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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2'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8.22 2013-091 길 위에 서서
  2. 2013.08.22 네덜란드의 트리즈
  3. 2013.08.22 2013-090 네 속의 나 같은 칼날
2013. 8. 22. 16:09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91 길 위에 서서

 

글 김승부

2012

 

나의 친구 김승부가 쓴 책

 

삶의 여정의 중간쁨에 서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갈 실을 가늠해 본다

 

인위적인 것은 직선인데 비해 자연은 곡선이다. 우리 삶의 길은 직선일까, 곡선일까? 물론 곡선이다. 끝이 빤히 보이는 직선이라면 무슨 살아갈 맛이 있겠는가. 직선의 삶이 아니라 굴절되고 굴곡진 삶을 삶으로써 우리의 삶이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나에게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찾아 나설 용기가 없다. 남들이 거쳐 가는 길을 걸으며 남들이 놓친 것을 찾아내거나, 또는 일상적인 것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누가 말했다. "예술에 새로운 것은 없다. 새롭게 보는 시각이 있을 뿐." 비록 내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생생한 감각으로 깨어 내가 걸어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존재와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다.

 

김승부

 

대학과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대기업에서 25년을 근무하며 통신사업의 개발과 마케팅, 기획 업무를 수행했다.

소기업에서 5년째 근무 중이다. 산행과 걷기를 즐기고 벗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한다. 일 년에 칠팔십 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적는다. 블로그(http://seungboo10.blog.me/)를 운영하면서 취미삼아 짬짬이 글을 쓴다. 50대 후반의 나이에 세 가지를 이루려고 하고 있다.

 

하나. 나이 들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잇다. 그 방면의 하나로 문화해설사나 숲해설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

 

둘,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꿈꾸고 있다. 한 달 정도 광활한 자연 속에서 그저 허허롭게 길을 걸어보고 싶다. 제주에 내려갈 때마다 제주 올레길을 꾸준히 걷고 있는데, 언제가 완주하게 될 것이다.

 

셋,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으려 한다. 이 책이 그 책이 될 수도 있고, 혹은 한 권을 더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청진한실' 네 글자를 고등학생 이래 좌우명이랄까 일상의 가치기준으로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중국 작가 임어당의 수필 중에 나오는 문구이다. 독법은 간단해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읽으면 되는데, 요즘 들어 나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새기고 있다.

 

청靑

청년의 열정으로 삶을 대하자. 젊게 살자.

진眞

진솔해지자. 설사 이 세상이 권모와 술수가 판을 치는 난장판이라 하더라도, 그럴수록 더욱 진솔하게 살아가자

한閒

여유와 유머가 나의 브랜드다. 제주도 방언을 빌려 쓰면, "와리지 말고 저들지 말라."

실實

건강, 돈, 일, 친구, 꿈, 모두가 삶에 소중한 가치들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이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관리를 잘 하라.

 

한 여행자가 랍비를 방문했다. 놀랍게도 그는 방 하나에 탁자 한 개, 의자 한 개, 침대 한 개, 그리고 책 몇 권만 가지고 살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의 가구는 전부 어디에 있습니까?"

방문객이 물었다.

"당신의 가구는 어디에 있나요?"

랍비가 되물었다.

"제 가구요? 저는 방문객일 뿐입니다. 여행 중이거든요."

그러자 랍비가 말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목차

 

프롤로그

 

제1장 길 위에 서서

길 / 길 위에 서서 / 삶 / 중년의 사유 / 삶을 사랑하는 32가지 방법 / 꿈 / 사랑 / 남녀본색 / 단상 / 춘심 / 정만 남아 / 저무는 한해 / 왜 산에 오르나 / 다섯 연으로 된 짧은 자서전

 

제2장 덕불고

청진한실 / 내가 즐겨 쓰는 표현 / 독만권서 /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 / 북소리 / 덕불고 / 유시유종 / 딸아이 에피소드 / 일상소묘 / 우리 삶에 주는 충고 / 공칠과삼 / 시련의 계절 / 반도성의 회복 / 천지불인 / 사막의 지혜

 

제3장 거울 이야기

거울 이야기 / 꽃 이야기 / 달 이야기 / 물 이야기 / 시간 이야기 / 젓가락 이야기 / 부부 이야기 / 친구 이야기 / 손주 이야기 / 백수 이야기 / 일 이야기 / 건강 이야기 / 행복 이야기 / 개 이야기 / 술 이야기 / 커피 이야기 / 이런저런 이야기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제4장 산과 속이 유별하다

흐르는 강물 / 선유도 풍경 / 봄의 정원으로 오라 / 산과 속이 유별하다 / 기본적인 명상 방법 / 제주 여정 / 카트만두 여정 / 문화탐방 / 간단한 심리 테스트 / 수양록 / 여행자를 위한 서시

 

제5장 존재의 문제

못생긴 뿌리 / 달리는 이유 / 무슨 상관인가 / 길을 여는 열쇠 / 존재의 문제 / 우물 속의 여자 / 처가유친 / 자연의 법칙 / 아바탐 수크라 사바레끼 랑그 라치 / 구원 받기 위한 규칙 / 호보연자 / 며느리 죄 때문에 / 할 말과 안할 말 / 특별한 제식 / 빈 배

 

제1장

길 위에 서서

 

선사가 소나무와 대나무가 하는 말을 듣고 적었다.

솔, "눈보라 쳐도 굽히지 않는다."

대, "눈보라 치면 숙여서 맡긴다."

인간사에 빗댄 말일 뿐이다.

솟거나 숙이거나 나무는 더불어 숲일 뿐인 것을.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길, 노인의 비극은 늙었다는 것이 아니라 한 때 젊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젊은 시절을 아쉬워하면 한이 없다. 당연 나이가 들면 욕심을 접고 마음을 비울 줄 알아야 한다. 젊어서 걷는 길과 나이 들어 걷는 길이 같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 걸어온 길은 걸어갈 길의 스승이라고 하던데, 걸어온 길부터 살펴봐야 하는 것일까?

 

인생의 길. 당신은 그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가.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당신은 어떤 답을 할 수 있는가.

당신이 가고 있는 그 길이 당신이 원하는 길인가?

남들도 그게 당신의 길이라고 하는가?

운명도 그것이 당신의 길이라고 하는가?

 

송나라 때 시인 굴원이 어느 강가를 걸으면서 한탄한다.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청정하고, 사람들이 다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있구나. 세상이 나를 내쫓는구나."

이에 어느 어부가 응답한다.

창랑의 강물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만하고,

창랑의 강물 흐리면 내 발을 씻을 만하지.

 

물극필반[物極必反]

'사물의 전개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는 뜻으로, 흥망성쇠는 반복하는 것이므로 어떤 일을 할 때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측천무후와 관련된 고사(故事) 등에서 사용되었다.

物:사물 물
極:다할 극
必:반드시 필
反:돌아올 반

사물이나 형세는 고정불변인 것이 아니라 흥망성쇠를 반복하게 마련이라는 뜻도 있고,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뜻도 담겨 있다. 세강필약(勢强必弱:세력이 강성하면 반드시 약해지기 마련이다)과 연결하여, '물극필반 세필강약'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노자도덕경》에 나오는 물장즉노(物壯則老:만물은 장성했다가는 쇠퇴하기 마련이다)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열흘 붉은 꽃이 없다), 우리나라 속담의 '달도 차면 기운다' 등과 같은 의미이다. 불변의 자연법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서 상대방의 흥성하는 기세를 시기하는 뜻이 담긴 표현이 될 수도 있다.

이 고사성어가 사용된 예로는 《당서》를 들 수 있다. 중국 최초의 여황제가 된 측천무후는 원래 당나라 태종후궁이었다가 고종의 황후가 되었다. 고종이 죽은 뒤에 중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무후가 섭정을 하였다. 무후는 중종이 친정(親政)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섭정의 자리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이에 소안환(蘇安桓)이라는 대신이 상소를 올려 간언하였다. 그 상소는 "하늘의 뜻과 백성의 마음은 모두 이씨(李氏;당나라 황실의 성)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무후께서는 아직까지는 섭정의 자리에 계시지만,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고, 그릇도 가득차면 넘친다(物極必反 器滿則傾)는 이치를 아셔야 합니다"라고 하며 무후의 퇴진을 권유하는 것이었다. 이밖에 《갈관자》에도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는 것이니 이를 환류라고 한다(物極必反, 命曰環流)"라는 구절이 있다.

 

천명지엄天命至嚴 천명무상天命無常. - 역경

하늘의 뜻은 지엄하고 또한 무상하다. 하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 같아도 꼭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낙천지명[樂天知命]

천명을 깨달아 즐기며 이에 順應(순응)하는 일. 출전 易經(역경).

 

김난도 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말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더딘 것을 염려하지 말고, 멈출 것을 염려하라."

혜민 스님이던가. 올림픽 출전 선수에게 말했다.

"배가 앞으로 가려면 파도가 치기 마련이다. 그 물결이 무섭다고 배를 멈추면 안 된다. 어깨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누가 뭐라고 하든 스스로의 길을 가라."

 

노장의 사유가 이랬던가.

사물을 잇는 그대로 보라.

인간이 태어나는 데 무슨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인간이 자라는 데 무슨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호흡을 하는 데 무슨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것은 저절로 일어난다.

그런데 왜 애를 쓰는가.

삶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라.

애쓰지도 말고 흐름을 거스르지도 말라.

헤엄을 치지도 말고 흐름에 내맡기라.

삶의 강물을 따라 흘러가라.

아무런 목적도, 방향도 없이 하늘을 떠가는 흰 구름이 되라.

 

삶을 사랑하는 32가지 방법

1. 먼저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이 되라.

2. 샤워할 때는 노래를 하라.

3. 일 년에 한 번은 해돋이를 보라.

4. 새로운 친구를 사귀되 옛 친구를 소중히 하라.

5. 완벽함이 아닌 탁월함을 위해 노력하라.

 

6. 비밀을 반드시 지켜라.

7. 상대방이 내미는 손을 거부하지 말라.

8. 매일 세 사람을 칭찬하라.

9. 세 가지 새로운 유머를 알아두라.

10.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라.

 

11. 단순하게 생각하라.

12. 크게 생각하되 작은 기쁨을 즐겨라.

13. 사랑의 힘을 얕보지 마라.

14. 밝고 정열적인 사람이 되라.

15.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음을 이유로 축배를 들어라.

 

16. 치아를 항상 청결히 하라.

17. 설명할 수 있는 삶이 아닌 주장할 수 있는 삶을 살라.

18. 당신이 승진할 만하다고 생각될 때 주저하지 말라.

19. 실수했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

20. 부정적인 사람을 멀리 하라.

 

21. 잘 닦인 신발을 신어라.

22. 지속덕으로 자기 향상에 힘써라.

23. 악수는 굳게 나누어라.

24. 행운이 내 앞에 있을 때 반드시 잡아라.

25. 당신 삶의 모든 부분을 책임져라.

 

26. 사람들이 당신을 필요로 할 때 거기에 있어라.

27. 삶이 항상 공평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28. 남의 작은 향상에도 칭찬해 주어라.

29. 약속은 반드시 지켜라.

30.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결혼하라.

 

31. 옛 우정을 다시 불붙게 하라.

32. 자신의 행운을 기다려라.

 

"직관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사유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 칸트

 

산비둘기 두 마리가

정겨운 마음으로 서로

사랑했습니다.

 

그 다음은

차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 장 콕토(1889~1963) <산비둘기>

 

사랑이 당신을 손짓해 부르거든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힘들고 가파를 지라도. 그사 날개를 펴거든 그 품에 당신을 맡겨라. 비록 그 깃털에 숨겨진 칼이 당신에게 상처를 줄지라도. 그가 당신에게 말하거든 그 말을 믿으라. 비록 북풍이 정원을 황폐하게 하듯 그 목소리가 당신의 꿈을 산산조각 낼지라도. - 카릴 지브란 <예언자>

 

남녀본색

 

1. 남자는 1만원짜리 물건을 2만원에 사도 필요한 물건이면 그러려니 한다. 여자는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것을 싸게 사지 못하면 안절부절 못하지만, 원하지도 않는 물건을 사는 데는 기꺼이 1만원을 쓴다.

2. 여자는 남편을 찾을 때까지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한다. 남자는 아내를 맞이하기 전까지는 미래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3. 성공한 남자란 아내가 쓰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다. 성공한 여자란 그런 남자를 만난 사람이다.

4.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려면 그를 아주 잘 이해하여야 한다. 또 약간은 그를 사랑하여야 한다.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려면 그녀를 몹시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전혀 기울일 필요가 없다.

5. 결혼한 남자들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보다 오래 산다. 그러나 결혼한 남자들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보다 빨리 죽고 싶어 한다.

6. 결혼한 남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는 얼른 잊어버리려고 한다. 같은 실수에 대해 두 사람씩이나 기억하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7. 남자들은 잠자리에 들 때나 일어날 때나 비슷해 보인다. 여자들은 무슨 영문인지 밤이 깊어질수록 점점 못 생겨 보인다.

8. 여자는 장을 보러 갈 때나, 꽃에 물을 줄 때나,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나, 전화를 받을 때나, 책을 읽을 때나, 우편함에 편지를 가지러 갈 때나, 언제나 옷을 잘 차려 입고 있다. 남자는 결혼식과 장례식에 갈 때 빼놓고는 옷을 쫙 빼 입지 않는다.

9. 여자는 남자가 살면서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결혼하지만, 남자는 바뀌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가 변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결혼하지만, 여자는 변한다.

10. 여자는 남자와 싸울 때 항상 자기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연이어 남자가 내뱉는 모든 말은 새로운 싸움의 시작이 된다.

11. 남자는 평생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기가 딱 두 번 있다. 결혼하기 전과 결혼한 후!

12. 여자는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 여자는 치과에 가는 것은 물론, 아이들의 애정관계까지 관리한다. 여자는 자식의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고, 좋아하는 음식, 은밀한 두려움, 그리고 희망과 꿈을 모두 알고 있다. 남자는 자신의 집에 작은 인간들 몇 명이 살고 있음을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다.

13. 세상에는 남자가 여자와 성공적으로 논쟁을 벌일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이론이 두 가지 있다. 하지만 둘 중 어느 이론도 맞지 않으므로 알 필요가 없다.

 

상선약수[上善若水]

老子(노자) 사상의 표현으로,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 이 세상에서 물을 가장 윗길 가는 선의 標本(표본)으로 여겨 이르는 말.

 

나무와 숲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 정희성, <숲>

 

"그대가 시인이라면 종이 안에 떠다니는 구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이 없으면 비도 없는 것이고, 비가 없으면 나무들은 자라지 못한다. 나무가 없으면 종이를 만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구름은 종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 틱낫한 스님

 

"왜 내가 그런 여자, 그런 남자를 만나는가?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내 업이다."

- 법정 스님

 

'연연세세 화상사年年歲歲 花相似, 세세년년 인부동歲歲年年 人不同'이란 말이 있다. 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지만 해마다 보는 사람은 같지 않다는 뜻이다.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오랑캐 땅에 화초와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問余何意棲碧山   문여하의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무슨 생각으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묻지만

빙그레 웃음으로 답하는 마음 스스로 한가롭네.

복사꽃 흩날려 흐르는 물에 고요히 떠내려가니

또 다른 별천지, 인간세상이 아니로세.

 

다섯 연으로 된 짧은 자서전

 

1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곳에 빠졌다.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걸 못 본 체 했다.

난 다시 그곳에 빠졌다.

똑같은 장소에 또다시 빠진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데

또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3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미리 알아차렸지만 또다시 그곳에 빠졌다.

그건 이제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난 비로소 눈을 떴다.

난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았다.

그건 내 잘못이었다.

난 얼른 그곳에서 나왔다.

 

4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 둘레를 돌아서 지나갔다.

 

5

난 이제 다른 길로 가고 있다.

- 작자 미상

 

두려워해도 됩니다. 걱정해도 됩니다.

그러나 비겁하지는 마십시오.

두려움과 마주하고,

근심의 순간을 뛰어넘으십시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는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용감하십시오.

의미 있는 것들을 위해 투쟁할 만큼 용감하십시오.

남들이 아닌 바로 '나'에게 의미 있는 그것을 위해.

- 파울로 코엘료, <흐르는 강물처럼>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이다.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

 

1.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마라. 책 한 권에 들어 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입수하려면 그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2. 하나의 테마에 대해 책 한 권으로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비슷한 관련서를 몇 권이든 찾아 읽어라. 이 과정을 통해 그 테마와 관련된 탄탄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3.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실패 없이는 선택 능력을 익힐 수 없다.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마라. 시간은 금이다.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책이라도 읽다가 중단하는 것이 좋다.

5. 읽다가 중단하기로 결심한 책이라도 일단 마지막 쪽까지 한 장 한 장 넘겨보라.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속독법밖에 없다.

7.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마라. 메모를 하면서 책 한 권을 읽는 사이에 다섯 권의 관련 서적을 읽을 수가 있다.

8. 남의 의견이나 북 가이드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마라. 최근 북 가이드가 유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주석에는 때때로 본문 이상의 정보가 실려 있기도 하다.

10.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좋은 평가를 받은 책이라도 거짓이나 엉터리가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다.

11. "아니, 어떻게?"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견하면 저자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또 판단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 보라.

12. 왠지 의심이 들면 언제나 원본 자료 혹은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 의심을 풀지 마라.

13. 번역서를 읽다가 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머리가 나쁘다고 자책하지 말고 우선 오역이 아닌지 의심해 보라.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회인이 되어서 축적한 지식의 양과 질, 특히 이삼십 대의 지식은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어라.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 공자

 

아버지가 내 아이에게 남겨줘야 할 5가지 인생 지혜

 

하나, "웃고 즐기렴. 삶은 축제란다."

웃음은 마음뿐 아니라 몸에도 좋은 명약이란다. 행복한 사람은 웃고 즐기며,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축제로 만들어간단다.

둘, "사랑하렴. 먼저 안아주면 된단다."

젊어서는 최고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지만, 훗날 문득 깨닫게 된단다. 함께 사랑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 있는 삶이 진정한 성공임을.

셋, "배우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단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인연은 '내 인생의 훌륭한 스승'이란다. 그들에게 지혜를 전수받으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를.

넷, "살펴보렴. 꿈을 따라갈 수 있단다."

지나친 경쟁심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방향을 잃을 수도 있단다. 오랜 인생의 여행길, 잠시의 여유는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단다.

다섯, "괜찮다. 나를 넘어서렴."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존경이 아니란다. 나를 넘어 더욱 위대한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란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그렇다고 아무나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또 열심히 해야 하는 일이고…"

- 농사일!

 

"'암부고반'한 사람이 되지 말고, '명쾌긍솔'한 사람이 되자!"

암부고반暗否苦反 : 암뭉하고 부정적이며 고통스런 표정의 반항적인 사람

명쾌긍솔明快肯率 : 명랑하고 쾌활하며 긍정적이고 솔직한 사람

 

사막의 지혜

 

강이 있었다.

그 강은 머나먼 산에서 시작해 마을과 들판을 지나

마침내 사막에 이르렀다.

 

강은 곧 알게 되었다.

사막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그때 사막 한가운데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사막을 건널 수 있듯이

강물도 건널 수 있다."

 

강은 고개를 저었다.

사막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강물이 흔적도 없이 모래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고.

바람은 공중을 날 수 있기에

문제없이 사막을 건널 수 있는 것이라고.

 

사막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 바람에게 너 자신을 맡겨라.

너를 증발시켜 바람에 실어라."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강은

차마 자신의 존재를 버릴 수 없었다.

그때 문득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언젠가 바람의 팔에 안겨 실려 가던 일이.

 

그리하여 강은 자신을 증발시켜

바람의 다정한 팔에 안겼다.

바람은 가볍게 수증기를 안고 날아올라

수백 리 떨어진 건너편 산꼭대기에 이르러

살며시 대지에 비를 떨구었다.

 

그래서 강이 여행하는 법은

사막 위에 적혀 잇다는 말이 전해지게 되었다.

- 수피(이슬람 신비주의) 우화시

 

 

 

posted by 황영찬

네덜란드의 트리즈

 

물리적 모순에 빠진 문제, 해답은 주변 자원에 있다

 

네덜란드는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바다 건너로는 영국과 마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네덜란드는 1300년대에 이르러 공업ㆍ무역ㆍ상업이 발달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게 된다. 특히 플랑드르 지역은 부와 지식을 함께 갖춘 시민계급이 급성장하면서 당시 유럽에서 가장 발전한 곳으로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당시 네덜란드는 프랑스에 속해 있어 프랑스 왕에게 엄청난 세금을 내야 했다. 네덜란드는 프랑스 왕에게 반기를 들고 자유국가를 이루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교황과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왕을 배반하면 200만프랑을 배상할 것을 교황과 약속한 문서가 화근이었다.

네덜란드, 특히 플랑드르 지역 상공인들은 문제를 어떻게 분석하고 해결책을 도출해야 할까? 트리즈 이론을 적용해보자.

트리즈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문제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하여 문제와 그 문제의 원인을 구분할 것을 추천한다.

트리즈에서 문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물리적 모순(딜레마 문제)으로 정의된다. 플랑드르 지역 상공인이 직면한 문제는 프랑스 왕을 배반해야 하지만 프랑스 왕을 배반하지 말아야 하는 물리적 모순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물리적 모순의 원인을 유추해보자. 프랑스 왕을 배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금을 덜 내고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프랑스 왕을 배반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황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즉 자유를 얻으려고 하면 교황과 한 약속을 어겨야 하고 교황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하면 자유를 얻지 못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것이 충돌하는 것을 기술적 모순(상충 문제)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두 번째 단계로 트리즈는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할까? 하나는 프랑스 왕을 배반하면서 교황과 한 약속을 어기지 않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왕을 배반하지 않으면서 자유를 얻는 방법이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선택한 해결책의 방향에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플랑드르 지역 상공인은 프랑스 왕을 배반하지 않으면서도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해결책으로 선택하고, 이를 위해 사용 가능한 자원을 탐색해 활용한다.

플랑드르는 영토 문제로 프랑스와 해묵은 앙숙관계인 영국을 자원으로 활용한다. 당시 프랑스 땅에 상당한 영토를 가지고 있던 영국을 꼬드겨서 프랑스와 전쟁을 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전쟁에서 프랑스가 불리해지면 플랑드르 지역에 대해 자유를 얻으려는 생각이었다.

플랑드르 상인들은 양털을 팔러 온 영국 수출업자들을 통해 영국 국기에 영국 상징인 사자문양과 프랑스 상징인 백합문양을 함께 그려 넣게 했다. 이미 프랑스 땅에 상당한 영토를 가지고 있던 영국으로서는 프랑스 일부 지역도 영국 영토이므로 영국 국기에 프랑스를 상징하는 백합문양을 포함시키는 게 이치에 맞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기 제작은 영국과 앙숙관계인 프랑스를 심각하게 자극한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백년 전쟁을 치르게 된다. 백년 전쟁에서 초반에는 영국이 대승을 거두어 파리까지 진격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플랑드르 상공인들은 원하는 독립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1500년대에 이르러 플랑드르 상인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새로운 전략적 노력을 하게 된다. 1500년대에 이르러 프랑스 왕에게 네덜란드 지배권을 넘겨받은 에스파니아 왕을 배반하면서도 교황과 한 약속을 지키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이러한 전략을 선택했다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트리즈의 세 번째 단계인 주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플랑드르 상인들은 1527년 마틴 루터가 불을 붙인 종교 개혁을 적극 활용했다.

네덜란드는 종교개혁에서 가장 큰 주동 세력이 되면서, 교황과 관계를 단절하고 마틴 루터와 장 칼뱅의 신교를 선택했다. 결국 에스파이나 왕을 배반하고 독립을 주장하면서 교황과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교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1300~1500년대 당시 최대 역사적 사건이던 백년전쟁과 종교전쟁을 트리즈 시각으로 플랑드르 상공인의 전략적 선택과 연결해 이해하려는 시도도 가치가 있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김효준 트리즈(Triz:창의적 문제해결) 전문가]

ⓒ 매일경제 & mk.co.kr

 

 

 

 

posted by 황영찬
2013. 8. 22. 09:26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90 네 속의 나 같은 칼날

 

강유정 시집

1995, 문학과지성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3861

 

811.6

강66ㄴ

 

문학과 지성 시인선 154

 

"감동은 백포교가 칼을 수평에서 정면으로 거두자마자 앞으로 다가선 군사들의 가운데로 파고들었다. 그는 칼을 아래에서 사선을 그으며 위로 치켜올려 몸을 반쯤 돌리는 은망을 취하였으니, 칼날이 둥글게 틀어 공격하는 구렁이의 이빨과 같았다. 이는 적의 공격을 이용하여 적을 막는 법이었다. 감동을 급습하였던 백포교는 제 편인 왼쪽의 군사 측면에 서게 되고, 수룡은 깊숙이 들어와 백포교의 뒤에 있었고 감동은 오히려 세 군사들 가운데 박혀버렸던 것이다. 가운데 섰던 군사가 허리에서 가슴 위에까지 비스듬하게 칼을 맞고 뒤로 넘어졌다. 감동은 그 동작에 연이어 좌익이 되어 오른편 끝에 있던 군사의 좌측을 빠져서 다시 집 쪽으로 들어가며, 그의 어깨를 재빨리 찔러 빼고는 툇마루 앞으로 돌아 섰다.

셋에 군사 하나를 베었고 다른 하나를 찔렀으며 여섯에 돌아섰으니, 유수룡과 백포교와 나머지 군사는 솔가지 더미와 툇마루 사이에 일직선으로 몰려 있었다."

그래 적을 베기는 은망(銀蟒)도, 비연착충(飛燕捉蟲)도 좋다. 그러나 내 속의 기격(奇擊)의 칼날은 어쩐단 말인가.

시인 강유정씨는 195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1976년 『현대문학』에 「이 강물 마시고」「늦은 편지」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푸른 삼각형』(1983)이 있다.

시집 『네 속의 나 같은 칼날』은 언어로 된 은장도 같은 것이다. 시인은 강철을 담금질하고 벼려서 날선 칼을 만들 듯이 언어를 벼려서 시를 만든다. 그래서 그의 시는 짧고 날카롭다. 대부분의 짧은 시가 운율에 기대어 시적 힘을 발산하는 데 비해 그의 시는 묘사와 회화적 힘에 기댄다. 그의 시는 뾰족한 끝을 보고 난 뒤에 남는 잔상처럼 우리들의 맨살을 뚫고 들어온다.

 

自序

 

무엇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이 삶의 짧은 순간에 내가 쓰고 있는 것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내가 만나는 것들 속에서 나는 무엇일까. 존엄한 있음 속에다 내 칼날을 들이대는 짓은 아닌가. 하찮은 의미 몇을 도려내기 위해 그 속으로 집어넣는 무모한 칼질은 아닌가. 이 무모한 칼질의 두려움은 또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가뭄의 끝이었다. 몇십 년 전 만든 못이 처음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예전에 마을이던 자리였다. 마을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햇빛 가득한 양지 쪽에서 슬근슬근 일어서는 마을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여뀌풀 사이로 면도날처럼 반짝이는 말들의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그 풍경은 또 얼마나 잠시였는가.

1995년 봄

강 유 정

 

차례

 

▨ 自 序

나 같은 칼날 / 비 / 누드 / 낡은 오후 / 피에로 / 바다의 새는 흰빛일까 / 어젯밤 바다에서 바이올렛 / 막차를 기다리며 / 몽골리언 / 불면 / 수몰 지구 / 친구 / 색감 / 여우비 / 화투판 / 서상환의 刻 / 신문지로 바른 벽 / 석가에게 / 소묘집 / 赤土의 잠 / 가죽나무 그늘 / 실밥을 뜯다 / 여울에서 / 밥물 / 붉은 머리 / 풀잎 사이 / 금사매 / 연습 / 급매도 / 세상 이야기 / 가뭄 더위 / 篆刻 몇 방 / 홍매 / 폐차장 / 차꽃 / 낡은 그림 / 우수 경칩 / 별이 와 닿는 / 춘란 / 도시의 칸나 / 채송화 / 草木染 / 물끝을 쪼는 / 바라보는 저쪽 / 낮 고양이 / 나루 / 대숲 사이로 / 늙은 아버지의 전생 / 다시 지나는 길 / 밥상을 차리다 / 개울가의 풀 / 버린 집 / 그녀의 엽서 / 풀의 뼈 / 눈썹 위로 겨울 / 유년의 강물 / 輓章 / 어둠 속에서 노래 / 청춘 / 붉은 비 1 / 붉은 비 2 / 붉은 비 3 / 붉은 비 4 / 붉은 비 5 / 붉은 비 6 / 붉은 비 7 / 붉은 비 8 / 붉은 비 9 / 붉은 비 10 / 붉은 비 11 / 붉은 비 12 / 붉은 비 13 / 붉은 비 14 / 붉은 비 15

▨ 해설 · 덧없는 존재의 일순, 그리고 유미적 허무주의 · 송희복

 

청춘

 

비 내리는 단풍 끝 무슨 그리움이 남았는가

환하게 낡은 골목길 위로

우리는 젖어서 접었다 펴는 우산 사이

잠시 붉었다 지는 꽃이었다

 

 

조금 열려진 창 사이로 떨어지는 비

손끝에 묻어두고 사는 은빛 거미줄처럼

섬세하고 무서운 여자

창을 열면 온 세상 다 받아내는

 

여우비

 

낮잠의 밖으로

여우비는 얼마나 올까

이 세상 구겨놓은 이력서 몇 장

하루이틀 등짐 진 블록담 아래

마지막 붉은 귀의 채송화 몇 송이

"속임수의 술잠에서 깨어나서"

지워졌다 새겨졌다 비 오는 거기까지

 

밥물

 

늑었다 가을 저녁 샛강을 건너는

굽 낮은 구두를 적시는 여우비

낡은 버스에 기대 잠든 물별이 두 개 나머지 잠은 소리없이

잠긴 비를 받아내는 샛강 한쪽 개참꽃이 무성했다

옷을 벗으면 저문 쪽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끓이는 밥물

 

여울에서

손마디를 꺾는 소리에도 다시 여울이 번지고

하늘 전체가 강물처럼 흔들거렸다

담홍의 얇은 강은 붉고 가벼운 유난히 시린 허리께를 내놓고

그렇게 젖어서 걷는 저쪽, 노 젓는 배가

기웃

 

금사매

 

손뼉 한 번에

꽃 하나 피우려 했는데

물 뿌려

비 내릴 뿐 금사매 핀 양지 쪽 강물

 

赤土의 잠

 

땅이 붉어서 적토라 부르는 그 땅의 새는 어디로 갔을까 돌이 아름다워 풀이 날카로운 그 새는 어디로 갔을까 이 세상 쪼아가는 매서운 길 한뎃잠을 자다 깨어나니 콧물 눈물 범벅의 얼굴 아아 나도 모르는 눈물이 깜깜한 잠속에 있었던가

 

輓章

 

얕은 내 깊게 건너는

바위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받아내는

이마와 꽁지가 빨간

만장 사이로 몇 줄기 비를 헤아리는

 

누드

봄에 시드는 꽃

몇 장

엽서 같은 꽃

잘못 발송된 그대나 나나

우리에게 언제나

약간의 비애를

주는 귓바퀴를 붉히며

잘못 찍힌 쉼표

 

색감

허리가 외로운 날은

풀잎으로 쓰러지는 가슴은 없을까

그녀와 술을 섞어 먹으면서

수채화처럼 눈이 잠기는 오후

색은 얼마나 낡을 수 있을까

 

홍매

 

탱자나무 그늘 잊었다

그늘 속에 홍매 몇 송이

가지처럼 빨간 라디오 안테나

조금 열려진 창 너머

잘 말라붙은 안개꽃

머리를 말리던 여자의 하얀 팔목

 

우수 경칩

 

어디쯤은 건너뛰어도 그냥인 세상

그런 물빛이람 초록 따위도 모자라는

귀밑머리

우수 경칩의 서릿발 여자

슬픈 일이면 다 주어버릴

단조 몇 소절의 바람기

 

물끝을 쪼는

 

물끝을 쪼는 비애

잦은 비에 쓰러져 흙을 묻히는 풀잎

잘못 밟은 보도 블록 사이로 파랗게 돋아나는

불륜의 유혹

 

붉은 비 12

 

물파스 냄새가 난다.

비가 조금씩 뿌려지기 시작한다. 어깨가 조금씩 흔들거리더니 장면은 보리밭이다.

작은 개울이 흐르고 그녀의 어깨선도 개울처럼 조금씩 흐르고 있다.

내 어깨 가까이 그녀 어깨가 개울의 물소리처럼 귀를 세운다. 개울을 건너 아무도 없는 창밖의 하늘. 부옇게 비안개로 흐려져 있는 풍경.

그녀를 만난 곳은 책방이다. 파르르프르르 책장을 넘기는 그녀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훔친다.

그녀의 몸에서 바람개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창밖은 여전히 흐르고 풍경은 바람에 조금씩 지워져 보이곤 한다.

그녀는 붉은 샌들을 딸딸 끌고 간다. 흰 양산을 쓰고 아무도 타지 않는 한낮의 전철을 기다린다. 풍경은 무겁게 젖어 있고 바람개비 도는 소리를 내며 그녀가 내 앞을 지난다. 그녀의 다리를 걸었다. 그녀는 넘어진다. 붉은 샌들이 벗겨지고 언뜻 그녀의 가슴이 출렁, 출렁이는 치마 밑으로 희고 곧은 다리를 본다. 그녀는 바람개비를 돌리며 달아난다. 개울 위로 새까만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간다. 파르르프르르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자막은 이제 나오지 않는다. 창밖에는 아무도 없고 젖어 있다. 바람개비 돌아가는 어깨가 내 어깨 가까이 기우뚱한다.

 

나 같은 칼날

 

감동 없이 무너지는 날들

견딜 수 없는 잦은 비 끝으로

종이꽃을 접었다 편다

너무 얇아 그늘이 투명한 빛 같은

네 속에 든 나 같은 칼날

감동 없는 날은 그렇게 베이고 싶다

 

붉은 비 4

 

지하철을 내렸을 때 선로를 받치고 섰는 거대한 지주들 사이로 자갈을 보이며 물이 흘렀다. 바닥을 보이는 강을 꺾어 돌아섰을 때 우리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어떤 마을에 와 있었다. 우리는 그때야 지하철을 내렸을 때 검표원이 없었던 것을 기억했고 그곳이 정류소가 아니었던 사실도 기억해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그외의 것은 어떤 것도 기억에 없었다. 마을의 표지판은 없었다. 우리가 그의 초대를 받고 마을에 가야겠다고 마음으로 응낙했을 때부터 사단은 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막상 텅 빈 마을에 빈터만 덩그렇게 남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을 이루었던 초석만이 몇 이끼가 마른 채로 남아 우리의 마중을 끝마쳤을 때 참으로 막막하였다. 여뀌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마을 터를 덮고 있는 것은 더욱 우리를 낯설게 하였다. 그리고 눈부시게 밝은 빛이 중천에 떠 있었는데 눈이 부시지 않는 그런 빛의 덩어리였다. 수몰되었다 다시 육지로 드러난 마을. 도대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우리가 이곳에 도착해서 정신차려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의 전부였다. 그리고 우리들 신체의 많은 부분이 지워지고 없었으나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다. 마을은 빛 속에 잠겨 있어도 물 속에 잠겨 있는 듯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이야길 나누고 있었는데 자문자답이었을 뿐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인골 몇 조각을 주웠다. 그 인골들은 상아로 깎은 듯 깨끗하고 단아했다. 우리는 그 인물이 누구의 것인지를 금방 식별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들 몸에서 사라져간 부분들이었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