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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8'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5.28 2013-053-1 궁중 유물(하나)
  2. 2013.05.28 2013-053 궁중 유물(하나)
2013. 5. 28. 17:23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53-1 궁중 유물(하나)

일월오월도 병풍  왕실과 왕권의 상징답게 위엄을 갖추고 극채색(極彩色)으로 그렸다. 병풍의 형태는 4폭, 6폭, 8폭으로 꾸며진다.

일월오악도 병풍  장식성이 강하며 왕권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태평 성대를 염원하는 의도에서 제작된 것으로 하늘에 있는 붉은 해와 흰 달은 각각 왕과 왕비를 상징한다.

일월천도도(日月天桃圖) 병풍  해와 달, 천도, 청록색의 바위산, 넘실거리는 물굽이, 억센 바위 등을 극채색 극세필로 그린 그림으로 시각과 기법이 탁월하다. 330×135.2센티미터.

일월천도도 병풍  채색과 필선, 구도 등이 장엄한 위엄을 갖춘 왕실 장식화이다. 위의 병풍과 함께 8폭을 이룬다.

십장생도(十長生圖) 병풍  불로장생물 열 가지를 그린 십장생도는 궁중 장식화를 대표하는 그림 가운데 하나이다. 도가 사상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맛을 풍기는 그림으로 음양오행에 의해 운행되는 우주만물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208.5×38.9센티미터.

군학장생도(群鶴長生圖) 벽장문  네 짝 문에 팔모원형의 창호를 만들고 군학장생도를 그려 넣었는데 이것으로 우리 민족의 미적 실용성을 느낄 수 있다. 144.3×57.3센티미터.

모란도 병풍  큼직하고 탐스런 모란 꽃송이를 화려하게 화폭 가득 그려 넣은 모란도 역시 왕실 장식화 가운데 하나이다. 이 그림은 부귀와 영화를 영원히 누리고 싶은 염원을 담고 있다.

화조도(花鳥圖) 병풍  꽃과 새를 극채색으로 그린 화조도 병풍 역시 내용과 규모가 다양한 왕실 장식화 가운데 하나이다. 매화, 도화, 모란화, 연화 등과 봉황, 원앙, 꾀꼬리 등이 그려진다.

정조 능행도(陵幸圖) 병풍  정조 능행도는 8폭의 대작으로 작풍이 매우 뛰어나다. 정조가 수원의 아버지(사도세자) 능에 참배 가는 모습을 도화서 화원이 그린 것이다. 214.5×73.5센티미터.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벽화  창덕궁 희정당 서쪽 벽에 부착된 금강산 실경산수화로 해강 김규진이 52세에 그린 대작이다. 비로봉을 중심으로 금강산의 산세와 산봉, 주위의 구름과 물, 가을 단풍을 극채색으로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195×880센티미터.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 벽화  창덕궁 희정당 동쪽 벽에 부착된 그림으로 해강 김규진의 작품이다. 극세한 필선과 호화로운 채색의 북종화법으로 비단에 그렸으며 제작 시기는 1920년경이다. 넘실거리는 해금강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195×880센티미터.

봉황도 벽화  창덕궁 대조전 동쪽 벽에 부착된 그림으로 오일영과 이용우가 함께 그린 것이다. 왕과 왕비를 뜻하는 봉황 열 마리를 바다, 구름, 해, 폭포, 바위, 오동나무, 대나무, 난초, 작약 등과 더불어 화려하고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197×579센티미터.

군학도 벽화  창덕궁 대조전 서쪽 벽에 부착된 그림으로 궁중 장식화의 전통적인 화법과 주제에 충실한 작품이다. 이당 김은호가 28세에 그린 것으로 동쪽 벽의 봉황도가 일경(日景)인 것에 화합하여 월경(月景)을 이루고 있다. 197×579센티미터.

조일선관도(朝日仙觀圖) 벽화  심산 노수현이 21세에 그린 작품으로 창덕궁 경훈각 동쪽 벽에 부착되어 있다. 무릉도원 같은 선경을 펼친 세밀한 필선과 채색으로 그린 수작이다. 184×526센티미터.

삼선관파도(三仙觀波圖) 벽화  청전 이상범이 23세에 그린 산수화로 창덕궁 경훈각 서쪽 벽에 부착되어 있다. 세 명의 신선이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며 나이 자랑을 한다는 중국 고사를 표현한 것으로 청록 산수 화풍이다. 184×526센티미터.

책가도(冊架圖) 병풍  학문을 진작하기 위한 장식화로 책, 붓, 여의, 꽃병, 벼루, 향로, 화분 등이 있는 서재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두번째의 4폭 병풍 그림은 다른 책가도와 달리 휘장을 들치고 그 속에 보이는 각종 책, 기물, 꽃, 문방구 등을 그렸기 때문에 입체감이 돋보인다.

노안도(蘆雁圖) 가리개  1917년 강필주의 작품으로 갈대밭에 기러기떼가 내려앉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구도와 화법이 짜임새 있고 힘차다. 212.2×60.5센티미터.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가리개  이한복이 세밀하게 그린 장식화이다. 그릇은 주로 보배롭고 귀중한 옛날 그릇으로 제기, 식기 등을 그리고 채소와 과일은 계절이나 용도에 구애 받지 않고 적당히 배열한 청록화풍의 그림이다. 212.3×60.7센티미터.

무예도 병풍  궁중의 무예도 병풍은 군사 조련, 무관 채용, 군대 사열 등 행사 때 쓰여지던 것으로 내용, 구도, 화법 등이 도식적이며 극채색 화풍이다. 164×53.6센티미터.

송학도(松鶴圖) 자수 병풍  궁중유물전시관에는 많은 자수 병풍이 있지만 밑그림을 그린 사람을 밝힌 작품은 없다. 그런데 송학도 자수 병풍 가운데 이것은 유독 밑그림을 그린 양기훈이라는 화가를 밝히고 있는데 석연 양기훈이 그린 화조도가 왕실에 남아 있어 그의 면모를 살펴볼 수가 있다.

백수백복자(百壽百福字) 자수 병풍  궁중 자수의 수준과 변모를 잘 보여 주고 있는데 이 병풍에는 '수(壽)'자 180자, '복(福)'자 180자가 갖가지 서체로 수놓아져 있다. 이 병풍은 복록장수 사상을 반영한다. 217.8×36.8센티미터.

진연도(進宴圖) 병풍  광무 5년(1901)에 그린 진연도로 헌종대 명헌왕후의 70세 생일 기념 잔치 모습이다. 이 진연도는 다섯 전각에서 밤낮 열리고 있는 잔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렸기 때문에 주악가무를 비롯한 당시의 여러 궁중 모습을 엿볼 수 잇어 기록화로서의 가치가 크다. 177.3×51.7센티미터.

화류화조도(樺榴花鳥圖) 자수 병풍  화류목으로 화려하게 투각하고 나전흑칠로 장식한 8폭 병풍이다. 화폭에는 공작, 해태, 앵무새 등과 꽃, 곤충이 색실로 섬세하게 수놓아져 있다. 병풍틀의 의장이나 자수 솜씨가 모두 화려하여 권위와 품위를 한층 자아내며 궁중 장식품으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173.5×30센티미터.

전(傳) 장조어필견도(莊祖御筆犬圖)  2점 모두 양견도(洋犬圖)로 간결한 필치의 작품이다. 화법의 솜씨와 개의 종류로 보아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위 : 52×86.5센티미터, 아래 : 76.1×51.8센티미터.

유서(諭書)  유서란 일반적으로 관찰사, 절도사 등이 외지에 부임할 때 내리는 명령서를 이르지만 이 글은 세자손에게 훈유(訓諭), 교시하는 글이다. 영조가 83세에 당시 왕세손 정조에게 내린 것으로 '유서지보(諭書之寶)'라는 어보가 두 줄로 나란히 아홉 개가 찍혀 있다. 가로 183센티미터, 세로 68.6센티미터.

부용안도(芙蓉雁圖) 병풍  우포연신(佑甫宴信)의 작품으로 짐작되는데 부용과 기러기를 소재로 하여 가을의 변화를 표현하였다. 제1면 오른쪽 위에 영조의 찬(贊)이 있어 영조 27년(1751)에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130.3×345.6센티미터.

관능도(觀能圖) 자수 병풍  무대 예술의 하나인 노오(能)에 등장하는 배우의 모습을 검은 색으로 염색된 비단천 위에 수놓은 것이다. 가면 부분의 입체적 표현과 손발의 사실적인 데생 등에서 서양 화풍이 널리 보급된 메이지(明治)시대 작품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높이 149.5센티미터, 폭 81센티미터.

 

 

 

 

 

 

 

 

 

posted by 황영찬
2013. 5. 28. 09:16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53 궁중 유물(하나)

 

글 / 이명희●사진 / 한석홍, 임원순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8022

 

082

빛12ㄷ  167

 

빛깔있는 책들 167

 

이명희-------------------------------------------------------------------------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사교육을 전공하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수중고고학을 연구하였으며 신안, 완도 해저 유물 조사, 발굴 작업에 참여하였다. 현재 문화체육부 문화재 감정위원이며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장으로 있다.

 

한석홍-------------------------------------------------------------------------

중앙대학교 예술대 사진학과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사진작가협회 회원이다. 한석홍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한국 미술 5천년『한국 국보시리즈』『스키타이황금전도록』『궁중유물도록』 등 여러 책에 작품을 실었다. 독일 비엔나 민속박물관에서 "한국의 문화재" 사진전을 가졌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지방 국립박물관에서도 순회 전시한 바 있다.

 

임원순-------------------------------------------------------------------------

사진작가협회 회원이며 현재 문화재 사진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갑주』『경남문화재대관』『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 등 여러 책에 작품을 실었다.

 

|차례|

조선 왕조 문화와 궁중 유물

    조선 왕조 문화의 태동

    궁중 유물이란

어보(御寶) · 어책(御冊) 류

회화 · 서예류

도자기류

의상 · 장신구류

    궁중의 복식

    노리개

    술끈

    주머니

    보자기

덕수궁 중화전 당가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 금보(金寶)  태조의 존호를 새긴 금제 어보이다. '강헌 지인계운 성문신무 정의광덕대왕지보(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正義光德大王之寶)'라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1872년의 고황제 추존 이전에 사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높이 7.5센티미터, 가로와 세로 각 9.5센티미터.

화각함  궁중은 왕실의 의식주가 이루어졌던 것은 물론 국가의 권위와 경영을 위한 문물들이 갖추어진 곳으로 궁궐이나 집기, 의기 등 궁중에서 이루어진 모든 문물들은 가장 수준 높은 우리 문화의 정수라고 볼 수 있다. 이 화각함은 쇠뿔을 종이처럼 얇게 저며 뒷면에 그림을 그린 뒤 나무에 붙여 만든 공예품으로 함의 다섯면 전체를 화각으로 감쌌다. 20세기 초 이왕직 미술품제작소 작품으로 추정된다. 높이 37.3센티미터, 가로 71센티미터, 세로 37.7센티미터.

조선왕보(朝鮮王寶)  '조선왕보'라 새겨진 옥보. 국왕의 인보로 보이며 뒷면에는 '영보(永寶)'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높이 2.5센티미터, 가로 · 세로 각 7.3센티미터.

목조(穆祖) 금보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의 금보이다. 밑면에는 '인문성목대왕지보(仁文聖穆大王之寶)'라고 새겨져 있어서 태종이 '인문성목'이라 추존한 이후부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높이 9.8센티미터, 가로 · 세로 각 9.8센티미터.

영조(英祖) 계비 금보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김씨의 금보. 영조 35년(1759)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소숙정헌 정순김씨지보'라 새겨진 것으로 보아 승하한 뒤 추존된 존호로 보인다. 높이 9.7센티미터, 가로 · 세로 각 9.9센티미터.

영조 옥인(영玉印)  '왕세제인(王世弟印)'이라 새겨져 있으며 영조가 왕세자로 책봉되었을 때 제작된 옥제 어보이다. 높이 9센티미터, 가로 · 세로 각 10.3센티미터.

의소세손(懿昭世孫) 옥인  의소세손은 장조의 장남으로 이 옥인은 1751년에 세손으로 책봉될 때 만들어진 것이다. 높이 9센티미터, 가로 · 세로 각 9.6센티미터.

금책(金冊)  융희 원년(1907) 고종 황제가 즉위한 다음 달인 8월 24일 형님인 완왕(完王)의 요절을 슬퍼하며 지은 애책문(哀冊文)이다. 가로 20.6센티미터, 세로 23센티미터.

태종(太宗) 옥책(玉冊)  고종 9년에 태종을 추존한 옥책이다. 두께 1.7센티미터, 세로 26.4센티미터, 길이 215.3센티미터.

영조(英祖) 어진(御眞)  인물의 전신이나 반신상을 그대로 세밀하게 그린 그림을 초상화, 전신화, 진영화라고 하며 특히 임금의 초상을 어진이라 한다. 이 그림은 면복을 입고 익선관을 쓰고 오른쪽을 향한 영조의 상반신을 그린 것이다. 보물 932호. 203×83센티미터.

철종(哲宗) 어진(위)과 연잉군(延礽君) 영정(아래)  어진은 한국 전쟁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고 이 두점만 남아 있는데 궁중 회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철종 어진 : 족자 높이 294센티미터, 족자 폭 112.5센티미터. 연잉군 영정 : 족자 높이 244센티미터, 족자 폭 98센티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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