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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1. 11:25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15  송광사 Songgwangsa

 

글 / 강건기, 김성우, 권희경●사진 / 김종섭, 김성우, 안장헌

1994,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8006

 

082

빛12ㄷ 150

 

빛깔있는 책들 150

 

연혁 - 강건기------------------------------------------------------------------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방콕에 가서 남방불교를 연구했다. 미국 뉴욕대학에서 종교한 석사 과정 수료, 동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북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전북 불교대학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불교와 기독교」「마음 닦는 길」「붓다의 메아리」등이 있고 '지눌의 돈오점수 사상' '기도와 마음 수행'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건축 - 김성우------------------------------------------------------------------

연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건축 및 도시계획 석사, 미시간 대학교 건축 및 미술사학 박사. 현재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성주한개마을」「괴산 김기웅 가옥」 또한 역서로 「원야」가 있다.

 

유물 - 권희경------------------------------------------------------------------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졸업, 일본 구주대학 대학원 미학미술사 전공,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북대학교 박물관 전임 강사를 거쳐 현재 효성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고려의 사경」을 비롯하여 '고려 사경의 발원문에 관한 연구(1, 2)' '변상화에 관한 연구' '만주 속의 한국 미술'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사진 - 김종섭(본사 사진부 차장), 김성우(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안장헌(사진작가)

 

|차례|

 

송광사의 정신 및 한국 불교에서의 위치

송광사의 연혁

송광사의 입지 및 배치

송광사의 건축

송광사의 유물

참고 문헌

영문 요약

 

▲ 송광사 전경

▲ 비림(碑林)의 비석들  송광사는 보조 국사를 비롯한 큰스님들에 의해 한국 불교의 전통을 확립하여 오늘날까지 그 맥을 잇고 있는 승보 사찰로서, 큰스님들이 남기신 많은 사연들이 비석들에 새겨져 있다.

▲ 보조 국사의 사리탑  보조 국사 지눌의 사리가 봉안된 탑으로서 관음전 뒤쪽 언덕 위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 보조 국사의 지팡이  보조 국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에 꽂았는데 그 나무가 자라났다고 하며, 스님이 돌아가시던 날 이 나무도 시들해지더니 결국 죽었다고 한다.

▲ 대웅보전 안의 불상들  닫집으로 장엄한 불단 위에는 과거의 연등불, 현세의 석가모니불, 미래의 미륵불의 삼세불과 지장, 관음, 문수, 보현보살의 네 분 보살을 모셨다.

▲ 비사리 구시  대중들의 밥을 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 대웅보전 신중탱화(神衆幀畵)

▲ 보조 국사 영정  국사전에 모셔져 있는 이 영정은 다른 열다섯 분과는 달리 영정 앞에 향로와 촛대가 놓여져 잇고, 매년 3월에는 종제를 지낸다.

▲ 일주문 편액  '조계산 대승선종 송광사'라는 글씨가 사찰의 위치와 성격을 말해 준다.

▲ 승보전 석가여래와 1,250비구들  승보전에는 부처님 당시의 1,250명 비구들을 한 교단에 모셨다.

▲ 1930년경 송광사(위)와 현재의 송광사 전경(아래)

▲ 송광사 배치도

▲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 청량각  송광사에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개울의 다리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 일주문  사역에 진입하는 첫번째 문으로 척주각, 세월각의 두 작은 건물이 문 안에서 사람을 맞이한다.

▲ 우화각과 천왕문이 서로 연결되어 만드는 긴 터널(아래)을 빠져 나오면 종고루를 맞이하게 된다.(위)

▲ 종고루의 밑(아래)을 다시 한번 빠져 나오면 계단 위로 대웅전이 보인다.(위)

▲ 청량각  걸어서 지나갈 때에는 평범한 건물같이 보이는 청량각이지만(가운데), 개울 쪽에서 바라보면 석조의 홍교 위에 정자같이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이다(위). 청량각 속을 통과하면서 위를 쳐다보면 보 위에 턱을 괴고 있는 용머리가 사람을 맞이한다(아래).

▲ 일주문  여러 층의 공포가 무거워 보이는 일주문을 지나면서(위) 두 개의 편액을 마주하게 된다.(아래)

▲ 세월각과 척주각  죽은 자의 혼을 실은 가마인 영가도 남녀가 따로 세월각과 척주각에서 속세의 때를 벗어야 사찰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두 건물이 마치 사찰 어귀에 서서 과거의 인연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남녀같이도 느껴진다. 아마도 한국 전통 건축 가운데 제일 작은 건물일지 모른다.

▲ 침계루  황색, 적색, 청색의 색조 구성이 두드러진다.

▲ 종고루  원래 해탈문이 있던 위치에 누각 형식으로 지어진 종고루의 2층에는 범종, 운판, 목어, 홍고 등 법구가 있다.

▲ 우화각  송광사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고 하는 우화각은 홍교와 함께 불국으로 향하는 선승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곳이다.

▲ 천왕문 안 사천왕상  동방의 지국천왕(첫번째), 남방의 증장천왕(두번째), 서방의 광목천왕(세번째), 북방의 다문천왕(네번째)

▲ 대웅보전 모서리의 공포부분

▲ 1930년경의 대웅전(위)과 지금의 대웅전(아래)

▲ 관음전

▲ 승보전  대웅전 건물을 옮겨 지은 승보전은 승보 사찰로서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석가여래, 가섭, 아난 등 십대 제자와 십육성, 1,250대비구를 모셨다.

▲ 지장전  지장보살과 시왕이 모셔져 잇는 지장전은 원래 명부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이전, 증축한 것이다.

▲ 약사전  단칸 규모의 아주 작은 전각으로 보물 제302호로 지정되어 있다.

▲ 영산전  보물 제303호인 영산전 내부에는 목조여래 좌상과 팔상도가 있다.

▲ 진여문

▲ 하사당 종단면도

▲ 하사당 입면도

▲ 하사당과 공포  보물 제263호인 하사당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요사채로 오른쪽 부엌의 상부 지붕에 구멍을 내어 소슬지붕 형식으로 환기공을 장치한 특이한 건물이다.

▲ 응진당  석가여래와 16나한을 봉안한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건물이다.

▲ 국사전  16국사의 영정을 봉안한 국사전은 송광사의 상징적 건물로서 석조 기단이 특이하다.

▲ 국사전 종단면도

▲ 진영당과 편액  풍암 스님 문하승들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진영당은 그 편액이 '풍암영각'이라 적혀 있다.

▲ 목조삼존불감  보조 국사 지눌이 항상 지니고 다니던 불감으로 국보 제4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감은 중앙에 불좌상과 그 좌우에 나한과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는 것으로 매우 작으면서도그 속에 조각된 상들은 원형 조각에 가까울 만큼 고부조이며 세부 묘사가 정확하고 정교하여 우수한 조각 기술을 보여 주고 있다. 높이 13.9센티미터.

▲ 고려고종제서  고려 고종이 혜심 진각 국사에게 대선사를 제가한 원문으로 국보 제43호인데 고려시대의 선사 · 대선사 제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 고려시대문서 가운데 노비첩  보물 제572호로 지정된 고려시대문서는 2축인데 그 하나가 수선사형지기이고 다른 하나는 노비첩이다. 노비첩은 백지에 먹으로 쓴 것으로 당시 수선사의 규모를 비롯해서 노비 제도 등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 송광사대반열반경소

▲ 송광사묘법연화경찬술

▲ 송광사 경패  송광사에 전래되고 있는 대장경을 보관하는 목함의 표면에 부착한 표지물로서 경명(經名)을 새긴 43개의 경패들인데 보물 제175호이다.

▲ 송광사 금동 금강 요령(왼쪽)

▲ 송광사 금동 요령  보물 제176호인 고려시대의 금동 요령은 몸체가 사각형으로 각면이 거의 원형에 가까운 모양이다.(오른쪽)

▲ 국사전 내부의 16국사 탱화  송광사가 배출해 낸 나라를 빛낸 고승들 곧 보조 국사를 비롯한 16국사의 영정 16폭이 국사전에 봉안되어 있다.

▲ 고봉 화상 진영  국사전에 모셔져 있는 16국사탱 가운데 특이한 모습인 고봉 화상 진영은 고려시대의 15국사와는 달리 조선시대의 국사로서 머리가 긴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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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3. 1. 29. 14:34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14  탈

 

글 / 심우성●사진 / 박옥수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8005

 

082

빛12ㄷ 149

 

빛깔있는 책들 149

 

심우성(沈雨晟)--------------------------------------------------------------

1934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출생한 민속학자이자 1인극 배우이다. 현재 공주 민속극박물관장으로 있으며 극단 서낭당의 대표이기도 하다. 저서로 『무형문화재 총람』『한국의 민속극』『한국의 민속놀이』『마당굿 연희본』『남사당패 연구『민속문화와 민중의식』이 있다. 그리고 1인극 작품으로는 『쌍두아』『문』『남도 들노내』『넋이야 넋이로구나』『판문점 별신굿』『새야 새야(합동작품)』가 있다.

 

박옥수(朴玉修)--------------------------------------------------------------

1949년생으로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였고 현재 대한민국 사진전람회 초대작가이다. 1987년에 제6회 대한민국 사진전람회 초대작가상을 수상하였고, 1991년에는 『탈』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서울과 광주에서 연 바 있다. 현재 토탈 스튜디오의 대표로 있다.(전화 778-3611)

 

|차례|

 

머리말

탈이란 무엇인가

우리 탈의 역사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탈의 종류

    하회(河回) 탈과 병산(屛山) 탈(국보 제121호)

    방상씨(方相氏) 탈(중요 민속자료 제16호)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탈놀이'의 탈들

    산대놀이

    해서(海西) 탈춤

    오광대(五廣大)

    야유(野遊)

    서낭굿 탈놀이

    뜬광대 탈놀이, 남사당 덧뵈기

     사자놀이 - 북청 사자놀음

     소놀이 굿

    춤탈 - 처용탈, 학탈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 나무탈들

    토속적인 탈들, 오늘에 살고 있는 탈들

우리 탈의 전형성을 찾아서

탈놀이 보유 단체 주소록

 

▲ 하회 별신굿 탈놀이의 한 장면  탈이란 본디 제 얼굴과는 다른 형상의 '얼굴 가리개'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저 제 얼굴을 가리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탈을 씀으로써 본디의 얼굴과는 다른 인물이나 동물 또는 초자연적인 신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의 인격 내지는 신격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 하회 별신굿 탈놀이의 한 장면

▲ 봉산 탈춤의 사자

▲ 처용탈

 

▲ 병산탈 양반

▲ 병산탈 선비

▲ 하회탈

▲ 하회탈 양반

▲ 하회탈 각시

▲ 하회탈 부네

▲ 하회탈 선비

▲ 하회탈 중

▲ 하회탈 백정

▲ 하회탈 이매

▲ 하회탈 할미

▲ 하회탈 초랭이

▲ 양반 계급의 장례식 행렬(日本 改造社版 地理講座 日本편 6권, 1934년 12월, 240쪽)

▲ 옛 장례 행렬의 방상씨

▲ 나무로 된 방상씨 탈

▲ 양주 별산대놀이 탈

▲ 양주 별산대놀이의 왜장녀

▲ 송파 산대놀이의 취발이

▲ 봉산 탈춤의 취발이

▲ 봉산 탈춤의 미얄

▲ 강령 탈춤의 소무

▲ 강령 탈춤의 미얄

▲ 은율 탈춤의 새맥시

▲ 은율 탈춤릐 팔목중

▲ 통영 오광대의 할미양반(영감)

▲ 고성 오광대의 홍백가

▲ 고성 오광대 차양반

▲ 고성 오광대 비비새

▲ 가산 오광대 영감

▲ 동래 야유 말뚝이

▲ 수영 야유 할미

▲ 연잎

▲ 포도부장

▲ 왜장녀

▲ 노장

▲ 말뚝이

▲ 원숭이

▲ 취발이, 눈끔쩍이, 샌님(왼쪽부터)

▲ 먹중, 신할아비, 미얄할미(왼쪽부터)

▲ 양반 광대놀이 키탈(남)

▲ 양반 광대놀이 바구니탈 각시

▲ 양반 광대놀이 바구니탈 사자

▲ 짚으로 만든 방상씨 탈

▲ 동해안 별신굿 범탈

▲ 하회 별신굿 탈놀이 등장 인물 전원(1930년대)

▲ 1930년대 남사당패와 탈놀이 '덧뵈기'의 탈들

 

 

posted by 황영찬
2013. 1. 29. 09:13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13  三國志 3 적벽의 영웅들

 

나관중 지음 · 정비석 옮김

2007, 은행나무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14856

 

823.5

나15삼6  3

 

⊙ 등장인물

 

제갈량諸葛亮(181~234년)

촉(蜀)의 승상. 자는 공명(孔明). 삼고의 예로 유비와 수어지교를 맺게 되었다. 208년에는 적벽에서 조조의 군대를 크게 무찔렀으며, 214년에는 장비, 조자룡 등과 함께 성도를 공격했다. 223년, 유비가 병으로 죽자 유선을 받들어 촉을 다스리는 데 전념했다. 그러다가 227년에는 위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렸다. 이후 위나라와 여러 차례 싸움을 벌였으나 결국 위의 사마중달이 펼친 지구전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234년 오장원에서 대패한 후 병을 얻어 죽었다.

 

주유周瑜(175~210년)

오(吳)의 장수. 자는 공근(公瑾). 손책이 부친 손견을 잃은 뒤부터 장소와 함께 손책을 보좌하여 오나라의 기초를 공고히 했다. 200년에 손책이 죽고 19세의 손권이 뒤를 이었을 때, 그는 장소 · 정보 등 문무관과 함께 손권을 보좌했다. 그는 적벽대전에서 대승을 거둔 후 남군 태수가 되었다. 익주의 유장이 한중의 장로 공격에 고심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익주를 쳐서 장로를 평정하고, 이어서 마초와 동맹하여 조조를 멸할 계획을 세웠으나 원정 도중에 병사했다.

 

서서徐庶

유비의 막료. 자는 원직(元直). 원래의 이름은 복(福)이었다. 어려서부터 검술을 익혔으며, 의협심이 강해 친구의 원수를 갚아주고 형리에게 체포되었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도망쳤다. 그 후 느끼는 바가 있어 이름을 서(庶)로 바꾸고 무예 대신 학문에 힘썼다. 서서는 형주에 있던 유비의 막료가 되었다가 유비가 장판(長阪)에서 대패했을 무렵, 조조가 모친을 인질로 잡아두고 그를 불러들이자 눈물을 머금고 조조 휘하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비에게 제갈공명을 추천해 주었다.

 

노숙魯肅(172~217년)

오(吳)의 장수. 자는 자경(子敬). 그 역시 제갈공명, 주유와 함께 적벽대전에서 조조 군을 물리친 주역의 한 사람이다. 주유가 죽자 그의 유언에 따라 군세를 인계받았으며, 적벽대전 후 유비와 분쟁의 씨앗이 되었던 형주 분할 문제를 해결하여 상수를 경계로 분할하는 데 성공했다.

 

마속馬謖(190~228년)

유비의 장수. 자는 유상(幼常). 마량의 동생. 228년 봄, 촉의 중원 진출을 좌우하는 중요한 싸움에서 마속은 제갈공명의 지시에 따르지 않아 크게 패전하고 말았다. 이에 제갈공명은 후퇴를 감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전군에게 사죄하는 뜻에서 아끼는 마속을 처형했다.

 

장합張郃

조조의 명장. 자는 준예(儁乂). 관도의 싸움 때 원소와 의견이 맞지 않아 조조에게 투항한 후 각지에서 잇달아 승리를 거두었다. 215년, 한중의 장로 토벌에서 선봉대의 역할을 하고 한중을 수비했으나, 217년에 유비 · 법정에게 패했다. 이에 제갈공명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제갈공명을 쫓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전풍田豊

원소의 모사. 조조와 관도 싸움을 벌일 때는 지구전을 건의했고, 조조가 유비를 공격할 때 그 배후를 치도록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소가 남진을 개시하기 직전에도 간언했다가 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다가 원소의 패배가 결정적으로 확실해지자 어이없게도 원소의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다.

 

방통龐統(178~213년)

유비의 모사. 자는 사원(士元). 사마휘가 유비에게 천거한 인물인 '와룡과 봉추' 중 봉추가 바로 그이다. 유비의 지혜주머니로 법정 등과 함께 서촉 공략을 적극 추진했으나 성도 진격 도중 낙성 공방전 때 화살에 맞아 젊은 나이로 죽었다.

 

황충黃忠(?~220년)

유비의 장군. 자는 한승(漢升). '노익장'의 대명사. 원래 유표 휘하에서 장사를 지키고 있었으나, 적벽대전 이후 유비에게로 가서 무공을 세워 토로장군이 되었다. 218년에 한중을 공격할 때는 정군산에서 조조의 장수 하후연을 죽여 정서장군이 되었다. 같은 해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후장군이 되었다.

 

감택闞澤

손권의 모사. 자는 덕윤(德潤). 적벽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대장 황개의 거짓 항복 문서를 가지고 조조 군 진영을 드나들면서 교묘한 작전을 수행했다. 결국 조조로 하여금 황개의 항복을 믿게 만들어 적벽에서의 대패전을 맛보게 했다.

 

마량馬良(187~222년)

촉(蜀)의 모사. 자는 계상(季常). 마속의 형. 눈썹이 희었기 때문에 백미(白眉)라 일컬어졌으며, 여기서 '백미'라는 고사가 생겼다. 유비 휘하에서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애석하게도 이릉 싸움에서 전사했다.

 

모개毛

조조의 모사. 자는 효선(孝先). 조조가 연주목으로 있을 때 순찰관으로 초빙되었다. 이때 천자를 받들어 불신(不臣)을 다스리고, 농경을 일으켜 군량을 비축하라는 등 진언을 하여 조조의 천하 평정 계획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갈근諸葛瑾(174~241년)

오나라 손권의 막료. 자는 자유(子瑜). 제갈공명의 형. 동생이 촉나라를 받들고 있어 의심을 받기도 했으나 손권으로부터는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다. 215년에 오나라와 촉나라가 형주를 둘러싸고 공방전을 되풀이하는 동안 조조가 한중에 침입했다. 이에 유비가 손권에게 강화를 제의하여 회담이 열렸는데, 이때 쌍방의 대표로서 만난 것이 제갈 형제였다.

 

황조黃祖(?~208년)

유표의 장수. 원술의 명령을 받고 토벌하러 온 손견을 맞아 싸워 현산에서 그를 죽였다. 그는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다. 강하 태수로 있을 때 유표가 사신으로 보낸 예형의 불손한 태도에 화가 나서 그만 그를 죽이고 말았다. 자신은 208년에 손권과 싸우다 죽음을 맞이했다.

 

신비辛毗

조조의 부하. 자는 좌치(佐治). 처음에는 원소를 따랐으나 나중에 조조 휘하에 들어가 건의관이 되고, 이어 조비 · 조예를 섬겼다. 사마의가 오장원에서 제갈공명의 군사와 대치했을 때는 조예의 군사(軍師)로 가서 촉(蜀)의 도발에 응하지 말도록 조칙을 전해 출전을 막았다.

 

유엽劉曄

위(魏)의 모사. 자는 자양(子陽). 조조에게 인정을 받아 항상 측근에 있으면서 참모 역할을 했다. 관도 싸움에서는 벽력거(霹靂車)를 만들어 원소의 군사를 격퇴하고, 원소 군이 터널을 파고들어오자 깊은 도랑을 파서 막았다.

 

조인曹仁(168~223년)

조조의 사촌아우. 자는 자효(子孝). 관도 싸움 때 유비가 허도 남쪽에서 반란을 선동하자 이를 진압하였고, 적벽대전 후 서황과 함께 강릉에 머물며 추격군을 막았다. 그 후 번성에서 관우의 공격을 잘 막아냈으나, 220년 손권이 공격해 오자 성에 불을 지르고 철수했다.

 

허유許攸

원소의 막료. 관도 싸움에서 원소에게 여러 가지 헌책을 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조조에게 갔다. 조조는 기쁜 나머지 맨발로 뛰어나가 그를 맞이했다고 한다.

 

손부인孫夫人

유비의 후실. 손권의 누이. 유비가 서촉을 치러 간 사이 손권의 모략으로 본국에 송환되었다. 나중에 유비가 패하여 죽었다는 거짓 소문을 곧이듣고, 장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허저許

조조의 장수. 자는 중강(仲康). 조조의 측근에서 용맹을 떨쳐 무위장군이 되었다. 군중들은 그를 가리켜 '호치(虎癡)' 즉 미친 호랑이라 불렀다.

 

차례

 

관도 대전투

승기는 조조에게

원소의 패망

내분은 파멸을 부르고

곽가의 요절

주인을 구한 흉마

수경과 단복

아쉬운 작별

삼고초려

제갈공명

불붙는 강동 세력

공명의 첫 싸움

갈 곳 없는 유랑민

장판파의 두 영웅

강동에 이는 풍운

불 뿜는 설전

손권, 군사를 일으키다

주유의 책략

공명의 신기한 계책

고육지책

동남풍을 부르다

적벽대전

어부지리

주유의 헛수고

노장 황충

강동의 미인계

금낭삼계

 

數年徒守困

空對舊山川

龍豈池中物

乘雷欲上天

세월을 부질없이 보내기 몇 해던가.

옛 산천을 헛되이 대하고 있었네.

용이 어찌 늪 속에 살 수 있으랴.

우레를 타고 하늘에 오르려네.

 

八九年間始欲衰

至十三年無子遺

到頭天命有所歸

泥中蟠龍向天飛

팔구 년째부터 쇠락하기 시작하여

십삼 년이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으리라.

마침내 천명은 제대로 돌아와

흙 속에 묻혀 있던 용이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

 

山谷有賢兮

欲投明主

明主求賢兮

却不知吾

산속의 어진 선비는

명주에게 몸을 바치려 하건만,

명주는 어진 선비를 구한다면서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네.

 

新野牧

劉皇叔

自到此

民農足

신야목

유 황숙이

이곳에 오신 뒤로

우리 살림 풍족하네.

 

봉황이 하늘을 날음에

오동이 아니면 깃들지 않는도다.

선비가 한 곳에 엎드려 있음이어

주인이 아니면 섬기지 않는도다.

들에 나가 몸소 밭을 갊이어

내 집을 사랑함이로다.

잠시 마음을 칠현금에 붙임이어

가만히 때가 오기를 기다리도다.

 

一夜北風寒  萬里彤雲厚

長空雪亂飄  改盡江山舊

白髮老衰翁  盛感皇天祐

騎驢過小橋  獨嘆梅花瘦

하룻밤 북풍이 춥더니

만리에 붉은 구름이 두텁구나

장공에 눈발이 흩어져 날리니

강산에 옛 모습이 새로운 듯하도다.

백발의 노쇠한 늙은 몸이

황천의 도움이 왕성함을 느끼니

나귀를 타고 다리를 건너며

매화 여위였음을 혼자 탄식하노라.

 

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

큰 꿈은 누가 먼저 깨우는고

평생은 나 스스로 아노라.

초당에 봄 잠이 충분한데

창밖에 해는 길기도 하구나.

 

臨漳漳水之長流兮  望園果之滋榮

立雙臺於左右兮  有玉龍與金鳳

攬二喬於東南兮  樂朝夕之與共

장수의 강류에 임함이어, 원과의 자영을 바라보고,

좌우에 쌍대를 세움이어, 옥룡과 금봉이 있게 하고,

이교를 동남에 잡아맴이어, 조석을 같이 즐기기로 하리.

 

丈夫處世兮立功名

立功名兮慰平生

慰平生兮吾將醉

吾將醉兮發狂吟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어

공명을 세우리로다.

공명을 세움이어

평생을 위로하리로다.

평생을 위로함이어

내 장차 취하리로다.

내 장차 취함이어

즐겁게 노래를 부르리로다.

 

술 들고 노래하세, 인생이 그 얼만고

초로(草露)와 같다 할까, 지난날이 꿈 같구나.

슬픈 일 당할 때면 근심을 풀 길 없어.

이 시름 어찌 푸노, 술만이 약이로다.

푸르른 그대 옷깃 유유한 이내 마음.

사슴은 울어대며 풀을 뜯어먹는구나.

귀한 손 모시고 비파 타고 피리 부네.

밝고 밝은 저기 저 달 기울 줄이 있으랴.

마음속에 시름 오니 끊일 꿈 바이 없네.

백을 넘고 천을 건너 그런대로 살아가네.

오랜만에 서로 만나 옛 은혜를 생각한다.

달은 밝고 별 드문데 남으로 가는 까막까치.

두루 살펴 나무 찾되 의지할 가지 없네.

산은 높아 싫지 않고 물은 깊어 좋을레라.

주공이 밥 뱉으니 천하가 돌아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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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3. 1. 28. 09:04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12  버리고 떠나기

 

법정

2010, 샘터

 

 

시흥시대야도서관

SB042842

 

220.4

법74ㅂ c.2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다.

그것은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서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일상의 소용돌이에서 한 생각 돌이켜,

선뜻 버리고 떠나는 일은 새로운 삶의 출발로 이어진다.

 

미련없이 자신을 떨치고

때가 되면 푸르게 잎을 틔우는 나무를 보라.

찌들고 퇴색해가는 삶에서 뛰쳐나오려면

그런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법정法頂

 

70년대 후반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지어 홀로 20년을 사신 뒤 지금은 강원도 산골 작은 오두막에서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계신다.

자연의 벗이 된 후,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곧고 정갈한 글을 통해 세상에 나눠주고 계신다.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길상사' 회주를 맡아 가끔씩 산에서 내려오시는데 변하지 않는 침묵과 무소유의 철저함이 마치 자연을 닮은 곧은 나무를 보는 듯하다.

스님의 향기가 배어 있는 작품으로 <서 있는 사람들> <물소리 바람소리> <산방한담>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텅빈 충만> <무소유> <산에는 꽃이 피네> 등이 있다.

 

홀로 있고 싶을 때 나는 훌쩍 나그네길에 나선다.

 

차례

 

개정판을 내며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하여

 

생각을 씨앗으로 묻으라

화전민의 오두막에서 / 달 같은 해, 해 같은 달 / 생각을 씨앗으로 묻으라 / 묵은 편지 속에서 / 나의 휴식 시간 / 별밤 이야기 / 개울가에서 / 강변의 정자에서 /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 / 까치소리를 들으며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닦을 것인가

계의 공덕 / 윤달의 한국불교 / 도라지꽃 사연 / 잔인 무도해진 우리 인생 / 깨달음과 닦음 /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닦을 것인가 / 살아 있는 것은 다 한 목숨이다 / 입시에 낙방당한 부모들에게 / 무엇이 전쟁을 일으키는가 / 한국인의 맹렬성 /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라 / 우리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 화두선과 관법 / 어진 이를 가까이하라 / 선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 승가의 기초교육 / 그대가 곁에 있어도

 

소유의 굴레

소유의 굴레 / 통일을 생각하며 / 크게 버려야 크게 얻는다 / 녹스는 삶을 되돌아보라 / 자연은 커다란 생명체다 / 반바지 차림이 넘친다 / 닭벼슬만도 못한 중벼슬 / 가을이 오는 소리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여기 바로 이 자리 / 온화한 얼굴 상냥한 말씨 / 맑고 투명한 시간 / 누가 복을 주고 벌을 주는가 / 아름다움과 조화의 신비 / 겨울 하늘 아래서 /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버리고 떠나기

비오는 날에 / 운판 이야기 / 산승의 편지 / 단순하고 간소한 삶 / 버리고 떠나기 / 아가 아가 울지 마라 / 또 가을이네 / 아직 끝나지 않은 출가 / 인생을 낭비한 죄 / 어제 만난 사람들 / 그 일이 그 사람을 만든다 / 산에는 꽃이 피네 / 생명의 잔치에 동참하라 / 햇차를 들면서 / 인도양의 진주 스리랑카 / 장마철 이야기 / 남의 삶과 비교하지 말라 / 초가을 나들이

 

별밤을 가까이 하라. 한낮에 닳아지고 상처받은 우리들의 심성을

별밤은 부드러운 눈짓으로 다스려 줄 것이다.

 

해가 뜨면 밖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방에 들어가 쉬고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을 갈아 먹고 사니

누가 다스리건 그게 무슨 상관이냐.

 

이름 때문에 숨어 살기 어려워

마음 편히 쉴 곳이 없다.

지팡이 날리고 또 날려서

찾는 산이 깊지 않을까 두렵네.

- 휴정休靜 선사

 

산이야 나를 좋아할 리 없지만

내가 좋아서 산에서 사는데

한 산중에서 오래 머물다보니

번거로운 인연들이 나를 얽어매더라.

 

사람마다 한 권의 경전이 있는데

그것은 종이나 활자로 된 게 아니다.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네.

- 선가禪家

 

삼십 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사람은 죽고 집은 허물어져

마을이 황량하게 변해 버렸다.

청산은 말이 없고 봄하늘 저문데

두견새 한소리 아득히 들려온다.

한때의 동네 아이들

창구멍으로 나그네를 엿보고

백발의 이웃 노인

내 이름을 묻는다.

어릴 적 이름 알자

서로 눈물짓나니

푸른 하늘 바다 같고

달은 삼경이어라.

- 법정

 

바람은 자도 꽃은 지고

새소리에 산은 더욱 그윽하다

새벽은 흰구름과 더불어 밝아오고

물은 밝은 달 따라 흘러간다.

- 휴정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모두가 꿈속의 일인 것을

저 강을 건너가면

누가 ㅓ이고 누가 나인가.

 

누구나 한번은 저 강을 건너야 한다

나 또한 다를 바 없어

곧 바람 멎고 불꺼지리라

꿈속의 한평생을 탐하고 성내면서

너니 나니 하고 다투기만 하는가.

- 경허 선사

 

바람 잦아 머루 다래 떨어지고

산 높아 달이 일찍 진다.

내 곁에는 사람 그림자 없고

창 밖에 흰구름만 자욱하다.

- 부휴浮休 선사

 

깨달음이 개인적인 체험이라면,

닦음은 사회적인 의무와 나누어 가짐[廻向]으로 이어진다.

종교가 어느 문화 현상보다도 값질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체험에 그치지 않고 되돌리고 나누어 가지는

대사회적인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花落花開又一年

人生幾見月常圓

 

꽃이 피고 지기 또 한해

평생에 몇 번이나 둥근 달 볼까

 

빛의 비가 내리네

보이지 않는 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질문과 대답이 이루어지고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없네

여기 환희의 비가 내리네

하늘 한복판에서 활짝 핀 연꽃처럼

한번 빛의 비에 젖은 이는 더는 젖지 않으리

누가 이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

- 까비르(인도의 성자)

 

그대, 진정으로 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

무엇을 하든 무엇을 꿈꾸든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하라.

- 랄프 트라인(미국의 사상가)

 

물 속의 물고기가 목말라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웃는다

진리란 바로 그대의 집 안에 있다

그러나 그대 자신은 이걸 알지 못한 채

이 숲에서 저 숲으로 쉴 새 없이 헤매고 있네

여기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진리를 보라!

그대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보라

이 도시로 저 산 속으로

그대 영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여전히 환상에 지나지 않으리.

- 까비르(인도의 시인)

 

눈길을 걸을 때

함부로 밟지 말라

내가 걷는 이 발자국

뒷사람의 길잡이 되리니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사람들이 방안에 모여 별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문 밖으로 나와서 풀줄기를 흔들며 지나가는

벌레 한 마리를 구경했다.

까만 벌레의 눈에 별들이 비치고 있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는

벌레를 방 안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어느새 별들은 사라지고

벌레의 눈에 방 안의 전등불만 비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벌레를 풀섶으로 데려다 주었다.

별들이 일제히 벌레의 몸 안에서 반짝이기 시작했다.

- 류시화 <벌레의 별> 

 

우리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한편 소유를 당하는 것이며,

그만큼 부자유해지는 것이다.

우리들의 정신은 그만큼 부담스러우며

이웃에게 시기심과 질투와 대립을 불러일으킨다.

 

萬里靑天

雲起雨來

空山無人

水流花開

 

구만리 장천에

구름 일고 비 내린다

사람이 없는 텅 빈 산에

시냇물 흐르고 꽆 피더라.

- 황산곡黃山谷 (중국 송대의 시인, 서예가)

 

홀로 있는 시간은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이다.

홀로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라.

그렇지 못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맹목적인 겉치레의 흐름에 표류하고 만다.

홀로 있어야만 벌거벗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성찰할 수 있다.

 

벗이여, 어디 가서 '나'를 찾는가

나는 그대 곁에 있다

내 어깨가 그대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절이나 교회에서 나를 찾으려 하지 말라

그런 곳에 나는 없다

인도의 성ㅅ러운 불탑들 속에도

ㅚ교의 찬란한 사원에도

나는 없다

어떠한 종교의식 속에서도

나를 찾아낼 수 없으리라

다리를 꼬고 앉아 요가수행을 할지라도

채식주의를 엄격히 지킨다 할지라도

그대는 나를 찾아내지 못하리라

그대가 진정으로 나를 찾고자 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벗이여, 나에게 말해 다오

무엇이 신인가를

신은 숨 속의 숨이니라.

- 까비르

 

산중무일력 부지하세월  山中無日曆 不知何歲月

 

꽃을 보러 정원으로 나가지 말라

그럴 필요는 없다

그대 몸 안에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

거기 연꽃 한 송이가

수천의 꽃잎을 달고 있다

그 수천의 꽃잎 위에 앉아서

정원 안에서나

정원 밖에서도

늘 피어 있는 그 아름다움을 보라.

- 까비르

 

여섯 살 때 나는 내가 일곱 살을 향해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곱 살이 되자 나는 언제나 학교를 향해서 가고 있었으며, 그것은 보다 나은 인가니 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보다 나은 인간이 되었다기보다 나는 현실적이고 영리한 인간이 되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 나는 늘 성공을 향해서, 행복한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내 나이 쉰이 되고 보니, 때로 나는 내 자신이 무덤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참담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순간마다 내 자신에게 이렇게 묻느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스와미 묵타난다(인도의 성자)

 

잎이 말끔히 져버린 후박나무와 은행나무는

그 빈 자리에 내년에 틔울 싹을 벌써부터 마련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바로 생태계의 자연스런 리듬일 것이다.

이런 리듬이 없으면 삶은 지루하고 무료하고 무의미해진다.

이래서 자연은 우리에게 위대한 교사다.

 

현자의 눈에는 하늘은 남자이고 땅은 여자다. 땅은 하늘이 떨어뜨린 것을 키운다.

땅에 열이 없으면 하늘은 열을 보내고, 땅이 생기를 잃고 메마르면 하늘은 비를 내린다.

하늘은 아내를 위해 식량을 찾아 헤매는 남편처럼 땅 위를 맴돌고, 땅은 주부처럼 노상 바쁘고 자식을 낳아 젖을 먹인다.

땅과 하늘은 지혜롭게 일하므로 거기에도 지혜가 잇다고 생각하라.

땅과 하늘이 서로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면, 어째서 애인들처럼 마주보고 끌어안고 있겠는가.

땅이 없으면 어떻게 꽃이 피고 나무들이 자랄 수 있으리. 하늘은 또 무엇을 위해 물과 열을 만들어낼 것인가.

 

낮과 밤은 겉으로는 적이지만 같은 목적에 이바지하고 있다.

서로의 일을 완성하기 위해 밤과 낮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

밤이 없으면 인간의 본성은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따라서 낮에 소비할 것도 없으리라.

- R. A. 니콜슨 루미(회교의 시인이며 신비주의자)

 

잔 들고 혼자 안자 먼뫼흘 바라보니

그리던 임이 오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삼도 우움도 아녀도 몯내 됴하 하노라

- 고산孤山 윤선도 《산중신곡山中新曲

 

이 종소리 듣는 이마다 번뇌를 끊고

지혜 기르고 보리심을 발해서

지옥 고통 여의고 윤회에서 벗어나

부처를 이루어 모든 중생 건져지이다.

- 종송鐘頌

 

모처럼

지는 꽃 손에 받아

사방을 둘러본다.

 

지척엔

아무리 봐도

놓아 줄 손이 없어

 

그 문전門前

닿기도 전에

이 꽃잎 다 시들겠다.

- <그 문전門前>

 

하늘엔 유독가스 떠가고

강물엔 중금속이 흐르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짓밟히는 곳….

 

도시는 매연으로 뒤덮여

농촌은 농약에 찌들어

우리의 모든 꿈은 끝없이

공해로 사그라드는 곳….

- 공해풀이 마당극 <나의 살던 고향은…>의 가사 일부

 

봄풀을 깔고 선정禪定에 들면

솔바람 소리는 그대로 범패梵唄

티끌 하나 날아들지 못하는 이곳

죽음도 삶도 내 몰라라

- 왕유王維(당나라 시인이며 재가불자在家佛子)의 <변각사에 올라>

 

산속의 스님 달빛이 탐이 나서

물병 속에 함께 길어 담았네

절에 돌아와 뒤미처 생각하고

병을 기울이니 달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네.

- 이규보 <우물 속의 달을 보고>

 

깊은 산에 홀로 앉아 있으니

만사가 시들하여

진종일 문을 닫고

무생無生을 참구한다.

생애를 되돌아보면

별 물건이 없나니

다만 한 잔의 파에

한 권의 경책뿐.

- 부휴 선사

 

환상의 바다에 노닐기 칠십여 년

오늘 아침 이 몸 벗고 고향으로 돌아가네

텅 비고 고요해서 아무것도 없으니

보리니 생사니 떠들지 말게.

- 부휴 선사의 임종게偈

 

대체로 인간의 삶에는 나이가 귀하나니

이제 와 비로소 지난 일을 뉘우친다.

어떻게 하면 하늘에 닿는 저 바닷물 쏟아

산승의 '판사'란 이름 말끔히 씻을까.

- 휴정 선사 '스스로 비웃음[自嘲]'

 

보았네 못 보았네 떠들지 말고

그대도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

손님 접대는 다만 이것뿐

절집엔 원래 잔정 따윈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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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24. 15:11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11 추상화 감상법

 

글, 사진 / 유재길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8004

 

082

빛 12 ㄷ 148

 

빛깔있는 책들 148

 

유재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 졸업, 프랑스 파리 8대학 졸업, 미술평론가이며 조형예술학 박사, 강릉대학 미술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 논문은 '피터 브뤼겔의 회화의 상징성과 화면구성' '바자렐리 연구' '1960년대 시각미술 탐구그룹' 등이 있다.

 

|차례|

 

추상화란 무엇인가?

    추상의 의미

    구상의 의미와 역사성

    추상화의 탄생

    칸딘스키의 추상화

    몬드리안의 추상화

현대 미술 사조에 나타난 추상화

    미래주의 추상화

    절대주의 추상화

    구성주의 추상화

    다다이즘 추상화

    초현실주의 추상화

    앵포르멜 추상화

    추상표현주의 추상화

    다양한 표현의 추상화

한국 추상화의 전개

    한국의 앵포르멜

    한국의 개념적 추상

    새로운 매체 활용의 추상화

앞으로의 추상화

용어 해설

참고 문헌

 

지오바니 벨리니(G. Bellini, 1430~1516)의 '레오나르도 로르당총독'  가장 전형적인 아카데믹한 초상화의 유형이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베니스파의 거장으로 극사실에 가까운 초상화를 제작하여 후대에 많은 영향을 준다. 1501년경 작품.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 레오나르도 다 빈치(L. Vinci, 1452~1519)의 '모나리자'  섬세한 인물 묘사와 공기 원근법으로 화면의 깊이를 주며, 뛰어난 인물의 성격 묘사로 미술사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인물화로 인정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1503~1505년 작품. 파리 루브르미술관 소장.

▲ 클레(P. Klee, 1879~1940)의 '광대 세네시오'  광대의 이미지를 잘 살리면서도 원과 사각의 단순한 형태 구성과 황색 계통의 원색 사용으로 순수 추상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작품이다. 1922년 작품. 독일 발(Bale)미술관 소장.

▲ 구석기 원시 동굴 벽화 '들소'  기원전 13500년경의 제작으로 사냥이 잘되게 해달라는 주술적 의미와 들소의 사실적 묘사가 잘 나타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된 그림이다. 스페인 알타미라동굴.

▲ 뮈브리지(E.Muybridge, 1830~1904)의 '인체의 움직임 No 133'(흑백 사진)  사진작가인 뮈브리지는 인물과 동물, 새의 움직임을 연속 촬영하여 평면에 실제 움직임 표현을 강조한다. 미래주의 화가와 키네틱 미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1887년 사진 촬영. 뉴욕 개인 소장.

▲ 세잔(P. Cezanne, 1839~1906)의 '생빅토와르산'  자연의 형태가 점점 더 파괴된 후기 작품으로 어렴풋이 산과 집들이 색면과 입방체로 나타난다. 세잔은 입체파와 추상미술 화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대표적 화가이다. 1904~1906년 작품. 독일 발(Bale)미술관 소장.

▲ 피카소(P. Picasso, 1881~1973)의 '아비뇽의 처녀들'  이 작품은 입체파를 탄생시킨 피카소의 대표작이다. 원근법 무시로 3차원의 환영적 공간이 파괴되며 해체된 인물 묘사로 아카데믹한 구상화의 탈피가 시작된다. 부분도에서 보듯 원시적 인물 표현으로 대상을 나타내고자 하는 화가의 주관적 표현이 강조된다. 1907년 작품.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 칸딘스키(V. Kandinsky, 1866~1944)의 '푸른 기사'  두터운 질감을 바탕으로 인상주의 화풍을 따른 초기 작품이다. 1904년 작품. 취리히 개인 소장.

▲ 칸딘스키의 '추상 수채화'  추상화 No 1로 유명한 이 작품은 1910년 제작이 아닌 1913년 '구성 7'을 위한 습작으로 확인되었다. '종말과 부활'이라는 주제가 있는 이 그림은 사실 순수 추상이라기보다 상징의 모자이크이며 정신과 정념의 추상 표현이다. 니나 칸딘스키 소장.

▲ 몬드리안(P. Mondrian, 1872~1944)의 '바다'  바다의 수평선 이미지를 느끼게 하기보다 짧은 직선의 수평적 구성에 관심을 두고 순수 조형적 미를 찾아 나가는 초기 작품이다. 1914년 작품. 독일 스튜트가르트 현대미술관 소장.

▲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 - 우기'  몬드리안의 후기 대표작으로 도시의 마름모꼴 공간 구성을 통하여 보편과 균형의 조형성을 보여 주고 있으며 보다 심오한 시대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차가운 기하학 선들과 색채의 화려함은 새로운 시대 정신을 상징한다. 그의 추상화는 인간의 고양된 정신이 다이내믹한 리듬감을 통하여 나타나며 작가는 이같은 순수 추상 작업에 최후의 승리를 걸고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조용히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1942~1943년 작품.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 발라(G. Balla, 1871~1958)의 '바이올리니스트의 손'  점묘파와 같은 표현 기법으로 구상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움직임이라는 리듬감을 나타내고자 하는 요소는 추상화로 변모하는 단계이다. 1912년 작품. 런던 개인 소장.

▲ 발라의 '추상적 속도감(달리는 자동차)'  역동적 팽창의 속도감 표현과 함께 움직임 자체가 아름답다는 인식으로 화면은 점점 더 추상화되어 간다. 1913년 작품. 로마 개인 소장.

▲ 세베리니(G. Seberini, 1883~1966)의 '7월 14일의 조형적 리듬'  프랑스 대혁명 일자의 제목으로 주제가 등장하나 역시 구체적 형태가 사라지고 움직이는 원, 원추, 원통이나 사각형의 구성력을 보여 주는 추상화의 초기 단계를 보여 준다. 1913년 작품. 로마 개인 소장.

▲ 말레비치(K. Malevitch, 1878~1935)의 '나무꾼'  말레비치는 1909년부터 러시아의 농민을 주제로 매우 소박하고 단순한 원시적 성격을 표현한다. '나무꾼'도 이같은 경향의 하나로 나무 토막들과 나무꾼의 형태가 원통, 원추와 같은 기하학형으로 대상의 단순화가 이루어지고 러시아의 민속적 색채가 강조되는 초기 작품이다. 1912년 작품. 암스테르담 스테델릭미술관 소장.

▲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구성'  말레비치는 "슈프레마티즘(절대주의)이라는 말을 나는 예술에서의 지고한 순수 감성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절대주의 구성 작품 속에서 종래의 회화적 개념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곧 그의 작품은 대상의 형태 묘사에서 미적 감동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든 허식을 벗겨 낸 뒤에 남겨진 '핵'을 끄집어 냄으로써 '순수한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흰 바탕에 흑색과 적색의 정방형 사각이 그려진 절대주의 추상화로 기존의 회화적 개념을 크게 벗어난다. 이는 순수하게 철학적인 형태와 색채 의식 운동'이며 '흰 바탕 위에 흰 정방형'이라고 하는 극한의 세계로까지 발전한다. 1914~1916년 작품.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 엘 리시츠키(El Lisyzsky, 1890~1941)의 '푸룬(proun) No 6'  엘 리시츠키는 러시아의 건축가, 디자이너, 화가로 활동한 미술가이다. 평면에 입체 구성과 같은 공간감을 보여 주는 '푸룬(proun)' 연작을 제작하였다. 푸룬이란 러시아 말로 새로운 것을 확립하는 디자인을 의미한다. 그는 일련의 작품에 이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공간 구성으로 다이내미즘과 서정성을 살려 나간다. 1919년 작품. 런던 데이트갤러리 소장.

▲ 뒤샹(M. Duchamp, 1887~1968)의 '너는 나를(Tu m')  1918년 미국의 수집가이며 전위술의 후원자인 카트린느 드라이에를 위해 제작된 이 작품은 반예술을 주창한 작가의 의도와 옵 아트와 같은 시각적 효과를 나타낸다. 연필로 그린 자전거 바퀴, 병마개 뽑이, 모자걸이, 겹쳐진 마름모꼴의 색표지, 지시하는 화가의 손과 그림자 등이 눈속임의 기법으로 그려졌으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의 상징으로 개념 미술이다. 카트린느 드라이에 기증, 예일대학미술관 소장.

▲ 피카비아(F. Picavia, 1879~1953)의 '우드니(젊은 미국 소녀)'  청색조의 환원과 입방체 면들로 가득 찬 입체파적 초기 추상화이다. 대상의 단순화는 이미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게 되고 작은 면들의 조형적 구성력에서 회화의 본질을 찾고자하는 작품이다. 1913년 작품. 파리 국립근대미술관 소장.

▲ 슈비터스(K. Schwitters, 1887~1948)의 '메르츠 빌딩 25A'  독일 하노버 다다를 대표하는 슈비터스는 이 작품에서도 보듯 인쇄물, 노끈, 망사 천, 막대기 등 폐품 오브제로 추상적 화면을 구성하여 반예술과 동시에 새로운 조형 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1920년 작품. 뒤셀도르프 시립미술관 소장.

▲ 당기(Y. Tanguy, 1900~1955)의 '엄마, 아빠 놀라워요!'  바닷속의 풍경과 아메바와 같은 미생물들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환상의 추상화로 초현실주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1927년 작품.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 마송(A. Masson, 1896~1955)의 '물고기 싸움'  자동 기술법에 의해 초현실의 세계를 그린 마송은 이 작품에서도 보듯 무질서한 선들로 나타낸 추상적 형상들은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내면 세계를 상징화한다. 1927년 작품.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 들로네(R. Delaunay, 1885~1941)의 '리듬'  오르피즘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프랑스의 추상 화가 들로네는 다수의 환원을 여러 가지 색체로 화려하게 표현하여 '리듬'과 같은 자율적 조형의 아름다운 순수 추상화를 제작한다. 세잔과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대상의 재구성보다 화려한 색채와 환원의 움직이는 표현으로 새로운 양식의 추상화를 창조한다. 1934년 작품. 파리 국립근대미술관 소장.

▲ 부리(A. Burri, 1915~)의 '싸코 No 5'  의무관이었던 알베르토 부리는 2차대전 뒤 화가로 변신, 엥포르멜 추상화로 유명해진다. 이 작품은 낡은 넝마와 적색, 흑색의 두터운 물감이 화면을 덮으면서 크고 작은 비정형의 불규칙한 구성을 보여 준다. 마티에르의 효과를 잘 살린 뛰어난 감성의 표현적 추상화이다. 1953년 작품. 로마 개인 소장.

▲ 타피에스(A. Tapies, 1923~)의 '벽 위의 묘법'  타피에스는 스페인의 대표적 앵포르멜 화가로 벽면과 같은 화면을 만들고 위를 긁거나 낙서 같은 형태로 추상적 기호들을 만들어낸다. '벽 위의 묘법'은 화면을 흙벽으로 만들어 거칠고 자유 분방한 선으로 극적 분위기를 연출한 원초적 행위의 추상화이다. 1971년 작품. 파리 갤러리매트 소장.

▲ 잭슨 폴록  드리핑 기법으로 바닥에 캔버스를 깔아 놓고 제작하고 있다.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은 화면 속으로 들어간다는 그의 말을 실감나게 한다. 1951년 사진.

▲ 잭슨 폴록(J. Pollock, 1912~1956)의 '벽화'  미국의 대표적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폴록은 초현실주의 경향의 초기 작업 이후 행위성을 강조한 추상화를 제작한다. '벽화'는 초현실주의 분위기가 살아 있는 그의 초기 작품으로 뒤에 제작되는 'No 1' 등 일련 번호가 붙은 액션 페인팅의 기초가 된다. 1943년 작품.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 데 쿠닝(W. Kooning, 1904~)의 '여인'  1950년부터 수년간 지속적으로 나타난 데 쿠닝의 '여인' 연작은 구상적이 아니라 추상 표현이다. 여기서 그는 한 인물의 형상 묘사나 잡다한 조형적 구성보다 자신이 화면 속에서 무언가 하고 있다는 육체적 행위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1950~1952년 작품.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 로드코(M. Rothco, 1963~1970)의 '무제'  액션 페인팅으로 불리는 추상표현주의와 달리 로드코의 색면 추상은 대단히 사색적이며 명상적 공간을 형성한다. 이 작품에서 보듯 명확한 경계선이 없는 로드코의 커다란 색면은 이성과 질서 의식을 뛰어 넘는 독자적 구성이다. 단순하게 이등분된 분홍색과 흑색의 넓은 이등분 색면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면서 사색의 장을 만든다. 1953년 작품.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 바자렐리의 '흑과 백'  옵 아트의 선구자인 바자렐리는 평면에서 잠재적 움직임의 표현을 추구한다. 제3기에 그려진 '흑과 백' 시리즈는 시각 잔상 작용을 이용한 움직임과 볼록면의 공간이 평면에 등장하여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1950년 작품. 개인 소장.

▲ 유영국(1916~)의 '산'  유영국의 추상화는 산을 중심으로 하늘과 나무 등 풍경 이미지를 단순화한 서정적 느낌을 바탕으로 한다. 1962년 작품.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김환기(1913~1974)의 '론도'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추상화이다. 기하학적으로 분할된 면들과 적, 청, 황색의 대비가 조화를 이룬다. 인물들이 단순화되어 초기 구성적 추상화의 단계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1938년 작품.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박서보(1931~)의 '묘법 No 920120'  70년대의 캔버스 위에 연필로 그려진 초기 묘법과 한지와 혼합 재료를 사용한 후기 묘법 연작은 모노크롬 추상화에 나타난 두 개의 독특한 양식적 변화이다. 전자는 단순한 묘법의 반복된 행위로 개념성에 중점을 두었으나 후자는 물성의 강조와 묘법의 구성적 조화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강조하게 된다. 1992년 작품.

▲ 백남준(1932~)의 '다다익선'  "TV라는 캔버스를 레오나르도만큼 정확하게, 피카소만큼 자유롭게, 르누아르만큼 다채롭게, 몬드리안만큼 심오하게, 폴록만큼 격렬하게, 제스퍼 존스만큼 서정적으로 형성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라는 백남준의 말처럼 그의 비디오 작품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다양한 표현의 미술이 이루어진다. 1988년 작품.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 소장.

▲ 백남준의 '자석 TV'  자석의 힘에 의해 화면에 나타난 영상은 자유로운 추상적 형상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매체 이용의 추상 표현이 활발해지기 시작한다. 1963~1965년에 제작된 초기 비디오 작품.

 

posted by 황영찬
2013. 1. 23. 10:21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10 조선최대갑부 역관

 

이덕일 지음

2006, 김영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1060

 

911.05

이24역

 

표정있는 역사

 

중개무역으로 동아시아 상권을 장악한 조선의 통역사!

역관은 능통한 외국어실력과 탁월한 협상력으로 청일간의 중개무역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 빈약한 조정의 재정을 확충하고 나아가 전체 조선 경제를 활성화시켰다. 실무외교관으로 국제무역상으로 첩보원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중인이라는 신분적 제약을 딛고 막후의 실제로 부상한 역관, 주목받지 못하고 잊혀진 그들의 역사를 다시 쓴다!

 

국제무역상, 외교관, 무기수입상, 첩보원, 개화사상가, 독립운동가……

천의 얼굴을 가진 역관을 입체적으로 복원한 최초의 책!

 

⊙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거지 행색의 허생에게 거금 만 냥을 선뜻 꿔준 변씨는 역관 출신으로 조선 제일의 부자가 된 실존인물이었다.

⊙ 역관들은 요즘으로 치면 '투잡스족'으로 외교관이자 국제무역상이었다.

⊙ 세계 최초의 중국어 학습서를 저술한 사람은 조선의 역관이다.

⊙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事大主義)로 여겨지는 조공은 실제로는 조선의 잇속을 챙기는 국제무역이었다.

⊙ 명나라 홍등가에서 기녀를 구출해주고 뒤에 보답받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상도>의 임상옥이 아니라 역관 홍순언이었다.

⊙ 은행이 무역업체에 자금을 대출해주고 이익을 얻는 것처럼 조선 관아들은 앞 다투어 역관에게 대량의 은(銀)을 빌려줌으로써 재정 확충을 도모하였다.

⊙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대외정보 수집능력으로 역관은 화약의 원료를 밀수입하거나 직접 제조하여 조선군의 전투력 향상에 기여하기도 했다. 역관 오경석은 병인양요 때 뛰어난 첩보활동으로 프랑스의 막강한 함대에 맞선 조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 대대로 유명한 역관을 배출한 집안의 서녀(庶女) 장희빈은 서인정권을 무너뜨리고 남인들이 재집권한 기사환국의 주역이었으며, 장씨 집안은 남인정권과의 '정경유착'으로 큰 권세를 누렸다.

⊙ 역관은 천주교 서적과 새로운 서양선진문물을 조선에 들여옴으로써 개화사상의 주역이 되었고, 이는 한말 애국계몽운동으로 이어졌다. 역관은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앞선 시대감각으로 조선사회의 변화를 촉진하였다.

 

|이덕일|

숭실대 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고 「동북항일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필두로 한국사의 쟁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대중역사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우리 역사의 온갖 미스터리를 객관적 사료를 토대로 선명하게 풀어낸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3『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조선 왕 독살사건』등의 문제작을 펴내면서 우리시대의 대표적 역사저술가로 자리매김했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아나키스트 이희영과 젊은 그들『이덕일의 여인열전』등 생존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불운한 천재들이나 역사 속에 안타깝게 묻혀버린 인물을 복원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는 최근 정치사 위주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통해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그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이 책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면서도 정작 제대로 연구되지 못한 역관에 초점을 맞추고 조선 경제의 숨은 주역이었던 그들의 눈부신 활동상과 흥미로운 뒷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풍부하고 정확한 사료에 근거하면서도 흡인력 있는 문체로 대중역사서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 그는 방송과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면서 더 많은 독자들을 미지의 역사로 이끌고 있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으로 있다. newhis19@hanafos.com

 

차례

 

시리즈 발간사

머리말

 

1장. 고려 말 ~ 조선 초의 역관

2장. 조선 초기의 공무역과 사무역

3장. 청 건국 이후의 역관 성격의 변화

4장. 역관은 어떻게 국제무역을 주도했는가

5장. 역관의 최대 경쟁자, 상인이 등장하다

6장. 역관의 다양한 역할

7장. 역관과 정치

8장. 시대를 앞서간 역관

 

더 깊이읽기

주요 인용 문헌

찾아보기

 

열하일기(熱河日記)

▲ <연행도(燕行圖)>(일부)  조선의 연행사들이 말을 타고 북경성을 향해 가는 모습이다. 기록화답게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작가 미상. 1760년.

▲ <통신사행렬도>(일부)  역관의 행렬 모습

▲ 『몽어유해(夢語類解)』  조선시대 몽고어 어학 교재로, 이억성9李億成)이 영조 44년(1768)에 간행하였다. 현존하는 『몽어유해』는 정조 14년(1790)에 방효언(方孝彦)이 다시 개정하여 간행한 것이다.

▲ 여진문자 동경  여진문자로 된 동경

▲ 노걸대, 박통사언해, 첩해신어(왼쪽부터)

▲ 조선통신사비  대마도 역사 민속자료관 입구에 세워져 있다.

▲ <초량왜관도(草梁倭館圖)>  1783년 변박(卞璞)이 그린 것으로, 당시의 왜관 전경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 『광국지경록』  종계변무를 축하하기 위해 선조와 여러 신하들이 화답한 시를 모은 것. 1744년, 영조 20년에 간행.

▲ 조양문  사행길에서 조선 사신이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문.

▲ <삼전도비>  병자호란 때 청나라 태종이 조선 인조의 항복을 받고 자기의 공덕을 자랑하기 위해 지은 전승비(戰勝碑). 송파구 석촌동에 자리하고 있다.

▲ 연경 성시도(일부, 작자 미상)  중국 청나라의 북경을 그린 지도로 각국도첩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사신이 들어가는 문인 조양문이 오른쪽에 있고, 외국 사신이 머물던 회동관은 정양문의 오른쪽에 있다.

▲ 압록강 변계도  압록강 주변의 국경지역을 그린 지도

▲ 노걸대(왼쪽), 『담헌연기(湍軒燕記)』

▲ 산해관  만리장성의 동쪽 시작 지점으로,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 불릴 만큼 예로부터 군사 · 교통의 요충지였다.

▲ 베이징의 회동관  명 · 청시대 조선 사신이 묵었던 공식 숙소인 이 자리에는 현재 캐피탈 호텔이 들어서 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송조천객귀국시장(送朝天客歸國詩章)  명나라에 조회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조선 사신을 전송하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 『통문관지(通文館志)』

▲ 백두산정계비 탁본  숙종 38년(1712) 백두산에 세운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경계비. 이 비는 만주사변 때 일제가 철거하였다.

▲ 『신전자초방』  1698년 역관 김지남이 북경에서 배워온 자초술을 남구만의 건의에 따라 국문 번역을 붙여 간행하였다.

▲ 김지남 묘  김지남은 청에 맞서 조선의 영토를 지켜냇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 장희빈 묘  장희빈은 유명한 역관 가문인 인동 장씨가의 서녀(庶女)였다. 고양시 용두동 서오릉 경내

▲ 북경의 북천주당  이승훈은 이곳에서 조선 최초로 세례를 받았다.

▲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왼쪽), 오경석의 아들 오세창(오른쪽)

▲ 박규수의 재동 집터에 우뚝 선 아름다운 백송

▲ 『유년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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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3. 1. 21. 15:14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09  민화

 

글, 사진 / 김영학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8003

 

082

빛12ㄷ 147

 

김영학-------------------------------------------------------------------------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서울교육대학 교수, 성균관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와 동대학 가정대 학장을 역임했다. 현재 정산 고등기 자료관 관장으로 있다. 1958년 한국 최초의 조각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전 초대 작가를 거쳤고, 1991년 제2회 조각 개인전을 가졌다. 저서로는 「김영학 조각 작품집「미술교육」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민화는 한국 민족의 순수한 감장 표현'(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논문, 1992, 3), '반가상 조각'(서울교대논문집 2호, 1969. 3) 등 다수가 있다.

 

|차례|

 

머리말

민화의 발생

    한국의 자연 환경

    한국의 가옥 구조

    도배와 민화

    병풍과 민화

    방랑 화가와 무낙관

민화의 명칭과 종류

    민화의 명칭과 개념

   민화의 종류와 화제

민화의 재인식

    민화에 대한 재인식

    민화의 미관

민화의 특징적 표현에 대한 현대적 고찰

    정면성에 의한 표현

    동시적 표시에 의한 표현

    환상에 의한 표현

    의인화에 의한 표현

    등축도법에 의한 표현

    입체에 의한 표현

    특수 기법에 의한 표현

맺음말

참고 문헌

찾아 보기

 

▲ 일월곤륜도  일월곤륜도는 권위를 상징하여 그린 그림으로 당채를 짙게 사용하여 도색하였다. 해와 달을 하늘에 띄우고, 중국의 곤륜산을 상징한 산과 출렁이는 바다, 그리고 양쪽 옆에는 바위와 적송이 배치되었는데 이것이 일월곤륜도의 일반적인 도식이다. 덕수궁 중화전 당가의 일월곤륜도

▲ 용그림  권위의 상징으로 그리는 용그림은 황색을 주조로 사용하며 반드시 여의주가 수반된다. 용의 발톱 수에 따라 황제용, 제왕(諸王)용, 경상(卿相)용 등으로 구별한다. 115×66cm

▲ 겸재 정선의 실경 산수도  겸재는 위 그림의 왼쪽 밑에 그려진 바위처럼 의인화된 그림을 최초로 표현한 화가이다. 56.3×32.2cm

▲ 구운몽  주인공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꿈속에서 이루려 하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그 허망함을 기본 설정으로 한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의 내용을 병풍으로 그렸다. 10곡 병풍 가운데 8곡 병풍의 그림들이다. 36× 117cm

▲ 송학도  우리나라의 나무들은 기후 조건으로 대개가 곡목으로 성장하는 까닭에 민화에도 구부러진 나무가 많이 나타난다. 41×78.5cm.

▲ 책거리 병풍(부분)  예전 우리 선조들의 사랑방을 주로 장식하던 이 책거리 병풍은 기명절지(器皿折枝) 가운데에서도 책이 주를 이루는 그림이다.

▲ 화조도  꽃과 새를 그린 그림으로서 비교적 사실에 바탕을 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36.5×66cm

▲ 연화도  연화도에는 반드시 물고기가 곁들여져 있으며 더러는 오리(원앙새)가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 104×33cm

▲ 신사임당의 초충도  사임당이 맨 처음 시작한 이 초충도는 이후 민화나 백자 등의 표면화에도 많이 응용되었다.('전통문화' 150호)

▲ 포도도  늙은 포도송이 밑에 다람쥐가 있는 민화로 생존의 양태가 표현되어 있다.(「이조의 민화」일본 강담사)

▲ 호표도  호랑이와 까치가 함께 표현된 그림이다. 호랑이의 어깨 부분에서 동시성에 의한 표현이 엿보인다.(「이조의 민화」일본 강담사)

▲ 송학도  소나무, 학, 바위를 내용으로 그린 민화로서, 화면 구성에 있어서도 획기적으로 3단으로 나누어 그렸다.(「이조의 민화」일본 강담사)

▲ 봉황도  나무 밑 한 쌍의 봉황을 그린 것으로 묘법이 아주 단순하다. 64×36cm.

▲ 쌍마도  흰 말과 점박이 말 한 쌍이 표현되어 있다. 동양화와 민화의 두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는 그림이다. 32×38cm.

▲ 연화도  물새가 연밥을 먹고 있는 그림으로 전형적인 연화도의 민화이다.

▲ 모란도  태극 문양이 이채로운 화분에 모란이 풍성하게 꽂혀 있다. 47.4×113cm.

▲ 동시성에 의한 표현의 그림  피카소의 '거울 앞의 여인'

▲ 환상에 의한 표현의 금강산도  금강산 그림이지만 각기의 바위 모습이 미로를 연상케하는 괴상한 모습이다.(조자룡 「금강산도」에밀레 미술관)

▲ 박생광의 탁몽  박생광은 한국의 불교적 설화, 무속 등의 전통적 소재를 구사하여 민족적 이미지를 유감없이 나타낸 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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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3. 1. 19. 14:57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08 三國志 2 풍운이 감도는 천하

 

나관중 지음 · 정비석 옮김

2004, 은행나무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14855

 

823.5

나15삼6 2

 

정비석(1911~1991)

 

평북 의주 출생으로 일본 니혼대학 문과를 중퇴하였다. 1936년 단편 <졸곡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된 데 이어, 1937년 단편 <성황당>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1954년에 성 윤리에 대한 사회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자유부인》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한국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상하였다. 그 이후 그는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여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는데, 1981년에 발표한 《소설 손자병법》은 한국 출판사상 최대 판매부수를 기록하였다.

또한 1985년에는 조조, 유비, 제갈량 등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인생 흥망사가 펼쳐지는 동양 최대의 고전인 《삼국지》를 출간하여 명실상부한 베스트셀러 메이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책은 정비석 특유의 생동감 잇고 웅장한 표현으로 소설적인 재미를 극대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작가의 최고 영예는 끝까지 글을 쓰는 것이라는 소신을 가졌던 그는 고희를 넘긴 80년대 이후에도 《여수》, 《김삿갓 풍류기》 등 단행본으로 따지면 14권 분량이나 되는 작품을 일간지에 연재하며 전업 작가의 한 전범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위의 작품 이외에도 《청춘산맥》(1949), 《여성전선》(1951), 《홍길동전》(1953), 《산유화》(1954), 《야래향》(1957), 《유혹의 강》(1958), 《여성의 적》(1960), 《혁명전야》(1962), 《여인백경》(1962), 《욕망해협》(1963), 《명기열전》(1976), 《소설 명성왕후》(1987) 등 수십 권에 달한다.

 

◎ 등장인물

 

손권孫權(182~252년)

오(吳)의 초대 황제. 재위 222~252년. 손견의 둘째 아들. 200년에 형 손책이 죽자 그 뒤를 이었다. 손권은 남하한 조조의 대군을 촉나라의 유비와 함께 적벽에서 격파함으로써 강남에서 그의 지위를 확립했다. 그 후 형주의 귀속 문제를 둘러싸고 유비와 대립했으나, 219년 조조와 결탁하여 유비의 용장 관우를 격파하고 형주를 공략했다. 그 결과 위 · 촉 · 오 3국의 영토가 거의 확정되었다. 221년 조조가 죽고 그의 아들 조비가 황제로 즉위하자, 이에 손권도 황제위에 올랐다.

 

조운趙雲(?~229년)

유비의 맹장. 자는 자룡(子龍). 처음에는 공손찬 휘하에 있다가 나중에 유비의 신하가 되어 용맹을 떨쳤다. 유비가 장판에서 조조에게 쫓겨 아들과 감 부인을 버리고 도망갔을 때 그가 단신으로 이들을 구출해냈다. 219년에 한중 공방전에서 정찰 도중 위의 주력부대를 만나 뛰어난 전술로 후퇴에 성공하였다. 221년, 유비가 손권을 공격할 때 반대를 무릅쓰고 강주 수비에 나서 공을 세웠고 228년, 제갈공명이 기산에 출전할 때도 등지와 함께 양동작전으로 시곡에 진주했다가 위의 대군을 만나 소수의 군대로 용감하게 싸웠다.

 

유장劉璋(?~219년)

후한 말의 군웅의 하나. 자는 계옥(季玉). 아버지 유언의 뒤를 이어 익주목이 되었다. 그는 조조가 원정군을 이끌고 오자 구원세력으로 유비를 맞아들였다. 촉에 들어온 유비는 한중(漢中) 방위에 나서는 체하면서 군사를 동원하여 유장이 있는 성도로 진격했으며, 곧 유장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 후 손권이 형주를 탈취한 뒤 유장은 그에 의해 다시 익주목에 임명되었다.

 

정욱程昱

위(魏)의 모사. 자는 중덕(仲德). 194년 조조가 두 번째 서주 공격에 나섰을 때 장막과 진궁이 배반하여 근거지인 연주를 여포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이때 정욱은 순욱과 함께 진성과 다른 두 현(縣)을 확보하고 조조를 맞아들였다. 그리고 196년에는 헌제(獻帝)를 맞아들이자는 조조의 제안에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순욱과 함께 적극 찬성했으며, 유비를 경계해 그를 죽이자고 진언했다.

 

장수張繡

후한 말 군웅의 하나. 양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변장 · 한수의 군사를 무찔러 이름을 날렸다. 삼촌인 장제의 군대를 인계받아 조조에게 투항했으나 아내를 빼앗긴 원한으로 다시 반하여 완(宛)에서 조조를 무찌르고 조조의 장남 조앙을 죽였다. 그러다가 관도의 싸움 때 모사 가후의 진언에 따라 조조 휘하에 들어가 큰 공을 세웠다.

 

장소張昭(156~236년)

오(吳)의 건국공신. 자는 자포(子布). 황건적의 난을 피해 강남으로 이주했다가, 197년에 손책이 강동에 발판을 마련했을 때 그의 참모가 되었다. 200년, 손책의 유촉(遺囑)을 받은 그는 비탄에 잠긴 손권을 꾸짖어 상복을 군복으로 갈아입게 했다. 그 후 주유 등과 협력하여 손권을 잘 보좌했다.

 

양표楊彪(142~225년)

양수의 아버지. 자는 문선(文先). 사도 벼슬에 있으면서 동탁의 천도에 홀로 반대하다가 파면당했다. 또 조조의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할 뻔했으나 공융의 간언으로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다. 후에 한(漢) 황실이 종말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신병을 핑계로 은퇴했다.

 

우금于禁(?~222년)

위(魏)의 명장. 자는 문측(文側). 원소와의 싸움에서 맹위를 떨쳐 호위장군에 임명되었다. 219년, 번성에서 관우의 군대와 싸우다 홍수를 만나 투항했다. 그 후 손권이 관우를 무찔렀을 때 위나라에 귀환했으나, 예전에 자기가 촉나라에 투항했던 모습이 조조의 무덤에 그려진 것을 보고 굴욕감을 느껴 끝내 병을 얻어 죽었다.

 

순유荀攸

조조의 모사. 순욱의 조카. 일찍이 황문시랑을 지냈으나 낙향해 있다가 숙부와 함께 조조의 막하로 들어갔다. 조조가 적벽대전의 보복을 계획할 때 높은 벼슬을 미끼로 서량의 마등을 불러다가 죽여 후한을 없앴다. 뒤에 조조가 위왕이 되려 하자 이에 반대하다가 그의 노여움을 사 결국 그로 인해 병을 얻어 죽었다.

 

미축

촉(蜀)의 중신. 자는 자중(子仲). 서주의 명문 출신. 서주목 도겸의 부관이었다가 그의 유언에 따라 유비를 서주로 맞이하는 사신이 되었다. 그 후 유비를 섬기면서 가장 큰 재정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195년, 유비가 여포에게 하비성을 빼앗기고 유랑하게 되었을 때도 그가 자금을 대고 누이동생을 그에게 출가시켰다.

 

유대劉岱(?~192년)

후한 말의 군웅의 하나. 189년, 동탁에게 발특되어 연주 자사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임지에 도착하자 반 동탁군을 일으켜 원소 등과 연합군을 형성했다. 192년 4월, 청주의 황건적 백만이 연주에 침입했을 때, 지구전으로 싸우라는 포신의 책략에 따르지 않고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전사했다.

 

동승董承(?~200년)

헌제(獻帝)의 장인. 196년, 헌제를 맞이하기 위해 안읍에 온 조홍의 군사를 물리쳤다. 후에 헌제를 따라 허도에 들어가 유비 등과 함께 조조 암살을 시도했으나, 유비가 서주 정벌을 나간 사이에 계획이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다.

 

정보程普

오(吳)의 장수. 자는 덕모(德謨). 오나라 장수 중에서 가장 연로하고 인물 등용이 뛰어나 존경을 받았다. 손견을 따라 황건적을 무찌른 후 더욱 신임을 받았고, 그가 죽자 손책과 함께 거의 모든 전투에 참가했다. 또 손책이 죽자 그의 동생 손권을 잘 보좌했다.

 

진규陳珪

후한 말의 명사. 자는 한유(漢瑜). 197년 원술이 여포와 연합하려는 것을 보고 이것이 유비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걱정하여 여포를 설득하여 조조에게 합류하도록 했다. 그 공으로 조조의 영접을 받고 원술 군을 격퇴했다. 후에는 여포를 물리치는 데도 큰 공헌을 했다.

 

손건孫乾

유비의 심복. 199년, 유비가 서주에 근거하면서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을 당시에 원소와 손을 잡기 위해 사절로 갔다. 또 201년에는 여남에 있던 유비가 조조의 공격을 받아 유표에게 의지하려 했을 때도 사정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장요張遼(171~221년)

위(魏)의 장수. 자는 문원(文遠). 정원, 하진, 동탁, 여포 등을 섬기다가 조조의 막하에 들어갔다. 여러 차례의 전공 가운데서도, 합비를 에워싼 손권의 군대를 8백의 돌격대로 격퇴한 무공이 가장 빛난다. 그 후에도 자주 손권의 군대를 무찔러 오나라 군사를 두렵게 했다.

 

조앙曹昻(?~197년)

조조의 맏아들. 자는 자수(子修). 생모인 유 부인이 일찍 죽어 정 부인에게 양육되었다. 197년, 조조를 따라 남양의 장수(張繡) 정벌에 참가하여 항복을 받았으나, 이해 장수의 두 번째 반란 때 죽었다.

 

저수沮授

원소의 모사. 원소의 조조 공격을 반대하다가 진중에 감금되었다. 그러면서도 천문을 보아 적의 야습을 예견하고 대책을 건의했다. 그러나 결국 이 싸움에서 대패하게 되었고 달아나다가 끝내 붙잡혀 죽었다.

 

장흠蔣欽

오(吳)의 장수. 자는 공혁(公奕). 손책 · 손권을 섬긴 장수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여몽과 함께 학문으로 명성이 높았으나 후에 관우를 공격하다가 전사했다.

 

진궁陳宮(?~198년)

여포의 참모. 198년 10월, 하비성에서 조조 군의 포위를 받고 여포에게 재삼 작전을 헌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항복하여 여포와 함께 죽임을 당했다.

▲ 관우

 

차례

 

허수아비 천자

근왕병 일어나다

간웅의 싹

이리를 끌어들이다

손책의 등장

강동의 소패왕

정략결혼

조조의 실책

원술의 참패

조조의 지략

함락되는 소패성

진규 부자

여포의 패망

천자의 은밀한 조서

피로 쓰는 연판장

유비, 조롱을 벗어나다

멸망하는 원술

적장을 살려 보내다

독설가 예형

태의 길평

잔인한 보복

약조삼장

안량 · 문추를 베다

금석 같은 충의

난관을 돌파하여

다시 만나는 삼 형제

손책의 최후

관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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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7. 14:53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07 법정 스님 숨결

 

변택주 지음

2010, 큰나무

 

 

시흥시대야도서관

SB038790

 

220.4

변883ㅅ

 

사람은 저마다 제 빛깔과 향기를 지녀야 한다!

 

저자는 '법정 스님과 십 년' 인연을 갖가지 에피소드를 곁들여 풀어놓는다.

조그만 일에도 천진스런 아이처럼 잘 웃으시고, 넘치는 유머감각은 영락없는 개그맨 수준이고,

흙처럼 구수하고 정겨운 민화 속 호랑이를 꼭 빼닮으셨다는, 겉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한없이 여리시고 푸근하고 세련미 묻어나는 법정 스님 인간 면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무리 싸고 싸도 향이 지닌 향기를 어쩔 수 없듯이,

맑고 향기로운 스님 향기는 사람들 가슴에 잔잔하고 따뜻하게 여울질 것이다.

 

부처님 숨결이 감싸드는 고즈넉한 길상사는 한 폭 그림처럼 그렇게 내 안에 들어앉았다.

그 뒤로 십 년 세월을 빠짐없이 스님 숨결을 느끼면서 법음을 듣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삶 속에서 씨를 뿌리고 가꾸며 큰 나무처럼 살고 계신 법정 스님과 십 년……

늘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씀을 담아 주신 글,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나 또한 새롭게 시작해 보고 마음이 일었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맑고 향기로운 스님 숨결에 슬기의 배를 띄우련다.

_ 저자의 말

 

큰 나무가 되기를 바라기보다는, 절을 짓기 위해 큰 나무를 쓸 줄 알고, 아름다운 장식물을 만들려고 작은 나무를 쓸 줄 아는 숙련된 목수가 되십시오. 큰 나무는 큰 쓰임이 있고 작은 나무는 작은 쓰임이 있습니다.

_ 본문 중에서

 

맑고 향기롭게

'맑고 향기로운 삶'이란 자기 마음자리를 제대로 찾고 세상과 자연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다가가는 삶이다. '맑고 향기로운 삶'이란 세상과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가꾸기 위해 마음이나 몸을 제대로 써서, 너를 살리고 빛내는 목수로 사는 일이다.

 

智光 변택주

아둔하고 미욱한 탓에 좀 슬기로워지라고 법정 스님께서 智光이란 법명을 지어주셨다. 하지만 '슬기로운 빛'이란 법명이 무색하게도 여태 어리석음을 벗지 못해 그저 아무것도 아닌 수십 년을 옷만 만들었던 바보 변택주 업業을 바로 세우고 나다움을 찾으면 모두가 이긴다고 믿는다.

1998년부터 법정 스님과 인연을 맺고 법회 진행을 맡고 있으며, 아울러 컨설팅과 인문학 강연도 겸하고 있다.

 

깨달음을 기다리는 것은 바른 수행이 아님을 알아라.

종교 여행은 시작은 있고 끝은 없다.

그저 늘 새롭게 출발할 뿐이다.

그 새로운 출발 속에서 향기로운 연꽃이 피어난다.

 

차례

 

여는 글

 

1장_난 나이고 싶다

절 / 만남은 눈뜸이다 / 조각과 나온 분 / 가난한 절되기가 어려운 세상 / 이제껏 지켜온 정절이 아까워 / 네 생각을 말해라 / 거꾸로 세상보기 / 진면목 / 난 나이고 싶다 / 남에게 머리 못 맡겨요 / 지금 그 자리 / 행지실 / 내 생명 뿌리가 꺾였구나 / 서슬 푸른 구도 그 끝에는 / 마지막 한 마디 / 미리 쓰는 유서 / 마음으로 깨쳐 가슴으로 느끼려면 / 있으라고 이슬비 / 민화 속 호랑이 같은 스님 / 천진불 스님 / 하회탈 같으신 스님 / 우리가 꿈꾸는 도량은? / 사랑해요 동감! / 친견 / 음식 진언 / 틈새, 숨길을 트자

 

2장_나밖에 모르면

좋은 말씀을 찾아서 / 지금도 마음 아픈 엿장수이야기 / 결 고운 그 마음이 걸림돌 / 철부지 / 마감시간 / 무공덕 / 바람처럼 걸림 없이 드나드는 삶을 누려야 / 유유화화 / 소유와 쓰임 / 숫자는 단 세 개뿐 / 시간은 목숨이다 / 영혼에는 세월이 없다 / 어제는 전생, 오늘은 새 날 / 예배와 염불은

 

3장_나눈 것만 남는다

길상사, 시작부터 알싸한 뺄셈 / 극락전이 본전인 까닭은? / 맑고 향기롭게 / 손으로 말한다 / 토끼풀을 뽑아든 아이 / 하숙집 할머니 / 도탑고 넉넉한 품 / 맑은 복 / 사랑 온도 지금 몇 도인가 / 워낭소리를 내자 / 나눈 것만 남는다 / 세상에서 가장 큰 절 친절 / 쓰던 말을 버리고 / 착하게 살라 / 새 식구를 들이는 입양의 날 / 한 생각 일으키면 / 무엇을 읽을 것인가 / 거리낌 없는 관세음보살님 원력 / 부조, 그 사랑 나누어 드림

 

4장_길을 열라 나는 자유다

흐름을 따라가시게 / 하나 속에 모든 것이 / 소를 몰아야지 수레를 몰면 어쩌나 / 식사대사 생사대사 / 알아차림 / 고통은 사랑이다 / 온몸으로 '듣기' / 길에서 배우기 / 스승의 날 / 길은 거기 있지만 / 길을 열라 자유! / 비어 있음은 비어 있음이 아니다 / 비움, 그 빼기 철학 / 재와 제사 그 얼 이어짐 / 죽음은 새로운 시작 / 오! 늘 좋은 날! / 울음터는 어디인가? / 진실한 말이 지닌 힘

 

맺는 글

 

"지나간 생을 돌이켜 보면 20대 초반에 불법을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지 늘 절실하게 느낍니다. 사람은 어떤 만남에 의해 거듭 형성되어 갑니다. 일찍이 이름도 성도 얼굴도 모르는 우리들이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도 부처님 가르침 덕분입니다."

- 법정 스님, 2002년 동안거 결제법회에서

 

"내 얼굴을 마주 대하면서 법정 스님을 많이 닮았다는 말을 낯선 사람들로부터 들을 때가 더러 있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요. 그 스님이 나를 많이 닮았다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 실린 법정 스님 말씀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오고 있다는 것임을 떠올릴 때, 사는 일이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유서는 남기는 글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白書'가 되어야 한다.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서 왔고 갈 때도 혼자서 갈 수밖에 없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 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 <무소유> '미리 쓰는 유서'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그 생각조차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텅빈 속에서 무엇인가 움이 틉니다. 어디에도 매이지 말고 자유로워지라는 소리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말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가르침입니다. 가졌느니 버렸느니, 선하니 악하니, 아름다우니 추하니하는 일체 분별들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 2008년 여름 안거 결제 법석에서 하신 법정 스님 말씀

 

"사랑이라는 건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풋풋해지고 더 자비스러워지고 저 아이가 좋아할 게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이죠. 사람이든 물건이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이 따르는 겁니다.

- 어느 법석에서 하신 법정 스님 말씀

 

 

"나는 가끔 내 손을 들여다보면서 고마워할 때가 있다. 나무와 찬물을 다루다 보니 손결이 거칠어졌지만 이 손이 아니면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물을 길어 오고, 땔감을 마련하고, 먹을거리를 챙겨주는 것도 이 손이다. 그리고 내 삶 자취와 생각을 이렇게 문자를 빌려 표현해 주는 것 또한 이 손이다."

- 법정 스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겨우살이' 중에서

 

"선한 일을 하면 이기심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래도 선한 일을 하라.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해라.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만들라. 도움이 필요해 도와주면 되레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도와줘라. 좋은 것을 주면 발길로 차일 것이다.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을 주라."

 

"사실 저는 아직까지도 행복이란 게 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행복을 떠올리는 자체로도 매우 즐겁다는 것입니다."

- 쓰지 신이치(문화인류학자, 환경운동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가 뭔지 아십니까? 불교도 기독교도 또는 유대교나 회교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입니다……."

- 법정 스님이 어느 법석에서 하신 말씀

 

무재칠시(無材七施)

 

첫째, 안시眼施. 눈으로 나눔. 눈은 마음을 담는 창이란 말이 있듯이, 눈으로 하는 말이 한 마디 말보다 더 울림이 크다. 상대에 대한 호의를 담아 따뜻하고 그윽한 눈빛을 나눌 일이다. 늘 좋은 눈으로남을 대하면 천안天眼과 불안佛眼이 열린다. 눈길에 따라 사람 마음이 부드럽고 온화해진다.

둘째, 화안시和顔施. 얼굴로 나눔. 얼굴에 가득 넉넉하고 따사로운 욱음을 담아 부드럽고 살갑게 대하는 일이다. 아침에 부드러운 얼굴로 시작하는 사람은 하루가 꽃피어나고, 하루를 부드러운 얼굴로 사는 사람은 인생이 꽃핀다.

셋째, 언사시言辭施. 말로 나눔. 덕담. 언제나 좋은 말과 부드러운 말씨로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사랑 담은 말, 칭찬하는 말, 위로하는 말, 양보하는 말이 그것이다.

넷째,  신시身施. 몸으로 나눔. 내 몸을 놀려 적극 나서서 남을 돕는 일. 상대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거나, 상대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감싸주는 일.

다섯째, 심시心施. 마음으로 나눔. 다른 이를 대할 때 자비심을 갖는 일. 마음을 늘 평화롭게 하여 일희일비하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는 일이다.

여섯째, 상좌시床座施. 자리를 나눔. 언제나 자기 자리를 양보하는 일. 경쟁자 자리를 빼앗지 않고 외려 더 넓게 보고 그에게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이다.

일곱 번째, 방사시房舍施. 방과 집을 나눔. 자기 집을 남에게 하룻밤 숙소로 내어주는 일이다. 또는 다른 이에게 쉴 만한 공간을 내주는 일이다. 상대가 힘들고 괴로울 때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줄수록 내 존재 영역이 더 넓어진다.

 

 

"'미륵반가사유상'과 로댕이 조각한 '생각하는 사람'은 똑같이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미륵반가사유상 앞에 서면 저절로 고요와 평안과 미소가 우리 안에 저며 듭니다. 그러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에는 그러한 고요와 평안과 미소가 없습니다. 그저 무거운 고요가 감돌 뿐입니다. 미륵반가사유상에는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는 아름다움, 무애無碍 미美가 깃들어 있는데, 생각하는 사람에는 이 아름다움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미륵반가사유상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한 법정 스님 말씀

 

직소폭포에서 내소사까지는 전혀 표지판이 없어 순전히 느낌으로 길을 가야 하므로 잘못 들기 쉽다. 한참 개울을 따라가다가 꺾인 지점에서 왼쪽으로 개울을 건너 낮은 솔밭 언덕으로 올라갔다가 혹시 길을 잘못 들지 않았는가 싶어 다시 개울가로 한참 따라가니  뽕나무를 가꾸는 산촌이 나와 아차 싶었다. 처음 솔밭 언덕길이 내소사로 넘어가는 바른 길이었던 것이다. 바른 길로 가면서도 확신이 없으면 다시 헤매게 된다는 교훈을 이 길에서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낯선 길에서 '느낌'이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는 사실도 함께 배웠다. 우리는 길에서 많은것을 배운다.

- 법정 스님 <물소리 바람소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나는 이곳에 와 지내면서 새삼스레 죽음에 대해서 가끔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은 삶과 무연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연소요, 소모이므로 순간순간 죽어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죽음이란 삶 끝이아니라 다음 생 시작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나는, 평소부터 죽음에 따르는 의례 치루는 번거로운 의식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해 오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여럿이 사는 절에서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이웃들에게 내 벗어버린 껍데기로 인해 폐를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 <버리고 떠나기> '달 같은 해 해 같은 달'에서

 

"천고 영웅이나 미인이 눈물이 많다 하나 그들은 몇 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을 뿐,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서 금석으로부터 나오는 듯한 울음은 울지 못한다. 그런 울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사람이 다만 칠정七情 가운데 슬플 때만 우는 줄 알고, 칠정 모두가 울 수 있음을 모르는 모양이오. 기쁨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사랑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치면 울게 된다. 불평과 억울함을 풀어버림에는 소리보다 더 빠름이 없고,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이다. 지정至情이 우러나오는 곳에는, 이것이 저절로 이치에 맞을진대 울음이 웃음과 무엇이 다르리오."

- 도강록

 

 

 

 

 

 

 

 

 

 

 

 

 

 

 

 

 

 

 

 

 

 

 

 

 

 

 

 

 

 

 

 

 

 

 

 

 

 

 

 

 

 

 

 

 

 

 

 

 

 

posted by 황영찬
2013. 1. 16. 17:18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06 문자도

 

글, 사진 / 유홍준, 이태호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8002

 

082

빛 12 ㄷ 146

 

빛깔있는 책들 146

 

유홍준-------------------------------------------------------------------------

1949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였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 당선한 이후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1985년부터 매년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 강좌를 개설하고,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고 있으며, 현재는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1986, 열화당),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1993, 창작과 비평사), 편역서로 「미학에세이」(1998, 청년사) 등이 있으며 '단원 김홍도 연구' 등 한국미술사 관계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이태호-------------------------------------------------------------------------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였고 같은 학교 대학원 미학 · 미술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전남대학교 교수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 '한국의 고대 산수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 '겸재 정선의 가계와 생애' '김홍도의 진경산수' '다산 정약용의 예술 세계' '조선시대의 초상화' '1940년대 친일 미술' 등이 있으며 「고구려 고분 벽화」「조선 후기 회화사 연구」「그림으로 본 옛 서울」 등의 저서와 평론집 「우리 시대, 우리 미술」이 있다.

 

|차례|

 

글머리에

조선 후기 민화의 유행과 쓰임새

민화의 성격에 대한 문화사적 의의

    민화의 확산

    민화의 성격

효제 문자도의 의미와 쓰임새

문자도의 표현 내용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문자도의 양식 변천

맺음말

주(註)

명품 감상

도판 해설

 

 

 

 

 

▲ 문자도 8폭  효제충신  예의염치(孝悌忠信 禮義廉恥)라는 8가지의 도덕적 덕목을 그림 글씨로 만들어 8폭의 병풍으로 꾸민 것은 18세기에 들어와 집안치레와 병풍 사용이 유행되면서 나타난 서민 미술 문화의 대표적인 예로 생각되고 있다. 이 민화 문자도는 처음에는 글자를 엄정한 해서체로 하고, 각 획에 삽입되는 그림은 각 덕목에 해당하는 고사성어의 내용을 도해(圖解)하는 방식으로 출발하였고, 그 양식은 각 지방에 따라 또한 제작자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에 들어오게 되면 민화 문자도는 그 변형이 다양하게 이루어져 글자는 아주 단순화되고, 삽입되는 그림은 내용보다도 치장 효과에 더욱 주목하게 되어 일종의 그래픽 디자인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 작품은 그 대표적인 예로 손꼽힐 만하다. 직선을 위주로 하면서 약간씩 곡선의 미를 살려 낸 글씨체의 간결한 변형이 현대적 세련미를 느끼게 해주며, 획 속에는 꽃과 새로써 글씨의 내용이 아니라 화사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장식미로서 흘렀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문자도의 도덕적 엄정성이 아니라 밝고 화려한 희망과 꿈이 서려 있는 장식미술로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된다. 각폭 60.9×36.4cm, 종이에 채색, 운향미술관 소장.

▲ '悌'자 문자도

▲ '孝'자 문자도  75.0×42.0cm, 개인 소장.

▲ '孝'자 문자도

▲ '悌'자 문자도

▲ '忠'자 문자도(도판 1의 부분)  19세기, 장지에 먹과 채색, 35.0×54.5cm, 개인 소장.

▲ '信'자 문자도  75.0×42.0cm, 개인 소장.

▲ '信'자 문자도

▲ '禮'자 문자도(도판 4의 부분)  19세기 후반, 장지에 먹과 채색, 개인 소장.

▲ '義'자 문자도  48.0×29.2cm,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 '廉'자 문자도(도판 4의 부분)  19세기 후반, 장지에 먹과 채색, 개인 소장.

▲ '廉'자 문자도  75.0×42.0cm, 개인 소장.

▲ '恥'자 문자도(도판 6의 부분)  19세기 후반, 장지에 먹과 담채, 개인 소장.

▲ '禮義廉恥' 문자도

▲ '孝'자 문자도(도판 8의 부분)  18세기 후반, 장지에 먹과 채색, 호암미술관 소장.

▲ [도판 4]

▲ [도판 6]

▲ [도판 7]

▲ [도판 8] 18세기 후반, 장지에 먹과 채색, 각폭 74.2×42.2cm, 호암미술관 소장.

민화 문자도의 현존 작품 가운데에서 비교적 시대가 오랜 작품으로 생각되는 정통적인 양식이다. 여덟 글자가 혁필의 준경한 필세로 쓰여지고 그 획 속에 각종 도상들이 섬세하고 친절하게 묘사되었으며 채색은 화려의 극을 달릴 정도로 원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글씨는 정중한 무게를 느끼게 하고 그림은 화사한 맛을 자아내는 민화 문자도의 걸작으로 손꼽힐 만한 명품이 되었다. 도상을 그려 낸 솜씨를 보면 결코 허드레 환쟁이의 솜씨가 아닌 듯하다. 아주 작은 도상이지만 말탄 사람, 누각 속의 인물들 표현을 보면 인체 비례도 정확하고 표정도 갖추고 있고, 화조화 형식에서 따온 소나무, 매화, 국화 등의 표현에서도 세필과 채색에 능숙한 화공(畵工)의 솜씨를 역력히 느낄 수 있다.

각 글씨의 그림은 문자의 내용에 충실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산수, 인물, 화조라는 세 장르를 각 폭마다 담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통일된 형식을 보여 주며 그로 인하여 이 그림의 중후한 인상을 더욱 강화시켰다. 채색은 진채를 사용하여 화려함이 돋보이는데 글자 획을 거의 메우는 듯 여백을 약간만 남김으로써 먹빛의 강한 느낌을 눌러 준 것이 더욱 조형적으로 성공하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도판 10]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