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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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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6 풍속화(둘)

 

이태호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00

 

082

빛12ㄷ  177

 

빛깔있는 책들 177

 

이태호-------------------------------------------------------------------------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였고 같은 학교 대학원 미학 · 미술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전남대학교 교수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 「한국의 고대 산수화」「조선 후기 진경산수화」「겸재 정선의 가계와 생애」「김홍도의 진경산수」「다산 정약용의 예술 세계」「조선시대의 초상화」「1940년대 친일 미술」 등이 있으며 『고구려 고분 벽화』『조선 후기 회화사 연구』『그림으로 본 옛 서울』등의 저서와 평론집 『우리 시대, 우리 미술』이 있다.

 

|차례|

 

18세기 후반 풍속화의 전형을 완성한 단원 김홍도

    시대 양식으로서 풍속화의 정착

    조선 후기 화단에 우뚝 선 김홍도

    민중 삶의 정서가 가득한 30대의 풍속도

    완숙해진 50, 60대의 풍류적 사경풍속(寫景風俗)

    김홍도 풍속화의 회화적 성과와 그 영향

18세기 말, 19세기 초 풍속화의 유행과 변모

     정조 시절 김홍도와 함께 활동한 화가들의 풍속화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9세기 풍속화의 퇴조

    회화 기량이 퇴행한 19세기의 풍속화

    현실과 유리된 세시풍속류의 경직도 병풍

    성희 묘사를 담은 춘화첩의 유행

    구한말 기록적인 성격의 풍속화첩

맺음말

참고 문헌

 

장터길  김홍도. 『풍속화첩』 중에서. 종이에 담채. 54×22.7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노상의 선비와 아낙네(路上過眼圖)  김홍도. '행려풍속도 병풍' 중 제7폭으로 말 탄 선비와 소 타고 지나는 아낙을 포착한 부분이다. '행려풍속도'는 필력과 화면의 짜임새가 미숙하지만 갓을 쓴 선비와 관료, 머슴과 농어부들의 생활상 등 일상 속에서 흔히 대하는 소재들을 현장감 나는 배경 처리와 함께 회화적으로 이끌어 내려 한 김홍도의 의욕이 잘 나타나고 있는 작품이다. 1778년 작. 비단에 수묵 담채. 90.9×42.9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씨름  김홍도. 구경꾼을 가장자리에 둥그렇게 배치하여 승부가 막 판가름날 듯한 씨름판의 분위기를 연출한 이 그림은 김홍도의 천부적인 공간 운영 감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종이에 담채. 27×22.7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와이기  김홍도. 먹줄을 내리고 기둥의 기울기를 가늠하는 목수의 한쪽 눈을 감은 표정 등은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 결과이다. 종이에 담채. 27×22.7센티미터.

신행  김홍도. 신행길에 나선 신랑의 행장을 그린 그림으로 맨앞 청사초롱을 들고 동갑내기 양반 신랑을 뒤돌아보는 아이의 불만스런 자세가 재미있다.

김홍도의 『풍속화첩』 중에서  '노상과안'은 '행려풍속도 병풍' 제7폭과 같은 주제의 그림인데 필선과 구도가 변화하였다.(위) 『풍속화첩』에는 '노상과안'보다 더 노골적으로 남정네가 여인 생활을 훔쳐보는 장면을 담은 '우물가'(아래)와 '빨래터'(가운데)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우물가의 정경은 가슴을 풀어헤친 한량의 장난끼어린 표정과 두 여인이 남정네의 가슴을 피한 자세, 나이 든 아낙이 우물에 오다 그 광경을 보고 주춤해서 불만스럽게 외면하는 몸짓 등 해학미가 넘친다. 

만월대 기로세연계도 부분  이 그림은 개성 지방의 은퇴한 관리 64명이 송악산의 만월대에서 잔치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기록화이면서도 그림 안에 여러 일화들을 담아 풍속화식으로 재해석한 점이 김홍도다운 화풍을 잘 표현하고 있다. 1804년 작. 비단에 수묵 담채. 137×53.3센티미터. 개인 소장.

단원도(檀園圖) 부분  김홍도. 왼쪽에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는 김홍도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왼편에 나이 많은 인물이 정란이고, 가운데가 강희언이다. 이 그림을 통해 시회 아집(詩會雅集)의 풍습이 18세기에는 선비들뿐만 아니라 중인층까지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84년 작. 종이에 수묵 담채. 135×78.5센티미터. 개인 소장.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김홍도. 지필묵과 파초, 칼, 술, 책 등과 함께 앉아 비파를 켜는 모습이다. 섬세한 필치와 한적한 분위기가 50대 이후 김홍도의 심상을 유감없이 말해 주고 있다. 마상청앵도의 말 탄 선비와 동일인의 얼굴인데 김홍도의 자화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18세기 말. 종이에 수묵 담채. 27.9×37센티미터. 개인 소장.

어부오수도(漁夫午睡圖)  김홍도. 50대의 작품으로 낚시대를 세우고 노에 기대어 낮잠에 빠진 인물 그림이다. 18세기 말. 종이에 수묵 담채. 29×41.5센티미터. 개인 소장.

부전도(負錢圖)  김홍도. 등짐을 지고 성벽 밑을 지나가는 두 인물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 풍속화적 재미가 넘친다. 19세기 초. 종이에 수묵 담채. 27×38.5센티미터. 호암미술관 소장.

목동귀가  김홍도. 중국 당시(唐詩)를 풍속화식으로 번안했다. 이 그림은 담백하게 우린 연한 먹색을 바탕으로 시원하게 부감한 공간감, 간일한 필치의 유연한 농담 구사, 얼기설기하면서도 분방한 독필의 사용 등 60대의 무르익은 원숙미와 회화적 깊이를 뽐내고 있다. 종이에 수묵. 34×25.3센티미터. 개인 소장.

쟁기질  김홍도의 『병진년화첩』 중에서. 일하는  장면이면서도 은둔적 풍취가 느껴지고 있다. 쟁기질 하는 농부의 모습은 소를 부리는 노동의 자세가 아니라 탈속한 무념무상의 표정을 하고 있다. 『풍속화첩』의 '논갈이'(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소와 쟁기를 든 농부의 힘든 모습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1796년 작. 종이에 수묵 담채. 26.7×31.6센티미터. 호암미술관 소장.

낚시  김홍도의 『병진년화첩』 중에서. 이 그림은 현감에서 파직된 다음해에 그린 것으로 사경풍속도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고 있다. 옥순봉, 사인암 등 단양 풍경과 산수인물, 화조, 영모 20점으로 꾸며진 『병진년화첩』은 50대 초반 김홍도의 자신감 넘치는 수묵 감각과 달필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 여러 점 포함되어 있다.

회혼례도(回婚禮圖)  작자 미상. 회혼례를 소재로 한 이 그림은 인물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대각선으로 배치하여 현장감과 실제감을 높이고 있다. 부분. 비단에 채색. 33.5×45.5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역안와수석시회도(易安窩壽席詩會圖)  정황. 오동나무와 버드나무 잡목의 담장 너머 마당에서 벌어진 남백종의 회갑 기념 시회 잔치를 포착한 것이다. 종이 위에 담채로 그린 이 작품은 의령 남씨 집안의 요청으로 제작된 기념화이지만 풍속화식으로 재해석하였다. 1789년 작. 종이에 수묵 담채. 25×57센티미터. 개인 소장.

자리 짜기  김득신. 김득신은 같은 주제를 그려도 김홍도와 달리 집안 정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잇다. 근경에 책 읽는 아이를 그리고 열린 문틈으로 얼굴을 빠끔히 내민 고양이를 배치하여 김홍도보다 현장감 나는 생활 풍속도로 살려 내었다.

자리 짜기  김홍도. 김홍도의 자리 짜기는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의 자세를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자리 짜는 남편과 물레질 하는 아낙 그리고 그 뒤로 등 돌리고 앉아 책을 읽는 아이를 배치하였으나 현장감을 살리기보다는 각각 인물의 특징을 포착하고 있다.

귀시도(歸市圖)  김득신. 종이에 수묵 담채. 27.5×33.5센티미터. 개인 소장.

반상도(班常圖)  김득신. 종이에 수묵 담채. 27.5×33.5센티미터. 평양박물관 소장.

주막 거리  김득신. 화첩 그림으로 같은 크기의 '농가 풍속도'와 '주막 거리'는 여러 풍속도를 한 화면에 복합하여 주변 풍경과 섬세하게 조화시켰다. '주막 거리'는 주막과 대장간, 다리를 건너는 여행객, 논일하는 농부들을 함께 엮었다. 19세기 초. 종이에 수묵 담채. 28.5×36.8센티미터. 개인 소장.

풍속도 8폭 병풍  김득신. 노송이 있는 개울가 암반 위에서 봄을 즐기는 사대부들의 행락도. 제1폭(위). 봄꽃이 핀 강변의 어촌 나루터를 담은 장면. 제2폭(아래).

풍속도 8폭 병풍  김득신. 여름 논일을 하던 중간에 새참을 먹는 장면. 제3폭(위). 수수가 익어가는 한여름 원두막에 말 탄 아이들이 모여들고 있다. 제4폭(아래)

풍속도 8폭 병풍  김득신. 주막 거리 풍경과 들일 모습. 제5폭(위). 타작하는 가을의 농촌 풍물. 제6폭(아래).

풍속도 8폭 병풍  김득신. 추수가 끝난 지주가의 월동 준비 모습. 제7폭(위). 산행을 떠나는 지주와 그 일행을 향하여 허리를 굽히는 농민. 제8폭(아래).

처네를 쓴 여인  신윤복. 기와집 담벼락 옆에 처네를 쓰고 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배경 처리에서 개성적 필치를 엿볼 수 있지만, 사선식 화면 운영과 인물 처리에서 보듯 김홍도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805년 작. 비단에 수묵 담채. 28.3×19.1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모를 쓴 여인  신윤복. 여속을 담담하게 그린 유형에 속한다. 화첩용으로 비단 바탕에 그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거문고 줄매기  신윤복. 김홍도 풍속화첩의 방식을 따라 배경을 생략한 것으로 평범한 여속을 그린 그림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다림질  신윤복. 일상의 여속을 묘사한 그림으로 아버지 신한평은 물론 조영석의 '바느질'로부터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던 건강한 생활 풍속도의 하나이다. 개인 소장.

어물 장수  신윤복. 김홍도의 '행상'(아래)과 동일한 구성을 하고 있다. 남자를 여자로, 아기 업은 아낙을 할머니로 바꾼 것이 다르다. 인물의 배치나 자세, 잔주름의 표현, 연한 설채 효과 등이 김홍도풍의 영향을 보여 준다. 그러면서도 일상의 여속을 주제로 한 것이나 얼굴과 가느다란 손가락 묘사에서는 신한평의 '젖먹이는 여인'과 닮아 있어 신윤복이 아버지 영향 아래 그림 공부한 필흔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초. 비단에 수묵 담채. 28.3×19.1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위).

연당의 여인  신윤복. 신윤복의 무르익은 회화성이 잘 나타난 화첩 그림이다. 그 주제도 소란스럽지 않거니와 비단 올에 스민 먹 선묘와 설채가 깔끔한 가작이다. 연못과 마당, 토방과 마루를 약간 부감한 적막한 후원의 분위기와 감칠맛 나는 담먹 담채의 색감에 신윤복 만년의 완숙한 필의가 더할 나위 없이 푹 배어 있다. 19세기 초반. 비단에 수묵 담채. 29.6×24.8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미인도  작자 미상. 19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 담채. 117×49센티미터. 해남 윤씨 종가 소장.

미인도  작자 미상. 1825년 작품. 종이에 수묵 담채. 114.2×56.5센티미터.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노상문승(路上問僧) 부분  신윤복. 봄풍경으로 처네와 장옷을 쓴 여인들이 나들이 도중 고깔 형태의 송라립을 쓴 두 젊은 승려에게 길을 묻는 장면이다. 아낙과 승려는 그의 풍속화첩에서도 몇 점 다루어 본 소재로써 나머지에 비하여 신윤복 냄새가 짙다. 1813년 작. 비단에 수묵 담채. 119.7×37.6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투전도  김양기. 세련된 회화성은 떨어지나 주제 설정면에서는 김홍도나 김득신 못지 않는 현장감을 살리고 있다. 투전에 열중한 네 사람과 음식상을 나르는 여인, 벽장 두껍닫이의 그림과 시렁 위의 방한모와 겉옷 등 각 인물의 개성적 표정과 방안 소품의 적절한 배치로 풍속화다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19세기 중엽. 개인 소장.

기방도  유운홍. 김홍도와 신윤복의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그 소재를 약간 새롭게 변용한 작품이다. 아기를 업고 새참내기를 넌지시 내려다보는 퇴기의 안쓰런 표정이 실감 난다. 19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 담채. 23.9×36.2센티미터. 개인 소장.

『서행일천리도권』 중 순안도중(順安途中)  임득명. 시종들을 거느리고 마주한 두 기마 인물 뒤로 추수가 끝난 가을 들녘과 산풍경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김홍도의 기려문승과 유사한 주제이다. 1813년 작. 종이에 수묵 담채. 28×13.6센티미터. 개인 소장.

아이와 바둑이(招狗圖)  적암 신광순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1847년 작이다. 섬세한 입체화법을 구사하고 있으나 원근 표현이 맞지 않는 등 회화적 수준이 떨어진다. 종이에 수묵. 35.3×29.5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직도 병풍' 중 달구경  작자 미상. 19세기 중후반. 비단에 수묵 채색. 149×44센티미터. 독일 게르트루트 크라센 소장.

'경직도 병풍' 중 새참  작자 미상. 19세기 중후반. 비단에 수묵 채색. 149×44센티미터. 독일 게르트루트 크라센 소장.

'경직도 병풍' 중 논갈이와 누에치기  작자 미상. 민간에까지 유행한 경직도는 대부분 화가가 알려져 있지 않다. 화원풍의 섬세한 채색화부터 조악한 필치의 그림까지 차이가 나는데 내용은 대체로 농가의 세시풍속을 복합해 놓은 것이다. 19세기 중후반. 비단에 수묵 채색. 149×44센티미터. 독일 게르트루트 크라센 소장.

'경직도 10폭 병풍' 중 모내기  이한철. 화원 집안 출신인 이한철의 이 병풍은 열 폭의 화면 모두 근경, 중경, 원경에 각각 다른 장면들을 배치함으로써 경직도류의 일반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한철이 김정희 문하에 드나들었던 만큼 배경 산수를 남종화풍으로 구사한 점이 다른 경직도류와 차이가 나며 각 폭에 간략하게 장면 설명을 묵서하였다. 19세기 중후반. 비단에 수묵 채색. 116×31.5센티미터. 동아대박물관 소장.

대쾌도(大快圖) 부분  전(傳) 유숙. 19세기 풍속도 가운데 현실과 유리된 양상을 띤 그림이다. 성밖 마당에서 벌어진 아이들의 씨름과 택견 장면. 구경꾼을 담은 그림인데 화면 왼쪽 상단에 "대쾌도…"라는 태평 시절을 빗대어 그렸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1846년 작. 종이에 수묵 채색. 105×54센티미터. 서울대박물관 소장.

춘화첩  경직도류의 병풍 그림과 대조적으로 19세기 풍속화의 또 한 경향은 성희 묘사를 직실적으로 담은 춘화첩의 유행에서 찾을 수 있다. 아직 이에 대한 각 작품의 공개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나 꽤 많은 화첩류가 전하는 것 같다. 비교적 안정된 묘사 기량을 보이는 화원풍부터 그 수준이 얄팍한 민간 화가의 솜씨까지 19세기에서 일제시대까지 지속적으로 복제된 듯하다.

춘화는 단순히 도색적인 성희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변해가는 도덕관과 생활 감정을 해학적이고 낭만적으로 담아 내었다. 절에 온 여인과 노승의 성희를 문틈으로 구경하는 동자승(위)이나 초가 마루에서 옛 기억을 살려 보려 시도하는 노인 부부(가운데), 보름달빛이 비치는 버드나무 아래의 낭만적인 표현들(아래)이 조선적인 멋과 회화성을 보여 주고 있다.

『기산풍속도첩(箕山風俗圖帖)』 중 '줄광대'  김준근. 이 화첩은 배경을 생략한 김홍도의 풍속화첩과 유사한 형식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또 각각의 내용과 형식에서 몇몇을 제외하고는 19세기 경직도나 평생도의 도상을 참작한 것이다. 19세기 말. 종이에 수묵 담채. 28.5×35센티미터.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

『기산풍속도첩』 중 '투호'  김준근. 치밀하게 열심히 그렸으나 현장 사생의 생동감이 없고 조선 후기 풍속화의 말기적 현상이 드러나 있다. 그렇지만 기물의 원근 작도와 의습 처리의 입체감, 가벼운 채색의 신선함 등을 통해 서양 회화의 영향과 근대 회화로의 형식적 시취를 느낄 수 있다.

김윤보의 『풍속도첩』  23점으로 꾸며진 김윤보의 『풍속도첩』 가운데 세 장면이다. 김홍도 이후 농촌 풍속도를 총정리해 놓은 것이다. 특히 '타작'(첫번째)에서는 19세기 농민층 분해로 인해 지주층도 가벼운 노동이나마 직접 생산 활동에 참여해야만 했던 당시 실정을 반영하고 있다. 18세기 김홍도 '벼타작'(두번째)의 양반 표정과 좋은 대조를 이루며 변화된 사회상을 보여준다. '처가 방문'(세번째) '소작료 납입'(네번째). 19세기 말. 종이에 수묵 담채. 개인 소장.

『형정도첩(刑政圖帖)』 중 난장  김윤보. 19세기 말. 종이에 수묵 담채. 개인 소장.

『형정도첩』 중 '죄 지은 여인 매질'  김윤보. 『형정도첩』은 당시의 형벌을 증거하는 기록화이다. 특히 당시 관아에서 부당하게 민중들을 탄압했던 여러 비인간적인 체벌들을 증명하는 그림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형정도첩』 중 '도박꾼 체포'  김윤보. 이 화첩의 장면은 김윤보가 직접 사생한 소묘풍이라기보다 이전부터 전해 오는 화본을 참작하여 그린 듯한데 도박장을 덮치거나 포도청 감옥에 음식을 반입하는 장면 등은 김윤보의 독자적인 해석인 것 같다.

 

 

 

posted by 황영찬

2013-085 라디오 데이즈

 

하재연 시집

2007, 문학과지성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0034

 

811.6

하73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327

 

먼 나라를 찾아가다 귀찮아진 계절드리 거기 머물렀다. 지구 어느 편에 있는지 잘 모르는 나라들의 길고 뜨거운 이름들이 좋았다. 뾰족하고 높은 성을 탈출하던 소녀의 파란 머리카락이 떠오른다. 창밖으로 치렁하게 늘어뜨려진 머리카락, 그건 소녀나 마귀할멈과는 상관없이 살아 움직이며 빛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난 정말로 그 그림을 보았던 걸까. 두고 온 눈동자를 찾으러 돌아가면 먼지를 묻히고 굴러다니던 속눈썹이 반짝, 눈을 떴다가는 책꽂이 사이로 숨어버렸다. 눈 속에 무릎까지 소복소복 파묻히며 책장이 넘어갔다. 창틀이 정말로 여러 개였다. 한 개의 창문으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쬘 때 다른 세 개의 창문에서는 별이 떴다. 그곳을 눈 내리는 만화가게라고 부른다.

주석 달지 못한 여러 개의 이름들, 내 시에 섞여 들어와 찰흙처럼 몸을 만들어주었다. 이름 따위는 상관없이 내 살이 그 살들과 섞여 기분 좋게 물렁물렁해지기를 바란다. 처음과 끝이 어디부터 어디쯤인지, 새로 시작된 건 언제인지 기억한다면 많은 것들이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여권과 비자 없이 국경을 넘어 불법 체류자가 되지 않는 나라, 도시, 마을에 대한 글이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상상이 현실에서는 시적이고 정치적인 메타포가 된다. 이 상상과 정치 사이, 또는 그걸 넘어 내가 가고 싶은 나라의 이름을 언제쯤인가는 써볼 수 있을까.

 

시인 하재연은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같은 과 대학원 박사과정 중에 있다.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시단에 나왔다.

 

시집 『라디오 데이즈』는 향기처럼 휘발하는 감각들에 대한 재빠른 스케치다. 시인과 부닥치고 스쳐지나는, 또는 시인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느낌들이 탄생한다. 색깔과 감촉, 냄새 등 대상과 접촉하는 시인의 감각에 의해 생겨나는 이 즉흥적인 느낌은 미처 그 정체를 알아채기도 전에 공중으로 휘발하고 만다. 그러나 그러한 느낌을 시인은 언어와 언어의 부딪힘, 문장과 문장의 얽힘, 행과 행의 연속과 단절을 통해 재탄생시킨다. 이렇게 시 안에 들어 있어서 우리가 읽을 때마다 돋아나는 그 감각과 느낌은 오로지 감각의 세계 그 자신의 것이다. 이 시집은 향기를 가둔 향수병처럼 우리에게로 온다.

 

시인의 말

 

너는 안녕이라고 말하고,

나는 안녕하냐고 말하지.

비틀스의 노래가 생각났다.

언제부터 알고 있던 음악일까?

 

2006년 초겨울

하재연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우리들은 물고기처럼

휘파람 / 천국의 계단 / 동시에 / 나비 효과 / 팔월의 일요일들 / 일요일에 골동품 가게 / 거품 / 장미 덩굴처럼 / 사계절의 상인 / 향수 / 오 분간 / 네 얼굴은 불빛 아래 / 오래된 침대 / 한여름의 스노볼 / 아마도 내일은

 

제2부 이상하고 환한 요일

아이들은 자란다 / 구름의 식탁 / 복도의 아이 / 할머니의 침대 / 라디오 데이즈 / Snow White / 내 꿈은 학교 / 나는 얼굴이 검은 아이 / 내 사랑 변전소 / 스텔라 미장원 / 이동 / 봄의 교향악 / 공생기

 

제3부 안녕, 안녕

나만의 인생 / 서커스 / 스파이더맨 / 우리는 만난다 / 눈뜨는 영혼 / 피의 책 / 그대는 마네 / 여름의 달력 / 의자 / 토요일은 밤이 좋아 / 간선 도로 / 우리들의 일요일 / 문들 / 봄날의 인사

 

제4부 여기는 나일, 여기는 고베, 여기는 이름 모를

지상의 저녁식사 / 머나먼 북쪽 / 드림 캐처 / 아름다운 날들 / 음악들 / 에코 / 빵의 황제 / 열한 개의 창문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 흑백 영화 / 고속도로 위에서 / 미드나잇 트레인 / 흐르는 강물처럼 /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해설 | 초연성(超然性)의 시 쓰기 · 이광호

 

라디오 데이즈

 

보급소 소장이 욕을 했다. 병신 새끼, 미칠 듯이 더운 여름 옆집 난쟁이 아저씨가 나의 개를 잡아먹었고 나는 그 집 딸의 주근깨를 증오했다 계절마다 배불러 웃고 다니는 국화 엄마의 부풀어오른 배를 나무 꼬챙이로 찔러보고 싶었다

 

푸른 면도날과 붉은 꽃을 상상하다가 잠이 들고 매일 아침 엄마는 울면서 깨어났다 밤마다 이불이 축축하지? 옆집 주근깨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비죽 웃었다 일요일 저녁에는 은빛 자전거를 닦고 연탄재 옆에 쭈그리고 오줌을 눴다 몹시 땀이 났다

 

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니나가 잡혀 있는 사차원 세계는 언제나 방과 후였다 방과 이전과 방과 후 세계는 나에게 두 가지뿐이었다 영어 선생은 추한 여자였다 긴 화상 자국이 블라우스 아래 숨겨져 있을 것 같았다

 

붉은 꽃을 보여준 건 주근깨였다 엄마는 어느 날 아침인가부터 울면서 깨어나지 않았다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따위 노래는 이제 아무도 부르지 않는다 은빛 바퀴는 어디론가 굴러갔다 나는 초록색 철대문집 아이였다

 

천국의 계단

 

당신은 발자국 소리가 없어요

고양이의 영혼

아이들은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지요

당신에게는 시간이 오래 머물러 있습니다

나에게서 아주 조금만 가져가준다면

나는 당신과 영원히 함께 있을 텐데

나는 당신의 주름을 가만히 움켜잡고 싶습니다

내 몸의 빨간 피를 하나하나 응고시키면

이파리의 물관들처럼 싱싱한 지도가 생기겠지요

당신은 그냥 나를 지켜봐도 좋습니다

하나, 둘, 셋 하다가 나는 잠이 들 것입니다

당신은 마치 거기서 달리려는 것처럼

 

네 얼굴은 불빛 아래

 

불빛이 타는 거리를 지나 세 사람의 광장을 지나 벌과 꿀의 언덕을 넘으면 푸른 잿빛 거리 지나 초록 기찻길을 지나 붉은 강물의 길로 들어서면 여름 봄 겨울이 가고 깨어진 노란 머리 여자애들이 유리병을 창문 밖으로 던지며 깔깔거리고 나는 온통 젖어 불빛에 타고 가을이 지나가고 내가 가진 모든 동전들이 없어지고 회전목마의 말들이 뚜벅뚜벅 꿈속으로 들어서듯이 네 얼굴은 불빛 아래 돌고

 

가로등 아래 트럼펫을 부는 사내 까만 점을 빛내며 웃고 가끔 너는 행복하다 말하고 가끔 너는 슬프다 말하고 네 얼굴은 불빛 아래 아무도 몰라보게 허옇게 분칠을 하고 혁명의 거리를 지나 하나뿐인 길을 건너 삐걱거리는 침대의 보도를 밟으면 내 발자국은 반복되는 마지막 소절 주제를 잊고 느리게 흘러가는 기이한 간주

 

네 손가락에 차갑게 얼어 있는 네 손마디에 기록되지 않는 귀청을 뚫고 지나가는 나는 싸구려 선술집의 주크박스에서 삼만 년째 돌고 있는  차가운 맥주 거품처럼 꺼져가는 너의 목소리는 네 머릿속에서만 흘러나오고 너의 목소리는 지상의 만 분의 일 초도 흉내 내지 못하고 북극에서 차를 몰고 달려온 사내의 병 속에서 투명하고 아름다운 알약들이 꽃처럼 피어나고 흩어지고 죽음 같은 음도 고요한 칼날도 지각하지 못하는 네 손가락이 만지는 허공에

 

동시에

 

그녀는 책장을 넘기고 있었고

남자가 문 열린 차를 타고 벼랑으로 내달았고

고양이가 식탁 위의 커피잔을 건드렸고

양탄자가 약간 들썩거렸고

고장난 시계 초침이 열두 번을 돌았고

소년은 마라톤 결승 테이프를 끊었고

그녀는 행운을 빌었으나

양손이 쪼글쪼글해지고

머리칼이 가늘어지고

커피는 쏟아졌고 양탄자는 젖지 않았고

남자는 녹색 지붕 아래 비행하는 순간

 

휘파람

 

그림자들이 여러 개의 색깔로 물든다

자전거의 은빛 바퀴들이 어둠 속으로 굴러간다

 

엄마가 아이의 이름을 길게 부른다

누가 벤치 옆에

작은 인형을 두고 갔다

 

시계탑 위로 후드득 날아오르는 비둘기,

공기가

짧게 흔들린다

 

벤치, 공원, 저녁과는 상관없이

 

나비 효과

 

지붕 위에 올라간 돼지들을 보고 있던 어젯밤

당신은 술 취해 택시 기사와 멱살잡이를 한다

화면의 폭우는 미칠 듯이 계속되고

 

집의 주인들은 없다 지붕은 회색이거나 파란색이지만

돼지들은 어떤 지붕이건 가리지 않고

흙물은 붉다

 

한 호랑나비 웃는 얼굴로 날갯짓한다

그 무늬로 적을 겁주거나

그 미소로 핀에 꽂히거나

 

보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의 등을 잘 보아야 한다

다가서는 순간

등의 표정은 무너지고 만다

 

거리에서 나는 늘 추월당한다

지나쳐온 것들은 언제나 뒤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돼지의 여름과 무관하게

호랑나비의 여름과 무관하게

 

새가 아파트 103동과 105동 사이로

조용히 날아간다

하늘에는 새의 곡선이 남아 있지 않다

 

오 분간

 

어려운 건 결심의 문제다 저 구름은 오 분간 한자리에 머물러 있기로 한 모양이다 오 분 후 구름은 쉬지 않고 내내 자세를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보고 잇는 오 분간이다 바람이 구름을 지나치는 순간, 구름의 모양은 흐트러진다 그것이 바람의 힘이었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 역도 마찬가지다 구름의 힘이 바람을 불러들인 것은 아니다 저기 있는 구름을 결정한 것은 구름의 형태가 아니고, 내가 보는 구름은 오 분간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구름이다 우리는 오 분간, 아주 약간, 옮겨진 건지도 모르지만

 

오래된 침대

 

내 옆구리에는 몇백만 년 전 누군가 뱉어놓은 무화과 씨앗이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올이 고운 먼지들이 손으로 짠 담요처럼 나를 덮는다 언제부턴가 나를 지나간 지상의 숨결들 내리쬐던 환한 빛을 기억하려 할 때마다 옆구리가 아파왔다

 

고요한 한낮을 기억할 수 없이 오랜 동안 건너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틈새에 몸을 열어두는 일 그리고 낮과 밤의 기나긴 운행 뚫린 하늘로부터 내려앉는 살비듬들, 천장이 아득해진다

 

푸른 먼지 결 고운 곰팡이는 내 좋은 토양 몸 안의 무화과 이파리 줄기들 한없이 전화선 속으로 들어가 우주 건너편의 어떤 한낮, 누워 있는 여자의 눈까풀을 가만히 쓰다듬을 것이다 그 화사한 손길을 꿈꾸는 동안, 그리고 누구도 나를 방문하지 않는 동안

 

이동

 

당신은 그 여자를 알고 있었는가? 떨림이나 울음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여자의 보이지 않는 둘레 안에 누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을 둥그런 무늬가 일그러지거나 또 다른 고리를 만드는 것을

만약 당신이 선택하는 자라면 옆에 있거나 떠나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 여자를 알고 있었는가?

그 여자는 울거나 웃었거나가 아니라 다른 쪽을 향해 조금씩 움직였다는 것을

 

나만의 인생

 

내 눈동자는 나의 것

눈썹을 깜박이는 것도 나의 의지입니다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보는 것도 나의 의지

내 손은 나의 것

담배를 피우거나

비벼 끄는 것은 나의 의지입니다

연기가 피어올라 공중으로 사라져가듯,

나의 말은 나에게서 나와

당신에게로 흘러들어갑니다

당신이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내 뜻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어느 날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거리에 불이 켜지면

나는 거리로 나갑니다

어느 날 가로등들이 꺼졌다 켜졌다 하듯이

당신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나는 쏟아지는 불빛을 거리에서 맞습니다

나의 의지는 나만의 것이지만,

 

피의 책

 

너는 피의 책이다

네 눈의 뜨거운 신경다발은 목구멍까지 이어져 있다.

얇은 낱장들이 내게서 펄럭였다.

한 권의 책에는 어떤 사건도 담기는 법.

너는 육신으로 기록한다.

내 몸의 모래 알갱이들,

발바닥을 찌르는 빛나던 유리잔,

토마토의 차가운 속살,

네 피는 붉고, 너를 서서히 채우고,

그리고 식는다.

바람은 어디에서든 잠깐, 불어왔을 뿐.

네게는 너의 현재가 읽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무 일도 도모하지 않기 위해

다른 나라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언젠가 피로써 번역되기를 바라면서.

 

아마도 내일은

 

아마도 내일은

오래된 눈

 

누군가 장례식장으로 가는 자를 몰고

그대는 죽지 않고 나는 살아 있네

 

눈은 날리고 날리는 눈은

유리창에 부딪혀 녹아 없어지네

 

그대의 검은 머리에 내려앉고

내 검은 눈동자를 비껴 나가던

 

오래된 눈 창에 얼룩을 남기고

나는 얼룩을 지우네

 

누군가 흰 꽃을 던지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네

 

노래는 끝을 알 수 없이 희미해져

그대는 죽지 않고 나는 살아 있네

 

아마도 내일은

그대와 나와 오래된 눈

 

 

posted by 황영찬

2013-084 전통 과학 건축

 

글 / 손영식●사진 / 이응준, 최진연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099

 

082

빛12ㄷ  176

 

빛깔있는 책들 176

 

손영식-------------------------------------------------------------------------

공학박사.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보수과장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사무국 과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 성곽의 연구』『옛다리』가 있고, 공저로 『북한의 문화 유산』 등이 있으며 그 밖에 여러 논문이 있다.

 

이응준-------------------------------------------------------------------------

한국사진작가협회 상업사진분과위원으로 있다. 한국도로공사, 국제관광공사 사진공모전에서 입상했고, 문화재보호사진전에서 입상했고, 문화재보호사진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주요 촬영 책자로는 『문화재대관 보물편』 중 · 하권, 『한국 고미술 진품 도록』『문화재대관 사적편』 상 · 하권 등이 있다.

 

최진연-------------------------------------------------------------------------

제6회 대한민국 사진전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한국의 옛 성곽"을 주제로 4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사진연구소를 운영하며 대한뉴스 사진부장을 맡고 있다.

 

|차례|

 

머리말

봉수대

석빙고

천문대와 관측 기구

성곽

고분

다리

참고 문헌

 

남산(목멱산) 봉수  조선시대의 중앙 봉수로 1로에서 5로에 이르는 전국의 모든 봉수 결과가 이곳으로 집결되었다.

적대봉 봉수대  전남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에 있는 이 봉수대는 해안에서 접근해 오는 적의 활동을 관찰하기 좋은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시설 규모나 형식으로 보아 세종 29년에 제시된 연변 봉수에 접근된 시설 기준을 갖춘 봉수대로 여겨진다.

무악산 동봉수  압록강 만포진에서 출발하여 의주, 평양 등 내륙 지방을 통해 무악산 동쪽 봉수에 이르러 경봉수인 목멱산 봉수에 전한다.

조선시대 봉수망

대소산 봉수대  경북 영덕군 축산면 대소산에 위치한 봉수대로 보조 봉수대의 역할을 하는 간봉이다. 전통 사회의 최첨단 통신 수단인 봉수대와 오늘날의 첨단 통신 시설인 중계탑이 같은 장소에 위치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님을 보여 준다.

수원성 봉돈 외부  봉수대는 외적의 침탈에 대비하여 성곽 안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다.

수원성 봉돈 내부  봉돈 내부에는 봉군의 숙식과 물건들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을 마련하여 봉수 근무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었다.

대소산 봉수대  내지 봉수는 연변 봉수와 달리 위험성이 적어 연대 높이는 10척(3미터)을 넘지 않게 하고 짐승의 침입에 대비하여 봉수대 주변에 담장을 둘러치기도 하였다.

목멱산 봉수 내부  목멱산(남산) 봉수는 임금이 있는 서울의 도성에 위치하여 매일 보고되는 전국의 봉수를 신속히 보고 받을 수 있는 경봉수였다. 서울시 중구 남산 정상 팔각정 옆.

『화성성역의궤』의 화성 봉수대  정조 20년(1796) 수원성을 조성하면서 만든 봉수대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수원성의 동문인 창룡문과 남문인 팔달문 사이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

봉돈 외부

봉돈 내부

영산 석빙고  겨울철에 채집한 얼음을 보관하였다가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도록 고안된 빙고는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과학 정신이 깃들어 있는 자랑스런 문화 유산이다. 경남 창녕군 영산면 교리.

창녕 석빙고 영조 18년(1742)에 높이 6.1미터, 길이 19미터의 규모로 축조되었다. 창녕군 교육청 앞 개울 건너편에 있다.

청도 석빙고의 홍예틀 구조(위)와 홍예틀 사이에 얹은 판석(아래)  홍예틀을 일정 간격으로 세우고 이를 구조재로 하여 그 사이를 석재로 쌓거나 판석을 얹었다. 빙고 구조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빙실 천장을 이루는 홍예틀 구조에 있다.

경주 석빙고 환기 구멍

영산 석빙고 환기 구멍

안동 석빙고 출입문과 계단

영산 석빙고 문지도리 홈  인방석과 상부에 걸친 이맛돌에 문을 닫기 위한 문지도리 홈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돌문이나 나무로 된 문을 달았으리라 생각된다.

안동 석빙고 출입문  출입문은 얼음을 넣고 꺼내는 데에 지장이 없는 한도내에서 최소한의 크기로 만들었다. 특히 이 빙고는 옆면인 동쪽으로 출입문을 낸 특수한 형태를 보여 준다.

현풍 석빙고  봉토에는 잔디를 심어 복사열을 막고 빗물에 의해 봉분이 씻기지 않도록 하였는데 이는 외기의 영향을 덜 받는 우수한 구조였다.

경주 석빙고 석비  빙고 주위에는 흔히 이같은 모양의 석비를 세워 축조에 관련된 사항들을 적어 놓고 있다.

경주 석빙고  남한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영조 14년(1738)에 완성된 것을 3년 뒤(1742)에 옮겨 개축한 것이다.

경주 석빙고의 빙실 구조  빙실의 각 벽면은 잘라낸 돌을 정밀하게 짜맞추고 바닥은 길고 평평한 장대형 식재를 사용하였다.

안동 석빙고  원래는 안동군 도산면에 있던 것을 안동댐 건설로 수몰이 예상되자 1976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 개축한 것이다. 세 개의 환기 구멍만 없으면 커다란 고분 같아 보인다.

안동 석빙고의 빙실 구조  약 22.4평 규모로 앞뒤는 수직벽으로 처리하고 측면은 일정 간격을 띄워 홍예틀을 구성한 전형적인 빙실 구조의 한 예를 보여 주고 있다.

창녕 석빙고  외부에서 보면 마치 큰 봉토 고분처럼 보이는데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창녕 석빙고의 빙실 구조  자연석에 가까운 장대석을 이용하여 수직에 가깝게 일정 높이를 쌓아 올린 다음 아치 모양으로 이어 붙였다.

청도 석빙고  입구 쪽에 석비가 남아 있어 그 비문을 통해 공사 기간, 동원 인원, 소요 재료 등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이 빙고는 현재 천장을 구성하는 홍예보 4개만 남아 잇어 밖에서 내부 구조를 들여다 볼 수 있다.

현풍 석빙고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빙고로 남북으로 긴 장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현풍 석빙고의 빙실 구조  깬 돌을 바닥에 깔고 중앙에 배수구를 두었다.

영산 석빙고  뒤쪽에 작은 개울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그 곳에서 얼음을 채취한 듯하다.

영산 석빙고의 빙실 구조  바닥에는 자갈들이 깔려 있고 벽면은 큰 가공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해주 석빙고  사진의 나무 그림자로 보아 출입구가 남쪽을 향한 석빙고로 보인다. 38.6평으로 현존하는 석빙고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마니산 참성단(사적 제136호)  단군시대부터 제천단을 마련하고 하늘에 대례를 올린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관상감의 관원들이 천체 관측을 위해 자주 이용했다.

혼천의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 시계로 기원전 2세기경 중국에서 발명됐다. 개인소장.

자격루(국보 제229호)  중종 31년(1536)에 제작된 물시계로 일정 시각이 되면 자동적으로 종, 북, 징 등을 쳐서 시간을 알려 주는 장치가 있었다. 덕수궁 소장.

앙부일구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해시계로 그림자가 비치는 면이 오목한 가마솥과 같은 반구형으로 되어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측우기(보물 제843호)  세종 때 세계 최초로 발명되어 조선조 말까지 관상감과 각 도의 감영에서 우량을 측정하는 기구로 사용했다. 기상청 소장.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아담한 술병 모양으로 뛰어난 조형미와 견실한 축조 기술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첨성대는 동양 최고의 관측대로 일명 점성대라고도 하는데 당시 신라인들의 활발한 천문 관측활동을 가늠케 한다.

난간 내부 구조  상단의 난간 역할을 한 정자석 구조는 장대석 상하단의 2단 구조이다. 장대 난간 높이는 64센티미터로 활동하기에 안전한 높이로 보인다.

상단 내부  정상부의 정자석 내부는 천문 관측의 활동 공간으로 바닥에 판재를 깔면 2, 3인이 활동 가능한 면적이 된다.

고려 첨성대  고려 첨성대는 가구식으로 돌기둥을 세워 대를 조성한 것이다(북한문화재도록』 사진).

관상감 관천대(사적 제296호) 원경(위)과 석축(아래)  당시 북부 광화방 서운관에  축조된 소간의대이다. 장방형의 장대석을 이용하여 바깥을 둘리고 내부에는 규격이 조금 작은 막돌을 채워 기단을 조성하였다.

관천대(보물 제851호)  여러 차례 옮겨지면서 기단이 없어지는 등 원래의 형태가 많이 훼손되었으나 현존하는 천문대 가운데 계단과 간의대석의 원형이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다.

관천대 내부 간의대석  난간 내부 가운데에 간의대석과 관측 받침석이 설치되어 있다.

남한산성의 남문  이 성은 북한산성과 더불어 한양 도성을 남북으로 호위하는 역할을 해왔다.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삼년산성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축조한 산성으로 완공하기까지 3년이 걸려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산지의 지세를 최대한 이용해 적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축조한 산성은 1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아 그 공법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낙안읍성  읍성은 주로 왜구의 침략이 잦았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해안 지역에 많다. 전남 승주군 낙안면에 있는 낙안읍성은 둘레 1,384미터의 성벽이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수원성 성벽  성벽의 재료나 축조 방법에 따라 성곽의 용도 및 성격이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일정 지역을 보호하는 방어력을 제공하는 시설로서의 기능에는 변함이 없었다.

성벽의 명칭

몽촌 토성  자연 지형을 잘 이용한 백제시대 주요 성곽 가운데 하나로 풍납 토성과 함께 도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수원성 여장  여장은 성벽 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과 같은 구조물이다.

  치는 성벽에 접근한 적의 측면을 공격하여 격퇴시킬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만든 구조물이다. 수원성의 남포루.

옹성의 여장과 현안  옹성에는 몸을 숨기는 여장과 끓는 기름이나 물을 부을 수 있는 현안을 설치하여 적의 접근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하였다.

수원성 팔달문  적의 접근을 어렵게 하기 위해 성문 주변에 옹성, 적대, 육축 등의 보호 시설을 하였다.

경주 대릉원  삼국시대의 왕이나 귀족의 무덤은 권력을 과시하고 신성성을 높이기 위해 대형화되었다.

장군총 현실의 평천장  절석이나 판석을 이용하여 벽체를 조성하고 벽체 상부를 판석이나 장대석으로 덮는 형식이다.

장군총의 구조

강서 소묘 현실의 말각조정천장  네 모퉁이를 좁혀가며 천장 부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주로 현실의 규모가 큰 경우에 사용됐다.

약수리 벽화 고분

고령 고아동 벽화 고분 현실 북벽

궁륭천장(사아천장)의 구조

무녕왕릉의 터널형 천장

김유신 묘  봉토 주변에 십이지신상을 새긴 호석을 둘렀다. 봉토를 보호하는 시설로는 이 밖에도 토류석, 즙석 등이 있다.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다리로 통일신라시대의 높은 기술 수준을 보여 준다.

여주 사곡리 흙다리  나무로 교각을 세우고 뗏장이나 흙으로 상판을 조성하여 만든 흙다리는 생활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가설한 것이 대부분이다.

함평 고막천 석교  보다리 형식으로 가설된 석교이다. 전남 함평군 학교면 고막리.

고막천 석교의 다리 구조  교각 받침석을 물 속에 설치하고 가공한 돌로 2, 3층의 교각을 설치하여 다리 바닥을 받치고 있다.

보다리의 구조

창덕궁 금천교  구름다리 형식은 많이 가설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남아 있는 다리가 상대적으로 많은 이유는 구조의 안정성 때문이다.

구름다리의 구조

배다리 가설에 이용된 북조선(위)과 조선(아래)  이 배를 배다리 가설에 이용할 때에는 배의 앞쪽과 뒤쪽에 닻줄물레를 달고 닻을 강에 내려 배가 움직이지 않도록 하였다.

배다리 추정도  일정한 간격으로 배를 띄워 가로목을 설치한 뒤 그 위에 기다란 목판을 깔아 만든 배다리는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가설한 다리였다.

송광사 청량각 누교  누교는 다리의 연결 기능과 정자의 휴식 기능을 동시에 갖춘 다목적 다리이다. 누각은 구조적으로 안정된 석조 홍예교 위에 주로 설치했다.

 

 

posted by 황영찬

2013-083 한 손엔 차표를, 한 손엔 시집을 시가 있는 여행

 

윤용인 지음

2012, 에르디아

 

 

대야도서관

SB079845

 

981.102

윤65ㅅ

 

희망, 사랑, 치유

    이야기가 담긴 감성 여행

 

감상은 때때로 무의식적으로 찾아오지만, 여행자는 가끔 그 감상을 인위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것이 여행을 잘하는 방법 중 하나다. 시집을 들고 떠나는

여행은 그래서 좋다. 여행지에서 시집을 들었을 때 여행자는 시인이 된다.

 

만남은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내 발목까지 다가와

어느새 철길을

가슴에 여러 갈래의 채찍 자국이 된다.

- <철길> 김정환 -

 

지은이 윤용인

딴지일보 기자를 거쳐 2000년 7월 여행 전문 웹진 '딴지관광청'을 창간해 많은 여행 독자와 소통하고 소비자 중심의 여행문화 바로 세우기에 주력했다.

2003년 11월 '노매드 Media & Travel'이라는 여행 컴퍼니를 설립, 본업인 여행은 필수로 하면서 각종 방송과 매체 등을 통해 여성과 결혼, 육아와 심리 등 폭넓은 글을 썼다. 저자 특유의 솔직담백한 글들이 '유쾌한 감성체'로 세상에 소개되었고, 주요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며 수많은 남녀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쓴 책으로 <사장의 본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어른의 발견> <딴지, 여행에 똥침을 쏘다> <발리> 등이 있다.

 

"당신의 여행이 시(詩) 안에서 더 풍성해지기를"

                                                                              2012년 1월 윤용인

 

차 례

 

1장 당신이 내리실 역은 희망 정거장

당신이 내리실 역은 희망 정거장 항동 기차여행

생명의 소음이 있는 곳 광장시장

자연과 하나 되어 걷는 길 제주 올레

하늘에서 가까운 예술 마을 낙산

 

2장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다

나를 버리고 떠난다 보길도

소중한 사소함을 찾아서 약수동

시인과 동백과 상사화가 있는 곳 선운사

맑고 향기로운 삶 길상사

사람에 대한 간절함을 안고 떠나는 여행 지심도

섬에서 게으르게 무위도식하기 선유도

 

3장 가족, 함께하는 여행

핑크빛 분위기로 떠난다 춘천

아이에게 추억 만들어 주기 태안해수욕장 호핑투어

볼 것 많고 먹을 것 많은 여행지 담양

할머니 품처럼 아득하고 아련한 도시 강경

교과서 밖에서 만나는 통일과 평화 고성

 

4장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작은 사슴들이 사는 아름다운 섬 소록도

출구 없는 시간 속으로 떠난 여행 군산

오래된 것을 찾아 떠난 여행 홍제동 개미마을

천 년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도시 경주

 

5장 치유의 시, 치유의 여행

상처 난 가슴이 닿는 곳 해남 땅끝마을

절망의 끝에서 봄 맞으러 가기 원당종마목장

자연으로 떠나는 치유여행 통도사와 영축산

슬픔의 코드에 잘 닿아 있는 곳 영월 청령포

그리움을 가득 안고 떠난 여행 목포

어느 날 엄마가 그리울 때 운주사

문학의 땅에서 마주하는 고해성사 장흥

 

6장 주름을 사랑하리라

나 자신을 위해 하루를 쓰고 싶을 때 수종사와 다산 유적지

갈대밭에서 순응하는 삶을 배우다 순천

곡선의 여행 부석사

맛 따라 길 따라 강원도 여행

세월을 따라 느릿느릿 우이령 길

 

철길

| 김정환

 

철길이 철길인 것은

만날 수 없음이

당장은, 이리도 끈질기다는 뜻이다.

단단한 무쇳덩어리가 이만큼 견뎌 오도록

비는 항상 촉촉이 내려

철길의 들끓어 오름을 적셔주었다.

무너져 내리지 못하고

철길이 철길로 버텨 온 것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간 사람들의

희망이, 그만큼 어깨를 짓누르는

답답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철길이 나서, 사람들이 어디론가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리깔려진 버팀목으로, 양편으로 갈라져

남해안까지, 휴전선까지 달려가는 철길은

다시 끼리끼리 갈라져

한강교를 건너면서

인천방면으로, 그리고 수원으로 떠난다.

아직 플랫폼에 머문 내 발길 앞에서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고, 길고

거무튀튀하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길이 이토록 머나먼 것은

그 이전의, 떠남이

그토록 절실했다는 뜻이다.

만남은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내 발목에까지 다가와

어느새 철길은

가슴에 여러 갈래의 채찍 자국이 된다.

 

들리는 소리

| 원재길

 

1

바로 아래층에서

전기 재봉틀 건물 들어 올리며

옷 짓는 소리

목공소 전기톱

통나무 써는 소리

카센터 자동으로

볼트 박는 소리

 

굉음에 하늘 돌아보니

불빛 번득이며

먹구름 밑 낮게 나는 헬리콥터

어서 지나가면 좋겠는데

아까부터 시동 걸려

골목에 버티고 선 트럭

 

2

너는 모든 침묵을

소음의 자식으로 여겨라

모든 소음은

침묵의 아비로다

사람의 모든 色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려 애써라

 

도보순례

| 이문재

 

나 돌아갈 것이다

도처의 전원을 끊고

덜컹거리는 마음의 안달을

마음껏 등질 것이다

 

나에게로 혹은 나로부터

발사되던 직선들을

짐짓 무시할 것이다

 

나 돌아갈 것이다

무심했던 몸의 외곽으로 가

두 손 두 발에게

머리 조아릴 것이다

한없이 작아질 것이다

 

어둠을 어둡게 할 것이다

소리에 민감하고

냄새에 즉각 반응할 것이다

하나하나 맛을 구별하고

피부를 활짝 열어놓을 것이다

무엇보다 두 눈을 쉬게 할 것이다

 

이제 일하기 위해 살지 않고

살기 위해 일할 것이다

생활하기 위해 생존할 것이다

어두워지면 어두워질 것이다

 

파안

| 고재종

 

마을 주막에 나가서

단돈 오천 원 내놓으니

소주 세 병에

두부찌개 한 냄비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

그것 나눠 자시고

모두들 볼그족족한 얼굴로

 

허허허

허허허

큰 대접 받았네 그려!

 

건강한 소통이란 그와 나 사이에 서로의 섬이 있음을 담백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도 그 섬에 가겠다는 의지보다는 가고 싶다고 염원만 했던 시인의 마음을 닮는 것이다.

사랑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즐거운 편지

|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

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 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

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천창호에서

| 나희덕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송창식 - 선운사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Repeat counter 0

 

선운사 동구洞口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 서정주

 

아직 한 번도

당신을

직접 뵙진 못했군요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기다려보지 못한 이들은

잘 모릅니다.

- 이해인 <상사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벽이 허물어지는 아름다운 어울림을 보네.

저마다 가는 길이 다른

맨머리 스님과

십자성호를 긋는 신부님,

나란히 나란히 앉아 진리의 법을 나누는

아름다운 어울림을 보네.

늦은 깨달음이라도 깨달음은 아름답네.

자기보다 크고 둥근 원에

눈동자를 밀어 넣고 보면

연꽃은 눈흘김을 모른다는 것,

십자가는 헐뜯음을 모른다는 것,

연꽃보다 십자가보다 크신 분 앞에서는

연꽃과 십자가는 둘이 아니라는 것,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니라는 것,

늦은 깨달음이라도 깨달음은 귀하다네.

늦은 어울림이라도 어울림은 향기롭네.

이쪽에서 '야호!' 소리치면

저쪽에서 '여호!' 화답하는 산울림처럼

이 산 저 산에 두루 메아리쳐 나아가면 좋겠네.

- 고진하 <연꽃과 십자가>

 

당신에게 중독되어버린 내 사랑

| 황봉학

 

눈감으면 떠오릅니다

온몸이 전율해 옵니다

당신이 주신 사랑에 중독되어

당신만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쏟아지고

죽을 것만 같습니다

 

당신 손끝으로 파르르 파문을 일으키며

떨던 몸은

당신의 미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자지러지곤 합니다

어느 세월에 가서야 당신을 잊을 수 있을까요

어느 세월에 가서야 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죽어서도 내 영혼은 당신에게 중독되어

당신의 입술을 기다리고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당신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당신에게 중독된 내 육신과 영혼을 살리는 길은

내가 나로서 온전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나를 아득하도록 황홀케 하는

오직 당신의 사랑 하나뿐입니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 김사인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

오갈 데 없는 그 처자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 가지

그 처자 볕에 그을려 행색 초라하지만

가슴과 허벅지는 소젖보다 희리

그 몸에 엎드러져 개개풀린 늦잠을 자고

더부룩한 수염발로 눈곱을 떼며

날만 새면 나 주막 골방 노름판으로 쫓아가겠네

남는 잔이나 기웃거리다

중늙은 주모에게 실없는 농도 붙여보다가

취하면 뒷전에 고꾸라져 또 하루를 보내고

나 갈라네, 아무도 안 듣는 인사 허공에 던지고

허청허청 별빛 지고 돌아오겠네

그렇게 한두 십 년 놓아보내고

맥없이 그 처자 몸에 아이나 서넛 슬어놓겠네

슬어놓고 나 무능하겠네

젊은 그 여자

혼자 잉잉거릴 뿐 갈 곳도 없지

아이들은 오소리 새끼처럼 천하게 자라고

굴속처럼 어두운 토방에 팔 괴고 누워

나 부연 들창 틈서리 푸설거리는 마른 눈이나 내다보겠네

쓴 담배나 뻑뻑 빨면서 또 한세월 보내겠네

그 여자 허리 굵어지고 울음조차 잦아들고

눈에는 파랗게 불이 올 때쯤

나 덜컥 몹쓸 병들어 시렁 밑에 자리 보겠네

말리는 술도 숨겨놓고 질기게 마시겠네

몇 해고 애를 먹어 여자 머리 반쯤 셀 때

마침내 나 먼저 숨을 놓으면

그 여자 이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리

나 피우던 쓴 담배 따라 피우며

못 마시던 술도 배우리 욕도 배우리

 

이만하면 제법 속절없는 사랑 하나 안 되겠는가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누구에게나 추억의 도시가 있다. 가슴 시린 첫사랑의 추억이 깃든 곳일 수도 있고,

두 사람이 처음 연애를 시작했던 곳일 수도 있고,

혹은 이별의 아픈 기억이 있는 도시일 수도 있다.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조흔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율포의 기억

| 문정희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소금기 많은 푸른 물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다가 뿌리 뽑혀 밀려 나간 후

꿈틀거리는 검은 뻘밭 때문이었다

뻘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

숨 쉬고 사는 것들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먹이를 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깊게 허리를 굽혀야만 할까

생명이 사는 곳은 왜 저토록 쓸쓸한 맨살일까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저 無爲한 해조음을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 위에 집을 짓는 새들과

각혈하듯 노을을 내뿜는 포구를 배경으로

성자처럼 뻘밭에 고개를 숙이고

먹이를 건지는

슬프고 경건한 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 이름 생각만 해도 눈물겨운

| 권강업

 

부딪치면 쉽게 부서지던 삶, 까짓 온 몸

불 위에 던졌기에, 그래도

헐거운 문설주에 찬바람 징징대는 겨울밤을

등 따습게 보내었다

 

미어터지던 가난이 골목길 돌아

눈물처럼 비틀거리며 얼어붙은 산동네

허기지던 노동의 새벽길에

유언도 없이 하얗게 뿌려지던

중증의 골다공증을 앓던 뼛가루

그래 묻지 않았다. 고향

싸릿재 너머 사북 고한

막막하던 막장의 그 어둠 속 어디쯤이냐고

 

초라해도 당당하던 한 삶을

뿌듯한 자부심으로, 교훈처럼 전설처럼

어린 아들에게 구전으로 전해보지만

우리는 그저 노란 배관을 타고 와서, 딸깍

손쉽게 불붙는 도시가스일 뿐

예전 당신들의 처절하던 모습으로는 비춰지지 않는다

 

초로의 야윈 내 가슴에

아직 고스란히 온기로 돌고 있는

그 이름 생각만 해도 눈물겨운

어머니라 부를 연탄

 

늙은 거미

| 박재영

 

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거문개똥거미가 마른 항문으로 거미줄을 뽑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암컷 거문개똥거미가 제 마지막 거미줄 위에 맺힌 이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죽은 할머니가 그러셨지 아가, 거미는 제 뱃속의 내장을 뽑아서 거미줄을 만드는 거란다 그렇게 새끼들 다 키우면 내장이란 내장은 다 빠져나가고 거죽만 남는 것이지 새끼들 다 떠나보낸 늙은 거미가 마지막 남은 한 올 내장을 꺼내 거미줄을 치고 있다면 아가, 그건 늙은 거미가 제 수의를 짓고 있는 거란다 그건 늙은 거미가 제 자신을 위해 만드는 처음이자 마지막 거미줄이란다 거미는 그렇게 살다 가는 거야 할머니가 검은 똥을 쌌던 그해 여름, 할머니는 늙은 거미처럼 제 거미줄을 치고 있었지 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어려서 나는 램프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지익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점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움새겼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 신경림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한때 나는 한 봉지 솜과자였다가

한때 나는 한 봉지 붕어빵였다가

한때 나는 좌판에 던져진 햇살였다가

중국집 처마밑 조롱 속의 새였다가

먼 먼 윤회 끝

이제 돌아와

오류동의 동전

- 박용래 <오류동의 동전>

 

아이를 키우며

| 렴형미

 

처녀시절 나 홀로 공상에 잠길 때며는

무지개 웃는 저 하늘가에서

날개 돋쳐 훨훨 나에게 날아오던 아이

그애는 얼마나 곱고 튼튼한 사내였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나에게 생긴 아이는

눈이 크고 가날픈 총각에

총 센 머리칼 탓인 듯 머리는 무거워 보여도

물푸레아지인 양 매출한 두 다리는

어방없이 날쌘 장난꾸러기입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고삐 없는 새끼염소마냥

산으로 강으로 내닫는 그애를 두고

시어머니도 남편도 나를 탓합니다

다른 집 애들처럼 붙들어놓고

무슨 재간이든 배워줘야 하지 않는가고

 

그런 때면 나는 그저 못 들은 척

까맣게 탄 그애 몸에 비누거품 일구어댑니다

뭐랍니까 그애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데

정다운 이 땅에 축구공마냥 그애 맘껏 뒹구는데

 

눈 올 때면 눈사람도 되어보고

비 올 때면 꽃잎마냥 비도 흠뻑 맞거라

고추잠자리 메뚜기도 따라잡고

따끔따끔 쏠쐐기에 질려도 보려무나

 

푸르른 이 땅 아름다운 모든 것을

백지같이 깨끗한 내 마음속에

또렷이 소중히 새겨넣어라

이 엄마 너의 심장은 낳아주었지만

그 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어야 할 피는

다름 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네가 바라보는 하늘

네가 마음껏 뒹구는 땅이

네가 한생토록 안고 살 사랑이기에

아들아, 엄마는 그 어떤 재간보다도

사랑하는 법부터 너에게 배워주련다

그런 심장이 가진 재능은

지구 우에 조국을 들어올리기에……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뉠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뉠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뉠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뉠리리.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뜨거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 이동李東 <단종대>

 

문고리

| 조은

 

삼 년을 살아온 집의

문고리가 떨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고 닫았던 집의 문이

벽이 꽉 다물렸다

문을 벽으로 바꿔버린 작은 존재

벽 너머의 세상을 일깨우는 존재

문고리를 고정시켰던 못을 빼내고

삭은 쇠붙이를 들여다보니

구멍이 뻥 뚫린 해골처럼 처연하다

언젠가 나도 명이 다한 문고리처럼

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나갈 것이다

나라는 문고리를 잡고 열린 세상이

얼마쯤은 된다고 믿을 수만 있다면!

내가 살기 전에도

누군가가 수십 년을 살았고

문을 새로 바꾸고도 수십 년을

누군가가 살았을 이 집에서

삭아버린 문고리

삭고 있는 내 몸

 

인연

| 김해자

 

너덜너덜한 걸레

쓰레기통에 넣으려다 또 망설인다

이번에 버려야지, 이번엔 버려야지, 하다

삶고 말리기를 반복하는 사이

또 한 살을 먹은 이 물건은 1980년 생

연한 황금색과 주황빛이 만나 줄을 이루고

무늬 새기어 제법 그럴싸한 타월로 팔려온 이놈은

의정부에서 조카 둘 안아주고 닦아주며 잘 살다

인천 셋방으로 이사 온 이래

목욕한 딸아이 알몸을 뽀송뽀송 감싸주며

수천 번 젖고 다시 마르면서

서울까지 따라와 두 토막 걸레가 되었던

20년의 생애,

더렵혀진 채로는 버릴 수 없어

거덜 난 생 위에 비누칠을 하고 또 삶는다

화염 속에서 어느덧 화엄에 든 물건

쓰다 쓰다 놓아버릴 이 몸뚱이

 

성장

| 이시영

 

바다가 가까워지자 어린 강물은 엄마 손을 더욱 꼭 그러쥔 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거대한 파도의 뱃속으로 뛰어드는 꿈을 꾸다 엄마 손을 아득히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 잘 가거라 내 아들아, 이제부터는 크고 다른 삶을 살아야 된단다. 엄마 강물은 새벽 강에 시린 몸을 한번 뒤채고는 오리처럼 곧 순한 머리를 돌려 반짝이는 은어들의 길을 따라 산골로 조용히 돌아왔습니다.

 

솟구쳐 오르기 2

| 김승희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출렁 흔들리는 것이나

힘없는 개구리가 바위 밑에서

자그만 폭약처럼 튀어 나가는 것이나

빨간 넝쿨장미가 아파아파 가시를 딛고

불타는 듯이 잠벼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나

민들레가 엉엉 울며 시멘트 조각을 밀어내는 것이나

검은 나뭇가지 어느새 봄이 와

그렁그렁 눈 같은 녹색의 바다를 일으키는 것이나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삶은 무게에 짓뭉그러진 나비 알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존재는

무서운 사과 한 알의 원죄의 감금일 뿐

죄와 벌의 화농일 뿐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뺄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소나무에 대한 예배

| 황지우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이 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 있

建木 : 소나무, 머리에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 친다.

 

물방울, 송곳

| 정병근

 

이 기억을

모두 잊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시간이

어찌 지금만일 수 있으리

 

물방울이 맺힌다

한 방향으로만 걸어온 기억이

마지막 시간을 쥐어짜고 있다

올 데까지 온 기억의 장렬한 최후

 

결심을 끝낸 물방울이 떨어진다

뒷물방울이 앞 물방울의 목을 친다

바닥에 부딪쳐 산산조각 나는 머리통

 

똑, 똑……

맨몸을 던져 바위를 뚫는

저 집요한 기억의 송곳

 

선술집

| 고은

 

기원전 이천년쯤의 수메르 서사시 '길가메시'에는

주인공께서

불사의 비결을 찾아나서서

사자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하늘에서 내려온

터무니없는 황소도 때려잡고

땅끝까지 가고 갔는데

 

그 땅끝에

하필이며 선술집 하나 있다니!

 

그 선술집 주모 싸두리 가라사대

 

손님 술이나 한잔 드셔라오

비결은 무슨 비결

술이나 한잔 더 드시굴랑은 돌아가셔라오

 

정작 그 땅끝에서

바다는 아령칙하게 시작하고 있었다

 

어쩌냐

 

엄마

| 정채봉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붙었다가

간간이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눈길

| 이청준

 

오랜만에 고향집에 내려와 내일 아침에 바로 떠날 생각을 하는 나를 지배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부채의식이다. 나는 스스로 어머니에게 진 빚도 없고, 그러기에 갚을 빚도 없다고 생각한다. 마을 개간 사업으로 마을에서 몇 채 남지 않은 어머니의 집 지붕을 개간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소망을 애써 무시하는 매몰참도 바로 자신이 단정한 부채 없음에 대한 실천이다. 그러나 눈길에 대한 아내와 어머니의 대화를 엿듣게 되면서, 나는 자기 안에 숨기려 그렇게 노력했던 원죄와 만나게 된다.

먹고살기 위해 원래 살던 큰 집을 팔아 버리고, 행여라도 타지에서 공부하는 아들놈이 그 사실에 실망할까 봐 어머니가 보인 모성. 자식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는 이미 팔린 집에서 나를 기다리시고, 자식이 어색해 할까 봐 옷장만은 방에 그대로 둔 채 언제나처럼 나를 맞아 주시고 하룻밤을 따뜻하게 재워 주신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흰 눈으로 덮인 길을 어머니는 아들을 바래다 주기 위해 큰길까지 동행하신다. 버스에 태워 주고 돌아오는 길, 그 허한 길을 어머니는 아들이 남긴 눈 발자국에 자신의 발자국을 채움으로써 달래신다.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라고 눈물로 읊조리시며.

 

| 김광규

 

살펴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나의 형의 동생이고

나의 동생의 형이고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나의 누이의 오빠고

나의 아저씨의 조카고

나의 조카의 아저씨고

나의 선생의 제자이고

나의 제자의 선생이고

나의 나라의 납세자고

나의 마을의 예비군이고

나의 친구의 적이고

나의 나의 적이고

나의 의사의 환자고

나의 단골집의 손님이고

나의 개의 주인이고

나의 집의 가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들이고

아버지고

동생이고

형이고

오빠고

조카고

아저씨고

제자고

선생이고

친구고

적이고

환자고

손님이고

주인이고

가장이지

오직 하나뿐인

나는 아이다

과연

아무도 모르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그 굽은 곡선

| 정현종

 

내 그지없이 사랑하느니

풀 뜯고 있는 소들

풀 뜯고 있는 말들의

그 굽은 곡선!

 

생명의 모습

그 곡선

평화의 노다지

그 곡선

 

왜 그렇게 못 견디게

좋을까

그 굽은 곡선!

 

태백산행

| 정희성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 살이야 열아홉 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 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성에꽃

| 최두석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각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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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