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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27 2013-140 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 1
2013. 12. 27. 09:24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40 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

 

장 베르쿠테 지음 / 송숙자 옮김 / 허승일 감수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7204

 

082

시156ㅅ 2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

 

모래 속에 묻혀 인류의 기억 속에서 증발되어

버린 세계가 새롭게 떠올라 후세대를 향해 거대한

물음표와 감탄사를 동시에 안겨 주었다.

피라미드, 신전, 조상彫像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 돌의

문명, 돌의 세계를 해독하기 위해 수많은

모험가와 학자들이 눈과 연필과 흙손으로

도전해 왔고, 신비에 싸여 있던 상형문자가 비로소

베일을 벗고 말하기 시작했다.

잊혀졌던 고대 이집트 문명으로 하여금 입을 열게 한

가장 큰 공로자는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

 

1799년, 알렉산드리아

인근 로제타, 프랑스 육군 장교가 흑색 현무암 비석을

발견하였다. 비석에는 같은 내용의 문장이 세 가지

문자로 새겨져 있었다.

나폴레옹을 수행하던 학자들은 이 비석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로제타 스톤이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례

 

제1장 사라진 이집트, 파라오 시대

제2장 고대의 여행자

제3장 나일강을 따라 몰려오는 십자군, 수도사, 관광객

제4장 탐험가와 도굴꾼

제5장 학자의 시대

제6장 이집트를 구하려는 고고학자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찾아보기

 

장 베르쿠테 Jean Vercoutter

이집트에서 아스완댐 공사 준비가 시작되자, 수몰지역에 위치한 고대 유적의 이전 · 보존 공사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유적관리소의 책임자였던 베르쿠테는 유실 위험에 처한 유적지가 300여 곳이나 된다고 호소했다. 결국 국제적인 협력으로 많은 유적들은 안전할 수 있었다. 파피루스 고문서 연구소 소장. 카이로 대학의 교수와 대학부설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1984년에는 프랑스 한림원과 비문 및 아름다운 문자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옮긴이 : 송숙자

1951년 서울 태생.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했다. 현재 불어 및 영어 동시 통역관으로 일하고 있으며, 전문 번역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새를 위하여> <아방가르드와 노총각들> 등이 있다.

 

감수 : 허승일

1940년 출생. 서울대학교 사학과 졸업 후 서양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역사 교육론> <로마 공화정 연구> <로마사 입문>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로마 사회사> <키케로의 의무론> <서양 사학사> 등이 있다.

로제타 스톤, 대영박물관, 런던

콤옴보, 《이집트와 누비아》, 데이비드 로버츠, 1846~1849

프톨레마이우스 1세의 초상이 들어 있는 동전.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한 후 프톨레마이우스 1세는 금, 은, 동으로 주조한 화폐를 통용시켰다.

고양이 미라  대영박물관, 런던. 신들은 세상에 실재하는 성스러운 동물의 형태로 생각되었다. 호루스는 매, 하토르는 암소, 바스테트는 고양이의 모습을 갖추었다. 동물들은 신전 안에서 보호받았으며, 죽으면 미라로 만들어져서 특별히 만든 무덤 속에 매장되었다. 이러한 종교의식은 이방인을 매료시켰다.

시리아-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집트 도착, 《이집트 미술사》, 프리스 다벤, 1858~1877, 국립도서관, 파리.  크눔호테프 왕자의 무덤 속에 그려진 그림. 베두인족이 족장 압샤의 인도하에 가족과 함께 이집트에 도착하고 있다. 가장 어린 아이들은 나귀등에 타고 있다. 베니하산에 있는 이 그림(B.C. 1900년경)에는 15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는데, 원래는 37명이었다고 한다.

<피라미드 전투>, 루이 프랑수아 르젠, 1806, 국립궁전박물관, 베르사유

람세스 2세의 흉상, 대영박물관, 런던.  람세스 2세의 거대한 흉상은 현재 대영박물관의 대전시실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조상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로제타 스톤을 볼 수 있다.

청년시절의 샹폴리옹 초상화, 레옹 코니에의 그림, 1831, 루브르 박물관, 파리. 샹폴리옹은 로제타 스톤을 연구하여 상형문자의 비밀을 밝혀냈다. 그가 아부심벨의 대신전을 찾앗을 때만 해도 신전을 찾았을 때만 해도 신전을 장식하고 있던 부조의 색채는 먼 옛날의 화려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멤피스의 세라페움에 있는 아피스 황소상, 루브르 박물관, 파리.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아피스의 황소상은 원래 멤피스의 세라페움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이집트 총독 사이드 파샤의 사진, 국립도서관, 파리.  마리에트에게 지원을 약속했던 이집트 총독 사이드 파샤.

데이르엘바하리의 하트셉수트 신전. 깎아지른 듯한 암벽 밑에 위치한 데이르엘바하리 신전. 1881년 7월 5일, 2000여 년 동안 무덤 속에 숨겨져 왔던 보물이 알려졌다. 이 보물이란 방부제로 처리된 파라오들의 시신이다.

람세스 2세의 미라.

투탄카멘의 금관 내부의 위 부분. 투탄카멘의 가면은 순금으로 만들어졌고, 표면은 진기한 보석과 채색된 유리조각으로 장식되었다.

종교의식 중에 투탄카멘이 앉는 옥좌, 카이로 박물관. 젊은 왕이 종교의식을 주관할 때 앉았던 나무의자. 상아와 갖가지 보석들로 장식되고 흑단으로 상감되어 있다.

투탄카멘의 무덤 발견, 1923년의 발굴현장. 투탄카멘의 무덤이 발굴되었다는 소식이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매일 수많은 관광객들이 유물 발굴현장을 지켜보기 위해서 무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하워드 카터. 10여 년 동안 투탄카멘 무덤 발굴작업에 전념했던 하워드 카터. 발굴작업에 대한 자신의 보고서가 출간되기 전인 1939년에 사망했다.

캐너번 경. 카터의 발굴작업에 소요되는 경비를 지원하는 동시에 발굴작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캐너번 경. 그는 무덤이 완전히 발굴되기 전인 1923년 4월 5일 병원체에 감염된 모기에 물려서 사망했으며, 그의 참혹한 죽음은 투탄카멘의 저주때문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생명을 상징하는 형태의 거울상자, 카이로 박물관. 삶을 상징하는 형태의 거울상자는 나무에다 금도금을 한 것으로, 홍옥으로 장식되어 있다.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이시그의 청동상, 루브르 박물관, 파리.

페르디낭 드 레셉스의 사진.

샤토브리앙의 초상.

마크 트웨인, 1867.

세티 1세의 무덤에서 나온 것으로 벽에 새겨 판 그림, 루브르 박물관, 파리. 세티 1세의 얕은 부조 채색 조각.

세라페움에서 발굴된 왕의 스핑크스, 루브르 박물관, 파리.

디두프리 피라미드에서 발굴된 왕의 스핑크스, 루브르 박물관, 파리. 적색 사암으로 제작된 디두프리의 두상.

복원된 람세스 2세 미라.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