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3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정호승
2003, 열림원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6667
811.6
정95풀
자연을 닮은 시
어른이 읽는 동시
동심으로 돌아가 어린이가 되고 싶다는 시인의, 엄마와 동무들과 동네 이야기는 그대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기린은/욕심이/좀 많은가 봐/목에/꽃다발을/많이 걸려고/저렇게/목이 긴 거야"하는 표현은 어찌나 신선한지! 이밖에도 그의 말대로 우리 안에서 자라지 않고 머물러 있는 소년과 소녀들이 "그래요! 참 놀라운 발견이네요!"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고 싶은 글들이 많다. 그리움과 추억의 오솔길에서 노을과 별을 안고 오래도록 머물고 싶게 만드는 이 동심의 시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이해인(수녀, 시인)
정호승 시인은 저문 봄날 산그늘 속에 서 있는 풀잎같이 해맑은 시인이다. 그가 이제 어린 영혼을 만나 풀잎 끝에 이슬을 달았다. 그가 달고 있는 이슬은 별처럼 영롱하고 깨끗하다. 그의 이슬은 하늘의 별이 되어 우리 머리 위에 빛나기도 하고, 우리들 마음에 떨어져 아름다운 파문을 일으키며 때묻은 우리들의 잔주름을 걷어내기도 한다. 그의 이슬 같은 시 속에 들어가 나도 어린이가 되어 놀고 싶다.
- 김용택(시인)
오늘의 시인 정호승은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갈 힘과 사랑을 얻을 데가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동심을 잃지 않고 사는 이는
맑은 물처럼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세상살이가 각박하니까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되찾아
보다 수수한 인간으로 살아가야겠기에,
동시를 쓰면서 스스로도 그런 마음을 얻고
그 동시를 통해 독자들에게 그런 마음을
되찾게 해주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른이 동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서부터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 박덕규
정호승의 시詩는 한 그루의 나무입니다.
봄이면 눈처럼 환한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달고 맛난 열매를 맺으며
차가운 겨울에는 헐벗을 줄도 아는 나무.
나무인 시詩들이 모여 숲을 이룹니다.
숲으로 새들이 날아들고 다람쥐들이 모여듭니다.
숲 속에서 우리는 맑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가 됩니다.
맑은 눈동자에 풀잎 하나가,
풀잎에 새겨진 상처가
아프게 들어옵니다.
아이는 가만가만 상처를 매만집니다.
정호승의 시詩를 읽는 순간순간이 행복합니다.
정호승은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등이,
시선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흔들리지 않는 갈대》 등이,
어른이 읽는 동화로 《연인》 《항아리》 《모닥불》
《기차 이야기》 등이, 산문집 《소년부처》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눈비 그치면
햇살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시인의 말
이 시집은 제가 어린이가 되기 위하여 잠시 엄마 품에 안겨 쓴 시들을 모은 것입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잠시 엄마 품에 안겨 잠들어보세요.
그동안 참았던 서러움의 눈물이 다 녹아내리고 세상을 살아갈 힘과 사랑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제 동심을 잃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동심을 잃지 않고 사는 이는 맑은 물처럼 살 수 있습니다.
하늘 나는 새처럼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정호승
|차례|
1...
무지개떡 / 여름밤 / 얼굴 / 어떡하지? / 씨앗 / 밥 / 개불알꽃 / 붕어빵 / 봄날 / 난초 / 대부아빠 / 북두칠성 / 우정 / 노근이 엄마 / 보신탕 / 할머니 젖 / 신발 / 기다림 / 서울 / 사과 / 보리새우
2...
별 / 풀잎소리 / 무 / 눈사람 / 저녁별 / 꽃을 보려고 / 개밥바라기별 / 가을밤 / 낙엽 / 제비 / 나무 / 봄기차 / 고추잠자리 / 가을 연못 / 병아리 / 홍도 / 산정호수 / 불일폭포 / 눈길 / 기린
3...
밤하늘 / 상처 / 개미 / 새 / 친구에게 /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그 소녀 / 용서해주세요 / 나무의 마음 /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새싹 / 걸레 / 뒷모습 / 이중섭 / 새우 / 지붕 / 종 / 정채봉 / 나무와 사람 / 내 동생 / 김밥 할머니
4...
보름달 / 엄마 / 나의 꿈 / 반딧불이 / 춘란 / 소년 / 첫눈 오는 날 / 눈사람 / 사랑 / 밥 한 그릇 / 비둘기 / 달팽이 / 가을날 / 민들레 / 아버지 / 참새 / 꾸중 / 무릎잠 / 꽃과 나 / 파도와 놀다 / 도둑고양이 / 겨울 저녁
해설 · 박덕규
어떡하지?
내 얼굴에 입이 없다면
밥은 못 먹어도 좋으나
엄마 뺨에 키스 할 수 없어서
어떡하지?
내 얼굴에 눈이 없다면
밤하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아도 좋으나
엄마를 바라볼 수 없어서
어떡하지?
내 얼굴에 코가 없다면
숨을 쉴 수 없어도 좋으나
엄마 냄새 맡을 수 없어서
어떡하지?
고추잠자리
엄마가 장독대 고추장을 퍼담고
그만 장독 뚜껑을 닫지 않았다
감나무 가지 끝에 앉아 있던
고추잠자리 한 마리
우리집 고추장을 훔쳐먹고
더 새빨개졌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사랑
꽃은 물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새는 나뭇가지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달은 지구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나는 너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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