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침묵으로 역사를 지켜 본 옛성들
풍우에 깍이고 허물어져 가는 옛 성곽과 성터를 찾아
조상들의 숨결과 온기를 가슴으로 느낀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이므로 도성과 읍성 등 일부의 평지성을 제외한 대부분이 산성입니다. 또한, 산성은 고대과학기술의 집약된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교통, 군사, 행정적 기능까지 수행한 복합문화공간의 역할도 했습니다.
이러한 산성이 단순히 자연적인 소실의 과정에 국한되지 않고 전란과 개발, 그리고 후손들의 무관심 속에 소멸되어 왔음은 크나큰 아픔일 것입니다.
저자 안순모는 이러한 세월의 흐름을 되돌려 다양한 사료적 근거와 학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주요한 산성을 이 책에 기록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천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제 몸은 비바람과 세월에 허물어지면서도 그 자리를 말없이 지키고 있는 산성과, 성벽 돌 틈에 간신히 몸을 의지한 채 꽃을 피워내는 일년생 야생화는 이미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도 독자들과 함께 느끼고자 합니다.
지은이 | 안순모
해발 500m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는 경북 봉화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의 9할이 푸른 산이었던 유년기의 기억을 갖고 있다. 학과보다는 학보사 생활에 빠져 놀멘놀멘 단국대학교를 다녔다. '시민의 신문' 기자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주간지를 전전하다 여의도에 둥지를 틀어 한동안 국회밥을 먹었다. 지금은 국정홍보처 정책뉴스팀에 근무하고 있다.
|차례|
01 강화 강화산성
- '왕실 피난처'의 기구한 운명
02 문경 고모산성
- 진남교반과 어우러진 신라 최고(最古)의 산성
03 공주 공산성
- 왕과 도읍을 잃은 백제인들의 보금자리
04 담양 금성산성
- 자연과 하나된 아름다움
05 부산 금정산성
- 둘레 17km, 국내 최대의 산성
06 김포 문수산성
- 조선과 프랑스의 격전지
07 춘천 봉의산성
- 처절한 패배… 그리고 지워진 기억
08 보은 삼년산성
- 1500년 세월을 넘어 온전한 자태
09 부여 성흥산성
- 동성왕의 최후와 무령왕의 집권
10 단양 온달산성
- 온달과 평강의 슬픈 사랑
11 진도 용장산성
- 삼별초 항쟁과 여인의 한서린 울음소리
12 안성 죽주산성
- 또 다른 세상을 꿈꾸던 미륵터전
부록 1 산성구조물
부록 2 가 볼만한 산성 50선
강화산성 [江華山城]
인천 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
지정번호 : 사적 132호
지정년도 : 1964년 6월 10일
소 장 : 강화군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 3번지 일원
시 대 : 고려시대
크 기 : 면적 305.7㎢
종 류 : 성
1964년 6월 10일 사적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1232년 고려가 몽골의 제2차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착공하였는데, 공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강화도로 천도하여 2년 후인 1234년부터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했다. 이 성은 내성(內城)·중성·외성이 이루어져 있는데, 내성은 현재의 강화성으로 둘레가 3,874자(1,174m), 중성은 둘레가 5,381m로 1250년에 쌓았고, 외성은 1233년에 지었다. 이 성들은 모두 흙으로 쌓은 토성인데, 중성의 위치는 선원면(仙源面)의 토성터인 것으로 추정되고, 외성은 강화 동쪽 해협을 따라 길이가 3만 7070자(1만 1232m)였다. 그러나 1270년 다시 개경(開京)으로 천도한 후 몽골의 요청으로 헐어버렸다.
조선 전기에 규모를 축소하여 다시 축성하였으나 병자호란 때 파괴되고, 1677년 강화유수 허질(許秩)이 대대적인 개축을 하면서 고려시대의 내성 규모로 돌성[石城]을 쌓았다.
서문인 첨화루(瞻華樓)는 1711년 강화유수 민진원(閔鎭遠)이 세웠고, 남문인 안파루(晏波樓)는 쓰러진 것을 1973년에 다시 복원했고, 북문인 진송루(鎭松樓)는 원래 문루가 없던 것을 1783년 성을 개축할 때 세웠고, 동문인 망한루(望漢樓)는 2004년에 복원되었다. 또한 암문(暗門) 4개소와 수문(水門) 2개소가 남아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다.
고모산성 [姑母山城]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곽.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고모산(姑母山)에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출토 유물로 보아 470년경에 처음 축조한 것으로 짐작되며, 이후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을 반복하였다. '경북팔경' 중의 하나인 진남교반(鎭南橋畔)을 사이에 두고 어룡산(魚龍山)과 마주보고 있는 천연 요새이다.
서쪽과 남쪽은 윤강이 감싸고 있고 동쪽에는 조정산(810m)에서 뻗어내린 험한 산등성이가 있다. 따라서 서쪽은 절벽을 그대로 이용하여 바깥쪽만 쌓는 편축식(片築式)으로, 나머지 삼면은 지세에 따라 성벽 안팎을 쌓는 협축식(夾築式)으로 성벽을 쌓았다.
성의 규모는 길이 약 1.6㎞, 성벽높이 2~5m, 너비 4~7m 정도이다. 옛 성벽은 현재 대부분 허물어지고 남문지와 북문지, 동쪽 성벽의 일부분만 남아 있다.
또 중원문화재연구원의 조사보고에 따르면 서문지에서 3.8m 간격으로 설치된 배수구와 배수로 2개소를 발견했다고 한다. 배수로는 바닥에 돌을 촘촘히 깔고 양쪽에 돌을 쌓아 올린 것으로 전체길이 10.8m 정도 된다. 또 서문지 부근 지하에는 약 1,500여 년 전의 요새로 짐작되는 목조 건축물과 유물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목조 건축물은 남북 길이 12.3m, 동서 길이 6.6~6.9m, 높이 4.5m 규모의 3층 구조(상층 2.1m, 중층 1m, 하층 1.4m)로, 창고나 지하 요새, 저수지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 때 신필정(申弼貞)이 정희량(鄭希亮)을 막았고, 을미사변 때에는 이강년이 의병을 일으켜 격전을 치른 곳이다. 또 6·25전쟁 때에도 중요한 방어 거점이었다.
공주 공산성 [公州公山城]
백제시대 도읍지인 공주를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山城)으로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위치한다.
지정종목 : 사적
지정번호 : 사적 12호
지정년도 : 1963년 1월 21일
소 재 지 :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 2외
시 대 : 백제
크 기 : 둘레 2,450m
종 류 : 성
백제시대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문주왕 1) 한산성(漢山城)에서 웅진(熊津)으로 천도하였다가, 538년(성왕 16)에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대 64년간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축조한 것으로, 당시의 중심 산성이었다. 해발 110m인 공산(公山)의 정상에서 서쪽의 봉우리까지 에워싼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며 성의 둘레는 2450m이다. 평면으로는 동서 약 800m, 남북이 약 400m이며 사방에 석벽이 남아 있다. 원래 토성이었는데 조선 중기에 석성으로 개축된 것이다.
동쪽과 남쪽 성벽은 돌로 쌓아 높이 약 2.5m인데, 전면만을 석축하였으며 내면은 토사·잡석으로 다져 붙였고, 너비는 3m이다. 동쪽 성벽 밖에 토성이 있는데, 높이는 무너져서 알 수 없으나 너비는 약 3m이다. 서쪽 성벽은 본래 토축(土築)된 위에 돌로 쌓아 외면만을 축조하여 높이는 4m 정도이다. 지금은 원형을 알 수 없는 서문터(현재는 통로) 남쪽은 석재로 쌓았는데, 너비 4.5m, 높이 3m이다.
성벽 안에는 7∼8m의 호(壕)가 남아 있다. 북쪽에는 조잡한 석축성벽(石築城壁)이 높이 2m, 너비 1.5m 정도로 남아 있으며, 수구(水口)도 있다. 남쪽에 남문터(현재 鎭南樓)가 있고, 그 서쪽은 높이 3m, 너비 3.7m로 석축하였고, 성내에는 너비 11m의 호가 있다. 진남루 앞의 넓은 터는 백제의 궁터이고, 공북루(拱北樓)의 윗부분은 건물터로 추정된다. 또, 이 부근에는 우물터 3개가 있다. 성내에는 후대에 세워진 영은사·광복루(光復樓)·쌍수정(雙樹亭)·연못터 등이 남아 있다.
담양 금성산성 [潭陽金城山城]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곽.
지정번호 : 사적 제353호
지정년도 : 1991년 8월 24일
소 장 : 박진성외 85명
소 재 지 : 전남 담양군 금성면 금성리, 대성리 등
시 대 : 삼국시대
크 기 : 면적 134만 9,977㎡
분 류 : 성곽
전라남도기념물 제52호로 지정되었다가 1991년 8월 24일 사적 제353호로 변경되었다.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하였으며 1409년(조선 태종 9)에 개축하였다. 임진왜란 후 1610년(광해군 2)에 파괴된 성곽을 개수하고 내성을 구축하였으며 1622년에 내성 안에 대장청(大將廳)을 건립하고 1653년(효종 4)에 성첩(城堞)을 중수하여 견고한 병영기지로 규모를 갖추었다.
담양군 금성면과 전라북도 순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금성산(603m)에 위치한 금성산성은 호남의 3대 산성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담양읍에서는 동북쪽으로 약 6㎞ 떨어져 있다. 외성은 6,486m, 내성은 859m에 이르며 돌로 쌓았다. 성안에는 곡식 1만 6천 섬이 들어갈 수 있는 군량미 창고가 있었으며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 시설이 있었으나 동학농민운동 때 불타 없어졌다.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성문터가 있는데 통로 이외에는 사방이 30여m가 넘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통행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금성산의 주봉인 철마봉을 비롯하여 일대의 산지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또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성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으며 가운데는 분지여서 요새로는 완벽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같은 지리적인 특성으로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의병의 거점이 되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치열한 싸움터가 되어 성안의 모든 시설이 불에 탔다. 내성 앞에는 별장(別將)을 지낸 가선대부(嘉善大夫) 국문영(鞠文榮)의 비가 있다.
문루는 두 군데 남아 있다. 외남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우진각 지붕을 얹은 누각이다. 내남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얹은 중층 누각이다. 정상에 오르면 담양읍을 비롯하여 금성산성으로 오르는 평야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앞에는 무등산과 추월산이 보이고 아래로는 담양호가 펼쳐져 있다.
1994년부터 성곽복원사업을 착수하여 외남문·내남문·서문·동문을 복원하여 외남문은 보국문(補國門), 내남문은 충용문(忠勇門)이라 명명하였다. 2010년까지 약 7,000m가 넘는 성곽 보수를 비롯해 동헌 등 관아 시설, 대장청 등 군사 시설, 민속촌 등을 조성하여 금성산성을 호국안보 학습장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금정산성 [金井山城]
부산 금정구 ·부산진구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석축산성.
지정번호 : 사적 125호
지정년도 : 1971년 2월 9일
소 장 : 금정구
소 재 지 : 부산 금정구 금성동 일원
시 대 : 삼국시대
크 기 : 길이 1만 7,336m 면적 21만 6,429평
종 류 : 성
사적 제215호. 길이 1만 7336m, 면적 21만 6429평. 동래온천장의 북서쪽 해발고도 801m의 금정산정에 있는 한국 최대의 산성이었으나, 현재는 약 4km의 성벽만이 남아 있다. 산성의 위치 ·규모로 보아, 신라 때 왜적을 막기 위하여 축조된 것으로 보이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증보문헌비고》와 《동래읍지》에는 1703년(숙종 29)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이 석축으로 개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707년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수축하였고, 1808년(순조 8) 부사 오한원(吳翰源)이 동문(東門)을 신축하고 성을 보수하였으며, 1824년 부사 이규현(李奎鉉)이 성내에 건물을 짓고 진장(鎭將)을 배치하였다. 1970년에 4 개 성문 중 동 ·서 ·남문이 복원되었다.
문수산성 [文殊山城]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月串面) 포내리(浦內里) 문수산에서 해안지대를 성채로 연결한 조선시대의 산성.
지정번호 : 사적 제139호
지정년도 : 1964년 8월 29일
소 재 지 : 경기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 산 36-1
시 대 : 조선시대
크 기 : 둘레 약 2.4km 면적 20만 3,511㎡
분 류 : 성지(성곽)
1964년 8월 29일 사적 제139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20만 3511㎡이고, 둘레는 약 2.4km이다. 1694년(숙종 20) 구축한 것으로, 강화 갑곶진(甲串鎭)과 마주보는 김포 쪽에 위치하여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도 입구를 지키는 성이다. 명칭은 문수사(文殊寺)라는 절에서 유래하였다.
취예루(取豫樓) ·공해루(控海樓) 등 문루와 암문(暗門)이 각 3곳에 있었으며, 취예루는 갑곶진 건너편 해안에 있어 강화에서 육지로 나오는 관문 역할을 하였다.
1812년(순조 12) 대대적으로 중수하였고,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군(軍)과의 일대 격전지였다. 이때의 격전으로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파괴되고, 성내가 크게 유린되었다. 지금은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없어지고 마을이 들어섰으며, 문수산 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춘천 봉의산성 [春川鳳儀山城]
강원도 춘천시 소양로 1가 봉의산에 있는 산성.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강원기념물 제26호
지정년도 : 1979년 5월 30일
소 재 지 : 강원도 춘천시 소양로 1가 산 1-1
시 대 : 고려
크 기 : 높이 5~6m 길이 1,241m
종 류 : 성곽
1979년 5월 30일 강원도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춘천시 북쪽 봉의산 8부 능선에 가파른 지형을 이용하여 규격이 일정하지 않게 다듬은 네모난 돌로 지형에 따라 높이를 조절하며 축성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산성의 석축 둘레가 2,463척, 높이가 10척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실측 결과 성의 길이가 1,241.5m, 높이는 5∼6m 내외였다. 그러나 많이 훼손되어서 현재 남아있는 원래 성벽 부분은 길이 19m, 높이 6m이며 복원 후 길이는 170m이다.
성문과 망루가 모두 훼손되었으며 주춧돌로 보이는 부재들이 노출되어 있고 많은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다. 산성의 축성연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고려사절요》〈권15〉에 고려 1217년(고종 4) 거란족의 침입으로 안찰사 노주한이 이 성에서 전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는 1253년(고종 40) 몽고족의 4차 침입 때 춘천 주민들이 성에 들어가 항거하였고 몽고병의 포위가 오래되자 식수가 없어 소와 말을 잡아 그 피를 마셨다고 하며 조효립은 처와 함께 불길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교주 안찰사 박천기는 결사대를 조직하여 뛰어나가 몽고군이 포위하기 위하여 쌓은 목책을 부수면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몽고군이 성 밖에 파놓은 웅덩이 때문에 성내의 모든 군졸과 주민은 한 사람도 못나가고 모두 순절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강원도 조방장(助防將) 원호(元豪)의 활동지였으며 6·25전쟁 당시에도 격전지였다.
적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수비성으로 추정되며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항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세가 험하여 적을 막기에는 좋으나 식수가 부족하고 성역이 작아 장기전은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에 1966년 봉의사 밑의 우물을 파다가 발견된 투구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삼년산성 [三年山城]
충북 보은군 보은읍 북쪽 2km 지점의 오정산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지정번호 : 사적 제235호
지정년도 : 1973년 5월 25일
소 재 지 : 충북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산 1-1
시 대 : 470년
크 기 : 면적 22만 6,000㎡
종 류 : 산성
사적 제235호. 면적 22만 6000m2.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이 산성은 470년(자비왕 13)에 축성하였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하며, 신라는 이곳을 백제 공격을 위한 최전방기지로 삼았다.
성문(城門)은 보은읍을 내려다볼 수 있는 서쪽 수구(水口) 부근에 있다. 성벽은 주위의 능선을 따라 견고하고 웅대하게 구축하였는데,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22m에 달하고, 너비는 5∼8m이며, 전장(全長) 1,680m에 이른다. 성벽의 구축 방법은 내외면 모두 석축으로 수직에 가까운 벽면을 이루게 하였고, 전형적인 협축공법(夾築工法)을 채용하였는데, 특히 이 협축성벽은 토사(土砂)를 전혀 섞지 않고 내부까지 전체를 석축으로 견고하게 구축하였다.
부여 성흥산성 [扶餘聖興山城]
충남 부여군(扶餘郡) 임천면(林川面) 군사리(郡司里)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
지정번호 : 사적 제4호
지정년도 : 1963년 1월 21일
소 재 지 : 충남 부여군(扶餘郡) 임천면(林川面) 군사리(郡司里) 산 1-1
시 대 : 백제
크 기 : 성주9城周)는 약 600m, 성벽높이는 3~4m
종 류 : 산성
사적(史蹟) 제4호. 가림성(加林城)이라고도 한다.
이 산성은 백제시대 수도였던 부여를 수호하기 위해 금강(錦江) 하류 대안에 축조된 가장 중요한 산성의 하나이다. 이 성홍산성은 501년(동성왕 23)에 축조되었다고 하며, 성주(城周)는 약 600m, 성벽 높이는 3∼4m이고, 우물터가 3군데에 있고 건물터도 현존하고 있다.
단양 온달산성 [丹陽溫達山城]
충북 단양군 영춘면(永春面) 하리(下里)에 있는 삼국시대의 석축산성.
지정번호 : 사적 제264호
지정년도 : 1979년 7월 26일
소 재 지 : 충북 단양군 영춘면 하리 산 67
시 대 : 신라
크 기 : 성의 둘레 683m, 동쪽 높이 6m, 남쪽의 높이 7~8m, 서쪽의 높이 10m, 성의 두께
3~4m, 면적 26,354㎡
종 류 : 산성
사적 제264호. 1979년 지정.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의 사위 온달이 신라군의 침입 때 이 성을 쌓고 싸우다가 전사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옛 석성(石城)이다. 성의 둘레 683m, 동쪽 높이 6m, 남북쪽의 높이 7∼8m, 서쪽의 높이 10m, 성의 두께 3∼4m. 영춘을 돌아 흐르는 남한강 남안의 산에, 길이 70cm, 너비 40cm, 두께 5cm 크기의 얄팍한 돌로 축성한 성으로, 약 100m 정도가 붕괴된 것 외에는 대체로 현존한다. 동 ·남 ·북 3문(門)과 수구(水口)가 지금도 남아 있다. 성내에는 우물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매몰되어 물이 조금 나올 정도이며, 곳곳에서 삼국시대 및 고려 때의 토기조각을 볼 수 있다.
용장산성 [龍藏山城]
고려시대 삼별초가 진도를 근거지로 관군과 몽고군에 항전했던 산성.
지정번호 : 사적 제126호
지정년도 : 1964년 6월 10일
소 재 지 : 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106
시 대 : 고려시대
크 기 : 면적 47만 2,915㎡
분 류 : 성곽
1270년(고려 원종 11년) 8월 삼별초를 이끌던 고려의 장군 배중손이 쌓은 산성이다.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긴 삼별초군은 진도 용장리 용장사 인근 선황봉(仙隍奉) 둘레에 산성을 축성하고 대몽항전을 위해 전열을 정비하였다. 1271년 5월 진도로 진격해온 몽고군에 항전하였지만 화력의 열세로 패하였다. 산성의 석축은 대부분 유실되었고 당시의 흔적 일부만 남아있다. 1964년 6월 10일 유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되었다.
죽주산성 [竹州山城]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비봉산정에 있는 고려시대 성곽.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경기기념물 제69호
지정년도 : 1973년 7월 10일
소 재 지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산 106
시 대 : 고려
크 기 : 둘레 1,688m, 높이 2.5m
종 류 : 성곽
1973년 7월 10일 경기도기념물 제69호로 지정되었다. 성 둘레 1,688m, 높이 2.5m의 토석성으로 현재 석축만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 처음 축성된 것으로 알려지며 고려시대에 크게 중수하였다. 성의 이름은 죽산의 옛이름 죽주에서 유래하며 신라 후기 진성여왕 때 견훤이 이 성에 진을 치고 세력을 키웠다. 고려시대인 1236년(고종 23) 몽고군의 제3차 칩입 당시에는 방호별감(防護別監) 송문주(宋文胄)가 성 안에 피난해 있던 백성들과 합세, 몽고군과 싸워 이긴 전적지이다. 조선시대에도 청주와 충주의 두 길이 만나 서울로 통하는 요지인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강조되어 성을 보수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여기에 진을 치기도 하였다.
산성은 3겹 석성으로 본성 1,688m, 외성 1,500m, 내성 270m에 이른다. 성 안은 넓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시의 동문 자리에 장대석과 석재의 흔적이 있고 성 남쪽에는 장대지(將臺址)와 문터가 남아 있다. 남쪽 성벽과 동쪽 성벽의 북쪽 끝에는 성벽 양쪽 끝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은 치성(稚城)이, 남쪽 성문 바깥에는 당시에 팠던 도랑 자리가 남아 있다.
성 안에는 몽고 침입 때 큰 공을 세운 송문주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 있고, 함께 싸우다 죽은 군민들의 넋을 기리는 당집이 있다.
♠ 가 볼만한 산성 50선
01 부여 성흥산성(扶餘聖興山城)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 산 1-1
- 시대 : 백제
02 부여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 4
- 시대 : 삼국시대
03 공주 공산성(公州公山城)
- 소재지 : 충남 공주시 산성동 2외
- 시대 : 삼국시대
04 경주 남산성(慶州南山城)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인왕동, 탑동, 남산동, 배반동, 배동
- 시대 : 신라
05 경주 부산성(慶州富山城)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산 195
- 시대 : 통일신라
06 부여 청마산성(扶餘靑馬山城)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 1-1
- 시대 : 삼국시대
07 경주 명활산성(慶州明活山城)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천군동, 보문동
- 시대 : 신라
08 고양 행주산성(幸州山城)
-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산 26
- 시대 : 조선시대
09 남한산성(南漢山城)
- 소재지 :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산 1
- 시대 : 조선시대
10 부여 청산성(扶餘靑山城)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
- 시대 : 삼국시대
11 건지산성(乾芝山城)
-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산 3
- 시대 : 삼국시대
12 고령 주산성(高靈主山城)
- 소재지 : 경북 고령군 고령읍 중화리 산 3외 29필
- 시대 : 삼국시대
13 화왕산성(火旺山城)
- 소재지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산 322
- 시대 : 삼국시대
14 목마산성(牧馬山城)
- 소재지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산 5-2
- 시대 : 조선시대
15 분산성(盆山城)
-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어방동 산 9
- 시대 : 삼국시대
16 함안 성산산성(咸安城山山城)
- 소재지 : 경남 함안군 함안읍 괴산리, 가야읍 광정리 569
- 시대 : 삼국시대
17 부여 석성산성(扶餘石城山城)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 산 83
- 시대 : 삼국시대
18 양산 신기리산성(梁山新基里山城)
- 소재지 : 경남 양산시 신기동, 호계동, 북정동
- 시대 : 신라
19 양산 북부동산성(梁山北部洞山城)
- 소재지 : 경남 양산시 북부동, 남부동, 중부동, 다방동
- 시대 : 신라
20 용장산성(龍藏山城)
- 소재지 : 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106
- 시대 : 고려시대
21 강화산성(江華山城)
-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 3번지 일원
- 시대 : 고려시대
22 문수산성(文殊山城)
- 소재지 : 경기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 산 36-1
- 시대 : 조선시대
23 독산성(禿山城)
- 소재지 : 경기 오산시 지곶동 162-1 외
- 시대 : 삼국시대
24 적상산성(赤裳山城)
- 소재지 : 전북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산 119
- 시대 : 고려시대
25 함양 사근산성(咸陽沙斤山城)
- 소재지 :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산 60
- 시대 : 삼국시대
26 증산성(甑山城)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성리 산 86
- 시대 : 백제
27 북한산성(北漢山城)
-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 1-1외 서울 은평구, 성북구, 강북구
- 시대 : 삼국시대
28 상당산성(上黨山城)
- 소재지 :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산 28-1
- 시대 : 조선시대
29 금정산성(金井山城)
- 소재지 : 부산 금정구 금성동 일원
- 시대 : 삼국시대
30 가산산성(架山山城)
- 소재지 :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산 98-1
- 시대 : 조선시대
31 아차산성(阿且山城)
- 소재지 : 서울 광진구 광장동 산 16-46, 구의동 산 1-2
- 시대 : 삼국시대
32 삼년산성(三年山城)
- 소재지 : 충북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산 1-1
- 시대 : 삼국시대
33 단양 온달산성(丹陽溫達山城)
- 소재지 : 충북 단양군 영춘면 하리 산 67
- 시대 : 신라
34 남고산성(南固山城)
- 소재지 : 전북 완산구 동서학동 산 228
- 시대 : 백제
35 황석산성(黃石山城)
- 소재지 :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산 153-2
- 시대 : 고려시대
36 파주 오두산성(坡州烏頭山城)
- 소재지 : 경기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산 86외
- 시대 : 백제
37 담양 금성산성(潭陽金城山城)
- 소재지 : 전남 담양군 금성면 금성리 대성리 등
- 시대 : 삼국시대
38 대덕 계족산성(大德鷄足山城)
- 소재지 : 대전 대덕구 장동 산 85
- 시대 : 삼국시대
39 장성 입암산성(長城笠岩山城)
- 소재지 : 전남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 산 20-2외 57필지
- 시대 : 고려시대
40 논산 노성산성(論山魯城山城)
- 소재지 : 충남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 산 1-1외 13필지
- 시대 : 백제
41 충주 장미산성(忠州薔薇山城)
- 소재지 : 충북 충주시 가금면 장천리 산 77-1외
- 시대 : 고구려
42 괴산 미륵산성(槐山彌勒山城)
- 소재지 : 충북 괴산군 청천면 고성리 산 8-37외
- 시대 : 고려시대
43 백산성(白山城)
- 소재지 : 전북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 산 8-1외
- 시대 : 삼국시대
44 순천 검단산성(順天檢丹山城)
- 소재지 : 전남 순천시 해룡면 성산리 산 84
- 시대 : 백제
45 하남 이성산성(河南二聖山城)
- 소재지 : 경기 하남시 춘궁동 산 36번지외
- 시대 : 삼국시대
46 이천 설봉산성(利川雪峯山城)
- 소재지 : 경기 이천시 사음동 산 24번지외
- 시대 : 백제
47 영월 정양산성(寧越正陽山城)
- 소재지 : 강원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산 1-1외 8필
- 시대 : 삼국시대
48 원주 영원산성(原州領願山城)
- 소재지 : 강원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산 50-2외 1필
- 시대 : 신라
49 완주 위봉산성(完州威鳳山城)
- 소재지 :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1-32외
- 시대 : 조선시대
50 우금산성(禹金山城)
- 소재지 :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산 99
- 시대 : 삼국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