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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 사랑의 슬픔

 

마광수 시집

1997, 해냄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4877

 

811.6

마156사

 

 

마광수는 시, 서설, 에세이, 논문, 그림 등을 통해 관습적 통념에 대한 줄기찬 반란을 시도하였다.

통념은 합리적 인식과 실천을 가로막고 창의성과 변혁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다. 진부한 교훈주의에 맞서 싸우는 마광수의 문학은 진정한 자유를 꿈꾸는 이들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주었고 새로운 사고의 이정표를 제시해 주었다.

'통념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마광수의 언어전략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의 시에 있어서이다. 마광수의 시는 통념에 대한 즐거운 저항이요 신나는 반란이다. 그러나 칼이나 돌을 들고 하는 반란이 아니다. 그의 시에는 새큼한 감상(感傷)이 있고 신선한 퇴폐가 있다. 물론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그래서 가장 두드러지게 기피되는 성에 대한 풍자가 최대 무기이다.

관능적 상상에 기초한 그의 시는 참신한 역설과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마광수는 이 시집을 통해 '사랑'이라는 언어가 지니는 추상성과 허구성, 그리고 위선적 통념에 도전하고 있다.

 

 

|차례|

 

피아노 / 사랑의 슬픔 / 늙는 것의 서러움 / 적(敵) / 오르가슴 / 서글픈 사랑 / 연인들의 이야기 / 입맞춤 / 세월 / 감은 때가 되면 떨어진다 / 별아 내 가슴에 / 회춘(回春) / 음란한 시 / 가을 비 감옥 속 / 섬

 

한국에서 살기 / 서울의 우울 / 사랑마저 나를 버린다 / 달 / 나는 천당 가기 싫어 / 사라의 법정 / 삶의 슬픔 / 그녀는 날아갔네 / 자궁에의 그리움 / 사랑의 묘약(妙藥) / 진리와 자유 /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 / 밤

 

여름 / 어느 외로운 날 / 낳은 죄 / 미인(美人) / 사라에게 / 사랑앓이 / 외로울 때 나는 혼자서 기타 치며 노래부르네 / 몽정(夢精) / 유혹 / 달 가고 해 가면 / 가을 / 그리움 / 그대와 탱고를 / 칵테일 마시기

 

다시 비 / 태양도 결국 수많은 별 중의 하나 / 대한민국 / 개 /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했는데도 / 왕처럼 죽고 싶다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엄마가 섬그늘에 / 반복 / 아라비아에나 갈까 / 별것도 아닌 인생이 / 시작(詩作) 메모 / 가지치기

 

잠자는 숲속의 미녀 / 감사(感謝) / 그날이 오면 / 짝사랑 / 우중야합(雨中野合) / 내가 여자라면 / 줄담배를 피우는 여자 / 과거는 흘러갔다 / 창가(唱歌) / 요만큼 / 성(性) / 황혼 / 잡초 / 즐거운 인생

 

붙이는 글 / 마광수 담론의 언어 전략 / 김슬옹

지은이 소개

 

사랑의 슬픔

 

오 내사랑, 넌 내가 팔베개해 주는 걸 좋아했지

내 팔에 안겨 새근새근 잠들곤 했지

 

처음에 난 그저 행복하기만 했어

곱게 잠든 네 얼굴에 키스하며 온밤을 새웠어

 

오 내 사랑, 제발 기억해 다오

내가 아픔을 참고 매일 밤 팔베개를 해줬다는 걸

 

하지만 난 결국 팔에 신경통이 생겨

더 이상 팔베개를 해줄 수가 없었지 정말 아팠어

 

오 내 사랑, 그러자 넌 내 곁을 떠났다

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나는 팔이 아파 너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

다만 애원하며 설득했을 뿐, 이것이 사랑의 실존이라고

 

오 내사랑, 그래도 넌 내 곁을 떠났다

팔베개 하나 못해 주는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며

 

그립다 내 사랑, 제발 기억해 다오

내가 매일 밤 팔베개로 널 재웠다는 걸

 

돌아와라 내 사랑,

이젠 팔이 다 나았으니

(1995)

 

 

감은 때가 되면 떨어진다

 

감나무 위에 올라가

감을 따다가

떨어져 죽기보다는

감나무 밑에 누워멍청히입을 벌리고 있는 게

낫다

 

눈가로 쏟아져 내리는 늦가을의 이 따스한 햇살이여

벌어진 입으로 들어오는 늦가을의 이 상큼한 대기여

 

감은 때가 되면 떨어진다

(1994)

 

별아 내 가슴에

 

별을 따다가

내 애인

귀걸이

만들어 줘야지

그리고

그 귀에

코 박고

키스해야지

그리고

결혼해야지

(1991)

 

 

오오

그대가

작은 섬이라면

나는

큰 파도가 되어

그 섬을

삼키리

(1993)

 

뜬 인생이 꿈과 같으니 즐거움이 얼마나 되랴

 

그녀는 날아갔네

 

내가 잠잘 때 코를 골자

그녀는 달아났네

 

내가 술 마시고 한 번 토하자

그녀는 달아났네

 

내가 정력이 없어지자

그녀는 달아났네

 

내가 돈이 떨어지자

그녀는 달아났네

 

내가 결혼해 달라고 조르자

그녀는 날아갔네

(1994)

 

                                                                                     아프리카의 밤

 

어느 외로운 날

 

아,

꽃들은

얼마나 좋을까

 

자기 몸 안에

암술과

수술을

함께

갖고

있으니

(1993)

 

로울 때 나는 혼자서

기타 치며 노래부르네

 

외로울 때 나는

혼자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네

내 갈비뼈는

기타줄 되고

내 배는

울림통 되고

내 입은

소리구멍 되어

내 지친 손길 따라

힘겹게

안쓰럽게

신음소리를 내뱉네

투다닥 둥강당

티리릭 징징징

하루종일

소리를 울려

하릴없이

님을 부르네

외로울 때 나는

혼자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네

(1996)

 

가을

 

가을이 우리를 휩싸 안았다

 

가을이 우리를 절망하게 하고

가을이 우리를 사랑에 미쳐 날뛰게 했다

 

누군가 염세자살하고 있는 가을

누군가 환각제를 먹고 있는 가을

누군가 자살미수로 살아나고 있는 가을

누군가 환각제 복용으로 잡혀 가고 있는 가을

 

그 가을에 우리는 만났고

그 가을에 우리는 밤새도록 울었다

 

더 큰 오르가슴에 대한 가슴 시린 안타까움으로

더 근사한 죽음에 대한 깊디깊은 갈증으로

(1997)

 

그리움

 

붉은 저녁 노을 보면

그대의 입술인 양하고

 

저 혼자 깊어 가는 강물 소리 들으면

그대의 목소린 양하고

 

검푸른 산등성이 보며

나 홀로 저녁 어스름을 헤매네.

 

오늘은 꿈에서나 만날까

더 못 견딜 이 그리움.

 

이윽고 완전한 어둠은 내리고

그대의 눈동자처럼, 머리결처럼 검은 어둠은 내리고

 

나는 캄캄한 적막 속을 거닐며

그대의 젖무덤을 더듬네.

(1995)

 

그대와 탱고를

 

탱고 탱고 탱고

 

아 마다미아

라쿰파르시이타

서울 야곡

 

탱고 탱고 탱고

 

당신 손등에 불의 키스

비 오는 날 오후 세 시의

카페 떼아뜨르

 

탱고 탱고 탱고

 

당신 눈가에 맺힌 이슬

나 혼자만 마시던 한 잔의 커피

비 오는 날 오후 네 시의 이별

 

탱고 탱고 탱고

 

베사메 무쵸

키스 오브 화이어

말라구에니아

 

탱고 탱고 탱고

 

그대 뒤에 서 있던 당신의 남편

마음속에서 찢어 버린 당신의 편지

추억 속에 떠오르는 그날의 그 춤

 

탱고 탱고 탱고

맘보 맘보 맘보

(1990)

 

 

                                                                                                    꽃 사세요

 

태양도 결국 수많은 별 중의 하나

태양도 결국 수많은 별 중의 하나
특별히 커다란 별이 아니다


너도 결국 수많은 여자 중 하나
특별히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다

태양도 결국 수많은 별 중의 하나
특별히 뜨거운 별이 아니다

너도 결국 수많은 여자 중 하나
특별히 섹시한 여자가 아니다

태양도 결국 수많은 별 중의 하나
특별히 혼자서 불타는 건 아니다

나도 결국 수많은 남자 중 하나
특별히 나 혼자만 연애를 한 건 아니다

태양도 결국 수많은 별 중의 하나
특별히 혼자서 외로운 건 아니다

나도 결국 수많은 남자 중 하나
특별히 나만 실연을 한 건 아니다

(1994)

 

 

개는 게으르다

게으르기 때문에 욕심이 없

 

개는 배가 고플 때만 먹는다

때를 챙겨서 먹지 않는다

 

개는 졸릴 때만 잔다

때를 챙겨서 자지 않는다

 

개는 성욕이 일어나면 아무데서나 한다

장소도 남의 눈도 가리지 않는다

 

개는 사치스런 철학적 고뇌에 빠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없다

 

개처럼 살고 싶다

(1995)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했는데도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했는데도

사랑은 내 가슴 뻥 뚫어 놓고 새처럼 날아갔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했는데도

사랑은 내 청춘 야금야금 불살라 먹고 연기처럼 사라졌네

 

그래도 얄밉게 남아 잇는 그리움 그 미련 그 희망

지금껏 가슴을 파고드는 첫 펠라티오의 추억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했는데도

사랑은 내 정액 다 빨아먹고

하마처럼 흉하게 살이 쪘네

(1994)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

 

 

짝사랑

 

그대의 하늘같이 푸른

눈동자 속에 빠져서

진정 푸근히 빠져서

내 바다 같은 정액을

철철철 흘릴 수만 있다면

그대는 미끈거리는

눈물을 흘리며

나를 끊임없이

그리워하려만

미칠듯이

그리워하련만.

(1997)

 

잡초

 

얼마 전에 나는 마당의 잡초를 뽑았습니다

잡초는 모두 다 뽑는다고 뽑았는데

몇 주일 후에 보니 또 그만큼 자랐어요

또 뽑을 생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 어느 누가

잡초와 화초의 한계를 지어 놓았는가 하는 것이에요

또 어떤 잡초는 몹시 예쁘기도 한데

왜 잡초이기에 뽑혀 나가야 하는지요?

잡초는 아무 도움 없이 잘만 자라 주는데

사람들은 단지 잡초라는 이유로

계속 뽑아 버리고만 있습니다

(1983 ~ 1995)

 

즐거운 인생

 

내가 어떤 여자와 만나다가 싫증나

헤어지고 싶지만 미안해 미적거리고 있는데

그녀가 먼저 헤어지자고 선언해 오네

내가 삽입성교를 잘 못한다며

 

랄랄라, 룰룰루

인생은 즐거워!

 

내가 외모가 미치도록 야한 여자를 새로 만나

사랑에 빠져 들며 은근히 정력 걱정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내게 울며 고백해 오네

자기는 '게이'라 오럴섹스밖에 못해 준다며

 

랄랄라, 룰룰루

인생은 즐거워!

(1997)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