 조리다가 녹말을 넣어 굳힌 것으로 서양의 젤리와 비슷하다. 보통 생률과 같이 먹는다.

▲ 곶감쌈 주머니곶감에 호두를 넣고 말아 얇게 썰면 예쁜 생김새의 곶감쌈이 된다. 주로 정월에 먹는데 곶감은 겨울철 영양 공급에 큰 몫을 차지하는 중요한 과일로 당분이 많고 비타민씨가 많이 들어 있어 신진대사에 도움을 준다.

▲ 떡수단 덩어리 흰떡을 가늘게 콩알만큼씩 끊어 놓고 가운데를 손바닥으로 누른다. 이 수단거리를 녹말에 묻혀서 끓는 물에 삶아 찬물에 건졌다가 꿀물에 띄운다. 통잣을 몇 개 띄우면 매끄럽고 유두에 먹는 시원한 여름철 음료가 된다.

▲ 수정과와 배숙 수정과는 정초에 만드는 화채로 시원하고 향긋한 국물 맛과 말랑하면서 달콤한 곶감의 맛이 어우러져 누구나 즐겨 찾는 한식 음료이다. 국물 맛을 내는 계피와 생강은 같이 넣고 끓이면 서로 맛이 상쇄되어 향을 낼 수 없으므로 따로 끓여서 합해야 제맛이 난다. 배숙은 배로 만든 수정과류의 음료로 보통 민가에서는 곶감수정과를 많이 만들어 먹었으며 배숙은 주로 궁중에서 만들어 먹었다.

▲ 제호탕 우리나라의 음료 곧 뜨거운 차와 화채는 거의 모두 한방재를 기본으로 하여 만든다. 제호탕은 여러 한약재를 가루로 만들어 꿀을 넣고 오랜 시간 저어 중탕한 다음 백자항아리에 담아 두고 찬물에 한 숟가락씩 타서 마시는 여름철의 건강 음료이다. 궁중에서는 단오에 임금은 부채를 하사하고 궁중 안의 의원에서는 제호탕을 임금께 진상하였다. 임금은 일흔 살이 넘은 정이품 이상의 문관이 모이는 기로소(耆老所)에 이 제호탕을 하사하였다.

▲ 송화밀수 봄철에 송화 곧 소나무의 꽃가루를 받아 두었다가 꿀물에 타서 마신다. 이 가루는 가벼워서 물 위에 뜨며 섞여 풀어지지 않는다.

▲ 진달래화채 오미자를 우려낸 찬물에 꿀이나 설탕을 타고 진달래 꽃잎을 띄운 것으로 3월 삼짇날 먹는 시식 음료이다.

▲ 보리수단 햇보리가 나오는 5월에 만든다. 햇보리를 삶아 알알이 녹말을 묻혀 다시 삶은 다음 꿀물이나 오미자 국물에 담근다.

▲ 유자화채 유자는 귤과 함께 겨울 화채의 재료이다. 초겨울에 나오는 햇유자를 배와 함께 채썰어 색색으로 곱게 담아 놓고 석류알과 잣을 띄운 다음 꿀물이나 설탕물을 살짝 붓는다. 유자화채는 그 향과 맛이 뛰어나 최고의 화채로 친다.

▲ 오메기떡 제주도 지방의 특별한 좁쌀떡으로 가운데 구멍을 내고 콩고물을 묻힌다.

▲ 손가락강정

▲ 빙사과

▲ 원소병 떡수단과 같은 음료로 정월 보름날 만들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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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11. 10. 09:40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2 팔도 음식

글, 사진 / 한복진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94


082
빛 12 ㄷ 61

한복진------------------------------------------------------------------------

이화여자대학교 가장대학을 졸업하였고 한양대학교 대학원 식품영향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국가전수장학생을 이수하고 일본 조리사 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 전임강사이며 한림전문대학 전통조리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도움 주신 곳----------------------------------------------------------------

그린 스튜디오

|차례|

사진으로 보는 팔도 음식
한국 향토 음식의 특징
서울
    대표적인 서울 음식
경기도
    대표적인 경기도 음식
강원도
    대표적인 강원도 음식
충천도
    대표적인 충청도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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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인 황해도 음식
평안도
    대표적인 평안도 음식
함경도
    대표적인 함경도 음식 

▲ 신선로 조선조 오백 년의 수도였던 서울에는 조선 시대 풍의 요리가 많이 남아 있다. 또 궁중 음식의 영향을 많이 받아 고급스럽고 화려한 것도 많다. 신선로는 궁중 음식이 민간에 전해진 대표적인 보기로 숯을 넣는 화통이 가운데에 달려 있는 남비에 육류, 해산물, 채소 따위를 둘러 넣고 끓여 먹는 음식이다.

▲ 육개장 여름철 복중 음식으로 쇠고기를 넣고 맵게 간하여 끓인 음식이다. 개고기를 꺼렸던 옛날 양반들이 쇠고기를 대신 넣고 개장국처럼 끓여서 먹은 데서 유래한다.

▲ 장김치 배추와 무를 소금이 아닌 진간장에 절여 담그는 김치이다. 밤, 배, 표고버섯 따위도 함께 넣는데 다른 김치에 견주어 빨리 익으며 겨울철에 더 맛이 난다.

▲ 육포, 대추 서울에서는 폐백을 할 때 쇠고기 육포와 대추를 마련한다.

▲ 다식 깨, 콩, 찹쌀 따위를 볶아서 가루로 만든 다음 꿀과 물엿으로 반죽하여 다식판에 넣고 박아낸 것인데 의례상에 빠지지 않고 올려진다. 노란색은 송화다식, 분홍색은 오미자다식, 갈색은 흰깨다식, 검은색은 흑임자다식, 녹색은 청태다식이다.

▲ 홍합초
초(炒)란 일종의 조림을 말한다. 홍합을 데쳐서 물, 간장, 마늘, 생강과 함께 조리다가 녹말을 풀어 걸쭉하게 익힌다. 서울 지방에서는 홍합초같이 깔끔한 밑반찬을 준비해 두는 집이 많았다. 전복으로 전복초를 만들기도 한다.

▲ 경기도 음식은 서울 음식보다 소박하며 양념도 수수하게 쓰이는 편이다. 그러나 고려 시대의 수도였던 개성의 음식은 서울, 진주 음식과 더불어 호화스럽고 사치스럽다.

▲ 냉이국 봄철에 식욕을 돋구어 주는 시원한 국이다. 쌀뜨물에 된장을 풀고 조개와 냉이를 넣어 끓인다.

▲ 개성 무찜 무에 고기, 밤, 대추, 은행을 넣고 만든 찜요리로 무의 맛과 다양한 재료가 잘 어울리는 별미이다.

▲ 조랭이떡국
개성에서는 정초에 누에고치의 생김새를 본떠 만든 떡으로 국을 끓인다. 누에는 길(吉)함을 뜻한다. 흰떡을 대나무 칼로 썰어 육수에 끓인 다음 계란과 고기를 고명으로 얹는다.

▲ 비늘김치 무에 어슷하게 칼집을 내어 절인 다음 그 사이에 양념을 채워 배추김치 사이에 한켜씩 넣어 익힌다. 요즈음 서울 지방에서도 김장을 담글 때에 이 김치를 담그는 집이 많다.

▲ 닭젓국 새우젓으로 간을 한 국물이 많은 찜요리이다.

▲ 개성 주악
보통 주악과는 달리 찹쌀가루와 맵쌀가루를 섞은 것에 막걸리를 조금 넣고 반죽한다. 반죽을 둥글게 빚고 기름에 튀겨 조청에 넣는다. 개성 주악은 크게 만드는 것이 특색이고 담을 때는 가운데에 대추쪽이나 통잣을 하나씩 박는다.

▲ 장떡 햇된장에 찹쌀가루나 밀가루나 밀가루 그리고 다진 고기, 풋고추, 파, 마늘을 넣고 양념하여 섞은 다음 둥글납작하게 빚어 찜통에 찐다. 찬으로 하거나 찐 것을 말렸다가 석쇠에 구워 먹기도 한다. 경기도뿐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도 즐기는 음식이다.

▲ 개성 편수 네모진 서울의 편수와는 달리 둥근 껍질에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두부, 배추김치, 숙주 따위로 만든 속을 가득 채워 통통하게 만든다. 끓는 장국에 익혀서 초장에 찍어 먹거나 뜨거운 장국에 넣어 먹는다.

▲ 강원도 지방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옥수수이다.

▲ 강원도는 한류와 난류가 엇갈리는 동해와 면하고 있고 태백산맥을 잇는 산과 골짜기, 분지가 어울려 있는 곳이다. 따라서 그 산골마다 각각 생산물이 다르고 해안 지방에서 나는 산물이 또 다르다. 감자, 옥수수, 메밀, 도토리가 많이 나서 이것들을 주식의 재료로 삼았는데 이 식품들이 평상시에는 주식이면서 또 향토 별미로서 사랑을 받는 음식이었다. 산악 지방에는 육류를 쓰지 않는 음식이 많으며 해안 지방에서는 멸치나 조개를 넣어 음식의 맛을 낸다.

▲ 감자경단 강원도에서는 감자가 많이 난다. 따라서 감자를 써서 만든 음식이 많다. 녹말가루를 반죽하여 찐 다음 콩고물과 거피팥고물을 묻혀 경단을 만들었다.

▲ 오징어구이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오징어에 칼집을 내서 고추장 양념을 한 다음 불고기처럼 구워 먹는다.

▲ 더덕생채 더덕의 껍질을 벗겨 두들긴 다음 가운데를 갈라 초고추장에 무친다. 더덕은 향이 좋은 산채로 구워서 먹기도 한다.

▲ 팥국수 팥을 무르게 삶아 건져서 팥물에 밀국수를 넣었다.

▲ 막국수
춘천 막국수는 강원도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에 김칫국물을 부어서 먹는데 김칫국물은 양념을 많이 한 것보다는 맑은 김칫국물이좋고 김칫국물과 함께 차게 식힌 육수를 섞으면 더 맛이 난다.

▲ 충청도 음식은 꾸밈이 없고 소박하다. 충청도는 농업이 성한 곳으로 곡식의 생산이 많아 죽, 국수, 수제비 같은 음식이 흔하다. 늙은 호박으로 죽을 쑤거나 범벅을 만드는 것이 다른 도와 견주어 특이하다. 또 국물을 내는데 고기보다 해물을 많이 쓴다. 충청도에서는 농업이 성해서 쌀, 보리, 고구마 같은 곡식과, 무, 배추 따위의 채소 그리고 목화와 모시가 많이 생산된다. 또 서해와 접해 있는 해안 지방은 좋은 어장을 갖추고 있다. 천원군에서는 과수 재배가 활발하고 특히 성환의 배와 참외가 유명하다. 껍질의 생김새 때문에 개구리참외라고도 부르는 성환 참외는 맛이 아주 뛰어나지만 요즈음에는 거의 보기가 힘들다.

▲ 청국장
흰콩을 삶아 따뜻한 곳에 이삼 일 두어 발효시킨 다음 먹는 된장으로 독특한 향이 있다. 겨울철에 두부, 김치를 넣고 찌개를 끓인다.

▲ 굴냉국 충청남도 서산에서는 굴이 많이 난다. 이곳에서는 생굴에 청장, 파, 마늘을 넣고 양념한 다음 동치미 국물에 부어 굴냉국을 만든다. 찰밥과 맛이 잘 어울린다.

▲ 호박꿀단지 늙은 호박의 꼭지 부분을 동그랗게 도려 내어 그 속에 꿀을 한 홉쯤 넣고 막아 큰 솥에 쪄서 한김 나가면 속의 고인 물을 따라 마신다. 이것은 부증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가 있다.

▲ 생떡국 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납작하게 빚은 다음 조개를 우린 국물에 넣고 끓인다. 날떡국이라고도 한다.

▲ 묵볶음 도토리묵이나 상수리묵을 썰어서 말렸다가 다시 불려 채소와 같이 볶는다. 쫄깃한 맛이 독특하다.

▲ 전라도의 여러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약산 흑염소이다. 전라남도 완산군 약산에서 나는 갖가지 약초 가운데에 삼지구엽초를 먹고 자란 이곳 흑염소들은 다른 지방의 것보다 효험이 훨씬 더 좋아 값이 곱절이나 더 나간다.

▲ 전라도는 곡식과 해산물과 산채가 두루 풍부하다. 음식을 만들 때에도 넉넉한 재료들을 가지고 정성을 많이 들여 음식이 매우 호사스럽다. 조선 왕조 왕가인 전주 이씨의 본관이 되는 전주를 비롯하여 전라도의 여러 곳에서 부유한 토반들이 대를 이어 좋은 음식을 전수하고 잇으므로 어느 지방도 따를 수 없는 풍류와 맛의 고장이라고 하겠다.

▲ 전주 비빔밥
전라도 음식 가운데에서 전국에 가장 널리 퍼진 음식으로 전라도에서 나는 풍부한 산물을 골고루 넣어 만든다. 철에 따라 여러 가지 나물과 청포묵, 육회를 얹는다.

▲ 유곽 조갯살을 다져서 된장을 넣고 양념한 다음, 껍질에 채워서 구워낸 조개구이이다.

▲ 두루치기 쇠고기의 살과 내장류, 무, 배추, 버섯 같은 여러 가지 재료들을 볶아서 잣, 은행, 실고추 따위를 고명으로 얹는 호화로운 음식이다.

▲ 미나리강회 미나리의 잎과 뿌리를 따고 살짝 데쳐서 만든다. 미나리, 편육, 실고추, 알고명을 두어 개씩 나란히 몰아잡고 늘어진 미나리줄기로 똘똘 감아서 잡아맨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상큼하다.

▲ 더덕장아찌 더덕을 고추장에 박아두었다가 꺼내서 양념을 하여 반찬으로 먹는다.

▲ 갓김치 갓을 절여서 실파와 함께 만드는 김치로 젓국을 넉넉히 넣고 간을 맵게 한다.

▲ 홍어어시욱 홍어를 토막내어 양념을 뿌린 다음 짚을 깔고 찐다. 말린 홍어를 불려서 쓰기도 한다.

▲ 낙지구이 낙지 발을 볏짚으로 돌려 말아서 양념장을 여러 번 바르며 굽는다.

▲ 부각 부각은 여러 가지 재료에 찹쌀풀을 발라 말려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튀겨서 먹는 음식으로 밑반찬이나 안주로 먹으면 좋다. 부각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는 김, 들깨송이, 동백잎, 감자, 다시마, 가죽나무잎 따위로 다양하다.

▲ 경상도 지방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영양의 고추이다. 이곳은 옛날부터 고추 재배가 성했던 곳으로 고추의 껍질이 두꺼워 가루가 많이 나고 매우면서도 단맛이 있어 높은 값을 받는다.

▲ 미나리찜 미나리와 부추를 썰어서 된장, 밀가루, 마늘,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린 다음 찐다.

▲ 재첩국
낙동강 하류에서 많이 잡히는 재첩으로 끓인 맑은 국이다.

▲ 벌떡게장 바닷게를 큼직하게 토막 내어 양념장을 붓는다. 오래 두고 먹지 못하므로 벌떡게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미더덕찜 미더덕을 여러 가지 채소와 함께 끓인 다음 찹쌀가루를 풀어 되직하게 한 매운찜이다.

▲ 애호박죽 바지락조개를 참기름으로 볶다가 쌀과 애호박을 넣고 끓인 죽이다. 색도 곱고 맛도 산뜻하다.

▲ 진주 비빔밥 진주 비빔밥은 제사를 지내고 난 뒤에 자손들이 음복(飮福)을 할 때 차린 제물을 모아 비벼서 나눈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색 나물과 고명을 화려하게 얹어 화반(花飯)이라고도 부른다. 내장류와 나물이 든 선지국을 반드시 함께 낸다.

▲ 제주도의 특산물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감귤이다. 감귤은 삼국 시대부터 재배하였고 전복과 함께 임금께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 제주도 음식은 채소와 해초가 주된 재료이다. 음식을 많이 하거나 양념을 많이 넣거나 한번에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만드는 음식은 별로 없다. 재료가 가지고 있는 자연의 맛을 그대로 내려고 하는 것이 이곳 음식의 특징이다. 제주도에서만 나는 자리돔, 옥돔이 있고 전복과 꿩이 많으며 한라산에서는 표고버섯과 산채가 난다.

▲ 자리물회 자리돔이라는 작고 까만 도미 종류의 생선으로 만든 물회이다. 생선을 잘 다듬어서 뼈째 잘게 썰어 깻잎, 부추, 풋고추 따위를 넣고 된장과 간장으로 양념하여 물을 붓는다.

▲ 양애산적 양애와 고기를 양념한 다음 꼬치에 꿰서 굽는다. 양애는 생강과에 속하는 채소이다.

▲ 고사리국 고사리와 돼지고기 삶은 것을 다져서 양념하여 국을 끓이는데 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한다. 제주도는 고사리가 흔하여 고사리로 전을 부치기도 한다.

▲ 옥돔구이 옥돔은 제주도에서만 나는 생선으로 비린내가 없고 맛이 담백하여 옛날부터 귀한 생선으로 여겨 왔다. 옥돔을 말려서 만든 구이이다.

▲ 황해도는 북부 지방의 곡장 지대로 연백평야와 재령평야에서의 쌀 생산이 풍부하고 잡곡도 많이 난다. 육류는 닭고기를 많이 쓰고 김치를 담글 때에는 독특한 향을 가진 고수와 분디라는 채소를 쓴다. 음식은 구수하고 소박한 편이며 겉모양을 내는 일도 별로 없고 큼직하고 푸짐하게 만들어 먹는다.

▲ 황해도에서 나는 과일로는 사과, 배, 밤들을 꼽을 수 있는데 사과는 특히 황주의 것이 유명하다.

▲ 연안 식혜 조갯살을 쌀밥과 함께 엿기름에 버무렸다가 삭히는데 보통 식혜나 안동 식혜와는 다른 특이한 식혜이다.

▲ 행적 배추김치, 돼지고기, 실파, 고사리 따위를 잘게 썰어서 대꼬치에 꿴 다음 계란옷을 입혀 지진 누름적이다.

▲ 김치순두부 불린 콩을 갈아서 끌 끓이다가 신김치를 넣고 끓인다. 요즈음에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순두부와는 조금 다르게 두부가 엉겨 있다.

▲ 평안도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밤은 함종이 중심지로 성천, 강동, 양덕에서 재배하여 평양 약밤으로 파는데 품질이 좋다.

▲ 평안도는 산세가 험하지만 서해안에 면하고 있어 해산물이 풍부하고 곡식과 산채도 많이 난다. 평안도 사람들의 성품은 대륙적이고 진취적이어서 음식도 큼직하고 먹음직스럽고 푸짐하게 마련한다. 추운 지방이어서 기름진 육류 음식을 즐겨 먹으며 메밀로 만든 냉면과 만두국같이 가루로 만든 음식도 많다. 음식의 생김새보다는 소담스럽게 많이 담는 것을 즐긴다.

▲ 평양 냉면 고원에서 재배한 질 좋은 메밀과 감자로 국수를 만들어서 잘 익은 동치미 물과 육수를 합한 국물에 말아 먹는다. 추운 겨울, 뜨거운 온돌방에서 즐기는 차가운 냉면의 맛이 일품이다.

▲ 어복쟁반 큼직한 놋쟁반에 쇠고기 편육, 국수, 버섯, 배, 계란들을 돌려 담고 뜨거운 육수를 부으면서 먹는 온면이다.

▲ 되비지 불린 콩을 갈아서 돼지갈비와 함께 끓인 일종의 찌개로 배추김치나 배추 절인 것도 함께 넣는다.

▲ 황태 덕장이다. 함경도와 닿아 있는 동해안은 리만 한류와 동해 난류가 교류하는 세계 3대 어장의 하나로 여러 생선들이 두루 잡힌다.

▲ 함경도는 험악한 산간 지대로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발달하여 잡곡의 생산이 많으며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동해의 어장을 끼고 있어 여러 가지 생선들이 많이 난다. 이곳 음식의 간은 짜지 않고 담백하나 마늘, 고추 같은 양념을 강하게 쓴다. 함경북도로 올라갈수록 간은 세지 않고 담백하며 음식의 모양도 큼직하고 시원스럽다. 장식도 단순하며 기교를 부리거나 사치스러운 음식은 별로 없다.

▲ 가릿국밥 쇠고기와 사골을 고아 만든 육수에 두부, 삶은 선지, 육회를 얹었다.

▲ 청어구이 청어를 소금에 절였다가 구워서 양념장을 뿌린다.

▲ 동태순대 함경도에서는 동태가 많이 잡힌다. 다른 지방처럼 돼지 창자로 만드는 순대도 있지만 동태로 만든 순대가 더 유명하다. 동태의 내장을 모두 빼내어 깨끗이 한 다음 돼지고기, 두부, 숙주 따위로 만든 소를 뱃속에 채워 넣고 얼렸다가 쪄서 먹는 겨울철 별미이다.

▲ 가자미 식혜 가자미를 소금에 절인 다음 좁쌀밥, 부,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 엿기름과 같이 버무려서 삭힌다. 조금씩 익으면서 물이 생기고 새큼한 맛이 난다. 이 식혜는 음료가 아니라 생선과 곡류로 만든 일종의 젓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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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11. 10. 07:58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1 동양철학 에세이 개정증보판

김교빈 · 이현구 지음 | 이부록 그림
2006, 동녘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9978


150
김 15 ㄷ
2

동녘선서 70

혼란 속에서 피어난 철학의 향연

인류 역사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혼란스러우면서도 사상적으로는 가장 자유로웠던 춘추 전국 시대. 이 책에 나오는 사상가들은 550년에 걸친 그 긴 혼란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그 혼란을 바로잡으려 한 사람들이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논리와 강한 실천 의지를 담고 있는 그들의 사상 속에는 다양하고 풍요로운 삶의 지혜가 가득하다.

지은이

김교빈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유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인문콘텐츠학회 회장,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를 지냈고, 현재 호서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철학 에세이》《하곡 정제두》가 있고, 여럿이 함께 지은 책으로 《강좌 한국철학》《기학의 모험》《동양철학과 한의학》등이 있으며, 여럿이 함께 옮긴 책으로《중국 고대의 논리》《중국 고대철학의 세계》《중국 의학과 철학》《기의 철학》등이 있다.

이현구

1957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유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호서대 등에서 강의하면서, 동의과학연구소 편집위원 및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지금, 내게 가장 절실한 것》이, 여럿이 함께 지은 책으로 《박물관에서 꺼내온 철학 이야기》《기학의 모험》등이 있고, 여럿이 함께 옮긴 책으로 《중국 의학과 철학》《기의 철학》이 있다.

그린이

이부록

1971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동양학과를 졸업했다. 비디오아트, 일러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회에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를 펴냈고,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그림을 그렸다.

차례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책 머리에

바로보기  우리들의 동양철학
공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노자  인생의 보배를 간직하라
묵자  약자를 지키는 방패
장자  광활한 정신 세계의 끝없는 이야기
맹자  유가의 파수꾼
순자  동양의 프로메테우스
법가  인간을 조직하고 인간을 활용한다
명가  상식을 부순 사람들
농가  영원한 농사꾼의 벗
주역  점쟁이와 철학자
돌아보기  남은 이야기들

더 읽으면 좋은 책

바로보기
우리들의 동양철학

환공이 어느 날 서재의 창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뜰에서 수레를 손질하던 늙은 일꾼이 그것을 보고 일손을 멈추고 환공에게 말을 걸었다.
"어르신이 읽고 계시는 것은 무슨 책입니까?"
"성인의 말씀이 적힌 책이다."
"그 성인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그러면 그 책에 쓰여 있는 것은 성인의 찌꺼기 같은 것이군요."
환공이 벌떡 일어서며 칼자루를 잡고 말했다.
"일꾼 주제에 무례한 말을 지껄이는구나. 잘 해명하지 못하면 네 목숨을 잃을 줄 알아라."
그러자 늙은 일꾼이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제 자신의 경험에서 그렇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제가 만드는 수레바퀴는 너무 꼭 끼게 하면 잘 돌아가지 않고, 너무 느슨하면 겉돕니다. 꼭 끼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고, 손에도 마음에도 딱 맞는 그 정도를 맞추는 요령은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 녀석에게도 가르칠 수가 없어 이 나이가 되도록 직접 수레바퀴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인이라는 분도 진정한 것은 말하지 못하고 죽어 버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책에 쓰여 있는 것은 성인의 찌꺼기 같은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장자》<천도>

공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공자가 제자들과 더불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도덕과 예의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부국강병의 논리가 아니라고 받아들여 주지 않는 무도한 임금에게 실망을 느끼고, 다시 자신의 뜻을 받아들여 줄 새로운 임금을 찾아가는 고단한 여행길이었습니다. 얼마를 가자 앞에 큰 강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일행 가운데 나루터가 어디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침 저만치에 밭을 가는 두 사람이 보였습니다. 혼탁한 세상을 떠나 숨어 사는 장저와 걸닉이었습니다. 공자는 제자 자로를 불러 그들에게 다가가서 나루터 가는 길을 물어 보라고 했습니다. 자로가 두 사람에게 다가가서 나루터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묻자 장저가 되물었습니다.
"저기 수레에 올라앉아 점잖게 고삐를 쥐고 있는 사람은 누구냐?"
"공구이십니다."
"노나라의 공구란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그가 나루터 가는 길쯤은 알고 있을 텐데?"
장저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부지런히 제 할 일만 했습니다. 답답해진 자로가 이번에는 걸닉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걸닉도 자로에게 되물었습니다.
"나루터 가는 길을 묻는 너는 누구냐?"
"중유입니다."
"공구란 사람의 제자인가?"
"예, 그렇습니다."
"온 세상이 물처럼 거세게 흘러가는데 누가 감히 고칠 수 있단 말이냐? 그러니 자네도 나쁜 사람이나 피해 다니는 그런 공자 같은 사람을 따라다니지 말고 차라리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우리와 같이 지내는 게 어떠한가?"
걸닉도 더는 자로를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머쓱해진 자로가 돌아와서는 공자에게 그들이 한 얘기를 전했습니다. 말을 다 듣고 나서 공자가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날짐승이나 길짐승과 더불어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가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누구와 더불어 살겠느냐? 온 세상에 질서가 잡혀 있다면 내가 구태여 바꾸려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논어》<미자>


어느 날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죽음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삶도 아직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말하겠느냐?"
자로가 다시 물었다.
"귀신 섬기는 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사람도 다 못 섬기는데 어찌 귀신을 말하겠느냐?" 《논어》<선진>

"만일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서 모든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어찌 사람답다고만 할 수 있겠느냐, 반드시 성인의 경지일 것이다. 요순도 오히려 그렇지 못할까 봐 항상 근심했다." 《논어》<옹야>

어느 날, 재아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삼년상이 너무 길지 않느냐고 하면서 1년 만에 상을 마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자는 재아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 쌀밥을 먹고 비단 옷을 입어도 편하겠는가?"
"예, 편할 것 같습니다."
"군자가 상을 당했을 때는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맛있지 않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마음 편히 안락하게 거처할 수 없기 때문에 삼년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편하다면 네 생각대로 해라."
재아가 나가자 공자가 다른 제자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재아는 사람답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서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을 벗어날 수 있다. 삼년상은 세상 사람이 다 지내는 것이다. 재아도 부모에게 삼 년 동안 사랑을 받지 않았는가?" 《논어》<양화>

어느 날 만년의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나이 어린 제자 증삼을 불렀습니다.
"삼(參)아, 내 도는 하나로 꿰뚫어져 있다."
"예, 알고 잇습니다."
공자가 나가자 다른 제자들이 증삼에게 조금 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얘기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증삼이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도는 증과 서일 뿐입니다." 《논어》<이인>

위나라 임금의 초청을 받은 공자가 제자들과 더불어 위나라를 향해 가고 있을 때,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잘해 보려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떤 일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명분을 바로잡겠다."
"선생님은 사정에 너무 어두우십니다. 어째서 명분 같은 것부터 바로잡으려고 하십니까?"
"거칠구나, 자로여.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일에는 함부로 나서지 않는 법이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할 수 없고, 말이 순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질 수 없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문화가 일어나지 못하고, 문화가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절할 수 없고, 형벌이 적절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데가 없다." 《논어》<자로>

섭나라 임금이 공자에게 자기가 다스리는 어떤 마을에서 아버지가 남의 양을 훔쳤는데 그 아들이 증인을 섰다고 하면서 자기 나라 백성들의 정직함을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숨겨 주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 줍니다. 정직이란 바로 그 속에 있습니다." 《논어》<자로>

"정치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경제를 풍족하게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세 가지 중 어쩔 수 없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시겠습니까?"
"국방을 포기하겠다."
"둘 가운데 다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시겠습니까?"
"경제를 포기하겠다. 예부터 사람은 누구나 죽는 법이지만 믿음이 없으면 아예 사회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논어》<안연>

노자
인생의 보배를 간직하라

큰 도가 사라지니 인의(仁義)가 나오고 지혜가 생겨 큰 거짓말이 있게 되었다. 가까운 친척이 서로 화목하지 않자 효도니 사랑이니 하는 말이 생기고,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나오게 되었다. 《도덕경》18장

모기가 물어 대면 밤새잘 수가 없다. 지금 인의 도덕을 말하는 것은 귀찮게 인심을 어지럽혀 혼란만 더하는 것이다. 백조는 매일 목욕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매일 물들이지 않아도 검다. 하늘은 저절로 높고, 땅은 저절로 두껍고, 해와 달은 저절로 빛나고, 별은 저절로 늘어서 있고, 초목은 본래 종류가 여럿이다. 거기에 다시 인의를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은 마치 북을 두드려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과 같다. 《태평광기》<신선> 1장

천지는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만물을 추구(芻狗)로 여긴다. 성인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백성을 추구로 여긴다. 《도덕경》5장

큰 덕의 모습은 도와 같다. 도는 오직 황홀하기만 하여 그 형상을 분간해 인식할 수 없다.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그 속에 물(物)이 있다. 잡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그 속에 형상이 있다. 도는 아득히 멀고 그윽이 어둡기만 한데, 그 속에 정기가 있다. 그 정기는 지극히 진실[眞]하다. 그 속에 믿음[信]이 있다. 《도덕경》21장

혼합하여 이루어진 것이 있는데, 천지보다도 먼저 생겼다. 고요히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다. 짝도 없이 홀로 있다. 언제나 변함이 없다. 어디나 안 가는 곳이 없건만은 깨어지거나 손상될 위험이 없다. 그것은 천하 만물의 어머니가 될 만하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저 부르는 이름이 '도'다. 억지로 이름 붙여 '큰 것[大]'이라 한다. 《도덕경》25장

보려 해도 보이지 않으니 '이(夷)'라고 한다.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니 '희(希)'라고 한다. 손으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으니 '미(微)'라고 한다. 이 세가지는 말로 밝힐 수 없다. 그래서 뒤섞어서 '하나(一)'라고 한다. 그것은 위가 더 밝지도 않고, 아래가 더 어둡지도 않다. 긴 끈처럼 꼬여서 이어져 있으니 이름 붙일 수가 없다.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 이것을 꼴 없는 꼴이라 하고, 실체[物] 없는 형상이라고 한다. 이것을 황홀이라고 한다. 《도덕경》14장

도는 일(一)을 낳고, 일은 이(二)를 낳고, 이는 삼(三)을 낳는다. 만물은 음기(陰氣)를 곁에 가지고 양기(陽氣)를 안에 간직하며, 충기(沖氣)로 조화를 이룬다. 《도덕경》42장

천하 만물은 유(有)에서 나오고, 유는 무(無)에서 나온다. 《도덕경》40장

도는 비어 있는 듯하나, 그 작용은 가득 찬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다. 깊고 아득하여 만물의 근원[宗]이며, 맑아서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지식인지 모른다. 하느님보다 먼저인 듯하다. 《도덕경》4장

도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인간도 크다. 우주 안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인간이 그중에 하나를 차지한다. 인간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 《도덕경》25장

나라가 작고, 백성 수가 적어야 한다. 온갖 도구가 있지만 쓰지 않게 하며 백성들이 생명을 중시하도록 하면, 살던 곳을 버리고 멀리 옮겨 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배나 마차가 있어도 탈 필요가 없고,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쓸 일이 없다.
노끈을 묶어서 글자 대신 쓰던 고대의 소박한 상태로 되돌아가게 하면, 먹는 그대로 맛있고 입는 그대로 아름답고 사는 그곳이 편하다고 여기고 그 풍속을 즐겨서, 이웃 나라가 바라보이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가 없을 것이다. 《도덕경》80장

총명과 지혜를 끊어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 배로 늘어날 것이다. 인과 이 같은 도덕을 끊어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 배로 늘어날 것이다. 인과 의 같은 도덕을 끊어 버리면 백성들이 옛날처럼 효성스럽고 자애롭게 될 것이다. 정교하고 편리한 물건들을 없애 버리면 도적이 없어질 것이다. 이 세 가지 소극적 방법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외모는 수수하고 마음은 소박하게 하며, 이기심과 욕망을 줄이게 한다. 《도덕경》19장

똑똑한 사람을 높이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만든다. 얻기 힘든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도적질하지 않게 한다. 욕망을 일으킬 만한 것을 보여 주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며, 의욕을 줄이고 뼈를 튼튼히 하여 늘 백성들이 무지(無知)하고 욕심이 없게 만들며, 지식인들이 제멋대로 주장할 수 없게 만든다. 무위(無爲)로 다스리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도덕경》3장

천하는 불가사의한 그릇이어서 인위적으로 어찌할 수 없다. 잘하려고 애쓰면 실패하고, 꽉 잡고 장악하려 하면 천하를 잃고 만다. 《도덕경》29장

큰길이 넓으나 백성들은 샛길을 좋아한다. 관청은 깨끗하게 지었으나 논밭이 황무지가 되었고, 창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데 권력자들은 좋은 옷을 입고 고급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밤마다 연회를 열어 음식이 싫증날 정도다. 그러고도 재물을 남도록 가졌으니, 이것은 도둑질하여 사치에 쓰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도가 아니다. 《도덕경》53장

정치가 너그럽고 간섭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순박해진다. 정치가 자질구레한 구석구석까지 감시하면 백성들이 불만을 품게 된다. 《도덕경》58장

최고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게 할 뿐이다. 그 다음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게 할 뿐이다. 그 다음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고 칭송을 듣는다. 그 다음 수준은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그 아래는 백성들이 그를 경멸한다. 《도덕경》17장

장차 그것을 축소하려면 먼저 그것을 확장해야 한다. 장차 그것을 약화하려면 먼저 그것을 강화해야 한다. 장차 그것을 없애려면 먼저 그것을 진흥해야 한다. 장차 빼앗고자 하면 먼저 주어야 한다. 이러한 것을 은미한 지혜라 한다. 《도덕경》36장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강한 물고기가 부드러운 물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를 이롭게 하는 수단을 백성들이 보게 해서는 안 된다. 《도덕경》36장

최고의 덕을 가진 사람은 의식적으로 덕을 얻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래서 덕이 완전하게 나타난다. 수준이 낮은 사람은 의식적으로 덕을 얻고자 하며, 또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안달한다. 그래서 덕이 완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최상의 덕은 덕을 얻고자 애쓰지 않으며 그것을 바깥으로 자랑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낮은 덕은, 덕을 얻고자 애쓸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깥에 나타내어 남에게 과시하려 한다. 《도덕경》38장

높은 덕은 오히려 골짜기처럼 낮아 보이고, 넓은 덕은 부족한 것처럼 보이고, 꾸준한 덕은 건전하지 않아 보이고, 진실한 덕은 변하기 쉬워 보인다. 《도덕경》41장

정말로 덕을 지닌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 갓난아이는 무지하고 무심하므로 독충도 찌르지 않고 맹수도 덤벼들지 않고 사나운 짐승도 발톱을 대지 않는다. 뼈가 연약하고 근육이 부드러우나 꽉 움켜쥔 주먹은 단단하다. 아직 남녀의 성교도 모르는데 고추가 서 있다. 정기가 최고로 충만해 있다는 증거다. 하루 종일 울부짖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 자연과의 조화가 최고로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다. 《도덕경》55장

지혜는 도의 시각에서 보면 단순한 장식물에 지나지 않고, 인간을 어리석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도덕경》38장

지식과 분별심이 발달하고 나서 인간의 기교에 의한 큰 거짓이 나타났다. 《도덕경》18장

안다는 것이 사물의 실상을 아는 게 아님을 아는 것은 최상의 지혜요, 안다는 것이 사물의 실상을 아는 게 아님을 모르는 것은 착오다. 착오를 자각하는 것에 의해 비로소 착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착오에 빠지지 않는다. 《도덕경》71장

제나라의 전씨가 저택 뜰에서 어떤 사람의 송별회를 열었다. 손님이 천 명이나 모여들었는데, 그중에 물고기와 기러기를 선물로 가져온 사람이 있었다. 전씨는 고마워하면서 말했다.
"아, 하늘의 은총이 참으로 깊도다. 인간을 위해 오곡을 만들고, 물고기와 새를 길러 인간에게 쓰이게 해 주시는구나."
둘러선 손님들이 입을 모아 전씨의 말에 찬동하였다. 그때 포씨의 열두 살짜리 아들이 나서며 말했다.
"당신의 말은 틀렸습니다. 천지 만물은 모두 우리와 같은 동료입니다. 동료들 사이에 귀천의 차별은 없습니다. 다만, 크고 작은 차이, 지혜와 힘의 차이에 따라 서로 잡아먹고 있을 뿐이지, 다른 것에게 소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제멋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을 잡아먹을 따름이지, 하늘이 인간에게 먹이기 위해 그것들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모기나 파리 떼가 인간의 피를 빨고 호랑이와 늑대가 동물들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하늘이 모기와 파리를 위하여 인간을 만들고, 호랑이와 늑대를 위해서 동물들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열자》<설부> 1장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에게 큰 이익을 주면서도 자기를 주장하여 다투지 않고, 누구나 싫어하는 낮은 장소에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도의 본래 모습에 가깝다. 《도덕경》8장

만들어 내고도 소유하지 않으며, 일을 하고도 공로를 자랑하지 않으며,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마음대로 간섭하지 않는다. 이것을 '심원한 덕[玄德]'이라고 한다. 《도덕경》51장

정말로 흰 것은 언뜻 보면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큰 사각형은 각이 보이지 않는다. 큰 그릇은 완성이 더디다. 큰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는다. 《도덕경》41장

정말로 똑바른 것은 마치 굽어 있는 것 같고, 정말로 능란한 것은 마치 몹시 서투른 것 같고, 진정한 웅변은 오히려 말주변이 없는 것 같다. 《도덕경》45장

수컷의 강함을 알고 암컷의 약함을 지켜 가면, 온갖 냇물이 모여드는 계곡이 된다. 그러면 도가 몸에서 떠나지 않고, 무심한 갓난아이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도덕경》28장

영광이 무엇인지를 다 안 다음에 치욕의 입장을 지켜 가면, 만물을 포용하는 골짜기가 된다. 그러면 도가 온전히 그 몸에 실현되어,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통나무같이 자연 그대로의 소박한 상태로 되돌아간다. 《도덕경》28장

세상에서 물만큼 부드럽고 약한 것이 없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 물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도덕경》43장

재주의 날카로운 칼끝을 누르고, 마음의 이해타산을 버리고, 지혜의 빛을 감추고, 속세의 먼지 속에 묻혀 산다. 이것이 도와 일체가 되는 것이다. 《도덕경》4장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운동 모습이며,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도의 작용 방식이다. 《도덕경》40장

모든 현상은 세계의 어머니[道]에게서 태어난 자식이다. 모든 현상의 근원인 도를 알아야 그 자식인 사물을 알고, 그래야 일생을 통해 불행이나 재난을 만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도덕경》52장

송나라의 한 시골 사람이 가종하지 않은 옥돌을 주워 대신인 자공에게 선물로 바치려 했다. 그런데 자공은 극구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나이가 자공을 만나 말했다.
"이것은 값비싼 보물입니다. 대신 같은 고귀한 분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지, 우리 같은 천한 자들이 가질 물건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째서 거절하시는 겁니까?"
자공이 대답했다.
"자네는 옥돌을 보배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지 않는 것을 보배라고 생각하네." 《한비자》<유로>

세상 사람들은 마치 진수성찬이라도 받아 놓은 듯 신바람이 났네.
화창한 봅날, 정자에 올라 꽃구경이라도 하듯이.
그러나 나만은 담담하고 조용하며 마음이 동하는 기미가 없네.
마치 아직 웃을 줄도 모르는 갓난아이처럼.
마치 아주 지쳐 돌아갈 집도 없는 강아지처럼.
사람들은 무엇이든 남아돌 만큼 가지고 있지만,
나만은 모든 걸 잃어버린 것 같네.
아, 나는 바보같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멍하니.
세상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는 그저 멍청할 뿐.
남들은 딱 잘라 잘도 말하는데, 나만은 우유부단, 우물쭈물.
흔들흔들 흔들리는 큰 바다 같네.
쉴 줄 모르고 흘러가는 바람이네. 《도덕경》20장

묵자
약자를 지키는 방패

초나라에 공수반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천민 출신인데도 기술이 뛰어나서 대부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공수반은 아무리 높은 성에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구름까지 닿을 만큼 높은 사다리를 제작해 놓고 송나라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제나라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들은 묵자가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꼬박 열흘을 걸어 초나라로 와서는 공수반을 찾아갔습니다. 공수반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선생이 무슨 일로 이 먼 곳까지 오셨습니까?"
"북쪽 지방에 사는 어떤 사람이 나를 귀찮게 하는데, 당신이 그 사람을 없애 주었으면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공수반이 매우 불쾌해 하자 묵자는 다시 정중하게 부탁하였습니다.
"그렇게 해 주면 첨금을 드리지요."
"나는 의기가 있는 사람이라서 남을 죽이지 않습니다."
묵자는 마음속으로 비웃으면서도 겉으로는 탄복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수반에게 두 번 절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당신이 구름 사다리를 만들어 송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던데 송나라가 무슨 죄를 지었나요? 땅과 백성이 남아돌 정도로 많으면서 땅도 좁고 백성도 적은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더구나 죄 없는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어질지 못합니다. 지혜롭지도 어질지도 못한 일임을 알면서도 임금에게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고, 잘못임을 지적하면서도 임금을 끝내 설득하지 못한다면 강직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한 사람도 죽일 수 없다고 하면서 왜 많은 송나라 사람을 죽이려 합니까?"
묵자의 말을 들은 공수반은 그제서야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구름 사다리 공격 계획을 왕에게 보고한 뒤라 이제 와서 취소할 수는 없다며 난감해 했습니다. 묵자는 공수반과 함께 초나라 왕을 만났습니다.
묵자가 왕에게 말했습니다.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이 가진 보잘 것없는 것을 훔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도벽이 있는 사람이겠지요."
"제가 보기에 넉넉하고 풍요로운 초나라가 가난하고 약한 송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도벽과 다를 게 없습니다. 더구나 임금께서는 포악하다는 비난만 듣게 될 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수반은 내게 구름 사다리를 만들어 주면서 반드시 송나라를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소."
묵자는 허리띠를 끌러 땅에다 원형으로 둘러놓고 그 안에 들어가 선 다음, 품속에서 첩이라는 이상한 도구를 꺼냈습니다. 그러고는 공수반더러 모형 구름 사다리를 이용해 공격해 보라고 했습니다. 공수반이 아홉 가지 방법을 써서 공격했지만 묵자는 다 막아냈습니다.
공수반의 공격 기술이 바닥났는데도 묵자에게는 아직 쓰지 않은 방어 기술이 여럿 남아 있었습니다.
공수반이 묵자에게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내가 선생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알기는 하지만 말하지 않겠소."
"나도 당신이 얘기하는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만 얘기하지 않겠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 방법이라는 게 도대체 뭡닊?"
"공수반의 생각은 저를 죽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만 죽여 없애면 송나라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 송나라에선 제가 훈련시킨 제자 300명이 이 도구로 무장한 채 기다리고 잇습니다. 그러니 저를 죽여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초나라 왕은 공격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묵자》<공수>

묵자를 따르는 무리가 180명인데, 그들은 우두머리의 명령이 떨어지면 불 속에 들어가는 일이건 칼날을 밟고 서는 일이건 절대 주저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회남자》

진나라의 복돈이 거자를 맡고 있을 때 그의 아들이 살인죄를 저질렀다. 복돈은 나이도 많은 데다가 대를 이을 사람이라곤 그 아들 하나뿐이었다.
진나라 혜왕이 복돈에게 말했다.
"당신은 늙었고 또 외아들이니 죄를 감해 주겠소."
"묵가의 법에 따르면 남을 죽인 자는 죽어야 하고, 남을 해친 자는 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온 세상의 대의입니다. 나는 묵가 사람이니 묵가의 법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복돈은 이렇게 대답하고 자기 아들을 처형하였다. 《여씨춘추》<거사>

거자 맹승은 형나라의 양성군과 아주 가까이 지냈다. 양성군은 맹승에게 성을 지켜 달라고 부탁하고 왕의 장례에 참석하러 갔다가,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망명해 버렸다. 그러자 형나라에서는 양성군의 땅을 몰수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다. 맹승은 양성군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서 묵가 집단에게 성을 사수할 것을 명령했다.
한 제자가 반론을 제기했다.
"우리가 여기서 모두 죽는 것은 양성군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그러다간 묵가 집단이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묵가의 지휘권은 송나라에 있는 전양자가 계승할 것이니 묵가가 끊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양성군과의 약속을 어긴다면 앞으로 그 누구도 묵가 집단돠 약속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맹승은 이렇게 말하고 끝까지 싸울 것을 명령했다. 그 말을 들은 제자는 자기 잘못을 깨닫고 자결했고, 맹승과 그 부하들도 모두 전사하였다.
전양자에게 거자 자리를 넘겨 준다는 맹승의 서신을 전하러 간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신을 전하고 나서 전양자에게 말했다.
"저희는 이제 다시 돌아가 싸우다 죽겠습니다."
전양자가 그들을 말렸다.
"이제는 내가 거자이니 내 말을 들으시오."
그러나 두 사람은 극구 돌아가서 자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보인 행동은 후대 묵가 사람들에게 거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여씨춘추》<상덕>

묵자는 자신의 사상을 인과 의라는 말로 자주 표현하였습니다. 어느 날 공수반이 이를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해전에서 상대방의 배를 잡아당기는 갈고리와 상대방의 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밀어내는 밀대를 만들었습니다. 선생은 걸핏하면 인이니 의니 하는데, 선생이 떠드는 인의에도 내가 만든 갈고리나 밀대 같은 것이 있소?"
"내가 만든 갈고리와 밀대는 당신이 만들어 낸 것들보다 더 훌륭하지요. 나는 사랑을 이용해서 남을 끌어들이고, 겸손을 이용해서 남을 밀어냅니다. 사랑이 아니면 남들이 당신을 가까이하지 않고, 겸손이 아니면 남들이 당신에게 대들게 되지요." 《묵자》<노문>

만일 당신이 무슨 일 때문에 어딘가로 떠난다고 하자. 맡은 임무가 위험하고 길이 험해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면, 당신은 처자식을 어떤 사람에게 맡기겠는가? 자기 가족이나 다름없이 당신 가족을 돌봐 줄 사람에게 맡기겠는가, 아니면 당신 가족보다 자기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에게 맡기겠는가? 《묵자》<겸애 하>

장자
광활한 정신 세계의 끝없는 이야기

아프리카에는 양과 닮은 스프링복이라는 야생 동물이 있답니다. 그 놈들은 수백, 수천 마리씩 떼를 지어 풀밭을 찾아다니는데, 풀밭을 만나면 뜯어먹고 다 먹으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풀밭이 있어도 계속 달리는 경우가 있답니다.  그건 앞쪽에서 풀을 죄다 뜯어먹어 버려 먹을 게 없어진 뒷놈들이 앞에 가는 놈들을 밀어붙이기 때문이랍니다.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점점 더 빨라져 새로운 풀밭이 나타나도 먹지 못하고, 떼를 지어 계속 달리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한꺼번에 죽는 수도 있답니다.
장자의 눈으로 우리 현대인들을 본다면, 바로 이 스프링복이라는 양 떼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는 날마다 바쁘게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고,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장자와 함께 산에 오르면 이런 대화를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 아래 차들과 사람들을 보게. 분주히 무엇인가를 쫓아다니지 않는가? 저들이 무얼 찾고 있는지 알겠는가?"
"저 사람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여 바쁘게 뛰고 잇습니다. 벌건 눈으로 권력과 명예와 부와 사치 향락을 좇는 자들도 있겠지만, 저나 선생님처럼 실업자가 되어 산기슭이나 어슬렁거리는 것보다는 부지런히 살아가는 게 좋지 않습니까?"
"답을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왜 딴소리를 하는가? 나도 실업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은 아닐세. 그건 그렇고 나는 저 사람들이 저렇게 바삐 찾아다니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네. 저들은 매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게 분명해. 그러니까 열심히 찾아다니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저 사람들을 너무 바빠서 이제 자기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
《장자》를 읽고 낸 독후감의 일부

한번은 장자가 문혜군이라는 왕을 초청해 놓고, 소 잡는 기술자를 강사로 내세워 도를 강의하게 했다. 강사는 먼저 실기로 왕에게 시범을 보였다. 그의 손놀림과 자세, 칼을 쓰는 동작은 마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문혜군이 경탄하며 말했다.
"아아, 훌륭하도다! 기술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도 있는가?"
소 잡는 기술자가 칼을 놓고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입니다. 기술이 아니지요. 제가 처음 소 잡는 일을 시작했을 때는 보이는 것이 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자 소가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으로 소와 만날 뿐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감각의 작용이 멈췄고, 마음만 움직입니다. 오직 소의 결대로 칼을 움직여 살과 뼈 사이의 큰 틈을 쪼개 벌리고, 뼈와 뼈 사이의 빈 곳에 칼을 밀어넣고, 소의 몸에서 원래부터 빈 곳을 따라가니, 뼈나 살이 엉겨 붙은 곳에 칼이 잫는 일이 없으며, 하물며 큰 뼈에 닿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솜씨 좋은 사람도 해마다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살이 엉긴 곳을 베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백정은 다달이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칼은 지금 19년이 되었습니다. 잡은 소가 수천 마리는 됩니다. 그런데도 칼날이 금방 숙돌에 간 것 같습니다. 원래 소의 뼈마디 사이에는 빈틈이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이 있는 곳에 집어 넣으니, 자연히 넉넉하고 넓어 아무리 칼을 휘저어도 반드시 남는 구석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19년이나 쓴 칼날이 아직도 금방 숫돌에 갈아 낸 것 같지요.
하지만 살과 뼈가 얽히고설킨 곳에서는 저 역시 어려워집니다. 두렵고 조심스럽기만 하고, 눈이 한곳에 고정되어 손놀림이 더뎌집니다. 따라서 칼의 움직임도 매우 미묘해집니다. 그래서 찢고 벌려 다 가르고 발라내면, 마치 흙덩이가 땅에 쌓이듯 고깃덩이가 쌓이는 것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저는 칼을 들고 서서 사방을 돌아보며 흐뭇해합니다. 그러고는 칼을 닦아 넣어 두지요."
"정말 훌륭하다. 나는 그대의 말을 듣고 비로소 양생의 비결을 알았다." 《장자》<양생주>

남쪽 바다의 황제는 숙이고, 부쪽 바다의 황제는 홀이며, 중앙 땅의 황제는 혼돈이다. 숙과 홀이 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나면 혼돈이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숙과 홀은 혼돈의 덕에 어떻게 보답할까 의논한 끝에 이렇게 결정했다.
"사람은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혼돈은 홀로 이것이 없으니 우리가 뚫어 주세."
그리하여 날마다 한 구멍씩 뚫었는데, 일주일째에 혼돈은 죽고 말았다. 《장자》<응제왕>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알아야 할 것은 무한하다.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좇는 일은 위태로울 뿐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알았다고 여기는 것은 더욱 위태롭다. 착한 일을 하더라도 유명해지지 말고, 나쁜 짓을 하더라도 형벌에 걸리지는 말라. 중도(中道)를 기준으로 삼으면 몸을 상하지 않고, 생긴 대로 자기를 실현할 수 있으며, 부모를 잘 모실 수 있고, 타고난 수명을 다할 수 있다. 《장자》<양생주>

주나라 5대 천자인 목왕이 서쪽 제후국들을 둘러보는 길에 어느 나라에서 언사(偃師)라는 이름을 가진 기술자를 선물로 받았다. 그는 천자를 위해 특별히 솜씨를 발휘하여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었다. 걸음걸이도 능숙하고 몸놀림도 능란하여 살아 있는 사람과 다름없었다. 턱을 움직여 노래 부르고 손을 흔들어 춤추는 모양을 보고 천자는 진짜 인간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그런데 연기를 한 차례 끝낸 이 인형이 천자를 모시고 있는 총희에게 윙크를 하는 게 아닌가.
천자는 크게 노하여 당장 언사를 죽이려 하였다. 언사는 벌벌 떨면서 인형을 풀어헤쳐 천자에게 보였다. 가죽 · 나무 · 아교 · 옻 · 백흑(白黑) · 단청(丹靑)을 합쳐서 만든 것이었다. 천자가 하나하나 살펴보니, 안에는 간 · 쓸개 · 심장 · 폐 · 비장 · 신장 · 창자 · 위장이 있고, 겉에는 근육과 뼈, 마디, 가죽과 털, 이빨과 머리털이 있는데 모두 모조품이었다. 천자가 시험 삼아 인형의 심장을 떼어내니 입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간을 없애니 눈으로 보지 못했다. 신장을 없애니 발로 걷지 못했다.
천자는 비로소 기뻐하며 말했다.
"사람의 기술이 이처럼 조물주와 같을 수 있는가!" 《열자》<탕문>

북쪽 바다에는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다. 변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이라 한다. 붕의 등은 몇 천 리인지 알지 못한다. 한번 떨쳐 날면 그 날개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쪽 바다로 옮겨 간다. 남쪽 바다는 하늘의 못[天池]이다. 《제해》는 괴상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그 책에 "붕이 남쪽 바다로 옮길 때, 물길을 갈라 치는 것이 삼천 리요, 요동쳐 오르는 것이 구만 리이며, 여섯 달을 가서 쉰다"라고 하였다. 《장자》<소요유>

동곽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도는 어디에 있는가?"
"없는 곳이 없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지적하여 말해 보시오."
"쇠파리에 있다."
"도가 어찌 그렇게 지저분한 데 있는가?"
"가라지나 피 같은 잡초에 있다."
"어째서 더 하찮은 것에 있는가?"
"옹기 조각에 있다."
"왜 점점 더 심해지는가?"
"똥오줌에 있다."
"……."
장자가 말하였다.
"당신의 질문은 본질을 물은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사물을 벗어나 도를 이야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극한 도는 이와 같고, 위대한 말도 이와 같다." 《장자》<지북유>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고 궤짝을 여는 도둑에 대비하려면, 반드시 끈으로 묶고 자물쇠를 채워야 한다.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현명함이다. 그러나 큰 도둑은 궤짝을 지고 상자를 들고 주머니를 둘러메고 달아나면서 오히려 끈과 자물쇠가 약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 세상에서 말하는 현명함이란 결국 큰 도둑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아닌가(지식인이란 자들은 나라를 전쟁으로 빼앗는 군주들의 종이 아닌가)? 《장자》<거협>

도덕은 명예욕 때문에 흔들리고, 지략은 전쟁 속에서 나온다. 명예욕은 서로를 파괴하고, 지략은 전쟁 무기가 된다. 이 두 가지는 흉한 것이니 추구할 만한 것이 아니다. 《장자》<인간세>

너와 내가 논쟁을 하여 네가 이겼다면, 과연 너는 옳고 나는 틀린 것인가. 내가 너를 이겼다면, 과연 나는 옳고 너는 틀린 것인가.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 없어 제삼자를 부른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바르게 판정해 달라고 할 수 있을까. 너와 의견이 같은 사람은 이미 너와 의견이 같으므로 바르게 판정할 수 없다.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은 이미 나와 의견이 같으므로 바르게 판정할 수 없다.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라면, 이미 우리와 다른데 어떻게 바르게 판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와 의견이 같은 사람이라면 이미 우리와 같은 데 어떻게 바르게 판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너와 나와 제삼자가 모두 서로 알 수 없는데, 또 다른 사람을 부른다고 해결되겠는가. 《장자》<제물론>

(세계가 하나라면) 이미 하나라고 했으니 말한 것이 있지 않은가. 이미 하나라고 했으니 말한 내용이 있지 않은가. 하나인 세계와 하나라는 말이 있으니 둘이 되고, 둘과 하나가 셋이 된다. 이 이하는 계산이 뛰어난 사람도 다 헤아릴 수 없는데, 처음부터 여럿일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장자》<제물론>

장자와 혜자가 호의 다리 위에서 한가하게 거닐고 있었다.
장자 : 피라미가 자유롭게 놀고 있구나.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지.
혜자 :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 줄 아는가?
장자 :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을 아는가?
혜자 : 나는 자네가 아니니 자네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니니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도 틀림없네.
장자 :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세. 자네가 나에게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 줄 아느냐고 물은 것은, 이미 내 말을 알아듣고 물은 것이네. 어떻게 알았는지 말하겠네. 나는 이 물가에서 알았네. 《장자》<추수>

장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옹이가 많고 구불구불한 수천 년 된 고목을 보고 "이 나무는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다.라고 하면서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을 강의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 주막에서 쉬는데, 주인이 잘 울지 않는 닭을 '쓸모가 없다'고 목을 비트는 것을 보고 장자는 '쓸모 잇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서 처신해야 할 것이라고 강의하였다. 《장자》<산목>

세계는 항상 홀연히 흘러가니 일정한 형태가 없다. 모든 존재는 무상하게 변화해 가는 것이다.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죽음인가? 나는 자연과 함께 가는 것인가? 정신은 어디로 움직여 가는 것인가? 그들은 훌훌 어디로 가고 총총히 어디로 떠나는가? 모든 존재가 눈앞에 펼쳐져 있으되, 돌아갈 곳을 모르느구나! 옛날 도술에 이러한 것이 있었으니 장주(장자)가 듣고서 기뻐하였다.
ㄱ그는 언제나 터무니없는 환상, 황당한 이야기, 끝없는 변론으로 제멋대로 사설을 늘어놓지만, 편견을 고집하지 않았고, 한쪽 면으로만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이 더러워서 정중한 말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두서없이 흘러가는 말로써 변화무쌍하게 담론하고, 옛 성현의 말씀으로 진실을 믿게 하고, 비유로써 도리를 펼쳤다. 그는 홀로 천지자연과 더물어 정신을 교류하였으나 스스로 뽐내어 다른 사물을 경시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세속에 섞여 살았다. …… 그의 정신은 위로는 천지를 만든 자와 함께 노닐었고, 아래로는 삶과 죽음, 처음과 끝을 넘어서 존재하는 자연과 벗이 되었다. 그의 철학 사상은 원대하고 넓고 깊고 무한하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조화와 적절함에 있으니,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잇다. 그러면서도 모든 변화에 적응하고 모든 존재를 해석하는 데에서 그의 이론은 무진장하다. 그 이론의 전개는 끝이 없고 홀홀망망하여 다 파악될 수 없도다!

맹자
유가의 파수꾼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들 말하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어찌 말하기를 좋아하겠는가. 어쩔 수 없어서 그럴 뿐이다. 우임금은 황하를 다스려서 온 세상을 편하게 했고, 주공은 오랑캐를 막아 내고 사나운 짐승을 쫓아내서 백성을 편하게 했으며, 공자는 《춘추》를 지어 못된 신하와 불효자 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나는 이분들을 본받아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고 못된 이론들을 막아내려고 한다. 말솜씨가 뛰어난 것이 어찌 말하기를 좋아해서겠는가?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맹자》<동문공 하>

입이 단맛을, 눈이 아름다운 빛깔을, 귀가 밝은 소리를, 코가 향기를 좋아하고 팔다리가 편안함을 원하는 것이 본성이긴 하다. 하지만 그 속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命]'이 있기 때문에 군자는 본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맹자》<진심 상>

대인이 할 일이 따로 있고, 소인이 할 일이 따로 있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여러 기술자들이 만든 물건이 필요하다. 하지만 만일 그 모두를 반드시 스스로 만들어 쓰게 한다면, 온 세상 사람들을 끌어다가 일에 지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어떤 사람은 몸을 수고롭게 한다고 했다.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고, 몸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남을 먹여 주고, 남을 다스리는 사람은 남에게 얻어먹는 것이 온 세상에 통하는 원칙이다. 《맹자》<동문공 상>

어느 날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만났다. 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천릿길을 멀다 않고 저희 나라를 찾아 주셨으니 저희 나라에 무슨 이로운 일이 있게 될까요?"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 임금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로울까를 따지면 벼슬아치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에 이로울까를 따지게 되고, 선비나 일반 민중은 어떻게 하면 내게 이로울까를 따지게 됩니다. 그러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맹자》<양혜왕 상>

예전에 요임금이 순에게 왕위를 주었다. 그러자 순은 요의 아들이 있는데 자신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숨어 버렸다. 백성들이 모두 순을 쫓아갔다. 순은 신하인 우에게 왕위를 주었다. 우도 순의 아들이 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다고 하며 숨어 버렸다. 역시 백성들이 우를 쫓아갔다. 우도 신하인 익에게 왕위를 주었다. 익 또한 우의 아들이 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다고 하며 숨어 버렸다. 그러나 백성들은 익을 쫓아가지 않았다. 《맹자》<만장 상>

순자
동양의 프로메테우스

사람들이 선을 행하고자 하는 것은 본성이 원래 악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자 하고, 천한 사람이 귀해지려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법가
인간을 조직하고 인간을 활용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는 사랑 말고 그 무엇이 있다. 아들이 태어나면 부모는 서로 반가워하고, 딸이 태어나면 죽일지도 모른다. 아들과 딸은 다같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왔다. 그런데도 아들일 때는 기쁨이 따르고, 딸일 때는 죽음이 따르는 것은 어째서인가. 부모는 나중에 편할 것을 생각하고 장기적 이익을 계산한다. 부모까지도 자식과의 관계에서 이해타산적인 계산을 하고, 이에 따라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다. 《한비자》<육반>

하인이 주인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그가 충실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에 대한 보수를 받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주인이 하인을 잘 대우하는 것은, 그가 친절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인이 열심히 일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각은 이용 가치에 집중되고, 서로 자기의 이익만을 도모한다. 《한비자》<외저설 좌상>

사람은 이기적 목적으로 주고받는다. 이해관계가 맞으면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로 화목하게 살 것이고, 이해가 충돌한다면 아비와 자식 사이라도 서로 충돌할 것이다. 《한비자》<육반>

뱀장어는 뱀을 닮았고, 누에는 송충이와 흡사하다. 사람들은 뱀을 보면 깜짝 놀라고, 송충이를 보면 소름이 오싹 끼치지만, 고기잡는 이들은 뱀장어를 손으로 주무르고, 여자들은 누에를 손으로 만진다. 이득이 생기기만 하면 사람은 누구나 최고의 용사가 되는 것이다. 《한비자》<설림 하>

수레 만드는 기술자는 사람들이 모두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짜는 기술자는 사람들이 일찍 죽기만 기다린다. 수레 만드는 사람이 더 착하고 관 만드는 사람이 더 악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부자가 되지 않으면 수레가 팔리지 않고,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 관이 안 팔린다. 종사하는 일의 업종에 따라 이해타산이 서로 다르다. 이해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람이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한비자》<비내>

미자하라는 미소년이 위나라 왕의 총애를 받고 있을 때, 어머니 병환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왕의 수레를 몰래 훔쳐 급하게 타고 나간 일이 있었다. 위나라 법에는 국왕의 수레를 몰래 타면 다리를 자르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왕은 그의 효심이 극진함을 가상히 여겨 문책하지 않았다. 또 어느 날 위나라 왕이 과수원에 나들이할 때 그가 함께 수행하여 복숭아를 따서 먹었다. 그 가운데 아주 단 복숭아 하나 있어 그것을 먹다가 말고 나머지 반쪽을 왕의 입에 넣어 맛보게 하였다. 왕은 이를 무례하다 아니하고 오히려 고맙게 여겼다.
그런 뒤 미자하가 늙고 보기 싫어지자 왕은 싫증이 나서 전에 한 일을 들추어 벌주었다. 미자하가 취한 행동은 달라진 게 없었으나, 앞서 칭찬 받은 그 일로 뒤에 벌을 받게 된 것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의 변화에서 온 것이다. 《한비자》<설난>

방경이 현령이 되어 시장 관리 책임자를 시장에 순찰을 보내게 되었다. 책임자를 내보내고 나서 다른 관리를 시켜 그를 다시 불러들인 다음, 잠시 같이 서 있다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순찰하러 가게하였다. 시장 관리 책임자는 현령이 다른 관리에게 무언가 이야기한 것 같다는 생각에서 혹시 감시하고 있나 싶어 감히 나쁜 짓을 할 수가 없었다. 《한비자》<내저설 상>

이회는 위나라 문후에게 벼슬하여 태수가 되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활을 보급할 생각으로 이런 포고령을 내렸다.
"소송에서 판결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둘 다 활로 과녁을 쏘게 해서 맞춘 사람을 이긴 것으로 하고, 못 맞춘 사람을 진 것으로 한다."
포고령이 나붙자 사람들은 너나없이 활을 배우기 시작하여 밤낮을 쉬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진나라와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적을 여지없이 쳐부수고 승리하였다. 모든 사람이 활을 잘 쏘았기 때문이다. 《한비자》<내저설 상>

진평공이 가까운 신하들과 술을 마시다가 문득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임금이 되었다고 해서 이렇다 할 즐거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슨 소리를 하든 내 말을 거역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장님 악사 사광이 거문고를 번쩍 들어 평공을 콱 찌르려 했다. 평공이 급히 피하는 바람에 거문고가 벽을 허물어뜨렸다. 평공이 놀라서 물었다.
"너는 지금 누구를 치려고 했더냐?"
"방금 옆에서 못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를 치려 했습니다."
"그게 바로 나다."
"아아, 그런 말은 임금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뒤에 일꾼들이 허물어진 벽을 고치려 하자 평공이 이를 중단시켰다.
"그대로 두어라. 나의 교훈으로 삼겠다." 《한비자》<난일>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사람이 있었다. 우선 그 방패를 자랑하기를 "나의 방패는 아주 견고하여 어떤 것으로도 뚫을 수 없다"라고 하고, 곧 그 창을 칭찬하기를 "나의 창은 아주 예리하여 어떤 물건도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가 "너의 그 창으로 너의 그 방패를 뚫어보아라. 어찌 되겠는가?" 하니, 그 사람은 아무 말도 못했다.
무릇 꿰뚫을 수 없는 방패와 뚫지 못하는 것이 없는 창은 같은 때에 함께 존립할 수 없는 것이다. 《한비자》<난세>

오늘날 나라 안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정치를 논하고 있고 관중과 상앙의 법률서를 가지지 않은 자가 하나도 없건만 토지는 자꾸 황폐해 간다. 이것은 농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은데 쟁기를 드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나라 안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방법을 말하지만 우리의 군대는 자꾸 약해지고 있다. 이것은 병법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으나 무기를 드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한비자》<오두>

어떤 사람이 주나라 왕을 위해 말 채찍에 그림을 그렸는데, 삼 년이 걸려서야 일을 끝냈다. 왕이 그것을 받아 보니 보통 채찍에 옻칠한 것과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왕이 버럭 화를 내니 그 사람이 말했다.
"두 길쯤 되는 높은 벽을 만들어 거기에 여덟 자 정도의 창문을 낸 다음,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채찍을 그 창에 비추어 자세히 보십시오."
왕이 들은 대로 방을 꾸미고 채찍을 보았더니, 거기에는 용과 뱀, 새와 짐승, 수레와 말, 그 밖의 여러 가지 모양들이 보기 좋게 새겨져 있었다. 왕은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이 채찍에 그림을 그린 재주는 과연 놀라운 것이지만, 그것의 쓸모로 말하면 보통 채찍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 《한비자》<외저설 좌상>

옛날 송나라에 농부가 잇었다. 그 사람의 밭 가운데에 나무 그루터기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토끼 한 마리가 마구 달려와서 그루터기를 정면으로 들이받고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러자 이 농부는 쟁기를 버리고, 토끼가 또 와서 부딪쳐 죽기를 기대하며 서서 기다렸다. 그러나 당연히 더 잡을 수 없었고, 그는 다른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되었다. 만약 옛날의 통치 방법으로 오늘날의 민중을 다스리려 한다면, 이 농부와 똑같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한비자》<오두>

훌륭한 임금으로 기록된 요는 평민이었을 때 세 집을 다스리지 못했고, 폭군이었던 직은 황제가 되어 온 천하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었다. 이로써 나는 권세와 지위가 반드시 필요하고, 지혜와 착함이 믿을 수 없는 것임을 안다. …… 착함과 똑똑함으로는 민중을 복종시킬 수 없으나 권세와 지위로는 복종시킬 수 있다. 《한비자》<난세>

현명한 군주가 절대적 권능을 가지고 다스릴 때 신하들은 모든 비행을 삼간다. 그렇게 되면 신하들은 감히 군주를 속이려 하지 않는데 그것은 그들이 군주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군주의 권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민중은 기꺼이 봉사할 것인데 그것은 군주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군주의 권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높은 지위에 있는 현명한 군주가 민중을 다스릴 수 있으며, 절대적 권능을 가진 사람이 백관을 제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민중과 백관이 명령에 복종하고, 군주의 지시 사항이 잘 시행된다. 군주가 존중을 받고 백관이 복종하게 된다. 그러므로 법에는 "군주는 높이고 백관은 천대한다. 그것은 특별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최고의 권능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한비자》<팔경>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 시와 역사, 예절과 음악, 도덕과 효도, 사랑과 신분 질서 등의 도덕과 문화가 있다고 해도 통치자가 나라를 지키고 싸우는 데 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셈이다. 만일 어떤 나라가 이런 것들로 다스린다면 적이 쳐들어오자마자 무너지고 말 것이다. 적이 쳐들어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나라는 가난할 것이다. 《상군서》<거강>

한 나라가 항상 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항상 약한 채로 있을 수도 없다. 법이 엄격히 운영될 때 그 나라는 강하고, 법이 허술하게 시행될 때 그 나라는 약하다. 《한비자》<유도>

학생들은 교과서가 너무 간략하면 그 뜻을 멋대로 추리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이 지나치게 간결하면 민중은 그 의도를 이러쿵저러쿵 논의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저술할 때 그 논지를 자세하고 명확하게 해 놓는다. 현명한 통치자는 법을 제정할 때 모든 우발 사건에 꼼꼼히 대비한다. 《한비자》<팔설>

상앙은 사소한 비행에 대하여 중벌을 제정하였다. 큰 죄를 범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사소한 비행은 잦다. 최선의 정책은 민중으로 하여금 범하기 쉬운 것을 피하고 큰 죄를 범하지 않도록 인도하는 데 있다. …… 그러므로 상앙은 "벌이 무겁다면 아무도 감히 법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처벌로 범죄를 없애는 방법이다"라고 말하였다. 《한비자》<내저설 상>

한자(한비자)는 도덕을 법률에 맞추도록 하되, 마치 먹줄을 친 것처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 줄을 벗어나지 않도록 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는 인정에 비추어 생각할 때는 절박한 일이요, 잘잘못을 분명히 가리자는 것은 좋으나, 결과적으로 인간의 따뜻한 아름다움을 없애는 일이다. 《사기》

법은 문서로 편찬하여 관청에 비치해 두고 인민에게 공포하는 것이지만. 술은 군주의 가슴속에 넣어 두고 신하의 언행 등 많은 단서를 수집하고 검토하여 은연중에 여러 신하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은 명확할수록 좋고, 술은 알려지면 안 되는 것이다. 현명한 군주가 법을 말하면 나라 안의 비천한 자까지도 알아들어야 하며, 방 안에 가득 채워 두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한비자》<난삼>

임금으로서 술이 없으면 윗자리에서 정보에 어두워지고, 신하로서 법이 없으면 아래에서 혼란을 일으킨다. 이 술과 법은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모두 제왕이 쓰는 기구다. 《한비자》<정법>

옛날 정나라 무공이 오랑캐를 정벌하려 했다. 무공은 먼저 자기 딸을 오랑캐 나라 임금에게 시집보내 그로 하여금 안심하게 했다.
어느 날, 그는 신하들에게 물었다.
"내가 한바탕 전쟁을 벌이고 싶은데, 누구를 치는 것이 좋겠소?"
대부 관기사가 대답하였다.
"오랑캐를 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공은 크게 노하여 그를 처형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랑캐는 이제 형제와 같은 나라인데, 네가 그를 치라는 것은 무슨 말이냐!"
오랑캐 나라 임금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마침내 정나라를 방비하지 않았다. 그때 정나라 군대가 오랑캐 나라를 습격하여 점령해 버렸다. 《한비자》<설난>

명가
상식을 부순 사람들

"왕께서는 뿔이 양쪽으로 달린 달팽이를 잘 아시지요?"
"잘 압니다."
"옛날에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는 촉씨가 다스리는 나라가 있었고 오른쪽 뿔 위에는 만씨가 다스리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항상 서로의 땅을 빼앗으려고 싸웠습니다. 한번 전쟁이 벌어지면 20일씩이나 싸우다가 물러나고는 했는데 죽거나 다친 사람이 수만 명씩 되었습니다."
얘기를 듣던 양혜왕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허허, 그거 참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지어낸 얘기지요?"
대진인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지어낸 얘기라니요? 임금께서는 동서남북이나 위아래가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끝이 없겠지요."
"임금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끝없는 우주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시지요. 끝없는 우주 속에서 양나라와 제나라는 달팽이 뿔 위에 있는 만씨의 나라와 촉씨의 나라보다 과연 얼마나 클까요?" 《장자》<칙양>

사물을 보는 방법 열가지 : 역물십사(歷物十事)

1. 지극리 커서 밖이 없는 것을 가장 큰 것[大一]이라고 하고, 지극히 작아서 안이 없는 것을 가장 작은 것[小一]이라고 한다.
2. 두께가 없는 것은 쌓을 수 없지만 그 크기는 천 리가 된다.
3. 하늘과 땅은 높이가 똑같고 산과 연못은 똑같이 평평하다.
4. 남쪽은 끝이 없으면서 끝이 있다.
5. 나는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가를 안다.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이 바로 그곳이다.
6. 오늘 월나라에 가서 어제 돌아왓다.
7. 해가 막 하늘 가운데 뜬 상태는 막 지는 상태이며, 어떤 존재가 막 태어났다는 것은 막 죽어 가는 것이다.
8. 많이 같은 것과 조금 같은 것은 다르다. 이것을 조금 같거나 조금 다른 것이라고 한다. 만물은 어떤 점에서는 완전히 같지만 또 어떤 점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을 크게 같거나 크게 다른 것이라고 한다.
9. 둥근 고리는 풀 수 있다.
10. 만물을 사랑하라. 온 세상이 한몸이다.

나는 다른 것과 같은 것을 한데 합티기도 하고, 한데 붙어 있는 개념을 떼어 놓기도 했다. 나는 옳지 않은 것을 옳은 것으로 만들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서,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장자》<추수> 공손룡

흰 말은 말이 아니다? - 공손룡

첫째, 말이라는 것은 모양을 가리키는 개념이고 희다는 것은 빛깔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빛깔을 가리키는 것은 형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흰 말은 말이 아니다.
둘째, 말이라고 하면, 흰 말, 검은 말, 누런 말이 모두 해당되지만, 흰 말이라고 하면 누런 말이나 검은 말은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흰 말은 말이 아니다.
셋째, 말에는 여러 가지 빛깔이 있을 수 잇다. 그런데 말에서 빛깔을 빼 버리면 말 그 자체만 남는다. 흰 말은 바로 그러한 말에다가 흰색을 더한 것이다. 이처럼 말에다 흰색을 더한 것이 흰 말이기 때문에 흰 말은 말이 아니다. 《공손룡자》<백마론>

첫째, 흰 돌과 단단한 돌은 두 가지다. 왜냐하면 희다는 것은 보고 아는 것이고, 단단하다는 것은 만져 보고 아는 것이다. 따라서 보기만 해서는 단단한지를 알 수 없고 만지기만 해서는 희다는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흰 돌과 단단한 돌이라는 두 개념으로 나누어진다.
둘째, 희다는 것과 단단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보편 개념이다. 따라서 이 두 개념은 돌과 별개로 존재할 수 있다. 사실 물체 가운데는 희지만 단단하지 않은 것도 있고, 단단하지만 희지 않은 것도 있다. 따라서 희다는 것과 단단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임이 분명하다. 《공손룡자》<견백론>

농가
농사꾼의 영원한 벗

신농씨의 가르침대로 사는 허행이 초나라에서 등나라로 와서 임금 문공에게 아뢰었다. "먼 곳에 사는 사람이 임금께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정치를 베푸신다는 말을 듣고 왔으니 살 곳을 얻어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등문공이 거처할 곳을 주었더니 굵은 베옷 입은 무리 수십 명이 몰려와 신발을 만들고 돗자리를 짜서 내다 팔아 먹고살았다. 얼마 뒤 진량의 제자인 진상이 아우 신과 함께 쟁기와 보습을 짊어지고 송나라에서 등나라로 왔다. 그리고 문공에게 "임금께서 성인의 정치를 하신다고 하니 성인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등나라에 거처할 곳을 얻은 진공이 나중에 허행을 만나 보고 크게 기뻐하여 이제까지 한 공부를 다 버리고 허행에게 가서 배웠다.
어느 날 맹자를 만난 진상이 다음과 같이 허행의 말을 전하였다.
"등나라 임금이 참으로 어질기는 하지만 아직 도를 모릅니다. 어진 사람은 백성과 함께 밭을 갈아서 양식을 마련하며 직접 밥을 지어 먹으면서 정치를 하는 법인데, 지금 등나라에는 곡식과 재물 창고가 있으니 이는 백성을 뜯어다가 자신을 봉양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맹자가 물었다.
"당신 선생 허행은 반드시 곡식을 직접 심어서 먹는가?"
"그렇습니다."
"당신 선생 허행은 반드시 삼베를 직접 짜서 입는가?"
"아닙니다. 우리 선생님은 굵은 베옷을 입습니다."
"허 선생은 모자를 쓰시는가?"
"쓰십니다."
"어떤 모자를 쓰시는고?"
"흰 비단 모자를 쓰십니다."
"직접 짠 것을 쓰시는가?"
"아닙니다. 곡식을 주고 바꾼 모자를 쓰십니다."
"허 선생은 어째서 직접 모자를 만들어 쓰지 않으시는고?"
"농사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허 선생은 가마솥과 시루에 밥을 지으며 쇠로 만든 농기구로 농사를 짓는가?"
"그렇습니다."
"그것들은 스스로 만든 것인가?"
"아닙니다. 곡식을 주고 바꿔 온 것들입니다."
그러자 맹자가 신이 나서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곡식을 가지고 농기구를 바꾸는 일은 도자기 굽는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니, 구운 도자기나 농기구를 가지고 곡식과 바꾸는 일이 어찌 농부를 해치는 일이 되겠는가? 그리고 허 선생은 어째서 직접 도자기를 만들지 않으시는가? 도자기 만드는 가마를 집에 만들어 놓고 직접 구워서 쓰지 않고 어째서 번잡하게 온갖 기술자들과 물건을 바꾸시는가? 어째서 이러한 번거로움을 싫어하지 않으시는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상이 마지못해 한마디 하였다.
"온갖 기술자들의 일을 농사일과 함께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자 맹자는 더 신이 나서 이야기를 끌어갔다.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만은 농사일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인가? 큰 사람이 할 일이 있고 작은 사람이 할 일이 있는 법일세. 그리고 한 사람의 몸에 온갖 기술자가 할 일이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하여 반드시 무엇이건 자신이 직접 만들어 쓰게 한다면 이는 세상 사람 모두를 수고롭게 하는 것이지.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어떤 사람은 몸을 수고롭게 하는 법이라서,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고 몸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고 하였네.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자는 남을 먹여 살리고, 남을 다스리는 사람은 남에게서 얻어먹는 것이 세상 이치라네." 《맹자》<등문공 상>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치는 반드시 경계를 제대로 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니, 경계가 바르지 못하면 백성들의 토지가 같지 않게 되고 벼슬아치들의 봉록이 고르지 않게 된다. 그런 까닭에 못된 임금이나 부패한 관리들은 반드시 그 경계 정하는 일을 태만히 하는 법이다. 이미 경계가 바로잡히면 농토를 나누고 봉록을 정하는 일은 앉아만 있어도 안정된다. …… 이렇게 되면 죽거나 집을 옮기더라도 고향 마을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니 고향 마을 같은 논에서 함께 일한 사람들은 나가고 들어옴에 서로 짝하고, 싸움에 나아가 지키고 망을 볼 때에도 서로 도우며, 병이 나면 서로 의지하고 도와서 화목하게 된다. 《맹자》<등문공 상>

무릇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 백성들을 기르는 사람은 사시사철 때 맞추어 해야 할 일에 힘써야 하며, 창고에 재물이 넉넉하도록 해야 한다. 나라가 살 만하면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여기서 살려고 찾아 오며, 땅을 더 많이 개간하면 백성들이 그곳에 머물게 된다. 창고에 먹고살 것이 넉넉하면 백성들이 예절을 알게 되며, 입을 것과 먹을 것이 풍족해지면 여예와 굴욕을 알게 된다. 《관자》<목민>

백성은 곡식이 아니면 먹을 수 없고, 곡식은 땅이 아니면 만들 수 없으며, 땅은 백성이 아니면 일할 자가 없으니, 백성이 일하지 않으면 재물을 모을 수 없다. 모든 생산물은 힘을 쓰는 데서 나오고, 힘쓰는 일은 몸을 수고롭게 하는 데서 나온다. 《관자》<팔관>

성인은 나라를 다스리는 요점을 알았기 때문에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에 마음을 쏟도록 하였다. 농사에 마음을 쏟으면 백성들이 순박해져서 바로잡을 수 있으며, 농사일에 열심이다 보면 부리기 쉬워진다. 《상자》<농전>

"허선생의 가르침을 따르면 시장의 물건 값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나라 안에 거짓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비록 어린아이를 물건을 사오라고 시장에 보내도 아무도 속이려 들지 않습니다. 면과 비단의 길이가 같으면 값도 같으며, 삼과 실, 비단실과 솜의 무게가 같으면 값도 같고, 곡식의 양이 같으면 값도 같으며, 신발의 크기가 같으면 값도 같을 것입니다." 《맹자》<등문공 상>

농사를 열심히 짓지 않는 자는 삶을 제대로 꾸려 갈 수 없고, 옷감을 열심히 짜지 않는 자는 몸을 제대로 가릴 수 없다. 넉넉함이나 모자람은 일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되면 입을 것과 먹을 것이 풍요롭게 되고 옳지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먹고사는 일이 편안하고 정치적으로 아무 일도 없게 되어 세상이 두루 고르게 된다. 따라서 공자나 증자까지도 선을 주장할 일이 없다. 《회남자》<제속훈>

아주 옛날에는 임금도 없고 신하도 없었다. 사람들은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을 갈아 먹었으며,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었다. 매이지 않은 배처럼 자유로웠고, 편안하며 만족했다. 경쟁이 없고 영리를 바라지 않았으며, 명예도 없고 치욕도 없었다.
만물이 서로 화합하여 자연의 도에 들어가므로 역병이 유행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완전한 삶을 누릴 수 있었고, 마음이 착해서 욕심이 없었다. 입에 먹을 것을 물고 즐기면서 배를 두드리고 놀았다. 그들의 말은 화려하지 않았고, 그들의 행동에는 꾸밈이 없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어떻게 무거운 세금을 매겨 백성의 재산을 빼앗을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엄한 형벌을 받아 굴에 갇힐 수 있었겠는가?

임금과 신하의 신분이 생기면 변화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본래 수달이 많아지면 물고기가 놀라고, 매가 많아지면 작은 새가 근심하는 법이다. 부리는 사람이 늘어나면 인민은 고통스러우며, 위에 바치는 것이 많아지면 아랫사람은 가난해진다.

주역
점쟁이와 철학자

"나에게 몇 년만 더 삶이 주어진다면, 《주역》에 통달할 수 있을 것이다." - 공자

"수십 년간 역을 연구하였지만, 나 자신의 일을 가지고 점을 쳐 보지는 않았다." - 정약용

복희씨가 처음 팔괘를 그렸고 신농씨가 64괘로 나누었다. 주나라 문왕이 비로소 괘에 풀이하는 말을 붙여 역이란 이름이 생겼고, 그 후 문왕의 아들 주공이 <효사>를 지어 우선 완성되었다. 공자가 다시 십익, 즉 <단전> 상 하, <상전> 상 하, <계사전> 상 하, <문언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을 지어 보충 설명하였다.

1981년 1월, 미국 해군 천문대의 두 과학자는 태양계에 열 번째 행성이 존재한다고 예언하였다. 매스컴이 이 특종을 대서 특필하자, 사람들은 감격하고 토론하고 찬탄했다. 일찍이 1940년에 한 중국인 학자가 역학의 특수한 방법을 사용하여, 열 번째 행성의 존재를 계산하고 목왕성이라고 이름 붙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1940년 11월 1일,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통과된 쓰촨 출신 류쯔화(劉子華) 선생의 박사 학위 논문 <팔괘 우주론과 현대 천문학 - 한 행성에 대한 예측>이다.

최근 10년 동안 《주역》신봉파는 중국 학술계에서 다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점차 흥성하고 있다. 새로운 신봉파들은 근대 이후 국내외의 성과 외에도 《주역》속에 포함된 현대 과학 내용을 계속 끌어내고 또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였다. 《주역》을 중국 고대 자연과학 모든 분야의 원류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역》속에는 고대 천문학이 있고, 중국 의학의 기본 이론이 있고, 고대 수학의 성과가 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요 몇 년 사이에 기공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송대 이후 기공의 이론적 근원인 내단설은 역학의 도식을 많이 끌어왔으므로 기공의 유행 역시 역학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인체의 건강과 장수는 여러 요인에 달려 있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체에는 산과 바다를 움직이고 백만 대군을 막아 내는 능력이 얼마나 숨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신비가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현대 과학의 진보로 일반인들은 우주의 신비는 이제 거의 없다고 생각하게 된 반면, 현대 의학의 결함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인체의 신비가 도리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인체의 신비는 태극, 음양, 오행, 팔괘, 선천 · 후천 따위의 관념 속에 들어 있고, 다양한 역학 도형 속에 들어 있다. 특히 흑백이 서로 휘감아 도는 '음양어도'는 더욱 사람들을 오묘 무궁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심코 만든 S형 곡선에 수학 원리가 있고, 물리학 원리가 있고, 천문 기상학이 있고, 인체의 신비가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중국 의학의 표시가 되었고, 기공 학회의 상징이 되었고, 《주역》의 대표가 되었고, 중국 고대 문명의 상징이 되었다.
주희가 《주역》앞부분에 하도와 낙서를 붙였는데, 황백가는 이것을 '양자를 데려와서 할애비로 삼은 꼴'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음양어도'는 특별히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만일 황백가가 지금 살아온다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리신(李申), 《주역지하설해(周易之河說解)》

《주역》의 괘상 배열은 2진법을 담고 잇다. 《주역》의 사상은 현대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 양자론을 담고 있다. 《주역》의 방형도에서 디락 방정식, 화학 원소 주기율을 끌어낼 수 있다. 역수 속에 현대의 원자 모형이 들어 있다. 흑백이 서로 휘감고 있는 '음양어도'는 바로 양자도이며 이는 보어의 상보성 이론의 설명이고, 생물학자가 보면 그 그림은 동물의 배태다. 《주역》이론에 중국 의학의 모든 이론이 들어 있다.

돌아보기
남은 이야기들

공자 제사가 있었던 이튿날,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공자 사당에서 식어 버린 돼지 머리를 먹고 있었다. 그때 젊은이 넷이 주홍색 옻칠을 한 가마를 들고서 사당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가마 속에서 뺨이 온통 수염으로 뒤덮인 서양인이 나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칼 마르크스였다. 그 이름은 요즈음 인기가 높아서 이미 공자의 귀에까지 들려왔던 터였다.
공자는 자기를 찾아온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라는 말을 듣고는 너무나 놀라 기쁨에 넘쳐 외치듯 말했다.
"유붕 자원방래니 불역열호아! 마르크스 선생, 저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고 먼 길을 오셨습니까?"
이렇게 해서 공자와 마르크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저는 제 사상이 중국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제 사상과 선생님의 사상이 너무 달라서 선생님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제 사상이 실현될 수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선생님의 사상은 어떤 것입니까? 제 사상과 어디가 얼마나 다릅니까?"
"요즘 외국의 유명 인사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여는 것이 우리나라의 최신 유행이니 선생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먼저 이야기하지요. 우선 제 사상의 출발점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저는 종교가나 형이상학자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 현실 세계에서 최고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가를 탐구합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건 제 사상의 출발점과 똑같군요. 그러면 어떤 세상이라야 우리가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제가 이상으로 삼은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모두가 생활 보장을 받아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일이 없습니다. 이만하면 지상 천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선생의 이상 세계는 나의 대동 세계와 완전히 똑같군요. 제가 문장 하나를 읊을 테니 한번 들어 보십시오. '대도가 실행되면 천하는 공유된다. 덕 있고 재능 있는 사람을 뽑아 정치를 맡기니 모두가 화목하다. 노인들은 편안히 여생을 마칠 수 있고, 젊은 이들은 능력을 발휘할 곳이 있으며, 아이들은 모두 양육된다. 이것이 대동 사회니라.' 어때요? 선생과 똑같지요?"
공자는 목소리를 길게 빼며 읊다가 나중에는 자기최면에빠지는 듯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조금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하고 힘을 주어 말한 마르크스는 연설을 하듯 말을 이었다.
"저는 공상가각 아닙니다. 저는 역사와 경제를 깊이 연구한 결과 산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자본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노동 계급의 투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증명해 냈습니다. 그래서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아, 물론이지요. 저도 일찍이 '적음을 걱정 말고, 균등하지 못함을 걱정하라'하고 말했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적은 것도 걱정합니다. 저는 사유재산에는 반대하지만 산업의 발전은 적극 제창하는 사람입니다."
"예, 예. 저도 '먼저 민중을 부유하게 하고, 그 다음에 가르치라'하고 말했고, 경제력 · 군사력 · 민심 획득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선 산업을 발전시켜야 균등한 분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재물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싫어하지만, 반드시 자기 것으로 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물질을 아주 중요시하는 사람입니다. 저기 있는 제 제자 자공만 해도 장사를 해서 돈을 엄청나게 번 인물입니다."
여기까지 대화를 나눈 마르크스는 비로소 감탄하기 시작했다. 공자의 사상이 자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공자도 2000년 동안이나 사당에서 식은 돼지 머리나 씹고 있는 마당에 자기의 사상이 중국에서 실현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전 이제 돌아가서 마누라 얼굴이나 보아야겠습니다."
공자는 부러워하며 말했다.
"아, 선생은 부인이 계시군요?"
"왜 없겠습니까? 제 마누라는 제 동지인 데다 굉장히 예쁩니다."
공자는 마르크스가 부인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모두가 부인이 있는데, 나 혼자만 없구나!"
그러나 공자는 이내 안색을 바꿔 마르크스에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우리집 어른을 공경함으로써 남의 집 어른에게까지 미치고, 우리집 아이들을 사랑함으로써 남의 집 아이들에게까지 미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내 처를 사랑함으로써 남의 처에게까지 미치니, 선생의 부인도 내 처가 아니겠소?"
마르크스가 이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니, 저는 공산을 외칠 뿐인데 선생님은 공처(共妻)까지 주장하시는군요. 선생님은 저보다 더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러고는 서둘러 사당을 빠져나갔다. 그는 공자가 정말 유럽까지 쫓아와 자기 부인을 공유하자고 할까 봐 내심 두려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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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11. 7. 09:56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0 전통 음식

글, 사진 / 한복진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6441

082
빛 12 ㄷ 60


빛깔있는 책들 60

한복진------------------------------------------------------------------------

이화여자대학교 가정대학을 졸업했으며 고려대학교 식량개발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다. 중요 무형 문화재 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전수했으며 일본 조리사 전문대학 교수를 지냈다. 현재 춘천전문대학 전통조리학과 교수이며 궁중음식연구원 강사로 있다.

|차례|

사진으로 보는 전통 음식
식생활사
산물과 특징
    넉넉한 곡식과 해산물
    음식의 특징
조리법
    대표적인 음식의 조리법
상차림법과 궁중 음식
부엌 도구와 식기
    부엌 도구, 식기, 상
양념과 장
    양념, 고명, 장
김치와 젓갈
    김치, 젓갈, 장아찌
술과 화채
    술
    누룩 디디는 법과 삭임법
    차와 화채
떡과 한과
시식과 절식, 통과 의례

▲ 우리 식생활에서 기본이 되는 장은 때가 되면 어느 집에서나 빠뜨리지 않고 만들었던 음식이다. 여러 가지 장을 제가끔 독에 담아서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는데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믿어 주부들은 장독대의 관리에 정성을 다했다. 그래서 부정한 것을 막는다는 뜻으로 금줄에 버선과 고추를 매달아 놓는 풍습이 있었다.

▲ 연자방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곡식을 거의 모든 음식의 재료로 사용하였다. 곡물로 만든 음식은 주식이 되는 밥을 비롯하여 떡, 과자, 술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연자방아는 곡식을 찧을 때에 쓰던 기구로 소가 방아를 끌면 큰 돌이 구르며 방아질을 한다.

▲ 시루

▲ 팥밥 팥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쌀밥과 더불어 가장 즐겨 먹는 잡곡밥이다. 쌀과 팥을 섞어 짓기도 하고 팥을 삶은 물만으로 짓기도 한다.

▲ 냉면 날씨가 추운 북쪽 지방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메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찬 육수나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는다.

▲ 회냉면 국물 없이 고기나 생선회를 고명으로 얹어 얼큰하게 비벼 먹는 냉면이다.

▲ 칼국수 곡류로 만드는 음식 가운데 하나인 국수의 종류로는 밀가루로 만든 밀국수와 메밀로 만든 메밀국수 그리고 녹말국수가 있다. 칼국수는 집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별미이다. 밀가루나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얇게 민 다음 칼로 썰어 장국에 끓인다.

▲ 만두 만두는 북쪽 지방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만두는 껍질의 재료와 소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고, 지방에 따라 생김새도 조금씩 다르다.

▲ 떡국 흰떡을 타원형으로 어슷하게 썰어 육수에 넣고 끓이면 떡국이 된다. 지방에 따라 쌀가루를 반죽하여 빚어서 끓이기도 하고 가늘게 썬 흰떡을 대칼로 누에고치처럼 만들어 끓이기도 한다. 어느 지방에서나 정월 초하룻날이면 떡국을 끓여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그것으로 새해의 첫 식사를 하였다.

꼬리곰탕 탕은 국물 음식이다. 우리 식생활은 밥이 주식이지만 국도 거의 빠지지 않고 끼니마다 밥상에 오른다. 소의 꼬리로 만든 것으로 밥을 말아 먹는 탕반이다. 비슷한 탕반류로 설렁탕, 갈비탕 따위가 있다.

▲ 완자탕 맑은 쇠고기장국에 고기완자를 빚어서 넣은 것으로 교자상에 어울리는 탕이다.

▲ 북어탕 북어를 고기장국에 넣어 끓인 것으로 시원한 맛이 난다.

▲ 각색전골 전골이란 각각 색이 다른 재료를 합이나 그릇에 담고 상 옆에서 볶아 먹는 음식이다. 쇠고기와 각색의 채소들을 어울리게 담아 놓은 각색전골이다.

▲ 송이전골 가을철에 많이 먹는다. 송이버섯을 납작하게 썰어 조갯살, 쇠고기와 같이 넣고 만든다. 맛이 담백하고 송이의 향이 독특하다.

냉이토장국 국은 크게 장국, 토장국, 곰국, 냉국으로 나뉜다. 국에는 육류는 물론이고 어패류, 채소류, 해조류 같은 재료를 거의 다 쓴다. 쌀뜨물에 된장을 풀고 봅철에 나는 냉이와 함께 끓인 토장국이다.

조기국 육수에 조기를 토막 내어 넣고 청장으로 간을 하여 맑게 끓인 다음 쑥갓, 파 따위를 띄운다.

미역냉국 여름철에 많이 즐기는 냉국으로 생미역을 살짝 데쳐서 간장, 식초 따위로 양념한 다음 냉수를 붓는다.

된장찌개 된장찌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토속적인 맛이 나는 음식이다. 토장국과 마찬가지로 맹물보다 쌀뜨물로 끓이면 맛이 더 좋다.

갈비찜 찜은 국물을 적게 하고 뭉근한 불에서 오래 익혀 재료를 연하게 하는 조리법이다. 쇠고기 가운데에서도 질긴 부위에 드는 갈비는 간을 약하게 해서 오랫 동안 끓이면 맛 좋고 연한 갈비찜이 된다.

도미찜 도미의 등에 칼집을 내어 그 안에 양념한 쇠고기를 채워 넣고 찐다.

▲ 장조림 밥상에 오르는 찬의 가장 흔한 조리법 가운데 하나는 조림이다. 장조림은 소의 사태나 홍두깨살, 우둔 따위를 덩어리째 무르도록 삶은 다음 간장에 조린 것으로 오랫 동안 저장해 두고 먹을 수 있는 좋은 밑반찬이다.

▲ 멸치조림 멸치와 풋고추를 약간 짜게 간하여 볶은 것이다.

▲ 녹두빈대떡 녹두를 갈아 고기와 나물을 섞어서 번철에 노릇하게 지진다. 녹두빈대떡은 평안도 지방에서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다.

▲ 전유어 전유어는 기름을 많이 쓰는 음식으로 어느 상차림에나 빠지지 않고 올린다. 보통 한 가지 재료로만 하지 않고 세 가지나 다섯 가지를 준비하여 어울리게 담는다.

▲ 화양적 화양이란 도라지를 말한다. 도라지, 쇠고기, 지단, 오이 따위를 익혀서 대꼬지에 꿴다.

▲ 떡산적 흰떡과 실파와 쇠고기를 번갈아 대꼬치에 꿴 다음 양념간장으로 간을 하여 굽는다.

▲ 청어구이 청어는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이다. 소금을 뿌려서 굽거나 양념간장을 발라 굽는다.

▲ 더덕구이 향기가 좋은 더덕을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들겨 펴서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굽는다.

▲ 김부각, 다시마부각 부각은 재료를 그대로 말리거나 풀칠을 하여 바싹 말렸다가 그 때 그 때 튀겨서 먹는 밑반찬이다. 제 철이 아닐 때에 별미로 먹을 수 있다.

▲ 김구이 김에 기름을 발라 바삭하게 구워서 먹기 편하도록 잘라 놓는다.

▲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아홉 가지의 묵은 나물을 먹으면서 한 해 내내 병이 없이 잘지내기를 기원한다. 또 보름날 아침에는 부럼이라 하여 껍질이 단단한 밤, 잣, 호두, 땅콩 같은 것을 깨물면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 산나물 나물은 반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대중적인 우리 음식이다. 산나물은 대개 쓴 맛과 함께 독특한 향이 나는데 무칠 때 고추장이나 된장을 약간 넣으면 맛이 더 좋다.

▲ 도라지생채 생채는 채소를 익히지 않고 초장이나 초고추장이나 겨자장에 무친 것을 말한다. 도라지를 가늘게 갈라 소금으로 주무른 다음 신맛이 나는 초고추장에 무친다.

▲ 탕평채 녹두로 만든 청포묵과 쇠고기볶음, 채소를 한데 넣어 초간장으로 무친 것이다.

▲ 잡채 고기와 채소 볶은 것을 삶은 당면과 함께 고루 무친다.

▲ 두부선(위), 오이선(아래) 선이란 찜과 비슷한 조리법인데 재료로 식물성 식품을 많이 쓴다. 두부는 으깬 다음 양념하여 찌고, 오이는 칼집을 내어 소를 채운 다음 찐다.

▲ 미나리강회 미나리를 데쳐서 가운데에 지단과 편육을 놓고 만다.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 갑회 소의 내장으로 만든 회이다. 양, 처녑, 간을 얇게 저며서 양념을 섞은 소금이나 참기름을 찍어 먹는다. 회는 무엇보다도 신선함이 가장 중요하다.

▲ 사각반에 차린 칠첩 반상이다. 첩수에 드는 반찬은 숙채, 생채, 구이, 조림, 전, 마른반찬, 회이다.

▲ 밥과 국, 김치를 기본으로 차리는 밥상을 반상이라고 하는데 쟁첩에 담는 찬품의 가짓수에 따라 삼첩, 오첩, 칠첩, 구첩, 십이첩 반상으로 나뉜다. 기본이 되는 밥, 국, 김치, 장 이외에 반찬 세 가지를 더 올린 삼첩 반상이다.

▲ 국수를 주식으로 한 면상이다. 찬으로 배추김치, 편육, 회, 전 따위를 준비하고 후식도 같이 올린다.

▲ 이른 아침에는 죽상을 올린다. 물김치, 마른찬 따위를 놓고 덜어 먹을 그릇과 간을 맞출 소금이나 청장을 놓는다.

▲ 구첩 반상이다. 민가에서는 살림이 아무리 넉넉해도 구첩 반상까지만 차릴 수 있었으며 십이첩 반상은 궁중에서만 차렸다.

▲ 술을 대접하기 위해 차린 주안상으로 술과 함께 마른안주, 육회, 장김치, 빈대떡 따위를 안주로 마련했다.

▲ 국수를 주식으로 한 면상으로 임매상이라고도 한다.

▲ 교자상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에 여러 사람이 함께 둘러앉아 식사할 수 있도록 차려 놓은 큰 음식상이다. 보통 한상에 네 명이 앉을 수 있도록 차리는데 주식은 계절에 따라 냉면, 온면, 떡국, 만두 가운데 하나로 하고 탕, 찜, 전유어, 적, 회, 신선로 같은 찬을 놓는다.

▲ 수라상 궁중에서 평상시에 임금에게 올리는 아침과 저녁상이다. 대원반, 소원반, 사가반의 세 가지 상에 차리는데 기본찬 이외에 찬 열두 가지를 놓는 십이첩 반상이다.

▲ 도미면 도미에 당면을 곁들여 만든 생선찜의 일종이다. 도미의 내장을 빼낸 다음 지져서 고기완자, 버섯, 계란지단, 미나리 들과 같이 전골틀에 담고 육수를 부어 끓인다.

▲ 신선로 궁중 음식 가운데 하나인 신선로는 입을 즐겁게 해 준다는 뜻으로 열구자탕(悅口子湯)이라고도 한다. 신선로틀에 육류, 해산물, 채소 따위를 색스럽게 돌려 담고 장국을 부어 끓이면서 먹는다. 흔히 신선로를 전골류로 아는데 본디는 탕류에 속한다.

▲ 김장이 끝나면 메주를 쑤어서 따뜻한 방에 두었다가 말린다.

▲ 잘 말린 메주로 우리 식생활에 빠뜨릴 수 없는 양념인 간장과 된장을 만든다. 채에 굵은 소금을 담고 위에서 물을 뿌려 소금물(물 1말에 소금 2되)을 만든다.

▲ 소금물에 메주를 넣는다. 사십 일쯤 지나서 장 맛이 들면 간장은 고운 채에 밭여 다른 독에 채우고 메주는 건져서 으깨 된장을 만든다.

▲ 고추장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들

▲ 음식에 양념을 하는 것은 간이 없는 식품에 간을 하고 맛을 줌으로써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니 음식을 잘 한다는 것은 곧 양념을 적절히 쓴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마늘, 파, 생강, 고춧가루, 소금, 깨소금, 고추장, 식초, 후춧가루, 참기름 같은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빠뜨릴 수 없는 여러 가지 양념들이다.

▲ 고명은 맛과는 상관없이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곱게 하여 식욕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오행설에 따라 흰색, 노란색, 빨간색, 검정색, 녹색의 자연색을 쓰는데 흰색과 노란색은 계란, 빨간색은 고추, 검정색은 석이버섯이나 표고버섯, 녹색은 미나리, 호박, 오이, 파잎 따위로 낸다.

▲ 바닷게장 싱싱한 꽃게를 토막내어 양념장에 버무린다. 저장 기간은 이틀쯤이다.

▲ 게장 민물게에 간장을 부어 오랫 동안 두고 먹는다

▲ 대구아가미젓 대구아가미를 소금으로 절여 만든 젓갈로 잘 삭으면 잘게 썰어 갖은 양념을 한다.

▲ 어리굴젓 굴을 고운 고춧가루, 파, 마늘, 소금 따위로 양념한 다음 잘 삭힌다. 충청도 서산의 명물이다.

▲ 무말랭이장아찌 장아찌는 제철에 많이 나는 채소나 쓰다 남은 음식 재료들을 오래 저장하여 두고 먹을 수 있도록 간장, 고추장, 된장 또는 식초에 담가 놓은 것이다. 무를 길게 썰어 말려서 만든 장아찌로 참기름, 설탕, 깨소금 따위로 조미했다.

▲ 오이갑장과 오이를 절였다가 볶은 장아찌로 갑자기 만든다 하여 갑장과라는 이름이 붙었다.

▲ 마늘장아찌

▲ 고추장아찌

▲ 김치는 부식 가운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찬으로 김치를 뺀 식생활은 생각할 수 없다. 김치는 소금에 절이는 염장법을 이용하여 적당히 발효시킨 것으로 독특한 신맛이 식욕을 돋운다.

▲ 장김치 간장으로 간을 맞춘 물김치로 무, 배추, 밤, 배, 대추, 표고버섯, 석이버섯 같은 다양한 재료가 쓰인다.

▲ 씀바귀김치 씀바귀를 소금물레 삭힌 다음 멸치젓국에 고춧가루와 양념을 넉넉히 넣어 담근다.

▲ 백김치 고추를 전혀 넣지 않은 김치로 배추 속에 채우는 소에 밤, 배, 대추채 따위를 섞는다.

▲ 정월 초하루에 세배 온 손님에게 대접하는 상차림으로 떡국과 함께 전, 적, 찜, 과일 그리고 한과까지 음식을 푸짐하고 정성스럽게 마련한다.

▲ 폐백은 신부가 신랑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서 처음 드리는 음식으로 내용은 가풍이나 지방에 따라 다르다. 서울에서는 폐백 음식으로 대추를 붉은 실에 꿰어 둥글게 돌려 담고 고기를 다져 편포나 장포를 만든다.

▲ 폐백 음식은 청, 홍보자기에 싸는데 대추는 자손 번영을 상징하므로 붉은 색이 겉에 오도록 싼 다음 묶지 않고 근봉을 고리로 만들어 낀다.

▲ 곡식을 타거나 가루를 낼 때 쓰는 맷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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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11. 3. 15:17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19 미륵불

글 / 김삼룡●사진 / 송봉화
1994,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0277

082
빛 12 ㄷ 59


빛깔있는 책들 59

김삼룡------------------------------------------------------------------------

유일학림(원광대학교 전신) 전문부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중화민국 문화대학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일본 동경 축파(TSEVRA)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원광대학교 총장, 원광대학교 마한 백제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한국 미륵 신앙의 연구」「익산 문화권의 연구」등의 저서와 여러 편의 논문이 있다.

송봉화------------------------------------------------------------------------

충북 청원 출생으로 현재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에 재학중이다. 한국 사진작가협회원, 한국 민속학회원이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차례|

글을 시작하며
미륵보살과 도솔천
    미륵보살과 미륵불
    미륵과 도솔천
미륵 신앙의 성립과 전래
    미륵 신앙의 성립
    미륵 신앙의 중국 전래와 전개
우리나라의 미륵 신앙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신흥 종교에 나타난 미륵 신앙
    전국 미륵불의 양상
맺음말

 

▲ 사찰의 미륵불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이포리 소재.

▲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현리 미륵불 미륵은 우리가 죽은 뒤 불교의 세계관에서 말하는 도솔천에 올라가 그곳에서 수행을 계속하고 있으며 도솔천에 올라와 있는 많은 천중들을 위해서 설법을 한다.

▲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현리 미륵불 길가에 돌을 쌓아 만든 작은 언덕과 같은 탑 위에 미륵불이 안치된 예이다. 이러한 형태는 불교의 세계관을 상징함과 더불어 민간 신앙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 인도의 미륵보살상

▲ 충남 아산군 영인면 신현리 미륵불상

▲ 전남 담양군 무정면 오룡리 미륵불상 여래형의 이 미륵불은 광배와 닫집 형태를 갖추고 있다.

▲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 와불(臥佛) 운주사의 산꼭대기에 있는 매우 큰 바위에 조각된 2구의 와불은 이 불상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용화 세계가 되어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온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 전북 남원군 주생면 지당리 미륵불상

▲ 금동 미륵 반가상 고구려에서 반가상이 제작되었다는 확실한 예이다. 김동현 씨 소장.

▲ 전북 익산군 금마면 미륵사지 미륵사를 중심으로 한 백제의 미륵 신앙은 하생신앙이었으며 경전의 내용처럼 불멸 후 56억 7천만 년 뒤의 아득한 미래세에 있을 당래하생의 미래 희구적인 하생 신앙이라기보다는 당래를 현실로 이끌어올린 현실적인 미륵 불국토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위는 현재 남아 있는 석탑이고 아래는 동물상의 모습이다.

▲ 군수리 출토 금동 미륵보살 입상 이 상은 1936년 충남 부여읍 군수리에 있는 백제의 폐사지를 발굴, 조사할 때 탑자리 지하에서 석조 여래 좌상과 함께 발견되어 그 출토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보살상이다.

▲ 방형 대좌 금동 미륵보살 반가상 삼국시대 반가상 가운데서도 특이한 형태로서 대좌가 다른 상과는 달리 사각형이다. 또한 상 전체가 추상화된 반가사유상의 발전된 형식을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서산 마애 삼존불 좌협시 미륵보살 반가상

▲ 금동 미륵 반가상 국보 83호인 이 상은 우리나라 불상 조각 가운데 최우수작으로 꼽히는 것으로 전체적으로 안정된 형태나 당당한 자세, 섬세한 옷주름 등은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 또한 일본 광륭사 목조 반가사유상이 이 불상과 같은 형태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 경주 송화산 출토 석조 반가사유상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상은 신라시대에 제작된 미륵 반가사유상의 확실한 예이다.

▲ 경북 예천군 예천읍 동본동 미륵불상

▲ 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마애불

▲ 금동 미륵보살 반가상 국보 78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경주 남산 삼화령 석조 미륵 삼존상 남산의 장창곡에서 발견된 삼존상 가운데 본존불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감산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경주 남산 미륵곡 석불 좌상 8세기에 조성된 이 불상은 경주 남산 보리사에 보존되고 있다.

▲ 미륵보살 반가 석상 충남 연기군 전동면 다방리 비암사에서 옮겨온 것이다. 정면에 반가상을 조각하였는데 머리에는 삼면관을 썼고 왼손으로는 반가한 오른쪽 발목을 잡고 오른팔을 얼굴에 대는 통식을 취하고 있으나 하체가 오른쪽을 향하고 있음은 특별나다.

▲ 전북 익산군 금마면 동고도리 미륵불상 높은 머리에 넓은 개석이 얹혀진 전형적인 고려 미륵불의 형식이다.

▲ 충북 중원군 상모면 미륵사지 전경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신평리 미륵불상 길가에 방치되어 있는 이 상은 여원, 시무외인을 표현하려 한 듯하나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 높은 머리 위에 개석이 얹혀 있다.

▲ 전북 고창군 공음면 건동리 미륵불상 작은 당집과 같은 보호각에 봉안된 이 상은 현재도 계속 신앙 행위를 받고 있다. 광배까지 표현되었으나 유달리 큰 개석이 무거운 듯하다.

▲ 충남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 미륵 삼존상

▲ 충남 아산군 송학면 외암리 석불 입상 손에 약발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로 일컬어지는 이 상은 대부분의 미륵이 그러하듯 발 부분이 땅에 묻혀 있다.

▲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충남 논산군 은진면 관촉리 관촉사 소재.

▲ 대조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이 불상이 거구인 점과 양식까지도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과 같은 계통의 석불로, 부여와 논산이라는 지리적 연관성도 있지만 옛 백제지역의 뿌리깊은 미륵 신앙의 전통을 살필 수 있다.

▲ 중원 미륵리 석불 입상 이 불상의 주위에는 석축을 쌓아서 주실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불상 주위에 주초가 있는 것으로 보아 위에는 목조 가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충북 중원군 상모면 미륵리 소재.

▲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용미리 미륵불상 거대한 암면을 그대로 이용하여 몸체를 새기고 이 위에 다른 돌을 얹어 머리를 만들었다. 이러한 거대한 불상의 조성이 고려시대 미륵불 조성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 전북 고창군 선운사 동불암 마애불상 자연의 절벽에 감실형을 만들어 얕은 부조로 상을 조각하였다. 머리 위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보아 목조 가구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 경기도 안성군 대덕면 진현리 미륵불 커다란 바위의 면에 미륵을 새기고 이를 주존으로 하여 전각을 세웠다.

▲ 강원도 삼척시 정상동 미륵불 조선조의 억불 정책 아래 미륵불 조상에 있어서는 고려시대와 같이 큰 미륵불상 조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조각 수법도 매우 조잡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법주사 팔상전 전경 신흥 종교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흥 종교들이 미륵 신앙을 바탕으로 하거나 미륵을 받들고 있다. 이들 신흥 종교들이 김제의 모악산이나 계룡산에 주로 밀집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도 백제에 있어서 미륵사의 창건, 진표율사의 금산사와 법주사 창건 등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 강원도 삼척시 정상동 미륵불 자연석 위에 불두(佛頭)를 얹어 1구의 미륵불을 만들었다.

▲ 속리산 법주사의 미륵 대불

▲ 충북 청주시 사직동 용화사 이륵불 개천가에 흩어져 있던 미륵불을 한데 모아 놓은 것으로 고려시대 장대한 미륵불상의 면모를 보여 준다.

▲ 충남 아산군 영인면 아산리 미륵불 모자 형태의 관을 쓴 이 상은 가늘게 뜬 눈, 희미한 미소 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충남 홍성군 결성면 무량리 석불 입상 정제된 상호에도 불구하고 도식화된 옷주름이 특징적인 상이다.

▲ 전남 나주군 봉황면 철전리 석불 입상 주형 거신 광배에 전체 상이 잘 보존된 것으로 당당한 신체의 괴량감이 돋보이나 약간 형식화로 치닫는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 석불군 운주사는 전체 산에 수많은 불상과 탑이 흩어져 있는 것이 큰 특징이며 그 상들의 양식 또한 다른 것과 비교하여 다른 점이 주목된다. 특히 하나의 집 모양 안에 두 불상이 등을 대고 있는 점은 매우 특이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되어 있다.

▲ 전남 담양군 무정면 오룡리 석불 입상 완만한 구릉에 세워진 이 상은 커다란 광배 형태 위에 닫집형까지 얹혀 있다. 소박한 주름 무늬와 부드러운 질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전북 부안군 보안면 상입석리 미륵불상 입석 형태의 돌에 음각된 이 상은 중앙 계주까지 표현되었으며 눈, 코, 입도 구불구불한 선으로 나타냈다.

▲ 경북 금릉군 봉산면 덕천리 미륵불상

▲ 경북 안동시 이천동 제비원 미륵불상 거대한 암면에 몸체를 조각하고 머리를 얹어 만든 고려시대의 큰 불상이다.























posted by 황영찬
2011. 11. 3. 07:58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18 한국철학 에세이 개정증보판

김교빈 지음 | 이부록 그림
2010, 동녘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41295

151
김 15 ㅎ


동녁 선서 93

인물로 보는 우리 철학의 흐름
원효의 불교사상에서 최제우의 동학사상에 이르는 우리 철학사에서 한국철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 함께 당대를 살다간 이들의 고민과 삶에 대한 물음 그리고 당면한 현실을
헤쳐나가는 사상적 모색으로서의 철학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암시를 주는지에
대해 살펴 보고 있다.

《동양철학 에세이》를 쓴 김교빈 선생님의 쉽고 재미있는 우리 철학 이야기

2008년 1월 일본평론사에서 일본어 번역본 전격 출간!

지은이
김교빈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인문콘텐츠학회 회장,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를 지냈고, 현재 호서대학교 문화기획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서화담의 기철학에 대한 고찰>. <본체론과 심성론을 통해 본 주자의 격물지치 이해>, <남북 철학계의 시각차와 북한 철학계의 변화에 대한 검토> 외 다수가 있다.
지은 책으로 《동양철학 에세이》,《하곡 정제두》가 있고, 여럿이 함께 지은 책으로《강좌 한국철학》,《기학의 모험》,《동양철학과 한의학》등이 있으며, 여럿이 함께 옮긴 책으로《중국 고대의 논리》,《중국 고대철학의 세계》,《중국 의학과 철학》,《기의 철학》등이 있다.

그린이
이부록

1971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동양학과를 졸업했다. 비디오아트, 일러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회에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를 펴냈고,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나는 유령작가입니다》,《동양철학 에세이》에 그림을 그렸다.

차례

개정증보판 책머리에
초판 책머리에

바로보기 우리 철학의 길
원효 한국 불교의 뿌리
지눌 정성을 다해도 모래로 밥을 지을 수는 없다
화담 서경덕 종달새를 바라보며 하루해를 보내다
회재 이언적 논쟁을 통해 성리학을 뿌리내리다
퇴계 이황 사람이 말을 부리는가, 말이 사람을 부리는가
율곡 이이 임금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
하곡 정제두 만물의 이치가 내 마음에 있다
연암 박지원 격정의 삶을 살아간 북학의 대두
다산 정약용 농민이 아니면 땅을 가질 수 없다
수운 최제우 사람이 곧 하늘이다
돌아보기 오늘 우리에게 한국철학은 무엇인가

삶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죽음이란 어디로 간단 말인고.
삶이란 한 조각 뜬구름 이는 것이요
죽음이란 뜬구름의 꺼짐이로세.
뜬구름 그 자체가 실없는 것인데
살고 죽고 오고 감이 이와 같구나.
- 원효, "무상(無常)"

내 몸은 진리의 나무요
내 마음은 맑은 거울대이다
때때로 털어 내고 닦아 내서
먼지 끼지 못하게 하자
- 홍인대사의 수제자 신수(神秀)

진리란 본래 나무가 아니며
마음 또한 정해진 틀이 없다네
본래 아무것도 없는 것인데
어디에서 먼지가 인다고 하는가
- 혜능

묻노니 부채를 흔들면 바람이 생기는데
바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만일 부채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부채 속에 언제부터 바람이 있었는가?
만일 부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필경 바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부채에서 나온다고 해도 말이 안 되고
부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 안 되네
만일 허(虛)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오히려 저 부채를 떠나 또 허가 어떻게 스스로 바람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보네
부채가 바람을 몰아칠 수는 있지만
부채가 바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로세
바람이 태허에서 쉬고 있을 때에는
고요하고 맑아서 아지랑이나 티끌 먼지가 일어나는 것조차 볼 수 없다네
그렇지만 부채를 흔들자마자 바람이 곧 몰아치네
바람은 氣라네
氣는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해서
물이 계곡을 꽉 채워 조금의 틈도 없는 것과 같네
저 바람이 고요하고 잠잠할 때는
그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氣가 어찌 빈 적이 있으리오
노자가 '빈 것 같지만 다함이 없어서 움직일수록 더욱 나온다'고 한 것이 이것일세
그 부채를 흔들자마자 몰려가서는 氣가 들끓어서 바람이 부네
- 서경덕, "김재상이 부채를 선물함에 감사하며"(서경덕이 재상 김안국이 부채를 선물로 보내 오자 지은 시)

푸른 옷 긴 소매의 용호장(龍虎將)이 이와 같고 이와 같고 또 이와 같도다. 좋은 때여 좋은 때여, 다시 못 올 좋은 때로다. 만 년 만에 한 번 나오는 장부로서 오만 년 만에 만난 좋은 때로다. 용천검(龍泉劍) 드는 칼을 아니 쓰고 어이하랴. 춤추는 듯한 긴 소매 떨쳐 입고 이 칼 저 칼 넌짓 들어 탁 트인 넓은 천지 한 몸으로 비켜서서, 말 높이 한 곡조로 좋은 시절이여 좋은 시절이여 하고 불러내니, 용천검 날쌘 칼은 해와 달을 희롱한다. 계수나무 덮은 구름 춤추는 듯한 긴 소매가 우주를 덮었다.
- 동학경전에 나오는 칼노래

때를 만나서는 천하도 내 뜻과 같더니,
운 다하니 영웅도 스스로 어쩔 수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위한 길이 허물이 되랴,
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
- 전봉준, <운명(殞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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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11. 1. 11:17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17 고승 진영

글 / 김형우●사진 / 김형우, 윤열수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93

082
빛 12 ㄷ 58


빛깔있는 책들 58

김형우------------------------------------------------------------------------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상명여대, 충남대, 경기대, 동국대 등에 출강하였으며 현재 문화부 문화재 감정위원이다. 논문으로 '호승지공과 고려불교' '해동고승전에 대한 재검토' 등이 있다.

윤열수------------------------------------------------------------------------

원광대학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불교미술사를 전공하였다. 에밀레박물관과 삼성출판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현재 가천박물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한국의 호랑이」「통도사의 불화」「괘불」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고승 진영의 개념
고승 진영의 조성과 봉안
    조성의 시대적 배경
    봉안 장소
유형과 양식적 특징
    형식과 구조
    진영의 전개와 양식적 특징
찬문에 대하여
맺음말
부록
참고 문헌

▲ 영파당 성규 진영 영파당 성규(1728~1812년)는 화엄과 선의 진리를 터득하여 뛰어난 법려과 교화 활동으로 이름이 높앗던 승려로, 안면에서 노승의 경륜을 엿볼 수 있다. 통도사 소장.

▲ 설송당 연초 진영 연초(1676~1750년)는 대선사로 이름이 있던 승려이다. 통도사 소장.

▲ 동명당 만우 진영 통도사 소장.

▲ 진감 국사 진영 진감 국사(774~850년)는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상주 장백사와 지리산 쌍계사에서 선교를 편 고승으로 얼굴이 검다하여 흑두타(黑頭陀)라 불렀다. 상주 남장사 7조사 진영 가운데 하나로 1812년 금어 한암 등에 의해 조성되었다. 남장사 소장.

▲ 송광사 국사전 내부 승보 사찰 송광사의 상징인 16국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정면 중앙에 보조 국사 진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짝수 세(世) 국사의 진영 8위가, 오른쪽에는 홀수 세(世) 국사의 진영 7위가 배열되어 있다.(이들 진영 가운데 13점은 1995년에 도난 당함)

▲ 벽송당 지엄 진영 벽송당(1464~1534년)은 벽계 계정심의 법을 이은 선승으로 이 진영에는 법손(法孫) 서산 휴정의 찬문이 쓰여 있다. 벽송사 소장.

▲ 통도사 개산조당 통도사의 창건주인 자장 율사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 제4세 진명 국사 혼원 진영

▲ 제2세 진각 국사 혜심 진영

▲ 제1세 보조 국사 지눌 진영

▲ 제3세 청진 국사 몽여 진영

▲ 제5세 자진 국사 천영 진영
▲ 송광사 국사전에 봉안된 진영들로서 1780년 금어쾌윤과 복찬에 의해 다시 그려진 것이다.

▲ 연담 세홍 진영 법주사 소장.

▲ 신륵사 조사당 지공, 나옹, 무학의 삼화상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보물 180호.

▲ 청허당 대선사 등 24인 진영 가로 201.5센티미터, 세로 128센티미터, 대흥사 소장.

▲ 진감 국사 등 3인 진영 진감 국사, 남악당, 벽송당 등 쌍계사와 인연이 있는 3인의 진영이다. 원형에 가까운 선상(禪床)에 가부좌하였으며 배경에는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 쌍계사 소장.

▲ 눌암 식활 진영 의자의 좌우 옆에 표범과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 자장 율사 진영 신라시대 황룡사 9층목탑을 세우고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 율사의 이 진영은 바닥에 돗자리를 깐 2단 구도를 취하고 있다. 1804년 양공계한, 화원 성인 등이 조성한 것이다. 통도사 소장.

▲ 호암당 체정 진영 호암당 체정(1687~1748년)은 환성 지안의 제자로서 해인사, 통도사, 선암사 등지에서 무수한 학인들을 지도하였다. 드물게 보이는 선상(禪床) 위의 가부좌상이다. 선암사 소장.

▲ 함명당 태선(1824~1894년) 진영 검정색 바탕에 금니(金泥)로 그려진 의자상의 진영이다. 선암사 소장.

▲ 낙운당 지일(17세기 말엽) 진영 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지만 팔걸이가 있는 등받이에 기댄 모습으로 그려진 진영이다. 통도사 소장.

▲ 만화당 원오 진영 만화당 원오(1694~1758년)는 환성 지안, 호암 체정에게서 법을 배웠으며 화엄의 이치에 통달하여 화엄보살이라고 불리웠다. 배경이 바닥과 벽면의 2단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선암사 소장.

▲ 응암당 희유 진영 응암당 희유(18세기 중엽)는 설송 연초의 제자로 통도사의 나한전과 비로전을 중수하였다. 배경이 벽면과 바닥으로 구분되고 옆에는 경상이 놓여 있다. 통도사 소장.

▲ 성월당 진영 배경이 병풍과 서가, 필통 등으로 장엄되어 있다. 김룡사 대성암 소장.

▲ 밀암당 대엽 진영 자연 암벽 동굴을 배경으로 가부좌한 모습의 진영이다. 김룡사 대성암 소장.

▲ 농암당 가위 진영 이름을 쓴 위패로 진영을 삼았다. 자신의 게송이 적혀 있다. 1895년작. 김룡사 소장.

▲ 원효 조사(617~686년) 진영 호림박물관 소장.

▲ 의상 조사(625~702년) 진영 호림박물관 소장.

▲ 진감 국사 진영 신라시대 선불교 수용에 기여하였고 쌍계사에 육조(六祖)대사의 영당을 세운 진감 국사의 이 진영은 선정인의 수인을 한 의자 가부좌상인데 의자 모습이 특이하다. 1863년작. 쌍계사 소장.

▲ 달마 조사 진영 1812년에 남장사 7조사 진영의 하나로 조성되었다. 일반적인 달마상이 불균제(不均齊)의 미를 특징으로 한 것과 대조가 된다.

▲ 도선 국사 진영 도선(827~898년)은 신라 하대의 선종 승려로 지리와 음양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고승이다. 이 진영은 1805년 화사 도일 비구에 의해 중수되었다. 선암사 소장.

▲ 보조 국사 지눌(1158~1210년) 진영 동화사 소장.

▲ 원감 국사 충지 진영 원감 국사(1226~1292년)는 송광사의 제7세 조사로 그의 시문이 「동문선」에 여러 편 실릴 정도로 문장에도 능하였다. 16국사 진영 가운데 하나로서 1780년에 그려진 것이다. 송광사 소장.

▲ 대각 국사 의천(1055~1101년) 진영 고려시대의 대종교가였던 대각 국사의 이 진영은 1805년 화사 도일 비구에 의해 중수되었다. 선암사 소장.

▲ 보조 국사 지눌의 진영(부분) 동화사 소장본(위), 송광사 소장본(아래).

▲ 각진 국사 복구 진영 송광사에서 오랜 기간 동안 수도와 교화에 힘썼고, 공민왕 대에 왕사로도 활약했던 각진 국사(1270~1355년)는 그 성품이 과묵하여 수다스럽지 않고 맑고 순박하며 곧고 정성스러웠다고 한다. 이 진영은 1825년 선운사에서 화원 장유가 조성하였는데, 자연과 더불어 사유에 잠긴 고승의 면모와 그의 성품이 잘 표현되어 있다.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 지공(?~1363년), 나옹(1320~1376년), 무학(1327~1405년) 진영 이들 삼화상은 고려말의 사회적 모순과 불교계의 갈등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에 대한 개혁 의비를 가졌던 선승들이었다. 조선시대 억불의 분위기에서도 조사 신앙의 대상으로 예배되어 전국의 여러 곳에 진영이 모셔졌다. 이 진영은 1904년 선암사에서 조성 봉안된 것이다.

지공, 나옹, 무학 진영 이 삼화상 진영은 1807년 서봉 인총의 증명하에 양공 의윤이 조성하였다. 나옹과 무학의 모습이 꼭같은 것은 조사 신앙의 예배 대상으로 유형화된 진영이기 때문이다. 통도사 소장.

▲ 청허당 휴정 진영 청허당 휴정의 진영은 거의 모두 승병 지도자의 모습이기보다 자상하고 덕망높은 고승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의 법력과 대사상가로서의 면모를 짐작하게 해준다. 통도사 소장.

▲ 사명당 유정(1544~1610년) 진영 늠름한 기백과 충정어린 기상이 활달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다. 동화사 소장(위), 은해사 백홍암 소장(아래).

▲ 침굉당 현변(1616~1684년) 진영 청허 휴정의 제자인 소요 태능으로부터 법을 받은 학승이다. 얼굴은 원형에 가까워 후덕하고 원만한 모습이지만 꿰뚫어 보는 눈매에서 수행자의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 호암당 약휴(1664~1738년) 진영 침굉 현변의 제자로 경전 공부도 부지런히 하였으며 계율을 엄히 지켰다. 선암사 소장.

▲ 환성당 지안(1664~1729년) 진영 통도사 소장.

▲ 월허당 계청(18세기 중엽) 진영 통도사 소장.

▲ 해송당 관준 진영 1786년작. 통도사 소장.

▲ 추파당 대명 진영 1801년 양공 옥인 작. 통도사 소장.

▲ 경파당 경심(18세기 말엽) 진영 통도사 소장.

▲ 우제당 염일 진영 양공 우영과 화혜가 1835년에 제작한 것이다. 통도사 소장.

▲ 영한당 종열 진영 양공 제한이 1805년에 제작한 것이다. 통도사 소장.

▲ 정봉 경현 진영 김룡사 대성암 소장.

▲ 용계 우홍 진영 김룡사 대성암 소장.

▲ 영월 찬정 진영 김룡사 대성암 소장.

▲ 계월당 진영 김룡사 대성암 소장.

▲ 완파 취관 진영 김룡사 대성암 소장.

▲ 화악당 지탁(1750~1839년) 진영 김룡사 대성암 소장.

▲ 성담당 의전 진영 조선 헌종대에 영의정을 지낸 권돈인(1783~1859년)이 쓴 찬문이 있다. 통도사 소장.

▲ 고암당 태순 진영 근대의 경허 성우(1849~1912년) 스님이 찬문을 썼다. 청암사 소장.

▲ 용암당 채청 진영 이원조(1792~1871년)가 쓴 찬문이 있다. 청암사 소장.






posted by 황영찬
2011. 10. 31. 17:52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16 디카 마니아 너만의 작품을 찍어라!

송하규 지음(
hksong@iarto.com)
2004, 길벗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7948

661.5
송 92 너


프로 사진작가의 촬영 패턴 41

지은이
송하규

강릉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미국 매릴랜드주 아트 컬리지(MICA)에서 Post-Baccalaueate 과정 이수.
다수의 그룹전과 세 번의 개인전 발표.
현재 미술 작품 및 건축물 촬영 전문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수원여자대학과 강릉대학교에서 사진학 강의.
디자인 정글 아카데미에 '디카활용워크샵' 강의. 포토 스튜디오 ARTOGRAPH 대표.
<개인전> Photograph Beyond The Visible(도올 아트 센터)
              Minute Movement(공 갤러리)
              작은 움직임(경인 미술관 아트샵 & 티하우스)
e-메일 : hksong@iarto.com
홈페이지 :
http://www.iarto.com

CONTENTS

                   사진, 이것만은 알고 찍자!

첫째마당 인물 사진 촬영하기
                   01 인물의 내면을 담는 프로필 사진
                   02 테마가 있는 인물 사진
                   03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한 웨딩 사진
                   04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들 사진
                   05 인공 조명을 활용한 인물 사진
                   06 진한 커피 향이 묻어나는 카페 사진
                   07 어둠 속의 움직임을 잡는 야간 인물 사진
                   <포토 에세이> 기다림
                   <포토 에세이> 벽에 붙어 있는 사람
                   <포토 에세이> 애매모호
                   <포토 에세이> 모델이란?

둘째마당 풍경 사진 촬영하기
                   08 하늘의 마술, 일출 일몰 사진
                   09 태초의 생명력을 간직한 바다 사진
                   10 신비로운 색채의 하늘 구름 사진
                   11 감성을 깨우는 안개 사진
                   12 인내로 만드는 웅장한 산 사진
                   13 비 오는 추억의 설경 사진
                   14 비 오는 날의 풍경 사진
                   15 고향의 서정을 담는 전원 사진
                   16 생명력을 드러내는 물 사진
                   17 고정 관념에서 탈피한 일상의 풍경 사진
                   <포토 에세이> 정돈된 사진
                   <포토 에세이> 생활 속 미술
                   <포토 에세이> 도시인
                   <포토 에세이> 어우러짐

셋째마당 야경 사진 촬영하기
                   18 매력적인 불빛의 야경 사진
                   19 환상적인 빛의 드로잉,자동차 불빛 사진
                   20 밤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불꽃놀이 사진
                   21 한강의 아름다운 야간 다리 사진
                   22 추억이 가득한 야간 놀이동산 사진
                   23 거대한 생명체로 둔갑하는 야간 건물 사진

                   24 따뜻한 동화 속 세상, 촛불 사진
                   <포토 에세이> 마음으로 보는 풍경
                   <포토 에세이> 지하철 물고기
                   <포토 에세이> 의미 부여하기
                   <포토 에세이> 보이지 않는 곳

넷째마당 접사 사진 촬영하기
                   25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 클로즈업 사진
                   26 순수한 화려함의 극치, 꽃 사진
                   27 다양한 표정의 곤충 사진
                   28 초록빛 생명으로 피어나는 나뭇잎 사진
                   29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런 음식 사진
                   30 프로가 부럽지 않는 제품 광고 사진
                   31 순간 포착의 신비, 물방울 사진
                   32 일상에서 찾아낸 새로운 시각, 잡동사니 사진
                   <포토 에세이> 진실 혹은 거짓(Ⅰ)
                   <포토 에세이> 진실 혹은 거짓(Ⅱ)
                   <포토 에세이> 장미 한 송이
                   <포토 에세이> 마네킹

다섯째마당 매력적인 사진 촬영하기
                  33 디테일보다는 분위기를 살리는 실루엣 사진
                  34 새로운 느낌으로 다시 태어나는 연출 사진
                  35 작가의 혼을 담아내는 미술 작품 사진
                  36 공간 미학의 결정, 건축물 사진
                  37 생생한 현장의 열기, 무대 공연 사진 
                  38 또 다른 반쪽을 찾아내는 반사 사진
                  39 행복한 웃음을 선사하는 애완 동물 사진
                  40 풍부한 톤의 흑백 사진
                  41 포토샵 리터칭으로 사진 재창조하기
                  <포토 에세이> 공무원 아파트
                  <포토 에세이> 연속된 영상과 정지된 사진 한 장
                  <포토 에세이>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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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10. 27. 18:51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15 불화 그리기

글 / 박정자●사진 / 석선암
1994,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0279

082
빛 12 ㄷ 57

빛깔있는 책들 57


박정자------------------------------------------------------------------------

'71년 인간문화재 제48호 만봉 이치호 선생님 문하에 입문하였다. '84년 일본 아시아 현대 미술 대상전에서 특별상을 비롯하여 '85년 제10회 전승 공예 대전에서 특별상, '86년 제11회 전승 공예 대전에서 대통령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88년 준인간문화재로 지정받았으며 현재 박정자 전통 불화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석선암------------------------------------------------------------------------

'88년 한국 관광 공사 사진 공모전에서 준우수상을 비롯하여 제50회 일본 아사이 신문 국제 사진 공모전에서 입선 등 개인 사진전을 2회 가진 바 있다. 현재 한국 불교 신문사 사진부 기자이며 한국 불교 태고종 봉원사 교무로 있다. 사진집으로 「영산재」가 있다.

|차례|

머리말
탱화의 종류
불화의 색 구조와 습화법
불화 만들기
    탱화 제작 과정
    불화 그리기
맺음말

▲ 흥국사 극락구품도

▲ 수국사 극락구품도
아미타 극락 9품도 극락의 모습을 9품으로 나누어 묘사한 것이다. 곧 9칸 가운데 중앙의 상단은 아미타여래의 설법 광경, 그 아래는 궁전, 그 밖의 7칸은 왕생인의 근기에 따른 극락 세계와 왕생 장면이다.

▲ 영산회상도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 보현보살과 10대 제자, 사천왕 등을 배치한 상단탱화이다. 직지사 소장.

▲ 신중탱화 동진보살을 중심으로 위에는 제석천왕과 대범천왕, 일천자, 월천자, 산신, 용왕신, 서낭신, 조왕신 등 모두 34위의 신중을 표현하였다. 불영사 소장.

▲ 삼장 탱화 천장, 지장, 지지보살은 전통적인 3계 우주관(천상, 지상, 지하)을 융섭, 체계화하여 불교화한 그림이다. 왼쪽은 지장보살, 가운데는 천장보살, 오른쪽은 지지보살이다. 봉원사 소장.

▲ 시왕초(왼쪽)와 신중초(오른쪽) 초(草)란 그림을 그리는 바탕 그림 곧 화본을 말하는 것이다.

 

▲ 증장천왕의 화본

▲ 광목천왕의 화본

▲ 탱화초 등긋기 탱화초를 밑에 놓고 그 초 위에 화선지를 올려 놓은 다음 가는 붓으로 먹이 번지지 않도록 화선지에 비친 탱화초를 따라 선을 긋는다.

▲ 보살초 초를 밑에 놓고 손모양, 얼굴의 윤곽선이 매끈하고 곱게 그리도록 여러번 그려 손에 익힌다.

▲ 여래초 부처님의 얼굴은 32상 80종호의 규격에 맞도록 그리고 몸을 그릴 때에는 7등신 내지 8등신으로 그린다.

▲ 탱화 바탕 채색 탱화에서 제일 먼저 칠하는 색은 주홍이다. 가사와 보관 장식, 연꽃, 치전 등에 주홍을 칠한 뒤 삼청, 양록, 육색 장단, 보라, 백록, 연지, 황, 흑색의 순서로 칠한다.

▲ 영산회상도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대표적인 상단탱화이다.

▲ 능화문양 벽화는 주로 상서로운 짐승인 용이나 봉황 금문양, 능화 문양을 꿰고 엮어서 극채색한다.













 
posted by 황영찬
2011. 10. 26. 16:01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14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정재영 지음
2008, 풀빛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26083

160
정 73 ㅊ 1

20세기 비엔나에서 고대 아테네까지
유럽으로 떠나는 2500년 서양 철학 이야기!

20세기 비엔나에서 고대 아테네까지
철학과 유럽 도시의 유쾌한 만남!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는 여행의 형식을 빌린 서양 철학사다. 이 철학 여행을 등산에 비유한다면, 크고 작은 산이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는 철학의 험준한 산맥을 종주하는 것이다.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는 서양 철학의 흐름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열두 봉우리로 여러분을 안내한다. 20세기 비엔나에서 고대 아테네까지, 매력적인 유럽 도시들을 탐사하는 이 철학 여행 열두 장면은 각각 독립적이다. 그러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긴 철학 종주 여행이 된다는 점이 이 책이 지닌 큰 미덕이다.

이 책은 간행물윤리위원회의 '2008 우수출판기획안 공모전' 당선작입니다.

나는 이 책을 "생각의 역사"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그리고 이 책을 시작으로 하는 '생각의 3부작'을 꿈꾸고 있다. "생각의 전쟁"과 "생각의 함정"이 그 후속이다.

"생각의 역사"가 수천 년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시점, 그리고 그 결정적인 시기에 중심 무대로 기능했던 도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생각의 전쟁"은 서양 철학에서 끈질기게 대치하고 경쟁했던 사상의 충돌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생각의 역사"가 점과 점으로 이루어진 구조라고 한다면, "생각의 전쟁"은 선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유럽의 도시에서 도시로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길을 따라간다. "생각의 전쟁"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승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에서 사라진 패자가 그 주인공이다.

한편 "생각의 함정"은 생각의 전쟁에서 승리한 자의 오만과 독선이 이야기의 큰 줄거리다. 나는 그 독선이 생각이 존재의 문제를 외면하는 데서 생겨안다고 본다. 철학적 리얼리즘을 지지하는 내가 '존재의 귀환'에 큰 희망을 걸고 있는 이유다.

지은이 정재영

그는 20대에 한 번, 그리고 40대에 또 한 번 대학에서 철학 훈련을 받았다. 낙타가 무거운 짐을 지기 위해 스스로 무릎을 꿇듯이, 삶의 무게를 한번 재보고 싶다는 치기가 항상 있었던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를 나왔다. 그리고 나이 40에 영국으로 건너가 워릭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사회 존재론. 인간이 만든 사회의 존재론적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관심사다. 20대와 40대 사이에는 언론사 기자로 일했다. 그 시절을 월급 받으면서 인간과 사회를 보는 눈을 닦았던 유쾌한 훈련으로 그는 기억한다. 지금 대부산 중턱에서 살고 있다.

contents
차례

1

프롤로그_유럽 철학 여행을 떠나기 전에

PART 1
현대 철학 지도 새로 그리기 _ 서양 현대 철학

    CHAPTER 1 이 세상에 풀 수 없는 수수께끼는 없다 비엔나
    CHAPTER 2 철학의 새 천년, 1968년에 시작하다 파리
    CHAPTER 3 우리는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다 실재의 귀환

PART 2
근대적 세계관의 출발점을 찾아서 _ 서양 근대 철학 1

    CHAPTER 4 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피렌체
    CHAPTER 5 이성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빛이다 암스테르담
    CHAPTER 6 하얀 백지에 인간 사회를 그리다 에든버러

● 철학 여행을 더 하고 싶은 이들을 위하여
● 찾아보기

2

PART 2
근대적 세계관의 출발점을 찾아서 _ 서양 근대 철학 2

    CHAPTER 7 계몽의 철학적 주춧돌을 완성하다 쾨니히스베르크
    CHAPTER 8 절대정신의 세계 역사를 정리하다 베를린
    CHAPTER 9 근대 프로젝트를 새로운 틀로 바꾸다 런던
    CHAPTER 10 근대가 꿈꾼 인간은 허구다 바젤

PART 3
서양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_
서양 고대 및 중세 철학

    CHAPTER 11 생각이 막히면 고대 그리스로 떠난다 아테네
    CHAPTER 12 유럽이 만들어지다 로마로 가는 길

에필로그 _ 유럽 철학 여행을 마치면서

● 철학 여행을 더 하고 싶은 이들을 위하여
● 찾아보기

PART 1
현대 철학 지도 새로 그리기
||||
서양 현대 철학

CHAPTER 1 이 세상에 풀 수 없는 수수께끼는 없다 ▒ 비엔나

비엔나는 근대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진 두 얼굴의 도시다. 이 점이 근대 유럽 문화를
대표하는 다른 도시들과는 다르다. 피렌체는 중세의 길고 긴 터널을 벗어난 근대 여명기의 기쁨이
가득하다. 런던은 세계 표준을 만든 주역 도시로서의 긍지가 넘친다. 그래서 근대가 가진
이중성을 읽기에는 비엔나가 제격이다. 유럽의 동서와 남북의 문화가 비엔나에서 교차하듯,
근대가 가진 빛과 그림자는 비엔나에 잘 녹아 있다. 마치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해서
우아한 모양과 맛으로 변화시킨 비엔나커피처럼.

이질적인 요소의 결합인 하이브리드는 비엔나 문화의 한 특성이다.
사진은 비엔나 벨베데레 상궁 앞에 있는 반인반수의 하이브리드인 스핑크스 조각상.

그리스 아티카 지방에서 출토된 도자기에 새겨진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기원전 470~430년경. 바티칸 박물관 소장.

프랑스 파리 시청사의 스핑크스. 1870년대 작품.

콜롬비아 출신의 현대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가 만든 뚱뚱한 스핑크스 조각상.
콜롬비아 제2도시 메데진에 있다.

로마 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비엔나 출신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벽화 <철학>.
이 그림은 1945년 화재로 건물이 불타면서 함께 소실되었다.

비엔나 대학.

비엔나 '카페 센트럴'.

비트겐슈타인 하우스. 이 건물은 비트겐슈타인의 누이 마가레트의 집으로,
비트겐슈타인이 비엔나에 잠시 머물 때 건축가 파울 엥겔만과 함께 완성한 집이다.

CHAPTER 2 철학의 새 천년, 1968년에 시작되다 ▒ 파리

근대의 끝은 어디인가. 도대체 어느 지점이 근대의 종착역인가. 근대를 설계한 기획자들은 그
마지막 단계를 상정하지 안았음에 분명하다. 그들은 근대의 설계를 '하얀 백지'에서 시작했지만,
그 설계도가 근대 이후의 시대에 또 하나의 백지로 취급받을 것이라는 점은
아예 상정하지 않았다. 1968년 파리에서는 우리가 근대라고 부르는 역사의 한 시대가
마감되었다는 사인이 나타났다. 아직은 무엇이라고 규정하기 힘든, 그래서 편의상
'근대 이후에 온 것포스트모더니티'이라고 부르는 새 시대의 징후다.


 

파리 낭테르대학. 세계를 한 바퀴 돈 68운동은 이 대학에서 시작되었다.
 

1968년 5월 파리 시위 당시에 등장했던 포스터들.

비트겐슈타인이 《철학 논구》에 직접 그린 오리-토끼.
보기에 따라서 오리로도 보이고, 토끼로도 보인다.

자연인가 예술인가? 사진을 세로로 세우면 영락없는 기도하는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이다.

《포스트모던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사진 포털 사이트 플리커(
www.flickr.com)에 올라있는 사진이다.

낭테르대학 전철역. 이곳에서 전철을 타면 파리 메트로 지하철과 연결된다.

CHAPTER 3 우리는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다 ▒ 실재의 귀환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위치한 시간과 공간 좌표에서 세계를 본다. 그리고 각자가 속한
특정 문화의 시각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한다. 지도에 비유하지만 유럽이 그리는 세계는
유럽이 중심인 세계 지도와 비슷하고, 아시아가 그리는 세계는 아시아가 중심인 세계 지도와
비슷하며, 오스트레일리아가 바라보는 세계는 남반부가 중심이 된 세계 지도에 근접해 있다.
우리는 과연 자신의 관점을 뛰어넘는 세계를 정확하게 그릴 수 있을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하나의 세계가 아닌, 복수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말인가?

태평양이 지도의 중심에 자리한 세계 지도. 태평양 중심 지도
또는 아시아 중심 지도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되는 지도다.

아메리카 대륙이 중심을 차지하는 세계 지도.
미국과 캐나다 등 아메리카에서 많이 사용하는 지도다.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이 중심을 차지하는 세계 지도. 세계 지도의 표준처럼 사용된다.

남북이 뒤집힌 맥아더 수정판 세계 지도. 오스트레일리아가 세계의 중심에 있다.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지구. 오른쪽에 한반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닭싸움. 발리 닭싸움은 돈을 건 단순한 도박이라고 규정하기도 어렵고, 권투 경기와 같은 스포츠 관전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며, 종교의식으로 환원할 수도 없다.
PART 2
근대적 세계관의 출발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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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근대 철학 - 1

CHAPTER 4 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 피렌체
'내 눈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는 원근법은 르네상스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중세 시대에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추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것은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르네상스는 그것을 뒤집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원근법에 기초해서 그림을 그렸더니, 추하지 않고 충분히 아름다웠다. 투시도에 기초해서 설계한
건축물은 부실하지 않고 튼튼했다. 새로운 시대, 곧 근대가 열렸다는 것은 내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한 '근대적 인간'이 등장했다는 뜻이다.

조르지오 바사리가 1550년에 쓴 《뛰어난 건축가, 화가, 조각가들의 전기》.
보통 《전기》라고 줄여서 부르는 이 책을 바사리는 메디치 가문에 헌정했다.

우피치 미술관 복도.

우피치 미술관 외부 풍경. 두 건물 사이로 자연스럽게 도로가 생겨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 1495~1498년 작.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에 수도원 식당에 그려진 벽화다.

피에트로 로렌제티가 그린 <최후의 만찬>. 1320~1330년 작.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아래쪽 성당에 그려진 벽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 다빈치가 그린 밑그림을 누군가가 채색해서 완성한 그림이다.

다빈치가 직접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 밑그림 스케치.

영국 윈저성의 왕립도서관에 소장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 <최후의 심판>. 1534~1541년 작.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피렌체 시청 앞에 있던 이 동상은 보존상의 문제로 현재는 피렌체 아카데미아 건물 안으로 옮겨져 있다.

목성 주위를 도는 네 개의 갈릴레오의 달. 위로부터 이오, 유로파, 칼리스토, 가니메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목성 주위를 도는 달을 발견한 것은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돈다는 천문학의 기반을 흔드는 대사건이었다.

CHAPTER 5 이성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빛이다 ▒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에서 우리는 17세기 황금빛 흔적을 만난다. 네덜란드에서 '황금시대'라고 부르는
17세기의 암스테르담은 대서양과 인도양에서 무역 상품이 쏟아져 들어오는 세계 무역의 전시장이
었으며,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찾아온 자유의 땅이기도 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카르트는 이곳에서 새 시대의 철학을 선보였으며, 삶과 철학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근대 철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되는 스피노자의 무대 역시 이곳이었다. 화가 렘브란트가
이 도시에서 빛의 세계를 선보였듯이, 근대 철학의 빛은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되었다.

x축과 y축을 교차시킨 데카르트의 평면 좌표. 2차원 평면상의 모든 점의 위치를 표시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초판. 1637년 네덜란드 레이덴에서 프랑스어로 출간되었으며, 라틴어 번역본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165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놔왔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초한 으톨레마이오스 천체도.
1539년 안트워프에서 출판된 도해도다.

CHAPTER 6 하얀 백지에 인간 사회를 그리다 ▒ 에든버러
에든버러를 무대로 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는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이성의 기획'을 대치한
'경험의 기획'을 선보였다. 오늘의 세계는 정부보다 시장의 역할을 중시하는 경향이
오히려 더 강하다. 과거에는 정부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생각했던 사회복지 분야를
시민 사회에 맡기거나, 또는 시민 사회와 함께해야 할 일로 생각한다. 그 사상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와 만나게 된다.

에든버러 로열 마일에 있는 데이비드 흄 조각상.
그는 근대 경험주의 철학의 완성자인 동시에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설계자이기도 하다.

에든버러 성.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