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황영찬

Tag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today
  • yesterday
2013. 10. 10. 08:53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09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유고시집, 김덕용 그림

2008, 마로니에북스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22467

 

811.6

박14ㅂ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본문 <옛날의 그 집> 중에서

 

산다는 것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옛날의 그 집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횡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홍합

 

통영 항구의 동춘 끝을 지나고

해명 나루 지나고

작은 통통배

용화산 뒤편을 휘돌아 가니

첫개라는 어촌이 있었다

인가가 몇 채나 되는지 희미해진 기억

푸른 보석 같은 물빛만은

지금도 눈에 어린다

 

친지 집에서는 내가 왔다고

큰 가마솥 그득히 홍합을 삶아 내어

둘러앉아서 까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던 홍합

그때처럼 맛있는 홍합은

이후 먹어 본 적이 없다

 

내 나이 열두 살이나 되었을까?

어린 손님은

큰집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잠은 작은집에서 잤는데

아제씨는 여장에 가고 없었다

호리낭창한 미인 형의 아지매는

병색이 짙어 보였다

 

한밤중에

갑자기 두런거리는 소리가 났다

집 안에 불이 밝혀지고

발자욱 소리도 들려왔다

덩달아 파도 소리도 들려왔다

알고 보니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것

 

날이 밝고 보다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폐결핵인 아지매의 약으로

고양이 새끼의 탯줄이 필요했고

아지매는 고양이를 달래고 달래어

탯줄을 얻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이냐고도 했다

 

첫개라는 어촌의 하룻밤

홍합과 아지매와 고양이

얼마 후 나는

아제씨가 상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느질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짜투리 시간

특히 잠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 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천성

 

남이 싫어하는 짓을 나는 안했다

결벽증,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내가 싫은 일도 나는 하지 않았다

못된 오만과 이기심이었을 것이다

 

나를 반기지 않는 친척이나 친구 집에는

발걸음을 끊었다

자식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싫은 일에 대한 병적인 거부는

의지보다 감정이 강하여 어쩔 수 없었다

이 경우 자식들은 예외였다

 

그와 같은 연고로

사람 관계가 어려웠고 살기가 힘들었다

 

만약에 내가

천성을 바꾸어

남이 싫어하는 짓도 하고

내가 싫은 일도 하고

그랫으면 살기가 좀 편안했을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삶은 훨씬 더 고달팠을 것이며

지레 지쳐서 명줄이 줄었을 것이다

 

이제 내 인생은 거의 다 가고

감정의 탄력도 느슨해져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무덤덤하며

가진 것이 많다 하기는 어려우나

빚진 것도 빚 받은 것도 없어 홀가분하고

외로움에도 이력이 나서 견딜 만하다

 

그러나 내 삶이

내 탓만은 아닌 것을 나는 안다

어쩌다가 글 쓰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고

고도와도 같고 암실과도 같은 공간

그곳이 길이 되어 주었고

스승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나를 지켜 주었다

 

한 가지 변명을 한다면

공개적으로 내지른 싫은 소리 쓴 소리,

그거야 글쎄

내 개인적인 일이 아니지 않은가

우주 만상 속의 당신

 

내 영혼이

의지할 곳 없어 항간을 떠돌고 있을 때

당신께서는

산간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뱀처럼 배를 깔고 갈밭을 헤맬 때

당신께서는

산마루 헐벗은 바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생사를 넘나드는 미친 바람 속을

질주하며 울부짖었을 때

당신께서는 여전히

풀숲 들꽃 옆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진작에 내가 갓어야 했습니다

당신 곁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찔레덩쿨을 헤치고

피 흐르는 맨발로라도

 

백발이 되어

이제 겨우 겨우 당도하니

당신은 아니 먼 곳에 계십니다

절절히 당신을 바라보면서도

아직

한 발은 사파에 묻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어머니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 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 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희한

불효막심의 형벌로서

이렇게 나를 놓아주지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가을

 

방이 아무도 없는 사거리 같다

뭣이 어떻게 삐져나간 걸까

솜털같이 노니는 문살의 햇빛

 

조약돌 타고 흐르는 물소리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그러고 있다

세월 밖으로 내가 쫓겨난 걸까

 

창밖의 저만큼 보인다

칡넝쿨이 붕대같이 감아 올라간 나무 한 그루

같이 살자는 건지 숨통을 막자는 건지

 

사방에서 숭숭 바람이 스며든다

낙엽을 말아 올리는 스산한 거리

담뱃불 끄고 일어선 사내가 떠나간다

 

막바지의 몸부림인가

이별의 포한인가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하는

 

원죄로 인한 결실이여

아아 가을은 풍요로우면서도

참혹한 계절이다 이별의 계절이다

 

까치설

 

섣달그믐 날, 어제도 그러했지만

오늘 정월 초하루 아침에도

회촌 골짜기는 너무 조용하다

까치는 모두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없다

푸짐한 설음식 냄새 따라

아랫마을로 출타중인가

 

차례를 지내거나 고사를 하고 나면

터줏대감인지 거릿귀신인지

여하튼 그들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골고루 채판에 담아서

마당이나 담장 위에 내놓던

풍습을 보며 나는 자랐다

 

까치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음식 내놓을 마당도 없는 아파트 천지

문이란 문은 굳게 닫아 놨고

어디서 뭘 얻어먹겠다고

까치설이 아직 잇기나 한가

 

산야와 논두렁 밭두렁 거리마다

빈 병 쇠붙이 하나 종이 한 조각

찾아볼 수 없었고

어쩌다가 곡식 한 알갱이 떨어져 있으면

그것은 새들의 차지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목이 메이게 척박했던 시절

그래도 나누어 먹고 살았는데

 

음식이 썩어 나고

음식 쓰레기가 연간 수천 억이라지만

비닐에 꽁꽁 싸이고 또 땅에 묻히고

배고픈 새들 짐승들

그림의 떡, 그림의 떡이라

아아 풍요로움의 비정함이여

정월 초하루

회촌 골짜기는 너무 조용하다

 

 

장마 그친 뒤

또랑의 물 흐르는 소리 가늘어지고

달은 소나무 사이에 걸려 있는데

어쩌자고 풀벌레는 저리 울어 쌓는가

저승으로 간 넋들을 불러내노라

쉬지 않고 구슬피 울어 쌓는가

 

그도 생명을 받았으니 우는 것일 게다

짝을 부르노라 울고

새끼들 안부 묻노라 울고

병들어서 괴로워하며 울고

배가 고파서 울고

죽음의 예감, 못다한 한 때문에 울고

다 넋이 있어서 우는 것일 게다

울고 있기에 넋이 있는 것일 게다

 

사람아 사람아

제일 큰 은총 받고도

가장 죄가 많은 사람아

소녀시절 박경리의 모습(왼쪽)

진주여고 졸업반이던 1944년 기숙사 연극 발표회에 참여한 박경리.(사진 왼쪽 끝)

사진을 제공한 박산매 시인은 "연극 대본도 직접 쓸 만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졸업을 앞두고 친구인 박산매 시인에게 "졸업해도 서로 잊지 말자"며 노트에 그려준 그림.

그림의 주인공은 상상의 인물로, 여고생 박경리의 소녀적 감성을 엿보게 한다.

서른두 살 때 모습

옛날의 그 집(현 원주 토지문화공원)

토지문화관과 자택

 

 

 

 

 

posted by 황영찬
2013. 10. 8. 15:14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08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지음

2005, 솔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0130

 

650.4

오76옛 1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과 사고의 틀을

제시한 친절하고 깊이 있는 문화재 안내서!

 

훌륭한 예술품에는 반드시 그것을 만든 사람의 훌륭한 정신이 깃들어 잇고 그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술품을 통하여 사람과 시대의 정신을 만납니다. 예술과 정신과 삶이 하나인 예술품만이 영원한 생명력을 지니며 마력처럼 그 세계 안으로 우리를 끌어들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것을 추체험追體驗이라 부릅니다. 오주석 선생은 조선시대의 그림들을 격조 높게 풀어나가면서 어떻게 할지 머뭇거리는 우리를 그러한 영원의 세계 안으로 인도합니다.

강우방(이화여대 미술사학과 초빙교수)

 

오주석吳柱錫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그리고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히였다.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강연을 펼쳤던 그는, 2005년 2월 백혈병으로 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단원 김홍도』『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우리 문화의 황금기-진경시대』 등이 있다.

 

"옛 그림 속에는 역사가 있다. 다치지 않은 옛 그대로의 자연이 있고, 그것을 보는 옛사람들의 눈길과 그들의 어진 마음자리가 담겨 있다. 한마디로 옛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이다. 또한 옛 그림은 아련한 지난 세월의 향내를 지니고 있다. 그것을 아꼈던 많은 아들의 고상한 입김과 정성스런 손때가 묻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작품을 그린 화가라는 한 인격체의 독특한 빛깔로 물들여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그림에서 한 분의 그리운 옛 조상을 만날 수 있다."

 

차례

 

책을 펴내며

 

1 호방한 선線 속의 선禪  김명국의 <달마상>

---옛 그림의 색채

2 잔잔하게 번지는 삼매경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3 꿈길을 따라서  안견의 <몽유도원도>

---옛 그림의 원근법

4 미완의 비장미  윤두서의 <자화상>

5 음악과 문학의 만남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옛 그림의 여백

6 군자의 큰 기쁨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7 추운 시절의 그림  김정희의 <세한도>

---옛 그림 읽기

8 누가 누가 이기나  김시의 <동자견려도>

9 들썩거리는 서민의 신명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

---옛 그림 보는 법

10 올곧은 선비의 자화상  이인상의 <설송도>

11 노시인의 초상화  정선의 <인왕제색도>

---옛 그림에 깃든 마음

 

<달마상達磨像>

김명국金明國(1600~1662 이후), 종이에 수묵, 83×58.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명국의 <달마상>에는 색色이 없다. 먹의 선線, 그것은 형태이기 이전에 하나의 정신의 흐름이기 때문에 사물의 존재적 속성의 대명사인 색깔은 껴앉을 자리가 없었다. 색이 필요하지도 않았지만 거기에 색을 칠할 수도 없었다.

 

선과 선 사이로 하나의 매서운 기운이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이른바 필획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진다는 '필단의연筆斷意連'

옷주름 선뿐만 아니라 얼굴선,

관서 글씨의 선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이 호쾌한 선들을 관통하는 기氣의 주인은 김명국인가, 달마인가?

 

<달마상> 낙관 세부

 

김명국金明國

조선 중기의 화가. 도화서圖畵署 화원을 거쳐 사학 교수를 지내다가 1636년과 1643년 두 차례나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인물 · 수석水石에 독창적인 화법을 구사하였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를 비롯하여 <심산행려도深山行旅圖><노엽달마도蘆葉達磨圖><기려도騎驢圖><관폭도觀瀑圖><투기도鬪碁圖><은사도隱士圖><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등이 있다.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전傳 강희안姜希顔(1417~1464), 종이에 수묵, 23.4×15.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사관수도>는 고요한 그림이다. '고결한 선비가 물을 바라보는 그림'이니 고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바라보는 선비의 시선이 물의 흐름처럼 잔잔하지 않은가? (…) <고사관수도>는 그러나 움직이고 있다. 작품 속의 모든 것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 선비는 한가로움을 얻었다. 딱딱한 바위도 거리끼지 않고

펄퍼덕 엎드려서 팔짱을 끼고 그 위에 자연스레 턱을 괴었다.

선비는 매우 느긋하고 편안하다.

작은 공책만 한 공간은 끝없이 확장되고,

화면의 고요함과 평화로움 속에는

동양철학의 사색이 깃들어 있다.

<고사관수도> 인물 세부

<고사관수도> 도서 세부

 

강희안姜希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화가로서도 유명하지만 학자로서 더 유명하다. 집현전 직제학이라는 벼슬을 지낸 사대부 화가로서, 시와 글씨와 그림에 모두 뛰어나 사서화 삼절이라 불렸다.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은 많지 않은데,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그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화풍을 구사하고 있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안견安堅(1400?~1479?), 1447년 작, 비단에 수묵 담채, 38.6×106.2cm, 일본 천리대학교 도서관 소장.

 

오늘날까지 전하는 조선의 옛 그림 가운데 가장 귀한 작품을 하나만 들라고 하면 -- 물론 매우 비예술적이고 지각없는 질문이긴 하지만 -- 아무래도 <몽유도원도>를 들 수밖에 없다. <몽유도원도>는 한 편의 장대한 교향시다.

 

두루마리를 여는 순간,

우리는 대뜸 펼쳐진 황홀한 무릉도원의 전경에 압도된다.

마치 궁중아악 수제천의 시작을 알리는 박 소리가 그치자

모든 악사들이 일제히 강박 합주로 장엄한 첫 음을 울리는 것처럼,

안개 자욱한 무릉도원은 물결 같은 향기를 온 누리에 퍼뜨리며

화평한 기운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안평대군의 <몽유도원기夢遊桃源記>

 

안견安堅

화원 출신으로 도화원圖畵院 정4품 벼슬인 호군護軍까지 지냈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1447년 그를 위하여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리고 이듬해 <대소가의장도大小駕儀仗圖>를 그렸다.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고 초상화 · 사군자 · 의장도 등에도 능했다. 전칭작품傳稱作品으로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적벽도赤壁圖> 등이 있다.

<몽유도원도>의 무릉도원 세부

무계동武溪洞 각자刻字

<미텔하르니스의 마을길>

흡베마(1638~1709), 캔버스에 유채, 103.5×141cm, 런던국립회화관 소장.

<자화상自畵像>

윤두서尹斗緖(1668~1715), 종이에 담채, 38.5×20.5cm, 국보 240호, 개인 소장

 

<자화상>을 바라보는 나는, 이를테면 그림 속의 윤두서와 그것을 그리는 또 하나의 윤두서, 그 두 사람으로부터 동시에 철저하게 소외되어 잇다. 나는 그려진 윤두서의 고요함 속으로도, 그린 윤두서의 강한 의지 속으로도 들어갈 수 없다. 윤두서가 나지막이 윤두서에게 말을 건넨다. 너는 누구인가, 네가 나인가, 너는 도대체 어떠한 사람인가…….

 

여섯 자도 되지 않는 몸으로 온 세상을 초월하려는 뜻을 지녔구나!

긴 수염 나부끼고 안색은 붉고 윤택하니,

보는 사람들은 그가 도사나 검객이 아닌가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진실하게 삼가고 물러서서 겸양하는 풍모는

역시 홀로 행실을 가다듬는 군자라고 하기에 부끄러움이 없다.

옛 사진 속의 윤두서 <자화상>

 

윤두서尹斗緖

젊어서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시서생활로 일생을 보냈으며 시 · 서 · 화에 두루 능했다고 한다. 특히 인물화와 말을 잘 그렸는데, 산수화를 비롯한 일반 회화작품은 대체로 조선 중기의 화풍을 바탕으로 한 전통성이 강한 화풍을 보이고 있다. 유작으로는 60여 점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는 <해남윤씨가전고화첩>을 비롯하여, <노승도老僧圖> <출렵도出獵圖> <백마도白馬圖> <우마도권牛馬圖卷> <심산지록도深山芝鹿圖> 등이 전한다.

<심득경沈得經 초상>

윤두서, 비단에 채색, 160.3×87.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짚신 삼는 사람>

윤두서, 삼베에 수묵, 32.4×21.1cm, 개인 소장.

<황현黃玹 초상>

채용신蔡龍臣(1850~1941), 비단에 채색, 94×65.5cm, 개인 소장.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

김홍도, 종이에 수묵 담채, 164×76cm, 개인 소장.

 

만약 하늘이 꿈속에서나마 소원하는 옛 그림 한 점을 가질 수 있는 복을 준다고 하면 나는 <주상관매도>를 고르고 싶다. 이 작품의 넉넉한 여백 속에서 시성 두보의 시름 섞인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뿐 아니라, 늙은 김홍도 그분의 풍류로운 모습을 아련하게 느낄 수 있으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옛 음악의 가락까지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봄 물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가 하늘이요 하늘 위가 물이로다.

이중에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단원도檀園圖>

김홍도金弘道(1745~1806?), 종이에 수묵 담채, 135.3×78.5cm, 개인 소장.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김홍도, 종이에 수묵 담채, 27.9×37cm, 개인 소장

<월하취생도月下吹笙圖>

김홍도, 종이에 수묵 담채, 23.2×27.8cm, 간송미술관 소장.

<선동취적도仙童吹笛圖>

김홍도, 비단에 채색, 130.7×57.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시구詩句>

김홍도, 비단에 묵서, 25.7×19.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백법留白法을 적용한 김유성金有聲(1725~?)의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

종이에 수묵, 42.1×29.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진단타려도陳摶墮驢圖>

윤두서, 비단에 채색, 111.0×68.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윤두서는 고사 속의 인물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면서도 넓은 길이 한중간에서 꺾여나가도록 하고 그 끝을 아득하게 여백 처리함으로써 이제부터는 오래도록 온 천하가 평화로우리라는 희망을 암시하였다.

 

희이선생 무슨 일로 갑자기 안장에서 떨어졌나.

취함도 아니요 졸음도 아니니 따로 기쁨이 있었다네.

협마영에 상서로움 드러나 참된 임금 나왔으니

이제부터 온 천하에 근심 걱정 없으리라.

<숙종의 제시題詩>

선불기종仙佛奇蹤에 실린 진단 삽화.

진단의 얼굴 세부.

인물과 당나귀 세부.

<세한도歲寒圖>

김정희金正喜(1786~1856), 종이에 수묵, 23.7×61.2cm, 국보 180호, 개인 소장.

 

<세한도>는 꿋꿋이 역경을 견뎌내는 선비의 올곧고 견정堅定한 의지가 있다. 메마른 붓으로 반듯하게 이끌어간 묵선墨線은 조금도 허둥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차분하고 단정하다고 할 정도다. 초라함이 어디에 있는가? 자기 연민이 어디에 있는가?

 

석 자 종이 위에 몇 번의 마른 붓질이 쓸고 지나간 흔적에 지나지 않는 그림.

그러나 거기에는 세상의 매운 인정과 그로 인한 쓸쓸함,

고독, 선비의 굳센 의지, 옛사람의 고마운 정, 그리고

허망한 바람에 이르기까지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세한도>를 문인화의 정수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한도>의 화발畵跋.

<춘풍추수春風秋水>

김정희, 종이에 묵서, 각 폭 130.5×29cm, 간송미술관 소장.

<침계梣溪>

김정희, 종이에 수묵, 42.8×122.7cm, 간송미술관 소장.

우리 옛 악보인 <정간보井間譜>

<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

김시金禔(1524~1593), 비단에 채색, 111×46cm, 보물 783호, 호암미술관 소장.

 

김시에게는 <동자견려도>가 있다. 작품의 됨됨이가 매우 깔끔하고 구도 역시 뚝떨어진 것이어서 이 역시 그의 마음이 화창하고 밝은 상태에서 제작한 걸작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소년과 고집 센 나귀의 힘겨루기.

끙끙거리는 동자의 모양새가 애처롭고, 저를 해치려는 것도 아닌데

꼬리를 드리우고 뒤로 움츠러들기만 하는 나귀가 딱하기도 하다.

저러다 동자가 그만 개울에 떨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좋은 꾀를 못 내고 억지힘만 쓰는 꼴이 우습기도 한데,

이들을 둘러싼 경치는 아랑곳없이 그저 조는 듯 무심하고 곱기만 하다.

<동자견려도> 세부.

 

김시金禔

조선 중기의 문인화가. 산수 · 인물 · 우마牛馬 · 화조 등 여러 분야의 그림에 뛰어난 자질을 보여 당시 최립崔笠의 문장. 한호韓濩의 글씨, 그의 그림을 일컬어 삼절三絶이라 하였다. 유작으로는 <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 <매조문향도梅鳥聞香圖> <선록완월도仙鹿翫月圖> <하산모우도夏山暮雨圖> 등이 전한다.

<이항복 초상>

작자 미상, 종이에 수묵 담채, 59.5×35cm,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씨름>

김홍도, 종이에 수묵 담채, 27.0×22.7cm, 보물 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씨름>은 공책만 한 작은 화첩에 스물두 명이나 그려져 있고, 게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제각기 다른 표정에 다른 자세를 하고 잇다. 이 작품이 척척 그려낸 스케치풍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화가라면 그려낼 수 없으리라고 판단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씨름판은 흥분과 초조로 서로 엇갈리며 점차 최고조를 향해 가는데

그 와중에도 단 한 사람 여유 만만한 이가 있었으니,

씨름꾼과 등을 진 채 목판을 둘러맨 떠꺼머리 엿장수가 그 사람이다.

씨름꾼 세부.

<무동舞童>

김홍도, 종이에 수묵, 27.0×22.7cm, 보물 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무동>의 원형 구도는 화가가 운영한 뛰어난 화면 구성이 아닐 수 없다. 방사선 구도의 원심적인 요소가 신명 넘치는 우리 옛 가락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조성했다면, 원형 구도 자체로는 둥글게 둥글게 넘어 가며, 듣는 이를 하나로 묶어내는 우리 옛 장단의 멋을 참으로 잘도 재현해냈다.

 

북, 장구에 피리 둘, 대금, 해금까지 여섯 악기가 한데 어울려

한바탕 흥겨운 가락을 몰아가니,

잘생긴 무동 아이는 덩실덩실 소매를 펄럭이며 걸지게도 춤을 춘다.

춤추는 아이 세부.

<설송도雪松圖>

이인상李麟祥(1710~1760), 종이에 수묵, 117.4×5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설송도>는 짐짓 보는 이를 전제하지 않고 혼자 그저 그려본 듯한 경계를 표방하며, 나를 알아달라고 남을 설득하려는 듯한 재주를 드러내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인상은 담담한 의취意趣를 화면 위에 은은하게 띄워본 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비 오는 날 홀로 거문고 정악곡을 뜯어보는 마음과 완전히 같은 것일 게다.

 

소나무와 바위는 한갓 자연의 일부분이 아닌, 인간 이인상의 자화상이다.

백설을 이고 선 늙은 소나무가 이인상의 높은 절개를 상징한다면,

날카롭게 결이 진 바위는 그대로

'얼음처럼 맑고 쇠처럼 단단한 마음' 그것이다.

저 늠름함과 굳셈으로 소나무와 바위는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의리의 마땅함이 어떠한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인상 초상>

작자 미상, 종이에 수묵 담채, 51.1×3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상李麟祥

조선 후기의 서화가. 시 · 서 · 화에 능해 삼절三絶이라 했고, 그림에는 산수山水, 글씨에는 전서篆書에 뛰어났으며, 인장印章도 잘 새겼다. 저서에 『능호집』, 그림에 <설송도雪松圖> <노송도老松圖> <산수도山水圖> <옥류동도玉流洞圖> <검선도劍仙圖> <송석도松石圖>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 <한림수석도寒林秀石圖> 등이 있고, 글씨에 <대사성김식표大司成金湜表>가 전한다.

<설송도> 나뭇가지 세부.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정선鄭敾(1676~1759), 1751년 76세 작, 종이에 수묵, 79.2×138.2cm, 국보 216호, 호암미술관 소장.

 

<인왕제색도>는 진경산수화를 완성한 대가 겸재 정선이 일흔여섯 살의 고령에 그려낸 거작이다. 화필畵筆을 잡은 지 어언 60년, 그야말로 써서 닳아버린 몽당붓이 쌓여서 무덤을 이루었다고 하는 노화가의 원숙기에 작가만의 내밀한 심의心意를 더하여 이루어낸 걸작이 바로 <인왕제색도>다.

 

임종을 앞에 둔 60년 지기知己를 위해

칠순 노인 정선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려낸 작품 <인왕제색도>.

궂은 날씨 속에서 사경을 헤매는 벗을 생각하며

그는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조급한 마음으로,

이제 막 물안개가 피어올라 개어가는 인왕산처럼

이병연이 하루빨리 병석을 털고 일어날 것을 빌며 작품을 완성했던 것이다.

그 안개에 희망처럼 보일 듯 말 듯한 푸른 먹빛이 배어 있다.

<인왕산도仁王山圖>

강희언姜熙彦(1738~1782), 종이에 수묵 담채, 24.6×42.6cm, 개인 소장.

 

정선鄭敾

조선 후기의 화가. 중국 남화南畵에서 출발하였으나 30세를 전후하여 조선 산수화山水畵의 독자적 특징을 살린 사생寫生의 진경화眞景畵로 전환하였으며, 여행을 즐겨 전국의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주요 작품으로는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금강전도金剛全圖> <박연폭朴淵瀑>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 등이 있다.

<금강전도金剛全圖>

정선, 1734년 59세 작, 종이에 수묵 담채, 130.7×94.1cm, 국보 217호, 호암미술관 소장.

<시화상간도詩畵相看圖>

정선, 1740~41년 65~66세 작, 비단에 채색, 29.0×26.4cm, 간송미술관 소장. 

 

 

 

 

 

posted by 황영찬
2013. 10. 8. 09:16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07  한국의 자생란

 

글, 사진 / 김수남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솬

EM023107

 

082

빛12ㄷ  184

 

빛깔있는 책들 184

 

김수남-------------------------------------------------------------------------

1959년 경기 남양주에서 태어났다. 1980년 인천 교대를 졸업하고 장현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다. 난초와 관련된 작품으로 37회와 40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특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식물분류학회 회원, 한국식물연구회 회원으로 있다. 논문으로는 「한국산 난초과 식물의 분포 및 생태학적 고찰」, 「무엽란의 분포와 생태에 관한 연구」, 「경인 지방의 난초와 식물」, 「보춘화의 분포를 제한하는 환경 요인」, 「제주 한라산에서의 수직 고도에 따른 난초과 식물의 분포와 생태」, 「백운란속의 분포와 생태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난초과 개요

한국의 자생란

    동휴면 낙엽성 지생종

    하휴면 낙엽성 지생종

    상록성 지생종

    무엽성 부생종

    상록성 착생종

부록 1. 한국산 난초과 목록

       2. 용어 해설

참고 문헌

개불알꽃

털개불알꽃

광릉요강꽃

해오라비난초

잠자리난초

방울난초

손바닥난초

주름제비란

구름병아리난초

나도제비란

북방나비난초

병아리난초

나도잠자리란

큰나도잠자리란

개제비란

포태제비란

씨눈난초

나도씨눈란

큰제비란

산제비란

애기제비란

제비난초

갈매기난초

흰제비란

큰방울새란

방울새란

쌍잎난초

닭의난초

청닭의난초

금난초

은난초

꼬마은난초

은대난초

김의난초

이삭단엽란

자란

한라옥잠난초

옥잠난초

나나벌이난초

나리난초

키다리난초

참나리난초

타래난초

풍선난초

비비추난초

약난초

두잎약난초

감자난초

한라감자난초

섬사철란

애기사철란

한국사철란

자주사철란

줄무늬사철란

사철란

붉은사철란

백운란

흑난초

여름새우란

새우난초

큰새우난초

금새우난초

죽백란

녹화죽백란

보춘화

한란

구화란

으름난초

천마

한라천마

제주무엽란

애기무엽란

애기천마

산호란

대흥란

차걸이란

콩짜개란

혹난초

석곡

풍란

지네발란

금산자주난초

탐라란

제주난초

나도풍란

 

 

posted by 황영찬
2013. 10. 5. 13:33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06-1 그림 속에 노닐다

 

《경교명승첩》 중 <양화환도도>

정선, 1740, 비단에 채색, 29.2×23cm, 간송미술관 소장.

 

앞에 손님 배 불러가니

뒤 손님은 배 돌려라 하네

우습구나 양화나루

뜬구름 같은 삶 가고 또 오네

 

 

구한말 박정양 주미 전권공사가 휴대 했던 태극기(위)와 지금 태극기(아래)

김구(1876~1949)

독립운동가.

윤동주(1917~1945)

일제강점기에 짧게 살다간 젊은 시인.

<금강전도>

정선, 종이에 수묵담채, 130.7×94.1cm, 국보 217호, 호암미술관 소장.

<군선도>

김홍도, 1776, 종이에 수묵담채, 132.8×575.8cm, 국보 139호, 호암미술관 소장.

<인왕제색도>

정선, 1751, 수묵담채, 79.2×138.2cm, 국보 216호, 호암미술관 소장.

<귀거래도>

전기, 1853, 수묵담채, 109.0×34.0cm, 호암미술관 소장.

<세한도>

김정희, 1844, 종이에 수묵, 23.7×61.2cm, 국보 180호, 개인 소장.

<화성전도>

《화성성역의궤》에 실린 화성전경도. 신도시와 주요 시설물의 형태 및 이름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정조대왕이 쓴 <임지로 떠나는 철옹부사에게贈鐵甕府伯赴任之行>

1799, 201.8×73.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강세황 자화상>

1782, 비단에 채색, 88.7×51cm, 보물 590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진주 강씨 백각공파 기탁>.

<이필중 묘갈李必重墓碣> (부분)

1764, 지본묵탁, 한신대학교박물관 소장.

조현명趙顯命(1690~1752)이 짓고, 조윤형이 쓴 글씨.

<현륭원 문인석>

1789년, 정조대왕이 부친인 사도세자를 잊지 못해 곁에서 항상 모시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문인석을 만들게 했다.

<채제공 초상>(부분)

이명기, 1791, 비단에 채색, 121.0×80.5cm, 개인 소장.

 

 

 

 

 

 

posted by 황영찬
2013. 10. 5. 10:04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06 그림 속에 노닐다

 

오주석의 讀畵隨筆

2008, 솔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25190

 

650.4

오76ㄱ

 

전시실에서 감상하는 모습을 보면 바로 보는 이가 의외로 적다.

작품보다 설명을 더 오래 보는 사람, 남에게 열심히 해설하느라 정작 자신은 못 보는 사람,

감상 시간을 작품 숫자로 나누어 정확히 몇 분마다 옮아가며 보는 사람까지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단 한 점을 보더라도 마음에 와 닿는 작품과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의 격조란 정확히 감상자의 수준과 자세만큼 올라간다.

저 게으름뱅이 시인처럼 마냥 느긋해 할 수 있을 때에만 훌륭한 예술품은 그 고갱이를 드러낸다.

사실 시인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마음이 넉넉했다.

미美의 관조란 결국 마음의 관조인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오주석 吳柱錫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중앙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간송미술관 · 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을 지냈다.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강연을 펼쳤으며, 2005년 2월 지병으로 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단원 김홍도》《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 2》《우리 문화의 황금기-진경시대》(공저)《이인문의 강산무진도》 등이 있다.

김홍도 作, <송하선인취생도>

김홍도 作, <주상관매도>

 

차례

 

간행사 하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_강우방

 

1부 | 바로 보기 어려움

바로 보기의 어려움 1

바로 보기의 어려움 2

옛 그림에 깃든 마음

조선 국왕은 참여예술가였다

역원근법에 깃든 마음

미켈란젤리와 이인상

 

2부 | 옛 그림 읽기

'한국인의 얼굴' 왜 포기하나

일본 표구에 갇힌 <송하맹호도>

'그대 마음'만큼만 보이리

'돈' 빼고 '빈 마음'으로 보라

'음양 조화' 깨져 있는 태극기

예술품은 시대의 '거울'

지폐 속 위인들의 '가면'

우리는 역사 앞에 떳떳한가

예술에도 국경이 있더라

국악가락 닮은 우리 산하

<세한도>에 밴 사제의 정

문화재의 '싸구려 거래'

 

3부 | 어처구니를 찾아서

천덕꾸러기 겨레 문화

어떤 것들은 그대로 남겨둘 때 가장 잘 간직된다

찢어진 태극기

 

4부 | 정조대왕을 기리는 마음

<정조대왕 서거 200주년 추모전>을 열면서

정조어필

명신명필

집자비문

화성유적

<정조대왕 서거 200주년 추모전> 마무리에

 

5부 | 낙숫물 소리 듣는 행복

멘델스존과 김홍도

기타와 거문고

수원 만두집 아저씨

멋지고 의리 있는 도적 이야기 《수호전》

한 순간도 가볍지 않게

낙숫물 소리 듣는 행복

 

추모글 | 오주석을 기리며

미완의 대기, 오주석_강우방 / 외우 오주석을 추모함_민병훈 / 오주석을 기억하며_유봉학 / 학문의 도반, 오주석-그와 함께한 기쁜 순간들_이원복 / 인왕산이 참 좋지요_이광표

 

편집후기 《그림 속에 노닐다》를 펴내며_임우기

<전 이재 초상>

작가 미상, 비단에 채색, 97.9×56.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채 초상>

작가 미상, 1802, 비단에 채색, 99.2×58.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모계영자도>

변상벽, 비단에 수묵담채, 94.4×44.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월하정인도>

신윤복, 지본채색, 28.3×35.2cm, 국보 135호, 간송미술관 소장.

 

정월 대보름 저녁[上元夕]

 

땅 생김새 따라서 높고 낮지요

하늘 때가 저절로 이르거나 늦지요

사람들 말 무엇하러 신경쓰나요

밝은 달은 본래가 사사롭지 않아요

高低隨地勢 早晩自天時 人言何足恤 明月本無私

-조선 중기의 명신名臣 김인후金麟厚(1510~1560)가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정월 대보름 달을 보고 지은 오언절구 시

<일월오봉병>

작가 미상, 종이에 채색, 162.6×337.4cm, 호암미술관 소장.

<빛의 제국>

르네 마그리트, 1954, 캔버스에 유화, 146×113.7cm, 브뤼셀, 벨기에왕립미술관 소장.

ⓒRene Magritte / ADAGP, Paris-SACK, Seoul, 2008

<주방도廚房圖>(부분)

고구려시대(4세기),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 안악3호분 앞방 동측실 동벽.

<이현보 상 李賢輔像>

옥준상인玉峻上人, 조선 16세기, 비단에 채색, 130×95cm, 보물 제872호, 개인 소장.

<이인상 초상>

작가 미상, 종이에 수묵 담채, 51.1×3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남쪽 바다 산호 가지야 꺾여진들 어떠하리

오늘밤 구중궁궐이 춥지 않을까 걱정일세

南海珊瑚折奈何 秖恐今宵玉樓寒

<마상청앵도>

김홍도, 종이에 수묵담채, 117.2×52.2cm, 간송미술관 소장.

<송하맹호도> (표구를 포함한 전체 모습)

김홍도, 비단에 채색, 90.4×43.8cm, 호암미술관 소장.

<송하맹호도>

 

너무 게을러서 《노자》를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道는 책 속에 없으니까

게을러서 경전을 읽지 않는다. 경전 역시 도보다 깊지 않으니까

게을러 시도 읽지 않는다. 읽기를 마치면 시가 달아나니까

게을러 술도 안 마신다. 세상사 이미 모두 술 밖에 읶으니

게을러 바둑도 두지 않는다. 이기고 지는 것은 다 밖에 있으니

게을러 경치도 보지 않는다. 마음속에 벌써 그림이 있으니

게을러 바람 쐬고 달 볼 일 없다. 신선이 이미 내 마음 속에 있으니…….

 

 

 

 

'내가 읽은 책들 > 2013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107 한국의 자생란  (0) 2013.10.08
2013-106-1 그림 속에 노닐다  (0) 2013.10.05
2013-105 오대산  (0) 2013.10.04
2013-104 우리는 사랑일까  (0) 2013.10.02
2013-103 독도  (0) 2013.09.30
posted by 황영찬
2013. 10. 4. 09:29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05  오대산

 

글 / 박용수●사진 / 손재식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06

 

082

빛12ㄷ  183

 

빛깔있는 책들 183

 

박용수-------------------------------------------------------------------------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다. 1987년과 1989년에 KBS방송문학상과 『문학정신』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1991년에 단국문학상을 받았으며 작품집으로 『유언의 땅』(문학과지성사) 등이 있다. 현재는 창작활동을 하면서 우리 국토와 문화에 관한 연구를 하는 백두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리관련서로는 『백두대간』과 『산경표』 해설서를 출간하였으며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한국산서회 회원이다.

 

손재식-------------------------------------------------------------------------

신구전문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대림산업과 대원사 사진부 등에서 근무하였고 「빛깔있는 책들」 가운데 전통 문화 및 자연 시리즈 10여 권의 사진을 찍었다.

 

|차례|

 

책 머리에

개관

불교 성지로서의 오대산

오대산의 유적과 문화재

시문학에 나타난 오대산

청학동 소금강

방아다리약수와 여러 명소들

오대산 산행 안내

참고 문헌

얼레지  오대산 골짜기나 숲 속의 나무 그늘에서 잘 자란다. 이른봄에 보라색 꽃이 피는 백합과의 다년생초이다.

동의나물  4~5월에 황색 꽃이 피는 미나리아제비과의 다년생초로 주로 습지에서 볼 수 있다.

덩굴개별꽃  5~6월경 흰 꽃이 피는 다년생초로 주로 산의 나무 밑에서 자란다.

노랑제비꽃  이른봄 햇빛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 풀밭에서 볼 수 있다. 줄기에서 꽃대가 나와 노란 꽃이 피는 게 특이하다.

꿩의바람꽃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흰 꽃이 핀다. 바람이 불어야 꽃이 활짝 핀 것처럼 보인다.

노루귀꽃  개나리나 진달래처럼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꽃은 주로 자주색으로 피는데, 드물게 흰색 또는 분홍색으로 피기도 한다.

관대걸이  세조가 상원사에 참배하러 오는 도중 목욕을 할 때 의관을 벗어 여기에 걸었다고 한다. 관대걸이가 있는 길 건너편 계곡이 세조가 목욕했던 장소라고 전한다.

상원사 고양이상  상원사를 방문한 세조가 고양이의 도움에 의해 죽음을 모면한 후 그 은덕을 기릭 위해 세운 석상이다.

월정사 적광전  신라 자장 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월정사는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이다. 이 적광전 앞뜰의 팔각구층석탑을 중심으로 삼성각, 대강당, 승가학원, 범종각, 요사 등이 빙 둘러 있다.

월정사 부도밭과 전나무 숲  울창한 전나무 숲에 있는 부도들은 대부분 석종형이어서 고려 말 이후 조선시대 고승들의 사리탑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모양이라도 크기는 물론 부도 외곽을 장식한 문양들이 모두 조금씩 다르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화강암으로 축조된 이 탑은 상륜부의 화려한 금동 장식과 위로 올라갈수록 서서히 좁아지는 비례, 이중으로 조성된 기단 등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우수한 석탑으로 평가 받고 있다. 국보 4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조 보살 좌상  적광전 앞의 팔각구층석탑을 향해 무엇인가를 들고 정중하게 공양하는 자세로 오른쪽 무릎을 꿇고 있다. 이 석조 보살 좌상은 턱이 길고 둥글며 눈두덩이가 두껍고 입가에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어 복스럽게 느껴진다. 팔각구층석탑과 함께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강릉 한송사 석조 보살 좌상, 강릉 신복사 터 석조 보살 좌상과 함께 강원도 일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양식의 상이다.

상원사  월정사에서 서북쪽으로 8.7킬로미터 떨어진 비로봉 동남 기슭에 있는 상원사는 월정사의 말사이지만 우리나라 문수 신앙의 중심지이다.

상원사 동종과 비천상  현존하는 우리나라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조각 장식이 뛰어날 뿐만아니라 소리 또한 매우 아름답다.(위) 종 몸체에 양각된 비천상은 흐르는 듯한 구름 무늬나 위로 치솟아 흩날리는 천의 자락의 표현이 생동감 넘쳐, 이 시대 불교 미술의 진수를 보여 주는 듯하다.(아래)

문수동자상  세조가 직접 보았다는 문수동자의 모습을 조각한 목조 좌상으로 1466년 제작되었다. 전체 높이는 98센티미터이며 국보 221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수동자상 복장 유물  1984년 목조 문수동자상 복장에서 발견된 유물로 보물 793호로 일괄 지정되어 있다. 벽에 걸린 것은 세조가 입웠던 저고리러 보이며(위) 이 밖에 『묘법연화경』『대방광불화엄경』 등의 불교 경전과 문수동자상 발원문 등 23종이 전시되어 있다.(아래)

동진보살상  상원사에 모셔진 이 상은 화려한 보관과 정제된 영락을 걸친 모습이다. 85센티미터 크기의 의좌로 신중상이지만 조선시대 목조 불상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는 작품이다.

적멸보궁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 신라 때 자장 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정골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다. 적멸보궁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지방유형문화재 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리탑비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증표로 작은 탑 모양을 새긴 비석으로 적멸보궁 바로 뒤에 있다.

중대 사자암  상원사와 적멸보궁 사이에 위치한 사자암은 문수를 상징하는 사자와 연관되어 지어진 이름의 암자이다.

동대 관음암  관음보살이 상주하는 도량인 동대 관음암은 '동관음암'이라는 현판이 걸린 자그마한 암자이다.

남대 지장암  현재는 비구니들의 수도처로서 지장보살이 상주하고 있다는 암자이다.

서대 수정암  아미타여래의 상주처인 수정암은 도량으로는 특이하게 너와지붕을 하고 있다. 염불암이라고도 한다.

북대 미륵암  상원사에서 북쪽으로 난 큰 길을 따라 4킬로미터 떨어진 상왕봉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복원된 오대산 사고  조선시대 5대 사고 중의 하나로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도중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오대산 사고가 최초로 이곳에 설치된 것은 1606년(선조 39)이었지만 6 · 25 전쟁을 겪으며 주춧돌만 남게 되었다. 선원보각을 비롯한 현재의 건물은 1989년 이후 복원한 것이다.

식당암  수백 명이 들어설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고 판판한 바위로 삼국시대부터 이곳에서 식사를 했던 여러 사연으로 인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구룡폭포  구룡연 계곡을 이루는 마지막 아홉 번째 폭포이다.

연화담  소금강 계곡물과 바위가 빚어낸 아름다운 연못이다. 

「대동여지도」에 표현된 오대산 지역  1861년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 가운데 오대산 지역이다. '오대산'을 중심으로 '상원암'과 '사고' 그리고 '월정사'와 '금강연'이 그 아래에, 오른쪽으로 지금의 청학동 소금강 지역인 '청학산' · '천유동' 등의 지명이 보인다. 한강의 발원지로 일찍부터 중요시되던 '우통수'도 표기되어 있다.

 

진화 「유오대산(遊五臺山)

 

언젠가 그림 속에서 오대산을 볼 때에는

구름 속에 높고 낮은 푸른 산이 있더니

지금 골짜기마다 물 다투어 흐르는 곳에 와서 보니

구름 속에서도 길은 어지럽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노라

 

정추 시 두 편

 

1

금강연 물이 푸르게 일렁거려

갓 위에 묵은 먼지 씻어 낸다

월정사에 가 옛 탑을 보려 하는데

석양에 꽃과 대(竹)가 매우 근심케 한다.

 

2

자장이 지은 옛 절에 문수보살이 있으니

탑 위에 천년 동안 새가 날지 못한다

금전(金殿)은 문 닫았고 향연(香煙)이 싸늘한데

늙은 중은 동냥하러 어디로 갔나.

 

김시습 「오대산」

 

오대산 위에는 오색 구름이 나는데

시냇물 돌 씻는 소리 익히 들어 왔네

세상 사람들 많고 적은 일들 굽어 보았더니

분주하고 구속 많아 돌아감만 못하다 했네

 

원통암(圓通岩) 아래 반야연(般若淵) 물 속에서

활발하게 노는 물고기 떼지어 뒤척거리네

네 우선은 돌아가 볼 것이라

백년 동안 사람의 일은 얽혀 줄줄이 이었다네

 

중대 높은 뫼에 강(講) 하는 때 종소리에

아지랑이 창망(蒼茫)하여 바라봐도 끝이 없네

어느 곳 들중[野僧]이 아직도 도착 못하고

석양의 노을 속에 홀로 지팡이를 끄는가

 

북대엔 사월에도 남은 눈이 쌓였는데

푸른 나물 흰 구리떼 흙을 이고 나오네

나옹대 가에는 높은 구름 떠 있어

높고 깊고 아득하여 측량하기 어려워라

 

서산의 높은 봉우리 의롭게도 끊겼는데

우통(宇筒) 못물은 기운이 맑고 차네

고승(高僧)은 병 가지고 손수 차를 달이고

서방의 극락 세계 부처님께 예배하네

 

산 남쪽은 깎아질러 기린(麒麟)이라 부르는데

들풀 곱고 우거져 기미(氣味)가 순진하네

오대산의 분명한 뜻 다잡아 알려 하면

눈 가운데 동자(瞳子)요 얼굴 앞의 사람일세

 

김시습 「오대산」

 

오대산은 옛날엔 신라 땅이어서

신성(神聖)과 효명9孝明)이 여기서부터 나왔네

성오평9省烏坪)에서는 백관(百官)이 모여서

울부짖어 하늘 보며 길을 막고 울었네

바위 구멍 숲 사이를 모조리 뒤지니

풀 먹으며 해진 옷  형상이 학 같았네

대보 신위(大寶神位)를 대궐 속에 가둘 수 없어

일백 관원들 둘러싸고 군사(君師)로 모시었네

사로(斯盧)의 한 구역에 평생 머물러서

천연 홍업(鴻業) 기초를 여기에다 닦았네

다시 신효(信孝)가 공주(公州)에서 태어나서

학 한 마리 쏜 것이 자비(慈悲)와 인연되었네만

자장은 늙은 문수보살을 알아보지 못해서

거만한 마음 더하여 아주 크게 어리석었네

월정사 터 멀어도 아직 그대로 있어

옛 비석과 보탑(寶塔)이 어찌 그리도 진기한가

나 이제 그대를 보내어 한번 놀게 하는데

그 속에서 두 눈썹을 우선 열어야 하네

오만 개의 산봉우리에 가을달이 나직한데

산마루서 자규(子規)의 울음 익히 들어 왔으리

가을 바람 썰렁하여 쇠잔한 나무 놀라게 하는데

차가운 달이 훤하게 흙 섬돌에 올라서서

역력히 밝았다 때로는 도로 마치는 듯

이끼 무늬 아롱진 곳에 풀이 한창 우거졌네

오대 산경(五臺山境)을 사람이 묻거들랑

십리 길 솔 사이에 토란잎 가지런하다 하소

 

「재유오대산석간답설(再遊五臺山石澗踏雪

 

4월의 산 속에서 눈 비탈길 걷노니

바람에 옷자락 스쳐 허공에 드날린다

뭇 산봉우리 온통 푸르러 소리 없이 고요한데

소나무 밑 그윽한 샘물이 사람 향해 속삭이네

-율곡 이이

 

「유남대서대중대숙우상원(遊南臺西臺中臺宿于上院)

 

깊은 산골에 날씨 활짝 개었는데

바위에 흐르는 물소리 맑기도 하구나

오대산 가는 곳마다 흥취에 끌리어

이끼 길에서도 발걸음 가볍다

다래 덩굴 휘어잡고 절정에 오르니

흰 구름 푸른 벼랑에 피어 일고

옹기종기 작은 산들을 굽어보니

여기저기에 연기 낀 나무들이 펀펀하네

돌 틈에 흐르는 우통수의 차가운 샘물

담담한 심정 나도 어쩔 줄 모르겠네

한번 마시니 세상일 다 잊고

선방(禪房) 방석에 앉으니

새벽 종소리에 깊은 반성 떠올라

담담한 심정 나도 어쩔 줄 모르겠네

-율곡 이이

 

「중유월정사(重遊月精寺)

 

쓸쓸한 숲속으로 걸어가는 나그네 길

석양의 풍경 소리 절간에서 들려온다

스님네들 묻지 마오 다시 찾아온 뜻을

바위에 흐르는 물 말없이 대하니 세상 일 어둡네

-율곡 이이

 

「장입내산우우(將入內山遇雨)

 

벼슬 버리고 돌아오니 뭇일이 홀가분해

오대산 절경이 가장 저에 쏠리네

산신령이 뿌린 비 손님이 싫어서가 아니고

숲속의 샘물 늘려서 더욱 맑게 함일레

-율곡 이이

 

「증산인(贈山人)

 

오대산 밑에 월정사라

문 밖의 맑은 냇물 쉬지 않고 흐르네

가소롭다 스님이 실상(實相)에 미혹하여

무(無)자만을 갖고서 부질없이 추구하네

-율곡 이이

 

조현명 「오대산 사고사(五臺山史庫寺)

 

명산이 겹겹하여 사서(史書)가 간직된 곳

나그네 위해 주인이 백리 길 함께 왔네

상석(上席)에서 성례(盛禮) 받으니 몸둘 곳 없어

전인(前人)을 따르는 후인(後人)인 양 괴롭다

솟아나는 샘물은 푸른 한수(漢水)로 돌아들고

둘레의 산들은 태종(泰宗)을 우러르는 듯

소매로 먼지 털고 벽판(壁板)을 바라보니

서리 가득한 하늘에 종소리가 차갑다

 

 

 

 

 

'내가 읽은 책들 > 2013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106-1 그림 속에 노닐다  (0) 2013.10.05
2013-106 그림 속에 노닐다  (0) 2013.10.05
2013-104 우리는 사랑일까  (0) 2013.10.02
2013-103 독도  (0) 2013.09.30
2013-102 책이 무거운 이유  (0) 2013.09.30
posted by 황영찬
2013. 10. 2. 10:34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04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퉁(Alain de Botton) 장편소설, 공경희 옮김

2008, 은행나무

 

시흥시립대야도선관

EM048756

 

843

보8856우 c. 2

 

그림, 퀴즈, 혹은 유명 철학자들의 언어를 인용하면서 드 보퉁은 오늘의 포스트모던한 사랑에 대한 단상들을 보여준다. Publishers weekly

 

이 책은 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해 조명한다. 많이 이야기하고 적게 보여주는 그의 글은 풍부한 위트와 유머로 무장하며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The New Yorker

 

이 책의 독자들은 도널드 바셀미, 줄리안 반즈, 우디 앨런, 에릭 로메르의 영화에 대한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드 보퉁은 이들을 작품 속에 훌륭하고 풍부하게 차용함으로써 효과적으로 본질에 접근한다. The New York Times

 

연애의 탄생에서 결실까지,

남녀의 심리를 꿰뚫는 놀라운 통찰력

현학적 분석과 진지함의 무게를 더는 재치

 

THE ROMANTIC MOVEMENT

 

이토록 흥미진진하고 지적인 연애소설은 처음 본다!

 

앨리스는 사랑하는 남자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그 남자의 행동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에릭은 처음 만난 날과 똑같이 복잡해 보였다. 그 첫 만남에서 그녀는 그 남자를 '안' 줄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주장할 수 없었다. 그 남자는 멀리서는 잘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백만 개나 되는 파편으로 나뉘어 있었다.

앨리스는 이토록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요소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그리고 예상할 수 없고, 끊임없이 질문과 해석이 뒤따르는 불안정 상태에 힘이 빠졌다.

 

알랭 드 보퉁 Alain de Botton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은행가이며 예술품 수집가인 아비지를 둔 덕택에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여러 언어에 능통하며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 수석 졸업했다.

스물세 살에 쓴 첫 소설 <왜 나는 사랑하는가 Essays in Love>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우리는 사랑일까 The Romantic Movement>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Kiss & Tell> 등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이 현재까지 20여 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수 많은 독자를 매료시켰다. 이 소설들로 그는 '90년대식 스탕달'과 '닥터 러브'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특히 <우리는 사랑일까>는 그의 단 세 편뿐인 소설들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외에도 에세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 <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 <불안 Status Anxiety>을 썼으며, 문학평론서인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 등을 냈다.

www. alaindebotton.com

 

옮긴이 공경희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17년간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성균관대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여대 영문과 대학원에서 강의중이다. 주요 역서로 <얼음에 갇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호밀밭의 파수꾼> <파이 이야기>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등이 있으며 지금까지 100종 이상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차례

 

서장

현실

예술이냐 생활이냐

이야기에 대한 선망

냉소

파티

동정녀 잉태

사랑을 사랑하다

불확정성

촉매

섹스, 쇼핑, 소설

세탁 주기

가치 체계

상대방을 안다는 것

예측 가능성

사랑의 영속성

권력과 007

신성한 관계

에릭의 짐

왜 사랑받는가?

여행

독서의 문제

유쾌증

다이빙, 루소, 그리고 너무 생각이 많은 것

사춘기

여성 혐오

자기 자신에 대한 휴가

지역성

내가 어떤 사람이 되게 하나?

영혼

진실의 층위

의문

책임 떠넘기기

혼자만의 언어

오독

누가 노력하는가?

연애의 조각 맞추기

선언

초대

순교

옮기고 나서 

 

 

'내가 읽은 책들 > 2013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106 그림 속에 노닐다  (0) 2013.10.05
2013-105 오대산  (0) 2013.10.04
2013-103 독도  (0) 2013.09.30
2013-102 책이 무거운 이유  (0) 2013.09.30
2013-101-2 서울, 문학의 도시를 걷다  (0) 2013.09.27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