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황영찬

Tag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total
  • today
  • yesterday
2013. 7. 22. 09:00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79 토종닭 연구소

 

장경린 시집

2005, 문학과지성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9540

 

811.6

장146토

 

문학과지성 시인선 310

 

도시에 몰려든 사람들

자본의 물결에 휩쓸리고 내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거리에 버려져 날리는 비닐봉지 같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크다

아니 작다

도시가 자연보다 작아 보이기도 하고 커 보이기도 하듯이

사람이 도시보다 작아 보이기도 하고

커 보이기도 하듯이

내가 나보다 커 보이기도 하고

작아 보이기도 하듯이

내가 쓴 시는 나보다 커 보이기도 하고

작아 보이기도 할 것이다

 

시는 존재와 존재 사이의 벽을 넘나드는

일종의 '숨통 트기'가 아닐까

도시가 자연과 다르지 않듯이

과거와 미래가 다르지 않듯이

(과연 그럴까)

내가 당신과 다르지 않듯이

다르지 않기를 바라듯이

불현듯 뭔가 달라지기 위해 북한산을 오르고 있는 내가

문득 낯설어 보이듯이

 

시인 장경린은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시단에 등장했으며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넋이야 있고 없고」가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누가 두꺼비집을 내려놨나』 『사자 도망간다 사자 잡아라』 등이 있다.

 

시집 『토종닭 연구소』는 유머의 미학이 돋보인다. 유머는 기존 의미에 대한 비판이면서 새로운 의미로의 다양한 가능성을 여는 순간의 불꽃이다. 시인은 심각하고 딱딱하게 굳어 있는 현실을 단숨에 허물어뜨리면서 어디에건 자유롭게 달릴 수 있는 물과 같은 의식의 상태로 열어놓는다. 새로운 현실은 어떻든 그런 의식 상태에서 싹튼다. 이 시집은 바로 그런, 유머에서 촉발된 무언가 되려고 하는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시인의 말

 

지느러미가 잘 펴지지 않았다.

표류하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을 날개로 가리고 길가에 서 있는 동안

사람들이 지나갔다.

나도 나를 지나치는 날이 많았다.

어디쯤 왔을까.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날리며 걸어가는 소녀의 입가에

배꽃 같은 게 피어 있었다.

 

2005년 가을

장경린

 

차 례

 

시인의 말

 

제1부

로그인 / 퀵 서비스 / 넋이야 있고 없고 / 토종닭 연구소 / 가족 / 거기가 어디였더라 / 버섯찌개 / 재개발지역 3 / 재개발지역 4 / 재개발지역 5 / 재개발지역 6 / 재개발지역 7 / 재개발지역 10 / 오토리버스 / 온라인 오프라인 / 어디로 가는 중일까 / 文章 / 갈릴리 김밥 / 해미에서 / 손에 강 같은 평화 1 / 손에 강 같은 평화 2 / 사랑한 후에

 

제2부

달래야 / 인기 검색어에서 삭제된 오늘 / 회전문 / 엽서 / 幕間 / 대한 늬우스 1 / 대한 늬우스 2 / 대한 늬우스 3 / 대한 늬우스 5 / 홈 스위트 홈 / 장어 한 판 / 아스피린 / 1350cc / 간이 의자 / 문학은 내 속을 돌아다니는 여행이다 / 그래야 단풍다운 가을 단풍 / 누룽지 / 다시 대한 늬우스

 

제3부

몽유도원도 / 당신과 나 사이에 1 / 당신과 나 사이에 2 / 지글 지글 / 심부름 / 동시 상영 / 開花 / 워킹 맨 / 몽유도원도 1 / 몽유도원도 2 / 몽유도원도 5 / 몽유도원도 9 / 몽유도원도 10 / 몽유도원도 11 / 몽유도원도 17 / 몽유도원도 19 / 몽유도원도 21

 

해설 | 나 자신이 되어 산다는 것 · 정효구

 

토종닭 연구소

 

임시로 설치해놓았던 가을이

철거되고 있었다 부도 맞고 쓰러진

토종닭 연구소 입구

널브러져 버려진 닭 한 마리

나사처럼 꽉 조여 있던 검은 눈빛은

벌써 풀려

땅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잡풀에 발목 잡혀 낡은 정보를 흘리는

빛바랜 신문지들

복제된 소가 전생을 기억한다고?

쌀 한 톨에

도서관이 들어간다고?

그럼, 내 속엔?

 

인기척에 놀라 튀어나온 무당개구리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길흉을 등에 지고

혼 마중 거리굿을 벌이고 있었다

자욱이 피어오른 하루살이들

점점이

지는 해를 끌어안고

허둥대고 있었다

 

지글지글

 

구파발에서 좌회전하자마자

버거킹은

속력을 내서 달리기 시작했다

서울을 지나

 

지하철워털루역. 백인소녀가벽에기대어휴대폰으로통화를하고있다. 울먹이며벽을향해돌아선다.이마로마구벽을찧는소녀. 벽속으로걸어들어가기라도하려는듯. <BUY ME/I'LL Change/YOUR LIFE>라고 적힌붉은광고벽보가곁에서소녀를위로하고있다. 휴대폰을바닥에내던지는소녀. 달려들어오는전동차. 창밖을물끄러미내다보고있는인형들. 그파란눈동자들.

 

지글지글

맛있는 버거킹으로 오세요!

와퍼 세트를 드신 후 쿠폰 3장을 모아 오시면

세트 하나를 그냥 드립니다

 

행사기간 : 7/32 ~ 7/45

 

몽유도원도 11

 

어느날드디어바겐세일이시작된다

그는백화점으로달려가

몰려든사람들틈에끼어그것을골라든다

아가씨이게 40% 할인된가격이오?

아니요거기서40%를깎아드려요

마음이바쁜그의쇼핑백은순식간에가득찬다

불룩한쇼핑백들고돌아온그는

지친몸과그것을거실에던져놓고성취감에젖어널브러져있다가

비씨카드만한깨달음하나를얻는다

그렇다원하는것은

그무엇이든40%나할인된가격이었다

그는온라인으로들어가도토리를모두털어주고

50%할인된칼을산다는그는번쩍이는그칼로

더듬이가떨어져나간

구형텔레비전을60%싸게산다그는그것을팔아

90%나싸게나온돌아가신어머니를사들고온다

밤늦도록회포를풀고난뒤

한결밝아진어머니를새옷입히고화장해서

내다팔기로한다그러나어머니

아무리싸게판다해도

죽은여자를어느누가사겠어요어머니

어쩔수가없군요어머니그는엄마와자기를세트로묶어

헐값으로시장에내놓는다하루이틀사흘

모자가울고있다다시또

하루이틀사흘

이제그는온라인을빠져나가야겠다고마음먹는다

40%정도빠졌다면어쨌거나

만족할만한수준인것이다

 

재개발지역 5

 

햄버거를 먹고 있는 아이의 입가에

21번 염색체 이상으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의 입가에

인간의 色이 전혀 물들지 않은

태초의 입가에

너울거리는 봄

 

아파트 철책 따라 만개한 개나리꽃들

空에서

노란 色으로 빠져나와

배드민턴공처럼 생긴 제 몸에 놀란 듯

팅! 팅!

色을 튕기며

아파트 철책 따라 달리는

 

햄버거처럼 생긴 도시

염색체 이상으로

높이 솟구치며 골다공증을 앓고 있는 아파트 속에

속눈썹이 자꾸 빠지는

초승달 아래

 

거기가 어디였더라

 

눈부시도록 탁 트인 장지였다

 

부슬부슬 떨어져 나가는 바위 틈에서

조개껍질들이 나왔다

바다 속처럼 고요한 산

삽날이 잘 먹지 않았다

온 세상이 물에 잠긴 적이 있다고

산모의 양수와

바닷물 성분이 그래서 같은 거라고

누군가 구덩이 속에서 아는 체를 했다

언젠가 불의 심판이 내리면 예외가 없을 거라고

숲을 헤치고 날아오른 새들이

푸른 허공을

깊이 파 들어가고 있었다

점점 깊어지는 구덩이를 보며

 

일회용 커피로

일회용 몸뚱어리 녹여가며

 

퀵 서비스

 

봄이 오면 제비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씀바귀가 자라면 입맛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비 내리는 밤이면

발정 난 고양이를 담장 위에

덤으로 얹어드리겠습니다 아기들은

산모 자궁까지 직접 배달해드리겠습니다

자신이 타인처럼 느껴진다면

언제든지 상품권으로 교환해드리겠습니다

꽁치를 구우면 꽁치 타는 냄새를

노을이 물들면 망둥이가 뛰노는 안면도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돌아가신 이들의 혼백은

가나다순으로 잘 정돈해두겠습니다

가을이 오면

제비들을 데리러 오겠습니다

쌀쌀해지면 코감기를 빌려드리겠습니다

 

갈릴리 김밥

 

어렵게 쓴 사직서 끝내 구겨 버리고

갈릴리 김밥집에서 꾸역꾸역

검은 김밥을 쑤셔 넣는다

특별 보너스 주겠다는 유혹을 마다하고

자유도 마다한 이유 찾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는 갈릴리

자신을 세상에 내다 판 죄

종신형 받는 게 아닐까

노동형 인간으로 거듭나라는 뜻일까

갈릴리 대형 거울에 갇힌 내 허상이

나를 향해

저 등신 하며 눈 흘기는 이 業을

씹으며

 

식탁에 말라붙은 고춧가루 갈릴리

 

회전문

 

어느 날 그는 탈주에 성공했다

몸담았던 조직의 육중하고 거대한 회전문을 밀고

드디어 속 시원히 나왔다

고 그는 믿었다 그물 같은 조직의

아래 위를 오가며

사방으로 얽혀 있던 관계의 고리를 끊고

간신히 회전문을 빠져나왔다

고 그는 믿었다 그러나

문을 밀고 나오는 순간 더 빨리 돌아가는

그 문의 회전 속도에 휘말려

다시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다시 밖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그의 의지보다 더 세고 효율적인

회전문에 오래도록 그는 갇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탈주에 성공했다

고 믿었다 아침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박찬호 경기를 라이브로 즐기고 발목이 잘린

비둘기에게 과자를 주면서

시시각각 움직이는 주가를 지켜보다 배팅을 하고

동네 쓰레기 소각장의 연기가

어느 쪽으로 날아가는지 살펴가면서

듣지도 않는 레코드판 먼지를 닦아내면서

그는 탈주에 성공했다

고 믿었다 어제처럼 어제의 어제처럼은 살지 않겠다

고 말하면서 열심히 회전문처럼

돌아가면서

 

어느 날 그는 탈주에 성공했다

고 믿었다 유로라인을 타고 파리로 떠나면서

먹다 남은 고추장과 라면을

런던 민박집 아주머니에게 다 털어 주면서

파리의 출출한 밤

그 고추장과 라면을 아쉬워하면서

 

재개발지역 10

 

나는 내가

나를

 

쓰고 내다 버리는

쓰레기통

이다 잠든 내 얼굴

퀴퀴한

그 재활용 쓰레기봉투 귀퉁이를

뜯어보는

당신의 허기

 

굶주린 고양이의 비린 발톱

 

아스피린

 

바닥이

빤히 보이는

정기예금 통장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며칠째 물만 마시며

아스피린처럼 웅크리고 있는

속으로 녹고 있는

 

그가 시를 쓸 때는

몸에서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난다

낙엽 긁어모으는 소리

낮게 깔리기도 한다

 

버섯찌개

 

야근과 몸살 덕분에

55킬로그램에서 52킬로그램으로

가볍게 몸을 구조조정시키고

몸 밖으로 퇴출시킨 물질만큼 탈속해진

반물질이 되어

모처럼 만난 구름머리

주문한 버섯찌개가 나오는 동안

메추리알만한 침묵 소금에 찍어 먹으며

 

소리 한 점 없는 침묵도

잡다한 소음도

훌륭한 음악이라고 사기 쳤던 존 케이지(    ~ 1992)

버섯을 연구했던 음악의 대가

누군가 물었다 하필이면 왜 버섯이냐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무명한 것이기에,

음악 한답시고 골을 비워놓으면 습기가 차니까……

국물 속에서 건진

내 거시기처럼 생긴 송이버섯

얼른 입으로 가져가 뜨겁게 감추며

존 케이지를 아느냐고

춤추는 남자를 사랑했던 존 케이지를 아느냐고

애꿎은 고인 들먹여

눈길을 돌려가며

 

로그인

 

내 속에는

 

누군가

나보다 먼저 다녀간

흔적이 있다

 

달래야

 

매화는 다시 매화가 되려 하고

수련은 다시 수련이 되려 하고

북한산도 다시 북한산이 되려 하는데

걸쭉하게 몸 버린 한강도

다시 한강이 되려 하는데

쓰러진 강아지풀도

강아지풀로 일어나려 하는데

 

나는 뭐가 돼야 쓰겠소

응?

 

손에 강 같은 평화 2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가

안경알을 깼다 항암제를 투약하면서도

도수를 높여가며 집착하던 안경이었다

점점 흐려지는 세상을

그저 그러려니 밀쳐두고 살았다면

암에 걸리지도 않았을 텐데 아쉬워하면서

깨진 안경알을 치우다가 손을 베었다

 

스스로 불러들인 암과 타협해서

마음의 초점이나 잘 맞추고 지냈다면 편했을 텐데

한 치라도 자식들을

가까이 끌어당겨 보고 싶었던 것일까

도수를 높여가며

점점 멀어져가는 生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었던 것일까

 

어머니를 한동안 따뜻하게 왜곡시켜주었을

깨진 안경알을 보며

마음의 초점이 흐려져 상이 잘 잡히지 않는

눈 대신에

베인 손가락에 침을 묻혀

깨진 안경알 조각들을 더듬더듬

 

몽유도원도 17

 

광합성 작용을 하며 걸었다

식물보다 느리게 걸었다

식물보다 더 멀리 갔다

돌아오는 길 벌써 날은 저물고

낯선 곳에서

책을 읽으며 버텼다

불을 켜자

활자들이 먼저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뒤따라 걸었다

자꾸만 자빠졌다

점점 뒤쳐지고 있었다

 

처럼 거나해져 목청들 높아지고 있다

문간에서 구걸하고 있는 목발 짚은 노인 쪽으로

청어 굽는 푸른 연기가 빠져나가고

천장에서 건들건들 내려와

텔레비전에 내려앉는 거미

나잇값을 해 이 양반아 술을 똥구멍으로 마셨어

면박을 주는 주모

허름한 인생들을 받아 낸 그녀의 욕설에는

힘이 있다 야생동물 같은

신문지를 말아 쥐고 주모가 다가가자

부리나케 달아나는 거미의

 

느닷없이 쏟아지는 우박

느닷없이 쏟아지는 눈동자

 

손에 강 같은 평화 1

 

사람 손가락이 열 개인 까닭에

십진법이 생겼다고 한다

이 손이 소처럼 뭉툭했다면

번잡한 이 삶 어마나 단순하고 평화로웠겠는가

새의 날개 같았다면

가볍게 떨리는 마음으로도

얼마나 멀리 날아갈 수 있었을까

 

내 손도 그 새 세상을 품었구나

낡은 도자기처럼 은은하게 잔금이 가고

푸르렀던 힘줄도

스우ㅐ터에서 풀려 나온 실처럼 느슨해진 내 손은

세상을 움켜쥐기보다

누구나 손잡기 쉽게 되었다

 

이 손 강 같았으면

남원 어느 샛강처럼

둔치를 끼고 느리게 돌아가는 강 같았으면

신발 벗어 들고 생을 건너다

흰 발등 내려다보며 아득해진 마음이여

그 마음 쓰다듬는 얕은 강이여

내 손 그런 강 같았으면

 

幕間

 

기차표를 끊어 놓고

시간 죽이려 들어간 청량리 뒷골목 극장

기형도 시인이 쓰러졌던

파고다극장보다 작고 음침한 그곳에는

세상과 담을 쌓기 위해 숨어든 백수들과

부랑자들이 굴러들어온 호구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때 절은 잿빛 스크린 펄럭이며

사람들을 가지고 노는 흉측스런 공룡보다

찢어진 스피커의 소름끼치는 소음이

사람 잡을 때마다

움찔거리며 흘리던 쥬라기의 팝콘들

 

그때 슬그머니

내 허벅지를 타고 넘어오는

옆자리 중년 남자의

부드러운 손길

 

시간을 넘나드는 영화도 보았고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영화도 보았다

聖이 性을 뛰어넘지 못하는 영화도 보았고

바다가 육지를 덮치는 영화도 보았다

그러나 남자가

남자를 뛰어넘지 못하고 무너지는

그 영화 같은 현실 앞에서

덥석 공룡에게 물린 듯

식은땀을 흘리며

 

가족

 

물고기들이 돌 속에 박혀 놀고 있다

물처럼 부드러워지는 돌

 

나는 그곳에서 추방되었다

내가 그곳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에

그곳은 파괴되지 않고

완만하게 잘 돌아갈 것이다

내가 그곳에서 추방된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다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잘된 일이다

 

끝없이 펼쳐진 광야를 지나

비바람에 씻겨

뒹구는 돌

 

몽유도원도 2

 

 


위 네모 안에

마음속으로 점 하나를 찍으시오

그 점에서 솟구쳐 흘러내리는 샛강을 끼고

 

차를 몰아 비포방도로를 달리시오

 

(흙먼지가 일면 창문을 닫아도 좋소)

 

 

고구마 밭이 나오면 하차해서

네모 틀 밖으로 나오시오

 

강이 휘돌아 나가는 여울목을 따라

 

트렁크에 싣고 온 암벽으로

 

병풍을 치시오

 

(여유가 있으면 잘게 갈아

 

강변에 백사장을 깔아도 좋소)

 

강물에 발 담그고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캔 맥주를 따시오

 

 

문득 그곳에 눌러 살고 싶어졌다면

 

흐르는 강물에

 

임의의 점 하나를 찍으시오 그 점 주위에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점을 찍어보시오 그중 하나의 점에게

 

사랑을 고백해도 좋소

 

모든 점들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소

 

그래야 단풍다운 가을 단풍

 

중국집에 잡혀 먹은 손목시계처럼

최신판 영한사전처럼

맛이 진한 몽고간장처럼 미군 야전잠바처럼

돼지 껍데기처럼

 

요즘도 헌책방에서 제법 거래가 되는 『思想界』처럼

 

조계사 대웅전

문지방 위

꼬리를 떨며 교미 중인 고추잠자리처럼

 

1리터에 1,450원에서

1,390원으로 다시 1,530원으로

미친 듯이 널뛰는

휘발유처럼

 

단풍이여

오늘만큼은 잠시 세상 접어두고

분배냐 성장이야 누가 뭐래도

북핵 위기니 인구 감소니 독도니 뭐니 다 잊

단풍이여 그냥 좀더 붉게 타야 쓰겠다

가을 단풍이여

 

아파트 값이 폭등했지만

더 오를지 몰라

이사도 못 가고 있는 나처럼

자식 과외비 바련하러 노래방 도우미로 나갔다가

뽕짝에 푹 빠진 아줌마처럼

 

뻔질나게 날아오는 스팸 메일처럼

 

가을 단풍이여

이제는 붉게 타다 가는 수밖에 없는

그거밖에 할 게 없는

그래야 단풍다운 가을 단풍이여

 

다시 대한 늬우스

 

진관내동 해장국집

처마 밑

서울 인근에서 여간해 볼 수 없는

제비 일가족을 보았다

 

식당에서 쓰고 버린 초록색 이쑤시개들이

비녀처럼 꽂혀 있는 둥지

 

머리만 내밀고 주위를 둘러보는

제법 의적한 새끼들

다가가 살펴보니

울음소리가 새 나가지 않도록

노란 고무 패킹으로

주둥이(       ~ 2004)가 정성껏 여며져 있었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