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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4 고조선 논쟁과 한국 민주주의

 

 

 

김상태 지음

2017, 글로벌콘텐츠

 

대야도서관

SB121912

 

911.021

김52ㄱ

 

사이비역사학의 아성, 주류 고대사학계 비판

 

고조선 논쟁을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사회와 국가가 양 진영 곧, 소고조선론 진영과 대고조선론 진영을 공정하게 지원하고 양자의 이론을 전 국민이 알아보기 쉽도록 공지하면 된다. 나아가 양자의 논쟁을 대중이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날은 아마도 한국 민주주의가 완성의 마침표를 찍는 날일 것이다.

 

주류 고대사학계는 썩은 적폐인가?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피하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교과서 프로젝트에 충성스럽게 총대를 멘 집단은 바로 주류 고대사학계이다. 요약해 말하자면 '주류 고대사학계는 부패한 검찰 인맥이나 국방부 인맥처럼 수십 년간 쌓여 온 학계의 적폐'인 것이다.

 

진보사학계는 적폐가 아닌가?

특히 고조선 논쟁과 관련된 주류 고대사학계의 최고 최대 연맹세력은 진보사학계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들이 국정화 교과서의 총대를 멘 주류 고대사학계의 혈맹일 수 있단 말인가. 진보사학계의 모습을 바로 여기에 비추면 이해가 쉽다. 진보사학계는 사학계의 정의당이나 한경오인 것이다. 정의당이나 한경오가 그런 것처럼 진보사학도 한때는 배를 굶으며 헌신하는 진보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재야사학계는 적폐세력이 아니란 말인가?

환단고기란 책은 한 권의 책으로 보아줄 수 있지만 그것을 역사로 받아들이라 하면 정상적인 합리성을 가진 시민으로서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또 이덕일이 쓴 책을 진지한 학술이론으로 받아들이라 하면 사이비 종교 교리를 받아들이라는 말로 들린다. 학문적 이론으로서 재야사학계의 주장은 그 수준에서 도무지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재야사학계는 이런 이야기를 지난 수십 년간 반복해 왔다. 당연히 적폐이다.

 

진짜가 무엇인가

고조선사로서 진정한 학문은 매우 낯선 이름 속에 있다. 그것은 윤내현과 복기대와 평양연구팀이다. 이들은 고조선사와 관련하여 가장 적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은 한국 고대사의 핵심이자 근원적인 동력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고조선 논쟁이란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주류 고대사학계의 이론만 교과서와 학계에 제왕처럼 군립하고 재야사학계의 주장들은 멀리서 떠도는 각설이나 판타지에 불과했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김상태

1964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했다. 지금까지 저술활동을 시작한 이후 전 분야에 걸쳐 대중적 글쓰기의 가능성을 시험했다. 이는 대중이 전문가로부터 듣는 청취자나 학생으로서의 수동적 입장을 넘어 지적 활동 전체에 걸친 대중의 개입과 전진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진정한 민주사회와 복지사회의 마지막 과제이자 증거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로 인해 전문가들의 지적 활동도 더욱 생산적이고 올바르게 기능하리라 확신한다. 따라서 그의 글쓰기는 특정한 주제에 고정되지 않는다. 그는 대중적 글쓰기가 어떤 상황,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대증 스스로가 원하게 되면 그 즉시 다룰 수 있어야 하며, 또 그 주제에 대해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입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언제나 그래왔듯 그는 앞으로도 똑같은 일을 계속할 것이다. 지은 책으로는 『1990년 한국 사회 섹스라는 기호를 다루는 사람들』(새물결, 1996), 『도올 김용옥 비판』(옛오늘, 2007),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책보세, 2012), 『어린왕자의 가면』(책보세, 2012), 『일본 사라지거나 해방되거나』(책보세, 2014)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들어가는 말

          서언

 

제1장 고조선 이해를 위한 핵심개념과 주요쟁점

           대고조선론과 소고조선론

           고조선 논쟁과 만리장성의 동단

           ‘환단고기’ 문제 정리

           고조선 논쟁과 윤내현이라는 학자

           또 하나의 거목, 원로 사회학자 신용하

           북한의 고대사학자들- 리지린, 김석형, 조희승

 

제2장 고조선 논쟁의 역사

           1988년, 이기백과 서영수

           1988년, 이기동과 조인성

           1990년, 노태돈

           2003년, 송호정

           2006년, 오강원

           2007~2010년, 서영수 그리고 김정배

           1994년, 윤내현 그리고 전후 30년

           2002년, 복기대

           2005년, 박선희

           2005년, 성삼제

           신채호

           정인보

 

제3장 고조선 논쟁 관련 주요 사건들

           1981년, 국사 교과서에 대한 공청회-깡패와 더 큰 깡패

           1995년, 이형구의 논문-윤내현 학살극

           2016년, 동북아역사재단의 EKP 지원 중단, 마크 바잉턴 한국 고대사 연구 중단

           2016년,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지도’ 출판 불가 판정

 

제4장 재야사학계 비판

           이덕일

           이문영

           김종서, 심백강

 

제5장 진보사학계 비판

          강만길

          이이화

          2000년, 『역사비평』 겨울호

          2016~2017년, 『역사비평』 광풍의 1년

 

제6장 사이비역사학자들의 아성, 주류 고대사학계 비판

          공석구

          윤용구

          주류 고대사학계 젊은 학자들

 

제7장 대고조선론의 도약

           고구려 장수왕의 평양은 어디인가?

           압록강은 어디인가?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은?

           평양연구팀의 성격과 의미

           복기대의 빛과 그림자

 

제8장 고조선론 주변의 수상한 사람들

           이형구

           우실하

 

결론과 전망

           정말로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고조선 논쟁을 해결하는 방법

           고조선 논쟁의 시금석, 윤내현 간첩 및 표절자 조작사건

           고조선 논쟁의 전망

 

 

 

posted by 황영찬
2018. 4. 30. 17:50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23 온갖 것들의 낮

 

 

 

유계영 시집

2016, 민음사

 

대야도서관

SB110693

 

811.7

민67ㅁ  216

 

민음의 시 216

 

어떤 시인은 세계 내에 견고한 집을 지으려 하고, 어떤 시인은 세계의 옥타브 밖으로 나아가려 한다. 유계영은 물론 후자 쪽이다. 영혼의 패턴이나 생각의 알고리즘에서 일탈하는 문장들, 섬세한 불확실성을 통해 진실에 닿으려는 행간들……

하지만 여기까지만 말하면 되는 것일까? 그런 시들은 이미 충분히 많지 않은가? 이런 질문과 함께 머뭇거린다면, 우리는 유계영의 시를 아직 덜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속이 보이는 심해어처럼 유연한 문장들을 덜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이 스타카토 풍의 불안과 공포를, 시간과 공간이 어긋나는 건조한 밤을, 입체파 회화처럼 단절되면서 동시에 연결되는 몸과 얼굴 들을, 아직 덜 살아 낸 것인지도 모른다. 특유의 미니멀한 호흡 속에서, 세계가 팽창하기 시작한다.

-이장욱(시인)

 

 

유계영

 

1985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2010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당신은 무엇으로도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날 본다

나는 달아날 수 없을 만큼만 뻗는 다리로 날 본다

 

2015년 가을

유계영

 


차 례

 

1부

 

시작은 코스모스

유리

내일의 처세술

모형

생각의자

퍼니스트 홈 비디오

생활의 발견

 

2부

 

뛰는 사람

출구

호랑의 눈

상온을 기준으로

하루 종일 반복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목록

지그재그

에그

일요일에 분명하고 월요일에 사라지는 월요일

아이스크림

니진스키

 

3부

 

복화술사

생일 카드 받겠지

잠 속의 잠

빛나는 토르소

늑대

오래된 오렌지

휴일

불이야

암막 커튼으로 이루어진 장면 묘사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중이야

배우 훈련

일주일

오늘은 나의 날

구름이나

 

4부

 

위하여

오가 죽는 세계

안개 풍경

큰소리로 울어라

곡예사

새벽 시간

내일의 토모

룰루는 조르조트의 개

재연 배우 모모

눈 천사가 지워진 자리

한 줄로 서기

온갖 것들의 낮

콩소메 맛

발가락들

사월

악필 연습

식육

녹는점

 

작품 해설 ┃ 양경언

큰 소리로, 훗!

 

지그재그

 

레이디는 상자에서 빠져나오며 마술에 대해 생각했다

 

미치기 직전의 상태로 끝까지 살아가는 식물처럼

나는 아프고 너는 지켜보기만 했는데

너를 좋아해서 웃어만 지는 얼굴

 

잘려 나간 팔다리가 식어 가는 동안에도

몸에서는 부드러운 털이 자라났지

 

모자 속의 토끼

사과 속의 코끼리 같은

순진한 준비물과

대괄호가 많은 아이들의 말속에서

레이디는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했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무릎이

명상의 밧줄처럼 잘 땋여

거기 남았다

우린 모두 그가 다녀온 공간을 위로하고 있다

 

레이디는 상자에서 빠져나오며 마술에 대해 생각했다

통증으로만 구성된 꿈을 꾸었다는 듯이

이 놀라운 상자를

마술사에게도 만들어 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의 처세술

 

옷소매 속에서 자라나는 병든 팔

밤은 파이프 모양의 긴 겨드랑이

 

대재앙 오 초 전

마주 앉은 사람들 일부러 크게 웃는다

 

창밖을 서성이는 짐승과 눈 마주치면

 

가장 오래 사는 물 영원한 물 썩어도 이로운 물

사람들은 물의 자세를 배우기 위해 눕고

그 위에 눕는다

 

복면을 쓴 등 뒤의 어둠

빛을 믿는 사람만을 겁준다

 

모두 달라지고 아무도 망하지 않는 꿈

창문이 있던 벽의 흰 자리를 짚어 본다

 

광대버섯의 연기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자라나는 쓰레기

먹다 남긴 태양

 

천천히 말을 해

운동장의 흐린 햇살 위에 아이들이 벗어 놓은 가발

이곳에선 모두 농아가 된다

 

공기 속의 말을 떨어뜨리지 않는 신체 훈련

다 할 수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좋다

 

퍼니스트 홈 비디오

 

고양이가 도넛처럼 요염하게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고

나를 보는 일

고양이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뒷목이 뻣뻣해지는 것이로구나

생각하는 일

 

염하려다

다시 살아난 아버지

자주 뒷목을 잡곤 했던 일

아버지 한 번 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의 유머 감각에 감탄하는 일

거리의 보도불록에서 밟은 껌을

집안까지 끌고 들어오는 일

죽음까지 끌고 가는 일

 

공 앞에서 아주 잠깐 애국하고

다시 저주하는 일

같은 채도의 사방연속꽃무늬

꽃무늬의 방에서 벌어지는 일

 

아버지가 도넉처럼 요염하게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고

나를 보는 일

용서를 빌 때는 반말이 좋다는 걸 깨닫는 일

 

대부분의 코미디가

운 나쁜 캐릭터의 수치심으로 마무리되는 일

 

새벽 시간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여자애들이

플라스틱처럼 반짝였다

빨갛게 부어오른 귀를 만지면서

청과상의 열매들 속니를 부딪치고

가끔은 놀라운 소리가 났다

버려진 개들이 살던 집을 기억해 내려고

자꾸만 꿈속을 밟고 다녔다

칭찬 끝에 남겨진 표정과 같이

아무도 고갤 들지 못했고

 

젖먹이들은 얼굴을 달게 절이느라

일찍 잠에서 깼다

 

아이스크림

 

거리의 모든 사람들아

너는 벗겨지고 흰 깃발이 드러난다

너는 벗겨지고 바깥에서 문 잠그는 소리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너희가 잠자코만 있어 준다면

미래에서 온 시간 여행자의 귀를 만져 본다면

이런 느낌일 거야

 

방향을 멈춘 깃발의 긴장

너도 나도 다 가진 비밀이라면

난 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봐, 이렇게 쉬운 평화

 

거리의 모든 사람들아

너는 외계의 메시지이고

너는 우주와의 시차이다

양산 속의 꽃무늬가 지르는 비명 때문에

나는 인상을 쓰고야 만다

 

우리가 사랑한 계절에는

아무 이름도 붙일 수 없는 것

태양이면서도 태양이 아닌 것 때로는

태양이기만 한 것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온갖 것들의 낮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하나의 의문으로

 

빨강에서 검정까지

경사면에서 묘지까지

항문에서 시작해 입술까지를

공원이라 불렀다

 

바람이 불자 화분이 넘어졌다

화분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고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어제 탔던 남자를 오늘도 탔다

내가 누구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어제 먹어 치운 빵을 태양이 등에 업고

나는 태양을 등에 업고

너는 나를 등에 업고

비둘기가 아주 잠깐 날아올랐지만

 

층층이 흔들렸다

공원의 한낮이 우르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갔다

 

 

바람이 자신의 주술을 주머니에 차고 온다

먼눈에게 어둠은 가장 평범한 장소

노인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 때를 대비해

가까운 물건의 이름을 자꾸 불러 본다

살든 죽든 무엇이든 두렵지 않다

 

노인의 아이는 빨간 모과를 줍고

노인의 아이는 화가를 만나네

노인의 아이는 태양을 그리며

 

바람은 수면 위에서 갈증을 씻는다

깎아 놓은 모과가 검어진다

그건 너무 오래 칼을 노려본 탓

 

오늘이 불편하면 내일을 기다리면 된다

주머니에 차고 온 술병을 무덤 위에 붓는다

 

암막 커튼으로 이루어진 장면 묘사

 

얼굴을 감싸고 선 나는

곁눈 속에서만 사는 귀신이 가장 두렵다

자기 색을 내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그들은 없는 색, 나쁜 색

 

커다란 밤이 날개를 젓고 있다

 

정말 투명해

천사의 쌍꺼풀처럼

가려움증 앓는 불빛들로 창밖은 가득해

 

곁눈으로 내 코를 쳐다보면

처음 본 얼굴이 길게 누워 있다

만지고 싶어서 손을 뻗으나

수수한 외투를 걸치고 불룩해진 테두리

수많은 도형이 몸을 내밀고 있다

 

그래도 가장 슬픈 건 나의 죽음일 것이다

 

하루 종일 반복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목록

 

나는 점성촌의 개

나는 점성촌의 젖은 개

밤은 오해로부터 내린다

 

살찐 여자의 배 둘레처럼 아래로 흐르는 시간

밤이 찢어진 발바닥을 내린다

낙과와 신을 가려낼 수 있는

지면 위로 내린다

 

너는 언 빨래의 몽유병

빨랬줄에 걸린 해의 고민을 내린다

어린이를 벗는 어린이가 말한다

 

비가 온다

 

우리는 찢을 수 있어

익사한 몸들이 걸터앉은 물결을

몸의 질서를 벗어난 뼈의 잠영을

찢을 수 있어

 

우리는 어제 태어난 개의 꿈을 꾼다

 

에그

 

깃발보다 가볍게 펄럭이는 깃발의 그림자

깃에 기대어 죽는 바람의 명장면

 

새는 뜻하지 않게 키우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알아서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창밖의 무례한 아침처럼

그러니까 다가올 키스처럼

어떻게 두어도 자연스럽지 않은 혀의 위치처럼

새는 뜻하지 않게 시작된 것이다

 

새가 머무는 날

홀쭉한 빛줄기에 매달리는 어둠을 쪼며

짧게 나누어 지는 잠

 

그런 잠은 싫었던 거야

삼백육십오 일 유려한 발목의 처녀처럼

하나의 목숨으론 모자라

죽음은 탄생보다 부드러운 과정

 

새는 알을 남기고 간 것이다

나는 알을 처음 본 게 아니지만

곧 태어날 새는 어미를 전혀 알지 못한다

알 속의 혀가 입술의 위치를 짚어 보는

그런 명장면

 

일요일에 분명하고 월요일에 사라지는 월요일

 

3과 4의 사이

강물은 신발을 모은다

여름의 집에 불을 지르고 온

가을의 유령들이 모인다

나는 자꾸 깨닫는 사람

눈과 눈 사이를 찌를 수 있도록

물결을 평평히 눌러 두었다

 

0과 1의 사이

천사는 자신이 거대한 태아라는 사실이 싫다

고작 이런 대우나 받으려고 착하게 산 게 아니야

통통한 발을 벗어 버리고

차라리

 

괴물이 되고 싶어 하는 건 우리뿐

 

9와 0의 사이

극락조 : 부리를 머금고 발을 꺾어 신은 새

유령 : 어둠에 기댄 것처럼 서 있기

오늘도 해가 두 발로 지지만

 

0과 1의 사이

바늘의 말투를 훔치려다 비가 되었다

말 없는 사람들이 돌을 던지러 강가로 몰려왔다

유령들은 강의 괘를 따르며 빠른 노래를 불렀다

 

생일 카드 받겠지

 

예뻐지고 싶은데

아무 때고 울음이 났다

공중화장살의 변기 위에서

밥숟가락의 무게를 고민하는 식탁 앞에서

왜 하필 교회의 첨탑 위에서

달력 속의 월요일을 헤아리면서

철면피처럼

 

괜찮은 부모를 가졌다는 건

게으름에 대한 핑계가 부족해지는 일

왜 하필 옮겨 적을 수 없는 나무의 독설처럼

사려 깊을까 어머니

 

아침은 그렇게 오는 게 아니죠

모퉁이를 돌 때마다 열리는 새로운 골목의 끝에

내가 발가벗고 서 있는 거예요

아침은 그렇게 밝는 거예요

 

나는 오늘 태어났고

내일은 손 닿지 않는 곳의 가려움을 견디는 재미

내년이면 나도

생일 카드 받겠지

 

눈 천사가 지워진 자리

 

난간에 걸터앉은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누운 해골이 포개지고 있어

 

검음이라 부르던 개가 있었다

새끼에게 뒷다리를 물려 죽은 검음

땅이 일어 삽날이 구겨졌다

나는 검음을 공터에 내던지고

돌아오며 발꿈치가 아팠다

 

숨을 참고 눈을 뜨지 않는 것

팔다리를 가지런히 놓고 꼼짝하지 않는 것

내가 연습한 죽은의 구체

냉장고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상해 가는 밑반찬들

 

누군가 나를 흔든다면

엎드려 자던 가축의 네 다리처럼

갑자기 나타나 보여 주는 것

혓바닥의 모래처럼 뜨거워지는 것

안경알을 찌르는 빛이 되는 것

 

수면 위로 올라가

천연덕스럽게 눈을 뜨고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를 아는지

우리가 연습한 놀이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생각의자

 

불가능해요 그건 안 돼요

간밤에 얼굴이 더 심심해졌어요

 

너를 나라고 생각한 기간이 있었다

 

몸은 도무지 아름다운 구석이라곤 없는데

나는 내 몸을 생각할 때마다 아름다움에 놀랐다

 

나는 고작 허리부터 발끝까지의 나무를 생각할 수 있다

냉동육처럼 활발한 비밀을 간직한 나무의 하반긴을 생각할 수 있다

 

나무의 상반신은 구름이 되고 없다

 

어떤 나무의 꽃말은 까다로움이다

 

사람들은 하루를 스물네 마디로 잘라 둔 뒤부터

공평하게 우울을 나눠 가졌다

나는 나도 아닌데

왜 너를 나라고 생각했을까

 

의자를 열고 들어가 앉자

늙은 여자가 날 떠났다

나는 더 오래 늙기 위한 새 의자를 고른다

나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정의를 내리려고

 

 

 

 

 

posted by 황영찬
2018. 4. 17. 13:10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21 왜, 바나나는 어깨동무를 하고 있을까요?

 

 

 

서명진 시집

2017, 행복에너지

 

대야도서관

SB121647

 

811.7

서34ㅇ

 

 

 

시인 서명진

1967년 강화도에서 태어나 한남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하나은행 PB 센터 VIP 고객 소식지로 시 창작을 시작하여 단국대학교 시 창작, 시산맥 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보고싶다 보고싶어』, 『영업의 디자이너』, 『멘토를 만나다』 등이 있다.

현재 하나은행 지점장 및 PB로 재직 중이며 2008년부터 멘토 클럽 COP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자랑스러운 하나인 상, 우수 PB 상, 명예의 전당 회원 상을 수상했다. 또한, 대전일보, 중도일보, 충청투데이 등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충청 및 대전지역 관공서, 대학교, 종합병원, 기업체 등 재테크 및 자산관리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시인의 말

 

한 줄

 

한 편이

 

당신

마음의 서재에

항상 꽂혀 있기를 바라며

 

2017년 7월

서명진

 

차례

 

제1부

사랑의 다리를 놓고

 

∞ 사랑하기 때문에

∞ 기도

∞ 앵두사랑

∞ 반창고

∞ 늦기 전에

∞ 물

∞ 중앙선을 사이에 두고

∞ 딸이 엄마를 닮아 간다

∞ 여백 1

∞ 나의 창

∞ 탑 쌓기

∞ 사랑의 모래시계

∞ 숨소리

∞ 목련의 계절

∞ 노벨 뮤지엄

∞ 여백 2

∞ 종이 꽃 향기

∞ 두브로브니크의 사랑

 

제2부

함께 거닐며

 

∞ 원

∞ 참 좋을 때다

∞ 공통점

∞ 비상

∞ 男과 女

∞ 마시멜로 이야기

∞ 무제

∞ 같이는 가치

∞ 바람에도 색깔이 있다

∞ 태극기 휘날리며

∞ 대장간의 미학

∞ 문이 열리다

∞ 알아 간다는 것

∞ 빈 항아리

∞ 불꽃놀이

∞ 우정을 맛보다

∞ 옆으로 걷기

 

제3부

마음을 즐긴다

 

∞ 도르래 도르래

∞ 비단잉어 날다

∞ 친구야

∞ 시니어 예찬

∞ 칼춤

∞ 벚비가 내리네

∞ 병아리의 꿈

∞ 역량

∞ 난, 지금 엘리베이터를 타러 간다

∞ 꽃이 피다

∞ 선생님

∞ 번호표를 뽑으세요

∞ 피요로드

∞ 엄마의 장난감

머리통에 작은 활자 하나 심고

∞ 그런 사람으로

∞ 플라톤의 자명종

∞ 스노우 드롭(Snow Drop)


■ EPILOGUE

■ 출간후기

 

사랑하기 때문에

 

왜,

바나나는

어깨동무를 하고 있을까요?

 

왜,

포도는

얼굴 맞대고 뽀뽀를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나는 당신의

껌딱지가 되어 있을까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늦기전에

 

일 년이

지났고

 

한 달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그런 이야기만 들을 거니?

 

매일 똑같은 이야기만 들을 거야?

 

중앙선을 사이에 두고

 

그랬지                          

우린 그랬어.                 

 

중앙에 노란 선 하나      

그려놓고                      

 

넌 오른쪽                    

난 왼쪽                       

넘어오지 말라며          

 

벌써 10년째,              

 

희미해져 보이지 않는

중앙선을                  

사이에 두고              

 

넘어올 만도 한데       

넘어갈 만도 한데       

 

아직도                    

서로                       

발을 들었다            

다시 내려놓을 뿐     

 

또다시                     

중앙선이 선명해지네.

 

여백餘白 1

 

나의

마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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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채울 수 있도록

많이 비워두렵니다.

 

사랑의 모래시계

 

나의 사랑은

모래시계

 

너에게

한 알

두 알

세 알

 

평생을

내려주는 사랑

 

나의 비움이

 

조금씩

조금씩

 

너에게

쌓임으로 가득하기를

 

여백餘白 2

 

      나의 사랑은                                                                                                여백으로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할 이야기가 필요 없어                                                                                     남겨 두렵니다

 

참 좋을 때다

 

처음 만났을 때

물으셨다.

 

나이가 몇이냐고?

'스물아홉'이라 하니

'참 좋을 때다'라고 하면서 웃으셨다.

 

10년 뒤 또 물으셨다

올해 나이가 몇이냐고?

'서른아홉'이라 하니

또 웃으시면서 말하셨다.

 

'너, 참 좋을 때다'

 

지금 또 물으신다.

몇이 되었냐고?

이제는 50이라 하니

여전히 미소를 지으시며 말하신다.

 

'너, 참 좋을 때다'

 

비상飛上

 

누가

 

무엇을

위하여?

 

누가

 

누구를

위하여?

 

지상에

알 하나

떨어뜨려

 

나비를

꿈꾸게 하였는가?

 

무제無題

 

참새는 짹짹짹

비둘기는 구구구

노래하는데

 

나는

어떻게

노래 불러야 하나?

 

바다에는 해로

하늘에는 항로가

있는데

 

나의

인생에는

어떤 길이 있을까?

 

같이는 가치

 

누가 그러더라

함께해야 한다고

 

같이

음식도 나누고

사랑도 나누고

그래야 가치가 있다고

 

누가 그러더라

같이해야 한다고

 

같이

봉사도 하고

노력도 하고

그래야 가치가 있다고

 

그래서

같이 = 가치라고

 

대장간의 미학

 

이른 아침

대장간 지붕 위에

코끼리 가족들이

올라갔어요.

 

아기 코끼리들이

줄지어 서서

엄마 아빠를 따라

하늘로

걸어가고 잇어요.

 

엄마는 빨간 하이힐을 신고

아빠는 검정 구두를 신고

아기들은 하얀 운동화를 신고서

 

뒤뚱 뒤뚱

쿵쿵 소리를 내며

 

대장간 지붕 위로

 

코끼리 가족이

봄나들이

갑니다.

 

알아 간다는 것

 

스무 해

그림자는

외로움을 등에 지고

가야 한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라며

마음으로 보아야 아는 것이라고

떠들던 노교수의 말이

어둠 속에 묻히고

 

핸드폰 속

수백 명의 전화번호들이

아는 것이

다 아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던 선배들의 말을

알아갈 때

 

청춘의 그림자는

밝은 태양으로

당당히 걸어 나온다.

 

우정을 맛보다

 

어느 늦은 가을날

친구가 나오라고

갈 곳이 있으니 차에 타라 하네

 

청량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곳은

쓰러져가는 농가의 집 앞

 

감나무 밑에서

햇살에 온몸을 붉히고

옷을 벗어버린 채

주황색이 주렁주렁 반기며

 

친구가

일 년을 기다렸다고

붉은 감 하나 건네

 

입에 물고

 

친구를 바라본다.

 

친구야

 

친구야

'비가 오는데'

 

'응, 그러네'

 

친구야

'이제 가을이 지나가나 봐'

 

'그러게'

 

친구야

'바람이 불어 낙엽이 떨어지네'

 

'아니, 너 어디 아프냐?'

 

'아니, 그냥 그렇다고

친구야

밥이나 먹자고'

 

벚비가 내리네

 

비가

내리네.

 

꼭 이맘때

하얀 비가 내리네.

 

긴 겨울을 보내야만

찾아오는 벚꽃

 

가슴을 후비듯이

꽃피고

열흘을 못 넘기고

가 버리네

 

또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애절함을 뒤로한 채

 

누가 볼세라

 

밤에

 

벚비가 내리네.

 

병아리의 꿈

 

'살려주세요.'

'단단한 껍질로 막혀있어요.'

'도와주세요.'

 

'나에겐 꿈이 있어요.

장닭이 되어

새벽에 소리쳐 노래하고 싶어요.'

 

하지만 모두가 말하네요.

 

'병아리야

내가 도와주면

넌, 계란 프라이가 될 뿐

장닭이 못되고 죽는단다.'

 

'너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

 

'병아리야

넌, 할 수 있어.'

 

난, 지금 엘리베이터를 타러 간다

 

지난밤

급하게 엘리베이터에 타는 순간

나는 심장이 멎을 뻔했네.

 

멋진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기 때문이네

 

지금 엘리베이터엔 우리 둘뿐

가슴이 두근두근

첫사랑 그때의 심장박동 소리가

40대인 내게 찐하게 들려왔네.

 

정말 난 몰랐네.

아래층에 멋진 남자가 살고 잇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그동안 우리는 왜 한 번도 못 마주쳤을까?

아~ 앞집 근영 엄마 윗집 지영 엄마가

매일 화장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이유가 있었네.

 

지금

나도 화장을 하고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향수를 뿌리고

쓰레기봉투 들고서

 

오늘 밤 엘리베이터를 타러 간다.

 

번호표를 뽑으세요

 

안으로

들어서니

아무도

없다.

 

나뿐이다

 

자신 있게

젤 예쁜 여직원 앞으로

다가서니

 

웃으면서

말한다.

 

'번호표를 뽑으세요.'

 

엄마의 장난감

 

아무리 잘났어도

엄마의 장난감만도 못하네

 

눈이 나빠져

잘 보이지 않는다며

이번에는 아주 큰 것으로

욕심을 부리시네.

 

수십 년을

친구처럼

애인처럼

 

오늘도

엄마를

웃기는 것은 바보상자뿐

 

내가 못 한 것을

그가 하네.

 

내가 안 한 것을

그는 하네.

 

그런 사람으로

 

눈 내리는 겨울

추위를 녹일 수 있는 마음 따뜻한

사람으로

 

가을에

오곡백과를 나누면서 함께 즐기는

사람으로

 

무더운 여름에는

마주 보고 웃으면서

시원한 냉커피 한잔에 살아가는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어느 봄날에

꽃 한 송이와 시 한 편 전할 줄 아는 사랑이 넘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

 

스노우 드롭Snow Drop

 

새해 첫 날

 

천사가

 

준 선물

 

'스노우 드롭'

 

ㄴㄴ이

 

내릴 때,

하얀 드레스를 입고

 

부끄러워

 

머리를 숙인

 

신부의 모습으로

 

차가운 땅속에서

 

희망으로

 

피었네요.

 

 

한얀 눈이

 

땅에 떨어지기 전

 

맨발로

 

뛰쳐나가

 

두 손을 뻗어 당신을 잡으렵니다.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