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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28. 09:10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13 옛날 녹천으로 갔다

 

장대송 시집

1999,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0945

 

811.6

장23옛

 

창비시선 184

 

대충대충 황망히 넘어가는 졸속과 허드레의 시대에 시인 장대송은 보기드믄 절제로 시와 자기 자신을 지키고 있다. 그리하여 견고한 상황의식과 헤프지 않은 말씨는 고향의 묏부리로 서슴없이 우뚝하다.

- 유종호 문학비평가 · 연세대 석좌 교수

 

장대송 시인의 시편들은 간결한 문체로 육화된 삶의 풍경들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시가 감각의 쇄신이나 단순한 시선의 편중만이 아닌 보다 근원적인 정서와 맺어져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그런 뜻에서 볼 만한 풍광의 서정시로 자리잡는다.

- 김명인 시인 · 고려대 문창과 교수

장대송 시인

1962년 충남 태안군 안면도 출생.

19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草墳」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함.

           현재 BBS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음.

 

차례

 

제1부

수타사 계곡 / 옛날 녹천으로 갔다 / 김제평야에 갇히다 / 그물을 깁는 남자 / 물묻은재 / 평강고원에 뜬 달 / 낙산의 밤, 오징어 / 빛의 묘지 1 / 어달 포구 / 명태 덕장에 박힌 말뚝처럼 쓸쓸해져봤으면 / 담 터 / 밤섬을 바라보며

 

제2부

엘리베이터를 타면 맹금류의 直腸에 걸린 풀 같다 / 늙은 염소 / 오래된 습관 / 매흙을 바르는 저녁 / 거대한 건물 / 용강동 뒷골목을 서성이던 바람 / 빛의 묘지 2 / 草 墳 / 자본주의 / 목 련 / 아침놀 / 빛의 묘지 3 / 중랑천 뚝방길 / 시구문으로 버려지는 것들

 

제3부

노적봉 아래 산성마을 / 낡은 당집 / 상뻘제 / 마른풀에 이슬은 내리고 / 남산이 보이는 창 / 빛의 묘지 4 / 백학의 아침 / 지붕이 새는 집 1 / 저녁 강가 풍경 / 청량리 기차여행 호프 / 골짜기에 부는 바람 맞으려 산으로 갔다 / 연어 도둑 / 無愁골의 겨울 / 벼락을 들이켜다 / 바다를 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제4부

겨울 작살나무는 / 빛의 묘지 5 / 달아나지 못할 / 침엽수의 봄 / 검은 여 / 휘파람 / 섬 / 겨우살이 나무는 / 왼돌이 달팽이에게 / 검은 안개 / 완산 칠봉 / 늙은 여자의 뱃속이 그립다 / 지붕이 새는 집 2 / 아난각 유리부처 / 밤 섬 / 민달팽이의 집 / 열두개섬

 

해설 ………… 손경목

후기

 

옛날 녹천으로 갔다

 

윤사월을 지내기가 번잡스러워

그늘 속의 유령들이 사는 옛날 녹천으로 갔다

비 내리는 모양이 좋아

낡은 집 문지방에 다리 한쪽 걸치고

깡소주 기울이면

회나무골 이모집에서 밥 부치던 말수 적은 머슴의 가슴 속 같다

누구를 보내려는지 젖은 산수국 아래 어떤 여인이 가파른 느낌을 고르고 있다

산수국 하얀 꽃잎이 빗물에 떠내려간다

깡마른 개가 빗속에서 여인을 힐끔 쳐다본다

그늘 속의 유령 윤사월이 살 부치는 곳

시간의 반복을 견디어내게 하는 곳

여기 폐허가 되어가는 마을 옛날 녹천에서였다

 

草 墳

 

화랭이가 안내한 바닷길 구만리

살은 볏집으로 덮고

뼈는 갈매기 둥지에 품고 살아가리

남도 바람에 세간일 듣고

관고개 넘나드는 까마귀 등에서 날 보내다가

낡은 어선으로 어망질하여

한 삼년 살다보면

조금은 서운해도

품은 뼈에선 극락조가 날으리라

 

팔목의 한은 염기로 녹슬이고

동공은 낙숫물로 씻다보면

두고 온 아애

삼년길 다 간 후에

다시 둥질 틀다보면

사방으로 사방으로

외로운 삼년이 지나리라

 

아!

서러운 남도 바람에

네 귀는 떨리고

볏짚은 흐트러져도

다시 삼년은 지나리라

 

거대한 건물

 

띵똥 ! - 퍽,

띵똥 ! - 퍽…… 띵똥 ! - 퍽,

띵똥 ! - 퍽…… 띵똥 ! - 퍽…… 띵똥 ! - 퍽,

…………………………………………………………

……………………………………………………………………………

09시 05분 전 9층에서 듣는 9층 엘리베이터 문 열리는

소리

……………………………………………………………………………

엘리베이터를 타고 直腸을 거슬러온 똥들이 職場에 뿌려졌다

……………………………………………………………………………

…………………………………………………………………………

09시 정각 9층 엘리베이터의 괄약근이 수축되고 있다

끄으 - 윽,

 

엘리베이터를 타면 맹금류의 直腸에 걸린 풀 같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급하게 탑승하려 뛰어드는 사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닫힘' 버튼을 눌렀다

청어떼를 몰아세우며 솟구치던 흑고래처럼 상승하는  엘리베이터

아랫배에 힘이 차왔다

따돌린 사람의 묘한 표정을 떠올리면서 날 서는 감정의 촉수들

겨드랑이가 간지러워오는 게, 날개가 돋을 것 같다

물에서 무인도로 쫓겨난 매들이

북으로 이동하는 철새들을 노리는 게 보고 싶다

암벽 바람을 맞으면서 날아가는 철새를 지켜보는 매

강하게 불던 바람이 그 앞에서 멈춰섰다

돌아보면 나는 배설물을 휘저으며 직장을 거슬러올라가고 있다

엘리베이터는 내게서 필요한 양분을 섭취하려는지 윙윙대고 있다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지우며 살고 싶은데,

채식동물의 꾸불꾸불한 창자 속에서 냄새를 풍기며 뭉쳐 있던 기억은 왜 지워지지 않는 것일까

 

아난각 유리부처

    최승룡에게

 

풀어진 릴테이프 같은 걸음으로 걸어가면

阿難閣에 그가 있다

키 작은 나무처럼 단정히 앉아

스튜디오 창에 잡혀든 사람들을 놓아준다

그 유리부처에 하루 몇번쯤은

나도 잡혀들었을 텐데

고개 돌려 잡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두꺼운 창, 몸짓의 말로는 부를 수 없어서일까

그가 없는 날이 되어서야

비좁던 스튜디오는 넓었다

그는 벌판의 키 작은 나무

나는 분주히 가지에서 가지를 날아다녔을 뿐이었다

날이 저물고 있다

종유동굴 같은 어둠이 아난각을 깊게 파고

그가 남기고 간 몸속의 말들만

창에 부딪쳤다

 

어디 먼 마을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나보다

 

수타사 계곡

 

고개 숙이면

수타사 계곡 잔물결이 보인다

물은 빼곡한 숲에서 산수유 피우다가 왔다

물결 사이를 유령처럼 떠도는 치어들

그들은 어디서 왔을까

햇살 닿자 강바닥에 그림자 기어가는 소리

그들은 물 아래 그림자가 낳았다

바람 불면 그림자 보러 가야지

갈 수 없는 강바닥, 물위를 건너는 햇살,

그림자로 자신을 또렷이 만들어낼 줄 아는 부유는 아름답다

바람 불면 그림자 만들러 가야지

 

빛의 묘지 1

 

봄날 저녁햇살을 등지고

해 지난 억새들을 보면 그 싹이 된다

혼령처럼 체머리 흔드는 검은 잎새

그 아래 밑동 잘려 퉁명스런

그루를 비집고 나오니 살갗 낯설다

겨울 선잠 속살 깊숙이 숨은 蛇蟲

꿈틀꿈틀 냄새를 풍기며 일어서는 것들, 억새를 밟고 가는 눈 걸음

빛이다 !

봄빛과 느릿이 합국하는 내 몸빛은 ? 검다

모든 꽃 속에 숨겨진 검은 빛

왔다 사라짐이 보이지 않아 유독 아름답다

봄날 저녁햇살에 등 기대면

빛의 묘지 속

 

빛의 묘지 2

 

창후 포구 귀퉁이에 쌓아둔

그물 뭉치로 잠들어 있는 그대,

갯바람의 무리는

山竹들이 언 살을 비벼대는 소리로 사각대었고

황혼은

황사처럼 잘게 부서져 곱게 쌓였다

양곡을 나와서 슬프다던 그대

숭숭 뚫린 그물 같은 함지에 와서야 편안한가

탁류에 떠밀리는 철새들

이제 곧 젖은 깃털을 털고 돌아갈 것이다

어쩌면 새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고

땅과 계절과 사람들만이 밀물에 떠밀릴진대

산을 이고 온 그대, 여처럼 물속에 잠기고 싶은 충동 일지 않는가

 

* 陽谷은 해가 돋는 동쪽 끝 골짜기에 있다는 상상의 지역으로, 해가 돋는 곳을 이르는 말이며 咸池는 해가 지는 곳이라고 믿었던 서쪽의 큰 못. '여'는 사리 때만 모습이 드러나는 바위섬으로, 대개 아기장수 설화가 서려 있다. 창후 포구는 강화도 북단에 있는 포구로 속초 출신 고형렬 시인과 가끔씩 찾는 곳이다.

 

늙은 여자의 뱃속이 그립다

          천전리 암각화

 

우리, 오래 전 늙은 여자의 뱃속에 있었을 때 산이었다

가을 하늘 하얀 구름 그림자 아래서

맘껏 뻗고 솟아오르며 웃던 산,

까마득한 어느날

천전리 암벽에 그림들이 하나둘 새겨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늙은 여자의 태반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나무등걸과 자갈들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권태와 욕망의 이끼들

물길 따라 부드럽고 가볍게 요동쳐줘서

우리 모두 송사리떼처럼 앞다투며 신명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늙은 여자의 뱃속을 빠져나온 후

여자의 태반은 돌산에 거적때기처럼 버려져서 말라 비틀려갔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람과 사람, 시간과 시간 사이에 숨어서

애써 그것을 잊으려 하고 있다

늙은 여자의 뱃속이 그립다

산통깨며 슬픈 이끼를 헤치고

송사리처럼 개울을 거슬러올라가면 다시 그곳에 다다를 수 있을까?

가을 하늘 하얀 구름 그림자 얼굴을 스치고

멀리 느린 바람소리 나를 어루만질 때면

늙은 뱃속에 대한 막막한 禁斷症 !

가슴속은 천전리 개울바닥에 찍힌 거대한 공룡 발자국처럼

늙은 태반만이 아득한 두려움으로 찍혀오곤 한다

 

용강동 뒷골목을 서성이던 바람

 

無巾里 임자 없는 묏등 앞에서

마른 떡을 뜯으며 봐야

태백의 가지들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서로 다르게 빠져나온 등뼈가 있다

고개를 숙여 곁눈질로 보면

그 등뼈들은 평야처럼 강물처럼 휘달린다

지평선에 나서 달려대는 삶들, 고달프다

산을 오르고 싶지 않다

지평선을 바라보고 싶지 않다

고개 들자 그들은

어디로 흘러갔는지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용강동 뒷골목을 서성이던 바람,

몸속으로 들어와 물기를 말린다

 

빛의 묘지 5

 

무릎 나온 개바지를 입은 채

해앓이를 하던 소녀가 죽었다

죽음을 향할 때는 낮게 웅크려야 편한 것일까

광부들이 떠나간 사택촌의 빈집들

집들의 웅크림은 정말 멀고 아득하다

식은 된장국에 빠졌던

파리가 기어나와 젖은 날개를 털듯

둑길을 따라 걸으면서 한숨 속에 섞인 비린내를 털어내었다

집들도 벗겨진 흰돌고래의 누런 허물 같은 빛들을 게워내고 있다

그대, 빛을 바라보며

마른 떡을 뜯어먹고 싶지 않은가

 

후기

시를 모르고 시를 써왔다. 어느날 홍대 앞 술집 골목에서였다. 담벼락 보호를 위해 우툴투툴 뿌려놓은 날카로운 시멘트 뭉치들이 수만 마리의 철새떼로 변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철새들은 먼발치에 서 있는 겨울 물빛의 눈빛을 가진 사람들한테로 날아갔다. 그들은 다시 철새를 몰고 와서 내 뒷골을 후려쳤다. 시를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라고.

내게는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눈두덩에 티끌처럼 붙어 있는 나를 떼어내려들지 않았다. 참 고마운 일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놔둔다면 결국 그 눈빛에 내 몸은 잘게 부서지고 말 것이다.

1999년 1월 녹천에서

장  대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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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