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황영찬

Tag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total
  • today
  • yesterday

'2013/11/30'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11.30 2013-130 근대 수묵 채색화 감상법
  2. 2013.11.30 2013-129 한국사傳 2
2013. 11. 30. 14:18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30 근대 수묵 채색화 감상법

 

글, 사진 / 최열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13

 

082

빛12ㄷ  191

 

빛깔있는 책들 191

 

최열----------------------------------------------------------------------------

미술평론가.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고 민족미술협의회 간사를 거쳐 지금은 한국근대미술사학회 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현대미술사』, 『민족미술의 이론과 실천』, 『힘의 미학, 김복진』, 『한국 만화의 역사』가 있으며 엮은 책으로 『김복진 전집』이 있다.

 

|차례|

그리운 아름다움

수묵 채색화 입문

19세기 신감각파

근대수묵 채색화의 동향

세기말 세기초 형식파

민족의 상징, 사군자

식민지 시대의 화가들

보고 읽을 만한 책

계산포무도(부분) 전기. 종이에 수묵, 24.5×41.5센티미터. 수묵화는 달리 색을 쓰지 않고 먹으로만 그린다. 이 먹을 물에 풀어 붓으로 그린 그림을 수묵화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원문진(부분) 안중식. 비단에 채색, 128×44.7센티미터, 1913년. 수묵화 양식 아닌 것을 채색화라 하는데 고분 벽화부터 불교 회화, 궁중의 기록화들, 초상화, 장식화, 무속 회화와 민화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대단히 넓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석매 김수철. 종이에 수묵 담채, 51.8×28센티미터. 수묵 바탕에 엷은 색을 칠해 멋진 효과를 낸 그림도 대단히 많다. 이것을 흔히 수묵 담채화라 일컫는다. 개인 소장.

 

물건에 닿으면 어두워지고 사람에 닿으면 슬기를 밝혀 주는 것이 먹이다. 먹이야말로 맑고 깨끗한 기운이 오랜 옛날을 뚫고 천지 만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위는 조희룡의 「묵죽(부분, 종이에 수묵, 128.2×44.7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아래는 유숙의 「무후대불(비단에 수묵 담채, 115.4×47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다.

묵란(부분) 이하응. 종이에 수묵, 92.3×27.5센티미터, 1881년. 제발은 그림에 쓴 글, 낙관은 인장으로 사대부를 비롯한 중인 출신 지식인들의 수묵 채색화는 모두 낙관과 제발을 갖추고서야 행세를 했으니 낙관과 제발이란 바로 지식인 문화의 소산이다. 개인 소장.

인천안목(위, 김정희. 종이에 수묵, 22.9×27센티미터, 간송미술관 소장) · 묵죽(부분, 아래, 조희룡. 종이에 수묵, 128.2×44.7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세기를 휩쓴 새로이 자라난 중인 지식인들의 생활 감정과 미의식이야말로 19세기 후반 근대 미술 정신이며 이 대목이 근대 수묵 채색화 감상의 초점이다.

홍매 조희룡. 종이에 담채, 각 127×30.2센티미터. 근대 화단의 새벽을 열었던 조희룡은 중인은 물론 사대부들과도 폭넓은 관계를 맺으면서 호방하고 활달한 성품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19세기 화단의 거목이었다. 개인 소장.

산수(부분) 김수철. 종이에 담채, 127.2×29.6센티미터. 신감각파란 전통적인 산수의 형태는 그대로 취하면서도 철학 이념 의미의 세계를 버린 채 오직 조형 형상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에 호소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쾌도 전(傳) 유숙. 종이에 채색, 105×54센티미터. 도시 생활의 단면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도시 생활이 낳은 19세기 중엽 새 세대의 미적 감정은 전통 수묵 채색화의 여러 갈래 가운데 보다 경쾌한 양식을 요구했으며 다른 한쪽에서는 화려하고 세련된 양식을 지향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매화서옥도 조희룡. 종이에 담채, 106×45.1센티미터. 조희룡은 자유분방한 붓놀림으로 그림을 그렸다. 세속을 등지고 고고하게 살아가는 인물을 주제로 삼은 「매화서옥도」는 현란하기 짝이 없어 결코 외롭거나 느슨해 보이지 않는다. 간송미술관 소장.

계산적적도 김수철. 종이에 담채, 119×46센티미터. 어떤 대상이건 김수철의 손을 거치면 다른 것으로 바뀐다. 작대기 같은 붓선과 그 선을 따라 먹을 뿌옇게 풀고 그에 어울리게 점을 찍어 그린 것이 남다르다. 왼쪽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바위에 둘러싸인 서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화폭은 대단히 힘에 넘쳐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산수 김수철. 종이에 담채, 각 112×43센티미터. 안정과 활력이 숨쉬는 화폭에서 바쁜 도시 화가의 생활 감정을 엿볼 수 있으며 짤릴 듯 이어지는 단순한 선, 맑음이 넘치는 옅은 채색, 새 기운을 반영하는 대담한 반쪽 구도와 시원스런 공간, 삶에 충실해 보이는 또렷한 인물의 형상에서 그 미의식을 맛볼 수 있기에 충분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매화서옥도 전기. 종이에 채색, 29.4×33센티미터.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담채와 호분의 아름다움이 극도로 빛나는 작품으로 당대를 휩쓸고 있는 미감 가운데 하나인 장식 취미를 잘 보여 준다. 화면 왼쪽 아래 구석에 노인이 입고 있는 붉은 도포와 가운데 초옥 지붕의 붉은 설채, 산 사이에 찍혀 있는 녹색 점과 무수히 피어 있는 매화꽃 점은 산뜻하기 그지없어 놀라울 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매화서옥도 전기. 마에 담채, 88×35.5센티미터, 1849년. 김수철의 「계산적적도」와 쌍둥이처럼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해냈으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김수철의 그림은 훨씬 대담한 변형을 추구하고 있으며 전기는 좀더 얌전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꽃과 나비 남계우. 종이에 채색, 각 121.7×28.8센티미터. 남계우는 진한 색과 치밀한 묘사로 나비를 실물에 버금가게 현실감을 살렸지만 전반적으로는 사실성이 지나쳐 비현실적인 신비로움을 추구했다. 특히 금박을 해놓은 분당지를 씀에 따라 미묘한 느낌을 주어 환상을 북돋우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아래는 부분)

양귀비 신명연. 비단에 채색, 33.3×20센티미터. 신명연은 수묵화도 잘했지만 채색화에서 빼어난 기량을 드러냈다. 먹선 없이 짙고 옅은 변화가 넘치는 색면으로 그린 그의 꽃 그림은 생활에 충실한 도시 사람의 열정을 떠올리기에 넉넉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하화 김수철. 종이에 담채, 95.5×43.2센티미터. 김수철은 꽃이 지닌 형태와 색채 따위를 묘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본 꽃을 가슴속에 완전히 익힌 뒤 그형태를 치밀하게 계산해 놓은 화가 특유의 조형 감각과 표현 기법으로 변형해낸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백로 8폭 족자 홍세섭. 비단에 수묵, 각 119.7×47.8센티미터. 간단한 듯하지만 새의 위치와 동작은 대단한 움직임을 품고 있다. 모두 몸의 방향은 같지만 고개를 틀고 있고 따라서 눈길이 크게 엇갈려 강한 동선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홍세섭의 새 그림들은 왜곡이나 과장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지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까치 호랑이 종이에 채색, 110×75센티미터. 민간 장식화는 대부분 착함을 찬양하고 악을 징계하며 사악한 불행을 막고 좋은 일만 찾아오길 바라는 소재와 풍요롭고 오래 살기를 꿈꾸는 소재들을 다루고 있다. 개인 소장.

서가도 10폭 병풍 비단에 채색, 150×380센티미터. 책과 종이, 벼루, 붓, 연적, 꽃병 따위가 정돈된 책장 그림은 좋은 장식화였다. 따라서 책장 그림은 대개 병풍으로 만들어져 양반집 사랑방이나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공부방을 장식하였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나룻배 이형록. 종이에 담채, 28.2×38.8센티미터. 강줄기를 따라 나란히 흐르는 두 척의 배를 그리고 있는데 수평 구조를 갖춘 이 그림에 서고 앉은 사람들 얼굴이 여러 각도로 엇갈려 활기를 북돋우고 노젓는 사공의 자세와 배 밑 물결 거품, 갈매기가 움직임과 속도감을 주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눈 속 장보러 가는 길 이형록. 종이에 담채, 28.2×38.8센티미터. 약간 사선인 길을 따라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뒷모습이어서 아득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특히 말들이 앞다리를 모두 사선으로 내리뻗어 미묘한 리듬을 돋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줄광대 김준근. 종이에 채색, 18×25.5센티미터. 김준근은 서울, 부산, 인천 따위를 떠돌며 숱한 풍속화를 그렸으며 많은 외국인들이 그림을 사갔다. 그의 풍속화가 대부분 예쁜 겉모습을 갖고 있음은 관광용 기념 풍속화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독일 함부르크 인류학박물관 소장.

농가실경도 가운데 소작료를 내다 김윤보. 종이에 채색, 29.5×21센티미터. 지주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쭈그려 앉혀 놓았다. 희미한 붓질 탓인지 위엄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소작인들도 별로 나을 게 없이 허약한 모습이니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을 그리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잽싼 닭과 휑한 소의 표정이다. 개인 소장.

형정도 김윤보. 종이에 채색, 29.5×42센티미터.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에 별달리 긴장이 없고 특히 죄수들은 여유만만하기조차 한, 아무튼 갈등과 긴장감이 없는 그림이다. 개인 소장.

나뭇꾼 지운영. 종이에 담채, 125×60센티미터. 나뭇꾼의 휴식을 통해 절망과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요란한 소나무와 나무를 가득 채운 지게, 지게와 떨어져 곰방대를 물고 있는 나무꾼의 쓸쓸한 표정이 그렇다. 개인 소장.

산신도 도순. 비단에 채색, 112.1×93.5센티미터, 1858년. 호랑이와 동자들에 둘러싸인 백발의 산신을 그윽한 분위기로 묘사한 걸작이다. 이 같은 구도가 산신의 자비로운 표정과 어울려 지나칠 정도로 포근한 느낌을 자아낸다. 전남 승주군 송광사 소장.

김정희상(부분) 이한철. 비단에 채색, 131.5×57.7센티미터, 1857년. 얼굴의 주요 부분을 선으로 그린 다음 오목한 부분을 선염으로 처리하는 전래의 기법도 없지는 않았다. 개인 소장.

허전상 이한철. 비단에 채색. 얼굴의 주요 부분을 모두 선으로 그린 뒤 살결을 따라 육리문을 써서 그림자를 잘 드러내 보인 대표적인 작품이다. 개인 소장.

각진국사상 비단에 채색, 13×85.5센티미터. 불교 교단에서도 큰스님들의 초상화를 그려 모시는 전통이 있었다. 1825년에 그린 「각진국사상」은 일반 초상화와 달리 전체를 화려하되 엷고 밝게 쓴 점과 더불어 배경에 바위와 소나무를 배치한 점이 남다르다.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고종황제 어진 비단에 채색, 210×116센티미터, 20세기. 몰락해가는 왕의 초상화답게 힘이 빠진 고종의 횅한 눈동자가 눈길을 끌고 있다. 선묘를 전혀 쓰지 않고 채색으로 모든 것을 그린 작품인데 특히 배경의 비단 휘장과 붉은 옷이 강렬한 느낌을 준다. 창덕궁 소장.

죽수계정도 허련. 종이에 담채, 19.3×25.4센티미터. 같은 제목의 예찬 그림을 본뜬 작품이다. 깔끔한 붓놀림과 단정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수평 구도로 연출했다. 허련은 전통을 바닥 밑에 숨기고 스스로 시대의 요구에 따라 개성을 찾으려 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쏘가리 10폭 병풍 가운데 1폭(왼쪽, 장승업. 종이에 채색, 116.5×32.5센티미터. 호암미술관 소장.) · 물고기와 게 8폭 병풍 가운데 1폭(오른쪽, 장승업. 종이에 채색, 145×35센티미터,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장승업은 전문 화가의 전형으로 가장 높은 수요를 지니고 있었던 동 · 식물, 정물 따위를 소재로 삼는 이른바 화조나 어해, 동물, 기명절지에도 최고의 기량을 휘둘렀다.

방 황공망 산수 장승업. 종이에 채색. 151.2×31센티미터. 장승업은 새로울 것 없는 소재와 제재를 작가 마음껏 다뤄 다시없을 완벽한 높이로 끌어올렸다. 맨 위쪽 멀리 솟은 산도 아름답지만 계곡에서 흐르는 물결과 구름 또한 신비롭다. 바로 내려와 강물 위 마을이 보이고 가운데를 빽빽히 채우고 있는 나무 숲은 참으로 울창하다. 맨 아래 짐짓 여유로운 강물 여백은 마치 보는 이를 위해 남겨 둔 듯 유혹하고 있다. 호암미술관 소장.(아래는 부분)

말 씻기기(부분) 장승업. 비단에 채색, 153×38센티미터. 위아래로 긴 화폭 속에 옆으로 선 말을 배치하는 구도가 간단치 않음에도 근경의 모든 경물들을 가로로 뉘여 자연스럽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하단과 중간 화폭 바깥에서 엇갈려 빠져나온 나무가 화폭 전체를 활시위처럼 잡고 있어 조화로운 통일감을 빚어내고 있다. 말 뒤쪽에 배치한 청록색 물통과 머리 쪽에 매단 붉은색 장식은 자극적일 정도로 화폭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요소라 하겠다. 개인 소장.

무후대불 유숙. 비단에 수묵 담채, 115.4×47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달마 지운영. 종이에 담채, 140×65센티미터, 1910년 이전. 생동감 넘치는 얼굴 표정과 그에 어울리는 옷주름, 대범한 도형 구성 방식을 보여 줌으로써 당대 어느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개성과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개인 소장.

천태산 지운영. 비단에 채색, 117.5×70센티미터, 1899년. 고전적 소재와 꼼꼼한 필치로 환상을 추구한 작춤이다. 지운영이 늦게 배운 그림이지만 지극히 복잡한 구도를 소화하는 탄탄한 구성력과 바위를 도형화시키는 능력을 갖춘 화가임을 뽐내는 작품이다. 간송미술관 소장.

춘경산수도 안건영. 비단에 담채, 33×30.5센티미터. 차분하고 안정감 넘치는 분위기로 가득차 있어 얼마나 담담한지 모를 지경이다. 어떤 소재든 그의 손에 잡히면 꼼짝없이 고요함의 포로처럼 잠들고 만다. 그것은 붓질과 설채의 뛰어난 구사 탓이며 특히 무게를 추구하는 구도가 고요한 분위기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개인 소장.

이노군도 조석진. 종이에 담채, 139.2×72.1센티미터. 대단히 탄탄한 묘사 능력을 갖춘 조석진은 묘사 대상을 충분히 파악하여 화폭에 옮겼다. 이를테면 노자를 그린 이 그림에 나타나 있는 소가 그렇다. 옅은 먹으로 그린 이 소는 대단한 사실성을 지니고 있다. 나무나 성곽 및 성문도 매우 사실감 넘치는 꼼꼼한 묘사를 보여 주고 있으며 S자 구도를 활용해 상중하 각각 엇갈린 시점을 적용하면서 운동감까지 살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어락 10폭 병풍(부분) 조석진. 비단에 채색, 각 147.5×49센티미터, 1918년. 각 폭마다 다른 물고기들을 그렸다. 게 그림을 빼고 나머지 9폭은 모두 바닥에 물풀이 있고 상단엔 바위 또는 여러 가지 어여쁜 식물들이 성숙한 자태로 흐드러져 있다. 개인 소장.

도원문진(안중식. 비단에 채색, 164.4×70.4센티미터, 1913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위.) · 풍림정거(안중식. 비단에 채색, 164.4×70.4센티미터, 1913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아래.) 안중식 그림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이다. 겹겹으로 치솟은 산세와 꺾임이 돋보이는 선묘, 깊이와 변화를 주는 숱한 태점의 효과를 낸 아름다운 채색화로 그의 독창적인 짜임새와 치밀한 묘사력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거기에 뛰어난 색채 감각이 어우러져 기이한 느낌,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백악춘효 안중식. 비단에 채색, 129.5×50센티미터, 1915년. 구름과 광화문에 둘러싸인 경복궁은 부끄러운 듯 숲에 가려 지붕들만 보이고 근경의 해태상은 힘을 잃은 듯, 원경의 산 또한 외로운 듯 멀뚱멀뚱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섬세한 묘사와 담담한 채색으로 무척 아름답기만 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posted by 황영찬
2013. 11. 30. 10:53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29 한국사傳 2

 

KBS한국사傳 제작팀

2008, 한겨레출판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21874

 

911

케68ㅎ 2

 

'인물'로 만나는 또 하나의 역사

 

왕에게 죽임을 당한 며느리, 소현세자빈 강씨

베트남을 찾은 최초의 한국인, 진주선비 조완벽

조선의 21세기형 복지가, 토정 이지함…

 

한국사의 씨줄과 날줄이 된 숨은 인물 찾기!

 

역사는 왜곡되지 않은 거울이다. 동양의 역사가들은 역사가 감계(鑑戒)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역사에 비춰보고 경계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역사는 부끄러운 치부마저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만큼 역사는 리얼하다. 《한국사傳》은 시스템 이야기인 기(紀)를 잠시 접어두고 리얼 휴먼스토리로 가득한 전(傳)에 주목하고자 했다. - 서문 중에서

 

오랜 역사만큼이나 각 시대에 다양하게 배출된 인물들의 삶과 고민은 단순한 과거로 끝나지 않는다. 현재에도 되살아나 우리시대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타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이 한국사에 '무한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한다. - 신병주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KBS 역사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도전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의 '드라마'를 추적하다!

 

한국사傳 제작팀

책임 프로듀서 : 장영주

프로듀서 : 윤한용, 김영두, 이완희, 김형운, 송철훈, 정현모, 김현기, 박건, 김종석, 이호경

작가 : 지현주, 정윤미, 윤영수, 정종숙, 박소희, 박민경

 

차례

● 추천사

● 서문 역사를 뒤흔든 '개인'들의 리얼 드라마

 

1 새로운 조선을 꿈꾼 여걸 - 소현세자빈 강씨

병자호란의 발발과 정축화약

조선 땅을 벗어난 최초의 왕실 여인

심양에서의 억류 생활

무역으로 부자가 된 강빈 일행

강빈이 일군 청나라의 조선 땅

점점 멀어지는 시아버지와 며느리

조선의 세자, 천주교를 만나다

소현세자의 죽음과 강빈의 몰락

 

2 조선의 21세기형 복지가 - 토정 이지함

솥을 뒤집어쓴 기인

지배층이 경악할 주장을 펼치다

시대를 앞선 경제 사상가

《토정비결》은 토정의 저작인가

거짓 미치광이가 되어야 했던 토정

오로지 백성을 위해 정치를 하다

조선의 21세기형 복지가

 

3 몽골을 두 번 격파한 고려 승려 - 김윤후

세계 최강 몽골군을 상대한 고려의 승려

처인성 백성들의 처절한 사투

충주성의 승리, 고려 백성의 승리!

역사의 수수께끼, 충주성의 70일 항쟁

김윤후를 외면한 왜곡의 역사

후세에 부활한 고려의 영웅

 

4 왕의 남자 - 내시 김처선

연산군의 분노, '처(處)' 자를 없애다

세 임금이 신뢰했던 내시부 최고 수장

연산군의 폭정을 누가 막을 것인가

광기로 치달은 연산군의 피의 보복

김처선에게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운명의 그날, 내시의 길을 택하다

끝까지 '왕의 남자'였던 내시

 

5 외교 지략가인가, 사대주의자인가? - 김춘추

백제의 칼에 쓰러진 김춘추의 딸과 사위

신라의 생명선, 한강을 지켜라

죽음을 무릅쓴 대고구려 외교

김춘추와 김유신, 두 비주류의 만남

나당동맹을 이끌어내다

백제를 멸망시킨 김춘추의 외교력

외교지략가 vs 사대주의자

 

6 베트남을 찾은 최초의 한국인 - 조완벽

왜군의 포로가 된 진주 선비

왜인의 노예로 전락하다

상인에게 팔려 베트남으로 가다

베트남에서 접한 이수광의 시

10년 만에 돌아온 고향

조선 선비, 우정의 증인이 되다

 

7 조선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화가 - 단원 김홍도

스물아홉, 어용화사로 뽑히다

삼십대 중반, 풍속화로 이름을 날리다

샤라쿠와 김홍도는 동일인일까?

용주사 후불탱화 프로젝트

행정관료 김홍도

오십대, 조선의 대표 화가로 우뚝 서다

불세출의 화가, 쓸쓸한 만년

 

8 무인의 길을 선택한 군주 - 정조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세손 시절

왕위에 오른 사도세자의 아들

무인 정조의 기틀을 확립하다

학자 군주 vs 활쏘기 천재

정조의 친위부대, 장용영의 탄생

노론들을 벌벌 떨게 한 화성 행차

좌절된 개혁의 꿈

 

9 난세의 충신 - 백헌 이경석

치욕의 삼전도비문, 쓸 것인가 말 것인가

남한산성으로 쫓겨난 인조

치욕의 삼배구고두레

난세를 헤쳐간 실무형 관료

노블레스 오블리주

삼조의 충신, 잊혀진 그 이름

 

10 조선의 과학 수사관 - 정약용

수사의 제1원칙, 죽은 자도 다시 보라

과학수사의 교과서 《흠흠신서》

함봉련 사건, 진실은 무엇인가?

고의와 과실을 구분하라

법이냐 유교윤리냐, 유교국가의 딜레마

무분별한 복수를 제한하라

신중하고 신중했던 과학 수사관

 

1

새로운

조선을 꿈꾼 여걸

--- 소현세자빈 강씨

 

조선 인조 23년(1645) 가을.

한 여인이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왕은 끝내 외면한다.

왕의 며느리인 소현세자빈 강씨.

그녀와 인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세자빈은 시아버지에게 사약을 받은 것일까?

김포시 월곶면의 갑곶나루

삼전도비. 사적 제101호.

옛 고려관이 있던 자리.

청나라의 초기 유물을 전시해놓은 심양고궁박물관 전경.

옛날 강빈의 농장이 있었던 사하보의 현재 모습.

강빈의 농장에서 일했던 일꾼들의 이름을 기록한 《심양장계》 부분. 포로 출신 조선인들의 이름이 실려 있다.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 태종의 초상화.

강빈과 소현세자가 자주 찾았던 북경의 천주교회 남당(南堂) 내부.

소현세자가 북경에서 교류했던 아담 샬 신부.

예전 흠천감에 해당하는 북경 고관상대와 그 내부.

 

2

조선의

21세기형 복지가

--- 토정 이지함

 

1578년 7월, 충청남도 아산현 관아.

고을의 백성들이 뛰어 나와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그 고을 현감의 죽음 때문이었다.

부임한 지 불과 3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고을 현감의 죽음.

백성들은 마치 제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피 울었다고 《실록》은 전한다.

그가 바로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 이지함이다.

토정 이지함의 생가 터. 충남 보령시 청라동.

숙종이 한산 이씨 가문에 내린 화암서원.

토정 이지함. 고려말 목은 이색의 6대손이다.

조선시대 양반과 농민의 생활을 담은 풍속화.

서울 마포구 토정동. 토정이 살던 당시에는 지대가 낮고 물이 차서 쓸모없는 땅이었다.

마포 한강변에 토종 이지함이 살았던 집터.

19세기 서울 지역을 그린 경강부임진도(京江附臨津圖) 일부. 한강변의 마을 한곳에서 이지함의 호를 따서 붙인 '토정(土亭)'이라는 지명을 발견할 수 있다. 규장각 소장.

삼개포구(마포포구). 황해를 거쳐 서울로 들어오던 물화 집산의 포구.

옛 마포나루.

《토정비결》.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

《토정비결》은 70퍼센트 이상이 행운의 괘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토정이 현감으로 재직했던 아산현 관아의 정문인 여민루. 충남 아산시 영인면.

 

3

몽골을

두 번 격파한 고려 승려

--- 김윤후

 

1592년 임진왜란.

물밀듯이 밀려드는 왜군에 조선의 관군이 대패하자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의병 모집 격문이 나붙었다.

격문에 등장한 인물은

고려 대몽항쟁의 영웅, 김윤후(金允侯)였다.

그가 30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조선 의병 운동의 상징으로 부활한 것이다.

고려 백성과 함께 세계 최강 몽골군을 두 차례나 격파했던 김윤후.

그는 고려의 대몽항쟁(1231~1259)을 가능하게 했던 결정적 인물이었다.

김윤후의 영정.

처인성 전투 복원화.

처인성 승첩 기념비.

처인성 발굴 당시 사진. 기둥을 세웠던 구덩이가 보인다.

처인성터 발굴 당시 나온 토기 파편들.

강화의 궁궐을 보호하는 내성. 원래 토성이었지만 지금은 조선 숙종 대에 석성만 남아 있다.

강화의 모습.

몽골군의 5차 침입 경로.

경기도 안성의 죽주산성. 경기도 기념물 제69호.

몽골군을 격퇴할 당시 죽주성 방호별감이었던 송문주 장군의 사당.

《훈국신조기계도설》에 실려 있는 쇠뇌 그림.

다인철소에서 발국된 용광로 외형.

충주 대몽항쟁전승기념탑과 김윤후 동상.

몽골이 고려를 여섯 번째로 침입할 당시의 세조 쿠빌라이 칸.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의병장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종용사.

금산혈전순절도.

 

4

왕의 남자

--- 내시 김처선

 

1505년 4월 1일.

연산군이 내시 김처선을 겨냥해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이 가슴에 박혔지만 김처선은 의연했다.

연산군은 그의 다리마저 잘랐다.

"일어나라, 어명이니라."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걸음을 걸으시옵니까?"

자신이 섬기던 임금의 손에 베이고 찔려 죽어간 내시 김처선.

대체 무엇 때문에 김처선은 그토록 참혹한 죽임을 당했을까?

경북 봉화군 닭실마을 기와촌. 과거 답안에 '처(處)' 자를 썼다는 이유로 합격이 취소된 선비 권벌의 종가가 있다.

김처선의 집터에 연못 그림만 남아 있는 옛 전의현 지도.

성종 왕릉. 김처선은 연산군 대신 3년간 성종의 능을 지키는 시묘살이를 했다.

일반인 출입을 제한했던 금표. 경기도 고양시 소재.

인조 때 통훈대부를 지낸 승극철 부부의 묘.

 

5

외교지략가인가,

사대주의자인가?

--- 김춘추

 

서기 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백제 700여 년 역사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역사에 패자가 있으면 승자가 있는 법.

그해 8월, 승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라의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백제의 수도 사비성에 입성한 것이다.

백제를 멸망시키겠다던 김춘추의 오랜 열망과 복수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지금의 경남 합천에 있던 대야성은 신라의 서쪽 국경을 지키는 최고 요충지였다.

642년 8월, 대야성 전투에서 백제를 맞아 싸웠던 신라 장수 죽죽의 비석. 품석이 백제에 항복했다는 기록이 뚜렷이 남아 있다.

신라 화랑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새겨놓은 임신서기석. 보물 제1411호.

김춘추와 김유신, 문무왕까지 삼국통일 세 주역을 모신 경주 통일각.

당 태종의 초상.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김춘추에 관한 기록. "춘추는 얼굴이 잘생겼고, 쾌활하게 말을 잘했다"는 대목.

선덕여왕 영정.

당나라가 김춘추를 환대한 이유는 장기적으로 신라의 군사력을 빌려 고구려를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공자의 신위(神位).

7세기 중반에서 8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용이 나왔는데 모두 중국식 옷을 입고 있다.

김유신.

정림사지 5층석탑.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것을 기념한다는 소정방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무열왕릉.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