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0-1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서울편 Ⅰ
|창경궁 전경| 서울대병원 암센터 옥상에 행복정원이 생겨 더없이 훌륭한 창경궁 조망을 제공한다. 정문인 홍화문, 정전인 명정전, 그리고 그 너머 내전 건물의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명전정|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은 임란 후 광해군 8년(1616)에 지은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5대 궁궐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홍화문|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은 보물 제384호로 '조화를 넓힌다'는 뜻이다. 경복궁의 광화문, 창덕궁의 돈화문과 마찬가지로 '화(化)'자에 운을 맞춘 이름이다.
|영조의 초상| 영조는 균역법을 시행하기 전 홍화문 앞에 관리와 백성들을 불러놓고 두 차례 여론을 청취했다고 한다. 홍화문은 그런 역할을 하기도 했던 공간이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조의 「홍화문 사미도」| 정조 역시 홍화문 앞에서 빈민들에게 쌀을 나눠주었다. 이 행사 장면은 『원행을묘정리의궤』에 「홍화문 사미도(賜米圖)」라는 그림으로 남아 있다.
|옥천교| 홍화문을 들어서면 금천을 가로지르는 옥천교를 만나게 되는데, 이는 성종 때 창건된 모습 그대로다. 다리 아래를 보면 2개의 홍예(무지개)가 떠받치고 있다.
|명정전 권역|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근정전, 인정전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건물이 외따로 잇지 않고 왕이 일상 업무를 보던 문정전과 강연이 열리던 숭문당에 처마를 맞대고 바짝 붙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숭문당| 숭문당은 임금의 서재이자 신하들과 경연을 열던 곳이다. 누각형 건물로 앞쪽 툇마루로 출입했으며 영조 친필의 현판이 달려 있다.
|문정전| 문정전은 편전으로 지어졌지만 임금이 창경궁에 잠시 들렀을 때만 사용했으며, 국상을 당했을 때 혼전(魂殿)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사도세자 간찰| 사도세자가 섭정할 당시 김가신(金嘉愼)에게 사양하지 말고 관직에 나와 국사를 함께 돌보자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사도세자와 관련된 유물은 드물어서 매우 귀한 간찰이다.(48.2×29.1센티미터, 경남박물관 소장)
|'효손' 도장을 담은 궤| 영조가 정조에게 내린 '효손' 도장은 주칠 상자에 보관되어 있는데, 겉면에 '어필은인(御筆銀印)'이라고 쓴 동판이 붙어 있다.
|'효손' 도장| '효손 팔십삼서'라고 새겨진 이 거북 모양의 은 도장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기록을 지워달라고 요청한 정조의 효심에 감복해 영조가 내린 것이다.
|「유세손서」가 보관되었던 어제유서 통| '효손' 도장과 함께 영조가 '세손에게 이르는 글'이라는 뜻의 「유세손서(諭世孫書)」도 전하는데, 영조의 이 유서는 겉에 '어제유서(御製諭書)'라는 동판이 붙어 있는 긴 나무통 안에 들어 있다. 정조가 재위 25년 동안 이 통을 계속 지니고 다닌 탓에 통에 달린 질빵이 다 닳았다.
|빈양문| 명정전 뒤쪽에 딸려 있는 복도각을 따라가다보면 함인정으로 통하는 빈양문을 만난다. 궁궐 건축에서 회랑은 참으로 멋지고 그윽한 공간이다.
|함인정| 오늘날의 함인정은 앉아서 느긋이 쉬어가기 제격이다. 사방이 훤히 뚫려 창경궁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다.
|함인정 천장 아래 새겨진 오언절구 현판| 함인정 천장 아래에는 사방으로 「사시(四時)」라는 유명한 오언절구가 현판에 새겨져 있다.
|환경전| '기쁘고 경사스럽다'라는 뜻을 가진 환경전은 임금의 침전으로 왕과 왕세자를 위한 남성들의 공간이었다.
|환경전 현판| 순조의 글씨로 글씨가 반듯하고 임금다운 권위도 엿보인다.
|경춘전| 경춘전은 왕비와 왕대비의 공간이었다. 지금은 경춘전과 화경전 두 건물이 기역 자로 배치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회랑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지금처럼 휑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경춘전 현판| 환경전 현판과 함께 순조의 글씨로, 아주 아름다운 액틀에 들어 있어 그 옛날을 증언한다.
|경춘전 화계| 어느 궁궐을 가나 뒤편 언덕에 꾸민 화계는 우리나라 조원의 특징과 멋을 동시에 보여준다. 화계를 꾸미지 않았으면 이 공간이 어떻게 되었을까.
|통명전| 통명전은 창경궁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남향으로 앉아 잇으며 창경궁 답사의 하이라이트이다. 내전의 법전답게 높직한 기단 위에 올라앉아 있고 정면에는 넓은 월대가 설치되어 있다.
|집복헌과 영춘헌| 후궁들의 처소였던 집복헌과 영춘헌은 어깨를 맞대고 있다. 겉보기에도 소박한 인상을 준다.
|영춘헌과 집복헌의 안쪽 정원| 작은 미음 자 정원을 중심으로 집복헌과 영춘헌 두 건물이 둘려 있어 궁궐이 아니라 여염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춘헌 현판| 예서풍으로 또박또박 쓴 것이 아주 조신하고 느낌이 있어 누가 썼을까 궁금했다. 낙관을 확인해보니 헌종의 도장이었다.
|「동궐도」 창경궁 부분| 「동궐도」를 보면 자경전은 정면 9칸, 측면 3칸의 대단히 큰 전각으로 가운데 3칸이 대청마루로 넓게 열려 있다.
|풍기대| 보물 제846호 풍기대는 풍향을 측정하는 깃발을 꽂는 받침대로 1732년(영조 8년)에 세워진 것이다.
|앙부일구| 풍기대 옆에는 세종 때 만든 해시계인 앙부일구(보물 제845호)의 복제품이 있다. 앙부일구는 우리 과학사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관천대| 보물 제851호 관천대는 천문을 관측하는 기구로, 창경궁 관천대는 숙종 14년(1688)에 만들어진 화강석 축조물이다.
|성종대왕 태실| 자경전 터에서 춘당지로 가다보면 성종 태실이 나타난다. 조선시대 왕자와 공주의 태는 백자항아리에 담아 태지석과 함께 명당에 묻고 불가의 승탑 모양으로 장식했다.
|창경궁 백송| 창경궁 관람로엔 '궁궐의 우리 나무'가 즐비하다. 그 숲길을 걷는 것이 다른 궁궐에서는 가질 수 없는 창경궁의 큰 매력이다.
|춘당지에서 노니는 원앙| 춘당지는 일제가 창경원을 조성하며 만든 일본식 연못이다. 원앙은 본래 철새인데 춘당지가 복원되면서 텃새로 바뀌어 수십 쌍이 사철 연못에서 노닌다. 여지없는 한 폭의 채색화조화이다.
|춘당지 석탑| 춘당지를 끼고 연못을 돌자면 갑자기 이국적이고 낯선 8각 7층 석탑이 나온다. 창경궁 내에 이왕가박물관을 만들 때 골동상이 만주에서 가지고 온 것을 매입하여 옥외전시물로 세워놓은 것으로, 1470년에 세워진 명나라 탑이다.
|관덕정| 전국 활터에 있는 정자의 이름은 모두 '관덕정'인데, 창경궁 관덕정은 일반 개방되어 있지만 안내 코스에는 들어 있지 않아서 대개는 그냥 지나친다.
|식물원| 일제에 의해 동식물원으로 개조된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이름을 바꿨으나, 해방 후 동물원은 과천으로 이전되고, 식물원 자리만 남아 옛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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