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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0'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5.30 2013-053-3 궁중 유물(하나)
  2. 2013.05.30 2013-053-2 궁중 유물(하나)
2013. 5. 30. 17:24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53-3 궁중 유물(하나)

 

앵삼(鶯衫)  조선시대 유생들이 과거 급제와 관례 참가시 착용한 예복이다.

구군복(具軍服)  조선시대 무관이 갖추어 입던 의복으로 그 위에 전복(戰服)을 입고 남색 전대(戰帶)를 띠며 환도를 차고 손에 채를 들었다.

쇄자갑(鎖子甲)  쇠고리를 엮어 가슴 앞에서 감싸게 하였는데 고리나 엮음이 매우 정교하다. 길이는 엉덩이를 가리울 정도이고 소매는 겨우 어깨를 감쌀 만하다. 길이 81센티미터.

홍룡포 보(補)(왼쪽)  이 보는 영왕의 홍룡포 용이다. 홍색 바탕에 수놓은 문양은 24개 능으로 이루어진 원형 테를 하고 중앙에 오조룡을 금사로 수놓아 메웠다. 구름을 박차고 뛰어나올 듯한 용맹스러운 용을 정면에 배치하고 머리와 몸체 중간에는 화염문과 달을 배치하였다.

적의 보(오른쪽)  이 보는 영왕비의 적의 보이다. 원형 보는 포지(袍地)와 같은 청색 단에 굵은 금사로 원형 선을 두르고 중앙에는 위엄있는 용을 금사로 자수하였다. 용의 턱 아래 여의주는 용의 격을 한층 높여 주고 있다.

기린 흉배  기린 흉배는 대원군만이 사용한 상징적인 흉배 문양으로 뿔이 둘 달린 용의 머리에 뱀의 목, 용의 비늘이 있는 힘찬 몸체를 하였고 등에는 서기가 뻗쳐 있는 모습이다.

영왕비 국화문 앞꽂이와 떨잠  앞꽂이는 국화 문양을 조각한 유백 옥판에 금장으로 꽃잎과 꽃술을 장식하고 한가운데에 홍파리를 감입했다. 떨잠은 둥근 형태의 백옥판에 화문을 투각하여 진주, 청 · 홍파리를 감입하였고 나비형 떨잠은 금속 장식 위에 홍파리, 청파리, 진주를 감식했다.

영왕비 소립봉잠(小立鳳簪)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한 정교한 자태의 봉을 부착한 잠으로 머리에는 각진 홍파리를, 눈쪽에는 작은 자연산 진주를 감입한 아름다운 봉의 형상을 보여 주고 있다. 양쪽 날개와 꼬리 좌우에 각 2개씩의 자연산 진주를, 꼬리 중간에는 커다란 홍파리를 감입하고 머리와의 연결 부분에 홍파리와 청파리를 감입하여 입체감 있고 생동감 있게 만들어진 조선 후기의 궁중 문화재로 손꼽히는 걸작품이다.

영왕비 용잠(龍簪)  머리에 섬세한 용을 조각하여 도금한 비녀이다. 용잠은 주로 왕족이 사용하였으나 사대부가에 전해져 혼례 등의 의식 때 큰머리에 이 용잠을 장식하였다.

영왕비 금봉잠(金鳳簪)  왕비의 대례복인 적의를 착용할 때 대수(大首) 아래쪽의 머리 좌우에 가로로 꽂아 봉황이 얼굴 양쪽에 오게 했다.

영왕비 동자삼작(童子三作)노리개  산호, 공작석, 밀화로 동자의 모습을 입체감 있게 조각하여 매듭과 술을 연결한 노리개이다.

영왕비 은(銀)파란 니사향갑(泥絲香匣) 단작노리개  도금한 가는 니사를 꼬아 나방 모양으로 망을 엮어 향갑을 만들었다.

영왕비 장도(粧刀)노리개

향낭(香囊)  향낭은 궁중에서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노리개 삼아 찼는데 비, 빈, 공주가 혼례 때 차는 진주낭자(眞珠囊子)가 있다. 한쪽은 홍색, 다른 한쪽은 황색의 비단에 석류문과 모란문을 금은사(金銀絲)로 정교하게 수놓아 고귀한 느낌을 준다.

영왕비 진주협낭  홍색 단에 금사로 수를 놓고 진주를 장식한 지극히 호화로운 주머니로 왕비가 궁중 의식이나 정초 문안 때 대례복에 패용하였다. 이것은 영왕비가 순종 황제를 알현할 때 적의 대례복에 갖췄던 것이다.

수약낭(繡藥囊), 두루주머니, 귀주머니  수약낭은 홍색 모본단에 5각 뚜껑이 있어 독특한 솜씨가 돋보이는 주머니이며 두루주머니는 진분홍 모본단에 한 쌍의 학과 작은 화문을 배치한 것이다. 또 귀주머니는 귀엽고 앙증맞게 만든 왕세자용 주머니이다.

귀주머니  위의 두 점은 자수품으로 수귀주머니이고 아래 1점은 부금(付金)한 귀주머니이다. 3점 모두 바탕은 홍색, 녹색의 모본단을 사용하였다.

봉황보  여러 점의 궁보 가운데 한 점으로 바탕 천은 곱게 다듬은 홍색 모시 홑겹으로 되어 있다. 그 위에 당채(唐彩)를 써서 봉황문, 수자문, 모란문을 비롯하여 성수만세(聖壽萬歲) 등 문자문을 화려하게 그려 넣었으며 끈에도 와권문(渦卷文) 등을 그려 넣었다. 52×58.6센티미터.

봉황보  문양은 중앙에 봉황을 그려 넣고 보자기 전면에 화문, 천추만세, 백복창성, 파문 등을, 끈에는 요산(瑤山), 채옥(彩玉)의 글자 및 화ㅏ문을 그려 넣었다. 54×59.2센티미터.

봉황보  문양은 중앙 원형에 봉황을 그려 넣고 만수무강, 파문, 뇌문, 당초문 등이 조합되어 당채로 그려져 있으며 전체적 색감은 청회색이다. 87.5×91센티미터.

 

 

 

 

 

 

 

 

posted by 황영찬
2013. 5. 30. 10:31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53-2 궁중 유물(하나)

 

청화 백자 운룡문(雲龍文) 항아리  입이 넓고 높게 세워졌으며, 어깨가 급히 벌어져 몸체 위쪽에 중심을 두고 서서히 좁아져 내려가 바닥에 이르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항아리이다. 청화 백자 항아리는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의 분원 가마에서 주로 왕실의 술항아리, 화병용으로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18세기 후반의 작품이다. 높이 57.5센티미터, 입지름 19~21센티미터, 밑지름 18센티미터.

청화 백자 모란당초문 술병  큰 조롱박 위에 작은 조롱박을 얹은 모습의 병으로 위쪽은 목이 길다. 문양으로는 청화 안료로 모란당초문을 간결하게 그려 적절히 배치하였고, 유색은 약간 푸르름이 감도는 백자유가 전면에 곱게 시유되어 잇으며 광택이 있다. 19세기 전반경 분원리 가마에서 구운 술병으로 생각된다. 높이 21.5센티미터, 입지름 2.2센티미터, 밑지름 7.5센티미터.

청화 백자 모란문 합  큰 사발 모습의 아래 그릇은 몸체가 넓고 낮은 굽을 지녀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겉 전면에 화려한 모란꽃과 그 줄기를 소담하게 청화로 그렸으며, 위쪽 그릇은 접시 모양으로 중앙에 낮은 굽다리를 표시하고 그 안에 기하학적인 '수(壽)'자문과 그 주변에 모란 두 송이를 꽉차게 그렸다. 19세기 후반경 경기도 광주의 분원리 가마에서 제작되었다. 높이 16.8센티미터, 입지름 20.5~22센티미터, 밑지름 12.2센티미터, 뚜껑 지름 21.7센티미터.

백자(白磁) 주전자  무늬 없는 순백자 주전자로 둥근 몸체에 작은 부리와 손잡이, 뚜껑을 지녔다. 푸른빛이 감도는 백자유(白磁釉)가 전면에 곱게 칠해져 있는데 이러한 백자 주전자는 조선시대 19세기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 가마에서 제작하였던 전형적인 기물의 하나다. 높이 18센티미터, 입지름 8.2센티미터, 밑지름 9.5센티미터.

백자 태항아리  내항(內缸)의 형태가 같다. 뚜껑의 중앙에 구멍이 4개 있는 연봉 꼭지가 달려 있다. 접시 모양의 몸체를 이루고 아래쪽은 어깨에 얇은 고리를 네 곳에 부착시킨 사발 모양으로 전체적으로 합 모양이다. 18세기 후반경 광주 분원리 가마에서 특별히 제작한 항아리이다. 왼쪽 : 높이 28.5센티미터, 입지름 25.5센티미터, 밑지름 15.8센티미터. 오른쪽 : 높이 19.5센티미터, 밑지름 10.2센티미터, 뚜껑 지름 17.5센티미터.

영왕의 홍룡포(紅龍袍)  홍룡포는 왕의 시무복으로 세종 26년(1444)부터 조선 말기까지 제도화하여 사용한 포(袍)이다. 이것은 영왕이 일본에서 결혼한 뒤 왕비와 함께 귀국하여 1922년 순종을 배알할 때 입었던 것으로 현존하는 유일의 홍룡포이다. 겉감은 홍색 운보문사(雲寶文紗)이며 안감은 남색 구름 무늬 비단이다. 깃은 둥글고 속깃은 무늬 없는 진옥색 비단으로 되어 있으며 소매는 배래에 굴곡이 거의 없는 형식이다. 보는 금사로 발톱이 다섯 달린 오조룡을 수놓았으며 여백에 십장생, 구름, 화염 등을 배치하였다. 이 보의 지름은 21센티미터이다. 119×197센티미터.

영왕비(英王妃) 적의(翟衣)  적의는 조선시대 왕비와 왕세자비의 대례복이다. 영왕비가 착용했던 이 적의는 두터운 이중직 남색 비단 바탕에 5색으로 9등의 꿩 무늬인 적문(翟文)을 짜넣었고 소매에는 4등의 적문을, 하단에 세 개의 윤화문(輪花文)을 1등으로 짜넣었다. 소매와 앞길의 적문은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적문 사이사이에는 연두색, 홍색, 흰색, 남색의 작은 꽃 무늬가 있다. 153×208센티미터.

대대(大帶)와 후수(後綬)  대대에 후수가 부착된 것으로 적의를 입은 뒤 뒷중심에 후수가 놓이고 백색 대대가 양옆에 오도록 뒤에서 앞으로 맨다. 101.7×74.5센티미터.

패옥(佩玉)  대례복에 착용하는 것으로 색동 견직물에 매듭을 매고 술을 늘인 바탕에 부착되어 있다. 영왕비 패옥. 80×9센티미터.

영왕비 대홍원삼(大紅圓衫)  하절기와 동절기 예복으로 영왕비가 착용했던 것이다. 봉 무늬가 직조되어 있는 평직의 대홍색 바탕에 양어깨와 소매 하단의 앞뒷길에 크고 작은 봉황이 금직되어 있다. 114×238센티미터.

영왕비 당의(唐衣)와 남금박(藍金箔) 대란치마  당의는 왕비, 왕세자비 및 대관 부인의 소례복이다. 연두색 문단에 무늬 없는 홍색안을 넣어 만든 겹옷인데 양어깨와 앞뒷길 하단에는 운봉문을 금실로 짜 넣었다. 금박 대란치마는 동절기용 접대란치마인데 위의 스란단에는 부귀다남의 글자와 천도, 불로초, 연꽃 등의 문양을 금직하였다. 당의 : 79×108.5센티미터. 치마 : 142×104×324센티미터.

영왕비 자색금직 대란치마  자적색의 도류불수문단(桃榴佛手文緞) 바탕에 두 개의 스란단을 부착한 화려한 홑치마이다. 길이 150센티미터, 허리 길이 97센티미터, 아래폭 345센티미터.

왕손 자적용포(紫的龍袍)  조선 후기 왕손의 평상복으로 자색 용포라는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보는 포와 같은 자색 천에 사조룡을 부금하여 만들었는데 지름은 11센티미터이다. 66×98센티미터.

진(晋)왕자 사규삼  이 사규삼은 1922년 영왕과 영왕비가 일본에서 일시 귀국하여 순종을 알현할 때 순종왕후가 진왕자에게 하사한 것이다. 84.5×116센티미터.

학창의(鶴氅衣)  조선시대 학자들이 평상시에 입던 연거복(燕居服)이다. 학과 같은 숭고한 기풍의 상징으로 백색으로 만들고 검은 선을 둘렀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