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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30. 12:58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67 조선 선비 살해사건

 

이덕일 지음

2006, 다산초당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1359

 

911.05

이24조 1

 

조선 역사상 가장 많은 선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4대 사화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역사 드라마.

그동안 몰랐던 4대 사화를 둘러싼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과 반목을

손에 땀이 날만큼 생동감 있고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그만두어라. 어찌 나 혼자 살자고 상왕 전하와 동지들을 배신하겠는가."

_박팽년이 회유하는 세조에게 전한 말

 

"나리가 나라를 도둑질하여 빼앗지 않았소. 나 삼문은 남의 신하가 되어 차마 군부가 폐출당하는 것을 볼 수 없어 상왕 전하를 다시 복위시키려 한 것이오. 나리가 평일에 자신을 곧잘 주공에 비유했는데 주공이 어린 조카의 왕위를 뺏은 적이 있었소? 내가 이 일을 한 것은 하늘에는 두 해가 있을 수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오. 나는 상왕 전하의 신하이지 나리의 신하가 아니오."

_국청에 나간 성삼문이 남긴 말

 

둥둥 치는 저 북소리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네 /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는 이미 기울었네 / 황천길에는 주막 하나 없다 하니 / 오늘밤에는 누구의 집에서 잘꼬

_성삼문이 형장으로 향하면서 읊은 시

 

임이 주신 밥 먹고 옷을 입었으니 / 일평생 그 마음을 어길 수 있으랴 / 한 번 죽음이 충의인 줄 나는 아네 / 현릉의 소나무 잣나무가 꿈속에 아른아른거리누나

_성승의 절명시

 

우 임금 솥처럼 정사가 무거울 때는 삶 또한 크지만 / 기러기 털처럼 가벼울 때는 죽음 또한 영화로세 / 새벽도 덜 깼는데 문 밖에 나서니 / 현릉 송백만이 꿈속에도 푸르구나

-이개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시

 

이덕일

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동북항일연군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객관적이고 풍부한 사료와 흡인력있는 문체를 토대로 대중역사서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 그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역사저술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으로 있다.

한국사의 디양한 쟁점을 소재로 한 저서들 중 특히 《조선 왕 독살사건》은 인종, 선조,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 소현세자 등 석연치 않은 죽음으로 독살설에 휘말린 조선 왕들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역사서 붐을 일으켰다. 역사의 이면을 넘어 그 의미까지도 생각하게 해준 《조선 왕 독살 사건》은 역사저술가로서의 그의 이름을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킨 역작이다. 그 외 조선 당쟁사의 심장부를 다룬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사도세자의 고백》,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의미를 보여준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을 비롯하여 불운한 천재나 역사 속에 묻혀버린 인물들을 복원한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이덕일의 여인열전》, 《조선 최대의 갑부 역관》, 《장군과 제왕》등의 저서가 있다.

 

1권 주요 등장인물_정치적 견해를 중심으로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

온건개혁파의 영수. 고려 말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三隱으로 불렸던 성리학자. 공민왕 때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고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으며 성리학 발전에 공이 있었다. 이성계가 즉위한 후 한산백韓山伯으로 봉하며 출사를 종용했으나 끝내 거절해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켰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

온건개혁파 신흥사대부의 영수. 공민왕 9년(1360)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1362년 예문관 검열수찬으로 관적에 진출했다. 1380년에는 조전원수助戰元帥로 이성계를 도와 전라도 운봉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했다.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지지했으며 우왕을 축출하고 공양왕을 지지한 공로로 익양군충의군에 봉군되었다. 고려 왕실의 존속을 주장한 그는 역성혁명과 신흥사대부가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이성계를 제거하려다가 이방원의 문객인 조영규 등에게 선죽교에서 살해되었다. 태종 5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1342~1398

조선 개창을 주창한 개혁사상가이자 혁명가.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했으나 배원친명정책을 주장하다가 친원파에 의해 유배되었다.

약 8년에 걸친 귀양 및 유랑생활 후 스스로 이성계를 찾아가 그의 참모가 되었다. 이성계에게 새 왕조 개창의 당위성을 주장했으며 위화도회군 이후 실권을 장악했다. 권문세족의 토지 몰수와 농민에 대한 토지 분배를 주장했으나 보수파의 반발에 밀려 신흥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는 과전법을 시행하는 데 머물렀다. 개국 일등공신으로서 그는 불교를 비판하고 성리학을 새로운 사회 지도 이념으로 내세우려 했다. 명나라의 부당한 간섭에 반발해 요동정벌을 추진하면서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인 방석의 왕위계승을 지지하다가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인 방원에게 살해되었다.

 

우재吁齋 조준趙浚 1346~1405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낸 조인규의 후손으로, 권문세족이었으나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지지했다. 위화도회군 이후 대사헌으로 문란한 토지제도의 개편을 주장했다. 공양왕 3년(1391)에 정도전과 함께 사전개혁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과전법을 단행함으로써 신흥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했다. 조선 개국 일등공신에 책봉된 후 왕위계승문제와 요동정벌문제에서 정도전에 반대하고 이방원을 지지했다. 태종 즉위 후 영의정부사에 올랐다.

 

박포朴苞 ?~1400

조선 개국 후 제1차 왕자의 난 때 방원을 도와 공을 세웠으나 정사공신 이등에 봉해지자 불만을 품었다. 태조의 4남 방간과 함께 방원을 제거하려고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패배하여 참수되었다.

 

하륜河崙 1347~1416

공민왕 때 벼슬길에 올라 1388년 최영이 요동을 공격할 때 이를 반대하다가 유배되었으나 위화도회군 이후 복관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후 명나라와 표전문 시비가 일자 명나라의 요구대로 정도전을 보내자고 주장해 이후 정도전의 미움을 받아 좌천되기도 했다. 방원을 적극 지지해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사공신 일등이 되고,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 일등이 되었다. 그뒤 영의정부사 · 좌정승 · 좌의정을 역임했는데, 인사 청탁을 많이 받고 고양포高陽浦의 간척지를 착복해 대간의 탄핵을 받았으나 공신이라 하여 묵인되었다.

 

심온沈溫 1375~1418

세종의 비 소헌왕후 심씨의 아버지. 문과에 급제해 대사헌,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후 태종이 상왕으로 있던 세종 즉위년에 영의정이 되었다.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을 때 강상인의 옥사에 연루되어 태종에 의해 사형되었다. 세종의 친정 이후인 1426년에 관작에 복구되었다.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 1365~1420

여흥부원군 민제의 딸. 제1차 왕자의 난 때 남편 방원을 도운 공이 컸다. 1400년 11월에 방원이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즉위 초부터 후궁문제로 태종과 불화를 빚었으며, 동생인 민무구 형제의 옥사를 계기로 태종과의 관계가 더욱 심각해졌다. 민무구 형제가 끝내 대역죄로 몰려 죽게 된 것은 원경왕후의 지나친 투기와 불평 때문이기도 했다. 그뒤로도 자주 불손한 말을 함으로써 태종의 분노를 사 폐비될 뻔하기도 했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해 후덕왕대비로 봉해졌다.

 

민씨閔氏 형제

태종비 원경왕후 민씨의 동생인 무질 · 무구 · 무휼 · 무희를 이른다. 제1차 왕자의 난 때 대장군과 장군으로서 매형인 방원을 도와 방석을 지지하는 정도전 세력을 거세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방원이 즉위한 후 외척의 발호를 경계하여 4형제를 모두 사사했다. 원경왕후도 폐비될 뻔했으나 세자 양녕과 충녕 등의 친어머니인 점이 감안되어 무사했다.

 

이숙번李叔蕃 1373~1440

태조 2년(1393) 문과에 급제한 뒤 방원을 도와 사병을 출동시켜 세자 방석과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워 정사공신 이등에 책록되었다. 이후 박포가 방원과 반목하던 방간을 충동하여 거병하자 군사를 동원해 이들을 제거한 공으로 좌명공신 일등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공과 태종의 총애를 믿고 국왕에게 불충하고 동료들에게 무례했기 때문에 여러 차례 대간의 탄핵을 받아 결국 관작을 삭탈당하고 태종 17년(1417)에 경상도 함양으로 유배되었다.

 

절재節齋 김종서金宗瑞 1390~1453

태종 5년(1405) 문과에 급제해 사간원 정언正言을 역임한 후 세종 15년(1433) 함길도 관찰사로 여진족의 국경 침입을 물리치고 6진을 개척해 국경선을 두만강까지 넓혔다. 병약한 문종의 유명遺命을 받아 정승의 지위로 단종을 보좌했으나, 계유정난 때 왕위를 노리는 수양대군에게 살해되었다. 영조 22년(1746)에 복관되었다.

 

압구정鴨鷗亭 한명회韓明澮 1415~1487

수양대군의 모사. 단종 1년(1453) 음보蔭補로 태조의 개경 잠저를 지키는 경덕궁직敬德宮直이 되었으며, 현실에 불만을 품고 왕위를 노리는 수양대군을 도왔다. 계유정난 때 살생부를 작성해 단종을 보좌하는 구신舊臣들을 살해했다. 정난 후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을 좌절시켰다. 예종비 장순왕후章順王后와 성종비 공혜왕후恭惠王后의 아버지이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했으며 권력의 정점에 섰다. 세조가 죽은 뒤 원상院相으로서 서정庶政을 결재하여 왕권을 능가했다. 한강변에 압구정을 지어놓고도 은퇴하지 않는다는 풍자를 받기도 했다.

 

권람權擥 1416~1465

활을 잘 쏘고 문장에 뛰어났으나 일찍이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명산고적을 떠돌며 한명회 등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지으며 회포를 나누었다. 1450년 향시와 회시에 모두 장원급제했다. 《역대병요》를 편찬할 때 수양대군과 가까워졌다. 수양이 동지를 규합할 때 한명회의 부탁을 받고 무사들을 규합해 김종서, 황보인 등 대신들을 제거하고 세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해 정난공신 일등에 책록되었다. 세조를 도와 여러 차례 공을 세운 덕으로 만년에는 높은 지위와 많은 재산을 누렸다.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 1417~1475

세종 20년(1438) 문과에 급제해 집현전에 들어간 후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웠다. 대부분의 집현전 학사들이 수양대군의 즉위에 반대했으나 그는 세조를 지지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후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남이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이 되었다.

 

사육신死六臣

세조 2년(1456), 수양대군에 의해 쫓겨난 단종의 복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사형된 여섯 신하들. 박팽년 · 성삼문 · 유성원 · 유응부 · 이개 · 하위지를 이른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도 사형되었으나 생육신 중 한 사람인 추강 남효온의 《육신전》과 조선 후기 송시열의 《육신사기六臣詞記》등의 영향으로 사육신에서 빠졌다. 이들은 모두 무덤이 없으나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 근처를 '사육신묘死六臣墓'라고 부르는 까닭은 정조 6년(1782)에 그곳에 '육신묘비六臣墓碑'를 세웠기 때문이다.

 

생육신生六臣

사육신에 대칭하여 세조 밑에서 벼슬하지 않고 단종에게 절의를 지킨 여섯 신하들. 곧 김시습 · 원호 · 이맹전 · 조려 · 성담수 · 남효온을 이른다. 이들은 세조 즉위 후 관직을 그만두거나 아예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세조의 즉위를 부도덕한 찬탈행위로 규정하고 비난하며 지내다 죽었다. 중종반정 후 사림파가 등장해 사육신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나오면서 이들의 절의 또한 새롭게 조명되었다.

 

이시애李施愛 ?~1467

함북 길주의 토호. 전통적으로 북도北道의 수령은 지방 토호가 임명되었는데, 세조가 중앙에서 수령을 파견하고 호패제도를 강화하는 등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자 아우 이시함과 지방세력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기세를 떨쳤으나 귀성군 준과 남이 등이 이끄는 토벌대에게 패배한 후 부하들에게 살해되었다.

 

홍윤성洪允成 1425~1475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 등을 역임하다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에 가담해 정난공신이 되었다. 이후 예조판서, 우의정 등을 지내면서 공신의 직위를 남용해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예종 즉위 후 좌의정과 영의정을 역임했다.

 

남이南怡 1441~1468

의산위宜山尉 남휘南暉의 손자로서 태종의 외증손이다. 이시애의 난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 1등에 책봉되었고, 세조의 총애를 받아 27세의 나이에 병조판서가 되자 세자인 예종이 그를 꺼렸다. 예종 즉위년에 유자광의 모함으로 강순康純 등과 함께 사형당했다.

 

차  례

 

선비정신의 부활을 꿈꾸며……

1권 주요 등장인물

 

01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정도전과 이성계, 역사를 바꾼 만남

공민왕 시해사건과 명 사신 살해사건

천민마을에서 싹튼 혁명사상

정도전의 승부수

 

02 낡은 세력의 몰락

폐가입진의 논리

최영의 최후

조민수를 제거하라

토지문서를 불사르다

 

03 고려를 구하려는 마지막 몸부림

이성계를 제거하라

동지에서 정적으로

 

04 새 왕조의 개창

이성계는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 삼부자의 최후

고려의 마지막 충신들

 

05 부서진 제국의 꿈

개국공신들의 회맹

사병을 혁파하라

정도전의 위기

중원의 황제를 꿈꾸다

제1차 왕자의 난과 정도전의 죽음

 

06 백주에 벌어진 왕자들의 시가전

갈리는 개국공신들의 운명

형제의 서로 다른 야심

제2차 왕자의 난

개혁은 사라지고……

 

07 피도 눈물도 없는 숙청의 나날

태종 부부의 동상이몽

태종의 양위 소동

민씨 집안의 비극

사사된 민씨 형제

남은 두 형제마저……

대궐 담을 넘은 세자의 풍류행각

장인은 사사되고 장모는 노비가 되다

 

08 태평성대의 그늘

악법도 법이다?

태종의 최대 치적은 '세종'

조선의 르네상스

 

09 요절한 성군 문종과 비극의 소년왕 단종

병약한 형과 강성한 동생들

재상들의 섭정

풍운아 한명회, 수양대군을 만나다

북경으로 간 수양대군

명분 없는 쿠데타와 살생부

피의 대가

 

10 선비가 사라진 공신들의 나라

바람 앞의 촛불

상왕 복위 계획

영월을 적신 슬픈 노랫소리

자기 정당화를 위한 신화들

끝없는 반란과 옥사

 

01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왕이 말했다.

"내가 내일 창릉昌陵에 배알하고 거짓으로 주정을 부려

홍륜의 무리를 죽여서 입을 막겠다. 너도 이 계획을 알고 있으니,

또한 마땅히 죽음을 면하지 못할 줄 알아라."

만생이 두려워하여 이발 밤에 홍륜, 권진, 홍관, 한안, 노선 등과 모의하고

왕이 술에 몹시 취한 것을 틈타 칼로 찌르고는 부르짖었다.

"적이 밖에서 들어왔다."

_《고려사절요》'공민왕 23년 6월'조

 

▲ 공민왕  충숙왕의 둘째아들로, 원나라에 의해 충정왕이 폐위된 후 왕위에 올랐다. 원나라가 쇠퇴하자 원나라 배척운동을 일으키고, 원에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1365년 부인인 노국대장공주가 죽자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결국 홍륜 · 최만생 등에게 살해되었다. 그림에 뛰어나 고려의 대표적 화가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며 글씨에도 능하였다.

▲ 도담 삼봉  정도전은 단양 도담 삼봉 중앙봉에 정자를 짓고 이따금 찾아와서 경치를 구경하고 풍월을 읊었다고 한다.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한 것도 도담 삼봉에 연유한 것이다.

▲ 나옹대사와 무학대사  고려말의 고승이었던 나옹대사(위)와 제자인 무학대사의 모습. 특히 무학대사는 1392년 조선 개국 후 왕사가 되어 조선의 도읍을 정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02

낡은 세력의 몰락

 

조민수는 어찌할 줄 모르고 단기單騎로

태조(이성계)에게 나아가 눈물을 흘리면서

공이 가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고 말했다.

_《고려사절요》

 

공양왕 2년(1390) 9월

기존의 모든 토지문서[公私田籍]를

도성 한복판에 쌓은 후 불을 질렀다.

그 불이 여러 날 동안 탔다.

_《고려사》'석화'조

▲ 위화도  압록강의 하중도河中島로 의주 하류 쪽에서 2km, 신의주에서 상류 쪽 2km 지점에 위치한다. 고려시대에는 대마도大麻島라 하여 국방상 요지였다. 우왕 14년(1388) 5월 요동정벌에 나선 우군도통사 이성계가 이곳에서 회군을 단행함으로써 조선 개국의 계기를 마련했다.

▲ 최영

▲ 최영의 무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신념을 지키며 평생 청렴하게 살았던 최영의 무덤에는 그가 죽기전에 남긴 말처럼 조선왕조 500년간 정말로 풀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 개성 만월대  고려의 궁전터. 중앙에 회경전會慶殿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궁성 동쪽 벽까지 약 135m, 서쪽 벽까지 약 230m이며, 남쪽 벽의 성문인 승평문昇平門까지 약 250m이다. 1361년 모두 불탄 후에 폐허로 남아 있다.

▲ 가을 들판  무신란 이후 고려의 토지제도는 권문세족들의 농장확대와 사원전寺院田의 팽창으로 문란하기 이를데 없었다. 위화도회군 이후 정권을 장악한 이성계는 공양왕 2년(1390)에 종래의 공사전적을 모두 불살라버리고 이듬해 새로운 전제의 기준이 되는 과전법을 공포, 새 왕조 개창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03

고려를 구하려는 마지막 몸부림

 

회군한 뒤에……

왕씨를 세우려는 의논을 저해하여

마침내 창昌을 세워서 왕씨를 부흥하지 못하게 한 자가 있으며,

신우辛禑를 맞아다가 길이 왕씨를 끊어버리려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이는 난적의 무리로서 왕법王法에 용납되지 못할 바입니다.

_《삼봉집》'공양왕에게 올리는 상소'

▲ 조민수의 묘  이성계 일파의 전제개혁을 반대하여 창녕에 유배된 조민수는 창왕의 생일에 특사로 풀려났으나, 우왕의 혈통을 에워싼 논쟁으로 이성계 일파에 대항하다가 서인으로 강등되고, 이듬해 다시 창녕으로 유배, 배소에서 죽었다.

▲ 무열사  조선 정조 21년(1797)에 나주 유림의 발의와 전국 각 향교의 도움으로 건립된 사당으로 통합 삼한 일등공신 무열공 배현경(?~936), 금헌 배정지(1259~1322), 조선개국 일등공신 정절공 배극렴(1335~1401)의 삼위를 모셨다. 전주 나주 소재.

▲ 선죽교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하고 오다가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 등에 의해 숨진 곳. 처음 1216년 이전에 다리를 만들었을 때는 '선지교'라 불렀다가 사건 후 주위에 충절을 뜻하는 대나무가 돋아 '선죽교'라고 불리게 되었다.

 

04

새 왕조의 개창

 

"일이 커지기 전에 미리 막는 것이 《춘추春秋》의 의리입니다.

신 등이 지난번에 공양군 삼부자에게 천주天誅를 가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를 얻지 못하였으니 낭패를 견딜 수 없습니다.

…… 즉시 유사로 하여금 위 사람들과 그 처자, 동생, 조카까지

섬으로 옮겨 사단을 미연에 방비한다면 종사에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_《태조실록》3년 2월 21일

▲ 이성계

▲ 공양왕릉  신종神宗의 7대손으로 이성계에 의해 창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공양왕은 과단성이 없는 성품으로 이성계에게 완전히 실권을 빼앗겼다가, 정몽주가 살해된 후 덕이 없고 어리석다는 이유로 폐위당하였다. 이로써 고려는 34대 475년 만에 망하였다. 공양왕은 폐위된 뒤 원주로 추방되어 공양군恭讓君으로 강등되었다가 2년 뒤에 삼척三陟에서 살해되었다.

▲ 선원록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또는 '선원보략璿源譜略'이라고도 불리는 왕실의 족보.

▲ 공주 동학사 삼은각  원래 이곳은 고려의 유신遺臣 길재가 동학사의 승려 영월影月 · 운선雲禪과 함께 단을 쌓고 고려의 태조, 충정왕, 공민왕의 초혼제를 지낸 곳이다. 그러다 고려의 유신 유방택柳芳澤이 정종 1년(1399)에 이곳에서 정몽주와 이색의 초혼제를 지내고, 세종 3년(1421)에 유방택柳芳澤의 아들 유백순柳伯淳이 길재를 추가로 모셔 삼은각이라 불리게 되었다.

▲ 정선 칠현사  전오륜全五倫, 김충한金仲漢, 고천우高天祐, 이수생李遂生, 신안申晏, 변귀수邊貴壽, 김위金瑋 등 고려의 일곱 충신이 은거하던 거칠현동 어귀에는 칠현을 기리는 비석과 사당 칠현사七賢祠가 세워져 있다.

 

05

부서진 제국의 꿈

 

태상왕이 종이와 붓을 가져다 조준에게 주며

이방번의 이름을 쓰게 하니, 준이 땅에 엎드려 쓰지 아니하였다.

이리하여, 태상왕이 마침내 강씨의 어린 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삼으니,

조준 등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_《태종실록》5년 6월 27일. '영의정부사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준의 졸기'

 

소근 등이 꾸짖어 칼을 버리게 하니,

도전이 칼을 던지고 문 밖으로 나와서 말하였다.

"청하건대 죽이지 마시오. 한마디 말하고 죽겠습니다."

소근 등이 끌어내어 정안군의 말 앞으로가니, 도전이 말하였다.

"예전에 공이 이미 나를 살렸으니 지금도 또한 살려주소서."

_《태조실록》7년 8월 28일

▲ 남재왕지  동생 남은과 함께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남재는 동생과는 달리 평탄하게 영의정까지 지냈다. 이 문서는 태종 15년(1415) 남재에게 '수문전대제학세자시修文殿大提學世子侍'라는 관직을 제수하는 국왕의 명령서로서, 원본은 아니고 나중에 베껴 쓴 것이다.

▲ 개국원종공신녹권  태조 6년(1397) 10월 왕명으로 내린 문서로, 사재부령司宰副令 심지백에게 개국원종공신 3등에 봉하고 내린 녹권이다. 공신은 정공신과 원종공신으로 구분되고 정공신은 1등에서 4등, 원종공신은 1등에서 3등으로 나뉘는데 조선 초기, 정공신에게는 교서와 녹권을 함께 주었으나 원종공신에게는 녹권만 주었다.

▲ 주원장  한반도가 고려왕조가 무너지고 조선왕조가 새로 들어서는 과도기에 있을 때 중국 대륙 역시 이민족이 세운 원왕조가 쇠퇴하고 한족이 세운 명 왕조가 세력을 키워가는 과도기에 있었다. 그림은 빈농 출신으로 각지의 군웅을 굴복시키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모습이다.

▲ 정도전

 

06

백주에 벌어진 왕자들의 시가전

 

방간이 선죽교에서 가조가可祚街에 이르러 군사를 멈추고, 양군이 교전하였다.

방간의 보졸 40여 인은 마정동馬井洞 안에 서고,

기병 20여 인은 전목 동구典牧洞口에서 나왔다.

정안공(방원)의 휘하 목인해睦仁海가 얼굴에 화살을 맞고,

김법생金法生이 화살에 맞아 즉사하였다.

방간의 군사가 다투어 이숙번을 쏘았다.

이숙번이 10여 살을 쏘았으나 모두 맞지 않았다.

양군이 서로 대치하였다.

_《정종실록》2년 1월 28일

▲ 진양부원군 신도비  신도비는 임금이나 고관 등의 업적을 기록하여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이다. 경남 진주시에 소재한 이 비는 하륜의 아버지인 하윤린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이 비를 세운 이후 왕실주변의 권력층을 중심으로 신도비를 세우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게 된다.

▲ 양촌삼대부조묘  고려말, 선초의 학자로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사병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확립에 큰 공을 세웠던 권근(1352~1409)의 묘역. 권근의 묘역에는 아들 권제와 손자 권람의 묘도 함께 있는데 권제는 세종대에 집현전 부제학, 대사헌, 한성부윤, 경기도 관찰사, 이조판서 등을 지냈고 정인지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권람은 계유정란의 일등공신으로 좌의정까지 지냈다.

 

07

피도 눈물도 없는 숙청의 나날

 

집안과 나라 다스리는 일을 논한다면

궁궐 가까이에 외척을 들이는 것은 임금의 소견이 좁은 탓이다.

지금 나라가 평안하여 내외에 걱정할 것이 없지만

외척의 폐단을 잊으면 훗날 다시 발생할 것이다.

_태종이 내린 교지

 

"과연 내가 전일에 말한 바와 같이 그 진상이 오늘날에야 나타났구나.

마땅히 대간大姦을 제거하여야 될 것이니, 이를 잘 살펴 문초하라."

_《세종실록》즉위년 11월 23일

▲ 이거이의 묘  이거이는 조선 왕조 건국에 공이 있어 태조 2년(1393)에 우산기상시에 임명되었고, 그 뒤에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정종 2년(1400)에는 사병제도 혁파에 반대하다가 계림부윤으로 좌천되었으나 제1차 왕자의 난 직후에 공신이 되었고, 이후에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올랐다.

▲ 태종실록

▲ 숭례문 현판  양녕대군의 글씨. 전설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이 현판이 없어져서 다른 현판을 달려고 했으나 아무리 애써도 현판이 붙어 있지 않아 한동안 남대문에는 현판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광해군 때 청파의 배다리란 곳에 있는 웅덩이에서 서기瑞氣가 올라와 물을 퍼내니 밑바닥에 양녕대군이 친히 쓴 숭례문의 현판이 나왔고 이 현판을 남대문에 달았더니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 태실  조선 왕실은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태실도감을 설치하고 명당을 물색하여 태를 묻었다. 경북 성주군의 이 태실은 세종대왕이 적서 18왕자와 단종의 태를 안장한 곳이다.

▲ 창덕궁 인정전  인정전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로 조정의 각종 의식과 외국 사신 접견 장소로 사용되었고,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릴 때에도 이용되었다. 또한 왕세자나 세자빈을 결정하는 등 국가의 커다란 경사가 있을 때에도 왕은 이곳에서 신하들의 축하를 받았다.

▲ 심온의 사당  심온은 세종의 장인으로 1418년 태종이 선위하여 세종이 즉위하자 영의정으로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 이때 심온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걱정한 태종과 좌의정 박은의 무고로 귀국 후 사사되었다. 사진은 경기도 소재한 심온의 사당이다.

 

08

태평성대의 그늘

 

"지금 임금이 착하지 못하여서 이와 같은 수령을 임용했다."

_《세종실록》6년 4월 4일

 

"간원들이 이선을 서열이라 하여 과거의 응시를 정지시키라고 주청하였다.

임금의 자손을 서얼이라 일컬어 벼슬길을 닫아 막으려고 하였으니,

그들의 정상과 사유를 추국推鞠하여 아뢰어라."

_《세종실록》14년 4월 4일

▲ 낙천정  태종이 왕위를 물려준 후 수시로 머물던 이궁離宮. 좌의정인 박은이 주역계사周易鷄捨의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를 따서 낙천정이라 이름 붙였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 소재.

▲ 용비어천가

▲ 자격루

▲ 측우기

▲ 앙부일구

▲ 휴대용 앙부일구

▲ 혼천의

태종 최대의 치적은 '세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세종의 업적은 두드러진다. 세종은 유교 정치의 기틀을 확립했을 뿐 아니라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조선 왕조의 기반을 마련했고 한글 창제를 비롯, 조선 시대 문화의 융성에 이바지하고 과학 기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09

요절한 성군 문종과 비극의 소년왕 단종

 

문종이 승하할 때 세자는 어리고 종실은 강성한 것을 염려하여

황보인皇甫仁 · 김종서에게 특히 명했다. "유명遺命을 받아 어린 임금을 보필하라."

_《야언별집

 

"두루 옛날의 일을 보건대, 국가에 어린 임금이 있으면

반드시 옳지 못한 사람이 정권을 잡았고,

옳지 못한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여러 사특한 무리가 그림자처럼 붙어서 불우不虞한 화가 항상 일어났습니다.

그때 충의로운 신하가 있어서 일어나 반정反正을 한 뒤에야

그 어려움이 곧 형통해지니, 이는 천도天道의 자연스러움이라고 하겠습니다."

_《단종실록》1년 3월 21일

《해동명적》에 실려 있는 문종의 글씨

 

10

선비가 사라진 공신들의 나라

 

"사기, 즉 《세조실록》에 말하기를

'노산이 영월에 있다가 금성대군의 옥사를 듣고 자진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당시의 여우나 쥐 같은 놈들의 간악하고 아첨하는 불장난이다.

도대체 훗날 실록을 편찬한 자들은 모두 당시에 세조를 좇던 무리들 아닌가."

_《음애일기

 

▲ 경복궁 전경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 경복궁 수정전  경회루 남쪽에 자리한 수정전은 국왕이 일상적으로 기거하는 곳, 혹은 편전 등의 용도로 쓰였던 건물이다. 세종 때는 집현전을 설치하여 세종 28년(1446) 9월 이곳에서 훈민정음이 창제되기도 했다.

▲ 오공신회맹축  세조 2년(1456)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한 후 세조는 민심을 다잡기 위해 개국 · 정사 · 좌명 · 정난 · 좌익공신 등 개국 이래 모든 공신들을 소집하여 회맹고유문을 작성하고 양녕 · 효령 · 임영 · 영응대군 등 종친을 비롯, 정인지 · 신숙주 · 권람 등 모두 157명의 서명을 받아 오공신회맹축을 완성했다.

▲ 청령포  영월 8경의 하나로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이 유배되었다. 단종은 동 · 북 · 서쪽이 깊은 물로 막히고 남쪽은 육륙봉의 층암절벽으로 막혀 있는 이곳을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표현한 바 있다.

▲ 자규루(매죽루)  단종이 영월에 유배된 그해 여름에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 일대가 침수되자 단종은 강 건너 영월부의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처소를 옮기고 자규루子規樓에 올라 시를 읊으며 한을 달래다 같은 해 10월 눈을 감았다.

▲ 금성대군의 금성단(단소)  단소는 시신 없는 무덤이나 죽은 자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곳으로 금성단은 숙종 45년(1719)에 설치되었다. 경북 영주 소재.

▲ 호패  지금의 신분증명서와 같은 것이다. 그 기원은 원元나라로 태종 13년(1413)에 처음 전국적으로 시행되어 호적법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목적은 호구戶口를 명백히 하여 민정民丁의 수를 파악하고, 계급을 분명히 하는 한편,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 남이

 

 

posted by 황영찬
2012. 11. 29. 12:46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66 풍수지리(집과 마을)

글, 사진 / 김광언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996

 

082

빛12ㄷ 140

 

빛깔있는 책들 140

 

김광언-------------------------------------------------------------------------

서울대 사대 국어교육과와 문리대 고고인류학과를 거쳐 일본 동경대학 대학원 사회학 연구과(문화인류학 전공)를 졸업했다. 전북대 조교수와 국립민속박물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하대 교수 및 박물관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농기구「정읍 김씨집」「한국의 옛집「한국의 민속놀이」「한국농기구고」(출판문화상 저작상 수상)「한국의 주거민속지」「민속놀이」등이 있다.

 

|차례|

 

앞글

풍수(風水)란 무엇인가

풍수설의 흐름

집터와 마을터 풍수

    전국의 형국

    형국에 따른 비율

    지역적 차이

형국의 뜻과 사람의 생각

    동물형

    물질형

    식물형

    인물형

    문자형

뒷글

참고 문헌

 

▲ 충북 보은 선씨 집 솟을대문채와 조산  조산이 집을 감싸듯 지켜서 있다.

▲ 도선 국사의 화상  선종과 풍수는 수행방법이 비슷하고 직관을 우선하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도선 국사의 풍수설은 신라 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 도선 국사 신도비  현재 전남 영암군 도갑사에 보존되어 있다.

▲ 동대문  도성의 허술한 동쪽을 도우려고 "흥인지문(興仁之門)"의 넉 자를 쓴 현판을 걸었다. 또한 앞에 옹성을 쌓았기 때문에 문이 보이지 않는다.

▲ 광화문 앞의 해태상

▲ 거북 모양의 맷돌  거북 모양으로 깎은 맷돌.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유씨 집.

 

 

 

 

 

 

 

 

 

 

 

 

 

 

 

 

 

 

 

 

 

 

 

 

 

 

 

 

 

 

 

 

 

 

 

 

 

posted by 황영찬
2012. 11. 29. 11:42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65 사진 입문

 

글, 사진 / 홍순태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995

 

082

빛12ㄷ 139

 

빛깔있는 책들 139

 

홍순태-------------------------------------------------------------------------

1934년 서울 태생으로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국전 초대작가이며, 덕성여대, 성신여대, 홍익대 강사, 『사진예술』지 편집주간,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공식 기록사진가, Expo70 한국관 사진담당을 지냈다. 1976년부터 지금까지 개인전과 그룹전을 20여회 가졌으며, 현재 신구전문대학 사진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아메리카』『풍경사진』『현대사진의 조류』『현대 일본사진가』『사진예술론』『티베트』『사진 입문』등이 있다.

 

|차례|

 

카메라의 종류와 선택

렌즈의 종류와 성능

필터의 종류와 성능

필름의 종류와 성능

사진의 창작법

시각 훈련

사진의 구도

채광(lighting)

풍경 사진

인물 사진

현대 사진의 방향

 

▼ 거리 연동계 카메라(range finder camera)

 Nikon RD2

Leica M6

▼ 일안 카메라(single lens reflex camera)

Nikon F4 AF

Leica R4

Nikon E3

Nikon F-801 AF

▼ 중형카메라

Rolleiflex SL 66

Mamiya RB 67

Hasselblad 205 TCC

▼ 특수 카메라 및 대형 카메라

Nikonos-v(수중 카메라)

린호프 마스타테크니카 4×5(대형 카메라)

Fujica GS 617(파노라마 카메라)

Sinar f2 4×5(대형 카메라)

▼ 렌즈의 종류

AI Nikkor 55mm F1.2S

AI Nikkor 28mm F2S

AI Nikkor 20mm F2.8

AI Nikkor 20mm F3.5S

Nikkor 135mm F2.8S

Nikkor 135mm F3.5S

Nikkor ED 180mm F2.8S

Nikkor 200mm F4S

 

 

 

 

 

 

 

 

 

 

 

 

 

 

 

 

 

 

 

 

 

posted by 황영찬
2012. 11. 29. 10:33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64 공병호의 성공제안 기록하는 리더가 되라

 

공병호 지음

2005, 이한출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3270

 

199.1

공446기

 

누구나 기록을 한다.

그러나 기록하는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또 기록하는 행위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왜 기록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라. 그리고 기록하라.

당신의 삶이 변화될 것이다.

- 헤드 헌터 유순신

 

메모 습관은 창의력 개발에 더해 성공으로 이어지는 효과적인 도구이다.

내가 어렵던 시절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하던 습관이 오늘의 해리코리아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10년 후 혹은 20년 후에 한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성공 리더로서의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주)해리코리아 대표 김철윤

 

기록하라! 인류 역사상 기록하지 않은 위인이나 천재는 없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무려 3만 7000여 장의 기록들을 남겼다.

기록하는 것과 기록하지 않는 것이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소함은 위대함을 낳는 법이다.

이 책은 우리가 왜 기록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기록은 분명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손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다.

-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김세형

 

기록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사소해 보인다.

하지만 그 사소한 차이는 인생의 명암을 가르기도 한다.

- 한국경제신문 이사 이계민

 

"습관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일이든지 하게 만든다." - 도스토예프스키

 

머릿속을 스쳐가는 아이디어들이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는 생각하지 말고 즉시 기록하라.

이와 같은 즉시성이 반복됨으로 인해 우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습관을, 그것도 인생에서 가장 바람직한 습관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기록의 습관이 빚어낸 축적된 기록물들로 아이디어 뱅크를 만들어라. 아이디어가 축적되어가면 갈수록 우리의 삶과 미래가 확연히 달라짐을 볼 수 있고, 자기 분야에 강점을 가져다주며, 자신이 전념하고 싶은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는 버팀목이 된다.

기록하라는 평범한 제안은 우리가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공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어 줄 것이다.

성공을 향한 우리의 계획에서 그동안 찾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어쩌면 우리가 기록해 두었던 기록물들 가운데 묻혀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하라!

 

공병호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1960년),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라이스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를 받았다.그는 7년간의 연구원 생활, 3년간의 연구원 경영자 생활, 1년 7개월간의 기업체 CEO 생활 그리고 지금은 2001년 10월 이후, <공병호경영연구소>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주요 경력은 국토개발연구원 책임 연구원, 일본 나고야 대학 객원 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자유기업센터와 자유기업원의 초대 소장 및 원장을 지냈으며 (주) 인티즌과 코아정보시스템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공병호경영연구소(www.gong.co.kr) 소장을 맡고 있다.

치밀한 분석력과 명쾌한 논리로 경제 흐름을 진단하고, 성공적인 삶의 전략을 전파해 온 그는 이 책으로 모두 56 권의 저서와 역서를 출간했으며, 연간 300회 이상의 강연, 공병호의 '자기경영 Academy'와 'Success School' 경영을 통해 '공병호'란 개인 브랜드를 구축해 왔다. 이와 함께 다양한 방송 활동과 경영자문을 펼치며 국내 최고의 자기계발 및 변화관리 전문가이자 경제경영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홈페이지 : 공병호 경영연구소 www.gong.co.kr

다음카페 : cafe.daum.net/gonglab

SERI 카페 : www.seri.org/forum/gong

스카이벤처 공사모 : http://club.skyventure.co.kr/gong/

이메일 : gong@gong.co.kr

 

차례

 

프롤로그 ▒ 학습하고 있는가?

 

제1부 ▒ 기록의 습관, 모든 것이 기록이다

기록의 확장은 성장하게 한다

    습관의 힘

    기록하는 습관은 긍정적 호기심을 낳는다

    기록은 변화의 시작이다

    '완벽함'과 '기록'은 어울리지 않는다

    기록은 훌륭한 마케팅이다

기록하는 리더가 되라

    손에 잡힌 시간, 물에 흘린 시간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하루의 기록은 자기 반성과 변화를 불러온다

    자산의 기록은 자기경영의 도구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를 기록하라

    기록은 목표를 성취시킨다

주위의 도구를 활용하자

    제대로 된 도구를 마련하라

    두뇌 속에 깊이 각인 시켜라

    노트 VS 컴퓨터

    보이스 레코더를 활용하라

    온라인에 익숙해져라

 

제2부 ▒ 생각의 조각모음

① 작은 기록의 완성 - 메모

    메모의 철학을 가져라

    지속적으로 정보를 입력하라

    관찰력의 수단으로 사용하라

    마음을 닦아 내는 그릇으로

    칭찬과 독려의 수단으로 활용하라

    배움에 개방시켜 모드를 변환하라

    뚜렷한 목적 위에 구축하라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활용하라

② 메모는 타이밍이다

    간단명료하게 하라

    즉시 메모하라

    버려진 시간에 주목하라

    스케치로 메모하라

    사실(fact)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리뷰'하는 시간을 가져라

 

에필로그 ▒ 기록해야 성장한다

 

25년 전 필자가 공부기술에 처음 관심을 가졌을 때에는

나이 어린 사람은 아무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든 사람은 수용능력이 저하되어 공부하기가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나의 관찰은 이것과 일치하지 않았다.

학습능력도 근육과 마찬가지로 훈련하여

강화시킬 수 있음을 경험했던 것이다.

 

 

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데이트 상대를 구하거나 잠자리 파트너를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글쓰기는 마술과 같다.

창조적인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생명수와도 같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것 마셔도 좋다.

- 스티븐 킹 -

 

위대함이란 자신과 다른 특별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지극히 기초적이고,

단순하지만 결정적인 몇 가지 습관을 반복해서 익힘으로써

위대함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 같은 기본적인 습관들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쉼 없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메모하는 습관일 것이다.

 

메모철학

 

첫째, 메모는 효과적인 학습법 가운데 하나이다.

둘째, 메모는 두뇌로 하여금 계속해서 기회를 찾게 한다.

셋째, 메모는 생활의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넷째, 메모는 대단한 고객감동의 수단이다.

다섯째, 메모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열쇠이다.

여섯째, 메모는 호기심을 키워준다.

일곱째, 메모는 훌륭한 보조 기억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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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2. 11. 29. 09:35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63 재미있는 반야심경

 

대안스님 지음

2004, 혜성출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1900

 

223.53

대6519반

 

대안 스님

1985년 통도사에서 성파 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통도사 승가대학을 졸업했다.

통도사 서운암에서 쪽빛 염색과 도자기 작업을 시작해 2000년 동의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문학세계에 시가, 현대시조에 시조가 당선되어 문학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부산 금화사 주지며 선원에서 정진중이다.

주요 저서로 『알기 쉬운 불교강좌』, 『전통 복식에 나타난 청색에 관한 연구』, 『전통염색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차례|

 

제1장 반야심경에 대하여

제1절 반야심경의 의의

제2절 반야심경의 성립과 구조

제3절 반야심경의 사상

제4절 반야부의 경전들

 

제2장 반야심경 해석과 강의

제1절 원문과 해석

제2절 반야심경 강의

- 1. 제목

- 2. 번역자

- 3. 부처님을 찬탄하다

- 4. 색은 곧 공이다

- 5. 마음은 불생불멸이다

- 6. 십이처, 십팔계가 본래 없다

- 7. 십이인연이 본래 없다

- 8. 사성제, 팔정도도 본래없다

- 9. 보살들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셨다

- 10. 꿈을 깨고 열반에 들자

- 11.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해서 깨달았다

- 12. 반야바라밀다는 최상의 주문이다

- 13. 다함께 성불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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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반야심경 자전

 

摩訶般若婆羅蜜多心經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婆羅蜜多心經                                    큰 지혜로써 부처님 세계에 이르

하반야마라밀다심경                                    게 하는 액심되는 진리의 말씀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님께서 깊은 반야바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라밀다를 행할 때,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오온이 모두 공한 것을 훤히 비추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어 보시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으

                                                                   로부터 건너게 하시옵니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사리자야, 색은 공과 다르지 않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니,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

색즉시공 공즉시색

 

受想行識 亦復如是                                        수상행식도 이와 같느니라.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是諸法空相                                        사리자야 이 모든 법의 공한 모

사리자 시제법공상                                        습은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

                                                                  도 줄지도 않느니라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이런 연고로 공 가운데에는 색도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없고 수상행식도 없으며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안이비설신의도 없으며, 색성향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미촉법도 없으며,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안계 내지 의식계도 없으며,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無無明 亦無無明盡                                     무명이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무무명 역무무명진                                     없으며,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내지 노사가 없고 또한 노사가 다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함도 없으며,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고집멸도가 없고 지혜라 할 것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없고 또한 지혜 얻음도 없느니라.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얻은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들은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罜碍                       반야바라밀다를 의지셨느니라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그런 연고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無罜碍故 無有恐怖                                   걸림이 없는 연고로 두려움도 없

무가애고 무유공포                                   느니라

 

遠離顚到夢想 究竟涅槃                             전도몽상을 멀리 여의고 구경에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는 열반에 들어가야 하느니라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셨기

                                                              때문에

 

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위없이 큰 깨달음을 이루셨느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니라

 

故知 般若波羅蜜多                                   그러므로 알라, 반야바라밀다는

고지 반야바라밀다

 

是大神呪 是大明呪                                   크게 신비한 주문이며 비교할 수 없는

시대신주 시대명주                                   주문이며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위없는 주문이며 비교할 수 없는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등급의 주문이며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능히 일체 고통을 없애주시고진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실하여 헛됨이 없느니라.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을 설해 가로대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                        『가자가자, 저 언덕에 가자, 저 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                       덕에 다함께 가자,

 

揭諦 菩提 娑婆訶                                     깨달음을 구경에는 원만히 성취

아제 모지 사바하』                                   하자』(3번)

 

 

 

 

 

 

 

posted by 황영찬
2012. 11. 28. 11:11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62 한국 춘란 가꾸기

 

글, 사진 / 강법선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994

 

082

빛12ㄷ 138

 

빛깔있는 책들 138

 

강법선-------------------------------------------------------------------------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 오현고등학교를 졸업, 제주대학교와 인하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제1회 공보처 선정 우수잡지상 수상, '92년 공보처 장관 표창상을 받았으며 현재 '난과 생활사' 편집 발행인, 한국난문화연구원 원장, 시민 교양 문화센터 강사로 있다.

 

|차례|

 

한국 춘란이란

한국 춘란의 분포 및 산지

한국 춘란의 형태

화예품(花藝品)이란

엽예품(葉藝品)이란

엽예품(葉藝品)의 배양 관리

예(藝)의 의미

화아분화(花芽分化)

난의 감상 요령

산채(山採)

춘란 구입 요령

춘란 가꾸는 요령

맺음말

 

 

▲ 꽃의 부분 명칭

▲ 잎의 형태에 따른 분류

 

▲ 뿌리와 벌브와 잎

▲ 한국 춘란 소심 수미소(秀美素)

▲ 한국 춘란 주금화 월산(月山)

▲ 한국 춘란 자화 묵향(墨香)

▲ 한국 춘란 복색화 달무리

▲ 그림에 나타난 난 감상  겸재 정선 작품.

 

 

 

 

 

 

 

 

 

 

 

posted by 황영찬
2012. 11. 27. 14:44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61-2 야생동물

 

▲ 일본 규슈 날다람쥐(Petarista leucogenys leucogenys)

▲ 일본산 하늘다람쥐(Pteromys momonga)

▲ 멧밭쥐(Micromys minutus)

▲ 흰넓적다리붉은쥐(Apodemus peninsulae peninsuloe)

▲ 곰쥐(애굽쥐 : Rattus rattus)

▲ 집쥐(시궁쥐 : Rattus norvegicus)와 갓나온 새끼들

▲ 생쥐(Mus musculus)

▲ 불곰(Ursus arctos)

▲ 족제비(남족제비 : Mustela sibirica coreana)

▲ 산달(누른돈 : Martes melampus)

▲ 검은담비(잘 : Martes zibellina hamgyenensis)

▲ 오소리(Meles meles melanogenys)

▲ 삵(살쾡이 : Felis bengalensis euptilura)

▲ 멧돼지(Sus scrofa)

▲ 사향노루(Moschus moschife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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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2. 11. 27. 09:41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61-1 야생동물

 

▲ 검은토끼박쥐(Plecotus auritus)의 소수 집단(위)과 얼굴 모습(아래)

▲ 집박쥐(Pipistrellus abramus)

▲ 큰집박쥐(Pipistrellus coreensis)의 박제 표본

▲ 멧박쥐(Nyctalus lasiopterus aviator)

▲ 북방애기박쥐 (Vespertilio murinus murinus)

▲ 안주애기박쥐 (Vespertilio superans)

▲ 생박쥐 (작은 졸망박쥐 : Eptesicus nilssonii parvus)

▲ 문둥이박쥐 (Eptesicus serotinus)

▲ 작은관코박쥐 (Murina aurata ussurensis)

▲ 금강산관코박쥐 (Murina leucogaster)

▲ 긴날개박쥐 (Miniopterus schreibersii fuliginosus)

▲ 큰귀박쥐속 (Tadarida sp.)의 한 종

▲ 우는토끼(Ochotona alpina)

▲ 멧토끼(Lepus sinesis)

▲ 청설모(Sciurus vulgaris)

▲  다람쥐(Tamias sibiricus sibiri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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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21. 13:33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61 야생 동물

 

글, 사진 / 윤명희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993

 

082

빛12ㄷ 137

 

빛깔있는 책들 137

 

윤명희-------------------------------------------------------------------------

1954년 부산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과학교육과(생물 전공)와 경희대학교 대학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규슈(九州)대학에서 동물학(특히 바쥐류의 계통분류학)을 전공하여 농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85년부터 경성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그동안 발표된 논문은 19편, 번역서로서 「박쥐의 神秘」(저자 內田照章)가 있다.

 

|차례|

 

머리말

포유류란 무엇인가

식충목

    고슴도치과, 땃쥐과 두더지과

박쥐목

    관박쥐과, 애기박쥐과, 큰귀박쥐과

토끼목

    우는토끼과, 토끼과

쥐목

    다람쥐과, 비단털쥐과, 쥐과, 뛰는쥐과

식육목

    개과, 곰과, 족제비과, 고양이과

소목

    멧돼지과, 사향노루과, 사슴과, 소과

참고 문헌

 

▲ 희시무르고슴도치(Erinaceus europaeus amurensis)

▲ 쇠뒤쥐(Sorex gracillimus)

▲ 갯첨서(Neomys fodiens)

▲ 땃쥐(Crocidura suaveolens)

▲ 제주땃쥐(Crocidura dsinezumi)

▲ 두더쥐(Talpa wogura coreana)

▲ 관박쥐(Rhinolophus ferrumequinum korai) 위는 새끼들이 모여 있는 포육 집단이고 그 아래는 관박쥐 성체가 동면하는 모습이다.

▲ 윗수염박쥐(Myotis mystacinus)

▲ 흰배윗수염박쥐(Myotis nattereri bombinus)

▲ 긴꼬리윗수염박쥐(Myotis frater)

▲ 오렌지윗수염박쥐(붉은박쥐 : Myotis formosus tsuensis)

▲ 물윗수염박쥐(우수리박쥐 : Myotis daubentonii)

▲ 큰발윗수염박쥐(Myotis macrodacty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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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21. 11:51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60 소를 찾아가는  열가지 이야기

 

틱낫한 지음_ 최수민 옮김_

2000, 나무심는사람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9393

 

220.4

틱1925소

 

작은 새는 빠르게 자랐다. 숲 속의 모든 어미 새들이 날마다 열매와 씨앗을 물어다 주었기 때문에 늘 먹을 것이 넉넉했다. 오래지 않아 그 구멍은 너무 비좁아졌다. 새는 더 넓은 집을 마련해야 했다. 스스로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운 새는 잔가지와 마른 풀잎을 물어다가 집을 지었다.

 

틱낫한이 들려주는 깨달음의 우화

 

무사는 욕망을 비추는 돋보기를 꺼냈다. 세상에 나가 있던 동안 그는 다른 사람들의 참모습을 들여다보는 데만 그 돋보기를 이용했을 뿐, 자신의 모습은 한 번도 비춰보지 않았던 것이다. 돋보기를 개울의 수면에 들이댄 순간, 무사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무사는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수면에 비친 것은 두 눈이 마치 시커먼 우물 속 같고 기다란 송곳니가 넓적한 턱 아래로 휘어져 내린 마귀였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틱낫한의 우화들은 마치 마음을 모아 호흡을 바라볼 때 찾아오는 평화와도 같다. 살아가는 것의 신성함을 노래하는 이 10편의 이야기는 우리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놀랍도록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 이스트웨스트 매거진

 

불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영원으로 날아간 하얀 새, 한순간의 탐욕으로 나락에 떨어져 고행의 나날을 살아가는 스님 그리고 두 몸으로 나뉘어 달과 지구에 살게 된 여인….

불교의 십우도十牛圖가 잃어버린 소로 상징되는 자아를 찾는 과정이듯이 틱낫한의 《소를 찾아가는 열가지 이야기》는 진리를  찾아가는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깨달음의 우화들이다. 현실과 마법이 뒤섞여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 이야기들은 대부분 베트남을 무대로 한 틱낫한 스님의 창작 우화들이며 중국의 불교 설화를 재구성한 것도 있다. 사랑과 자비라는 불교의 화두를 바탕에 깔고 있는 이 이야기들은 일상 속의 신비와 만물에 깃든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최고의 보석들이다.

 

틱낫Thich Nhat Hanh은 승려이자 시인이며 평화운동가다. 베트남에서 태어나 열여섯 살에 수도승이 된 스님은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던 무렵 불교평화대표단 의장으로 파리평화회의를 이끌었으며 평생 동안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화해를 위해 일해왔다. 이러한 노력이 인정을 받아 1967년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평화를 향한 굽히지 않는 의지와 솔직한 표현으로 인해 베트남 정부는 그의 입국을 금지했고, 이후 그는 프랑스로 망명하여 보르도 지방에 명상공동체 '플럼빌리지'를 세우고 그곳에서 설법을 하고 글을 쓰며 난민들과 구도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이 책을 옮긴 최수민은 전문 번역가이다.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일했으며, 옮긴 책으로는 틱낫한의 《화》《힘》을 비롯해 스티븐 킹의 《캐슬록의 비밀》《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앨리스 워커의 《은밀한 기쁨을 간직하며》외 다수가 있다.

 

네가 처음 나에게 왔던 날을 기억하니?

다섯 개의 강을 건너 넌 내게로 왔지.

어느 날 내가 보이지 않거든 가만히 미소 지으며 나를 찾아봐.

네 주위 모든 것들 속에 내가 있을 거야.

너는 알게 될 거야, 나는 네게 온 적도 없고

너를 떠나지도 않는다는 것을.

네가 모를 때에도 늘 네 곁에 있다는 것을.

 

차례

 

一 하얀 새

二 무사와 돋보기

三 쿠룽산 소나무

四 들꽃 한 다발

五 향산의 보살

六 흐려진 눈동자

七 달에 닿은 대나무 

八 조약돌 아이

九 작약꽃

十 분홍 물고기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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