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황영찬

Tag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today
  • yesterday

2018-017 앵통하다 봄

 

 

임성구 시집

2016, 문학의전당

 

대야도서관

SB110690

 

811.7

시68ㅅ  43

 

시인동네 시인선 043

 

태양과 달과 별은 지는 법이 없다.

단지 어둠이 우리 곁에서 피고 지기를 매번 반복할 뿐이다.

 

그래서 나의 시는,

오뉴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불판 너럭바위 위에서도

시들지 않아야 하고……

 

어둠이 싱싱하게 자라나는 골짝에선

반갑게 어둠을 받아내고 지워내면서

하늘의 씨앗을 지상에 총총 뿌려

세상을 아름답게 가꿔내야 하고……

 

상류로 향하는 달빛 속 연어들처럼

힘차게 힘차게 은유의 비늘을 반짝이며

당신께로 좀 더 가까이 가고픈

무수한 열망과 절망 사이의 황홀한 키재기.

 

임성구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1994년 『현대시조』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오랜 시간 골목에 서 있었다』, 『살구나무죽비』 등이 있다.

E-mail : jaje@hanmail.net

 

시인의 말

 

누군가가 유기해서

 

척박한 땅에 자라난

 

못생긴 내 자식들아

 

네 진한 향기를 열어

 

나보다

 

신나게 고함치거라

 

파란만장을

 

웃게 하라

 

 

2005년 어느 앵통한 봄에서 다시 봄까지

임성구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눈꽃 경적을 울려라

도화역(桃花驛)

꽃물 한때

토란잎 우산

달빛 우포

바람 호루라기

방어진(方魚津)

잡초의 눈물

잡내를 없애다

일 하는 사람

삼나무 숲에 들다

노래하는 김광석

수선화 지는 날

서운암의 봄

가을 탁발(托鉢)

단풍나무 관절

초정을 읽다



제2부 깨끗한 짝사랑 같은

뱀사골의 봄

삼파귀타

봄, 산동마을

나비물

양후니 형아

부부

시(詩)

다시 낫을 들다

바다, 노래방

나무 물고기

각북(角北)에 앉아 있다

분신

고사목

차향[茶香]에 녹다

이른 아침 하늘수국

야한 생각


제3부 온몸 녹아서 꽃이 되기까지

러브체인

꽃, 다방

케냐

그 짓

나들이

앵통하다, 봄

봄 혹은 강변카페

달에게 사정(射精)하다

위양못 삼매경

에로틱 아이스바

천리향

밤꽃 여자

화인(火印)

어떤 동백 시집

잡초의 눈물 2

텍사스 에레나


제4부 공손한 절규

먹구야

공갈 연애(戀愛)

부재중이었던 그해 봄

할복(割腹)의 시(詩)

내 시의 아가리를 찢고 싶다

황소개구리 울음처럼

김수영을 읽다

잡초의 눈물 3

공손한 절규

불빛 시위대

저, 울대를 그냥

내 시로 창난젓을 담그다

잘 까분다는 것

잡초의 눈물 4

몸이 식어 간다

개 한 마리

참 어이가 없어서


제5부 그때 가난은 누가 낳았을까?

샐비어 엄마

그때 가난은 누가 낳았을까?

오동꽃 장의차

팔월

환승

인공세심(洗心)실험실

옻단풍

아니 기쁩니까?

42병동 먹구에게

파란 나물

문자의 궁합

시를 업은 항아리

다듬어진다는 것

묵비권에도 가시가 있다

막차 떠난 후 불시착

용담꽃 평설(評說)

어머니라는 이름과 아버지라는 이름 사이, 내 이름이 참으로 따뜻하게 피어 있었음을…


해설 자학(自虐)과 자존(自尊)의 굴레

        정용국(시인)

 

도화역(桃花驛)

 

오월로 뛰어가는 김천 라고 어디쯤에

복사꽃이 피었다. 흰 눈 펑펑 내리는 날

기차가 그냥 지나쳐도

손 흔드는 간이역

 

내일이면 지워질 이 역에서 쓰는 편지

반쯤 고개 내민 복사우체통 비둘기

천년을, 또 천년을 향해

눈꽃 경적 울린다

 

이른 아침 하늘수국

 

널 보면서

뭉퉁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자욱한 안개 너머

소녀의 깨끗한 미소

 

한 번도

다가서지 못한

 

내 유년의 짝사랑 같은……

 

러브체인

 

허공 난간에 매달린 가난한 진물들이

 

서로를 보듬은 채 푸르게 몸을 꼰다

 

녹아서 꽃이 되기까지

 

그 꽃이 지기까지

 

앵통하다, 봄

 

우물가 앵두나무가 뽑히던 컴컴한 봄

꽃의 대중들은 못 들은 척 고개 돌린 채

잘났다 제 잘났다고 빨갛게들 떠든다

 

앵두 젖 훔쳐 먹은 달콤한 올가미들

순해서 더 푸른 달아 기도문만 외지 마라

운주사 석가모니는 왜 여직 주무시나

 

바들바들 떨며 진 한 송이 사람의 집

온몸이 녹아내린 식초 같은 절규인 양

화구구(火口丘) 앵두꽃무덤에는 재 냄새가 진동한다

 

공손한 절규

- 노숙에 든 도시

 

딱지로 오래 앉은 그 상처의 속내는

 

단 한 방울 눈물조차 될 수가 없었다

 

낮술에

젖어버린 생애가

작두를 탄다

맨발로

 

시위 못 당긴 화살처럼

방향 잃어 질척인 목숨

 

동굴 안 부러진 종유석으로 널려 있다

 

차라리

출구를 막아주오

 

저 울음의 비상구를…….

 

그때 가난은 누가 낳았을까?

 

지푸라기 바람이 대문 밖에서 불어온 날

재 발라 놋그릇 닦는 어머니가 흔들리고

 

아득한

쌀뜨물 쑥국

보글보글 끓고 있다

 

비 한 자루 골목 골목 어둠을 쓸어내던

70년대 새벽종이 두부장수로 왔다 가고

삼십 촉 농촌의 꿈은 장닭처럼 경쾌했다

 

오래된 봄 한 술 뜬 샛별아파트 두레밥상

자연 퐁퐁 거품처럼 초록세상 부푼다

 

저만치

정겨운 얼굴

쑥뜸으로 오고 있다

 

내 시의 아가리를 찢고 싶자

 

고아 같은 나무에서 자라난 예쁜 꽃을

 

콱 찢어 뭉개고 싶다,

세상 어디 발도 못 딛게

 

상처도

빛나길 열망하는

 

이 병신 같은

새끼

 

내 시로 창난젓을 담그다

 

쿰쿰하게 잘 썩은 세상

내 창자를 모두 꺼낸다

 

소금 대신 짠 눈물 섞인

백일 잠을 깨부수고

 

뜨신 네,

밥숟가락에게

 

개좆처럼 대들다

 

불빛 시위대

 

상남동 LED등은

마귀 같은 불빛 군중

 

저 거센 비바람에도

폐부까지 찌르는 말

 

부도난

살구나무죽비

처형하라

처형하라

 

개 한 마리

 

하루 해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물녘에

 

뉘 집 개가 짖는다

 

온 마을을 뒤흔든다

 

한쪽 귀

 

담을 넘어가 보니

 

힘없는 시가 놓여 있다

 

이 빠진 일상들이 새파랗게 질려 떤다

 

틀니 같은 행간들이 발악하듯 되짖는다

 

달걀로

 

바위 치던 자음들

 

내 낭심을 물었다

 

잡초의 눈물 3

- 아름드리나무 밑 잡초에게

 

아름드리나무 밑에서

시 한 편을 쓰겠다고

 

햇빛도 하나 없이

긴 사색에 젖지만

 

파문 져

영양실조에 걸린

해 한 포기

달 한 포기

 

악착같이 살아보겠단 그 결심도 네 앞에선

쉬-이 꺾여 우는, 빼빼 마른 영감(靈感)이여

 

아, 제발

무릎만 꿇지 마라

한낮 개꿈도

희망이다

 

잡초의 눈물 4

- 잡초에게도 등급이 있을까

 

번지레 잘났든디

학벌 아예 좋든지

 

길도 늪도 아닌 곳에

노둣돌 놓고 바라본 하늘

 

가을날

백발 꽃잎으로 번진

저 억새의 눈물 눈물

 

뜨거운 시 되겠다고 땅웃음 짓는 뿌리의 나날

 

밤은 어찌 날마다 불청객으로 찾아오나

 

못다 핀

혈전의 밤도

맥은 아직 살아 있다

 

할복(割腹)의 시(詩)

 

1

스스로 이 장검을

푹 찔러 넣는다

 

외마디 유서들은

"욱!"하고 쓰러지고

 

식어 쓴

문장들이 뚝 뚝,

애리한 몸에

 

2

봄이

긴 여름이

내 몸을 관통해갔다

 

몸 밖으로 흘러내린

늦가을 단풍 군무

 

벼랑을

뛰어내린다

 

아, 달라붙는

흰 서리꽃

 

시(詩)

 

바람 살짝 불어와도 마음 먼저 흔들려

주름으로 웃다가 팽팽하게 젖어가는

 

우포늪

가시연 같은

실안낙조 어부 같은

 

때 되면 호령하고 때 되면 회항하는

그들의 꿈은 늘, 가시 돋친 불화살

 

가슴에

새긴 마음 한 줄

검붉게 탄 초록바다

 

잡내를 없애다

 

얼마나 많은 욕심이 썩어서 문드러진 채

방 한 켠에 자리 잡고 울었는지 모른다

진갈색 염증들의 큰 눈이

나를 먹고 있었다

 

마흔에서 오십으로 휘어지는 이 길목

쓰러지지 않을 것 같던 한 욕심을 볕에 말린다

뽕잎을 따다 먹인다

내가 나를 먹인다

 

누에가 몸의 독소를 제거하는 푸른 한낮

오십은 육십을 먹고 칠십 팔십 백세를 먹고

가벼운 저 구름 속으로

실을 뽑아 올리겠다

 

분신

 

여자의 방 빠져나온 울혈의 날들이

전조등 하나 없이 저벅저벅 어둠 사린다

어머닌 이미 강을 건너시고

빈 배에 앉아 시를 쓴다

 

둥글게 매끄럽게 살란 말씀 새기는데

툭툭 터진 실밥처럼 보풀거린 문장이

자꾸만 갓길을 가고 있다

천길 벼랑 뾰족한 길

 

곁가지는 쳐내야, 모난 돌은 다듬어야

아름드리 된다는데, 꽃빛도 환하다는데

아직도 나를 태우며 가는 길이 아득만 하다

 

잡초의 눈물

 

이 척박한 땅에서도 푸른 꿈 안 버린 널

호미로 낫으로 쳐내겠다는 마음 한 켠

비릿한 풀물의 고함 천둥처럼 번진다

 

우후죽순 돋아난 날[刃]을 벼린 이 어둠

걷어내지 못하면서 감히 널 뽑겠다니

곁가지 피워 올린 꽃도 미안해서 못 보겠다

 

씀바귀 엉겅퀴꽃 구둣발로 앉은 나비야

 

발소리를 줄여라

안 온 듯이 다녀가거라

 

햇살아

밤새 고인 천둥눈물

남김없이 먹고 가거라

 

먹구야

 

섣불리 웃지 마라

 

장마의 날

있을 거다

 

함부로 짖지도 마라

 

우는 하늘

며칠이겠나

 

시인은

웃음도 울음도

 

절체절명에

 

쏟는

거야

 

  어머니라는 이름과 아버지라는 이름 사이,

내 이름이 참으로 따뜻하게 피어 있었음을……

 

갓길에 핀

풋 찔레꽃도

 

울음 매우

따뜻했네

 

가슴을 다

도려내놓고

 

빛 한 줌

들이기까지

 

우주를

오래 애돌아 와서

 

참회 눈물로

벙그네

 

42병동 먹구에게

 

부러진

갈비뼈도

터져버린

공기주머니도

 

어머니의

하늘비단

자락 자락을

다 꿰매면

 

저만치

폈다 지는 꽃

열매 한 알로

오리라

 

고사목

 

지리산

법계사 근처

산등허리 한입 물고

 

온몸으로 비를 맞는

까마귀 몇 마리

 

울지도

날지도 못해

 

우두커니

 

슬프다

 

삼파귀타*

 

바람이 불어왔다

조용히 밤도 왔다

 

어둠 밝힌 별 노래에

터져버려 아린 물집

 

달 등의

박꽃 하나가

손수건이 되어주었다

 

물풀 같은 그 여자

열여덟 필리핀 순이

 

젖은 밤을 보내놓고

풋감 떨어진 새벽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부엌문을 또 연다

 

*삼파귀타 : 필리핀의 국화.

 

용담꽃 평설(評說)

 

쪽빛 하늘 구릉 모서리

시집 한 권 놓여 있다

 

가끔은 하나님도 마음 편한 때 있나봐

정제된 꽃잎 페이지 남청 글씨 좀 봐봐

 

청개구리 한 마리가 앉은 자리 가을볕 자리

나비도 읽고 가고 잠자리도 읽고 가는

주머니, 향기주머니 무지개로 넘친 꽃밭

 

눈으로 퍼 먹고 냄새로도 저어 먹는

아침 산행 보폭 따라 앙가슴 열어놓은

간결한 한 다발의 시평(詩評) 시원하게 뜨겁다

 

 

 

posted by 황영찬
2018. 3. 30. 11:53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6-016 우리 역사는 깊다 [1]

 

 

 

전우용 지음

2015, 푸른역사

 

대야도서관

SB108230

 

911.06

전66ㅇ  1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오늘로 들여다본 어제

오늘이 말해주는 내일

오래지 않은 오늘로

오래지 않을 미래를 그리다

 

이 책은 100년 전과 현재가 얼마나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를 살피기 위해 귀성 풍습의 기원, 예방 접종의 시작, 전등 시대의 개막, 위생 관념의 확산, 대중교통 수단의 도입 등 주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작은 사건들을 소개하고, 성찰의 재료로 삼을 만한 요소들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덧붙인 것이다.

그때그때 날짜에 맞춰 총 60개의 주제를 선정했기 때문에 꼭지들 간 연관성은 거의 없지만, 모든 꼭지를 관통한 내 문제의식은 역사란 시간 · 공간 · 인간의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라는 생각이었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현재와 과거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생각할 수 있기를, 현재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조금 더 무겁게 받아들이기를, 스스로 '나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갖게 되기를, 소망한다.

- <책머리에> 중에서

 

전우용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를 지냈고,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이자 서울시 문화재위원이다. 저서로 《서울은 깊다》, 《현대인의 탄생》, 《한국 회사의 탄생》, 《오늘 역사가 말하다》, 《서울의 동쪽》 등이 있다.

 

차례 / 우리 역사는 깊다 1

 

● 책머리에


1월 7일_조선총독부 이전

경복궁 잔디밭과 일제의 공간정치


1월 14일_광장주식회사 주주총회 개최

대통령의 재래시장 방문, ‘서민 코스프레’ 아닌 ‘임금 코스프레’


1월 21일_경찰, 방탕한 방아타령과 음란한 춘향가 공연 금지

대중문화 길들이기, 권력의 헛된 욕망일 뿐


1월 27일_화신백화점 화재

화신백화점에서 종로타워로, 역사는 땅에도 새겨진다


2월 5일_미국인, 돌싸움 구경하다 살인

공공연한 폭력은 줄었으나 비물리적 폭력은?


2월 10일_종로경찰서, 어린이 행상 단속

어린이를 거리로 내몬 ‘불량한 가족’


2월 19일_에케르트, 대한제국 군악대장으로 부임

한국 근대 문화사에서 실종된 퍼즐조각


2월 24일_조선총독부, 한센병 환자 격리 위해 소록도 자혜의원 설립

한센병보다 무서운 병, ‘장애인 혐오증’


3월 3일_고종황제 국장

‘죽은 권력’을 둘러싼 기억의 싸움


3월 10일_만민공동회 개최

민주주의, 가장 낮은 곳에서 나는 소리를 먼저 듣는 것


3월 18일_조선총독부, 조선태형령 제정 · 공포

형벌의 목적, ‘교화’인가 ‘복수’인가


3월 26일_우리나라에서 교육받은 최초의 여의사 탄생

여성을 가정에 묶어 두려는 태도, 이미 시대착오


4월 1일_소학교를 국민학교로 변경

국민을 찍어내는 기계였던 ‘국민학교’, 이름은 바뀌었으나 …


4월 7일_값싼 알코올, 대량생산 본격화

연료용 알코올이 서민용 음료가 되면서 술의 신성성도 옅어지다


4월 15일_광희정 수건 공장 총파업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지워버린 개발


4월 22일_서울에 시내버스 등장

‘나만의 시간’,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본능적 욕구, 대중교통수단 기피로 표출되다


4월 30일_의생醫生으로 격하된 한의사들, 서양의학 수강

양방과 한방이 공존하는 현실, 의료일원화의 해법 찾아야


5월 4일_첫선을 보인 전차

근대 문명의 이기利器 전차와 ‘근대병’ 그리고 ‘주의사항’


5월 14일_이 땅에서 교육받은 최초의 양의 탄생

근대화의 역사, 배움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5월 19일_도둑질 겸하던 깍쟁이패 체포

놀고먹으려는 욕망이 죄의 사슬에서 풀려난 시대, 깍쟁이란 말도 원뜻에서 풀려나다


5월 27일_여자 경찰 채용 시험 시행

경찰에 대한 불신, ‘이미지 쇄신’만으로는 해소되지 않을 것


6월 3일_물장수들, 상수도 준공에 따른 손해배상 요구

자연과 인류 최대의 적은 인간의 탐욕이다


6월 10일_총독부, ‘시의 기념일’ 선포

권력의 여론 조작, 역사의 시계바늘을 엉뚱한 곳으로


6월 16일_대조선은행 창립 준비모임 개최

‘공공’을 돌보지 않는 은행, 천한 고리대금업체와 다를 바 없다


6월 25일_한국전쟁 발발

인류의 ‘주적’은 전쟁이다


6월 30일_한양상회, 기업 이미지 광고 게재

물질과 욕망이 지배하는 시대, ‘지름신’의 거소 백화점


7월 6일_일제 경찰, 무당 체포

세계 희유의 ‘다종교 단일민족국가’ 한국, 통합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


7월 8일_신생활복 착용안 통과

‘의복 통일’, 전체주의적 저질 생체 권력의 상징


7월 13일_조선체육회 창립

‘수신’ 버리고 ‘체육’만으로 얻는 몸은 사람의 몸이 아니다


7월 15일_조선중앙위생회 설치

‘위생’의 이름으로 사생활에 개입하는 국가, 생체 정보 유출의 위험성


● 찾아보기

 

조선총독부 신청사 건축 현장

 

일제는 경복궁 내의 대다수 전각을 헐어버리고

그 앞에 르네상스 양식의 위압적인 총독부 신청사를 지었다.

조선왕조의 '초라함'과 일본 제국의 '위용'을, '야만' 조선과 '문명' 일본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려는 의도였다.

*출처 : 이규헌 해설,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상 - 외침과 투쟁》, 서문당, 1996, 142쪽

 

경복궁 잔디밭(1926년 이후)

 

일제는 잔디가 한국인들에게 죽음을 표상한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경복궁 마당에 잔디를 심었다.

*출처 :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일제 침략 아래서의 서울(1910~1945)》, 2002, 158쪽

 

1900년경 동대문으로 드나드는 장사꾼 행렬

 

광장주식회사는 18세기 중반부터 새벽장이 열리던 '배우개'에

근대적인 상설 시장을 세우고 이름을 '광장시장'이라 했다.

오늘날 어마어마한 규모의 동대문시장 타운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츨처 : 최석로 해설, 《(사진으로 본 조선시대) 민족의 사진첩 Ⅱ, 민족의 뿌리-그때를 아십니까?》, 서문당, 1998, 17쪽

 

1902년 야주개(현 새문안교회 부근) 봉상사奉常司 자리에 세워진 협률사 극장

 

500석 규모의 원형극장이었는데,

최남선은 이 건물이 '로마의 콜로세움'을 본보기 삼았다고 썼다. 1908년 원각사圓覺社 극장으로 바뀌었다.

*출처 : 동아일보사, 《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Ⅳ(6판), 1991, 902쪽

 

화재 직전의 화신백화점

 

왼쪽이 '선전' 건물을 증개축한 서관이고 오른쪽이 동아백화점을 매수한 동관이다.

1935년의 화재는 서관에서 일어나 동관으로 옮겨 붙었다.

화재 후 신축된 화신백화점은 당시 서울의 최고층 건물로 '입전' 터라는 장소의 이미지에 잘 부합했다.

*출처 : 《신세계 25년의 발자취》, 주식회사 신세계백화점, 1987, 59쪽

 

돌싸움

 

1880년대 이 '놀이'를 본 알렌은 "군인들이 보았다면,

이렇게 격렬하게 싸우는 주민들이 아주 훌륭한 군사훈련을 한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썼다.

*출처 : 서울특별시, 《사진으로 보는 서울백년》, 서울특별시, 1984.

 

1910년대 서울 종로의 땔감장수 어린이

 

10살 남짓한 아이 둘이 나뭇짐을 잔뜩 실은

소 한 마리씩을 끌고 와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캬라멜, 과자, 사이다 등 부피가 작고 가벼운 새 상품이 나온 뒤에는

이것들이 '소년 행상'의 주력 상품이 되었다.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편저, 《100년 전의 기억, 대한제국》,

국립고궁박물관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공동주최 특별전 도록, 2010, 89쪽.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음악회를 마친 후

외국인 청중들과 함께한 한국 군악대원들(1902).

아래는 프란츠 에케르트

 

에케르트는 한국이 망한 뒤에도 회현동 자택에 머물며 양악洋樂을 전수하다가

1916년 8월 6일 6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장례음악 연주는 '특별히' 이왕직 양악부가 담당했다.

*출처 : 경향신문 광복50주년 사록 편찬팀, 《격동 한반도 새지평》, 경향신문사, 1995, 5쪽

 

1947년 소록도 갱생원에서 열린 환자와 자녀들 간의 면회식

 

혹시 자녀가 감염될까 보아 환자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바람을 마주 대하고 섰다.

'미감아'란 '아직은 감염되지 않은 아이'란 뜻이니 '미망인'만큼이나 심한 말이다.

소록도에 격리 수용된 환자들은 갱생원 직원들 앞에 설 때 바람을 맞는 자리에 서는 습관을 들여야 했다.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 영구 격리가 중단된 것은 1954년 이후였다.

*출처 : 보건사회부 국립소록도병원, 《사진으로 보는 소록도 80년》, 보건복지부, 1996.

 

덕수궁 이태왕 봉고제

 

1919년 2월 9일 덕수궁(경운궁) 함녕전에서 데라우치 총독을 비롯한

총독부 고위 관리가 참석한 가운데 일본 신관神官 주재로 일본 왕가의 장례의식인 봉고제가 열렸다.

고종의 장례는 일본 궁내성이 주관하는 일본의 국장이었지만,

대다수 한국인들은 이를 '한국의 국장'으로 바꿔 치렀다.

*출처 : 서울대학교박물관.

 

이태왕국장

 

이태왕국장은 일본식과 한국식이 뒤섞인 기묘한 형식으로 치러졌다.

장례 행렬의 앞쪽은 일본 기마경찰대와 군인들의 호위 속에 서양식 예복을 입은 관리들이 이끌었으며,

한국인들은 전통 상복을 입고 그 뒤를 따르는 식이었다.

일제는 이 같은 형식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이씨 왕조'의 종식을 알리고자 했다.

반면 일본 통치에 반대하는 한국인들은 고종이 일본인들에게 독살 당했다는 소문을 확산시키려 애쓰는 한편,

장례식 이틀 전에 3 · 1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고종의 죽음을 애도하는 옛 신민들의 비통한 마음을 새 시대를 여는 에너지로 삼으려 한 것이다.

*출처 : 조풍연 해설,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속)-생활과 풍속》, 서문당, 1987, 194쪽.

 

1899년의 종로 네거리 보신각 주변

 

사진 왼쪽 구석이 보신각, 그 건너편이 백목전 건물이다.

만민공동회 회장이 된 싸전 상인 현덕호는 이 건물 다락에서 자기보다 윗급인

사농공士農工을 내려다보며 개막 연설을 했다.

*출처 : 최석로 해설, 《(사진으로 본 조선시대) 민족의 사진첩 Ⅰ. 민족의 심장-정도 600년 서울의 풍물》, 서문당, 1998, 43쪽

 

일제가 '조선풍속'이라는 이름으로 제작, 유포한 사진엽서

 

일제는 '연출'한 장면을 담은 이런 사진엽서들을 다량 배포하여

조선의 '야만성'을 내외에 알리는 데 열중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법치의 이름으로 은밀한 장소에서 더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했다.

*출처 : 최석로 해설, 《(사진으로 본 조선시대) 민족의 사진첩 Ⅱ, 민족의 뿌리-그깨를 아십니까?》, 서문당, 1998, 11쪽

 

영화 <검사와 여선생> 포스터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제작된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1948)에서 주인공은 여선생이다.

그러나 여선생은 주인공임에도 자기가 처한 억울한 상황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의 가혹한 운명을 결정한 이도, 그를 남편 살인범의 처지에서 구해준 이도, 모두 남자들이다.

여성은 남성에 종속되는 존재이고

여성의 역할은 남성의 보조일 뿐이라는 인식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안수경, 김해지, 김영흥 세 청강생의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 기념사진(1918)

 

군복을 입고 칼을 찬 교수들은 순사와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검은 제복의 남자들 뒤에 흰 옷을 입고 선 세 여성이 '여의사' 시대를 연 선구자들이다.

*출처 : 사토 고죠佐藤剛藏, 이충효 옮김, 《조선의육사》, 형설출판사, 1993.

 

일제 강점기 국기 게양식

 

근대는 '국가'와 '국민'이 신神을 대체한 시대이기도 하다.

국민은 언제나 '옳고' 국가는 가장 '신성'하다.

국가를 상징하는 물건들도 '신물神物'의 자리를 차지했다.

국가를 '정신을 가진 실체'로 만들려는 시도는 국가의 표식일 뿐인 '국기'를

'경배'와 '서약'의 대상으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자기 소유물의 표식에 경배하는 것은 개념상 모순이다.

*출처 : 목도공립학교 제2회 졸업기념, 1943.

 

일제 강점기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를 낭송하는 어린이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양상이 전방과 후방, 군인과 민간인이 구분되지 않는 '총력전'으로 변하자

제국주의 열강은 '국민교육'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일제 역시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바꾸고

학생들이 '황국의 도'를 체득하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출처 : 이규헌 해설,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하 - 임정과 광복》, 서문당, 1996, 160쪽.

 

대한제국기의 술도가

 

마당 가득 술을 만들기 위한 밑밥이 널려 있다.

증류주 한 되를 만드는 데에는 대략 쌀 한 되가 든다.

여기에 시간과 노력, 정성이 더 들어가야 하니 증류주 값은 비쌀 수밖에 없었다.

1890년대 말부터 희석식 소주가 생산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소주 값은 비쌌다.

희석식 소주 값이 크게 떨어진 것은 1920년대 화학적인 주정酒精 추출법이 개발된 이후였다.

*출처 : 조풍연 해설,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상 - 생활과 풍속》, 서문당, 1987, 38쪽

 

 

일제 강점기 주정공장

 

일제는 '연료국책' 방침에 따라 1936년부터 조선에 무수주정 공장을 만들었다.

뒤이어 무수주정 제조시설을 갖추지 않은 소주 공장의 신설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뒤로 '값싼 알코올'이 대량 생산되면서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 값이 하락했다.

소주가 '서민의 술'이 된 것이다.

사진은 1940년대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 제주지사에서 제주항 근처에 건립하여 운영했던 주정酒精공장.

 

 

1930년대 면사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

 

현재의 광희동, 창신동, 숭인동 일대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서울 섬유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이런 산업과 생활의 산 역사가 도시 재개발 과정에 고려된 적은 없다.

*출처 : 이규헌 해설,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하 - 임정과 광복》, 서문당, 1996, 109쪽.

 

서울에 처음 등장한 경성부영버스와 여차장

 

경성부는 부영버스 운행을 앞두고 12명의 여차장을 모집했는데,

75명이 지원했다. 그중 한국인이 73명이었고 여고보 출신자도 2명이나 되었다.

한국인 여성 취업이 그만큼 어려웠던 실태를 반영한 것이지만,

버스에 대한 '호감'도 작용했다. 그러나 버스의 인기가 급락하면서 '여차장'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출처 : 윤준모, 《한국자동차70년사》, 교통신문사, 1975.

 

 

대한제국 시기의 한의원

 

1882년 혜민서 혁파를 계기로 국가에 의한 한의학 교육은 사실상 폐지되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의료 개입이 본격화하자 한의학 교육기관으로 동제학교가 설립(1906)되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에 한의학은 사설 강습소를 통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한의학 연구와 교육이 체계화한 것은 해방 이후였다.

*출처 : 조풍연 해설,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 생활과 풍속》, 서문당, 1986, 36쪽.

 

 

일제 강점기 한의원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전통의사들을 식민지 보건 의료 행정의 말단에 배치했다.

양의의 감독 하에 놓인 전통의사는 일본 문명의 지도를 받는

'조선의 비문명'을 상징했다.

 

 

동대문 전차 차고에서 출발하는 전차

 

1899년 5월 20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전차 영업이 개시되었다.

이날 이후 전차는 남대문과 대궐을 제치고 장안의 제일가는 명물로 떠올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전차가 공중의 물기를 다 태워버려 날이 가물다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기도 했다.

*출처 : 조풍연 해설,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속) - 생활과 풍속》, 서문당, 1987, 71쪽.

 

 

군중이 도끼로 찍고 불태워 파괴한 전차의 잔해를 지켜보는

콜브란 상사의 직원들

 

5월 4일 '신문명의 이기'에 환호한 군중과

5월 26일 '살인기계'를 파괴한 군중은 같은 사람들이었다.

짧은 시차를 두고 같은 기계에 대해 같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사례이지만,

이를 '군중이 어리석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출처 : 최인진, 《한국사진사 1631~1945》, 눈빛, 1999, 133쪽.

 

 

의학교 교관 김익남(왼쪽)과 제1회 우등 졸업생 김교준의 군의軍醫 시절

 

우사尤史 김규식의 당숙인 김익남은 대한제국 2등 군의장으로 있다가 만주로 망명했다.

대종교 2세 교주 김교헌의 동생으로 1962년 제5대 총전교가 된 김교준 역시

대한제국 3등 군의장까지 올랐다가 만주로 망명했다.

*출처 : 황상익, 《근대 의료의 풍경》, 푸른역사, 2013, 544쪽.

 

 

일제 강점기  개천 축대 밑 아이들의 모습

 

개천 축대 밑에서 국수를 먹는 지게꾼을 넝마 망태를 걸머진 어린아이가 쳐다보고 있다.

조선시대 개천의 다리 밑은 거지들의 소굴이었고, 그래서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이 생겼다.

청계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광교, 수표교 등의 교각에 '살모사', '구렁이' 등의 글자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

이 역시 거지들이 '땅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출처 : 이돈수 · 이순우, 《꼬레아 꼬레아니-100년 전 서울 주재

이탈리아 외교관 카를로 로제티의 대한제국 견문기》, 하늘재, 2009, 238쪽.

 

 

<준천시사열무도濬川試射閱武圖>(1760)

 

영조의 청계천 준설공사 완공을 기념하는 행사를 기록한 4첩 그림.

영조는 홍수피해 방지와 하천 정비를 목적으로 청계천 준설공사를 실시, 1760년에 완공했다.

다리 밑을 차지하지 못한 '거지'들은 이때 준설된 토사를 쌓아둔 가산에 총본부를 두고 활동했다.

 

 

발족 직후 여자 경찰대의 사열

 

1946년 7월 1일 군정청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가 정식으로 설치됐다.

여자 경찰의 창설은 일차적으로 미국의 예를 따른 것이지만, 여기에는 당대의 여성성으로 읹ㅇ디던

'칝ㄹ가 상냥'을 끌어들여 경찰의 이미지를 개선해보려는 의도도 잇었다.

*출ㅊ : 동아일보사, 《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Ⅱ, 1991(6판), 523쪽.

 

 

칼을 휘두르는 식민지 경찰

 

일본은 한국 강점 후 경찰을 비롯한  모든 관공리, 심지어 교사에게도 칼을 차게 했다.

한국인들에게 칼로써 새 통치 권력의 위엄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3 · 1운동 이후 교사와 일반 관공리의 대검은 폐지했으나 경찰에게는 계속 칼을 차게 했다.

3 · 1운동 당시 여학생의 팔을 자르는 식민지 경찰을 묘사한 그림.

*출처 : 《신한민보》 1919년 4월 15일.

 

 

우물가에 모여 한담을 나누는 대한제국기의 물장수들

 

급수 구역은 대개 우물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구역마다 물 공급권을 가진 사람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물장수는 자영업자가 아니라 배달 노동자였다.

한 집에서 받는 한 달 치 물값은 성인 남자 하루 품삯과 대략 같았다.

*출처 : 조풍연 해설,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상 - 생활과 풍속》, 서문당, 1987, 32~33쪽

 

 

대한제국시기 우물가의 물장수

 

대한수도회사가 서울에 상수도를 준공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물장수들은 1908년 6월 3일 대한수도회사에 급수권 배상을 요구했다.

대한수도회사는 물장수들이 수돗물을 받아 팔도록 했다.

이에 물장수들이 당장 실업자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기 집 마당에 수도꼭지를 설치하는 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물장수들은 이윽고 자취를 감추었다.

*출처 : Hamilton Angus, Korea(London, 1904).

 

일제 강점기 배제학당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는 서양식 시간제는

개항 이후 서양 각국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한국인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런 시간관념은 '시간표'로 표시되었는데,

전차나 기차 등의 운행 시간표, 극장의 공연 시간표, 병원의 진료 시간표, 학교의 수업 시간표 등

여러 시간표들이 24시제를 채택했다.

1890년 배재학당은 '오전 8시 15분'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경복궁 건천궁에 설치되었던 시계탑

 

초기의 시계탑들은 명확히 종탑 모양이었다.

시각을 알리는 것은 먼 옛날부터 권력자의 의무이자 권리였고, 종탑은 그 권력을 상징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계탑이 종탑 모양으로 궁궐에 자리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05년경의 한성은행

 

현재의 중구 다동 개천 변에 있었다.

대조선은행 창립 발기인 중 일부는 이 은행 설립에도 관여했다.

민간 보통은행을 표방한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으로서 일제 강점기에는 귀족의 자금 관리를 도맡아

'귀족은행'으로도 불렸다. 해방 후 조흥은행을 거쳐 현 신한은행으로 이어졌다.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편저, 《100년 전의 기억, 대한제국》,

국립고궁박물관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공동주최 특별전 도록, 2010, 130쪽.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구호물자를 얻기 위해 몰려든 어린이들

 

전쟁은 본질상 인간다움에 적대적이다.

그러나 '현대전'의 주역들은 전쟁이 인간성 자체를 말살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도주의를 강조한다.

한국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를 잃어 먹을 것을 구걸하는 고아들에게

구호물자를 나눠주는 것은 '의로운 전쟁'의 표지였다.

 

 

피난민들에게 DDT를 살포하는 UN군

 

DDT 살포가 이미 머리카락에 세례를 받은 남자의 바지춤에 들어가 잇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소년은 DDT가 해로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듯, 심드렁한 표정이다.

*출처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문관

 

 

대한제국기의 잡화상

 

점포 안과 건물 밖 매대 위에 온갖 상품을 늘어놓고 잇다.

한양상회 사진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이보다 규모가 큰 잡화상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현대의 백화점은 이 시절의 '양품洋品 잡화상'에서 출발했다.

*출처 : 최석로 해설, 《(옛 그림엽서로 본) 민족의 사진첩 Ⅳ, 개화기의 생활과 풍속》, 서문당, 2007, 91쪽.

 

 

대한제국 시기의 굿판

 

자기들의 전통 종교인 '신도神道'를 국교로 삼아

'국민'을 창출하려 했던 일제는 신도와 종교적 메커니즘이 비슷한

한국의 기층 종교를 '미신迷信'으로 몰아 집중 탄압했다.

*출처 : 조풍연 해설,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상 - 생활과 풍속》, 서문당, 1987, 123쪽.

 

 

1955년에 제정된 신생활복

 

제복은 집단성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표지다.

그러나 개성을 드러내려는 욕구가 강한 현대인들은 대체로 제복을 기피하며,

마지못해 입더라도 조금이나마 변형시키려 든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공감포토, 사진으로 보는 역사, 역사속의 오늘, 1960년 11월 4일.

 

 

1910년대 YMCA 야구단과 경성고보 야구단의 경기 장면

 

스포츠는 몸을 늘리고 힘을 쓰는 일들을 재미있게 해주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체육활동과 몸에 대한 관심은 서로를 부추기면서 늘어났지만,

마음에 대한 관심은 대략 그에 반비례하여 줄어들었다.

*출처 : 동아일보사, 《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Ⅳ(6판), 1991, 946쪽.

 

 

1933년 증축된 순화원

 

일제는 한국 강점 직전 지금의 서울 옥인동 언덕에 전염병자 격리 병원인 순화원을 세웠다.

말이 병원이지 수용소에 가까워 일단 이 병원에 수용되면 죽어 나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더구나 일본 경찰들은 전염병에 예민해서 다른 이유로 아파도 잡아다 순화원에 보내곤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선인들은 집안에 환자가 잇어도 숨기느라 전전긍긍했다.

*출처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일제 침략 아래서의 서울(1910~1945)》, 2002, 357쪽.

 

 

 

 

 

posted by 황영찬
2018. 3. 26. 14:18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15 내가 없다

 

 

 

신동완 철학 에세이

2017, 북랩

 

대야도서관

SB121772

 

126

신25ㄴ

 

나는 과연 세상의 중심인가?

 

"문명은 믿어서 생긴 지식과

의심해서 얻어진 지식의 투쟁이다."

 

"미래 인간의 생존은 기술의 발전이 아닌

개념의 변화에 좌우될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실재하지 않으며, 실체도 없고 영혼도 없다

오직 이 같은 뼈아픈 인식에서 출발해야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다!

 

현대인들이 굳게 믿어온 가치를 망설임 없이 전복시킨

한 젊은 철학자의 비판적인 사유 실험

 

이 책에 의하면 '나'라는 존재는 실재하지 않는다. '나'라고 인식하는 자의식 자체는 뉴런의 연결로 이루어진 하나의 기능일 뿐이며, 우리가 '영혼'이라고 믿는 특별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라는 자아 없이 인류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저자는 인간 문명이 믿어온 모든 허구들을 지적한다. 신, 생명, 민족, 사랑, 자유 등은 사실 대단하지 않으며, 대단하다고 믿게 만듦으로써 이익을 얻는 어떤 집단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75억 인구가 믿고 있는 상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거기서 변화가 시작된다.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의 당연하지 않음, 그 비판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염세적인 듯하지만 깊은 희망을 보여주려는 몸부림으로 읽히는 저자의 주장은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주리라.                                                         -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노재성

 

신동완

 

가톨릭 사제가 되기 위해 서울가톨릭신학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신의 사랑에 실망하고 중퇴하였다. 경희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다. 인간의 불행과 행복에 대해 전문가인 척하는 종교가 인간의 아픔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 절망하지 않고 그 원인과 대안을 찾는 연구를 지속하였다. 40여 개국을 여행하며 각 나라의 문화와 행복한 삶의 형태를 연구하였다. ‘행복연구소’를 설립하고 인간 문명 속의 편견과 허구를 고발하는 저술 작업을 하고 있으며 ‘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 구원에 대한 진전된 연구결과를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차례

 

머리글

추천의 글


제1장 허구 탐구

개념이라는 허구

생명이라는 허구

자아라는 허구

민족이라는 허구

신이라는 허구

인식이라는 허구

사랑이라는 허구

예술이라는 허구

문명이라는 허구

돈이라는 허구

자유라는 허구

도덕이라는 허구


제2장 그 외의 허구들

결혼

보수와 진보


제3장 허구를 지탱하는 원인

인간이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믿어서 생긴 지식과 의심해서 얻은 지식

신념과 신념의 충돌

철학은 용기이다


제4장 허구를 넘어서

동물과 인간

죄 없는 세상

고통 없는 세상

외로움 없는 세상

죽을 수 있는 권리

행복한 세상


제5장 새로운 인류

진화란 단지 이 시간에 여기 있는 이유이다

존재의 허술함에 대하여

다중의식, 모두를 위한 하나의 자아


마치는 글

용어설명

 

1

CHAPTER

 

허구

탐구

 

인간 문명의 적은 허구와 상상에 의한 거짓된 믿음 체계이며 그것은 특히 종교와 민족이다. 종교와 민족이 인간 생활에서 유용한 면이 잇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삶을 위로하고 연대감과 소속의식을 갖게 하며 경쟁을 촉진시키고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잇었다. 그러나 허구에 의한 거짓된 믿음 체계에서 위로 받을 생각을 접어야 문명이 제 기능을 찾아갈 것이다.

 

개념이라는

허구

 

개념은 늘 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미로 하나의 개념을 얘기한다. 사랑에 대한 개념은 지구의 인구수만큼 다양할 수 있다. 말이 있다고 해서 그 말에 해당하는 실체가 잇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생명이라는

허구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면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 준다. 원시지구에 유기물이 생긴다. 그러다 갑자기 번개가 치면서 불현듯 신비한 작용에 의해 작은 생물이 생기게 된다. 정말 생명은 그렇게 신비한 과정을 거쳐서 탄생된 것일까? 초기에 생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생명이 생명 아닌 것에 비해 대단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우리의 의견을 낼 수 있다.

 

자아라는

허구

 

생명이 무생물과 다르지 않은 기계라면 인간 역시 기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을 가진 '나'라는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은 심한 철학적 오류인 것 같다. 단지 책상 속에서나 생각할 만한 쓸데 없는 사색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생명을 가진 자아가 허상일 수도 있을까?

 

민족이라는

허구

 

오천 년 역사와 단일민족 국가라는 자부심을 되새기다 보면 갈라진 국토를 통일하고 민족을 부흥시켜야겠다는 애국심이 솟아오른다. 일제의 침략을 경험했기에 이 한몸 바쳐서라도 민족을 지켜 내야겠다는 결심 또한 뜨겁다. 이런 애국심의 근원이 무엇인지 질문해 본다.

 

신이라는

허구

 

신은 철학에서 부정되었다. 신은 과학에서도 부정되었다. 신을 믿는 자아는 그 실체도 없는 하나의 기능일 뿐이다. 문명의 세계에서 신은 설 자리가 없어야 되지만 오히려 가장 번성하고 있다. 신은 누구인가?

 

인식이라는

허구

 

인간의 인식은 불완전하다. 감각기관이 다양하지 못하며, 그 다양하지 못한 감각기관의 기능마저 매우 불완전하다. 또한 불완전한 감각기관을 이해하는 뇌의 기능도 불완전하며, 이를 사고하고 전달하는 인간 언어도 대단히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인간은 생존해 왔다.

 

사랑이라는

허구

 

사랑의 개념은 다의적이다. 무심코 사랑을 얘기하면서 문명을 파괴하는 독소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랑은 내가 살고 함께 살고자 하는 것이다. 분열과 복수, 파멸을 말하는 것은 사람일 수 없다.

 

예술이라는

허구

 

예술은 즐기는 것이다. 예술행위와 작품에서 존재의 심연 같은 가능하지 않은 허구의 세상을 추구한다면 미신이 될 것이다.

 

문명이라는

허구

 

문명은 인간의 자랑이다. 문명은 인간의 희망이고 미래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함께해서는 안 될 야만적 미신들이 가득 차 있다. 인류가 사실상 문명을 지배하고 있는 미신들을 깨뜨리려면 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돈이라는

허구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왜 그들이 돈을 더 가져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왜 특정한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하는가?

 

자유라는

허구

 

인간은 자유를 꿈꾼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는 치명적 한계를 가지고 잇다. 자유란 그 시간, 그 장소,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도덕이라는

허구

 

도덕은 필요하지만 인간의 행복을 억압한다. 도덕이 만들어진 역사와 배경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울러 새로운 도덕의 기준이 세워져야 한다. 그 기준은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2

CHAPTER

 

그 외의

허구

 

결혼에 대해서 신화를 걷어 내는 것은 행복의 작은 출발이다. 결혼이 불행해지는 대부분의 이유는 결혼이 너무 큰일이기 때문이다.

 

결혼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것이 결혼 생활의 불행을 초래한다. 결혼은 작은 것이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분열은 심각하다. 그러나 현재의 보수와 진보는 이념적으로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의 유권자들과 미래세대를 위한 보수와 진보의 기준이 새롭게 제시되어야 한다.

 

3

CHAPTER

 

허구를 지탱하는

원인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를 위협하는 진실과 증거는 필요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철학이 필요하다. 밝혀진 범위 내에서 인정하고, 밝혀야 할 것을 질문하고, 잘못된 근거들을 내던지고 새로운 근거를 쌓아가는 것이 철학일 것이다.

 

인간이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인간은 진보를 이루었지만 진보의 결과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새로운 세상은 더 많은 정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밝혀진 진실들을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온다. 내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고 내 믿음과 다른 것을 진실이라는 이유로 믿는 것이다.

 

믿어서 생긴 지식과

의심해서 얻은 지식

 

의심해서 얻은 지식만이 지식일 뿐이다.

 

신념과

신념의 충돌

 

믿음에 근거한 신념들의 충돌을 멈춰야 한다.

 

철학은

용기이다

 

인간이 자부심 많은 문명과 더불어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허구와 미신에 가득 찬 삶을 사는 것은 묻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하지 않기 때문이다.

 

4

CHAPTER

 

허구를

넘어서

 

짧은 시간의 삶이기에 그 무엇보다 행복이 가치가 더 필요한 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행복감을 뒤로하고서라도 불편한 진실과 마주 서는 것이 질문하는 인간이 택해야 할 책임일 것이라 생각한다. 거기에서 자연의 진화가 멈추고 진화의 산물인 인간이 진화를 조정하고 설계하는 새로운 창조가 열리게 될 것이다.

 

동물과

인간

 

동물은 인간과 같이 고통을 느낀다. 그런 고통은 인간이 겪는 고통과 다른 것이 아니다. 진화는 잔인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오직 인간만이 진화의 잔혹함을 바로잡을 수 잇고 인간에게만 그런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죄 없는

세상

 

죄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 미래에 인간의 혁명은 기술보다는 개념의 변화에서 올 것이다. 죄는 관리되고 치료해야 할 질병이다.

 

고통 없는

세상

 

고통은 인류의 진화과정에 필요했지만 인간이 계속 가지고 갈 필요가 없는 기능임에 틀림없다. 고통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

 

외로움 없는

세상

 

인간은 외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정신과 전문의의 목표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있다.

 

죽을 수 있는

권리

 

삶에 대한 권리가 중요하듯이 죽음에 대한 권리도 중요하다. 죽음에 대해 부정적인 문화는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죽음을 처참한 환경으로 내몰아 간다. 인간은 존엄하고 쾌락한 죽음을 맞을 권리가 있다.

 

행복한 세상

 

행복이 중요하지만 진실을 알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은 행복한 마음보다 더 중요하다.

 

5

CHAPTER

 

새로운

인류

 

너와 나와 그들이 벽을 허물고 공동의 행복을 추구할 미래를 먼저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나'와 '너'라는 닫힌계에서 나와, 인간의 미래인 열린계의 플랫폼에서 하나되는 확장성을 경험한다.

 

진화란 단지

이 시간에

여기 있는 이유이다

 

진화는 단지 이 시간에 여기 있는 이유이다. 진화는 생물과 무생물 모두에게 적용되는 존재의 이유에 대한 사후적 설명이다.

 

존재의 허술함에

대하여

 

아름다운 생명과 사랑스런 인간을 분석하고 파헤쳐서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신비감을 없애고 그 허술함을 보는 심정은 안타까울 것이다.

 

다중의식,

모두를 위한

하나의 자아

 

닫힌계에 있던 인간들이 과학의 발전으로 열린계를 형성해 하나의 의식으로 뭉치는 것이 다중의식이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