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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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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07 톈산 산맥 아래에서

 

 

 

최석

2016, 천년의 시작

 

대야도서관

SB110702

 

811.7

시72ㅊ 198

 

시작시인선 0198

 

한때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 속하였던 러시아와 시베리아, 중앙아시아는 스탈린에 의해 1937년 10월부터 1938년 4월 사이에 연해주 일대에서 강제 이주당한 20여만 명의 고려인(까레이스끼)과 그 후예들의 발자취가 짙게 배인 광활한 땅으로 이른바 CIS(독립 국가 연합) 지역이다. 이들 나라에는 고려인 후예들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날아 들어간 '한인韓人'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영주권을 취득하거나 장기간의 체류를 하면서 한인 동포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제2의 도시 알마티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 최석 시인의 새 시집 『톈산 산맥 아래에서』는 디아스포라(추방된 자들)의 후예인 고려인과 1990년대 후반 국교 수립 이후 새로운 형태의 노마드(유목민)로 들어간 한인들의 애환과 삶의 치열함 혹은 '척박한 광야에서의 삶'을 담아낸 중앙아시아 코리안 문학의 탄력과 에너지로 작동하여 울림이 크다. 「부룬다이 가는 길」「부음」「그라프가 늙는다」 등의 시편은 우리 시대 노마드 문학Normad Literature의 드넓고 독창적인 지평선을 보여준다.

- 김준태(시인 · 조선대 교수)

 

최석

논산 출생으로 1987년 무크지 『현실시각』과 1989년 계간 『현대시세계』를 통해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7년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살고 있다. 2,000년대 초 정상진, 양원식, 이정희 등의 고려인 문인들과 한국에서 이주한 작가들을 모아 중앙아시아문인협회를 결성하였고 2006년 고려인문예지 『고려문화』를 창간하여 편집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해외 문인들에게 주는 이병주국제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집으로는 『작업일지』(청하, 1989년)가 있다.

 

시인의 말

 

톈산의 발치에 앉아

고추 잎을 딴다

아무것도 맺지 못한 흰 꽃들

여린 간니들이 갈볕 아래 환하다

오랜 밤을 견딘 기억들이 펼쳐놓으니

허술하기만 하다

조바심을 내던 빈 자루에

칠성무당벌레 한 마리 기어오른다

존재한다는 것은 만만하지 않다

광야가 비어가니

곧 겨울이 올 것이다

 

2015년 가을 알마티

최  석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서시
부룬다이 가는 길
개양귀비꽃의 소묘
천 년의 풍경
봉분의 역사
더께에 대하여
귀뚜라미 보일러
그리운 최영 장군
산해진미론
알마굴에 대한 비망록
그라프가 늙는다
매명의 시
털 이야기
부음
저 푸른 초원 위에
차를 마시며
김 가이의 봄
해방 60주년의 점심 식사
고려인을 위하여
마경준 동무를 곡함
하여가
홍범도를 그리며
한 여인의 짧은 기록
모정의 세월
뚜르겐스키 적포도주
개떡
아버지
고슴도치의 시
꽃이 피다
이사 가던 날
여름날
자작나무의 시

제2부
실크로드는 없다
맛있는 피클
예르쟌
낙하의 비밀
톈산에서 만나는 동해 바다
새참
독서
톈산 산맥
떠도는 냄새
희망에 대하여
고수를 찾아서
또 고수를 찾아서
냄비에 대한 편견
폼생폼사
밭고랑 한 줄을 일궜을 뿐인데……
첫 눈

비극적 상상력
KBS World
소원의 나무
또 다른 외전
기억의 고집
위그르의 수박가게
배설론
호두나무 연대기
영웅시대
소나무
선악과에 대하여
배달되는 봄
우화의 세계
하렘을 찾아서
사막의 꿈

해설
홍용희 톈산에서의 실존을 위하여

 

톈산 산맥

 

산맥이 튀어 오른다

하늘을 탐하는

이교의 창검처럼 불안하다

차안에서 피안까지

가야 할 길은 먼데

산맥은 자꾸만 경계를 만든다

원래 저 산은

흉노와 짱깨들이 만든 소도가 아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는

파미르의 속살이 아니다

지구라트를 세우던 습성과

말을 버리고 주먹을 사용하던 관성 때문에

생겨난 저주이다

그런 추가 조항 때문에

간혹 산이 운다

 

서시

 

톈산은 늘 거기 있었지만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일 년 내내 한텡그리 봉은 흰 눈을 건처럼

두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사는 것이 뭔지

고개를 숙인 채 인상만 찡그린다

검색어만으로 접선이 완료되는 인터넷의 대낮에

두고 온 한국의 친인척과 연고가

끊어지고 있는 사이

끊고 있는 사이

딸과 아들은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국적 없는 세계화의 꿈나무로 자라고

노린내 나는 양고기를 주식처럼 좋아한다

불확실한 미래

아이들에겐 조국이 없다

국적조차 모호하다

비닐봉지에 담긴 김치 한 보시기에

쉬어 꼬부라진 향수병이나 도지는

알마티의 저녁

석양은 지평선 끝에 닿지도 않고

장엄하게 벌개지는데

눈만 들면 보이는 톈산의 뭇 봉들이

오늘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

 

더께에 대하여

 

알마티 가가리나 115번지

여기가 우리 집

아들 현상이가 착상이 되었을 때 이사와

이제 일곱 살이 되었으니 우리는

이곳에서 8년째 살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에게는 고향과 진배없지만

나는 언제나 낯설다

오래 살아도 삶에 더께가 끼지 않는다

인간들이 낯설고 땅이 낯설다

냄새가 낯설고 맛이 낯설다

체위가 낯설고 오르가슴이 낯설다

낯설음은 불안함이고

낯설음은 극단적 선택을 강요한다

끝내 아내가 낯설고

내가 낯설다

낯설음에 대한 익숙함

그것은 삶의 더께가 아니고 관성일 뿐이다

물이 끓고 있다

주전자 속에서 달아나려 하는

수많은 세월의 미립자들, 하모니카

소리를 내며 몰려나오는 수증기처럼

간혹 깨끗이 증발해버렸으면 싶다

허옇게 둘러붙은 석회 앙금

박박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데

그것이 내 삶의 더께일까?

 

여름날

 

노을진 들판을 바라보고 있으면

배가 고프다

논에 피사리 간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태 돌아오지 않고

시렁에 놓인 보리밥 소쿠리는 비어 있다

텃밭에 늙은 가지를 따

먹다 집어던지고

아릿한 입맛만 다신다

잠자리를 쫓는 것도

흙장난도 시들해지는 저물녘

뒷집에선 저녁연기 잦아들고

나직한 토장국 냄새

담을 넘어오는데

싸하니 횟배가 아프다

어머니는 언제나 돌아올까?

자꾸만 까치발로 내다보는 들길

저녁해는 먹다 버린

가지 꽁다리만큼도 안 남았다

땅거미에 젖어드는 빈집

기다림에 지쳐 설핏 잠이 든다

어머니 밥 짓는 소리

초저녁 별이 뜨고 있다

 

개떡

 

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것도 쌓인 눈을 비껴가며 돋아나는 초봄이

좋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좌

문득 개떡이 먹고 싶다

거무튀튀하고 못생긴 쑥개떡

어머니의 뭉그러진 지문이 남아 있는 쑥개떡

무슨 새참한 맛이 있겠냐마는 지금

먹고 싶은 것은 어릴 적의 그리움 아니냐

다북쑥 소담한 논두렁을 타고

뭉기적뭉기적 넘어오던 봄바람

까르르르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대던 예닐곱 살

마른버짐 번성한 까까머리 동무들 아니냐

논산시 채운면 새터마을

나싱개 자운영 벌금자리

무성하던 어린 날 들녘으로 돌아가고 싶다

고향을 잊어버린 두 아이들에게

내 어린 날의 봄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고 싶다

"옛날에 저 둠벙 속에는 이무기가 한 마리 살았었는데……"

새로운 봄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아마도 내가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고려인을 위하여

 

중앙아시아에서는 스스로 고려인이라 부른다

그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없어져버렸다

원동遠東에서 기차에 실려

화물칸에 실려

뾰족한 송곳처럼 서서

분노를 세우고

공포를 세우고

도착지도 모른 채 뿌려진 곳

중앙아시아 눈이 부신 햇살 아래 펼쳐진

소금꽃 핀 광야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곳

아직도 그들이 산다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고 살던 그들이

이제는 번듯한 집에서 산다

땅굴 속에서도 죽지 않은 사람들은

장군도 되고 영웅도 되고

가수도 되고 첩이 되기도 했다

그때 핏덩이였던 사람들조차

이제 다 죽었다

원동을 그리며 죽었다

그들의 자식 자식의 자식들이 살아간다

동해물과 백두산을 모르고도 살아간다

그들의 조국은 카자흐스탄이고 우즈베키스탄이다

어쩌면 원동일지도 모른다

원동에 가면 조선이 보이고 한국이 보인다

제발 신파조로 그들을 대하지 마라

고려인은 눈물을 싫어한다

 

새참

 

"어이 오게나"

허리 굽은 강태수가

찬물에 밥을 말아 먹고 있다

 

몽롱한 나르꼬지 몇 포기

돌각밭에 기대어 흔들거린다

모다 힘이 든 게지

 

눈물 콧물 닦고

일찍 뜬 쪽달만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마경준 동무를 곡함

 

고려인 인명 자료를 뒤적이다 만난 사람

강제 이주의 열차를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36일을 달려와

흰 눈밭에 빨간 피를 한 움큼 뱉어낸 사람

추웠다던 그 겨울

잘 먹어야 낫는 구멍 난 폐 덩어리를 품으며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 그러하거늘

크즐오르다 부르노예 정거장 부근에서

불행히 세상을 떠난 사람

질긴 한 목숨이었거늘

인명록에 기록할 만한 사유가 없어

잊혀져야 하는

1938년 6월 10일 레닌기치의 역사歷史

빠알간 개양귀비꽃 벌판에서

돌림병처럼 꽃대를 올리는

마경준

동무

 

김 가이의 봄

 

우슈토베의 농법은 진보하지 않는다

한때는 레닌의 이름을 붙였던 꼴호즈 언저리에

김해나 경주쯤이 본관이었을 김 가이가

씨를 덮는다 고집도 없이

밋밋한 사람처럼

땅을 헤집고 씨앗을 덮는다

동쪽의 끝에서 기차를 타고 왔을 흑역사를

덮고 또 덮어서 싹을 틔운다

갈무리된 순한 눈빛은 씨감자마냔 둥그랗다

남도 어디선가 마났을 법한 동무

김 가이의 덩이줄기가 궁금했지만

캐낼 것이 없는 마른 기침뿐

그는 우스토벤스키

진보하지 않는 저 땅으로 들어갈 것이다

쏟아져 있는 씨감자들이

촉수를 틔우고 있는

김 가이의

텃밭

 

해방 60주년의 점심 식사

 

흘레브

고려인들은 떡이라고 부르는 빵

옛날 봉놋방에 굴러다니던

목침 같다 해방 직후

소련군이 그랬다는 것처럼 사실

그것을 베고 잠을 자본 적도 있었다

깨어나서 뜯어먹어 본 적도 있었다

오늘 점심으로

고려인 통역 아줌마와 함께

흘레브를 먹는다

한민족의 근현대사를 먹는다

그녀는 떡을 먹는 것이고

나는 빵을 먹는다

그녀는 고기에 곁들여 먹고

나는 김치를 얹어서 먹고

그녀는 일용할 양식을 먹고

나는 대용식을 먹는다

바라보며 멋쩍게 웃는다

같은 피를 가졌어도

서로 신토불이다

 

톈산에서 만나는 동해 바다

 

요거는 동태국

요거는 네덜란드에서 온 수꿈부리야

배소배소의 땅에서는 나름 귀한 것들

먹어봐요

안 먹으면 죽어요

눈이 십 리는 들어간 내게

쥐어주는 숟가락

간간한 갯내가 슬그머니

빈속에 들어앉는다 혹여

캡슐 하나로 한 끼를 때울 수 있다면

우리들의 저녁은

얼마나 서러운 바리때였을까

관음보살의 아우라로 빛나는

그대 뒤로

등 푸른 바다가 걸려 있고

짤랑짤랑 반짝이는

저 금초롱

물고기들

 

하여가

 

카자흐 사람들은 우리 보고

마늘 냄새가 난다 하고

우리는 도리어 노린내가 난다 하고

양파 냄새가 난다 하고

식재료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무뎌지는 법

이젠 양고기도 제법 먹는다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별게 아니다

벌써 카자흐인과 한국인의 교배종이

땅 위에 등장한 지 오래

애비의 성을 따르든

에미의 성을 따르든

결국 카자흐인이 된다

된장국을 끓인다

알마티의 애호박과 타쉬겐트에서 실어온 감자

남해 바다 멸치에 고려인 된장을 넣어 끓인

애매모호한 국물 끓일수록

진해지는 한민족의 눈물처럼

몸속 깊숙이 된장의 냄새가 든다

 

차를 마시며

 

톈산의 눈 속 낡은 집이

차를 마신다 보성에서 채집한

곡우의 봄소식은 아직 쌀쌀하고 춥다

창밖에는 카자흐의 초원에서

몰려오는 눈발이 조용히 나리고

나리다가 지겨우면

창문에 이마를 대고 들여다본다

 

차를 마시며

간혹 순천만을 적시고

지리산 자락으로 올라가는 찬바람 소리와

불순한 운주사

천불천탑의 꿈을 덮던

속 너른 눈발이 보일 듯도 하지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세상의 모든 것은 쌓인다

슬픔이 쌓이고

얼굴이 쌓인다

 

보성차가 끓는다

구증구포의 숨결이 부대끼며 끓는다

톈산 북로의 말 울음소리와

결기 푸른 대숲의 바람 소리를

교접하려는 단꿈이

혼자서

끓는다

 

고슴도치의 시

 

  현상이는 내가 늦게 얻은 자식 만으로 일곱 살이다 말도 징그럽게도 안 들을 나이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크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놈도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는 로봇 마니아다 로봇들을 가지고 진종일을 논다 한국 로봇을 가지고 러시아 말로 논다 혼자서 묻고 혼자서 대답하고 레이저 포를 쏘고 적의 부메랑에 맞아 쓰러진다 신기하여라 별난 효과음을 다 낸다 가끔은 저놈이 한국인인지 러시아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간다 부끄럽지만 나도 이제 고슴도치 조건 없이 예쁘다 바라느니

  틀을 만들지 말 것

 

꽃이 피다

 

아버지가 녹슨 라이터를 닦고 있다

몰골이 많이 상한 라이터

Zippo도 아니고

Zippon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논에서 김을 매다가 잃어버린 라이터

나락을 베다가 찾아낸 라이터

한때 반짝이던 광택의 시간도 지워지고

녹물이 번성한 Zippon의 깊은 수심

불이 붙지 않는 아버지를 아버지가 닦고 있다

 

어느

봄날

일리 강을 따라가는 묵은 길가에서 만나다

붉은 꽃 푸른 꽃

노랗고도 하얀 꽃

Zippon 꽃들

지천이다

 

맛있는 피클

 

피자집에서 피자를 먹다

물컹한 피클을 먹다 생각을 하다

투명하게 빛났을 스무 살

치렁한 갈색 머리

깊고도 푸른 눈빛을 빛내며

또박또박 깜사몰스카야거리를 활보했을

러시아의 여인

꼬뮤니스트 갈리나 니꼴라이나

뚱뚱해진 정년을 넘긴 후에야

우리 세탁소의 바지 프레스를 눌렀던 여인

무릎의 지친 흔적을 곱게 펴던

갈리나 니꼴라이나

내 딸애의 입속에 피클을 넣어주던

오 갈리나 니꼴라이나

그녀가 빚은 상큼한 향기

아삭한 피클을 먹을 수 없음에

다시 먹을 수 없음에

눈시울이 시큰하다

 

부룬다이 가는 길

 

알마티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다

기차를 타고 며칠을 달려도 지평선이 보인다

누군들 주눅이 들지 않겠는가

쥐코밥상만 한 한국의 땅덩이에 한숨이 나고

아등바등거리는 오늘의 삶에 눈물이 난다

죽어서도 묻힐 땅조차 없는 우리들

이승에 움집 하나도 내 것이 아닌 바에

죽어 한 줌 재로 날린들 무에 대수겠는가

친했던 고려인의 하관을 마치고 온 후로

부룬다이 모래 한 점 섞이지 않은

대지의 속살을 만지고 난 후로

문득 이곳에 뼈를 묻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업보이거늘

살고 죽는 일이 어디 내 소관일까 마는

 

그라프가 늙는다

 

그라프

몸도 크지만 대가리가 기형적으로 큰 개

처음 저놈을 만났을 때 눈빛이 형형했었다

그때가 벌써 다섯 살

털은 반지르르하고 골격은 단단하게 바라졌었다

뼈다귀를 삶아주면 밤새

우둑우둑 씹어 삼키는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깊은 잠에 들었다

저놈은 우리 집의 수난사를 잘 알고 있다

첫 번째 강도가 들던 날

나를 먼저 물어뜯었고

두 번째 강도가 들던 날은 달아났다

달아났다 아침에 들어왔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개답지 못한 개

그래도 저놈을 버리지 못했다

첫정이었다

우리의 식구였다 간혹

줄을 끊고 담을 넘어

발정이 난 암캐를 찾아갔고

다음 날이면 상처를 입고 들어와 며칠을 앓았다

그렇게 십수 년을 혼자서 살고 있다

개에게도 슬픔이 있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 그라프

비 오는 날은 눈에 광기가 돋고

폐부에서 끌어올리는 소리로

밤새워 운다 깊은 상처가 있었으리라

노쇠한 구도자처럼 구부러진 그라프

그라프가 늙는다

내가 늙는다

 

부음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텃밭에 나간다

하는 일이라는 게

단순히 잡초를 뽑는다든지

고추 대에 북을 돋우는 것이 고작이지만

땡볕이라도 그 일이 즐겁다

식구들마저 촌놈의 근성으로 치부하는 눈치지만

옛말 그른 것이 어디 있는가

땅이 아니 흙은 거짓말을 않는다

뿌린 대로 나온다

정성대로 큰다

거기서 배우는 때늦은 사랑법

새로운 씨앗이라면 뭐든 뿌려보고 싶다

새로운 기쁨이 싹을 틔울 것 같다 오늘

그대의 소식을 듣는다

땅에 묻는다

꽃으로 피지 못한

그대는 어떤 꽃이었을까?

 

 

 

posted by 황영찬
2018. 1. 31. 12:04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06 제주마실

 

 

 

김주미 지음

2017, 시공사

 

대야도서관

SB120275

 

981.19902

김76ㅈ

 

제주에서 낭만을 즐길 시간

 

Slow Travel

 

이른 아침 마을 길목에 쏟아지는 황금빛 햇살,

지붕 너머로 풍겨오는 따뜻한 밥 냄새,

건넛집 피아노 학원의 서투른 소나타 연주 소리,

강아지와 산책하기 좋은 아담한 해변,

이름 모를 풀과 나무로 우거진 언덕…

 

치열하게 돌아보는 여행자들은 알 수 없는

작은 마을의 포근한 풍경과 청명한 여유를 담았습니다.

 

글, 사진 · 김주미

평범한 직장인이자 여행가. 때로는 토박이의 마음으로, 때로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국내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닌다. 멀리 떠날 수 없는 날에는 가까운 곳으로 숲크닉을 즐기러 간다. 블로그 '달달한 시에스타'를 통해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저서로는 <전주 여행 레시피>, <군산 여행 레시피>, <순천 여행 레시피>, <목포 여행 레시피>가 있다.

 

Contents

 

프롤로그

 

1

로맨틱한 분홍빛 수평선
함덕리HAM DEOK RI

함덕리 밖으로 한 걸음!


2

해 질 녘부터 동틀 때까지 즐기는 자유
평대리PYEONG DAE RI


3

가장 강렬한 빛을 품은 마을
종달리JONG DAL RI

종달리 밖으로 한 걸음!


4

보랏빛 히아신스를 닮은 마을
세화리와 하도리SE HWA RI & HA DO RI


세화리와 하도리 밖으로 한 걸음!


5

동백과 감귤 사이, 빨강과 노랑 사이, 겨울과 봄 사이
위미리WI MI RI

위미리 밖으로 한 걸음!


6

봄바람에 몸도 마음도 녹는
고산리와 모슬포GO SAN RI & MO SEUL PO

고산리와 모슬포 밖으로 한 걸음!


7

별처럼 빛나는 마을
애월읍AE WOL EUP

애월읍 밖으로 한 걸음!


제주 대중교통 이용법

 

 

모닥식탁

제주시 조천읍 함덕16길 14-1 064-784-1050

소소한 풍경

제주시 조천읍 신흥로 2 064-784-3707

당군

제주시 조천읍 함덕로26 010-4215-9600

카페 델문도

제주시 조천읍 조함해안로519-10 064-702-0007

함덕's 487

제주시 조천읍 신북로 487 064-782-0487

만춘서점

제주시 조천읍 함덕로9 064-784-6137

느리게 가게

제주시 조천읍 함덕8길 2 070-7607-5872

청춘로그 게스트하우스

제주시 조천읍 함덕8길 5 010-8674-9272

벵디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1108 070-8899-7827

평대스낵

제주시 구좌읍 대수길7

카페 마니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112

아일랜드 조르바

제주시 구좌읍 대수길9 010-4787-2901

아서의 집

제주시 구좌읍 대수길11 064-782-2119

순희밥상

제주시 구좌읍 종달로5길 38 064-783-3257

종달리엔 심야식장

제주시 구좌읍 종달로5길 34 070-8849-1833

카페 동네

제주시 구좌읍 종달로5길 23 070-8900-6621

바다는 안 보여요

제주시 구좌읍 종달로5길 31-1 064-782-4518

소심한 책방

제주시 구좌읍 종달동길 29-6 070-8147-0848

오브젝트 늘

제주시 구좌읍 종달로5길 32

동촌하우스

제주시 구좌읍 종달논길 61-4

별방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3354

벨롱장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1500-63

일미도

제주시 구좌읍 면수길 52-1 064-784-1788

재연식당

제주시 구좌읍 세화1길 20-30 064-783-5481

카페 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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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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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유제주

제주시 애월읍 하귀로 85 064-712-4686

 

제주시 애월읍 중용길 52-1 010-3725-4692

쌀다방

제주시 관덕로4길 7 010-8442-9160

제주김만복

제주시 북성로65 064-759-8582

 

 

 

posted by 황영찬
2018. 1. 19. 13:47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04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

 

 

 

김덕진 지음

2014, 푸른역사

 

우리가 몰랐던 17세기의 또 다른 역사

 

대기근은 한 번 발생했다 하면 수년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며 조선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가 했다.

경제적 고충이나 사회적 불안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긴장이나 외교적 갈등을 격화시킬 정도로

고강도였으며 조선왕조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과인도 기근 땐 적극적으로 복지에 힘썼소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여다보면, 세상사 이치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 때가 적지 않다. 기후사氣候史 연구가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기상 이변과 경제 상황, 당시 조정의 대응과 사회 안전망까지 날카롭게 주제를 파고든 저자의 시도가 돋보인다.

- 《조선일보》

 

17세기 '기후재앙' 조선 정치판 뒤흔들다

예송논쟁으로 대표되던 암흑의 17세기는 실은 '변화와 역동의 시기'였다. 다음 세기 '영 · 정조 르네상스'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7세기 대기근으로 빚어진 모순을 수습하면서 사회안전망이 새로이 갖춰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17세기의 생활상을 한눈에 그려볼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사료를 곁들여 차분하게 써내려간 문체가 연방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 《경향신문》

 

17세기 '소빙기'… 조선 100만 명 굶어 죽다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외계의 출격'이 백성의 삶을 뿌리 채 흔들고,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그간 학계에서 17세기는 '소외된 시대'였다. 임진왜란 · 병자호란을 거친 뒤 18세기 영 · 정조 시대를 맞이하는 과도기 정도로 자리매김됐다. 저자가 재발견한 17세기는 소빙하기의 정점에 이른 '혹한의 겨울'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18세기 조선의 문예부흥을 연 변화의 싹이 움텄다는 것이다.

- 《중앙일보》

 

조선 최악의 위기 입체적 조명

조선 역사에서 18세기 르네상스 시기는 과도할 정도로 조명받았지만 17세기와 19세기는 공백 상태였다. 저자는 새로운 '화법'으로 17세기의 공백을 확실하게 메워주는 성과물을 내놓은 셈이다. '소빙기'라는 세계사적 현상으로 조선을 부각한 것이나, 정치사의 한계를 뛰어넘어 17세기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는 것도 대단한 미덕이다.

-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주간 동아》

 

지은이 김덕진

전남대 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 ·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광주교육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조선 후기 경제사 연구에 매진해 왔다. 《조선 후기 지방재정과 잡역세》(1999), 《조선 후기 경제사 연구》(2002), 《연표로 보는 한국 역사》(2002), 《세상을 바꾼 기후》(2013),《서울 재정사》(2007, 공저),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2007, 공저) 등을 저술했다. 그 밖에도 호남 지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 《변혁기의 인물과 역사》(1996, 공저), 《남도문화》(1998, 공저), 《광주 · 전남의 역사》(2001, 공저), 《개화기 지방 사람들》(2006, 공저), 《소쇄원 사람들》(2007) 등을 저술했다. 수년 전부터는 기후의 역사를 탐구 중이다. 기후 변화가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미진척의 영역인 셈인데, 이 책은 그 노력의 일환이다.

 

차례

 

● 머리말

● 프롤로그 17세기의 재발견

 

01 17세기 소빙기, 타당한가

17세기는 위기였는가
조선은 어떠했는가


02 대기근, 이전에는 없었는가

대기근, 조선을 뒤흔들다
조선, 대기근을 극복하다



03 현종 즉위와 어수선한 정국

세자 관례와 남인의 부상
김징 탄핵과 서인의 수세
궁지에 몰린 임금

 



04 요동치는 동아시아 정세

대륙의 변란 소문
일본의 왜관 이전 요구

 



05 하늘과 땅의 불길한 징조들

유성, 하늘을 가리다
지진, 전국을 강타하다



06 유례없는 자연재해

싹도 못 나게 하는 봄가물
연일 올리는 기우제
걷잡을 수 없는 여름 물난리
제주도를 강타한 초대형 태풍
닥치는 대로 갉아 먹는 병충



07 창궐하는 전염병과 가축병

활인서에 수용하라
병을 피해 떠나는 사람들
여제를 올려라
소를 죽이는 우역
도살 금지령



08 사상 최악의 '경신대기근'

뛰는 곡물가
기승을 부리는 사재기
초근목피와 인육을 먹다
길거리를 메운 기아자



09 2년간 1백만의 죽음들

수없이 늘어나는 병사자
시신이 가득한 금수강산
시신은 도성 밖으로



10 동요하는 민심

떠돌며 도둑질하는 사람들
고조되는 변란의 조짐
흉흉한 도성 민심



11 진휼을 서둘러라

끊임없이 방출되는 비축곡
발 디딜 틈 없는 진휼소
국물도 없어
진휼소를 닫지 마시오



12 쏟아지는 민생 정책

군포를 면제하라
토지세를 감면하라
부채를 탕감하라



13 바닥난 국고를 채워라

군사비의 감축
왕실비의 삭감
신분과 관직의 매매
청나라 쌀 수입론



14 꺼지지 않은 잔불

다시 꿈틀대는 정쟁
제2차 예송과 현종 사망



● 에필로그 대기근과 함께 한 17세기사

● 주석

● 참고문헌

● 찾아보기

 

 

 

 

 

 

 

런던의 얼어붙은 템스강. 당시 템스 강의 결빙은 1683년 12월에 시작해서 그림이 그려진 1684년 2월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17세기 소빙기, 타당한가 01

 

가뭄과 홍수를 유발하는 일기불순이 장기간 반복하는 현상, 지구의 평균 기온이 1~2도 내려가고 서늘한 여름과 한랭한 겨울이 잦아 이상 저온이 장기간 지속하는 현상이 지적된다. 이 가운데 소빙기 기후의 전형적인 특징은 이상 저온이다.

 

소빙기는 16~17세기 또는 17~18세기에 지구의 기온이 내려가 추운 날씨가 많고 이에 따라 빙하의 면적, 두께가 넓고 두꺼웠다는 사실을 부각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다. 빙기氷期가 아니라 소빙기라고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만 년 전에 시작해 10만 년 전에 끝났다는 빙하기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용어는 학명學名이 아니라 한 신문기자가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편의성 때문인지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다(이태진, <소빙기 천변재이와 조선왕조실록>, 《역사학보》 149, 1996, p. 203)

 

대기근, 이전에는 없었는가 02

 

조선시대에 기근은 마치 연례행사처럼 겨우 숨을 돌릴 만하면 어김없이 찾아왔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대기근이 전국을 휩쓸고 갔다. 기근의 위력은 개인과 가정, 지역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했다.

 

수재水災와 한재旱災가 없는 해가 없으니, 진휼하는 정사가 흉년에 대비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 기후가 순조롭지 못하고 비의 혜택이 때를 잃었으나, 1백 리 안에 비 오고 볕나는 곳이 다르고, 1현縣 안에 마르고 습한 곳이 같지 않아서, 비록 가뭄 든 해를 만나더라도 반드시 익은 곡식이 있습니다(1415년 7월 6일, 이조 판서 박은)

 

역대 기근 현황을 수록한 《증보문헌비고》의 <상위고>. 기근의 발생 시기와 지역 그리고 요인과 규모가 잘 정리되어 있다.

 

현종 즉위와 어수선한 정국 03

 

현종대는 대기근이 연구되어야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현종 재위 기간 내내 대기근이 들어 국내 정치와 대외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제왕가의 예법이 사서인과는 다르나, 성인의 혈기는 보통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왕세자가 타고난 자질이 숙성하고 드높이나 나이로 말하면 겨우 10세인데, 어찌 아내를 둘 나이라고 하셨습니까? 신들도 대례大禮의 차례와 절목을 알고 잇으므로 왕세자의 화려한 합방合房의 기일이 올해가 아니라는 것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호名號가 일단 정해져 절차를 진행한다면 2, 3년을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1670년 2월 14일, 부제학 이민적).

 

백호 윤휴(1617~1680). 허적과 함께 대표적인 남인 학자. 효종 7년(1656)에 종부시 주부를 거쳐 지평 · 예빈시정에 임명되었으나 1차 예송으로 사퇴하고 학문에 몰두했다.

우암 송시열(1607~1689). 우암은 서인과 노론의 영수로 당시 정국과 사상계를 이끌었다.

《숙종 가례도감의궤》 중 <숙종 · 인현왕후 가례반차도>의 일부. 반차도란 일반적으로 관에서 행사를 치를 때 참석자들의 위계에 따라 정해진 자리를 표시한 그림을 이른다. 이 가례 반차도는 1681년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와의 가례 행사 기록인 《숙종 가례도감의궤》에 포함된 것이다.

18세기 집 짓는 풍경(<태평성시도>의 일부, 작자 미상, 18세기 후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목재를 다듬고 벽을 바르고 지붕에 기와를 올리는 등 조선의 집 짓는 여러 모습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요동치는 동아시아 정세 04

 

평온할 것 같던 중국 정세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외교 사신이 이 소식을 전하자 조선은 그 향방에 이목을 집중했다.

 

차왜差倭가 돌아가지 않았는데 또 나온다는 보고가 있으니, 그 사이의 정상이 참으로 매우 괴이합니다. 어찌 그 협박으로 인하여 허락할 수 없는 청을 허락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들의 왕래가 잇따라서 제공할 것이 다하였으니, 이것이 근심스럽습니다. 더구나 인심이 어수선하여 심지어는 임진년에 이미 경험한 변과 같다고 증거대고 있으며, 또 서울에서 유자가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고 잇습니다(1671년 10월 5일, 좌의정 정치화).

 

18세기 청나라 칙사 아극돈이 그린 <봉사도>의 부분. 칙사 영접. 임금(영조)이 모화관에서 청나라의 칙사를 영접하는 그림.(첫번째) 칙서 받기. 예를 갖춰 칙서를 받는 모습으로, 배경은 창덕궁 인정전이다.(두번째) 칙사 대접. 임금이 칙사를 대접하는 모습.(세번째)

조선통신사

동래 두모포 왜관. 일본인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사방에 담장이 둘러져 있고, 그 안에 일본인 거주 마을과 정박용 선창이 조성되어 있다.

동래 초량 왜관. 가운데 산 오른쪽은 동관이고 왼쪽은 서관이다. 동관은 왜관에 상주하는 일본인 거주공간이고, 서관은 일본에서 온 외교관 숙소다.

 

하늘과 땅의 불길한 징조들 05

 

혜성 출현은 괴변怪變이었다. 현종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고 신하의 조언을 구하는 교서를 내렸다. 그러면서 평소 근무하던 궁궐을 피하고, 더욱 조심스러운 자세로 허물을 반성해 조금이나마 하늘에 답하려고 노력했다.

 

근년에 혜성의 변이 있었을 때 다들 병화가 있을까 근심하였는데, 그때 천문을 잘 아는 자가 '아무 해에 반드시 기근과 역병이 있어서 주검이 쌓이는 참혹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과연 들어맞았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러 존망이 이미 판명되었으니, 전하께서 두렵게 여겨 덕을 닦고 허물을 살펴 분발하여 일으키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천심天心을 돌려서 대명大命을 잇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1671년 5월 9일, 판중추부사 정치화).

 

전라병사 유병익의 지시로 관청 뜰의 풀을 뽑고 있는 하멜 일행. 그림은 《하멜 표류기》 스티히터 판본에 있는 목판화 중 하나다.

조선시대 관상감의 측후관이 혜성과 객성의 변화를 관측해 기록한 《성변등록》의 일부(연세대 도서관 소장).

첫번째는 현종 5년 음력 11월 7일자. 두번째는 영조 35년 음력 12월자. 사자자리에 나타난 객성 기록.

장경각 동남쪽 마당에 있는 관천대 모습. 천문기구를 올려놓고 천체를 관측하던 곳이다.

 

유례없는 자연재해 06

 

참혹한 가뭄이 지금 20여 일에 이르러 앞날이 가망 없을 것 같아 답답할 따름입니다. 40년 동안 살면서 금년 같은 가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실로 국운이 걸려 있어 걱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아, 내가 즉위한 이래로 천재가 달마다 생기고 가뭄과 수혜가 서로 잇달아 없는 해가 없어 밤낮으로 걱정하며 편안할 겨를이 없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가뭄이 더욱 참혹하여 봄부터 여름까지 들판이 모두 타버려서 밀과 보리를 수확할 수 없게 되었고 파종도 시기를 놓치게 되었다. 가엾은 우리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아, 허물은 나에게 있는데 어째서 재앙은 백성들에게 내린단 말인가. 생각하면 미칠 것만 같고 가만히 생각하면 몸 둘 바를 모르겠으니, 넓은 대궐이 무엇이 편안하겠으며 먹는 것이 무엇이 맛있겠는가(1670년 5월 2일, 현종).

 

약천 남구만(1629~1711). 현종 9년(1668)에 안변부사 · 전라도 관찰사가 되고, 1671년 함경도 관찰사가 되어 유학을 진흥시키고 변방수비를 다졌다.

제주도 조천관.

창궐하는 전염병과 가축병 07

 

전염병은 정확한 이름도 없이 염병染病, 여역, 역병疫病 등으로 불렸다. 원인도 모른 채 느닷없이 찾아온 전염병에게 사람들은 순식간에 온 마을을 빼앗겼다.

 

흉년의 여역癘疫은 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 모든 마을에 전염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어 불처럼 더욱 치열해지고 있으므로 편히 쉬게 될 날이 언제 있을지 막막합니다. 죽을 장만하는 것을 감독하는 자 중에 전염되어 앓는 자를 이루 다 셀 수 없고, 각 고을의 수령과 관속으로서 전염되어 앓는 자도 많습니다. 혹 관아 사람 전부가 전염되어 앓으면 그 관아 노비에게 관속의 입을 대행시키기도 합니다. 병을 앓는 백성을 위해 장막을 따로 설치하여 전염될 걱정을 방지하고 있습니다마는, 대엿새분의 마른 식량을 나누어주면 한꺼번에 죄다 먹고는 지팡이를 짚고 무릎으로 기어 들어와 입을 벌리고 먹여주기를 바라는데, 쫓아도 안되고 타일러도 안됩니다. 비참한 꼴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습니다(1671년 3월 23일, 전라 감사 오시수).

 

 의원의 진료를 묘사한 불암사 <감로탱>(1890). 피골이 상접한 사람이 두 의원에게 진료를 받고 있다.

여단. 여단은 악귀를 쫓는 여제를 올리는 곳으로 관아의 북쪽에 있다.

처용의 춤(《정리의궤첩》 중 14면, 김홍도, 개인 소장). 처용무는 역신을 쫓는 상징이 되어 신라 때부터 조선 말까지 그 전통이 지속되었다.

남원부지도. 남원성을 중심으로 중앙에 관아, 북쪽에 향교와 여단, 서쪽에 사직단과 성황단이 있다.

밭을 가는 소를 묘사한 풍속화(<쌍겨리>의 일부, 김홍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역으로 소가 죽어 나가자, 농가에서 사람이 소 대신 밭을 가는 데 아홉 명의 힘으로 겨우 소 한 마리의 일을 해내고 있었다.

 

사상 최악의 '경신대기근' 08

 

1670~1671년 대기근을 '경신대기근'이라고 한다. '경신대기근'은 조선 역사상 유례없는 최악의 대기근으로 최대 규모의 식량 고갈 상태를 가져왔다.

 

연산連山에 사는 사비私婢 순례順禮가 깊은 골짜기 속에서 살면서 그의 다섯 살 된 딸과 세 살 된 아들을 죽여서 먹었는데, 같은 마을 사람이 전하는 말을 듣고 가서 사실 여부를 물었더니 '아들과 딸이 병 때문에 죽었는데 큰 병을 앓고 굶주리던 중에 과연 삶아 먹었으나 죽여서 먹은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합니다. 이른바 순례는 보기에 흉칙하고 참혹하여 얼굴이나 살갗, 머리털이 조금도 사람 모양이 없고 마치 미친 귀신같은 꼴이었다니 반드시 실성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성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실로 예전에 없던 일이고 범한 것이 매우 흉악하므로 잠시 엄히 가두어놓았습니다. 해당 부서를 시켜 처리하게 하소서(1671년 3월 21일, 충청 감사 이홍연).

 

소금 굽기(《천공개물》 중에서). 솥에 바닷물을 넣고 불을 피워 소금을 굽는다. 소금은 기근을 구제하는 데 식량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다.

 

2년간 1백만의 죽음들 09

 

기근으로 오랫동안 먹지 못해 오염된 물로 배를 채우고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아 병균에 저항할 힘조차 없는 떠돌이들이 가장 많이 죽었다.

 

서울 내외에 굶어 죽은 시체가 도로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혹은 부모 처자가 서로 베고 깔고 함께 죽은 경우도 있고, 혹은 어미는 이미 죽고 아이가 그 곁에서 엎드려 그 젖을 만지며 빨다가 곧이어 따라 죽기도 합니다. 울고불고 신음하는 소리에 지나가는 자도 흐느낍니다. 더욱이 전염병은 날로 치솟아 열풍이 불꽃을 일으키는 듯한 기세입니다.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드문데, 걸렸다 하면 곧 성 밖에서 죽습니다. 사방이 염병이라 온통 움막을 지너 끝없이 펼쳐지니, 참혹한 광경과 놀라운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서울 밖에서 죽어가는 참상은 이미 전쟁에 비길 바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보리와 밀을 이미 그르쳤고 수수와 좁쌀도 다시 벌레가 먹었으니, 겨우 살아남은 백성들은 생기가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1671년 6월 4일, 대사헌 장선징).

 

전염병으로 죽은 엄마 곁에서 울부짖는 아이(조선총독부, 《대정 9년 호열자병 방역지》). 역병이 들면 많은 아이들이 고아가 되었다.

 

동요하는 민심 10

 

먹을 것이 부족한 흉년에 산 사람이라도 살려면 입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서 전부터 사람들은 기근이 들면 입을 줄이기 위해 자녀를 팔거나 죽이고 거리에 버리곤 했다.

 

경술년과 신해년 두 해의 기근은 옛날을 통틀어 보아도 없었던 것인데다 신해년부터 올봄까지 전염병이 크게 번져, 외방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서로 떼를 지어 도적질을 함으로써 명화적이 인명을 살상하는 변고가 도처에서 발생하였다. 민간에 저축된 건 벌써 바닥이 나서 그들이 훔쳐가는 것이랬자 고작 됫박쌀에 불과하였는데, 길에서 장사치나 여행자를 만나면 뒤질세라 서로 달려들어 약탈을 하였다. 호남과 영남의 중간 지역이 특히 도적떼의 소굴로 변했고, 충청도 청주 등 고을에서는 보름 사이에 인명을 살상한 곳이 많을 때는 열네 군데나 되었다고 한다(1672년 3월 29일, 실록).

 

용주사 <감로탱>에 그려진 고아들(1790)

포도청 우포청사(서울시유형문화재 제37호, 서울 성북구 돈암동). 죄인의 심문이나 포도, 순라 등의 일을 맡았던 포도청엔 기근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더욱 붐볐다.

 

진휼을 서둘러라 11

 

진휼청은 기근 시 비축곡을 풀어 곡물을 대여하거나 판매할 뿐만 아니라 양곡과 죽을 제공했다. 따라서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는 방도는 진휼 정책의 관제탑이라 할 진휼청을 조기에 정상 가동하는 데서 시작된다.

 

엎드려 생각건대, 국가가 불행하여 액운이 든 시절을 만나 수재와 한재가 재앙이 되고 해마다 흉년이 져서 굶주려 사망하는 참상이 지난해에 이르러 극도에 달했습니다. 거기다 여역이 크게 돌아 쪽박을 들고 구걸하며 죽소粥所에 의지하여 얻어먹던 저 무리들은 진휼을 그친 후에 남김없이 죽었습니다. 기근 · 여역으로 죽은 토착 농민까지 온 나라를 합하여 계산하면 그 수가 거의 백만에 이르고, 심지어 한마음이 모두 죽은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비록 임진 · 계사년 전란의 참혹함이라도 거의 이보다 지나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1672년 12월 5일, 헌납 윤경교).

 

김만기. 김장생의 후손으로 그의 딸이 숙종의 비가 되었다.

<경기도 감영>(작자 미상, 호암미술관 소장). 돈의문 밖에 위치한 경기 감영을 그린 관아도로, 17세기 기근 당시 각 지역의 감영에는 비축곡이 풍부할 것이라는 추측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기도 했다.

<신풍루 사미도>(《원행을묘정리의궤》, 서울대 규장각 소장). 1795년 정조 화성행차 당시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내려주는 사미의식을 묘사한 그림이다. 진휼 때 굶주린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주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보령 오천성에 남아 있는 진휼청 현판. 기근 시 기아자에게 양곡을 나눠 주거나 죽을 쒀주는 곳이다.

 

쏟아지는 민생 정책 12

 

기근으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을 때 이들을 살리는 길은 시급히 식량을 제공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세금을 경감해 그들이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부담을 줄여주어야 한다.

 

부세를 줄이고 기근을 구제하는 정치는 더욱 우선적으로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대신과 회계를 맡은 신하에게 오로지 책임을 맡겨, 각종 세금 및 경상 비용의 액수에 대해서 면제하거나 줄일 만한 것을 헤아려 계산하게 하고 또 각 도와 각 아문의 저축에 대해서 옮겨서 사용하거나 백성들에게 나누어줄 만한 것을 요량하게 하여, 전체의 계산을 맞추어두었다가 군읍에서 점검하여 아뢰기를 기다려 그 분수分數에 따라 들어다 쓰게 한다면, 일이 미리 확립되어서 백성들이 실제적인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1670년 7월 24일, 부제학 김만기).

 

서포 김만중(1637~1692). 문신이자, 소설가다.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의 아버지 김만기의 동생이기도 하다.

경신기근에 목화와 삼 농사 역시 흉작이었다. 목화와 삼 농사가 흉작이면 농가의 면포와 마포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그림은 목화솜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짜는 여섯 가지 장면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여인 방적하고>(김중근, 《기산풍속도첩》에서)이다.

 

바닥난 국고를 채워라 13

 

기근이 깊어 갈수록 국가 재정을 걱정하는 한숨은 커져만 갔다. 정부 관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근이 참혹한데 불행히 나라의 저축이 바닥나서 진구할 길이 없다고 걱정만 늘어놨다.

 

아, 이해의 처참한 기근을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홍수, 가뭄, 바람, 서리의 재변이 팔도가 똑같아서 곡식이 여물지 않아 굶주려 죽은 사람이 길에 널렸다. 목숨을 잃는 재앙이 전쟁보다 심하여, 백만 목숨이 거의 모두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으니 실로 수백 년 아래에 없던 재난이었다. 대개 쌓아서 저축하는 것이 천하의 대명이거늘 국가가 평소에 비축한 것이 없이 갑자기 홍수와 가뭄을 만나 이 백성들이 굶어 죽는데도 구제하지 못하였으니, 아, 비통한 일이다(1670년 10월 15일, 현종).

 

상평통보. 조선 후기 법정 화폐로 대기근 시 재원조달 목적으로 주조되기 시작했다.

잠곡 김육(1580~1658). 17세기 후반 개혁 정치가로 대동법을 실시, 수차 사용, 화폐의 통용, 역법의 개선 등 구체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아래 그림은 그가 사용을 건의한 수차를 그린 풍속화의 일부다.

공명첩. 국가가 재원조달을 위해 판매한 직첩으로 받는 사람의 이름이 비어 있다고 하여 공명첩이라고 한다.

 

꺼지지 않은 잔불 14

 

1671년 겨울철 잦은 천변재이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조선을 온통 괴담으로 물들였다. 괴담의 생성과 전파에는 배후 세력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고 자연 발생적인 것 같다.

 

신이 엎드려 생각건대, 지난해에 추수가 없었고 올 여름에 보리가 없었으니 실로 국가가 기울어져 엎어질 운명입니다. 그런데 지금 또 겨울 우레가 일어나니 이어지는 해가 걱정입니다. 전하께서 이전의 옛일을 죽 살펴 보시건대 오늘날과 같으면서 나라가 멸망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습니까(1671년 11월 30일, 우의정 송시열).

 

<온양별궁 전도>(서울대 규장각 소장). 조선시대 왕들이 질병 치료차 자주 행차했던 온양별궁의 모습.

조선 제18대 임금 현종의 수결.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능이 있는 숭릉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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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