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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13 2013-026 三國志 5 공명, 출사표를 올리다
2013. 3. 13. 09:22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26  三國志 5 공명, 출사표를 올리다

 

나관중 지음 · 정비석 옮김

2006, 은행나무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14858

 

823.5

나15삼6  5

 

▲ 조조

◎ 등장인물

 

육손陸遜(183-245년)

오(吳)의 공신. 자는 백언(伯言). 219년에는 여몽을 대신하여 형주에 주둔, 탁월한 전략으로 관우를 무찔러 형주를 오나라의 영토로 삼앗다. 이에 유비는 관우의 죽음과 형주를 빼앗긴 일로 손권에게 원한을 품고 221년에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진격해 왔다. 이때 육손이 이릉에서 유비군을 맞아 싸워 대승했다. 이리하여 244년, 형주에 주제한 채로 정승에 임명되는 등 오의 중신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유선劉禪(207-271년)

유비의 아들로 촉의 2대 황제. 재위 223-263년. 자는 공사(公嗣). 제갈공명에 이어 장완 · 비위가 보좌하고 있는 동안은 나라가 평안했으나, 그들이 잇달아 죽은 뒤 어리석게도 환관 황호를 신임하여 국정의 부패를 초래했다. 이어서 위나라의 침입을 받아 성도가 함락됨으로써 삼국정립 시대의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조식曹植(192-232년)

조조의 셋째 아들. 자는 자건(子建). 형 조비와 태자 계승 문제로 암투를 벌였다. 그러다가 조비가 위의 초대 황제로 즉위하자, 정의 등 그의 측근들은 죽임을 당했고 그도 평생 정치적 위치가 불우하게 되었다. 그의 재주와 인품을 싫어한 조비는 그를 거의 해마다 새 봉지로 옮겨 살도록 강요했다. 엄격한 감시 하에 신병의 위험을 느끼는 나날을 보내던 조식은 마지막 봉지인 진(陳)에서 죽었다.

 

등지鄧芝

촉한(蜀漢)의 문신. 자는 백묘(伯苗). 유비를 받들어 정무를 담당하고, 그가 죽자 오나라에 수호사절로 가서 대임을 완수했다. 제갈공명의 북정(北征)에 참가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중직을 역임하며 국정을 맡아보았다.

 

제갈각諸葛恪(203-253년)

제갈근의 장남. 자는 원손(元遜). 어려서부터 재주가 많아 오의 손권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252년, 손권이 병으로 쓰러지자 국정의 전반을 맡았다. 어린 황제 손량이 즉위하자 안으로는 민심을 수습하는 한편, 위나라가 손권의 상중을 기회로 대군을 이끌고 오자 이를 대파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53년, 중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위를 정벌하기 위해 대군을 일으켰으나 작전의 실패와 병으로 대패하고 결국 손준에게 죽임을 당했다.

 

조예曹叡(205?-239년)

위나라의 제2대 황제인 명제(明帝). 자는 원중(元仲). 그는 부화뇌동하는 무리를 물리치고 스스로 정치를 행했다. 즉위 초에 오 · 촉이 연합하여 공격을 해왔으나 그는 사마의 등 무장을 파견하고 자신도 전투에 직접 출진하여 이를 격퇴했다. 그러나 만년에는 사치에 빠졌고, 그가 죽자 양자로 삼았던 제왕(齊王) 방(芳)을 보좌하던 자들이 내분을 일으켜 결국은 사마씨(司馬氏)가 실권을 쥐게 되었다.

 

비위費褘(?-253년)

촉한(蜀漢)의 중신. 자는 문위(文偉). 제갈공명이 출사표를 내고 출정을 떠날 때 내정을 맡길 사람으로 꼽았던 인물이다. 제갈공명이 예상한 대로 그의 능력은 내정면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제갈공명이 죽은 뒤에는 수성(守城)의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강경파인 강유를 억제하며 촉나라를 잘 지켜나갔다. 그러나 253년, 연회 석상에서 자객에게 암살되고 말았다.

 

맹달孟達(?-228년)

촉한(蜀漢)의 장수. 의도 태수였으나, 형주의 관우 군이 궤멸하자 위나라에 항복하여 신성 태수에 임명되었다. 그 후 제1차 위나라 정벌을 계획한 제갈공명으로부터 촉군에 내응하라는 권유를 받고 고민하던 끝에 이에 응했으나 사마의의 급습을 받고 죽었다.

 

장완蔣琬(?-245년)

촉한(蜀漢)의 중신. 자는 공염(公琰). 제갈공명이 출전할 때 성도에 머물면서 원정군의 식량 보급에 만전을 기했으며, 234년 제갈공명이 오장원에서 중태에 빠지자 그 후계자로 지명되어 국정의 전반을 맡았다. 그는 제갈공명과 같은 위엄은 갖추지 못했으나, 침착한 집무 태도로 제갈공명이 없는 촉의 동요를 막았다. 그는 피폐된 국력 회복에 진력했으나, 병이 들어 전권을 비위에게 넘겨주고 죽었다.

 

장포張苞

장비의 아들. 아버지가 죽은 뒤 관우의 아들 관흥과 함께 유비의 총애를 받으며 크고 작은 싸움에서 공을 세웠다. 후에 사마의의 선봉인 곽회를 공격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고 그 상처가 도져 병으로 죽었다.

 

진식陳式

촉한(蜀漢)의 대장. 222년, 이릉의 싸움에서 오반과 함께 수군을 이끌고 장강을 따라 내려가 오나라의 군사와 대치했다. 229년, 제갈공명의 명을 받아 위나라의 세력 하에 있는 무도와 음평을 함락시켰다.

 

진진陳震

촉한(蜀漢)의 중신. 제갈공명이 신임하는 신하의 하나. 손권이 황제위에 올랐을 때 제갈공명의 뜻을 받들어 위나라에 대한 공동 전선을 펴기 위해 축하사절로 오나라에 다녀왔다.

 

위연魏延(?-234년)

유비의 용장. 자는 문장(文長). 유비를 따라 촉에 들어가 장비를 제치고 한중군 태수에 임명되었으며, 제갈공명의 북정(北征) 때는 장안 급습을 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갈공명이 죽은 뒤 부장관인 양의와 병권을 다투던 중 마대에게 죽임을 당한다.

 

조진曹眞(?-231년)

조조의 조카. 자는 자단(子丹). 중군대장군이었을 때 조비의 유언을 받고 조예의 후견인이 되었다. 228년, 제갈공명의 침공 때 군대를 이끌고 선전했고, 230년에는 촉을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이듬해 제갈공명이 다시 공격해 오자 이를 막다가 갑작스럽게 병으로 죽었다.

 

조홍曹洪(?-232년)

조조의 사촌 동생. 자는 자렴(子廉). 조조가 형양에서 동탁의 부하 서영에게 패했을 때, 부상당한 조조를 자기의 말에 태우고 자신은 걸어서 도망을 쳤다. 관도 싸움에서는 조조가 오소로 출격하고 난 뒤 원소의 장수 장합 · 고람의 공격을 잘 방어했다.

 

황승언黃承彦

제갈공명의 장인. 양양의 명사로서 고결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같은 양양의 명사인 채모의 누이와 결혼하여 태어난 딸을 '미인은 아니지만 머리가 비상하다'며 제갈공명에게 출가시켰다.

 

주방周魴

오(吳)의 장수. 자는 자어(子魚). 파양 태수로 있었다. 오나라가 위나라에 점거되어 있던 회남을 공략할 때, 손권의 명령으로 위의 장수 조휴를 지략으로 끌어들여 대승을 거두었다.

 

▲ 조조

 

|차례|

 

한나라의 멸망

장비의 횡사

복수전

끝없는 원한

백면서생 대도독

화공 칠백 리

촉제의 승하

원수와 동맹을 맺다

공명의 이간책

남만 대원정

맹획, 세 번 사로잡히다

불굴의 만왕

난공불락의 독룡동

은갱동 함락

남만 대평정

모략전

공명의 출사표

하후 도독

봉황을 얻다

위수 공략전

사마중달의 재등장

공명의 패전

마속의 목을 울며 베다

육손, 위군을 격퇴하다

두 번째 철군

다시 기산으로

공명과 중달의 대결

팔진법의 위력

어리석은 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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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