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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20. 16:26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32 살수 1 -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장편소설

2012, RHK

 

대야도서관

SB080076

 

813.6

김7819살  v. 1 c. 3

 

『삼국지』보다 먼저 읽어야 할

고구려의 역사!

 

역사상 최대의 병력인 3백만 중국 침공군을 완전히 궤멸시킨 을지문덕.

그러나 우리는 을지문덕을 얼마나 알고 있나?

그는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다가 언제 죽었는가?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이런 걸 아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없다.

2002년부터 시작된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의해 중국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고구려를 완전히 들어내어 자신들의 역사로 잡아넣고 있다.

그런데도 이 시대의 전설적 작가들은 앞을 다투어 『삼국지』를 편역해내고,

사회에서도 『삼국지』를 읽지 않으면 이단아나 저능아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이러고서야 어떻게 저들의 동북공정을 격파하겠는가?

2005년 여름, 동북공정의 한가운데서

『삼국지』를 읽을 것이냐, 을지문덕을 읽을 것이냐를

나는 묻고자 한다.

-저자 서문 중에서

 

"요임금을 이은 순임금은 즉위에 즈음하여 먼저 예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여겨, 동방의 군자국에 사신을 보내 인사를 올렸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수나라의 한 사관이 찾아낸 '상서'라는 문서에서 비롯된다. 중원을 통일하고 황위에 오른 양견은 자신이 천자임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한 제례를 준비하던 중, 요순시대의 순임금이 즉위 후 동방의 군자국에 사신을 보내 예를 갖추었다는 기록을 발견하고는 진노한다. 『시경』의 한혁편(韓奕篇)과 동한시대 왕부(王符)가 지은 『잠부론(潛夫論)』에 따르면, ‘동방의 군자국’이란 바로 당시의 고구려였던 것이다.
일개 소국이면서도 수나라에 조공도 바치지 않는 고구려를 찾아가 예를 갖춘다는 것은 양견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 바, 양견은 남아있는 기록들을 불태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고구려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이에, 포악하나 어리석은 태자 양용은 황제의 뜻에 따라 고구려를 침하기 위해 30만 군사를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한편, 첩자를 통해 전쟁이 일어날 것임을 알게 된 을지문덕은, 영양왕을 찾아가 묘책을 일러준 후, 수나라가 보낸 사신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림으로써 전쟁을 촉발한다.
예정대로라면 가을에 치러질 전쟁이었으나 고구려가 보여준 일련의 도발적인 행위들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수나라의 양견은 이성을 잃은 나머지, 봄이 끝나가던 어느 날 고구려로 출정을 명한다.
그러나 사기충천한 수의 군사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에 부딪혀 싸우기도 전에 죽어나가고, 이를 계기로 아버지 양견과 형 양용을 죽음으로 몰아 황제의 자리에 오른 양광은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을지문덕이 있음을 직감하는데…….

 

 

김진명

 

신인 작가 시절을 거치지 않고 단번에 밀리언셀러로 데뷔한, 진기한 기록의 작가다.

1993년, 북핵 위기 속에 집필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450만 부 이상 판매되어 첫번째 작품으로 이미 대한민국 출판 역사상 보기 드문 초대형 작가가 되었다.

"김진명의 소설은 역사 그 자체다"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당대의 첨예한 문제들을 치밀하게 파고들어 현실보다 더 짜릿한 가상현실을 구현한 후, 숨 막힐 정도의 재미를 안겨준다.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작품으로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외에 『가즈오의 나라』 『하늘이여 땅이여』 『한반도』 『코리아 닷컴』 『황태자비 납치사건』 『바이 코리아』『제3의 시나리오』 『도박사』 등이 있다.

 

|차례|

 

미친 청년 양광

대동강의 향연

백산말갈

두 영웅

새로이 뜨는 별

남진의 멸망

무술대회

무녀의 딸

역사의 뒤안길

움직이는 수

다가오는 전쟁

문덕의 입조(立朝)

사신 소적기

 

 

 

posted by 황영찬
2018. 6. 19. 16:42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30 다시쓰는 택리지 ② 전라 · 경상편

 

 

 

신정일 지음

2004, 휴머니스트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7823

 

981.1

신746택  2

 

신정일의 글은 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는 자기의 발이 도달한 산천 도처에서 금강의 여러 구비에서 울고 웃는다.

-김지하(시인 · 사상가)

 

신정일의 『다시쓰는 택리지』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이 땅 구석구석을 누구보다도 많이 걸었던 그의 발이 쓴 국토교과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덕일(역사가 ·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신정일은 무당처럼 답사를 한다. 혼이 실리고 신명이 나는 답사…이렇게 신명나는 답사의 궤적을 따라가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다.

-이정민(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신정일

 

문화사학자이자 답사가인 그는 1985년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여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출발점이라 평가받고 있는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그리고 묻혀 있는 지역문화를 발굴하고 재조명하는데 힘쓰고 있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으면서, 한국의 10대 강 도보 답사를 기획하여 금강. 섬진강. 한강. 낙동강. 영산강까지 답사를 끝냈고, 대동강. 압록강. 두만강 등 북한의강을 답사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저서로 『동학의 산, 그 산들을 가다』 『지워진 이름 정여립』『나를 찾아가는 하루 산행 1, 2』『금강 401km』『섬진강 따라 걷기』『한국사, 그 변혁을 꿈꾼 사람들』『신정일의 한강역사문화탐사』『신정일의 낙동강역사문화탐사』 등이 있다.

 

"내가 한발 한발 걸으며 지나온 산과 강, 그 길을 걸으며 내가 발견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였고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우리의 국토였으며, 그 국토를 몸서리치도록 사랑하고 잇다는 사실이었다."

-머리말 중에서



차례

 

머리

 

전라도(全羅道)


 

1. 첩첩산중의 대명사 무진장지역

인걸은 땅은 영기로 태어나는 것

산은 높고 그 물줄기는 길고

강낭콩보다 푸른 절개

상수리와 밤을 저장하던 무주

사돈의 팔촌에 정승 하나 없다

 

2. 후백제의 도읍지 온고을

온전한 땅 전주

전주를 굽어보는 남고산성

후백제의 도읍지 완산

남국의 인재가 몰려 있는 전주

세상에 오는 것은 돌아감을 뜻함이니

 

3. 금강의 하류 군산

오성산에서 금강을 바라보며

「탁류」의 작가 채만식

쌀의 집산지 군산

마한의 옛 땅이었던 익산시

동양 최대의 절터 미륵사

화암사 가는 길

구릿골, 그 유토피아의 땅

 

4. 고부고을에 얽힌 사연

내장산과 <정읍사>의 고장

동학의 땅 정읍

나라 안에서 가장 살 만한 땅

선운산이 있는 고장

모양성에는 여름 햇살만 남아

하늘에 제사 지내던 도선리 고인돌

3천여 명의 스님이 머물렀다는 선운사

법성포항에 있는 영광 굴비

 

5. 수진이 날진이가 쉬여 넘는 고개

해동청 보라매가 쉬여 넘는 고개

갈애바위의 전설

고을의 판세가 한양과 흡사하다

집강소를 설치하지 못했던 나주

작은 서울이었던 나주

 

6. 영산강유역의 고을들

영산강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나비축제와 함평 고구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중국으로 가던 뱃길

섬진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덕택산 방면에 어린 용이 보이다

 

7. 살제 남원, 죽어 임실

여러 산이 줄지어 있고 물 한줄기 둘러 흐른다

신포 개장국과 의견제

『산경표』를 지은 신경준의 고향

교룡산 자락에 펼쳐진 남원

남접이 시작된 선국사

운봉고원이 있는 곳

섬진강 물 맑은 유곡나루에

지리산녀가 사는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

모든 산의 으뜸인 지리산

남한의 3대 길지 운조루

 

8. 무등산을 바라보다

대나무가 많은 담양

광주 그 영원한 도시

풍속이 화순한 고을

백성은 순박하고 일은 간략하고

보성과 벌교 그리고 태백산맥

 

9. 산과 물이 기이한 순천

산과 물이 기이하고

금둔산과 낙안읍성

향일암과 한려수도

여수에 있는 진남관

땅이 남쪽 바다에 닿았다

 

10. 다도해 주변의 고을

장보고와 청해진

보길도 그 아름다운 곳

남쪽나라 따뜻하여 겨울에도 눈이 없고

불교 남방전래설은 설화로 남아 있고

진도 그 유배의 땅

벽파진에 다리가 놓이고

 

11. 낙원의 섬 이어도

삼다의 섬 제주도

제주도에 한라산이 있다

 

경상도(慶尙道)


1. 조령과 죽령의 남쪽에 있는 고을

황부자의 전설이 서린 황지

경상좌도와 경상우도

잊혀진 역사 가야

산과 물이 빼어난 경주

천년사직 신라가 저물어 가고

토착세력이 정계 진출이 이어지고

 


2. 예의범절이 두터운 고장

네 지역으로 갈라선 예안

퇴계 이황과 도산서원

민족시인 이육사

연화부수형의 하회마을

유성룡

왕건과 견훤의 싸움터였던 안동

모든 나무의 으뜸인 춘양목

조지훈의 고향 영양

 

3. 의성에서 만나는 일연스님

산수유꽃 노랗게 흐느끼는 의성

일연스님이 입적한 인각사

내가 오늘 갈 것이다

박인로의 고향 영천

동해의 끝 울릉도

미인과 바람과 향나무가 많다

맛있는 영덕 대게

평민 의병장 신돌석이 꿈을 키운 곳

남사고가 태어난 수곡리

 

4. 양동 민속마을

양동마을과 옥산서원

내 말을 놓네

도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태어난 곳

처용설화가 서려 있는 울산

영남대로는 웬 길인가

가산에 쌓은 가산산성

한국전쟁 당시의 싸움터

경상감사가 있던 곳

 

5.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밀양아리랑>의 고장

경상도에서 이름난 고장 밀양

사명대사가 태어난 고자리

도동서원 앞을 낙동강이 흐르고

가야의 땅 창녕

통도사가 있는 양산

부산에 동래가 있다

대마도 정벌

 

6. 나라 안에서 두 번째 큰 도시 부산

임진왜란이 일어나다

동래온천과 금정산성

부산의 어제와 오늘

 

7. 새재 아래 고을들

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이필제의 난

사벌국이었던 상주

낙동강 변에서 제일 큰 낙동나루

물맛이 좋아 예천이다

윤장대가 있는 용문사

임을 여읜 슬픔이 이다지도 깊으랴

 

8. 영남은 조선 인재의 곳간

조선 인재의 보고 선산

산천은 의구하고 인걸은 간 데 없고

추풍령 고개 너머 김천

부족국가 가야국

매화산에 매화꽃이 피어나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9. 땅은 기름지고 기후는 따뜻한 성주

인물이 많은 성주

남명의 제자 정인홍

8도 유생들로부터 탄핵을 받다

 

10. 기질이 억세고 싸움하기를 좋아하고

동계 정온의 옛집

거창 양민학살사건

남덕유산에서 남강물이 시작된다

남명 조식과 지리산

영남 제일의 경치 진주

최경회의 뒤를 이어 논개도 죽음을 맞고

육십령을 넘어 전라도로

 

11. 남강 변에 펼쳐진 고을

좌안동 우함양에 얽힌 내력

구형왕의 무덤

의령에서 태어난 곽재우

쌍계사로 가는 길

일곱 왕자가 칠불이 된 칠불암

토지의 무대 평사리

하동포구 80리 강은 다시 하동으로 흐르고

섬진강에 하동연가가 흐르다

 

12. 남해 금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다

남해 금산의 보리암

외로운 성이 바다에 임했고

거제도 포로수용소

마산의 옛 이름 합포

 

금강의 발원지

비단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은 신들이 춤을 춘다는 뜻을 지닌 신무산 정상 부근에 있다.

나제통문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이었던 나제통문은 무주군 설천면과 무풍면 사이에 있다.

마이산

전북 도립공원에서 대한민국 명승으로 격상된 진안의 마이산. 두 귀의 모습이라 하여 마이산이라고 부른다.

덕지(덕진연못)

전북대학교 소유였던 덕진연못을 전북대학교 의대 건물과 맞바꾸어 지금은 전주시민공원이 되었다. 전봉준 · 김개남 · 손화중의 기념물과 신석정을 비롯한 여러 시인들의 시비가 서 있다.

남고산성

후백제를 창건한 견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산성으로, 산성 안에 남고사와 천경대 · 만경대 · 억경대 등의 대가 있다.

풍남문

호남제일문이라고도 부르는 풍남문은 전주부성의 남문으로 성 밖에는 남문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1894년에는 동학농민군이 남문을 열고 나가 완산칠봉에 진을 치고 있던 홍계훈의 관군과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옥구향교 자천대

최치원이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시름을 달랬다는데, 지금은 자천대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없다.

미륵사지 석탑

무왕과 선화공주가 세웠다는 미륵사는 동양 최대의 절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폐사가 되었다. 미륵사지 석탑은 지금 해체 수리 중이다.

익산 동고도리 석불

동고도리에 두 석불이 있다.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200미터쯤 떨어져 있는 이 석불은 평소에는 만나지 못하다가 섣달 해일(亥日) 자시(子時)에 옥룡천이 얼어붙으면 서로 만나 회포를 풀다 닭이 울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

화암사

나라 안에서 가장 깊고 그윽한 절로 꼽히는 화암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에 있다.

벽골제

고부의 눌제, 익산의 황등제와 함께 호남평야의 3대 저수지였던 벽골제는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구릿골

광제국이라고 씌어진 좌측의 두 평 남짓한 방에서 증산 강일순이 9년 간에 걸쳐 천지공사를 펼치다가 1909년에 세상을 떠났다.

전봉준의 모습

초상화 속의 전봉준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만석보

태인천과 정읍천이 만나는 동진강 변에 세워진 만석보유지비. 조병갑은 백성을 동원하여 이 저수지를 만들고 임금을 주지 않았으며, 물세를 과도하게 받아 착복하였다. 이에 분개한 농민들이 일어나면서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었다.

고부의 군자정

역대 고부군수들이 풍류를 즐겼던 군자정에는 수많은 비석이 있으니 온전한 것은 별로 없다. 영원히 잊지 못할 만큼 선정을 베푼 관리들이 과연 있기나 했을까?

위도 띠뱃굿(띠뱃놀이)

2003년 방사능폐기장 문제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부안의 위도 대리마을은 띠뱃굿으로 나라 안에서 이름이 높다. 정월 초사흘부터 보름까지 풍어를 부르고 마을의 액운과 질병을 막기 위해 벌이는 굿이다.

고창읍성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조선시대의 자연석 성곽으로 여자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모양성이라고도 부른다.

신재효 고택

고창 고인돌

고창읍 도산리의 민가 디뜰 장독대 옆에 있는 북방식 고인돌들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선운산의 진흥굴

불교에 심취한 신라의 진흥왕이 왕비와 공주를 데리고 선운산의 자연석굴인 이 굴에 와서 수도를 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갈애바위

옛 이름이 갈재인 호남터널을 지나 장성 땅에 접어들면 왼쪽으로 작은 산 하나가 보이고 그 정상에 갈애바위가 있다.

필암서원

하서 김인후를 모신 필암서원

나주 정수루

나주목사 내아(內衙) 가는 길에 자리 잡은 정수루는 역사의 현장을 바라본 채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나주향교 대성전

나주향교 대성전은 서울문묘 · 장수향교 · 강릉향교와 함께 건축물이 장중한 편에 속하며 보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있다. 100여 년 전 나주의 모습이다.

동학토평비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라도 53개 군현 가운데 집강소가 설치되지 않았던 곳이 나주와 운봉이었다. 그 사실을 최익현이 글로 지어 세운 것이 나주 동학토평비이다.

나주 반남고분군

반남 박씨의 고향인 나주시 반남면의 자미산성 주변의 대아리 · 신촌리 · 덕산리에는 반남고분군이 밀집되어 있다.

옛날 영산포

무안 자산서원

기축옥사 당시 정여립과 친교를 맺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곤재 정개청을 모신 서원이다.

목포

영산강물과 서해 바닷물이 합쳐지는 이곳의 형세가 마치 '길목쟁이'처럼 중요한 구실을 하여 목개라 부르다가 한자로 목포라고 하였다고 한다.

정약전 유배지

정약전의 유배지 사리에는 정약전이 유배생활을 했던 집이 복원되어 있다.

회사정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에 있는 회사정. 1565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구림 대동계는 중국에서 들어온 향악과 계의 기능을 접붙여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샘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봉황산 중턱에 있는 데미샘은 212킬로미터를 흘러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에서 남해로 들어간다.

오수 의견비

고려 때 사람 최부의 『보한집』에 의견(義犬)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귀래정

순창읍 가남리에 있는 귀래정은 신숙주의 동생 신말주가 형의 변절에 실망한 뒤 내려와 지었다고 한다.

순창 말 명당

순창시 인계면 마훈리 대마마을 뒷산에 있는 조선 8명당이라고 알려진 명당 터이다. 이곳의 말형국은 용마등공형의 명당으로, 말이 움직이며 하늘로 오르는 형국이라고 한다.

광한루 월매집

선국사

남원시 산곡동의 교룡산 중턱에 이치한 선국사의 보제루.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이 절에서 8개월을 머물렀으며, 김개남은 교룡산성에 집강소를 설치했었다.

황산대첩비

운봉읍 황산자락에 있는 황산대첩비

섬진강

"…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이라고 김용택 시인이 노래한 섬진강에 댐이 들어서면서 섬이 된 운암의 입석리 부근이다.

요강바위

순창군 동계면 장구목에 있는 요강바위. 얼마나 큰지 열 마을 사람들이 저녁 내내 싸도 채우지 못할 정도이다.

화엄사 4사자 석탑

국보 제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인간세상의 희노애락을 상징하는 네 마리 사자가 탑의 몸을 떠받치고 있다. 경주의 다보탑 · 정혜사지 13층석탑과 함께 이형석탑의 하나로 꼽힌다.

구례 운조루

남한의 3대 길지로 알려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는 조선 영조 때 낙안부사를 지냈던 유이주(柳爾胄)가 지었다고 한다.

매천 황현을 모신 매천사

매천이 살았던 구례군 광의면 월곡리의 매천사. 조선의 마지막 선비 황현은 『매천야록』『오하기문』 등의 저술을 남겼으며,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자 아편을 마시고 순절했다.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

소쇄원은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가 만들었으며, 광풍각은 송나라 때 사람 황정견이 주돈이의 인물됨을 일러서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갠 뒤 볕이 나며 부는 바람과 같고 맑은 날의 달빛과 같다"는 데서 따온 이름이다.

금성산성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성이 담양의 금성산성일 것이다.

화순 대신리 고인돌

1990년대에야 사람들에게 알려진 화순 일대의 고인돌 중 대신리 고인돌들은 돌을 떼어낸 자국이 지금도 선명하다.

조광조 유허지의 비각

화순군 능주면에 있으며 송시열이 글을 썼다.

보성 차밭

보성의 봄은 유난히 푸르다. 푸른 물결 일렁이는 보리밭과 자운영 꽃밭 그리고 고랑마다 차를 따는 여인네들의 손가락도 바닷물처럼 푸르러 온통 푸르다.

소록도 납골당인 만령단

이곳에 모셔진 나환자 혼백의 수가 2003년 가을에 1만여 명을 넘어섰다. 후세에선 편히 잠드소서.

팔마비

고려 때 순천의 부사로 왔던 최석이 지방 사람들이 준 8마리의 말을 되돌려 준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16년 『지붕유설』을 지은 이수광이 고쳐 세웠다.

송광사

조계산 자락에 있는 절로, 신라시대에 혜린대사가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지었던 암자를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크게 중창했다.

낙안읍성

나라 안의 다른 읍성과 달리 사람이 살고 있으며, 매년 음식축제가 열린다.

진남관

조선시대의 관아 건물 중 가장 컸던 곳으로 보이는 진남관은 전라좌수영 성의 중심 건물인 진해루가 있었던 곳으로, 정유재란 때 불에 타버리자 1599년 삼도통제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새로 지은 객사이다.

다산초당 천일각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도암만 일대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청해진

해상왕 장보고가 진을 치고 수병을 훈련시켜 해적을 무찔렀던 곳이다.

보길도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자 문장가인 윤선도가 자리를 잡고 세월을 보낸 곳이다.

해남 녹우당

윤선도의 옛집. 해마다 가을이면 은행잎이 소낙비 쏟아지듯 우수수 떨어진다고 하여 녹우당이라고 이름 지었다. 집 뒤편에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241호)이 있다.

미황사 부도

옛 통교사 자리에 자리 잡은 미황사의 부도밭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땅끝

토말이라고 알려진 이곳이 우리 국토의 끝이다. "땅끝에 서서 더는 갈 곳 없는 땅 끝에 서서"라는 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남도석성

사적 제127호로 지정된 남도석성은 고려 때 삼별초군이 쌓았다고 하나 그 이전부터 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 근처에는 쌍홍교와 단홍교 등 두 개의 돌다리가 있다.

한라산

제주도 한복판에 솟아 있는 한라산은 남한에서 제일 높고, 정상에는 백록담이라는 분화구가 있다.

관덕정

세종 30년에 제주목사 신숙청이 군사를 훈련시킬 목적으로 지었으나 주로 공사를 의논하고 잔치를 베풀었다, 보물 제322호로 지정되어 있다.

1900년대 초의 제주 해녀

돌 · 바람 · 해녀가 많은 제주에서 강인한 정신력으로 바다물질을 한 해녀들은 제주도의 오늘이 있게 한 원동력이다.

대왕암 일출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은 죽어서도 용이 되어 왜구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자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여 동해 바다에 묻으라고 하였다.

경주 불국사

불국사는 돌로 쌓은 축대를 경계로 축대 위쪽은 부처의 나라인 불국토이고 아래쪽은 중생들이 사는 사바세계의 땅이다.

경주 감은사지

신라의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지은 절이다. 감은사지 3층석탑은 신라의 탑으로는 규모가 가장 크고 국보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주 남산

경주 남산의 불상 중 가장 크고 조각이 우수한 불상이 상선암 마애석가여래 대불좌상일 것이다. 아득히 깔린 경주 일대를 바라보는 부처님은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경애왕릉

후백제의 견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신라 제55대 경애왕의 무덤이 남산 기슭에 있다.

퇴계 묘소

안동시 도산면 하계동에 있다. 가파른 돌계단을 한참 오르면 소나무숲 우거진 곳에 퇴계의 묘가 있고 멀리로 낙동강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도산서원

『택리지』에서 이중환이 가장 살 만한 곳으로 꼽았던 곳이 예안의 도산이다. 시냇가이면서도 고개가 멀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는데, 서원이 만들어진 것은 1570년이다.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태백에서부터 비롯된 낙동강의 물줄기가 이 마을에 이르러 태극을 그리며 휘돌아 나간다. 이중환이 나라 안에서 살 만한 곳으로 지목했던 곳이다.

병산서원의 만대루

만대루에 올라서서 흐르는 낙동강 너머로 병산을 바라보면 『영가지』의 지도에 '청천절벽'이라고 이름이 씌어진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안동 의성 김씨 종택

영남의 4대 길지 가운데 한 곳인 내앞마을에 의성 김씨 종택이 있다.

봉화 청량사

낙동강 가에 자리잡은 봉화 청량산의 청량사

조지훈 생가

지조 높은 시인으로 알려진 조지훈의 생가가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에 있다.

청송 심부잣집

경주 최부잣집과 더불어 영남의 부잣집으로 소문난 청송 심부잣집은 9대에 걸친 만석꾼 집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 옛날의 영화를 찾아볼 길이 없고, 그 집은 전통문화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의성 고운사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이름은 최치원의 이름에서 따왔다.

인각사 일연스님 비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의 비가 인각사에 있다.

장기곶

장기곶 등대와 등대박물관이 있는 장기곶은 한반도의 모습을 동물에 비교할 때 그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

울릉도

울릉도의 서울인 도동항. 100여 년 전만해도 울릉도의 인구는 100여 명 남짓했다.

영덕 대게

게 한 마리가 삼복 더위에 먹는 개 한 마리 값보다 비싼 영덕 대게

울진 망양정

관동팔경의 하나인 울진의 망양정

울진 신돌석 생가

한말의 의병장 가운데 가장 빼어난 활약을 펼친 쳥민 의병장 신돌석의 생가

양동 무첨당

희재 이언적의 본가인 무첨당은 16세기 초에 건립되었으며, 여강 이씨 대종가의 별당이다. 보물 제41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규모가 커서 큰 사랑채처럼 보인다.

용담정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며, 경주시 현곡면 구미산 자락에 있다.

울산 석남사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에 있는 석남사는 비구니 수도도량으로 청정한 절 내음새를 맡을 수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처용암

처용이 자랐다는 처용암. 아내의 부정 앞에서도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는 처용 설화를 오늘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청도 운문사 누운소나무

석남사 · 동학사와 함께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운문사 스님들은 중국의 백장선사가 말한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라는 가풍을 이어받아 노동과 공부를 함께 한다. 운문산 자락에 있다.

가산산성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에 있는 가산산성은 임진왜란 후인 인조 17년(1639)부터 18년까지 경상도 관찰사 이명웅이 쌓은 성이다.

낙동강과 금호강

대구시 화원관광단지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지점. 금호강과 낙동강의 물빛이 다르다.

갓바위 부처님

대구 팔공산에 있는 갓바위 부처님은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다 들어준다는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찾는 절이다.

밀양 영남루

영남제일루라는 이름에 걸맞게 규모가 장대하고 아름다운 누각으로 밀양강 변에 있다.

달성 도동서원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한훤당 김굉필을 모신 도동서원

영산 만년교

보물 제564호로 지정된 영산의 만년교는 남천교 또는 원다리라고 부른다. 나무다리가 자주 떠내려 가자 정조 4년 영산의 백성들이 힘을 합쳐 세운 다리로, 석수는 백진기(白進己)라고 한다.

부산 태종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드리운 부산의 태종대. 멀리 펼쳐진 태평양의 푸른 파도가 가슴속으로 파고들 듯하다.

을숙도

낙동강 하구의 대표적인 삼각주인 을숙도는 갈대와 철새들의 삶터이자 부산 시민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화령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중요한 고갯길인 이화령도 산 아래를 뚫는 터널로 한적한 고갯길이 되었다.

조령관

문경새재는 조선시대의 중요한 고갯길이었다. 그러나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은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해서 넘지 않았고 죽령은 죽 미끄러지기 때문에 넘지 않고, 오직 문경새재를 통해서만 넘었다는 속설이 있다.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한사코 문경새재를 넘고자 했던 것은 문경이라는 이름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견훤산성

속리산 문장대를 바라보는 상주시 화북면 장바위산에 쌓은 석축산성. 어떤 연유로 견훤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상주 가은현 출신이라고 알려진 견훤의 패배를 못내 아쉬워한 이 지역 사람들이 붙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견훤이 태어난 금하굴

문경시 가은읍 아차마을에 있으며, 견훤의 출생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견훤은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의 기록에서 보듯 "큰 뜻을 속에 품고 때가 오기만 엿보면서 선비 · 백성 모으기에 마음을 기울였다"고 한다.

낙동나루

낙동강 1,300리의 물길 중에서 가장 컸던 나루로, 낙동강 700리라는 말은 부산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700리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영주 금성단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금성단은 단종복위사건으로 유배되어 왔던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단종복위를 위해 군사를 모의하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자 후세의 사람들이 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소수서원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서원으로, 주세붕이 안향을 모시기 위해 세웠다.

예천 의성포

예천군 용궁면 장안사에서 바라보는 의성포 전경. 나라 안에 물이 휘돌아 가는 물도리 중에서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초간정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권문해가 세웠다.

왜관 전적지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했던 왜관읍에 세워진 기념비. 일명 워커라인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선산 죽장사의 탑

선산읍 죽장리에 있는 5층석탑은 우리나라에서 5층석탑 가운데 귬가 가장 큰 탑이다. 높이가 10미터에 이르며 국보 제130호로 지정되었는데, 지금은 법륜사라는 비구니 도량이 정갈하게 지어져 있다.

청량사

해인사 건너편 매화산 중턱에 자리잡은 청량사. 최치원이 이 절에서 즐겨 놀았다고 한다.

해인사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있는 해인사는 홍류동 계곡의 소나무숲을 따라가면 만나는 절이다.

성주 세종대앙 아들 태실

세종의 아들 문종을 제외한 수양 · 안평 · 금성 등의 여러 대군과 군 그리고 문종의 아들인 단종의 태를 모셨다. 성주군 월향면 인촌리의 선석사 앞에 있는 서진산 봉우리 정상에 있다.

대야성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이 성주로 있다가 백제군에 함락된 신라의 옛 성

동계 정온 고택

병자호란 때 화친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동계 정온의 고택. 정온의 4대손인 정희량은 이인좌의 난 또는 정희량의 난의 주동자인 정희량이다.

거창 수승대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위천 변에 자리 잡은 수승대는 원학계곡에 있는데 거창 신씨인 신권과 퇴계 이황의 자취가 남아 있다.

거창 박산골

한국전쟁 당시에 거창군 신원면 이곳에서 거창 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났다. 영국의 신문들은 이 사건을 접하고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논평했다.

덕천서원

지리산 천왕봉에서 비롯된 덕천강이 화살처럼 흐른다는 시천면에 접어드는 그 들목에 자리 잡은 남명 조식을 모신 덕천서원

진주 촉석루의 의암

임진왜란 당시 장수 출신의 논개가 이곳에서 왜장을 껴안고 뛰어내렸다 하여 의암이라 부른다.

함양 농월정

함양군의 화림동 계곡에 자리 잡은 농월정. '달을 희롱한다'는 뜻을 지닌 농월정은 2003년 가을 불에 탔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잇으랴!

정여창 고택

정여창의 후손인 정병호의 이름을 따서 '정병호 가옥'이라 부르는 이 집은 중요민속자료 186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하드라마 <토지>에서 최참판 댁으로 나온 집이 이 집이다.

산청 구형왕릉

가락국의 10대왕인 구형왕릉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 이곳에 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하동 고소산성에서 바라본 섬진강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형제봉 아래 쌓은 석축산성.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를 흐르는 섬진강물이 일품이다.

하동 쌍계사

의상의 제자 삼법이 창건한 신라 때의 절. 최치원의 사산비문 중의 하나인 진감선사부도비가 있으며 국보 제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악양면 상신리에 있는 조부자집

악양의 넓은 들을 배경으로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인 조준의 후예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3일 동안 불에 탔으며, 그 뒤 다시 지은 집에는 후손 조한성씨가 살고 있다.

광양 매실마을

홍쌍리씨가 일군 광양시 다압면의 청매실농원. 장독대들이 이채롭다.

남해대교

충무공 이순신이 최후를 맞이했던 노량 앞바다에 '남해는 섬이 아니다'는 것을 설명하듯 남해대교가 서 있다.

남해 금산

비단을 두른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금산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절 보리암이 있다.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아랫자락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상주해수욕장이 있다.

통영항

한국의 나폴리라고 부르는 통영항. 쫄복탕과 미륵도를 일주하는 드라이브 코스가 일품이다.

미륵산에서 본 한려수도

용화사와 미륵사를 품에 안은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이 일대에서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이 있었다. 미륵산 일주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다.

거제 포로수용소

거제시 고현읍에 자리 잡은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시인 김수영은 거즈를 접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수로왕비릉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수로왕비릉

김수로왕의 비인 허왕후가 아들 열과 딸 둘을 낳으며 157세를 살고 묻힌 수로왕비릉이다.

 

 

 

 

posted by 황영찬
2018. 5. 30. 16:24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27 다시쓰는 택리지 ① 경기 · 충청편

 

 

 

신정일 지음

2004, 휴머니스트

 

시흥시대야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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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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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글은 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는 자기의 발이 도달한 산천 도처에서 금강의 여러 구비에서 울고 웃는다.

-김지하(시인 · 사상가)

 

신정일의 『다시쓰는 택리지』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이 땅 구석구석을 누구보다도 많이 걸었던 그의 발이 쓴 국토교과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덕일(역사가 ·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신정일은 무당처럼 답사를 한다. 혼이 실리고 신명이 나는 답사…이렇게 신명나는 답사의 궤적을 따라가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다.

-이정민(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신정일

 

문화사학자이자 답사가인 그는 1985년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여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출발점이라 평가받고 있는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그리고 묻혀 있는 지역문화를 발굴하고 재조명하는데 힘쓰고 있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으면서, 한국의 10대 강 도보 답사를 기획하여 금강. 섬진강. 한강. 낙동강. 영산강까지 답사를 끝냈고, 대동강. 압록강. 두만강 등 북한의강을 답사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저서로 『동학의 산, 그 산들을 가다』 『지워진 이름 정여립』『나를 찾아가는 하루 산행 1, 2』『금강 401km』『섬진강 따라 걷기』『한국사, 그 변혁을 꿈꾼 사람들』『신정일의 한강역사문화탐사』『신정일의 낙동강역사문화탐사』 등이 있다.

 

"내가 한발 한발 걸으며 지나온 산과 강, 그 길을 걸으며 내가 발견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였고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우리의 국토였으며, 그 국토를 몸서리치도록 사랑하고 잇다는 사실이었다."

-머리말 중에서

 

차례

 

경기도(京畿道)

 

1. 남한강 주변의 고을

 

한남정맥이 뻗어 나가고

여주는 국도의 상류지역에 있다

이색의 마지막을 지켜본 남한강

서울로 가던 길목 양근나루

남한상성 아래에 있는 성남시

청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화냥년에 숨겨진 사연

 

2. 역사와 한의 고장 강화

 

역사의 고장 강화

산 아래 집집마다 흰 술 걸러 내고

 

3. 남북으로 통하던 중요한 길목

 

서울이 가깝고 소금이 풍부했던 안산

남양 홍씨의 고장

익령군이 숨어 지낸 영흥도

산은 낮고 옥야는 평평한 평택

한양 남쪽의 큰 도회지였던 안성

안성맞춤의 유래가 된 안성 유기

땅은 넓고 기름지며 백성은 많고 부유하고

남북으로 통하던 길목 용인

 

4. 수원에서 인천까지

 

사통팔달의 고장 수원

산은 관악과 연하여 평야를 둘렀고

원미동이 있는 부천시

비류 백제의 도읍지 인천

천명고개에는 임꺽정의 흔적이 남아

김포공항이 있는 곳

 

5. 한강 변에 자리한 서울 공화국

 

형제의 우애가 서린 투금탄

한강 변의 명소 망원정

한양에 도읍한 이씨

한양을 도읍지로 정한 까닭

신분에 따라 사는 곳도 달랐다

서울의 유래와 자연 경관

서울의 시장, 우리나라의 얼굴

사라지고 남은 서울의 이름들

마포 새우젓장수, 왕십리 미나리장수

고려시대의 귀양지 밤섬

복덕방과 땅 투기 바람

서울 공화국의 어제와 오늘

 

6. 한반도의 중심부 경기도

 

통일수도의 적지 교하

양주의 고구려 때 이름은 매성군

팔당댐을 바라보는 산

다산의 탯자리 능내리

왕따 중의 왕따 정약용

 

7. 경기 북부의 땅

 

고을이 작아 송사하는 백성이 없던 포천

조선의 진정한 선비 이항복

산은 첩첩 물은 구불구불

 

8. 임진강에 강물은 흐르고

 

고봉산 자락 고양

이여송이 크게 패한 벽제관 싸움

화석정에서 바라보는 임진강

파평 윤씨의 고향

임진나루에 강물만 흘러가고

 

9. 장단 너머에 개성이 있다

 

옛 시절 장단도호부

고려 건국 이야기

용왕의 딸에게 장가든 작제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두문동 72인

 

10. 500년 왕업의 터는 만월대로만 남아

 

왕씨들은 자취를 감추고

500년 사직의 터 만월대

스스로 깨우친 화담

만수산 드렁칡은 얽히고 또 얽혀서

 

충청도(忠淸道)

 

1. 내포 땅에 얽힌 사연

 

가야산 아래 내포

풍수지리상 천하의 길지

서산마애삼존불

추사 김정희의 고향

바다가 가까운 곳

홍주는 호서의 거읍

 

2. 홍성에서 보령에 이르는 길

 

인물이 많이 태어난 홍성

최치원의 사산비문이 남아 있는 성주사지

한산 세모시가 아름다운 곳

임천에 있는 성흥산성

 

3. 무량사에서 김시습을 만나다

 

김시습과 무량사

무량사에는 진묵스님의 자취가 남아

이몽학의 난

 

4. 계룡산 아래 공주

 

계룡산 높이 솟아 층층이 푸름 꽂고

계곡의 물은 쪽빛처럼 푸르고

갑사에는 당간지주가 있다

갑천의 발원지 태고사

남적이 아산을 함락시키고

 

5. 강경포구엔 빈 배만 매어 있고

 

놀뫼의 땅 논산

은진의 서쪽 강경

 

6. 부여, 그 새벽의 땅

 

백제의 세 번째 서울 부여

금강 속으로 여승들은 사라지고

사월은 갈아 엎는 달

새벽의 땅 부여

이중환의 고향 연기

김구 선생이 숨어 지낸 절

산천이 아름다운 공주

<훈요십조>의 진실

고마나루에는 곰이 없다

 

7. 충청도와 경상도의 길목

 

산이 높고 물은 맑다

송시열이 태어난 구룡리

인물의 고장 옥천

샘물처럼 솟아나는 그리움

보은 청산 시악시들 시집 못 가 눈물 난다

인삼의 고장 금산

적벽강이 금산에도 있다

 

8. 미호천 변의 고을들

 

살제 진천, 죽어 용인

그 유명한 음성 고추

미호천과 부강포구

백제 때 상당현

한줄기 물은 비단같이 흐르고

쓰러져 가는 홍명희의 옛집

이인좌의 난

아나키스트 신채호

대청댐과 문의

 

9. 교통의 요지 천안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아 흥

땅이 기름지고 백성이 많은 아산

이순신이 살았던 곳

 

10. 천하의 으뜸가는 물맛

 

충주 달천의 물이 천하에 으뜸이라

물은 갈수록 겹겹, 산은 거듭거듭

중원에 세워진 고구려비

탐금대에 서린 한

 

11. 남한강 변의 나루들

 

번성했던 목계장터

단양은 옛 고을이라 산수가 빼어나고

영춘과 온달산성

의림지가 있는 제천

 

여주 영릉

살아 있을 때 100년의 저택이 아무리 호사스러워도 죽어 만년의 유택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조선의 4대 임금인 세종대왕과 왕비 소현왕후가 묻힌 여주읍 왕대리의 영릉은 천하의 명당자리라고 한다.

고달사지 부도

도의 경지를 통달한다는 뜻을 지닌 고달사지에 남아 있는 부도는 부도 중의 부도로 알려져 있으며, 국보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부도(普濟尊者 石鐘浮屠)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불교를 중흥시킨 나옹화상의 부도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연상시킨다. 보물 제228호이다.

남한산성

백제 온조왕 13년에 쌓은 성으로 이괄의 난 이후 개축하였으며, 병자호란의 아픈 상처를 지닌 곳이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인조가 병자호란 때 40여 일 간 머물며 직접 군사를 지휘했던 곳으로, 안쪽 편액에 씌어진 무망루라는 이름은 볼모로 잡혀갔던 효종이 8년 만에 돌아와 그 치욕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마니산 참성단

사적 제136호로,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단이다.

부근리 고인돌

강화군 화점면 부근리에 있는 고인돌은 북방식 무덤으로 우리나라 고인돌 중 가장 큰 것에 속하며, 사적 제137호로 지정되어 있다.

평택시장

넓은 평야를 끼고 교통의 요지라서 평택시장은 경기도의 이름난 시장이었다.

안성 궁예미륵

어떤 이유로 궁예미륵이라고 불리는지 알 길은 없다. 미륵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궁예의 실패를 안타깝게 여긴 후세의 사람들이 연민의 마음으로 붙인 것은 아닐까?

안성 유기

조형미가 뛰어난 안성 유기는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품질이 좋기로 소문이 났었다. 안성 장날이면 안성 꽃신과 함께 안성 유기를 사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수원 화서문

수원성의 서문인 화서문은 장안동에 있으며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원 화산 용주사

용주사는 본래 문성왕 때 염거화상이 창건한 갈양사라는 절이었다. 병자호란 때 소실되어 폐사지였던 이곳에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크게 다시 짓고 원찰로 삼았다.

1920년대 인천

중국을 오고 가던 백제의 사신들은 지금의 송도 유원지 근처인 능허대에서 배를 탔다. 온조와 함께 내려왔던 비류가 터를 잡았던 인천의 1920년대 모습에서 오늘의 모습을 조급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양천 투금탄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옛 속담이 오늘날에는 "내것은 내것이고, 네 것도 내것"이라는 말로 변해 가고 있다. 욕심을 버리고 더불어 살아 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양천 투금탄 전설은 전해 준다.

대성문

북한산성의 5대문 중에서 제일 큰 문으로, 이곳으로 임금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경복궁 전도

경복궁 경회루

경회루는 태종 12년에 창건했는데, 사신을 위한 연회나 여러 신하들의 연회가 열렸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경회루는 사정전 서쪽에 있으며 누주 위에는 못을 만들었다. 못은 깊고 넓으며 연꽃을 심었고, 그 가운데 두 섬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향원정

1867년 대원군의 강력한 의지로 경복궁을 재건할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2층 정자이다.

압구정도

한명회가 세웠다는 정자 '압구정'을 소재로 그린 겸재 정선의 작품이다. 현재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마포나루

조선 후기의 마포나루 전경이다. 삼개나루라고 불렀던 마포는 용산 · 양화진과 함께 주로 삼남지방에서 오는 곡식을 풀어 내려 저장하고 황해에서 잡히는 새우 조기 등의 수산물을 풀어 놓는 포구였다.

국회의사당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에 있는 국회의사당은 국회의원들이 국정을 논의하는 장소이다. 7대 국회였던 1969년 7월 17일 제헌절에 기공식을 가져 완공되었다. 이곳을 차지한 국회의원들이 그 규모나 신분보장에 걸맞은 의정활동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회의원의 말년이 아름다워질 날은 언제일까?

복덕방

마을 노인들이 심심풀이로 집을 소개해 주면서 시작된 복덕방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부동산 중개소로 명칭이 바뀌면서 복부인 · 떳다방 등의 신조어를 만들며 날로(?) 번창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 묘

오랜 유배생활에서 돌아와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고향 마재에서 저술에 몰두하다 1836년 일흔다섯으로 세상을 떠난 다산은 아내 풍산 홍씨와 함께 뒷산에 잠들었다.

화산서원

포천군 가산면 방축리에 있다. 인조 9년에 지방의 유림들이 이항복의 덕행을 기려 세었고, 숙종 때 사액서원이 되었다.

용미리 석불입상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예로 꼽히는 용미리 석불입상은 보물 제93홀 지정되어 있다. 벽제관을 지나 혜음령을 넘어 개성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에 서 있는 수호신이다.

화석정

율곡의 5대조인 이명신이 세운 정자로, 벼슬에서 물러난 율곡이 머물면서 제자들과 학문을 논했던 곳이다.

신사임당의 무덤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과 아버지 이원수의 묘 바로 위에 율곡 내외의 묘가 있다. 부모의 묘 위에 자식이나 후손의 묘를 쓰는 경우를 역장이라고 한다.

임진각 기차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씌어진 경의선 철도에 세워진 기차. 새들은 마음대로 오가고 강물은 남과 북을 건너다보며 흐르는데 언제쯤 이웃집 마실 가듯 오고 갈 수 있을까?

개성 성균관

고려 문종왕이 별궁으로 세운 것이다. 1089년 최고 유교교육기관인 국자감을 이곳으로 옮긴 뒤 1310년에 성균관으로 이름을 고쳤다. 인재양성을 위해 세운 오늘날의 국립대학이라고 볼 수 있다.

선죽교

정몽주가 이방원 일파에게 철퇴를 맞고 쓰러진 곳이다. 그때 흘린 피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공민왕릉

개풍군 해선리 무선봉 산 중턱에 있는데 공민왕의 무덤 현릉과 왕비 노국공주의 무덤 정릉이 나란히 놓여 있다.

박연폭포

개성에서 60리쯤 떨어진 천마산 자락에 있다. 높이는 약 35미터쯤 되는데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장대하기 이를 데 없다.

남연군 묘

가야사라는 절터였는데 흥선군이 재산을 처분한 2만 냥을 주지에게 주어 스님들을 쫓아내고 불을 지르게 했다고도 하고, 중국 명품 단계 벼루를 선사한 뒤 가야사 스님들을 쫓아내고 마곡사의 스님들을 불러다가 불을 질렀다고 한다.

서산마애삼존불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는 서산마애삼존불은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데 암벽에 새겨진 세 분의 부처가 볼이 터질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김정희 고택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추사 김정희의 고택이 있다. 사대부의 집으로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양반가 주택의 모습을 보여주며 바로 집 옆에 추사의 묘가 있다.

수덕사

고려시대의 건물로 국보 제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은 1308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제작연대가 확실하고 형태미가 뛰어난 점에서 한국 목조건축사상 아주 중요한 건물이다.

보령 무창포

매년 4월 초순이면 무창포에서 솔숲 우거진 석대도까지 바닷길이 열리는데,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모세의 기적이라고 일컫는다.

보령 성주사 터

신라 말기의 고승 무염국사가 열었던 성주사는 구산선문 중에서도 가장 번창했던 절이다. 국보 제8호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와 보물급 석탑들이 여러 개 있다.

대조사 석불상

부여군 임천면 뒤쪽의 성흥산 중턱에 있는 대조사에 있다. 논산 관촉사의 미륵불과 모양새가 흡사하다.

무량사 김시습 부도

조선시대 최고의 아웃사이더였던 김시습이 세상을 주유하다 마지막으로 찾아든 절이 무량사였고 이 절에서 세상을 하직했다. 화장을 하니 사리 1과가 나와서 부도를 세웠다,

무량사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만수산 자락에 있다.

이몽학 집터

청양군 청남면 아산리 원촌방죽, 이곳이 이몽학의 집터이다. 난이 끝난 뒤 집터에 저수지를 만들었고 산봉우리에 있던 이몽학의 선조 무덤은 파낸 뒤에 뜸을 떴다고 한다.

갑사 당간지주

갑사로 가는 옛길을 따라 올라가면 너른 공터에 철당간이 있다.

공주 장기면의 영평사

절 안팎으로 온통 구절초가 흐드러져 가을이면 구절초 축제가 열린다.

동춘당

'살아 움직이는 봄과 같다'는 뜻을 지닌 동춘당은 효종 때 대사헌과 병조판서 등을 지낸 동춘당 송준길의 집 별당으로, 보물 제209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성

유성 온천으로 이름이 높은 유성(옛 이름은 명학소)에서 1176년 '공주 명학소의 난'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망이 · 망소이의 난이 일어났다. 유성에 세워져 2002년에 월드컵 경기를 치른 대전 월드컵 경기장이 보인다.

견훤의 무덤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다. 견훤묘 · 왕묘 · 왕총 말랭이라고도 부르는 이 무덤은 견훤묘인지 아닌지 그 진위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견훤은 후백제가 망한 뒤 등창이 나서 죽기 전 "내가 죽거든 전주 땅을 바라보는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논산 쌍계사 무늬문

쌍계사 대웅전의 문은 정면 다섯 칸으로 모두 열짝이 달려 있는데, 모란 · 연꽃 · 국화 등의 꽃 창살이 세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윤증 고택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윤증 고택은 향촌 사대부 집의 면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중요민속자료 제190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경시장 풍경

대구 · 평양과 더불어 나라 안의 3대 시장으로 불리던 1900년대 초의 강경시장

옛날의 강경포구

신동엽 생가

"백제,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거름을 남기는 곳"이라고 시인이 노래한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신동엽의 옛집.

신동엽 시비

부여대교 못미쳐 우거진 숲속에 있는 신동엽의 시비에는 서정시 <산에 언덕에>가 새겨 있다.

정림사지 5층석탑

부여읍 동남리에 세워진 백제탑. 멀리서 보아도 가까이에서 보아도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궁남지

우리나라 연못 가운데 최초로 조성된 인공 연못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무왕 35년 3월에 궁의 남쪽에 못을 파고 20리나 되는 곳에서 물을 끌어들였다고 한다.

김옥균 생가 터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감나무골에 있는 한말의 개혁사상가이자 혁명가인 김옥균의 집터에는 감나무 한 그루만 남아 있다.

마곡사

숙종 때 사람인 송상기가 「유마곡사기」에서 "절은 고갯마루 아래 있었고 10여 리 길가에 푸른 시냇물과 흰 바위가 있어 저절로 눈이 트였다" 하였던 것처럼 마곡사는 들어가는 길이 무척 아름답다.

공산성 공북루(? 임류각)

공산성은 오붓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는데, 공북루는 1603년 옛날 망북루가 있던 곳에 세운 2층 누각이다.

우금치 위령탑

1894년 우금치 일대에서 동학농민군과 관군이 접전을 벌여 동학농민군이 참패했다. 모레는 수원, 글피는 한양성 하며 올라왔던 동학농민군은 결국 금강의 곰나루를 건너지 못했다.

적등진나루

추풍령을 넘어 서울길로 향하던 길손들이 꼭 넘어야 했던 이 나루는 옥천군 이원면에 잇었다. 지금은 경부선 철길이 놓여져 여전히 교통의 요지이다.

정지용 생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그 실개천 곁인 옥천군 옥천읍 구읍에 정지용의 옛집이 있다.

영동 노근리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경 영동군 황간읍 노근리 경부선 철도변에서 수십 명의 민간인들이 미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숨진 노근리 사건의 현장이다.

보은 삼년산성

보은읍을 바라보는 삼년산성은 신라시대에 쌓은 산성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큼 대단한 석축산성이다.

진천 농다리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세금천 변에 고려 고종 때 최씨 무신정권에 이어 권력을 잡았던 임연이 세웠다는 돌로 쌓은 다리이다.

화양구곡

예로부터 금강산 남쪽의 제일가는 경치라고 알려진 화양구곡 중에서도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이 금사담이고 멀리 보이는 집이 송시열의 서재이자 별장인 암서재이다.

송시열 묘

수원 무봉산에 있다가 숙종 23년(1697년)에 괴산군 청천면으로 옮겼다. 모든 산들이 이 산을 향해 달려오는 듯싶다.

만동묘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원군을 보내준 황제 신종과 마지막 황제 의종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사당. 송시열의 유촉으로 그의 제자였던 권상하 등이 건립하였다.

천안 광덕사

신라 흥덕왕 때 진산화상이 창건한 절로 고려 충렬왕 때 유청신이라는 사람이 원나라에서 호두 묘목을 가져와 제일 먼저 심어 호두의 원산지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20년대의 온양 온천

온양읍 온천리에 있는 온양 온천은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온천이다. 조선왕조 때 태조 · 세종 · 세조가 이곳을 다녀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중앙탑

고구려탑이라고 알려진 중원의 중앙탑. 이곳이 나라의 중심지라고 한다.

고구려비

고구려가 장수왕 때 한강 상류의 여러 성을 점령한 뒤 나라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남방 진출의 거점이 된 이곳에 세운 기념비로 추정된다.

탄금대비

탄금대는 신라 때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신립이 크게 패하였다.

단양 도담삼봉

남한강 변에 자리 잡은 도담삼봉. 원래 영월에 있다가 떠내려 왔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온달산성

고구려의 장수 온달이 배수진을 치고 신라군과 싸우기 위해 쌓았다고 한다. 온달동굴이 있고 그 아래로 남한강이 흐르며, 강 건너 고을이 영춘이다.

제천 의림지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인공수리시설의 하나이다.

괴산 연풍의 풍악헌

연풍의 관아 건물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연풍 동헌인 풍악헌만이 연풍초등학교에 남아 있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