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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3 경주 남산(둘)

글 / 윤경렬●사진 / 김구석, 윤열수
1994,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85

082
빛12ㄷ 45

빛깔있는 책들 45

윤경렬------------------------------------------------------------------------

함북 주을 출생으로, 제2회 동아 햇님 어린이보호 부문 수상과 제11회 외솔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불교 동화집」「경주 남산 고적 순례」「신라이야기」「신라의 아름다움」등이 있다.

김구석------------------------------------------------------------------------

'부처님 마을'의 사무국장이며 경주시 월성군청에 근무중이다.

윤열수------------------------------------------------------------------------

동국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동대학 미술과 강사이며 삼성출판사 박물관 학예연구원이다. 저서로 「한국의 호랑이」「통도사의 불화」가 있다.

|차례|

사진으로 보는 경주 남산(둘)
땅 위에 옮겨진 부처님 세계
화엄세계와 영산정토
수미산 세계의 환상
서민 모습으로 나타난 부처님
하늘이 조성한 부처님 나라
빛 속에 웃음 짓는 부처님들
도솔천의 미륵불


▲ 부처바위 남산 전망대 부근에서 북동쪽으로 흐르는 계곡을 탑골이라 부른다. 골어귀에서 조금 들어가 언덕 위에 삼층 석탑이 서 있기 때문이다. 이 탑 옆에는 높이가 10여 미터 되고 둘레가 30미터 가량 되는 큰 바위가 있는데 사면에 많은 불교 조각이 새겨져 있어 마을 사람들은 부처바위라 부른다. 사진은 부처바위 남면 전경이다.

▲ 부처바위 남면 삼존상 부처바위 남면은 높은 지대에 있기 때문에 바위 윗부분만 지상에서 2.7미터 높이로 솟아 있다. 이 바위면에 얇은 조각이라 마멸이 심하여 세밀한 선을 찾기 힘들지만 경쾌한 솜씨의 삼존상이 새겨져 있다.

▲ 여래 입상 부처바위 남면의 서쪽 바위 앞에 선 입체불이다. 대석에는 발만 새겨져 있고 발목이상은 한개의 돌로 새겨졌다. 이 불상은 얇은 돋을새김의 바위에 굳세고 풍성한 입체상을 세움으로써 전체에 생도암을 주는 공간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다.

▲ 부처바위 남면 스님상 삼층탑을 향해 앉은 이 스님은 부처바위의 주지스님으로 생각될 만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 선정에 든 스님 부처바위 동면 암벽 중앙에는 두 그루의 나무 아래에 선정(禪定)에 든 스님이 새겨져 있다. 두 그루의 나무가 인도에 있는 반야나무나 망고나무 같아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이 상은 인도에 가서 구법한 어느 그님의 이야기가 아닐까?

▲ 부처바위 동면 부처바위에서 가장 넓은 암면은 동면이다. 비탈진 벼랑이라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으므로 바위 면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게 반대로 되어 있다. 따라서 높은 쪽은 높이 10여 미터 되고, 낮은 쪽은 높이 2.5미터 가량 되는 커다란 삼각형을 이루는 면이 된다. 바위 면은 셋으로 구분되는데 제일 넓은 북쪽 면에 극락세계의 환상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에는 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든 나한상이 새겨져 있다. 또 그 남쪽 면에 한 스님이 앉아 있는 상이 있는데 위는 암벽 북쪽 부분에 새겨진 극락정토의 아미타 삼존이다.

▲ 본존여래상 부처바위 동면 아미타여래 삼존의 본존상이다. 초생달같이 가늘게 휘어진 긴 눈썹, 갸름한 코, 가늘게 뜬 눈의 윗시울은 곡선으로 그어졌고 아랫시울은 직선으로 그어져 눈가에 화사한 웃음을 지니게 하였다.

▲ 협시보살 부처바위 동면 아미타 삼존의 협시보살로 왼쪽에 앉은 관세음보살이다. 도드라져야 할 뺨을 반대로 파 내어 광선에 의해 돋아 나와 보이게끔 하였다.

▲ 사자 불국정토를 지키는 성스러운 짐승인 사자는 부처바위 북면에 새겨졌는데, 위는 입을 벌리고 오른발로 힘차게 땅을 디딘 동쪽 사자이다. 아래는 서쪽 사자로, 입을 다물고 오른발을 들어 올리고 있는데 꼬리가 매우 복잡하다. 서쪽 사자는 목에 긴 털이 많은 것으로 보아 숫사자로 여겨지고 동쪽 사자는 암사자로 여겨진다.

▲ 부처바위 비천상 아름다운 천녀들이 하늘을 날면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꽃을 뿌리는 모습은 부처님의 정토를 찬미하는 것이다.

▲ 스님상 향을 공양하는 스님의 모습으로, 부처바위 동쪽 바위 면의 왼쪽 아래 아미타삼존을 맞이하는 경건함을 보여 준다.

▲ 탑골 삼층 석탑 이곳이 화엄불국이라는 것을 알리려는 듯, 가장 높은 언덕에 삼층석탑이 등대처럼 서 있다. 이 탑으로 인해 부처바위가 선 계곡을 탑골이라 부른다.

▲ 탑재들 삼층 석탑 일대에는 많은 탑이 있었다. 그 석재들을 모아 쌓아 놓은 탑이다. 탑 아래 돌난간, 기둥돌도 있다.

▲ 칠불암 가파른 산비탈을 평지로 만들기 위해서 동쪽과 북쪽으로 높이 4미터 가량 되는 돌축대를 쌓아 불단을 만들었다. 이 위에 사방불을 모셔두었는데, 1.74미터의 간격을 두고 병풍바위에 삼존대불이 새겨져 있다. 이 삼존불과 사방불을 합치면 모두 칠불이 되는데, 이곳에는 분명 신라시대에 큰 절이 있었겠지만 이제는 절 이름조차 알 길이 없어 칠불암이라 부르고 있다.

▲ 칠불암 사방불 약사여래상 삼존대불 앞에 사각형 바위를 세워 면마다 부처를 새겨 사방불을 나타내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불상이 동방 약사여래상이다.

▲ 보생여래상 칠불암 사방불 남면에 새겨진 남방 환희세계의 보생여래상이다. 옷자락이 연화 대좌를 덮고 있는 것은 이 불상들이 삼국시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 칠불암 일광삼존불 하나의 광배에 삼존이 나타난 불상을 일광삼존(一光三尊)이라 한다. 금동불에서 주로 보이던 이러한 형식의 불상은 7세기 중엽부터는 마애불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 중 선도산, 벽도산, 칠불암 삼존불 들이 대표적인 마애 일광삼존불이다.

▲ 칠불암 일광삼존불 본존여래 두 겹으로 핀 넓은 연꽃 위에 결가부좌하여 당당한 자세다. 넓은 어깨는 위엄 있게 펴고 눈초리가 조금 치켜오른 두 눈은 먼 앞을 내다보며 촉지항마인을 하여 마귀의 항복을 받는 성도(成道)하시는 순간의 모습이다. 이 부처님의 기상에는 삿된 것은 절대로 용서치 않을 엄격한 위엄이 넘치고 있다.

아래는 이 불상의 얼굴로 반달 같은 눈썹, 약간 치켜진 눈, 굳게 다문 입은 부처님의 위엄을 더욱 강조한다.

▲ 칠불암 일광삼존불 우협시보살 본존 대좌의 복련꽃과 같은 연꽃 대좌 위에 서서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정병을 들었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대어 가슴에 들고 있다. 물병을 든 것은 괴로운 사람을 구하겠다는 약속이고 손가락을 가슴에 댄 것은 중생에게 설법하는 모습이다.

▲ 칠불암 일광삼존불 좌협시보살 큰 복련꽃 대좌에 서서 오른손은 보상연화를 들어 가슴에 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천의 자락을 살며시 들고 있다. 연꽃을 든 것은 흙탕물 속에서도 오염되지 않는 연꽃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세상을 제도하겠다는 이 보살의 약속이다.

▲ 신선암 마애보살 유희좌상 결가부좌한 자세에서 한 발을 내려 놓고 편안히 앉은 자세를 유희좌라 한다. 이 보살상은 이런 자세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다. 지금 이곳에 신선암이라는 암자가 있어 신선암 보살상이라 부르고 있지만 원래는 칠불암에 예속되었던 불상이었을 것이다. 부드럽고 화려한 조각 솜씨로 보아서 8세기 후반 작품일 것으로 추정된다.

▲ 칠불암 탑재들 칠불암에는 몇 개의 석탑이 있었다. 흩어진 탑재를 쌓아 놓은 부근에 토막난 장대석도 보인다.

▲ 칠불암 석등대석 정사각형 위에 직선형의 연꽃이 새겨진 석등대석도 통일신라 초기의 모습을 보여 준다.

▲ 용장사 탑 계곡에서 약 200미터나 되는 높은 바위산을 하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상층 기단을 쌓아 옥신과 옥개를 얹어 3층탑을 쌓았다.

용장사

                     김시습(金時習 : 1435~1493)

용장골 깊어 오가는 사람 없네
보슬비에 신우대는 여울가에 움돋고
빗긴 바람은 들매화 희롱하는데
작은 창가에 사슴 함께 잠들었네
의자에 먼지가 재처럼 깔렸는데
깰 줄 모르네 억새 처마 밑에서
들꽃은 떨어지고 또 피는데


▲ 용장사 삼륜대좌불 북 모양으로 생긴 기둥돌 세 개와 쟁반 모양으로 된 둘글고 넓은 반석을 사이사이 서로 바꾸어 3층으로 쌓은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부처를 모셔 놓았다.

▲ 용장사 마애 석가여래 좌상 용장사의 삼륜대좌불 동쪽에는 높이 5.5미터, 나비 3.6미터 되는 깎아 다듬어 놓은 듯한 절벽 바위 면이 남쪽으로 향하여 있다. 이 바위 벽면에 부처님을 새겼는데 넓게 핀 연꽃 위에 촉지항마인상을 하고 결가부좌한 석가여래상이다. 아래는 여래상의 정면 부분으로 반달 같은 눈썹과 긴 코, 굳게 다문 입 등에서 시대적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 배리 삼존불 경주에서 남산 서쪽 기슭으로 5킬로미터쯤 가면 선방사(禪房寺) 터에 삼존 석불이 있다. 이 불상들은 넘어져 있던 것을 1923년에 다시 세워 놓은 것이다.

▲ 배리 삼존불 본존여래상 이 불상의 표정에는 부처라는 위엄도 없고 거룩한 자비도 느낄 수 없다. 우리 겨레의 아름다운 심성이 드러나 정감이 넘친다.

▲ 배리 삼존불 협시보살 위는 좌협시보살로 사랑의 화신의 관세음보살상이다. 네모난 바위 위에 서서 오른손은 설법인으로 가슴에 들고 왼손은 아래로 드리운 채 정병을 쥐고 있다. 아래는 우협시보살로 이중으로 된 연꽃 위에 선 대세지보살상이다. 오른손으로 영락 자락을 붙잡고 왼손으로는 연꽃을 든 화사한 미소를 지닌 상이다.

▲ 냉골 마애 석가여래상 냉골 산등성이에 높이, 나비 모두 10미터쯤 되는 절벽이 서 있다. 넓은 암벽은 중앙에 금이 갔는데 그 금을 대좌로 삼고 여래 좌상이 새겨져 있다. 몸체는 선각으로 나타냈는데 얼굴만은 돋을 새김으로 했다. 코는 길며 입술은 두껍고 커서 균형잡힌 얼굴이라 할 수 없지만 소박한 얼굴에 위엄이 있다.

▲ 냉골 아미타여래 좌상 냉골에 있는 이 부처님은 바위등성이 위에 면마다 안상을 새긴 8각 중대석을 놓고 그 위에 꽃잎마다 보상화를 장식한 화려한 대좌에 앉아 계신다. 그러나 10여 년 전에 깨어진 얼굴을 수리하느라 시멘트를 발라 놓은 것이 오히려 추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 광배편 위의 불상을 황홀한 세계로 보여 주는 것은 뒤에 세웠던 광배였을 것이다. 화려한 그 조각이다.

 ▲ 부엉골 여래 좌상 부엉골 부엉드미 맞은편에 석양이면 금빛으로 빛나는 바위가 있다. 그 빛나는 부분에 여래 좌상을 선각으로 나타냈으니 바위 속에 금빛 부처님이 계시다는 우리 조상들의 신앙이다.

원왕생가

                                   광덕의 처

달님이시여 이제
서방까지 가시어서
무량수 부처님 앞에
말씀 이르시다가 사뢰어 주소서.
다짐 깊으신 부처님께 우러러
두 손 모두옵고
원왕생 원왕생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음을
사뢰어 주소서.
아으! 이몸 버려두고
사십팔 대원이 이룩될까 저어라.

▲ 냉골 관세음보살상 이 불상은 약간 남쪽으로 치우친 서향으로 서 있는데 정면으로 강정산이 보인다. 이 산의 밑으로 흐르는 기린내가 방향을 바꾸어 보살상을 향해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보인다. 태양이 서쪽 하늘을 물들일 때, 그 노을이 강물에 반사되어 관세음보살상의 전면에 비치면 서방정토를 바라보는 얼굴은 상기되어 화기에 찬다.

▲ 냉골 선각 여래상








posted by 황영찬
2011. 8. 31. 10:12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092 워런버핏 이야기

앤 재닛 존슨 지음 | 권오열 옮김
2010, 명진출판



시흥시대야도서관
SB038404

327.8099
버898존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004

투자가를 꿈꾸는 세계 청소년의 롤모델

수의 비밀에서
부의 비밀을 알아낸
워런 버핏의
도전적 인생


우리 아이들에게 '부의 원리'를 일깨워주는 책!
자본주의의 꽃, '투자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의 필독서!


부를 만든다는 것은 자신의 지력, 창의력, 그리고
인내력과의 싸움임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준다.


여러분은 자신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지 예측할 수 있나요? 그건 아무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버핏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돈벌이에 관심이 많았지만 세계 최고 부자가 되리라는 것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버핏은 멋지고 위대한 지금의 워런 버핏이 아닌, 돈은 많으나 인간적인 매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 차이는 삶에 대한 자신의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는 태도입니다. 버핏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지력, 창의력, 그리고 인내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뜻이라고요. 먼 훗날 여러분도 버핏처럼 그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길 바랍니다.
투자가가 되어 부를 만들어보겠다는 여러분의 원대한 꿈을 응원합니다. 부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온 워런 버핏의 존재가 앞으로 여러분들이 꿈을 이뤄가는 데 큰 자극이 되어줄 것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의 주인공

워런 버핏 Warren Buffett
진정한 부자를 꿈꾸는 세계 청소년들의 롤모델.
1930년 미국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숫자놀이를 좋아했고 돈의 세계에 관심이 많아 중학교 때부터 '서른다섯 살에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부자의 꿈을 갖기 시작했다. 모두가 인정하는 부지런함과 열정으로 신문배달, 핀볼게임기 사업 등의 돈벌이와 학업을 병행하며 자신이 모은 돈으로 직접 주식투자도 하는 등 특별한 성장과정을 보냈다. 성적이 떨어지면 아버지의 통제가 들어왔기 때문에 자유로운 생활을 위해 성적관리 또한 열심히 했다.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가치투자의 대가인 벤저민 그레이엄 문하에서 공부해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기업의 겉모습과 수치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남다른 통찰력을 갖춘 그는 고향 오마하로 돌아와 '버핏 투자조합'을 설립한 이후 본격적인 전문 투자가로서의 일생을 살았다. 원래 섬유회사였던 버크셔 해서웨이를 사들여 점차 거대한 투자기업으로 변모시켰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지주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으로, 미국 기업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기업들에 투자하는 '20세기 100년 동안 가장 탁월한 투자가'이며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큰손'이란 명성을 지니고 있다. 2006년에는 자신의 재산을 빌 게이츠가 운영하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여 또 한 번 큰 화제가 되었다. 그 기부의 규모는 역사상 최고 수준이었다.
진정한 부자 워런 버핏은 2008년, 빌 게이츠를 제치고 명실공히 세계 최고 부자의 자리에 등극했다.


이 책의 지은이

앤 재닛 존슨 Anne Janette Johnson
오랜 기간 방송 작가로 활동했다. 스포츠 프로그램 작가였던 경력을 살려 청소년을 위한 스포츠 서적을 다수 저술했으며, 경제와 기업, 인물에 관련된 프로그램 작가 경력을 살려 청소년용 <세계 비즈니스 리더> 시리즈의 취재와 집필 작업을 진행했다.

|차례|

프롤로그 '부'를 만들며 사는 일은 대단히 매력적인 인생입니다

Part Ⅰ 돈의 세계가 신기한 아이

1장 나는 숫자의 세계가 너무 재미있어

         할아버지 가게는 정말 신기해
         내게 가장 재미있는 놀이기구는 스톱워치
         내가 병뚜껑을 왜 모으는지 다들 모르지?
         재산 목록 제1호는 동전교환기
         내 책보다 아버지 책이 더 재미있는걸
         월 스트리트의 그 아저씨들처럼 될 거야
         나는 서른다섯 살에 백만장자가 될 거야
         첫 투자에서 배운 세 가지 교훈

2장 학교보다 사업이 더 재미있는 걸 어떡해

         오마하로 돌아가고 싶어
         할아버지 댁으로 갈래
         어른이 도움을 청하는 어린 사업가
         신문배달도 사업적으로
         나도 여자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아
         사교댄스를 못 추니 여자아이들과 친해지기 힘들어
         내가 가출한 이유는 '허쉬 초콜릿' 공장에 가보고 싶어서야
         밖에 나가보니 생각과는 많이 달라

3장 돈은 잘 모으지만, 옷은 잘 못 입는 소년

         돈 버는 일이 재미있어
         신문배달을 통해 일의 원칙을 배우다
         비행을 그만둔 건 신문배달 때문이야
         이유 없는 비행들
         난 이미 특별한 아이가 되어버렸어
         오만하게 보였더니 친구가 없어졌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모은 재산이 6,000달러였어
         고등학생 사업가의 놀라운 성과

Part Ⅱ 돈의 세계를 제대로 알려면 공부가 필요해

4장 공부에 눈을 뜨다

          아버지의 성화로 대학에 가다
          와튼 스쿨은 역시 내 체질이 아냐
          네브래스카 경영대에 편입해 졸업장을 받다
          9,800달러의 잠재력
          경제학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어
          거장의 제자가 되고 싶어
          그레이엄 교수의 수제자가 되다
          거장에게서 배운 것

5장 학교 밖 세상에 다시 도전하다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투자 원리' 강의를 하다
          실력으로 나이의 편견을 극복하다
          이해심 많은 여자친구, 수잔 톰슨과 결혼하다
          결혼을 했으니 더 열심히 살 거야
          그레이엄 투자회사에서 일하기로 하다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다

Part Ⅲ 진정한 부자로 향하는 길

6장 스물여섯, 고향 오마하로 완전히 돌아오다

          '오마하의 투자가'로 새롭게 시작하다
          멋진 내 집을 장만했어
          평생을 함께할 사업 파트너 찰리 멍거를 만나다
          찰리 멍거와의 만남으로 더 좋은 투자 성적을 내다
          백만장자의 꿈을 3년이나 앞당기다
          기업을 사는 새로운 방식의 투자 | 직관을 믿고 밀어붙이다

7장 부의 비밀은 알아냈으나 삶의 균형이 흔들리다

          부의 비밀을 알아내다
          시장엔 거품이 생기기 시작하고 | 대세를 따르지 않고 자신이 깨달은 '부의 비밀'을 따라가
          다 | 투자자보다는 소비자라는 생각으로 시장을 관찰하다
          새로운 친구와 새로운 사업을 만나다
          망해가는 보험회사 게이코를 살려내다 | 패배인가 싶었지만 결국은 승리를 거머쥐고
          혼자만의 몰입이 삶의 균형을 깨트리다
          아내 수잔 버핏의 독립선언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별명을 얻다
          '부의 비밀'이 존재하는 곳

8장 진정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다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 부자가 되다
          '콜라 사랑'이 주식에 대한 애정으로 | '숨은 보석'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왔어
          스물다섯의 나이 차이를 극복한 빌 게이츠와의 우정
          의외의 찰떡궁합
          20세기 100년 동안 가장 탁월한 투자가
          머니 게임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을 원해

에필로그 돈을 정말 사랑한 사람, 그 사랑을 세상에 다시 돌려주다
워런 버핏이 걸어온 길

▲ 워렌 버핏의 가족들. 왼쪽 상단이 버핏, 그 옆으로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아래 왼쪽이 누나, 그 옆이 어머니다.

저으로

















posted by 황영찬
2011. 8. 30. 10:33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091 경주 남산(하나)

글 / 윤경렬●사진 / 김구석, 윤열수
1995,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85

082
빛12ㄷ 45

빛깔있는 책들 45


윤경렬------------------------------------------------------------------------

함북 주을 출생으로, 제2회 동아 햇님 어린이보호 부문 수상과 제11회 외솔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불교 동화집」「경주 남산 고적 순례」「신라이야기」「신라의 아름다움」등이 있다.

김구석------------------------------------------------------------------------

'부처님 마을'의 사무국장이며 경주시 월성군청에 근무중이다.

윤열수------------------------------------------------------------------------

동국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동대학 미술과 강사이며 삼성출판사 박물관 학예연구원이다. 저서로 「한국의 호랑이」「통도사의 불화」가 있다.

|차례|

사진으로 보는 경주 남산(하나)
역사의 산
불상들의 연대
크고 작은 불상들
바위 속에 숨어 계신 부처님
자연과 더불어 숨쉬는 소박한 석탑

▲ 지은이 윤경렬


▲ 남산의 마애좌불 경주 남산은 옛 신라의 도읍이던 서라벌 남쪽에 솟아 있는 산으로, 금오봉과 고위봉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들을 일컫는다. 이 산에는 아득한 석기시대 유적에서부터 신라 건국 설화에 나타나는 나정 그리고 신라의 종말을 맞았던 포석정 등이 자리하고 있는 신라 역사의 산이기도 하다.

▲ 나정 하늘에서 하얀 말이 밝은 알을 안고 우물가에 내려왔다. 그 알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신비의 우물 자리이다.

▲ 포석정 유체역학(流體力學)을 이용하여 술잔이 돌 홈을 따라 흐르게 한 풍류의 쉼터이기도 하지만 신라의 마지막을 함께 한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楓葉鷄林己改柯 甄萱不是滅新羅
鮑石自召宮兵伐 到此君神無計何

계림에 누렇게 단풍이 들어
견훤이 신라를 망쳤단 말인가?
포석정이 도둑을 불러들이어,
망해 놓은 일을 군신인들 어찌하랴.

- 조식(曺植 : 1501~1572)

기원, 실제 두 절이 동서로 있는데
그 가운데 포석정이 있네.
소나무 잣나무 서로 얽혀 무성한데
풀넝쿨은 온통 골짜기를 덮었네.
머리 돌려 보는 곳마다
진달래 가득 피어 차고 넘네.
실안개는 구름인 양
자욱이 빗겨 있는데.

祇園實際兮 二寺東西
松柏相倚兮 蘿洞中
回首一望兮 塢花滿
細霧輕雲兮 並朦朧

- 최광유(崔匡裕 : 신라 시인) 「포석정 주악사(鮑石亭 奏樂詞)」

▲ 남산성 직사각형으로 다듬은 돌로 쌓아 올린 남산성은 둘레가 약 4킬로미터에 이른다. 진평왕 13년(591년), 전국에서 차출된 장정들은 남산 신성비를 세우고 공사를 하였다.

▲ 돌축대 양조암 계곡에 들어서면 만나는 첫 절터로, 2중으로 쌓은 돌축대가 허물어져 있다. 깨어진 석조물들이 돌 사이에 섞여 있다.

▲ 불상과 석재 남산의 여러 절터에는 파괴된 법당이 제법 많이 보이는데, 넘어진 불신도 보인다.

▲ 장창골 삼존불 장창골 정상에서 발견된 이 불상들은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삼국시대의 불상으로 첫 사진의 가운데 본존불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의상(倚像)이다.

▲ 왕정골 여래상 오랫동안 식혜골 발견 여래상이라고 전해 왔는데, 고(故) 최남주 선생의 증언으로 왕정골 여래라고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삿갓골 여래상 지금은 파손이 심하여 허리의 윗부분만 남아 있으나 세련되고 풍만한 조각 솜씨에서 신라 조각의 황금 시대를 본다.

▲ 보리사 여래 좌상 남산에 있는 여래 좌상 중에 형태가 가장 완벽히 남아 있는 상이다.

▲ 배광의 뒷면에 얇은 돋을새김으로 약사여래 좌상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약사여래가 동방세계의 부처인 까닭에 보리사 여래 좌상은 서방정토의 아미타여래상일지도 모른다.

▲ 보리사 여래 좌상의 얼굴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정든 얼굴이다.

▲ 보리사 마애 여래 좌상 등신대도 못 되는 이 작은 부처님은 다소곳이 숙인 돌에 새겨져 있어 비를 맞지 않는다.

▲ 보리사 마애 여래 좌상의 얼굴 양쪽 뺨 가득히 미소를 간직한 이 부처는 그 옛날 17만 8936호 서라벌 시민들의 안전을 굽어살피고 계셨던 분이기도 하다.

▲ 약수골 마애불 약수골에는 높은 바위들이 고층 건물처럼 솟아 있다. 그 중 한 바위에 여래상이 새겨져 있는데 약 10미터의 높이로 남산에서 제일 큰 불상이다.
아래는 이 마애대불을 위에서 본 것으로서 머리를 연결하였던 자리와 두 귀와 두광이 놓였던 자리가 남아 있다.

▲ 윤을골 마애불 보통 유느리골 부처님이라 부르는데 남향으로 2체, 서향으로 1체의 부처님이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있다.(위)
서향으로 앉은 여래상은 왼손에 여의주를 들고 결가부좌하였는데 신광과 두광에 4체의 화불이 있다. 서향으로 앉았지만 남방 환희세계의 보생여래로 생각된다.(아래)

▲ 게눈바위 경주에서 남산성을 쳐다보면 둥실한 봉우리에 두 개의 눈이 잇어 게눈바위(蟹目嶺)라 부른다. 사진은 온른쪽 눈으로 여겨지는 바위인데 큰 알터가 있다.

▲ 부부바위 냉골 마애좌불 곁에 있다. 오래 떨어져 있던 부부가 상봉하는 듯 감격스럽게 보인다.

▲ 상사바위 사랑에 병든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상사바위의 남자 모습이다.

▲ 큰 지바위 아래에 작은 지바위가 있고 위에 큰 지바위가 있어 이 계곡을 지바위골이라 한다. 부근에 절터가 많으며, 겨울에도 환자들이 이 바위에서 쾌유를 빈다.

▲ 상사암 이 험상궂은 바위더미는 아득한 옛날부터 사랑에 병든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던 바위로 지금도 감실 안은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촛불에 그을려 있다.

▲ 상사암 아래의 기도처

▲ 여래 입상 상사암의 감실 밑에 선 여래상으로, 오랫동안 토속신앙과 불교가 밀착된 채 신앙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 산신당 이 바위는 자손을 점지해 주는 바위로 신앙되어 왔다. 조선시대에 어느 분이 감사의 뜻으로 새겨 놓은 산신당(産神堂) 명문이 있다.

▲ 감실 여래상 석수장이가 돌을 쪼아 부처님을 만든 것이 아니고 돌 속에 숨어 계신 부처님을 찾고 있다. 다소곳이 머리 숙여 감실 안에 앉은 여래상에서 신라인의 얼굴을 본다.

▲ 선각 아미타 삼존불 석가 삼존은 여래가 앉으시고 협시보살이 서 계신 데 비해 이곳에서는 여래가 서 계시고 협시보살이 앉아 계신다.

▲ 마애 대좌불 남산에서 제일 큰 좌불인 이 마애불은 높이 5.2미터로, 얼굴은 입체에 가까울 정도로 돋을 새김한 반면, 몸체는 매우 밋밋한 음각선으로 처리하였다. 의습선이나 승기지 등이 드러나는 세밀한 묘사를 하였다. 아래는 불신의 부분을 확대한 것이다.

▲ 냉골 마애 대좌불 머리

▲ 냉골 약사여래상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석조상으로, 두광과 신광에 화불이 표현되었고 화염문이 주위를 감싸고 있다.

▲ 냉골 여래 좌상 냉골 어귀 길 옆에 있다. 부근에 묻혔던 것을 근래에 파 낸 것인데 머리와 손이 떨어져 나가 정확한 명칭을 말하기는 어렵다.(위)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왼쪽 어깨의 가사끈과 허리에 맨 군삼끈이 매듭지어져 있어 주목을 받는 상이다.

▲ 양피사 쌍탑 보통 남산리 석탑이라 불리우는 탑으로 동, 서탑의 양식이 달라 변화있는 조화를 즐기려는 우리 겨레의 미감을 드러낸다.

▲ 동탑 분황사 전탑을 본받은 모전석탑(模전石塔)으로 옥개, 낙수면에 계단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기단돌의 이음자리가 서로 어긋나 있어 안정감을 준다.

▲ 서탑 목탑과 전탑을 절충한 전형적인 신라 탑이다. 상층 기단에 팔부신중을 새긴 것은 부처님 사리를 하늘 위에 모시려는 마음이었다.

▲ 염불사 서탑 염불 스님이 살았다는 염불사는 양피사 곁에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터에는 허물어진 쌍탑만 남아 있다.

▲ 창림사 삼층 석탑 남산에서 규모가 제일 큰 탑이다. 이 탑에도 상층 기단에 팔부신중이 새겨져 있었는데 지금은 넷밖에 없다.

▲ 아수라상 창림사 탑의 기단에 새겨진 지옥을 대표하는 아수라상은 얼굴이 셋, 팔이 여덟으로 여덟 개의 팔에 무기가 들려 있다.

▲ 귀부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로 세웠다는 창림사 비석의 귀부(龜趺)이다. 이 시대에는 두 마리의 거북으로 비석을 받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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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 감성사진을 위한 구도와 노출

조옥희, 최유리 지음
2008, 길벗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25926

662
조65ㄱ


꿈을 찍는 사진관 ⑤

독특한 감성사진 촬영을 위한 구도와 노출 선택 65가지 방법

The Photographer's Guide To Composition

The Photographer's Guide To Exposure


트렌디한 감성을 사진으로 표현한다!
구도와 노출을 완성하는 사진 촬영과 포토샵 후보정
분야별 감성사진 촬영 노하우와 내 스타일대로 즐기는 화면 스타일링

 
지은이

조옥희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졸업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학과 광고사진 수료
스튜디오다홍 대표

전시회
2008년 'EPISODE'(Gate gallary)

최유리

상명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학과 순수사진 재학중

전시회
2007년 '그녀의 방', 한집 한그림(GreemZip)
2008년 'Vacancy', 르 쌩텍스(Le Saint-Ex)
2008년 '데릭 저먼의 정원'(서울아트시네마) 외 단체전 다수

홈페이지
www.choiyuri.com
Contents

Part 01_ 나는 왜 사진에 미치는가

01장 | 사진이란

1 왜 사진을 찍는가 - 수수께기의 답은 내게 있다
2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은
3 사진 촬영의 10단계

Part 02_ 구도로 배우는 DSLR 촬영과 후보정

02장 | 초보자를 위한 기본 구도

1 점 · 선 · 면의 구도
2 앵글에 따른 구도
3 원근감을 살린 구도
4 포맷에 따른 구도
5 균형과 분할에 의한 구도
6 리듬감을 주는 구도
7 색상 구성에 따른 구도
8 부분으로 전체를 보여주는 구도
9 프레임 속 프레임 구도
10 주제를 명확히 드러내주는 구도
11 배경으로 건축사진을 완성하는 구도
12 배경과의 조화를 염두에 둔 구도
13 분위기를 선택하는 구도
14 화면을 스타일링 하는 구도

03장 | 구도를 완성하는 후보정

1 구도를 결정하는 최종 단계 - 크롭
2 수직수평 바로잡기 - Edit → Transform → Distort
3 색상 구성에 따른 구도 강조하기 - 커브
4 레이어 모드 이용해 구도 강화하기
5 비네팅 효과로 주제 강조하기(Photoshop CS3 이상)

Part 03_ 노출로 배우는 DSLR 촬영과 후보정

04장 | 노출의 기본

1 노출과 조리개
2 노출과 셔터스피드
3 심도
4 적정노출
5 빛의 방향을 읽자
6 빛의 비율(조명비)에 따른 노출
7 피사체에 따른 노출
8 시간의 흐름이 기록되는 노출 - 장시간 노출
9 건축사진의 비밀
10 플래시를 이용한 노출
11 색온도와 화이트 밸런스 기본 개념
12 날씨의 변화와 색온도
13 실내조명과 색온도

05장 | 노출을 완성하는 후보정

1 노출을 최종적으로 보정하는 도구 - 커브
2 레이어 마스크 이용해 노출 보정하기
3 레이어 마스크와 그레이디언트 기능으로 하늘 만들기
4 창밖의 풍경과 건물의 디테일 합성하기
5 파노라마 사진 만들기 - Photomerge
6 인물사진 수정하기

Part 04_ 구도와 노출로 완성하는 DSLR 촬영

06 | 인물사진

1 여자는 아름답다 - 인물사진의 기본 요소
2 삶의 풍경 - 인물
3 공간은 인물의 새로운 옷
4 패션 사진 따라잡기 - 실내 편
5 패션 사진 따라잡기 - 실외 편

07장 | 풍경사진

1 하늘의 얼굴
2 바다를 사랑하는 이유
3 건물 안 풍경
4 색다른 풍경

08장 | 정물사진

1 맛과 향이 느껴지는 음식사진
2 빈티지 소품
3 꽃보다 아름다운 꽃사진
4 작은 풍경
5 시장에서 만나는 스타일리스트

Part 05_ 내 스타일 대로 사진 찍기

09장 | 기본에 충실하자

1 기본에 충실하자 - 구도 연습
2 기본에 충실하자 - 노출 연습
3 기본에 충실하자 - 컨셉 있는 인생

10장 | 일상의 도구로 사진의 경계를 허물다

1 인공조명을 만들자 - 손전등
2 이미지를 확장하자 - 똑딱이 카메라
3 카메라의 개념을 넘어서자 - 스캐너

11장 | 무엇이 인물사진을 빛나게 하는가

1 공간의 중요성

12장 | 사진으로 수다를 떨다

1 사람이 풍경이 되는 사진
2 여행을 꿈꾸게 하는 사진
3 놀면서 만드는 사진

정하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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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8. 23. 22:05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089 옛절터

글, 사진●윤덕향
1995,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84

082
빛12ㄷ 44


빛깔있는 책들 44

윤덕향------------------------------------------------------------------------

서울대학교 고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화재연구소에서 근무하였다. 지금은 전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교수로 있다.

|차례|

시작하는 글
중요한 절터
   황룡사지
   미륵사지
   정림사지
   감은사지
   만복사지
   미륵리 사지
우리나라 가람 배치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와 조선시대
절터 조사의 보람
절터 일람


황룡사지

▲ 황룡사 금당지 「삼국유사」에 기록된 장육존상이 모셔졌을 것으로 보이는 금당지에 대한 조사에서는 기단의 형식이 2중기단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 서금당지 황룡사의 서쪽 금당은 가운데의 금당에 비하여 규모가 작고 파괴가 심하였다. 기단의 형식은 중앙 금당과 동일한 2중기단이었다.

▲ 기단 내부 대좌 중앙에 있는 큰 대좌 옆쪽으로 작은 대좌가 자리하고 있어서 주존불 옆에 작은 불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좌석 윗면의 홈에 불상의 촉을 끼움으로써 불상을 안정되게 모시는 기능을 하도록 하였다.

▲ 강당지 강당은 일반적으로 사원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건물이다. 황룡사지의 경우 강단의 기단 규모는 52.64X21.1미터 길이인 300여 평의 건물로 강당에 모였던 사람의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 목탑지 백제 사람인 아비지가 세웠다는 목탑은 높이 225자에 이르는 것이다. 이같은 높은 건물을 지탱하기 위하여 목탑지의 하부에는 4미터에 가까운 깊이에서부터 주춧돌을 놓고 있다.

▲ 목탑지 심초석 심초석은 길이 4.35미터, 폭 3미터의 장타원형을 이루는 화강암으로 30여 톤의 무게를 가진 것이었다. 안에는 사리를 모시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사진에 보이는 것은 이 심초석 위에 놓여 있는 돌이다.

▲ 종루지 황룡사에는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보다 더 큰 종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종루지에 걸어두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 경루지 종루와 함께 3차 가람에서부터 가람의 중심곽에 들어서게 된 건물로 황룡사에 큰 종이 만들어진 854년을 전후한 시기에 건축된 건물로 보인다.

▲ 중문지 절의 중심곽인 탑과 금당이 있는 구역에 들어오기 위해서 지나는 문은 중문이 된다. 황룡사의 중문은 창건된 이래 3차에 걸쳐 고쳐 지은 것이다.

▲ 발굴조사 광경 황룡사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1976년부터 실시되고 있다. 이 조사를 통하여 가람의 배치와 변화 과정 등이 밝혀지고 규모가 확인됨으로써 동양 최대의 가람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 곡옥 심초석 하부와 주변에서 출토된 2,890여 점의 유리 구술중 수정, 유리, 마노의 곡옥도 있었다.


미륵사지

▲ 미륵사지 서탑 미륵사에는 중앙에 목탑이 자리하고 그 동서에 각각 1기씩의 석탑이 있었다. 현재는 서쪽의 석탑만이 남아 있는데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한 가장 초기의 것으로 보인다.

▲ 동금당지 전경 미륵사지의 지하 유구를 보여주는 동금당지의 바닥은 불로 구워져 있엇고 높은 초석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금당지의 앞쪽에는 면석이 보이며 앞에 있는 사각의 동른 석등대석이다.

▲ 동금당지 기단 내부 금당지에는 높은 초석이 자리하고 있으며 건물의 네 모서리 부분에는 기단과의 사이에 일종의 환기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이 환기시설은 지하 공간을 유지하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 서금당지 지하 유구를 만들기 위하여 높은 초석의 윗면에 홈을 파서 옆으로 이어지는 긴 하방석을 놓고 그 위에 마루청을 깔았을 것으로 보이며 초석과 기단 사이는 마루청의 밑까지 흙으로 채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 중금당지 석등 목탑의 북변 계단지에서 석등 쪽으로 장대석을 깔았으며 탑과 금당 사이에 있는 석등의 하대석에는 백제 말기 양식의 연화문이 있다. 이 하대석의 북쪽에는 상대석이 엎어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 승방지 동원과 서원의 북회랑에는 북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건물지가 있다. 건물지 내부는 크게 4개처로 구획하였는데 각 구획마다 2개씩의 방이 있다. 

▲ 강당지 미륵사의 강당지와 승방지의 북면 기단이 있는 쪽에는 동서로 긴 석축이 자리하고 있다.

▲ 녹유 서까래 기와 일곱 개의 연꽃마다 인동자엽이 표현되었고, 기와의 중심에는 네모진 구멍이 있어서 서까래에 못으로 고정할 수 있도록 되었다.

정림사지

▲ 정림사지 전경 전형적인 1탑식 가람 배치 형태의 절터로 알려진 정림사지의 전경. 좌측에서부터 중문, 탑, 금당, 강당이 있고, 그것들을 둘러싸는 회랑이 정비되어 있다.

▲ 발굴조사 광경 1980년에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유적의 보존 상태가 극히 불량하여 조사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신중하고 정밀한 조사를 통하여 절터의 성격과 규모에 대한 많은 것을 밝혀낼 수가 있었다.

▲ 5층석탑. 한때 평제탑이라고도 불렸던 백제의 석탑으로 낮은 기단과, 얇으면서 추녀 끝이 위로 올라가고 있는 지붕돌 등 백제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림사의 창건과 더불어 만들어진 것으로 실제 연대에 있어서 미륵사지 석탑보다도 일찍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

▲ 금당지 정림사는 백제가 멸망할 당시에 상당한 파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유구의 잔존 상태가 극히 불량하였는데 금당지에서는 2중기단이었음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도용 흙으로 빚어 만든 인형과 같은 것으로 불상의 일종이라 생각된다. 이 도용의 표면에 각종의 색을 칠하여 장식하였는데, 온화한 백제의 미소가 남아 있다.

감은사지

▲ 감은사지 전경 절터에 대한 것으로는 1959년에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 금당지 지하 유구 감은사는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의지가 담겨 잇는 곳이다. 용으로 변한 문무왕이 쉴 수 있도록, 홈이 있는 주춧돌에 긴 돌을 끼우고 다시 돌을 가로질러 덮어 완성한 지하 유구를 설비하였다.

▲ 석축 감은사지 남쪽에 있는 이 석축은 부두의 배를 대는 시설과 비슷하게 보인다. 따라서 동해로부터 배를 타고 이 절에 드나들 수 있게 마련한 것으로 생각된다.

▲ 용혈(龍穴) 금당 밑의 지하 유구에 용이 드나드는 통로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 통로를 용혈이라고 한다. 사진은 용혈로 추정하는 것으로 미륵사의 금당에서와 같이 지하 유구를 지탱하는 환기시설의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용의 통로를 상징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 주종유구(鑄鐘遺構) 감은사지의 서편 건물지에서 노출된 유구로, 종을 만들던 곳으로 추정된다. 땅을 파고 그 중심에 둥글게 얇은 와전을 쌓고 흙을 발랐으며 매우 높은 온도로 구워진 흔적이 있다.

▲ 강당지 기단 외부 와편 노출 상태 강당지 기단 외부에 기와편이 노출되어 있는 상태로 지붕에 놓였던 기와가 그대로 떨어져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유구를 통하여 당시 기와를 놓는 방법과 주춧돌에서 처마가 얼마나 앞으로 나왔는가 등을 알 수 있다.

▲ 석재 절터를 발굴하다보면 용도를 알 수 없는 유물이 출토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길이가 긴 이 석재는 톱날무늬가 있는 중앙 부분에 태극무늬가 새겨져 있어 흥미롭다.

만복사지

▲ 만복사지 전경 남원시에 자리한 만복사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1979년부터 1985년까지 실시되었다.

▲ 북금당지와 목탑지

▲ 만복사지 5층 석탑 전라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제계 석탑의 양식이다. 단층의 기단이며 초층 탑신에 비해 2층에서는 탑신의 높이가 갑자기 감소되어 옥개석과의 조화를 잃고 있다.

미륵리 사지

▲ 미륵리 절터 전경 암굴사원 형태의 미륵리 절터는 기본적으로 탑과 금당을 일직선상에 배치하는 구도를 따르고 있다. 북쪽에서부터 탑, 석등, 석불이 자리하고 있다.

▲ 석불 둥근 테의 모자를 쓰고 있는 모양의 석불 주변에는 석축을 쌓은 형태의 구조물이 3면을 두르고 있다. 이것은 인공적인 석굴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이 안에 불상이 모셔졌다.

▲ 석등 석탑과 석불의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진 전형적인 석등이다.

▲ 석탑 일반적으로 탑이 금당의 남쪽에 자리하는 것과는 달리 불상의 위치와 함께 북쪽에 자리한 점이 미륵리 절터에서 특이한 점이다. 탑의 상륜부 일부가 결실되었다.

▲ 예산 사면석불 충남 예산의 사면석불은 백제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불의 주위에 건물을 짓고 예배를 드렸을 것이며 탑이나 석등 등이 없는 간단한 형태의 절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 굴불사지 사면석불 이차돈이 순교했을 때 목이 날아가 떨어졌다고 전해지는 곳에 백률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 산인 금강산의 기슭에 땅에서 부처가 나왔다는 굴불사의 사면석불이 자리하고 있다.

▲ 굴불사 건물지 석불의 주위에는 건물지가 있었는데 금당의 기능을 지녔던 것으로 추정된다. 굴불사지 조사에서는 금당지만이 확인되었는데 석불을 예배하는 장소였던 것 같다.

▲ 굴불사지 출토 종 이 종 안에 작은 종이 들어 있었다. 정상부에 우리나라 종의 특징을 갖춘 용통이 있으며 몸체에는 주악 천인상과 당좌가 교대로 배치되고 있다.

▲ 반자 대정(大正) 23년이라는 명문이 있어 고려 명종 13년(1183)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 죽죽리 절터 기단 전을 이용하여 기단을 쌓은 예는 극히 드문 일인데 여기서는 크고 넓적한 전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기단을 형성하였다.

▲ 미륵사지 당간지주 통일신라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지주 사이에는 깃대를 받치는 돌이 있으며, 두 지주의 안쪽에는 깃대를 지탱하기 위하여 버팀대를 끼우는 간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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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8. 23. 10:45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089 석불

글 / 진홍섭●사진 / 안장헌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83


082
빛12ㄷ 43


빛깔있는 책들 43

진홍섭------------------------------------------------------------------------

문학박사. 일본 메이지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동대학 박물관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이다.

안장헌------------------------------------------------------------------------

고려대학교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신구전문대 강사, 사진 예술가 협회 부회장으로 있다. 사진집으로 「석불」「국립공원」「석굴암」등이 있다.

|차례|

불상 조각의 재료
석불 조성의 배경
한국 석불의 형식
한국 석불의 양식 변천
한국 석불의 주안점

▲ 동화사 비로암 석조 비로사나불 좌상

▲ 부여 군수리사지 출토 석불 좌상

▲ 석굴암 본존상 8세기 중엽에 이르러 인도의 석굴을 재현한 본격적인 석굴이 경영되기에 이른다. 석굴암은 전방후원(前方後圓)의 굴실 평면으로 후원의 본굴 중앙에 여래상을 안치하고 주벽에 부조상과 감실을 설치하였다. 원굴 중앙에 봉안된 여래 좌상은 굴내의 모든 조상에 비해 수단 높은 아름다움이 표현된 걸작이다. 불신의 비례는 물론 근엄과 자비를 겸비한 불성이 유감없이 표출된 상호, 손끝 발끝에까지 세심한 손길이 미친 석공의 기술, 대좌와의 적절한 비례 등을 볼 때 신라 조각의 최고봉이며 한국 불교 조각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 석굴암 인왕상 비도(扉道)를 등지고 원굴 입구 좌우에 배치된 인왕상이다. 부조이지만 두드러진 근육의 표현이 석굴암 조각 중 가장 역동적인 면모를 보인다.

▲ 석굴암 인왕상 상반신은 나형(裸形)이며 오른손을 들어 주먹으로 치려 하는 분노상이다. 본존불을 중심으로 위의 인왕과 대치되는 위치에, 대치되는 자세로 있는 입을 다문 음(吽)형의 상이다.

▲ 석굴암 팔부중상 전실 좌우벽에는 팔부중상이 부조되었는데 위의 왼쪽부터 찬, 야차, 마후라가, 가루라이고 아래 왼쪽부터 아수라, 긴나라, 건달바, 용이다.

▲ 석굴암 사천왕산 비도(扉道)에 위치한 4구의 사천왕상 중 2구의 모습이다. 무인(武人)의 복장을 하고 악귀를 딛고 있다.

▲ 석굴암 문수보살상 연꽃무늬의 대좌 위에 서서 몸을 굴 안쪽으로 향하였고, 오른손으로 잔을 받든 자세이다. 보관의 곡선과 유려한 천의에서 부드러운 실재감이 돋보인다.

▲ 십일면관시음보살상 석굴 안의 다른 상들이 약간 측면인데 반해 이 상은 정면을 향한 것이 특징이다.

▲ 석굴암 제석천상 오른손엔 불자(拂子)를, 왼손엔 금강저를 들고 있다. 석굴암내의 다른 상과는 달리 두광이 계란을 거꾸로 세운 형태에 주위에는 연주를 두른 것이다. 이 제석천과 대치되는 위치에 범천이 자리하고 있다.

▲ 석굴암 제자상 석굴암의 조각은 각 상의 이름에 맞는 적절한 표현을 해서 성격 묘사에 성공하였다. 특히 제자상에서는 극히 간명한 선을 쓰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하였다.

▲ 석굴암 제자상 십대 제자 중 목련존자로 추정되는 상이다. 이국적인 용모를 강하게 드러내는 튀어나온 턱과 길고 큰 코, 깊숙이 패어져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게 하는 눈 등이 인물의 특징을 표현하는 데에 손색없이 처리되었다.

▲ 문경 사불산 사방불 진평왕 9년(587)에 사방에 부처를 조각한, 사면이 반듯한 돌이 붉은 비단에 싸여 하늘에서 홀연히 산 위에 떨어졌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그곳까지 가서 예배하고 그 바위 옆에 절을 짓고 대승사(大乘寺)라고 하였다는 사불산의 사방불로서 왕가의 원불(願佛)이다.

▲ 계유명 삼존천불비상 조성 연대는 백제가 나라를 잃은 직후인 신라 문무왕 13년(673)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국왕 대신과 칠세(七世) 부모를 위하여 제작했다는 점과 조각 양식 등을 고려해 볼 때, 백제의 유민들이 나라를 잃은 후 소원을 담아 제작한 것으로, 개인의 기원에 의하여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연화사 무인명(戊寅銘) 석불상 및 대좌의 앞면(위)과 뒷면

▲ 군위 석굴의 삼존상

▲ 봉화 출토 반가상 현재 경북대학교 박물관 소장으로 원형이 반가상(半跏像)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복원 높이는 약 2.5미터이며 국내에서 가장 크고 잘 만들어진 원각상 중의 하나이다.

▲ 삼화령 미륵삼존상의 본존불 이 불상은 원래 경주 남산 삼화령에 있었는데 지금은 국립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두 다리를 앞으로 가지런히 하여 의자에 걸터앉은 의상(倚像)은 원각상, 마애상을 막론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자세이다.

▲ 예산 화전리 사면불상 방주형 석재 사면에 불상이나 보살상을 조각한 형식을 사면불 또는 사방불이라 한다. 사면에 조각하는 불상은 경전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여래상을 독존으로 조각하기도 하지만 협시보살이나 여러 권속상을 동반하는 수도 있다. 예산 화전리 사면불은 납석계 암석의 남면에 여래 좌상 1구와 사면에 입상을 새긴 것이다.

▲ 영주 신암리 사면불 높이 약 3미터의 석재에 조각하였는데 남면의 삼존상을 제외하고는 박락과 마손이 심하여 윤곽만 남아 있다. 삼존상 모두에는 원형의 두광(頭光)이 있는데, 고식의 화염문이 있어 육조(六朝)시대 말기의 불상 양식을 보여 준다.

▲ 굴불사 사면불 서면에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하는 삼존 입상을 조각하였는데 중존의 머리는 별석으로 조각하고 좌우 보살도 별석으로 조각하였다.

▲ 경주 분황사 석탑 인왕상 석탑 감실(龕室) 좌우에 있는 인왕상은 모두 8구이다. 충분한 입체감과 의문의 양식 등으로 보아 선덕왕 3년(634)에 건립한 석탑과 동시작임이 분명하다.

▲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 아미타삼존불 칠불암이라는 명칭은 사방불의 네 부처와 뒤에 있는 암벽에 조각된 이 세 부처를 합해서 붙여진 것이다.

▲ 비암사 미륵반가 석상 정면에는 반가사유상 1구를 조각하고 그 밑에 향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공양상을 배치하였다. 양 측면과 뒷면에 모두 조각이 있다.

▲ 비암사 기축명상 정면 상단이 반원을 이루며 밑으로 내려올수록 폭이 넓어졌고 뒷면은 밖으로 만곡된 석재를 사용하여 정면에만 조각이 있다.

▲ 신선사 마애 불상군 경주 단석산에는 약 30미터의 대암석 4개가 기둥처럼 솟아 서쪽이 개방된 ㄷ자형을 이루었고, 위에는 기와를 입혔던 흔적이 있어 암석을 이용한 석굴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암석의 내면에는 높이 약 8미터의 본존을 중심으로 삼존 거상을 조각하였고, 별도로 반가상과 공양상을 포함하는 작은 상 7구와 명문이 새겨져 있다.

▲ 중원 미륵리 석굴 고려시대에 조영된 현존 석굴은 유례가 매우 적은데 이 석굴은 그 대표가 될 만하다. 석굴의 상반부는 결실되어 중앙의 석불 입상이 노불(露佛)로 되어 있으나 굴 안팎으로 초석이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위에는 목조 가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 석조 여래 입상 미륵리 석굴의 중심부에 세워진 여래상이다. 상의 전체는 입체감이 없는 석주형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머리의 조각은 고려시대 양식이 비교적 잘 발휘되어 머리는 나발에 눈꼬리는 길고 다문 입술은 두꺼워 정적의 분위기가 감도는 데 이것은 고려시대 특유의 상호이다. 

▲ 익산 연동리 좌상 결실된 머리를 새로 조성하였고 몸에도 많은 손상을 입어서 볼품이 없으나 원각 좌상으로는 백제 최대의 거상이다. 이 석불은 규모로 보아 굴지의 대작이며 특히 복원치 5미터 가까운 일매 판석으로 광배를 조각한 석조 기술 또한 놀랍다. 고졸하면서도 대담하고 간명하면서도 힘이 넘쳐 백제 미술의 진수를 보여 준다.

▲ 정읍 소성 신천리 석불 입상 발 밑에는 원통형의 돌기가 붙어 있어 이색적이고, 머리는 체발(剃髮)에 육계는 크고 존용은 방형에 가까우며 입가에는 미소가 희미하게 보이나 풍화가 심하다. 더욱이 두 눈은 인위적인 손상을 입어 자세한 점을 알 수 없으나 서산군 태안면의 마애불 얼굴과 유사하다.

▲ 익산 태봉사 삼존상 일석(一石)으로 삼존과 광배를 조성하여 삼국시대에 유행하던 일광삼존의 형식을 갖추었다.

▲ 중원 비중리 보살 입상 머리에는 무문의 큰 원광이 있고 얼굴은 약간의 손상이 있으나 짧은 목걸이, 통인인 듯한 두 손, 천의의 X형의 교차, 두꺼운 상의 등 삼국시대 양식이 분명하다. 다만 소속 국가에 관해서는 고구려 작품과 백제 작품의 양론이 있다.

▲ 경주 배리 삼체 석불 각 상의 작품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세 상이 모두 고식을 따르고 있는 점에서 고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청암사 수도암 비로사나불 좌상 통일신라 중기의 작품이다.

▲ 각연사 비로사나불 좌상 대좌에서 광배 끝까지 높이가 302센티미터로 불상과 대좌, 광배가 모두 갖추어진 상이다. 통일신라 중기인 9세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 석조 여래 입상 국립 경주박물관 소장의 여래상으로 통일신라 중기의 작품이다. 중기의 조상(造像)은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외래 양식의 수용 정착과 축적된 조상 기술로 해서 우리나라 조각의 절정을 이루는 시기이다.

▲ 경주 남산 보리사 여래 좌상 화려한 광배와 불신의 비례, 상호의 표현 등이 원숙한 8세기 조각의 면모를 보여 준다.

▲ 감산사 아미타불 입상 주형(舟形) 거신광배의 화염문과 팔각 대좌의 앙련과 복련에 이르기까지 세련된 솜씨와 부드러운 질감을 강조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옷주름과 전체적인 조형미는 우리나라 조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한다.

▲ 감산사 미륵보살 입상 석상의 광배 뒷면에 중아찬의 벼슬에 있던 김지성(金志誠)이 집사시랑으로 왕의 측근에서 봉사하다가 퇴관하여 한거하면서 먼저 간 일족의 명복을 위하여 미륵존상과 미타불을 조성하였다고 새겨져 있다. 719년이라는 뚜렷한 제작 시기가 있어 통일신라 중기 조각품의 기준작이 된다.

▲ 팔공산 관봉 여래 좌상 보물 제431호로 '갓바위'라고도 불리운다. 이 상은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인 8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 거창 양평동 여래 입상 8세기말에 가까워지면서 조상은 차츰 정제된 조형미에서 벗어나 난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 불상은 신체에 비해 머리가 커지고 어깨가 다소 솟아 올라 흩어진 조형성을 보인다.

▲ 예천 동본동 석불 입상 통일신라 말기에 제작된 상으로 유난히 큰 머리와 평면적인 가슴, 움츠린 듯한 어깨가 이 시기의 작풍을 보여 준다.

▲ 청량사 여래 좌상 경주 석굴암 여래 좌상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인체 파악의 빈약으로 균형을 잃어서 불신의 각부가 부자연스럽다.

▲ 청량사 여래 좌상 대좌 부분 불상의 대좌에 새겨진 보살상이다.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이르러 이러한 지나친 장식성으로 전체적인 기력을 잃은 섬약화가 현저해졌음을 보여 준다.

▲ 부석사 자인당 비로사나불 좌상

▲ 축서사 여래 좌상

▲ 고운사 여래 좌상
통일신라 말기 조각의 조형적 변화는 혜공왕 이후에 나타나는 국정의 문란, 군웅의 할거와 선종이라는 새로운 사상 체계로 인한 조상의 약화, 풍수설 전래로 인한 잡신(雜信)과의 습합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국정의 문란과 선종의 유행은 중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 영주 석교리 여래 입상 불신과 불두의 조화되지 않는 비례는 형식화된 옷주름의 표현과 더불어 통일신라 말기 불상 조각의 변화를 드러낸다.

▲ 청양(靑陽) 삼존 입상

▲ 청룡사(靑龍寺) 비로사나불 좌상
고려 전기는 신라 석불의 양식을 계승하는가 하면 새로운 양식이 대두되는 시기인 동시에 신라 말기의 석불에 비해 월등히 큰 대작이 제작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철불이나 마애불에서 특히 현저히 나타난다.

▲ 만복사 여래 입상 이 불상은 높이가 2미터 가량으로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제작 시기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나주 철천리 여래 입상 충실히 전대의 형식을 따르고는 있으나 도식화된 광배의 문양과 얼굴과 신체의 어울리지 않는 비례 등에서 변회된 불상의 면모를 보인다.

▲ 관촉사(灌燭寺) 보살 입상 상호의 이형화, 의문 표현의 선각화, 선의 표현보다 면의 표현에 치중한 점, 6각형 대좌의 출현 등 새로운 양식이 등장한 예이다.

▲ 함안 대산리 보살 입상 운동감은 적으나 신체의 균형이 비교적 좋고 상호가 온화하며 두 다리에 동심 타원문의 의문이 있는 점 등 신라불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 고령 개포동 보살 좌상 보관에 화불이 새겨져 있고 연꽃을 손에 쥐고 있어서 관세음보살로 생각된다. 뒷면에 옹희 2년(985)이라는 기년명이 있어서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조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 대조사 보살 입상

▲ 안국사 삼존 입상
고려 불상에 나타나는 속세화 곧 상호 각부의 비현실적인 강조, 인체 비례에의 무관심, 석주형(石柱形)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입체성 등은 새로운 양식으로 지적될 수 있으나 그 배경에는 풍수설과 결부된 현세적인 속신화(俗信化)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거창 상동 보살 입상 전기에 이어 신라불의 기본형을 따르는 상이다. 그러나 어깨가 각지고 신체가 평판(平板)이어서 다소 생경한 느낌을 준다.

▲ 예산 삽교 보살 입상 고려 중기 불상의 특징은 원각상의 경우, 넓은 개석을 머리에 이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 월정사(月精寺) 보살 좌상 고관개석(高冠蓋石)의 형식은 강릉 지방에 있는 한송사, 신복사, 월정사 등의 보살상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상들은 한결같이 비만형이며 작은 입에 미소를 짓고 특이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 신복사(神福寺) 보살 좌상 한송사지나 월정사 보살상처럼 원통형의 높은 관을 쓰고 있으며 관 위에 천개(天蓋)가 놓여 있다. 이러한 양상은 지방적 특색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 지방이 신라 왕족 김주원의 후예가 할거하던 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색 있는 양식이 나타날 수 있는 문화적 소지가 다분히 있었던 것이다. 또 이러한 점은 충주 지방의 철불에서 볼 수 있는 배경적인 특색과도 합치하는 바이다.

▲ 한송사(寒松寺) 보살 좌상 대리석제 보살상으로 현재 국립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높은 관을 썼으며 통통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다.

▲ 아산 평촌리 약사여래상 높이 4미터의 장대한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둔중한 인상을 주나 온화한 얼굴의 부처 모습을 보인다. 곳곳에서 동심원을 그리는 옷주름은 삼국시대부터 보이던 옷주름이 도식화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 경천사 10층 석탑 표면 조각 고려 후기는 원의 침입을 받았으므로 송 문화에 대신하여 원 문화가 전반에 걸쳐서 침투하여, 불상 양식에서도 라마불의 양식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석불에서는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이 시기의 조상 자체도 현저하게 적어져서 이 탑의 표면 조각과 고도리 여래 입상 정도를 들 수 있다.

▲ 경천사 10층 석탑 상륜부와 탑신 고려 후기의 조각으로 대표되기는 하나 원나라 장인의 솜씨이므로 우리나라 조각사에서는 참고가 되는 작품일 뿐이다. 1348년에 건립된 이 탑의 탑신부 4층 이상은 방형(方形)으로 사방에 불 · 보살을 조각하여서 원나라 불상의 양식을 보여 준다.

 ▲ 운주사(雲住寺) 석불군 운주사의 계곡과 좌우 산상 일대에는 지금도 많은 석탑과 석불이 남아 있다.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과 천탑을 조성하였다는 바로 그 탑상들이다. 석불은 우수한 작품은 되지 못하나 많은 상의 집중상이나 안치된 위치 등을 생각하면 풍수설에 의한 조상과 배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위는 와불 2구이며 아래는 여래 좌상이다. 

▲ 창녕 관룡사 용선대(龍船臺)

▲ 용선대 석불 불상 높이 1.88미터, 대좌 높이 1.36미터의 거대한 불상으로 멀리서 바라보면 거대한 뱃전에 불상이 앉아 있는 듯하다. 이 불상은 얼굴의 표현, 신체의 양감 등이 8세기 신라 불상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나 조금은 위축되고 움츠린 신체 표현에서 고려시대 초기 석불임을 짐작케 한다.

▲ 실상사 서진암(瑞眞庵) 나한상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석조상의 면모를 반영한다. 

▲ 원각사 10층 석탑 표면 조각 경천사 10층 석탑을 그대로 모방한 대리석제 탑으로 표면에 12회상 등을 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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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22. 17:20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088 서울의 걷기좋은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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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노는 쪽으로 다양한 이력을 가졌다. 나ㄲ시가 좋아 낚시기자를 했고, 산악자전거에 빠져 자전거 전문지 편집장을 4년에 걸쳐 지냈다. 인생의 절반을 넘어선 시점에서 나머지 생을 올인 할 그 무언가를 유심히 찾던 중 걷기에 홀렸다.

· 조선일보 - 주말걷기 2.0 연재(2009.1~12월)
· 조선일보 - 명사와 걷기 '워킹토킹' 코스 디렉터(2009.3~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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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자 Step 1 걷는 거리 : 3 ~ 7km

01 강서구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 양천향교와 궁산 소악루, 허준박물관 * 자귀나무꽃
02 강서구 봉화 피우던 능선이 곱기도 하여라 | 봉제산 숲길 산책로 * 접시꽃
03 강동구 향긋한 풀향에 모두 화사해져라! | 고덕산산림욕장과 샘터 · 방죽근린공원 숲길 * 개망초
04 노원구 굽이굽이 돌아돌아 깊숙이 걷다 | 영축산 오솔길과 초안산공원 * 패랭이꽃
05 동작구 도심 속 잃어버린 숲길을 찾아서 | 노량진공원과 서달산 산책로 * 씀바귀꽃
06 강서구 성긴 숲이 품은 부스러기 길을 잇다 | 우장산 산책로 완전정복 * 큰까치수영
07 관악구 달동네 감싸던 안온한 숲길 | 보라매공원과 국사봉 숲길 * 봉선화
08 구로구 아기초록 반기는 촉촉한 숲길 | 항동 기찻길과 천왕산 · 개웅산 * 나팔꽃
09 동작구 내 조국을 사랑한 그분들의 길 | 서달산 숲길과 현충원 순례길 * 무궁화
10 서초구 아파트숲에서 빛나는 서초의 야광주 | 허밍웨이와 서리풀공원 숲길 * 엉겅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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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자 Step 2 걷는 거리 : 7 ~ 9km

12 구로구 발로 다져진 숲길의 안락함 | 매봉산과 지양산 숲길 & 서서울호수공원 * 코스모스
13 도봉구 물 만난 고기처럼 퍼덕거리던 계곡길 | 도봉산 무수골계곡과 원통사 * 산수국
14 동대문구 천일염처럼 빛나는 화사한 길 | 배봉산근린공원과 중랑천 벚꽃길 * 현호색
15 관악구 촉촉한 숲길이 비단결보다 고와라 | 목골산 산책로와 삼성산 허릿길 * 참나리
16 서대문구 서울 최고의 스카이 워킹루트를 원한다면 | 개미마을과 인왕산길, 백사실계곡 * 만수국
17 강남구 이보다 럭셔리한 강남의 숲길은 없을 터 | 선정릉 산책로와 봉은사 순례길 * 연꽃
18 노원구 서울을 등진 나그네 산에 들어 | 불암산 언저리 숲길과 학도암 * 금계국
19 중랑구 젖은 비단 감기듯 착 달라붙던 우중 숲길 | 중랑캠핑숲과 망우산 산책로 * 꿩의비름
20 양천구 성긴 숲길이 다정한 내님 같아라 | 계남 · 궁동생태공원과 매봉 · 지양산 숲길 * 누리장나무꽃
21 은평구 비가와도 찰랑찰랑 걸어가는 청정 숲길 | 봉산 능선과 수국사 황금사원 * 금낭화
22 성북구 녹음 속, 두 발 굴리며 하하호호! | 개운산 산책로와 홍릉수목원 * 애기똥풀꽃
23 강남구 숲길이 풀어내는 숨결에 젖어 | 달터근린공원과 구룡산 · 대모산 숲길 * 며느리밥풀
24 성북구 마음을 토닥이는 위안의 길 | 길상사와 옛집 순례 & 서울성곽 산책로 * 매발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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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8. 20. 12:19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087 범종

글 / 이호관●사진 / 손재식
1995,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0281

082
빛12ㄷ 42


빛깔있는 책들 42

이호관------------------------------------------------------------------------

연세대학교와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문교부와 문화공보부의 문화재관리국에 근무하였다. 지금은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연구소 미술공예 연구실장으로 있으며, 한양대와 이화여자대학 대학원에서 동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고려 전기의 범종 연구」「신라 범종」등이 있다.

손재식------------------------------------------------------------------------

신구전문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했고, 대림산업 홍보과와 대원사 사진부에서 근무하였으며,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85년 유럽 알프스 촬영 등반, 87년 네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촬영 등반 보고전을 가진 바 있으며, 사진집으로 「한국 호랑이 민예 도록」이 있다.

|차례|

사진으로 보는 범종
머리말
한국 범종의 기원
한국 범종의 형태와 각부 명칭
신라 범종
고려 범종
조선 범종
비천상과 보살상

범종의 주조와 음률
부록


▲ 상원사(上院寺) 범종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범종으로, 한국 범종의 조형인 동시에 규범이 되는 종이다.(맨 위)
종정에는 용뉴를 구비하고 종신에는 견대와 하대, 유곽, 유두, 당좌, 비천 등을 갖춘 한국 범종의 가장 뚜렷한 특징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다. 두번째와 세번째는 종정과 견대, 유두의 모습이고 맨 아래는 종신의 주악 비천상이다.

▲ 봉덕사 성덕대왕 신종
현재 국내에 있는 종 중 최대의 거종이다. 종신에 제작 연대와 주종 의장(意匠) 그리고 제작된 이유와 불법을 포교하게 된 내용 등을 명기하고 있다. 종신 상하에는 견대와 하대를
둘렀고 그 속의 주된 문양을 공양상과 보상 당초문으로 장식한 것이 주모된다. 특히 종구가 8릉형을 이룬 특수한 형태로, 일반적인 신라 범종과는 다른 유일한 예이다.(위)
아래는 이 종의 유곽대이다. 견대에 붙어서 세잔한 연주문대 사이에 보상당초문으로 채워진 주곽과 세밀한 연화로 표현된 9유가 특징적이다.

▲ 청주박물관 소장 범종 1970년 충청북도 청주시 운천동에서 출토되었다. 중간 크기에 명문은 없으며 종신에 2구의 비천상을 당좌와 교대로 배치하고 있다.
반원권의 유곽내에는 3구의 비천상을 배치하고 간지는 삼보문과 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9개의 돌기된 유두는 연화좌를 바탕으로 하여 배치되어 있다.

▲ 실상사 파종(破鐘) 종신의 윗부분은 주종(鑄鐘) 과정에서 잘못되어 상실된 것으로, 현재 범종의 하부만이 잔존하고 있다. 종신에는 2구의 비천상이 구름 위의 연화좌에 결가부좌하여 횡적과 생을 주악하고 있다.

▲ 용주사(龍珠寺) 범종 신라 범종의 양식을 가장 충실히 나타낸 고려 범종이다.

▲ 범종의 정상 용두는 천판 위에 보주를 물고, 두 발은 천판을 디뎠으며 종 전체를 들어 올리는 듯한 형태이다. 융통은 세잔한 연주문으로 둘러서 6단으로 구분하고 있다.

▲ 용주사 범종의 삼존상 범종의 몸체에는 천의를 날리는 삼존상을 비천과 교대로 1구씩 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장식법은 특수한 예이다.

▲ 용주사 범종의 당좌와 하대 당좌는 중앙부에 여덟 잎의 연화를 주문양으로 하여 바깥은 연주문대를 장식하고 다시 당초문을 두른 후, 연주문대로 마무리하였다. 하대의 문양은 당초가 한 번 구부러지는 중앙에 8판 내지 9판의 연화문을 독립시켜 배치하고 있는 특이한 장식법이다.

▲ 내소사(來蘇寺) 범종
내소사 대웅전 앞 종각에 걸려 있는 고려 후기의 범종이다. 보물 제277호.(첫번
째와 두번째)
천판과 상대가 맞닿는 계연 위에 이중으로 된 여의두문의 입상화문대를 정연하게 장식하고 있어 고려 후기 범종의 특색을 여실히 나타낸다.(세번째)

▲ 내소사 범종의 종신(鐘身) 유곽내에는 돌기된 9유가 있고, 종신 중간의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만개한 연화가 받치고 잇는 운상(雲上)의 삼존상이 네 곳에 양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구름 끝이 길게 위로 뻗은 상단에는 천개도 표현되었다.

▲ 내소사 범종의 명문 특히 종신에 27행의 명문이 있어 범종의 내력과 주조 관계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정우(貞祐) 임자년(고려 고종 9년)에 청림사종으로 만든 것을 조선 철종 1년에 내소사로 옮겼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 탑산사 계사(癸巳)명 범종 중형의 종으로, 문양의 장식 방법이나 양식이 매우 섬세하며 고조(古調)를 잃지 않은 우수한 고려 후기의 범종이다.

▲ 당좌와 하대 당좌는 연주의 원권내에 팔엽 중판의 연화 당좌이다. 하대는 세잔한 연주문대를 두르고 화려한 당초문대로 장식하였는데 종신에 이 종의 내력과 제사 10월이라는 명문이 있다.

▲ 봉은사 홍무 25년명 범종 1392년에 제작된 것으로, 신라나 고려 범종의 양식을 갖추면서도 약간 변화를 보이는 조선종이다.

▲ 당좌와 하대 봉은사 홍무 25년명 범종의 부분이다. 당좌는 원형의 연화문이지만 중심자방이나 꽃잎이 매우 도식화되었다. 하대는 상하 연주문을 두르고 사이를 연꽃과 보상화 등으로 장식하였다.

▲ 백련사 융경 3년명 범종 1569년인 조선 중기에 제작된 종으로, 서울 서대문구 백련사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다.

▲ 종의 정상부 백련사 융경 3년명 범종의 정상에는 단룡(單龍)의 용뉴와 짧은 용통이 구비되어 있다. 일반적인 용이 종의 전체를 들어올리는 모습인데 비해 이 용은 천판에 납작 엎드린 모습이다. 그러나 용과 천판면에 오색운과 같은 구름 문양이 표현되어 있어서 날고 있는 용을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 백련사 융경 3년명 범종 명문(銘文) 종신에 융희 원년(隆熙元年)이라 음각되어 있어 1907년에 제작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 부분은 후대에 새겨넣은 것이다.

▲ 유곽 견대에 붙어 있던 4개의 유곽이 독립되어 있어 조선종의 특징을 구비하고 있다. 유곽내의 9유도 도식화된 화좌유(花座乳)이다.

▲ 종신 종의 복부에 도식화된 화문대를 둘렀다.

▲ 갑사 만력 12년 갑신명 범종 신라, 고려 범종의 형태를 따르면서도 특이한 종의 몸체를 갖고 있다. 상대는 연화와 범자를 둘러 2단으로 표현하였고, 아래와 같이 하대의 구연부 위쪽에 도식화된 문양의 화문대를 두었다. 높이 132.5센티미터, 구경 92센티미터, 보물 제478호.

▲ 보살상 유곽과 유곽 사이에 둔 화려한 의습선의 지장보살상이다.

▲ 안정사 만력 8년명 범종 1580년에 제작된 것으로 역시 신라, 고려 범종의 형태와 양식을 갖춘 것이다. 유곽대는 상대에 거의 붙여서 자리잡았지만 9유는 도식화된 양각선의 화좌에 표현되었다. 종의 배 부분과 하대 위에 돌기된 선을 둘렀고 그 사이에 범자가 새겨진 구름 위의 보주를 나타냈다.

▲ 용뉴 왼쪽 종의 정상부에 있는 용이다. 심하게 왜곡된 몸체의 용은 전체에 비늘이 생생히 표현되었고, 힘차게 벌린 입은 긴장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광흥사 만력 11년명 범종 1583년에 제작된 신라, 고려 범종의 형태를 따른 종이다. 현재 경북 안동 광흥사에 소장되어 있다.

▲ 유곽대 천판과 상부의 경계 처리 수법이나 도식화된 연화문의 상대 문양 등이 조선종의 변모를 보여준다. 아무런 문양도 없는 유두는 화좌도 없이 밋밋한 간지에 표현되었고, 유곽대에도 퇴화된 당초문이 얇게 양각되었다.

▲ 봉선사 성화 5년명 범종 보물 제397호. 경기도 양주군 봉선사에 있으며 높이 238센티미터, 구경 168센티미터이다. 종의 정상에는 음관이 없이 두 마리 용이 용뉴를 이루고 있다. 종신은 2개의 엽띠로 어깨와 몸체를 구분하고, 몸체 중앙에는 3조의 엽띠를 둘러 다시 상하로 구분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 유곽 연화문을 두른 어깨 밑에 유곽과 보살상이 각 4개씩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 유곽의 띠 안에는 인동 당초문이 가득 새겨졌고 9유도 모두 연화좌에 표현되었다.

▲ 명문(銘文) 봉선사 성화 5년명 범종의 명문이 새겨진 부분이다. 강희맹이 글을 짓고 정난종이 글씨를 쓴 이 명문은 제작 연혁과 시대를 확실히 나타낸다. 이것에서 보이는 성화 5년(成化五年)은 1469년임이 확실하며 화원, 주성장, 조각장 등 종을 만들때 관계하였던 사람들의 이름이 열기되어 있다.

▲ 파도문 봉선사 성화 5년명 범종 몸체의 중앙에 두른 엽띠 속에 표현된 파도문은 조선시대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 낙산사 성화 5년명 범종 보물 제479호. 높이 158센티미터, 구경 98센티미터의 거종이다. 위는 용뉴로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엉겨 발과 몸의 일부가 종신에 고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매우 사실적인 표현으로 웅건한 기품을 나타내고 있다. 아래는 종 전체의 모습으로 상대와 하대 엽띠 등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1496년인 성화 5년 기축 4월에 주종하였다는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는 이 종은 조선 초기의 중요한 거종이다.

▲ 봉은사 강희 21년명 범종 시주자의 이름까지 자세히 나열한 조선종의 특징을 보인다. 명문에 의하면 강희 21년(1682)에 남한산성 장경사(長慶寺)에서 만든 것이다.

▲ 종정 봉은사 강희 21년명 범종 천판에도 도식화된 문양대를 배치하여 이중으로 된 범자띠를 상대에 두르고 있으며 천판의 문양띠와 구분하게 하였다. 얕은 돋을 새김으로 표현된 문양과 같이 용뉴도 도식화되어 느슨한 감을 준다.

▲ 화계사 강희 22년명 범종 서울 도봉구 수유동 화계사의 종각에 있는 1683년의 종이다. 종구(鐘口)가 벌어진 형태로, 전통 양식이나 중국 범종의 양식과도 차이가 있는 종이다.

▲ 하대 가는 두 줄의 엽띠를 하단에 둘러서 아랫띠를 만들었다. 띠 안에는 사실적인 연꽃을 배치하여 문양대로 만들었는데 다소 평면적인 느낌이다.

▲ 화계사 강희 22년명 범종의 종정 정상부에는 쌍룡을 배치하여 용뉴를 만들었고, 천판은 아무런 문양 없이 어깨로 완만히 이어짐을 보여준다.(위)
상대에는 범자(梵字)를 2줄로 배치하여 장식하였다. 그 바로 아래에 있는 유곽은 조선시대 후기에 보이는 일반 형태의 유곽이다. 유곽대는 도식화된 식물문으로 채우고 9개의 유두는 6잎의 꽃받침 위에 6잎의 둥근 꽃잎을 새기고 그 속에 유두를 배치하였다.(아래)

▲ 보광사 숭정 7년명 범종 1634년에 제작된 이 종은 조선시대 범종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종이다. 음관이 없는 쌍룡의 용뉴를 갖고 있고, 상대에서 떨어져 사다리꼴로 생긴 유곽과 몸체에 장식된 파상문 등에서 조선시대 범종의 형식을 드러낸다.

▲ 견대 도드라진 3줄의 가는 선을 돌려 천판과 경계지게 하였고 밑으로 변형된 연화문을 화려하게 나타냈는데, 표면이 고르지 않아 주종시에 정밀하게 장식되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밑으로 다시 3줄의 굵고 넓은 선을 둘렀다.

▲ 하대 보광사 숭정 7년명 범종의 하대이다. 파상문과 용문을 교대로 배치하여 문양대를 이루었다. 몸체에 새겨진 명문에는 보광사의 연혁과 범종을 만들게 된 경위, 시주자들에 대해 자세히 열기되어 있다.

▲ 보살상 유곽과 유곽 사이에 새겨진 합장한 보살상이다. 이 보살상 주위에 양각으로 범자(梵字)를 새겼다.

▲ 용흥사 순치 원년명 범종 전남 담양군 월산면 용흥사에 소장된 조선시대 범종이다. 순치 원년은 1644년으로 인조 22년이다. 종의 높이는 78센티미터, 구경 66센티미터, 지방유형문화재 90호.

▲ 종정(鐘頂) 다른 종들의 종정에는 쌍룡이 배치되어 용뉴를 이루고 있는데 반해 용흥사 순치 원년명 범종은 4마리의 용이 서로 엉겨 몸이 닿은 두 마리 용이 구름 문양에 싸여 있는 보주를 갖고자 다투는 듯 표현하였다.

▲ 위패형 용흥사 순치 원년명 범종의 종신에 새겨진 위패 안에는 발원이 적혀 있다. 이 위ㅠㅐ형은 하대  위에 네 군데 자리잡혀 있다.

▲ 선암사 대각암 순치 14년명 범종 음통이 없이 쌍룡의 용뉴를 이룬 조선시대 범종의 특징을 보인다. 종정에는 연화문이 조식되었고 상대에는 사다리꼴의 구획 안에 범자를 새겨 장식하였으며, 유곽과 유곽 사이에 보살상을 배치하였다.

▲ 하대 시주자의 이름이 열기된 명문이 있고 꽃무늬가 도식적으로 장식된 하대를 돌리고 있다. 새겨진 명문을 통해 1657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위패형 선암사 대각암 순치 14년명 범종의 몸체에 배치된 위패형으로 조선시대 유행하였던 위패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 보살상 유곽과 유곽 사이에 화려한 보관과 두광을 갖추고 합장한 보살상을 배치하고 있다. 선암사 대각암 순치 14년명 범종의 부분이다.


▲ 용종(甬鐘)의 각부 명칭

▲ 일본 운수사(雲樹寺) 소장 범종

▲ 용주사 범종의 유곽대

▲ 탑산사 계사명 범종의 종정

▲ 봉은사 홍무 25년명 범종

▲ 갑사 만력 갑신 12년명 범종의 종신의 문양

▲ 낙산사 성화 5년명 범종의 견대

▲ 보광사 숭정 7년명 범종의 보살상

▲ 용흥사 범종의 유곽대

▲ 봉덕사 성덕대왕 신종의 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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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8. 18. 10:20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086 사원건축

글 / 신영훈●사진 / 김대벽
1995,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82

082
빛12ㄷ 41

빛깔있는 책들 41


신영훈------------------------------------------------------------------------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서 한국건축사를 전공하였으며, 문화공보부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이다. 주요 저서로 「한국의 살림집」「한옥의 조영」등이 있고, 역서로「한국 상대(上代) 건축의 연구」등이 있다.

김대벽----------------------------------------------------------------------------------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으며, 한국사진작가협회 운영 자문위원, 민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사진집으로 「문화재대관(무형문화재편, 민속자료편)」상, 하권 외에 다수의 책이 있다.

|차례|

사진으로 보는 사원건축
절간
명당의 터전
가람의 경계
가람의 융성
석탑
사리장치
마당의 석물
금당불상 없는 법당
극락전 · 무량수전
약사전
팔상전 · 영산전
관음전 · 원통전
대장전
조사전 · 국사전
승당
극락으로 가십시다


▲ 송광사(松廣寺) 전경 조계사의 송광사는 보조국사 지눌이 머물던 때부터 헤아려도 700년 가까운 세월을 지켜 내려오고 있다. 지사들은 기가 장한 터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송광사는 다른 절과 달리 대웅보전이 중심곽에 자리잡아 자방에 해당하는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로 인하여 대웅보전 뒤편에 여러 채의 승당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 경계석표 절의 경계는 글을 써서 새긴 비석 형태의 석표 이외에 장승을 세워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무 장승은 썩거나 상하기 쉬운 탓으로 오래도록 썩지 않는 돌을 사용한 돌장승이 여기저기 세워지기에 이른다. 운흥사(雲興寺)의 석장승이다.

▲ 낙산사 산문의 문루 용머리

▲ 무지개다리 부처님 뵈러 가는 길은 즐거울수록 좋다. 누구나 쉽게 개울을 건너도록 다리를 놓는 일은 월천공덕(越川功德)이라 해서 큰일한 것으로 손꼽앗다. 선암사(仙巖寺)의 무지개다리이다.

▲ 돌과 쇠로 만든 장대 돛대를 세우듯이 장(檣)대를 높이 세운다. 여기가 진여(眞如)의 세계임을 알리기 위함이다. 전남 담양읍에 있는 장대로, 쇠로 만든 장대를 화강암의 지주가 지탱하고 있다.

▲ 용머리 금동 장대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당간을 장대라 쓰고, 만들어진 재료에 따라 돌로 된 것은 석장(石檣), 무쇠로 만든 것은 철장(鐵檣)이라 하였다. 호암미술관 소장의 금동 장대이다.

▲ 범어사(梵魚寺) 일주문 절로 치면 일주문은 첫머리의 표문(表門)인 셈이다. 여기부터가 바로 절의 경내요 하는 알림의 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주문은 기둥 두 개를 세워 완성시키는 것이 일반형이다. 기둥 넷을 일직선상에 둔 범어사의 일주문은 특수형에 속한다.

 ▲ 중문(中門) 산사(山寺)에 들어서다 보면 일주문 다음에 금강문을 만난다. 금강문은 대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금강문이 없는 절에서는 사천왕문이 대문인 듯이 보이기도 하나 격으로 보아서는 사천왕문은 중문에 해당한다. 법주사의 사천왕문이다.

▲ 불국사 안양문 중문으로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들이 불국사에도 있다. 대웅전 일곽으로 들어가는 자하문(紫霞門)과 극락전으로 들어서는 데 있는 안양문(安養門)이 그것이다.

▲ 불국사의 석대(石臺) 석대는 쌓는 방법도 여러 가지이다. 바위를 굴려다 적절히 맞추어 가면서 틈새를 두고 쌓기도 하고, 같은 바위라도 이음새는 이맞추도록 다듬어 쓰기도 한다.

▲ 부석사의 거석대(巨石臺) 큰 절의 옛날 석대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옛분들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돌을 써서 우람하게 쌓아 놓았다. 부석사의 석대는 바위 모양 그대로 쌓은 것이다.

▲ 쌍봉사 3층탑(대웅전) 목탑의 평면은 방형이거나 팔각형이다. 방형은 정방형으로 번듯하게 잡는 것이 보편적이다. 쌍봉사 3층탑(지금은 대웅전이라 扁額함)은 단칸짜리이다.

▲ 황룡사 9층탑 자리 도읍의 터전이 넓어 넉넉하던 시절에는 도성내에 큰 절을 널찍하게 경영하고 목재로 탑을 높게 지었다. 황룡사 9층탑은 좌우의 툇간까지 합쳐 9칸씩의 큰 규모였다.

▲ 경주 분황사 탑 신라 건축가들은 벽돌 쌓는 법에 유의하여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거대한 탑을 쌓았다. 우직한 일이었는데, 마침내 그 일을 해내어 분황사(分皇寺) 석탑과 같은 모습을 이룩하였다.

▲ 사리장치 탑파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법신사리(法身舍利)를 잘 모시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사리의 보장(保障)을 위하여 마련하는 제구(諸具)를 요즈음은 장치라 부르고 있다. 사리장치들은 아주 장엄하게 하여서 금으로 만든 것도 적지 않은데 이들을 통하여 당시 최고 수준의 공예품들을 감상하게 된다. 전북 익산군 왕궁리 언덕 위에 홀로 남아 있는 5층석탑 사리공에서 찾아 낸 사리장치이다.

▲ 실상사 백장암 석등 신라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은 하대석에 연꽃을 장식하고, 팔모 접은 기둥을 세운 위에 다시 받침돌을 올려 놓고 화사석을 받게 되었는데 화사석도 팔각형 평면이다. 그 위에 갓돌을 씌우고 보주를 얹었다. 이 석등은 화사석의 아랫도리에 난간을 두른 것이 특색이다.

▲ 쌍사자 석등 영암사에 있는 석등은 두 마리 사자가 등을 받쳐 든 모습이다.

▲ 불국사 연화교 연꽃무늬 발 딛는 디딤돌에 연꽃이 새겨져 있다. 여의두(如意頭)처럼도 보이게 한 연꽃이다. 올라서기만 하면 청정의 세계가 될 뿐만 아니라 소원하는 바가 다 성취될 수 있다는 약속이 그 무늬에 담겨 있다.

▲ 설악산 신흥사 대웅전 앞 석계(石階) 장중한 가람을 조성하고 법당을 지은 후 법당 돌층계에 뱃머리를 형상하였다. 그리로만 올라서면 반드시 용선(龍船)을 탄 환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층계의 소맷돌에 용의 머리를 새겨 용선의 뱃머리를 방불케 하였다.

▲ 중원 미륵대원의 금당 금당의 옛터를 발굴해 보면서 확인되는 것은 금당 중심부에 불단 자리가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늘 드나들고 있는 대웅전과는 다르다.

▲ 송광사 대웅보전 재목을 써서 짓는다 해서 꼭 조선조의 법대로만 지을 까닭은 없다. 현대인들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 법식(法式)은 옛것으로 하되 생각과 기법은 새로운 자료의 구사를 통하여 영롱하게 빛나게 해야 한다. 송광사의 대웅보전은 제8차 중창에 맞추어 현대식 기법으로 창신되었다.

▲ 통도사(通度寺) 대웅전 대웅전에는 불상이 봉안되는 것이 보통이나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다. 금강계단에 부처님 사리를 두고 예불 드리니 구태여 불상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다.

▲ 통도사 대웅전 내부 다른 법당은 좌우로 긴 장방형인데 여기 법당은 앞뒤로 긴 강당형이다. 금강계단 쪽에 공양 드릴 때 소용되는 불탁자만이 장중하게 구조되어 있다. 탁자 앞에서 절하면 금강계단을 예배하게 되는 것이다.

▲ 통도사 대웅전 내의 장엄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며 향, 꽃들을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것을 장엄(莊嚴)이라 한다. 통도사의 대웅전도 온갖 정성을 다하여 장엄하여 불국토(佛國土)의 이상을 실현하려 하였다.

▲ 개심사 대웅보전 맞배지붕이면서 다포계의 공포 구조를 하였다. 절충형이라 볼 수 있는 조선 초기의 건물이다.

▲ 송광사 약사전 약사여래는 백성들의 모든 질곡을 물리쳐 주는 분이다. 몸의 질병뿐만 아니라 마음에 든 병이나 집에 든 재난까지를 치유하거나 소멸시켜 준다. 아픈 사람들은 약사여래가 계신 약사전을 찾아간다. 한 손에 약병을 들거나 약함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은 모습으로 결가부좌하고 맞이하신다.

▲ 낙산사 원통보전 관음전을 원통전(圓通殿)이라 부르기도 한다. 절대적인 진리가 원만하게 탐색된다는 '주원융통(周圓融通)'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 낙산사 관음 좌상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모든 어려움을 구제하고 각기의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대자대비한 보살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귀의를 받고 있다. 관세음보살, 관자재보살을 자꾸 부르면 정성스러운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괴로움과 고난을 소멸시켜 준다. 관음전에 관세음보살을 모신다.

▲ 송광사 지장전 명부(冥府) 또는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는데 주존은 지장보살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육도 윤회에서 고통받는 일체 중생을 구제하는 일을 서원으로 세우고 있다.

▲ 대장경판고 고려시대에 만든 팔만대장경은 해인사 대장경판고에 보장되어 있다. 경판고는 수다라장과 법보장의 두 건물로 되어 있는데, 위는 수다라장의 문얼굴을 통하여 내다본 전경으로 미묘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아래는 경판고 전경이다.

▲ 화엄사 각황전 통일신라에서는 법화경이나 화엄경을 판석(板石)에 새겨 법전에 보장하기도 했다.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覺皇殿)은 화엄경을 석각(石刻)한 것을 보장하기 위하여 세운 건물이다. 아래는 각황전의 정교한 서까래 구조이다.

▲ 통도사 개산 조사전과 삼문 조사를 존중하기 위하여 경내에 조사전(祖師殿)을 짓고 거기에 조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의를 받들기도 한다.

 ▲ 송광사 설법전 조계산 송광사에는 설법전(說法殿)이 있다. 비구들이 진리의 법을 설하는 장소이다. 부처님이 장려하시던 일을 여기에서 한다.

▲ 윤장대 대장전 안에는 불법의 경문을 보장하는 윤장대가 두 틀 마련되어 있다. 밑둥을 팽이처럼 하고 손잡이를 부착하였다. 빙글빙글 돌려 가면서 염송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 윤장대를 보관할 귀한 법전이라 해서 대장전(大藏殿)이라 이름하였다.

▲ 송광사 미소실 백성들은 스님을 개인의 인격으로도 받아들이지만 승보(僧寶)의 신앙 대상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라기도 한다. 승방은 그런 승보들이 수행하여기거하는 처소라는 점에서 신도들에게는 신비한 곳이기도 하다.

▲ 송광사 하사당 밥을 짓고 대중이 모여 버릇대로 공양하고 신도를 공궤하며 기거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곳이 승방이다. 후원이라고도 하고 삼묵당(三默堂)이라고도 한다. 송광사의 승방 건물인 하사당(下舍堂)이다.

▲ 해우소(解憂所) 하루를 걸러도 어렵고 때를 지체해도 어렵다. 얼른 해결해야 신원하고 가뿐해진다. 배설은 인간에게 요긴한 것이었다. 신라 때도 마찬가지였다. 불국사에는 신라인들이 사용하던 매화틀과 부춧돌들이 남아 있다.

▲ 송광사 부도밭 누구나 죽는다. 스님들도 입멸한다. 옷을 갈아 입는다고도 말한다. 다비하여 사리를 수습한다. 제자들은 공을 들여 사리탑을 조성하고 사리를 보장한다. 이를 부도(浮屠)라고도 부른다. 그런 부도들이 절에서 조금 떨어진 정결한 장소에 모이는데 오래 된 절엔 그 수가 많다. 그런 곳을 부도밭이라 부른다.

▲ 관룡사 반야용선 극락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가닥이라 한다. 배를 타고도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배가 곧 떠난다고 한다. 반야용선이 배의 이름이다. 그 배는 거대한 바위로 만들었다. "자, 떠나기 전에 그 배를 타러 가십시다. 극락으로 가보십시다. 마음을 잘 쓴 흔적이 지극하면 그 배를 탈 수 있는 자격이 있답니다."

▲ 화엄사 원통전

▲ 영취산 통도사

▲ 미륵사 터

▲ 송광사 일주문

▲ 청평사 회전문

▲ 금산사 미륵전

▲ 송광사 영산전 내부

▲ 송광사 관음전 내부

▲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내부




posted by 황영찬
2011. 8. 17. 08:08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085 젊은 투자자를 위한 워렌 버핏의 9가지 충고

궈옌링 지음 | 강경이 옮김
2007, 이스트북스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36429

327.856
궈64ㅇ


워렌 버핏의 1:1 주식투자 과외

Nine Advices of Warren Buffett

주가그래프가 눈에 아른거리는 당신을 위한
워렌 버핏의 가치투자 입문서!

"주식을 살 때는 아예 주식시장이 내일부터 3~5년간 폐장한다고 생각하라."
"특별한 공식 없이 투자 종목의 진정한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그 회사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뿐이다."

충고 1 투자 철학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충고 2 시장법칙에 맞춰 춤을 춰라
충고 3 스스로를 믿고 세상을 얻어라
충고 4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아놓되 잘 감시하라
충고 5 변화에 무덤덤해져라
충고 6 빚쟁이가 아닌 부자가 되라
충고 7 가치투자로 승부하라
충고 8 쥐죽은 듯 있다가 때가 되면 재빨리 움직여라
충고 9 성공의 열쇠는 운용 전략 속에 담겨 있다


주식투자에 성공하고 싶다면
         자신의 투자 철학부터 돌아보라!
 
워렌 버핏 Warren Buffett

열한 살에 주식투자에 입문한 워렌 버핏은 '주식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 등 갖가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전설적인 투자가다.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섬유회사를 투자회사로 탈바꿈시킨 그는 코카콜라, 질레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에 장기 투자해 연평균 25%의 놀라운 수익률을 올린 바 있다. 이로써 철저하게 내재가치를 따져 종목을 선택하고 저평가 되어 있을 때 사들이는 워렌 버핏의 가치투자법이 효과적인 전략임이 입증되었다.
100달러로 주식투자를 시작해 440억 이상을 벌어들인 워렌 버핏의 놀라운 신화는 진행 중이다.

지은이 궈옌링郭硯靈

글로벌경제발전연구소 다국적기업 경영 관리학 석사. 경제학과 재테크에 관심이 많으며, 특히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이야기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일에 대한 애착과 프로정신이 강하다.
저서로는 『내 삶의 승객을 태우고 앞으로 전진하라』,『한눈에 보는 투자와 재테크』등이 있다.

옮긴이 강경이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중번역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언어문화대학에서 수학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과 명지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중국어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인간관계를 열어주는 13가지 지혜』, 『세계의 위대한 인물 101』, 『바보철학에서 배우는 거상의 도』, 『노벨상 수상자 45인의 위대한 지혜』, 『제국의 슬픔』등이 있다.

| 목차

머리말
역자 후기


충고 | 1 투자철학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01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하라
             02 정확한 위치에 우물을 파라
             03 투기꾼의 논리
             04 투자를 즐겨라
             05 워렌 버핏 따라잡기

충고 | 2 시장법칙에 맞춰 춤을 춰라
             01 주식시장에도 규칙이 있을까?
             02 틀을 깨고 대중에 역행하라
             03 차별적인 방법으로 승부하라
             04 워렌 버핏 따라잡기

충고 | 3 스스로를 믿고 세상을 얻어라
             01 익숙한 길을 가는 것이 상책이다
             02
 현명한 투자자는 외롭다
             03 낯선 거래는 지양하라
             04 워렌 버핏 따라잡기

충고 | 4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아놓되 잘 감시하라
             01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몰아넣어라?
             02 우량회사 골라내기
             03 리스크 통제
             04 워렌 버핏 따라잡기

충고 | 5 변화에 무덤덤해져라
             01 장기 보유 전략
             02 인내심을 길러라
             03 변화에 둔해져라
             04 안정궤도 속에서 전략을 짜라
             05 워렌 버핏 따라잡기

충고 | 6 빚쟁이가 아닌 부자가 되라
             01 맨손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02 하늘이 두 쪽 나도 원금은 지켜라
             03 능력에 따른 맞춤형 투자를 하라
             04 완벽 투자를 원한다면 틈틈이 준비하라
             05 자금력이 든든하면 걱정 끝
             06 빚잔치를 벌이지 말라

충고 | 7 가치투자로 승부하라
             01 남다른 안목으로 기선 제압하라
             02 투자 업종 고르기
             03 가치투자로 승부하라
             04 우량주는 절대 팔지 말라

충고 | 8 쥐죽은 듯 있다가 때가 되면 재빨리 움직여라
             01 조용히 때를 기다려라
             02 진흙 속 진주 찾기
             03 팔아야 할 때는 과감하게 팔아라
             04 행동할 때는 날쌘 토끼처럼

충고 | 9 성공의 열쇠는 운용 전략 속에 담겨 있다
             01 노련한 인재용병술
             02 조직몰입도 올리기와 동기 부여
             03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말라
             04 직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임파워먼트

부록 워렌 버핏의 투자 격언


『워렌 버핏의 투자 격언』

버핏의 명언을 '투자의 바이블'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별다른 활용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단 한 마디라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성공적인 투자를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종목고르기 편

■ 나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래왔고, 앞으로도 1년 뒤 주가, 이율, 환경에는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 가이코를 포함한 모든 투자에서 우리가 주목한 것은 주가의 현시세가 아니라 그 회사의 경영 실적이었다. 해당 기업의 가치와 전망에 대한 예측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언젠가 시장도 그 종목을 공정하게 평가할 날이 있을 것이다.
■ 데어리 퀸(Dairy Queen, 아이스크림 회사)사를 합병할 때 버핏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먹을 것이 있는 곳에 돈을 건다."
■ 1985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방직부문 사업을 접으면서 버핏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열까지 셀 수 있는 말Horse은 대단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말일 뿐 뛰어난 수학자라고 할 수는 없다. 자금을 합리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방직회사는 그 업계에서는 대단한 회사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그리 대단한 기업이 못된다."
■ 맹목적인 투자란 밤새워 포커게임을 하면서도 자신의 수중에 무슨 패가 들어왔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
■ 코카콜라와 질레트는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기업이다.
■ 담배산업은 아주 이상적인 업종이다. 판매가격에 비해 제조비용이 매우 저렴할 뿐 아니라 중독형 소비자들이 많고 그들의 제품충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항상 수요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 기업 주변이 깊고 넓은 해자(성 밖으로 둘러 판 못)로 둘러싸여 있고, 그 호수 속에 난폭한 악어와 상어, 피라니아가 헤엄치고 있다면 그보다 이상적인 투자 종목은 없다.
■ 버크셔 해서웨이가 기업계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되어 위대한 걸작들을 수집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 45년 전에는 기회가 많아도 돈이 없어서 망설여야 했지만, 지금은 돈이 많아도 기회를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 나는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그럴듯한 예측과 분석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다행이도 그것들은 내가 경제를 예측할 때 전혀 활용되지 않는다. 나는 한눈에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는 중요한 것에만 주목한다. 환율과 금리는 원래 정확히 예측하기 힘든 것이다. 그러므로 투자 종목에 선정할 때는 굳이 복잡한 이론을 갖다 붙일 필요가 없다.
■ 나는 황금에 절대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남아프리카의 땅 속에서 파낸 그 보석을 다시 폭스보로Foxboro의 창고에 가져다 놓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종목투자 편

■ 보통 뮤추얼펀드의 관리비용은 1.25%이지만, 우리는 겨우 1만분의 5다.
■ 1996년의 연례보고서에서 버핏은 코카콜라의 100년 전 연례보고(1896년)를 연구하는 중이라고 언급했다. 코카콜라가 창립된 지 딱 10년째 되던 해인 1896년, 캔들러 회장은 "금년 3월 1일부터 본사와 긴밀하게 연계된 출장 판매원 10명을 고용해 코카콜라를 미국 전역으로 보급시킬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비록 그 당시에는 코카콜라의 매출액이 겨우 14만 8,000달러에 불과했지만, 1996년에는 32억 달러로 훌쩍 올라섰다. 버핏은 당시 캔들러 회장의 야심과 노력을 여전히 높이 산다.
■ 버크셔 해서웨이에서는 타격률 4할의 선수에게 어떻게 방망이를 흔들라고 일일이 알려주지 않는다.
■ 내 40여년의 투자 인생에서 남다른 성공을 거두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투자 프로젝트는 단 12건뿐이다.
■ 버핏은 독자적인 펀드를 운영해 39년 동안 연평균 20%가 넘는 수익을 올린 월터 슐로스의 투자법을 '담배꽁초 전략'이라고 불렀다.
'담배꽁초 전략'이란 주식이 아주 저가일 때 매입했다가 주가가 잠시 상승할 때 빨리 팔아치우는 전략이다. 주운 담배꽁초도 한 모금 정도 피울 수 있는 것처럼 하락한 주가에도 끝까지 이익을 얻으려 한다는 뜻이다.
■ 버핏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승 벤자민 그레이엄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마지막 부분에는 '가장 현명한 투자 방식은 자신을 기업의 오너로 생각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말은 투자 재테크와 관현한 최고의 명언이다."
■ 나는 스스로를 기업의 경영자라고 여겼기 때문에 투자에 성공할 수 있었다. 또한 스스로를 투자자라고 생각하고 경영에 임했기 때문에 더욱 유능한 경영자가 될 수 있었다.
■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세상에 버크셔 해서웨이를 경영하는 것보다 더 흥미진진한 일은 없다.
■ 단타매매를 즐기는 주식거래자나 투기꾼을 투자자라 부르는 것은,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는 바람둥이를 로맨티스트라 부르는 것과 같다.
■ 간혹 버핏의 투자 전략이 단순히 운이 좋아서 잘 통했을 뿐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버핏은 그들에게 확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며 응수하곤 한다.
"돼지 12만 8,000마리가 있는데 동전을 던져서 정면이 나오면 합격이고, 뒷면이 나오면 불합격이라고 합시다. 아홉 번의 라운드를 거쳐 마지막에 250마리의 돼지가 남았다면, 어떤 이들은 그 250마리가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할 겁니다. 만일 합격한 250마리의 돼지 중에 200마리가 같은 농장에서 온 것이라면, 당신은 분명 그 농장이 돼지들에게 뭔가 특별한 사료를 먹이는 것이 아닌지 물어볼 겁니다."
■ 특별한 공식 없이 투자 종목의 진정한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그 회사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뿐이다.
■ 주식을 살 때는 아예 주식시장이 내일부터 3~5년간 폐장한다고 생각하라.
■ 주가 등락의 조절은 신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 남들이 욕심을 부릴 때 두려움을 느끼고, 난들이 두려움을 느낄 때 욕심을 부려야 한다.
■ 손해 규모가 계속 커지도록 방치하는 것은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범하는 실수다.

주식 매각 편

■ 팔아야 할 때 민첩하게 팔아라.
■ 가끔은 신중함보다 과감한 결단이 더 중요하다.
■ 나는 영구 보유할 수 있는 종목만 편애한다.
■ 주식투자에서 매수와 매도의 타이밍 포착은 매매 종목의  선별보다 더 중요하다.
■ 기존에 주식투자에 집착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너도나도 주식투자에 뛰어든다면, 운용 가능한 자금 대부분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후로는 뒷심이 달려 더 이상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
■ 투자자들의 우려가 최고점에 달했을 때가 사실상 거래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공포는 시류를 쫓는 투자자들에게 최대에 적이지만, 펀더멘털을 중시하는 분석가들에게는 좋은 친구다.
■ 버핏은 1985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방직사업을 정리하면서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는 단순히 기업의 전체 수익률 1%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돈이 안 되는 사업을 접는 것이 아니다. 반면 매출실적이 가장 좋다고 해서 향후 전망 없는 사업을 무조건적으로 지원하지도 않는다. 아담 스미스는 내 첫 번째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칼 마르크스는 내 두 번째 의견에 반박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도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우량기업 키우기 편

■ 나는 살아 있는 한 계속 버크셔 해서웨이를 경영할 것이며, 나중에 죽어서도 신의 모습으로 내려와 계속 일할 것이다.
■ 리스크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데서 온다.
■ 조직은 구성원 모두가 파트너라는 마음으로 경영해야 한다.
■ 버크셔 해서웨이는 합병에 필요한 자금을 언제든지 준비해둔다. 버핏은 "재빠른 희귀 코끼리를 사냥하고 싶다면 언제나 몸에 총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 신뢰는 만들어지는 데 평생의 시간이 들지만, 무너지는 데는 단 5분도 걸리지 않는다.
■ 10년 이상 보유할 계획이 없는 종목은 단 10분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 버핏은 주식분할에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심지어 그는 친구의 생일 축하카드에 반농담조로 이렇게 적기도 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주식분할을 할 때까지 살기를 바란다."
■ 버핏은 유명 광고대행사 오길비 앤드 매더Ogilvy & Mather의 창업자인 오길비의 관리 철학에 적극적인 공감을 표시했다.
"우리보다 작은 사람들을 고용하면 우리 회사는 언젠가 난쟁이 회사가 될 것이고, 우리보다 큰 사람을 쓰면 거인 회사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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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