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8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 남도답사 일번지
유홍준 지음
200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06835
981.1
유95ㄴ 2 v. 1 c. 2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으면 우리 국토는 거대한 박물관 유물창고와 같고, 그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문화유산을 말하면서 결코 흘러간 역사의 이야기로 머물지 않고 오믈이라는 한낮의 밝은 빛으로 조명해냄으로써 우리는 그의 해설에 따라 수천년 역사의 숨결을 느끼는 장쾌한 파노라마를 펼쳐 보게 된다. 역사학, 고고학, 민속학, 미술사 등 어느 한 분야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문화유산의 진실을 그는 대맥을 잡아 풀이하면서, 단순하게 씨줄과 날줄로 옷감을 짜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에 정교한 무늬를 넣어 아름다운 비단옷을 짓듯 우리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의 이러한 노력과 솜씨는 그 자체가 바로 오늘의 새로운 문화창조라고 평가할 만한 것이다.
- 안병욱(성심여대 교수 · 한국사)
유홍준의 답사기는 이제까지 우리가 흔히 보아온 기행문이나 문화재 해설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우리 국토와 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씌어진 그의 답사기는 정확한 전문적 지식과 명석한 양식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낱낱 유물의 형태상 특징과 아름다움, 내용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그것을 창조한 인간의 이야기, 더 나아가 그것이 지닌 현제적 의의까지 밝혀내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감동과 놀라움 속에, 때로는 자신의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과 함께 전통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 윤용이(원광대 교수 · 미술사)
역사의 자취가 곳곳에 널린 민족치고는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스스로 가까이 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남달랐다고 하기 어렵다. 전란으로 없어져버린 것도 많고 특유의 낙천성으로 물건 간수에 신경을 덜 쓴 까닭도 있지만, 아무래도 생활이 곤궁하고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는 통에 공부와 살림을 제대로 못한 탓이 큰 것 같다. 이런 판국에 유홍준이처럼 입심 좋고 글솜씨 좋고 먹성 좋고 눈썰미 사납고 꽤나 극성맞기도 한 연구자 겸 평론가를 만난 것은 여간한 복이 아니다. 이 '답사기'가 독서계에 한바탕 바람을 일으키면서 우리 역사와 문화윤산의 보물들이 두고두고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숨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백낙청(서울대 교수 · 문학평론가)
지은이 유홍준(兪弘濬)은 1949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미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였으며,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의 예술철학 전공을 수료하였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미술평론부문으로 등단하여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를 역임히였다. 1985년부터 매년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개설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1986, 열화당), 편역서로 『미학에세이』(1988, 청년사), 번역서로 『회화의 역사』(H. W. 잰슨, 1984, 열화당) 등이 있으며, 「조선후기 문인들의 서화비평」 「단원 김홍도 연구노트」 등 한국회화사 관계 논문을 줄곧 발표해왔다. 현재는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미학 ·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차례
책을 펴내면서 국토박물관의 길눈이
1 남도답사 일번지 - 강진 · 해남(1)
아름다운 월출산과 남도의 봄
월출산 / 도갑사 / 월남사터 / 무위사 / 남도의 봄
2 남도답사 일번지 - 강진 · 해남(2)
영랑의 슬픔과 다산의 아픔
해태식당 / 영랑생가 / 구강포 귤동마을 / 다산초당
3 남도답사 일번지 - 강진 · 해남(3)
세상은 어쩌다 이런 상처를 남기고
만덕산 / 백련사 / 녹우당 / 윤고산 유물전시실 / 대흥사 유선여관
4 남도답사 일번지 - 강진 · 해남(4)
일지암과 땅끝에 서린 얘기들
두륜산 대흥사 / 일지암 / 미황사 / 땅끝
5 예산 수덕사와 가야산 주변(1)
내포땅의 사랑과 미움(상)
내포평야 / 수덕사 대웅전 / 정혜사 불유각 / 수덕여관
6 예산 수덕사와 가야산 주변(2)
내포땅의 사랑과 미움(하)
남연군 묘 / 보부상 유품 / 해미읍성 / 개심사
7 경주(1)
선덕여왕과 삼화령 애기부처
첨성대 / 황룡사 구층탑 / 삼화령 미륵삼존 / 감실부처님 / 여근곡
8 경주(2)
아!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
감포가도 / 대왕암 / 감은사탑 / 고선사탑 / 석가탑
9 경주(3)
에밀레종의 신화(神話)와 신화(新話)
성덕대왕신종 / 봉덕사종 이동기 / 후천개벽춤 / 불국사 박정희종
10 양양 낙산사
동해 낙산사의 영광과 상처
낙산일출 / 의상과 원효 / 원통보전 돌탑 / 낙산사 그림
11 관동지방의 폐사지
하늘 아래 끝동네
설악산 진전사터 / 도의선사 부도 / 미천골 계곡 / 선림원터 / 홍각국사 부도비
12 문경 봉암사(1)
별들은 하늘나라로 되돌아가고(상)
희양산 / 봉암사 / 지증대사 부도와 비
13 문경 봉암사(2)
별들은 하늘나라로 되돌아가고(하)
정진대사 부도와 비 / 마애보살상 / 야유암
14 담양의 정자와 원림(1)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상)
중부휴게소 / 누정의 미학 / 소쇄원
15 담양의 정자와 원림(2)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하)
식영정 / 서하당 / 환벽당 / 취가정 / 명옥헌
16 고창 선운사
동백꽃과 백파스님, 그리고 동학군의 비기(秘機)
동백숲 / 상갑리 고인돌 / 낙조대 / 칠송대 암각여래상 / 백파선사비 / 풍천장어와 복분자술
부록 답사일정표와 안내지도
도선국사비 / 전설 속의 스님 도선국사의 일대기를 새긴 이 비석은 17세기에 세워진 것이지만 그 규모의 장대함과 조각의 섬세함이 볼 만하다.
월남사지 삼층석탑 / 월출산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자리에 세워진 월남사의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의 탑이지만 백제양식이라는 지방적 특성이 잘 살아나 있다.
누리령 산봉우리는 바위가 우뚝 우뚝
나그네 뿌린 눈물로 언제나 젖어 있네
월남리로 고개 돌려 월출산을 보지 말게
봉우리 봉우리마다 어쩌면 그리도 도봉산 같아
- 다산 정약용
무위사 극락보전 / 조선초에 세워진 대표적인 목조건축으로 맞배지붕의 단아한 기품을 잃지 않으면서 불당의 엄숙성도 유지하고 있다.
극락보전의 측면관 / 기둥과 들보를 노출시키면서 조화로운 면분할로 집의 단정한 멋을 은근히 풍기고 있다.
극락보전의 벽화 / 고려불화의 화려하고 섬세한 기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조선초 벽화의 대표적인 예이다.
무위사의 늙은 개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우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詩)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김영랑,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우에"
영랑생가 / 소담한 초가 안채와 뒤뜰의 해묵은 동백꽃은 영랑의 시처럼 아름답지만 요새 만든 영랑시비는 우악스러워 고가의 분위기를 망쳐버렸다.
윤종진(1803~1879)묘의 동자석 / 정다산이 귀양지를 귤동으로 옮기게 한 해남윤씨 집안의 한 묘 앞에는 귀엽고 현대적 조형감각이 살아있는 동자석이 세워져 있다.
다산초당 / 주변의 나무숲이 울창하여 다산초당은 언제나 이처럼 어둠침침하다.
정석 / 정다산이 여기에 머물던 시절 손수 쓰고 새긴 각자(刻字)로 그의 귀양살이를 말해주는 유일한 유물이다.
다산동암 / 정다산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만든 현판으로 해맑은 획맛이 살아 있다.(위)
보정산방 / 추사 김정희의 중년 글씨로 글자의 구성과 획의 움직임에 예술적 변화가 능숙하게 구사됐다.(아래)
정다산의 「매화와 새」 / 아내가 보내준 치마를 오려 장첩(障帖)을 만들어 딸을 위해 그림과 글씨를 쓴 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천일각에서 바라본 구강포 / 이처럼 강진만을 내려다보는 시원스런 전망이 있기에 다산초당은 여기에 자리잡은 것이었다.
백련사 전경 / 백련사의 가람배치는 앞쪽에 만경루가 육중하게 가로막고 있어서 위엄과 권위를 앞세운 느낌을 준다.
백련사 부도 / 전형적인 조선시대 사리탑으로 동백숲 속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윤고산 고택 / 해남 윤씨의 종가로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를 배출한 유서 깊은 고가이다.
녹우당 현판 / 윤공재의 친구이자 성호 이익의 형님으로 동국진체(東國眞體)의 원조로 불려지는 옥동 이서의 글씨이다.
공재 윤두서 자화상 / 초상화 왕국이라 불릴 조선시대의 뛰어난 초상화 중에서도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동국여지지도 / 윤공채가 그린 이 조선전도는 그의 실학자적 면모와 대화가다운 필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유선여관의 노랑이
천불전의 창살무늬 / 사방연속무늬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 창살은 내소사 창살과 함께 손꼽히는 명품이다.
대웅보전 돌계단의 돌사자 / 돌계단 머릿돌에 이처럼 호신수를 새기는 것은 범어사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 돌사자는 아주 매섭게 생겼다.
대흥사 대웅보전 / 대흥사의 중심건물인 대웅전 경내는 큰 절집답지 않게 아늑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일지암 / 초의선사가 칩거하던 일지암은 다선(茶禪)의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차를 아는 스님만을 주인으로 모신다.
추사의 「명선」 / 초의가 보내분 차를 받고 그 폐백으로 보낸 추사의 작품으로 병거사(病居士)라 낙관한 추사의 말년의 대표작이다,
대웅보전 현판 / 신지도에 귀양살고 있던 원교 이광사가 쓴 글씨이다. 획이 바싹 마르고 기교가 많이 들어 갔지만 화강암의 골기(骨氣)가 느껴진다.(왼쪽)
무량수각 현판 / 추사 김정희가 귀양살이 가면서 쓴 글씨로 획이 기름지게 살지고 구성의 임의로운 변화가 두드러져 있다.(오른쪽)
'토말' 비 / 해남군 송지면 갈두마을 땅끝에 세워져 있는 비석으로 멀리 노화도가 보인다.
미황사 대웅보전 / 달마산의 준봉들을 배경으로 한 멋진 건물로 빛바랜 단청이 더욱 고찰의 맛을 자아내고 있다.
용당리에서의 나의 죽음은
출렁이는 가래에 묻어올까,
묻어오는 소금기 바람속을
돌속에서 흐느적거리고 부두에서
노동자가 한 사람 죽어 있다.
그러나 나의 죽음
죽음은 어디에
……
- 김지하
땅끝에 서서
더는 갈 곳 없는 땅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서 날거나
고기 되어서 숨거나……
혼자 서서 부르는
불러
내 속에서 차츰 크게 열리어
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리다
이내 작은 한덩이 검은 돌에 빛나는
한오리 햇빛
애린
나.
- 「애린」 김지하
수덕사 대웅전 /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축 중 하나로 고려시대 맞배지붕집의 장중하고 엄숙한 멋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대웅전의 측면관 / 둥근 기둥과 각이 진 들보를 노출시키면서 절묘한 면분할로 집의 모양새를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대웅전 내벽의 벽화 / 해체 수리 때 발견된 꽃그림으로 고 임천선생이 모사해둔 고려시대 벽화이다.
만공스님의 미륵상 / 일제시대에 만공스님이 세운 미륵석상으로 그 조형미를 떠나 스님의 족적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큰 의미를 새기게 된다.
정혜사 '불유각' 현판 / 정혜사의 샘물터에는 보호각이 세워져 있고 '부처님의 젖'이라는 뜻의 '불유각(佛乳閣)'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글씨는 만공스님.
으셔져라 껴안기던 그대의 몸
숨가쁘게 느껴지던 그대의 입술
이 영역은 이 좁은 내 가슴이
아니었나요?
그런데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 고운 모습들을 싸안은 세월이
귓담을 넘는 것을 창공은 보았다잖아요.
- 일엽, 「그대여 웃어주소서」
수덕여관의 이응로 암각화 / 고암 이응로의 본부인이 경영하는 수덕여관 뒤뜰에는 고암이 문자추상화를 새겨놓은 너럭바위가 두 개 있다.
남연군 묘 / 흥선대원군은 여기가 황제를 낳을 명당이라고 가야사를 불지르고 금탑자리에 선친 남연군의 묘를 썼다.
남연군 묘의 산도(山圖) / 명당의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미읍성 / 옛날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사령부가 있던 읍성으로 조선시대 성곽 중 가장 온전히 보존된 것이다.
상황산 개심사 현판 / 일제시대의 서화가인 해강 김규진의 전서체로 글씨가 멋스러우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풍겨준다.
개심사 대웅보전 / 단정한 품위가 돋보이는 조선초 맞배지붕집이다.
개심사 심검당의 부엌문 / 맘껏 휘어뻗은 나무로 기둥, 창방, 문지방을 만들어 천연스러움을 그대로 살린 멋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첨성대 / 한국과학사에서 끊임없는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첨성대의 기본형태는 신라토기 중 기대(器臺)를 닮은 단정한 모습이다.
첨성대의 실측도 / 남천우교수가 제시한 것으로 1척 = 29.7cm로 잡은 것이다.
황룡사지 발굴현장 / 항공촬영한 이 사진만으로도 황룡사의 규모가 파악된다. 사찰 경내만 약 3만평. 위쪽의 나무숲이 분황사이다.
생의사 미륵삼존상 / 경주 남산 삼화령 고개에 있던 석불로 지금은 경주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애기부처의 귀여운 얼굴 / 앳된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동심과 불심의 만남이라고 할 만하며, 인간미가 넘쳐 흐른다.(위)
애기부처의 발가락 / 개구쟁이 아이들의 손때가 묻어 애기부처의 발가락은 이렇게 까맣게 되었다.(아래)
남산 불곡의 감실부처님 / 자연석 바위를 파서 감실 속의 부처상을 만든 이 감실부처님은 마치도 인자한 하숙집 아주머니상을 연상케 하는 따뜻한 인간미가 살아 있다.
여근곡 / 건천읍 부산(富山) 아래쪽 산줄기로 지형이 여자의 국부처럼 생겨 이런 이름을 얻었다. 선덕여왕 '지기삼사' 전설의 고향이며, 조선시대 과거시험 보러 가는 선비가 이 길로 지나가면 꼭 떨어졌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경주터널을 지나 산자락 한굽이를 돌아서면 바로 나타난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 튼실한 이층 기단부에 삼층탑신이 체감하는 구조로 안정감과 상승감을 동시에 충족시킨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기본형이 여기서 만들어졌다.
이견대에서 바라본 대왕암 / 조선시대 정조 때 경주부윤을 지낸 홍양호는 여기서 문무대왕의 뜻에 감사하는 제사를 올렸다.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 / 우현 고유섭선생의 수필 제목을 커다란 자연석에 새겨 미술사에 대한 선생의 열정을 기리고 있다.
감은사터 전경 / 쌍탑일금당(雙塔一金堂)의 정연한 가람배치로 이후 통일신라 절집의 한 모범이 되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 백제 사람들이 만든 석탑의 이상은 여기에 있었다. 우아하면서 부드러운 인상, 그러나 여기엔 힘과 안정감이 약하다.
고선사지 삼층석탑 / 원효대사가 주지스님으로 주석하던 고선사의 삼층석탑에는 초기양식이 지니는 장중함이 서려 있어 보는 이를 압도하는 힘의 미학이 있다.
불국사 석가탑 /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의 모범답안이라고 할까, 통일신라의 삼층석탑은 여기에서 형식의 완성을 이룩하게 되었다.
에밀레종 비천상 / 상원사 동종의 비천상은 힘이 넘쳐 흐르지만 에밀레종 비천상에는 정제된 세련미와 정교한 형식미가 돋보인다.
1915년, 봉황대에서 구경주박물관으로 에밀레종을 옮길 때 사진(동아일보 제공).
에밀레종의 종고리 / 용의 허리춤으로 끼여 있는 쇠막대는 지름 8.5cm로 이 시대의 기술로는 만들지 못하여 그 옛날부터 사용해온 쇠봉을 그대로 끼웠다.
에밀레종 / 소리는 장중하면서 맑고, 형태는 유려하면서 긴장이 살아 있는 곡선미를 보여준다.
성덕대왕신종 이전광경 / 동부동 옛박물관에서 현재의 박물관으로 옮길 때의 장관. 대한통운의 트레일러에 실린 신종은 연꽃으로 장식되었고 그 앞에는 여학생들이 부채춤을 추고 있으며 뒤에는 많은 시민들이 줄을 지어 따라오고 있다. 지금의 화랑로. 경주 손용석씨 촬영(1975년 5월 27일).
홍예문 / 무지개 형상의 입구를 한 전형적인 조선시대 성문이다.
낙산사 칠층석탑 / 비록 보물 499호로 지정되어 있지만 나는 이것이 그만한 문화적 가치가 있는지 아직도 의심하고 있다.
원통보전의 별무늬 돌담 / 진흙과 토담에 기와와 둥근 화강암으로 별무늬를 장식한 아담한 의장이 보는 이를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수월관음도」 / 14세기, 고려시대의 탱화로 일본 다이도꾸지(大德寺) 소장품에는 낙산사 창건설화가 그려져 있다.
겸재 정선의 「낙산사」 /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즐겨 그린 겸재는 여러 폭의 낙산사 그림을 남겼는데, 어느 경우든 동해 바다의 일출을 곁들여 시원스런 화면구성을 보여준다.
손장섭의 「동해바다」 / 화면을 철망으로 가로막고 동해바다의 흰 포말을 강조하여 이미지의 상충이나는 회화적 효과를 얻어내었다.
진전사 폐사지 / 절집은 오간 데 없고 산등성 아래 삼층석탑 하나가 그 옛날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진전사지 삼층석탑 / 하대신라 지방에 세워진 선종 사찰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전형적인 9세기 석탑으로, 특히 기단의 팔부중상과 일층몸돌의 4면 석불을 돋을새김하여 아담한 가운데 장식성이 돋보인다.
진전사지 부도 / 하대신라 선종의 시대, 부도의 시대를 말해주는 8각당 형식 부도의 시원양식으로 도의선사 사리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염거화상 부도 / 도의스님의 제자인 염거화상의 부도로 여기에서 9세기 부도는 연화받침대 위의 8각당이라는 전형이 창조되었다. 일제 때 도굴꾼이 훔쳐간 것을 압수하여 지금은 경복궁에 보존되어 있다.
선림원지 삼층석탑 / 구조와 크기는 진전사지 삼층석탑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어딘지 중후한 멋을 풍겨준다.
홍각선사 부도비 / 비석은 산산조각이 나고 돌거북이와 용머리만 남아 있는데, 거북이의 힘찬 기상과 정성을 다한 조각솜씨에서 9세기 지방문화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선림원지 석등 / 폐사지 위쪽, 아마도 조사당 건물 잎마당에 세워진 듯한 이 석등은 비록 지붕돌 귀꽃이 깨졌지만 고풍스러운 멋은 잃지 않았다.
지증대사 적조탑비 / 최치원이 지은 글을 83세의 분황사 스님 혜강이 쓰고 새긴 것으로 남한에 있는 금석문 중 최고봉으로 손꼽힌다.
지증대사의 부도 / 비록 지붕돌 한쪽이 깨졌지만 장중한 형태와 섬세한 조각으로 9세기 석조예술의 난숙성을 보여준다.
지증대사 부도와 기단부 공양상 / 깊게 새긴 돋을새김의 정교한 조각솜씨는 가벼운 장식성이 아니라 치밀한 성실성을 느끼게 해준다.
봉암사 삼층석탑 / 지증대사가 봉암사를 창건할 때 세운 것으로 전형적인 9세기 삼층석탑이다. 아담한 형태미와 날렵한 상륜부가 돋보인다.
정진대사 원오탑 / 지증대사 부도를 흉내낸 것이어서 매너리즘에 빠져 장중함은 없지만 언덕 위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잇어서 답사객에게 시원한 눈맛을 제공한다.
봉암사 대웅전 앞마당의 노주석 / 앞마당 양쪽에 있는 돌받침은 한밤중 행사 때 관솔불을 피워 올려놓던 곳이다. 우리말로는 불우리라고 한다.
마애보살입상 / 귀엽고 친숙한 인상의 이 고려시대 마애불은 월악산 미륵리 석불과 비슷한 지방양식이 나타나 있다.
야유암 / 봉암사 입구 너럭바위 한쪽 면에 새겨져 있는 이 글씨는 "밤에 노는 바위"라는 뜻에 걸맞게 풍류가 넘쳐흐른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이 정자를 세워
사람이 가고 오고 마흔 해로다
시냇물 서늘히 벽오동 아래로 흐르니
손님이 와서 취하고는 깨지도 않네
- 정철, 「소쇄원 초정(草亭)에 부치는 시」
대봉대 / 입구가 항시 열려 있는 소쇄원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건물이 대봉대(待鳳臺)이다. 초가 정자로 방문객은 여기에 걸터앉아 소쇄원의 전경을 살필 수 있다.
광풍각 / 소쇄원의 중심이 되는 계곡의 한가운데에 단칸 정자를 짓고 광풍각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방은 겨울철 난방을 고려함이고, 사방으로 둘러져 있는 마루는 여름날을 위함이다.
화단을 2단으로 쌓은 매대(梅臺) / 담벽에는 훗날 송시열이 '소쇄처사 양공지려'라는 일종의 문패를 써서 달게 했다.
제월당 / 양지바른 언덕에 사랑채와 서재를 겸한 제월당이 이 집의 주건물이다.
돌다리 담장 / 흙돌담 밑으로 개울이 흘러갈 수 있도록 설계하여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인공미를 절묘하게 연출했다.
소쇄원 계곡 / 소쇄원 조영에서 핵심이 된 것은 이 암반 위로 흐르는 계곡이었다.
걸음 걸음 물결을 보며 걷자니
한 걸음에 시 한 수 생각은 깊어지는데
흐르는 물의 근원을 알 수 없으니
물끄러미 담장 밑 계류만 바라보네
- 김인후 「소쇄원 48영가(詠歌)」 중 「담장을 뚫고 흐르는 계곡물」
남쪽 비탈에 오이를 심었지
이야말로 내 마음 진정시키는 약이라오
아침나절 김매고 물 주고
도롱이 벗어놓고 단잠을 잔다.
- 김성원, 「양파에 오이 심어」
어떤 지날 손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棲霞堂)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듣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그처럼 낫게 여겨
적막한 산중에 들고 아니 나시는고
……
- 정철, 「성산별곡(星山別曲)」중에서
식영정의 노송 / 식영정 주위에는 이처럼 멋진 노송이 몇 그루 둘러져 있다. 그러나 그 앞에 성산별곡 시비가 무지막지하게 설치되어 그 운치를 해치고 말았다.
환벽당 / 환벽당의 툇마루에 앉으면 자미탄의 아기자기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 꺾어 셈하면서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에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졸라매어 지고 가나
화려한 꽃상여에 만인이 울며 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속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쌀쌀한 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무엇하리
- 정철, 「장진주사」
그때에 온 사찰과 교회와 성당과 무당에서
다 함께 종 울리고
집집마다 들고 나온 연등에서도 빛의
긴 범종소리 따라 울리리라 …
땅에서 환호성, 하늘에서는
비밀한 불꽃 빛 천둥 음악
마침내 망월로 가는 골목 산수에는
기쁜 눈으로 세상 보는 보리수 꽃들
푸르른 억만 송이, 작은 귓속말 속삭이고 …
- 황지우, 「화엄광주」
도솔암 석가여래상 / 배꼽의 비결로 더 유명해진 고려시대 마애불이다. 칠송대 양옆에는 멋들어진 소나무 한 쌍이 마치 협시보살처럼 자리하고 있어서 더욱 멋지다.
선운사 부도밭 / 선운사 입구 울창한 전나무숲 속에 있다. 까만 비석이 백파선사비이다.
백파선사비 앞면 /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라는 글씨를 힘차고 굵게 새겨놓아 추사체의 굳센 필력을 느끼게 해준다.
백파선사비 뒷면 / 글자 획의 굵기와 자간(字間)의 간격조정이 어지러울 정도로 자유자재롭지만 그것이 바로 추사체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자율성이다.
도솔암 내원궁 지장보살상 / 조선초기의 금동 지장보살상으로 얼굴에는 선비의 풍이 나타나 있다.
정와 / '조용한 작은 집'이라는 뜻에 걸맞은 사랑스런 조촐한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관음전으로 개수되었다.
정와 현판 / 원교 이광사의 기교가 많이 들어간 글씨이다. 지금은 새로 지은 큰 건물 창방 사이에 매미처럼 매달려 있다.
'내가 읽은 책들 > 2013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100 물고기 마음 (0) | 2013.09.13 |
---|---|
2013-099 전통 건강 음료 (0) | 2013.09.10 |
2013-097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0) | 2013.09.09 |
2013-096 불교 의식구 (0) | 2013.09.06 |
2013-093-1 오래된 서울 (0) | 2013.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