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 三國志 6 영웅은 큰 뜻을 남긴다
나관중 지음 · 정비석 옮김
2007, 은행나무
시흥시대야도서관
SB014859
823.5
나15삼6 6
▲ 손권
▲ 손권
◎ 등장인물
사마염司馬炎(236~290년)
진(晋)의 초대 황제. 재위 265~290년. 사마의의 손자이며 사마소의 맏아들이다. 사마씨(司馬氏)는 이미 3대에 걸쳐 위 왕조에서 확고한 기반을 쌓고 있었는데, 사마염은 그 기세를 몰아 위 황제인 조환에게 황제위를 물려받고 진 왕조를 일으켰다. 아버지인 사마소 시절에 이미 촉나라를 평정했기 때문에 사마염에게는 오나라를 멸하여 천하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커다란 과제가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즉위 후 스스로 검약에 힘쓰는 한편 내부 결속을 도모했다. 267년, 드디어 중신인 양호를 총사령관으로 하여 오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왕준에게는 장강 상류의 익주에서 수군을 정비하게 했다. 그러나 오나라에서도 명장인 육항이 장강 일대에서 방어에 힘써 두 나라 군사는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이 대치는 10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279년에 드디어 진의 수륙 20만의 대군이 일제히 남하하여 결국은 이듬해에 오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했다.
등애鄧艾(?~264년)
위(魏)의 명장. 자는 사재(士載). 사마의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농정(農政) · 통운(通運)에 큰 업적을 이루어냈다. 또한 오나라에 대한 전략으로 둔전책(屯田策)을 실행해 성공적인 성과를 올렸다. 255년, 관구검 · 문흠 등의 반(反)사마씨 거병 때 연주 자사였던 그는 기동대를 이끌고 진압작전에 참가하여 승리의 계기를 만들었다. 263에는 촉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서쪽 방면의 군사들을 지휘하여 산을 깎고 하천에 다리를 놓아 험한 길을 개척하여 대번에 성도에 육박했다. 그리하여 10월에는 사찬과 아들 등충을 격려하며 제갈첨 · 장준 등의 목을 베고 촉주 유선의 항복을 받아 드디어 성도 입성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이듬해 반란의 기색이 보인다는 사찬 · 종회 등의 무고로 아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공손연公孫淵(?~238년)
요동(遼東)의 호걸. 228년, 위나라 명제로부터 요동 태수에 임명되었으나 오나라의 손권과도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이에 위나라에서는 그에 대해 문책의 사신을 파견했다. 그러나 공손연은 무력으로 이를 물리쳐버리고 연왕(燕王)을 자칭하며 자립했다. 그리하여 위나라에서는 사마의를 총대장으로 삼아 토벌군을 파견했고 공손연도 요수를 따라 방위선을 구축했으나 사마의의 양동작전으로 패하고 본거지인 양평으로 물러갔다. 한때는 위의 포위공격을 막아냈으나 총공격을 받고 대패했다. 결국 그는 항복했으나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도망을 가다가 결국 목 베어 죽임을 당했다.
강유姜維(202~264년)
촉(蜀)의 장수. 자는 백약(伯約). 원래 위나라 장수였으나 제갈공명에게 투항하여 크게 신임을 얻었다. 그는 제갈공명이 죽은 뒤 철수하는 중에 사마의의 추격군에게 쫓겼는데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치는' 전법으로 전멸의 위기에 빠진 촉군을 구했다. 소극파인 비위가 죽은 뒤 위와 치열하게 싸웠으나 후주 유선이 투항하자 위의 장군 종회에게 항복했다. 그러나 264년, 종회를 부추겨 위나라를 배반하도록 했다가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주이朱異
오(吳)의 장군. 253년, 제갈각의 대위(對魏) 작전에 종군했으나 제갈각의 작전을 비판하다 지휘권이 박탈되었다. 257년에 위나라의 제갈탄이 수춘에서 반란을 일으켜 오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자 대군을 이끌고 출전했으나 여장수(黎奬水)에서 위나라 군사에게 격퇴당해 군법에 따라 처형되었다.
하안何晏(?~249년)
위(魏)의 학자. 자는 평숙(平叔). 어머니가 조조의 측실이었다. 문제 · 명제 시대에는 냉대를 받았으나 조상(曹爽)이 실권을 잡자 황제 비서가 되어 긍정 문화의 중심인물로서 현학(玄學)을 창조하고 청담(淸談)을 널리 폈다. 후에 사마의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풍李豊(?~254년)
위(魏)의 중신. 254년, 위나라 황제 조방의 명으로 장즙 등과 함께 사마사 타도를 모의했다. 그러나 이 모의가 사마사에게 발각이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누가 미칠 것이 두려워 일부러 악담을 퍼부어 사마사의 분노를 사서 죽음을 자초했다.
장익張翼
유비의 장수. 자는 백공(伯恭). 원래 유장의 수하에 있었으나 낙성에서 유비에게 항복해 그의 장수가 되었다. 제갈공명의 남만 정벌 때 부장(副將)으로 출전했고, 제갈공명이 죽은 뒤 대장군이 되어 강유와 함께 활약했다. 뒤에 종회가 성도 탈환을 위해 공격해 왔을 때 이를 맞아 싸우다 전사했다.
손소孫韶
손권의 대장. 자는 공례(公禮). 본시 유씨(兪氏)였으나 손책에게 총애를 받아 주인의 성을 따르게 되었다. 조비가 남침했을 때 수장 서성의 명령을 어기고 조비의 본진을 습격하여 공을 세웠다. 손권이 대위(大位)에 오르자 진북장군 유주목이 되었다.
제갈첨諸葛瞻(227~263년)
제갈공명의 아들. 자는 사원(思遠). 촉나라의 위장군(衛將軍). 263년 위나라 군사가 대거 침공하여 성도에 이르렀을 때 면죽에서 방어선을 쳤으나 등애의 공격을 받아 전사했다.
진랑秦朗
위(魏)의 중신. 아명은 아소(阿蘇). 모친이 조조의 측실이 되었기 때문에 적자들과 마찬가지로 조조의 사랑을 받았다. 후에 명제(明帝)의 눈에 들어 효기장군 · 시종장 등을 지냈다.
가충賈充(217~282년)
가규의 아들. 자는 공려(公閭). 위 · 진 교체기에 사마씨(司馬氏)의 심복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후에 오나라에 대한 대응책으로 화평을 주장했다. 딸은 혜제(惠帝)의 황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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