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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27. 10:58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40-1 부모와 함께 하는 문화유산 상식여행

 

▲ 해남 미황사 대웅보전

▲ 예산 수덕사 대웅전  건립연대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이다. 1937년 수리할 때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을 기준으로 고려시대 건축물들의 연대를 짐작할 수 있으니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측면에서 바라보는 대웅전의 모습이 일품이다. 앞뒤로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맞배지붕의 선과 건물 옆면에 구성된 회벽과 목부재가 만들어 내는 구도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정면 5칸, 측면 3칸 다포양식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장대석으로 쌓은 낮은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웠다. 겉모습은 맞배지붕에서 오는 단아함과 본전다운 무게를 함께 갖추었다. 창살의 문양이 시원하면서도 아름다운 건물이다.

▲ 부여 무량사 극락전  일반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2층 불전이다. 아랫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 윗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외부에서 보면 2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아래위가 뚫려 잇다. 극락전 내에는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정토로 인도한다는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고,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두고 있다. 극락전의 현판은 김시습이 쓴 것이라고 한다.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목조건축물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 주심포양식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기둥머리나 기둥뿌리에 비해 가운데 배 부분의 지름이 더 큰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하다. 주심포양식의 기본을 가장 잘 남기고 있으며, 가구방식이나 세부수법에 있어서 후대의 건물에서 보이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간결하다는 특징이 잇다. 무량수전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이다.

▲ 김제 금산사 미륵전  우리 나라에서 보기드문 3층 법당이다. 미륵장륙상을 봉안하였다 해서 용화전, 산호전, 장륙전이라고도 불린다.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것을 인조 13년(1635) 수문대사가 중건하였다. 외관상으로는 3층 건물이지만, 안은 통층으로 되어 있다.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3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1층에서 3층으로 갈수록 체감률이 커서 장중하고 든든한 느낌을 준다. 1층에는 대자보전, 2층에는 용화지회, 3층에는 미륵전이라 쓰인 현판이 붙어 있다.

▲ 대구 파계사 원통전  1977년 봉안된 보살상의 개금불사 때 영조의 어의가 나와서 파계사의 중심전각이 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원통전은 '관음전'이라고도 하며,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한다.

 

5교9산은 무엇인가

5교는 신라불교에서 경전과 교리를 중시한 교종의 5종파이다. 선덕여왕 때 자장이 통도사를 중심으로 세운 계율종, 경덕왕 때의 진표가 금산사를 중심으로 세운 법상종, 무열왕 때의 보덕이 경복사를 중심으로 세운 열반종, 문무왕 때 원효가 분황사를 중심으로 세운 법성종, 문무왕 때 의상이 당나라에 가서 화엄교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부석사를 중심으로 세운 화엄종 등이다.

9산은 좌선을 통한 해탈을 중시하고, 설교 문자 대신 불심을 전하는 것을 중시한 선종의 9개 사찰이다. 통일신라시대 승려들이 중국에 가서 달마의 가르침을 배우고 돌아와서 세웟다. 흥척국사가 남원 실상사에서 개산한 실상산문, 도의국사가 장흥 보림사에서 개산한 가지산문, 혜철국사가 곡성 태안사에서 개산한 동리산문, 도윤국사가 영월 흥녕사에서 개산한 사자산문, 범일국사가 강릉 굴산사에서 개산한 사굴산문, 도헌국사가 문경 봉암사에서 개산한 희양산문, 현욱국사가 창원 봉림사에서 개산한 봉림산문, 무염국사가 보령 성주사에서 개산한 성주산문, 이엄이 해주 광조사에서 창건한 수미산문 등을 말한다.

 

불상이 없는 불전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은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둔다. 부처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는 곧 부처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불상을 두지 않는다. 대신 전각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절을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파한 중인도 마가다국 가양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의 적멸도량을 뜻한다.

우리나라에는 5곳의 적멸보궁이 있는데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오대산 적멸보궁 등이 그곳이다. 모두 신라시대 때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 온 불사리 및 정골을 직접 봉안해 두었다. 다만 정암사의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서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한 것이다.

 

천불전

해남 대흥사의 천불전은 가운데 삼존불을 비롯해 옥으로 만들어진 1천불이 모셔져 있다. 천 가지 형상을 한 천불상은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근본 사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곳의 천불상은 약 6년간 10명의 장인이 조각한 것으로 경주에서 만들어졌다.

대흥사로 옮기기 위해 3척의 배에 나눠 싣고 항해하던 중 배 한 척이 풍랑을 만나 일본 장기현으로 떠내려갔다. 일본인들은 3백여 개의 옥불이 온 것을 이상하게 여겨 서둘러 절을 짓고 봉안하려 했는데, 일본인들의 꿈에 옥불들이 나타나 "조선국 해남 대흥사로 가는 길이니 이곳에 봉안해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결국 일본인들은 옥불을 거두어 해남으로 보냈는데, 일본을 거쳐온 불상들은 밑바닥에 '日'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 법천사지지광국사현묘탑  경복궁 경내에 있는 높이 6.1m의 고려시대 부도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부도 중에서 가장 크고 특별한 걸작으로 꼽힌다. 본래는 강원도 원주의 법천사 옛터에 잇었던 것인데,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반환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부도의 주인은 고려시대의 고승 지광국사다. 신라시대 이후 부도의 전형 양식으로 내려온 팔각원당형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양식을 하고 잇다. 사각형의 기단부를 구성하고, 그 위에 탑신과 상륜부를 올렸다. 넓은 지대석의 네 모서리에 용의 발톱 모양 조각을 지면에 닿게 하여, 지대석이 땅을 움켜쥐고 있는 듯한 안정감을 주고 있다. 2단의 기단 각 면에는 신선, 연화문, 초문 등이 가득 조각되어 잇다. 탑신의 앞뒤에는 문비가 있고, 좌우측 면에는 페르시아 계통의 창문과 영락 등을 조각하였다. 옥개석도 사각형으로 부처, 보살, 봉황 등이 가득 새겨져 있다.

▲ 부도의 세부 명칭

▲ 원주 거돈사지원공국사승묘탑  높이 2.68m의 고려시대 부도. 부도의 전형인 팔각원당형으로 비례가 적당하고, 중후한 품격을 풍기는 우수한 작품이다.

▲ 남원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  높이 2.42m의 통일신라시대 부도. 신라 선문구산의 하나인 실상사파를 개산한 증각대사 홍척의 묘탑이다. 방형 지대석 위에 8각으로 된 2단의 하대석이 놓였다. 옥개석은 낙수면에 기왓골이 표현되고, 처마에는 목조건물의 서까래가 표현되었다.

▲ 화순 쌍봉사철감선사탑  높이 2.3m의 통일신라시대 부도. 팔각원당형의 수법을 따르고 있다. 다른 부도에 비해 각 부분의 세부조각이 나무를 깎아 조각한 듯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다.

▲ 구례 연곡사동부도  높이 3m의 통일신라시대 부도. 현존 부도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탑에 새겨진 세부 조각이 마치 나무를 깎아 놓은 듯 정교하고 뛰어나다.

▲ 경주 불국사사리탑  높이 2.06m의 고려시대 부도. 옥개석의 일부가 훼손되었으며 석질이 약해서 곳곳에 풍화현상이 있지만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보전되어 있다.

▲ 해남 대흥사부도전에는 호국불교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서산대사를 비롯 초의, 호암, 상월 등 13명의 대종사와 만화, 원오, 연해, 광열 등 13명의 대강사를 위시해 여러 고승들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 양양 진전사지부도  속초공항에서 설악산 방향으로 20여리 안쪽에 있는 둔전마을의 진전사터에 세워진 높이 3.17m의 통일신라시대 부도다. 기단부는 일반형 석탑과 마찬가지로 사각형의 2중 기단이고, 탑신 위로는 팔각으로 된 팔각원당형 부도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신라 선문구산의 효시였던 가지산파를 개산한 도의국사의 부도로 추정된다.

 

방등계단이란?

승려가 계를 받는 곳으로 높이 쌓아올렸다고 해서 단이라고 한다. 석가모니 생존 시 비구들이 계를 받기를 원하자, 석가가 허락하여 기원정사 남동쪽에 단을 세우게 한 것이 시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 자장이 중국으로부터 도입해와 통도사에 처음으로 계단을 세웠다. 금강계단은 부처의 사리(진신사리)를 모셔놓고 수계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부처의 사리가 부처의 현신이라고 믿는데서 온 것이다.

 

▲ 강진 무위사선각대사편광탑비  벽화보존각 건너편에 있는 높이 2.35m의 고려시대 부도. 신라 말기의 고승인 선각대사의 것으로 귀부와 비신, 이수를 모두 갖춘 완전한 모습이다. 비신을 받치고 있는 귀부의 머리는 조각이 뚜렷하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이수 부분은 운룡문과 쌍룡문으로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는 우수한 조각기법을 보여준다. 선각대사는 가지산 보림사를 연 체징선사에게 사사하고,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14년 만에 돌아와 무위사에 8년간 머물렀다. 선각이란 이름과 편광탑의 명칭은 그가 입적하자 고려 태조가 내린 것이다.

▲ 장흥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  비받침은 거북의 몸에 여의주를 문 용의 머리로 표현되었다. 비몸의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김영이 짓고, 글씨는 김원과 김언경이 썼다고 한다. 처음 시작부터 7행의 '선(禪)'자까지는 김원이, 그 다음 '사(師)'부터는 김언경이 쓴 것이라고 한다.

문경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봉암사의 창건한 지증대사의 부도다. 지증대사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창시자다. 882년 지증대사가 봉암사에서 입적하자 왕은 '지증'이란 시호와 '적조'라는 탑명을 내리고 최치원에게 비문을 짓도록 하였다. 최치원의 사산비명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다.

 

 등에 불을 밝히는 것은 어둠과 번뇌를 물리치고

 영원한 진리의 광명을 밝힌다는 의미다.

등의 밝힘으로 어두운 마음이 부처의 지혜처럼 밝아지고

따뜻한 마음이 온 세상에 퍼져 부처의 자비가 충만해진다고 한다.

 

▲ 석등의 세부 명칭

 

연등

연등은 사월 초파일인 석가탄신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제작하는 연꽃 모양의 등이다. 등이라는 것은 어둠을 밝히는 것이므로 불교에서는 이를 지혜에 비유한다. 부처의 지혜와 가르침을 대명등이라고 하여 부처의 법등이 중생의 어리석음과 세상의 어둠을 밝혀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불전에 등불을 켜고, 연등행사를 치르는 것은 부처의 지혜와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해 온 세상에 진리의 법등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 논산 관촉사석등  고려시대 석등. 사각형의 화사석을 2층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 구례 화엄사각황전앞석등  통일신라시대 석등. 지대석과 화사석을 연결하는 기둥이 장구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전라도 지방의 석등에서 보이는 특색이다.

▲ 보은 법주사쌍사자석등  통일신라시대 석등. 기둥을 뒷발을 들고 가슴을 마주하고 서서 앞발을 들어 앙련의 상대석을 받치는 사자로 대신하였다.

▲ 영주 부석사무량수전앞석등  신라시대 석등. 화사석 조각의 세련되고 단아함이 매우 뛰어나다.

▲ 당간지주의 세부 명칭

▲ 강릉 굴산사지당간지주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다. 지주의 아랫부분이 땅에 묻혀 있어서 당간을 세웠던 기대석의 구조는 알 수 없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당간지주는 각 면에 선으로 문양을 조각하거나 홈을 파는 양식을 보이는 데, 굴산사지당간지주는 아무런 조각 장식이 없다. 가공에 있어서도 매우 소박하다. 지주의 안쪽 아래와 위 두 군데에 당간을 고정시키던 간이 마련되어 있다. 규모가 장대할 뿐 아니라 수법도 강인한 느낌을 잘 나타내고 있는 조형미를 자랑하고 있다.

▲ 보성 대원사극락전수월관음도  전통적인 수월관음의 도상을 따르면서도 흔히 화면 하단 구석에 작게 묘사되는 선재동자가 관음 뒤에 뚜렷하게 표현되고, 두광 밖에서 나는 것으로 묘사되는 청조를 선재동자가 두 손으로 잡고 잇는 점이 특이하다.

▲ 울진 불영사영산회상도  가운데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10대 보살, 사천왕상, 상단의 10대 제자 등이 배열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영산회상도에는 8대 보살이 그려지는데, 불영사영산회상도에는 10대 보살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석가여래 아래 두 보살이 유난이 큰 것도 이채롭다.

▲ 강진 무위사극락전아미타후불벽화  앉은 모습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편에 관음보살, 오른편에 지장보살이 서 있는 아미타삼존불벽화다. 조선 성종 7년(1476)이라는 제작 연대와 화원 대선사 해련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조성 작가를 명확히 알 수 잇기에 조선 초기 불화 연구에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온화한 색채나 표현 등 고려 후기 불화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조선 초기 대두된 양식을 반영하는 조선 전기 불화의 대표작이다.

 

불화의 내용은?

불화는 주로 부처의 깨달음, 설법, 수행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팔상도, 영산회상도, 십우도 등이 있다.

팔상도는 석가의 일생 가운데 가장 극적인 장면만을 그린 불화다. 초기에는 보통 부처의 생애를 탄생, 득도, 설법, 열반 등 네 가지 장면으로 압축하여 묘사했으나 대승불교에서 여덟 장면으로 발전시켜 묘사한 것이 팔상도이다.

    ①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상

    ② 룸비니동산에서 내려와서 탄생하는 상

    ③ 4문에 짜가 속세를 관찰하는 상

    ④ 성을 넘어 출가하는 상

    ⑤ 설산에서 수도하는 상

    ⑥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에게 항복받는 상

    ⑦ 녹아원에서 처음 포교하는 상

    ⑧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상 등이다.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여러 불 · 보살에게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대웅전의 후불화로 봉안되거나 영산회상도를 봉안하기 위하여 지은 영산전의 후불화로 모셔진다. 석가가 보좌에 앉아 보살중과 십대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고, 호법신인 사대왕이나 팔부신장이 도량을 호위하고 국왕과 대신, 천선녀가 설법을 듣는 광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십우도는 선종의 수행 입문 과정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열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 불화다. 불자의 수행로를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심우도하고도 한다.

    ① 심우 :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음

    ② 견적 : 소의 발자국을 봄

    ③ 견우 : 소를 발견함

    ④ 득우 : 소를 붙듦

    ⑤ 목우 : 소를 길들임

    ⑥ 기우귀가 : 소를 타고 깨달음의 세계인 집으로 돌아옴

    ⑦ 망우존인 : 소를 잊고 안심함

    ⑧ 인우구망 : 사람도 소도 공이라는 사실을 깨달음

    ⑨ 반본환원 : 있는 그대로의 전체 세계를 깨달음

    ⑩ 입전수수 : 중생제도를 위해 길거리로 나감

▲ 경주 성덕대왕신종  현존하는 범종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운 종이다. 성덕대왕신종이라는 본명보다 '봉덕사종', '에밀레종'이란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잇다. 봉덕사종이란 이름은 종이 처음 만들어져서 봉덕사에 걸어두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에밀레종이란 이름에는 슬픈 전설이 서려있다. 종을 주조하기 위해 전국에서 시주를 모았는데, 너무 가난해서 아무것도 바칠 것이 없던 부부가 어린 딸을 바쳤다. 결국 소녀는 종 속에 녹아 들어갔고, 완성된 종을 울릴 때마다 '에밀레'하고 외치는 아이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해서 에밀레종이라고 한다. 정상부에는 화려한 연꽃잎이 장식된 음관과 박진감 넘치는 용으로 장식한 용뉴가 있다. 종신의 위에는 견대(상대)를, 아래에는 구연대를 두르고, 그 속에 보상당초문을 장식하였다. 견대 밑에는 4개의 유곽을 설치하고, 유곽 밑에는 서로 마주보는 4구의 비천상을 배치하였다. 보상화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하늘로 천의자락과 구슬 장식 등이 휘날리는 가운데 연꽃 위에 무릎을 세우고 공양하는 비천상은 우리나라 비천상을 대표하는 수작으로 꼽힌다. 종이 제작된 8세기 중엽은 통일신라의 예술이 극치를 이루던 전성시대로 당대 최고의 기술이 집약되었다. 황동 12만근, 높이 3.33m, 구경 2.27m라는 종의 크기도 그러하려니와, 거대한 종을 일전한 두께와 밀도로 한번에 주물을 부어 만든다는 것은 신비에 가까운 일이다.

▲ 범종의 세부 명칭

▲ 보성 대원사범종각

▲ 평창 상원사동종  신라시대의 종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이다. 높이 1.67m, 입지름 91cm, 종 모양의 전체미나 장식미가 뛰어나며 종소리가 웅장해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힌다. 특히 종신에 구름 위에서 하늘을 날며 공후(하프와 비슷한 현악기)와 생황(아악에 쓰이는 관악기의 하나)을 연주하는 비천상이 뛰어나다.

▲ 공주 갑사동종  높이 131cm, 입지름 91cm의 조선 초기 종이다. 정상부에 음통이 없고 두 마리의 용으로 고리를 만들었다. 상대에는 범어 31자를 새겼다. 종신에는 4개의 당좌를 마련하고 그 사이에 구름 위에 서 잇는 지장보살을 표현하였다.

 

법당의 처마에 매달려 있는 작은 종은 무엇인가요?

흔히 절의 대웅전이나 탑의 처마에 매달려 있는 작은 종을 보게 되는데, 이는 풍경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풍탁'이라고도 한다. 풍경은 주로 스님들을 경책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좌선하는 수행자가 졸거나 마음이 나태해져서 자세가 흐트러질 때 이를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풍경은 종의 방울에 물고기 모양을 한 얇은 판이 매달려 있다. 물고기가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도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법고

▲ 목어

▲ 금고

 

스님들은 왜 삭발을 하나?

석가모니는 출가를 결심하고 "나는 사람들과 더불어 고통에서 해탈할 것을 서원하는 뜻으로 삭발을 하겠다"고 말한 후 머리를 깎고 수행길을 떠났다. 스님들의 삭발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사람들의 번뇌에 비유해서 번뇌초 또는 무명초라고 한다. 그래서 번뇌를 없앤다는 뜻에서 머리와 수염을 깎는다. 매달 4자나 9자가 글어 있는 말을 삭발일로 정하여 머리를 깎는다.

▲ 발우

▲ 염주

 

불전사물은 무엇인가?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사물이라 하며 주로 범종각에 보관한다. 범종은 절에서 대중을 모으기 위해 때를 알릴 목적으로 치지만, 의식에서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이란 말이다. 북소리가 세간에 널리 울려 퍼지듯이 불법의 진리도 중생의 가슴을 울려 일심을 깨우친다는 의미가 있다. 법고를 치는 것을 잘 살펴보면 나무로 된 채로 마음 심자를 그리면서 두드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식에서 법고는 축생을 제도하기 위한 법구이다. 목어는 고기 모양의 나무로 된 것, 어류를 제도하기 위해 사용한다. 목어를 줄여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목탁이다.

운판은 선종에서 재당이나 부구에서 대중에게 끼니 때를 알리기 위해 울렸던 법구이다. 운판을 치는 목적은 날아다니는 조류를 제도하기 위해 사용한다.

posted by 황영찬
2013. 4. 26. 16:09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43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정호승

2003, 열림원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6667

 

811.6

정95풀

 

자연을 닮은 시

어른이 읽는 동시

 

동심으로 돌아가 어린이가 되고 싶다는 시인의, 엄마와 동무들과 동네 이야기는 그대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기린은/욕심이/좀 많은가 봐/목에/꽃다발을/많이 걸려고/저렇게/목이 긴 거야"하는 표현은 어찌나 신선한지! 이밖에도 그의 말대로 우리 안에서 자라지 않고 머물러 있는 소년과 소녀들이 "그래요! 참 놀라운 발견이네요!"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고 싶은 글들이 많다. 그리움과 추억의 오솔길에서 노을과 별을 안고 오래도록 머물고 싶게 만드는 이 동심의 시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이해인(수녀, 시인)

정호승 시인은 저문 봄날 산그늘 속에 서 있는 풀잎같이 해맑은 시인이다. 그가 이제 어린 영혼을 만나 풀잎 끝에 이슬을 달았다. 그가 달고 있는 이슬은 별처럼 영롱하고 깨끗하다. 그의 이슬은 하늘의 별이 되어 우리 머리 위에 빛나기도 하고, 우리들 마음에 떨어져 아름다운 파문을 일으키며 때묻은 우리들의 잔주름을 걷어내기도 한다. 그의 이슬 같은 시 속에 들어가 나도 어린이가 되어 놀고 싶다.

- 김용택(시인)

 

오늘의 시인 정호승은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갈 힘과 사랑을 얻을 데가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동심을 잃지 않고 사는 이는

맑은 물처럼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세상살이가 각박하니까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되찾아

보다 수수한 인간으로 살아가야겠기에,

동시를 쓰면서 스스로도 그런 마음을 얻고

그 동시를 통해 독자들에게 그런 마음을

되찾게 해주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른이 동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서부터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 박덕규

 

정호승의 시詩는 한 그루의 나무입니다.

봄이면 눈처럼 환한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달고 맛난 열매를 맺으며

차가운 겨울에는 헐벗을 줄도 아는 나무.

나무인 시詩들이 모여 숲을 이룹니다.

숲으로 새들이 날아들고 다람쥐들이 모여듭니다.

숲 속에서 우리는 맑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가 됩니다.

맑은 눈동자에 풀잎 하나가,

풀잎에 새겨진 상처가

아프게 들어옵니다.

아이는 가만가만 상처를 매만집니다.

 

정호승의 시詩를 읽는 순간순간이 행복합니다.

 

정호승은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등이,

시선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흔들리지 않는 갈대》 등이,

어른이 읽는 동화로 《연인》 《항아리》 《모닥불

《기차 이야기》 등이, 산문집 《소년부처》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눈비 그치면

햇살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시인의 말

 

이 시집은 제가 어린이가 되기 위하여 잠시 엄마 품에 안겨 쓴 시들을 모은 것입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잠시 엄마 품에 안겨 잠들어보세요.

그동안 참았던 서러움의 눈물이 다 녹아내리고 세상을 살아갈 힘과 사랑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제 동심을 잃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동심을 잃지 않고 사는 이는 맑은 물처럼 살 수 있습니다.

하늘 나는 새처럼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정호승

 

|차례|

 

1...

무지개떡 / 여름밤 / 얼굴 / 어떡하지? / 씨앗 / 밥 / 개불알꽃 / 붕어빵 / 봄날 / 난초 / 대부아빠 / 북두칠성 / 우정 / 노근이 엄마 / 보신탕 / 할머니 젖 / 신발 / 기다림 / 서울 / 사과 / 보리새우

 

2...

별 / 풀잎소리 / 무 / 눈사람 / 저녁별 / 꽃을 보려고 / 개밥바라기별 / 가을밤 / 낙엽 / 제비 / 나무 / 봄기차 / 고추잠자리 / 가을 연못 / 병아리 / 홍도 / 산정호수 / 불일폭포 / 눈길 / 기린

 

3...

밤하늘 / 상처 / 개미 / 새 / 친구에게 /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그 소녀 / 용서해주세요 / 나무의 마음 /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새싹 / 걸레 / 뒷모습 / 이중섭 / 새우 / 지붕 / 종 / 정채봉 / 나무와 사람 / 내 동생 / 김밥 할머니

 

4...

보름달 / 엄마 / 나의 꿈 / 반딧불이 / 춘란 / 소년 / 첫눈 오는 날 / 눈사람 / 사랑 / 밥 한 그릇 / 비둘기 / 달팽이 / 가을날 / 민들레 / 아버지 / 참새 / 꾸중 / 무릎잠 / 꽃과 나 / 파도와 놀다 / 도둑고양이 / 겨울 저녁

 

해설 · 박덕규

 

어떡하지?

 

내 얼굴에 입이 없다면

밥은 못 먹어도 좋으나

엄마 뺨에 키스 할 수 없어서

어떡하지?

 

내 얼굴에 눈이 없다면

밤하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아도 좋으나

엄마를 바라볼 수 없어서

어떡하지?

 

내 얼굴에 코가 없다면

숨을 쉴 수 없어도 좋으나

엄마 냄새 맡을 수 없어서

어떡하지?

 

고추잠자리

 

엄마가 장독대 고추장을 퍼담고

그만 장독 뚜껑을 닫지 않았다

감나무 가지 끝에 앉아 있던

고추잠자리 한 마리

우리집 고추장을 훔쳐먹고

더 새빨개졌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사랑

 

꽃은 물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새는 나뭇가지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달은 지구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나는 너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posted by 황영찬
2013. 4. 26. 12:26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42 택견

 

글 / 이용복●사진 / 이갑철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8018

 

082

빛12ㄷ  162

 

빛깔있는 책들 162

 

이용복-------------------------------------------------------------------------

부산시 태권도협회 전무이사, 부산시 체육교습자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송덕기, 신한승으로부터 택견을 사사한 뒤 한국전통연구회와 사단법인 대한택견협회를 창설하고, 현재 협회 상임 부회장 겸 연구회 회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무예 택견』 『위험할 때 호루라기 세 번』 『택견이란 무엇인가』와 「택견의 구성 원리」 등의 논문이 있고, 이 책과 같은 내용으로 '민족무예 택견'(신우 프로덕션)이라는 비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한 바 있다.

 

이갑철-------------------------------------------------------------------------

1959년 경남 진주 출생. 신구전문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역동성있는 인물 작품을 주로 발표하였다.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 사단법인 대한택견협회 / 문의 전화 516-2707

 

|차례|

 

머리말

택견의 역사

결련택견

택견의 가치

예의

택견의 품계와 심사

택견 경기

택견의 구성

택견의 기본 기술

택견의 연습

기합과 호흡

투기에 있어서 상대방과의 거리 유지와 자기 몸의 중심 이동은 승부의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무술에서 발의 움직임은 모든 기법의 근본이 된다. 택견은 발질에 있어서 단연 다른 무술의 추종을 불허한다.

19세기 궁중 화원인 혜산 유숙이 그린 「대쾌도(大快圖)」. 씨름과 택견이 같은 공간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두 가지가 동질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후반 기산 김준근이 그림 풍속도. 앞쪽에 머리를 땋은 총각과 갓을 쓴 남정네가 택견을 어우르고 있다. 가운데 엉겨 붙은 두 사람의 힘 겨루기를 얼핏 씨름으로 볼 수 있으나 택견에도 이와 같은 기술이 있다.

조선시대 마지막 택견꾼인 송덕기(1893~1987년)

인간문화재 신한승(1928~1987년). 택견을 현대적 감각에 맞춰서 재정리하여 문화재로 지정받는 데 공헌하였다.

이용복은 송덕기, 신한승으로부터 택견을 전수받아 한국전통택견연구회, 대한택견협회를 창설하였다.

일제의 억압으로 도태되었던 택견은 송덕기, 신한승에 의해 오늘날 우리에게 전승되고 있다. 얼러메기기 하는 송덕기와 신한승.(1984년 서울)

무예 수련에서 예절이 강조되는 것은 기술 전승상의 윤리적 의미와 술리(術理)적 중요성 때문이다. 사진은 읍(揖)하는 자세.

"택견은 하나의 춤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택견은 춤의 영역에서 연구되기도 한다. 율동적이고 부드러운 택견의 동작은 여성의 건강 체조나 호신술로도 적당하다.

송덕기로부터 품밟기 지도를 받고 있는 이용복

송덕기 선생의 활갯짓 모습(94세 당시)

 

 

 

 

 

 

 

posted by 황영찬
2013. 4. 26. 12:02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41 초발심자경문

 

원혜스님 강독

2002, 여래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0190

 

224.8

원94초

 

《초발심자경문》은 스님들에게 특별한 감회를 불러 일으킵니다. 출가의 뜻을 품고 처음 절에 들어와 몸은 고단하고 잠은 쏟아지고, 모든 일에 서툴러서 늘상 호통만 듣던 어렵고 힘들던 시절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중략-

살아가다보면 타성에 젖어 아무 생각 없이 하루 하루를 지내는 경우가 많을 것 입니다.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무엇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야말로 처음 발심할 때의 마음,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환희심에 불타던 순수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처음 발심했을 때를 되새기고 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불자들에게 《초발심자경문》을 권합니다. - 책머리에서

 

설담(雪潭) 원혜스님 약력

마곡사 입산

범어사 강원 졸업

고란사 주지

포교원 포교부장

파라미타 이사

강북장애인복지관 관장

전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집행위원장

 

현재 수도산 봉은사 주지

 

저서로는 《천년을 향기로운 생명으로》(도서출판 여래) 《열린마음 열린불교》(우리출판사) 《아름다운 수행생활》(봉은출판부) 등이 있다.

 

목차

 

서문

 

초발심자경문

 

계초심학인문

    원문

    한문 주

    해설

 

발심수행장

    원문

    한문 주

    해설

 

자경문

    원문

    한문 주

    해설

 

 

 

 

 

 

 

 

 

 

 

 

 

posted by 황영찬
2013. 4. 22. 07:38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40 부모와 함께 하는 문화유산 상식여행

 

오주환 지음

2011, 북허브

 

대야도서관

SB071555

 

- 전국 곳곳의 문화재를 한 권으로 읽는다! -

 

우리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훌륭한 여행자가 되는 길

 

온 가족이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면 상식이 풍부해진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다지만, 내가 아는 역사의 깊이는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문화유산 상식여행'이라는  역사여행 입문서를 쓰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일반 사람에 비해 역사를, 여행을 아주 조금 더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 중에 이런 게 있다. 조선시대 문장가 유한준의 말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전의 것과 같지 않으리라."

여행기자로 이 땅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여행지는 모두 저마다의 역사를 품고 있었다.

폐허가 된 절터에 덩그라니 남은 석탑도, 깊은 산중의 사찰도, 화려한 단청을 뽐내는 건물도, 심지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을 것만 같은 오지의 자연에도 우리의 역사가 있었고, 선인들의 예술혼이 담겨 있었다.

글로써 이것들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이면의 이야기도 찾아내야 한다.

역사가 필요하면 자료를 뒤져야 했고, 옛 이야기라도 들을라치면 마을 어른들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역사에 대해, 문화유산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과정이 한 해 두 해 되풀이되니 나의 여행은 더욱 풍성해졌다.

역사여행은 더 이상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학자나 전공 학생들의 영역으로만 생각되었던 답사의 벽은 무너진지 오래다.

답사라는 거창한 명목이 아니라도, 누구나 여행을 하면서 우리의 것과 만난다.

문제는 만남을 스쳐지나가는 인연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소중한 인연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소중한 인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이란 다름 아닌 관심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을 더 알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역사에 대해 문화유산에 대해 조금의 애정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훌륭한 여행자가 될 수 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지은이  오주환

대학에서 사학을 공부했고 잡지사와 신문사를 거치는 동안 여행기자로 일했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이 어렵고 재미없어 하는 이 땅의 역사와 문화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글 쓰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길 위에서 과거와 현재를 만나고, 세상을 느끼기 위해 늘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이다.

저서로 『문화유산을 찾아서』『답사여행 100배 즐기기』『조선 500년 풍류지를 찾아서』『조선왕조 상식여행』『내 마음 속 꼭꼭 숨겨둔 여행지』 등이 있다.

 

차례

 

프롤로그

 

Part 1 문화유산이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문화유산의 종류

 

Part 2 불교유산

    절

    불탑

    불상

    전각

    부도

    탑비

    석등

    당간지주

    불화

    불구

 

Part 3 목조건축

    목조건축의 특징

    목조건축 구성요소

    공포

    가구

    지붕

    대문

 

Part 4 성곽

    성곽

 

Part 5 석조건축

    석비

    돌다리

    석빙고

 

Part 6 고분

    고분

 

부록

    문화유산 여행 코스

    국보 · 보물 목록

 

여행을 좋아하고, 우리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훌륭한 답사여행자가 될 수 있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 내가 아는 지식을 하나씩 여행지에서 적용시키다 보면 어느새 이 땅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애정을 갖게 된다.

 

불교는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의 정신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해 왔다.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극락에 대한 염원은 두터운 신앙심으로 이어져 곳곳에 절이 세워졌고, 신앙은 뜨거운 예술혼으로 표출되어 전국에 불상, 불탑, 불전 등에 표현되었다.

▲ 김천 직지사 일주문  절 입구에 세워진 첫 번째 문이 일주문이다.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다고 해서 일주문이라 하는데,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심을 뜻하기도 한다. 일주문을 세우는 것은 단순히 절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신성한 곳에 들어서기 전에 세상의 번뇌를 털어내고 마음을 부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하나로 모으라는 뜻에서다. 절 밖은 속세요, 안은 탈속과 성스러움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안거

승려들이 외출을 삼가고 수행에만 몰두하는 것을 안가라고 한다. 본래 인도의 수행자들이 여름철 우기에 폭풍우에 상해를 입기도 하고, 비를 피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벌레들을 죽이는 일이 많이 발생하자 외출을 하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에서 하안거가 유래되었다. 하안거는 4월 보름 다음 날부터 7월 보름날까지 3개월간 행해진다. 겨울이 있는 북방불교권에서는 하안거 외에도 음력 10월 보름 다음 날부터 다음 해 정월 보름날까지 동안거라고 하여 시행하고 있다.

 

절은 인도에서 처음으로 생겨났다.

우기를 피해 공동생활을 하기 위한 공동 주거지에서

출발해 차츰 종교 의례를 행하는 장소로 변화하였다.

 

절은 왜 산에 있나

불교가 국교였던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에는 평지에도 절이 많았다. 그러나 그 뒤에 산 속에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으면서 불교를 탄압했기 때문에 절이 산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불교의 교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속세의 이익이나 행복보다는 자기 수양을 통해 불도를 깨치는 것이 중요하므로 조용한 산 속이 적합했다. 풍수지리도 한 몫 한다. 명산의 좋은 곳에 절을 세워야 나라가 부강해 진다는 믿음이 작용한 것이다. 우리 민족의 산악숭배 사상에도 기인한다. 금강산, 오대산 등 신령이 깃든 산에 절을 짓고 불교의 성지로 발전시켰다.

 

최초의 절

고구려의 불교 도입 이듬해인 소수림왕 3년(373), 평양에 세워진 이불란사와 성문사이다. 신라의 경우에는 아도가 선산지방에서 최초의 포교활동을 한 모례의 집을 들 수 있으나, 공식적인 최초의 절은 이차돈이 순교를 빚은 천경림의 흥륜사를 효시로 보고 있다.

 

불가에서 말하는 삼보

불가에서 귀하게 여기는 세가지 보물이다. '깨달은 사람'이라는 부처(불), 부처의 말씀인 불전(법), 부처를 따르는 사람(승)이 그것이다. 삼보가 모셔져 있는 절을 삼보사찰이라 한다.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가 3보사찰이다. 통도사는 부처의 사리와 가사가 모셔져 있어 불보사찰, 해인사는 부처의 말씀인 팔만대장경이 있어 법보사찰, 송광사는 지눌을 위시한 16국사를 배출해서 승보사찰이라 불린다.

 

회랑이 뭐야?

궁궐이나 사찰의 중요한 건물을 둘러싼 지붕이 있는 복도를 달리 부르는 말. 건물의 중앙마당을 구획하거나 신성한 지역을 둘러싸기 위해 설치하였다. 행사가 있을 때는 좌석이나 통로로도 사용된다.

▲ 평양 청암리사지 가람배치도  중앙의 8각목탑을 중심으로 동 · 서 · 북면에 금당을 둔 일탑삼금당식의 전형적인 고구려 가람배치 형식이다.

▲ 부여 군수리사지 가람배치도  남북 일직선상에 남쪽에서부터 차례로 중문, 탑, 금당, 강당 등을 둔 일탑일금당식이다.

▲ 부여 정림사지 가람배치도  백제의 대표적인 탑이 있는 절터답게 탑을 중심으로 중문, 금당, 강당이 나란히 늘어선 일탑일금당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소승불교는 인도의 남쪽 해로를 따라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 등에 퍼진 것으로 남방불교라고도 한다. 자신의 해탈을 구하기 때문에 작은 수레, 즉 소승이라고 한다. 출가자만이 깨달음을 얻고 해탈을 이루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출가승 중심의 교리를 갖고, 전통과 형식에 치우쳐 계율과 교법을 중시한다.

반면 대승불교는 실크로드를 따라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 등으로 전해져 북방불교라고도 한다. 누구나 불성을 지니고 있어 부처의 자비와 지혜를 믿고 보살의 길인 육바라밀의 완성을 위해 정진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소승불교가 자신의 수행에만 치우쳐 있고, 출가자 중심의 계율과 전통을 고집함으로써 형식화되자 이를 개혁하고자 일어난 불교운동이 대승불교이다.

▲ 익산 미륵사지 가람배치도  일탑일금당식 가람배치를 기본으로 삼탑삼금당식 가람배치라는 특이한 형식을 보인다. 군수리사지나 정림사지와 같이 일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으면서, 좌우에 각각 동원과 서원을 두고 별도의 탑과 금당을 세운 것이 특별하다.

▲ 경주 황룡사지 가람배치도  단탑식 가람배치라는 신라만의 가람배치 형식을 취하고 잇다. 백제의 일탑일금당식 가람배치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금당의 수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 경주 감은사지 가람배치도  금당 좌우에 석탑을 배치한 쌍탑식이다. 석탑 남쪽에 중문을 설치하고, 중문 좌우에서 시작하는 회랑이 강당까지 둘러져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가람 배치이다.

 

금당과 법당

가람배치를 설명할 때 일탑일금당식, 일탑삼금당식이란 말을 사용한다. 탑은 무엇인지 금방 알겠는데, 금당이란 말은 다소 생소하다. 금당은 불상이 신앙의 중요한 대사이었던 고려시대 초기까지 보편화되었던 말이다. 부처의 신체적 특징 중 몸에서 은은한 금빛이 풍겨나는 것을 상징해 금당으로 불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예배대상인 부처를 모신 중심 건물이 금당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금당에 모신 부처의 성격에 따라 그 명칭이 달리 불리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천태종 계열 절의 금당은 대웅전, 화엄종 계열은 대적광전, 법상종 계열은 미륵전, 정토종 계열은 극락전을 두어 사찰의 성격을 나타내었다.

법당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종파는 선종이다. 고려시대 중기부터는 교종보다 선종이 크게 유행하면서 법당이 중요한 건물이 되었다. 선종에서는 불상에 대한 예배보다도 조상들의 가르침을 더 중시했기 때문에 금당보다 법당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법당은 부처의 가르침을 설교하는 장소이기에 '영원한 자유와 진리로 충만한 법의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계종과 천태종

조계종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구산선문을 고려 때 합친 종파.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근본으로 삼는다. 천태종은 고려 숙종 2년(1097) 때 대각국사 의천이 교종과 선종의 대립에서 오는 분열과 대립을 정리하여 성립한 종파 잡념을 멎게 하여 마음을 집중케 하고, 바른 지혜로 사물을 바라보고 그 본체를 파악하는 것을 중요시 한다.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넣기 위해 돌을

쌓아 올린 부처의 무덤에서 유래되었다.

석가모니의 사리를 담은 탑은 불상이 조성되기

전까지 불교신앙의 중심이 되었다.

 

▲ 중국탑  중국탑은 높은 누각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치 길쭉한 목조건물처럼 보인다.

▲ 익산 왕궁리오층석탑  목탑양식을 석탑에 재현한 백제계 석탑의 양식

▲ 화순 운주사원형다층석탑  제기 위에 떡을 포개 놓은 것 같아 '떡탑'으로 불린다.

▲ 평창 월정사팔각9층탑  탑신이 4각형에서 벗어나 8각 모양을 이루는 다각형의 다층 석탑을 대표하는 고려 전기의 석탑이다. 고려시대 불교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 경주 불국사다보탑  우리나라 특수형 탑을 대표하는 석탑이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화강암으로 표현한 뛰어난 작품이다.

▲ 석탑의 세부 명칭

 

탑돌이를 하는 이유

불상이 없던 초기 불교 시대에는 탑이 바로 부처님의 몸을 상징하였다. 모든 불교행사가 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탑에 예배할 때에는 먼저 탑을 향해 합장 반배한 다음 합장한 채로 시계 방향으로 세 번 돌고 나서 다시 합장 반배한다.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은 인도의 전통 예법에 따라 자신의 어깨가 항상 탑쪽을 향하게 하기 위함이다.

▲ 화순 쌍봉사 대웅전  원래 목조 삼층탑이었던 것이 불에 타자 삼층지붕을 개조해 대웅전으로 바꾼 것이다. 건물 내부는 밑바닥부터 3층까지 뚫려 있으며, 건물 가운데에 꼭대기까지 이르는 나무기둥을 박았다.

▲ 보은 법주사 팔상전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의 목조탑이다. 웅대한 크기에 비해 올라갈수록 좁아드는 축소율이 커서 지나치게 안정감이 강조되어 있다. 층에 따라 건물의 양식이 다른데, 1층부터 4층까지는 주심포양식이고 5층은 다포양식으로 꾸몄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그린 팔상도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부른다.

▲ 법흥사지7층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이다. 기단부는 네모꼴로 팔부중상과 사천왕상, 12지신을 양각한 판석을 세웠고, 탑신부는 진회색의 무늬 없는 벽돌을 어긋나게 쌓아올렸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유실되었다. 통일신라시대 법흥사의 탑이다.

▲ 안동 조탑동5층전탑  안동 조탑리 들판에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 전탑이다. 탑 모습이 동부동5층전탑과 많이 닮았으나, 1층 몸돌을 화강암으로 축조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탑에서 화강암을 섞어 탑을 조성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1층 몸돌 전체를 화강암으로 조성한 예는 찾기 힘들다.

▲ 여주 신륵사다층전탑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전하는 고려시대 전탑이다. 탑신부는 옥신의 높이가 체감률이 거의 없고, 6층 몸돌만 갑자기 높이와 너비가 줄어들어 훨씬 고준해 보인다. 탑을 쌓을 때 벽돌 사이의 간격을 넓게 하고 그 사이에 면토를 발랐다. 이는 신라시대의 전탑이 간격을 두지 않고 벽돌을 쌓은 것과는 다른 양식을 보이고 있다.

▲ 영양 신해리5층모전석탑  신해동 강가의 밭 가운데 서 있다. 탑은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다. 1층 몸돌에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두고, 감실 양쪽에 2개의 화강암 기둥과 이맛돌을 조각하였다. 1단 기단의 모습, 돌을 다듬은 기술, 감실 장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동양탑과 서양탑

동양에서의 탑은 불탑으로 '부처의 묘'라는 상징적인 것이고, 서양의 탑은 여러 층으로 또는  높고 뾰족하게 세운 건축물(tower)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높은 건조물을 통틀어 탑이라고 하는 수도 있지만, 북아메리카 원주민 토템이나 수십 층의 고층빌딩은 탑이라고 하지 않는다.

▲ 경주 분황사석탑  신라 선덕여왕 3년(634) 분황사가 창건될 때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인 신라석탑과는 달리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이다. 높은 기단 위 네 모서리에는 화강암으로 조각한 수컷과 암컷사자를 배치하였다. 탑신에는 4면에 감실을 파고 화강암으로 문틀을 만든 문을 달았다. 문설주에는 입체감이 돋보이는 인왕상을 새겼다. 현재는 3층만 남아있지만, 『동경잡기』라는 책에는 '분황사구층탑'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정확한 근거 자료가 되지 못해 원래 몇 층의 석탑이었는지 그 규모는 알 수 없다.

▲ 경주 구황리3층석탑  남산 동쪽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전형적인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통일신라 초기에 작은 석재를 짜맞췄던 것에서 벗어나 1개의 석재를 사용하였고, 기단부의 탱주가 3개에서 2개로 감소하는 점 등이 석탑양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전체적인 모습이 단아하고 안정되며 규모는 감은사지삼층석탑이나 고선사지삼층석탑에 비해 작아졌다.

▲ 익산 미륵사지석탑  우리나라 석탑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이다.본래 미륵사에는 가운데 목탑을 두고 동서로 2기의 석탑을 두었는데, 그 중 서탑이다. 탑은 한 변의 길이가 10m 정도인 정사각형이며, 탑 부재 하나하나를 따로 만들어서 맞춰 세웠다. 목탑의 각 부 양식을 나무 대신 돌로써 충실하게 재현하였다. 지금은 6층까지만 남아 있으나, 탑신의 비례를 따져 보아 본래는 9층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부여 정림사지5층석탑  백제계 석탑의 전형 양식으로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미륵사지석탑과 함께 현존하는 2기의 백제석탑 중 하나이며, 한국 석탑의 시원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목탑 양식을 따랐으며 미륵사지탑보다는 조형 수법이 한결 세련된 멋을 보인다. 2층 이상의 탑신이 1층에 비하여 현격히 줄어들어 장중하면서 격조 높은 멋을 풍긴다.

▲ 경주 감은사지3층석탑  문무대왕의 수중릉이 마주보이는 감은사 터에 동서로 같은 구조와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신라시대의 석탑 중에서는 가장 큰 석탑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석탑의 양식도 백제계의 목탑양식과 신라계의 전탑양식이 혼합되면서 전혀 새로운 양식을 형성하게 되는데, 그 시초가 되는 것이 감은사지3층석탑이다. 이 탑의 양식이 신라석탑의 전형 양식의 효시가 되었다.

▲ 경주 고선사지3층석탑  본래 암곡동의 고선사지에서 있던 것인데, 1975년 덕동댐 공사로 물에 잠기게 되어 국립경주박물관 뜰로 옮겨졌다. 2층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조성하고 정상에 상륜부를 얹은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석탑이다. 기단부와 몸돌의 일부는 여러 장의 석재를 사용하여 짜맞췄다. 1층 몸돌에 문을 조각해 감실을 표현하였고, 그 가운데에는 문고리를 달았던 못 자리가 있다. 전체적인 모습이 감은사지3층석탑과 흡사하다.

▲ 경주 불국사3층석탑  석가탑 또는 무영탑으로 유명하다. 신라시대의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석탑을 대표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다보탑이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의 여성적인 느낌이라면, 석가탑은 아무런 조각이나 장식이 없어 선이 간결하고 화려하지 않은 남성적인 느낌을 준다. 감은사지3층석탑과 고선사지3층석탑에서 이어지는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양식을 이룬다. 상륜부는 멸실되었던 것을 1973년 남원 실상사3층석탑의 것을 본떠서 복원하였다. 1966년 도굴범의 훼손으로 인한 탑신부 해체수리작업 도중 2층 탑신부의 사리공 안에서 사리를 비롯한 장엄구와 세계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됐다.

▲ 영주 부석사3층석탑  무량수전 옆 높은 곳에 세워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쌓은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3층석탑이다. 하층기단이 몸돌에 비해 넓으면서도 각 몸돌의 폭이 좁아 몸돌이 밀착해 있는 느낌을 준다.

▲ 남원 실상사3층석탑  보광전 앞 마당에 동 · 서로 서 있는 2기의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두 탑은 규모와 양식이 같다. 상륜부가 거의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자료적 가치가 높다. 탑의 크기에 비해 기단부가 커서 안정감은 있어 보이나, 얼핏 보아서는 4층탑으로 오해하기 쉽다.

▲ 경주 용장사지3층석탑  남산 서쪽 용장계곡 정상에 세워진 신라시대 석탑이다. 자연암반을 지대석으로 삼아 탑을 세워서 마치 남산을 하나의 탑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탑 각 부재의 조화가 뛰어나고 안정감이 있어 주위의 환경과 매우 잘 어울린다. 이 탑은 용장사 주위의 계곡 어디에서나 볼 수 잇어 이정표의 구실을 한다. 용장사는 조선 초기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저술했던 장소다.

▲ 양양 진전사지3층석탑  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의 형식을 하고 있으나, 기단부에서 탑신에이르기까지 사면에 천인상, 8부신중, 사방불 등의 조각이 새겨진 이형석탑이다. 조각의 수법이 정교하고 섬세하며, 명쾌하면서 고고한 탑의 외관이 돋보인다. 진전사지3층석탑은 불국사의 석가탑과 비견되는 훌륭한 탑이다. 진전사는 신라 선문구산의 하나인 가지산파를 개산한 도의국사가 창건한 절로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이 출가한 곳으로 유명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석가모니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한 손은 하늘을,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 말은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는 뜻이다. 나 혼자 잘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처가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온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유아독존에서 '아'는 석가모니뿐만이 아니라 개개의 모든 사람이 지닌 불성을 가리킨다. 불성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며, 인간은 누구나 불성을 갖춘 존재임을 선언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귀하고 평등하다는 의미로 인도의 신분제도인 카스트제도의 불합리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인간 존엄의 선언이다.

▲ 안동 제비원미륵  자연석 암벽에 부처의 몸체를 조각하고 그 위에 머리를 얹었다.

▲ 논산 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  국내 최대의 석조보살상이다. 충청도 지방에서 유행하던 고려시대의 불상 양식으로 머리엔 원통형의 높은 관을 씌웠고, 그 위에 네모난 갓을 다시 씌웠다.

▲ 보은 법주사마애여래의상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 화순 운주사와불  열반상과는 다르게 좌불과 입상으로 자연석 위에 조각된 채로 누워 있다.

▲ 경주 배리삼존석불입상  남산 기슭에 흥터져 있던 것을 1923년 이전했다. 조각 솜씨가 뛰어나 인간미와 종교적 신비함이 함께 우러나는 작품이다.

▲ 불상의 세부 명칭

 

석가모니는 부처의 이름이 아니다

석가모니가 부처의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부처는 '깨달은 사람', 석가모니는 '석가족의 현명한 사람'이란 뜻으로 석가는 종족의 이름이고, 모니는 현인을 말하는 것이다. 부처의 본래 이름은 인도 가비라성의 왕자인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 서산마애삼존불  '백제의 미소'라 불리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얼굴 가득 머금은 자애로운 미소는 조성 당시 백제인의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중앙에 본존인 여래입상과 왼쪽에 관음보살상, 오른쪽에 반가사유를 한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본존불은 머리 뒤의 보주형 광배와 미간의 백호공, 초생달 같은 눈썹, 엷은 미소를 짓는 입술이 매우 다정다감한 느낌을 준다. 또한 두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양팔에 걸쳐 평행호선으로 길게 주름져 잇어 입체감과 생동감을 준다. 이 불상은 삼국시대 마애불을 대표하는 것으로 양 협시보살이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다른 삼존불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삼존불은 중앙에 본존을 세우고 양옆에 협시보살을 세우는 것으로 인도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로 전래되면서 부처를 모시는 하나의 단위로 생각되었다.

▲ 경주 석굴암본존불  신라 석불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깊은 사색에 잠긴 듯 가늘게 뜬 눈, 보일 듯 말 듯 엷은 미소를 머금은 입술, 풍만한 얼굴과 몸에는 범접할 수 없는 근엄함과 한없는 자비로움이 공존한다. 신체의 비레가 알맞고 각 부분이 세련된 솜씨로 조각된 것이 불심 깊은 신라인의 예술혼이 집약되어 완성된 불상이다.

▲ 남원 실상사철제여래좌상  어깨선이 부드럽게 연결되고, 가슴의 볼륨도 살아있지만 전체적으로 차갑고 딱딱한 인상을 준다. 아마도 철이 주는 재료감에서 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얼굴은 다소 근엄하게 묘사되어서 이전의 활기차고 부드러운 인상의 불상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 영암 도갑사석조여래좌상  광배, 대좌, 불신을 모두 갖추고 있다. 광배와 불신은 각각의 돌이 아니라 하나의 돌에 조각하였다. 얼굴은 타원형으로 이마가 좁은 편이며, 눈두덩이는 불룩 나왔고 코는 넓적하게 표현하였다. 어깨의 선은 부드럽게 곡선을 이루는데 반해 결가부좌한 하체의 신체적인 굴곡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불상 조성의 원칙

불상은 자세 하나하나마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불상의 자세를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된다.

불상을 제작할 때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규범을 지켜야 한다.

1. 신상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부처의 존엄성을 나타내고 중생과 구별되는 특징인 32길상 80종호의 묘상을 갖춰야 한다.

어떤 재료를 사용해도 무방하나 반드시 깨끗해야 한다. 다른 곳에서 사용하고 남은 재료를 사용해서는 안 되며, 남은 재료로 새나 짐승을 그려서도 안 된다. 단, 공양의 의미일 때는 괜찮다.

3. 탑이나 불상에는 모두 사리가 안장되는 것이 원칙이다. 사리숭배사상은 초기부터 시작되었고, 사리공양의 공덕은 여러 경전에 쓰여 있다. 부처의 진신사리는 구하기 어려우므로 금, 은, 수정, 유리, 마노 등으로 만든 법신사리를 안장하는 것이 허락된다. 법신사리 중 으뜸은 부처의 설법을 기재한 경전이다.

▲ 수인의 여러 가지 모양

 

승려의 명칭

행자 : 사미계를 받을 때까지 밥 짓기와 나무하기 등 온갖 허드레일을 도맡아 하며, 사찰에서 필요한 기본 의식과 그에 따른 송경을 익히는 사람. 주로 밤색옷을 입고 다니며 자신의 평생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스님 밑에서 여러 가지 계행을 배운다.

사미 · 사미니 : 일정한 행자 생활을 마치고 사미십계를 받은 스님.

비구 · 비구니 : 출가하여 정식 수행을 하는 수도자로 구족계를 받은 스님. 남자 스님인 비구는 250계를 받아 지켜야 하며, 여승인 비구니는 348계를 받아 수행한다.

중 :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의 Sangha를 한자로 의역한 것이다. 4인 이상의 모임. 후에는 3인 이상의 무리를 말하였으나 지금은 출가한 개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보통이다.

스님 : 불교의 수행자로 사문이라고 한다. 머리를 깎고 불문에 들어가 도를 닦는 사람을 칭한다.

대사 : 원래 부처님의 존칭이나, 고승을 존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또한 국가에서 고승에게 내리는 호를 대사라고도 한다. 스님들 사이에서는 자기의 동료나 손아래 되는 스님에게 대사라 부른다.

 

불상의 재료

불상을 제작할 때는 돌, 나무, 금, 청동, 철 등이 많이 이용되었다. 간혹 소조불과 건칠불이 제작되기도 했다. 소조불은 점토로 만든 불상이다. 삼국시대 이후 많이 만들어졌는데 현존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몸에서 목 부분까지 골격이 되는 심목을 세우고 손가락은 철사로 따로 심지를 만든다. 그 위에 삼베조각이나 짚이 섞인 진흙을 2중 3중으로 붙여서 완전한 형태로 만든 다음 회칠을 한 후 도금한다. 건칠불은 나무로 간단한 골격을 만들고 종이나 천 같은 것으로 불상을 만든 후 옷칠을 하고 다시 도금한 것이다. 다른 불상에 비해서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 보살상의 세부 명칭

 

광배

불상이나 탱화에 그려져 있는 둥근 원. 광염 또는 후광이라고도 한다. 부처의 자비광명을 상징한 것. 이 세상의 어둠을 없애고 진리를 밝히는 빛을 상징화한 것. 광배는 대체로 두광과 거신광의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두광은 머리에서 비춰나오는 광명을 나타내는 것이고, 거신광은 몸에서 비추어 나오는 광채를 표현한 것.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 중에 '후광을 입었다'고 할 때 사용하는 후광이라는 단어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posted by 황영찬
2013. 4. 20. 07:24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39 행위 예술 감상법

 

글, 사진 / 윤진섭

1995,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8017

 

082

빛12ㄷ  161

 

빛깔있는 책들 161

 

윤진섭---------------------------------------------------------------------------------------

1955년 충남 천안 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한 뒤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평단에 데뷔하였다. 한남대, 전북대, 경희대 강사를 거쳐 현재 홍익대 대학원, 한남대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대전 EXPO 조직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현대아트갤러리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퍼포먼스에 있어서 미적 체험 연구」「신세대미술, 그 반항의 상상력」「진리의 부재와 미로 찾기」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퍼포먼스란 무엇인가

    퍼포먼스의 개념

    퍼포먼스의 어원

퍼포먼스의 일반적 특징

가상과 실제의 거리 좁히기

퍼포먼스의 태동

    20세기 예술의 전개

    퍼포먼스의 역사

    한국의 퍼포먼스

참고 문헌

 

▲ 현장감과 함께 제의적 요소와 축제성이 어우러진 우리의 굿은 퍼포먼스의 훌륭한 범본이다. 거기에는 관객과 무대를 갈라 놓는 경계도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무당의 사설은 때로 즉흥성을 띠며 관객 참여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백남준은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지노귀굿을 퍼포먼스 형식으로 펼친 바 있다. 1990년 갤러리 현대에서 지노귀굿 기능보유자들과 함께 실연하는 백남준.

▲ 작가 자신이 직접 소년으로 분장한 야스마사 모리무라의 「초상 : 소년2」

▲ 움베르토 보치오니. 「밀라노에서 미래파의 밤」의 스케치화, 1944년 작품. 왼쪽부터 보치오니, 프라텔라, 마리네티, 카라, 루솔로 등 미래파 작가들의 모습이 보인다.

▲ 의상 퍼포먼스 가운데 하나. 여자의 성기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의상을 입고 행위를 펼치고 있다. 춤과 마임적 요소가 강한 작품. 쇼너 뎀지(Dempsey, Shawna), 「우리는 보지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We're Talking Vulva)」, 1990년 작품

▲ 피카비아와 사티에 의한 발레극 「휴연(休演, Relache)」에서 아담으로 분한 마르셀 뒤샹.

▲ 백남준은 기발한 발상과 천진 난만한 행위로 대중을 즐겁게 한다. 그에게 있어 예술은 심각한 것이 아니다. 바이올린을 끌고 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예술 행위 자체를 조롱하는 듯한 위트와 기지가 보인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플럭서스 이래 활발하게 행위 작업을 펼쳐온 퍼포먼스 작가이다. 미국의 첼리스트 샤로트 무어맨(Moorman, Charlotte)과 생전의 요셉 보이스는 친숙한 그의 동반자였다.

▲ 로버트 모리스(Morris, Robert)의 이벤트, 「장소(Site)」, 1962년 작품.

▲ 로버트 모리스의 이벤트, 「워터맨 스위치(Waterman Switch)」, 1965년 작품, 저드슨 교회.

▲ 비스바덴의 플럭서스 페스티벌에서 행한 필립 코너의 퍼포먼스, 1962년 작품.

▲ 머리칼로 그림을 그리는 재닌 앤터니. 60년대 플럭서스 페스티벌에서 백남준도 머리에 먹물을 묻혀 선을 그은 적이 있다.

▲ 이브 클랭(Kiein, Yves)의 퍼포먼스, 「허공을 향해 뛰어내리기」, 1960년 작품. 공중에 몸을 던지고 있는 남자와 골목 저편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행인의 한가한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 이브 클랭의 「인체 측정학」 실연 장면. 1960년 3월 9일 파리의 국제 현대미술 갤러리에서 개최된 이 퍼포먼스는 참가자들과 교향악단 연주자 전원이 정장을 착용한 엄숙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단음조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델의 몸에 묻은 청색 물감이 캔버스에 찍혀졌다.

▲ 스텔락의 보디 아트(body art) 이벤트, 「매달린 돌」, 1990년 작품, 도쿄 다무라 화랑. 스텔락의 퍼포먼스는 무중력 상태에 대한 인체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 고대 제의와 현대의 퍼포먼스는 형식상 유사점을 보이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의 오시스나 이시리스 제의,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제의에서는 사람이나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살해 의식이 행해졌는데 고대인들은 이러한 희생물을 바침으로써 자신들이 정화된다고 믿었다. 헤르만 니취(Nitsch, Hermann)의 행위극은 갓 도살된 양들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신체를 찢어 발기거나 피와 내장을 관객에게 뿌리는 등의 충격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그는 계란 노른자나 식초, 포도주, 꿀, 양의 피 등을 이용한 냄새와 귀를 찢는 듯한 음악을 첨가하여 관객들을 무아의 경지로 이끈다. 헤르만 니취는 사람의 시신에 구멍을 뚫어 놓고 관객들로 하여금 손가락으로 내장을 직접 만져 보게 하는 등의 극단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몇 차례 구속되기도 하였다.

▲ 길버트와 조지(Gilbert & George)가 직접 실연한 「살아 있는 조각(The Living Sculpture)」, 도쿄 아트 에이전시 갤러리, 1977년 11월 14일. 얼굴과 손을 빨갛게 칠한 두 사람이 조각처럼 고정된 자세로 서 있다.

▲ 성직자, 소방수 등으로 분장한 권여현, 1994년 작품. 맨 처음에 회화에서 출발한 권여현은 점차 매체의 폭을 넓혀 가고 있다. 평면과 더불어 입체 및 설치 작업에도 주력하고 있는 그는 최근 들어 자신을 퍼포밍(performing)하는 수법을 통해 사회, 역사 또는 문화적 맥락에서 자아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 음악 감상실 '세시봉'에서 열린 정찬승과 정강자의 해프닝 「투명 풍선과 누드」, 1968년 작품.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 1968년 한강변에서 벌어진 해프닝 쇼 「한강변의 해프닝 1」. 모래 구덩이 속에서 머리만 내민 정찬승과 정강자에게 물세례를 퍼붓고 있다.

▲ 서울 국제현대음악제에서 「스톡하우젠 음악에 따른 퍼포먼스」를 실연하는 김구림, 1970년 발표, 설치, 대지 예술, 실험 영화, 회화, 입체, 퍼포먼스 등의 활동을 벌인 그는 한국의 1세대 전위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 1968년을 전후하여 해프닝을 비롯한 퍼포먼스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사진은 1969년 명동 국립 극장에서 열린 제1회 서울 국제현대음악제에서 정찬승과 차명희가 백남준의 「콤포지션」을 실연하는 장면. 정찬승은 가장 활발하게 해프닝 활동을 벌인 작가였다.

▲ 대구 강정의 모래 사장에서 행위하는 이강소, 1977년. 지름 7미터의 원을 그린 뒤 그 안의 모래를 퍼올리며 술을 마시고 마지막에는 높이 쌓인 모래 무덤 위에서 남은 술을 마저 마셔 버렸다. 의도적인 행위와 일상적인 행위를 대비시킨 작업. 입고 있던 옷과 소지품을 한 줄로 늘어놓은 장면이 보인다.

▲ 평이한 어조로 신문 기사를 읽고 다 읽은 기사를 면도칼로 오려 내는 성능경. 행위의 동어 반복을 시도했던 그는 이렇게 해서 모아진 신문기사들을 커다란 아크릴 상자 속에 넣어 전시하기도 하였다. 그의 퍼포먼스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신문을 읽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출 경우에는 개념적 의미를, 기사의 내용에 주목하면 사회적 의미를 띤다. 1976년 7월 3일 오후 5시 신문회관 회의실에서 발표.

▲ 결혼식 자체를 퍼포먼스화 시킨 장석원의 「혼인의 이벤트」, 1977년. 이건용이 주례를 선 이 퍼포먼스는 당시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70년대 중반 안국동 로터리에서 한국일보사로 가는 골목 모퉁이에 있던 서울 화랑은 이벤트가 자주 열렸던 곳이다. 신랑 신부가 입맞추는 모습을 보고 웃는 관객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 김석환, 「환생」. 제의적 성격이 짙은 퍼포먼스로 토기 안에 든 생명수를 대지에 붓는 따위의 의식을 통해 삶의 정화를 꾀하는 내용이다.

 

posted by 황영찬
2013. 4. 16. 10:08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38 양화소록養花小錄  선비, 꽃과 나무를 벗하다

 

강희안 저  이종묵 역해

2012, 아카넷

 

 

대야도서관

SB069140

 

525.7

강97ㅇ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001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대우재단 공동기획

 

소나무는 꼿꼿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지조로

온갖 꽃과 나무의 위에 홀로 솟아나 있으니 이미 더 할 것이 없다네.

 그 나머지 은일(隱逸)의 국화와 품격 높은 매화, 그리고 저 난초와 서향화 등 10여 종은

제각기 풍미와 운치를 떨치고 있고, 창포는 추위 속에서도 고고한 절조를 지녔으며,

괴석은 확고부동한 덕을 가지고 있어 정말 마땅히 군자가 벗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네.

 

지은이

강희안(姜希顔)

조선 초기의 학자. 자가 경우(景遇), 호가 인재(仁齋)이며 본관은 진주이다. 문과에 급제한 후 주로 규장각에서 근무하며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 주석 작업에 참여하였고 『운회(韻會)』, 『동국정운(東國正韻)』 등의 편찬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시와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 날마다 글을 읽고 꽃을 키우는 일을 좋아하여 『양화소록』을 편찬하였다.

역해자

이종묵 (李鍾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우리 한시를 사랑하여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우리 한시를 읽다』 등의 책을 내고, 조선 선비의 삶을 추적하여 『조선의 문화공간 1-4』, 『부부』 등의 책도 낸 바 있다. 좋아하는 옛글을 번역하여 『부휴자담론』, 『누워서 노니는 산수』,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등을 출간하였다. 직접 꽃을 키우지는 못하지만 꽃을 키우는 옛글을 사랑하여 『양화소록』을 옮기고 다른 글을 보태어 화훼와 분재의 문화사를 보이고자 한다.

 

|차례|

 

해제 화훼와 분재의 문화사를 위하여
아우 강희맹이 쓴 『양화소록』 서문 養花小錄序
강희안이 직접 쓴 『양화소록』 서문 自序


1 노송 老松
2 만년송 萬年松
3 오반죽 烏斑竹
4 국화 菊花
5 매화 梅花
6 난초와 혜초 蘭蕙
7 서향화 瑞香花
8 연꽃 蓮花
9 석류꽃 石榴花
10 치자꽃 梔子花
11 사계화 四季花와 월계화 月季花
12 산다화 山茶花
13 자미화 紫薇花
14 일본철쭉 日本
15 귤 橘樹
16 석창포 石菖蒲
17 괴석 怪石
18 화분에서 꽃나무를 키우는 법 種盆內花樹法
19 꽃을 빨리 피게 하는 법 催花法
20 모든 꽃이 꺼리는 것 百花忌宜
21 꽃에서 찾아야 할 것 取花卉法
22 꽃을 키우는 법 養花法
23 화분을 두는 법 排花盆法
24 갈무리하는 법 收藏法
25 꽃을 키우는 뜻 養花解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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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노인 전한 책이 있어

밝은 창가에 종일 베끼노라.

꽃과 열매를 이로써 알지니

비로소 나무를 기르게 되었네.

경제의 뜻 자못 시험해볼 뿐

공명은 버려둔 지 오래라네.

이 생애에 반가운 것 적으니

넓은 세상 신교를 맺으리라.

- 김이만, 「양화록의 발문」, 『學皐遺稿』(규장각본)

 

구불구불 울퉁불퉁 푸른 규룡(虯龍)의 자태라네.

주름진 비늘에 웅장한 이빨과 수염 달린 괴물이

하늘을 당기며 꿈틀꿈틀 마른 가지에 서려 있네.

- 우헌(愚軒)의 「괴송요(怪松謠)」

 

계단 앞의 둥근 한 그루 소나무

가지와 둥치 오랜 세월에 용으로 변하였네.

바람이 거센 겨울이 되면 눈을 비비고서

천 길 높이로 푸른 하늘로 뻗어 감을 보리라.

- 강희안, 「사우정의 노래(四雨亭雜詠」『진양세고』권3

 

▲ <우송도권(友松圖券)>_두경(杜瓊). 중국 명대. 북경고궁박물관 소장

 

화분의 왜송은 세 자가 넘는데

구불구불 강철 같은 가지 헌걸차게 얽혔네.

비뚤비뚤 오그라들어 몸이 자라지 못하는데

가끔은 푸른 잎을 내어서 눈서리를 이기네.

은자는 이 나무 정정한 절개를 사랑하노니

서실의 창가에 어린 그림자 맑고도 고와라.

천년의 늙은 자질 거북과 학의 자태로 변하였으니

너와 더불어 불로장생의 비결을 함께 하리라.

- 성현, 「괴송요(怪松謠)」『虛白堂風雅錄』권1

 

화분 위에 심은 소나무 한 그루

늙은 등걸은 크게 자라지 않는다네.

잎은 절로 연기와 안개를 띠고 있고

가지는 눈과 서리를 많이도 겪었다네.

날이 차도 마음에는 절조를 품었고

그늘이 엷어도 마음만은 서늘하다네.

군자는 기질 같은 이를 찾는 법이라

날마다 곁에 두어야 마땅하지 않겠나.

- 권근, 「이수부 씨의 정원에 있는 네 가지 노래 중 소나무를 읊다」. 『陽村集』권3

 

금강산 신기한 품종 세상에서 보기 어려운데

승정원의 옥난간 곁에다 옮겨 심어놓았네.

이름에서 만년이 드러나니 오래감을 알겠고

색은 사계절 한가지라 추위를 이김을 보겠네.

서린 뿌리 굽은 둥치 사람의 기교를 더하였고

가는 잎 드리운 가지 땅에 붙어 둥그스름하네.

그리워라 맑은 새벽 향이 더욱 특이하리니

온 뜰 밝은 달빛 아래 이슬이 촉촉하겠네.

- 최립, 「은대십이영(銀臺十二詠) 중 만년향(萬年香)」. 『簡易文集』권6

만년송 아래 이끼 하나 없는데

사계화 날리니 티끌 묻지 않았네.

똑같은 한가지 맑은 식물이건만

괴이타, 명품이 화보에 보이지 않다니.

- 김인후, 「한가할 때 읊조린 시」. 『河西全集』권7

 

그 몇 해나 푸른 산 흰 구름 속에 있다가

정원으로 옮겨와 기이한 향을 토하는가?

하늘 향한 늙은 둥치는 푸른 규룡의 빛깔을 띠고

해를 가린 무성한 가지엔 푸른 봉황 문양 남았네.

달빛 아래 둥글둥글 일산을 펼쳐놓은 모습이요

바람 앞에 시원한 질나발 소리 들릴 듯.

예쁘다, 꿈틀꿈틀 구름을 뚫고 일어나니

나무를 감돌며 술김에 한가하게 시를 읊조리노라.

- 채수, 「왕명을 받들어 사십팔영시에 차운하다, 만년송」. 『懶齋集』권2

 

올해 한 치가 자라고

내년 한 치가 자라니

오로지 빨리 자라지 않지만

이 때문에 만 년에 이른다네.

- 성삼문, 「지해당사십팔영-만년송」. 『成謹甫集』권1

 

가볍고 부드러워 하늘거리는 그 자태여

차군에게 재배하건만 차군은 아는 체 않네.

구절포로 장수하는 것 과시할 겨를 있으랴?

소를 삼킬 기상에 범 무늬까지 껍질에 있으니.

- 최립, 「창포가 대나무에게 절을 하다」. 『簡易集』권8

▲ <죽도(竹圖)>_조익(趙翼). 조선시대(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취한 대나무 언제나 술이 깨려나,

뿌리를 옮겨가도 저는 모른다네.

가지와 잎 다칠까 걱정만 할 뿐,

뿌리가 옮겨가는 것 괘념치 않네.

- 정약용, 「죽취일(竹醉日)」. 『여유당전서』 제1집 시문집 권4

 

굳은 마디는 그저 눈과 서리에 딱 맞아

기이한 자태를 비바람 불 때 바로 보겠네.

청천자의 옛집에 드넓은 땅이 있으니

해마다 내 꿈속으로 들어오게 하리라.

- 강희안, 「대나무를 심고서」. 『진산세고』 권3

 

밥 먹을 때 고기반찬 없는 것은 괜찮지만

사는 집에 대나무가 없어서야 될 말인가.

고기가 없으면 사람이 수척할 뿐이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물로 만든다네.

사람이 수척하면 그래도 살찌울 수 있지만

속된 선비는 낫게 할 수 없다네.

곁의 사람이 이 말 듣고 웃으며 하는 말

"고상한 듯하는 것이 도리어 바보 같소."

"차군을 마주하고 크게 술을 마신다면

세상에 어찌 양주의 학이 있겠소?"라 했네.

- 소식, 「잠승의 녹헌균에서」. 『東坡全集』권4

 

아내가 국화 따 온 것은

시골늙은이 오래 살라 한 것.

동창에 가을 햇살 어리는데

술에 취해 미친 듯 시를 읊는다.

- 김인후, 「아내에게 주다」. 『하서전집』 권5

 

사람들 원하는 것 수명을 늘리는 것이라

은근하게 서로 권하며 이 날에 마신다네.

신선처럼 몸이 가볍게 하려 술잔을 드는데

노란 국화꽃 향긋하게 따스한 햇살을 바치네.

- 신위, 「중양절 하상(荷裳) 등 여러 사람이 반분로(潘邠老)의 "성 가득 비바람에 중양절이 가깝네"라는 시구로 운을 삼아 각기 시 7수를 얻다」. 『警修堂全藁』22책

 

붉은 줄기 노란 꽃은 세상에 드물어

달고 쓴 맛 누가 능히 시비를 가리랴?

자네 집에 진품이 있다고 들었으니

한 떨기 늦가을 향을 나누어주지 않겠나?

- 이안눌

 

누가 서리 속에 황색, 백색, 홍색 꽃을 보냈나,

우리들 풍류 위해 조물주의 힘을 다 앗아 왔네.

세 줄로 늘어선 고운 기생조차 무색해지기에

웃으면서 금빛 가지를 꺾어 손에 움켜쥐노라.

- 조우신, 「같은 날 이노일 군이 삼색국 화분 하나를 배에 보내주었기에 뭉클하여 절구 한 수를 지어 감사를 표하다」. 『白潭遺集』 권1

 

자색 주색 홍색 백색 비단 위에 자리 튼 듯

진진한 맑은 향기가 코에 가득 많구나.

가소롭다 도연명은 부질없이 사랑하였지만

일생동안 그저 노란 국화만 알고 말하였다네.

- 서거정, 「이웃 심선이 네 가지 빛의 국화 화분 하나를 보내주기에 감사하여 짓다」. 『사가집』 권45

▲ <풍속도병>_김홍도(金弘道) 전칭. 19세기. 프랑스 기메미술관 소장

 

오상고절 국화를 꺽어다가

작은 질 화분에 옮겨 심었지.

대를 꽂아 여린 꽃을 지탱하게 하고

흙을 북돋워 약한 뿌리를 보호한다.

작은 옥빛에 맑은 운치 가득하고

가벼운 금빛은 술기운에 밀려든다.

다정하다 오동나무 끝의 달빛이여

술동이 비었는데 부질없이 비치네.

- 정운희, 「화분의 국화」. 『孤舟集』 권1

 

노란 국화 사라 외치는 소리 길거리에 가득한데

해마다 늘어나는 각양각색의 꽃 『국보』에 없는 것.

국화는 모두 도연명의 울 아래 있던 것이지만

그 중에 어찌 이것만 연명국이라 부르는가?

- 신위, 「국화를 읊다」. 『警修堂全藁』 14책

 

163종이나 되는 품종이 많기도 하건만

끝내 학령이 여러 국화 중에 첫째라네.

무너진 담장에서도 훤한 안색 돋보이니

가을바람 흰 이슬에 뜻을 얻은 것이라지.

- 김정희, 「보내준 국화에 감사하다」. 『阮堂全集』 권10

 

듣자니 국화의 꽃 색깔은

황색을 바른 태로 한다지.

뭇 꽃이 봄볕에 피어나는데

너 홀로 가을 그늘에 피어나네.

황색은 음에 속한 바름이라,

황후의 옷도 이 색으로 한다지.

군자는 그 덕을 취하여

치우침도 없고 변함도 없다네.

- 서형수, 「국화의 노래」. 『明皐全集』 권1

 

등불 아래 국화 그림자 비스듬히 기울어지자

영롱하게 생동하는 그림이라 정말 아름답구나.

우습다, 도연명은 도리어 멋이 없었으니

당시에 한밤에 꽃 보는 일 알지 못하였다지.

- 박윤묵, 「등불 아래 국화를 완상하면서」. 『存齋集』 권4

 

등불이 국화 남쪽에 있으면 그림자는 북쪽

등불이 국화 서쪽에 있으면 그림자는 동쪽

상 하나에 책 몇 권과 술 두 동이 있으니

그저 꽃 그림자 속에 이것이나 즐겨야지.

- 이학규, 「등불 앞의 국화 그림자」. 『洛下生集』 冊16

▲ <청공도(淸供圖)>_강세황(姜世晃). 조선 18세기. 선문대박물관 소장. 그림 왼쪽에 괴석과 함께 화분에 심은 매화가 보인다.

 

하나의 기운이 순환하여 갔다가 돌아오니

천심을 세밑에 핀 매화에서 볼 수 있다네.

큰 솥에다 국 맛을 조절하는 열매가

부질없이 산중에서 맺혔다 떨어졌다 하네.

 

우연히 고향으로 돌아와 찾아가니

절 가득한 맑은 향 한 그루 매화일세.

물성이야 능히 예전의 뜻 알기에

은근하게 다시 눈 속에 피었구나.

- 강회백, 「단속사에서 매화를 직접 심고서」. 『진산세고』 권3

 

상머리에 옮겨두면 먼지 없이 깔끔하고

햇살이 창을 쬐어 봄처럼 따스하겠지요.

푸른 잎과 붉은 꽃에 향기도 사랑스럽기에

번거롭지만 은자가 짝하게 실어 보내주시려나.

- 이승인, 「윤판서에게 글을 올려 서향화를 구하다」. 『陶隱詩集』 권3

 

신년에 묵은해를 보내고 돌아서자

붉은 꽃 소식이 상원 전에 이르렀네.

높은 자태 정말 노을 먹는 신선과 같고

농염한 모습 비단 짜는 선녀인가 하였네.

십 리 너머 향기가 퍼져도 강렬한데

빈 뜰에 웃음을 머금어 더욱 고와라.

여러 꽃들 물러나 맹주로 모시리니

몇 척의 가지가 햇살에 기대어 있네.

- 권두경, 「서향화(瑞香花)」. 『蒼雪齋集』 권6

 

움집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서향화를

청명에 받들어 꺼내니 집 가득한 향기.

콧구멍으로 먼저 맡고 두 눈에 대었더니

남은 담홍빛 꽃잎이 가지 위에 흩어지네.

- 이색, 「서향화(瑞香花)」. 『목은시고』 권28

 

여산에서 옮겨와 비로소 꽃을 피우니

푸른 비단에 이슬 어린 붉은 구름 단장.

금압향로에 침수향 쓸 것 없다네,

주렴에 실바람 불면 향이 풍겨나오니.

- 강희안, 「사우정잡영 중 서향화」. 『진산세고』 권3

▲ <염계상련(濂溪賞蓮)>. 정선(鄭敾). 조선시대 18세기. 우학문화재단 소장. 주렴계가 연꽃을 감상하는 그림이다.

 

노인은 무슨 일을 하는가?

온갖 생각하여도 할 것이 없지만

꽃과 대나무는 마음이 즐거우니

제법 즐길 바를 부칠 수 있다네.

듣자니 서쪽 집에서

화분에 연꽃 수십 그루 키운다기에

은근하게 편지를 보내어

나를 위해 힘써 달라 하였더니

주인이 늙은 나를 가련히 여겼네.

좋은 뜻은 외롭지 않은 법이라

백 보 떨어진 내 집에다

두 일꾼이 어깨에 메어 보내었네.

바위를 쌓아 작은 돈대를 만드니

배치가 금방 이루어졌네.

맑은 물 가운에 어린 꽃망울

연잎이 그와 더불어 갖추어졌네.

마침내 온 뜰 안에다

문득 작은 산수를 이루었으니

내 평소의 소원과 맞아서

마주하여 하루해를 보낸다네.

아이들 장난처럼 부끄러우니

남들이 이러한 어리석음 비웃으리라.

- 박윤묵, 「화분의 못이 이루어지다」. 『存齋集』 권10

 

해석류는 꽃잎이 술잔처럼 큰데

종자는 처음 일본에서 왔다네.

3월에도 꽃 피우지 못했다 비웃지 말게

여러 꽃들 시들 때 비로소 피어나니.

- 정약용, 「다산에 핀 꽃의 역사」. 『여유당전서』 시문집 권5

 

해석류는 고와서 정말 자랑할 만한데

연이어 30일이나 불같은 꽃을 토한다네.

수많은 알갱이가 하나 맺히는 것 없으니

세상에서 실속 있는 꽃은 보기 어려워라.

- 김창업, 「천엽석류(千葉石榴)」. 『老稼齋集』 권2

 

5월이라 원림에는 곳곳에 녹음이 짙은데

석류에서 꽃이 피면 그 값이 천금이라.

찬 계절의 꽃 어지러이 진다 싫어 말게나.

구슬 담는 태가 있어 깊숙이 결실을 맺나니.

- 김창업, 「안석류(安石榴)」. 『노가재집』 권2

 

오월이라  석류꽃이 눈을 환하게 비추는데

가지 사이 드문드문 매달린 열매가 보이네.

가련하다 이곳은 찾아오는 이가 없어서

푸른 이끼에 거꾸러져 붉은 꽃잎 떨어지네.

- 한유, 「석류꽃」. 『東雅堂韓昌黎集註』 권6

 

붉은 알 가지에 달린 것 몇 개인가?

온 숲에 기우뚱 술에 취해 홍조를 띠었네.

붉은 비단 주머니에 붉은 알갱이 숨겼으니

서리 내리면 활짝 터뜨린 모습 볼 수 있겠지.

- 이규보, 「붉은 석류가 막 익었는데 규공이 시를 청하기에」. 『동국이상국집』 권6

 

비둘기 새장 곁에 백엽의 꽃잎 환한데

계절에 느꺼워 비 머금고 새벽노을 만들었네.

무슨 연유로 냉담한 자태를 버리지 않았나.

빨간빛으로 교태 부리며 조정에서 웃고 있네.

- 문종(文宗)

 

전에 꽃잎이 여섯이라 들었더니

사람들은 숲 가득 향긋하다 하네.

붉은 열매 푸른 잎에 어우러져

맑고 고운 모습 눈서리 속에 있다네.

- 김인후, 「소쇄원의 사십팔영 중 눈을 맞은 붉은 치자」. 『河西全集』 권5

 

치자나무 어느 해에 옛 가지를 떠나왔던가?

딴 집에 옮겨 놓아도 예전처럼 무성하다네.

꽃이 피니 여섯 꽃잎이라 흔치 않은 품종이요

잎은 천 겹으로 겹쳤으니 또한 기이한 것이라네.

향은 참선하는 노승의 밥을 실컷 먹었고

명성은 두보의 시에 모두 다 들어있다네.

감상할 마음 봄바람 불 때와 맞지 않아서

꽃 피고 열매 맺은 때에야 보게 되었구나.

- 서거정, 「치자꽃」. 『四佳詩集』 권4

 

치자는 여러 나무에 비하여

인간 세상에 정말 많지 않다네.

몸에 띤 빛깔은 쓰임새가 있고

도의 기는 몸을 조화롭게 한다네.

붉은빛은 풍상을 겪은 열매에서 취하고

푸른빛은 비와 이슬 맞은 가지에서 본다네.

무정하게 너를 옮겨 심은 뜻은

강물에 비친 것을 귀히 여겨서란다.

- 두보, 「치자(梔子)」. 『纂註分類杜詩』 권18

 

치자는 매우 그늘진 곳에 심는 법

꽃잎이 피면 모두 여섯이 된다네.

그 향기는 침사향(沈麝香)이요.

그 빛은 곧 눈과 얼음 같다네.

뉘 알리요, 푸른 잎 속에

찬 날에도 열매가 붉음을.

- 김창업, 「호서로 가는 사경에게 주다」. 『노가재집』 권1

 

만년송 아래 가는 이끼 사라지고

사계화 꽃잎 날려 먼지 끼지 않았네.

둘 모두 똑같이 맑은 식물이건만

괴이하게 이름이 화보에 없구나.

- 김인후, 「한가하게 지내면서 대충 시를 지어 경범에게 보이다」. 『하서전집』 권7 

▲ 『현원합벽첩(玄圓合壁帖)』_심사정(沈師正). 18세기.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햇살과 바람 따스하여 봄 낮이 긴데

붉게 핀 천 송이 꽃을 다른 꽃이 넘보랴?

남방에서는 재배하는 힘을 빌 것 없으니

맑은 날 길러주는 것은 바로 봄볕이라네.

- 김시습, 「동천사에서 사계화를 보고서」. 『매월당시집』 권12 

 ▲ 『화초충어도책(花草蟲魚圖冊)』_김모(金玥). 중국 청대. 상해박물관 소장

 

예전부터 동백이 바로 산다인데

궁분다나 일념홍이 다 일가라네.

누가 알랴, 품종이 도리어 무수하지만

사발 같이 큰 꽃이 운남 땅에 나는 것을.

- 김창업, 「산다화(山茶花)」. 『老稼齋集』 권2

 

천 리 만 리 먼 섬나라 큰 파도치는데

쫓겨난 신하 산에 올라 임금을 바라보았지.

덕릉(德陵)의 동백은 푸른빛이 무궁하기에

대궐서도 먼 유배객에 마음이 움직였지.

- 이유원, 「동백나무」. 『海東樂府』

 

늙은 소나무 객을 맞아들이는데

위태한 외나무다리로 개울을 건넌다.

늘 봄날인 장춘동에 눈이 쌓였는데

동백은 수만 그루에 꽃을 피웠네.

스님의 집은 물과 대숲에 희미한데

비석은 안개와 노을에 늙어 있네.

신라가 요망하여 참으로 괴이하네.

온 나라 기울여 석가를 위하였으니.

- 이만부, 「대둔사(大芚寺)」. 『頭陀草』 책10

 

바닷가에 신선의 산이 있고

그 가운데 백련사가 있다네.

단청은 아침 해에 어른거리니

봉래산도 그 아래라 하겠네.

온 산은 잡목이 없고

동백만 눈 속에 비치네.

늙은 가지는 돌난간에 비껴 있어

내 암자의 승려와 함께 앉았지.

비취빛이 가지를 둘렀는데

향긋한 꽃술이 어지럽게 떨어지네.

개울 따라 산속에 수북이 쌓여

멀리서 보면 들불 난 줄 알겠네.

- 임억령, 「백련사 동백가(白蓮社冬柏歌)」. 『石川集』 권2

 

동백나무 밀집하여 푸른 숲을 이뤘는데

잎은 굳고 각이 지며 꽃은 붉게 피었네.

봄바람에 그저 꽃이 눈에 가득하기에

작은 뜰에서 피든 지든 뜻대로 맡겨둔다네.

- 정약용, 「다산화사(茶山花史)」, 『여유당전서』 제1집 시문집 권5

▲ 『화훼도(花卉圖)』 8엽 중 제3엽 '자미(紫薇)'_운수평(惲壽平). 중국 청대(1687). 북경고궁박물원. 우리나라 백일홍과 그 모습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사랑스러운 몇 송이 꽃

백일 붉은빛을 이루었네.

주작(朱雀)에서 기운을 얻어

찬란히 가을바람에 꽃피우네.

남북의 기후가 달라서

늘 사람의 힘을 입어 자라니

겨울 전에 눈 속의 강추위에

짚으로 사방을 매어야 하네.

금년 여름과 가을 사이

푸른 잎이 유난히 풍성하더니

차례로 빨간 꽃을 터뜨려

붉은 노을 사방을 두른 듯.

처음에는 단사 가루 같아서

소슬바람에도 무성하지 않다가

점점 커다란 옥쟁반을 만들어

온 꽃송이 붉은 빛으로 영롱하네.

끊임없이 무수하게 피어나

층층의 자태가 한결같다네.

담장 너머가 훤하게 되고

방안까지 곱게 이어져 오네.

노인이 손수 심은 것으로

이름난 꽃 얼마나 많았던가?

제각기 잘 자라나

기의 조화를 이루었네.

남방에서 온 귀한 품종이라

외로운 뿌리 쑥대처럼 떠돌았지.

생명을 붙인 곳 고향이 아니라

해충에 기가 많이 빠져나갔지만

꼿꼿하게 능히 홀로 서서

다른 꽃에게 가려지지 않는다네.

이러한 곧은 선비의 절조를 아껴

고송보다 어루만져 사랑함이 깊다네.

- 정범조, 「백일홍 한 뿌리를 심었는데 겨울을 지내고 죽지 않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기에 기뻐서 시를 짓다」. 『海左集』 권15

 

내 영산홍이

천하에 둘도 없는 꽃이라 여겼건만

오직 형님댁 섬돌 곁의 왜철쭉만 못하니

한 번 붉은 노을빛으로 피면 온 동네가 들썩이지.

- 김창흡, 「3월 12일 아침 무속헌을 지나는데 이른바 왜철쭉이라는 것이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뜰과 문 사이에는 그저 새소리만 들렸다. 어른께서 빙호로 나가신 줄 알겠다. 한참 방황하다가 흥이 일어 시를 짓는다」. 『三淵集』 권2

 

한양의 정원 몇 곳이나 피었는가?

천 천으로도 한 뿌리 구해 심기 어렵다네.

가련하다, 이놈이 초라한 내 집에 있어

기이하고 고운 자태가 잡초만 비추고 있네.

- 김창업, 「왜철쭉(倭躅)」. 『노가재집』 권3

 

절로 꽃 중에 제일가는 품종이라

평양에서 백금의 고가에 팔린다네.

대궐에 옮겨 심은 것 누구의 힘이었나,

변방에서 절로 피었다 지니 네가 불쌍타.

시골의 촌스러운 연지를 연하게 발랐기에

저무는 봄날에도 찾아오는 벌 나비 없구나.

붉은 단장 한결같이 누런 흙먼지에 맡겨두니

공주와 비파는 모두 서러움이 길기만 하네.

- 이현경, 「금석산에서 왜철쭉이 골짜기를 비추는 것을 보았는데 당시 평양 사람들은 이 꽃을 보배로 삼아 온갖 꽃 중에 으뜸이라 하였다. 영산홍과 서로 백중을 겨루는데, 이제 산 가득 피어 있지만 땅이 궁벽하고 멀어 아무도 완상하는 이가 없이 변방의 바람결에 피었다 질뿐이라, 느꺼워 율시 한 수를 짓는다.」, 『艮翁集』 권4.

 

누가 더운 땅에서 나는 품종을

궁궐 곁의 어화원에 옮겨 심었나?

비린내 나는 바다에서 몸을 빼서

대궐 담장 가까운 땅에 의지하였네.

옥처럼 여위고 가시가 많은데

구름처럼 수북한 잎에 털이 나 있네.

봄날의 꽃은 모두 흰빛을 띠었고

가을날의 열매는 황금빛을 머금었네.

질펀한 이슬이 엉기어 뇌가 되고

생초로 막을 하여 알맹이를 감쌌네.

딸 때는 번거롭게 섬섬옥수를 빌고

익는 것은 맑은 서리를 기다려야지.

안개를 뿜듯 옷소매를 적시고

폭포가 되어 폐와 장에 스미네.

회수를 멀리 건너왔지만

동정호의 귤에 지지 않는다네.

맛은 신선의 세계를 머금은 듯하건만

소식은 고향 땅에서 아득히 멀어졌네.

토박이의 성질을 놓쳤다 하지만

그래도 임금의 은총을 입었다네.

천명의 노비와 맞먹을 것이요

오직 네 신선이 숨을 만하다네.

그대 황석공(黃石公)을 보게나

초패왕을 버리고 한고조를 도왔음을.

 

향나무는 코에만 향긋하고

기름진 음식은 입에만 맞는 법.

가장 좋은 것은 동정의 귤이라

코에도 향긋하고 입에도 달다네.

- 문종, 「귤시(橘詩)」, 『列星御製』

▲ 『화훼책(花卉冊)』 12엽 중 1엽_개기(改琦). 중국 청대(1827)

 

창포 화분 마주하니 마음이 호젓한데

푸른 떨기 긴 잎이 간들간들 희롱하네.

산들산들 실바람 부는 저녁에 보기 알맞고

후두두둑 소나기 치는 가을에 듣기 좋다네.

눈서리에도 변함없다 삼료자가 칭송하고

샘과 돌과 맹세했다 사첩산이 노래했다지.

끝내 정원의 섬돌에 볼거리에 그치겠나?

캐어 먹으면 머리를 세지 않게 하리니.

- 최립, 「은대의 십이영 중 창포」, 『簡易文集』

백제의 유물은 이 돌 항아리 하나뿐,

배는 크고 펑퍼짐한데 어디에 썼던가?

창포가 천지의 정기임을 누가 알아서

구름 속에서 돌을 깎아 북에서 옮겼나?

아홉 마디 뿌리는 늙은 교통이 서린 듯

그 품성 신령과 통하여 천하에 묘하다네.

이를 먹으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니

구구한 불사약을 찾아 무엇하리요?

- 서거정, 「공주 십경(公州十景) 중 석옹창포」, 『四佳詩集』 보유(補遺) 3

▲ <분춘생의도(盆春生意圖)> 부분_추일계(鄒一桂). 중국 청대. 대만고궁박물원 소장. 화분에 소철, 세죽, 괴석 등이 함께 놓여 있다.

 

바다 속에 잠겨 있는 바위를 누가 뽑아내었나,

깎아놓은 솜씨는 귀신이 날카로운 칼을 댄 듯.

옥을 깔아 화분에 놓으니 오솔길이 호젓한데

마루 위 탑상 앞에 두니 봉우리 하나 뾰족하네.

이끼 자욱 그윽한 곳엔 안개가 일어날 듯

물이 스미어 올라오면 비에 흠뻑 적셔진 듯.

신선 같은 관원을 위하여 문서를 뒤적일 때

늘 상쾌한 기운이 성긴 발 뚫고 이르게 한 것.

- 최립, 「은대십이영 중 괴석」『簡易文集』 권6

집집마다 수포석이 산처럼 큰 화분에 높다란데

쌍쌍이 짝을 지어 화초 난간에 마주하게 하였네.

예전 나도 또한 즐겨서 풍속을 따라 하였기에

한가하게 비를 맞게 던져두어 이끼가 얼룩졌다네.

- 신위, 「추원의 노래」, 『警修堂全藁』 권12

▲ <옥호정도(玉壺亭圖)>_작가 미상. 조선 후기. 이병도 소장

 

 

 

 

 

 

 

posted by 황영찬
2013. 4. 15. 12:06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37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유홍준 지음

2012, 창비

 

 

이 책은 '문화유산'의 둘레를 '인물유산'으로 넓힌 주옥편이다. '육지사람' 석주명과 이중섭을 비롯하여, '일본사람' 이즈미 세이이찌(泉靖一)까지 오른 까닭이다. 우리 산악계에 끼친 그의 자취를 아는 이는 열 손가락에도 못 미친다. 또 '경성대학등반대'의 남북 분대(分隊)가 1935년 1월 1일, 백록담에서 만나게 꾸민 산악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이때 일어난 우리 등반사상 최초의 조난이 씨앗이 되어 '제주학'을 일군 것도 그렇거니와, 반세기도 더 지나 여기 되살아난 것은 사람의 노릇으로 될 일이 아니다. 옛적에 어느 시인이 '아지 못게라 인생사여' 읊조렸다던가? 저승의 그도 놀랄 것이다.

- 김광언(민속학자, 인하대 명예교수)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나올 때마다 저자가 이끄는 대로 우리 땅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기쁨이 얼마나 쏠쏠했던가. 열독자로서 내 고향 제주편만 없음을 아쉬워하던 터에 이 책을 읽고 나니, 오래 묵혀둔 덕분에 더 큰 성취를 얻었음을 알게 되었다. 깊이있는 인문학적 지식, 걸출한 입담, 오랜 세월에 걸친 제주답사, 제주인과의 도타운 교류, 제주에 대한 사랑 등이 고수의 솜씨로 맛깔나게 버무려진 이 책을 들고 떠난다면 제주 여행은 더욱 풍성하고 알차지리라. 올레길이 제주 자연의 속살을 보여주었다면, 유교수의 답사기는 제주 문화의 깊이를 알려준다. 당장 그의 안내대로 따라나서고만 싶다.

- 서명숙(제주올레 이사장)

 

교수님과 경주 남산을 다녀오고, 산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병이 생겼다. 갈 길 급한 사람을 자꾸 뒤돌아보게 만드는 그의 감언이설에 자꾸 속아 넘어가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니 큰일이다. 당장 제주도에 갈 일이 생기면 어찌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1박2일'을 하면서 제주도를 그렇게나 많이 가보았는데 어쩜 이리 다 처음 보는 내용인 걸까. 그러나 이젠 뻔뻔해져서 그다지 창피하지도 않다. 경주 때도, 경복궁 때도 똑같이 느꼈던 감정이니까. 남들 다 가는 제주도, 교수님의 눈으로 보면 이렇게나 달라 보인다. 그저 관광지가 아닌, 진짜 제주도가 이 안에 있다.

- 나영석(KBS 프로듀서)

 

 

유홍준 兪弘濬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학과,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와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1985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개설했으며,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았다.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하고, 현재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제주 추사관 명예관장이다.

저서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7), 평론집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미술사 저술 『조선시대 화론 연구』 『화인열전』(1~2) 『완당평전』(1~3) 『국보순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2) 등이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저작상(1998), 제18회 만해문학상(2003) 등을 수상했다.

 

차례

 

책을 펴내며

'제주 허씨'를 위한 '제주학' 안내서

 

제주답사 일번지 1 - 와흘 본향당

본향당 팽나무에 나부끼는 하얀 소망들

제주도 / 제주의 가로수 / 산천단 / 와흘 본향당 / 소지의 내력 / 회천 석인상

 

제주답사 일번지 2 - 조천 너븐숭이

외면한다고 잊혀질 수 없는 일

조천 연북정 / 조천 연대 / 큰물, 조근돈지 / 너븐숭이 / 제주 4 · 3사건의 전말 / 「순이삼촌」문학비

 

제주답사 일번지 3 - 다랑쉬오름

설문대할망의 장대한 대지예술

제주의 자연 / 다랑쉬오름 / 용눈이오름 / 김영갑 갤러리 / 아부오름 / 『오름나그네』

 

제주답사 일번지 4 - 용천동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용암동굴은 없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 성산일출봉 / 용암동굴 / 당처물동굴 / 거문오름 / 용천동굴

 

제주답사 일번지 5 - 하도리 해녀 불턱

숨비소리 아련한 빈 바다에 노을이 내리네

제주해녀항일기념탑 / 해녀박물관 / 세화리 갯것할망당 / 대상군 이야기 / 하도리 해녀 불턱 / 종달리 돈지할망당

 

한라산 윗세오름 등반기 - 영실

진달랩니까, 철쭉입니까

한라산 / 임백호 『남명소승』 / 오백장군봉 / 영실 / 팔도 아줌마 / 구상나무 / 윗세오름 / 겐테 박사 / 정지용의 「백록담」

 

탐라국 순례 1 - 삼성혈

전설은 유물을 만나 현실로 돌아온다

삼성혈 / 돌하르방 / 삼사석 / 일도 이도 삼도 / 삼양동 선사유적지 / 삼양동 검은 모래

 

탐라국 순례 2 - 관덕정

탐라국에서 제주도로 넘어가면서

탐라국에서 제주군으로 / 불탑사 오층석탑 / 고려왕조의 이미지 /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 제주목 관아 / 관덕정 / 관덕정 돌하르방

 

탐라국 순례 3 - 오현단

제주의 삼보(三寶)와 영주십경(瀛州十景)

무근성 / 오현단 / 귤림서원 / 향현사 / 제주성터 / 『탐라순력도』 / 사라봉 / 만덕할머니 / 김만덕 기념탑 / 한라수목원 / 제주어

 

제주의 서남쪽 1 - 하멜상선전시관

불로초를 찾아 오고, 태풍에 실려 오고

명월성 / 명월리 팽나무 군락 / 백난아 「찔레꽃」 / 산방산 / 하멜상선전시관 / 『하멜 보고서』 / 서복전시관

 

제주의 서남쪽 2 - 송악산

아, 다녀가셨군요

무태장어 / 용머리해안 / 형제섬 / 사계리 사람 발자국 화석 / 일본군 진지동굴 / 송악산 / 알뜨르 비행장 / 백조일손지묘 / 「빈 산」

 

제주의 서남쪽 3 - 대정 추사 유배지

세한도를 그릴 거나, 수선화를 노래할 거나

유배지로 가는 길 / 위리안치 / 아내에게 보낸 편지 / 찾아오는 제자들 / 「세한도」 / 추사의 귤중옥 / 수선화를 노래하며 / 방송

 

제주의 서남쪽 4 - 모슬포

모슬포 모진 바람은 지금도 여전하고

제주 추사관 / 대정읍성 / 삼의사비 / 대정향교 / 인성리 방사탑 / 육군 제1훈련소 / 강병대 교회 / 모슬포

 

가시리에서 돈내코까지 1 - 조랑말박물관

순종을 지키고 고향을 지키련다

천연기념물 347호 제주마 / 제주마 방목장 / 사려니 숲길 / 교래리 토종닭 / 가시리마을 / 조랑말박물관

 

가시리에서 돈내코까지 2 - 제주학의 선구자들

잊어서는 안 될 그분들을 기리며

헌마공신 김만일 / 재일동포 공덕비 / 위미 동백나무 울타리 / 감귤박물관 / 이중섭 미술관 / 이즈미 세이이찌 / 돈내코 / 석주명 흉상

 

지명 찾아보기

 

|제주도의 위성사진|  제주섬은 타원형으로 대략 남북이 31킬로미터, 동서가 73킬로미터, 해안선 둘레가 약 200킬로미터, 전체 면적이 약 6억 평(1천8백만 평방킬로미터)이다. 타원형이기 때문에 평면도 아름다워 보인다.

|비행기에서 본 제주|  제주행 비행기 창가에 앉아 있을 때 맑은 날이면 해안가로 밀려드는 파도, 오름의 능선들, 밭담과 방품림으로 구획된 들판 등 제주섬의 낱낱 표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와흘 본향당 전경|  본향당은 영혼의 주민센터 같은 곳으로 와흘리 본향당에는 신령스럽게 자란 두 그루의 팽나무가 신목으로 모셔져 있다.

|와흘 본향당 팽나무와 그 위에 걸려 있는 소지와 물색천|  본향당 할망에게 소원을 빌 때 흰 종이를 가슴에 품고 말한 다음 신목에 걸어둔다. 이를 소지라고 한다.

|석인상의 유머 넘치는 표정|  새미마을 석인상은 얼굴 모습과 표정이 제각기 다르면서 미소를 짓게 하는 유머가 들어 있다. 서민상을 담아낸 것으로 민화를 보는 듯한 친숙감이 느껴진다.

|조천진과 연북정|  연북정은 조천진의 망루로 진지 아래서 올려다볼 때 제법 의젓해 보인다. 삼다도 바람이 강해 지붕이 육지의 그것처럼 활짝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연북정 정면|  연북은 북쪽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임금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고 있다.

|조천연대|  연대는 옛 통신시설로 연기를 피워 위급상황을 알렸다. 때문에 제주의 연대는 사방이 잘 조망되는 곳에 설치하여 여기에 오르면 전망이 넓고 시원하다. 조천연대는 그 구조가 다른 연대보다 높고 튼실하다.

|조근돈지|  마을 공동목욕탕 중 남탕은 지붕이 없는 노천탕으로 조근(작은)돈지라고 한다.

|덕인당 보리빵집|  신촌리 신촌초등학교 앞에는 보리빵집이 즐비한데 그중 원조는 덕인당이다.

|북촌리 4 · 3 위령비|  4 · 3 당시 북촌리 주민 학살사건으로 희생된 400여 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위령비이다. 비 뒤쪽에 희생자 이름들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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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대|  1.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2. 조천 만세동산 3. 세화리 충혼탑 4. 사라봉 의병항쟁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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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유명 모뉴먼트|  1. 독일 하르부르크의 모뉴먼트 2. 워싱턴의 베트남전쟁 기념 모뉴먼트 3~4.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모뉴먼트

|너븐숭이 애기무덤|  4 · 3때 400여 명의 주민이 희생된 북촌리 양민학살로 덧없이 죽은 어린아이들의 무덤이다.

|「순이삼촌」 문학비|  너븐숭이는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의 무대여서 문학비가 세워졌다. 소설의 한 대목씩 쓰여 있는 장대석들이 무리지어 뒹굴고 있어 학살의 현장을 연상케 한다.

|강요배 「호박꽃」|  탐스럽고 싱싱하게 피어난 호박꽃을 클로즈업한 이 그림에는 농촌에서만 볼 수 있는 풋풋한 서정과 순정이 흠뻑 배어 있다.

|강요배 「산꽃」|  다랑쉬오름의 한 자락을 그린 이 그림에는 살짝 걸쳐 있는 구름이 가볍게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게 해주면서 화면 상에 가벼운 움직임이 일어난다.

|다랑쉬오름|  마을에서 바라본 다랑쉬오름은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그 형체미가 대단히 아름답다.

|아끈다랑쉬오름|  다랑쉬오름을 오르다보면 계속 내려다보게 되는 아끈다랑쉬오름이 아주 귀엽기만 한데 마침내는 낮은 굼부리까지 전체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  다랑쉬오름 곁에는 아끈(작은)다랑쉬오름이 있어 마치 모자가 앉아 잇는 모습으로 보인다. 특히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볼 때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다랑쉬오름 분화구|  오름의 산마루에 도달하는 순간 뻥 뚫린 굼부리가 발 아래로 깊이 펼쳐진다. 아래쪽에서 볼 때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면이 전개되어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된다.

|다랑쉬오름에서 바라본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이 널리 조망된다. 특히 용눈이오름 쪽을 바라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거친 황무지가 펼쳐져 색다른 서정이 일어난다.

|제주의 산담|  제주의 무덤은 산담을 두른 다음 봉분 앞에는 동자석과 망주석을 양 옆에 세우는 것이 하나의 정형이었다. 산담은 삼다도의 또 하나의 상징적 표정이다. 그러나 동자석들이 정원석으로 팔려나가는 바람에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주 드물다.

|제주박물관 동자석들|  제주 산담을 지키고 있던 동자석들은 단순화시킨 형체미에 정면관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제 거의 다 제자리를 떠나 박물관 야외조각장이나 개인 정원에서 사랑받는 조각품이 되었다.

|용눈이오름|  세 개의 분화구가 겹치면서 이루어낸 아름다운 곡선미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해준다. 용눈이오름의 굽이치며 뻗어가는 능선의 곡선미는 간혹 여체의 아름다움에 비유되곤 한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전경|  한 사진작가의 혼이 담긴 제주의 풍광 사진들은 사후에도 그의 이름을 딴 갤러리에 보존되었고 그곳은 제주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술관의 하나가 되었다.

|아부오름|  아부오름은 신비롭게도 원형경기장처럼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높은 데서 아부오름의 굼부리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에 제주 오름의 또다른 멋을 만끽하게 해준다.

|김종철의 『오름나그네』|  제주 산악인 고 김종철 선생은 제주 330여 개의 오름을 모두 올라 그 지질, 식생, 전설, 이름의 유래를 밝힌 최초의 오름 보고서를 '오름나그네'라는 이름으로 펴내고 세상을 떠났다.

 

당신을 표현하기에는 언제나 형용사밖에는 없다.

바하로부터 바하까지 돌아온

G선상의 여수(旅愁)와 같다.

 

싱그러운 눈의 외로움

등뒤에서 비오는 소리

또한 햇무리 흐르는 계단의 정적

 

어떤 기쁨에라도 슬픔이 섞인다.

 

그러고는 아름다운 여자를 잉태한 젊은 어머니의해변(海邊)

 

오늘, 저 하마유꽃(문주란)이라도 지는 흐린 날,

어제의 빈 몸으로 떠나는구나,

그러나, 아무것도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

- 고은, 「제주의 D단조 - 김종철에게」

 

 

 

 

 

 

 

 

 

 

 

 

 

 

 

 

 

 

 

 

 

posted by 황영찬
2013. 4. 10. 14:12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36  중국화 감상법

 

글, 사진 / 한정희

1995,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8016

 

082

빛12ㄷ  160

 

빛깔있는 책들 160

 

한정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였고 미국 켄사스 대학교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대 예술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서로는 『중국 산수화의 세계』『동양미술사』가 있으며 논문으로는 「동기창에 있어서의 동원의 개념」「중국의 회화 비평」「동기창과 조선 후기 화단」등이 있다.

 

|차례|

 

중국화의 특성

중국화의 종류

    재료와 기법에 의한 분류

    내용에 의한 분류

중국화의 시대적 변천

    채색 인물화의 시대

    수목 산수화의 시대

    문인화의 시대

    개성 표출의 시대

중국화의 감상

    감상의 유의점

    감상의 실례

맺음말

참고 문헌

 

 

▲ 심주의 『산수도권』가운데 일 엽(一葉)  문인화의 한 예이다. 문인화는 문인이 문기(文氣)를 표현한 그림이나 후에는 양식적인 의미로도 해석되었다. 15세기 후반 작품. 넬슨 아킨스 미술관 소장.

▲ 목계의 「학, 관음, 원숭이」  선종화의 예로 참선할 때의 공안(公案)을 회화화한 것이다. 삼폭대(三幅對). 남송대 작품. 일본 다이도쿠지(大德寺) 소장.

▲ 동기창의 「완련초당도(婉孌草堂圖)」  이 그림에는 19개의 제문(題文)과 63개의 인장이 찍혀 있다. 1597년 작품. 뉴욕 개인 소장.

▲ 이성의 「청만소사도(晴巒蕭寺圖)」  이 그림에 사용된 준법이 우점준(雨点皴)이다. 북송대 작품. 넬슨 아킨스 미술관 소장. 

▲ 한대 백화(帛畵)  관 위에 덮어 두었던 것으로 비의(飛衣)라고도 한다. B. C. 2세기 작품. 창사(長沙) 시 마왕퇴(馬王堆) 1호분에서 출토.

▲ 한대 화상석(畵像石)  무량사 벽면 장식. 맨 위에는 신화적 주제인 서왕모(西王母)가 있고 그 아래에는 유교적 주제인 성군(聖君)과 효자들 그리고 아래에 일상 생활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 2세기 작품.

▲ 한대 화상전(畵像塼)  쓰촨(四川) 지방 출토.

▲ 당대 벽화, 「외국사신도」부분  706년 작품. 장회 태자묘 출토.

▲ 당대 벽화, 「수렵출행도」부분  깃털을 단 사신이 한국인이다. 통일신라의 사신이 아니라 고구려 후예가 세운 발해가 아닌 또 다른 국가에서 왔다는 해석이 있다. 706년 작품. 장회 태자묘 출토.

▲ 둔황 벽화, 「사신구호도(捨身救虎圖)」  428번 굴 벽화. 육조시대 작품.

▲ 조맹부의 「작화추색도」 권화. 1296년 작품. 타이베이 고궁 박물원 소장.

▲ 오진의 「묵죽보(墨竹譜)」  가운데 일 엽  모두 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나무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 있다. 1350년 작품. 타이베이 고궁 박물관 소장.

▲ 고개지의 「여사잠도권(女史箴圖券)」  육조시대에는 글씨를 쓰고 그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성행했다. 이 내용은 궁녀들이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에 힘쓰고 외식 곧 화장에 힘쓰지 말기를 가르치는 유교적인 내용이다. 후대 임모작. 대영박물관 소장.

▲ 염립본의 「제왕도권(帝王圖券)」  후대 임모작. 보스턴 미술관 소장.

▲ 주신의 「걸인도」  명대 작품. 호놀룰루 미술관 소장.

▲ 굴정의 「하산도(夏山圖)」  자연의 장관(壯觀)을 그린 것으로 대관 산수(大觀山水)의 예이다. 북송대 작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 마원의 「고사관록도(高士觀鹿圖)」  자연의 일부에서 미를 찾는 것으로 소경 산수(小景山水)의 예이다.

▲ 노홍의 「초당십지도(草堂十地圖)」  구도나 나무 표현 등은 당대풍이나 바위에 준법이 표현된 것은 송대풍이다. 후대 모사본.

▲ 이성의 「청만소사도(晴巒蕭寺圖)」  북송대 작품. 넬슨 아킨스 미술관 소장.

▲ 허도녕의 「추강어정도(秋江漁艇圖)」  북송대 작품. 아킨스 미술관 소장.

▲ 양해의 「발묵선인도(潑墨仙人圖)」  선종화의 예로 속필과 발묵법으로 선기(禪機)를 표현했다. 남송대 작품.

▲ 황공망의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  고궁 박물원에는 무용(無用)에게 준 것과 자명(子明)에게 준 2개의 「부춘산거도」가 있는데 대개 무용 본을 진본(眞本)으로 본다. 타이베이 고궁 박물관 소장. 원대 작품.

▲ 심주의 「야좌도(夜坐圖)  점점 회화가 철학화되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명대 작품. 타이베이 고궁 박물원 소장.

▲ 석도의 『위우노도형작산수책(爲禹老道兄作山水冊)』  가운데 일 엽  뉴욕 개인 소장. 17세기.

▲ 팔대산인의 『안만첩(安晩帖)』 가운데 일 엽, 「조는 새」  세상에 대한 무관심을 조는 새로 표현하였는데 일종의 감정 이입법이다. 17세기.

▲ 화암의 「천산적설도(天山積雪圖)」  극도로 생략된 산 모습과 섬세한 낙타의 대비가 돋보인다. 18세기.

▲ 범관의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  견본(絹本) 수묵 채색, 북송대 작품.

▲ 「행려도」  왕휘의 모사본이라는 주장이 있다. 타이베이 고궁 박물원 소장.

▲ 조맹부의 「작화추색도」  지본(紙本) 수묵 담채. 1296년 작품. 타이베이 고궁 박물원 소장.

▲ 팔대산인의 『안만첩』  일본 스미토모(住友) 소장.

▲ 허곡의 「금어도(金魚圖)」  19세기 작품.

▲ 홍세섭의 「유압도(遊鴨圖)」  19세기 작품.

 

 

 

 

 

 

 

 

 

 

 

 

 

posted by 황영찬

2013-035-1 행복을 찾아가는 절집기행(서울)

 

봉원사

 

 

▲ 매년 여름 연꽃이 만발하는 봉원사는 연꽃축제를 개최한다.

▲ 한글학회 창립한 곳.

이 곳 유서 깊은 봉원사는 우리 말글의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1908년 8월 31일 국어연구학회(지금의 한글학회)가 창립총회를 연 곳으로 그 높은 뜻을 길이 남기고자 학회 창립 100돌에 이 표시석을 세우다.

2008년 8월 31일 한글학회 창립 백돌 기념사업회.

▲ 시련의식에서 행해지는 바라춤(위)과 식당작법(아래).

▲ 법고무.

▲ 나비춤.

▲ 염불당 중간에 '봉원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안쪽 마루에 '무량수각(無量壽閣)' '청련시경(靑蓮詩境)' '산호벽수(珊瑚碧樹)'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의 스승인 청나라 옹방강(翁方綱)의 글씨이고 나머지 두 개는 추사의 글씨다.

 

대각사

 

 

 

▲ 용성 스님이 독립운동을 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던 대각사 경내 풍경.

▲ 용성 스님의 수행 가풍을 잇는 용성선원.

▲ 사적비 이수.

▲ 대각사가 위치한 종로3가 '국악의 거리'.

 

조계사

 

 

▲ 조계사 일주문.

▲ 대웅전의 삼존불.

▲ '팔정도'가 새겨진 법륜상.

▲ 법당 뒤편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 조계사 회화나무.

▲ 조계사 백송

 

posted by 황영찬