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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7. 13:57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70 속리산

 

글 / 박원식●사진 / 김상훈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096

 

082

빛12ㄷ  173

 

빛깔있는 책들 173

 

박원식-------------------------------------------------------------------------

광주에서 태어나 중앙대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0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여러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김상훈-------------------------------------------------------------------------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 사진학과와 신문방송대학원(출판잡지 전공)을 졸업했다. 혜전전문대 강사를 역임했다. 현재 국내외 유명 산사진을 촬영하여 출판사 및 잡지사에 기고하며 프리랜서로 활동중이고 스튜디오 마운틴 비전의 대표이다. 저서로는 『산악사진의 이론과 실제』와 『한국의 산(상, 하)』 등이 있다.

 

|차례|

 

개관

    세속으로 나온 산

    사람을 살리는 산

속리산의 생김새

    자연이 빚은 놀라운 바위 예술

    봉황을 닮은 산

    세 개의 큰 강이 흘러 나오는 산

    달라지는 생태계

속리산의 이름난 장소들

    사화와 설화의 창고

    문장대, 그 속리 가인(佳人)의 얼굴

    경업대와 장군수

    은폭(隱瀑)의 비밀

    수정봉과 목잘린 거북바위

    속리산 국립공원

법주사

    길상사(吉祥寺)로 열린 절

    청동 미륵대불

    아름다운 석조물들

속리산과 사람들

    전쟁 많은 역사

    속리산 등산길

속리산의 뜻

 

오리숲  숲의 길이가 십리의 반이 된다 하여 오리숲으로 불리는 법주사 들머리의 숲길은 지난날 꽤나 분망한 저잣거리였으며 지금도 사람들로 버글거린다.

속리산 능선의 중간쯤에 위치한 입석대

관음봉  문장대나 천황봉이 바위 성채의 장관으로 속리의 자존심을 표상한다면 속사치 쪽은 깊은 숲과 정밀한 적막으로 속리산의 오만한 노출을 억누르는 배역을 수행한다.

세심정 부근의 맑은 계류

오송폭포

말티고개  고개를 넘는 순간 속리산의 잘난 멧부리들이 일제히 달려오는 말티고갯길은 조선의 세조가 말을 타고 넘었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  조선 세조가 탄 가마가 가지에 걸리자 제 가지를 들어 길을 터준 이 신통한 소나무에게 세조가 정이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문장대  문장대의 정수리는 30평쯤 되는 평지를 이루었다. 속리산이 수많은 아름다운 암봉들의 삼엄한 뾰족 봉우리로 사람의 범접을 허용하지 않은 데 반해 문장대는 수백 명을 무등 태울 넓죽한 바위 좌석을 마련하고 있다.

복천암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한 사실을 전하는 목적은 「복천사 사적」이다. 복천암에는 오늘날까지 세조의 속리산 입장을 증거하는 편액 따위가 걸려 있다.

상환암  이 암자 일대엔 조선시대 세왕의 흔적이 전한다. 상환(上歡)이란 이름은 선왕 이성계의 행적을 밟게 된 세종이 그 기꺼운 마음을 가리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암벽에 새겨진 '학소대' 글씨

학소대 전경

 

추래암  애당초 수정봉 꼭대기에 살던 이 바위는 멋대로 싸돌아다니다가 산신의 노여움을 사 수정봉 아래로 걷어차였다고 한다. 그래서 '떨어져 나온 바위(墜來岩)'란 이름이 붙었다.

화양동 계곡  흔히 금강산 만폭동에 견주어지는 화양동 계곡은 기괴 무쌍한 암반들이 만들어 낸 풍치를 자랑한다.

화양동 계곡의 채운정

화양동 계곡의 파천

양동 9곡 파천의 벼랑새김

선유동구곡 입구에 새겨진 선유동문  퇴계 이황이 머물며 직접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법주사 일주문

법주사 전경  왼쪽이 대웅보전이고 오른쪽은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이다.

청동 미륵대불과 팔상전(국보 제55호)

대웅보전(보물 제915호)  화엄사 각황전, 무량사 극락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다층식 전각의 하나로 꼽힌다.

석연지(국보 제64호)  8각의 댓돌 위에 커다란 반구형의 돌을 깎아 연못을 만들어 올려 놓은 이 석연지는 석조물 전체에 꽃, 구름, 난초, 덩굴 등의 무늬가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삼년산성에서 바라본 보은읍의 모습

삼년산성  신라 자비왕 13년에 축조된 것으로 3년 동안 쌓았다는 이 성은 최대 높이 13미터에 폭은 5미터에서 8미터에 이르고 길이는 13킬로미터가 넘는 정교하고 장중한 성채이다.

화평동에서 바라본 속리 연봉   좌로부터 묘봉, 상학동, 매봉, 모자바위

천왕봉에서 바라본 속리 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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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3. 6. 25. 15:25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69 현대 무용 감상법

 

글 / 남정호

1999,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095

 

082

빛12ㄷ 172

 

빛깔있는 책들 172

 

남정호-------------------------------------------------------------------------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프랑스 rENNES Ⅱ대학 박사 과정(D. E. A)을 이수했고 소르본느대학 무용 디플롬을 수료했다. 프랑스 IPAC(Institut Pedagogie d'art Choreography)의 강사를 역임했으며, 장 고당 무용단에서 활동했다. 부산 경성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로 있고 무용평론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차례|

 

현대 무용이란 무엇인가

현대 무용의 역사

    미국의 현대 무용

    유럽의 현대 무용

    현대 무용의 전개

현대 무용의 동작

현대 무용 감상

한국 현대 무용의 역사와 전망

부록 · 현대 무용가

참고 문헌

 

앨빈 에일리 「게시  현대 무용가는 자기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아무리 진지하고 어둡고 음울한 것일지라도 유머를 배제하지 않는다. 이 유머는 깊고 꿰둟는 듯한 포괄적인 지성의 반영이다. 그렇기에 창조적 현대 무용은 지성적인 수밖에 없다.

이사도라 덩컨과 그의 제자들

저드슨 그룹의 메러디스 몽크 「어린 소녀의 교육  기억의 저편에서 이미지를 얻어 마치 환상이나 꿈에서처럼 그것을 조작하고 재배열해 놓은 듯한 작품이다.

피나 바우쉬 「카페 뮐러」  바우쉬의 안무 의도를 가장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새로운 것에 개방적인 동시에 평범한 감성과 영혼을 가진 이들이다.

최승희 「광상」  서구적인 외모와 현대적인 감각을 최대한 드러낸 「광상」 이후 최승희는 한국적인 소재를 발굴하여 자신의 춤을 발전시킨다.

남정호 「빨래」  놀이와 노동이 교차하는 한국인의 심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드러내었다.

홍신자 「제례」  현대 무용이라면 '그라함테크닉'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던 1970년대 한국 무용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작품이다.

로이 풀러

이사도라 덩컨  성의 해방과 자기 실현에 대한 여성들의 열망을 몸소 실현한 무용가로서 자연으로의 회귀를 기치로 자연을 자신의 춤의 스승으로 삼아 고대 그리스 미술을 공부한 덩컨의 춤은 모든 면에서 혁명적이었다.

루돌프 폰 라반  무용학자인 라반은 무용을 학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마리 뷔그만 「마녀의 춤」  인간의 본성 가운데 악을 표출한 무용가는 뷔그만 이전엔 없었으며 그녀 이후에도 아주 드문 편이었다.

테드 숀  수많은 강연과 시범 공연 그리고 저술 등을 통해 미국 대학에 무용을 보급했으며, 무엇보다도 남성 체육인들의 훈련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사 그레이엄 「애가」  이 작품은 수축성이 강한 천 안에서 관절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비애의 느낌을 강하게 표현하였고, 무엇보다도 그레이엄의 탁월한 무대 의상 감각이 돋보인다.

한나 홈  독일 표현주의 무용과 미국 현대 무용을 비교 해부한 무용가이다.

도리스 험프리  현대 무용 안무에 관한 책을 최초로 저술한 지적인 무용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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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3. 6. 25. 11:43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68 몰입 두 번째 이야기

 

황농문 지음

2011, 랜덤하우스

 

 

시흥시대야도서관

SB047277

 

181.4

황195ㅁ v.2

 

인생의 완성도를 높이는 자기 혁명

 

THINK HARDER!

 

전국민의 삶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황농문 몰입신드롬' 제2탄!

 

대한민국 100만 독자가 열광한 베스트셀러 『몰입』을 탄생시킨

몰입전문가 서울대 황농문 교수의 업그레이드 버전 '몰입로드맵'!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몰입을 통해 한 번밖에 없는 삶의 기회에서 자신의 날개를 푸른 하늘에 마음껏 펼치며 살았으면 한다. 하루하루 기적과 같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와 감격하고, 또 그것이 몇 달간 혹은 몇 년간 누적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고, 그렇게 자신이 이룬 일들에 진정으로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는 삶을 산다면 먼 훗날 삶을 뒤돌아볼 때 한 치의 후회도 남지 않을 것이다. _ '프롤로그' 중에서

 

"몰입하고 또 몰입하는 한 나에게 한계란 없다"

자신의 한계 돌파를 즐기며 최고의 인생을 펼치게 하는 몰입로드맵,

학생 · 직장인 · 주부 · CEO 등 전국민을 매료시킨 성공과 행복의 열쇠!

 

황농문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사 /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선임 및 책임연구원, 미국 국립표준기술원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과 일본 금속재료연구소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Metals의 객원연구원으로 근무했고 현재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절정의 몰입 상태에서 수행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몰입적 사고를 통해 두뇌를 최대로 활용할 수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임을 확인하였다. 실제로 그는 몰입적 사고를 통하여 50년 이상 아무도 풀지 못한 난제들을 해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100% 활용하고 있다는 만족감과 지극한 행복감을 느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우울을 고질병처럼 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인생을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르쳐주기 위해 첫 번째 저작 『몰입』과 심층적인 원리, 풍부한 사례를 담은 후속작 『몰입, 두 번째 이야기』를 펴냈다.

창조적 기업경영과 영재교육을 위한 몰입적 사고를 전도하고 있고, 이를 각종 연구개발에 활발하게 적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산업체의 고질적인 난제들을 몰입적 사고를 통해 극적으로 해결하는 처방사로 각광받고 있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답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나는 늘 사원들에게도 핵심 업무에 집중하고 몰입하기를 권장합니다. 그래야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탁월한 성과를 내는 성공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내가 평소에 믿고 실천하고 있는 몰입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어 공감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이전 책에 비해 풍부해진 사례와 한층 깊어진 몰입 원리에 대한 연구는 집중과 몰입을 통해 탁월한 성과를 창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김반석 _ (주)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

 

황농문 교수는 역시 몰입 전문가다. 끊임없이 몰입에 몰입해서 몰입에 관한 그만의 독특한 철학과 이론과 실천의 패러다임을 이 책에 구축해놓고 있다. 몰입에 관한 그간의 다양한 주장과 이론에 때로는 흠뻑 젖기도 하고, 때론 날카로운 비판의 화살을 날리기도 하면서, 황농문 교수는 자신의 고유한 필요성에 의해서 몰입의 실천적 프로그램을 형성하고 그의 학생들과 더불어 몰입효과를 실험한다. 몰입에 대한 책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출판되어 어느 책을 읽어야 할지 선택이 어려울 정도지만, 황농문 교수의 이 책은 분명한 차별성이 있다. 다른 책들이 몰입의 중요성에 대해 주로 언급하거나 몰입을 하는 사람의 특징을 밝혀내는 데 그치고 있거나, 몰입을 위한 실천 프로그램의 제시로 만족하고 있는 데 비해 황농문 교수의 이 책은 몰입에 대한 철학과 이론과 실천의 삼박자 구조를 갖고 펼치면서 이 세 요소를 일관된 패러다임의 틀 위에 정지시키고, 하나하나 균형 있게 설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몰입에 관한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거대 이론Grand theory'의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하는 것은 바로 이번 책 속에 함축된 몰입 패러다임의 포괄성과 섬세함 때문이다. 이 책은 황농문 교수가 그간의 학술적, 실천적 성과를 잘 묶어서 몰입에 대해 더 많이 알고자 하는 많은 이들에게 몰입의 종결자로 던져준 귀한 선물 같다.

문용린 _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긍정심리학회장, 한국교육학회장, 전 교육부장관

 

이 책에서 황농문 교수는 자기 능력의 한계를 발휘하고 그 한계를 넓혀가는 인생을 설계해야만 비로소 자아실현을 하고 후회 없는 삶,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몰입이야말로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설파한다.자신의 꿈을 갖고 이를 이루어내는 것,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것, 자기 직분과 사명을 다하는 것 모두 몰입이라는 특별한 장치를 통해 실현해낼 수 있을 것이다. 『몰입』을 읽고 자신의 숨은 잠재력을 일깨우며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 방법을 깨우쳤다면 이제 『몰입, 두 번째 이야기』를 읽고 자신의 한계를 발휘하며 인생의 완성도를 높여나갈 차례다.

박명재 _ CHA 의과학대학교 총장, 전 행정자치부 장관

 

황농문 교수는 몰입을 햇빛으로 종이를 태우는 원리에 비유해 설명한다. 즉, 돋보기로 햇빛을 한 곳으로 모으면 종이도 태울 수 있듯이 생각하는 대상의 범위를 좁혀 몰입 강도를 높이면 어려운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몰입은 또 다른 말로 '선택과 집중'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을 선택해서 할 수 있다면 쉽게 집중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이 책은 해야만 하는 일에 몰입하면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직장인 · 주부 · CEO,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서상기 _ 국회의

 

나는 황농문 교수가 말하는 몰입적 사고의 효율성에 그 누구보다 동감한다. 왜냐하면 황농문 교수가 우리 회사의 연구진들과 현장을 실사하고 원인을 규명해 지난 20년 동안 해결 못한 고질적인 난제를 단기간에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산업현장에서도 몰입적 사고를 하면 어떠한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최근 또 다른 난제를 의뢰하여 빠른 해결을 기대하고 있다. 과학적인 사실을 근거로 몰입의 원리를 더욱 깊이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개인이나 기업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굉장히 유용하다. 특히 권말부록의 몰입을 활용한 문제해결 방법론이 산업현장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수일 _ (주)동부제철 대표이사 부회장

 

몰입은 최적의 상태인 동시에 그 상태로 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따라서 몰입은 진정한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 몰입은 명문 시카고 대학교에서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생물학, 통계학이 함께 융합된 인간발달학과의 칙센트미하이 교수 연구실에서 잉태되었다. 황농문 교수는 이러한 세계 최고의 다학문적 전통을 확장시키며 이어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몰입을 뇌과학적 시각에서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마지막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영적 영역에까지 확대해서 해석했다. 또한 방대한 분야에서 사례를 발굴하였기에 이 책에 제시된 실천 사항들은 굉장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조벽 _ 전 미시간공과대학교 교수, 현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누군가의 글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면 그 사람의 생각은 신뢰할 만하다. 이 책이 그렇다. 목숨을 걸고 썼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읽는 내내 황농문 교수의 강한 몰입, 깊은 사고, 집요한 글쓰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내가 내린 결론이다. 이 책은 몰입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돕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구자, 교사, 교수, 학생, 기업인, 그리고 깊이 있는 인생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몰입에 이르는 구체적인 가르침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부부 관계나 연인 관계, 직장에서의 몰입에 대한 조언까지 담고 있어 몰입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경험한 짧지만 강렬했던 몰입의 즐거움은 결코 나만의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최인철 _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심리과학연구소장

 

언론사 밥그릇 이십여 년. 직업적으로 자주 접하는 성공한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단언컨대 집중력, 몰입이다. 보통 소년 황농문 그가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의 학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비밀(?)을 오랜 시간 그를 지켜봐 온 나는 안다. 몰입이다. 그가 두드러진 연구 성과를 올릴 때마다 나는 결코 놀라지 않았다. 그가 마침내 몰입이란 비밀의 방을 속속들이 공개했다. 황농문 교수는 책 속에서 자신의 실천적 경험들을 신경과학(neuro - science), 엔트로피 등 다양한 과학적 지식과 이론을 통해 재해석하며 몰입에 관한 보다 종합적이고 논리적인 이론 체계를 구축해 간다. 자기 안의 천재를 끄집어내는 방법, 이 독특한 자기계발서가 바로 그 단서를 준다. 책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달라질 당신 삶의 색채를 기대해보라.

홍현종 _ 서울경제신문 부국장, 서울경제TV 해설위원

 

몰입은 우리가 쓰레기통에 던져 놓았던

먼지 낀 시간들을 순도 100%의 황금빛 삶으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차례

 

PROLOGUE

최고의 삶을 선사하는 두뇌활용법

 

1장 |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의 깊이를 더하는 몇 가지 질문

해야 할 일을 즐기는 행복한 삶

능력의 한계를 발휘하고 그 한계를 넓혀가는 삶

가장 축복받는 삶

 

2장 | 몰입을 알면 인생이 잘 풀린다

한계 돌파를 이끄는 몰입의 힘

연속된 시간을 확보하라

몰입도를 손쉽게 올리는 방법

 

3장 | 목표 달성을 이끄는 몰입 효과

외적 위기상황과 내적 위기감

목표를 정하면 자동으로 몸이 향한다

목표 설정이 가져오는 놀라운 효과

궁극의 최선이란?

잘못된 몰입

 

4장 | 천천히 생각하기 : 슬로우 싱킹

힘 빼고 천천히 생각하기

천천히 생각하기 노하우

천천히 생각하기의 긍정적 효과

자는 동안에도 생각은 계속된다

 

5장 | 몰입과 영성의 친밀한 관계

몰입은 종교를 닮았다

뇌과학으로 본 영성

 

6장 | 아이디어를 위한 몰입

위대한 기업가들의 공통점

몰입과 아이디어의 관계

몰입도 100퍼센트에서 느끼는 몰입의 참맛

왜 몰입 상태에서 지적 능력이 고양될까?

 

7장 | '몰입'에 대해 자주 하는 질문들

바쁜 직장인들, 어떻게 몰입할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을 땐?

수험공부 할 때에는 어떻게 몰입할까?

몰입을 하면 인간관계에 문제는 없을까?

 

8장 | 몰입과 생각하기 지도 사례

학위 과정에서의 몰입과 생각하기

회의식 미팅과 토론식 미팅

 

9장 | 몰입과 엔트로피, 그리고 뇌과학

엔트로피 법칙으로 본 삶

엔트로피 법칙과 시냅스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

의식과 몰입

신념의 뇌과학

 

10장 | 몰입으로 인생에 '행복엔진'을 달아라

절망도 희망으로 바꾸는 의식의 힘

행복한 삶을 부르는 의도적인 몰입

부정적 생각에서 벗어나 가치 있는 생각을 하라

규칙적인 운동은 쾌감을 준다

몰입과 행복의 밀접한 관계

 

EPILOGUE

능력의 한계를 발휘하고 한계를 넓혀가는 삶

 

부록 | 몰입을 활용한 문제해결 방법론

 

"우리가 보낸 하루하루를 모두 더하였을 때

그것이 형체 없는 안개로 사라지느냐,

아니면 예술 작품에 버금가는 모습으로 형상화되느냐는

바로 우리가 어떤 일을 선택하고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에 달려 있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칠십 평생이 우리가 우주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 파스칼

 

별들이 빛나는 드넓은 하늘 아래,

묘를 파서 나를 눕혀주오.

즐겁게 살았고 또 기꺼이 죽노니,

나 주저 않고 누우리.

 

그대가 나를 위해 새겨줄 묘비명은

여기 그가 누워 잇노라. 그토록 갈망하던 곳에

선원이 집으로 돌아왔네, 거친 항해에서

사냥꾼이 집으로 돌아왔네, 거친 들판에서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진혼곡

 

"모두 잠든 고요한 새벽,

이 광활한 우주에

이 문제와

이것을 생각하는 나,

오직 두 가지만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책이나 독서, 회사 일이나

전화통화 등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유일한 차이는

그들은 많은 일을 하고, 나는 한 가지만 한다는 것이다."

- 토머스 에디슨

 

"바라고 원하는 바를 성취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냥 계속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엄청나게 많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막연하게 '그렇게 되면 좋겠다'라는 식의 어설픈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강렬하게,

그리고 자나 깨나 끊임없이 바라고 원해야 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그 생각으로 가득 채우고

피 대신 '생각'이 흐르게 해야 한다.

그 정도로 한결같이 강렬하게 하나만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 일을 성취하는 원동력이다."

- 이나모리 가즈오

 

"몸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있는데 교감신경이 작용할 때는 좌뇌 중심의

긴장상태가 되고 부교감신경 위주로 작용할 때는 몸의 긴장이 풀린다.

일상생활에서 부교감신경이 우위인 순간은 잘 때뿐이며 깨어 있는 동안에

부교감신경이 우위이게 하는 수단은 명상이다. 천재는 뇌파를 알파 상태로

만들어 뇌내 모르핀을 그만큼 쉽게 끌어내는 요령을 체득한 사람이다."

- 하루야마 시게오, 『뇌내혁명

 

"창의적인 사람은 수도자다."

- 르 꼬르비제

 

"두뇌를 자나 깨나 계속 쓰다 보면 결국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옛날에 저는 비즈니스맨은

타고나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매일 넘치는 아이디어 때문에 잠을 못 이룰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손정의

 

"홀로 고요한 곳에서 깊이 생각하라."

- 불교 아함경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다시 생각하라.

생각해서 통하지 않는 것은 장차 귀신이 통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것은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성이 지극했기 때문이다."

- 관중

 

"인간은 사회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지만

영감을 얻는 것은 오직 고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 요한 볼프강 괴테

 

"일 년에 두세 번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생각을 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 조지 버나드 쇼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죽기보다도 싫어한다."

- 버트란트 러셀

 

"인생은 우리가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 랄프 왈도 에머슨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보라.

내일이면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보라.

내일이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

내일이면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임을 알게 되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헬렌 켈러

 

"신이 인간에게 준 성공에 필요한 두 가지 도구는 교육과 운동이다.

둘은 함께 추구해야만 완벽함에 이를 수 있다."

-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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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5. 10:28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67 흙비

 

류경일 시집

2000, 포엠토피아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9726

 

811.6

류146흙

 

포엠서정시선

 

봄비 왔다가고 봄눈 오간 뒤

다들 봄볕 기다리는데

작년에 가꾸어 놓은 돌담 밑

살피꽃밭에는 아직 봄나물 돋지 않고

올 봄 새로 짓는 미루나무 까치둥지에

미장하듯 흙비만 내린다

 

이역 만리 고비사막, 알랴산사막,

타클라마칸사막과 황하유역에서

한낮에도 죽은 것들의 영혼이 실려와

이 땅에 수많은 발자국을 찍을 때마다

나는 곁에 와 부활의 주문을 외는

낯선 소리

가만 가만 바람소리에 귀 기울여

수천 년 전 사막이 잉태한

자잘한 영혼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다

 

설죽은 바람이 긴 여정을

모래밥으로 살아와

이 하늘 눈멀게 한지 닷새

 

이 땅에서 일어나 이 땅으로 스러지는 바람에

굽은 등짝 맡긴 나뭇잎 하나

청승맞은 흙비 쓸어

미루나무 옆 상여집터에 묻어둔 날

밤 내내 낙타울음이 내 귀를 밟았다

- 「흙비」전문

 

시인 류경일

1964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남

1992년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1년 계간 「우리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집 「빗방울 듣고 나는 말한다」(시와시학사 1999)

 

현, 창원시청 시보편집실 근무

 

연락처 : 창원시 북면 신촌리 춘광아파트 501동 1018호

전화 | 집 298-8221, 직장 280-2046,

손전화 | 017-739-8221

 

『시인의 말

 

한 술 밥보다 한 줄 시가 더 배불러 시를 쓴다. 한술 두술 떠먹은 시가 어느새 한 배 가득. 색깔은 곱지 않지만 이렇게 또 세상에 시 한 무더기 갈겨 놓는다. 더럽다는 사람은 피해 가겠지만, 가끔은 가까이 다가와 쳐다보기도 하고 만져보는 사람 한둘 있었으면 좋겠다.

 

|차례|

 

■ 시인의 말

 

제1장 호박꽃 속 벌소리

호박꽃 속 벌소리 / 오리무중 / 고로쇠나무 / 주목 / 그늘꽃 / 왕대나무 / 지구, 수심에 잠기다 / 조롱박씨 / 너도바람꽃 / 굴현고개 / 때론 나무도 자살한다 / 선돌 / 차꽃 피는 날 / 오매불망

 

제2장 슬프다, 돌꽃

슬프다, 돌꽃 / 지노귀굿 / 흙비 / 보리밟기 / 수도사 / 외가 가는 길 / 비 오는 날의 사진 한 장 / 밤낚시 / 정월초하루 / 죽순

 

제3장 나무에도 길이 있다

지붕을 얹다  / 고주배기 / 돌을 씹다 / 나무에도 길이 있다 / 자살 / 제석봉 고사목 / 남자강 연가 / 남새밭 / 칼바위 / 소지골 / 그끄제 내린 비로 / 머구 / 흰 고무신

 

제4장 도시의 억새

메뚜기 / 몸살 / 이 늦은 가을에 / 본동아지매 / 도시의 억새 / 창원경륜장 / 하회마을에서 / 상지골 할미솔 / 며느리밑씻개 / 대둔산행 / 겨울 통도사 / 대원사 다층석탑 

 

제5장 눈꽃 상여

골다공증 / 눈 내리는 강 / 고추 말리기 / 서리맞은 떨감 / 화왕산 억새 태우기 / 戀書 / 낙동강 1 / 낙동강 2 / 눈꽃 상여 / 가죽나무 / 송화마을에 내리는 눈

 

호박꽃 속 벌소리

 

젖은 듯 촉촉한 호박꽃 속

그 환한 사랑방에 손을 드리우면

오래 전 길 떠난 어린 마음도

세상 벌 소리 다 담은 살가운 꽃의 마음도

처마 같은 손톱 밑을 후비어 든다

하학길 호박벌 잡아채던 아이들 소리

그때 들리던 새소리 물소리도 삭고 삭아서

웅웅웅 잠꼬대로 피어나는 꽃 속

그 보드란 꽃잎에 찍힌

아이들의 엄지 약지 지문을 안은 채

씨받이 오골호박이 자리를 터는 까치언덕

오늘 아침 기어이 무서리 내려

입시울 붙어버린 호박꽃 두엇

 

슬프다, 돌꽃

 

흙 위에 손 얹으면 흙이 내 손 만지고

물 위에 손 얹으면 물이 내 손 어루던

그 쓸만한 땅, 쓸만한 개울은 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이 도시

나는 꽃씨를 뿌린다

죽은 듯이 살아가는, 사는 듯이 죽어가는

이 땅의 힘 없는 흙들을 위해

홀쭉한 꽃씨 봉투를 이 악물어 뜯어

슬픔의 씨를 흩어 뿌린다

혹 북녘 땅 깊은 산중

바위틈에서 자라는 돌꽃이라도 피어날까

남도 북도 모르고 흐르다

제풀에 지쳐 썩어 가는 복개천 위에다

행여 그리운 님 오실까 침 묻혀 뿌리며 왼다

돋아나라 돋아나라 슬픈 돌꽃

 

나무에도 길이 있다

 

지리산 등줄 쉬어 내리다 머무는 봉나무골

산비탈 바위틈에서 빨치산처럼 숨죽인

씨알 작은 고종시를 딴다

외할아버지도 큰외삼촌도

앉았다 가신 하늘 가까운 자리에

덜 여문 엉덩이 걸쳐놓고

갈치 몰대로 감나무 가지를 꺾어댄다

진종일 이 나무 저 나무

이 하늘 저 하늘 옮겨 앉다 보면

나무 위에도 길이 생기고

낮달 같은 감 물대로 어루다 보면

벼랑 같은 나무 위가 오래된 널마루 같다

외할아버지 큰외삼촌도 어려워했던

먹바위나무 위 삼거리에 앉았다 내리면

어둠 덮치는 봉나무골

감꼭지 앉은 어설픈 일꾼의 머리 위로

빨간 까치밥들 어둑한 나뭇길 밝힌다

 

도시의 억새

 

억새가 이 도시 한가운데서

씨앗 다 날려보내고

마음 텅 빈 공터 만들어

저리 제 몸 흔들고 있다

바람의 행위예술인가

하늘이 전시한 설치조각인가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새 여름 올 때까지

한 자리에 서서

닳고닳은 마당을 쓸겠는가

삼백예순여날을 억새 아니고서야

게거품 물던 지난 시절 하얗게 잊고서

 

눈꽃 상여

 

따뜻한 남촌에 밤새 귀한 손이 와

들판과 산, 얼어붙은 연못이 모처럼 한 빛이다

 

하얀 밤을 뜬눈으로 지샌 외딴 가로등이

살쾡이 눈을 희번덕거리는 아침

까치 날아오르는 연못가 긴 모롱이 돌아

상여 하나 흔들흔들 흔들리며 섰다

 

이 세상 하얀 길 떠나는 이는 누굴까

길이 너무 많아 길 잃어버린 날

허물어지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님 소매 붙들고 떠나 보내지 못해

상여는 연못 수문 옆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눈빛에 묻혀 상주도 상여도 가물거리는

눈 온 날 아침 초라한 만장만 앞서

멀고 먼 황천길 꽃상여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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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5. 10:17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66-1 그림을 본다는 것

 

케네스 클라크 지음  엄미정 옮김

2013, XO BOOKS

 

GOYA

고야

1808년 5월 3일

 

<1808년 5월 3일 : 비오 왕자의 저택 앞에서 벌어진 총살>,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 ~ 1828), 캔버스에 유채, 266×345cm.

---------------------------------------------------------------------------------

1814년에 그린 이 그림은 솔 광장에서 벌어진 폭동을 그린 <1808년 5월 2일>과 짝을 이룬다. 고야는 이 두 점을 그리고 1,500레알을 받았다. 이 두 그림은 1834년부터 프라도미술관에서 소장했지만, 1872년에야 비로소 작품 목록에 등장했다.

고야, <꼭두각시>, 1791 ~ 1792년, 프라도미술관, 마드리드

고야, <잠 못 이루는 밤>, 「로스 카프리초스」36화, 1797 ~ 1799년, 아트인스티튜트, 시카고

고야, <1808년 5월 2일>, 1814년, 프라도미술관, 마드리드

고야, 강철 대오를 이루어 총을 겨눈 병사, <1808년 5월 3일>의 일부

마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1867년, 시립미술관, 만하임

고야, 총살의 희생자들, <1808년 5월 3일>의 일부

 

SEURAT

쇠라

물놀이, 아스니에르

 

<물놀이, 아스니에르>,

조르주 쇠라(1859 ~ 1891), 캔버스에 유채, 182×366cm.

---------------------------------------------------------------------------------

쇠라는 이 그림을 1883년 여름에 착수했으나 천천히 그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이 그림을 위한 습작 열세 점과 소묘 열 점이 발견되었다. 1884년 봄에 쇠라는 이 그림을 살롱에 제출했지만, 낙선하고 말았다. 그해 5월부터 7월까지 이 그림은 튈르리 공원의 근대식 건물에서 열린 '독립예술가그룹' 전시회에 등장했다. 1886년에는 인상주의를 옹호했던 화상 풀 뒤랑 뤼엘(1831 ~ 1922)이 이 그림을 뉴욕에 보내 미국 국립디자인학교에서 열린 '파리의 인상주의자들이 그린 유화와 파스텔화'라는 전시에 출몰했다. 이 그림은 쇠라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팔리지 않았으며 훗날 저명한 미술 평론가 펠릭스 페네옹(1861 ~ 1944)이 쇠라의 유족으로부터 이 그림을 구입했다. 1924년에 코톨드 기금위원회에서 테이트미술관에 두려고 이 그림을 구입했다.

이 그림이 담은 곳은 파리 교외의 공장 지대에서 가까운 센 강변으로 아스니에르라고 불렀다. 원경에 쿠르브부아 다리가 보이는데, 모네와 르누아르도 이 다리를 자주 그렸다. 화면 오른쪽이 그랑드자트 섬인데, 쇠라는 이 섬을 두 번째 대작의 무대로 삼기도 했다. 쇠라가 미국에서 돌아온 뒤 이 그림에 몇 번 덧칠을 했다는 사실은 1894년 12월 29일자 시냐크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쇠라, <물놀이, 아스니에르>의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소년 소묘, 예일대학교미술관, 뉴헤이번

쇠라, <물놀이, 아스니에르>를 위한 습작, 1883년, 크리스타벨 애버컨웨이 부부 소장

들라크루아, <성전에서 추방되는 헬리오도로스>, 1854 ~ 1861년, 생 쉴피스 성당, 파리

오귀스트 르누아르, <조각배>, 1875 ~ 1880년, 내셔널갤러리, 런던

쇠라, <서커스>, 1890 ~ 1891년, 오르세미술관, 파리

쇠라, <행진>, 1887 ~ 1888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뉴욕

쇠라, 야호를 외치는 소년, <물놀이 아스니에르>의 일부

 

TURNER

터너

눈보라

 

<눈보라>, 항구 입구 얕은 물에서 신호를 보내며 항해하는 증기선,

조지프 맬러드 윌리엄 터너(1775 ~ 1851), 캔버스에 유채, 90×120cm.

---------------------------------------------------------------------------------

이 그림은 1842년 로열아카데미에 전시되었고, 1856년 터너의 유증으로 다른 작품들과 함께 내셔널갤러리로 이관되었다가 현재 테이트미술관 터너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홍수를 그린 소묘, 왕실 도서관, 윈저 궁전

호쿠사이 가츠시카, <후지산이 보이는 가지카자와>, 1830년 무렵, 기메국립아시아미술관

터너, <난파선>, 1805년, 테이트미술관, 런던

터너, <페트워스 저택의 실내>, 1837년 무렵, 테이트미술관, 런던

터너, <최후의 정박지로 예인되는 전함 데메테르>, 1838년, 내셔널갤러리, 런던

터너, <국회의사당의 화재, 1834년 10월 16일>, 1835년, 필라델피아미술관, 필라델피아

터너, 풍랑에 휩쓰린 에어리얼 호, <눈보라>의 일부

 

LEONARDO DA VINCI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성 안나와 성모자

 

<성 안나와 성모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 ~ 1519), 나무판에 유채, 170×129cm.

---------------------------------------------------------------------------------

이 그림은 1508년 무렵 그려진 듯한데, 레오나르도를 10년가량 사로잡고 있었던 주제의 완결판이다. 그럼에도 성모 마리아의 옷 주름 같은 부분은 미완성이다. 이 그림에 관련된 소묘와 소묘 모작이 꽤 여러 점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윈저 궁전에 있는 레오나르도의 소묘는 그가 이 주제를 어느 정도까지 진전시키려고 했는지 보여 준다. 이 그림은 틀림없이 이탈리아에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그 사실은 북부 이탈리아 미술가들의 모사작이 적어도 열두 점이나 남아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모사작을 그린 화가들 중 몇몇은 레오나르도와 생몰연대가 비슷하기도 하다.

안토니오 드 베아티스는 추기경 다라공의 비서로, 1517년 10월 10일에 앙부아즈 근처 클루 성으로 다라공 추기경과 함께 레오나르도를 찾아갔던 인물이다. 드 베아티스가 남긴 기록에서 레오나르도의 <성 안나와 성모자>를 거론했는데, 그 작품이 현재 루브르미술관의 작품이라고 추정되기도 했다. 그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성 안나의 무릎에 앉아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루브르에 소장된 이 그림에서는 아기 예수가 바닥에 있다. 이 주제를 그린 레오나르도의 다른 작품들에서 아기 예수가 성모 마리아와 함께 성 안나의 무릎에 앉아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루브르에 있는 이 그림이 드 베이티스가 거론했던 그 그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그림이 클루 성에 있었다면, 레오나르도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친구 프란체스코 멜치(1491년 무렵 ~ 1570)가 그것을 이탈리아로 가져갔던 게 틀림없다. 1629년에 리슐리외 추기경이 이 그림을 가지고 파리로 돌아왔고, 1639년에 자기의 저택과 함께 이 그림을 루이 13세에게 넘겼다. 1801년에 다른 프랑스 왕실 수집품과 함께 이 그림은 루브르미술관으로 이관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암굴의 성모>, 1483 ~ 1486년, 루브르미술관, 파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천사, <암굴의 성모> 일부

마사초, <성 안나와 성 모자>, 1424 ~ 1425년, 우피치미술관, 피렌체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성 안나, 세자 성 요한과 함께한 성모자 소묘, 1497년 무렵, 내셔널갤러리, 런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성 안나의 얼굴 소묘, 1510 ~ 1515년, 왕실 도서관, 윈저 궁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성 안나의 얼굴, <성 안나와 성모자>의 일부

 

COURBET

쿠르베

화가의 화실

 

<화가의 화실>,

귀스타브 쿠르베(1819 ~ 1877), 캔버스에 유채, 359×598cm.

---------------------------------------------------------------------------------

쿠르베가 1855년에 그렸고, 서명한 이 그림은 1881년 12월 그림이 완성된 지 26년 뒤에 팔렸다. 유명한 수집가 페르 아로와 빅토르 드포스의 소유가 되었던 이 그림을 1920년 루브르미술관에서 사들였다. 1986년에 오르세미술관이 개관하며 1848년 이후의 작품을 수용하게 됨에 따라, 현재는 오르세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다.

쿠르베, 쿠르베에게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 <화가의 화실> 일부

포드 매독스 브라운, <노동>, 1863년, 시립미술관, 버밍엄

쿠르베, <파이프를 문 남자>, 1849년 무렵, 파브르미술관, 몽펠리에

쿠르베, 사냥꾼과 사냥개, <화가의 화실> 일부

호세 데 리베라, <발이 오그라든 소년>, 1642년, 루브르미술관, 파리

쿠르베, 화가와 모델, <화가의 화실> 일부

 

BOTTICELLI

보티첼리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스도의 탄생>, 알렉산드로 필리페피

일명 보티첼리(1445년 무렵 ~ 1510), 캔버스에 유채, 100×75cm.

---------------------------------------------------------------------------------

그림에 적힌 글에서 암시되었듯이, 보티첼리는 1500년 말에 이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과 사보나롤라의 죽음이 직접 관련되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그림의 취지는 사보나롤라의 유명한 설교, 즉 1493년 성탄절 설교의 그것과 흡사하다. 이 그림은 두 가지 도상 전통을 결합했다. 하나는 그리스도가 동굴에서 태어났다는 비잔틴 도상이다. 다른 하나는 15세기 초의 도상 전통인데, 이것은 무릎을 꿇고 있는 성모 마리아 앞에 아기가 기적처럼 나타났다는, 킬데어의 성 브리지다(451 ~ 525)의 환상에 영향을 받았다.

이 그림은 1800년 무렵 영국의 미술 수집가이며, 특히 14 ~ 15세기 이탈리아 미술품을 애호했던 윌리엄 영 오틀리(1771 ~ 1836)가 로마의 빌라 알도브란디니에서 구입했다. 이후 여러 번 소유자가 바뀌다가 1851년에 역시 미술 수집가인 풀러 메이틀런드가 이 그림을 사들였다. 1857년에 맨체스터에서 이 그림을 공개했던 것도 메이틀런드였다. 1878년에는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풀러 메이특런드에게서 이 그림을 사들여, 지금까지 그곳에 있다.

보티첼리, 선한 사람을 포옹하는 천사, <그리스도의 탄생> 일부

보티첼리, <베누스의 탄생>, 1486년, 우파치미술관, 피렌체

보티첼리, 천상의 춤, <그리스도의 탄생> 일부

보티첼리, <성 아우구스티누스>, 1480년, 치에다 디 오니산티, 피렌체

보티첼리, 성가족, <그리스도의 탄생> 일부

 

REMBRANDT

렘브란트

자화상

 

<자화상>, 하르멘스존 반 레인 렘브란트(1606 ~ 1669),

캔버스에 유채, 114.3×394cm, 1663년 무렵.

---------------------------------------------------------------------------------

이 그림은 1750년에는 파리 방스 백작의 소유로 기록되었으며, 1761년 2월 파리에서 거래되었다. 1781년에는 브뤼셀 헤네시 소장품이었다가, 1828년 부유한 은행가였던 M. 다노트의 소장품 경매 때 팔렸다. 뷰캐넌과 니벤호이스가 이 그림을 영국으로 가져와서, 1836년에 랜스다운 후작부인에게 팔았다. 1888년에는 초대初代 아이비 백작이 구입했다. 1927년 그의 유증으로 켄우드하우스에 있는 나머지 그림들과 함께 국가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티치아노, <장갑을 낀 남자>, 1520년 무렵, 루브르미술관, 파리

라파엘로, <카스틸리오네의 초상>, 1514 ~ 1515년, 루브르미술관, 파리

렘브란트, 부랑자로 분한 자화상, 1630년, 국립미술관, 암스테르담

렘브란트, <깃털 장식이 달린 모자를 쓴 자화상>, 1635년, 개인 소장

렘브란트, <자화상>, 1650년, 내셔널갤러리, 워싱턴 D. C.

렘브란트, <자화상>, 1657년, 스코틀랜드 내셔널갤러리(엘스미어 컬렉션), 에든버러

렘브린트, <자화상>,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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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1. 17:45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66 그림을 본다는 것

 

케네스 클라크 지음  엄미정 옮김

2013, XO BOOKS

 

대야도서관

SB08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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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king At Pictures

 

20세기 최고의 안목 케네스 클라크가 뽑아낸

명작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케네스 클라크는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명작에서 잘도 뽐아낸다. 그림에 담긴 주제와 드라마는 그의 해박한 지식과 통찰을 거쳐 명료해지는데, 때로는 화가의 직접화법인양 생생한 실감이 드는 것은 그의 서술이 탁워한 설득력을 지닌 덕분이다. 명작이 간직한 감동의 비밀을 밝혀내려는 저자의 집요함은 경이롭다. 작가의 감춰진 생애와 무의식까지 파헤칠 때 그 놀라움은 절정에 이른다. 케네스 클라크와 함께라면 작품의 진면목에 쉽게 다가갈 테다. 물론 독자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과 '그림을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저자 손철주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미술은 막대사탕이나 풀향기가 나는 상큼한 퀴멜주 한 잔처럼 한 순간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다. 위대한 미술 작품의 의미 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그 의미의 일부가 영혼에 활력을 주듯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잇어야만 한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활발한 참여를 요하는데, 초기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그림 보는 연습을 하는 데 규칙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믿을 만한 그림 애호가의 경험은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서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바로 그거다. 나는 열여섯 점의 위대한 그림들 앞에서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과정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기록했다.(중략)

그림의 부분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색채는 조화로운지, 소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는지, 세부를 살펴보고 즐기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가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작품을 즐기는 동안 만약 이 화가가 아주 능숙하게 자신의 의도까지 전달한다면, 한두 번 잠깐 동안은 회화의 특성에서 주제로 주의를 돌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금방 다시 그림을 비평하면서 이 작품의 지배 동기 또는 근본 개념 같은 것들을 찾는다. 거기에서 그림의 전체적인 효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 머리말 중에서

 

지은이

케네스 클라크 Kenneth Clark, 1903 ~ 1983

20세기 미술사 분야에서 최고 안목으로 꼽히는 영국의 미술사학자. 명작에 담긴 철학과 역사, 테크닉을 날카롭게 풀어내는 안목, 작가의 감춰진 생애와 명작의 비밀을 드라마틱하면서도 품위 있는 유머로 엮어 내는 솜씨는 일품이다.

런던에서 출생한 클라크는 옥스퍼드대학교의 윈체스터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미술사를 공부했으며 옥스퍼드 애슈몰린박물관의 학예사를 거쳤다. 역대 최연소인 30세의 나이에 내셔널갤러리 관장으로 발탁될 만큼 일찌감치 영국 미술계에서 존경받는 심미주의자로 평가받았다.

내셔널갤러리 관장으로서 루벤스, 렘브란트, 컨스터블, 푸생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영입한 클라크는 독일군 공습을 피해 소장품을 웨일즈의 동굴로 옮기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소장품이 없는 내셔널갤러리에서 영국민을 위로하는 음악회를 열만큼 대중과 호흡하는 데 관심이 컸던 그는 1969년 BBC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문명 Civilization」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다. 미술을 통해 서구 문명의 역사를 조망한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작가, 제작자, 진행자로 참여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남작 작위를 받기도 했다.

클라크는 미술사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쉽게 풀어내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면서도 로열컬렉션의 왕 / 여왕의 초상화 감독관, 옥스퍼드대학교 초빙교수, 영국예술협회 회장을 두루 역임할 정도로 미술 이론과 실무, 강의 능력까지 갖춘 팔방미인이었다.

집필 작업을 위해 내셔널갤러리 관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클라크는 『고딕부활The Gothic Revival』(1928) 『레오나르도 다 빈치 : 화가의 길Leonardo da Vinci : An Account of His Development as an Artist』(1939) 『풍경에서 미술로Landscape into Art』(1940) 『누드 : 이상적 형태에 대한 연구The Nude : a study in ideal form』(1956) 『렘브란트와 이탈리아 르네상스Rembrandt and the Italian Renaissance』(1966) 『블레이크와 환상 미술Blake and Visionary Art』(1973) 『낭만주의의 반역The Romantic Rebellion』(1973) 『명화란 무엇인가What is a Masterpiece?』(1979) 『여성미Feminine Beauty』(1980) 등 주옥같은 명저를 남겼다.

 

옮긴이

엄미정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사회학을, 동대학원에서 서양 미술사를 전공했다. 미술 전문지와 문호ㅘ교양지 기자를 거쳐 출판사에서 기획편집자로 일하며 '아트가이드' '아트클래식' '아트스페셜' '즐거운 지식여행' 시리즈 등을 만들었다.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획 『아르코 미술 작가론 - 동시대 한국 미술의 지형』 출판 간사로 일했고, 『한국의 예술 지원사』 등을 편집했다. 현재는 미술 관련 책을 번역한다. 옮긴 책으로 『판도라의 도서관 - 여성과 책의 문화사』 『죽음과 부활, 그림으로 읽기』(아트가이드 시리즈)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아트스페셜 시리즈) 『손 안에 담긴 미술관』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타센 베이식아트 시리즈)가 있다.

 

우리 세대에게 그림 보는 법을 가르쳤던

로저 프라이를 기억하며

 

차례

머리말

                 티치아노  그리스도의 매장

   벨라스케스  시녀들

               로히르 반 데르 바이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들라크루아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입성

                 라파엘로  고기잡이의 기적

                    와토  제르생의 간판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델프트의 베르메르  화실의 화가

                  컨스터블  뛰어오른 말 습작

                     고야  1808년 5월 3일

                         쇠라  물놀이, 아스니에르

          터너  눈보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성 안나와 성모자

             쿠르베  화가의 화실

               보티첼리  그리스도의 탄생

   렘브란트  자화상

그림 목록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TIZIANO

티치아노

그리스도의 매장

<그리스도의 매장>, 티치아노라고 불린 티치아노 베첼리오(1487년 무렵 ~1576)

캔버스에 유채, 148×20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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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토바 공작 소장품이었다가, 1628년 잉글랜드의 찰스 1세가 구입햇다. 찰스 1세 소장품 판매 때 영연방이 120파운드를 지불하고 구입했다. 이후 17세기에 유명한 미술품 수집가로 꼽히는 독일 출신 에버하르트 야바흐(1618 ~ 1695)가 구입해 프랑스의 루이 14세에게 3,200프랑에 넘긴 이후 프랑스 왕실이 소장했다가 루브르미술관으로 넘어왔다.

사라진 조르조네 그림의 모작, <자화상>, 1510년 무렵, 헤르초크안톤울리히미술관, 브라운슈바이크, 독일

티치아노, 성모 마리아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스도의 매장>의 일부

티치아노, <성모 승천>, 1516 ~ 1518년,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성당, 베네치아

라파엘로, <그리스도의 매장>, 1507년, 보르게세미술관, 로마

티치아노, <그리스도의 매장>, 1559년, 프라도미술관, 마드리드

티치아노, <성모 영보>, 1559 ~ 1564년, 산 살바토레 성당, 베네치아

티치아노, 사도 성 요한의 얼굴, <그리스도의 매장>의 일부

 

VELASQUEZ

벨라스케스

시녀들

 

<시녀들>,

디에고 데 실바 이 벨라스케스(1599 ~ 1660), 캔버스에 유채, 313×2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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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년에 스페인 펠리페 4세(1605 ~ 1665)의 명령으로 그린 이 그림은 마드리드의 알카사르 궁전에 걸기 위한 것이었다. <시녀들>에 등장하는, 벽에 걸린 그림들은 루벤스와 요르단스의 원작을 델 마소가 모사한 작품들이다. 어린 마르가리타 공주는 펠리페 4세와 그의 두 번째 왕비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3세의 딸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훗날 오스트리아 황비가 되었다. 벨라스케스가 그렸던 마르가리타 공주의 또 다른 초상화 두 점은 현재 빈 미술사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무릎을 꿇고서 어린 공주에게 초콜릿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붉은 색 그릇을 건네는 시녀는 도냐 마리아 아우구스티나 사르미엔토이며, 또 다른 시녀는 도냐 이사벨 데 벨라스코이다. 난쟁이들의 이름은 마리바르볼라와 니콜라시토이다. '구아르다다마스' 곧 상궁으로 알려졌으며, 마르가리타 공주의 교사인 여인은 도냐 마르셀라 데 울바이다. 문간에 서 있는 남자는 이 화가의 친척인 돈 호세 니에토 벨라스케스로 여겨진다. 화가는 붉은 십자가가 있는 산티아고 기사단의 단복을 입었지만, 그는 1658년 6월 12일에야 산티아고 기사단 작위를 받았다. 따라서 왕이 <시녀들>을 보고서 '뭔가가 빠졌다'고 하며 친히 붓을 들어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기가 막힌 솜씨를 보면 십자가는, 틀림없이 훗날 벨라스케스 자신 또는 델 마소 중 하나가 그렸을 것이다.

<시녀들>은 1666년에 기록된 알카사르 궁전의 소장품 목록에 들어 있었다. 이 그림은 1734년에 있었던 알카사르 궁전 화재 때 피해를 입지 않았고 새 궁전으로 옮겼는데, 그곳에서는 '라 파밀리아', 곧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불렸다. 1819년에 프라도미술관이 세워지자, 이 그림은 그곳으로 옮겨졌다. 스페인 회화를 연구했던 미술사가 페드로 데 마드라소(1813 ~ 1898)는 1843년 판 프라도미술관 소장품 목록을 작성하면서, 이 그림에 처음으로 <시녀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벨라스케스, <성모의 무염시태>, 1618년, 내셔널갤러리, 런던

벨라스케스, 산티아고 기사단의 단복을 입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 <시녀들>의 일부

벨라스케스, <난쟁이 돈 세바스티안 데 모라>, 1645년 무렵, 프라도미술관, 마드리드

벨라스케스, 마르가리타 공주와 시녀들, <시녀들>의 일부

 

ROGIER VAN DER WEYDEN

로히르 반 데르 바이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흔리 로히르 반 데르 바이덴(1400년 무렵 ~ 1464)이라고 불렸던 로지에 드 라 파스튀르.

나무판에 템페라와 유채, 220×26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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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루뱅 시의 궁수 길드가 노트르담 오르 데 뮈르 성당에 봉헌하려고 주문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부인인 헝가리의 마리아가 이 그림을 원 주문자에게서 구입하여 스페인으로 보냈다. 1547년 이 그림은 마드리드의 에스코리알 궁전에 들어가, 1945년까지 그곳에 있다가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 ~ 1975) 장군의 지시로 프라도미술관으로 이송되었다.이 그림의 제작 연대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많다. 1430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기사 로베르 드 마스밈(1387 ~ 1430)을 그렸다고 추정되는 캉팽의 초상화가 있다. 이 그림에서 반 데르 바이덴이 그린 니고데모가 캉팽 초상화의 인물과 닮았다는 이유로, 몇몇 권위 있는 연구자들은 1430년 작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후의 연구자들은 이 그림이 1443년 작이라고 보기도 한다. 1435년이라는 연도는, 이 그림의 양식과 당시 반 데르 바이덴이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다는 사실 두 가지 면에서 추정하는 연대이다. 이 걸작을 그린 결과 반 데르 바이덴은 자신의 삶과 화가 경력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는 완성 직후부터 걸작으로 인정받아, 1443년에 이미 모사본이 나올 정도였다. 1569년에 플랑드르 출신 화가 미카엘 콕시(1499 ~ 1592)는 스페인의 펠리페 2세의 주문으로 이 그림의 모작을 완성했는데, 콕시의 그림은 프라도미술관에 걸리곤 했다. 지금은 콕시의 그림이 반 데르 바이덴의 원작이 있던 에스코리알 궁전의 그 자리에 대신 걸려 있다.

반 데르 바이덴, 성모 마리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의 일부

반 데르 바이덴, <십자가 처형>, 1455년 무렵, 산 로렌초 델 에스코리알 수도원, 마드리드

반 데르 바이덴,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의 일부

플레말의 거장, 뉘우치지 않는 도적, <플레말 수도원 제단화>의 일부로 추정, 1410년 무렵.

프라 안젤리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430년대, 산마르코수도원미술관, 피렌체

왕의 정문 기둥 조각, 1145 ~ 1155년, 노트르담 대성당, 사르트르

반 데르 바이덴,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손,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의 일부

반 데르 바이덴, 사도 성 요한과 세 마리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의 일부

반 데르 바이덴, 눈물을 흘리는 니고데모,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의 일부

 

DELACROIX

들라크루아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입성

 

<1204년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입성>,

외젠 들라크루아(1798 ~ 1863), 캔버스에 유채, 410×49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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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에 베르사유 궁전 장식용으로 주문된 이 그림에는 1840년이라는 제작 연대와 들라크루아의 서명이 있다. 1885년에는 루브르미술관으로 이양되었다. 1852년에 들라크루아는 똑같은 주제를 원작보다 작게 그렸는데, 이 그림은 19세기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모로(1826 ~ 1898)가 소장하고 있다가 역시 루브르미술관으로 양도했다.

들라크루아, <녹색 조끼를 입은 자화상>, 1837년, 루브르미술관, 파리

들라크루아, <키오스 섬의 학살>, 1824년, 루브르미술관, 파리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1827년, 루브르미술관, 파리

들라크루아, 죽어가는 여인,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입성>의 일부

들라크루아, 두 여인,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입성>의 일부

로댕, <다나이드>, 1885년, 로댕미술관, 파리

들라크루아, 보스포루스 해협과 십자군,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입성>의 일부

 

RAFFAELLO

라파엘로

고기잡이의 기적

 

<고기잡이의 기적>, 라파엘로 산치오(1483 ~ 1520),

이어 붙인 종이에 수채, 318.8×4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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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1515년 교황 레오 10세가 주문했던 태피스트리의 밑그림 열 장 중 하나이다. 이 태피스트리는 시스티나 소성당 창문 아래, 그때도 지금과 같았던, 휘장을 그려 장식한 벽의 일부에 걸릴 예정이었다. 1516년 말 완성된 이 밑그림은 브뤼셀로 보내져 태피스트리로 제작되었다. 이 태피스트리의 제작 책임자가 피테르 반 엘스트 1세였다. 그는 직조기로 빠르게 작업하여, 1519년 크리스마스에 완성된 태피스트리 일곱 점을 시스티나 소성당에 걸었다. 한 점을 제외한 아홉 장의 밑그림은 브뤼셀에 남았다. 이 밑그림을 바탕으로 프랑수아 1세와 헨리 8세를 위한 태피스트리를 제작했다. 1620년 무렵까지도 이 밑그림으로 태피스트리를 계속 만들었다. 1623년 이후 이 밑그림 중 일곱 점을 찰스 1세가 구입했으며, 그것으로 몰트레이크 태피스트리 제작소에서 태피스트리를 여러 벌 직조했다. 찰스 1세의 소장품을 처분할 때, 이 밑그림은 공화정 수립의 일등 공신 올리버 크롬웰(1599 ~ 1658)에게 넘어갔다가 이후 찰스 2세가 돌려받았다. 17세기 말에 몰트레이크 태피스트리 제작소가 문을 닫자 밑그림은 햄프턴 궁전으로 옮겨져, 왕실 건축물 감독으로 활동했던 크리스토퍼 렌(1632 ~ 1723) 경이 이 작품들을 위해 특별히 설계한 전시실로 들어갔다. 이후 밑그림은 여러 궁전을 떠돌다가, 1865년 빅토리아 여왕이 부군 앨버트 공의 권유를 받아들여 사우스켄싱턴박물관, 지금의 빅토리아앨버트미술관에 대여했다.

태피스트리를 직조할 때도 그랬지만 버킹엄 궁전과 윈저 궁전으로 자주 옮겨지는 과정에서 이 밑그림은 상당히 손상되었고, 여기저기를 복원했다. 복원 작업은 주로 윤곽선을 진하게 그리는 것이었다. 때문에 화면 전체의 효과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복원 후에는 라파엘로가 직접 그린 부분을 구별하기가 어려워졌다. 라파엘로가 여러 조수들을 고용해 작업했다고 해도 주요 부분들, 이를테면 성 베드로의 얼굴 같은 부분은 라파엘로가 직접 그렸던 듯하다.

라파엘로, 사도 성 야고보와 사도 성 요한, 제베대오, <고기잡이의 기적> 일부

라파엘로, <볼세나의 미사>, 1512년, 스탄차 델리오도로, 바티칸 궁전, 로마

라파엘로, 성 베드로의 얼굴, <고기잡이의 기적> 일부

라파엘로, 그리스도에게 간청하는 성 비드로와 성 안드레아, <고기잡이의 기적> 일부

 

WATTEAU

와토

제르생의 간판

 

<제르생의 간판>, 앙투안 와토(1684 ~ 1721),

캔버스에 유채, 162×307.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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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와토의 친구이자 화상인 에드몽드 프랑수아 제르생이 퐁 노트르담 35번지에 있던 화랑 간판으로 주문했다. 폐허 풍경화로 유명했던 화가 위베르 로베르(1733 ~ 1808)가 그렸던 그림을 통해 알고 있듯이, 이 거리 가게들의 1층 전면은 아치형이었다. 와토는 여러 아치 중 하나에 이 그림을 끼우게끔 구상했다. 화면에는 애초에 아치형으로 계획했던 흔적이 여전히 눈에 띤다. 하지만 지금처럼 극히 자연스럽게 사각형 화면으로 변형되어서, 처음부터 사각형 화면에 그린 것처럼 보인다.

한편 1732년에는 판화가 피에르 알렉상드르 아블린(1702 ~ 1760)이 <제르생의 간판>의 동판화를 제작했는데, 거기서는 화면을 사각형으로 보여 주고는 원래의 아치를 표시했다. 아치 바깥 부분은 와토가 그리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만일 그렇다면, 분명 아치의 외부는 와토의 제자였던 장 밥티스트 파테르(1695 ~ 1736)가 그렸을 것이다. 그는 <제르생의 간판>을 모사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제르생은 이 그림이 완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술 애호가로 유명했던 장 드 줄리엔에게 팔았다. 1745년과 1750년 사이에 프리드리히 루돌프 폰 로텐부르크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1712 ~ 1786) 대왕을 위해 이 그림을 구입했고, 이후 <제르생의 간판>은 포츠담 궁전 소장품이 되었다. 이 그림은 1760년 이전에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에 전시되었는데, 아마 로코코 양식의 실내장식에 적당하도록 화면을 두 부분으로 나누었던 듯하다. 1952년까지 두 개로 쪼개진 상태로 독일 제국의 소장품이었으며 현재는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에 걸려 있다.

제르생의 화랑은 '위대한 군주(루이 14세)의 가게'로 불렸다. 화면 왼쪽에 보이는 루이 14세의 초상화는 이 사실을 넌지시 암시한다. 한편 <제르생의 간판>을 연구했던 필자들은 장중한 루이 14세 양식이 물러가고 새로운 로코코 양식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루이 14세의 초상화가 알레고리로 설명해 준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와토, 라벤더 빛 실크 드레스를 입은 여인, <제르생의 간판> 일부, 샤를로텐부르크 궁전, 베를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시바의 여왕, <진정한 십자가의 전설> 일부, 1466년 완성,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 아레초

와토, 루이 14세의 초상화 포장, <제르생의 간판> 일부

와토, <무심한 남자>, 1717년, 루브르미술관, 파리

와토, <키테라 섬을 향한 출항>, 1717년, 루브르미술관, 파리

와토, <즐거움이 넘치는 무도회>. 1715 ~ 1717년, 덜위치미술관, 런던

와토, 그림 가게 손님들, <제르생의 간판> 일부

 

EL GRECO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

일명 엘 그레코(1541 ~ 1614), 캔버스에 유채, 273×1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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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톨레도 대성당 성구실의 주제단화로 그려졌으며, 현재도 그곳에 있다. 1577년 7월 2일에 엘 그레코는 이 그림에 대한 계약금으로 400레알을 받았다. 잔금을 받기 위해 그는 톨레도 대성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1579년 6월 23일 3,500레알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것으로 꼽힌다. 앞서 본문에서 밝혔듯이, 같은 주제를 그린 수많은 레플리카 중 몇 점은 엘 그레코 만년작에 속한다.

엘 그레코, 그리스도가 매달릴 십자가를 만드는 남자,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일부

미켈란젤로, <성 베드로의 십자가 처형>, 1546 ~ 1550년, 파올리나 소성당, 바티칸 궁전, 로마

엘 그레코, 관객을 향해 손짓하는 관리,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일부

엘 그레코, 세 마리아,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일부

엘 그레코, <성 마우리시오의 순교>, 1580 ~ 1582년, 산 로렌초 델 에스코리알 수도원, 마드리드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얼굴이 드러난 수건을 든 베로니카>, 1580년 무렵, 산타크루스미술관, 톨레도

엘 그레코, 하늘을 쳐다보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일부

 

VERMEER OF DELEF

델프트의 베르메르

화실의 화가

 

<화실의 화가>, 델프트 출신 얀 베르메르(1632 ~ 1675),

캔버스에 유채, 130×1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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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베르메르가 세상을 떠났을 때까지 팔리지 않았다. 몇 달 후 베르메르의 부인이 빚 1,000플로린에 대한 담보로 이 그림을 시어머니에게 양도했다. 18세기에 고트프리트 폰 슈비텐 남작의 소장품이 되면서 이 그림은 빈으로 왔다. 1813년에는 체르닌 백작 요한 루돌프가 이 그림을 구입했는데, 그는 이 그림을 데 호흐의 작품으로 오해했던 모양이다. 1942년까지 체르닌의 소장품이었던 이 그림은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1889 ~ 1945)에게 압수되어 그의 별장이 있던 독일 바바리아의 베르히테스가덴으로 옮겨졌다.

피테르 데 호흐라는 이름은 그림 속에서 화가가 앉아 있는 의자 가로대에 기록되었다. 이런 이유로 때로는 그림 속 화가가 데 호흐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요즘은 한동안 베르메르가 세간에서 잊혔던 시기에 첨가된 거짓 서명이라는 해석이 더 신빙성 있다고 본다. 베르메르의 서명은 지도에 있는데, 모델이 입고 있는 옷깃 바로 뒤에 보인다. 요즘 학자들은 모델을 아홉 뮤즈 중 역사의 여신 클리오라고 해석하는 편이며, 탁자에 놓인 물건들이 그 외 뮤즈들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요즘 학자들은 이 그림이 회화 예술을 나타낸 알레고리라고 추론했다. 그리고 이 그림은 1675 / 1676년 작품 목록에 '회화 예술De Schiderconst'이라고 기록되기도 했다.

모델의 얼굴처럼 이 그림에서 매우 섬세한 부분 중 몇 군데는 과거 복원 과정에서 심하게 닦아 냈기 때문에 색을 살짝 다시 입힌 상태다.

베르메르, <뚜쟁이 여인>, 1656년, 고전거장미술관, 드레스덴

베르메르, <버지널을 치는 여인> 일부, 1662 ~ 1665년, 버킹엄 궁전, 런던

베르메르, 명성의 여신, <화실의 화가> 일부

 

CONSTABLE

컨스터블

뛰어오른 말 습작

 

<뛰어오른 말> 습작, 존 컨스터블(1776 ~ 1837),

 캔버스에 유채, 125.7×184.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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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과 1825년 사이에 그린 이 그림은 1825년에 로열아카데미에 전시된 <데덤 수문>을 위한 대형 습작이다. 컨스터블이 세상을 떠난 후인 1838년 5월 포스터스에서 J. 아치버트가 이 그림을 구입했는데, 이후 헨리 본에게 넘어갔다. 1900년에 세상을 떠난 본이 이 그림을 빅토리아앨버트미술관에 유증했다.

컨스터블, <들판에서 본 솔즈베리 대성당>, 1831년, 내셔널갤러리, 런던

컨스터블, <뛰어오른 말>, 1824 ~ 1825년, 로열아카데미,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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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19. 15:35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65 슬픔의 뿌리

 

도종환 시집

2002, 실천문학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9641

 

811.6

도74슬

 

실천문학의 시집 142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자 했습니다. 나무가 되어 다른 나무와 섞여 숲의 일부가 되고자 했습니다.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 일말고 그저 개나리꽃처럼 피어 있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쓸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적한 강 마을로 돌아가 외로워서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쓸쓸한 집 한 채 짓고 살고 싶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강물 소리를 들으며 강물 소리와 함께 조용히 깊어지고 싶었습니다. 언제쯤 그날은 올른지요.

 

도종환은 간곡하고 지극한 사랑의 시인이다. 그의 사랑은 한 여인을 향하기도 하지만 그의 품은 넓고 깊어서 그의 일터인 학교의 학생이나 고통받는 이웃을 포함하여 세상 사람들을 두루 끌어안는다. 그가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세상 속에서 그의 사랑이 겪는 시련 때문이다. 그의 비유는 사랑을 안고 출렁이고, 그의 노래는 더 깊고 지순한 사랑을 위해 강물처럼 흘러간다.

- 최두석(시인)

 

도종환의 시를 읽으며 세월의 징검다리를 생각했다. 한 발 두 발 건너다 문득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고 싶은 순간들…… 그의 시에는 강변 마을의 아늑한 저녁 불빛들이 깜박이기도 하고, 한 인간이 견뎌내기 힘든 고통스런 운명의 그림자가 스며 있기도 하고, 이웃의 희망을 위한 지순한 사랑의 열정들이 박꽃처럼 피어나기도 한다. 삶과 시, 지극히 난해하기만 한 두 세계의 진실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아주 순결한 바보의 영혼을 바보의 영혼을 지녔을 거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으 이런 모습은 그 자체가 80년대 이후 우리 시의 한 초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의 시가 제시한 세월의 징검다리를 아주 따뜻하고 자랑스럽게 밟아나갈 수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며 가슴 아파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던 시간들이 오래 있었다. 곁에서 보아 아름답지 아니한가.

- 곽재구(시인)

 

도종환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1984년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고두미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시선』,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배』,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모과』,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동화 『바다유리』 등이 있다. 1990년 제8회 신동엽창작기금, 1997년 제7회 민족예술상을 수상하였다.

 

■ 차례

 

제1부

쓸쓸한 세상 / 그리운 강 / 산 너머에서 / 목련나무 / 들 끝에서 / 땅끝에서 / 풀잎 한 촉 / 자목련 / 사랑의 침묵 / 아무도 없는 별 / 너와 나 / 개울가에서 / 눈 덮인 새벽 / 나리소 / 우체통

 

제2부

희망의 바깥은 없다 / 초록 꽃나무 / 여백 / 덕암리 / 산을 오르며 / 아름다운 길 / 빈 교실 / 살구나무 아래서 / 범종 소리 / 겨울 휴가 / 단풍 드는 날 / 시간의 단풍 / 꽃 지는 날 / 자작나무 / 저녁 무렵

 

제3부

섬백리향 / 나뭇잎 꿈 / 정향나무 / 소리 / 저녁 종소리 / 개구리 소리 / 저녁노을 / 그 밤 / 꺼버린 불 / 양안치고개를 넘으며 / 훈장 / 노래 / 새소리 / 백비

 

제4부

저녁 열차 / 쓸쓸한 풍경 / 말사 근처 / 사랑은 어떻게 오는가 / 자귀나무꽃을 찾아서 / 내가 좋아한 바다 / 장마 / 조장 / 무심천 / 노을 / 비선폭포 / 천지

 

제5부

홍의장군 곽재우 / 온달 / 운주사 항아리탑 / 꽃소식 / 개나리꽃 / 새의 사랑 / 꽃재 / 코스모스 꽃밭 / 종례 시간 / 방학하는 날 / 개나리꽃 / 깃털 하나 / 사자 서커스 / 그날 밤 / 꽃피우기 / 독도

 

해설 / 유성호

후기

 

쓸쓸한 세상

 

이 세상이 쓸쓸하여 들판에 꽃이 핍니다

하늘도 허전하여 허공에 새들을 날립니다

이 세상이 쓸쓸하여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유리창에 썼다간 지우고

허전하고 허전하여 뜰에 나와 노래를 부릅니다

산다는 게 생각할수록 슬픈 일이어서

파도는 그치지 않고 제 몸을 몰아다가 바위에 던지고

천 권의 책을 읽어도 쓸쓸한 일에서 벗어날 수 없어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글 한 줄을 씁니다

사람들도 쓸쓸하고 쓸쓸하여 사랑을 하고

이 세상 가득 그대를 향해 눈이 내립니다

 

그리운 강

존 메이스필드의 「그리운 바다」의 운을 빌려

 

사람들은 늘 바다로 떠날 일을 꿈꾸지만

나는 아무래도 강으로 가야겠다

가없이 넓고 크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작고 따뜻한 물소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해일이 되어 가까운 마을부터 휩쓸어버리거나

이 세상을 차갑고 거대한 물로 덮어버린 뒤

물보라를 날리며 배 한 척을 저어나가는 날이

한 번쯤 있었으면 하지만

너무 크고 넓어서 많은 것을 가졌어도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것처럼 공허한

바다가 아니라 쏘가리 치리 동자개 몇 마리만으로도

넉넉할 수 있는 강으로 가고 싶다

급하게 달려가는 사나운 물살이 아니라

여유 있게 흐르면서도 온 들을 다 적시며 가는 물줄기와

물살에 유연하게 다듬어졌어도 속으론 참 단단한

자갈밭을 지나 천천히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욕심을 버려서 편안한 물빛을 따라 흐르고 싶다

너무 많은 갈매기 가마우지 떼가 한꺼번에 내려앉고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바다가 아니라

내게 와 쉬고 싶은 몇 마리 새들과도

얼마든지 외롭지 않을 강으로 가고 싶다

은백색 물고기 떼를 거느려 남지나해에서

동해까지 거슬러오르는 힘찬 유영이 아름다운 것도 알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한적한 강 마을로 돌아가

외로워서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쓸쓸한 집 한 채 짓고

맑고 때묻지 않은 청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강 마을에도 어린 시절부터 내게 길이 되어주던

별이 머리 위에 뜨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호젓한 바람 불어오리니 아무래도

나는 다시 강으로 가야겠다

 

깃털 하나

 

출근길 차창에 흰 조각들이 날아와 부딪친다

눈발인가 종잇조각인가 생각하는 사이에

빠르게 창 옆을 스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다

그러다 만난 대형 트럭 몇 대

칸칸이 쭈그리고 않은 닭들의 빼곡한 눈동자를 본다

멀어져 가는 흐린 하늘과 숲의 나무들 위로 날려보내는

이 지상에서 지녔던 육신의 짧은 흔적

그것마저 빗줄기와 바람에 날려 자취 없어진 뒤에

남아 있을까 말까 한 영혼의 마지막 깃털 하나씩

허공에 날려보내며 무심히 옮겨가는 목숨들을 본다

한번 제대로 날아보지 못한 채

황망히 돌아가는 무수한 비상의 꿈들을 본다

 

노을

 

광대한 옥수수밭 위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맨손으로 일군 땅 위에 금빛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옥수수밭 옆에 서너 살짜리 여윈 아이를 업고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젊은 아기엄마를 보았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아이를 낳아서

얼마나 힘들게 키웠을까

혼자 그 생각을 했다

고난의 시절을 함께 걸어오지 않은

나는 진정 이들의 벗인가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하는 이들과

험난한 길 함께하지 않은

나는 이들의 형제인가

그 생각을 했다

오늘 이렇게 손잡고 웃지만

내일도 함께 웃으며 가진 걸 나눌 수 있는

진정한 벗인가

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았다

평양으로 가는 길

폐허의 하늘 위에 뜨거운 노을이 지고 있었다

 

희망의 바깥은 없다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희방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가장 많이 고뇌하고 가장 많이 싸운

곪은 상처 그 밑에서 새살이 돋는 것처럼

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희망의 바깥은 없다

 

들 끝에서

 

울면서 조시를 쓰던 날들은 가고

다시는 조시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머리띠를 다잡아 묶던 날들도 가고

우리 사랑 헛되지 않았는데

꽃도 열매도 사라져 우리 곁에 없고

돌아보면 빈손을 흔드는

몇 개의 물푸레나무, 나뭇잎들

 

우리 청춘의 가장 빛나던 시절을 바쳐

내 가장 소중한 것들 아낌없이 다 바쳐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던 뜨거운 날들은 가고

잘못 걸어오지 않았는데

무슨 죄나 지은 듯 고개 꺾고 서 있는

들 끝의 패랭이꽃, 패랭이꽃들

 

저녁 열차

 

기차가 지나가는 철길 이쪽에 앉아

기차가 지나가고 기적 소리까지 다 들을 건너간 뒤에도

오랫동안 붉게 물들어 있는 저녁 하늘 바라보았지요

서로 몸을 기대고 앉아 바람 속에 머리칼을 날리다

잡고 있던 손을 식어가는 볼에 가만히 대어보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입술이 스치는

당신과의 아름다운 입맞춤을 생각했습니다

열차의 불빛 속에 실려 새벽까지 함께 가는

당신과의 따뜻한 연애를 꿈꾸었습니다

당신이 없는 빈자리에 저녁 바람이 불고

머물 곳 찾지 못한 새들이 하늘 건너 날아가고

당신과 함께 가는 걸 허락하지 않을 이 세상을

어둠이 걸어오는 이 세상의 하늘을 바라보다

혼자 돌아왔어요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

저녁 열차들이 몇 번 더 지나가고

덜컹거리며 달려가는 시간의 쇠바퀴 소리

뒤로한 채 쓸쓸히 돌아왔어요

 

쓸쓸한 풍경

 

쓸쓸한 지 오래되었다

 

들 끝의 미루나무 한 그루

내 안에 혼자 서 있은 지

오래되었다

 

나뭇잎 무수히 떨리는 소리로

낯선 산기슭 떠도는 지

오래되었다

 

언덕의 나무들을 만나도

그 중 쓸쓸한 풍경만 만나고

 

강줄기를 따라 가다가도

시린 저녁 물빛 옆에서만

오래오래 머물렀다

 

서산 너머로 달이 지듯

소리 없이 사랑도 저물면서

 

풍경의 안에서고 밖에서고

쓸쓸한 지 오래되었다

 

꽃 지는 날

 

슬프지만 꽃은 집니다

흐르는 강물에 실려 아름답던 날은 가고

바람 불어 우리 살에도 소리 없이 금이 갑니다

사시사철 푸른 나무로 살고자 하던 그대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대에게 꽃 지는 날이

찾아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대 이기고 지고 또 지기 바랍니다

햇살로 충만한 날이 영원하지 않듯이

절망 또한 영원하지 않습니다

가지를 하늘로 당차게 뻗는 날만이 아니라

모진 바람에 가지가 꺾이고

찢겨진 꽃들로 처참하던 날들이

당신을 더욱 깊게 할 것입니다

슬프지만 피었던 꽃은 반드시 집니다

그러나 상처와 아픔도 아름다운 삶의 일부입니다

 

겨울 휴가

 

   그날은 마침 대학 친구들과 중국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시집간 조카가 어려운 콘도 이용권이 당첨되었다고 홀로 있는 제 아버지 생일날이기도 하니 두 집이 함께 휴가 가자고 제안을 해 와서 난생 처음 스키장을 가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가족들과 함께 가는 게 그동안의 미안함을 더는 일이겠다 싶어 그리 가기로 마음을 정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날은 또 선생님들 겨울 연수가 잡혀 있는 날이기도 하고 초임교사 시절 가르쳤던 제자들이 전부 모이는 날인데 꼭 나와야 한다는 전화도 있었고 글 쓰는 이 몇이서 등산 가자는 연락도 왔다 그날이 무슨 길 떠나기 좋은 길일인가 싶었다

   이리저리 미안하지만 모르는 척 짐을 싸기로 했는데 전날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하루 종일 속이 거북하더니 당일날 아침엔 기어코 탈이 나서 그만 집을 나설 수가 없게 되었다 집사람과 아이들이 떠나고 난 빈집에서 쓰러져 누워 죽도록 앓았다 하루 낮 하루 밤을 먹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한 채 앓다가 창 밖 세찬 바람 소리에 눈을 떴다 통증이 지나가고 난 뒤에 홀로 맞이하는 쓸쓸함 많은 관계가 끊어진 채 홀로 앓고 있는 순간의 편안함 넉넉하게 외로운 이 시간을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가 그 생각이 들었다 아픔과 함께 찾아오는 차고 적막한 한순간을 며칠 더 기온이 내려가다 추위가 잦아질 때쯤 다시 폭설이 내리리라 하는데 쓰러져 누운 채 저 혼자 텅텅 비어가는 이 겨울 휴가를

 

양안치 고개를 넘으며

 

   양안치는 적수공권으로 고향 떠난 아버지 찾아 열몇살 어린 나이에 내가 혼자 강원도 땅으로 들어서며 처음 만난 고개였다 백마령 넘고 목행과 목계 지날 때까지도 겨울 들녘과 나루터 감싸안고 돌아 흐르는 강물이 아름다워 참을 만했는데 소태재 넘으면서 온몸을 조여오는 바람에 몸이 덜커덕덜커덕 소리를 내며 떨렸다 돌멩이를 만지고 있는 듯 딱딱하게 얼어가는 발 발이 시려 발가락 꼼지락거릴 때마다 눈물이 맺혔다

   고개 옆에는 밤새 쌓인 눈에 큰 소나무 가지들이 뚝뚝 부러져 있었다 소리고 없고 무게도 없는 것이 작은 입김에도 금방 흩어져 날아가 버리는 것이 모여 단단한 소나무 가지를 꺾는 걸 처음 보았다 눈 돌리면 아득한 낭떠러지 그때부터 고개를 넘을 때면 몸이 딱딱하게 굳어왔다

   양안치보다 더 험한 큰양안치고개 ㄴ넘어야 을씨년스러운 도시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는데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 낯선 많은 풍경을 만나고 헤어지며 파산한 아버지를 찾아 떠도는 동안 혼자 참고 혼자 견디고 혼자 낯선 시간을 찾아 들어가는 일에는 익숙하였지만 세상의 익숙하지 못하고 사람에 익숙하지 못한 채 세상의 몇 발짝 뒤에서 그림자처럼 혼자 어두어져 제 몸을 흔들어대곤 하였다

   양안치를 넘은 것이 내 인생에 거센 바람 몰아치는 많은 고개가 있을 것임을 미리 알려주는 첫 여행이란 걸 그땐 몰랐다 어렵게 고개를 넘고 나면 또 고개를 만나고 그 고개 다 넘어서 만나는 것 또한 낯설고 차가운 풍경 경계의 눈초리 늦추지 않는 시선 새로 만나는 쓸쓸함과 눈발처럼 날아와 언 몸을 때리는 가난 그리고 끝없는 바람 그런 것들이 될 것임을 그땐 몰랐다 내 생의 남은 날들이 그럴 것임을 그땐 몰랐다

   그러나 고개 앞에 서면 언제나 큰 싸움을 앞에 둔 사람처럼 주먹이 쥐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결연한 자세로 돌아서고 몸이 먼저 긴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낯선 곳을 떠도는 눈발처럼 허망하고 시리고 쓸쓸한 것들도 저희끼리 모여 단단해지며 나뭇가지를 꺾던 기억이 떠 오르고 낯선 곳에도 언제나 낯선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길이 잇다는 걸 기억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정향나무

 

물러나는가 싶더니 황사가 또 하늘을 덮습니다

세월 흘러도 늘 푸른 염결과 지조를 지닌 그대여

나는 그대가 이 봄에는 정향나무처럼

사람 사는 동네에도 뿌리내리기를 바랍니다

설한풍에도 변치 않던 그대 굳건함 믿는 만큼

훈풍 속에서 짙고 부드러운 정향나무처럼 살아도

그대 변치 않을 것임을 나는 믿습니다

소나무는 지나치게 우뚝하고 단호하여 근처에

다른 수목들이 함께 살기 힘겨워합니다

없는 듯 있으면서 강한 향기 지닌 정향나무는

사람의 마을에 내려와 먼지 속에 살면서도

저 있는 곳을 향기롭게 바꿀 줄 압니다

그런 나무처럼 당신도 낮고 깊은 향기로

사람들 사이에 꽃피기 바랍니다

지금 쓸쓸하고 허전하지만 우리가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은 그대들 때문임을 압니다

그대들이 골목골목 꽃피어 세상이 풍요롭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 속으로 내려온 철쭉도 민들레

조팝나무도 내심으론 다 기뻐할 것입니다

 

자작 나무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 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웠다

내가 자라던 곳에는 어려서부터 바람이 차게 불고

나이 들어서도 눈보라 심했

그러나 눈보라 북서풍 아니었다면

곧고 맑은 나무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몸짓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외롭고 깊은 곳에 살면서도

혼자 있을 때보다 숲이 되어 있을 때

더 아름다운 나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자 서커스

 

조명이 켜지자 일곱 마리 사자가 차례차례

걸어나왔다 조련사 존 캄파롱고의 왼손 채찍이

땅에 떨어질 때마다 사자들은 정해진 의자에

앉거나 모양을 지어 질서 있게 움직였다

조련사의 손짓이 바낄 때마다

뛰어넘기를 할 차례인지 불붙은 구멍 사이를

빠져나가야 하는지 용하게 알아차렸다

어떤 때는 아직도 용맹스러운 이빨과

짐승의 목을 죄던 발짓이 남아 있는 듯 포효했지만

그것도 훈련받은 몸짓이었다

캄파롱고가 꼬리를 번쩍 들어올리면

불알을 달랑달랑 흔들며 엉덩이를 움직였다

박수가 쏟아질 때마다 나는

무대 뒤 그들의 철창을 떠올렸다

먹이와 채찍으로 저렇게 길들여지기까지

얼마나 굶주렸을 것인가 그 생각을 했다

철창을 쥐고 흔들어보다 얼마나 절망했을 것인가

길들여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우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이제 없다고

서서히 죽어가는 야성의 크기와 바꾸는

몇 덩이의 고기를 찢어 입에 넣으며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은 배를 채우고

짝짓기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얼마나 자신을 달랬을 것인가

작아지자고 고양이처럼 순해지자고 들판의 냄새와

빛나는 질주의 기억과 거칠 것 없던 목소리를

지워버리자고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고

비굴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고 살아 있어야 한다고

얼마나 몸부림쳤을 것인가 철창 안에서

 

나뭇잎 꿈

 

나뭇잎은 사월도 청명과 곡우 사이에

돋는 잎이 가장 맑다

연둣빛 잎 하나하나가 푸른 기쁨으로

흔들리고 경이로움으로 반짝인다

그런 나뭇잎들이 뭉글뭉글 돋아나며 새로워진 숲

그런 나무들이 모여 이루는 산은

어디를 옮겨놓아도 한 폭의 그림이다

혁명의 꿈을 접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버린 건 아니어서

새로운 세상이 온다면 꼭 사월 나뭇잎처럼

한순간에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었으면 싶다

이 세상 모든 나무들이 가지마다 빛나는 창을 들어

대지를 덮었던 죽음의 장막을 걷어내고 환호하듯

우리도 실의와 낙망을 걷어내고

사월 나뭇잎처럼 손사래 쳤으면 좋겠다

풋풋한 가슴으로 늘 새로 시작하는 나뭇잎의 마음으로

 

여백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별

 

아무도 없는 별에선

그대도 나도 살 수 없다

달맞이꽃이 피지 않는 별에선

해바라기도 함께 피어나지 않고

폭풍우와 해일이 없는 곳에선

등 푸른 물고기도 그대의 애인도

살 수 없다

때로는 화산이 터져 불줄기가

온 땅을 휩쓸고 지나고

그대를 미워하는 마음 산을 덮어도

미움과 사랑과 용서의 긴 밤이 없는 곳에선

반딧불이 한 마리도 살 수 없다

때로는 빗줄기가 마을을 다 덮고도 남았는데

어느 날은 물 한 방울 만날 수 없어

목마름으로 쓰러져도

그 물로 인해 우리가 사는 것이다

강물이 흐르지 않는 별에선

그대도 나도 살 수 없다

낙엽이 지고 산불에

산맥의 허리가 다 타들어가도

외로운 긴 밤과 기다림의 새벽이 있어서

우리가 이 별에서 사는 것이다

 

덕암리

 

개나리꽃 참나리꽃 조팝나무 산철쭉

잘나고 못난 꽃들이 아니라

얼굴빛과 향기가 서로 다른 꽃들이 모여

동산을 환하게 가꿉니다

 

소나무 전나무 오리나무 가문비나무

저만 홀로 우뚝 솟은 나무가 아니라

특별히 잘난 데 없는 그만그만한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고 산을 만듭니다

 

뒷산이 앞산의 편안한 배경이 되어주고

그 뒷산이 또 다가와 은은한 그림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풍경은 앞산 뒷산이 함께 만듭니다

덕암리 고즈넉한 산줄기처럼

 

하찮고 버려지고 쓸모 없어 보이는

풀포기 돌멩이 잡목 몇 그루가 모여

천 년을 다시 살아갈 언덕이 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모여드는 집터가 됩니다

 

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단풍 드는 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사랑은 어떻게 오는가

 

시처럼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가슴을 저미며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눈물 없이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벌판을 지나

벌판 가득한 눈발 속 더 지나

가슴을 후벼파며 내게 오는 그대여

등에 기대어 흐느끼며 울고 싶은 그대여

 

눈보라 진눈깨비와 함께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쏟아지는 빗발과 함께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견딜 수 없을 만치

고통스럽던 시간을 지나

시처럼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아름다운 길

 

너는 내게 아름다운 길로 가자 했다

너와 함께 간 그 길에 꽃이 피고 단풍 들고

길 옆으로 영롱한 음표들을 던지며 개울물이 흘렀지만

겨울이 되자 그 길도 걸음을 뗄 수 없는 빙판으로 변했다

 

너는 내게 끝없이 넓은 벌판을 보여달라 했다

네 손을 잡고 찾아간 들에는 온갖 풀들이 손을 흔들었고

우리 몸 구석구석은 푸른 물감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빗줄기가 몰아치자 몸을 피할 곳이 없었다

 

내 팔을 잡고 놓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넘어질 때 너도 따라 쓰러졌고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세찬 바람 불어올 때마다

너도 그 바람에 꼼짝 못하고 시달려야 했다

 

밤새 눈이 내리고 날이 밝아도

눈보라 그치지 않는 아침

너와 함께 눈 쌓인 언덕을 오른다

빙판 없는 길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며 함께 꽃잎 같은 발자국을 눈 위에 찍으며

넘어야 할 고개 앞에 서서 다시 네 손을 잡는다

쓰러지지 않으며 가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눈보라 진눈깨비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나리소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가장 고요해지는 사랑이 깊은 사랑이다

나릿재 밑에 나리소 못이 가장 깊고 고요하듯

요란하고 진부한 수식이 많은 사랑은

얕은 여울을 건너고 있는 사랑이다

사랑도 흐르다 깊은 곳을 만나야 한다

여울을 건너올 때 강물을 현란하게 장식하던 햇살도

나리소 앞에서는 그 반짝거림을 거두고 조용해지듯

한 사람을 사랑하는 동안 마음이 가장 깊고

착해지지 않으면 진짜 사랑 아니다

물빛처럼 맑고 투명하고 선해지지 않으면

 

우체통

 

그들이 사랑을 시작한 강가에는

키가 작은 빠알간 우체통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섶다리를 건너갔다 건너오며 사랑이 익어가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하늘을 넘어 남자의 편지가 가고

저녁 물소리로 잠든 창문을 두드리는 여자의 답장이

밤마다 강을 건너가는 것을 우체통은 알고 있었습니다

두껍게 쌓인 눈이 오래도록 녹지 않던 어느 해 겨울

두 사람이 강가의 우체통 근처에서 만나

깊고 맑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아주 아주 따뜻한 입맞춤을 나누는 것을

우체통은 저녁노을과 함께 바라보았습니다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맑은 눈빛이 점점

소년처럼 변해가는 남자의 얼굴과 소녀 같은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하는 여자의 가슴에

남자가 달아주는 반짝이는 강 햇살 한 무더기를

우체통도 가슴 뜨겁게 바라보았습니다

둘은 우체통말고는 아무도 모르게 몰래 사랑하였습니다

이 세상 많은 사랑이 그렇게 비밀스럽게 시작하는 거라서

더욱 가슴 두근거리게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 날의 사랑이 가장 맑고 지순한 사람을 만드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사랑조차도 그들끼린

빛나고 소중한 어떤 것이라서 보석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랑이 귀한 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착하고 너그럽게 만들기 때문이란 걸 우체통은

두 사람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산수유 열매처럼 붉어진 입술에서 흘러내리는

가느다란 신음 소리에 우체통은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돌리곤 했지만 돌아서서는

그 소리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체통은 가슴이 늘 벅차올랐습니다

두 사람이 돌아가고 난 뒤에도 우체통은

그들이 줄 수 없는 걸 주며 견딜 수 없는 걸 견디게 하는

사랑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던 목소리를

오래도록 잊지 않았습니다

이별보다는 그리움에 젖은 편지가 다시 또

남자의 창을 향해 새 떼처럼 날아가고

산 그림자를 안은 강물처럼 여자의 마음을 받아들이며

투명해진 남자의 믿음과 뜨거움이 담긴 목소리를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또박또박 편지지에 심어가는

아름다운 사랑이 해와 달처럼 이어지길 빌었습니다

제발 가슴을 철렁이게 하는 편지가 우체통

바닥 깊은 곳에 던져지는 일이 없기를

한 사람의 편지만이 끝없이 쌓이고 또 쌓이는

일이 없기를 우체통은 강물에 빌고 또 빌었습니다

 

풀잎 한 촉

 

그래 우리도 풀잎이야

우리도 바람 앞에 쪼개지는 한 촉의 풀잎이야

목마름 때문에 몸이 먼저 쓰러지고

쓰러져 광활한 들 밖으로 잘려나간

손톱 같은 육신이야

사랑이라고 말했지 그러나

괴로움이었어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도 윤회의 바람 속에 갇힌 풀잎이야

그래 사실은 보잘것없는 풀잎이었다고

먼저 말해 목숨이 있는 동안 바람은 늘 불어왔어

이 세상 시작하던 날부터 우리 사라진 뒤까지

그렇게 불어갈 거야 당당했지만

고통스러운 때가 많았어

버리지 못하는 것들로 내 안은 가득했어

수없이 버리고 또 비우며 왔다 했는데

뿌리에서 물오르듯 다시 가득 차 있곤 했어

못 버린 것들의 무게 때문에 이렇게

더 심하게 흔들리는 거야

빈 하늘에 그대 얼굴 오를 때마다

맹세하고 외치곤 했지만 나는 들었어

내 안에서 무너지는 소리를

그런 날도 말을 안 했던 거야

두려움이었을까 하루에도 열두 번 바람에 끌려

넘어지면서 감추었던 거야

감추면서 흙 위에 찍은 몇 개의 발자국과 그림자로

조심스럽게 여기까지 왔어

쓰러져 쓰러져 견딜 수 없을 때는

쓰러져 흙 위에 있는 그대로 쓰러져

풀잎, 아주 잘 포장된 풀 하나의 목숨이야

우리도 이 화선지 같은 우주 위에

먹 없는 붓 한 자국의 흔적이야

서천으로 흘러드는 억겁의 강물 위에 떨어진

눈물 한 올이야

그 눈물 떨어지는 동안 배어 있던 반짝임이었어

작은 것들이 남고 그리고 사라지는 거야

아름다웠어 겁내지 마 버려 다시 버리는 거야

물에 풀리는 물감처럼밤이 두려움으로

점점 잿빛이 되어가는 제 빛깔 허공에 녹여 버리듯이

새벽을 향해 물안개 강 언덕을 떠나듯이

그렇게 네 안에서 너를 누르던 것들

힘주고 있던 것들 허세의 어깨뼈 풀어내는 거야

가는 거야 기다리고 잇어 그도 네가 그렇게 오길

내일 아침은 내일에 맡기고

쓰러져, 쓰러져, 견딜 수 없을 때는

이 세상에 이제는 정말 일어서는 일밖에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바닥 끝까지

쓰러져, 쓰러져,

 

눈 덮인 새벽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놓고 새벽은

산허리로 물러나 앉은 채 사람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헐벗은 나뭇가지도 텅 빈 들판도

감히 손대기 어려운 고운 풍경으로 바꾸어놓고

고요히 호흡을 가다듬는 초겨울 새벽에는

나도 조건 없이 남을 덮어주고 싶습니다

용서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 눈 덮인 들판처럼 넓고 깨끗해져

그러는 건 아니고 지난날

용서받고 싶은 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틀거리며 걸어온 발자국을

함박눈이 밤새 덮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끄럽게 돌아선 골목길

있어야 할 어려운 자리를 지키지 않고

내내 마음 무겁던 나날들과

지키지 못한 언약들도

눈처럼 다 덮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까지 많이 용서해 준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습니다

지난가을 풀벌레들 사랑의 음성은 전해주고

몸은 가려준 풀숲처럼 나도 그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것들을 덮어주고 싶습니다

이 아침 내가 많이 너그러워져서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내겐 강물 같고 남에겐 서릿발 같은

날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게 지워주고 싶습니다

내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면 저 눈처럼

덮어주는 일이 풍요로운 모습이 되고

용서가 빛나는 풍경이 되는 것처럼

 

꺼버린 불

 

어둠보다 무서운 것은 안개다 새벽이 안개와 함께 올 줄은 몰랐다 발을 딛기도 전 길은 이미 안개에 녹아 없어지고 내릴 곳을 찾지 못한 발은 허공을 떠다니다 지워지곤 했다 기다리는 시간에 지팡이도 놓치고 중심도 잃은 사람들은 다시 제 안 깊은 곳으로 돌아가거나 눈에 보이는 한치 앞에다 몸을 던졌다

낮엔 안개 걷히지 않고 밤은 단순하던 빛깔을 자꾸만 바꾸는데 등을 켜고 어두운 시대의 들판을 건너가려다 불을 입으로 불어 껐다 어둠은 어두운 대로 맞닥뜨리고 바람은 바람대로 맞서기로 했다 무명의 캄캄한 생을 건너기 위해 촛불 아래서 밤마다 뒤적이던 것들을 덮기로 했다

길을 찾겠다는 생각마저 버리고 현란한 어둠을 어둠 그대로 응시하기로 했다 길에 대한 집착도 버리고 쓰러진 우리 몸이 곧 누군가 밟고 가는 길이 되는 날을 생각했다 길은 언제나 소리 없이 올 것이므로 길을 찾지 못한다 해도 길이 없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가 길을 잃었어도 길은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므로

 

내가 좋아한 바다

 

젊은 날 내가 좋아한 바다는 바람이 차고 쓸쓸한 겨울 바다였다 어촌 사람들의 가난한 흔적만 남고 어지러운 발자국들은 말끔히 씻겨나간 작고 조용한 바다였다

해송을 끼고 활처럼 굽은 해안선 허리를 따라 걸어갔다 오는 동안 육신과 마음이 고요해지고 몇 마리 마른 물고기가 널려 있는 집 곁을 지나거나 뱃전에 가만히 흔들리며 앉아 있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는 바다였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크고 억센 바다와 만났다 함께 간 사람들은 싸워 이겨야 할 바다라고 말했다 배를 몰고 멀리까지 나가 파도와 맞서기도 하고 만선의 깃발을 나부끼거나 그물까지 잃어버리고 빈 배로 떠도는 일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그것이 훌륭한 선장이 되는 길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이제 배를 다루는 기술은 늘었지만 바다는 감당하기 어려운 때가 더 많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바다를 찾아 나서지만 오늘도 나는 바다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다

옛날 그 자리에는 없어도 어딘가에 있을 바다를 만나려면 바다에 맞서려 하지 말고 먼저 바다를 좋아해야 하는데 바다를 이기려고만 하지 말고 하나되려고 해야 하는데 내가 먼저 작고 조용해져야 하는데

 

천지

 

백두산 천지가 무섭다

저토록 시퍼런 정신

한 점 티끌 없는 모습이 무섭다

백암봉 장군봉 백운봉 록명봉

열여섯 봉우리 산줄기가 무섭다

저 가파른 정신

흔들림 없는 굳센 자태가 무섭다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힘을

넉넉한 아름다움으로 감싸안는 산과 물이

 

■ 후기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자 했습니다

나무가 되어 다른 나무와 섞여 숲의 일부가 되고자 했습니다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 일말고

그저 개나리꽃처럼 피어 있고자 했습니다.

그늘진 곳과 햇볕 잘 드는 곳을 가리지 않고

본래 살던 곳과 옮겨 심은 곳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는 개나리꽃같이만 살고 싶었습니다.

오지의 비탈이든 먼지 많은 도시이든 가리지 않고 뿌리내려

그곳을 환하게 바꿀 수 있다면 행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은 바람에 거칠게 흔들렸으며

어느 날은 심하게 상처받았고

어느 날은 실패하였으며

어느 날은 등에 진 짐이 무거워 허리를 펼 수가 없었고

어느 날은 기쁨과 설렘으로 가슴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쓸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적한 강 마을로 돌아가

외로워서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쓸쓸한

집 한 채 짓고 살고 싶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강물 소리를 들으며

강물 소리와 함께 조용히 깊어지고 싶었습니다.

언제쯤 그날은 올른지요.

2002년 여름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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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게 창조경영]

 

많은 경영자들이 창조경영은 남들과 색다르게 하는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한다.

그러나 창조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고, 둘째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며, 셋째는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으면서 남들이 쉽게 모방하지 못하는 노하우와 기술력을 창조하는 것이다.

만약 경영자들에게 10여 년 이상 반복적으로 해오던 일에 대해서 2013년부터 투입은 반으로 줄이는 대신, 산출은 배로 늘리라고 요구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부분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것이다. 하지만, 얼른 생각하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창조경영이다.

국토의 60% 정도가 건조한 불모지이며, 연평균 강수량도 세계 평균(880㎜)에 미치지 못하는 전형적인 물 부족 국가인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농업생산성이 바로 창조경영의 모범적인 사례다. 1948년 건국 당시 이스라엘 전체 인구 중에서 약 70%가 농업에 종사했지만, 현재는 무려 3% 정도까지 줄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이스라엘의 농업생산성은 15배 이상 증가했다. 다시 말하면, 투입 기준으로는 96%가 줄었는데, 산출은 15배가 증가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농업생산성 변화를 창조경영의 관점에서 분석해 보자.

첫째, 농업은 5%의 기술력과 95%의 노동력으로 이뤄진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탈피했다. 토지, 강수조건, 노동력이라는 기준에서는 정말로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낮은 농업 분야를 이스라엘은 99% 창조적 기술력을 활용해 최첨단산업으로 성장시켰다.

둘째, 인간이 절대로 변화시킬 수 없는 자연조건을 새롭게 창조하려고 노력했다. 농업생산성에 가장 중요한 강수량 문제를 생활용수 재활용 전략으로 극복했다. 이스라엘이 연간 사용하는 물은 20억㎥가량에 불과하지만, 이 중에서 4분의 3정도를 재처리해서 농업용수로 사용한다. 생활용수 재활용률 75%로, 세계 2위인 스페인 (18%)에 비해서도 단연코 압도적인 기록이다.

셋째, 이스라엘의 작은 벤처기업으로 시작한 네타핌이 농업경영에 필요한 독보적인 기술력을 창조했다. 식물에 필요한 양의 물을, 필요한 시기에, 식물뿌리에 직접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점적관수`의 기술력을 창조한 것이다. 이 기술은 직경이 5~20㎜ 정도 되는 호스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서 땅속에 묻고, 물이 필요한 해당 작물에만 바로 물을 공급하는 기술로, 가장 작은 양의 물로도 최대의 관수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네타핌은 현재 점적관수 기술을 전 세계 100개국 이상에 수출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농업경영 사례는 사용 가능한 자원이 얼마나 많은가보다는, 제한된 자원을 얼마나 창조적으로 활용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최근 100조원이 넘는 복지예산을 책정하면서 세수를 걱정하고 있는 정부에서도 반드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posted by 황영찬
2013. 6. 15. 12:46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64 부석사

 

글 / 김보현, 배병선, 박도화●사진 / 배병선, 유남해

1999,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094

 

082

빛12ㄷ  171

 

빛깔있는 책들 171

 

연혁 - 김보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 고대사를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고려대학교 문과대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는 동국대학교 경주 캠퍼스 국사학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며 동국대학교 신라 문화 연구소 간사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신라 화엄종 연구』가 있으며 「신라 중대 화엄종과 왕권」「북한 불교 연구의 동향」「대가야의 불교」 등이 있다.

 

건축 - 배병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연구소에서 한국 건축의 조사 ·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다포계 맞배집에 관한 연구」「금산사 금강문에 대한 소고」「닫집의 건축사적 연구」 등 여러 편의 논문과 「한국의 고건축」 제11 ~ 16호와 「민가 조사 보고서(전남 · 전북편)」 등에 쓴 글이 있다.

 

유물 - 박도화------------------------------------------------------------------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동국대학교 강사로 재직중이며 박물관 연구원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보살상』, 논문으로는 「한국 불교 벽화의 연구」「조선기의 사원 벽화」「재일 한국 불교의 현황과 연구 과제」「조선기 묘법연화경 판화의 연구」 등이 있다.

 

사진 - 유남해------------------------------------------------------------------

『진경산수화』『한국전통회화』『조선시대 고문서』『무등산』 등 많은 도판 사진집을 제작하였고 한국관광사진콘테스트에서 준우승상을 수상하였다. 현재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 사전 편찬부에 근무하면서 포토에세이 등을 통해 활약하고 있다.

 

|차례|

 

연혁

    신라시대

    고려 이후의 부석사

부석사의 불교사적 위치

    신라 화엄종의 종찰

    부석사와 아미타 신앙

건축

    가람의 입지

    가람의 배치와 공간 구조

    부석사의 건물들

유물

    불화

    불상

    석조 건축

    석물

참고 문헌

 

부석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할 때 선묘가 부석으로 변해 시정 잡배들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전한다.

조사당 의상 대사상  의상 당시의 부석사는 아주 청빈한 형태의 사찰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강경을 위해서는 넓은 산정을 이용하고 화엄관을 닦기 위해서는 동굴 등을 이용하여 자연과 더불어 도를 닦지 않았을까 싶다. 이 상은 1975년에 석고로 제작하여 조사당 안에 의상 영정과 함께 모신 것이다.

선묘각(위)과 선묘상(아래)  선묘는 의상이 당에 머문 10년 동안 단월로서 공양을 계속하였다는 중국의 여인으로 의상이 귀국한 뒤에도 그의 전법을 도왔다고 한다. 선묘각에 모셔진 선묘의 탱화는 최근 조성된 것이다.

대석단과 석축단  대석단은 불국사, 원원사, 망해사 등 신라 하대에 세워진 사찰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양상이다.

석등과 배례석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등으로 각 부재의 비례가 조화를 이루어 단아하고 아름답다.

원융국사비각(위)과 원융국사비(아래)  무량수전 동쪽 언덕에 있다. 이 비각에 모셔진 원융 국사비의 건립 연대는 1054년으로 추정되는데 고려 문종 8년인 당시까지 부석사에 의상의 법손들이 주석해 온 것을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선비화  조사당 바로 앞에 자라고 있는 선비화는 의상 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나무로 변했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의상국사비  의상 화엄사상의 요체는 연기(緣起)의 정법을 바로 알아 세상의 모습을 보고, 거기서 하나와 전체, 일념과 무량한 시간, 진리와 현상의 운용을 중도(中道)의 관념으로 꿰뚫어 본다는 것이다.

무량수전 동쪽 언덕에서 내려다본 부석사와 소백산 전경

일주문

부석사 일주문 가는 길

부석사 가람 배치도

범종각  대석단 위쪽에 낮은 축단이 있고 그 위에 2층 누각인 범종각이 버티고 서 있다. 범종각은 일반 사찰의 누각과 달리 통로상에 위치하기 때문에 정면이 좁고 측면이 넓게 배치되었다.

범종각 아래 통로에서 본 안양루  범종각 아래로 난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 2층 다락과 계단 사이의 틈으로 안양루와 지붕이 반쯤 가려진 무량수전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액자에 들어 있는 그림같이 시각을 고정시킴으로써 중요한 건물을 강조하는 폐쇄시각 기법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안양루 계단에서 바라본 석등  안양루가 석등과 무량수전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 위치하기 때문에 석등은 안양루 중심에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쳐 보인다. 누하 진입 때 석등이 중심에 위치하면 대칭구도로 생명력을 잃을 것을 고려한 공간 처리이다.

안양루에 비친 무량수전  마치 여섯 구의 불상처럼 보인다.

천왕문  현재 천왕문이 서 있는 터는 이제까지 조계문 터로 잘못 알려져 왔으나 원래 일주문이 있었던 자리였을 것이다.

석등과 안양루  안양루에서 일직선으로 뻗은 계단을 오르면 2층 디락과 석축 사이 틈으로 중정의 석등 화사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때 석등은 안양루 중심에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쳐 보이는데, 대칭으로 인한 생명력 없는 공간 배치를 배제하려 한 공간 처리가 느껴진다.

무량수전 정면도

평면도

종단면도

무량수전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무량수전 내부  불상을 동향으로 배치하고 내부의 열주(列柱)를 통해 이를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일반적인 불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엄하고 깊이감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무량수전의 편액  고려 공민왕의 글씨이다.

무량수전의 귀공포

무량수전의 내부

안양루

안양루의 편액

조사당

조사당의 측면 구조

조사당 정면도

평면도

종단면도

응진전과 자인당  왼쪽 건물이 자인당이고 오른쪽이 응진전이다. 자인당은 선방의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로 동방 폐사지에서 옮겨 온 석불을 봉안한 뒤 당호를 '자인당'이라 하였다. 응진전은 20세기 초에 유행한 장식적인 익공을 보이는 건물로 내부에는 고졸한 심육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자인당  부석사에서 동쪽으로 1.5킬로미터 떨어진 폐사지에서 옮겨 온 석불을 봉안하였다.

단하각  정면 1칸, 측면 1칸의 남도리 맞배집으로 응진전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쥐를 들고 있는 나한

범종각의 대고(위)와 목어(아래)

취현암

응향각

신범종각

범종

보장각

삼성각  칠성, 독성, 산신 세 분을 모신 전각으로 무량수전 석축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동방 지국천왕

서방 광목천왕

남방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

천왕문에 모신 사천왕상

종무소

범천(오른쪽) 제석천(왼쪽)

사천왕상

조사당 벽화  부석사에 전하는 벽화 6점은 원래 조사당 벽면에 그려졌던 것으로 무량수전에 보관하다가 현재는 별도의 보호각에 보관되어 있다. 이들은 현재 남아 있는 사원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괘불  통상적인 영산회상도와는 달리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불을 첨가한 복합적인 설법도이다. 대웅전에 석가모니 영산회상도만 봉안하지 않고 약사불, 아미타불과 함께 삼세불화를 봉안한 것과 여기에 화엄종의 주존인 비로자나불 그리고 삼신설을 구체화시킨 비로자나삼신불화를 결합한 이 그림은 당시 그려진 불화의 경향과 부석사의 사상적 배경을 잘 보여 준다.

소조 여래좌상  이 불상은 고려 초의 여래상 형식을 잇고 있지만 조각 양식은 고려 후기의 특징을 보인다. 석가모니불이면서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는데 몇 차례의 보수와 개금을 거치는 동안 수인이 변경되었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항마촉지인을 취하였는지는 불확실하다.

소조 여래좌상의 광배  불상 뒤에 당초문과 화염문이 화려하게 조각된 목조 광배가 있어 불상의 위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정교한 불교 미술의 단면을 보여 준다.

석조 삼존여래 좌상  자인당에는 석불좌상(가운데)과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양 옆 : 보물 제230호)이 모셔져 있다.

3층 석탑  2층의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쌓은 전형적인 신라시대 석탑으로 원래 부석사 창건 때 건립된 것이 아니라 자인당의 석불들과 함께 부석사 동쪽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절터에서 옮겨 온 것이다.

3층석탑 2기  절의 가장 아래쪽인 범종루 바로 앞 대석단 위에 좌우로 있다. 원래 부석사에 있던 것이 아니라 1966년에 절의 동쪽 약사골 절터에서 옮겨 온 것이다.

석등 1  무량수전 바로 옆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이다.

석등 2  3층석탑 앞에 놓여 있는데, 현재 기단, 하대석, 간주, 옥개석만이 남아 있다.

당간지주  부석사 입구 안양루를 향하는 길가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부석사에 전하는 고려시대 화엄경 각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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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15. 12:16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63 서울 산 가는 길

 

신명호 지음

2012, 깊은솔

 

대야도서관

SB080177

 

699.1

신34ㅅ

 

서울 · 수도권 30산 58코스 등산 길 안내

 

산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꼭 가봐야 하는 그 곳

 

신명호

단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수료

단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총동문회 산악회장

한국 1,400산 등정

백두대간 연속 30일간 완주

저서 『한국 700명산』『한국 100대 명산』『서울에서 가까운 200명산』『첩첩산중 오지의 명산』『영호남 200명산』『수도권 전철 타고 가는 산』『서울 산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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