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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14. 13:56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059 안압지

글 / 고경희●사진 / 한석홍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70

082
빛12ㄷ 28


빛깔있는 책들 28

고경희------------------------------------------------------------------------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안압지 발굴 당시 조사원으로 일했다. 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관으로 일하고 있다.

한석홍------------------------------------------------------------------------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과를 졸업했다. '76년 '한국미술5천년전'의 일본 전시 도록을 촬영했고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고미술 관련 사진을 촬영했다. 현재 한석홍 사진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도움 주신 분-------------------------------------------------------------------

진홍섭(전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
김정기(전 문화재연구소장)
이난영(국립경주박물관장)
이강승(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차례|

역사적 배경
내력
노출된 유구
   연못
   섬
   입수구
   출수구
   연못에 접한 건물터
   서쪽 건물터
   남쪽 건물터
출토 유물
   금속공예품
   불상
   목제품
   칠공예품
   토도제품
   철제품
   와전류
   골각제품
   유리제품
   기타
맺음말
참고문헌

▲ 안압지 전경 1974년의 준설 작업 때 신라시대 유물이 못 안에서 출토되자 2년에 걸쳐서 연못 안과 주변 건물터를 발굴하였다. 복원 정화된 안압지와 주변 경관이다.

▲ 궁남지 전경 부여읍 남쪽에 있는 백제의 궁남지는 당나라 대명궁과 함께 신라의 안압지와 동궁 조성에 침고가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 안압지 주변 건물터 배치도


▲ 복원된 제1건물터 건물의 규모는 남북 3칸, 동서 3칸으로 추정된다.

▲ 안압지 출토 유물 전시관 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시관 서쪽에 있는 안압지관에는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들만 전시하고 있다. 당시 신라 궁중에서 사용했던 생활 용기들을 비롯하여 나무배 등 700여 점의 대표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위는 전시관 전경이고, 아래는 전시관 내부의 전시장 모습이다.



▲ 노출된 동쪽 호안 호안에서 못 안의 서쪽으로 반도 모양의 커다란 돌출부가 두 군데 만들어져 있다. 이 동쪽 호안의 남동 모서리에는 못 안으로 물이 들어오는 시설이 있다.
▲ 복원된 서쪽 호안 호안에 접한 건물터들의 기단석축은 호안에서 4미터 내지 8.6미터 정도 연못 안쪽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어졌다. 이것은 여기에 세워진 건물들이 연못 안의 물에 접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다.

▲ 복원된 남쪽 호안 호안석축에서 연못 밖의 땅에 이르는 경사면에는 흙이 못 안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작은 냇돌을 박고, 그 위를 자연 괴석과 꽃나무 등으로 조경하였다.




▲ 복원된 입수구


▲ 복원된 제2, 3건물터 제2건물은 동서 6칸, 남북 3칸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3건물은 동서 5칸, 남북 4칸의 건물로 추정된다.

▲ 제5건물 서쪽 호안이 동쪽으로 꺾인 기점으로부터 북으로 32.5미터 거리에 동서 중심축을 둔 동향(東向) 건물이다.

▲ 금동 완과 합 형태로 보아 세 종류로 구분되는데 오른쪽 그릇(높이 11.2센티미터, 입지름 10.1센티미터) 바닥과 뚜껑 안쪽에 "구(仇)"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 청동 숟가락 음식을 담는 부위가 둥근 것, 타원형, 긴 타원형, 버들잎 모양 등 여러 형식이 있다.

▲ 주칠 빗

▲ 금동 용두 용머리의 내부가 비어 있고, 못 구멍이 있는 점으로 보아 의자 장식 때 부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로 16.4센티미터, 세로 10.7센티미터.

▲ 금동 가위 등잔의 심지를 자르는 데 사용하던 가위이다. 손잡이 쪽에 당초문과 어지문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길이 25.5센티미터.

▲ 금동 귀면 장식 문고리 왼쪽의 크기는 가로 9.2센티미터, 세로 10.4센티미터이다. 귀면에 금물을 칠한 흔적이 남아 있다.

 

▲ 순금 장식 중간에 있는 못 길이 4.8센티미터. 연꽃 잎 모양의 장식에는 가운데 순금제 못을 박게 되었으며, 타원형의 둥근 테는 안쪽으로 홈이 패어 있어 어떤 물체의 테두리로 장식되었던 것 같다.

▲ 금동 봉황 장식 주물로 제작된 봉황의 몸체에 날개를 따로 붙인 장식구이다. 봉황의 발 밑에 둥근 받침대가 붙어 있어 어떤 물체 위에 부착하도록 되어 있다.

▲ 금동 광배 외구와 화염문대 사이의 경계선에 꽃무늬가 배치되었고 맨 위의 꽃무늬 바로 위에 화불이 조각되었다. 길이 30센티미터.

▲ 금동 주악상 횡저를 불고 있는 상으로 전체 높이 4.1센티미터의 작은 상임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표현되었다.

▲ 금동 화불 장식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종류의 화불들이다.

▲ 아미타삼존 판불 가로 20.3센티미터, 세로 27센티미터. 본존과 보살에 별도의 두광이 있고, 이를 감싼 거신광배가 전체를 연결하고 있다. 통일신라 전반기의 불상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 금동 여래 입상 높이 35센티미터의 이 상은 얼굴을 비롯한 곳곳에 금 도금의 흔적이 남아 있다.

▲ 전시된 목선

여러 가지 형태의 목간

▲ 여러 가지 목제 장식 우리나라의 고대 유물 가운데 목제품은 많지 않은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토양이 신성인 탓에 땅에 묻혔던 것이 오래 보존되지 못한 때문이다. 그런데 안압지에서는 바닥의 갯벌층 속에서 많은 목제품들이 부식된 채로 출토되었다. 거북 길이 4센티미터.

▲ 목제 물마개 수로를 막아 수량을 조절하던 길이 50센티미터의 물마개이다.

▲ 주사위(모조품) 잔치 때 흥을 돋구는 놀이구의 일종으로 이것을 굴려 위로 향하는 면의 내용에 따라 행동을 하도록 되어 있다.

▲ 남근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가 내포된 주술물이다. 길이 17.3센티미터.

▲ 칠기 그릇 찬합과 완이다. 찬합의 안쪽에 "본(本)"자가 침각되어 있다. 찬합 높이 4.7센티미터, 지름 18센티미터.

▲ 칠기 꽃장식 연꽃이 중판으로 조각된 8편의 목심에 꽃과 나비 모양으로 얇은 은판을 오려 붙이고 옻칠을 하여 큰 연봉오리 모양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평탈 기법은 고려시대의 나전 기법에 이어지고 있어 칠공예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 묵화문 완(盌) 그릇의 형태, 글씨, 그림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잇으며 글자 가운데 '다(茶)'자가 있어 당시의 차그릇으로 추정된다. 높이 6.5센티미터, 입지름 16.4센티미터.

▲ 단청용 그릇 건물에 단청을 할 때 안료를 담아 쓰던 토기들로 그릇의 안팎에 안료가 묻은 흔적이 있다.

▲ 여러 가지 토기 통일신라시대의 토기는 고신라와 비교하면 그릇의 형태, 문양, 토기의 질에서 매우 다르다. 매병형(높이 87.7센티미터), 장군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 인화문 토기 여러 가지 무늬가 새겨진 도장을 이용하여 그릇의 표면에 무늬를 새긴 토기이다.

▲ 글씨가 새겨진 토기 접시나 완의 바닥 등에 먹으로 글씨를 쓰거나 음각 또는 도장 등으로 찍었다. 신심용왕명 토기 접시의 높이 4.1센티미터, 입지름 19.4센티미터.

▲ 완 사람의 형태와 얼굴이 새겨져 있다.

▲ 풍로 화구(火口)와 연통을 갖추었으며 위쪽에는 다른 그릇을 걸어 끓일 수 있도록 크고 작은 2개의 둥근 구멍이 뚫려 있다. 높이 19.5센티미터, 바닥 지름 30.2센티미터.

▲ 벼루 돌벼루, 녹유 벼루, 칠기 벼루, 토제 벼루 등 각종 벼루가 출토되었다. 왼쪽 높이 7.6센티미터, 지름 16.7센티미터.

▲ 납제 가위와 칼 고대 사회에는 여성의 방직과 침선 도구가 제사 신앙의 주술품으로 사용된 예가 있는데, 안압지에서 출토한 가위 같은 비실용적인 도구는 그와 같은 의미를 가진 상징적 의기로 제작된 듯하다. 왼쪽 가위 길이 13.5센티미터.

▲ 투구 투구의 맨 위에 덮개가 있으며 그 아래는 2장의 오목한 철판을 맞붙여 만들었다. 투구의 아래 가장자리에 상하 2단으로 일정하게 못 구멍이 뚫려 있다.

▲ 철제 칼과 창 위 길이 60.5센티미터.

▲ 마구(馬具)
왼쪽 위는 말을 탈 때 발을 딛고 올라가는 등자(오른쪽 가로 16.2센티미터. 세로 31센티미터)이고, 아래는 말을 멈추기 위하여 입에 가로 물리는 재갈, 재갈멈치, 고삐 이음쇠(길이 34센티미터)이다.

▲ 철제 열쇠와 자물쇠 열쇠는 그 형태가 요즈음 사용하는 반닫이의 열쇠와 비슷하고 자물쇠는 ㄷ자형으로 되어 있다. 이 자물쇠는 문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가로 33.8센티미터.

▲ 녹유 귀면와 잡귀를 쫓는 벽사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추녀의 내림마루 끝이나 모서리 끝에 장식되는 것이다. 가로 28.5센티미터, 세로 33.7센티미터.

▲ 치미 화재 예방이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지붕의 용마루 양끝에 장식하는 기와이다. 안압지에서는 모두 10개분의 분량이 출토되었는데 이 가운데 3점이 복원되었다. 높이 54센티미터.

▲ 녹유 수막새와 암막새 수막새는 주로 연화문이고 암막새는 덩굴풀을 의장시킨 무늬가 많다. 녹유가 칠해진 고급스런 막대기와이다. 수막새 지름 14.4센티미터.

▲ 각종 수막새 통일신라시대의 와당은 삼국시대의 단순하고 소박한 단판 연화문 양식을 이어 발전시킨 여러 양식이 있다.

▲ 모서리기와 지붕의 모서리를 장식했던 것으로 치밀한 당초와 연주문이 표현되었다. 무늬대 폭 5.7센티미터, 대각선 길이 46.5센티미터.

▲ 쌍록보상화문전 건물의 바닥에 깔았거나 장식용으로 부착했던 전으로 윗면에는 보상화가, 앞 측면에는 두 마리의 사슴이 넝쿨 사이로 뛰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전의 크기 28.7×29.5×7.0센티미터.

▲ 골제 화조문 장식 못의 서쪽 호안석축 바닥 갯벌 층에서 다수가 출토되었다. 동물 뼈의 한 면을 잘 갈아 등간격으로 작은 구멍을 2개 뚫고 구멍과 구멍 사이의 면에는 새와 꽃을 번갈아 얇게 음각하였다.

▲ 향로 뚜껑용 사자상 뚜껑 위에 당당한 모습으로 앉았는데 뚜껑 바닥에 코와 입이 서로 통하도록 구멍을 뚫어 두었다. 이 공간으로 받침대 밑의 향로에서 나오는 연기가 코와 입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높이 16.5센티미터.

▲ 납석제 사자상과 작은 항아리 조금 둔한 형태이지만 섬세하게 그릇의 표면과 사자의 갈기 등을 묘사하였다. 사자상 높이 10.4센티미터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