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0 시금치 학교
서수찬 시집
2007, 삶이 보이는 창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03304
811.6
서56시
삶의 시선 022
등단 17년 만에 선보이는 서수찬의 시집에는 우리네 식민지적 삶의 여건과 그 세월이 쓰라리게 음각되어 있다. 분단 이후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조국의 식민지적 여건은 정작 눈곱만큼도 변하지 않은 채 60여 년 세월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서수찬의 시는 이를 앙다물고 확인한다. '군홧발에 밟힌 채 모질게 땅에 누워서 옆으로 자라는' 대추리 들판의 벼포기처럼, 서수찬의 시는 마비되는 우리의 통증을 생생하게 되새기는 것이다.
서수찬의 이 쓰라린 힘 쓰라린 그리움은 우리 사회의 불감증으로 사각화死角化하는 대추리 도두리의 꿈을 예각화銳角化함으로써, '지금이 어느 시댄데'라며 번번이 우리를 야코죽이는 음흉한 역사 앞에 당당히 맞서고자 한다.
- 정양 시인
서수찬의 첫시집에는 법성포 외진 바닷가에서 "일생을 말뚝에 옹골차게 묶고" 살아온 어민들의 바닥난 살림들이 사리포구처럼 밀물져 있고, "풀의 다리를 가지고 있"어 폭격기 날고 화염 자욱한 황새울 들판을 떠날 수 없는 맨손들의 "언제 올지 모르는 희망"이 우물져 있다. 들들 볶이다 일터에서 깨지고 돌아온 시인이 "좁은 문으로 오시게 해 미안"하다며 지하셋방으로 날아든 첫손님, 낙엽 한 장에게 방석을 권하는 마음, 초라하고 신산한 그의 삶을 천천히 보고 앉아 있는 낙엽의 눈길, 고된 이승의 시간 다르고도 닮은 존재들이 어느 찰나에 눈을 맞추며 말없이 위로를 주고받는 것이 삶의 기적이요, "우리가 돌아가야 할 사람의 마을"임을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둥글둥글 모난 데 없이 늘 웃으며 가만가만 나타나 발품팔고 사라지곤 하던 시인의 순박하고 담연한 목소리가, 서까래 튼튼한 지상의 집도 그럴 듯한 시의 집도 세우지 못한 가난한 마음이, 과장도 엄살도 없이 살아가는 이 시대 고된 생명들의 눈물을 오래도록 닦아주고 있었음을 믿어마지 않는다. 시인의 겸허한 노래와 나지막한 위로가 "엄청난 고생 되어도 /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 그런 사람들이 /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 고귀한 인류이고 / 영원한 광명이고 /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말한 김종삼 시인의 욕심 없는 마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 김해자 시인
서수찬
1963년 광주 광산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9년 『노동해방문학』에 「접착을 하며」, 「복개공사」, 「안전장치」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 글차례
시인의 말
1부
사리포구 / 법성포 / 그리운 이불 / 오징어잡이 / 냉수대 / 말뚝 / 바닷가 식구 많은 집 / 청맹과니의 노래 / 호남행 비둘기호 열차 / 복개공사 / 논둑 편지 / 난지도 / 내 마음의 보물창고 1 / 내 마음의 보물창고 2 / 내 마음의 보물창고 3 / 내 마음의 보물창고 4
2부
이사 / 첫손님 / 도배 / 지하 셋방 앞 목련나무 / 옥탑방 / 뻐꾹채 / 토란국 / 구찌터널 / 생각과 생각 사이 / 빈 깡통 / 어떤 상처 / 김포에서 / 국어시간 / 엄마의 주먹에는 외계인이 산다 / 중독 / 연탄
3부
이름표 / 따오기 시인 / 티벳의 하늘호수 / 저울 집에서 / 여자의 마음 / 운조루 / 보름달 / 종이쯤이야 / 안산이라는 책 / 안산에는 안산 사람이 안 산다 / 콩알 할머니 / 틈 / 항아리 / 시금치 학교 / 빵모자 / 앉은뱅이 밥상 하나가
4부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2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3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4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5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6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7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8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9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0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1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2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3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4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5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6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7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8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9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20
해설 만인보萬人譜 시학 맹문재
그리운 이불
법성포에 오래간만에 돌아온 나를
수천만 번 들여다보았을
물고기 눈동자마저
업신여긴다 싶어 일부러 바닷가 쪽을 피했다
발바닥의 조개껍대기를 닮아 있는
그립던 상처들
살 속 깊이서 아는 체를 한다
얼마나 수혈을 받고 싶었던 땅인가
살 속에서 하나하나 비린내를 건져 내어서
잊어버리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살 속에 닻은 깊이 내려진다는 것을
작아진 고향은 미리
알고 잇었나
한눈에 피보다 진하게 누구네 장남 아닌가
알아봤을 때
몰래 숨어드는 난처함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나도 흔하디흔한 물고기가 아니라
비로소 사람의 이름을 갖네
뒷덜미를 후려쳐서 내쫓아 버릴 것 같던
법성포의 여러 손길들
해당화처럼 살며시 흔들어 주네
밤새 비린내를 이불로 덮어 주는
아버지의 손길이 참 많이 늙어 있었다.
오징어잡이
우리나라 같은 조명을 켜들고
언제 올지 모르는 희망을 기다리다 보면
그리운 마음의 불빛을 하나 둘 잠들고
어느새 닥친 피로로도
내일이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우리는
무디어진 신경을 모두 바다 속으로 열어 놓았다
믿는 것은 두 다리와 지문이 지워진 두 손뿐이듯
우리가 확실히 들을 수 있는 건
선거공약처럼 날뛰는 상어나
고도성장 같은 고래가
보내오는 신호가 아니라
해초 그늘에 쉬고 있을
어물 행상에 단련된 아내들의 목소리
뚫린 그물에 빠져나가 대처에 몸을 섞는
청년들의 발자국 소리뿐
왜 바닷속을 생각하다 보면
뭍의 일이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일까
작년에 그물에 말려 죽은 칠성이의 어머니가 되어
갈매기는 따라와 통곡을 풀어 놓는데
우리는 진혼곡 한 자락 불러줄 여유도 없다
낚싯줄에 말려 올라오는 아들놈의 공납금과
수협 창고에 쌓여질 부채를 궤짝에 차곡차곡 쟁이며
간신히 피우는 한 대의 담배로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사람의 마을이 너무 벅차다.
냉수대
섬 그늘에 누워 아버지는
하루 종일 앓았다
아직 떼지 않은 문설주의
입춘대길처럼
언제나 속 시원히 조기떼가 몰려 오려는지
냉수대 낀 속 탄 가슴에
대신 팔팔만 밀려와 미역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구나
속없이 면장은 자가용을 타고 와
덤핑으로 쌓여 있는 팔팔을 거둬다가
오늘같이 기쁜 날
국이나 끓여 먹으라 한다
체력은 국력이여
언제부터 운동이 국시가 되고
며칠째 술로 저런 아버지 뱃속에서
동생들은 학교도 못 가고
굴뚝새처럼 울어쌓는데
저놈의 정치 휴전 같은 냉수대는
언제쯤이나 걷힐는지
우리의 메인 스타디움인 법성포 앞바다에는
멸치 새끼 한 마리
눈에 띄질 않는구나.
사리포구
핸드폰을 벌리듯 바지락을 벌리면
부재 중 전화번호처럼
시꺼먼 갯벌만 들어 있구나
밧데리 같은 갯벌이 저렇게 망가졌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바지락을 열고 또 열어보네
갯벌도 인간을 닮아 가는가
통화도 되지 않는 바지락 껍데기를
습관처럼 손에 들고 놓질 않네
한시라도 빈 껍데기라도
들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갯벌
어쩌다 철새가 찾아오면
스팸메일처럼 삭제하기 바쁜 포구
잘못 걸려온 전화인 양 어선 몇 척 버려져 있다.
말뚝
보름째 배를 못 띄웠다
날씨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조황도 예전에 없이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으나
사람도 구하기 힘들고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잡아와도 기름값 빼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농부들이 발째로 썩히면
뉴스에서 잘도 인용해 주는데
우리들은 물속에 다 들어 있어서
우리들의 속처럼 들여다볼 수 없어서
그저 우리는 노인네 몇이 술집에 들어앉아서
소주 나발이나 부는 것이다
대처로 빠져나간 젊은놈들의
거시기 닮은 말뚝에 묶여
배들은 홀쭉한 월급봉투마냥 이리저리 흔들렸다
전국을 뒤집어 놓고 빠져나간 태풍도
젊은놈들 거시기는 빼가지 못했다
진즉에 어항들이 젊은이들에게
말뚝이 되어주지 못했을까
일생을 그 말뚝에 옹골차게 묶고
마음놓고 저 먼 바다까지 나가서
풍랑을 다스리게 하지 못했을까
어항은 노인네마저 놓치겠다 싶어 노인네 가슴에만
매듭을 아주 굵게 매어 놓았다.
법성포
친구들 굴비 몇 두름으로
대처로 빠져나간 법성포의 하루는
정든 갈매기 울음소리조차 이제 먼 타향인데
그물을 깁던 만선의 손가락들은
선술집의 목포는 항구다의 옷고름만 풀고 있구나
그대들 선비의 빳빳한 갓으로나 살고 있는지
해풍으로 검게 탔던 그리움 한 접시
보내오지 않는구나
부디 추억 속에 건져지는 새우젖쯤으로 생각해두고
걸대에 매달린 가난한 유년시절은 잊어다오
희망을 끌어다 적는 나의 일기 쓰는 버릇은
오늘도 그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고
우리의 스무 살 적 애인인 그물이
세상만큼 구멍이 났는데도 출항을 서둔다
아직 내리지 않은 돛인 그대들
객지에는 몇 미터의 파고가 아는지
작업복 속에는 법성포 앞바다의 물결소리가
싱싱한 조기로 뛰놀지 않는지
그대들이 잠꼬대처럼 두고 간 풍어가는
가짜 굴비 소문에 좌초되고 마는구나
고장난 출항기를 수협 창고에 쌓으며
인간의 따뜻한 사랑을 알리는 새벽은
이런 변두리 포구에서부터 와야 한다는 말
전하고 싶어 부러지는 연필을 들었다.
안산에는 안산 사람이 안 산다
신흥 공업도시
오아시스의 물 냄새를 맡고
떼 지어 몰려든 곳
밤새 아이를 만들 듯이
빈터마다 집은 지어지고
사람마다 비빌 언덕이 되어
배불러서 부부가 같이 출근하는 곳
비단길은 마음에나 있는 곳
폐수가 된 저수지에
누군가 낚시를 하고
기형의 희망만 간판이 되는 곳
하루 종일 기다려도
낙타는 두세 번 지나칠 뿐
한 번 출애굽한 서울 땅을 못 잊어
주말이면 텅 비어 가득 차는 곳
식솔을 거느리고
협궤의 구멍만 깊어지는
이사가 끊이지 않는 곳
살아가기보다
그냥 살아지는 곳.
종이쯤이야
종이를 얕잡아 보다
손가락을 베였다
고정관념은 굳은살처럼 보였지만
피를 흘렸다
우리 머릿속에
무시해도 좋고
얕잡아 보아도 꺼릴 것이 없는
종이쯤이야 하는 생각
모기 같기도 하고
하루살이 같기도 하고
멸치 같기도 한
그런 생각
지갑에 지폐처럼 잘 들어 있다가
무의식중에 툭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노숙자를 바라보거나
걸인 앞을 지날 때
나보다 못한 사람이
불쑥 찾아와 손을 벌릴 때
다 지나간 일이었지만
거기서
피가 흘렀다.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3
-조선례 할머니
수많은 농작물을 심어 봤지만
수많은 한숨을
고랑마다 심어 봤지만
쓰러진 벼들을 보며
우리도 함께 쉽게
무너지기도 참 많이 했다만
나라가 하는 일이라면
눈 한번 크게 안 뜨고
황소처럼 그저 일만 했다만
쌀 미(米) 자 같은 여든여덟 살을 먹고 본께
촛불 농사도
지어 보는구나
이게 이 생애 마지막 농사라 생각한께
지금까지 지은 어느 농사보다
애착이 가고
우리들 목숨이 불타고 있다고 생각한께
모진 바람 불어 꺼질세라
내 속에 있는 한을
꺼내서 다 태우고 갈랍니다
이 촛불 농사는
나 살아생전 추수할지 모르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 마지막까지도
지어야 합니다
두고두고 나라를 살리는 일인께로
생애 마지막 두 눈 한번 부릅떠 볼랍니다.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4
-정태화 할아버지
농사가
노인네들에게는
효자이고 보약이지요
군인들이 논을 점거하고 있어서
그쪽만 쳐다봐도
삭신이 와그르 무너져 내리다가도
어디 텃밭에다가
고추 모종이나 아주 작은 곡물을 심으려고
몸을 움직이면
온갖 어긋난 뼈들이 노래가 되네요
온 마을이 조그만 텃밭으로 다 모이네요
경로잔치를 벌여 주네요
오늘은 담배 가게 옆
텃밭이 효자가 되네요
어깨도 주물러 주고
허리도 자근자근 밟아주고
고랑 고랑마다 씨앗이 뿌려질 때마다
온몸들이 바로 펴지네요
담배 사러 갈 때마다
너무 작아서 성에도 안 찬 텃밭이었는데
노인네들 빽빽이 앉아서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네요
우리 노인들 몸에 어느새 살맛이
새싹으로 돋아나네요.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4
-김지태 이장
보미싼원
홍농계
황새울…
너희들에게는
휴지 조각 같은 이름인 줄 모르겠지만
그 이름에서
폭격기가 날아간다고 생각하니
꿈에서라도 치가 떨린다
보미싼원이 날아가
아시아 어느 국가를 때리고
홍농계가 날아가
아랍 국가 어디를 때리고
황새울이 날아가
동족의 심장을 때린다고 생각하니
우리가 고작
우리 마음에서
폭격기를 띄우려고
맨손으로 들판을 만들었던가
우리는 맨손으로 들판을 만들었듯
우리의 자랑스런 이름들을
폭격기로 내줄 수 없다
너희의 자랑스런 최첨단 무기조차도
개간해서
곡식을 꼭 심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런 맨손이 있다.
시금치 학교
어머니는 시금치 밭에 늘
앉아 계시는 거로 우리 형제들을 가르쳤습니다
시금치라는 것이 먹어 보면
아무 맛도 안 납니다
그러나 김밥에라도
한번 빠져 보세요
소시지 계란 등이 들어 있다 치더라도
김밥 맛이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김밥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에다가
자식들이 그렇게 되길 바랐나 봅니다
우격다짐으로 배운 게 우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어머니는 시금치 밭에
노상 앉아만 계셨어요
어머니의 수업은 파란 시금치 밭
여기저기서 바람들과 천진난만하게 노는
시금치 잎사귀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지만
밭 가생이에 잔돌 탑을
수북하게 쌓아 놓는 것만 봐도
어머니가 매일 반복하는 수업이더라도
얼마나 정성들여 준비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어머니가 교과서에 골고루 밑줄 쳐
놓았듯이 우리 형제들은 골고루 그
밑줄을 읽고 자랐습니다
밑줄에서 남을 억누르지 않는 몸가빔이
시금치처럼 올라옵니다
다들 오셔서 먹을 만큼씩만 뜯어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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