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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16. 10:08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38 양화소록養花小錄  선비, 꽃과 나무를 벗하다

 

강희안 저  이종묵 역해

2012, 아카넷

 

 

대야도서관

SB069140

 

525.7

강97ㅇ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001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대우재단 공동기획

 

소나무는 꼿꼿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지조로

온갖 꽃과 나무의 위에 홀로 솟아나 있으니 이미 더 할 것이 없다네.

 그 나머지 은일(隱逸)의 국화와 품격 높은 매화, 그리고 저 난초와 서향화 등 10여 종은

제각기 풍미와 운치를 떨치고 있고, 창포는 추위 속에서도 고고한 절조를 지녔으며,

괴석은 확고부동한 덕을 가지고 있어 정말 마땅히 군자가 벗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네.

 

지은이

강희안(姜希顔)

조선 초기의 학자. 자가 경우(景遇), 호가 인재(仁齋)이며 본관은 진주이다. 문과에 급제한 후 주로 규장각에서 근무하며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 주석 작업에 참여하였고 『운회(韻會)』, 『동국정운(東國正韻)』 등의 편찬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시와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 날마다 글을 읽고 꽃을 키우는 일을 좋아하여 『양화소록』을 편찬하였다.

역해자

이종묵 (李鍾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우리 한시를 사랑하여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우리 한시를 읽다』 등의 책을 내고, 조선 선비의 삶을 추적하여 『조선의 문화공간 1-4』, 『부부』 등의 책도 낸 바 있다. 좋아하는 옛글을 번역하여 『부휴자담론』, 『누워서 노니는 산수』,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등을 출간하였다. 직접 꽃을 키우지는 못하지만 꽃을 키우는 옛글을 사랑하여 『양화소록』을 옮기고 다른 글을 보태어 화훼와 분재의 문화사를 보이고자 한다.

 

|차례|

 

해제 화훼와 분재의 문화사를 위하여
아우 강희맹이 쓴 『양화소록』 서문 養花小錄序
강희안이 직접 쓴 『양화소록』 서문 自序


1 노송 老松
2 만년송 萬年松
3 오반죽 烏斑竹
4 국화 菊花
5 매화 梅花
6 난초와 혜초 蘭蕙
7 서향화 瑞香花
8 연꽃 蓮花
9 석류꽃 石榴花
10 치자꽃 梔子花
11 사계화 四季花와 월계화 月季花
12 산다화 山茶花
13 자미화 紫薇花
14 일본철쭉 日本
15 귤 橘樹
16 석창포 石菖蒲
17 괴석 怪石
18 화분에서 꽃나무를 키우는 법 種盆內花樹法
19 꽃을 빨리 피게 하는 법 催花法
20 모든 꽃이 꺼리는 것 百花忌宜
21 꽃에서 찾아야 할 것 取花卉法
22 꽃을 키우는 법 養花法
23 화분을 두는 법 排花盆法
24 갈무리하는 법 收藏法
25 꽃을 키우는 뜻 養花解


주석
찾아보기

 

인재 노인 전한 책이 있어

밝은 창가에 종일 베끼노라.

꽃과 열매를 이로써 알지니

비로소 나무를 기르게 되었네.

경제의 뜻 자못 시험해볼 뿐

공명은 버려둔 지 오래라네.

이 생애에 반가운 것 적으니

넓은 세상 신교를 맺으리라.

- 김이만, 「양화록의 발문」, 『學皐遺稿』(규장각본)

 

구불구불 울퉁불퉁 푸른 규룡(虯龍)의 자태라네.

주름진 비늘에 웅장한 이빨과 수염 달린 괴물이

하늘을 당기며 꿈틀꿈틀 마른 가지에 서려 있네.

- 우헌(愚軒)의 「괴송요(怪松謠)」

 

계단 앞의 둥근 한 그루 소나무

가지와 둥치 오랜 세월에 용으로 변하였네.

바람이 거센 겨울이 되면 눈을 비비고서

천 길 높이로 푸른 하늘로 뻗어 감을 보리라.

- 강희안, 「사우정의 노래(四雨亭雜詠」『진양세고』권3

 

▲ <우송도권(友松圖券)>_두경(杜瓊). 중국 명대. 북경고궁박물관 소장

 

화분의 왜송은 세 자가 넘는데

구불구불 강철 같은 가지 헌걸차게 얽혔네.

비뚤비뚤 오그라들어 몸이 자라지 못하는데

가끔은 푸른 잎을 내어서 눈서리를 이기네.

은자는 이 나무 정정한 절개를 사랑하노니

서실의 창가에 어린 그림자 맑고도 고와라.

천년의 늙은 자질 거북과 학의 자태로 변하였으니

너와 더불어 불로장생의 비결을 함께 하리라.

- 성현, 「괴송요(怪松謠)」『虛白堂風雅錄』권1

 

화분 위에 심은 소나무 한 그루

늙은 등걸은 크게 자라지 않는다네.

잎은 절로 연기와 안개를 띠고 있고

가지는 눈과 서리를 많이도 겪었다네.

날이 차도 마음에는 절조를 품었고

그늘이 엷어도 마음만은 서늘하다네.

군자는 기질 같은 이를 찾는 법이라

날마다 곁에 두어야 마땅하지 않겠나.

- 권근, 「이수부 씨의 정원에 있는 네 가지 노래 중 소나무를 읊다」. 『陽村集』권3

 

금강산 신기한 품종 세상에서 보기 어려운데

승정원의 옥난간 곁에다 옮겨 심어놓았네.

이름에서 만년이 드러나니 오래감을 알겠고

색은 사계절 한가지라 추위를 이김을 보겠네.

서린 뿌리 굽은 둥치 사람의 기교를 더하였고

가는 잎 드리운 가지 땅에 붙어 둥그스름하네.

그리워라 맑은 새벽 향이 더욱 특이하리니

온 뜰 밝은 달빛 아래 이슬이 촉촉하겠네.

- 최립, 「은대십이영(銀臺十二詠) 중 만년향(萬年香)」. 『簡易文集』권6

만년송 아래 이끼 하나 없는데

사계화 날리니 티끌 묻지 않았네.

똑같은 한가지 맑은 식물이건만

괴이타, 명품이 화보에 보이지 않다니.

- 김인후, 「한가할 때 읊조린 시」. 『河西全集』권7

 

그 몇 해나 푸른 산 흰 구름 속에 있다가

정원으로 옮겨와 기이한 향을 토하는가?

하늘 향한 늙은 둥치는 푸른 규룡의 빛깔을 띠고

해를 가린 무성한 가지엔 푸른 봉황 문양 남았네.

달빛 아래 둥글둥글 일산을 펼쳐놓은 모습이요

바람 앞에 시원한 질나발 소리 들릴 듯.

예쁘다, 꿈틀꿈틀 구름을 뚫고 일어나니

나무를 감돌며 술김에 한가하게 시를 읊조리노라.

- 채수, 「왕명을 받들어 사십팔영시에 차운하다, 만년송」. 『懶齋集』권2

 

올해 한 치가 자라고

내년 한 치가 자라니

오로지 빨리 자라지 않지만

이 때문에 만 년에 이른다네.

- 성삼문, 「지해당사십팔영-만년송」. 『成謹甫集』권1

 

가볍고 부드러워 하늘거리는 그 자태여

차군에게 재배하건만 차군은 아는 체 않네.

구절포로 장수하는 것 과시할 겨를 있으랴?

소를 삼킬 기상에 범 무늬까지 껍질에 있으니.

- 최립, 「창포가 대나무에게 절을 하다」. 『簡易集』권8

▲ <죽도(竹圖)>_조익(趙翼). 조선시대(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취한 대나무 언제나 술이 깨려나,

뿌리를 옮겨가도 저는 모른다네.

가지와 잎 다칠까 걱정만 할 뿐,

뿌리가 옮겨가는 것 괘념치 않네.

- 정약용, 「죽취일(竹醉日)」. 『여유당전서』 제1집 시문집 권4

 

굳은 마디는 그저 눈과 서리에 딱 맞아

기이한 자태를 비바람 불 때 바로 보겠네.

청천자의 옛집에 드넓은 땅이 있으니

해마다 내 꿈속으로 들어오게 하리라.

- 강희안, 「대나무를 심고서」. 『진산세고』 권3

 

밥 먹을 때 고기반찬 없는 것은 괜찮지만

사는 집에 대나무가 없어서야 될 말인가.

고기가 없으면 사람이 수척할 뿐이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물로 만든다네.

사람이 수척하면 그래도 살찌울 수 있지만

속된 선비는 낫게 할 수 없다네.

곁의 사람이 이 말 듣고 웃으며 하는 말

"고상한 듯하는 것이 도리어 바보 같소."

"차군을 마주하고 크게 술을 마신다면

세상에 어찌 양주의 학이 있겠소?"라 했네.

- 소식, 「잠승의 녹헌균에서」. 『東坡全集』권4

 

아내가 국화 따 온 것은

시골늙은이 오래 살라 한 것.

동창에 가을 햇살 어리는데

술에 취해 미친 듯 시를 읊는다.

- 김인후, 「아내에게 주다」. 『하서전집』 권5

 

사람들 원하는 것 수명을 늘리는 것이라

은근하게 서로 권하며 이 날에 마신다네.

신선처럼 몸이 가볍게 하려 술잔을 드는데

노란 국화꽃 향긋하게 따스한 햇살을 바치네.

- 신위, 「중양절 하상(荷裳) 등 여러 사람이 반분로(潘邠老)의 "성 가득 비바람에 중양절이 가깝네"라는 시구로 운을 삼아 각기 시 7수를 얻다」. 『警修堂全藁』22책

 

붉은 줄기 노란 꽃은 세상에 드물어

달고 쓴 맛 누가 능히 시비를 가리랴?

자네 집에 진품이 있다고 들었으니

한 떨기 늦가을 향을 나누어주지 않겠나?

- 이안눌

 

누가 서리 속에 황색, 백색, 홍색 꽃을 보냈나,

우리들 풍류 위해 조물주의 힘을 다 앗아 왔네.

세 줄로 늘어선 고운 기생조차 무색해지기에

웃으면서 금빛 가지를 꺾어 손에 움켜쥐노라.

- 조우신, 「같은 날 이노일 군이 삼색국 화분 하나를 배에 보내주었기에 뭉클하여 절구 한 수를 지어 감사를 표하다」. 『白潭遺集』 권1

 

자색 주색 홍색 백색 비단 위에 자리 튼 듯

진진한 맑은 향기가 코에 가득 많구나.

가소롭다 도연명은 부질없이 사랑하였지만

일생동안 그저 노란 국화만 알고 말하였다네.

- 서거정, 「이웃 심선이 네 가지 빛의 국화 화분 하나를 보내주기에 감사하여 짓다」. 『사가집』 권45

▲ <풍속도병>_김홍도(金弘道) 전칭. 19세기. 프랑스 기메미술관 소장

 

오상고절 국화를 꺽어다가

작은 질 화분에 옮겨 심었지.

대를 꽂아 여린 꽃을 지탱하게 하고

흙을 북돋워 약한 뿌리를 보호한다.

작은 옥빛에 맑은 운치 가득하고

가벼운 금빛은 술기운에 밀려든다.

다정하다 오동나무 끝의 달빛이여

술동이 비었는데 부질없이 비치네.

- 정운희, 「화분의 국화」. 『孤舟集』 권1

 

노란 국화 사라 외치는 소리 길거리에 가득한데

해마다 늘어나는 각양각색의 꽃 『국보』에 없는 것.

국화는 모두 도연명의 울 아래 있던 것이지만

그 중에 어찌 이것만 연명국이라 부르는가?

- 신위, 「국화를 읊다」. 『警修堂全藁』 14책

 

163종이나 되는 품종이 많기도 하건만

끝내 학령이 여러 국화 중에 첫째라네.

무너진 담장에서도 훤한 안색 돋보이니

가을바람 흰 이슬에 뜻을 얻은 것이라지.

- 김정희, 「보내준 국화에 감사하다」. 『阮堂全集』 권10

 

듣자니 국화의 꽃 색깔은

황색을 바른 태로 한다지.

뭇 꽃이 봄볕에 피어나는데

너 홀로 가을 그늘에 피어나네.

황색은 음에 속한 바름이라,

황후의 옷도 이 색으로 한다지.

군자는 그 덕을 취하여

치우침도 없고 변함도 없다네.

- 서형수, 「국화의 노래」. 『明皐全集』 권1

 

등불 아래 국화 그림자 비스듬히 기울어지자

영롱하게 생동하는 그림이라 정말 아름답구나.

우습다, 도연명은 도리어 멋이 없었으니

당시에 한밤에 꽃 보는 일 알지 못하였다지.

- 박윤묵, 「등불 아래 국화를 완상하면서」. 『存齋集』 권4

 

등불이 국화 남쪽에 있으면 그림자는 북쪽

등불이 국화 서쪽에 있으면 그림자는 동쪽

상 하나에 책 몇 권과 술 두 동이 있으니

그저 꽃 그림자 속에 이것이나 즐겨야지.

- 이학규, 「등불 앞의 국화 그림자」. 『洛下生集』 冊16

▲ <청공도(淸供圖)>_강세황(姜世晃). 조선 18세기. 선문대박물관 소장. 그림 왼쪽에 괴석과 함께 화분에 심은 매화가 보인다.

 

하나의 기운이 순환하여 갔다가 돌아오니

천심을 세밑에 핀 매화에서 볼 수 있다네.

큰 솥에다 국 맛을 조절하는 열매가

부질없이 산중에서 맺혔다 떨어졌다 하네.

 

우연히 고향으로 돌아와 찾아가니

절 가득한 맑은 향 한 그루 매화일세.

물성이야 능히 예전의 뜻 알기에

은근하게 다시 눈 속에 피었구나.

- 강회백, 「단속사에서 매화를 직접 심고서」. 『진산세고』 권3

 

상머리에 옮겨두면 먼지 없이 깔끔하고

햇살이 창을 쬐어 봄처럼 따스하겠지요.

푸른 잎과 붉은 꽃에 향기도 사랑스럽기에

번거롭지만 은자가 짝하게 실어 보내주시려나.

- 이승인, 「윤판서에게 글을 올려 서향화를 구하다」. 『陶隱詩集』 권3

 

신년에 묵은해를 보내고 돌아서자

붉은 꽃 소식이 상원 전에 이르렀네.

높은 자태 정말 노을 먹는 신선과 같고

농염한 모습 비단 짜는 선녀인가 하였네.

십 리 너머 향기가 퍼져도 강렬한데

빈 뜰에 웃음을 머금어 더욱 고와라.

여러 꽃들 물러나 맹주로 모시리니

몇 척의 가지가 햇살에 기대어 있네.

- 권두경, 「서향화(瑞香花)」. 『蒼雪齋集』 권6

 

움집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서향화를

청명에 받들어 꺼내니 집 가득한 향기.

콧구멍으로 먼저 맡고 두 눈에 대었더니

남은 담홍빛 꽃잎이 가지 위에 흩어지네.

- 이색, 「서향화(瑞香花)」. 『목은시고』 권28

 

여산에서 옮겨와 비로소 꽃을 피우니

푸른 비단에 이슬 어린 붉은 구름 단장.

금압향로에 침수향 쓸 것 없다네,

주렴에 실바람 불면 향이 풍겨나오니.

- 강희안, 「사우정잡영 중 서향화」. 『진산세고』 권3

▲ <염계상련(濂溪賞蓮)>. 정선(鄭敾). 조선시대 18세기. 우학문화재단 소장. 주렴계가 연꽃을 감상하는 그림이다.

 

노인은 무슨 일을 하는가?

온갖 생각하여도 할 것이 없지만

꽃과 대나무는 마음이 즐거우니

제법 즐길 바를 부칠 수 있다네.

듣자니 서쪽 집에서

화분에 연꽃 수십 그루 키운다기에

은근하게 편지를 보내어

나를 위해 힘써 달라 하였더니

주인이 늙은 나를 가련히 여겼네.

좋은 뜻은 외롭지 않은 법이라

백 보 떨어진 내 집에다

두 일꾼이 어깨에 메어 보내었네.

바위를 쌓아 작은 돈대를 만드니

배치가 금방 이루어졌네.

맑은 물 가운에 어린 꽃망울

연잎이 그와 더불어 갖추어졌네.

마침내 온 뜰 안에다

문득 작은 산수를 이루었으니

내 평소의 소원과 맞아서

마주하여 하루해를 보낸다네.

아이들 장난처럼 부끄러우니

남들이 이러한 어리석음 비웃으리라.

- 박윤묵, 「화분의 못이 이루어지다」. 『存齋集』 권10

 

해석류는 꽃잎이 술잔처럼 큰데

종자는 처음 일본에서 왔다네.

3월에도 꽃 피우지 못했다 비웃지 말게

여러 꽃들 시들 때 비로소 피어나니.

- 정약용, 「다산에 핀 꽃의 역사」. 『여유당전서』 시문집 권5

 

해석류는 고와서 정말 자랑할 만한데

연이어 30일이나 불같은 꽃을 토한다네.

수많은 알갱이가 하나 맺히는 것 없으니

세상에서 실속 있는 꽃은 보기 어려워라.

- 김창업, 「천엽석류(千葉石榴)」. 『老稼齋集』 권2

 

5월이라 원림에는 곳곳에 녹음이 짙은데

석류에서 꽃이 피면 그 값이 천금이라.

찬 계절의 꽃 어지러이 진다 싫어 말게나.

구슬 담는 태가 있어 깊숙이 결실을 맺나니.

- 김창업, 「안석류(安石榴)」. 『노가재집』 권2

 

오월이라  석류꽃이 눈을 환하게 비추는데

가지 사이 드문드문 매달린 열매가 보이네.

가련하다 이곳은 찾아오는 이가 없어서

푸른 이끼에 거꾸러져 붉은 꽃잎 떨어지네.

- 한유, 「석류꽃」. 『東雅堂韓昌黎集註』 권6

 

붉은 알 가지에 달린 것 몇 개인가?

온 숲에 기우뚱 술에 취해 홍조를 띠었네.

붉은 비단 주머니에 붉은 알갱이 숨겼으니

서리 내리면 활짝 터뜨린 모습 볼 수 있겠지.

- 이규보, 「붉은 석류가 막 익었는데 규공이 시를 청하기에」. 『동국이상국집』 권6

 

비둘기 새장 곁에 백엽의 꽃잎 환한데

계절에 느꺼워 비 머금고 새벽노을 만들었네.

무슨 연유로 냉담한 자태를 버리지 않았나.

빨간빛으로 교태 부리며 조정에서 웃고 있네.

- 문종(文宗)

 

전에 꽃잎이 여섯이라 들었더니

사람들은 숲 가득 향긋하다 하네.

붉은 열매 푸른 잎에 어우러져

맑고 고운 모습 눈서리 속에 있다네.

- 김인후, 「소쇄원의 사십팔영 중 눈을 맞은 붉은 치자」. 『河西全集』 권5

 

치자나무 어느 해에 옛 가지를 떠나왔던가?

딴 집에 옮겨 놓아도 예전처럼 무성하다네.

꽃이 피니 여섯 꽃잎이라 흔치 않은 품종이요

잎은 천 겹으로 겹쳤으니 또한 기이한 것이라네.

향은 참선하는 노승의 밥을 실컷 먹었고

명성은 두보의 시에 모두 다 들어있다네.

감상할 마음 봄바람 불 때와 맞지 않아서

꽃 피고 열매 맺은 때에야 보게 되었구나.

- 서거정, 「치자꽃」. 『四佳詩集』 권4

 

치자는 여러 나무에 비하여

인간 세상에 정말 많지 않다네.

몸에 띤 빛깔은 쓰임새가 있고

도의 기는 몸을 조화롭게 한다네.

붉은빛은 풍상을 겪은 열매에서 취하고

푸른빛은 비와 이슬 맞은 가지에서 본다네.

무정하게 너를 옮겨 심은 뜻은

강물에 비친 것을 귀히 여겨서란다.

- 두보, 「치자(梔子)」. 『纂註分類杜詩』 권18

 

치자는 매우 그늘진 곳에 심는 법

꽃잎이 피면 모두 여섯이 된다네.

그 향기는 침사향(沈麝香)이요.

그 빛은 곧 눈과 얼음 같다네.

뉘 알리요, 푸른 잎 속에

찬 날에도 열매가 붉음을.

- 김창업, 「호서로 가는 사경에게 주다」. 『노가재집』 권1

 

만년송 아래 가는 이끼 사라지고

사계화 꽃잎 날려 먼지 끼지 않았네.

둘 모두 똑같이 맑은 식물이건만

괴이하게 이름이 화보에 없구나.

- 김인후, 「한가하게 지내면서 대충 시를 지어 경범에게 보이다」. 『하서전집』 권7 

▲ 『현원합벽첩(玄圓合壁帖)』_심사정(沈師正). 18세기.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햇살과 바람 따스하여 봄 낮이 긴데

붉게 핀 천 송이 꽃을 다른 꽃이 넘보랴?

남방에서는 재배하는 힘을 빌 것 없으니

맑은 날 길러주는 것은 바로 봄볕이라네.

- 김시습, 「동천사에서 사계화를 보고서」. 『매월당시집』 권12 

 ▲ 『화초충어도책(花草蟲魚圖冊)』_김모(金玥). 중국 청대. 상해박물관 소장

 

예전부터 동백이 바로 산다인데

궁분다나 일념홍이 다 일가라네.

누가 알랴, 품종이 도리어 무수하지만

사발 같이 큰 꽃이 운남 땅에 나는 것을.

- 김창업, 「산다화(山茶花)」. 『老稼齋集』 권2

 

천 리 만 리 먼 섬나라 큰 파도치는데

쫓겨난 신하 산에 올라 임금을 바라보았지.

덕릉(德陵)의 동백은 푸른빛이 무궁하기에

대궐서도 먼 유배객에 마음이 움직였지.

- 이유원, 「동백나무」. 『海東樂府』

 

늙은 소나무 객을 맞아들이는데

위태한 외나무다리로 개울을 건넌다.

늘 봄날인 장춘동에 눈이 쌓였는데

동백은 수만 그루에 꽃을 피웠네.

스님의 집은 물과 대숲에 희미한데

비석은 안개와 노을에 늙어 있네.

신라가 요망하여 참으로 괴이하네.

온 나라 기울여 석가를 위하였으니.

- 이만부, 「대둔사(大芚寺)」. 『頭陀草』 책10

 

바닷가에 신선의 산이 있고

그 가운데 백련사가 있다네.

단청은 아침 해에 어른거리니

봉래산도 그 아래라 하겠네.

온 산은 잡목이 없고

동백만 눈 속에 비치네.

늙은 가지는 돌난간에 비껴 있어

내 암자의 승려와 함께 앉았지.

비취빛이 가지를 둘렀는데

향긋한 꽃술이 어지럽게 떨어지네.

개울 따라 산속에 수북이 쌓여

멀리서 보면 들불 난 줄 알겠네.

- 임억령, 「백련사 동백가(白蓮社冬柏歌)」. 『石川集』 권2

 

동백나무 밀집하여 푸른 숲을 이뤘는데

잎은 굳고 각이 지며 꽃은 붉게 피었네.

봄바람에 그저 꽃이 눈에 가득하기에

작은 뜰에서 피든 지든 뜻대로 맡겨둔다네.

- 정약용, 「다산화사(茶山花史)」, 『여유당전서』 제1집 시문집 권5

▲ 『화훼도(花卉圖)』 8엽 중 제3엽 '자미(紫薇)'_운수평(惲壽平). 중국 청대(1687). 북경고궁박물원. 우리나라 백일홍과 그 모습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사랑스러운 몇 송이 꽃

백일 붉은빛을 이루었네.

주작(朱雀)에서 기운을 얻어

찬란히 가을바람에 꽃피우네.

남북의 기후가 달라서

늘 사람의 힘을 입어 자라니

겨울 전에 눈 속의 강추위에

짚으로 사방을 매어야 하네.

금년 여름과 가을 사이

푸른 잎이 유난히 풍성하더니

차례로 빨간 꽃을 터뜨려

붉은 노을 사방을 두른 듯.

처음에는 단사 가루 같아서

소슬바람에도 무성하지 않다가

점점 커다란 옥쟁반을 만들어

온 꽃송이 붉은 빛으로 영롱하네.

끊임없이 무수하게 피어나

층층의 자태가 한결같다네.

담장 너머가 훤하게 되고

방안까지 곱게 이어져 오네.

노인이 손수 심은 것으로

이름난 꽃 얼마나 많았던가?

제각기 잘 자라나

기의 조화를 이루었네.

남방에서 온 귀한 품종이라

외로운 뿌리 쑥대처럼 떠돌았지.

생명을 붙인 곳 고향이 아니라

해충에 기가 많이 빠져나갔지만

꼿꼿하게 능히 홀로 서서

다른 꽃에게 가려지지 않는다네.

이러한 곧은 선비의 절조를 아껴

고송보다 어루만져 사랑함이 깊다네.

- 정범조, 「백일홍 한 뿌리를 심었는데 겨울을 지내고 죽지 않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기에 기뻐서 시를 짓다」. 『海左集』 권15

 

내 영산홍이

천하에 둘도 없는 꽃이라 여겼건만

오직 형님댁 섬돌 곁의 왜철쭉만 못하니

한 번 붉은 노을빛으로 피면 온 동네가 들썩이지.

- 김창흡, 「3월 12일 아침 무속헌을 지나는데 이른바 왜철쭉이라는 것이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뜰과 문 사이에는 그저 새소리만 들렸다. 어른께서 빙호로 나가신 줄 알겠다. 한참 방황하다가 흥이 일어 시를 짓는다」. 『三淵集』 권2

 

한양의 정원 몇 곳이나 피었는가?

천 천으로도 한 뿌리 구해 심기 어렵다네.

가련하다, 이놈이 초라한 내 집에 있어

기이하고 고운 자태가 잡초만 비추고 있네.

- 김창업, 「왜철쭉(倭躅)」. 『노가재집』 권3

 

절로 꽃 중에 제일가는 품종이라

평양에서 백금의 고가에 팔린다네.

대궐에 옮겨 심은 것 누구의 힘이었나,

변방에서 절로 피었다 지니 네가 불쌍타.

시골의 촌스러운 연지를 연하게 발랐기에

저무는 봄날에도 찾아오는 벌 나비 없구나.

붉은 단장 한결같이 누런 흙먼지에 맡겨두니

공주와 비파는 모두 서러움이 길기만 하네.

- 이현경, 「금석산에서 왜철쭉이 골짜기를 비추는 것을 보았는데 당시 평양 사람들은 이 꽃을 보배로 삼아 온갖 꽃 중에 으뜸이라 하였다. 영산홍과 서로 백중을 겨루는데, 이제 산 가득 피어 있지만 땅이 궁벽하고 멀어 아무도 완상하는 이가 없이 변방의 바람결에 피었다 질뿐이라, 느꺼워 율시 한 수를 짓는다.」, 『艮翁集』 권4.

 

누가 더운 땅에서 나는 품종을

궁궐 곁의 어화원에 옮겨 심었나?

비린내 나는 바다에서 몸을 빼서

대궐 담장 가까운 땅에 의지하였네.

옥처럼 여위고 가시가 많은데

구름처럼 수북한 잎에 털이 나 있네.

봄날의 꽃은 모두 흰빛을 띠었고

가을날의 열매는 황금빛을 머금었네.

질펀한 이슬이 엉기어 뇌가 되고

생초로 막을 하여 알맹이를 감쌌네.

딸 때는 번거롭게 섬섬옥수를 빌고

익는 것은 맑은 서리를 기다려야지.

안개를 뿜듯 옷소매를 적시고

폭포가 되어 폐와 장에 스미네.

회수를 멀리 건너왔지만

동정호의 귤에 지지 않는다네.

맛은 신선의 세계를 머금은 듯하건만

소식은 고향 땅에서 아득히 멀어졌네.

토박이의 성질을 놓쳤다 하지만

그래도 임금의 은총을 입었다네.

천명의 노비와 맞먹을 것이요

오직 네 신선이 숨을 만하다네.

그대 황석공(黃石公)을 보게나

초패왕을 버리고 한고조를 도왔음을.

 

향나무는 코에만 향긋하고

기름진 음식은 입에만 맞는 법.

가장 좋은 것은 동정의 귤이라

코에도 향긋하고 입에도 달다네.

- 문종, 「귤시(橘詩)」, 『列星御製』

▲ 『화훼책(花卉冊)』 12엽 중 1엽_개기(改琦). 중국 청대(1827)

 

창포 화분 마주하니 마음이 호젓한데

푸른 떨기 긴 잎이 간들간들 희롱하네.

산들산들 실바람 부는 저녁에 보기 알맞고

후두두둑 소나기 치는 가을에 듣기 좋다네.

눈서리에도 변함없다 삼료자가 칭송하고

샘과 돌과 맹세했다 사첩산이 노래했다지.

끝내 정원의 섬돌에 볼거리에 그치겠나?

캐어 먹으면 머리를 세지 않게 하리니.

- 최립, 「은대의 십이영 중 창포」, 『簡易文集』

백제의 유물은 이 돌 항아리 하나뿐,

배는 크고 펑퍼짐한데 어디에 썼던가?

창포가 천지의 정기임을 누가 알아서

구름 속에서 돌을 깎아 북에서 옮겼나?

아홉 마디 뿌리는 늙은 교통이 서린 듯

그 품성 신령과 통하여 천하에 묘하다네.

이를 먹으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니

구구한 불사약을 찾아 무엇하리요?

- 서거정, 「공주 십경(公州十景) 중 석옹창포」, 『四佳詩集』 보유(補遺) 3

▲ <분춘생의도(盆春生意圖)> 부분_추일계(鄒一桂). 중국 청대. 대만고궁박물원 소장. 화분에 소철, 세죽, 괴석 등이 함께 놓여 있다.

 

바다 속에 잠겨 있는 바위를 누가 뽑아내었나,

깎아놓은 솜씨는 귀신이 날카로운 칼을 댄 듯.

옥을 깔아 화분에 놓으니 오솔길이 호젓한데

마루 위 탑상 앞에 두니 봉우리 하나 뾰족하네.

이끼 자욱 그윽한 곳엔 안개가 일어날 듯

물이 스미어 올라오면 비에 흠뻑 적셔진 듯.

신선 같은 관원을 위하여 문서를 뒤적일 때

늘 상쾌한 기운이 성긴 발 뚫고 이르게 한 것.

- 최립, 「은대십이영 중 괴석」『簡易文集』 권6

집집마다 수포석이 산처럼 큰 화분에 높다란데

쌍쌍이 짝을 지어 화초 난간에 마주하게 하였네.

예전 나도 또한 즐겨서 풍속을 따라 하였기에

한가하게 비를 맞게 던져두어 이끼가 얼룩졌다네.

- 신위, 「추원의 노래」, 『警修堂全藁』 권12

▲ <옥호정도(玉壺亭圖)>_작가 미상. 조선 후기. 이병도 소장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