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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 발길따라 배우는 우리 근현대사

 

김광일 지음

2011, 살림Friends

 

 

대야도서관

SB071558

 

911.06

김15ㅂ

 

경복궁에 침입한 개화파들의 이동 경로에서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배재학당까지

국채보상운동의 시발지 대구 진골목부터 상하이 한복판의 임시정부 청사까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가슴 뛰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이 땅 모든 곳이 근현대사의 현장이다!

 

지은이 김광일

고려대학교에서 역사교육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역사 공부의 기본은 여행이라고 생각해 국내외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생각을 키웠다. 동대학원에서 사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떻게 하면 머리로만 이해하는 역사가 아닌 온몸으로 체득하는 역사 공부가 가능할지를 고민하였다. 그렇게 한국 근현대사 관련 유적지를 직접 답사하기 시작하여 『발길 따라 배우는 우리 근현대사』가 만들어졌다. 이 책에는 한국 근현대사를 향한 저자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독서평설」에 한국사 이야기를 연재하는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해 왔으며 지금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역사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저서로는 『방학 과제가 즐거워지는 우리 박물관 20곳『박물관에서 보고 듣는 생생 경제체험』이 있다.

 

|차 례|

 

머리말

 

01 병인양요를 이끈 신부들의 죽음 - 병인박해(1866년)

    답사 코스 : 절두산 순교성지, 새남터 순교성지

02 삼일천하로 끝난 개화당의 꿈 - 갑신정변(1884년)

    답사 코스 : 우정총국, 계동궁 터, 창덕궁

03 근대 열강들의 각축장 - 인천 조계지(1882~1886년)

    답사 코스 : 인천 공화춘,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 일본 제1은행

04 날지 못한 파랑새 - 동학 농민 운동(1894년)

    답사 코스 : 만석보 혁파 선정비, 전봉준 고택, 황토현 전적지

05 조선을 삼켜라 - 청일전쟁(1894년 6월~1895년 4월)

    답사 코스 : 일본 모지코의 조선통신사 기념비, 슌판로, 리홍장 길

06 한 나라의 왕비가 살해되다 - 을미사변(1895년)

    답사 코스 : 장충단 공원, 경복궁 건천궁, 운현궁 노락당

07 고종,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다 - 아관파천(1896~1897년)

    답사 코스 : 신무문, 구 러시아 공사관, 덕수궁

08 우리 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 「독립신문」(1896년)

    답사 코스 : 웨스틴 조선호텔, 독립신문 사옥 터, 한성순보 사옥 터

09 조선 사람들의 인식의 전환 -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1896년)

    답사 코스 : 독립문, 종각 보신각, 광화문 거리, 덕수궁, 숭례문

10 일본의 대한제국 삼키기 - 러일전쟁과 을사조약(1904~1905년)

    답사 코스 : 덕수궁 중명전, 팔미도, 러시아 바랴크 호 추모비, 만국공원

11 을사조약 이후 의병활동 -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1906~1908년)

    답사 코스 : 울진 월송정, 신돌석 장군 생가지, 신돌석 장군 유적지

12 조선 지배의 상징 - 통감부와 조선총독부(1905~1945년)

    답사 코스 : 통감 관저 터, 통감부 청사 터, 천안 독립 기념관

13 그 마음은 언제까지고 이어지리라 - 국채보상운동(1907~1909년)

    답사 코스 : 대구 광문사 자리, 진골목,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14 주적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라 - 안중근과 하얼빈(1909년)

    답사 코스 : 하얼빈 역, 제홍교, 자오린 공원, 조선민족예술관

15 우리 나라 근대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 배제학당(1885년)

    답사 코스 :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이화박물관

16 조선을 약탈하라 - 나석주와 동양척식주식회사(1908~)

    답사 코스 : 나석주 동상, 조선식산은행 터,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 지점

17 나를 불살라 나라를 구하리라 - 유관순과 3 · 1운동(1919년)

    답사 코스 : 탑골공원, 태화관 터, 아우내 장터, 유관순 생가

18 끝나지 않는 농민들의 고통 - 산미증식계획과 군산항(1920년~)

    답사 코스 : 군산항 뜬다리, 구 군산 세관, 구 조선은행 군산 지점

19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 윤봉길과 상하이 임시정부(1919년, 1932년)

    답사 코스 :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루쉰공원 내 윤봉길 의사 기념관

20 광복과 함께 시작된 분단 - 이화장과 경교장(1945년)

    답사 코스 : 백범 김구 기념관, 이화장, 경교장

21 민족상잔의 기억을 되새기다 - 6 · 25 전쟁(1950~1952년)

    답사 코스 : 전쟁기념관, 부산 임시 수도 기념관

 

참고문헌

 

절두산 순교지 비석

절두산 순교성지 체험관(위)과 형구돌(아래)  형구돌은 병인박해 때 사용된 것으로 앞에 나와 있는 줄을 목에 걸고 뒤에서 잡아당겨 질식시키는 교수형 도구였다.

절두산 김대건 동상 : 김대건은 한국 최초의 신부로, 1846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새남터 기념관 내부에 걸려 있는 순교자들의 초상화.

새남터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형구.

절두산 순교지 척화비.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  절두산에서 처형된 첫 순교자 이의속 가족을 형상화한 기념상이다.

절두산 순교지 박물관.

명동성당.

서소문 순교지의 순교자 헌양탑.

우리나라 우편 사업의 발상지 우정총국.

도로변에 표지석만 남아 았는 계동궁 터의 모습.

창덕궁.

고종이 갇혀 있던 관물헌.

연경당과 선향재 :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례를 하기 위해 1827년에 만들었다. 고종은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연경당 오른편에 있는 긴 건물은 선향재로 책을 두는 서재였다.

이시중 순직비.

안동 별궁이 있던 별궁길.

천도교 중앙대교당 전경.

인천 차이나타운의 상징물인 제1패루.

영국 영사관이 있었던 자리.

차이나타운 비문.

공화춘 : 이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스런 모습으로 남아 있는 공화춘. 빨리 옛 모습을 회복해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변했으면 한다.

· 일 조계지 경계 계단 : 공자상 옆에 서면 인천 앞바다가 바로 보인다. 1890년 청나라 사람들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최초의 근대 숙박 시설이었던 대불호텔 터.

인상적인 외관의 일본제1은행 인천 지점.

일본18은행(위)과 일본58은행(아래) : 당시 항구 주변으로 은행을 비롯한 다양한 시설 공사가 이루어져 선박 출입과 무역 활동이 쉬워졌다.

홍예문.

항거의 횃불을 치켜든 농민 동상.

만석보 비석.

만석보 자리.

만석보 혁파 선정비.

말목장터.

전봉준 고택.

황토현 전적지 기념비(위)와 전봉준의 동상(아래).

동학 농민 혁명 기념관.

동학 혁명 모의탑 : 전봉준과 농민 지도자들은 이 마을에 모여 동학혁명의 상징으로까지 널리 알려진 사발통문을 작성했다. 탑은 동학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마을 어귀에 서 있다.

고부 관아 터 : 동학 농민군이 탐관오리 조병갑을 쫓아내고 차지했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 고부 관아는 고부초등학교로 바뀌면서 현재는 그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간몬교가 만들어지면서 혼슈와 규슈 지역의 교류가 이전보다 활발해졌다.

우뚝 솟은 전망대가 인상적인 모지코.

여관 건물이었던 청일 강화 기념관.

조선통신사의 배가 정박했던 부두(위)와 그 옆의 조선 통신사 기념비(아래).

용궁의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아카마 신궁.

회담장을 재현한 모습.

리홍장(위)과 리홍장 길(아래) : 리홍장은 저격을 당한 뒤, 큰 길을 피하고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좁은 길을 이용했다. 리홍장 길은 리홍장이 회담장과 숙소를 오가던 길이다.

시모노세키 조약의 서류 일부.

복어 동상.

구 시모노세키 영국 영사관. 지금은 갤러리 및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모지항 레토르. 근대 서양 건축양식의 건물들이 모여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장충단 공원 비석.

광화문.

건천궁.

명성황후가 시해된 건천궁 옥호루.

운현궁 노안당 : 운현궁의 사랑채로 대원군은 이곳에 머물며 국가 주요 정책을 논의했다.

운현궁 노락당(위). 노락당의 부엌 내부(아래).

명성황후탄강구리비.

신무문에서 바라본 청와대.

신무문과 신무문의 현무 : 경복궁의 사대문에는 모두 이와 같이 사방위신이 그려져 있다. 남쪽(광화문)에는 주작, 서쪽(영추문)에는 백호가 그려져 있다. 동쪽 건춘문에는 청룡을 대신하여 기린이 그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구 러시아 공사관 : 구 러시아 공사관 안내판에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탈출한 날짜가 1896년 2월 1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2월 11일이다.

덕수궁길.

과거의 역사가 묻혀 있는 덕수궁 대한문.

웨스틴 조선호텔(환구단) : 서재필이 강연을 했던 남별궁이 있었던 장소에는 이제 호텔이 우뚝 서 있다.

배재건물 뒤편에 있는 독립신문사 터 표지석.

<독립신문> 창간호 1면.

독립문과 그 앞 영은문 주초.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모여 토론회를 열었던 독립관.

덕수궁 정관헌 : 1900년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로 고종은 이곳에서 차를 마시고 음악을 감상했다. 일종의 휴식 공간이었다.

돌담으로 막혀 있는 덕수궁 인화문 자리.

화재 전의 숭례문 모습. 황국협회와 만민공동회가 충돌할 때 신기료장수 김덕구가 목숨을 잃었다. 그의 장례식에 참여한 백성들의 추모 행렬이 종로에서 숭례문 밖 갈월리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숭례문은 2008년 화재로 붕괴되어 현재 복원중이다.

고종 즉위 40년 창경기념비.

을사조약 체결을 종용당했던 중명전 내부.

민영환.

덕수궁 중명전 : 을사조약이 체결된 중명전의 현재 모습. 1925년 화재로 타 버린 후 복구했으며, 문화재청이 개입하기 전까지 빈 건물로 방치된 채 정동극장의 사설 주차장으로 사용되었다. 당시는 경운궁(덕수궁) 수옥헌(지금의 중명전)이었다.

팔미도에서 바라본 바다 : 팔미도 앞바다에서 일본 군함과 러시아 군함이 해전을 벌였다.

팔미도 등대.

팔미도에 있는 인천상륙작전 기념비.

자유공원에서 바라본 인천 앞바다.

제물포 앞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러시아 병가들을 위해 세워진 추모비.

몽골 원정군이 식수 공급을 위해 만든 몽고정.

신돌석이 울분을 토했던 월송정.

복원이 완료된 신돌석 생가.

신돌석 유적지 기념관.

신돌석 유적지 기념관의 의병 무기(위)와 일본군 무기(아래).

신돌석 장군 기념비(위)와 신돌석 장군 유허비(아래).

국립 서울 현충원 입구의 충성 분수.

현충탑.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