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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3'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6.13 2013-062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
2013. 6. 13. 14:08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62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

 

나종영 시집

2001, 실천문학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8212

 

811.6

나756나

 

실천문학의 시집 130

 

나종영에게는 고향이 있습니다. 못 잊을 핏줄이 엉겨 있습니다. 온통 도시의 나그네인 시인들 가운데서 그는 애오라지 서러운 유산처럼 농경사회의 묵은 정서를 온전히 지켜내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 그에게는 아직도 가슴 벅차게 시대의 쓰라린 민족이 있습니다. 그의 민족은 결코 관념이 아니라 근친의 아픔 그것입니다.

"내 시는 피를 흘릴 거야. 내 시는 가슴으로 울 거야."

시인 나종영은 사랑이 사랑의 상처임을 진작 알았는데도 이제야 뒤늦게 안 것처럼 알려줍니다. 그리하여 산들도 꽃들도 사라져간 전사의 무덤인 것을 우리들이 알게 됩니다.

- 고은 (시인)

광주항쟁과 그에 뒤이은 거대담론의 시대를 보내고 오랜 모색을 거쳐 '작고 가벼운 존재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나선 나종영의 근작시들을 읽노라면 마음속으로 불현듯 맑고 따스한 물방울이 또르르 구르는 감촉 같은 것이 느껴진다.

- 최두석 (시인)

 

나종영

1954년 광주 출생.

1981년 창작과비평사 13인 신작시집 『우리들의 그리움은』으로 작품활동 시작.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광주 · 전남작가회의 회원.

1985년 시집 『끝끝내 너는

<시와 경제>, <5월시> 동인으로 활동.

 

■ 차례

 

제1부

봄  빛

봄빛 / 솔나리 / 洗足 / 묵계에서 / 상처 / 노랑붓꽃 / 딸기밭 / 붉은점모시나비 / 새들은 돌아보지 않고 날아가네 / 천년 전 / 하늘다람쥐 / 물잠자리 / 雨水 / 그대 눈동자 속에는 / 어린 나무에게 / 쑥부쟁이 / 화포나루

 

제2부

버려진 바퀴가 굴러간다

버려진 바퀴가 굴러간다 / 석산을 보며 / 논두렁에 콩을 심는 이유 / 하얀 고요 / 相生詩篇 1 / 相生詩篇 2 / 도롱이 / 병아리 / 봄 강물 / 키 큰 나무 곁에 / 비 개인 뒤 / 늦잠 / 나뭇잎배 / 뽀리뱅이 피는 뜻은

 

제3부

강 건너 불빛 꺼지고

벚꽃 십리 / 넝쿨장미 / 추락하는 너에게 / 통곡 / 오열 / 안나푸르나 / 모란시장 / 향촌집 / 강 건너 불빛 꺼지고 / 사랑노래 / 찔레꽃 / 동백꽃 / 빈자리 / 11월

 

제4부

내 안의 詩

詩 / 시인과 농부 / 내 안의 詩 / 황사바람 / 노동자 시인 / 갈대 / 임포리에서 / 백목련 / 물봉숭아 / 깨끗한 날 / 내 사랑 각시붕어 / 무게 / 백련 / 어머니의 한 뼘 땅

 

제5부

금강산 길

새벽길 / 금강산 길 1 / 금강산 길 2 / 압록강 저편 / 북녘의 시인에게 / 뒷모습 / 낚시꾼 윤씨 / 벽과 못 / 적막 / 다시 오월에 / 말바우시장의 봄 / 동백꽃 붉은 숯속에 와서 / 붉은오름에 서서 / 푸른 무덤 / 백운산 골짜기

 

발문 / 김용락

후기

 

봄 빛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운조루 안채 장독대 곁에

하얀 목련꽃 병긋 피어 있다

그 옆에 살포시 볼우물 짓고 서 있는

그대 꽃내음나는 머릿결 위로

하얀 꽃잎 져내려,

그대 모르게 사알짝

꽃잎 한 장 집어드는데

아 얼마만인가 내 가슴속에 푸드득

산새 한 마리 날아와

애기똥풀꽃 같은 봄빛 깨치고 가던 것이.

 

버려진 바퀴가 굴러간다

 

편백나무 숲에서 버려진 자전거 바퀴를 주웠다

통째로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자전거에서

바큇살을 떼어 굴렁쇠를 만들어 굴렸더니

신기해라, 은빛 銀輪의 바퀴를 생전 처음 본 듯

소년 하나 편백나무 숲으로 바퀴를 굴리며 사라졌다

나무숲 사이로 부챗살처럼 퍼지는 아침 햇살을 뿜으며

녀석은 어디까지 가고 싶어할까

푸르디푸른 소나무 숲길을 지나 넓은잎나무 숯속으로

는개 내려앉은 산기슭 너머 끝간 데 없이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가고 싶어할까

버려진 바퀴가 살아서 바람을 굴리며 굴러간다

도시의 누군가 쓸모가 없어 쓰레기로 버린 죽은 자전거,

문득 나 다시 눈을 떠

아침 공기를 가르며 눈부신 편백나무 숲길을 끝없이 달려가는

은빛 바퀴가 되고 싶었다.

 

논두렁에 콩을 심는 이유

 

콩밭에 콩 심을 때

한 구멍에 콩알 세 알을 심는 이유, 넌 알지

한 알은 새가 먹고

한 알은 흙속에 벌레가 먹고

남은 한 알이 흙속에서 썩어

새싹으로 움터져 나온다는 것 알지?

 

그런데 너 밭에 콩 안 심고

논두렁에 콩 심는 이유는 아니?

논에 벌레가 연한 콩잎 먹으러

논두렁으로 달려오고 벌레 먹은 콩잎 매단

꽁깍지가 더 많은 콩을 담고 있는 것 아니?

 

비가 오는 날 물꼬를 보러 가는 농부가

왜 주머니에 씨앗콩을 넣어 가는지 이제 짐작이 가니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

논가에 키 큰 미루나무가 땡볕에 서서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이치를, 넌 알고 있니?

 

하얀 고요

 

비올랑갑다 장독 닫아라

할머니 말씀 떨어지기 무섭게 여우비 내렸지요.

 

밖에 눈이 많이 왔는갑다

창 밖을 내다보지도 않고

할아버지 마당에 눈 쌓인 것 알지요

 

제비가 낮게낮게 나는 틈

소리 없이 내리는 눈,

 

온몸 감아 흐르는 하얀 고요

그것을 속으로 알고 계신 거지요.

 

강 건너 불빛 꺼지고

- 달맞이

 

밤이 깊다 사랑하는 사람아

강 건너 사람의 마을 불빛 꺼지고

판 별빛 한 줄기 내려와

강둑에 핀 달맞이꽃이 눈부시다

먼길 고개를 떨구고 걸어가는

말이 없는 내 사람아

이 길을 따라 흐르는 물결 따라

잠들지 않는 가난의 땅

새벽 달빛에 어린 노란 꽃무더기

 

내 안의 詩

 

내 가슴이 둥둥 뛰는 시를 쓰고 싶었어

가슴이 잔 여울처럼 서늘해지는 시 하나,

 

봉지쌀을 사들고 산동네 언덕을 올라가는 막내이모의 뒷모습을

쓰고 싶었어 병든 지아비를 고지대 임대아파트에 남겨두고

새벽산장에 파출부 일 나가는질경이풀 같은 내 누이의 생을 

쓰고 싶었어 지하셋방에 코흘리개 어린 남매를 놓아 두고

봉제공장에 일나가는 사촌동생 부부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

지하셋방에 갇힌 어린 남매가 불에 타 숨졌다는 이야기는

차마 마음에 담을 수가 없었어

 

내가 이 땅에서 본 것, 내 이웃이 겪은 것들

한 발짝 한 발짝 좋은 세상을 위해서

제 몸을 던지는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아름다움과 진실은 서로 다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살아 있는 것들이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울고 있다는 것을,

이름 없는 들풀의 이름을 불러주고 하찮은 벌레들의 울음소리에

귀기울여 함께 눈물을 흘리는 그런 시를 쓰고 싶었어

 

가슴 밑바닥 끓어오르는 무엇인가 저문 강물에 빠져 들면

붉은 노을이 해일처럼 다가와 풀잎들을 일으켜 세우곤 했어

그때 내 가슴에 영원히 흐르는 시 하나 새기고 싶은 거야

내 마음에 살아 튀어오르는 은빛 물고기 같은 시,

어두운 핏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혁명 같은 시,

나중엔 이 세상에 나뭇잎 하나도 그대로 놓아두고 가는 시,

흐르는 강물에 발목을 적시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시 한 편 쓰고 싶은 거야

내 안에 하나 마음속에 깊은 시를.

 

금강산 길 1

 

아, 이 흙

가슴 저미는 흙냄새

금강산 첫 마을 온정리에 내리자 사람들 땅바닥에 코를 박고 땅을 치며 통곡을 하는데 아흔여덟 심재린 할아버지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습니다

한번 밟아봐라 이 땅을, 오십 년 막혀 오지 못한 이 길을 한번 맘껏 디뎌봐라 어느 놈의 발목이 빠지는지

내 할애비의 할애비 그 할애비의 할애비 아부지 내 아들 버리고 온 아내 내 딸이 딛고 날마다 걸어다녔을 이 길이 어이 무너져 내리는지

옥류다리 건너 연주담 그 너머 구룡폭포 박달나무 마른 잎새 하나에도 가슴 저미어오는데 눈물 메마른 아흔여덟, 부축하는 안내원 손길을 뿌리치고 훠이훠이 금강산 오릅니다

살아서 다시는 오지 못할 이 길을 가다 쓰러져 묻히고 싶은 고향길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가슴으로 오릅니다

아아, 이 흙

발바닥 끝 뜨겁게 찔러오는 흙냄새.

 

금강산 길 2

 

금강산 밟고 온

아흔여덟 심재린 옹에게

남한 TV 기자양반 신이 나서 묻습니다

금강산 관광객 가운데

최고령이신데 다음에 또 오시겠습니까?

그것은 두더지에게 물어봐야지요

두더지 땅속에 사는디 내 죽어 땅속에

묻히면 못 올 거고, 뭐 살아도 못 오겠지요

그 말뜻 알아듣지 못한 기자양반

유람선 갑판에서 또 마이크 들이대지요

금강산 아름답지요?

그것은 물어 뭐하게요 내 오십 년 넘게

두더지처럼 살았는데……

금강산 관광 십 년 이어지면 통일이 십 년 늦어지겠지요

? ? ! ! !

 

相生詩篇 1

- 지렁이

 

밭이랑 고르다가

온몸으로 꿈틀거리는 너를 본다

징그럽게 살아 꿈틀거리는 너를 보며

살아 있는 것이 스멀거리는 촉촉한 밭 위에 내가

맨발로 서 있음을 나는 비로소 안다

이 흙 안에서 너는 온몸으로

몇 백년 몇 천년을 면면히 살아왔으리

나도 네가 사는 흙속에서 징그럽게 살아가리라

돼지벌레 굼벵이 명주잠자리애벌레가

뒹굴며 함께 살고 있는 풀뿌리 환한 세상 안에서.

 

도롱이

 

잔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도롱이벌레의 아침을

걱정하는 마음이 하나 있다

 

가슴 붉은 곤줄박이 한 마리

바람에 흔들리는 도롱이 집을

쪼을까 말까 몇 번 망설이다가

주머니 속 애벌레 꿈틀거리는 것 보고,

부드러운 입맞춤을 하고

포롱포롱 햇살 속으로 날아갔다

 

그 나무 아래 잎 다 떨군

빈 나무 밑둥 아래 밭냉이 콩버무리

좀씀바귀 새싹 튀어오르고,

봄볕 줄기 따라 애기팔랑나비 날아가고 있다.

 

 

내 시는 피를 흘릴 거야

내 시는 가슴으로 울거야

울더라도 엉엉 소리내어

흙빛 짐승처럼 울 거야

내 시는 첫새벽 들판에 어둠을 토할 거야

드넓은 대지 위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솟아올라 솟구쳐올라

아침 밭일을 하는 사람들의 밭이랑 위에

비추일 거야 손톱에 피멍이 터지도록

일하는 사람들의 어깨 위에 가만히

내려앉을 거야 내 시는 여윈 어깨에 기대어

함께 서늘한 눈물을 흘릴 거야

내 시는 한 줄기 강물이 되어 흐를 거야

내 시는 해질녘 건들바람이 되어

이 땅 골목골목을 무르팍이 으깨지도록 돌아다닐 거야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어두운 거리

홀로 떨며 서 있는 가난한 소녀의 눈망울에

내리는 이슬이 될 거야

어둠속 꺼이꺼이 울고 있는 짐승 같은 사내

외로운 시인의 가슴에 흐르는

뜨거운 노래가 될 거야

이 산하 내가 사랑하고 목놓아 불러야 할

내 영혼의 마지막 노래는.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