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황영찬

Tag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today
  • yesterday
2011. 7. 19. 16:52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072 종묘와 사직

글 / 김동욱●사진 / 김동욱, 김종섭

1993,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76

082
빛12ㄷ 34


빛깔있는 책들 34


김동욱------------------------------------------------------------------------

공학박사.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대학원 과정을 수료했다. 경기대학교 부교수로 있으며, 문화공보부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이다. 저서로 「수원성」(대원사) 외 여러 편의 논문이 있다.

김종섭------------------------------------------------------------------------

본사 사진부 차장

|차례|

머리말
종묘
    종묘 제도
    조선시대 종묘의 연혁
    종묘의 건축적 특성
    종묘 제례
사직단
    사직단 제도와 형식
    조선시대 사직단의 연혁
   사직단의 형식과 제례
종묘와 사직 - 오늘의 의미
영문 개요
참고 문헌

▲ 종묘 대제의 모습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시고 종묘에서 제례를 지내는 모습이다.

▲ 사직단 땅의 신인 사(社), 곡식의 신인 직(稷)을 모신 사직단의 모습이다.

▲ 종묘 제례 조선시대의 여러 국가 제례 가운데 종묘 대례는 가장 격식이 높은 것이었다. 또한 종묘는 왕실 자체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 종묘 정전의 신실과 월대 조선시대 창건 당초의 종묘는 지금 보는 것과는 다른 정면 7칸의 규모였다.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은 증축을 거듭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 「국조오례의」의 종묘전도

▲ 「종묘의궤」의 종묘 일곽 17세기 때의 종묘의 모습이다.

▲ 「종묘의궤」의 영녕전(왼쪽)

▲ 종묘 전체 배치도

▲ '수선전도(首善全圖)'에 실린 도성의 모습 경복궁의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두었는데 이것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지켜져 온 하나의 원칙이다.

▲ 종묘 전경 응봉(應峰)을 주산(主山)으로 한 종묘의 모습으로 주산의 맥이 종묘에 이어진다.

▲ 울창한 수목에 싸여 있는 종묘의 모습

▲ 종묘 신실 하나하나의 단순한 구성이 모여 장엄한 전체 구조를 이루는 데 종묘의 건축적 특성이 있다.

▲ 2익공의 공포 구성 기둥 위에 짜여진 간소한 공포는 기능적인 보강과 함께 장식적인 역할도 한다.

▲ 기둥 배흘림을 가미하여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 초석 방형 대좌 위에 원형의 주좌를 새긴 초석이다.

▲ 정전의 지붕 19칸의 긴 건물을 잇는 지붕의 수평선과 수직의 기왓골이 매섭기까지하다. 용마루는 양성을 하여 회칠을 하였고 협실에 이어지는 용마루에는 양성을 한 위에 잡상을 얹었다.

▲ 월대 독립 기둥이 도열해 있는 낮고 긴 건물과 박석이 거칠게 깔린 넓은 월대가 정적과 장엄함을 드러애 준다.

▲ 정전 지붕이 한 단 낮은 협실에서 직각으로 꺾여 동, 서월랑이 앞으로 돌출해 있다. 위는 동원랑이고, 아래는 서월랑이다.

▲ 정전 중앙 계단 신로(神路)에서 이어지며 혼백만이 오르내릴 수 있다.

▲ 사고석 담장 정전 일곽은 네모 반듯한 사고석으로 쌓았는데 이 사고석 담장이 정전 경내와 바깥을 나누고 잇다. 담장의 위에는 기와로 지붕을 덮었는데 사람 키를 훨씬 넘는 높이로 밖에서는 정전의 지붕이나 겨우 보일 정도이다. 이 때문에 정전 안은 더욱 정숙함이 깊어진다.

▲ 정전 뒷면 화방벽(火防壁)으로 쌓은 정전 뒷면의 모습으로 정숙하고 엄숙해 보인다.

▲ 정전 신로와 남신문 혼백이 출입하는 곳이므로 사람은 다닐 수 없다.

▲ 동문 헌관인 왕이 출입하는 문이다.

▲ 서문 악공 등이 출입하는 문으로 규모에 차이를 두었다.

▲ 동문과 옆쪽 재고(齋庫)의 지붕 제사를 집행하는 사람들은 동문을 통하여 동월랑 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 영녕전 남신문 원형 주좌를 둔 주춧돌에 둥근 기둥과 간단한 초각을 한 익공, 두짝 판문 등 세부 구성은 정전과 거의 같다.

▲ 영녕전 정전보다 건물 규모도 작고 부재 구성도 격을 낮추었으나 오히려 전체 공간이 한눈에 들어와서 더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 영녕전 동문으로 통하는 길 헌관은 이 길을 따라 동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간다.

▲ 영녕전 위는 영녕전의 서문이고 아래는 박석이 거칠게 깔려 있는 월대와 서월랑, 서문이다.

▲ 영녕전 뒷면의 석축단 영녕전 뒤에는 화강암 장대석으로 석축을 쌓아 화계와 같은 형식으로 만들었다. 이 석축단이 있는 담장의 뒤로는 수목이 우거진 언덕이 건물을 감싸듯이 자연스레 자리잡고 있다.

▲ 칠사당 정전 안 월대 남쪽의 왼쪽에 있던 것으로 7사에 제사지내는 곳이다.

▲ 공신당 공로가 큭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고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공신이 늘어남에 따라 건물도 증축되어 지금처럼 길게 되었다.

▲ 전사청 제사 때 쓰는 제물, 제기 등을 보관하던 곳이다.

▲ 연지와 향대청, 망묘루 연지의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왕이 종묘에 닿으면 일단 이곳에 머물렀다가 재궁으로 향하던 곳이다. 연지의 가운데에 있는 원형 섬에는 향나무를 심어 제사에 쓰게 하였다.

▲ 종묘 제례 종묘 제례는 조선시대의 모든 제례 가운데 가장 격식이 높은 의식이었다. 곧 제례의 참가 인원이나 순서, 제례 때의 복식이나 진설되는 제물에서 종묘 제례는 다른 어떤 제례보다 훨씬 높은 격식을 갖춘 것이었다.

▲ 제관들 제관들은 모든 행사를 경건하게 치르게 되는데 신실 앞에 나아가게 될 때마다 알자의 인도에 의해 손을 씻는 의례를 행한다. 위는 제례를 치르기 위해 자리를 찾아 가는 제관들, 아래는 제상에 선 제관들이다.

▲ 제례의 헌관 종묘 제례는 최상의 격식을 유지하여 지성으로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치러졌다. 현재의 종묘 제례는 왕이 직접 치르는 천향이 될 수도 없고 시대도 많이 변하여 모든 격식을 갖추지는 않지만 그 정신만은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 제관의 복장 흑색과 백색, 붉은색이 조화된 제관의 복장을 한 뒤 관을 쓰고 손에는 홀을 잡는다.

▲ 종묘 제례악 종묘 제례에는 모두 엄격한 의례가 따랐음은 물론이며 각 의례에 맞추어 적절한 음악과 무용이 수반되어 의식을 더욱 경건하게 만들었는데 특히 종묘 제례 때 연주되었던 제례악은 음률의 장엄함이 돋보이는 것이었다.

▲ 종묘 제례악 종묘 제례악은 조선시대 일반 궁중 음악인 아악과는 악기 구성에서 약간 차이가 있는데 종묘악에는 편종, 편경과 같은 일반 아악기 외에  방향, 당피리, 장고, 아쟁과 같은 당악기도 있고 대금과 같은 향악기도 섞여 있다.

▲ 종묘 제례악 헌가 종묘 제례악은 단 위에서 연주되는 등가와 단 아래에서 연주되는 헌가로 구성된다. 위는 헌가 편성 악대로 편종, 어, 축, 편경 등의 악기가 보인다.

▲ 일무 일무 가운데 약과 적을 들고 춤을 추는 문무이다.

▲ 종묘 제례악과 일무 제례가 진행되는 동안 춤은 보태평 음악에는 문무(文舞)를 추고 정대업 음악에는 무무(武舞)를 춘다.

▲ 「조선고적도보」의 사직단 1910년경의 사직단 모습이다.

▲ 사직단 동쪽에는 토지의 신인 사단, 서쪽에는 곡식의 신인 직단을 따로따로 설치한다.

▲ 사직단 단 위에는 방위에 따른 색과 중앙의 황색 흙을 덮고 석주(石主)를 둔다.

▲ 「국조오례의」서례의 사직단 조선 전기(성종) 때의 사직단 모습이다.

▲ 사직단 현재의 사직단은 멀리 백악(북악)이 보이고 뒤로는 인왕산이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 사직단 바깥 담장과 유와 그 안의 두 단으로 구성된 사직단 모습으로 유 높이가 분명하지 않다.

▲ 유에 설치된 문

▲ 북문 북쪽 출입구는 신이 출입하는 문이므로 3칸 규모로 문의 격을 높였다.(위)
신문에 이어진 판위이다.(아래)

▲ 담장 사직단 전체를 둘러싼 담장으로 최근에 복원되었다. 사직단의 영역은 최근의 복원에 의해 재정비되었으나 도로 공사 문제 등으로 인해 경역이 매우 줄어든 상태이다.

▲ 「사직서의궤」의 사직단 18세기(정조)의 사직단 모습이다.(위)

▲ 사직단 정문 조선 중기의 목조 건물이며 보물 제177호이다. 원래는 더 앞쪽에 있었으나 1960년대에 도로 공사때문에 뒤로 물러나 다시 세워졌다.

▲ 사직단 단의 높이는 목적에 따라 달라지나 조선조의 단은 그 높이가 3척이고 3단의 장대석으로 쌓았다. 길수(吉數) 3이 적용된 결과라고 하겠다.

▲ 사직단 형태 땅과 곡식의 신을 모신 곳이므로 방형(方形)으로 되어 있다.

▲ 유 방형으로 된 단의 주위에는 '유'라는 울타리가 사방에 둘러지는데 속계와 성계를 구분하는 뜻이 있다.

▲ 종묘의 수풀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