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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에 해당되는 글 142건

  1. 2011.12.09 2011-133 세상과 소통하는 힘 주역
  2. 2011.12.01 2011-132 명절 음식
  3. 2011.12.01 2011-131 여름음식
  4. 2011.11.30 2011-130 서울에 취하다
  5. 2011.11.29 2011-129 노자평전
  6. 2011.11.28 2011-128 봄가을 음식
  7. 2011.11.24 2011-127 겨울 음식 1
  8. 2011.11.22 2011-126 공문의 사람들
  9. 2011.11.18 2011-125 디지털 건축사진
  10. 2011.11.16 2011-124 노장사상
2011. 12. 9. 07:43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33 세상과 소통하는 힘 주역

심의용 지음
2007, 아이세움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12509

141.2
심 67 세


 인류를 이끌어 온 고전의 향기를 맡는다
나의●고전●읽기

우주와 인간의 의미를 캐는 진지한 탐구

처음 주역을 대했을 때 나는 그 애매모호한 구절들에 매혹되었다.
그 어떤 언어가, 미묘하고 복잡한 인간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그런 애매모호함이, 살아 꿈틀거리는 인간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상상력 넘치는
경전에는 우주의 운행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있었다.
부족했던 것은 나의 감수성과 상상력이었으며,
그들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였다.
- 본문 중에서

심의용

숭실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정이천의 『주역』해석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의 고전과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하나의 거대한 권력장이라 할 만한 우리 현실의 여러 관계들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행위와 감정의 구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주역, 마음속에 마르지 않는 우물을 파라』, 『주역과 운명』, 『못말리는 아인슈타인에게 말걸기』(공저) 등이 있다.

김미진(그림)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학과를 졸업하고 Who's Who? 그룹전 등 다수의 전시회를 열었으며, 현재 Si illustration 그림책 연구소에서 공부중이다. 맹렬한 유희정신을 바탕으로 순수하고 진실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한다.

 
|차례|

머리말 ● 주역, 미래를 보는 책
프롤로그 ● 변화와 소통을 위하여

1 주역이란 무엇인가

   주역의 기원과 구성
   변화의 의미
   점술과 철학
   감정의 기호학
   변화로 들어가는 문
   독수리와 뱀
   이카로스와 과보

2 모든 것은 변화한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교태전의 의미
   아름다운 장미도 언젠가는 시들 뿐
   칩거하는 뱀
   내일이면 늦으리
   꼬리를 적신 어린 여우

3 계몽과 혼돈

   마음의 궁핍
   미성숙과 계몽
   성인과 『격몽요결』
   혼돈의 새, 제강
   혼돈 속의 질서, 카오스모스

4 변화를 위한 투쟁

   자기반성과 싸움
   와신상담과 기다림
   음식과 영양 보충
   인정 투쟁
   봄바람과 가을 이슬

5 시집가려는 공자

   혜강의 「광릉산」
   공자의 꿈
   예의를 갖춘 사랑
   미래의 징조
   진퇴의 변통

6 차이의 소통과 연대

   모노산달로스와 예의
   공자의 화이부동
   차이의 정치학
   진실과 배려
   금란지교와 연대

7 우물과 큰 수레

   아레테와 덕
   우물과 맑은 물
   큰 수레와 지위
   정오의 태양

에필로그 ● 광기를 찾아서
더읽을 책들
부록 1 ● 주역과 관련한 간략한 중국사 연표
부록 2 ● 64괘와 상전象傳 풀이

 
궁하면 변화하게 되고 변화하면 소통하게 되고 소통하면 지속 가능하게 된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사계절이 변화하여 항구성을 이루고, 성인이 그의 도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천하의 교화를 완성한다.
四時變化而能久成, 聖人久於其道而天下化成

세상의 이치를 궁구하고 자신의 본성을 다하여 운명에 이른다.
窮理盡性以至於命.

자신을 변화시켜 현실과 효과적으로 소통해서 최선의 이로움을 창출한다.
變而通之以盡利.

너무 마음이 좋아서 조악한 사람이 되지는 마라. 그런 사람은 결코 화낼 줄 모른다. 이는 타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능력에서 오는 것이다. 적당한 때에 감응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새들도 허수아비를 조롱할 줄 안다.
- 라로슈푸코(프랑스 작가)

친구에게 배신 당하는 것보다 친구를 믿지 않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다.
- 라로슈푸코(프랑스 작가)

▲ 라로슈푸코(1613~1680)는 순진한 성격이었으나, 배신과 음모가 판치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기에, 인간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마음 좋게 행동하려고만 할 줄 알고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바보가 되는 폐단이 생긴다. 믿음만을 좋아하면서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남을 해치게 되는 폐단이 생긴다.
- 『논어』양화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호밀밭의 파수꾼』중에서

 
 괘명  건乾 태兌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자연 하늘  연못  불  우레  바람  물(비)  산  땅 
 인간  아버지  소녀  차녀 장남  맏딸  차남  소년  어머니 
 성질  굳셈  즐거움 화려함  움직임  우유부단  빠져듦  고요함  유순함 
 신체  머리 입  눈  발  다리  귀  손  배 
 방위 서북쪽  서쪽  남쪽  동쪽  동남쪽  북쪽  동북쪽  서남쪽 



하늘에서 각종 현상이 성립하고 땅에서 각종 형태들이 성립하니 변화가 드러난다.

在天成象, 在地成形, 變化見矣.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다투니 변화가 생겨난다.
剛柔相推而生變化.

『역』에는 성인의 도가 네 가지 들어 있다. 『역』을 가지고 말하려는 자는 그 풀이를 숭상하고, 행동하려는 자는 그 변화를 숭상하고, 문명의 제도를 만들려는 자는 그 상징을 숭상하고, 미래를 점치려는 자는 그 점을 숭상한다.
易有聖人之道四焉, 以言者尙其辭, 以動者尙其變, 以制器者尙其象, 以卜筮者尙其占.

▲ 왕필(王弼, 226~249) 어려서부터 천재라고 불린 왕필은 위진시대 현학의 대표자이지만, 아쉽게도 요절하고 말았다.

문자는 살아 있는 언어를 완전히 표현할 수 없고, 언어는 마음속의 뜻을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인의 뜻은 알 수 없는가? 그래서 성인은 상징을 만들어서 그 뜻을 완전하게 표현하려고 했고, 괘를 만들어서 진실과 거짓을 완전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書不盡言, 言不盡意. 然則聖人之意其不可見乎? 子曰, 聖人立象以盡意, 設封以盡情僞.

8괘는 상징으로 말하고, 효사와 단사는 정情으로 말한다.
八封以象告, 爻彖以情言.

성인은 괘를 만들어서 그 상을 관찰하고 풀이를 붙여서 길흉을 밝혔다.
聖人設封, 觀象, 繫辭焉而明吉凶.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 비트겐슈타인은 서양 전통 철학의 기초를 뒤집었다고 평가된다. 그래서인지 그는 동양의 불교와 노자, 장자와 비교 연구되기도 한다.

건곤은 역으로 들어가는 문인가.
乾坤, 其易之門邪.

생성하고 다시 생성하는 것, 그것을 일컬어 변화라고 한다.
生生之謂易.

  곤 
 하늘[天]  땅[地]
 아버지[父]  어머니[母]
 활동성[陽]  감수성[陰]
 창조성  수용성
 강건함  유순함
 능동적인 결단  수동적인 순종
 지속적인 강건함  유연한 적응력
 드높은 이상  현실감각
 완전한 앎  폭넓은 실천력
 위대함[大]  광대함[廣]
 수직적 높이  수평적 넓이
 공평무사  광대무변

신묘한 작용은 어떤 장소에서든 일어나고, 변화에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
神無方而易無體.

▲ 독수리와 뱀. 차라투스트라가 사랑한 독수리와 뱀은 하늘을 상징하는 건과 땅을 상징하는 곤을 잘 설명해준다.

저 태양 아래에서 가장 긍지 높은 짐승이자 저 태양 아래에서 가장 영리한 짐승이다. ……사람들과 더불어 있는 것이 짐승들과 더불어 있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임을 나는 깨달았다. 그런데도 나 차라투스트라는 위험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나의 짐승들이여, 나를 인도하라.!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욱더 영리해지고 싶다. 나의 뱀처럼 철저히 영리하고 싶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나는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불가능을 바라는 나의 긍지가 항시 영리하게 실천되기를 나는 바란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광기의 철학자 니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풍파 없는 항해는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

하늘과 땅이 자리를 잡으니 변화가 그 가운데에서 이루어 진다.
天地設位, 而易行乎其中矣.

주역을 통하여 성인은 인간의 덕을 숭상하고 공적을 넓게 세운다. 앎은 드높이 숭고하지만 그것의 실천은 지극히 낮고 겸손하다. 숭고한 앎의 높이는 하늘을 본받아야 하고, 겸손한 실천의 낮음은 땅을 본받아야 한다.
夫易, 聖人所以崇德而廣業也. 知崇禮卑, 崇效天, 卑法地.

▲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에게 깃털 날개를 주며 말한다. "너무 낮게 날지 말아라. 그러면 바다의 안개가 네 눈을 무겁게 할 것이다. 너무 높게도 날지 말아라. 뜨거운 태양이 네 날개의 밀랍을 녹일 것이다. 중간의 높이로 적절하게 날아야 한다."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앞쪽 중앙에 왼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이가 헤라클레이토스(BC 535~ BC 475).

▲ 강녕전에서 양의문을 지나면 교태전이다. 교태전 뒤에 후원인 아미산이 있다. 아미산의 굴뚝은 여러 문양의 형태와 구성이 매우 아름답다.

기울어지지 않는 평탄함은 없고, 돌아오지 않는 나아감은 없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인내하면 허물은 없다. 자기 진실을 의심하지 말라. 먹는 것에 복이 있다.
無平不陂, 無往不復, 艱貞, 無咎, 勿恤, 其孚, 干食, 有福.

황토로 쌓아 올린 성이 다시 황토로 돌아간다. 강제적인 무력을 쓰지 말라. 자신의 마을에 명령을 내린다. 편협한 지조는 위험하다.
城復干隍, 勿用師, 自邑告命, 貞, 吝.

지나치게 올곧은 태도를 드러내는 것은 이롭지 않다.
不利君子貞.

가는 것은 움츠려들었기 때문이고 오는 것은 펼쳤기 때문이다. 움츠리고 펼침이 서로 감응하여 이로움이 생긴다. 자벌레가 굽히는 것은 펼치기 위해서이고 뱀이 칩거하는 것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往者屈也, 來者信也, 屈信相感而利生焉. 尺蠖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 以存身也.

하늘과 땅이 교류하지 못하는 모습이 비괘이다. 군자는 이러한 때에 능력을 감추고 난세를 피하니, 헛된 지위나 돈으로 영예를 얻는 것은 옿지 않다.
天地不交否, 君子以儉德辟難, 不可榮以祿.

그 무리와 함께 올바름을 지키면 길하여 형통한다.
拔茅茹, 以其彙, 貞, 吉.

명령이 있다면 허물이 없다. 무리들이 복을 받는다.
有命, 無咎, 疇, 離祉.

막힘의 상황이 기울어진다. 처음에는 막혔지만 나중에는 기쁘게 된다.
傾否, 先否, 後喜.

변화의 기회를 발견햇다면 하루가 다 가기를 기다리지 말고 즉시 실행하라.
見幾而作, 不俟終日.

배 밑바닥의 틈으로 물이 새어 들어와 젖으니 누더기로 틈을 막는다. 종일토록 경계한다.
濡有衣袽, 終日戒.

동쪽 이웃이 소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것보다 서쪽 이웃이 검소한 제사를 올려 실제로 복을 받는 것이 더 좋다.
東隣殺牛, 不如西隣禴祭, 實受其福.

어린 여우가 강을 거의 다 건넜는데 꼬리를 적신다. 이로울 게 하나도 없다.
小狐汔濟, 濡其尾. 無攸利.

시가 시인을 궁핍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궁핍해진 다음에야 시가 더욱더 섬세해지고 기교가 있게 된다.
- 구양수,  「매성유시집서」

하늘이 나에게 중대한 임무를 내려 주시기 전에 먼저 반드시 나의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나의 뼈와 근육을 힘들게 하며, 나의 몸과 살을 주리게 하고 나의 몸을 궁핍하게 하여, 하고자 하는 일을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서 나의 마음과 본성을 단련시켜 부족한 역량들을 더욱 증진시켜 준다.
- 『맹자』고자상

계몽이란 스스로 타인에게 이성적 숙고와 판단을 대신 부탁하는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숙'이란 타자의 안내 없이는 자기 자신이 이해한 것들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말한다. 만약 이런 미성숙의 원인이 이해의 결핍이 아니라, 타인의 안내 없이는 그것을 사용할 해결책과 용기의 결핍에서 온 것이라면, 미성숙은 자기 책임이다. 그러므로 계몽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과감하게 현명해져라! 너 스스로 이해한 것을 사용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  칸트,『계몽이란 무엇인가?』

미성숙하지만 형통할 수가 있다. 내가 몽매한 어린이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몽매한 어린이가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처음 점을 쳐서 가르침을 요구하면 가르쳐 준다. 그러나 두세 번 반복해서 되물으면 모독하는 것이니, 모독하면 가르쳐 주지 않는다. 뜻을 곧게 지키고 인내하면 이롭다.
蒙, 亨, 匪我求童蒙, 童蒙求我, 初筮, 告, 再三, 瀆則不告, 利貞.

이율곡, 『격몽요결』의 구사구용九思九容

구사九思 - 아홉 가지를 생각하라

1. 시사명視思明. - 사물을 볼 때 분명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선입관을 가지지 말라.
2. 청사총廳思聰. - 어떠한 말을 들을 때 그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3. 언사충言思忠. - 말을 할 때는 진실하게 해야 한다. 혹시 무책임한 말을 하고 잇지는 않나 깊이 생각하면서 말해야 한다.
4. 색사온色思溫. - 얼굴 표정을 온화하고 따뜻하게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먼저 따스한 인상을 전하는 것이 좋다.
5. 모사공貌思恭. - 자기의 용모와 태도가 늘 남을 존중하는 자세를 지키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6. 사사경事思敬. - 어떤 일을 하든지 신중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처리하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7. 의사문疑思問. - 의심이 나면 아랫사람일지라도 물어봐야 한다. 자기 독단은 위험하다.
8. 분사난忿思難. - 분한 일을 당했다고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9. 견득사의見得思義. - 뜻하지 않은 이득이 생겼을 때 그 이득이 정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구용九容 - 아홉 가지의 몸가짐이다.

1. 족용필중足容必重. - 발걸음은 정중하고 무거워야 한다. 경망스러운 행동은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2. 수용필공手容必恭. - 손을 가지런히 모아야 한다.
3. 목용필단目容必端. - 눈은 똑바로 단정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눈을 돌리고 곁눈질하는 모습은 불안하게 보인다.
4. 구용필지口容必止. - 입은 반드시 다물어야 한다. 말을 조심하라는 말이다.
5. 성용필정聲容必靜. - 목소리는 반드시 고요해야 한다. 말하는 목소리와 분위기가 중요하다.
6. 두용필직頭容必直. - 머리는 삐딱하지 않게 똑바로 한다.
7. 기용필숙氣容必肅. - 기상과 용모는 반드시 엄숙해야 한다. 부드럽지만 위엄 있는 모습을 지녀야 한다.
8. 입용필덕立容必德. 서 있는 모습에서 반드시 후덕함이 묻어 나와야 한다.
9. 색용필장色容必莊. - 얼굴은 반드시 씩씩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울하고 찡그린 인상은 보기에도 좋지 않다.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해도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서 성취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옛날의 습관들이 가로막아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 『격몽요결』

▲ 조선시대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던 기호학파를 일으킨 율곡 이이(李珥, 1536~1584). 그를 기리기 위해 후학들은 경기도 파주에 자운서원을 세웠다.

▲ 1577년 율곡이 일반 사람들을 위해 저술한 『격몽요결』. 1장은 입지, 2장은 혁구습, 3장은 지신, 4장은 독서, 5장은 사친, 6장은 상례, 7장은 제례, 8장은 거가, 9장은 접인, 10장은 처세로 구성되어 있다.

천산天山이라는 곳에서는 금과 옥이 많이 난다. ……영수英水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양곡暘谷에 흘러든다. 이곳의 신은 그 형상이 누런 자루 같은데, 붉기가 빨간 불꽃 같고 여섯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날개를 갖고 있으며 얼굴이 전연 없다. 춤과 노래를 잘할 줄 아는 이 신이 바로 제강帝江이다.

▲ 기원전 3~4세기 전국시대 초나라의 무당 계층이 편집한 『산해경』에 나오는 제강帝江은, 신비하고 괴상한 혼돈의 새이다.

혼돈이다. 크게 형통할 수 있으니 자신의 뜻을 굳게 인내하며 지켜야 한다. 함부로 경거망동하면서 일을 벌이지 말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조력자를 찾는 것이 이롭다.
屯, 元亨, 利貞, 勿用有攸往, 利建候.

인간은 하나의 춤추는 별을 탄생시킬 수 있기 위해 자신의 내부에 혼돈을 간직하고 있어냐만 한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끝이란 말인가. 나는 아직 자신의 잘못을 알고 마음속으로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內自訟]을 보지 못했다.
- 『논어』공야장

송사를 처리하는 것[聽訟]은 나도 남과 비슷할 테지만, 나는 반드시 세상에서 송사가 없게 만들 것이다.
- 『논어』안연

구름이 하늘 위로 오르는 모습이 수괘이다. 군자는 먹고 마시며 잔치를 열어 즐거워한다.
雲上於天, 需, 君子以飮食宴樂.

기다림에 믿음이 있어서 밝게 형통할 수 있다. 올곧은 뜻을 지켜 나가면 길하다. 그러면 큰 강을 건너도 이롭다.
需, 有孚, 光亨, 貞, 吉, 利涉大川.

싸움이다. 믿음을 가지고 소통되지 않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대처하라. 중간에서 멈추면 길하고 끝까지 가면 흉하다. 큭 사람을 만나면 이롭고 큰 강을 건너려고 하면 이롭지 않다.
訟, 有孚, 窒, 惕, 中吉, 終凶, 利見大人, 不利涉大川

끝까지 소송을 일삼을 것은 아니다. 비난의 말들이 있겠지만, 결국에 가서는 길하다.
不永所事, 小有言, 終吉.

혹 싸움에서 이겨 임금으로부터 가죽 띠를 하사받더라도 하루아침도 못 되어 세 번이나 빼앗길 뿐이다.
或錫之鞶帶, 終朝三褫之.

늦타인을 아는 자를 지혜롭다고 할지 모르지만 자기를 아는 자야말로 지혜롭다. 타인을 이기는 자를 힘세다고 할지 모르지만 자기를 이기는 자야말로 강하다.
- 노자 『도덕경』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자신을 다스릴 때는 가을 이슬처럼.
待人春風, 持己秋霜

제집으로 돌아가는 기러기를 눈으로 물끄러미 떠나보내며, 손으로 거문고를 탄다. 우주를 바라보며 자족하고 현묘한 자연 속에서 내 마음이 노닌다.
目送歸鴻, 手揮五弦. 俯仰自得, 遊心太玄.

손으로 거문고를 타는 것은 쉽지만, 제집으로 돌아가는 기러기를 눈으로 물끄러미 떠나보내는 것은 어렵다.
手揮五弦易, 目送歸鴻難.

늦은 봄 봄옷이 만들어지면 어른 대여섯. 아이 예닐곱과 함께 기수沂水의 강가에서 물놀이도 하고, 무우舞雩라는 곳에서 봄바람을 쐬고, 노래를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
- 『논어』선진

여자가 시집을 가니 길하다.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이롭다.
女歸吉, 利貞.

함부로 나아가면 흉하다. 이로운 바가 없다.
征凶, 無攸利.

어려움에 처햇어도 자신의 올곧은 뜻을 지킴이 이롭다.
利艱貞.

해가 땅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명이이다. 군자는 대중에게 나아가되 자신의 총명함을 감춤으로써 오히려 지혜롭게 처신한다.
明入地中, 明夷, 君子以苙衆, 用晦而明.

은둔은 형통하다. 지나치지 않은 굳셈이 이롭다.
遯, 亨, 小利貞.

나아간다. 그러나 다시 물러난다. 인내를 가지고 올바름을 지키면 길하다. 신임을 얻지 못했다면 온화하게 있어야 허물이 없다.
晉如摧如, 貞吉, 罔孚, 裕, 无咎.

군자는 중요한 지위를 주어도 사양하고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리를 떠나도록 지시받으면 지체하지 않고 물러나 진퇴가 깨끗하다. 하지만 소인은 그 반대로 행하니, 한번 얻은 지위에 끝까지 집착해 내놓을 생각을 않는다. 만일 그것을 억지로 내놓도록 하면 반드시 한恨을 품어 마침내 원수가 되고 만다.
- 사마광, 『자치통감』

간이란 멈춤이다. 그러나 그냥 멈추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야 할 때 머무르고 가야 할 때 가는 것이다. 마음의 욕망이 움직이거나 고요히 냉정해지는 순간에 모두 때를 잃지 않으면 그 도는 밝게 빛이 난다.
艮, 止也. 時止則止, 時行則行, 動靜不失其時, 其道光明.

변통이란 시세를 헤아려 그 시세를 따라 변통하는 것이다.
變通者, 趣時者也.

▲ 정이천(1033~1107) 가을 이슬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격한 삶을 살았던 정이천은 서양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에 견줄 만하다.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이 물려 죽지 않는다. 형통하다.
履虎尾, 不咥人, 亨.

조화를 이룬다는 화和란 국을 만드는 것과 같다. 국은 물, 식초, 간장, 소금을 넣고 물고기나 고기를 삶는 요리인데, 나무를 때서 요리하다가 요리사가 그 맛을 맞출 때, 조미료를 넣어 맛의 부족함을 채우고 지나친 점을 덜게 한다. 그래서 그 국을 먹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군주와 신하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군주가 좋다고 하더라도 좋지 못한 점이 있으면 신하는 좋지 못한 점을 말하여 고칠 수 있도록 하고, 군주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좋은 점이 있으면 그것을 말하여 좋지 못한 점을 없앨 수 있도록 한다.

오직 인을 이룬 사람만이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고 사람을 미워할 수도 있다.
- 「논어」이인

예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조화만을 알아서 조화시키려고만 하고 예로써 조절하지 않는다면 또한 제대로 행해질 수가 없다.
- 『논어』학이

예란 어떻게 생겨났는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구가 있다.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것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욕구를 충족하려 할 때 적당한 절도와 제한이 없으면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서로 다투면 혼란해지고 혼란해지면 궁핍하게 된다.

군자는 위와 아래의 차이를 분별하여 백성들의 뜻을 혼란되지 않도록 안정시킨다.
君子以辨上下, 定民志.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건의 기능과 곤의 기능이 정해졌다. 낮고 높음이 이루어지니 귀함과 천함의 지위가 있게 된다.
天尊地卑, 乾坤定矣. 卑高以陳, 貴賤位矣.

하늘과 땅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만 도모하는 일은 동일하고, 남자와 여자는 떨어져 있지만 서로 구하는 뜻은 소통하며, 만물은 다양하게 차이가 나지만 그것들이 하는 일은 비슷하다.
天地暌而其事同也, 男女暌而其志通也, 萬物暌而其事類也.

군자는 동일한 점을 찾으면서도 차이를 구별한다.
君子以同而異

하늘과 땅이 교류하니 만물이 소통되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교류하니 그들의 진실한 뜻이 동일하게 된다.
天地交而萬物通也, 上下交而其志同也.

중부는 돼지와 물고기에게도 감동을 미치니 길하다. 이러하니, 큰 강을 건널지라도 이롭다. 하지만 자신의 곧은 신념을 굳게 지켜 나가는 것이 이롭다.
中孚, 豚魚吉, 利涉大川, 利貞.

애꾸눈이 애써 보려고 하고, 절뚝발이가 애써 가려고 하니, 호랑이 꼬리를 밟고 물리니 흉하다.
眇能視, 跛能履, 履虎尾, 咥人, 凶.

넓은 들판에서 사람과 뜻을 함께하니 형통하다.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고, 군자는 마음속에 올바름을 지키고 있는 것이 이롭다.
同人于野, 亨, 利涉大川, 利君子貞.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니 그 예리함은 쇠를 자를 정도이고, 마음을 함께한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군자는 이를 본받아 종류에 따라서 나누어 사물들의 차이를 구별 짓는다.
君子以類族辨物.

세상은 모두 동일한 것으로 돌아오지만 그것으로 향하는 길은 다양하고, 모두 하나에 이르지만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天下同歸而殊塗, 一致而百慮.

진정으로 그 사람이 아니라면 도는 헛되이 행하지 않는다.
苟非其人, 道不虛行.

세상의 복잡하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지극하게 담아낸 것은 괘이고, 세상 사람들의 행위를 고무시키는 것은 효에 나타나 있다. ……이러한 것들을 신묘하게 드러내어 명백하게 밝히는 것은 바로 사람에게 달려 있고, 그것을 말없이 이루어 내어서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오직 덕행德行에 달려 있다.
- 계사전

주역은 지극하구나. 주역을 통하여 성인은 덕을 높이고 공을 넓혔다.
易其至矣乎! 夫易, 聖人所以崇德而廣業也.

성대한 덕과 광대한 공이여! 풍부하게 모든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위대한 공이고,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성대한 덕이다.
盛德大業至矣哉. 富有之謂大業, 日新之謂盛德.

마음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는 있지만 우물을 바꿀 수는 없다. 우물 물은 아무리 끌어올려도 마르지 않고,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마셔도 늘 맑고 차다. 그러나 두레박을 거의 끌어올렸는데 우물 밖으로 길어 올리지 못하고 도중에 두레박이 깨지거나 뒤집혀 물을 쏟으면 흉하다.
改邑不改井, 无喪无得, 往來井井, 汔至亦未繘井, 羸其甁, 凶.

썩은 우물물이니 아무도 먹지 않는다. 오래된 우물에는 새들도 찾아오지 않는다.
井泥不食, 舊井无禽.

맑은 우물물인데도 사람들이 먹지 않으니 내 마음이 슬프다.
井渫不食, 爲我心惻.

우물물을 길어 올려 뚜껑을 덮어 두지 않고 그 맑음을 오래도록 유지해야 한다. 크게 길할 것이다.
井收, 勿幕, 有孚, 元吉

▲ 퇴계의 도산서원의 우물. 우물 정井 자 모양의 열정洌井인데, 열정이라는 말도 정괘에서 유래한 것으로 차가운 우물이라는 뜻이다.

서당 남쪽 우물물 달고 차갑네.
書堂之南, 石井甘冽.

오랫동안 안개에 묻혔으니, 이제는 뚜껑을 덮어 두지 마오.
千古煙沈, 從今勿幕.

해를 입힐 사람들과의 교류는 아직 없다. 지금 허물은 없지만, 어려움이 닥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신중하게 처신한다면 계속 허물이 없을 것이다.
無交害, 匪咎, 艱則無咎.

큰 수레로 무거운 짐을 나른다. 나아갈 바가 있다. 허물이 없다.
大車以載, 有攸往, 無咎.

제후가 천자를 위하여 연회를 베푼다. 소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公用亨于天子, 小人弗克.

해는 중천에 뜨면 기울어지고 달은 가득 차면 어그러진다. 천지의 가득 참과 텅 빔은 때에 따라 소멸하고 자라난다.
日中則昃, 月盈則食, 天地盈虛, 與時消息.

풍요로움은 형통할 수가 있다. 왕이 이에 이를 수가 있다. 근심하지 말라. 마땅히 해가 중천에서 빛난다.
豊, 亨, 王假之, 勿憂, 宜日中.

집안에서의 풍요로움이다. 그 집안을 차양으로 막았다. 문 안을 들여다보니 한가하니 사람이 없다. 3년 동안 아무도 볼 수가 없으니 흉하다.
豊其屋, 蔀其家, 闚其戶, 闃其無人, 三歲不覿, 凶.

장차 접으려면 반드시 먼저 퍼 주어라.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 주어라. 장차 폐하려면 반드시 먼저 흥하게 해 주어라.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먼저 주어라.
- 노자 『도덕경』

너 위대한 태양이여! 네가 비추어 줄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너의 행복이겠는가!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로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니, 그렇지 않다면 가지 못할 먼 곳이 어디 있겠는가?
- 『논어』자한

영무자甯武子는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총명한 지혜를 발휘했지만, 도가 없을 때는 어리석었다. 그의 총명함은 다른 사람들도 따를 수 있지만, 그의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을 것이다.
- 『논어』공야장

훌륭한 사람이 위대한 도를 들으면 열심히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중간 정도의 사람이 도를 들으면 긴가민가하며, 하수들이 도를 들으면 낄낄거리고 비웃는다.
- 노자 『도덕경』

위대한 강직함은 마치 굽실거리는 듯하고, 위대한 교묘함은 졸렬한 듯하고, 위대한 논변은 더듬는 듯 어눌하다.
- 노자 『도덕경』

중용에 맞게 행하는 사람을 찾아 교류할 수 없다면, 반드시 광狂자와 견狷자와 함께해야 하리. 광자는 뜻이 높아 진취적인 사람이고, 견자는 하기 싫은 일은 반드시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 『논어』자로

강직하기만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미친놈[狂]이 되는 폐단이 생긴다.
- 『논어』양화

용맹스럽지만 예를 모르는 자를 미워하고, 과감하지만 꽉 막힌 사람을 미워한다.
- 『논어』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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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12. 1. 16:43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32 명절 음식

글, 사진 / 한복선
1995,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6444

082
빛 12 ㄷ 66


빛깔있는 책들 66

한복선------------------------------------------------------------------------

1949년 서울 태생으로 한양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다. 중요무형문화재 38호(조선왕조 궁중음식)를 이수했으며 해외에서 다년간 외국 요리를 익혔다. 주요 경력으로는 MBC-TV '오늘의 요리'와 KBS-TV '가정 요리'(현재) 프로를 담당했다. 현재 '궁중음식연구원' 강사이면서 '한복선 요리학원' 원장으로 있다.

사진 자료 협조--------------------------------------------------------------

두산그룹 홍보실

|차례|

명절 음식과 계절 음식
농가월령가에 나타난 세시 풍속
정월 초하루
대보름
입춘
중화절
삼월 삼짇날
한식
곡우절
사월 초파일
단오
유두
칠월 칠석
삼복
백중절
한가위
중양절과 늦가을의 절식
상달
동지
섣달

 월별 천신 품목(月別薦新品目)

천신 품목

1

조곽(미역), 해태()

2

송어, 생복, 작설차, 반건치, 생합, 소근(미나리), 생낙지

3

고사리, 당귀, 청귤, 황석어, 눌치, 웅어

4

죽순, 준치, 오징어

5

살구, 앵두, 오이, 보리,

6

피쌀, 수수, 좁쌀, 맵쌀, 능금, 가지, 수박, 참외, 동아, 오얏, 은어

7

연어, , 연밥, , 호도, 머루

8

홍시, 신도주, 대추, 생률, 송이, 붕어,

9

기러기, 석류, 산포도, 산복숭아

10

감자, 금귤, 유자, , 대구어, 은어, 은행, 건시

11

백어, 서대, 청어, 천어, 당유자

12

동정귤, 숭어, 토끼


농가월령가

정월
正月은 孟春이라 立春 雨水 節氣로다
…………………
祠堂에 歲謁함은 餠湯에 酒菓로다
엄파와 미나리를 무엄에 곁들이면
보기에 신선하여 五辛菜를 부러하랴
보름날 약밥 제도 신라 적 풍속이라
묵은 산채 삶아 내어 肉味를 바꿀소냐
귀밝히는 약술이요 부름 삭는 生栗이라

2월
二月은 仲春이라 驚蟄 春分 節氣로다
…………………
山菜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요 고로쟁이 물쑥이라
달래 김치 냉잇국은 脾胃를 깨치나니
木草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3월
三月은 暮春이라 淸明 穀雨 節氣로다
…………………

4월
四月이라 孟夏되니 立夏 小滿절기로다
…………………
인가의 요긴한 일 장 담는 정사로다
소금을 미리 받아 법대로 담그리라
고추장 두부장도 맛맛으로 갖추 하소
앞산에 비가 개니 살찐 香菜 캐오리라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도레 어아리를
일분은 엮어 달고 이분은 무쳐 먹게
낙화를 쓸어 앉아 병술로 즐길 적에
산처의 준비함이 佳肴가 이뿐이라
느티떡 콩찌니는 제때의 별미로다
앞내에 물이 주니 천렵을 하여 보자
…………………
촉고를 둘러치고 銀躪玉尺 후려내어
盤石에 노구 걸고 솟구쳐 끓여 내니
八珍味 五候鯖을 이 맛과 바꿀소냐

오월
五月이라 仲夏되니 芒種 夏至 절기로다
…………………
아기어멈 방아 찧어 들바라지 점심 하소
보리밥 파찬국에 고추장 상추쌈을
식구를 헤아리되 넉넉히 능을 두소

6월
六月이라 季夏되니 小暑 大暑 절기로다
…………………
정자나무 그늘 밑에 坐次를 정한 후에
점심 그릇 열어 놓고 보리 단술 먼저 먹세
반찬이야 있고 없고 주린 창자 메인 후에
청풍에 酔飽하니 잠시간 낙이로다
…………………
三伏은 속절이요 流頭는 佳日이라
원두밭에 참외 따고 밀 갈아 국수하여
家廟에 천신하고 한때 음식 즐겨 보세
부녀자는 헤피 마라 밀기울 한데 모아
누룩을 디디어라 流頭麵을 혀느리라
호박 나물 가지 김치 풋고추 양념하고
옥수수 새맛으로 일 없는 이 먹어 보소
장독을 살펴보아 제맛을 잃지 말고
맑은 장 따로 모아 익은 족족 떠내오라
비 오면 덮기 신칙 독전을 정히 하소

7월
七月이라 孟秋되니 立秋 處暑 절기로다
…………………
소채 과실 흔할 적에 저축을 생각하여
박 호박 고지 켜고 외 가지 짜게 절여
겨울에 먹어 보소 貴物이 아니 될까

8월
八月이라 仲秋되니 白露 秋分 절기로다
…………………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 명일 쇠어 보세
新稻酒 오려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
며느리 말미받아 본집에 근친갈 제
개 잡아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
초록 장옷 반물 치마 장속하고 다시 보니
여름지어 지친 얼굴 소복이 되었느냐
중추야 밝은 달에 지기 펴고 놀고 오소

9월
九월이라 季秋되니 寒露 霜降 절기로다
…………………
타작 점심 하오리라 황계 백주 부족할까
새우젓 계란찌개 성찬으로 차려 놓고
배추국 무나물에 소춧잎 장아찌라
큰 가마에 안친 밥이 태반이나 부족하다

10월
十月은 孟冬이라 立冬 小雪 절기로다
…………………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정히 씻어 함담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탕이 항아리라
양지에 가가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박이무 알암말도 얼잖게 간수하소
…………………
우리집 부녀들아 겨울 옷 지었느냐
술 빚고 떡하여라 講信날 가까웠다
술 꺾어 단자하고 메밀 앗아 국수 하고
소 잡고 돝 잡으니 음식이 풍비하다
들마당에 차일 치고 동네 모아 자리 포진
노소 차례 틀릴세라 남녀 분별 각각 하소

11월
十一月은 仲冬이라 大雪 冬至 절기로다
…………………
콩기름 우거지로 조반석죽 다행하다.
부녀야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동지는 명일이라 一陽이 生하도다
時食으로 팥죽 쑤어 隣里와 즐기리라

12월
十二月은 季冬이라 小寒 大寒 절기로다
…………………
입을 것 그만하고 음식 장만하오리라
떡쌀은 몇 말인고
콩 갈아 두부 하고 메밀쌀 만두 빚소
歲肉은 契를 믿고 북어는 장에 사서
납평일 창애 묻어 잡은 꿩 몇 마린고
아이들 그물 쳐서 참새도 지져 먹세
깨강정 콩강정에 곶감 대추 생률이라
酒樽에 술 들이니 돌틈에 새암 소리
앞뒷집 打餠聲은 예도 나고 제도 나네
새 등잔 새발심지 장등하여 새울 적에
웃방 봉당 부엌까지 곳곳이 명랑하다
초롱불 오락가락 묵은 세배하는구나


▲ 정월의 차례상 메 대신 떡국을 올리고 탕, 적, 포, 나물, 침채, 조과, 생과, 식혜 등을 올린다. 좌포우해, 두동미서 홍동백서의 원칙에 따라 차린다.

▲ 떡산적 말랑한 떡과 고기, 파 또는 버섯류를 꼬치에 꿰어 양념장을 발라 구운 것이다.

▲ 꽃절편

▲ 떡국
가래떡을 둥글 납작하게 썰어 양지머리 또는 꿩 국물에 끓여 청장으로 간하고 고명을 얹는다.

▲ 전골
전골틀에 여러 가지 재료를 돌려 놓고 육수를 부어 끓는 것을 보며 먹는 것이 특징이다.

 
▲ 버섯 잡채 버섯을 주재료로 하여 각각을 양념하여 볶아서 모두 합하여 참기름, 깨소금으로 맛을 낸다.

▲ 신선로 탕의 일종으로 갖은 재료를 넣어 입을 즐겁게 해준다는 뜻으로 열구자탕이라 한다.
 

▲ 약과
밀가루에 참기름, 꿀, 생강즙, 청주를 넣고 가볍게 반죽하여 튀긴 것이다. 우리나라 과자 가운데 유밀과의 대표이다.

▲ 각색 다식 콩, 깨, 송화, 밤, 녹말 등의 가루나 미숫가루를 꿀로 반죽하여 다식판에 박아 낸다. 경사 때, 제사, 차례상에 꼭 오르는 조과이다.

▲ 각색 전 여러 가지 재료에 밀가루, 달걀 또는 메밀가루, 쌀가루 등을 입혀 번철에 기름을 두고 지져서 초장을 찍어 먹는다.

▲ 장김치

▲ 녹두빈대떡 거피한 녹두를 갈아서 나물, 고기 등을 넣고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지져 낸 고소한 전병이다.

▲ 정월 대보름 절식 후식으로 먹는 약식과 쌀, 찹쌀, 수수, 팥, 조, 콩 등을 섞어 지은 오곡밥과 여러 가지 나물에 양념하여 볶은 9가지 나물 등을 대보름날 먹는다.

▲ 묵은 나물 늦가을에 갈무해 두었던 호박, 가지, 박오가리, 곰취, 무청 등을 푹 불리거나 삶아서 갖은 양념하여 뜸을 잘 들여 구수하고 저분저분한 맛이 나야 한다.

▲ 원소병

▲ 봄철 시식 봄에는 새로 나오는 여러 가지 채소로 냉이, 달래 등의 나물을 해먹기도 하고 겉절이도 하며 또한 쑥으로 쑥개떡, 쑥송편 등도 만들어 먹는다. 오징어구이도 제맛이 나는 때이다.

▲ 죽순찜 이른봄 대나무의 순을 잘라 삶아서 칼집을 내어 고기, 버섯 등을 넣어 간을 맞춘 육수를 부어 찜한 다음 위에 오색 고명을 얹는다.

▲ 장 담그기 팔진미의 주인은 장맛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때를 놓치지 말고 간장을 담고, 메주를 떠서 된장을 만들고, 고추장을 담아야 한다.

▲ 탕평채 녹두묵을 무친 것으로 봄철의 대표적 음식으로 입맛을 돋군다. 녹두묵에 미나리, 숙주, 물쑥 등을 합하여 새콤달콤한 초장에 무친다.

▲ 큰 송편

▲ 두견화전과 두견화 화채 봄철에 화사한 두견화를 찹쌀 전병 위에 놓고 두견화전을 만들고, 꿀물이나 오미자 화채에 띄워 두견화(진달래) 화채를 만들어 맛과 멋을 함께 즐긴다.

▲ 두견화전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말랑하게 치대어 둥글 납작하게 하여 술을 떼어낸 꽃을 얹어 기름에 지져 낸 찹쌀 전병이다.

▲ 청면 녹두 녹말에 꽃물을 넣어 국수로 만들어 익혀서 꿀물에 띄운 화채이다.

▲ 쑥

▲ 조기 맑은 탕 봄철 조기의 맛이 제일 맛날 때 맑은장국에 청장으로 간하고 조기 토막을 넣어 잠시 끓여 쑥갓잎을 넣는다. 고소한 조기맛과 향긋한 쑥갓향이 깔끔하다.

▲ 도미면 도미전에 갖은 고명을 얹어 장국을 넉넉히 부어 끓이면서 국수도 넣어 말아 먹는다. 주안상에 알맞은 음식이다.

▲ 어채 숙회의 일종이다. 흰살 생선, 오이, 표고 등의 채소에 녹말을 입혀 데쳐서 초장,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 개피떡

▲ 비빔국수(골동면) 삶아 건진 국수 사리 위에 갖은 재료를 얹어 양념장을 무친다. 따뜻한 장국을 함께 낸다.

▲ 미나리 강회 미나리를 데쳐 물기를 없애고 편육, 달걀 지단, 고추 등과 함께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 제호탕 단오절에 시식으로 한약제를 가루로 하여 꿀에 재웠다가 냉수에 타서 먹는 한방 청량음료이다. 이것을 마시면 더운철 내내 더위를 먹지 않고 갈증을 없앤다.

▲ 준치국 준치는 매우 맛난 생선이나 가시가 많기 때문에 정성을 기울여 가시를 발라 생선살과 다진 고기를 합하여 둥글게 빚어서 밀가루를 입혀 쪄서 준치 만두를 만들어 장국에 띄운 준치국은 별미이다.

▲ 앵두 화채 단오날 민가에서 먹던 청량음료로 앵두알의 씨를 빼고 설탕에 재워 두었다가 오미자국에 넣고 실백을 띄워 낸다.

▲ 떡수단 꿀물에 건지로 흰떡에 녹말을 입혀 삶아 내어 넣은 냉음료이다. 보리쌀을 삶아 넣으면 보리 수단이다.

▲ 상추쌈 상추, 쑥갓, 실파를 푸짐하게 놓고, 생선 감정, 절미된장조치, 장똑똑이, 보리새우볶음, 약고추장, 참기름 등을 넣어 밥과 함께 쌈을 싸서 먹는다.

▲ 구절판 밀전병에 8가지의 재료를 색 맞추어 돌려 담아, 원하는 것을 넣어 싸서 먹으며 겨자장, 초장을 넣어야 맛나다. 그릇 이름과 음식 이름이 같다.

▲ 여름 음식 삼계탕, 냉면, 육개장, 규아상 등이다.

▲ 팥 시루떡 고사를 지낼 때는 붉은팥을 통으로 삶아 찧어 쌀가루를 시루에 안치고, 그 위에 얹어 쪄 낸다.

▲ 삼계탕 삼복의 보신 음식으로 닭고기에 인삼, 대추, 찹쌀을 넣고 고아서 소금, 후추로 간하여 먹는다.

▲ 육개장 쇠고기, 내장을 푹 고아서 맵게 양념하여 무쳐서 끓는 장국에 넣고, 파를 넉넉히 넣어 맵게 끓인 고깃국이다.

▲ 민어 매운탕 고추장을 풀어 넣은 장국에 기름진 민어를 토막 내어 넣고 호박을 넣어 뜨겁고 얼큰하게 끓인다. 한여름 쌈과 함께 곁들여 먹으면 일품이다.

▲ 각색 부각 날 좋은 날 고추, 동백잎, 김, 깻잎, 깨송이, 감자 등에 찹쌀풀을 발라 또는 그대로 바삭하게 말려 두었다가 조금씩 꺼내어 높은 온도의 기름에 타지 않게 튀겨낸다. 밑반찬이나 안주로 좋다.

▲ 게장

▲ 여러 가지 젓갈 싱싱한 해물에 15퍼센트 정도의 소금을 쳐서 절여 두면 단백질의 분해로 맛있게 된다. 밥 반찬, 밥맛 없을 때 좋고 개운한 감을 주니, 밥 도둑이라는 말도 있다.

▲ 가을 시식 가을에는 송편, 각색 전, 버섯 잡채, 닭찜을 먹는다.

▲ 송편 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밤톨만하게 떼어 우묵하게 파서 청대 콩, 밤, 녹두, 대추, 깨, 팥 등을 넣고 조개 모양으로 빚는다. 솔잎을 사이사이에 두고 쪄 낸다.

▲ 닭찜

▲ 배숙 생강물에 설탕으로 단맛을 내고 배를 깎아서 통후추를 박아서 넣고 끓여 식힌 음료이다. 다과상에, 또는 후식으로 낸다.

▲ 밤단자 찹쌀가루를 찐 다음 오래도록 쳐서 쫄깃하게 되면 밤고물을 묻힌다.

▲ 느타리버섯 산적 느타리버섯과 그 밖의 재료를 꼬치에 꿰어 양념장에 재웠다가 굽는다.

▲ 화양적 쇠고기 산적, 통도라지, 당근, 표고, 오이, 달걀을 각각 익혀서 꼬치에 꿰어 잣집을 얹어 내는 화려한 산적류이다.

▲ 추석상 차림 햇콩밥, 토란탕과 송편, 고기찜, 장김치, 산적 등으로 상을 차린다.

▲ 국화전 가을날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둥글 납작하게 빚어 노란 국화잎을 얹어 화전을 부친다.

▲ 유자 화채 유자를 4등분하여 속은 따로 설탕에 재우고, 껍질은 속의 흰 부분과 노란 부분을 따로 하여 채 썬다. 배도 채 썰고, 석류의 빨간 알을 낱낱이 떼어 둔다.

▲ 통배추 김치

▲ 여러 가지 김치 재료와 담그는 방법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여 김치, 장아찌, 절임, 깍두기, 동치미, 짠지, 식혜로 나눌 수 있다. 종류가 약 60여 종이 되고 김치 담는 데 사용되는 재료는 100여 종이 된다.

▲ 산자 유과의 일종으로 경사나 제사 때에 꼭 올리는 음식이다.

▲ 팥죽 동지 팥죽은 잡귀를 쫓고자 집 안 이곳 저곳에 떠 놓거나 뿌린 다음 나이 수만큼 새알심을 넣어 먹는다. 삼복의 시식이기도 하다.

▲ 냉면 메밀국수를 삶아 양지머리 국물과 동치미 국물을 합한 차가운 국물에 만다. 편육, 배, 오이, 달걀 등을 얹어 겨자, 식초 등을 넣어 맛을 낸다. 이열치열로 겨울철 제맛을 낸다.

▲ 비빔밥(골동반) 밥 위에 여러 가지 재료를 모았다는 뜻으로 골동반이라고도 한다. 지방마다의 특산물을 고루 얹어 제각기 독특한 맛이 있다.

▲ 인절미 찹쌀, 차조, 기장 등 찰곡식을 가루로 하여 쪄서 매우 차지게 친 것을 썰어서 고물을 묻힌 찰떡이다.

▲ 족편 쇠족과 고기를 오래도록 고아 젤라틴이 된 것을 양념하고 고명을 얹어 굳힌 영양가 있는 묵이다.

▲ 해물전 흰살 생선과 새우에 밀가루, 달걀을 입혀서 번철(팬)에 기름을 두고 지진다.

▲ 수정과 생강 달인 물에 단맛을 맞추어 부드럽게 불린 곶감을 넣고 잣을 띄워 차게 마시는 겨울철 음료이다.

▲ 식혜 고두밥을 엿기름물에 삭힌 다음 달콤한 식혜물에 밥알을 띄운다. 명절과 큰일 때 후식으로 한 대접 마시면 소화가 잘 된다.

▲ 깨엿 강정 흰깨, 검정깨, 들깨를 각각 볶아 엿물에 버무려 납작하게 밀어 네모지게 자른다. 소소하고 영양 많은 과자이다.

▲ 쌀강정 만드는 법은 밥도 죽도 아닌 상태로 밥을 끓여 여러 번 헹궈 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엿물에 말아 편편히 굳혔다가 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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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31 여름음식

글, 사진 / 뿌리깊은나무
1992,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6442

082
빛 12 ㄷ 65

글 / 고현진, 정성희(샘이깊은물 전 기자)
사진 / 김승근(샘이깊은물 사진 기자)
          권태균, 백승기, 이정진, 이창수(샘이깊은물 전 사진 기자)

빛깔있는 책들 65

|차례|

탕평채
미더덕찜
호박 편수
깻국탕
닭찜
굴비장아찌
준치국
농어회
붕어 조림
풍천 장어 구이
어만두
오이장김치
애호박죽
고사릿국
죽순채
부추 부침개
쌈과 쌈장
부각

 

▲ 웃고명으로 황백 지단과 잘게 부순 김을 듬뿍 얹어 한결 입맛을 돋우어 주는 탕평채 한 접시

▲ 온갖 나물의 향과 미더덕, 방앗잎의 독특한 맛이 어울려 입을 즐겁게 해 주는 미더덕찜 한 그릇

▲ 호박 편수

▲ 술 마신 뒤에 국 삼아 먹기 좋은 깻국탕

▲ 굴비장아찌

▲ 채친 풋고추와 함께 담아 놓은 한국식 농어회 한 접시

▲ 살이 쫀득쫀득하고 뼈까지 다 녹아들어 그대로 먹을 수 있는 붕어 조림 한 접시

▲ 민어로 만든 여름철에 먹는 어만두 한 접시

▲ 소금물에 절여 소를 넣어 먹는 오이장김치

▲ 보기 좋고, 냄새 좋고 맛 좋은 애호박죽

▲ 고향 냄새를 물씬 풍기는 뚝배기에 담긴 고사릿국. 들깨즙을 국물로 하여 맛이 구수하면서도 담백하다.

▲ 죽순채

▲ 손으로라도 얼른 집어 먹고 싶은 먹음직스런 "정구지 부치개" 한 접시

▲ 쌈과 쌈장

▲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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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30  서울에 취하다
                         Mad for Seoul

글 · 사진 허한나
2011, 조선앤북



시흥시대야도서관
SB053166


981.1
허 62 ㅅ


한나가 서울에서 발견한 소소한 재미들

여행자의 마음으로 바라보세요.
여기는 시간의 결이 느껴지는 넓고 깊은 도시 서울입니다

다시는 여길 못 올지도 모른다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서울을 바라보니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따뜻하게 서울을 바라보게 된 뒤로는 낯선 곳에 가지 않아도 일상에서의 여행이 가능하단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서울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 도시에 날아온 사람들이 그러하듯 수년 내에 다시는 못올 것처럼 매 순간을 오롯이 즐겼습니다.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하는 마음에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설레었습니다. 발걸음이 많아질수록 서울이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인지 새록새록 깨달았습니다. 서울은 바라보면 볼수록 시간의 결이 느껴지는 넓고도 깊은 도시였으니까요.
- 허한나-

글 · 사진_ 허한나 다나루이

스니커즈 신고, 커다란 등짐 메고 발이 부르트도록 걷는 여행부터 스틸레토힐에 클러치백 쥐고 돌아다니는 여행까지 가리지 않고 즐기는 트래블홀릭. 초등학교 때 혼자 일본에 간 것을 시작으로 미국, 영국, 유럽, 동남아시아 등 수십여 개국의 골목골목을 누볐다. 며칠 만에 돌아오는 짧은 여행은 물론 1~2개월 혹은 1년 이상 다른 나라에 머무는 장기 여행도 기회만 찾아오면 서슴지 않는다. 대학에서 전자정보를, 대학원에선 마케팅을 공부한 뒤 다국적 기업에서 장 나가는 마케터로 근무하다 돌연 사표를 던지고 푹 빠졌던 나라 홍콩으로 날아가 4년간 홍콩살이를 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뒤로는 세계의 도시들을 여행했을 때처럼 여행자의 시선으로 서울 골목골목을 돌며 카메라에 담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홍콩에 취하다』『휘리릭 아이밥상』이 있으며, 블로그를 통해서도 그녀의 글과 사진을 만날 수 있다.

블로그 www.danalouis.com
트위터 twitter.com/Hanna_Her

CONTENTS

CHAPTER 1 천천히 걷고 싶은 서울 길

SEOUL POST 001_ 효자로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갤러리와 카페가 이어진 꽃길
SEOUL POST 002_ 영추문길 이곳에선 천천히 걷기
SEOUL POST 003_ 평창동 서울에서 가장 고상한 동네 한 바퀴
SEOUL POST 004_ 성북동 짧은 산책 서울의 두 가지 얼굴을 만나다
            BOOKMARK 3년간의 사랑 60년의 이별. 길상사
            BOOKMARK 길상사의 가을
SEOUL POST 005_ 혜화동에서 성북동까지 먼 산책 마음 한 자락 내려놓고 느리게, 느리게
            BOOKMARK 산책하는 또 하나의 재미, 필리핀 장터와 혜화동주민센터
SEOUL POST 006_ 계동길 고소한 참기름 동네
            BOOKMARK 풍성한 마을 계동에 가다
SEOUL POST 007_ 삼청동길 낮은 축대 위로 걸어보기
SEOUL POST 008_ 경복궁 돌담길 경복궁 담장 따라 걷기       
SEOUL POST 009_ 화개 1길 구름 위의 산책
            BOOKMARK 가로수길과 화개길의 공통점

SEOUL POST 010_ 복정길 한 길에서 만나는 소규모 박물관 세 곳 
SEOUL POST 011_ 가회로 북촌한옥마을, 그 로망에 대하여
            BOOKMARK 서울에서 가장 살고 싶은 곳, 가회동 31번지

SEOUL POST 012_ 북촌 8경 북촌을 여행하는 또 하나의 방법
SEOUL POST 013_ 세종문화회관 돌계단 그냥 앉아 있다만 와도 좋은 곳
SEOUL POST 014_ 덕수궁 돌담길 숨어 있는 산책로
            BOOKMARK 서울에서 가장 걷고 싶은 길
            BOOKMARK 아트벤치

SEOUL POST 015_ 정동길 1 근대 교육의 역사를 간직한 붉은 벽돌길
SEOUL POST 016_ 정동길 2 정동길에서 새문안길까지 거리 예술품 퍼레이드
SEOUL POST 017_ 경희궁, 서울역사박물관 어느 오후의 한적한 산책
SEOUL POST 018_ 경희궁길 차분한 궁궐 동네 나들이
            BOOKMARK 도심 속 작은 조각공원, 성곡미술관 찻집
SEOUL POST 019_ 연대 동문길 대학가의 또 다른 얼굴
            BOOKMARK 서울에서 가장 고요한 천년고찰, 봉원사 가는 길
SEOUL POST 020_ 이슬람 거리 무슬림 언덕 산책
SEOUL POST 021_ 남산한옥마을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BOOKMARK 과거로의 시간여행, 서울천년타임캡슐

CHAPTER 2 서울의 공원, 서울의 자연

SEOUL POST 022_ 남산공원 북측 산책로 봄엔 꽃비, 가을엔 낙엽비
            BOOKMARK 남산의 어제와 오늘
            BOOKMARK 남산야생화공원과 오솔길
SEOUL POST 023_ 낙산공원 낙타를 닮은 마을
            BOOKMARK 낙산 공공미술프로젝트
SEOUL POST 024_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 비 오는 가을날 박물관 야외 공원 산책
            BOOKMARK 용산가족공원에서의 여유
            BOOKMARK 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에 빠지다.
SEOUL POST 025_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꿈결 속의 산책
            BOOKMARK 조각공원의 작품 구경
SEOUL POST 026_ 응봉산 이른 봄날 천국으로 가는 노란 계단
SEOUL POST 027_ 광나루 자전거공원 이색 자전거 체험장
            BOOKMARK 광진교 하부 전망쉼터, 리버뷰 8번가
SEOUL POST 028_ 양재문화예술공원 서울의 메타세쿼이아 길
SEOUL POST 029_ 선유도공원 사진 찍기 좋은 빈티지 공원

CHAPTER 3 예술의 아지트, 서울

SEOUL POST 030_ 가나아트센터 조각 테라스의 전망
            BOOKMARK 평창동 미술관, 문학관 순례법
SEOUL POST 031_ 서울옥션스페이스 예술은 비즈니스다
SEOUL POST 032_ 영인문학관 낡은 원고 속에 꽃핀 문학 사랑
SEOUL POST 033_ 그로리치, 새줄, 가인 평창동의 작지만 알찬 갤러리들
SEOUL POST 034_ 팔레 드 서울 경복궁을 품은 전망 좋은 갤러리
            BOOKMARK 서촌의 젊은 갤러리 순례법
SEOUL POST 035_ 대림미술관 재즈 콘서트가 열리는 미술관의 작은 정원
SEOUL POST 036_ 진 아트센터 정통 갤러리의 모든 것
SEOUL POST 037_ 갤러리 팩토리 젊은 아티스트들의 놀이터
SEOUL POST 038_ 브레인 팩토리 놀러 가는 미술관
SEOUL POST 039_ 보안여관 세월을 이어가는 문학청년들의 아지트
SEOUL POST 040_ 쿤스트독 갤러리, 쿤스트독 프로젝트 스페이스 신진 작가 발굴 프로젝트
SEOUL POST 041_ 김달진. 아트다, 옆집, 자인제노 창성동의 작지만 알찬 갤러리들
            BOOKMARK 성스러운 장소에서 얻는 평안, 자교교회
SEOUL POST 042_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미술관의 옥상 풍경
SEOUL POST 043_ 간송미술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최고의 사립 미술관
SEOUL POST 044_ 수연산방 수필의 계절에 만난 산방의 가을
SEOUL POST 045_ 서울남산국악당 아름다운 동행 다악
SEOUL POST 046_ 국립국악원 국악과 사랑에 빠지는 곳
SEOUL POST 047_ 초록음악회 우면산 별맞이터에서 만나는 청량 뮤직
            BOOKMARK 예술의 전당 카페, 모차르트
SEOUL POST 048_ 풍류 혼으로 승화된 예술의 장
SEOUL POST 049_ 호림아트센터, 에르메스메종 도산공원 앞에서 갤러리와 브런치 즐기기
            BOOKMARK 도시, 디다인을 입다.

CHAPTER 4 서울의 상상마당

SEOUL POST 050_ 일본문화원 일본 영화와의 행복한 만남 
SEOUL POST 051_ 독일문화원 자연 속에서 느끼는 독일 
SEOUL POST 052_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사용설명서 
SEOUL POST 053_ 연대캠퍼스와 더 키친 스무 살 여행자를 기억하며 
SEOUL POST 054_ 상상마당 지극히 홍대스러운 공간 
SEOUL POST 055_ 디앤북스 감각적인 동네 서점 
SEOUL POST 056_ 왓 더 북, 포린 북 오래된 책을 파는 이태원의 서점들 
SEOUL POST 057_ 가가린 창성동에 착륙한 헌책방 
SEOUL POST 058_ 유니세프 나눔으로써 나를 치유하는 시간 
SEOUL POST 059_ 정독도서관 삼청동에서 계절을 느끼기 가장 좋은 곳
            BOOKMARK 투고 커피 그리고 우드 앤 브릭 
SEOUL POST 060_ 씨네큐브 독립영화관의 역사를 말한다 
SEOUL POST 061_ 필름포럼 소규모 극장을 찾아서 
SEOUL POST 062_ 아트하우스 모모 영화를 통한 다양한 삶의 모색

CHAPTER 5 서울의 고궁을 가다 

SEOUL POST 063_ 종묘, 종묘제례악 사색의 공간 종묘를 걷다 
SEOUL POST 064_ 운현궁 함박눈 내리는 겨울의 궁 이야기 
SEOUL POST 065_ 창경궁 1 장희빈에서 사도세자까지 작지만 소란했던 궁궐 
SEOUL POST 066_ 창경궁 2 창경궁의 아침을 거닐다 
SEOUL POST 067_ 경복궁의 역사 경복궁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SEOUL POST 068_ 경복궁 교태전, 자경전 꽃담과 굴뚝 
SEOUL POST 069_ 경복궁 경회루 궁에서 어린 날을 추억하다
SEOUL POST 070_ 경복궁 북쪽 향원정, 취향교 그곳엔 아시아의 첫 가로등길이 있다?  
SEOUL POST 071_ 경복궁 건천궁 고종과 명성황후가 마지막을 보내던 곳
SEOUL POST 072_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한 자리에서 만나는 건축 역사
            BOOKMARK 어린이민속박물관과 추억의 거리 
SEOUL POST 073_ 경복궁의 궁문 옛 영화를 간직한 광화문에서 신무문까지 
SEOUL POST 074_ 광화문의 망루 동십자각 예술작품으로 변한 지하도 
SEOUL POST 075_ 국립고궁박물관 도심 속에서 만나는 왕실 문화 
SEOUL POST 076_ 덕수궁의 역사 가장 기구한 삶을 살았던 궁궐
            BOOKMARK 서울 최고의 관광 히트상품, 수문장교대식 
SEOUL POST 077_ 덕수궁 고궁 음악회 가을날의 해금 연주 
SEOUL POST 078_ 덕수궁 정관헌 고종이 커피를 즐기던 회랑 
SEOUL POST 079_ 선정릉 도시 한가운데 숲으로 소풍

CHAPTER 6 거장들의 건축 이야기
 
SEOUL POST 080_ 이화여대 ECC 도미니크 페로의 햇볕 잘 드는 지하 정원 
SEOUL POST 081_ 김옥길기념관과 로드 샌드위치 노출 콘크리트 건축의 절정 
SEOUL POST 082_ 서울대 모아미술관 거장 렘 콜하스의 건축 철학을 만나다 
SEOUL POST 083_ 어반 하이브와 테이크 어반 도심 속 벌집에서 즐기는 스마일 타임 
SEOUL POST 084_ 김종영미술관 소나무와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유리 미술관 
SEOUL POST 085_ 토탈미술관 미술관이 작품이다 
SEOUL POST 086_ 윤보선 고택 별궁길에서 만난 꽃보다 아름다운 집
SEOUL POST 087_ 대학로 건축문화 답사 김수근과 붉은 벽돌이 있는 풍경
            BOOKMARK 대학로 공공미술 프로젝트 
SEOUL POST 088_ 쇳대박물관, 쇳대카페 쇠로 둘러싸인 공간
            BOOKMARK 대학로를 다시 연극의 메카로! 거울연극센터 
SEOUL POST 089_ 서울시립미술관 도시 생활의 꽃 미술관에서 놀기

CHAPTER 7 서울의 카페와 맛집 

SEOUL POST 090_ 죠셉의 커피나무 커피향 감도는 느릿한 공간 
SEOUL POST 091_ 테이크아웃 드로잉 커피 그리고 작가의 흔적을 테이크아웃하다 
SEOUL POST 092_ 카페 드 키미 도시에서 일탈을 꿈꾸다 
SEOUL POST 093_ 고궁 뜨락 고궁에서의 여유로운 식사 
SEOUL POST 094_ 압셍트 조용한 마을 속 파란 컵케이크 카페 
SEOUL POST 095_ 카페 디미 간판 없는 홈메이드 비스트로 
SEOUL POST 096_ 마르코의 다락방 효자동 숲 속 사랑방 
SEOUL POST 097_ 카페 스프링 소녀 감성 카페 
SEOUL POST 098_ 디어 플라잉팬 창성동의 소박한 샌드위치 가게
SEOUL POST 099_ B612 통의동의 차분한 북카페
SEOUL POST 100_ 통인시장 기름떡볶이 유희열의 익숙한 그 집 앞
SEOUL POST 101_ 소원 별궁길 작은 정원의 별미
SEOUL POST 102_ 삼청동 와플 카페 순례 나무에서 슬로우가든까지, 나만의 와플 찾기
SEOUL POST 103_ 옐로우 브릭스 파란 창문 한옥 카페
SEOUL POST 104_ 콩두 이야기 서울역사박물관 내 테라스 레스토랑
SEOUL POST 105_ 아모카 빈티지한 덴마크 스타일 카페
SEOUL POST 106_ 이마 일민미술관 카페에 얽힌 추억 둘
SEOUL POST 107_ 버즈 앤 벅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 자리에 들어선 카페
SEOUL POST 108_ 어반가든 따사로운 온실 속 레스토랑
SEOUL POST 109_ 숲 커피 플라워 쇠락의 장소에 활기를 불어넣는 플라워 카페
SEOUL POST 110_ 종로떡방 어느 가족의 찹쌀떡 이야기
SEOUL POST 111_ 미소 카페, 학림다방 대학로의 오래된 아지트
SEOUL POST 112_ 치어스 인생 별거 있나? 치킨에 맥주 한 잔이면 오케이!
            BOOKMARK 청운공원 산책하기
SEOUL POST 113_ 라 본느 타르트 달지 않은 유기농 타르트 전문점
SEOUL POST 114_ 딩동 트래블러스 카페에서 여행을 고민하다
SEOUL POST 115_ 호호미욜 폭스바겐 캠핑카와 여행의 로망
SEOUL POST 116_ 목멱산방 산방에서 맛보는 산채비빔밥
SEOUL POST 117_ 칠리 킹 잇츠 저스트 칠리!
SEOUL POST 118_ 자코비스 버거 배부른 브런치 식당
SEOUL POST 119_ 경리단길 맛집 답사 이태원에서 타국 음식 즐기기
            BOOKMARK 회나무길 산책하기

CHAPTER 8 소품 파는 카페 

SEOUL POST 120_ 리유 도예 작가가 빚어내는 그릇에 담긴 맛
SEOUL POST 121_ 어바웃 더 라이프 남자들의 영원한 로망
SEOUL POST 122_ 타센 대학로 아트북 카페
SEOUL POST 123_ mk2 베를린을 닮은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 카페
SEOUL POST 124_ MMMG 카페 작은 소품에서 얻는 행복 하나
SEOUL POST 125_ 스프링 컴 레인 폴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빈티지 잡화 카페
SEOUL POST 126_ 데미타스 북유럽 감성이 담긴 심야식당
SEOUL POST 127_ 스탐티쉬 앤 까레닌 바느질하고 싶은 감성 패브릭 카페

INDEX

어떤 도시를 걸어 다니면서
자신의 숨은 모습을 발견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초현실주의자들처럼 표류하듯
그 도시의 골목들을 이리저리 흘려 다녀 보는 일이다.
- 다비드 르 브로통, 「걷기 예찬」중에서

3년간의 사랑 60년의 이별,
길상사


나는 시인 백석과 1936년 가을 함흥에서 만났다. 그의 나이 26세. 내가 스물둘이었다.
어느 우연한 자리였었는데, 그는 첫 대면인 나를 대뜸 자기 옆에 와서 앉으라고 했다. …(중략)…
자리가 파하고 헤어질 무렵, 그는 "오늘부터 당신은 이제 내 마누라요"하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의식은 거의 아득해지면서 바닥 모를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했다.
그것이 내 가슴 속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는 애틋한 슬픔의 시작이었다.
- 김영한. 『백석,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중에서

가난하게 자란 김영한이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1932년 요정에 들어가 기생이 되어 여창 가곡, 궁중무 등을 배워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한다. 문학적 소양도 뛰어나 <삼천리문학>에 수필을 발표하였으며,
특출한 재능을 알아본 신윤국 선생 도움으로 1935년 일본 유학길에도 오른다.
그녀는 도쿄에서 유학 중 신윤국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평양으로 달려가지만 만날 수 없었고 유명한 기생이 되면 법조계 인맥을 통해
스승을 면회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그 길로 함양 요정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함흥영생여고 영어교사인 잘생긴 청년 시인 백석을 만나게 된다.
첫눈에 반한 백석은 그녀에게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라며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자야를 처음 만난 그날 이후 백석의 삶은 자야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허나 부모가 기생과 사귀는 백석을 그냥 놔둘 리 없었고,
그는 부모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결혼식을 치르지만 그날로 자야에게 도망쳐 온다.
자야는 백석을 몰래 떠나지만, 백석은 또다시 자야를 찾아나서고,
서울에서 자야를 다시 만난 백석은 선생도 그만두고 자야와 함께 정착한다.
이때부터 3년 동안 둘은 부부처럼 살았고, 백석은 여러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를 쓴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와 「바다」등은 자야를 떠올리며 쓴 시들, 그러나 1939년 백석은
또다시 부모에 의해 강제 결혼을 하게 되고 또다시 자야에게 도망쳐 온다.
부모에 대한 효심과 자야에 대한 사랑 사이에 괴로웠던 백석은
만주로 건너가 시 100편을 쓴다며 함께 도피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백석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기 싫었던 자야는 거절한다.
백석은 혼자 만주로 건너가고, 그것이 둘의 마지막 만남이 되어버렸다.
당시 백석 나이 스물여덟, 자야 나이 스물넷. 이후 백석은 최고 시인으로 이름을 알렸고,
자야는 최고 요정 중 하나인 대원각의 안주인이 되었다.
백석과의 3년간의 사랑을 잊지 못한 자야는 60년을 기생으로 홀로 살았다.
1988년에는 회고기록 『백석,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을,
1995년에는 에세이 『내 사랑 백석』을 출간하였고, 1997년에는 창작과비평사에
2억 원을 내 백석문학상을 제정했다. 그보다 이른 1995년에는
시가 1,000억 원에 달하는 대원각을 법정스님을 설득해 기증했다.
1987년부터 간청했으나 주지 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법정스님은
네 번이나 거절하였고 마침내 수락한 것이다. 처음엔 대법사란 이름으로 시작했으나
1997년에는 자야 김영한의 법명인 길상화를 따 길상사로 바꾸게 된다.
이젠 백석과 자야도, 자야의 뜻에 따라 길상사를 지은 법정스님도,
길상사에 도움을 주었던 김수한 추기경도 모두 이 세상에 없다.
길상사에 앉아 공수래공수거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어쩌면 자야와 백석은 행복한 사람들.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중략)…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1000억이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 이생진.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중에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는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중략)…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중에서

제 아무리 호사스런 도시도,
제 아무리 웅대한 풍경도 우연히 구름과 함께 만들어 내는
저 신비한 매력에는 미치지 못했고,
욕망은 쉴 새 없이 우리를 안달하게 했다.
- 보들레르, 「여행」중에서

때때로 인생은 단지 커피 한 잔의 문제
혹은 커피 한 잔이 가능하게 해주는
따스함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예술은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일상생활의 먼지를 털어준다.
- 피카소

박물관을 만들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고, 그냥 사장해버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 자료들은 수십 년 동안 나를 많이 괴롭혔다. …(중략)… 그런데도 그것들을 어쩌지 못한 것은 거기에 묻어 있는 문학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김동인의 낡아빠진 명함 조각이나, 글씨도 판독하기 어려운 이상의 초고 같은 것을 누가 나만큼 사랑하랴, 였던 것이다. …(중략)… 내게 있어서 삶의 마지막 시간에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낡은 원고 속에서 사는 것이다.
- 강인숙. 「나는 왜 문학관을 하게 되었는가」중에서

아침마다 앞마당에 올라가 칫솔에 치약을 묻혀 들고
돌아서면 눈은 으레 건너편 산마루에 끌리게 된다. ……
한참 쳐다보노라면 성벽에 드리운 소나무 그림자도,
성돌 하나하나 사이도 빤히 드러난다.
내 칫솔은 내 이를 닦다가 성돌 틈을 닦다가 하는
착각에 더러 놀란다.
그러다가 찬물에 씻은 눈으로 다시 한 번 바라보면
성벽은 역시 조광(朝光)보다는
석양의 배경으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느끼곤 한다.
- 이태준 수필집 『무서록』중에서

이 세상 도처에서 내 편히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 아켐피스

가장 멋진 건축물은 경회루다.
이 거대한 경회루 집채를 떠받치고 있는
화강석 돌기둥의 우람한 주열을 보고 있으면
잔재주를 부릴 줄 모르는 한국인의 성정과
솜씨가 너무 잘 나타나 있어서
바로 이런 것이 실질미와 단순미를
아울러 지닌 한국의 멋이로구나 싶어진다.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중에서

건축은 꿈에 속한다. 인생은 꿈이다.
예술은 이처럼 꿈속의 환상이다.
- 지오 몬티

조선 시대 내내 서울 북촌은 전국 최고의 주거지였다.
화동, 재동, 계동, 가회동, 안국동, 경운동 등지에는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아흔아홉 칸의 저택이 도처에 웅자를 뽐내고 있었다.
세상이 일변하매 그 집들은 태반이 요정이 되었다가
그 20여 년 사이에 필지 분할되어 빌라 단지가 되어버렸다.
- 전우용. 『서울은 깊다』중에서

그 곳은 따뜻하고 깨끗하며 정겨웠던 즐거운 카페였고
나는 낡은 외투를 말리기 위해 옷걸이에 걸고
비에 젖은 낡은 펠트 모자는
긴 의자 위의 모자걸이에 걸어놓고 카페오레를 주문햇다.
-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중에서

학림은 아직도, 여전히 60년대 언저리의 남루한 모더니즘 혹은
위악적인 낭만주의와 지사적 저항의 70년대쯤 어디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이 초현대, 초거대 메트로폴리탄 서울에서 1970년대 혹은 1960년대로
시간 이동하는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데가 몇 군데나 될까?
그것도 한 잔의 커피와 베토벤을 곁들여서
- 문학평론가 황동일의 메모 중에서

나는 아주 작은 일에서 느끼는 기쁨을 좋아한다.
이것은 어려운 일에 닥쳤을 때
나를 지탱해주는 원천과 같은 존재이다.
- 오스카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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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11. 29. 08:12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9 노자평전

쉬캉성 지음 | 유희재 · 신창호 옮김
2002, 미다스북스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8909

152.222
쉬 872 노

▲ 노자기우도老子騎牛圖. 조보지 그림. 송宋

▲ 노담老聃으로도 불리는 노자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고현苦見(지금의 하남성 녹음) 사람으로 일찍이 주나라 장서실藏書室 사관史官을 지냈다. 그리고 언제나 늙은 소를 타고 두루 돌아다니며 자연 방임과 무위無爲의 다스림이라는 도가의 사상을 전파하였다고 전해진다.

▲ 안이성 와양의 태청궁太淸宮의 노군전老君殿

▲ 복건성 천주 청원산의 노군암老君岩

기원전 5, 6세기 사람으로서 중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노자는 오늘날까지 추앙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연장자인 노자에게 예를 묻는 공자

▲ 승덕承德 여름 별장에 있는 청나라 황제의 의사청議事廳. "담박경성澹泊敬誠(담백함을 으뜸으로 함)"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노자학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노자의 도가 철학은 유학을 반대하면서도 유학을 발전시켰고 위진 현학에서는 한 시대의 주류 사상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도교와 불교뿐 아니라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도의 우주생성론을 주창한 그의 사상은 중국 철학의 체계를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 호남성 장사의 마왕퇴에서 출토된 백서본 『노자』현존하는 『노자』판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도덕경』이라고도 하는 『노자』는 '도道편'과 '덕德편'으로 되어 있다. 저작 시기와 주체는 분명하지 않다. 노자의 사상을 담고 있는 이 저작은 전국시대 중반부터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장자를 비롯한 여러 사상가들과 정치가들이 이를 탐독하였다. 또한 이 책에 대한 연구도 오랜 기간 계속되어 여러 주석본들이 고증을 거쳐 제작되어 왔다.

|차례|

서문

제1부 노자의 생애
노자의 성씨
노자의 이름과 자字
노자의 본관

제2부 『노자』는 어떤 책인가?

제3부 노자의 지혜
도道는 만물을 낳는다
덕德은 만물의 본성이다
천도天道는 무위無爲하고 귀신은 조화를 부리지 않는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고요함(靜)으로 움직임(動)을 제어한다
서로 반대되면서 서로 완성시킨다
현묘한 마음의 거울(心鏡)을 깨끗이 씻어낸다
억지로 행하지 않고도 다스린다
소박하고 겸하謙下하라

제4부 노자가 중국철학사상에 미친 영향
중국 철학사에서 노자의 지위와 영향
중국 도교 사상사에서 노자의 지위와 영향
노자 사상이 중국 불교에 미친 영향

저자 후기

부록 - 『老子道德經』上 · 下篇

제1부
노자의 생애

담이란 귀가 질펀하고 귓바퀴가 없다는 뜻이다.
『신선전』에서 이르기를, '외자外字는 담'이라고 했는데, 생각건대,
자字는 호號이다. 아마 노자의 귀가 질펀하고 귓바퀴가
없어 담이라고 부른 듯하다.
- 『사기정의』

노자는 초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이다.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이, 자는 백양伯陽이며, 일명 중이重耳이고, 외자外字는 담이다.
-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인용된『주도옥례朱韜玉禮』와『신선전神仙傳』

갈현葛玄이 말하기를, "이씨 여인의 소생이었기 때문에 어미의 성을 따랐다." 또 이르기를, "태어나면서 오얏나무(李樹)를 가리켰기 때문에 성을 이씨로 하였다."- 『사기색은史記索隱』

노자는 호號이지, 이름이 아니다. 노老는 '밝힌다(考)'는 의미이고, 자子는 '낳는다(孳)'는 뜻이다. 모든 이치를 가르치고 밝혀 성스러운 것을 낳아 이룬다는 뜻이다. 이에 만물을 낳고, 모든 사물을 잘 화합하게 하여 남김이 없게 한다는 것이다.
- 『사기정의』

노탐은 무위無爲를 배우고 도덕을 귀하게 여겼으니, 그가 바로 주나라 사관인 백양이다. 세 강물이 마르는 것을 보고 주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알았으며, 공자의 스승이 되었다.
- 『여씨춘추』의 「중언重言」

유왕幽王 3년에 서주의 세 강물이 모두 지진이 일어나 진동하자, 백양보가 말하기를 "주나라가 장차 망하겠구나"라고 하였다. 이 해에 세 강물이 마르고 기산岐山이 무너졌다. 11년에 왕이 멸망하였고 주나라는 다시 수도를 옮겨 갔다. 이를 고유가 보고 주석을 했다.
- 『국어國語』의「주어周語」

『지리지』에서 고현이 진나라에 속한다는 내용은 틀린 것이다. 고현은 본래 진나라에 속했으나, 춘추 말기에 초나라가 진나라를 멸망시켜 초나라에 귀속되었다. 그래서 초나라의 고현이라 한다.
- 『사기색은』

연표에 의하면, 회양국淮陽國은 한漢나라 경제景帝 3년에 폐하였다. 천한天漢연간에 역사를 편찬할 때에, 이곳은 초나라 절왕節王이 도읍한 팽성과 가까웠다. 의심하건대 이때 고현이 초나라에 속한 듯하다. 그러므로 태사공이 이를 기록하였을 것이다.

『괄지지括地志』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고현은 박주亳州 곡양현谷陽縣의 경계에 있었다. 노자의 집과 묘가 있고, 묘 안에 구정九井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의 박주 진원현眞源縣에 있다. 여는 음이 뇌賴이다. 그래서 진晉나라 『태강지기太康地記』에서는 '고현성 동쪽에 뇌향사賴鄕祠가 있는데, 노자가 태어난 곳이다.라고 하였다.
- 『사기정의』

공자의 나이 17세가 되던 해, 노나라의 대부인 맹희자孟釐子가 병으로 죽어가면서 그 후손인 의자懿子에게 훈계하며 말하였다.
"공구孔丘는 성인의 후손이다. (중략) 지금 공구가 아직 어린데도 예를 좋아하니, 통달한 자가 아니겠는가? 내가 죽거든 반드시 그를 스승으로 삼도록 하여라."
맹희자가 죽자 맹의자와 노나라의 남궁경숙南宮敬叔은 공자를 찾아가 예를 배웠다. (중략) 남궁경숙이 노나라 왕에게 청하였다.
"바라옵건대 공자와 함께 주나라로 가십시오."
노나라 왕은 공자와 함께 수레를 타고 주나라로 가서 예를 물었는데, 아마도 노자를 만났을 것이다.
- 『사기』의「공자세가」

맹의자와 남궁경숙이 공구에게 사사했던 때는 소공 24년 이후이다. 『사기』의「공자세가」에는 '공자의 나이 17세가 되던 해 맹희자가 죽었고, 맹의자와 남궁경숙이 공자에게 예를 배웠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태사공은 그 해에 맹희자가 죽은 것으로 오인했고, 맹의자와 남국경숙이 소공 11년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중략) 즉 소공 24년에 두 사람의 나이는 겨우 13세에 불과했다.
- 『춘추좌전』

공자의 나이 51세였으나, 아직도 도에 대해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쪽의 패沛로 가서 노담을 만났다. 노담이 물었다.
"그대가 왔는가? 나는 그대가 북방의 현자라고 들었는데, 그대는 도를 터득했는가?"
공자가 대답했다.
"아직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 『장자莊子』의「천운天運」

공자가 서쪽의 주나라 왕실에 자신의 저서들을 소장시키고자 하자, 자로子路가 의논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주나라의 서고 담당관으로 노담이란 자가 있는데, 지금은 물러나 고향에서 산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저서를 소장시키고 싶다면 그를 한번 찾아가서 부탁해보시지요."
공자가 말하였다.
"좋은 생각이다."
공자가 노담을 만났으나 노담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 『장자』의「천도天道」

공자가 말하였다.
"옛날에 내가 노담을 따라 항당巷黨에서 남의 장례를 돕고 있는데, 길에서 일식日食이 있었다.
노담이 말하였다.
'구丘야! 영구를 멈추고 길 오른쪽에 가서 곡을 그쳐라. 그리고 일식의 변동을 보아라'
일광이 회복된 뒤에 노담이 나아가면서 말하였다.
'이것이 예이다.'"
- 『예기』의「증자문」

길례吉禮에는 왼쪽을 높은 자리로 하고, 흉례凶禮에는 오른쪽을 높은 자리로 한다. 부관장군은 왼쪽에 자리하고, 상장군上將軍은 오른쪽에 자리한다. 이것은 상례喪禮로써 전쟁에 처하란 말이다. 많은 사람을 죽일 것이니, 애도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전쟁에 이겼어도 상례로 마무리한다.
- 『노자』제31장

증자문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옛날에 내가 노담을 따라 항당에서 남의 장례를 돕고 있는데, 길에서 일식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소공 24년 5월 을미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고 『춘추春秋』에 나와 있다. 이때가 공자가 노담을 따르며 예를 물었던 때이다.
- 『사기』의 「노자전전증」

소공 24년 공자의 나이 34세 때, 맹희자가 죽었다. 남궁경숙은 출문出門조차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나이가 겨우 14세였다. 이때는 아마도 왕을 알현할 수 없었을 것이고, 주나라에 갈수도 없었을 것이다.
- 양옥승梁玉繩

기원전 518년 4월 9일에 일식이 일어났다. 시베리아 서부에서 일어나 동으로 약간 기울고, 서북으로 향하여 북방양으로 들어갔다. 노나라 도읍에서는 볼 수 없었다.
- 『춘추좌전』

그대가 말하는 옛 성인도 지금은 그 육신과 뼈마디가 썩어 문드러져서 그 말씀만 남아 있을 뿐이다. 군자는 때를 만나면 세상으로 나아가 정치를 하며 수레를 타는 귀한 몸이 된다. 그렇지 못하면 야인으로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보관해두어 속이 알차지만, 남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한다. 군자는 훌륭한 덕을 쌓아 속이 충실하지만 남보기에는 어리석은 것같이 보이게 한다. 그러니 그대는 교만함과 과욕과 잘난 척하는 마음과 산만한 생각 따위를 다 버려라. 그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뿐이다.
- 『사기』「노장신한열전」

"새가 날아다니고, 물고기는 헤엄치며, 짐승이 달린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달리는 것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치는 것은 낚싯대를 드리워서 낚으며, 날아다니는 것은 주살을 쏘아야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나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른다고 하니, 나로서는 용의 실체를 알 수가 없다.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는데, 마치 용과 같아 전혀 잡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 『사기』「노장신한열전」

공자가 노담을 만나고 돌아와서 왜 3일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노담을 만나서 도대체 무엇을 깨우치셨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나는 그곳에서 용을 보았다. 용은 합쳐지면 모습을 이루고, 흩어지면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구름을 타고 음양 속을 훨훨 난다.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고, 혀가 달라붙어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가 어찌 노담을 깨우친단 말인가?"
- 『장자』의「천운」

노래자老萊子의 제자가 나무를 하러 갔다가 중니(孔子)를 만나고 돌아와서 말하였다.
저기에 사람이 있는데, 위 몸통은 길고, 아래 몸통은 짧으며, 등은 굽고 귀가 머리 뒤쪽에 붙어 있습니다. 눈초리는 마치 천하를 다스리고 있는 듯한데, 누구네 자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노래자가 말하였다.
"공구孔丘일 것이다. 불러 오너라."
중니가 오자 노래자가 말하였다.
"공구야, 그대 몸에 배어 있는 자만과 현학적인 모습을 버려라. 그러면 군자가 될 것이다."
- 『장자』의 「외물外物」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노래자도 초나라 사람이며 15편의 책을 지어 도가의 깊은 뜻을 밝혔는데, 공자와 동시대 사람이라고 한다.
- 『사기』「노장신한열전」

장수절張守節은 『사기정의』에서 '태사공이 노자를 노래자로 의심했으므로 그렇게 기록하였다'라고 밝혔으나, 이는 장수절이 잘못 본 것이다. 『사기』의「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는 '공자가 존경하는 인물로서 주나라의 노담, 위나라의 거백옥, 제나라의 안평중, 초나라의 노래자, 정나라의 자산, 노나라의 맹공작 등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러므로 사마천은 본래 노담과 노래자를 다른 인물로 본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증거이다. 그리고 사마천은 '노자는 상하 두편의 책을 지었는데, 도덕의 의미를 밝힌 5천여 글자를 남겼다'고 했으며, '노래자는 15편의 책을 지어 도가의 깊은 뜻을 밝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마천은 명확히 두 사람이 다른 사람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한나라 때에 『노담』과『노래자』라는 책이 모두 있었다. 이것이 두 번째 증거이다. 이외에도 신도愼到 · 전병田騈 · 접여接予 · 추연騶衍 · 공손룡公孫龍, 묵적墨翟 등이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부연된 것만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태사공이 노자를 노래자로 의심했다는 장수절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노래자가 초나라 사람인지, 공자와 동시대 사람인지를 태사공은 상세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전해오는 말에 의거해서 썼을 뿐이다. 즉 태사공은 「맹자순경열전」에서  '묵적은 송나라 대부로서 성을 잘 지키고 비용을 절약하였다. 어떤 사람은 그를 공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공자 이후의 인물이라고 말하여 분명치가 않다'라고 적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와 동일한 필법이다.
- 『사기』「노자열전전정老子列傳箋証」

노자는 허무虛無의 도덕을 닦아서 스스로 재능을 숨겨,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힘쓰는 데에 학문의 목표를 두었다. 주나라에 오래 머물렀는데, 주나라가 쇠퇴해지자 마침내 떠나기로 작정하고, 관문에 이르렀다.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선생님께서는 이제 은거하시려고 하니 이 사람을 위해 가르침을 남겨주십시요"라고 청하였다. 이에 노자는 상하 두 편을 저술하여 도덕의 의미를 밝힌 5천 여 글자를 남기고 관을 떠났다. 그 후로 노자의 최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사기』「노장신한열전」

공자가 죽은 뒤 129년 되던 해에, 주나라의 사관인 태사太史 담이 진헌공秦獻公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는 처음에 주나라와 합쳐져 있다가 500년 뒤에 갈라질 것이며, 갈라진 지 70년이 지나면 패왕이란 자가 나타나리라"
어떤 사람은 담이란 자가 노자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세상에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노자는 숨어 지내는 군자이기 때문이다.
- 『사기』「노장신한열전」

노자의 아들은 이름이 종宗이었는데 위나라 장군이 되어 단간段干 땅에 봉해졌다. 종의 아들은 주注이고, 주의 아들은 궁宮이며, 궁의 현손은 가假인데, 가는 한漢 문제文帝를 섬겼다. 가의 아들인 해解는 교서왕膠西王 앙卬의 태부太傅가 되어 그 제나라에서 계속 살았다."
- 『사기』「노장신한열전」

제2부
『노자』는 어떤 책인가?

아는 이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 구멍을 막고, 그 문을 닫고,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엉킴을 풀고, 그 빛을 누그러뜨리고,
그 더러움을 함께 뒤집어 쓰니
이를 일러 현묘하게 같아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멀리 할 수도 없으며
이롭게 할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으며
귀하게 여길 수도 없고 천하게 여길 수도 없으니
그러므로 천하의 귀한 것이 된다.
- 『노자』제56장

노탐老耽은 유柔를 귀하게 여기고, 공자는 인仁을 귀하게 여긴다. 묵적은 겸兼을 귀하게 여긴다.
- 『여씨춘추』「불이不二」

형 땅 사람 중에 활을 잃어버린 자가 있었는데, 찾으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형 땅에 사는 사람이 잃어버렸으니 형 땅에 사는 사람이 얻을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찾아서 무엇하겠는가?"
공자가 그 소리를 듣고 말하였다.
"형 땅을 떠나는 것이 옳다."
노담이 그 소리를 듣고 말하였다.
"그 사람을 떠나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노담은 공적인 데에 이르렀다.
천지는 크다. 천지가 만물을 낳았는데 자기 지식으로만 기르지 않고 이루었는데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으니, 만물이 모두 그 혜택을 입는다. 이익을 얻어도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지 못한다.
- 『여씨춘추』「귀공貴公」

노자가 말하였다.
"귀함은 반드시 천함을 근본으로 하고, 높은 것은 반드시 낮은 것을 터전으로 삼는다."
- 『전국책』「제책齊策」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은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것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형체가 없는 것은 틈이 없는 데로 스며들어 갈 수 있다. 나는 무위가 얼마나 유익한 지를 안다.
- 『노자』제43장

몸은 몸으로 보고 집안은 집안으로 보며 마을은 마을로 보고 나라는 나라로 보며 천하는 천하로 본다. 내가 어떻게 천하가 그러함을 알겠는가? 바로 이런 방식을 가지고서이다.
- 『노자』제54장

나는 세 가지 보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잘 지키고 보존한다. 하나는 자애이고, 둘은 검약이고, 셋은 감히 세상을 위하여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 『노자』제67장

나의 말은 아주 알기 쉽고, 아주 행하기도 쉽다. 세상에서는 알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한다.
- 『노자』제70장

만약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할 수 있겠는가? 백성이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고, 범죄자를 내가 잡아죽인다면, 누가 감히 범죄를 저지르겠는가.
- 『노자』제72장

후왕은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올바르게 한다. (중략) 후왕은 끊임없이 고귀하고 높게만 행세하려 들면 장차 실각하게 될 것이다. (중략) 후왕은 스스로 외로운 사람, 덕이 부족한 사람,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일컬었다.
- 『노자』제39장

도는 항상 무위하지만, 하지 아니함이 없다.
후왕이 이를 잘 지킨다면 만물은 저절로 교화될 것이다.
- 『노자』제37장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이 천자로부터 나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온다.
- 『논어』「계씨季氏」

제후들이 피폐한 틈을 타고 들고 일어날 것이다.
- 『손자병법』「작전作戰」

제후들의 계책을 알지 못하는 자는, 만약에 대비하며 미리 외교를 하지 못한다.
- 『손자병법』「군쟁軍爭」

제후들을 굴복시킬 적에는 해로움으로써 하고,
제후들은 부릴적에는 일로써 하고,
제후들을 나에게 할 적에는 이로움으로써 한다.
- 『손자병법』「구변九變」

제3부
노자의 지혜

사람은 연약하게 태어나지만 단단하게 굳어져 죽고
만물초목은 부드럽게 나서 딱딱하게 말라 죽는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
그래서 군사가 강하기만 하면 이길 수 없고
나무가 강하기만 하면 베어진다.
강하고 큰 것은 낮은 곳에 있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높은 곳에 처한다.
- 『노자』제76장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를 인습하였으니, 덜어내고 보탠 것을 알 수 있으며,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를 인습하였으니, 덜어내고 보탠 것을 알 수 있다. 혹시라도 주나라를 잇는 자가 있다면, 비록 백 세 뒤라 할지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논어』「위정爲政」

사람으로서 인仁하지 못하면 예禮를 어떻게 사용하며, 사람으로서 인仁하지 못하면 악樂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겠는가?
- 『논어』「팔일八佾」

길례(吉禮)에는 왼쪽을 높은 자리로 하고, 흉례(凶禮)에는 오른쪽을 높은 자리로 한다. 부관장군은 왼쪽에 자리하고, 상장군上將軍은 오른쪽에 자리한다. 이것은 상례喪禮로써 전쟁에 처하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을 죽일 것이니, 애도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전쟁에 이겼어도 상례로 마무리한다.
- 『노자』제31장

나에게는 세 가지 보배가 있으며, 나는 이것을 언제나 지니고 보존하고 있다. 첫째는 자애이고, 둘째는 검약이고, 셋째는 감히 천하의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 『노자』제67장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을 미微라 하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希라 하며,
만져보지만 만져지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한다.
세 가지는 끝까지 따져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섞여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위쪽이라고 해서 밝지도 않고
아래쪽이라고 해서 어둡지도 않다.
끝없이 이어져 잇어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그것은 무의 상태로 되돌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형상이 없는 형상이라 하고
사물이 없는 형상이라고 한다.
이것을 황홀이라 말한다.
- 『노자』제14장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부린다. 형태가 없는 것은 틈이 없는 곳으로도 들어간다.
- 『노자』제43장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을 천지의 시초라 하고,
이름이 있는 것을 만물의 근원이라 한다.
(중략)
이 둘은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의 앞으로 나와서 이름을 달리 했을 뿐이다.
현묘하고도 현묘하니
온갖 묘한 것들을 빚어내는 문이다.
- 『노자』제1장

혼돈 상태에 잇으면서도 이루어지는 무엇인가가
천지만물보다도 먼저 생겼다.
그것은 소리가 없어 들을 수 없고,
형체가 없어 볼 수도 없다.
홀로 우뚝 서 있으며 늘 변하지 않는다.
두루 행해지면서도 위태롭지 않으니
천지만물의 어머니라 할 수 잇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겠다.
억지로 글자를 붙여 도道라 부르고,
억지로 이름을 지어 크다大 할 뿐이다.
- 『노자』제25장

이 세계에는 시작이 있는데,
그것이 이 세계의 어머니같은 역할을 한다.
그 어머니를 알면 그 자식을 알 수 있다.
그 자식을 알고
다시 그 어머니에게 돌아가 지킨다면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 『노자』제52장

옛날부터 하나를 얻어서 된 것들이 있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서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서 안정되며
신은 하나를 얻어서 영험하고,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서 채워지며,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살고,
통치자는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바르게 한다.
- 『노자』제39장

리는 모나고 둥근 것, 길고 짧은 것, 거칠고 쏠리는 것, 굳고 허물거리는 것 사이의 분별이다
- 『한비자』「해로」

도라는 것은 정말로 황恍하고도 홀惚하다
홀하고 황하면서 그 안에 형상이 있다!
황하고 홀하면서 그 안에 형체가 있다!
그윽하면서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정기가 있다!
그 정기는 참되고 믿음직스럽다.
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존재하니
그것을 통해 시작을 볼 수 있다.
내가 어째서 시작되는 상태를 알겠는가?
이것에 의해서이다.
- 『노자』제21장

세가지(微希夷)는 헤아릴 수 없는 혼돈된 하나이다. 온전하게 이름 붙일 수 없고 무물無物로 돌아가니, 무물의 형상이 황홀하다. 그런데 다음 장에서는 '도라는 것은 오로지 황하고 홀하다. 홀하고도 황하면서 그 안에 형체가 있다'라고 하였다. 이 두 장에서 어떤 때는 형체가 없음을 말하고, 어떤 때는 형체가 있음을 말하였으니 일치하지 않는다.
- 손성孫盛 『노자의문반신老子疑問反訊』

노자의 글에는 그 말이 서로 모순되어 있다. 이것은 마치 얼음과 숯처럼 서로 상극되어 용납되지 않는 관계와 같다.
- 『하남정씨유서河南程氏遺書』제18권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끌어안아서
텅빈 가운데 기가 충만하여 조화를 이룬다.
- 『노자』제42장

천하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 『노자』제40장

만물이 다같이 자라지만, 나는 그것이 근원으로 돌아감을 본다.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지만, 결국은 모두 근원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함(靜)이라 한다.
- 『노자』제16장

오늘날 노자의 책을 자세하게 살펴보니, 생명력을 다스리는 것에 관한 글이다. 그러니 '덕은 만물의 본성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 고형高亨 『노자정고』

가장 훌륭한 덕(上德)은 덕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덕이 있다.
수준 낮은 덕(下德)은 덕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므로 덕이 없게 마련이다.
- 『노자』제38장

무엇을 낳고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고
무엇을 하고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으며
무엇을 길러주고도 그것을 주재하려 들지 않는다.
- 『노자』제51장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일이요.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것은 나라를 복되게 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를 아는 것이 다스림의 법칙이다.
언제나 다스림의 법도를 아는 것을
현덕이라고 한다.
- 『노자』제65장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 『논어』「팔일」

죽음과 삶은 명에 달려 있고, 부와 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
- 『논어』「안연」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사시四時가 운행되고 온갖 만물이 잘자라는데,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 『논어』「양화」

인을 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겠는가?
- 『논어』「안연」

하루라도 인에 힘쓰지 않는 자가 있는가? 나는 힘이 부족한 자를 아직 보지 못하였다.
- 『논어』「이인」

하늘은 응달과 양달, 추위와 더위, 시간의 변화와 관계되고, 땅은 먼 곳과 가까운 곳, 험한 곳과 평탄한 곳, 넓은 곳과 좁은 곳, 죽음과 삶과 관계된다.
- 『손자병법孫子兵法』「계편計篇」

그렇다면 누가 하늘의 의지에 따라 상을 받을 것인가? 누가 하늘의 의지에 반하여 벌을 받을 것인가? 묵자는 말하였다. 옛날 삼대의 성왕인 우 · 탕 · 문무는 하늘의 의지에 따라 상을 받았고, 옛날 삼대의 폭군인 걸 · 주 · 유 · 여는 하늘의 의지에 반하여 벌을 받았다.
- 「천지天志」상

명은 폭군이 지은 것으로 (중략) 어진 사람의 말이 아니다.
- 「비명」하

노력하면 반드시 다스려지고, 노력하지 않으면 어지러워진다.
(중략)
노력하면 반드시 귀하게 되고, 노력하지 않으면 천하게 된다.
노력하면 반드시 부유하게 되고, 노력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난하게 된다.
- 「비명」하

천지는 어질지 않다.
만물을 풀강아지(芻狗)와 같이 여긴다.
- 『노자』제5장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 단 이슬을 내리듯이
백성들은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제 질서를 찾는다.
- 『노자』제32장

사람도 잘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
- 『논어』「선진」

신에게 제사 지낼 때는 신이 있는 듯이 한다.
- 『논어』「팔일」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
- 『논어』「옹야」

도로써 천하에 임하면,
귀신도 조화를 부리지 못한다.
귀신이 조화를 부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도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
- 『노자』제60장

지금 『노자』를 보니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사람으로서 어찌 사랑하지 않았으랴. 그 학문은 세상에 나와서 천하를 다스리는 데 기여했다.

노자는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장자는 하지 않은 듯하다.
- 『주자어류朱子語類』권125

천하에는 겁쟁이들의 궘모술수가 많아 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나 지혜로 나아간다면, 필연적으로 세력을 넓혀 나갈 수 있다.
- 『제자학략설諸子學略說』

남성의 힘을 쓸 수 있으면서도 여성적인 겸허와 유약을 지키면
천하의 물이 모여 흘러가는 골짜기와 같이 될 수 잇다.
(중략)
밝게 알아서 미천한 자리를 지킬 수 있으면
천하의 골짜기가 될 수 있다.
- 『노자』제28장

백성들 위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자기를 낮추고
백성 앞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뒤로 해야 한다.
- 『노자』제66장

감히 세상을 위하여 앞으로 나서지 않음으로
온 세상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 『노자』제67장

나라의 허물을 받아 들이니, 사직의 주인이라 하고,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니 천하의 왕이라 하는 것이다.
- 『노자』제78장

노자의 학문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한가한 때에 낮은 자리에 처하는 사람이고 긴요한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가르침은 여러 갈래로 향하나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중략) 두렵도다! 두렵도다!
- 『주자어류』권22

무력은 좋지 못한 것이다.
부득이 해서 그것을 쓴다.
- 『노자』제31장

비록 무기가 있어도 쓸 필요가 없다.
- 『노자』제80장

천하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천하에서 가장 견고한 것을 부린다.
- 『노자』제43장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하지만 굳센 것을 치는 데
물을 이길 것은 없다.
- 『노자』제78장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유약하지만,
죽으면 뻣뻣해진다.
초목도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지만,
죽으면 말라서 딱딱하게 된다.
그러므로 뻣뻣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
- 『노자』제76장

사람들이 모두 앞서려고 하는데, 그만이 홀로 남의 뒤를 따르려 했다.
- 『장자』「천하」

굽히는 것만 알고 뻗는 것은 알지 못했다.
- 「천론」

병법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내가 싸움을 거는 사람(主)이 되지 말고,
부득이 하게 맞는 방어자(客)가 되어라.
한 치라도 감히 공격해나가지 말고
한 자 후퇴하라.'
- 『노자』제69장

적을 가볍게 보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다.
적을 가볍게 보다가는 나의 보배를 잃게 될 것이다.
- 『노자』제69장

강이나 바다가 온갖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잘 낮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갖 계곡물의 왕이 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백성들 위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자기를 낮추고
백성 앞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뒤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위에 있어도
백성이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
성인이 앞에 있어도
백성이 해롭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온 천하가 즐거운 마음으로 그를 추대하고
싫어하지 않는다.
- 『노자』제66장

움츠리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펴줘야 하고,
약하게 만들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줘야 하고,
폐절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흉하게 해줘야 하고,
빼앗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줘야 한다.
- 『노자』제36장

휘면 펴지게 된다.
패이면 꽉 차게 되고,
낡으면 새로워 진다.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된다.
- 『노자』제22장

계속 채우려 드는 것보다
멈추는 것이 더 낫고,
잘 다듬어 날카롭게 하면
오래 갈 수 없다.
온갖 보화를 집안 가득 채우지만
그것을 지킬 수가 없고,
부유하고 높은 자리에 있다하여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
공이 이루어 지면 물러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 『노자』제9장

말이 없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런 것이다.
그러므로 강풍은 아침 나절 내내 불지 못하고,
폭우도 하루 종일 내리지 못한다.
누가 이렇게 하는가?
천지(자연)이다.
천지(자연)도 그렇게 오래 지속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 『노자』제23장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나
결국은 모두가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마련이다.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고요함(靜)이라 하고,
그것을 본성으로 되돌아간다고 말한다.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변하지 않는 도라고 한다.
- 『노자』제16장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의 뿌리가 되고,
고요함이 조급함을 지배하게 된다.
- 『노자』제26장

고요함은 열기를 이기니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른 것이다.
- 『노자』제45장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추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착한 것을 착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착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有와 무無는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도 서로를 성립시켜주며,
긴 것과 짧은 것도 서로를 이뤄주고,
높은 것과 낮은 것도 서로를 포함하며,
노래와 소리도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도 서로 따른다.
- 『노자』제2장

그러므로 귀한 것은 천한 것을 뿌리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바탕으로 삼게 마련이다.
- 『노자』제39장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다 같이 꽂혀 있으나,
바퀴통의 한복판에 있는 빈 공간이 바로 수레를 작동시키는 요인이다.
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 가운데에 있는 텅빈 공간이 바로 그릇을 쓸모있게 만드는 곳이다.
문이나 창을 뚫어 방을 만들지만,
방 가운데에 있는 공간이 바로 방을 쓸모있게 만드는 곳이다.
- 『노자』제11장

착한 사람은
착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착한 사람의 거울이다.
- 『노자』제27장

화禍 속에 복이 깃들어 있고,
복福 안에 화가 숨어 있다.
누가 그 근원을 알 수 있겠는가?
정해져 잇는 것은 없다.
바른 것은 다시 기이한 것이 되고
좋은 것은 다시 악한 것이 된다.
- 『노자』제58장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 같은 싹에서 생겨났고,
구층이나 되는 높은 누각도
한 줌 흙을 쌓아 올려서 된 것이고,
천리의 걸음도
발 밑의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 『노자』제64장

어려운 일은 쉬운 데서부터 풀어야 하고,
큰일은 사소한 데서부터 치르도록 해야 한다.
세상의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데서 일어나고,
세상의 큰일도 반드시 작은 데서 일어난다.
- 『노자』제63장

학문에 종사하면, 지식이 나날이 늘고,
도를 닦으면, 지식이 나날이 줄어든다.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 결국에는
무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 『노자』제48장

그러므로 성인은 말했다.
내가 억지로 하지 않으니,
백성이 저절로 질서를 찾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니,
백성이 저절로 바르게 되고,
내가 억지로 일을 꾸미지 않으니,
백성이 저절로 부유하게 되고,
내가 지나치게 욕심내지 않으니,
백성이 저절로 소박하게 되었다.
- 『노자』제57장

그러므로 성인은 억지로 행하는 바 없이 세상일에 처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실천한다.
- 『노자』제2장

가장 훌륭한 덕은 무위이면서 무엇을 위하여 일부터 작위하지 않는다.
- 『노자』제38장

움직임은 한기를 이기고, 고요함은 열기를 이기니,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른 것이다.
- 『노자』제45장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까닭은
그들이 지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활한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일이요,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것은
나라의 복이 된다.
- 『노자』제65장

나라는 바른 도리로 다스리고,
용병작전은 기발한 전술로 치러야 하지만,
천하를 다스림에는 무위로 처해야 한다.
내가 어떻게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바로 무위자연의 도로써 알 수 있다.
천하에 금기가 많으면
백성이 더욱 가난하게 되고,
백성이 이로운 기물을 가지면 가질수록,
나라는 더욱 어둡고 혼란하게 되고,
사람들이 간교한 꾀를 많이 부리면,
간사한 일들이 더욱 많이 나타나게 되고,
법령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도적이 늘어나게 된다.
- 『노자』제57장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 아끼는 것(嗇)처럼 좋은 것은 없다.
- 『노자』제59장

성인은 하나로 고정된 마음을 갖지 않고,
모든 백성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는다.
착한 사람에게도
착하게 대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착하게 대하니,
착함을 얻는다.
믿음직한 사람에게도
믿음직하게 대하고
믿음직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믿음직하게 대하니,
믿음직함을 얻는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자리에 있으면,
모든 것을 포용하고
천하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도와 하나가 되게 한다.
- 『노자』제49장

옛날에 도를 잘 실천하는 사람은
백성을 똑똑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바보같이 만들었다.
- 『노자』제65장

어진 이를 숭상하지 않아야
백성이 다투지 않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진귀하게 여기지 않아야
백성이 훔치지 않고,
명리를 좇는 탐욕을 보이지 않아야
백성의 마음이 흐르러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를 체득한 성인은
백성의 마음을 허정하게 만들고,
배를 충실하게 채워주고,
뜻을 부드럽게 하고,
기골을 강하게 한다.
항상 백성이 앎이 없게 하고,
지혜로운 자가 감히 무엇을 한다고 하지 못하게 한다.
무위에 따라 다스리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 『노자』제3장

찬란한 오색五色의 빛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며,
난잡한 오음五音의 음악 소리는 사람의 귀를 혼란스럽게 하며,
잡다한 오미五味의 음식 맛은 사람의 입맛을 상하게 한다.
말몰이 사냥은 사람을 들뜨게 만들고,
진귀한 재물은 사람을 타락시킨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생명의 근원인 배를 채울 뿐,
눈을 위하여 꾸미지는 않는다.
- 『노자』제12장

나라는 작고 인구는 적다.
각종 병기나 문명의 이기가 있어도 결코 쓰지 않는다.
백성으로 하여금 저마다 생명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멀리 떠돌지 않게 한다.
비록 배나 수레가 있어도 타는 일이 없고,
무기가 있어도 쓸 일이 없다.
백성으로 하여금 문자를 버리고
다시 새끼줄을 엮어 뜻을 표시하게 한다.
백성으로 하여금 거친 음식이 맛있고
거친 옷이 아름다우며
초라한 풍속이 즐겁고
띠풀로 지은 집이 편안하다고
생각하도록 한다.
이웃 나라와 서로 마주보며,
닭이나 개의 울음소리가 들려도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 『노자』제80장

과감하게 하는 용기가 있으면 죽고,
과감하게 하지 않는 용기가 있으면 산다.
- 『노자』제73장

강이나 바다가 온갖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러므로 온갖 계곡물의 왕이 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백성들 위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자기를 낮추고,
백성 앞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뒤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위에 있어도
백성이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
성인이 앞에 있어도
백성이 해롭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온 천하가 즐거운 마음으로 그를 추대하고
싫어하지 않는다.
그는 다투지 않으므로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와 다투려 하지 않는다.
- 『노자』제66장

큰 나라는 강물의 하류와 같다.
천하의 모든 나라와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큰 나라는 천하의 암컷과 같은 존재이다.
암컷은 항상 고요함으로써 수컷을 이기며,
고요함으로써 아래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큰 나라가 겸하의 태도로
작은 나라에게 자기를 낮추면,
작은 나라를 다 모아 다스릴 수가 있고,
작은 나라도 겸하의 태도로
큰 나라에게 자기를 낮추면
큰 나라에 합해질 수가 있다.
따라서 큰 나라도 겸하로써 얻고,
작은 나라도 겸하로써 얻을 수 있다.
큰 나라는 오직 모든 나라를 합하여
그 백성을 잘 양육하고자 원할 뿐이고,
작은 나라는 오직 큰 나라에 합해져
백성을 잘 섬기기를 원할 뿐이다.
서로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큰 나라가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
- 『노자』제61장

하늘의 도는
오직 만물을 이롭게만 하고 해치지 않으며,
성인 도는
오직 남을 위해 베풀기만 하고 다투지 않는다.
- 『노자』제81장

사물은 흔들리지 않을 때 유지하기 쉽고,
드러나지 않았을 때 도모하기 쉽다.
연약한 것은 부서지기 쉽고,
눈에 띄지 않는 것은 흐트러뜨리기가 쉽다.
일은 드러나기 전에 처리해야 하고,
나라는 혼란해지기 전에 다스려야 한다.
- 『노자』제64장

어려운 일은 쉬운 데서부터 풀어야 하고,
큰 일은 사소한 데서부터 치르도록 해야 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데서 일어나고,
천하의 큰 일도 반드시 사소한 데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성인은
끝내 크다고 자처하지 않는다.
따라서 큰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노자』제63장

만약 백성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죽음으로 그들을 두렵게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데도 이상한 짓을 하는 놈이 있다면,
나는 그놈을 잡아서 죽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를 죽일 것인가?
하늘에는 늘 죽음을 다스리는 자가 있어
나쁜 것을 죽게 한다.
그러나 사람이 하늘을 대신하여
남을 죽이는 것은
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깎는 일과 같은 말이다.
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깎는 자로서
자신의 손이 다치지 않는 자는 거의 없다.
- 『노자』제74장

백성이 굶주리고 있다.
통치자가 세금을 많이 거둬 먹어치우기 때문에
백성이 굶주리는 것이다.
- 『노자』제75장

백성이 사는 곳을 들들 볶지 말라.
백성이 사는 것을 지겹게 느끼지 않게 하라.
- 『노자』제72장

하늘과 도는 남는 것을 덜어내어
모자라는 곳에 보태준다.
- 『노자』제77장

조정은 심하게 썩었고, 전답은 황폐해졌으며, 창고는 텅텅 비었다. 그런데도 통치자들은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고, 날카로운 칼을 차고, 맛있는 음식을 물리도록 먹고, 재물을 쌓아놓고 있으니, 바로 도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 『노자』제53장

무위자연의 도道가 없어지자 덕이 있게 되었으며,
덕이 없어지자 인仁이 있게 되었으며,
인이 없어지자 의義가 있게 되었으며,
의가 없어지자 예禮가 있게 되었다.
예는 진실한 마음이 희박해져서 나타난 것이며,
모든 다툼의 시초이다.
미리 앞질러서 안다는 것은
도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으며
우둔함의 시원이다.
그러므로 어른스러운 사람은 돈후한 데에 처하고
천박한 데 살지 않는다.
- 『노자』제38장

성인은 자기를 알면서도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자기를 아끼면서도 스스로 높이지 않는다.
따라서 위압을 내세우는 정치를 버리고
청정무위를 실현한다.
- 『노자』제72장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므로
도리어 드러나 보이고,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으므로
도리어 밝게 주장하지 않으므로
도리어 밝게 빛나고,
스스로 뽐내지 않으므로
도리어 공이 두드러지고,
스스로 자만하지 않으므로
지도자가 된다.
- 『노자』제22장

귀한 것은 천한 것을 뿌리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바탕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임금은 스스로를
외로운 사람, 덕이 적은 사람, 여물지 못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천한 것을 뿌리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자주 명예롭기를 바라면,
도리어 명예롭지 못하게 된다.
- 『노자』제39장

만족함을 모르는 것보다 큰 화는 없다.
얻어가지려고 애쓰는 것보다 큰 허물은 없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만이 영원히 만족한다.
- 『노자』제46장

성인은 쌓아두지 않는다.
남을 위하면 위할수록
자기가 더 있게 된다.
힘써 남에게 주면 줄수록
자기가 더 풍요롭게 된다.
- 『노자』제81장

제4부
노자가 중국철학사상에 미친 영향

다른 사람을 아는 이는 지혜롭고 스스로를 아는 사람은 밝으며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고 자신을 이기는 이는 강하다.
만족할 줄 아는 자는 부유하고, 굳세게 행하는 사람은 뜻을 얻으며
제자리를 잃지 않는 이는 오래가고
죽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은 오래산다.
- 『노자』제33장

억지로 행하지 않고 저절로 다스린 사람은 순 임금일 것이다. 무엇을 하였겠는가? 몸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남면南面하였을 뿐이었다.
- 『논어』「위령공衛靈公」

위대하도다. 요 임금의 임금됨이여! 높고 크도다. 저 하늘이 가장 큰데. 오직 요 임금만이 그와 같으셨으니, 그 공덕이 넓고 넓어 백성이 무어라 형용하지 못하는구나.
- 『논어』「태백」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사시사철이 저절로 운행하고 만물이 자라나거늘,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 『논어』「양화陽貨」

병법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내가 먼저 싸움을 거는 사람이 되지 말고,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방어자가 되라.
- 『노자』제69장

적군의 형태를 드러내게 하고 아군의 형태를 없는 듯이 보이게 한다면, 아군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장악하게 되고 적은 분산될 것이다. 아군은 오로지 한 군데에 전투력을 투입하고, 적군은 열 군데로 전투력이 분산되도록 한다. 그러므로 열(十)로 하나(一)의 병력을 공격하는 셈이 된다. 아군은 병력이 많고 적군은 병력이 적다. 많은 병력으로 적은 병력을 공격하므로 상대방을 이기는 것은 쉽다. 우리가 공격하려는 곳을 적군이 알 수 없게 해야 한다. 적군이 알지 못하면, 그들이 대비하여야 할 곳이 많아진다. 적이 대비하여야 할 곳이 많으면, 우리가 싸울 상대가 적어진다.
- 『손자』「허실虛實」

어지러움은 다스림에서 생겨나고, 비겁은 용기에서 생겨나며, 약함은 강함에서 생겨난다.
- 『손자』「세편勢篇」

여러가지 전세는 기습 공격과 정면 공격에 불과하다. 기습 공격과 정면 공격의 변화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기습 공격과 정면 공격은 서로를 낳게 하는 것이어서 마치 끝없이 돌아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그 궁극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 『손자』「세편」

군사들을 멸망할 처지에 몰아넣으면 용감히 싸워서 살아남게 된다. 군사들을 죽게 될 처지에 빠뜨리면, 힘을 다해 싸워 살아나게 된다.
- 『손자』「구지편九地篇」

전쟁이란 속이는 수단을 써야만 한다. 그러므로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듯이 보이게 하며, 사용할 것인데도 사용하지 않을 것처럼 보여야 한다. 가까운 것인데도 먼 것처럼 보이게 하며, 먼 것인데도 가까운 것처럼 보여야 한다.
- 『손자』「계편計篇」

어려운 일은 쉬운 데서부터 풀어야 하고,
큰일은 사소한 데서부터 츠르도록 해야 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데서 일어나고,
천하의 큰일도 반드시 사소한 일에서 일어난다.
- 『노자』제63장

바른 것이 다시 기이한 것이 되고
착한 것이 다시 악한 것으로 된다.
- 『노자』제58장

군대의 형세는 물과 같아야 한다. 물이 높은 곳을 피하여 낮은 곳으로 나아가듯이, 군대의 형태도 실實을 피하여 허虛를 쳐야 하는 것이다. 물은 땅으로 말미암아 흐름이 제어되고, 군대는 적으로 말미암아 승리를 제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에는 일정한 형세가 없고, 물은 일정한 형상이 없는 것이다.
- 『손자』「허실虛實」

강이나 바다가 온갖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잘 낮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갖 계곡물의 왕이 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백성들 위에 서려는 자는 자기를 낮춘다.
- 『노자』제66장

천하에 물보다 더 유약한 것은 없다.
굳센 것을 치는 데는 물보다 더 뛰어난 것이 없다.
- 『노자』제78장

최고의 착한 덕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해주지만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비천한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물의 특성은 도에 가깝다.
- 『노자』제8장

천도는 차면서도 넘치지 않는다. 무성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다. 수고로우면서도 자랑하지 않는다. 성인은 때에 따라 행동하는데, 이것을 때를 지킨다고 한다. 하늘의 때는 만들지 않아도 행함이 없는 객이 오고, 사람의 일은 일어나지 않아도 행함이 없는 시작이 있다. (중략) 하늘의 때가 일어나지 않아도 먼저 객이 행하고 인간의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창조의 행위가 있으니, 이는 하늘을 거슬러서 사람에게 화합되지 않은 것이다. (중략) 때가 이르지 않으면 억지로 생기지 않고 일이 궁구되지 않으면 억지로 이룰 수 없다. 스스로 처하여서 천하를 헤아리고, 그 오는 곳을 얻어 바르게 하면, 때에 따라 베풀어져 정해진다.
- 『국어』「월어越語」

가장 완전한 것은 마치 덜 된 것과 같다.
아무리 써도 닳아지지 않는다.
가장 알찬 것은 마치 빈 것과 같다.
아무리 써도 끝이 없다. 가장 곧은 직선은 마치 굽은 것 같고,
최고의 웅변은 말을 더듬는 것 같으며,
최고의 기교는 서툰 듯하다.
- 『노자』제45장

천지사물은 유有에서 생기고, 유는 무無에서 생긴다.
- 『노자』제40장

도란 실제로 나타나는 작용이 있고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으니, 행위도 없고 형체도 없다. 그것은 전할 수는 있으나 주고 받을 수는 없다. 터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는 없다. 스스로 근본이 되어 천지가 생기기 이전 옛날부터 존재하며, 그것은 귀신이나 상제를 영묘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낳았다.
- 『장자』「대종사大宗師」

만물이 무설하게 자라고 있으나, 결국은 모두 근원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정이라 한다.
- 『노자』제16장

조물주란 사물을 낳는 작용으로 죽은 것에 삶을 주지도 않고, 사물을 죽이는 작용으로 산 것에 죽음을 주지도 않는다. 죽음과 삶은 서로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니며, 제각기 독자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천지에 앞서 생겨난 것이 있다는데, 그것이 과연 사물인가? 사물을 사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다. 사물이란 사물에 앞서 무물無物의 상태에서는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 생기는 이상 거기에는 이미 사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사물이 있으면 사물은 사물을 낳아 만물이 끝없이 생겨서 자라게 된다.
- 『장자』외편「지북유」

도에서 보면 사물에는 귀천이 없다. (중략) 그것을 명백히 하기 위하여 작은 풀 포기와 큰 기둥, 나병 환자와 미인 서시를 대조해본다면 매우 기이하고 야릇한 대조이지만, 참된 도의 입장에서는 다 같이 하나가 된다.
- 『장자』내편「제물론」

화 속에 복이 깃들어 있고,
복 안에 화가 숨어 있다.
누가 그 근원을 알 수 있겠는가?
정해져 있는 것은 없다.
바르게 되어 있는 것은 다시 기이한 것이 되고
착한 것이 다시 악한 것으로 된다.
- 『노자』제58장

예와 아니오의 차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좋고 싫음의 차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 『노자』제20장

예악에 따라 몸을 굽히고 인의에 순순히 좇아 사람들의 마음을 뒤로 하는 것은 본래의 모습을 잃은 것이다.
- 『장자』외편「변무」

자연 그대로의 나무토막을 손상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술 단지를 만들겠는가? 자연 그대로의 백옥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규나 장을 만들겠는가? 참된 도덕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어찌 인과 의를 택하겠는가? 본래 그대로의 천성이나 진정이 떠나지 않는다면 어찌 예의나 음악이 필요하겠는가? 오색이 문란해지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무늬를 만들겠는가? 오성이 어지러워지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육률을 맞추겠는가? 통나무를 헤쳐서 그릇을 만든 것은 목수의 죄이지만 참된 도덕을 망쳐가며 인의를 만든 것은 성인의 잘못이다.
- 『장자』외편「마제」

성인이 죽지 않으면 큰 도둑이 없어지지 않는다. 비록 성인을 존중하고 천하를 다스린다 해도 결국 그것은 도척 같은 인간을 존중하고 이롭게 하는 셈이 된다. 되를 만들어 용량을 재려 하면, 그 되까지 훔쳐버린다. 저울을 만들어 물건을 달려 하면 그 저울까지 훔쳐버린다. 어음이나 증서를 만들어 신용 있게 하려 하면, 그 어음이나 증서까지 모두 훔쳐버린다. 어째서 그런 줄 아는가? 따쇠를 훔치는 자는 사형되고, 나라를 훔치는 자는 제후가 된다. 그 제후의 가문에 인의가 보존된다.
- 『장자』외편「거협」

저 백성에게는 공통된 속성이 있다. 옷감을 짜서 옷을 지어 입고, 땅을 갈아 식량을 얻는다. 이것을 누구나 다 갖춘 동덕同德이라 한다. (중략) 때문에 최고의 덕으로 다스려지는 평화의 세상에서는 사람들의 거동이 유유자적하며, 눈매가 밝고 환하다. 그런 시대에는 산에 길이 나 있지 않고 못에는 배나 다리도 없으며, 만물이 무리지어 생겨나 사는 곳에 경계를 두지 않았다. 새와 짐승은 떼지어 살고 초목은 마음대로 자랐다. (중략) 지극한 덕으로 다스려지는 세상에서는 새와 짐승과 함께 살았고, 만물과 함께 모여 살았다. 그러니 어찌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겠는가? 모두 무지無知하여 본래의 참모습에서 떠나지 않았다. 모두 무욕無慾하여 그야말로 소박하다 할 수 있었다. 소박하기 때문에 백성의 자연스런 본성도 온전했다.
- 『장자』외편「마제」

그 시대 백성은 글자 대신 노끈을 매듭지어 기호로 썼고, 음식을 맛있게 여겼으며, 입는 옷을 훌륭하다고 했고, 풍속을 즐기며, 집을 편안하게 여겼다. 이웃 나라가 바로 내다보이고, 닭이나 개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였지만, 백성은 죽을 때까지 왕래하지 않았다. 이런 시대야말로 가장 잘 다스려졌던 시대이다.
- 『장자』외편「거협」

도가의 술은 음양학에 바탕하고 유가와 묵가의 장점을 채용하며, 명가와 법가의 요점을 가려 뽑은 것이다. 시대 상황의 추이에 따르고 사물의 변화에 대응한다. 풍속을 세워 일에 베푸니 마땅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상은 간략하면서도 쉽게 잡히고, 일은 적지만 공은 크다.
- 『사기』「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선왕이 유세하는 선비들에게 글을 배웠다. 추연 · 순우곤 · 전병 · 접여 · 신도 · 환연 등 76인 모두를 상대부로 삼아 정치에 대한 의론을 일삼았다. 그러므로 제나라 직하학의 학자들이 부흥하여 수백 수천에 이르렀다.
- 『사기』「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신도는 조나라 사람, 전병과 접여는 제나라 사람, 환연은 초나라 사람인데 모두 다 황로의 도덕을 배우고, 그로 말미암아 터득한 것이 있어 그 주요한 뜻을 저술하였다. 신도는 12론을 저술하고, 환연은 상 · 하편을 저술하였으며, 전병과 접여도 모두 저술한 것이 있었다.
- 『사기』「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

성은
- 『노자』제46장

박담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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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11. 28. 10:37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8 봄가을 음식

글, 사진 / 뿌리깊은나무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6447

082
빛 12 ㄷ 64

글 / 고현진, 정성희(샘이깊은물 전 기자)
사진 / 강운구(샘이깊은물 사진 편집위원)
          김승근(샘이깊은물 사진 기자)
          권태균, 백승기, 이창수(샘이깊은물 전 사진 기자)

|차례|

봄나물 세 가지
두릅적
미나리강회
물쑥나물
칡수제비
파전과 쑥굴리
절 "밥상"
도미국수
굴비 찌개
게감정
물김치
감동젓무
박속
미꾸라지국
손두부
송이 산적
토란대 나물
섭산적
어복쟁반
모시떡과 작고편

▲ 두릅적

▲ 미나리강회

▲ 물쑥나물

▲ 칡수제비

▲ 파전

▲ 도미국수

▲ 굴비찌개

▲ 게감정

▲ 물김치

▲ 감동젓무

▲ 미꾸라지국

▲ 송이산적

▲ 토란대나물

▲ 어복쟁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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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7 겨울 음식

글, 사진 / 뿌리깊은나무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6446

082
빛 12 ㄷ 63


빛깔있는 책들 63

글 / 고현진, 정성희(샘이깊은물 전 기자)
사진 / 강운구(샘이깊은물 사진 편집위원)
          김승근(샘이깊은물 사진 기자)
          권태균, 백승기, 이창수(샘이깊은물 전 사진 기자)

|차례|

평안도 온반
메밀묵
꼬리찜
족볶음
대하찜
참게장
대구 구이
갈치 조림
알젓 찌개
비지 찌개
김치 저냐
장김치
떡찜
감떡
가자미 식해
안동 식혜
동지팥죽
강정
약과와 정과
소곡주

▲ "피양도 온반" 한 그릇. 옛날에 평안도 사람들은 정월에 세배온 손들에게, 남쪽 사람들이 떡국을 대접하듯이, 이런 온반을 대접했다고 한다.

▲ 메밀묵

▲ 꼬리찜 한 그릇. 뜨거울 때에 먹는 꼬리찜은 구수하고 깊은 맛이 있는 꼬리곰탕과는 또다른 맛을 지녔다.

▲ 대하찜

대하찜 만드는 법
1. 대하는 찜통에 쪄서 껍질을 벗겨 칼을 뉘어 포를 뜨듯이 옆으로 길게 자른다.

2. 사태는 삶아서 눌러 놓았다가 납작하게 썬다.

3. 죽순은 삶아 빗살무늬로 썰어 소금과 흰후추로 간하고 기름에 살짝 볶아 식힌다.

4. 오이는 반을 갈라 어슷하고 도톰하게 썰어 소금에 살짝 절였다가 꼭 짠다. 기름에 볶아 냉장고에서 바로 식혀 푸른색을 유지해 둔다.

5. 도마에 한지를 깔고 칼날로 잣을 다져 잣가루를 만든 후, 나머지 잣즙 양념을 넣어 충분히 저어 뽀얀 잣즙을 만들어 모든 재료에 버무린다.

▲ 깔끔하게 담긴 갈치 조림 한 그릇

▲ 뚝배기에 끓여 그대로 상에 올린 알젓 찌개. 새우젓으로 간한 찌개가 흔히 그렇듯이 그 국물이 시원하여 입안에서 알을 터뜨려 먹는 재미나 씹는 맛이 고소하다.

▲ 장김치. 간을 소금으로 하지 않고 간장으로 한 젓갈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이 장김치는 매운 음식을 먹기 어려운 아이나 환자에게 적당하다.


▲ 고기와 야채와 떡이 어우러져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떡찜


▲ 얼핏 보아 김치 같아서 보는 이에게 친숙함을 주는 가자미 식해 한 접시

▲ 안동 식혜 한 동이. 맵싸하고 화한 맛이 나는 이 안동 식혜를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담가 두었다가 찾아오는 이에게 따뜻한 아랫목을 내 주고 이 식혜의 별미를 맛 보여 준다면 그 맛이 온몸에 번져 모처럼 찾아온 손님의 몸과 마음을 덥혀줄 것이다.


▲ 먹음직스런 팥죽 한 그릇. 추운 겨울날 찬바람이 도는 밖에서 막 들어와 먹는 팥죽 한 그릇은 웅크린 마음까지 녹여 훈훈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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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균 지음
2004, 논형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2087


152.21
김241공


스승은 제자를 만들고 제자는 스승을 만든다


공자와 그 제자들의 사상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를 수천 년간 사로잡았다.
『논어』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어렵기도 하지만
재밌기도 하다. 원문을 고집하면 어렵지만,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하면 흥미로워진다.
공자의 제자들은 각계각층을 망라하고 있다.
그들의 캐릭터를 살펴보면 『논어』만큼 재밌는 책도 없다.
공자의 수제자 안연은 현대적 안목에서는 예스맨이다.
가장 갑갑한 사람이다. 용기가 출중하고 정의로웠던 자로는
스승 공자에게 유일하게 노라고 대답할 수 있었던 제자이다.
주변에서 공자보다 칭송 받았던 자공은
오늘날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여겨진다.
공자와 그 제자들은 파란만장한 대화를 통해
다양한 인생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다양한
학문의 세계를 가르쳐 준다.


지은이 김덕균金德均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산동사회과학원 박사후과정(Post-Doc)을 수료하였다.
1991년부터 성균관대, 중앙대, 동덕여대, 한국예술종합학교, 감신대, 협성대, 대전대, 유한대에서 강의하다가 중국산동사범대학 외국인교수, 산동사회과학원 연구학자, 서일대학 교양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성산효도대학원대학교 효학과 주임교수로 재직중이다.
공저로는 『현대중국의 모색』(동녘),『왕양명철학연구』(청계),『동양철학의 자연과 인간』(아세아문화사),『동양사상』(전통문화연구회), 『정보기술사회의 윤리매뉴얼』(서광사),『儒家傳統與人權 · 民主思想』(齊魯書社, ※中文板)이 있고, 역주서로 『명이대방록』(제41회 백상출판문화상 번역부문 수상작, 한길사),『잠서』(한국학술진흥재단 동서양명저번역 지원사업, 소명)와 번역본으로 『중국봉건사회의 정치사상』(동녘)이 있다. 그밖에 효학, 양명학, 실학 등 관련분야의 연구논문 30여 편이 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논어』「위정」)


 ▲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

▲ 공자의 고향 곡부(曲阜) 니산(尼山)

▲ 행단(杏壇)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장소

 목차

저자서문
천리마와 파리
수많은 제자들
끼니는 굶어도 학문을 좋아했던 안연
의리의 사나이 자로
스승보다 높게 평가된 자공
소극적이었지만 약삭빨랐던 염구
말 많고 비판적이었던 재여
겁쟁이면서도 효자였던 증삼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썼던 자유
정렬이 넘쳤던 자장
대기만성형 자하
독야청청했던 민자건
군주감으로서의 중궁
말 많고 근심 많던 사마우
공자집안의 가신 원헌
전과자이면서도 공자의 사위로 선택된 공야장
능력있고 근실해서 조카사위로 삼은 남궁괄
군자 자천
인정받았지만 벼슬을 사양한 칠조개
삐딱했던 자금
공자의 운전기사 번지
스승 공자의 외모를 닮았던 유약
덕행이 뛰어났으나 몹쓸 병에 걸린 염백우
시세파악능력이 뛰어났던 자고
품격있는 예절로 손님을 대접하던 공서화
낭만이 넘쳤던 증석
자식 사랑이 절절했던 안로
스승의 잘못을 전달한 무마기
청렴하였던 담대멸명
욕심 많은 신장
동료를 헐뜯은 공백료
참고자료

▲ 중국 곡부의 대성전(大成殿)

▲ 공자와 안연 앞선 사람이 공자이고 뒤가 안연이다.(先聖小像)

 끼니는 굶어도 학문을 좋아했던 안연

안연(顔淵, B.C. 521~490)의 이름은 회(回)이고, 자는 자연(子淵), 혹은 안연, 존칭해서 안자(顔子)라 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공자의 수제자였다. 공자보다 30세 연하이고, 29세때 머리가 세었으며, 31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628년 당나라 시절 선사(先師)로 추존된 이후 739년 연공(兗公), 1009년 송나라 때 연국공(兗國公), 1330년 원나라 때 연국복성공(兗國復聖公), 1530년 명나라 때 복성(復聖)이라 추봉되었다. 시호를 통해서도 명실공히 공자의 수제자였음을 알게 된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말했다. "안연은 나와 하루종일 마주앉아 공부할 때 듣고 만 있었다. 그래서 난 저가 어리석은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보았더니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실천하였다. 안연은 절대로 어리석은 바보가 아니다." (子曰 : 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爲政」)

 공자가 안연에게 말했다. "기용하면 나아가 행동하고 버리면 은둔하는 것은 오직 너와 나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 「述而」)

 애공이 물었다. "당신의 제자가운데 누가 가장 학문하는 것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안연이란 자는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거듭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는 단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없으니 아직 학문을 좋아하는 제자가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哀公問 :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雍也」)

 공자가 말했다. "안연은 그 마음이 3개월 동안 인을 떠나지 않았고, 나머지 제자들은 한 달에 한번 정도만 인에 이를 뿐이었다." (子曰 " 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옹야」)

 공자가 말했다. "어질구나 안연이여! 밥 한 그릇과 물 한 바가지로 누추한 곳에서 사는 것을 다른 사람같으면 그것을 근심하며 견디지 못할 터인데, 안연은 그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구나 안연이여!" (子曰 :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 「옹야」)

 공자가 말했다. "안연은 나의 어떠한 말에도 기뻐하지 않음이 없으니 나를 도와주지 않는 사람이다." (子曰 : 回也非助我者也, 於吾言無所不說. 「先進」)

 공자가 말했다. "안연은 (진리를 깨우친데) 가까이 갔지만, 끼니를 자주 굶었다." (子曰 : 回也其庶乎, 屢空. 「先進」)

 공자가 말했다. "(진리를) 알려주면 게을리 하지 않는 자는 안연일 뿐이다." (子曰 : 語之而不惰者, 其回也與! 「子罕」)

 의리의 사나이 자로

자로(子路, B.C. 542~480)의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가 자로, 혹 계로(季路)라고도 했다. 공자보다 9세 연하로 제자중 최고 연장자였다. 노나라 변(卞), 지금이 산동성 사수현(泗水縣) 천림(泉林) 사람이다. 공문십철의 한사람. 739년 위후(衛侯), 1009년 송나라 때 하내후(河內侯), 그 뒤 위공(衛公)으로 추봉되었다.

▲ 공자가 태산을 지날 때 폭정에 시달려 울고 있는 여인을 보고 자로와 자공 등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고 말하는 장면.(泰山問政)

 『논어』 속으로…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으려 하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함이 없는 자와는 함께 하지 않겠다. 반드시 일을 할 때에는 두려워할 줄도 알고, 일을 잘 도모할 줄도 알아서 성공하게끔 만드는 자와 함께 하겠다." (子路曰 : 子行三軍, 則誰與? 子曰 :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述而」)

 공자가 말했다. "자로야! 내가 너에게 안다는 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이것이 아는 것이다." (子曰 :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爲政」)

 공자가 말했다. "진리가 행해지지 않으니, 내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려 한다. 이 때 나를 따라올 사람은 아마 자로 뿐일 것이다." 자로가 스 소릴 듣고는 기뻐하였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넌 용기는 나보다 나을지 모르지만 사리를 헤아려 맞게 하는 분별력은 한참 떨어진다." (子曰 : 道不行, 乘桴浮干海, 從我者其由與? 子路聞之喜. 子曰 : 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公冶長」)

 맹무백이 물었다. "자로는 인한 사람입니까?" 공자가 대답햇다. "모르겠다." 다시 (맹무백이) 묻자, 공자가 대답햇다. "자로는 천승의 나라에서 군사를 다스리게 할 수는 있지만, 인한 지는 잘 모르겠다." (孟武伯問 : 子路仁乎? 子曰 : 不知也, 又問, 子曰 :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공야장」)

 공자가 말했다. "자로가 비파소리를 어찌해서 내 문안에서 연주하는가?" 문인들이 자로를 불경하게 생각하자 공자가 말했다. "자로는 당에는 올랐지만 아직 방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由之瑟, 奚爲於丘之門. 門人, 不敬子路. 子曰, 由也, 升堂矣, 未入於室也. 「선진」)

 "자로는 거칠다." (由也, 喭. 「선진」)

 공자가 말했다. "내 나이가 너희들보다 많다해서 나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너희들이 평소에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하는데, 만일 혹시라도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자로가 경솔하게 대답하였다. "천승의 제후국이 강대국사이에 끼어 간섭을 받으며 전쟁의 위협이 가해져 그 때문에 기근이 들었다 하더라도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리면 3년 안에 위축된 백성들을 용맹스럽게 하고, 또 의리를 실천하게 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공자가 살며시 웃었다. (子曰 : 以吾一日 長乎爾, 毋吾以也. 居則曰 : 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 子路率爾而對曰 :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 夫子哂之. 「선진」)

 자로가 물었다. "군자도 용맹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의를 소중하게 여긴다. 군자가 용맹한 것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고, 소인이 용맹한 것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도적이 된다." (子路曰 : 君子尙勇乎? 子曰 : 君子義以爲上. 君子有勇而無義爲亂, 小人有勇而無義爲盜. 「陽貨」)

 공자가 말했다. "한마디 말로 송사를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은 자로일 것이다. 자로는 승낙하는 것을 묵히지 않았다." (子曰, 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 子路, 無宿諾. 「顔淵」)

 자로는 좋은 말을 듣고 아직 미처 실천하지 못했으면 혹시나 다른 말을 들을까 두려워하였다. (子路, 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公冶長」)

 공자가 음란하기로 소문난 남자를 만나자 자로가 화를 내었다. 그러자 공자가 맹세하며 말했다. "내 맹세코 잘못된 짓을 하였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옹야」)

 스승보다 높게 평가된 자공

자공(子貢, B.C. 520~?)의 성은 단목(端木)이고, 명은 사(賜), 자가 자공이다. 위(衛, 지금의 하남)나라 사람이다. 공자보다 31세 연하라고 전한다. 공문십철의 한사람. 739년 당나라 때 려후(黎侯), 1009년 송나라 때 려양공(黎陽公), 려공(黎公)으로 추봉되었다.

▲ 만인궁장(萬仞宮牆) 곡부성(曲阜城)의 남문(南門)으로 자공이 스승 공자를 높이 추앙하며 한 만인(萬仞)을 상징하는 담장.

▲ 대성전 용기둥(龍柱)과 현판 생민미유(生民未有) 용무늬는 황제와 황제에 준하는 성인에게만 부여된 특권이고, 그 자리에 오른 공자를 "후대에 태어난 사람가운데 아직 이런 이는 없었다(生民未有)"고 칭송한 현판

▲ 공자 사후 3년상을 치른 제자들이 각기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 후에도 무덤 주위를 지키며 살던 사람들이 100여호나 되었다. (治任別歸)

▲ 공자 사후 보통 제자들이 3년상을 치뤘지만 자공만이 홀로남아 3년을 더한 3년상을 치룬 묘막 앞에 자공이 손수 심었다는 해나무(子貢水植楷)

 『논어』 속으로…

 자공이 물었다. "가난하면서 아첨함이 없고, 부유하면서 교만함이 없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햇다.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자이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자만은 못하다." (子貢曰 :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學而」)

 공자가 말했다. "자공과 더불어 비로소 시를 논할 수 있게 되었구나. 지나간 것을 말해 주자 다가 오는 것을 아는 구나."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知來者, 「학이」)

 숙손무숙이 조정에서 대부들에게 말했다. "자공이 공자보다 낫다." 자복경백이 이 말을 자공에게 일러주자 자공이 말했다. "나의 담장은 겨우 어깨 정도 만한 높이에 지나지 않다. 그래서 누구나 짐안의 좋은 것들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런데 선생님의 담장은 여러 길이나 되어 도저히 볼 수 없다. 그래서 그 문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집안의 아름다운 모습과 수많은 사람들의 오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문안으로 들어가 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러니 숙손무숙의 말이 또한 당연하지 않겠는가." (叔孫武叔語大夫於朝, 曰 : 子貢賢於仲尼. 子服景伯以告子貢. 子貢曰 : 警之宮牆, 賜之牆也及肩, 窺見室家之好. 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 得其門者或寡矣, 夫子之云, 不亦宜乎! 「자장」)

 숙손무숙이 공자를 비난하며 헐뜯자 자공이 말했다. "그렇게 하지 말라. 공자는 비난할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의 똑똑함은 언덕과 같아서 넘을 수 있지만, 공자는 해와 달과 같아서 넘을 수 없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관계를 끊고자 하여도 어떻게 해와 달이 같아서 넘을 수 없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관계를 끊고자 하여도 어떻게 해와 달이 해가 되겠는가? 다만 자기의 분수를 알지 못함을 보일 뿐이다.." (叔孫武叔毁仲尼. 子貢曰 : 無以爲也, 仲尼不可毁也. 他人之賢者, 丘陵也, 猶可踰也 ; 仲尼, 日月也, 無得而踰焉. 人雖欲自絶, 其何傷於日月乎? 多見其不知量也! 「자장」)

 자공이 고유제를 지내면서 바치는 희생양을 없애려고 하였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너는 그 양을 아까워하느냐" 나는 예를 아까워한다." (子貢, 欲去告朔之餼羊, 子曰 : 賜也, 爾愛其禮. 「八佾」)

 공자가 말했다. "자공은 천명을 받지 않았는데도 재산을 늘렸다. 억측하면 자주 맞았다." (賜不愛命而貨殖焉, 億則屢中. 「先進」)

 소극적이었지만 약삭빨랐던 염구

염구(冉求, B.C. 522~489)는 자가 자유(子有), 혹은 염유(冉有)라 했다.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29세 아래로, 염백우(冉伯牛, 冉耕) · 중궁(仲弓, 冉雍)과는 가족관계이다. 공문십철의 한사람. 안연 · 자로 · 자공과 함께 공자의 주요 제자 4명으로 공자의 유랑 14년간 동행하였다.  739년 당나라 때 서후(徐侯), 1009년 송나라 때 팽성공(彭城公), 그 뒤 서공(徐公)으로 추봉되었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만일 너희를 써준다면 어찌하겠는가 라고 묻자 염구가 대답하였다) "사방960~70리, 혹은 50~60리쯤 되는 작은 나라를 제가 다스리게 된다면 3년 안에 백성들을 풍족하게 해 줄 수 있으며, 그 예악과 같은 것은 군자를 기다렸다 맡기겠습니다." (方六七十, 如五六十, 求也爲之, 比及三年, 可使足民. 如其禮樂, 以俟君子. 「선진」)

 염구가 말했다. "제가 선생님의 가르침9道)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힘이 부족할 따름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고 포기하지만, 너는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 너는 스스로 한계를 긋는 것이다." (冉求曰 :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畵. 「옹야」)

 계씨가 주공보다 부유하였는데도 염구는 그를 위해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들여 재산을 더 늘려주었다. 공자가 말했다. "염구는 이제 우리 무리가 아니니, 애들아! 북을 울려 죄를 성토함이 옳다." (季氏富於周公, 而求也爲之聚斂而附益之. 子曰 : 非吾徒也. 小子鳴鼓而攻之, 可也. 「선진」)

 "염구는 숫자만 채우는 신하라고 말할 수 있다." (求也, 可謂具臣矣. 「선진」)

 "염구는 천 가구 정도 되는 큰 마을이나 백승정도의 경대부 집안에서 관리 노릇할 수는 있지만, 인 한지는 잘 모르겠다." (求也,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 不知其仁也. 「공야장」)

 "염구는 다재다능하기 때문에 정치에 종사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求也藝, 於徒政乎何有. 「옹야」)

 말 많고 비판적이었던 재여

재여(宰予, B.C. 522~458)는 자가 자아(子我), 혹 재아(宰我)라고도 하였다. 739년 당나라 때 제후(齊侯), 1009년 송나라 때 임치공(臨菑公), 제공(齊公)이라 추봉하였다.

 『논어』 속으로…

 재여가 낮잠을 자자 공자가 말했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만든 담장은 흙손질 할 수 없다. 내가 재여를 꾸짖어봤자 무엇하리요!" (宰予畵寢. 子曰 :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杇也, 於予與何誅. 「공양장」)

 공자가 말했다. "전에는 사람들의 말을 단지 듣기만 하고 그들이 그것을 실행할 것으로 믿었으나, 지금은 말하는 것을 듣고 동시에 그 행동을 관찰한다. 재여와의 경험때문에 이렇게 변한 것이다." (子曰 :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공야장」)

 재여가 물었다. "인자는 비록 우물에 사람이 빠졌다 말해 주더라도 (우물에 빠진 사람을 구제하고자 하여) 따라서 우물에 들어갈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어찌 그렇게 하겠는가? 군자를 (우물까지) 가게 할 수는 있으나 빠지게 할 수는 없다. (이치에 있는 말로) 속일 수는 있으나, (터무니없는 말로)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宰我問曰 : 仁者, 雖告之曰 : 井有仁焉, 其從之也? 子曰 : 何爲其然也? 君子可逝也, 不可陷也 ; 可欺也, 不可罔也. 「옹야」)

재여가 물었다. "3년상은 너무 길다고 생각합니다. 군자가 3년 동안 예를 시행하지 않으면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 음악을 익히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묵은 곡식은 다 없어지고 새 곡식이 오르며, 불씨 만드는 나무도 바뀌어지니, 1년이면 그런대로 족할 것 같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3년상을 치르지 않고서도) 쌀밥을 먹고 비단 옷을 입는 것이 너는 편안하냐?" 재여가 대답했다. "예, 편안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네가 편안하면 너는 그렇게 해라. 군자가 상을 당하면 맛있는 것을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함에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인데, 네가 편안하면 너는 그렇게 하거라." 재여가 나가자 공자가 말했다. "재여의 인하지 못함이여! 자식은 태어나서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 3년상은 온천하의 공통된 상례인데, 재여에게도 그 부모에게서 받은 3년의 사랑이 있었는가?" (宰我問 : 三年之喪, 期已久矣. 君子三年不爲禮, 禮必壞 ; 三年不爲樂, 樂必崩. 舊穀旣沒, 新穀旣升, 鑽燧改火, 期可已矣. 子曰 : 食夫稻, 衣夫錦, 於女安乎? 曰 : 安. 女安則爲之! 夫君子之居喪, 食旨不甘, 聞樂不樂, 居處不安, 故不爲也. 今女安, 則爲之! 宰我出. 子曰 : 予之不仁也! 子生三年, 然後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 「양화」)

 애공이 재여에게 토지신 제사에 쓰는 위패의 나무종류에 대해 묻자 재여가 대답했다. "하후씨는 소나무를 심어 사주로 사용하였고, 은나라 사람들은 잣나무를 사용하였고,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를 사용하였으니, (밤나무를 사용한 이유는)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하려고 해서였습니다." (哀公問社於宰我. 宰我對曰 : 夏后氏以松, 殷人以柏, 周人以栗, 曰使民戰栗. 「팔일」)

 겁쟁이면서도 효자였던 증삼

증삼(曾參, B.C. 505~436)은 남무성(南武城)사람으로 자는 자여(子輿)이고, 공자보다 46세 연하였다. 668년 당나라 때 태자소보(太子少保), 739년에 성백(郕伯), 1009년 송나라 때 성후(郕侯), 1111년 무성후(武城侯), 1267년 성국공(郕國公), 1330년 원나라 때 성국종성공(郕國宗聖公)으로 추봉되었고, 대대로 추존되면서 스승 공자보다는 못하지만 '종성(宗聖)'이란 칭호를 받았다.

 『논어』 속으로…

 "증삼은 아둔한 인간이다." (參也, 魯. 「선진」)

 공자가 말했다.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고 있노라." 증삼이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공자가 나가자 증삼에게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말입니까?" 증삼이 대답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과 서일 뿐이다." (子曰 :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 唯. 子出. 門人問曰 : 何謂也? 曾子曰 :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이인」)

 증자가 말했다. "선비는 넓고 굳세지 않을 수 없다. 임무는 막중한데 갈 길은 멀구나!" (曾子曰 :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태백」)

 증자가 말했다. "나는 하루에 세 가지로 나를 돌아본다.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데 충성스럽지 않았는가? 친구와 사귀는데 성실하지 않았는가? 스승에게서 전수 받은 것을 복습하지 않았는가? (曾子曰 : 吾日三省吾身 :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학이」)

 증자가 말했다. "마지막을 삼가하며 잘하고,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분을 잘 추모하면 백성의 덕은 후한 데로 돌아간다. (曾子曰 :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학이」)"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썼던 자유

오(吳)나라 출신인 자유(子游, B.C. 506~?)의 성은 언(言)이고, 이름은 언(偃)이니, 우리 식으로 부르면 언언이다. 공자보다 45세.(『가어』에는 35세) 연하이다. 공문십철의 한사람으로 예법을 공부했고 문학으로 이름을 날렸다. 739년 당나라 때 오후(吳侯), 1009년 송나라 때 단양공(丹陽公), 그 뒤 오공(吳公)으로 추봉되었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무성 땅에 가서 현악소리를 듣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 자유가 대답했다. "예전에 전 선생님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말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얘들아, 자유의 말이 옳다. 방금 내가 한 말은 농담이었다." (子之武城, 聞弦歌之聲. 夫子莞爾而笑, 曰 : 割雞焉用牛刀? 子游對曰 : 昔者偃也聞諸夫 子曰 : 君子學道則愛人, 小人學道則使也. 子曰 : 二三子! 偃之言是也. 前言戱之耳. 「양화」)

 자유가 말했다. "군주를 섬김에 자주 간언하면 욕을 당하고, 친구 사이에 자주 충고하면 소원해 지는 것이다." (子游曰 : 事君數, 斯辱矣, 朋友數, 斯疏矣. 「이인」)

 공자가 질문했다. "너는 인물을 얻었느냐?" 자유가 대답했다 "담대멸명이란 자가 있는데, 길을 다닐 적에 지름길을 따르지 않으며, 공적인 일이 아니면 일찍이 저의 집에 들른 적이 없습니다." (子曰 : 女得人焉爾乎? 曰 : 有澹臺滅明者, 行不由徑, 非公事, 未嘗至偃之室也. 「옹야」)

 자유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지금의 효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봉양 잘하는 것만을 말한다. 그러나 개나 말에게도 모두 길러주는 것은 있으니,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무엇이 그것과 다르겠는가?" (子游問孝. 子曰 :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 不敬, 何以別乎? 「위정」)

 정렬이 넘쳤던 자장

자장(子張)의 성은 전손(顓孫), 이름은 사(師), 자장은 자이며, 공자보다 48세 연하이다. 진9陳)나라 사람으로 전해진다. 739년 당나라 때 진백(陳伯), 1009년 송나라 때 완구후(宛邱侯), 그 후 진공(陳公)으로 추봉되었고, 공문십철의 한사람.

 『논어』 속으로…

 자공이 물었다. "자장과 자하 두 사람가운데 누가 현명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자공이 물었다. "그렇다면 자장이 나은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지나친 것과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다 같다." (子貢問 : 師與商也孰賢? 子曰 : 師也過, 商也不及. 曰 : 然則師愈與? 子曰 : 過猶不及. 「선진」)

 자장이 벼슬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자, 공자가 대답했다. "많이 듣고서 의심나는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해서 말하게 되면 허물이 적어질 것이다. 많이 보고서 그 위태로운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해서 행동하면 후회하는 일이 적어질 것이다. 말하는 것에 허물이 적고, 행동하는 것에 후회가 적으면, 봉록은 그 가운데 있다." (子張學干祿. 子曰 : 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위정」)

 자장이 질문했다. "선비가 어떠하여야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물었다. "네가 말하는 도달이란 무엇인가?" 자장이 대답했다.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네가 말하는) 그것은 소문일 뿐이지 도달한 것은 아니다. 도달했다고 하는 것은 질박하고 정직하며 의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관찰하며 생각해서 몸을 낮추는 것이니, 나라에서도 반드시 도달하고, 집안에서도 반드시 도달하는 것이다. 소문이라는 것은 얼굴빛은 인을 취하나 실제로는 위배되며 그대로 머물면서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이다." (子張問 : 士何斯可謂之達矣? 子曰 : 何哉, 爾所謂達者? 子張對曰 : 在邦必聞, 在家必聞. 子曰 : 是聞也, 非達也. 夫達也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達,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 「안연」)

 자유가 말했다. "나의 벗 자장은 어려운 일을 잘하나 인하지는 못하다." (子游曰 : 吾友張也, 爲難能也, 然而未仁. 「자장」)

 증자가 말했다.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曾子曰 : 堂堂乎張也, 難與竝爲仁矣. 「자장」)

 자장이 말했다. "선비가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며, 이득을 보면 의로운지 생각하고, 제사할 땐 공경을 생각하고, 상사엔 슬픔을 생각한다면, 괜찮다." (子張曰 : 士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 「자장」)

 자장이 말했다. "덕을 잡음이 넓지 못하고, 도를 믿음이 독실하지 못하면, 어찌 있다고 말하며, 어찌 없다고 말하겠는가?"

 대기만성형 자하

자하(子夏)는 성이 복(卜)이고, 이름은 상(商)으로, 공자보다 44세 연하였다. 진(晉)나라 운국인9溫國人)이라고도 하고 위(衛)나라 사람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온국이 원래는 위나라에 속해 있었기에 통상 위나라 사람으로 통했다. 공문십철의 한 사람. 739년 위후(衛侯), 1009년 송나라 때 동아공(東阿公), 혹은 하동공(河東公), 그 뒤 위공(衛公)이라 추봉되었다.

 『논어』 속으로…

 자하가 물었다. "(전해져 내려오는 시구 가운데) '아름답게 웃는 얼굴에 보조개가 예쁘며, 아름다운 눈의 맑은 눈동자가 선명하구나! 흰 비단으로 광채를 내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먼저 흰 바탕이 있은 뒤에 색을 칠해 다듬는다는 뜻이다." 자하가 말했다. "예가 뒤라는 말이군요." 공자가 말했다. "나를 불러일으키는 자가 자하로다!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子夏問曰 :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 繪事後素. 曰 : 禮後乎? 子曰 :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팔일」)

 자하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 부형에게 일이 있으면 제자가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밥이 있으면 부형을 잡숫게 하는 것을 일찍이 효라고 할 수 있겠는가? (子夏問孝. 子曰 : 危難, 有事弟子服其勞, 有酒食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위정」)

 자하가 말했다. "온갖 노동자들은 공장에 있으면서 그 일을 이루고, 군자는 배워서 그 도를 지극히 한다." (子夏曰 : 百工居肆以成其事, 君子學以致其道. 「자장」)

 자하가 말했다. "큰 덕(큰 일)이 한계를 넘지 않으면, 작은 덕(작은 일)은 출입하여도 괜찮다." (子夏曰 : 大德不踰閑, 小德出入可也. 「자장」)

 자하가 말했다. "군자는 (백성들에게) 신임을 얻은 뒤에 그 백성을 부리니, 신임을 얻지 못하고 부리면 자신들을 괴롭힌다고 여긴다. 신임을 얻은 뒤에 간해야 하니, 신임을 얻지 못하고 간하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여긴다." (子夏曰 : 君子信而後勞其民, 未信則以爲厲己也 ; 信而後鍊, 未信則以爲謗己也. 「자장」)

 자하가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속성으로 뭔가를 하려고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에 한눈 팔지 말아라. 서두르면 이르지 못하고 작은 이익에 한눈 팔면 큰 일을 이루지 못한다." (問政. 子曰 : 無欲速, 無見小利. 欲速, 則不達 ; 見小利, 則大事不成. 「자로」)

 공자가 자하에게 말했다. "너는 군자유가 되고, 소인유가 되지 말라." (子謂子夏曰 :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옹야」)

 자하가 말했다. "벼슬하면서 여가가 있으면 학문을 하고, 학문을 하고서 여가가 있으면 벼슬을 하라." (子夏曰 : 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 「자장」)

 자하가 말했다. "배우기를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현실에 필요한 것을)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 (子夏曰 :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자장」)

 자하가 말했다. "날마다 모르는 것을 알며, 날마다 능한 것을 잊지 않으면 학문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 (子夏曰 : 日知其所亡, 月無忘其所能, 可謂好學也已矣. 「자장」)

 독야청청했던 민자건

민자건(閔子騫, B.C. 536~478)은 성이 민이고 이름은 손(損), 자가 자건이다. 공자보다 15세가 적었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어려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계모의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런 계모에게도 효성을 다해 증삼과 더불어 효의 대명사로 불린다. 당나라 개원(開元) 8년(720) 조칙으로 십철(十哲)이 되었고, 개원 27년(739)에는 비후(費侯)로 추봉되었다.

 『논어』 속으로…

 계씨가 민자건을 비재로 삼으려고 하자, 민자건이 말했다. "나를 위해 잘 말해 다오. 만일 다시 나를 부르러 온다면 나는 반드시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 문수가에 있을 것이다."(季氏使閔子騫爲費宰. 閔子騫曰 : 善爲我辭焉. 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 「옹야」)

 군주감으로서의 중궁

중궁(仲弓, B.C. 522~?)의 성은 염(冉)이고, 이름은 옹(雍), 자가 중궁, 혹은 자궁(子弓)이라고도 하였다. 노나라 사람이다. 공문십철의 한 사람. 739년 당나라 때 설후(薛侯), 1009년 송나라 때 천하비공(天下邳公), 1265년에는 설공(薛公)으로 추봉되었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말했다. "중궁은 군왕의 지위에 오르게 할만하다." (子曰 : 雍也可使南面. 「옹야」)

 중궁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문밖을 나서서는 귀중한 손님을 대접하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신중하게 하라.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그렇게 하면 제후의 나라에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대신의 집에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仲弓問仁. 子曰 :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仲弓曰 : 雍踓不敏, 請事斯語矣. 「안연」)

 중궁이 계씨의 재상이 되어 정치를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유사에게 먼저 시키고 (그들의) 작은 허물을 용서해 주며, 어진 사람과 재능 있는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 또 중궁이 물었다. "어떻게 어진 사람과 유능한 사람을 알아보고서 등용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네가 아는 자를 등용하면, 네가 미처 모르는 자를 남들이 내버려두겠는가?" (仲弓爲季氏宰, 問政. 子曰 : 先有司, 赦小過, 擧賢才. 曰 : 焉如賢才而擧之? 曰 : 擧爾所知. 爾所不知, 人其舍諸? 「자로」)

 중궁이 자상백자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그의 간략함도 괜찮다." 중궁이 말했다. "자신이 공경하면서 간략하게 행동하며 인민을 대한다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간략함에 처하고 다시 간략하게 행동한다면 너무 간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중궁의 말이 옳다." (仲弓問子桑伯子, 子曰 : 可也簡. 仲弓曰 :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子曰 : 雍之言然. 「옹야」)

 공자가 중궁에게 말했다. "얼룩소 새끼가 색깔이 붉고 또 뿔이 제대로 났다면 비록 쓰지 않고자 하나 산천의 신이야 어찌 그것을 버리겠는가? (子謂仲弓曰 : 冢牛之子騂且角, 踓欲勿用, 山川其舍諸? 「옹야」)

 어떤 사람이 말했다. "중궁은 인하기는 한데, 너무나 말재간이 없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 약삭빠른 구변으로 남의 말을 막아서 자주 남에게 미움만 박을 뿐이니,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으나, 말재주를 어디에다 쓰겠는가?" (或曰 : 雍也仁而不佞. 子曰 : 焉用佞?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佞? 「공야장」)

 말 많고 근심 많던 사마우

사마우(司馬牛)에 대해서는 『집주』에 "이름이 리(犁)이고 상퇴(向魋)의 아우"라고 하는 기록이 전부이다.

 『논어』 속으로…

 사마우가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인이란, 그 말함을 참아서 하는 것이다." 다시 물었다. "그 말하는 것을 참아서 하면 인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이것을 행하기 어려우니, 말함에 참아서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마우가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걱정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사마우가 또 물었다. "걱정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으면 군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안으로 반성하여 조그마한 하자도 없으니, 어찌 근심하며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사마우가 걱정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나만이 홀로 없구나! 자하가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하더라. 군자가 공경함에 잃는 게 없으며, 남에게 공손함에 예절이 있으면 사해 안의 모두가 형제인데, 군자가 어찌 형제 없음을 걱정하겠는가?" (司馬牛問仁. 子曰 : 仁者其言也訒. 曰 : 其言也訒, 斯謂之仁已乎? 子曰 : 爲之難, 言之得無訒乎? 司馬牛問君子, 子曰 : 君子不憂不懼. 曰 : 不憂不懼, 斯謂之君子已乎? 子曰 : 內省不灸, 夫何憂何懼? 司馬牛憂曰 : 人皆有兄弟, 我獨亡. 子夏曰 : 商問之矣 :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 「안연」)

 공자집안의 가신 원헌

원헌9原憲)의 자는 자사(子思)이고, 이름이 헌(憲)이며, 원사(原思)라고도 한다. 공자보다 36세 연하이고, 송나라사람이다.

 『논어』 속으로…

 원헌이 (공자의) 가신으로 있을 때 녹봉으로 곡식 9백을 주었지만 원헌이 이를 받지 않았다. 공자가 말했다. "사양하지 말고, 너의 이웃집과 마을 및 향당에 주려므나!" (原思爲之宰, 與之粟九百, 辭. 子曰 : 毋! 以與爾鄰里鄕黨乎! 「옹야」)

 원헌이 부끄러움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 녹만 먹으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 녹만 먹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또 물었다. "이기기를 좋아하고,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며, 원망하고, 탐욕을 행하지 않으면 인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어렵다고는 할 수 잇으나, 인인지는 내가 알지 못하겠다." (憲問恥. 子曰 : 邦有道, 穀 ; 邦無道, 穀, 恥也. 克伐怨欲不行焉, 可以焉仁矣? 子曰 : 可以爲難矣, 仁則吾不知也. 「헌문」)

 전과자이면서도 공자의 사위로 선택된 공야장

공야장(公冶長)의 성은 공야(公冶), 이름은 장(長), 자는 자장(子長)이다. 일설에는 이름이 장(萇), 자가 자지(子芝)라고도 했다. 제나라 사람이라고도 하고, 노나라 사람이라고도 한다. 739년 당나라 때 거백(莒伯), 1009년 송나라 때 고밀후(高密侯), 1530년 명나라 때 선현공야자(先賢公冶子)라 추봉되었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공야장을 평가하면서 "그를 사윗감으로 삼을 만하다. 비록 그가 포승줄에 묶여 옥중에 있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다."하고는 그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子謂公冶長, 可妻也. 踓在縲絏之中, 非其罪也. 以其子妻之. 「공야장」)

 능력있고 근실해서 조카사위로 삼은 남궁괄

남궁괄(南宮括)은 자가 자용(子容), 시호는 경숙(敬叔)이고, 노나라 대부 맹의자(孟懿子)의 형이다. 본래 성은 중손(仲孫)이고 이름은 문(聞)이었는데, 거주하던 곳이 남궁(南宮)이라서 남궁을 성으로 했다고 한다.

 『논어』 속으로…

 남궁괄이 공자에게 물었다. "예라고 하는 사람은 활을 잘 쏘았고, 오라고 하는 사람은 힘이 세어 육지에서 배를 끌고 다녔지만, 모두 제대로 죽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왕과 직은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도 천하를 소유하였습니다." 공자가 대답을 않고 잇다가 남궁괄이 나가자 공자가 말했다. "군자로구나! 이 사람이여! 덕을 숭상하는구나! 이 사람이여!" (南宮括問於孔子曰 :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然 ; 禹稷躬稼, 而有天下. 夫子不答, 南宮括出. 子曰 : 君子哉若人! 尙德哉若人! 「헌문」)

 공자가 남궁괄을 평가하며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버려지지 않을 것이요,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형벌을 면할 것이다"하고,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냇다. (子謂南容, 邦有道, 不廢 ; 邦無道, 免於刑戮. 以其兄之子妻之. 「공야장」)

 "남용이 백규란 내용의 시를 (하루에) 세 번 반복해서 외우니, 공자가 그 형님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南容三復白圭, 孔子以其兄之子妻之. 「선진」)

 군자 자천

성은 복(宓), 명은 부제(不齊), 자가 자천(子賤)이고, 공자보다 30세(「가어」엔 49세) 연하이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자천에 대해 평가했다. "군자로구나! 이 사람이여!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러한 덕을 취했겠는가?" (子謂子賤, 君子哉若人! 魯無君子者, 斯焉取斯? 「공야장」)

 인정받았지만 벼슬을 사양한 칠조개

칠조개(漆雕開, B.C. 540~?)는 성이 칠조(漆雕), 이름이 개(開), 자가 자약(子若) · 자개(子開)이다. 노나라 사람이라는 설도 있고, 채(蔡)나라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공자보다 11세 연하이다. 원래 이름은 계(啓)였는데 한(漢)나라 경제(景帝)의 이름이 계(啓)였기 때문에 개(開)로 개명한 것이다. 옛날부터 왕의 이름은 피하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739년 당나라 때 등백(滕伯), 1009년 송나라 때 평여후(平輿侯)로 추봉되었고, 현재 산동성 곡부 공묘 동무(東廡)에 종사되어 있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칠조개에게 벼슬하도록 하자, 칠조개가 대답했다. "저는 벼슬하는 것에 대해 아직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흐믓하게 여겼다. (子使漆雕開仕, 對曰 : 吾斯之未能信. 子說. 「공야장」)

 삐딱했던 자금

자금(子禽, B.C. 511~?)은 성이 진(陳), 이름이 항(亢), 자가 자금이고, 때론 자항(子亢)이라고도 했다. 진(陳)나라 사람이다. 739년 당나라 때 영백(潁伯), 1009년 송나라 때 남돈후(南頓侯)로 추봉되었고, 1530년 명나라 때 선현진자(先賢陳子)로 칭송되었다.

 『논어』 속으로…

 자금이 자공에게 물었다. "공자가 이 나라에 오시면 반드시 정치에 대해 물으시던데, 그것은 공자가 구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까?" 자공이 말했다. "공자는 온순하고 양선하고 공손하고 검소하고 겸양하시는 것으로 얻었으니, 공자가 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구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子禽問於子貢曰 :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子貢曰 : 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학이」)

 자금이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물었다. "그대는 (선생님으로부터) 무슨 특별한 가르침을 들은 게 있는가? 백어가 대답했다. "없었다. 일찍이 혼자 서 계실 때에는 내가 빨리 그 앞을 걸어가는데 '시를 배웠느냐?'하고 물으시길래 '못했습니다'라고 했더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 하시기에, 물러나 시를 배웠노라. 또 다른 날 홀로 서 계시는 앞을 빠른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는데, '예를 배웠느냐?'고 물으시길래 '못했습니다'라고 했더니,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 없다'고 하시기에 물러나 예를 배웠노라. 이 두 가지를 들었다." 자금이 물러나와 기뻐하며 말햇다. "하나를 물어서 셋을 들었으니 시를 듣고 예를 들었으며, 또 군자가 그 아들을 멀리하는 것을 들었노라." (陳亢問於伯魚曰 : 子亦有異聞乎? 對曰 : 未也. 嘗獨立, 鯉趨而過庭. 曰 : 學詩乎? 對曰 : 未也. 不學詩, 無以言. 鯉退而學詩. 他日又獨立, 鯉趨而過庭. 曰 : 學禮乎? 對曰 : 未也. 不學禮, 無以立. 鯉退而學禮. 聞斯二者. 陳亢退而喜曰 : 問一得三, 聞詩, 聞禮, 又聞君子之遠其子也. 「계씨」)

 "선생(자공)이 공손해서 그렇지 공자가 어찌 선생보다 낫겠습니까?" (陳子禽謂子貢曰 : 子爲恭也, 仲尼豈賢於子乎? 「자장」)

▲ 번지가 무우에서 공자에게 "덕을 숭상하고, 악함을 바로잡고, 의혹 분별하는 것"을 질문하는 과정(舞雩從遊)

 공자의 운전기사 번지

번지(樊遲)의 성은 번(樊), 이름은 수(須), 자는 자지(子遲), 혹 번지라고도 했다. 노나라 사람이라고도 하고 제(齊)나라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공자보다 36세(「열전」) 혹은 46세(「가어」) 연하라고 전한다. 용력(勇力)이 있어서 어린 나이에 계씨 밑에서 벼슬하였다. 노나라 애공(哀公) 11년(B. C. 484) 제나라가 노나라를 정벌할 때 그는 염구(冉求)를 도와 제나라 군대를 물리쳤다고 하며, 이로 인해 그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739년 당나라 때 번백(樊伯), 1009년 송나라 때 익도후(益都侯)로 추봉되었고, 현재 산동성 공묘 서무(西廡)에 종사되어 있다.

 『논어』 속으로…

 번지가 인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거처함에 공손히 하고, 일을 집행하는데 경건히 하고, 사람들을 대할 때에 진실해야 한다. 이것은 비록 이적이 사는 지역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樊遲問仁, 子曰 :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踓之夷狄, 不可棄也. 「자로」)

 번지가 농사짓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나는 저 농촌의 늙은 농부만도 못하다." 번지가 채소 농사에 대해 질문하자 공자가 대답했다. "나는 저 늙은 채소 농사하는 사람만도 못하다." 번지가 나가자 공자가 말했다. "번지는 소인이로구나!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윗사람을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고, 윗사람이 신을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실정대로 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방의 백성들이 자식을 포대기에 업고 올 것이니, 어찌 농사짓는 것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樊遲請學稼, 子曰 : 吾不如老農. 請學爲圃. 曰 : 吾不如老圃. 樊遲出, 子曰 : 小人哉, 樊須也! 上好禮, 則民莫敢不敬, 上好義, 則民莫敢不服 ; 上好信, 則民莫敢不用情. 夫如是, 則四方之民襁負其子而至矣, 焉用稼? 「자로」)

 번지가 지혜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은 하되 멀리한다면 지혜롭다고 하겠다." 또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인자는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한다. 이렇게 한다면 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樊遲問知. 子曰 :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問仁. 曰 : 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 「옹야」)

 번지가 공자를 따라서 무우 아래에서 유유히 노닐면서 물었다. "감히 덕을 높이며, 간특함을 닦으며, 의혹 분별하는 것에 대해 묻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좋은 질문이로구나! 일을 먼저하고 이득 얻는 일을 뒤에 하는 것이 덕을 높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의 악함을 다스리고 남의 악함을 다스리않는 것이 간특함을 닦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루 아침의 분노로 자신을 잊어서 화가 부모에게까지 미치게 함이 의혹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樊遲從遊於舞雩之下, 曰 : 敢問崇德 脩慝 辨惑. 子曰 : 善哉問! 先事後得, 非崇德與? 攻其惡, 無攻人之惡, 非脩慝與? 一朝之忿, 忘其身, 以及其親, 非惑與? 「안연」)

 번지가 인을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지혜를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번지가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자. 공자가 말했다. "정직한 사람을 들어 쓰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리면 부정한 자로 하여금 곧게 할 수 있는 것이다." (樊遲問仁. 子曰 : 愛人, 問知. 子曰 : 知人. 樊遲未達. 子曰 :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안연」)

 스승 공자의 외모를 닮았던 유약

유약(有若)은 자가 자유(子有), 세칭 유자(有子)라고 했다. 공자보다 43세(「가어」는 36세) 연하라고 했다. 노나라 사람이다. 739년 당나라 때 변백(汴伯)으로 1009년 송나라 때 평음후(平陰侯)로 추봉되었고, 현재 중국 산동성 곡부 공묘에 종사되어 있다.

 『논어』 속으로…

 유약이 말했다. "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경하면서 윗사람 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윗사람 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혼란 조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 근본이 확립되면 도가 발생한다. 효와 공경함은 인을 행하는 근본이다." (有子曰 :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 鮮矣 ;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학이」)

 유약이 말했다. "예의 쓰임은 조화를 귀하게 생각한다. 선왕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게 생각햇다. 그래서 작은 일도 큰 일도 모두 이것으로 말미암는다. 행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조화를 알았다고 해서 조화만 하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역시 행할 수 없는 것이다." (有子曰 :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학이」)

 유약이 말했다. "약속이 의리에 가까워야 그 약속한 말을 실천할 수 있다. 공손함이 예에 가까워야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가까운 사람들을 잃지 않음으로써 또한 섬길 수 있는 것이다." (有子曰 : 信近於義, 言可復也 ; 恭近於禮, 遠恥辱也 ; 因不失其親, 亦可宗也. 「학이」)

 애공이 유약에게 물었다. "매년 흉년이 들어 재용이 부족하니, 어찌 했으면 좋겠는가?" 유약이 대답했다. "어째서 철법을 쓰지 않습니까?" 애공이 반문했다. "10분의 2도 오히려 부족한데, 어떻게 10분의 1인 철법을 쓰겠는가?" 유약이 대답했다. "백성이 풍족하면 군주가 누구와 더물어 부족할 것이며, 백성이 풍족하지 못하다면 군주가 누구와 더불어 풍족하시겠습니까?" (哀公問於有若曰 : 年饑, 用不足, 如之何? 曰 : 二吾猶不足, 如之何其徹也? 對曰 : 百姓足, 君孰與不足? 百姓不足, 君孰與足? 「안연」)

 덕행이 뛰어났으나 몹쓸 병에 걸린 염백우

염백우(冉伯牛, B.C. 544~?)의 성은 염(冉), 이름은 경(耕), 자가 백우(伯牛)이다. 정현(鄭玄)은 그를 노나라 사람이라고 하였다. 739년 당나라 때 운후(鄆侯)로, 1009년 송나라 때에는 동평공(東平公)으로, 1265년에는 운공(鄆公)으로 추봉되었다. 중국 산동성 공묘에 종사되어 있다.

 『논어』 속으로…

 염백우가 질병에 걸리자 공자가 문병할 때 창문 너머로 손을 잡고 말했다. "이런 병에 걸릴 리가 없는데, 운명인가보다.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伯牛有疾, 子問之, 自牖執其手. 曰 : 亡之, 命矣夫! 斯人也而有斯疾也! 斯人也而有斯疾也! 「옹야」)

 시세파악 능력이 뛰어났던 자고

자고(子羔, B.C. 521~?)의 성은 고(高), 이름은 시(柴), 자가 자고(子羔)이고, 자고(子高)라고도 했다. 공자보다 30세(『가어』엔 40세)연하이다. 제(齊)나라 사람이라고도 하고 위(衛)나라 사람이라고도 한다. 739년 당나라 때 공백(共伯)으로, 1009년 송나라 때 공성후(共城侯)로 추봉되었다. 현재 산동성 곡부 공묘 서무(西廡)에 종사되어 있다.

 『논어』 속으로…

 자로가 자고를 비재로 추천하자, 공자가 말했다. "남의 아들을 해치는 구나!" 자로가 말했다.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는데, 어찌 반드시 글공부만을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래서 난 말만 잘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子路使子羔爲費宰. 子曰 : 賊夫人之子. 子路曰 : 有民人焉, 有社稷焉. 何必讀書, 然後爲學? 子曰 : 是故惡夫佞者. 「선진」)

 품격있는 예절로 손님을 접대하던 공서화

공서화(公西華)의 성은 공서(公西), 이름은 적(赤), 자가 서화(西華) 혹 자화(子華)이다.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42세 연하이다. 당나라 때인 739년 변백(汴伯)으로 추봉되고, 공자묘에 종사된 이후 1009년 송나라 때 평음후(平陰侯)로, 1530년 명나라 때 다시 선현공서자(先賢公西子)로 추종되었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말했다. "성과 인으로 말하면 내 어찌 감히 자처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성과 인을) 실천하기를 싫어하지 않으며, 남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공서화가 말했다. "바로 이것이 저희 제자들이 배울 수 없는 점입니다." (子曰 : 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公西華曰 : 正唯弟子不能學也. 「술이」)

 맹무백이 공자에게 "공서화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공서화는 예복을 입고 띠를 띠고서 조정에 서서 빈객을 맞아 대화를 나누게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인한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孟武伯問 : 赤也何如? 子曰 : 赤也,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不知其仁也. 「공야장」)

 공서화가 제나라에 심부름을 가자 염자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곡식을 줄 것을 요청하였다. 공자가 말했다. "부(6斗4升)를 주어라." 더 줄 것을 청하자, 공자가 말했다. "유(16斗)를 주어라." 그런데 염자는 이 보다 많은 5병(16斛)을 주었다. 공자가 말했다. "공서화가 제나라에 갈 때에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 내가 들으니, '군자는 궁핍한 자를 돌봐주고 부유한 자를 계속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子華使於齊, 冉子爲其母請粟. 子曰 : 與之釜. 請益. 曰 : 與之庾. 冉子與之粟五秉. 子曰 :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不繼富. 「옹야」)

 공자가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공서화가 대답했다. "제가 능력이 잇다는 말은 아니지만, 배우기를 원합니다. 종묘의 일과 또 제후들이 회동할 때에 현단복을 입고 장보관을 쓰고 작은 집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赤! 爾何如? 對曰 : 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선진」)

 낭만이 넘쳤던 증석

증석(曾晳)은 증삼의 부친으로, 이름은 점(蒧)이다.

 『논어』 속으로…

 (제자들의 포부를 묻자) 비파를 옆으로 놓고 증석이 말했다. "(제 생각은 앞서 말한) 세 사람이 갖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공자가 말했다. "무엇이 나쁘겠는가? 또한 각기 자신의 뜻을 말하는 것이다." 증석이 말했다. "늦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관을 쓴 어른 5~6명과 동자 6~7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 (舍瑟而作, 對曰 : 異乎三子者之撰. 子曰 :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曰 :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夫子曰 ; 吾與點也! 「선진」)

위구인해미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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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8. 15:13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5 디지털 건축사진

GERRY KOPELOW 지음 김이삭 옮김
2008, KUKJE BOOKS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24897

662
코 894 ㄷ


ARCHITECTURAL PHOTOGRAPHY
THE DIGITAL WAY


갈수록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중요한 마케팅과 출판 분야에서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디자인 부문에서 성공하려면 품질이 높은 사진을 건축잡지, 신문, 웹사이트에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전문 사진을 제대로 제작하자면 비용이 많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사진 분야에 불어 닥친 디지털 혁명 덕에, 사진가가 혼자라도 많은 작업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그것도 디지털 인화 및 프레젠테이션의 새로운 수요에 딱 부합되는 방법으로 말이다.
게리 코펠로는 《디지털 건축사진》에서 디지털 장비를 사용해서 건물의 내부 사진과 외부 사진을 최상급으로 촬영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 책은 단계별 설명을 통해서 독자들이 적절한 디지털 카메라를 선택하는 방법, 카메라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포토샵 등의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로 사진의 질을 높이고 보정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돕는다. 이 책은 디지털 촬영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을 포함한 완결 과정으로서, 먼저 디지털 이미지를 소개하고 독특한 미학 이론을 고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여러 상황에 따라서 건물의 외부와 내부를 촬영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이어서 여러 장에 걸쳐서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로 작업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은 물론, 원근 조절 및 색 조정 방법을 설명한다. 이 입문서에는 색감이 풍부한 컬러 사진과 illustrator가 삽입되어 있고 내용이 명료하게 기술되어 있는 데다 사용하기가 편리해서, 디지털 카메라로 건축물을 촬영할 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자료이다.

작가 게리 코펠로(Gerry Kopelow)는 건축 사진가로 수많은 출판물에 작품을 게재해 왔다. 그는 《건물 및 인테리어 촬영법(How to photograph Buildings and Interiors)》을 포함해 건축 사진을 다룬 여러 책을 집필했으며, 뉴욕 쿠퍼 유니언(Cooper Union)에서 동일한 주제로 강의를 한다.

옮긴이 김이삭은 현재, 중앙대학교 디지털 미디어 박사과정에 있으며 중앙대학교, 경민대학, 호서전문학교, 건국대학교 대학원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또한 한국사진학회, 한국전시디자인학회 정회원이다.
MOBIL. 011.9131.3862 / E-MAIL. photolux@empal.com

CONTENTS

서문

1       카메라의 기초
1-1   카메라의 종류
1-2   뷰카메라의 기초
1-3   소형 카메라의 기초
1-4   중형 카메라의 기초
1-5   카메라의 포맷 선택

2      DSLR 입문
2-1  노출
2-2  디지털 카메라의 렌즈
2-3  디지털 이미지란 무엇인가?
2-4  이미지의 디지털화 방법
2-5  센서의 종류

3      디지털 작업 공정
3-1  메모리 카드
3-2  로우 파일(RAW FILES)
3-3  파일 포맷 및 압축 기법
3-4  색 관리
3-5  이미지 편집
3-6  건축 사진의 디지털 작업 공정

4      스캐닝
4-1  장비(HARDWARE)
4-2  스캐닝 기법

5      미적 고려 사항
5-1  하늘, 계절, 시간
5-2  명암과 색
5-3  시점과 이미지 구성

6     건축물 외부(EXTERIOR) 사진
6-1  카메라 앵글과 시간 선택
6-2  시각적 고려 사항
6-3  저층, 중층, 고층 건물 촬영 방법

7     유효광(AVAILABLE-LIGHT) 인테리어 사진
7-1  유효광(AVAILABLE-LIGHT)과 디지털 캡쳐
7-2  조명의 일반적인 문제
7-3  유효광(AVAILABLE-LIGHT) 상태 평가
7-4  컴퓨터와 연결해서 작업하기
7-5  실내 일광(DAYLIGHT)
7-6  백열등
7-7  형광등
7-8  나트륨 및 수은-가스등
7-9  혼합 조명

8      인테리어 사진 조명
8-1  사진 조명 장비
8-2  전자 플래시
8-3  텅스텐 조명
8-4  알맞은 시스템
8-5  라이트 페인팅

9     구체적인 적용 방법
9-1  건축물의 디테일
9-2  드로잉, 랜더링, 투시도 촬영하기
9-3  건축 모형
9-4  야경 사진
9-5  공사 진행 및 건설현장 사진
9-6  항공 촬영
9-7  필터
9-8  실제 고려 사항

10     촬영 후
10-1 파일 고속 전송
10-2 인쇄 종류
10-3 출판하기

인터넷상의 디지털 이미지 자료
용어 사전
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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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6. 17:04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4 노장사상

박이문 지음
2006, 문학과 지성사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36249


152.22
박 68 ㄴ


철---학---적---해---석

노장의 위대성은 2천 년 전 이미 반체제에 나섰던 데에 있고, 그들 나름의 새롭고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안한 데에 있다. 그들은 그야말로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에, 유교로 대표되는 기성 체제, 기성 가치를 비판 · 거부하고, 우리들을 향해,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이 진리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가르쳐 주었으며,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가리키면서 그것이 정말 가치가 있는가를 다시 검토해 보라고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노장의 그러한 가르침을 하나의 상징적 거울로 삼아, 우주와 인간의 관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새로운 인간관, 새로운 인생관을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 것과 결별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해묵은 언어로 되풀이되는 고전의 재해석은 독자들을 식상케 할 뿐이다. 그러나 박이문은 분석철학이라는 새로운 눈으로 노장 사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이에 기존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노장 사상의 새로운 면모가 자취를 드러낸다. 이 책에서 저자가 노장 사상을 해명하기 위하여 동원하고 있는 '존재의 차원'과 '의미의 차원'이라는 개념은 철학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범주이다. 이 범주는 노장 사상의 해명뿐 아니라, 서양 철학 내에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논쟁거리들을 해소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_ 이승환(고려대 철학과 교수)

박이문 교수는 노장 사상을 고색창연한 경전이 아닌 살아 숨쉬는 텍스트로서 새로이 이해하고 그 '철학'의 차원, '종교'의 차원, '이념'의 차원을 명쾌하게 해명한다. 이 세갈래 길에서 그가 수행하는 '도' '무위' '소요' 개념의 철학적 분석은 동서 사유의 만남과 가로지르기의 이정표가 되는 중요한 작업으로 꼽힌다.
_ 이승종(연세대 철학과 교수)

박이문(朴異汶)

1930년 충남 아산 출생으로 서울대 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미국 남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화여대 불문학과 조교수(1957~1961)를 시작으로 미국 랜슬레어 공과대학 철학과 전임강사(1968~1970), 시몬스 대학 철학과 조교수 · 부교수 · 정교수(1970~1993), 이화여대 및 서울대학교 철학 / 미학과에서 풀브라이트 초청교수(1980~1982), 미국 하버드 대학 교육대학원 철학연구소 선임연구원(1983~1991), 독일 마인츠 대학 초청교수(1985~1986), 일본 인터내셔널 크리스천 대학 초청교수(1989~1990)을 거쳐 시몬스 대학 명예교수 및 포항공대 교양철학부 교수를 역임하였다. 『시와 과학』『현상학과 분석철학』『하나만의 선택』『노장사상』『인식과 실존』『예술철학』『명상의 공간』『삶에의 태도』『철학 전후』『우리 시대의 얼굴』『문명의 위기와 문화의 전환』『이성은 죽지 않았다』『다시 찾은 파리 수첩』『철학의 여백』『이성의 시련』등 40여 권의 저서와 논문이 있으며 『눈에 덮인 찰스 강변』『나비의 꿈』『공백의 울림』등의 시집이 있다.

|차례|

개정판을 내면서
책머리에

1. 문제와 방법
    문제
    방법

2. '도'와 진리
             - 철학으로서의 노장 사상
    존재와 언어
    존재와 '도'
    자연과 도
    존재와 인간
    인식과 직관

3. '무위'와 실천
            - 종교로서의 노장 사상
    공포와 우환
    구원과 해탈
    속세와 열반
    '행위'와 '무위'

4. '소요'와 가치
            - 이념으로서의 노장 사상
    지락과 타락
    비극과 희극
    속죄와 소요

5. 노장과 우리
    역설의 논리
    노장과 우리

부록 도와 이성
            - 동서 철학 : 사유의 두 양상
    '철학'의 개념과 동서 철학 비교의 가능성
    동서 철학의 모체 개념 - '도'와 '이성'
    '도'와 '이성'의 개념 비교 분석

맺음말

참고 도서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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