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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27. 16:16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087 통도사 T'ongdosa

 

글 / 이기영, 김동현, 정우택●사진 / 통도사 성보박물관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971

 

082

빛12ㄷ 110

 

빛깔있는 책들 110

 

연혁 - 이기영------------------------------------------------------------------

경성대학교(서울대학교 전신) 예과 수료, 동대학교 법문학부 사학과를 수학하고 벨기에 루벵대학에서 사학 및 철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동국대학교 교수, 국민대학 학장과 대한불교진흥원 이사, 불교방송국 이사, 한국 불교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원효사상」(세계관편),「한국의 사찰」총 18권(공저) 등 총 35권이 있으며 '원효의 보살계관'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건축 - 김동현------------------------------------------------------------------

한양대학교 건축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였고 일본 동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연수하였다. 경주고적발굴조사단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문화재전문위원, 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장, 대한건축학회 역사 분과 위원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 고건축 단장」「불국사」등 여러 책과 논문들이 있다.

 

유물 - 정우택------------------------------------------------------------------

동국대학교 불교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과를 졸업, 일본 구주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연구원을 역임, 현재 한국관광대학 문화재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고려시대 아미타화상의 연구」(일문)가 있으며 '고려시대 아미타팔대보살도'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사진 - 통도사 성보박물관

 

|차례|

 

창사 정신

    불보 사찰로서의 통도사

    불사리의 정신

통도사의 연혁

    창건

    금강계단의 역사

통도사의 건축

    건물의 배치

    상로전 건물

    중로전 건물

    하로전 건물

통도사의 유물

    불화

    건조물

    공예품

    불교 조각

    사경

영문 요약

 

 

 

▲ 석가여래의 가사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불보 사찰이다.

▲ 일주문 절에 들어오는 첫번째 문으로 현판에 "영축산통도사"라 씌어 있다.

▲ 자장 율사의 진영(眞影) 가로 96센티미터, 세로 146센티미터. 1804년.

▲ 구룡지 통도사의 창건 설화가 얽힌 연못이다.

▲ 금강계단 통도사 창건의 근본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최상의 성지이며 전체 가람 배치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 금강계단의 석문 계단 주변에 석문과 석조 담장을 둘러 불사리를 수호하고자 하였다.

▲ 금강계단의 석종 부도 위아래 이중의 넓은 기단 중심부에 직경 150센티미터 정도의 복련(伏蓮)과 앙련(仰蓮)의 받침 대석을 놓고 그 위에 석종형 부도를 안치하였다. 부도 표면에는 비천과 사리함을 조각하였다.

▲ 문수사리최상승무생계경 1386년에 만들어진 목판본 경전으로 보물 738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로 20센티미터, 세로 26.5센티미터.

▲ 삼성 반월교 일주문 앞에 있는 세 개의 무지개 석교로 구축한 다리이다. 이름은 불교의 상징인 마음을 뜻한다.

▲ 조선시대의 통도사 전경 통도사가 646년(선덕여왕 15)에 창건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1300여 년 동안 경역의 확충, 건물들의 보수, 중수, 증축 등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었다.

▲ 가람 배치 평면도

▲ 대웅전 상로전의 주건물(主建物)이다. 두 개의 건물을 복합시킨 평면형으로 건물 내부의 기둥 배치가 다른 건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이다.

▲ 대웅전 내부 대웅전 북쪽에 있는 금강계단에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불상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

▲ 대웅전 돌계단 동쪽과 남쪽에 계단을 내고 소맷돌에 연화문을 새겨 돌계단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 응진전 대웅전 서남쪽에 동향한 불당으로 1677년에 지섬 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 응진전 내부 중앙에 석가여래와 좌우에 미륵보살과 제화갈라 보살상이 봉안되었고 그 주변에는 16나한상과 범천 및 제석천왕을 좌우에 모셨다.

▲ 명부전 중앙의 6칸에는 지장보살상을 비롯하여 십대왕을 봉안하였다. 그래서 지장전이라고 한다.

▲ 삼성각과 산령각 구룡지를 중심으로 왼쪽은 삼성각이며 위쪽은 산령각이다.

▲ 일로향각 이 건물은 상로전을 관리하는 노전(爐殿) 건물로 대웅전과 응진전의 남쪽에 위치한다.

▲ 대광명전 중로전의 중심 건물로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집이며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하고 있다.

▲ 용화전 내부 미륵불 좌상을 봉안한 이 전의 특징은 안쪽 공포를 5출목 형식으로 천장 높이까지 짜여져 11포의 화려한 공포 구성을 이루고 있다.

▲ 관음전 관음전은 다포계 주심포식 양식의 팔작집으로 내부에는 관세음보살상을 안치하고 있다.

▲ 개산조당 개산조당은 해장보궁으로 통하는 문의 기능을 가진 건물이다. 가운뎃 칸이 양쪽 칸보다 높게 솟아 있어 솟을삼문이라 한다.

▲ 장경각

▲ 세존 비각 이 비각은 1706년(숙종 32) 계파대사가 금강계단을 중수하고 석가여래의 영골 사리비를 세우면서 건립한 것으로 비석에는 불사리의 행적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 황화각 강원과 학승들이 거처하는 건물이다.

▲ 불이문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경내의 마지막 문으로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 영산 하로전의 중심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집이다.

▲ 극락보전 비교적 규모가 작은 건물이지만 짜임새와 전체적 외관이 견실하게 꾸며진 건물이다.

▲ 약사전 내부 약사여래를 주존으로 하였고 후불 탱화는 약사여래와 함께 일광, 월광 보살을 비롯하여 대보살 및 신장상 등을 나타내었다.

▲ 약사전 극락전과 마주하고 있는 정면 3칸, 측면 단칸의 다포식 맞배집이다.

▲ 만세루 현재의 건물이 누각이 아니면서 누라고 한 것을 보면 초창 때는 누각 형식의 건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 범종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판에는 "범종루" "범종각" "통도사" 등의 글씨가 적혀 있고 주련이 각 기둥에 달려 있다.

▲ 해탈문의 천장 호랑이, 코끼리, 용, 봉황 등으로 다양하게 장식하였다.

▲ 천왕문의 사천왕상 광목천왕(위 왼쪽), 지국천왕(위 오른쪽), 증장천왕(아래 왼쪽), 다문천왕(아래 오른쪽)의 모습이다.

▲ 일주문 정면 3칸의 다포식 9포작으로 맞배지붕, 겹처마인데 지붕 무게를 보강하기 위해 건물 네 귀에 활주를 세웠다. 

▲ 성보박물관

▲ 감로당 정면 7칸, 측면 2칸의 건물로 현재 스님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 원통방 감로당 동쪽 측면에 위치하여 요사체로서 사용된다. 

▲ 화엄전과 명워료 화엄전(위)은 주로 법회 때 사용되며 명월료(아래)는 1978년 새로 지은 건물로 현재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다.

▲ 영산전 영산회상도 1734년 화원 임한 등에 의하여 제작된 것으로 통도사 불화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석가팔상도(釋迦八相圖)

 

▲ 제1 도솔래의상

▲ 제2 바람강생상

▲ 제3 사문유관상

▲ 제4 유성출가상

▲ 제5 설산수도상

▲ 제6 수하항마상

▲ 제7 녹원전법상

▲ 제8 쌍림열반상

▲ 대광명전 비로자나삼신 불화 비로자나 불화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걸려 있는 노사나불화(아래)와 왼쪽에 걸려 있는 석가여래도(가운데)이다. 이 두 불화는 화면 구성, 권속의 수 등이 일치하고 있다.

▲ 대광명전 비로자나 불화 당시의 삼신 불화의 일반적 구성 밥업인 화면의 크기와 권속의 숙자까지도 달리하여 주존불인 비로자나불의 절대 우위를 극단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 아미타삼존 입상도 1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가운데에 아미타여래 그 왼쪽에 관음보살, 오른쪽에는 지장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 반야용선도 왕생자를 용선에 싣고 서방 정토로 인도해 가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1868년 제작된 것이다.

▲ 약사여래도 약사전의 약사여래도로 1775년 양공 포관 등에 의해 제작된 훌륭한 그림이다.

▲ 명부전 지장보살도 1798년 양공 지연 등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한가운데 반가 자세의 지장보살이 앉아 있고 그 좌우에 8보살,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그리고 동자 등이 늘어 서 있다.

▲ 옥련암 지장보살도 1888년에 제작된 것으로 화면 구성이 어느 불교 도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다.

▲ 시왕도 1775년 양공 지연 등에 제작된 것으로 모두 10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는 제5 염마대왕이며 아래는 제10 오도전륜대왕이다.

▲ 삼장보살도 1792년에 제작된 것으로 화면 한가운데 천장보살이, 그 좌우 약간 낮은 위치에 지지, 지장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 감로왕도 통도사에는 3점의 감로왕도가 소장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1786년에 회사 평삼 등에 의해 제작되었다.

▲ 괘불 특별한 법회나 의식을 밖에서 거행할 때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형 불화로 1767년 제작된 것이다.

▲ 영산전의 다보탑 벽화 벽면 공간을 잘 이용한 구성의 치밀함, 뛰어난 색채 감각 등 상당한 수준의 화가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가로 220센티미터, 세로 540센티미터.

▲ 3층 석탑 전체적으로 규모가 작고 구성이 단순하여 신라 말이나 고려시대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 봉발탑 통도사 경내의 석조물 가운데 유일한 국가 지정 문화재로 용화전 앞에 세워져 있다. 보물 471호.

▲ 석등과 석조물 석등(아래)은 관음전 앞에 있는 것이며, 석조물(위)은 개산조당 앞에 있는 것으로 불교에서 이르는 실천, 수행하는 여덟 가지 덕목인 팔정도(八正道)가 새겨졌다.

▲ 국장생 석표 가로 60센티미터, 세로 166센티미터, 1085년, 보물 74호.

▲ 청동 은입사 향완 전면에 보상화문, 연화문, 운문, 봉황문 등 다양한 문양을 정교한 은입사로 표현한 고려시대 향완으로 우수한 작품이다. 보물 334호.

▲ 금동 천문도판

▲ 금동 여래 입상 광배는 없지만 거의 원형에 가까운 유일한 불상이다. 높이 3.5센티미터.

▲ 마애 삼존 불상 자장암에 있는 불상으로 조선시대 말기(1896년)에 제작된 것으로 높이는 약 400센티미터이다.

▲ 화엄경 변상도 「대방광불화엄경」제46권 '불불사의법품'의 머리 그림으로 감지에 금분으로 그렸다. 보물 757호.

 

 

 

 

 

 

 

 

 

 

 

 

posted by 황영찬
2012. 6. 23. 06:51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086 추억과 낭만이 가득한 북한강

 

전재화 · 정현일 글 / 사진

(주)교학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8897

 

981.102

강22교 1

 

강 따라 흘러가는 4대 강 절경

 

바람과 햇살과 달빛의 여행

 

잿빛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바람개비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도시인이여!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북한강의 영원한 휴식처로 떠나라!

 

|차례|

 

------------------------------파주_ Paju | 북한강

              통일전망대  바다와 하나되는 세월의 끝자락_

                    반구정  청백리 황희정승이 머물던 정자_

                 도라산역  북으로 달리고픈 철마가 쉬고 있는_

                 쇠꼴마을  이화(梨花)가 흩날리고 호수에 달빛이 머무는_

공, 순, 영릉 가는 길  조선왕조의 여인들 만나는 아름다운 숲길_

 

------------------------------고양_ Goyang | 북한강

               행주산성  한강을 향한 역사의 숨결_

               호수공원  한강변에 이룩한 기적의 공원_

       원당 종마목장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가슴 트이는_

                 서삼릉  중종의 첫 부인과 그의 아들 그리고 철종이 묻힌 곳_

                 서오릉  80년대 서울근교 초등학교의 대표적인 소풍지였던_

 

------------------------------서울_ Seoul | 북한강

                   남산  한강이 한 눈에 보이는 서울의 중심_

      한강시민공원  서울의 영원한 쉼터_

      절두산순교지  처절했던 천주교 박해의 장소_

                아차산  바람도 쉬어가는 한강의 절경이 발밑에 흐르는_

 

------------------------------남양주_ Namyangju | 북한강

북한강변 드라이브  자동차로 돌아보는 북한강의 정취_

  다산 정약용 생가  마재 마을에서 피어나는 실학의 향기_

                 수종사  바위굴에서 떨어지는 낙수가 종소리로 퍼지는 곳_

              두물머리  남한강과 북한강의 물줄기가 하나 되는 곳_

    서울종합촬영소  북한강의 여운을 필름 속에 담아 둔_

축령산 자연휴양림  산림 속에서 도시의 때를 벗겨내는 자연의 샤워실_

                 동구릉  태조 이성계와 그의 후손이 묻힌 곳_

 

북한강 | 가평 양평_ Ga/Yangpyeong--------------------

                      _심산유곡을 아홉구비 돌아 오르는  벽계구곡

                           _가을 억새와 활공 레저의 요람  유명산 자연휴양림

                            _아름다운 한국의 고요한 정원  아침고요수목원

                      _북한강에 떠있는 섬으로의 피크닉  남이섬

              _폭포의 시원함이 있는 자연으로의 회귀  용추 자연휴양림

 

북한강 | 강촌_ Gangchon-------------------------------

                       _젊음과 자전거가 함께 하는 추억  강촌 유원지

                                  _아홉구비를 돌아, 돌아서  구곡폭포 가는 길

                         _서늘한 바위계곡에서 굽이치는  등선폭포

 

북한강 | 춘천_ Chuncheon-----------------------------

      _물안개 잦아드는 호반의 풍경과 함께 달리는  의암호숫가 드라이브

                               _휴일이면 젊음이 넘실대는  춘천시내

                                                _춘천인의 쉼터  공지천 시민공원

       _의암호의 아름다움을 두 배로 더해 주는 섬  중도

                          _그림과도 같은 이국적인 풍경  신숭겸의 묘로 가는 길

                             _강을 가로막아 바다를 만든  소양댐

    _소양호에 드리운 따스한 햇살이 머무는 사찰  청평사

 

북한강 | 양구_ Yanggu---------------------------------

           _춘천과 양구를 이어주는 아름다운 호수  소양호

                                   _산 속의 아름다운 바다  파로호

                                           _서민화가의 대표  박수근미술관

                   _옛 조상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양구 향토사료관

                         _강원도에서 만나는 석기시대  양구 선사박물관

                            _민통선의 아름다운 관광지  두타연

 

북한강 | 화천_ Hwacheon----------------------------

        _평화롭게 흐르는 북한강을 만날 수 있는  평화의 댐 가는 길

     _사람의 접근을 거부하는 청정 원시의 자연  비수구미

_전쟁으로 사라져간 청년의 넋을 기린 가곡 [비목]의 현장  비목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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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2. 6. 22. 16:13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085 한국의 성곽

 

글 / 반영환●사진 / 최진연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970

 

082

빛12ㄷ 109

 

빛깔있는 책들 109

 

반영환-------------------------------------------------------------------------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부국장, 주간, 국장을 거쳐 현재 서울신문사 이사로 재직중이며 문화재전문위원, 향토축제개선위원을 맡고 있다. 1975년 서울신문사 '한국의 성' 연재로 한국기자상을 받았으며 「한국의 성곽」(세종대왕 기념사업회)을 펴 냈다.

 

최진연-------------------------------------------------------------------------

 

제6회 대한민국 사진전 대상을 수상 하였으며 현재 영상스튜디오 대표를 맡고 잇다. 1988년 '아메리카의 인상'이란 주제로 제1회 개인전을 가졌고 191년 '한국의 옛 성곽' 주제로 2회 개인전을 열었다. 대한사진예술가협회 총무이사를 맡고 있다.

 

|차례|

 

성곽의 기원

    성곽의 기원

    성곽의 발달

성곽의 종류

    도성

    산성

    읍성

    장성

각 시대의 성곽

    고구려의 성곽, 백제의 성곽

    신라의 성곽, 통일신라의 성곽

    고려의 성곽, 조선의 성곽

격전을 치른 성곽

    요동성 싸움, 안시성 싸움

    옹주성 싸움, 귀주성 싸움

    죽주성 싸움, 동래성 싸움

    충주성 싸움, 경주성 싸움

    진주성 싸움, 남원성 싸움

맺음말

 

▲ 문경 새재 제1관문

▲ 몽촌토성 목책 토성 밖에 설치된 나무로 엮은 성책이다.

▲ 금전성 성벽 대마도에 남아 있는 조선식 산성이다. 길이 5.4킬로미터.

▲ 부여 부소산 토성 백제의 도성이나 부소산성이 모두 토성으로 된 것은 국력의 약화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 두타산성 102년(신라 파사왕 3)에 처음 쌓았다고 전헤지며 1414년(조선 태종 14)에 삼척부사로 왔던 김앵손이 다시 쌓았는데 둘레 2,500미터, 높이 15미터에 이른다. 강원도 삼척군 미로면 소재.

▲ 문경의 조령관문 평지와는 동떨어진 깊은 산속에 쌓은 조령산성의 제3관문이다.

▲ 경상남도 통영읍성도 읍성은 평지에만 쌓는 일은 드물고 대개 배후에 산등성이를 포용하여 평지와 산기슭을 함께 감싸면서 돌아가도록 축조하였다.

▲ 장수산성 동북쪽 성벽 고구려의 성은 대체로 남쪽을 제외한 삼면이 높은 산 또는 절벽으로 둘러싸였다. 황해도 신원군 소재.

▲ 태백산성 남쪽 치성 대체로 고구려 성의 남쪽은 경사가 낮아진 곳에 쌓았으며 성벽은 수직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황해도 평산군 소재.

▲ 둘레 5킬로미터나 되는 고구려의 황룡산성 평남 용강군 소재.

▲ 국내성 평면도 현재 동, 서, 남벽에 성문 터가 남아 있다.

▲ 국내성 북쪽 성벽

▲ 안학궁성 실측도 한 변이 610미터 되는 토성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의 형태는 마름모꼴에 가깝다.

▲ 안학궁성에서 출토된 귀면판

▲ 오녀산성 고구려의 초기 수도인 집안과 서쪽 지방을 연결시키는 교통의 요충지에 관문처럼 솟아 있는 오녀산에 쌓았다.

▲ 대성산성 소문봉 성벽 성 안 제일 높은 곳에 북장대를 설치하였는데 이 부근에서 주춧돌과 기왓장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 대성산성의 복구된 소문봉 성벽 안쪽

▲ 대성산성의 복구된 소문봉 성벽 바깥쪽 대성산 밑에 있는 도성인 안학궁성을 방어하는 외성의 구실을 했다.

▲ 온달성 성벽 성벽의 내, 외면을 모두 석축으로 쌓았고 특히 성벽이 휘어지는 곡성 부분은 완만하게 처리하여 아름다운 조형미까지 보여 준다.

▲ 풍납리 토성 서울 성동구 광나루의 천호대교 아래쪽 풍남동에 남아 있는 백제 초기 토성이다.

▲ 몽촌토성 백제 초기의 도성으로 밝혀진 토성이다. 토성 바깥으로 하천을 파고 물을 끌어댄 해자도 발견되었다.

▲ 임존성 충남 예산군 대흥면에 있는 해발 483미터의 봉수산 정상에 쌓았다.

▲ 보은 삼년산성의 높다란 성벽 수직으로 된 성벽은 잡석을 층층이 교묘하게 쌓아올리고 틈새를 작은 돌로 끼워 맞추었다.

▲ 바위를 이용하여 쌓은 견훤산성 성벽 산성의 둘레는 약 1킬로미터,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2미터 가량이다.

▲ 강화성의 암문

▲ 충주산성 성벽 천연의 망대 위에 설치된 충주산성은 고려 때 몽고군을 여러 번 물리쳤던 요새이다.

▲ 덕주산성 성문터 거의 무너져 있는 것을 조선시대에 와서 계곡에 3개의 성문을 다시 쌓았다. 충북 제원군 소재.

▲ 정읍의 입암산성 성문터 태조 때 대대적인 산성 수축 사업을 벌였는데 정읍의 입암산성도 이때 쌓았다.

▲ 남강에 둘러싸인 진주성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함락되었는데 그 원인은 평야전이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그 뒤에는 주로 험준한 산을 의지하여 산성을 축조하였다.

▲ 금정산성 성벽 산등성이를 따라 굽이굽이 뻗친 성벽은 길이가 17킬로미터로서 우리나라 산성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 남한산성 성벽 이 성은 북한산성과 더불어 한양 도성을 남북으로 호위하는 역할을 해왔다.

▲ 해미읍성의 성벽에 달린 각루 축성은 성종 22년에 이루어졌으며 원형으로 된 1.5킬로미터의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 낙안읍성 고읍의 옛 성벽과 함께 초가로 이루어진 민속 마을의 경관이 한데 어울려 예스러운 정취를 더해 준다.

▲ 낙안읍성의 성가퀴 몸을 숨겨 적을 칠 수 있도록 성 위에 낮게 담을 덧쌓았다.

▲ 수원성 영, 정조 시대에 부분적으로 도입된 서양 기술을 한데 모아 당시의 가능한 축성 기법을 집약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 요동성 고분 성곽도

▲ 부산진 순절도(殉節圖) 1592년 4월 13일 부산진에 상륙한 왜병을 맞아 격전을 벌인 부산진성 공방전의 그림이다. 1760년 제작, 가로 96센티미터, 세로 145센티미터.

▲ 동래부사 순절도 동래읍성의 공방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1760년 제작, 가로 96센티미터, 세로 145센티미터.

▲ 진주성 경상도의 요충지인 진주성은 임진왜란 때 최대의 격전지였다.

▲ 고창 모양성의 성밟기

▲ 고창 모양성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읍성이며 가장 잘 보존된 석축 성곽이다.

 

 

 

 

 

 

 

posted by 황영찬
2012. 6. 22. 09:32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084 부모은중경 관음경 外

 

불전간행회 편 / 一 指 譯

1994, 민족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508

 

223.08

불74ㅁ 11

 

불교경전 11

 

부모은중경

관음경

목련경

우란분경

 

사랑하심 중하시어 깊은 정은 다함없네

지중하신 은혜처럼 슬픔 또한 더하시어

어린 아기에게 잘먹일 것 생각하니

자비하신 어머니는 굶주려도 기쁜마음.

 

역자소개 : 一 指

 

1974년 출가하여 해인강원과 율원을 수료.

1988년 논문 <現代中共의 佛敎認識>으로

제1회 해인학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사단법인 법사원 불교대학 교수이며

동국역경원의 역경에 동참하고 있는 한편

도서출판 민족사의 기획위원으로

<韓國의 禪語錄>을 편찬하고 있다.

저서에 《달마에서 임제까지》《붓다 · 해석 · 실천

《중관불교와 유식불교》《떠도는 돈황

역서로 《임제록》《중국 문학과 禪

《傳心法要》등이 있으며 《禪學辭典》(불지사) 편찬.

 

효도와 믿음의 경전

 

|차례|

 

부모은중경

 

1. 법회의 시작

2. 마른 뼈에 절하신 까닭

3. 아기를 낳으실 때까지의 고생

4. 부모님의 열 가지 크신 은혜

5. 갖가지 불효

6. 다 갚지 못할 부모님의 은혜

7.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

8. 불효의 과보

9.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

10. 경전의 명칭

 

우란분경

 

제1장 목련의 슬픔

제2장 아귀를 구하는 방법

제3장 현재의 부모와 칠생의 부모를 위한 공양법

 

목련경

 

제1장 청제부인의 악행

제2장 목련의 지옥순례

제3장 지옥에서 어머니를 만나다

제4장 우란분재의 구원력

 

관음경

 

제1장 관세음보살의 위신력

제2장 서른 세 가지의 변화신

제3장 찬탄의 노래

 

● 부모은중경 역주

● 우란분경 역주

● 목련경 역주

● 관음경 역주

 

● 부모은중경 해설

● 우란분경 해설

● 목련경 해설

● 관음경 해설

 

부모은중경

 

① 잉태하여 수호해 주신 은혜(회탐수호은)

여러겁을 지나오며 인연이 지중하여

금생에는 어머니의 모태에 의탁했네

날이가고 달이가서 오장이 생겨나고

일곱달에 이르러서 욕정이 열렸어라

 

어머니몸 무겁기는 산악과 다름없고

가나오나 서고앉고 풍재가 두려우며

아름다운 비단옷도 도무지 입지않고

단장하던 거울에는 먼지만 쌓였도다

 

② 낳으실 때 고통 받으신 은혜(임산수고은)

아기를 잉태한지 열달이 다되어서

어려운 해산날이 빨리도 다가오니

날마다 오는아침 중병든 몸과같고

나날이 정신조차 희미해 지는구나

 

두렵고 떨려오는 마음을 어찌하나

근심은 눈물되어 가슴에 가득하네

슬픈빛 가이없어 친척에 말하기를

마침내 죽지않나 두렵기만 합니다

 

③ 아기를 낳고서 근심을 잊으신 은혜(생자망우은)

자비하신 어머니 그대를 낳으신날

오정육부 모두를 쪼개고 해치는듯

육신이나 마음이 모두다 기절하고

짐승잡은 자리인듯 피를 흘렸어도

 

낳은아기 씩씩하고 어여쁘다 말들으면

기쁘고도 기쁜마음 무엇으로 비유할까

기쁜마음 정해지면 또다시 슬픈마음

괴롭고도 아픈것이 온몸에 사무치네

 

④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먹이신 은혜(연고토감은)

무겁고도 깊은것이 부모님의 크신은혜

사랑하고 보살피심 한결같아 끊임없네

단음식은 다뱉으니 드실음식 무엇이며

쓴음식만 드시면서 기쁜얼굴 잃지않네

 

사랑하심 중하시어 깊은정은 다함없네

지중하신 은혜처럼 슬픔또한 더하시어

다만어린 아기에게 잘먹일것 생각하니

자비하신 어머니는 굶주려도 기쁜마음

 

⑤ 마른 자리에 뉘이신 은혜(회건취습은)

어머니 당신몸은 젖은자리 누우시고

아기는 받들어서 마른자리 눕히시네

가슴의 두젖으로 목마름을 채워주고

고우신 소매로는 찬바람을 가려주네

 

아기를 돌보시어 잠들때가 없으셔도

아기의 재롱으로 큰기쁨을 삼으시네

오로지 어린아기 편안할것 생각하고

어머니 자비하심 편안함도 잊으셨네

 

⑥ 젖을 먹여 기르신 은혜(유포양육은)

어머니의 중한은혜 땅에다 비유하랴

아버님의 높은은혜 하늘에 비유하랴

하늘은혜 땅의은혜 아무리 크다해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큰은혜 그를넘네

 

아기비록 눈없어도 미워함 없으시고

손과발이 불구라도 싫어함 없으시네

배가르고 피를나눠 친히낳은 자식이라

종일토록 아끼시고 사랑하심 한량없네

 

⑦ 더러움을 씻어주신 은혜(세탁부정은)

생각컨대 그옛날의 아름답던 그얼굴과

아리따운 그몸매는 곱기만 하셨었네

두눈썹은 푸른버들 가른듯 하셨었고

두뺨의 붉은빛은 연꽃을 닮으신듯

 

은혜가 깊을수록 그모습 사라지고

더러운것 씻느라고 맑은얼굴 상하셨네

한결같이 아들딸만 사랑하고 거두시다

자비하신 어머니의 얼굴마저 시드셨네

 

⑧ 먼 길 떠난 자식 염려하신 은혜(원행억념은)

죽어서 헤어짐도 슬프고 괴롭지만

살아서 헤어짐은 더욱더 서러워라

자식이 집을나가 먼길을 떠나가니

어머니 모든생각 타향에 나가있네

 

주야로 그마음은 아들을 따라가고

흐르는 눈물줄기 천줄기 만줄기네

원숭이 달을보고 새끼생각 울부짖듯

간장은 염려하는 생각으로 다끊기네

 

⑨ 자식 위해 나쁜 일 하신 은혜(위조악업은)

부모님의 크신은혜 강산같이 중하여서

깊고깊은 그은덕은 실로갚기 어려워라

자식들의 괴로움은 대신받기 원하시고

자식들이 고생하면 부모마음 편치않네

 

자식들이 머나먼길 떠나가서 있으면

잘있는가 춥잖은가 밤낮으로 근심하고

자식들이 잠시라도 괴로운일 당할때면

어머니의 그마음은 오랫동안 아프시네

 

⑩ 끝없이 사랑하시는 은혜(구경연민은)

부모님의 크신은혜 깊고도 지중하네

크신 사랑 잠시라도 그칠새 없으시니

일어서고 앉더라도 그마음 따라가고

멀더라도 가까워도 크신뜻 함께있네

 

어머니의 나이높아 일백살 되었어도

여든살된 그아들을 언제나 걱정하네

이와같이 크신사랑 어느때 끊이실까

목숨이나 다하시면 그때나 쉬게될까

 

posted by 황영찬
2012. 6. 21. 16:28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083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최재천

2007, 궁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4840

 

491.5

최73인

 

동물과 인간 세계를 넘나드는 폭넓은 시야,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명쾌한 해설! 풍부한 사례에서 이끌어낸 동물 이야기는 인간의 오만과 편견을 깨뜨리는 짜릿한 지적 쾌감을 안겨준다.

 

기가 막히게 우수한 두뇌를 지녀 만물의 영장이 된 인간이지만 사실 우리 인간의 역사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일천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20여만 년 전에 지구촌의 가장 막둥이로 태어난 동물입니다. 그러니 우리보다 수천만 년 또는 수억 년 먼저 태어나 살면서 온갖 문제들에 부딪쳐온 다른 선배 동물들의 답안지를 훔쳐보는 일은 매우 가치있는 일일 겁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동물의 형태와 자연과의 조화를 살펴보면서, 인간이 동물의 세계를 이기적인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공존의 지혜가 조금 부족한 듯합니다.우리는 우리의 잇속대로 나무를 마구 잘라내고 동물을 죽이면서 스스로 환경의 위기를 자초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개미를 비롯한 여러 동물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이들이 진화의 역사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공존의 지혜를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지 않으면 모두 멸망하고 맙니다. 우리 인간만 독불장군처럼 영원히 살 수는 없지요. 남을 배려해야만 우리도 사는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최재천

 

서울대학교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대학교 전임강사, 미시건대학교 조교수를 역임했다. 사회생물학을 창시한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지도 아래 10여 년 간 열대를 누비며 동물행동학을 공부했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다. 인간과 동물의 성性과 사회성의 생태와 진화 그리고 동물의 인지 능력과 인간 두뇌의 진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2000년 3월부터 EBS에서 강의한 <동물의 세계>는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연장방송을 거듭해 장장 6개월 동안이나 방영되었으며, 이 책의 모태가 되었다.

『개미제국의 발견』『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알이 닭을 낳는다』『열대예찬』『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대담』(공저) 등을 쓰고, 『인간은 왜 늙는가』(공역)『통섭』(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생명과 과학에 대한 사랑을 널리 나누고 실천해왔다. 대한민국과학문화상, 한일국제환경상, 올해의 여성운동상, 대한민국과학기술훈장 등을 수상했다.

 

|차례|

 

저자의 말

 

제1강 | 알면 사랑하게 된다

제2강 | 동물행동연구의 방법과 역사

제3강 | 진화와 자연선택

제4강 | 이기적 유전자와 자연선택론

제5강 | 본능이란 무엇인가

제6강 | 동물들도 가르치고 배운다

제7강 | 행동도 부모를 닮는다

제8강 | 시각적인 남자, 청각적인 여자

제9강 | 동물들은 주로 냄새로 말한다

제10강 | 개미들은 어떻게 말하나

제11강 | 꿀벌들의 춤 언어

제12강 | 동물 사회의 의례 행동

제13강 | 동물 사회의 첩보전

제14강 | 동물들의 숨바꼭질

제15강 | 동물들의 방향 감각

제16강 | 서로 돕는 사회

제17강 | 행동의 경제학

제18강 | 행동과 게임 이론

제19강 암수의 동상이몽

제20강 | 성의 갈등과 타협, 그리고 번식

제21강 | 동물들의 자식 사랑

제22강 | 인간만 사회적 동물인가

제23강 | 동물도 정치한다

제24강 | 몸과 마음의 진화 : 다윈의학

제25강 | 왜 남을 도와야 하나

제26강 | 생명이란 무엇인가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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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 섬 오메 환장허겄네

 

· 사진 최성민

1995, 웅진출판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3534

 

981.102

최54ㅅ

 

최성민의 자연주의 여행 - 우리땅 · 우리삶

 

우리 나라엔 이름까지 예쁜 섬들이 많기도 하다.

진달이섬 · 격렬비열도 · 내외파수도 · 맹골도 · 작약도 · 국화도 · 아차도 · 소야도 · 백야도 · 효자도 · 외연도 · 고파도 · 여자도 · 나라도 · 노력도 · 송이도 · 안마도 · 평일도 · 생일도 · 황제도 · 여서도 · 죽굴도 · 흑일도 · 백일도 · 각걸도 · 나배도 · 슬도 · 탄항도 · 청등도 · 눌옥도 · 도덕도 · 병풍도 · 하수차도 · 다물도 · 능산도 · 자라도 · 노랑도 · 박지도 · 초란도 · 매화도 · 잠도 · 갈도 · 연화도 · 지심도 · 산달도 · 사량도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섬에 가 보기는커녕 그 섬들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하고 이 땅을 뜬다. 이 꿈같은 섬들을 곁에 두고도 또 많은 사람들은 바캉스 갈 곳을 고민한다. 그리고 결국엔 자동차와 사람과 바가지가 버글대는 유명 해수욕장을 찾고 만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을 탈출해 보고 싶어하면서도 이 고적감 넘치는 우리 섬들을 지나 괌으로 하와이로 날아간다. 아름다운 섬 섬 섬 - 이제 그곳으로 '신토불이 여행'을 떠나자. 그곳엔 원초적 자연의 생명력이 넘친다. 그곳에선 때묻지 않은 가슴들과 촉촉한 인정이 우릴 맞아 준다.

그 섬에 다녀오면 정말 살 맛이 난다.

 

최성민

 

자연주의 여행 칼럼니스트 · 품천가(品泉家)

서울대 교육학과 졸업

KBS 기자(1980년 해직)

한겨레신문 기자(1994년 해직)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사무국장(현재)

KBS1 라디오 「신 국토 기행」MC

SBS TV 「출발! 새 아침-샘을 찾아서」에 품천가로 고정 출연

일간스포츠 「최성민의 겨울 여행」집필

 

저서 : 『최성민의 바른 여행 길라잡이』시리즈

         『그곳에 다녀오면 살맛이 난다·『섬 섬 섬· 『우리 샘 맛난 물』(한겨레신문사)

 

|차례|

 

그 섬에 가면 애 배 나온다, 여서도

배 띄워라 배 띄워라「어부사시사」의 날은 언제던가, 대모도

빈 가슴 서로 채워 주는 황제도 · 덕우도 · 생일도

바다 물결 고운 것과 계집 눈매 고운 것 믿지 말라, 조도

멸치 꼬리 따라 몰려오는 삼치떼와 영샘이 아부지 배, 서거차도

· 남해의 물살이 소용돌이치는 바람따지, 그곳에 맹골도가 있다

흑산도는 알아도 영산도는 모른다

돌김이 무성한 진짜 해녀의 섬, 상 · 중 · 하태도

그놈의 신안 해저 유물이 웬수다, 증도

멍텅구리 배와 백하 새우와 '진달이 섬', 낙월도

모래등 때문에 죽고 살고, 송이도

속세가 싫다, 토종 삶이 좋다, 안마도

하루 두 번씩 바다가 물러간다, 하섬

중국 사람이 먼저 와 살던 어청도

천수만 한가운데 일렁이는 대숲 바람, 죽도

새내기 섬 여행객들은 이리 오세요, 가의도

모가지 죄는 중국이 싫더라, 가마우지의 낙원 정족도

파도에 닳은 돌 무리, 그것이 내파수도의 존재 이유다

'달래 설화'의 맥을 잇는 사량도

새끼섬에 '모세의 기적' 일으켜 주며 그 덕에 사는 매물도

신선 할배가 어머니 그리며 「구운몽」쓰던 곳, 노도

송장을 "통대구!"라고 외쳐야 고기 많이 잡히는 연도

그놈의 미기 땜에 섬을 못 뜨는기라, 추도

목이 뚝뚝 부러져 내리는 동백꽃의 진홍색 정열, 내 · 외조라도

푸른 울릉 · 독도 가꾸기 모임과 울릉 죽도

알, 롱 콜, 그리고 사랑과 생명……, 홍도

완벽한 프라이버시와 넘치는 생명력, 칠발도

사랑과 진실, 그리고 전쟁, 갈매기 섬 신도

환상의 이어도와 밭 가운데의 빈 무덤,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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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8. 09:53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1-081 백유경

 

불전간행회 편 / 현 각 譯

1996, 민족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507

 

223.08

불74ㅁ 10

 

불교경전 10

 

백 가지의 비유

 

공부하는 사람은 자세히 연구하고

박학하여 많이 알고 그대로 실행하여

훌륭한 결과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눈앞의 명예만 구하면,

교만하고 허황되어 허물과 근심만 더욱 자라게 된다.

 

역자소개 : 현각

 

해인사 강원 졸업.

동국대 불교대 승가학과 졸업.

현재 원주 성불원 원장이며

선우도량 실행위원이다.

 

|차례|

 

1. 소금만 먹은 사람

2. 말라버린 소젖

3. 배[梨]에 맞아 상처난 머리

4. 거짓으로 죽은 여자

5. 목마른 사람의 어리석음

6. 두 아들을 죽인 아버지

7. 재물 때문에 형이라 부른 남자

8. 스스로 붙잡힌 도적

9. 아들의 자랑

10. 삼층 누각

11. 자식을 죽인 바라문

12. 석밀을 달이는 사람

13. 자기 허물을 모르는 사람

14. 상인들의 어리석음

15. 어떤 왕의 어리석음

16. 사탕수수를 망친 사람

17. 반 푼의 빚과 네 냥의 손해

18. 다락을 오르락거린 비유

19. 물에 금을 긋는 사람

20. 백 냥의 살과 천 냔의 살

21. 외아들을 죽인 여자

22. 물에 젖은 나무로 숯을 만든 사람

23. 비단과 낡은 베옷

24. 참깨를 볶아서 심은 사람

25. 불과 물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사람

26. 실룩거리는 왕의 눈

27. 말똥을 상처에 바른 사람

28. 부인의 코를 자른 남편

29. 베옷을 불사른 어리석은 사람

30. 양치는 사람의 어리석음

31. 옹기장이 대신 나귀를 사 온 제자

32. 금을 훔친 장사꾼

33. 나무를 베어버린 사람

34. 이백 리 길을 백이십 리로 줄여준 임금

35. 거울 속의 자기(自己)

36. 도인의 눈을 뽑아 온 대신

37. 소 떼를 죽여버린 사람

38. 나무통에게 화낸 어리석은 사람

39. 남의 집 담벽

40. 대머리로 고민한 의사

41. 두 귀신의 다툼

42. 낙타 가죽과 비싼 천

43. 돌을 갈아 소를 만든 사람

44. 떡 반 개에 배부른 사람

45. 대문과 나귀와 밧줄만 지킨 사람

46. 소를 훔친 사람

47. 말하는 원앙새

48. 부러진 나뭇가지에 얻어맞은 여우

49. 털 한 줌을 놓고 다툰 어린 아이

50. 두 눈알이 튀어나온 의사

51. 매맞는 계집종

52. 왕의 거짓말

53. 스승의 두 다리를 부러뜨린 제자

54. 뱀의 머리와 꼬리가 서로 다툰 이야기

55. 왕의 수염 깎기를 택한 사람

56. 없는 물건을 청한 사람

57. 발로 장자의 입을 친 하인

58. 동전을 둘로 나눈 형제

59. 오지병을 구경하다가 보물을 놓친 사람

60. 물 속의 금 그림자

61. 누가 만물을 만들었나

62. 꿩 한 마리만 먹은 환자

63. 가짜 귀신에 놀란 사람들

64. 문을 밀고 당긴 두 사람

65. 독이 든 약

66. 말로만 배를 잘 운전하는 사람

67. 떡 하나 때문에 도독맞은 부부

68. 남을 해치려다 손해 본 사람

69. 음식을 급히 먹는 남편

70. 과일을 일일이 맛보고 사는 사람

71. 두 아내 때문에 실명한 남자

72. 입이 찢어진 사람

73. 거짓말의 결과

74. 거짓으로 목욕한 브라만

75. 낙타와 독을 모두 잃은 사람

76. 공주를 사모한 농부

77. 나귀의 젖을 짜 마신 사람들

78. 아버지와 아들의 약속

79. 서른 여섯 개의 상자를 짊어진 신하

80. 엉뚱한 약을 먹은 사람

81. 선인(仙人)을 보고 활을 쏜 아버지

82. 두 개의 다리를 여덟 개로 늘린 농부

83. 어린애를 미워한 원숭이

84. 월식할 때 개를 때리는 비유

85. 눈병이 무서워 눈을 없애버린 사람

86. 귀고리 때문에 아들의 목을 잘라버린 아버지

87. 도둑이 훔친 재물

88. 한 개의 콩 때문에 많은 콩을 잃은 원숭이

89. 금족제비와 독사

90. 돈 주머니를 얻은 사람

91. 가난한 사람의 헛된 욕심

92. 환희환을 먹은 어린 아이

93. 곰에게 붙잡힌 노파의 꾀

94. 마니구멍의 비유

95. 어리석은 수비둘기

96. 제 눈을 멀게 한 장인

97. 비단옷과 순금을 모두 빼앗긴 사람

98. 어린 아이가 큰 거북을 얻은 비유

 

백유경 해설

 

 

 

 

 

 

 

 

 

 

 

 

 

 

posted by 황영찬
2012. 6. 16. 10:07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080 덕수궁(경운궁)

 

글 / 김순일●사진 / 김종섭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969

 

082

빛12ㄷ 108

 

빛깔있는 책들 108

 

김순일-------------------------------------------------------------------------

 

서울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논문으로 '경운궁 영건에 관한 연구' 등 다수를 발표했다.

 

김종섭-------------------------------------------------------------------------

 

본사 사진부 차장

 

|차례|

 

머리말

덕수궁의 본명은 경운궁

선조, 광해군 시대의 경운궁

고종 시대의 경운궁

순종 시대 이후의 경운궁

경운궁의 배치와 전각

영문 요약 · Abstract

참고 문헌

 

 

 

▲ 경운궁 경운궁은 당시 최고의 재료와 기술로 조영된 조선 왕조 최후의 궁궐이다. 여기에는 쓰러져 가는 국가의 중흥을 위해서 왕실의 존엄성과 국력을 과시하려는 의지가 숨어 있다.

▲ 창경궁 전경 창경원으로 한때 격하되기도 했던 창경궁이 본래의 이름을 찾았듯이 덕수궁도 경운궁이란 제이름을 되찾아야 한다.

▲ 1919년의 광명문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문으로 고종이 거처하던 함녕전의 정문이다.(황종훈 「대한제국고종황제국장화첩」경제평론사)

▲ 광명문 안의 흥천사종 세조 8년에 주조된 이 종은 경운궁과는 관계없는 유물이다.

▲ 종묘 정전 전경 역대 왕의 신위를 모신 종묘는 왕조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임진왜란이 끝난 뒤 가장 급히 서둘러야 하는 일은 불타 없어진 궁궐과 종묘의 중건이었으며 이 공사는 광해군 즉위년에 준공을 보았다.

▲ 창덕궁 인정전 전경 경운궁 즉조당에서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3년 뒤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자신이 머무르던 행궁을 경운궁이라 개칭하였다.

▲ 사직단 전경 땅의 신과 곡식의 신을 모신 사직단은 인왕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광해군은 '인왕산하건궁설'에 따라 지금의 사직단 부근에 인경궁을 영건하였다.

▲ 즉조당과 석어당 즉조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된 팔작지붕의 전각으로 전면에 분합문을 달아 들어올리게 하였다. 석어당은 궁궐 안의 유일한 2층 건물이다.

▲ 원구단 원구단은 원단을 쌓아 신위를 모시고 천자가 하늘에 제사지내는 단이다.

▲ 원구단 돌북(위)과 계단(아래) 고종 이전에도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낸 일이 있으나 천자만이 제를 지낼 수 있다는 중국의 압력으로 허문 일이 있었다. 고종의 황제 즉위로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되어 쌓은 것이다. 돌북은 제사에 사용되는 악기를 상징한다.

▲ 러시아 공사관 안의 고종 거처방 을미사변이 계기가 되어 고종은 경복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데 이 사건이 아관파천이다. 여기서 왕은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으로 환어할 뜻을 굳혔다고 생각된다.(최석로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서문당)

▲ 경운궁 안의 접견실 석조전 안에 있는 이곳에서 고종은 각 나라의 공사나 영사, 정부 대신들을 접견하였다.(황종훈 「대한제국고종황제국장화첩」의 사진)

▲ 함녕전 공포와 현판 함녕전이 신축된 당시는 선덕전이란 이름으로 전각이 건립되었으나 그 뒤 함녕전으로 바뀌었다. 익공식으로 된 공포와 함녕전 현판이다.

▲ 화재 전의 중화전 경운궁은 신하들의 조하를 받는 중층 중화전을 영건함으로써 다른 궁궐에 비길 만한 면모를 갖추었으나 지금은 화재를 당하여 애석하게도 그 위용을 볼 수 없다. 1904년 화재 발생 전의 중화전이다. 뒤에 보이는 양관은 구성헌이다. (도변호 외 「조선명승기」의 사진)

▲ 중층 중화전 정면도 2중 석조 기단에 중층으로 된 화재 전의 중화전 정면도로서 「중화전영건도감의궤」에 실려 있다.

▲ 1904년의 큰 화재 수리하던 함녕전의 온돌 아궁이에서 비롯된 이 화재로 궁궐 중심부의 전각들이 불탔고 가정당, 돈덕전, 구성헌만 겨우 남았다. (「한국의 백년」)

▲ 중화전 화재 뒤 중건된 중화전은 중층에서 단층으로 축소되었으나 면적이나 간살의 너비 등은 그 전과 같다. 지붕 위의 잡상이나 용두 그리고 앞마당에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품비석이 왕실의 위엄과 권위를 더해 준다.

▲ 단층 중화전 정면도(위), 중화전 평면도(아래)

▲ 중화전 측면도(위)와 횡단면도(아래)

▲ 1904년의 화재 경운궁에 고종이 머무르던 것을 싫어하던 일본인들이 을사보호조약을 앞두고 저지른 방화로 추측한다. 불이 나자 궁중의 사람들이 광명문을 통해 뛰쳐 나오는 것을 일본 경찰이 지켜보고 있다. (오소백 「한국 100년사」한국홍보연구소)

▲ 즉조당 중화전이 건립되기 전 한때 정전으로 사용되었던 즉조당은 인조가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뒤 귀비 엄씨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 중화전 당가 당가는 법전 안의 옥좌 위에 집 모양으로 만들어 얹는 닫집이다. 이것은 옥좌 뒤에 있는 오봉병과 곡병 등과 어우러져 왕의 위엄을 더해 준다.

▲ 경운궁 전경

▲ 경운궁 연못 대한제국 때 있었던 영복당 자리 근처에 지금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 유현문과 꽃담 전으로 쌓은 유현문의 홍예와 지형에 따라 담장의 높낮음에 변화를 준 담의 뇌문이 조화를 이룬다.

▲ 동쪽의 즉조당과 서쪽의 준명당은 2칸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 중화전 앞 드므(부분) 드므는 불귀신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설치한 일종의 벽사 시설이다. 다른 궁궐의 단순한 형태의 것들과는 달리 만(卍)자문, 수(壽)자가 새겨져 있다.

▲ 중화전 석계의 석수 조선 말기의 조각술을 보여 주는 석수로 양감이 부족한 몸체에 비해 표정이 풍부한 면이 돋보인다.

▲ 중화전 답도의 판석 답도는 정전의 중앙 계단을 말한다. 이곳에 있는 판석에는 경복궁 등의 봉황 무늬와 달리 쌍룡이 새겨졌는데 이는 고종이 황제로서 궁궐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 함녕전 굴뚝 화계 위에 전으로 쌓은 굴뚝으로 몸체 남면에 수자 무늬가 새겨져 있다.

▲ 정관헌 이 전각의 인조석 씻어내기로 만든 독립기둥에는 로마네스크식 주두가 있다. 전면과 측면 테라스에 정교한 아케이드를 만들어 증축하였다.

▲ 시조전, 중화전을 중심으로 본 경운궁 전경

▲ 석조전 전경과 분수대

▲ 영국 대사관을 중심으로 본 경운궁 전경

▲ 순종비 가례식장 중건된 중화전에서 치러진 순종비의 가례식 장면이다. 산만한 느낌이 드는 왕실의 이 행사 장면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듯하다. (김원모 외 「한국의 백년」의 사진)

▲ 성복례당일 대한문 앞 함녕전에 거처하던 고종은 68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많은 의문점을 자아냈다. 성복례당일 경운궁 대한문 앞에 국민들이 모여 슬픔을 달래고 있다. (「대한제국고종황제국장화첩」)

▲ 준명당과 즉조당 정면 6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준명당은 1904년 화재 때 고종과 순종의 어진을 봉안하였고 외국 사신을 여러 번 접견하기도 했던 곳이다. 동쪽의 2칸 복도로 연결된 즉조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전각 건물이다.

▲  준명당 아직 중화전이 건립되기 전인 1900년에 고종과 그 각료들이 준명당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 준명당 사분합문

▲ 함녕전 1904년의 화재 뒤 1905년에 상량한 함녕전은 고종이 거처하다가 죽은 곳이기도 하다. 그 뒤 빈전과 혼전으로 사용되었다.

▲ 경운궁 배치도

▲ 중화문 다포식 공포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중화문은 중화전의 정문으로 그 규모가 1904년 화재 전의 그것과 같다.

▲ 중화문에서 바라본 중화전 앞뜰에 늘어서 있는 품비석과 지붕에 장식한 잡상, 용두 등이 전각의 위엄을 더해 준다.

▲ 중화전 천장 중화전 천장에는 용이 투각되어 있어 창덕궁 인정전 천장에 새겨진 봉황과 비교된다. 곧 왕의 품격과는 다른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 중화전 용향로

▲ 함녕전 행각

▲ 보루각 자격루 흥천사 범종과 함께 광명문에 전시되어 있으나 경운궁과는 관계없는 유물이다.

▲ 즉조당 동쪽으로부터 2, 3, 4째 칸은 개방하여 툇마루를 만들었다.

▲ 석어당(뒤) 궁 안의 유일한 중층 건물로 왕이 거처한 전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석어당

▲ 준명당과 즉조당

▲ 준명당 복도의 누하주 준명당과 즉조당을 연결시키는 2칸 복도의 아랫부분으로 사람의 통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흥미롭다.

▲ 대안문 원래의 정문인 인화문은 철거하고 당시의 대안문을 다시 수리하여 정문으로 삼았다. 군인들이 대안문을 경계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석로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속」에서)

▲ 덕홍전과 샛담 귀빈의 알현소로 사용된 덕홍전을 구르고 있는 샛담은 전돌로 쌓아올린 꽃담이다.

▲ 석조전 기둥 이오니아식 주두로 된 열주가 늘어서 있는 석조전은 경운궁 안에 있는 양옥 가운데 대표적인 건물이다.

▲ 정관헌 내부 한때 경운당으로 불렀던 정관헌은 단층 양옥으로 내부 기둥이 로마네스크식 주두로 석조전의 외부 기둥과 비교된다. 바닥은 대리석판을 깔았다.

▲ 영건 중화전과 구성헌 중층의 중화전 뒤쪽에 2층 양옥의 구성헌이 보인다. (원유한 외 「한국사대계 7」삼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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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5. 09:01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079 한국의 궁궐

 

글, 사진 / 이강근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968

 

082

빛12ㄷ 107

 

빛깔있는 책들 107

 

이강근-------------------------------------------------------------------------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였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예술학과에서 미술사를 전공,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이며 한국미술사학회 이사이다. 주요 논문으로 '경복궁에 관한 건축사적 연구' '경희궁의 역사' '동문선과 고려시대의 건축' '17세기 불전의 장엄에 관한 연구' 등 여러 편이 있다.

 

도움 주신 분-----------------------------------------------------------------

 

김동현(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장)

문명대(동국대학교 박물관장)

장경호(문화재연구소장)

박방룡(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차례|

 

머리말

궁궐이란 무엇인가

고구려 궁궐

백제 궁궐

신라 궁궐

발해 궁궐

고려 궁궐

조선 궁궐

맺음말

참고 문헌

 

 

▲ 창덕궁 인정전 중앙집권적 국가의 왕이 거처하면서 정치를 행하던 곳만을 엄밀한 의미에서 '궁궐'이라 부를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궁궐이란 곧 왕궁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전경이다.

▲ 주나라의 침궁도(寢宮圖) 「삼례도」에 실린 그림이다.

▲ 국도도(國都圖)

▲ 3문3조

▲ 경복궁 동십자각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 남쪽 양끝에 둔 동, 서십자각도 궐이 변형된 것이다. 위는 현재의 모습이고 아래는 일제에 의해 경복궁이 훼손되기 전의 모습이다.

▲ 위니암산성(환도산성)과 국내성

▲ 국내성 터 고대 국가 시기 최초의 도성인 국내성에서는 궁전터가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았으나 현재 잘 다듬은 방추형 돌로 네모나게 쌓은 성벽이 남아 있다.

▲ 안학궁성 평면도 안학궁성은 고구려 후기의 왕궁이 있었던 곳으로 소문봉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궁전은 남북으로 배치하여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 대성산성 남문 대성산성은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직후에 건설되었다. 최근에 고구려 건축 양식으로 복원한 모습이다.

▲ 대성산 일대 고구려 유적 분포도

▲ 안학궁 모형 고구려 전성기의 궁궐인 안학궁의 전체 모습을 복원해 본 모형도이다. 남궁에서 북궁으로 가면서 터는 높아지고 건물은 낮아졌으며 각 궁 남회랑의 길이가 북쪽으로 가면서 점차 줄어든 것이 이 궁의 배치 특징이다. 1호 궁전터의 경우, 건물의 크기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이다.

▲ 평양 출토 귀면와 평양에서 출토된 구구려시대의 양감이 풍부한 귀면와이다.

▲ 장안성(평양성) 을밀대 평양성의 내성 장대로 쓰던 곳으로 누정은 1714년에 고쳐 지은 것이지만 축대는 고구려시대에 쌓은 것이다. 축대 높이는 약 11미터이며 뒤뿌리가 길게 사각추형으로 다듬은 화강석으로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작은 것으로 맞물리게 하였다.

▲ 장안성(평양성) 배치도 평지와 산의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쌓은 장안성은 궁성을 중심으로 도시 전체 구획을 성벽으로 둘러쌌다.

▲ 장안성(평양성) 성돌 장안성에서는 고구려 때 글자를 새긴 성돌이 여러 점 발견되었다. 경상동에서는 "丙戌十二月漢城下後小兄文達節自此西北行涉之"라 새긴 성돌이 발견되었다.

▲ 몽촌토성 현황 대표적인 백제 초기의 성으로 타원형의 내성과 그 바깥에 달린 외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최근에 발굴, 복원되었으며 현재는 올림픽 공원 안에 있다.

▲ 황룡사 터 진흥왕 때 신 궁(新宮)을 짓는다는 구실 아래 월성 동쪽에 거대한 규모의 새로운 절 곧 황룡사를 지었다. 「삼국유사」에서는 월성 동쪽이자 용궁(龍宮) 남쪽에 자궁(紫宮)을 지으려다가 황룡이 나타나는 바람에 절로 바꾸어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시기에 황룡사의 북쪽에 용궁이 있었으며 새로 지으려던 궁궐의 이름이 자궁이었음을 알려 준다. 용궁의 위치는 아직 분명하게 확인되어 있지 않다.

▲ 황룡사 금당터의 불상 대좌석 유구

▲ 안압지 월지라고 불렀던 안압지는 1980년에 통일신라시대 건축 양식으로 복원되었다.

▲ "의봉 4년 개토" 평기와 1974년부터 1975년의 안압지 발굴 당시에 못 안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기와의 명문으로 679년에 동궁을 창건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확인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복원된 월정교 경덕왕 19년(760)에는 궁 안에 큰 못을 파고 궁 남쪽의 문천(남천)에 월정교와 춘양교를 놓았다. 월정교는 발굴 조사된 최근에 일부가 복원되었다.

▲ 상경 용천부 도성터

▲ 상경 용천부 석등 이 석등은 고구려의 자(1자는 35센티미터)를 사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6.3미터이다. 화사석을 중심으로 건축적 장식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 발해 궁전터 온돌 유구

▲ 발해 제1궁전터

▲ 발해 출토 치미 출토된 건축 재료를 통해 발해 문화의 성격이 고구려 문화의 전통 위에 당시 국제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던 당의 문물 제도를 융합시킨 새로운 문화임이 분명해졌다.

▲ 만월대 1973년부터 1974년 사이에 시도된 왕궁터 발굴 조사에 의하면 정전 행각 밖 서북쪽 건물군 터는 4개의 문화층으로 되어 있어, 문헌 기록상 4번 불탔다는 내용과 일치한다. 정전 입구에 쌓았던 기단과 4곳의 33단 돌계단은 지금도 잘 남아 있다.

▲ 대화궁 터 인종 때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기 위해 옛 임원역 터에 대화궁을 창건하였다. 그러나 서경 천도가 좌절되자 묘청의 난으로 비화되고 반란이 진압되자 대화궁도 버려지게 되었다. 위는 토성 유구이며 아래는 외궁에 남아 있는 석실 고분의 유구이다.

▲ 청자 기와 의종 11년에 지은 양이정의 지붕은 청자 기와로 덮을 정도로 지극히 사치스럽고 화려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청자 수막새와 암막새 등의 유물을 통해 호화로운 건축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이 기와들은 전라남도 강진군 사당리 청자 가마터에서 출토된 것이다.

▲ 만월대 서남부 쪽에서 바라본 모습

▲ 종묘 전경 조선은 한양을 명실상부한 경도로 만드는 계획을 세우면서 사직, 궁궐 등과 함께 역대 왕의 신위를 모시는 종묘의 위치와 설계 등도 계획했다.

▲ 경복궁 창건 배치 추정안

▲ 경복궁 경회루 전경 재상 중심의 정치 운영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경복궁은 그 안에 경회루를 짓고 주변에 못을 파서 군신의 연회 장소를 마련하였다.

▲ 창덕궁 전경 정치가 안정되고 권력이 왕에게로 집중되면서 경복궁 동쪽에 정궁이 아닌 이궁으로서 창덕궁이 건립된다. 태종 5년(1405년)에 세워진 이 궁은 처음에 외전 74칸, 내전 118칸 규모였으나 증설되어 때로는 왕이 이곳으로 옮겨 거처하면서 정치를 행하기도 하였다.

▲ 창경궁 명정전 창덕궁 옆의 창경궁은 성종 14년(1483) 옛 수강궁 터에 새로 지은 것이다. 이 궁은 대비들을 위해 지은 것으로 일종의 대비궁인 셈이 된다. 그래서 경복궁과 창경궁이 남향으로 배치된 것과는 달리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이다.

▲ 창경궁 전경 창경궁과 창덕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있으므로 합하여 동궐이라 불렀다. 이들 궁궐은 정궁인 경복궁과 함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가 창경궁은 광해군 때인 1615년에 중건된다. 그러나 1830년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몇 차례의 중건과 소실을 거치면서 지속되다가 1985년에 새로이 정비되었다.

▲ 동궐도 1830년대의 화재로 소실되기 직전의 궁궐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도록 그린 것으로 창덕궁 인정전 일곽이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 서궐도안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 경희궁 숭정전 광해군 때 완성된 경희궁은 창건된지 4년이 지난 뒤에야 왕궁으로서 빛을 보게 된다.

▲ 숭정전의 2중 기단 일본인들에게 강제 철거된 경희궁을 1985년부터 4차례의 발굴 조사를 했다. 이때 드러난 숭정전의 2중 기단 모습이다.

▲ 북궐도형

▲ 경복궁 향원정 향원지 안에 원형 섬을 만들고 평면이 6각형이고 2층인 정자를 세웠다. 경복궁 중건 때 지은 이 정자는 목조 다리와 더불어 공예적인 의장을 갖추고 있다.

▲ 덕수궁 전경 덕수궁의 옛 이름은 경운궁이다. 경운궁은 임진왜란 직후에 잠시 동안 궁궐로 사용되다가 창덕궁 및 창경궁이 중건된 뒤에는 더 이상 왕의 거처로 쓰이지 않았는데, 20세기 초에 와서 다시 중요한 궁궐로 부각되었다. 경운궁에 이르러 한국의 궁궐 건축은 동양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가 절충된 형식으로 급격히 변모하게 되었다.

▲ 남한산성 조선의 도성은 궁성과 외성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내성이나 황성을 두지 않았다. 도성의 방어뿐 아니라 국가의 방위에 자신이 있던 시절에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1624년에 남한산성을 쌓는 등 도성 외호에 힘을 썼다.

▲ 수선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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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3. 10:04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078 과거현재인과경

 

불전간행회 편 / 慧 謜 譯

1995, 민족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506

 

223.08

불74ㅁ 9

 

불교경전 9

 

부처님 전기

 

원수거나 친한 이나 가리지 않고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여기며,

보시로 가난한 이를 거두고

계율을 지님으로써 헐뜯음을 거두며,

인욕으로써 성냄을 거두고,

정진으로 게으름을 거두며,

선정으로 어지러운 뜻을 거두고,

지혜로 어리석음을 거두었다.

 

역자소개 : 慧 謜

동국대 불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北宗 神秀禪思想의 硏究>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동국대 선학과 강사.

<北宗禪의 一行三昧思想> <달마선에 있어서 유마사상>

<荷澤神會의 頓悟觀> <北宗禪과 普照禪> <禪에 있어서 방편설>

《바웃드하 佛敎》《頓悟入道要門》《緣起와 空》등

다수의 논문 및 번역서가 있다.

 

|차례|

 

선혜선인의 수기

도솔천에 태어남

하생하여 모태에 들다

탄생

상서로움이 나타남

선인의 예언

마하부인의 생천

학문을 익힘

무예를 겨룸

태자의 관정식

사유(思惟)

결혼

사문유관-무상을 느낌

출가

고행

궁성의 슬픔

태자의 결심

빔비사라왕, 태자를 만나다

두 선인을 만나다

6년의 고행

고행을 그만두다

보리수 아래에서

마군을 항복받다

깨달음을 이루다

범천이 설법해 주기를 청하다

녹야원을 향하여

공양을 받으시다

다섯 비구의 교화

야사의 귀의

가섭 삼형제의 귀의

빔비사라왕의 귀의

사리불과 목건련

마하가섭의 교화

    역주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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