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0 운주사
글 / 이태호, 천득염, 황호균●사진 / 유남해, 황호균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8013
082
빛12ㄷ 157
빛깔있는 책들 157
이태호(전남대학교 교수 · 미술사)------------------------------------------------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 미학 · 미술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의 학예연구사를 거쳐 지금은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로 있다. 그 동안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고구려 고분 벽화」「겸재 정선의 가계와 생애」「김홍도의 진경산수」「다산 정약용의 예술세계」「1940년대의 친일 미술」 등의 논문과 평론집 『우리 시대, 우리 미술』을 펴냈다.
천득염(전남대학교 교수 · 건축사)------------------------------------------------
전남대학교 건축공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지금은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부교수로 있다. 그 동안 「백제계 석탑의 조형 특성과 변천에 관한 연구」「실상사 3층석탑의 조형비에 관한 연구」「운주사 석탑의 조형적 특성에 대한 고찰」 등의 논문과 『전남의 전통 건축』 등의 단행본을 집필하였다.
황호균(전남대 박물관 학예연구사 · 미술사)----------------------------------------
전남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지금은 학예연구사로 있다. 그 동안 운주사의 2 · 3 · 4차 발굴과 연곡사 시굴조사의 연구원으로 현장에 상주하였고 「운주사 불상조각의 형식적 특징과 편년 고찰」「연곡사의 불교유적 · 유물」 등의 보고서와 「전남지역의 괘불에 대한 일고찰」「선암사 불교 회화의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유남해(한국정신문화연구원 사진기자)--------------------------------------------
『진경산수화』『한국전통회화』『조선시대고문서』『무등산』 등 많은 도판 사진집을 제작하였고 한국관광사진콘테스트에서 준우수상을 수상하였다. 현재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에 근무하면서 포토에세이 등을 통해 활약하고 있다.
|차례|
좌절된 불사의 현장
도선(道詵)의 창건 설화가 신비감을 부추긴 불적
운주사의 석탑
석탑의 현황과 명명(命名)
석탑의 형식 분류
석탑의 구성 요소
석탑의 양식적 특성
석탑의 건립 배경
고려 초의 시대상과 건탑 양상
풍수지리설의 유행과 건탑
석탑의 건립 기간
불상
불상의 현황과 명명(命名)
독립형 석불
석조 불감 안의 남 · 북쪽 석불 좌상
암벽군형 석불
금동 여래 · 보살 입상과 소조 불두편
불상의 양식적 특징
불상의 건립 배경
칠성바위와 돌을깨고 나른 흔적들
칠성석
조성 시기의 문제와 최근의 발굴 성과
최선의 조형물로 조화를 이룬 도량
주(註)
▲ 운주사 남쪽 골짜기 모습
▲ 탑과 불상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
▲ 계곡 여러 탑들의 모습
▲ 원반형 다층석탑 일명 연화탑 또는 호떡탑이라 불리며 보물 제789호로 지정되엇다. 탑신과 옥개가 원반형으로 우리나라의 탑에서는 유래가 없다.
▲ 7층석탑 1 옥개석이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탑과 같다.
▲ 7층석탑 2 탑신에 교차문양이 있고 잘 다듬은 방형 기단의 탑이다.
▲ 7층석탑 3 옥개석이 얇고 넓으며 약한 귀솟음이 있어 백제계 탑의 형식이다.
▲ 원반형 석탑 실을 감는 실패 모양을 하고 있다. 원래는 3층 정도였을 것이다.
▲ 9층석탑 운주사 골짜기의 남쪽 입구에 위치하여 보물 제796호로 지정된 면석과 옥개석의 문양이 특이한 석탑이다.
▲ 원구형 석탑 떡시루나 주판알 모양의 이색적인 탑이다.
▲ 조선 후기에 탑을 수리한 흔적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으로 19세기 초에 설담 자우 스님이 천불천탑을 수리한 뒤 운주사 약사전을 중건하면서 이처럼 어설픈 탑 모습이 되어 버렸다.
▲ 탑과 불상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
▲ 머슴 부처 와불을 지킨다 하여 시위불 또는 머슴 부처라 불리는 눈 속의 돌부처
▲ 석조 불감 돌로 만든 건물에 두 돌부처가 등을 대고 앉아 있는 이 석조 불감은 지붕과 벽체를 시멘트로 보수하여 흉물스럽다.
▲ 석조 불감의 옛모습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으로 지붕과 용마루 부분이 지금의 모습과 달라 이런 모습으로 복원해야 할 것이다.
▲ 광배를 가진 돌부처 운주사에서는 드물게 광배를 가진 돌부처이다. 발굴 조사 때 주변에서 조선시대의 기와가 많이 나온 점으로 미루어 조선 후기에는 목조 기와집에 모셨던 듯하다.
▲ 마애불 공사바위 아래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중요한 자리인 암벽 벼랑에 부처를 새긴 뜻은 과연 무엇일까?
▲ "가" 석불군의 옛모습 『조선고적도보』 사진으로 대좌가 온통 흙 속에 묻혔고 불상 배열도 좀 다르다.
▲ "가" 석불군의 협시 돌부처
▲ "나" 석불군의 모습 이 돌부처들은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 출연료를 한푼도 받지 않고 출연했다.
▲ "나" 석불군의 주존 돌부처 높이가 475센티미터로 운주사에 서 있는 돌부처 가운데 가장 크다.
▲ "다" 석불군 주존 돌부처
▲ 미완성 돌부처
▲ "라" 석불군의 옛모습 『조선고적도보』의 사진
▲ "마" 석불군의 모습 『조선고적도보』의 사진으로 암벽 불상군의 전형적 형태이며 대형 석불 입상은 행방을 찾을 수 없다.
▲ "마" 석불군의 주존 돌부처 『조선고적도보』의 사진에서는 상대 · 중대 · 하대석을 제대로 갖추었으나 지금은 넘어져 코가 깨지고 상대석만 남아 있다.
▲ "마" 석불군의 파손 불두 부처의 머리에 5개의 구멍이 나 있는데 눈, 코, 귀, 입 등을 잘 다듬어 놓고 어떤 연유로 이렇게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놓았는지 모를 일이다. 돌을 쪼개려는 채석 구멍과는 다른데 사람들은 이 구멍 만지기를 좋아한다.
▲ "바" 석불군의 옛모습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석불군 주변의 황량한 모습
▲ "바" 석불군
▲ 칠성바위 바위의 지름이 북두칠성의 별 밝기와 비례하고 배치 간격이나 각도가 북두칠성과 유사하여 북두칠성 신앙의 주요 유적지이다.
▲ 모전석탑 2 벽돌탑 모양을 돌로 만든 탑으로 낙뢰를 맞은 탓인지 옥개석 일부가 파손되어 있다.
▲ 5층석탑 면석을 다듬지 않은 납작한 돌을 썼으나 조형미가 아름답다. 일명 거지탑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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